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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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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근동은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중동과 함께 사용되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 의미와 범위가 변화해 온 지역 개념이다. 19세기에는 오스만 제국을 중심으로 한 지역을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되었으며, 20세기 초에는 중동이라는 용어가 부상하면서 외교 및 학술 분야에서 사용 빈도가 줄어들었다. 현재는 주로 학술적인 용어로 사용되며, 미국 국무부 등 일부 기관에서 공식적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근동은 고대 근동 연구, 외교, 국제 관계 등 다양한 분야에서 사용되며, 그 정의와 범위는 시대와 맥락에 따라 다르게 적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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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동
개요
명칭근동 (近東)
영어 명칭Near East
정의지리적 용어로 서아시아를 대략적으로 포괄
관련 용어서아시아
중동
고대 근동
레반트
아나톨리아
역사적 맥락
기원유럽 중심적 관점에서 유래
시대적 배경대항해시대 이후 유럽 세력이 확장되면서, 유럽에서 상대적으로 가까운 아시아 지역을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
용어 변화20세기 초, '중동'이라는 용어가 등장하면서 '근동'이라는 용어 사용 빈도 감소
현대적 사용고고학, 역사학 분야에서 고대 근동 시대를 지칭할 때 주로 사용
지역 구분
주요 포함 지역서아시아 대부분 지역
추가 포함 가능 지역이집트, 리비아, 수단 등 북아프리카 일부 지역
학문적 사용
고고학고대 근동 문명 연구
역사학고대 근동 시대사 연구
기타
주의'근동'과 '중동'은 때때로 혼용되지만, 정확한 지리적 범위와 역사적 맥락에서 차이가 있음

2. 개념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전간기까지, "근동(Near East)"과 "중동(Middle East)"이라는 용어는 공존했지만, 서구 평론가들의 시각에서 항상 뚜렷하게 구분되지는 않았다.[21] 중국 해관에서 잠시 장교로 복무했던 저널리스트 버트럼 레녹스 심슨은 1910년 저서 ''The Conflict of Colour: The Threatened Upheaval Throughout the World''에서 두 용어를 결합하여 "근동 및 중동"이라고 칭했다. 심슨에 따르면, 이 결합된 지역은 "인도, 아프가니스탄, 페르시아, 아라비스탄, 소아시아,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집트"로 구성되었으며, 앞서 언급한 지역들이 실제로는 "학문적으로 분할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치적으로는 하나의 지역"이라고 설명했다.[21]

''The Conflict of Colour''에서 심슨은 이러한 지역들을 결합시키는 요인은 그들의 인간 피부색과 모두 유럽 식민 통치 하에 있었다는 사실이라고 주장했다. 심슨은 동방 문제 (19세기에 오스만 제국의 쇠퇴와 관련된 외교적 문제)를 "근동 문제"로 수정하여 "백인"과 관련하여 근동의 유럽 식민주의의 미래 문제를 중심으로 재구성했다:[21]

19세기에는 "중근동(Near and Middle East)"의 호칭이 일반적으로 사용되었다.[39] 20세기에 중동의 개념이 사용되면서, 극동(Far East), 중동(Middle East), 근동(Near East)의 셋으로 나뉜 호칭으로 지역이 구분되게 되었다.[40] 19세기 후반부터 제1차 세계 대전에 걸친 "근동"의 개념은 제2차 세계 대전 후의 "중동"의 범위와 상당히 겹치는 지역을 가리키며, 터키나 아랍 세계에 발칸 반도를 포함하는 지역을 가리켰다.[38]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후 외교 및 군사 분야에서 '근동'이라는 용어가 쇠퇴하면서 '중동'이 널리 사용되었으나, '근동'은 일부 분야에서 계속 사용되기도 한다. 원래는 동방 문제가 초점이 되는 가운데, 오스만 제국의 영역을 가시화하는 호칭으로 형성되었다.[38] 한편 "중동"은 영국의 가장 중요한 식민지였던 인도에 이르는 지역(터키, 이집트, 시리아, 이라크 등)을 가리키는 호칭으로 형성되었다.[38]

제2차 세계 대전 후에는 중동과 근동의 구별이 모호해져, 뉴욕 타임스는 같은 지역에 두 개의 호칭을 사용했지만, 1954년에 표현을 "중동"으로 통일했다.[40] 미국도 1957년 아이젠하워 독트린에서 공식 문서로 처음 "중동"을 사용했고, 1958년 미국 국무부의 견해에서 "중동"과 "근동"은 상호 대체 가능한 용어라고 설명했다.[38]

2. 1. 용어의 기원

19세기 초 오스만 제국은 발칸 반도 전체와 헝가리 대평원 남쪽 가장자리까지 지배했다.[10] 그러나 1914년까지 민족주의 발칸 국가의 부상으로 콘스탄티노플과 동트라키아를 제외한 모든 영토를 잃었다.[10] 이는 그리스 왕국, 세르비아 왕국, 다뉴브 공국, 불가리아 왕국의 독립으로 이어졌다.[10] 1912년까지 오스만 제국은 알바니아, 마케도니아 및 아드리아노플주를 포함한 영토를 유지했으나, 이는 1912~13년의 두 차례의 발칸 전쟁에서 상실되었다.[10]

오스만 제국은 전성기(1683년)에 근동과 북아프리카, 중부 및 동남유럽의 영토를 지배했다.


붕괴 직전이라고 여겨진 오스만 제국은 언론에서 "유럽의 환자"로 묘사되었다.[10] 보스니아와 알바니아를 부분적으로 제외한 발칸 국가는 주로 기독교 국가였으며, 레바논의 다수도 기독교인이었다.[10] 1894년부터 오스만 제국은 비무슬림 민족이라는 명백한 이유로 아르메니아인과 아시리아인을 공격했고, 이들은 자신들이 거주하는 무슬림 제국에 잠재적 위협이 될 수 있었다.[10] 함미디안 학살, 아다나 학살 및 아시리아인과 아르메니아인을 표적으로 삼은 바드르 칸 학살은 기독교 세계 전체의 분노를 불러일으켰다.[10] 오스만 제국 내 소수 민족과의 관계와 이전 오스만 영토의 처분은 오스만 제국이 유럽의 동쪽에 위치해 있었기에 "동방 문제"로 알려지게 되었다.[10]

19세기 중반 무렵, ''근동''은 유럽과 가장 가까운 동쪽 부분을 설명하기 위해 사용되었다.[10] ''극동''이라는 용어는 일본, 중국, 대한민국, 인도네시아 및 베트남을 의미하며 동시에 등장했다.[10] ''근동''은 주로 레반트로 알려진 지역에 적용되었으며, 이는 오스만 포르테, 즉 정부의 관할 하에 있었다.[10]

오스만 제국 포르테, 1767년, 레반트와의 무역 관문. 앙투안 드 파브레이의 그림.


1853년 러시아 제국은 슬라브 발칸 국가를 대표하여 오스만 제국의 존립 자체에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는 크림 전쟁, 1853–1856년이었으며, 여기서 대영 제국과 프랑스 제국은 러시아 제국의 침략에 맞서 오스만 제국을 지원했다. 결국 오스만 제국은 발칸 지역에 대한 통제력을 잃었다.[10]

영국 군대, 크림반도, 1855년


크림 전쟁은 19세기 말에 더 친숙해진 용어의 도입과 함께 어휘의 변화를 가져왔다.[15] 러시아 제국은 더욱 공격적인 단계에 접어들어 오스만 제국뿐만 아니라 중국에 대해서도 군사적으로 활동하며 명백한 영토 확장을 염두에 두었다.[15] 정책을 재고한 영국 정부는 공격받는 두 정체가 세력 균형에 필요하다고 판단했다.[15] 따라서 양국에서 러시아에 대항하기 시작했고, 그 결과 중 하나가 크림 전쟁이었다.[15] 그 전쟁 동안 대영 제국 정부는 '근동' (오스만 제국)과 '극동' (동인도)에 특정한 지역적 의미를 부여하며 새로운 어휘를 널리 알리기 시작했다.[15]

19세기 후반 제1차 세계 대전에 걸친 "근동"의 개념은 제2차 세계 대전 후의 "중동"의 범위와 상당히 겹치는 지역을 가리키며, 터키나 아랍 세계에 발칸 반도를 포함하는 지역을 가리켰다[38]。 한편, "근동"과 병행하여 사용되는 경우의 "중동"의 개념은 제2차 세계 대전 후에 정착된 것과는 크게 다른 것으로, 이란과 코카서스, 아프가니스탄, 중앙 아시아뿐만 아니라, 광의로는 인도차이나 반도나 투르키스탄에 이르는 지역을 포함하는 경우가 있었다[38][40]

제2차 세계 대전 후에는 중동과 근동의 구별이 모호해져, 뉴욕 타임스는 같은 지역에 두 개의 호칭을 사용했지만, 1954년에 표현을 "중동"으로 통일했다[40]。 또한, 미국도 1957년 아이젠하워 독트린에서 공식 문서로 처음 "중동"을 사용했고, 1958년 미국 국무부의 견해에서 "중동"과 "근동"은 상호 대체 가능한 용어라고 설명했다[38]

2. 2. '중동'과의 관계

20세기 초, 토마스 에드워드 고든과 알프레드 테이어 마한 등의 외교 전략가들이 '중동'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근동'이라는 용어는 점차 사용 빈도가 줄어들었다.[19][20] 고든은 1900년 "중동의 문제"라는 기사에서 페르시아와 아프가니스탄의 독립 및 영토 보존을 위한 외교 정책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이 용어를 처음 사용했다.[19] 마한은 1902년 페르시아 만과 인도양의 무역로가 해상에서 취약하다는 점을 지적하며 '중동'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20]

원래 '근동'은 오스만 제국의 영역을 가리키는 말이었고,[38] '중동'은 영국의 식민지였던 인도에 이르는 지역 (터키, 이집트, 시리아, 이라크 등)을 가리키는 말이었다.[38] 19세기에는 "중근동(Near and Middle East)"이라는 용어가 일반적으로 사용되기도 했다.[39] 20세기에 들어 '중동' 개념이 사용되면서 지역은 극동, 중동, 근동으로 나뉘게 되었다.[40]

19세기 후반부터 제1차 세계 대전까지 '근동'은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중동'과 상당히 겹치는 지역을 가리켰으며, 터키나 아랍 세계에 발칸 반도를 포함했다.[38] 반면, '근동'과 함께 사용될 때 '중동'은 이란, 코카서스, 아프가니스탄, 중앙아시아를 포함했고, 넓게는 인도차이나반도나 투르키스탄까지 포함하기도 했다.[38][40]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중동과 근동의 구별이 모호해졌다. 뉴욕 타임스는 1954년에 표현을 '중동'으로 통일했고,[40] 미국도 1957년 아이젠하워 독트린에서 공식 문서로 처음 '중동'을 사용했다. 1958년 미국 국무부는 '중동'과 '근동'이 상호 대체 가능한 용어라고 설명했다.[38] 현재 '근동'은 주로 고고학 등의 학술적인 영역에서 사용된다.

2. 3. 개념의 변화와 혼용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전간기까지, "근동(Near East)"과 "중동(Middle East)"이라는 용어는 공존했지만, 서구 평론가들의 시각에서 항상 뚜렷하게 구분되지는 않았다.[21] 1910년 버트럼 레녹스 심슨은 ''The Conflict of Colour: The Threatened Upheaval Throughout the World''에서 두 용어를 결합하여 "근동 및 중동"이라고 칭하며, 이 지역이 인도, 아프가니스탄, 페르시아, 아라비스탄, 소아시아, 이집트로 구성된다고 설명했다.[21] 그는 이 지역들을 통합하는 요인으로 인간 피부색과 유럽 식민 통치를 꼽았다.[21]

19세기에는 "중근동(Near and Middle East)"의 호칭이 일반적으로 사용되었다.[39] 20세기에 중동의 개념이 사용되면서, 극동(Far East), 중동(Middle East), 근동(Near East)의 셋으로 나뉜 호칭으로 지역이 구분되게 되었다.[40] 19세기 후반부터 제1차 세계 대전에 걸친 "근동"의 개념은 제2차 세계 대전 후의 "중동"의 범위와 상당히 겹치는 지역을 가리켰다.[38]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후 외교 및 군사 분야에서 '근동'이라는 용어가 쇠퇴하면서 '중동'이 널리 사용되었으나, '근동'은 일부 분야에서 계속 사용되기도 한다. 원래는 동방 문제가 초점이 되는 가운데, 오스만 제국의 영역을 가시화하는 호칭으로 형성되었다.[38] 한편 "중동"은 영국의 가장 중요한 식민지였던 인도에 이르는 지역(터키, 이집트, 시리아, 이라크 등)을 가리키는 호칭으로 형성되었다.[38]

제2차 세계 대전 후에는 중동과 근동의 구별이 모호해져, 뉴욕 타임스는 같은 지역에 두 개의 호칭을 사용했지만, 1954년에 표현을 "중동"으로 통일했다.[40] 미국도 1957년 아이젠하워 독트린에서 공식 문서로 처음 "중동"을 사용했고, 1958년 미국 국무부의 견해에서 "중동"과 "근동"은 상호 대체 가능한 용어라고 설명했다.[38]

3. 역사적 배경

3. 1. 오스만 제국의 쇠퇴와 '동방 문제'

19세기 초, 오스만 제국은 발칸 반도 전체와 헝가리 대평원 남쪽 가장자리까지 지배했다. 그러나 민족주의 발칸 국가의 부상으로 콘스탄티노플과 동트라키아를 제외한 모든 영토를 잃었고, 그리스 왕국, 세르비아 왕국, 다뉴브 공국, 불가리아 왕국이 독립했다. 1912년까지 알바니아, 마케도니아 및 아드리아노플주를 포함한 영토를 유지했으나, 1912~13년의 두 차례의 발칸 전쟁에서 상실되었다.

붕괴 직전의 오스만 제국은 언론에서 "유럽의 환자"로 묘사되었다. 보스니아와 알바니아 일부를 제외한 발칸 국가와 레바논 다수는 기독교 국가였다. 1894년부터 오스만 제국은 아르메니아인과 아시리아인을 공격했고, 함미디안 학살, 아다나 학살 및 바드르 칸 학살은 기독교 세계의 분노를 불러일으켰다. 줄리아 워드 하우는 적십자사에 합류했다. 오스만 제국 내 소수 민족과의 관계와 이전 오스만 영토의 처분 문제는 "동방 문제"로 알려졌다.

19세기 중반, ''근동''은 유럽과 가장 가까운 동쪽 지역, 주로 레반트를 지칭했다.[10] 유럽인들은 시드라 만에서 알바니아까지 지중해 남부 및 중부 해안 대부분을 오스만 제국의 허가 없이는 발을 들일 수 없었다.[10] 오스만 포르테 너머 바르바리 해안, 이란도 포함되었다.[10] 1890년대에는 발칸 국가와 아르메니아의 분쟁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었다.[10]

잉글랜드의 엘리자베스 1세는 동쪽과의 무역을 위해 레반트 회사를 설립했고, 1582년 최초의 대사 윌리엄 헤어본을 콘스탄티노플의 오스만 제국 포르테로 파견했다.[13] 동인도 회사는[14] 1600년에 동인도 무역을 위해 설립되었다.

서양 역사가들은 오스만 제국의 쇠퇴를 썼지만, 국경은 항상 역동적이었다. 오스만 제국은 동로마 제국 멸망 후 그 영토에서 만들어졌다. 헝가리 영토는 1688년 대 터키 전쟁으로 합스부르크 군주국의 일부가 되었다. 세르비아 혁명과 그리스 독립 전쟁으로 현대 세르비아와 그리스가 만들어졌다. 오스만 포르테는 발칸 반도로부터 끊임없이 공격받았고, 미국과 영국의 군함은 바르바리 해적을 공격해야 했다.

1853년 러시아 제국은 오스만 제국의 존립에 의문을 제기했고, 크림 전쟁에서 대영 제국과 프랑스 제국은 오스만 제국을 지원했다. 결국 오스만 제국은 발칸 지역에 대한 통제력을 잃었다.

19세기 말, '근동'은 영어권에서 불신을 받았다. 헨리 노먼 경(초대 남작)은 하미디안 학살 이후 오스만 제국을 비난하며 '근동'을 발칸 지역으로 정의했다.[16] 윌리엄 유어트 글래드스턴이 그 기사를 읽었고, 몬테네그로의 니콜라스 왕자는 감사 편지를 썼다.[17]

윌리엄 밀러는 1898년 저서에서 오스만 제국의 관리들이 부적합하다고 비판하며, "동방 문제" 해결의 어려움을 언급했다.

호주군, 갈리폴리, 1915년. 이 전투는 오스만 제국의 승리였다.


1916년, 아놀드 J. 토인비는 근동을 형이상학적으로 고찰하며, "정신적 마비 상태"에 놓여 있다고 보았다.[18] 그는 근동의 경계를 정의하기 어렵다고 언급하며, 아랍어 사용 세계와 독일어 사용 세계를 침범한다고 했다.[18] 근동의 종말과 함께 터키 공화국 등 새로운 국가들이 등장했고,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는 서구화를 추진했다.

3. 2. 제1차 세계 대전과 '근동' 지역의 변화

3. 3. '중동' 용어의 부상과 '근동'의 쇠퇴

19세기에는 '근동'이 오스만 제국의 영토를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되기 시작하면서, '중동'이라는 용어는 외교 및 고고학 분야를 제외하고는 널리 사용되었다.[19] '극동'은 프톨레마이오스의 "갠지스강 너머의 인도"에서 유래되었고, 오스만 제국은 이라크 동쪽 국경에서 끝났기 때문에, 이란은 '근동'으로 간주되었으나, 외교관들은 지역 용어의 필요성을 느꼈다.

'중동'이라는 용어는 1900년 토마스 에드워드 고든이 "중동의 문제"라는 기사를 발표하면서 영국과 미국의 외교계에서 사용되기 시작했다.[19] 고든은 페르시아와 아프가니스탄의 독립과 영토 보존을 위한 외교 정책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러시아에서 페르시아 만으로 이어지는 철도 공사를 위협으로 간주했다.[19]

알프레드 테이어 마한은 1902년 페르시아 만과 인도양의 무역로가 해상에서 취약하다는 점을 지적하며, '중동'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20] 마한은 영국 해군이 아덴, 인도, 걸프만 주변에 병력을 집중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20]

4. 현대적 의미와 적용

1차 세계 대전 이전의 근동에 대한 Maunsell의 지도, 영국 민족지 지도


근동 사무국 로고


; 학술적 사용

고대 근동은 고대 역사에서 ''근동''의 지리적 적용을 안정시키기 위해 20세기에 만들어진 용어이다. ''근동''은 다양한 의미를 가질 수 있지만, ''고대 근동''은 항상 동일한 의미, 즉 향상된 비옥한 초승달 지대의 고대 국가, 민족 및 언어를 의미한다.[37] 이 지역은 나일 계곡에서 아나톨리아를 거쳐 남쪽으로 메소포타미아의 경계까지 뻗어 있다.

''고대 근동''의 사용이 절정에 달했던 시기는 제임스 베넷 프리처드의 1950년 초판 교과서인 ''구약 성서와 관련된 고대 근동 텍스트''였다. 레너드 울리가 쓴 마지막 훌륭한 책은 1961년에 출판된 ''페르시아, 메소포타미아 및 팔레스타인을 포함한 중동의 예술''이었다.

20세기 후반, 국가 통치를 수행하거나 지원하기 위한 전문 기관의 성장과 병행하여, 일반적으로 대학 환경에서 학문과 연구를 위한 자원 수집이 이루어졌다. 교양 학문을 가르치는 대부분의 대학에는 도서관 및 박물관 소장품이 있으며, 20세기 후반에 이러한 것들을 국가 및 국제적인 관심의 "센터"로 구축함으로써 과거의 학자들이 이용할 수 없었던 더 큰 데이터베이스를 만들었다. 이 중 많은 곳이 고대 근동, 즉 고대 근동의 의미에서 ''근동''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에 설립되어 위치한 고대 문서 연구 센터(CSAD)는 "그리스 비문의 디지털 이미지 라이브러리를 만들기 위한 장기 프로젝트"를 포함하고 있다. 이집트 외에도 이집트 및 근동 지역에는 키프로스, 페르시아 및 아프가니스탄이 포함되지만 소아시아는 포함되지 않는다.[37]

근대 중동 전문가의 상당수는 근동이라는 명칭의 대학 부서에서 훈련을 시작했다. 이와 유사하게 이러한 전문 분야와 관련된 학술지에는 '근동' 또는 '근동'이라는 단어가 포함된다. 이러한 수많은 기관과 출판물에서 '근동'의 의미는 중동이다. 고대 근동 연구와 거의 혼합되거나 혼동되지 않지만, 종종 '고대 근동'은 현대 시대를 의미하지 않고 '근동'으로 줄여 사용된다. 예를 들어, 고대적 의미의 '근동 언어'에는 수메르어아카드어와 같은 언어가 포함된다.

; 외교 및 국제 관계

20세기 주요 전쟁과 수십 년간의 정치적 격변 이후, "근동", "극동", "중동"과 같은 용어는 계속 사용되었지만, 그 의미와 범위가 변화했다.[23] 이러한 혼란은 정치학 전문가들의 연구 과제가 되었다.[23] 오스만 제국이 19세기의 다른 모든 제국과 함께 사라지고, 그 지역은 다양한 지역적, 세계적 유대 관계를 가진 여러 공화국으로 대체되면서, 고대 근동은 더 이상 실제 근동이라고 신뢰할 수 없게 되었다.[23]

복잡한 국제 관계의 특정 측면을 처리하기 위해 형성된 다양하고 전문화된 많은 기구들이 용어와 함께 진화했다. 현재의 정의는 과거의 정의와 일치하지 않게 되었다. 지속적인 영토 분쟁과 비자유 핵 보유국의 영토 야망으로 인해 이러한 용어와 그 정의를 조정하는 것은 여전히 어렵다.[23]

미국은 여전히 "근동"이라고 불리는 지역에 공식적인 책임을 부여하는 주요 국가이다.[23] 미국 국무부 산하의 근동 사무국은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이 외교술이라고 부르는 미국의 공식 외교를 수행하며, "근동"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가장 영향력 있는 기관이다.[24] 미국 국방부의 교육 기관인 근동 및 남아시아 전략 연구 센터(NESA)는 국무부 지역의 조합으로, 해당 지역에서 근무하거나 근무할 정부 관리 및 군 장교를 위한 강좌, 세미나 및 워크숍을 제공한다.[25] 워싱턴 근동 정책 연구소(WINEP)는 중동 정책에 대한 연구 및 조언을 제공하는 비영리 단체로, 대상 국가를 중동으로 간주하지만 국무부의 관행에 따라 "근동"이라는 명칭을 사용한다.[26]

유엔은 다양한 활동을 위해 여러 지역 구분을 설정하지만, 근동을 포함하는 경우는 드물며, 그 정의도 불분명하다. 유니세프는 "중동 및 북아프리카" 지역을 인정하고,[28] 유네스코는 아랍 국가, 아시아 및 태평양, 아프리카의 세 지역으로 국가를 나누는데, 이는 "지리를 강제적으로 반영하지 않"고 "지역 활동의 실행을 지칭한다."[29] 유엔 통계국서아시아를 중동의 다른 지역에 포함된 국가들을 포함하는 것으로 정의한다.[30]

미국 중앙정보국 (CIA)의 정보국은 근동 및 남아시아 분석실(NESA)을 포함하며, 이 부서의 임무는 "중동 및 북아프리카 국가, 그리고 인도,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의 남아시아 국가에 대한 지원"이다.[31] NESA의 근동은 CIA에서 발행하는 ''The World Factbook''에서 정의된 중동과 동일하다.[32]

미국 국제 개발처(USAID)는 ''근동''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지만, USAID의 중동 정의는 국무부의 정의와 일치하며, 국무부는 공식적으로 ''근동''이라는 용어를 선호한다.[33] 영국의 외교통상부는 중동 및 북아프리카 지역은 인정하지만, 근동은 인정하지 않는다.[34] 헬라스 공화국 외무부는 "지중해 - 중동 지역" 국가들과 "양자 관계"를 맺고 있지만, 근동 지역을 구성하지는 않는다.[35] 터키 공화국 외무부 역시 ''근동''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으며, 터키 외무부의 지역에는 중동, 발칸 반도 등이 포함된다.[36]

4. 1. 학술적 사용

고대 근동은 고대 역사에서 ''근동''의 지리적 적용을 안정시키기 위해 20세기에 만들어진 용어이다. ''근동''은 다양한 의미를 가질 수 있지만, ''고대 근동''은 항상 동일한 의미, 즉 향상된 비옥한 초승달 지대의 고대 국가, 민족 및 언어를 의미한다.[37] 이 지역은 나일 계곡에서 아나톨리아를 거쳐 남쪽으로 메소포타미아의 경계까지 뻗어 있다.

''고대 근동''의 사용이 절정에 달했던 시기는 제임스 베넷 프리처드의 1950년 초판 교과서인 ''구약 성서와 관련된 고대 근동 텍스트''였다. 레너드 울리가 쓴 마지막 훌륭한 책은 1961년에 출판된 ''페르시아, 메소포타미아 및 팔레스타인을 포함한 중동의 예술''이었다.

20세기 후반, 국가 통치를 수행하거나 지원하기 위한 전문 기관의 성장과 병행하여, 일반적으로 대학 환경에서 학문과 연구를 위한 자원 수집이 이루어졌다. 교양 학문을 가르치는 대부분의 대학에는 도서관 및 박물관 소장품이 있으며, 20세기 후반에 이러한 것들을 국가 및 국제적인 관심의 "센터"로 구축함으로써 과거의 학자들이 이용할 수 없었던 더 큰 데이터베이스를 만들었다. 이 중 많은 곳이 고대 근동, 즉 고대 근동의 의미에서 ''근동''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에 설립되어 위치한 고대 문서 연구 센터(CSAD)는 "그리스 비문의 디지털 이미지 라이브러리를 만들기 위한 장기 프로젝트"를 포함하고 있다. 이집트 외에도 이집트 및 근동 지역에는 키프로스, 페르시아 및 아프가니스탄이 포함되지만 소아시아는 포함되지 않는다.[37]

근대 중동 전문가의 상당수는 근동이라는 명칭의 대학 부서에서 훈련을 시작했다. 이와 유사하게 이러한 전문 분야와 관련된 학술지에는 '근동' 또는 '근동'이라는 단어가 포함된다. 이러한 수많은 기관과 출판물에서 '근동'의 의미는 중동이다. 고대 근동 연구와 거의 혼합되거나 혼동되지 않지만, 종종 '고대 근동'은 현대 시대를 의미하지 않고 '근동'으로 줄여 사용된다. 예를 들어, 고대적 의미의 '근동 언어'에는 수메르어아카드어와 같은 언어가 포함된다.

4. 2. 외교 및 국제 관계

20세기 주요 전쟁과 수십 년간의 정치적 격변 이후, "근동", "극동", "중동"과 같은 용어는 계속 사용되었지만, 그 의미와 범위가 변화했다.[23] 이러한 혼란은 정치학 전문가들의 연구 과제가 되었다.[23] 오스만 제국이 19세기의 다른 모든 제국과 함께 사라지고, 그 지역은 다양한 지역적, 세계적 유대 관계를 가진 여러 공화국으로 대체되면서, 고대 근동은 더 이상 실제 근동이라고 신뢰할 수 없게 되었다.[23]

복잡한 국제 관계의 특정 측면을 처리하기 위해 형성된 다양하고 전문화된 많은 기구들이 용어와 함께 진화했다. 현재의 정의는 과거의 정의와 일치하지 않게 되었다. 지속적인 영토 분쟁과 비자유 핵 보유국의 영토 야망으로 인해 이러한 용어와 그 정의를 조정하는 것은 여전히 어렵다.[23]

미국은 여전히 "근동"이라고 불리는 지역에 공식적인 책임을 부여하는 주요 국가이다.[23] 미국 국무부 산하의 근동 사무국은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이 외교술이라고 부르는 미국의 공식 외교를 수행하며, "근동"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가장 영향력 있는 기관이다.[24] 미국 국방부의 교육 기관인 근동 및 남아시아 전략 연구 센터(NESA)는 국무부 지역의 조합으로, 해당 지역에서 근무하거나 근무할 정부 관리 및 군 장교를 위한 강좌, 세미나 및 워크숍을 제공한다.[25] 워싱턴 근동 정책 연구소(WINEP)는 중동 정책에 대한 연구 및 조언을 제공하는 비영리 단체로, 대상 국가를 중동으로 간주하지만 국무부의 관행에 따라 "근동"이라는 명칭을 사용한다.[26]

유엔은 다양한 활동을 위해 여러 지역 구분을 설정하지만, 근동을 포함하는 경우는 드물며, 그 정의도 불분명하다. 유니세프는 "중동 및 북아프리카" 지역을 인정하고,[28] 유네스코는 아랍 국가, 아시아 및 태평양, 아프리카의 세 지역으로 국가를 나누는데, 이는 "지리를 강제적으로 반영하지 않"고 "지역 활동의 실행을 지칭한다."[29] 유엔 통계국서아시아를 중동의 다른 지역에 포함된 국가들을 포함하는 것으로 정의한다.[30]

미국 중앙정보국 (CIA)의 정보국은 근동 및 남아시아 분석실(NESA)을 포함하며, 이 부서의 임무는 "중동 및 북아프리카 국가, 그리고 인도,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의 남아시아 국가에 대한 지원"이다.[31] NESA의 근동은 CIA에서 발행하는 ''The World Factbook''에서 정의된 중동과 동일하다.[32]

미국 국제 개발처(USAID)는 ''근동''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지만, USAID의 중동 정의는 국무부의 정의와 일치하며, 국무부는 공식적으로 ''근동''이라는 용어를 선호한다.[33] 영국의 외교통상부는 중동 및 북아프리카 지역은 인정하지만, 근동은 인정하지 않는다.[34] 헬라스 공화국 외무부는 "지중해 - 중동 지역" 국가들과 "양자 관계"를 맺고 있지만, 근동 지역을 구성하지는 않는다.[35] 터키 공화국 외무부 역시 ''근동''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으며, 터키 외무부의 지역에는 중동, 발칸 반도 등이 포함된다.[36]

4. 3. 중동과의 관계 및 지정학적 중요성

5. 한국과의 관계

5. 1. 역사적 관계

5. 2. 경제적 관계

5. 3. 문화적 관계

5. 4. 외교 정책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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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웹사이트 Are the Middle East and the Near East the Same Thing? https://www.britanni[...] 2024-01-02
[3] 웹사이트 What Is The Difference Between Near East and Middle East? https://www.worldat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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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웹사이트 Country Profiles https://teachmideast[...] 2023-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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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웹사이트 The Near East http://www.fao.org/d[...] United Na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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