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42년
1. 개요
기원전 42년은 로마에서 필리피 전투가 벌어진 해로, 마르쿠스 안토니우스와 옥타비아누스가 마르쿠스 유니우스 브루투스와 가이우스 카시우스 롱기누스를 상대로 승리했다. 이 전투에서 브루투스와 카시우스는 자살했으며, 이로써 공화파의 대의가 붕괴되었다. 또한, 티베리우스 황제와 마르쿠스 클라우디우스 마르켈루스가 태어났고, 가이우스 카시우스 롱기누스, 마르쿠스 유니우스 브루투스 등 카이사르 암살범들이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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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피 전투
필리피 전투는 기원전 42년 율리우스 카이사르 암살 후 로마 공화정 주도권을 놓고 마르쿠스 안토니우스와 옥타비아누스의 삼두정치 군대와 브루투스와 카시우스의 해방자 군대 간에 벌어진 두 차례의 전투로, 삼두정치 군대의 승리로 로마 공화정이 몰락하고 제정으로 전환되는 계기가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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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베라토레스의 내전
리베라토레스의 내전은 율리우스 카이사르 암살 이후 브루투스와 카시우스가 이끄는 리베라토레스가 제2차 삼두정치에 맞서 싸운 갈등으로, 필리피 전투에서 패배하며 로마 공화정의 종말과 제정으로의 이행을 가속화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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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고등법원
광주고등법원은 1952년에 설치되어 광주광역시, 전라남도, 전북특별자치도, 제주특별자치도를 관할하며, 제주와 전주에 원외재판부를 두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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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2년
1502년은 율리우스력으로 수요일에 시작하는 평년으로, 이사벨 1세의 이슬람교 금지 칙령 발표, 콜럼버스의 중앙아메리카 해안 탐험, 바스쿠 다 가마의 인도 상관 설립, 크리미아 칸국의 킵차크 칸국 멸망, 비텐베르크 대학교 설립, 최초의 아프리카 노예들의 신대륙 도착 등의 주요 사건이 있었다.
2. 연호
* 전한 영광 2년
* 신라 혁거세 거서간 16년
* 간지 : 기묘
* 일본
스진 천황 56년
황기 619년
* 단기 2292년
* 불멸기원 : 502년
* 유대력 : 3719년 - 3720년
3. 사건
* 필리피 전투에서 마르쿠스 안토니우스와 옥타비아누스가 브루투스와 카시우스를 격파했다.
* 리비아 트리폴리타니아에서 로마 원로원이 푸니 전쟁의 여파로 푸에블로스 거주를 금지했다.
* 데키무스 유니우스 브루투스 알비누스가 암살당했다.
* 1월 – 푸블리우스 바티니우스 (일리리쿰 속주 총독)은 디라키움을 점령했지만, 로마 군단 3개를 마르쿠스 유니우스 브루투스에게 항복해야 했다.
* 마르쿠스 브루투스는 자금과 병사를 얻기 위해 소아시아 도시들을 약탈하기 시작했다. 리키아 주민들은 로마에 복종하기를 거부했고, 브루투스는 크산토스를 포위했다. 크산토스인들은 교외를 파괴한 후 요새화된 도시로 후퇴했다. 로마 군단병 2,000명이 성문을 부수고 포룸으로 진입했다. 시민들은 사르페돈 신전 근처에서 최후의 저항을 했고, 밤이 되자 로마군이 도시를 정복했다.
* 리키아 연맹은 브루투스에게 대사를 보내 군사 동맹 및 함선 건조 자금 기부를 약속했다. 가이우스 카시우스 롱기누스는 로도스를 점령했고, 아시아의 다른 모든 도시에 10년 동안 조공을 바치라고 명령했다.
* 7월 – 마르쿠스 안토니우스는 군대(28개 군단)를 이끌고 일리리아에 상륙했고, 옥타비아누스를 디라키움에 남겨두고 암피폴리스로 진군했다. 아헤노바르부스 제독은 공화파 함대(전함 130척)를 이끌고 아드리아 해를 봉쇄했다.
* 8월 – 루키우스 데키디우스 사삭사와 가이우스 노르바누스 플라쿠스는 마르쿠스 안토니우스에 의해 임명되어 8개 군단으로 구성된 선봉대를 이끌고 마케도니아를 거쳐 비아 에그나티아를 따라 트라키아로 진군했다.
* 9월 – 브루투스와 카시우스는 헬레스폰트 해협을 건넜다. 도리스쿠스로 진군했지만, 사삭사가 코르필리 고개를 점령하여 더 이상 진군하지 못했다.
* 사삭사는 사파에이 고개에서 노르바누스와 합류하기 위해 후퇴했다. 공화파는 북쪽 산을 통해 대체 경로를 개척하여 적을 우회했다.
* 브루투스와 카시우스는 필리피로 진군하여 요새를 건설했다. 안토니우스는 암피폴리스에서 노르바누스와 사삭스와 합류했고, 옥타비아누스는 10일 후에 가마를 타고 도착했다.
* 시칠리아에서 섹스투스 폼페이우스는 지중해에서 삼두정치파에 대항하여 해상 작전을 펼쳤다. 그는 히스파니아와 아프리카에서 오는 곡물 수송로를 봉쇄했다.
3.1. 로마
마르쿠스 안토니우스와 옥타비아누스의 군대가 필리피 전투에서 브루투스와 카시우스의 군대를 상대로 승리했다. 브루투스와 카시우스는 자살했다.
10월 3일 – 제1차 필리피 전투: 삼두정치파인 마르쿠스 안토니우스와 옥타비아누스는 카이사르 암살범인 마르쿠스 브루투스와 카시우스와 결정적인 승부를 내지 못했다. 갓 도착한 2,000명의 스파르타인을 포함한 로마군은 패주했다. 옥타비아누스는 늪으로 피신했다. 카시우스의 진영은 안토니우스의 군대에 의해 점령되었고, 브루투스가 죽었다는 잘못된 생각에 카시우스는 자살했다. 그는 자신의 해방 노예인 핀다루스에게 그를 죽이라고 명령했다. 브루투스는 사기를 고려하여 잘린 그의 시신을 타소스에 비밀리에 매장했다. 아드리아 해에 있는 공화파 해군은 삼두정치파의 보급선을 요격하여 두 개 군단과 함께 파괴했다.
10월 23일 – 제2차 필리피 전투: 브루투스의 군대는 안토니우스와 옥타비아누스에게 패배했다. 삼두정치파는 약화된 공화파 중앙을 뚫고 브루투스의 우익을 측면에서 공격했다. 전투 후 14,000명의 군단병이 무기를 내려놓았다. 브루투스는 필리피의 고지로 도망쳤고, 다음날 자살했다. 승리 후 브루투스의 시신은 안토니우스의 진영으로 옮겨졌고, 안토니우스는 자신의 보라색 팔루다멘툼을 그의 시신 위에 덮고 그의 옛 동료에게 명예로운 장례식을 명령했다. 공화파의 대의는 붕괴되었고, 로마는 제2차 삼두정치의 손에 놓였다.
옥타비아누스는 로마로 돌아와 약 40,000명의 퇴역 군인들을 캄파니아, 에트루리아, 피케눔, 사무니움, 움브리아, 그리고 북부 이탈리아에 정착지를 마련했다.
5. 사망
* 10월 3일 - 가이우스 카시우스 롱기누스, 로마 귀족이자 율리우스 카이사르 암살범으로 자살했다.
* 10월 23일 - 마르쿠스 유니우스 브루투스, 로마 정치가이자 율리우스 카이사르 암살범으로 자살했다.(기원전 85년 출생)
* 가이우스 안토니우스, 로마 장군이자 마르쿠스 안토니우스의 형제로 살해당했다.
* 루키우스 틸리우스 심베르, 로마 귀족이자 율리우스 카이사르 암살범이다.
* 마르쿠스 리비우스 드루수스 클라우디아누스, 로마 귀족이자 브루투스의 지지자로 자살했다.
* 마르쿠스 포르키우스 카토, 로마 귀족이자 카토 마이너의 아들로 전투 중 사망했다.
* 포르키아, 브루투스의 아내로 자살했다. (기원전 70년 경 출생)
* 푸블리우스 세르빌리우스 카스카 론구스, 로마 귀족이자 율리우스 카이사르 암살범이다.
* 파쿠비우스 라베오, 로마 법학자이자 율리우스 카이사르 암살범으로 자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