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개의 중국
1. 개요
두 개의 중국은 중화인민공화국과 중화민국, 즉 중국 대륙과 타이완에 각각 수립된 두 개의 정부를 지칭하는 용어이다. 1949년 국공 내전에서 중국 공산당이 승리하여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되고, 장제스가 이끄는 중화민국 정부가 타이완으로 이전하면서 두 개의 중국 체제가 시작되었다. 중화인민공화국은 하나의 중국 원칙에 따라 타이완을 자국의 일부로 간주하며, 중화민국은 중국 대륙 전체에 대한 지배권을 주장한다. 현재 대부분의 국가는 중화인민공화국을 정식 정부로 인정하며, 중화민국과 외교 관계를 맺는 국가는 소수이다. 양안 관계는 여전히 긴장 상태에 있으며, 중화인민공화국의 군사적 압박이 지속되고 있다.
-
중화인민공화국의 대외 관계 -
6자 회담
-
중화인민공화국의 대외 관계 -
주부산 중국 총영사관
주부산 중국 총영사관은 중화인민공화국이 부산광역시에 설치한 영사관으로, 1993년 설립되어 부산, 울산, 대구, 경상북도, 경상남도를 관할하며, 국민의 여권 및 비자 발급 업무를 수행한다. -
중화민국의 대외 관계 -
관동군
-
중화민국의 대외 관계 -
만주국
만주국은 1931년 일본 제국이 만주사변으로 세운 괴뢰국가로, 푸이를 황제로 옹립했으나 일본 관동군이 실질적인 권력을 장악했고, 오족협화와 왕도낙토를 내세웠지만 일본 침략 전쟁의 수단으로 이용되었으며 국제 사회에서 인정받지 못하다 1945년 일본 패망으로 멸망 후 중화인민공화국 영토가 되었다. -
양안 관계 -
하나의 중국
'하나의 중국' 원칙은 국공내전 이후 중화인민공화국과 중화민국이 스스로를 중국의 유일한 합법 정부로 주장하면서 시작되었으며, 중화인민공화국은 이 원칙에 따라 타이완을 자국 영토의 일부로 간주하고 외교 관계의 전제 조건으로 내세우는 양안 관계의 핵심 쟁점이다. -
양안 관계 -
대만 문제
대만 문제는 중국과 대만 간의 정치적, 법적, 군사적 갈등으로, 대만의 정치적 지위를 둘러싼 분쟁이며, 중국은 대만을 자국 영토의 일부로 간주하는 반면, 대만은 독립적인 통치와 정체성을 유지하고 있다.
2. 역사적 배경
1912년 쑨원을 중심으로 한 혁명파가 난징에서 중화민국 임시정부를 수립했다. 같은 해, 청나라의 선통제는 신해혁명의 결과로 퇴위했고, 위안스카이에게 임시 대총통 지위를 양보하여 베이징 정부가 성립했다.
1912년부터 1949년까지 중국은 군벌 시대, 제2차 중일 전쟁, 국공 내전 등으로 혼란을 겪었다. 이 시기 동안 위안스카이의 베이양 정부(1912–1928), 중국 공산당의 중화소비에트공화국(1931–1937), 만주국(1932–1945)과 몽강국(1939–1945), 왕징웨이 정권(1940–1945) 등 여러 정부가 존재했다.
국공 내전 결과, 1949년 마오쩌둥이 이끄는 중국 공산당은 중국 대륙을 장악하고 중화인민공화국을 수립했다. 장제스가 이끄는 중화민국 정부는 타이완으로 철수했다. (국부천대)
한국 전쟁 발발 무렵, 중화인민공화국은 중국 대륙 대부분을, 중화민국은 타이완 섬과 주변 섬들을 통제하며 대치했다. 이 상황은 미국의 지원으로 강화되었다.
오랫동안 두 정부는 중국의 유일한 합법 정부를 자처하며 경쟁했다. 1970년대 이전에는 국제 연합을 포함한 많은 국가가 중화민국을 중국의 유일한 합법 정부로 인정했다. 중화민국은 안전 보장 이사회의 상임 이사국이었으나, 1971년 유엔 총회 결의 2758을 통해 중화인민공화국으로 대표권이 넘어갔다. 이후 대부분의 국가가 중화인민공화국을 승인했다.
1990년대 이후, 타이완 독립 운동이 대두되면서 타이완의 정치적 지위가 주요 문제로 부상했다. 중화민국과 중화인민공화국이 모두 주권 국가이며, "두 개의 중국" 또는 "하나의 중국, 하나의 타이완"을 형성한다는 견해가 나타났다. 천수이볜 총통은 이를 지지하며 중화민국의 유엔 가입을 추진했으나, 마잉주 총통은 이러한 노력을 중단했다.
2.1. 국공 내전
제2차 세계 대전에서 일본 제국이 패망하기 직전, 소련이 만주 전략공세작전을 통해 만주국을 공산화시키면서 마오쩌둥에게 유리한 환경이 조성되었다. 장제스가 이끄는 중국국민당과 마오쩌둥이 이끄는 중국공산당 간에 국공 내전이 재개되었다. 1949년 10월, 중국공산당은 북평(베이징)을 수도로 하는 중화인민공화국 건국을 선포하고 주도권을 잡았다. 결국 중화민국 정부는 타이완으로 천도하였다.(국부천대)
3. 입장 차이
1949년 국공 내전이 끝나면서 마오쩌둥이 이끄는 중국 공산당의 중화인민공화국이 중국 대륙을 장악했고, 장제스가 이끄는 중국 국민당의 중화민국은 타이완 섬으로 정부를 옮기면서 중국은 사실상 두 개의 국가로 분열되었다.
중화인민공화국과 중화민국은 모두 '하나의 중국' 원칙을 주장하지만, 그 내용은 서로 다르다. 중화인민공화국은 타이완을 자국의 일부로 간주하는 반면, 중화민국은 중국 대륙과 타이완을 모두 포함하는 '중국'의 유일한 합법 정부라고 주장한다.
1971년 국제 연합에서 중화인민공화국이 중국의 대표권을 획득하면서, 중화민국은 국제적인 고립을 겪게 되었다. 많은 국가들이 중화인민공화국을 승인하고 중화민국과의 외교 관계를 단절했다.
1990년대 이후 타이완에서는 대만 독립 운동이 성장하면서, 중화민국의 입장도 변화하기 시작했다. 리덩후이 총통은 '양국론'을 주장했고, 천수이볜 총통은 '일변일국론'을 내세워 타이완이 독립적인 주권 국가임을 강조했다. 마잉주 총통은 양안 관계를 '특수한 관계'로 규정하고 92공식을 임시 방편으로 제시했지만, 차이잉원 총통은 92공식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3.1. 중화인민공화국의 입장
중화인민공화국은 하나의 중국 원칙을 고수하며, 타이완을 자국의 일부로 간주한다. 중화인민공화국과 외교 관계를 맺는 국가는 중화민국과의 공식 관계를 단절해야 한다. 중화인민공화국은 중화민국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으며, 중화민국 정부를 '타이완 당국'으로 지칭한다.
중화인민공화국은 1949년 건국 이후부터 현재까지 중화민국을 정식 국가로 인정하지 않고, '하나의 중국' 원칙에 따라 중화인민공화국만이 유일한 합법 정부이며 타이완은 중화인민공화국의 일부라고 주장한다.
2005년, 중화인민공화국은 반분열국가법을 제정하여 타이완 독립에 대한 무력행사를 합법화하였다.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남북 등거리 외교 정책에 따라 이중 승인을 인정하고 있지만, 중화인민공화국은 하나의 중국 원칙에 기초하여 중화민국과의 외교 관계를 단절한 국가와만 외교 관계를 수립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3.2. 중화민국의 입장
중화민국은 초기에는 중화민국 중심의 하나의 중국 원칙을 고수하였다. 그러나 리덩후이 총통 시기 '양국론'을 주장하며 변화를 시도했고, 천수이볜 총통은 '일변일국론'을 내세워 타이완은 중화민국 또는 중화인민공화국이 아닌 별개의 주권국가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변화는 대만 독립 운동의 성장과 관련이 깊다.
1991년 동원감란시기임시조항 폐지 이전까지 중화민국은 중국 전체에 대한 주권을 주장하며 중화인민공화국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1991년 이후 중화인민공화국의 통치를 사실상 인정하고, 대만 지구를 실효 지배 범위로 한정했다.
중화민국의 입장은 집권 정당에 따라 다르다.
* [[리덩후이]] (1999년): 중-대만 관계를 "特殊的國與國關係중국어"로 정의했다.
* [[천수이볜]] (2002년): "대만과 건너편의 중국은 각각 별개의 국가(일변일국)"라고 발언했다. 또한 "두 개의 중국" 혼란을 피하기 위해 "대만(Taiwan)"의 이름을 국제적으로 사용하는 정책을 채택했다.
* [[마잉주]] (2008년): 중-대만 관계를 "특수한 비 국가 대 국가 관계"라고 말했다. 92공식을 임시 방편으로 인용했다.
* [[차이잉원]] (2016년): 92공식 인정을 거부했다. 중화민국(대만)은 이미 독립 국가이므로 독립 선언이 필요 없다는 입장이다.
1960년 국제 올림픽 위원회로부터 "China" 명의로 올림픽 참가를 거부당하고 "Taiwan" 또는 "Formosa" 명의 사용을 요구받았을 때, "R.O.C." 명의로 참가하고 있다.
4. 현재 상황
대부분의 국가는 중화인민공화국과 외교 관계를 맺고 있으며, 중화민국과 외교 관계를 유지하는 국가는 소수이다. 년 현재, 178개의 UN 회원국과 팔레스타인국이 중화인민공화국과 외교 관계를 맺고 있다. 11개의 UN 회원국과 바티칸 시국이 중화민국과 외교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중화인민공화국은 국제기구에서 중화민국의 참여를 제한하고 있다. 예를 들어, 국제 행사에서 중화민국은 '차이니스 타이베이'라는 명칭을 사용하도록 강요받고 있다. 양안 관계는 여전히 긴장 상태에 있으며, 특히 중화인민공화국의 군사적 압박이 증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