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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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슈타데는 독일 니더작센주에 위치한 도시로, 엘베강 근처에 자리 잡고 있다. 3만 년 전부터 사람이 정착했으며, 994년에는 바이킹의 약탈을 겪었다. 1180년부터 브레멘 대주교령에 속했고, 1209년 오토 4세 황제는 도시 특권을 부여하여 한자 동맹의 주요 구성원이 되었다. 중세 시대에는 한자 동맹의 주요 구성원이었으나 함부르크에 가려졌다. 1645년부터 1712년까지 스웨덴의 지배를 받았고, 이후 덴마크, 하노버 선제후국을 거쳐 현재에 이른다. 현재 슈타데는 화학, 항공우주 산업을 중심으로 경제적 이점을 누리고 있으며, 다우 케미컬, 에어버스와 같은 기업이 위치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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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타데 | |
---|---|
지리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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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유형 | 도시 |
독일어 이름 | Hansestadt Stade (한자 도시 슈타데) Hansestadt Stood (저지 독일어) |
위치 | 니더작센주 |
군 | 슈타데군 |
지리 | |
좌표 | 53°36′3″N 9°28′35″E |
고도 | 9m |
면적 | 110.03 km² |
행정 | |
시장 | 젠케 하틀레프 |
임기 시작 | 2019년 |
소속 정당 | CDU |
우편 번호 | 21680 21682–21684 |
지역 번호 | 04141 04146 |
차량 번호판 | STD |
지방 자치체 코드 | 03 3 59 038 |
웹사이트 | www.stade.de |
역사 | |
한자 도시 | 한자 동맹 |
기타 | |
로마자 표기 | Stad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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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역사
3만 년 전, 최초의 인간 정착민들이 슈타데 지역에 정착했다.
994년, 바이킹이 슈타데를 약탈하면서 "Stethu"라는 이름으로 처음 문헌에 등장했다.[2] 1180년부터 슈타데는 브레멘 대주교령에 속했다.[3] 1209년 5월 2일, 황제 오토 4세는 슈타데에 도시 특권(Stadtrecht|슈타트레흐트de)을 부여했다.[4]
13세기부터 17세기 후반까지 슈타데는 한자 동맹의 주요 구성원이었으나, 함부르크에 밀려났다. 1659년 5월 26일 대화재로 도시의 2/3가 소실되었으나, 이전과 같은 모습으로 재건되었다.
슈타데의 전성기는 30년 전쟁까지였다. 1628년 틸리 백작이 슈타데를 점령했지만, 곧 스웨덴이 이 도시를 획득했다. 덴마크가 일시적으로 점령한 후, 1634년 스웨덴은 브레멘 대주교령과 함께 이 도시를 최종적으로 확보했고, 베스트팔렌 조약에서 그 영유가 공식적으로 인정되었다.
스칸 전쟁에서 1675년부터 1676년까지 스웨덴의 브레멘-페르덴 출병 때, 슈타데는 신성 로마 제국 제후 및 덴마크 군에게 포위·점령당했다. 1679년 생제르맹 조약에서 슈타데는 다시 스웨덴 영토로 반환되었다. 스웨덴의 지배는 1712년에 끝났다. 그 후, 일시적으로 덴마크 영토가 된 후, 1715년부터 하노버 선제후령의 일부가 되었다.
1355년과 1712년, 슈타데는 흑사병 유행으로 도시 인구의 최소 30~40%가 사망하는 피해를 입었다. 1757년 프랑스의 하노버 침공 이후, 컴벌랜드 공작 윌리엄 왕자 휘하의 관찰군과 하노버 추밀원 (정부)이 슈타데에 피신했다.
17세기 말 아슈케나지 유대인들이 슈타데에 다시 나타났다. 1842년 하노버 왕국은 유대인들에게 동등한 권리를 부여했다. 1845년 국랍비 요제프 하일부트 아래 16개 유대인 회중을 섬기는 지역 국랍비직이 설립되었다.
1849년 슈타데의 회당이 문을 열었지만 1908년 재정적 제약으로 인해 문을 닫아야 했다. 1903년부터 슈타데의 유대인 공동체는 계속 운영하기 위해 공공 보조금을 받았다. 그러나, 남아 있는 유대인의 대부분은 나치 통치 기간 동안 추방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 동안 슈타데는 연합군의 폭격으로부터 완전히 안전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슈타데는 엘베 강에 있는 화학 및 항공 우주 산업, 특히 다우 케미컬과 에어버스의 존재로 인해 경제적으로 상당한 이점을 누렸다. 또한 슈타데의 엘베 강에는 1972년부터 2003년까지 가동되었던 슈타데 원자력 발전소가 있었다.
2. 1. 초기 정착과 바이킹 침략
Stethude로 기록된 994년의 슈타데에 대한 최초 언급은 바이킹의 약탈 사건이었다. 티트마르 폰 메르제부르크의 『Annales, chronica et historiae aevi Saxonici』에는 "Stethu에 바이킹이 습격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2] 승리왕 에릭이 이끌던 스웨덴과 덴마크의 바이킹들은 990년대에 슈타데를 정복하고 약탈하여, 많은 작센인들이 스웨덴 군대에 노예로 끌려갔다. 바이킹 대다수는 많은 약탈물을 획득한 후 철수했지만, 스웨덴과 덴마크 군대의 일부는 남았다가 나중에 황제가 보낸 지원군에게 패배했다.[2]1000년경에는 현재의 알테 하펜(구 항구)이 천연 항만 지구에 건설되었다. 13세기까지 슈타데는 쿠크스하펜과 하르부르크 사이의 유일한 천연 항구였으며, 전략적으로 중요한 엘베강 도하 지점이었다.
2. 2. 중세 시대와 한자 동맹
994년, 바이킹이 슈타데를 약탈하면서 "Stethu"라는 이름으로 처음 문헌에 등장했다.(티트마르 폰 메르제부르크의 『Annales, chronica et historiae aevi Saxonici』에 "Stethu에 바이킹이 습격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2] 1180년부터 슈타데는 브레멘 대주교령에 속했다.[3]1209년 5월 2일, 황제 오토 4세는 슈타데에 도시 특권(Stadtrechtde)을 부여하면서 시민들이 개인적으로 자유롭고, 자신들만의 법을 구성하는 정치적 실체임을 인정했다.[4] 1279년 시 참사회는 "슈타더 슈타투텐"(슈타데의 규칙)을 제정했고, 1361년부터는 동맹 체결 권리를 얻어 사실상 제국 자유 도시와 동등한 지위를 누렸다.
13세기부터 17세기 후반까지 슈타데는 한자 동맹의 주요 구성원이었으나, 함부르크에 밀려났다. 종교 개혁 시기에는 개신교 도시가 되었으며, 1522년 요한 홀만이 처음으로 루터파 설교를 했다.
1659년 5월 26일 대화재로 도시의 2/3가 소실되었으나, 이전과 같은 모습으로 재건되었다.
슈타데는 한자 도시라는 칭호를 비공식적으로 계속 사용해왔다. 2005년부터 니더작센 주 내무성에 공식 인가를 받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고, 2년간의 소송 끝에 2008년 12월 공식적으로 "한자 도시" 호칭권을 획득했다. 이는 뤼네부르크[12]에 이어 니더작센 주에서 두 번째였다.[13]
2. 3. 스웨덴, 덴마크, 하노버 통치
1279년에 시 참사회는 "슈타더 슈타투텐"(슈타데의 규칙)이라고 불리는 제도를 제정했다.[4] 1361년부터 슈타데는 동맹 체결 권리를 얻어, 법적으로는 제국 자유 도시와 동등한 지위를 누렸다. 성 게오르크 수도원의 수도사에 의해 종교 개혁이 이루어져 이 도시는 개신교화되었다. 1522년에는 요한 홀만이 루터파 설교를 처음으로 행했다.슈타데의 최전성기는 30년 전쟁까지였다. 1628년 틸리 백작이 슈타데를 점령했지만, 곧 스웨덴이 이 도시를 획득했다. 덴마크가 일시적으로 점령한 후, 1634년 스웨덴은 브레멘 대주교령과 함께 이 도시를 최종적으로 확보했고, 베스트팔렌 조약에서 그 영유가 공식적으로 인정되었다. 1659년 5월 26일 대화재로 도시의 2/3가 소실되었으나, 그 후 예전과 같이 재건되었다.
스칸 전쟁에서 1675년부터 1676년까지 스웨덴의 브레멘-페르덴 출병 때, 1676년 4월 초부터 8월 13일까지 스웨덴 총독의 수도였던 슈타데는 신성 로마 제국 제후 및 덴마크 군에게 포위·점령당해, 1679년까지 그 관리 하에 놓였다. 1679년 생제르맹 조약에서 슈타데는 다시 스웨덴 영토로 반환되었다.
스웨덴의 지배는 1712년에 끝났다. 그 후, 일시적으로 덴마크 영토가 된 후, 1715년부터 하노버 선제후령의 일부가 되었다. 1978년 행정 구역 개편까지 슈타데는 프로이센의 행정 기능을 담당한 슈타데 대관청을 계승한 니더작센의 행정 구역 본부 소재지였다. 또한, 군사 도시로서도 스웨덴 시대 이후 중요한 역할을 했다.
2. 4. 근현대

중세(13세기부터 17세기 후반)에 슈타데는 한자 동맹의 주요 구성원이었지만, 나중에 함부르크에 의해 가려졌다. 1611년, 이 도시는 세파르딕 유대인들과 계약을 체결하여 공동체 설립을 허용했다. 1613년, 슐레스비히-홀슈타인-고토르프 공작 요한 프리드리히 대주교령 관리는 아슈케나지 유대인들을 도시에 정착시키는 것을 따랐지만, 가톨릭 정복과 루터교 재정복의 혼란 속에서 유대인에 대한 마지막 기록은 163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648년, 베스트팔렌 조약에 의해 브레멘 대주교령은 주교령에서 군주국으로 헌법적 변화를 겪었고, 이를 ''브레멘 공작령''이라고 불렀다. 이 공작령과 인접한 ''베르덴 공국''은 일반적으로 브레멘-베르덴으로 불리며, ''베스트팔렌 조약''에 의해 스웨덴 왕실에 부속 영지로 부여되었다. 슈타데는 1645년부터 1712년까지 스웨덴의 브레멘-베르덴-빌데스하우젠 지역의 일부였으며, 스웨덴인들이 건설한 건물 중 일부는 오늘날에도 사용되고 있다.[6]
1757년 프랑스의 하노버 침공 이후, 컴벌랜드 공작 윌리엄 왕자 휘하의 관찰군과 하노버 추밀원 (정부)이 슈타데에 피신했다. 컴벌랜드는 클로스터체벤 협약에 동의하기 전에 도시를 방어하려 했고, 이 협약으로 일시적인 휴전이 이루어졌다.
17세기 말에 아슈케나지 유대인들이 슈타데에 다시 나타났다. 1842년 하노버 왕국은 유대인들에게 동등한 권리를 부여하고 전국적인 범위 내에서 유대인 회중과 지역 기반 시설 (랍비직)의 설립을 장려했다. 슈타데의 유대인들은 이를 진보이자 부담으로 여겼는데, 이는 이전에는 재정적 부담 때문에 랍비나 종교 교사를 고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1845년 새로운 법에 따라, 국랍비 요제프 하일부트 아래에 16개의 유대인 회중을 섬기는 지역 국랍비직이 설립되었으며, 이는 슈타데 지역 전체에 걸쳐 수년에 걸쳐 설립되었으며, 1864년에는 총 1,250명의 유대인이 있었다(역대 최고). 지방 당국은 이제 유대인 회중에게 회당과 학생들을 위한 유대교 교육을 설립할 것을 요청했다.
1849년 슈타데의 회당이 문을 열었지만 1908년 재정적 제약으로 인해 문을 닫아야 했다. 그리고 유대교와 히브리어 교사가 고용되었다 (1890년 이후 슈타데 공동체는 더 이상 교사를 고용할 수 없었다). 1903년부터 슈타데의 유대인 공동체는 계속 운영하기 위해 공공 보조금을 받았다. 슈타데 지역은 유대인 디아스포라로 남아 있었고, 1860년부터 슈타데의 국랍비직은 다시 채워지지 않았지만 다른 세 개의 하노버 국랍비직 중 하나가 번갈아 가며 봉사했다. 노동 이주 및 이민[7]이 슈타데 지역 외부의 도시 중심지로 이동하고 유대인의 인구 통계가 오히려 ''슈타데 지역''의 유대인 수를 감소시켰다 (1913년 786명, 1928년 716명). 그러나, 남아 있는 유대인의 대부분은 나치 통치 기간 동안 추방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 동안 슈타데는 연합군의 폭격으로부터 완전히 안전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슈타데는 엘베 강에 있는 화학 및 항공 우주 산업, 특히 다우 케미컬과 에어버스의 존재로 인해 경제적으로 상당한 이점을 누렸다. 또한 슈타데의 엘베 강에는 1972년부터 2003년까지 전력망에 연결되었던 가동 중단된 슈타데 원자력 발전소가 있다. 이 발전소가 가동 중단될 당시 독일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원자로였다. 독일이 2002년 원자력 발전을 단계적으로 폐지하기로 결정한 후 슈타데는 영향을 받은 최초의 독일 발전소였으며, 2003년 11월 14일에 영구적으로 폐쇄되었다. 옛 원자력 발전소 근처에는 실링 발전소라는 가동 중지된 석유 화력 발전소가 있다.
3. 지리
슈타데는 슈빙게강을 따라 알테스 란트와 쾨딩겐 사이, 엘베강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다. 토양은 주로 "엘프마르셴"이라고 불리는 평원 습지이며, 일부에는 원래의 습지가 남아 있다. 이 도시는 "슈타데 게스트"라고 불리는 게스트(빙하 계곡에 모래가 퇴적되어 생긴 지형)의 흔적에 자리 잡고 있다.
3. 1. 기후
연간 강수량은 778mm로, 독일의 평균 강수량과 거의 비슷한 수준이다. 가장 건조한 달은 2월이고, 가장 습윤한 달은 7월이며, 7월의 강수량은 2월의 2배를 넘는다. 달에 따라 강수량은 크게 변동한다.3. 2. 도시 구성
슈타데는 원래의 도시부 외에 뷔츠플레트(아벤플레트, 뷔츠플레터모어, 겟츠도르프 포함), 하르도르프, 하겐(슈타인베크 포함), 비펜카르텐의 4개 지구로 구성되어 있다. 이들 지구는 각각 고유의 자치회를 조직하고 있다.[1]역사적인 중심지는 슈빙게강의 중주에 있는 해자를 두른 방어 시설이었다. 19세기 말, 방어 시설이 녹지로 개조되면서 도시는 가도(街道)를 따라 확대되었다. 북쪽에는 퀘겐토어스-포어슈타트, 남쪽에는 호헨토어스-포어슈타트, 서쪽에는 쉬파르토어스-포어슈타트가 건설되었고, 1960년대에는 알트렌더 구획이 동쪽에 조성되었다. 알트렌더 거리는 2007년에 독일에서 가장 감시 카메라가 많은 지역으로 연방 전체에 알려지게 되었다.[1] 남쪽의 캄페, 클라인 춘, 그로스 춘, 발게, 라인스펠데, 남서쪽의 할레, 하르도르프, 서쪽의 호엔베델과 같은 시구는 한때 농촌이었던 지역으로 슈타데의 확장에 의해 편입된 것이다. 클라인 춘과 호헨토어스-포어슈타트 사이의 뤼케는 코펜캄프의 정착지와 연결되어 있다. 이들은 각각 다른 유형의 활기찬 주택지가 되었다. 오텐벡 구는 1990년대 말에 구 혼-게벤 병영 부지에 조성된 지역이다.[1]
4. 문화
슈타데에는 다양한 문화 시설과 행사가 있다.
- 박물관: 스웨덴 창고 박물관, 트리 하우스, 향토 박물관, 야외 박물관 아우프 데어 인젤, 기술·교통 박물관, 박물관선 그로인디크, 그라우어오르트 요새 등이 있다. 특히 한자 항구에는 1977년부터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는 스웨덴 창고가 있다.
- 문화 행사: 1989년에 완공된 슈타데움은 회의 및 행사 시설로, 콘서트와 연극 공연이 열린다. 슈타데움에는 음식점도 있다. 다만, 구시가지 근처 휴양지를 훼손했다는 비판도 있다. 슈타데움 옆에는 4성급 호텔과 대형 주차장이 있어, 슈타데움 이용객뿐 아니라 구시가지 방문객도 이용한다.
4. 1. 주요 건축물
슈타데 구시가지에는 주목할 만한 역사적인 건물들이 많이 있다. 가장 대표적인 건물들은 다음과 같다:[1]건물명 | 설명 |
---|---|
성 코스마이 에트 다미아니 루터교회 | 후스/슈니트거 오르간이 설치되어 있다. |
빌하디 루터교회 | 에라스무스 빌레펠트의 오르간이 있다. |
시청 | 1659년 대화재 이후 1667년에 건설되었다. |
Schwedenspeicherde | 스웨덴 창고. 1977년부터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
Zeughausde | 스웨덴 무기고. 1697년부터 1699년에 걸쳐 건설되었다. 1980년대까지 영화관, 콘서트 홀, 극장 등으로 이용되었다. |
이 외에도 한자 항구에는 1970년대에 복원된 목조 크레인이 있다. 원래 1661년에 건설된 소금용 크레인이 있던 자리에 뤼네부르크의 크레인을 모델로 복원한 것이다. 한자 항구에는 1753년에 건설된 구 세관 건물도 남아있는데, 한때 철거될 뻔했으나 현재는 상점 겸 주거 공간으로 사용되고 있다.[1]
4. 2. 박물관
슈타데에는 다음과 같은 박물관들이 있다.
- 스웨덴 창고 박물관
- 트리 하우스
- 향토 박물관
- 야외 박물관 아우프 데어 인젤
- 기술·교통 박물관
- 박물관선 그로인디크
- 그라우어오르트 요새
한자 항구에는 1977년부터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는 스웨덴 창고가 있다.
4. 3. 문화 행사
슈타데움은 1989년에 완공된 회의 및 행사 시설로, 콘서트와 연극 공연에도 사용되고 있다. 슈타데움에는 음식점도 있다. 베스트파우셰 비제에 위치한 이 건물은 구시가지에 가까운 근교 휴양지가 망가졌다는 비판을 받아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바로 옆에는 4성급 호텔이 지어지고 있다. 대형 주차장은 슈타데움 이용자뿐만 아니라 구시가지를 방문하는 사람들도 이용하고 있다.
5. 경제
슈타데에는 3,500개 이상의 기업이 있으며, 23,000명 이상이 일하고 있다. 엘베 강변의 슈타데-뷔츠플레테 산업 지구에서는 다우 도이칠란트, 알루미늄 옥시드 슈타데와 같은 기업에서 2,300명 이상이 일하고 있다. 남부 산업 지역에서는 에어버스 슈타데 공장에서 2,000명 이상이 일하고 있다.[7]
슈타데 지역에 주요 사업장을 둔 기업은 다음과 같다.
기업명 | 산업 |
---|---|
다우 케미컬 | 화학 |
에어버스 도이칠란트 GmbH | 항공우주 |
E.ON | 발전소 |
에어 리퀴드 | 산업용 가스 |
에어 프로덕츠 & 케미컬즈 | 산업용 가스 |
알루미늄 옥시드 슈타데 GmbH | 산화 알루미늄 정련 |
슈테렐러 아그로케미 | 비료 및 살생물제 |
PROKON 노르트 에네르기 시스템 GmbH | 풍력 터빈 및 바이오 연료 |
린데만(건축업) | 건설 |
5. 1. 주요 산업
지난 수십 년 동안 슈타데는 엘베 강에 있는 화학 및 항공 우주 산업, 특히 다우 케미컬과 에어버스의 존재로 인해 경제적으로 상당한 이점을 누렸다.[7] 또한, 엘베 강에는 1972년부터 2003년까지 전력망에 연결되었던 가동 중단된 슈타데 원자력 발전소가 있었다.[7]2002년 독일이 원자력 발전의 단계적 폐지를 결정하면서, 슈타데 원자력 발전소는 2003년 11월 14일에 영구 폐쇄되어 영향을 받은 첫 번째 독일 발전소가 되었다.[7] 과거 원자력 발전소 근처에는 실링 발전소라는 가동 중지된 석유 화력 발전소도 있다.[7]
슈타데에는 3,500개 이상의 기업이 있으며, 23,000명 이상이 일하고 있다. 엘베 강변의 슈타데-뷔츠플레테 산업 지구에서는 다우 도이칠란트, 알루미늄 옥시트 슈타데 GmbH와 같은 기업과 슈타데 원자력 발전소(현재 해체 중)에서 2,300명 이상이 일하고 있다. 남부 산업 지역에서는 에어버스 슈타데 공장에서 2,000명 이상이 일하고 있다.
기업명 | 산업 |
---|---|
다우 케미컬 | 화학 |
에어버스 도이칠란트 GmbH | 항공우주 |
E.ON | 발전소 |
에어 리퀴드 공업 가스 GmbH & Co. KG | 산업용 가스 |
에어 프로덕츠 & 케미컬즈 | 산업용 가스 |
알루미늄 옥시트 슈타데 GmbH | 산화 알루미늄 정련 |
슈테렐러 아그로케미 | 비료 및 살생물제 |
PROKON 노르트 에네르기 시스템 GmbH | 풍력 터빈 및 바이오 연료 |
린데만(건축업) | 건설 |
한델스호프 | 대형 쇼핑센터 |
2001년, 슈타데시는 슈타데군과 공동으로 엘베 병원 슈타데-부크스테후데 GmbH를 설립했다. 구 슈타데 시립 병원과 구 군립 부크스테후데 병원은 이 병원에 조직상 통합되었다. 총 병상 수는 836개(부크스테후데 266개, 슈타데 570개)이다. 이 병원은 함부르크 남부 주변의 많은 병원이 가입해 있는 엘베-하이데 병원 연맹의 일원이다.
슈타데 원자력 발전소(KKS)는 1972년에 가동을 시작했다. 1984년부터는 독일의 원자력 발전소로서는 처음으로 인접한 제염소에 여열을 공급했다. 제염소는 2003년 6월에 폐쇄되었고, 2003년 11월 14일에는 경제적인 이유로 원자력 발전소도 정지되었다. 정지 전의 전력 출력은 630MW였다. 이 원자력 발전소는 해체 중이며, 이 공사는 2015년 말에 완료될 예정이었다.[16]
슈타데 근교에는 한때 석유 화력 발전소인 쉴링 발전소도 있었다. 현재 뷔츠플레트 지구의 엘베강변에는 E.ON이 석탄 화력 발전소를 건설하려는 계획이 있었으나, GDF 수에즈(현 엔지사)는 소음 기준 위반 및 기타 환경 평가를 근거로 2010년에 계획을 중지하고 철회했다.
5. 2. 교통
함부르크 S반의 S3 노선이 2007년 말 슈타데까지 연장되었다. 슈타데역에서는 피크 시간대에 20분마다 기차가 출발하며, 함부르크 중앙역까지 약 1시간 만에 도착한다.
슈타데는 함부르크 - 하르부르크 - 부크스테후데 - 쿡스하펜 철도 노선 상에 위치해 있다. 이 노선에는 메트로놈 철도 회사가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1시간 간격으로 열차를 운행하고 있다. 이 열차는 도이치반의 레기오날익스프레스에 해당하며, 디젤차에 의한 2층 차량으로 운행되고 있다(배색은 파란색 - 노란색).[3]
슈타데 - 함부르크 간 레기오날반은 2007년부터 함부르크 S반의 S3 노선으로 운행되고 있다. 이 열차는 특수한 2-시스템 차량으로, 슈타데 - 함부르크=노이글라벤 간은 가선으로부터의 교류, 노이글라벤부터는 사이드 레일로부터의 직류로 주행하고 있다. 이 노선의 함부르크 측은 핀네베르크까지 이어진다. S반은 낮에는 1시간 간격, 통근 시간대에는 20분 간격으로 운행하고 있다. 슈타데 - 노이글라벤 간은 혼잡하거나 지연, 나아가 주말 밤에는 함부르크로 가는 교통편이 없어진다는 점 등으로 인해 종종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4]
슈타데 - 브레머하펜 선의 헤제스도르프까지의 구간에서는 90년대 이후 여객 철도의 정기 운행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현재는 60년대에 제작된 관광용 레일 버스가 "모어 익스프레스"라고 칭하며 주말에 브레멘까지 운행하고 있을 뿐이다.[5]
프라이부르크/엘베 경유로 이츠베르덴(게퍼스도르프)에 이르는 미터 게이지의 쾨딩거 크라이스 철도는 1936년에 폐지되었다.[6]
버스는 주로 크라프트 교통 회사 GmbH(KVG)에 의해 운행된다. 시내 노선망은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7개 노선으로, 역 또는 페르데마르크트에서 방사형으로 뻗어 있다. 운행 간격은 15분에서 60분이다. 저녁에는 순환 노선이 운행된다. 일요일에는 2개 노선만 운행한다.[7]

슈타데의 오텐벡 구역에는 작은 비행장이 있다. 이곳은 글라이더와 이를 예인하기 위한 소형기용 비행장이다. 가장 가까운 국제공항은 함부르크에 있다.[8]
슈타데의 뷔츠플레트 구역에는 슈타데 해양항이 있다. 이 항구는 북해에서 60해리 떨어져 있다. 전장 270m, 흘수 14m까지의 배가 이 항구에 입항할 수 있다. 조수 간만의 차는 3.1m이다. 이 항구에서는 주로 알루미늄 제품이나 화학 제품의 하역이 이루어진다. 양자는 항구의 각 부두에서 취급된다.[9]
2009년 현재, 니더작센 포츠 GmbH & Co. KG에 의해 슈타데 해양항 확충의 제1기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최종적으로는 광대한 컨테이너 적재 공간, 벌크 화물 수용 공간이 생길 예정이다.[10]
슈타데 시는 피쉬마르크트(Fishmarkt)를 따라 있는 구 한자 항구를 매력적인 관광지로 육성하고 있다.[11]
시 항구는 1880년부터, 특히 여름철 반년 동안 레저 보트의 정박용으로 제공되게 되었다.[12]
6. 행정
슈타데의 시의회는 41석으로 구성되어 있다. 2019년부터 젠케 하르트레프(CDU)가 시장을 맡고 있다.
슈타데는 다음 도시들과 자매 결연을 맺고 있다.[8]
국가 | 도시 | 체결 연도 |
---|---|---|
Karlshamn|칼스함sv | -- 칼스함 | 1984년 |
גבעת שמואל|기바트 슈무엘he | -- 기바트 슈무엘 | 1987년 |
Gołdap|고와프pl | -- 고와프 | 1998년 |
1984년 스웨덴 칼스함과의 자매 결연은 슈타데의 현행 자매 도시 협정 중 최초이다. 1987년에는 이스라엘 기바트 슈무엘과 자매 도시가 되었다. 폴란드 고와프와는 1998년에 자매결연을 체결했다. 이들 도시와 정기적으로 청소년 교환 유학 등의 교류가 이루어지고 있다. 미국 콜로라도주 레이크우드와도 우호 관계를 맺고 있다.
6. 1. 시의회
슈타데 시의회는 41석으로 구성되어 있다.6. 2. 시장
젠케 하르트레프(CDU)는 2019년에 시장으로 취임했다.6. 3. 자매 도시
슈타데는 다음 도시들과 자매 결연을 맺고 있다.[8]국가 | 도시 | 체결 연도 |
---|---|---|
Karlshamn|칼스함sv | -- 칼스함 | 1984년 |
גבעת שמואל|기바트 슈무엘he | -- 기바트 슈무엘 | 1987년 |
Gołdap|고와프pl | -- 고와프 | 1998년 |
1984년 6월 23일에 체결된 슈타데와 스웨덴 남부 도시 칼스함 간의 자매 도시 협정은 슈타데의 현행 자매 도시 협정 중 최초이다. 슈타데에서는 1970년부터 이미 불규칙적이었지만 "스웨덴 주간"이 개최되었다. 1987년 7월 16일에는 이스라엘의 도시 기바트 슈무엘과 자매 도시가 되었다. 이 도시는 1942년에 루마니아에서 이주한 사람들이 건설한 텔아비브 근교의 도시로, 정기적으로 청소년 교환 유학을 실시하고 있다. 폴란드 북동부에 위치하며, 러시아의 칼리닌그라드주와의 국경과도 가까운 고와프는 1983년 3월 24일에 칼스함 및 기바트 슈무엘과 자매 도시가 되었다. 슈타데와의 사이에서도 정기적으로 교환 유학이 이루어지며, 더 나아가 작업 그룹의 교환도 이루어지고 있다. 이 외에 미국 콜로라도주의 레이크우드와도 친밀한 우호 관계를 가지고 있지만, 공식적인 자매 도시 협정에는 이르지 못했다.
7. 인물
- 페터 폰 지버르스 (1674년–1740년), 러시아 해군 장교
- 헨리크 호른 (1618년–1693년), 스웨덴 귀족(자유 남작, 프라이헤어), 제독, 스웨덴 칙선 자문회 의원
- 마리아 아우로라 폰 쾨니히스마르크 (1662년–1728년), 백작 부인, 아우구스투스 2세의 정부

- 아말리아 폰 쾨니히스마르크 (1663년–1740년), 스웨덴 귀족, 아마추어 화가, 배우, 시인
- 필리프 크리스토프 폰 쾨니히스마르크 (1665년–1694년), 스웨덴 백작이자 군인
- 아우로라 폰 쾨니히스마르크 (1662년 - 1728년) 아우구스트 강건왕의 애인이자, 후에 퀘들린부르크 수도원 원장이 되었다.
- 알베르토 폰 슈타데 (1264년경 사망) - 슈타데 마리아 수도원 창립자
- 알프 슈니트거 (1648년 - 1719년) - 오르간 제작자. 1677년부터 1682년까지 슈타데에서 수련했다.
- 빈첸트 뤼베크 (1654년 - 1740년) - 작곡가, 오르간 연주자. 1674년부터 1702년까지 슈타데에서 오르간 연주자로 활동했다.
- 게오르크 크리스토프 리히텐베르크 (1742년 - 1799년) - 작가, 물리학자
- 아우구스트 카를 폰 괴벤 (1816년–1880년), 프로이센 장군.
- 막스 폰 바르펠트 (1856년 - 1936년) - 프로이센 장군, 향토 연구가, 고대 동전 수집가
- 에른스트 한스 루드비히 크라우제 (1859년–1942년), 의사, 식물학자, 진균학자
- 요스트 피첸 (1869년–1947년), 수목학 분야에서 활동한 식물학자
- 에른스트-에버하르트 헬 (1887년–1973년), 제2차 세계 대전 중 국방군 장군
- 울리히 데 메지에르 (1912년–2006년), 장군, 독일 연방군에서 ''"내부 지도력"'' 창설
- 하인리히 아렌스 (1905년 - 1977년) - 법 철학자. 슈타데 시장을 역임했다.
- 에버하르트 폰 쾨르버 (1938년–2017년), BMW의 이사회 임원 및 경영자
- 슈테판 아우스트 (1946년 출생), 언론인, 1994년–2008년 슈피겔 편집장

- 카르스텐 에거스 (1957년 출생), 조각가 및 화가
- 안젤라 데노케 (1961년 출생), 오페라 가수
- 디르크 담만 (1967년 출생), 축구 선수, 260경기 출전
- 안드라스 슈타르케 (1974년 출생), 기수, 9회 독일 평지 경마 챔피언 기수
- 린다 프뢰리히 (1979년 - ) - 여자 농구 선수
- 줄리엣 쇼프만 (1980년 출생), 가수
- 타베아 켐메 (1991년 출생), 축구 선수, 독일 여자 국가대표팀에서 154경기, 47경기 출전
- 마르논 부쉬 (1994년 출생), 축구 선수, 260경기 이상 출전
참조
[1]
웹사이트
Verzeichnis der direkt gewählten Bürgermeister/-innen und Landräte/Landrätinnen
https://www.statisti[...]
Landesamt für Statistik Niedersachsen
2021-04
[2]
서적
Adam av Bremen (1984) pp. 87–8 (Book II, Chapters 31-32)
[3]
서적
Der Kampf um das Erbe des Stader Grafen zwischen den Welfen und der Bremer Kirche (1144–1236)
Landschaftsverband der ehem. Herzogtümer Bremen und Verden
[4]
서적
Der werdende Territorialstaat der Erzbischöfe von Bremen (1236–1511): III. Die Städte im Erzstift Bremen
Landschaftsverband der ehem. Herzogtümer Bremen und Verden
[5]
서적
Die zweihundertjährige Geschichte der Elb-Zoll-Fregatte zu Brunshausen und ihrer Kommandanten 1650–1850
Selbstverlag des Stader Geschichts- und Heimatvereins
1963
[6]
서적
Sie lebten mit uns: Juden im Landkreis Stade vom 18. bis zum 20. Jahrhundert
city of Stade
2001
[7]
서적
Geschichte der Juden in Niedersachsen
Fackelträger-Verlag
1995
[8]
웹사이트
Partnerstädte
https://www.stadt-st[...]
Stade
2021-03-31
[9]
EB1911
Goeben, August Karl von
[10]
EB1911
Königsmark, Maria Aurora, Countess of
[11]
book
Duden, Aussprachewörterbuch
Dudenverl
[12]
웹사이트
「リューネブルクはハンザ都市を自認した」
http://www.niedersac[...]
[13]
웹사이트
「シュターデはハンザ都市となった」
http://www.tageblatt[...]
[14]
웹사이트
ハンザ都市シュターデ — 姉妹都市
http://www.stadt-sta[...]
2010-04-08
[15]
웹사이트
技術文化財 1927年製のシュターデ港クレーン
http://www.hafenkran[...]
[16]
웹사이트
E.ON原子力発電によるシュターデ原子力発電所の停止と解体について
http://www.eon-kernk[...]
[17]
웹사이트
私立応用科学大学
http://www.pfh.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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