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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노본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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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안노본섬은 1473년 포르투갈 항해자들에 의해 발견된 적도 기니의 섬으로, 적도 기니 영토의 일부이다. 포르투갈의 식민 지배를 거쳐 스페인령이 되었다가, 1968년 적도 기니가 독립하면서 그 일부가 되었다. 주요 산업은 어업과 임업이며, 1992년 섬 주변 해저에서 유전이 발견되어 석유 자원도 유망하다. 섬 주민은 포르투갈 문화의 영향을 받았으며, 포르투갈어 크리올인 안노본어를 사용한다. 적도 기니는 안노본섬을 전략적 거점으로 삼아 영해를 설정하고 있으며, 과거 유독성 폐기물 투기 문제로 논란이 일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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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노본섬
지도 정보
기본 정보
섬 이름안노본섬
스페인어 이름Isla de Annobón
포르투갈어 이름Ilha de Ano Bom
기타 이름Pagalu
지리
위치대서양
국가적도 기니
면적17 km²
최고 고도598 m
최대 도시산안토니오데팔레

2. 역사

1473년 1월 1일, 포르투갈 항해자들이 '새해 첫날(Ano bom)'을 기념하여 안노본섬을 발견했다. 1474년 포르투갈은 앙골라 출신 아프리카인들을 상투메섬을 거쳐 이주시킨 후 섬을 식민화했다.

1778년 산일데폰소 조약으로 포르투갈이 브라질 영유권을 확보하는 대신, 안노본섬은 비오코섬 및 기니 해안 일부와 함께 스페인 영토가 되었다. 이는 아프리카 영토를 원했던 스페인과 "뉴 포르투갈(오늘날의 브라질)" 영토 확장을 원했던 포르투갈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결과였다. 그 결과 스페인령 기니라는 아프리카 식민지가 형성되었다. 섬 주민들은 스페인의 지배와 토지 분할에 반발하여 저항하였고, 19세기 후반이 되어서야 스페인은 섬을 장악, 1909년까지 엘로베, 안노본, 코리스코 식민지의 일부로 편입했다.

1968년 안노본섬은 스페인령 기니의 일부로서 적도 기니 공화국으로 독립했다.[2] 프란시스코 마시아스 응게마 대통령 집권 말기, 섬 이름은 피갈루(Pigalu) 또는 파갈루(Pagalu)섬으로 변경되었다.[2] 응게마 정권은 1972년 섬을 2년간 격리, 의료 지원 부재 속에 콜레라가 대유행하여 주민들이 고통받았다. 일부 주민들은 섬의 분리주의 운동을 전개하기도 했다.

1988년 적도 기니 정부는 영국 회사와 1000만 드럼의 유독성 방사성 폐기물 보관에 대한 10년 계약을 1.6억달러에 체결했다. 1993년 심각한 식량 부족과 강제 노동 발생 시, 정부는 섬을 고립시키고 외국인을 추방했다. 주민들은 반란을 일으켰고, 정부는 강경 진압했다. 국제 사회는 인권 침해를 비판하며 정치범 석방 등을 요구했다.

오늘날 섬의 공식 언어는 스페인어이다. 주민은 포르투갈, 스페인, 앙골라인의 혼혈이나, 스페인에 대한 역사적 반감, 본토와의 거리, 상투메 프린시페와의 근접성으로 인해 문화는 포르투갈에 가깝다.[2] 1996년 포르투갈어 사용국 공동체 설립 후, 적도 기니 정부는 포르투갈과 관계가 깊은 안노본 섬 때문에 옵서버 지위를 요구했다. 1998년 포르투갈 외상이 방문했고, 2014년 적도 기니는 공동체에 가입, 포르투갈어를 제3 공용어로 도입했다.

2. 1. 발견과 초기 식민지배

1473년 1월 1일, 포르투갈 항해자들이 '새해 첫날(Ano bom)'을 기념하여 안노본섬을 발견하였다. 1474년 포르투갈은 앙골라 출신 아프리카인들을 상투메섬을 거쳐 이주시킨 후 섬을 식민화하였다.

2. 2. 스페인 통치 시기

1778년, 산일데폰소 조약으로 포르투갈브라질 영유권을 확보하는 대신, 안노본섬은 비오코섬 및 기니 해안 일부와 함께 스페인 영토가 되었다. 이는 아프리카에 영토를 얻고자 하는 스페인과 "뉴 포르투갈(오늘날의 브라질)"의 영토를 넓히고 싶어하는 포르투갈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진 결과였다. 그 결과 스페인령 기니라는 아프리카 식민지가 형성되었다.

섬 주민들은 스페인의 지배와 토지 분할에 반발하여 저항하였고, 이는 한동안 무정부 상태와 소요 사태로 이어졌다. 주민들은 새로운 지주에 대해 반란을 일으켰고, 10척의 배가 이 섬에 상륙할 때까지 소요 사태가 계속되었으며 그동안 5개의 원주민 부족이 섬을 통치했다. 19세기 후반에 이르러서야 스페인은 이 섬을 장악할 수 있었고, 1909년까지 엘로베, 안노본, 코리스코 식민지의 일부로 편입되었다.

2. 3. 적도 기니 독립 이후

1968년 안노본섬은 스페인령 기니의 일부로서 적도 기니 공화국으로 독립하였다.[2] 프란시스코 마시아스 응게마 대통령 집권 말기, 섬 이름이 피갈루(Pigalu) 또는 파갈루(Pagalu)섬으로 변경되었다.[2]

응게마 정권은 1972년에 섬을 2년간 격리시켰으며, 이로 인해 의료 지원이 없는 상태에서 섬 주민들 사이에 콜레라가 대유행하여 섬 주민들이 고통받았다. 섬 주민들은 정부에 대한 반감으로 일부 섬 주민들을 중심으로 섬의 분리주의 운동을 전개하기도 했다.

1993년, 섬에서 심각한 식량 부족과 강제 노동이 발생했을 때, 적도 기니 정부는 섬을 고립시키고 인도적 지원 등을 하던 외국인을 추방했다. 이에 섬 주민들이 반발하여 반란을 일으키고 지사의 주거지를 공격했다. 적도 기니 정부는 반란을 일으킨 자들을 처형하는 등의 강경한 조치를 취했다. 국제 사회는 이러한 조치를 인권 침해라고 비판하며 감옥에 수용된 정치범의 석방 등을 요구했다.

3. 지리

안노본섬은 적도 기니의 대륙부(리오무니) 외에 5개의 섬 중 하나이다. 코리스코섬, 그란에로베이섬, 페케뇨에로베이섬 3개는 대륙붕에 위치하는 육도이지만, 수도 말라보를 둔 비오코섬과 안노본섬은 카메룬 화산 열에서 이어진 열점에 의해 솟아오른 화산섬이다. 안노본섬에는 598m의 Quioveo|키오베오 산영어 외에 포토 호로 알려진 칼데라호가 남아 있다.

안노본섬은 비오코섬에서 남서쪽으로 690km 떨어진 지점에 위치한다. 대륙(가봉의 로페스 곶)과도 400km 이상 떨어져 있다. 안노본섬은 적도 기니 최남단에 해당하며, 국내에서 유일하게 남반구에 위치한다.

습도가 높고, 강우 또는 안개가 매일같이 있으며, 안노본섬의 구름 없는 날은 거의 기록되지 않는다.

적도 기니는 7개의 주로 구성되어 있다. 안노본섬은 전체가 안노본 주로 구분되어 있다. 주도는 섬 북부의 산안토니오 데 팔레이다.

섬 전체는 2003년에 람사르 협약 등록지가 되었다.

4. 자연

가봉 해안으로부터 335km 떨어져 있는 이 섬은 원래 사람이 살지 않는 무인도로 생물 다양성이 매우 잘 보존되어 있었다. 식민화 이후 섬 주민들은 땟목이나 카누를 이용, 섬 근해에서 작살로 혹등고래 등의 고래류를 사냥했다.[1]

오조 블랑코(Ojo Blanco)나 안노본 극락조(Monarca del Paraíso de Annobón) 같은 고유 조류들이 이 섬에 서식한다. 2종의 박쥐를 포함한 29종의 조류, 5종의 파충류와 3종의 바다거북, 18종의 민물고기가 서식하며, 모기, 전갈, 거대 지네 등도 발견된다. 육식 포유류는 발견되지 않지만, 근해에서는 상어가 서식한다.[1]

208종의 식물군이 보고되고 있으며, 이 중 15%가 이 지역 고유종이다. 이들 중에는 바오밥나무와 케이팝 나무를 비롯하여 다수의 양치식물이끼류가 속해 있다.[1]

4. 1. 생물 다양성

안노본섬은 원래 사람이 살지 않는 무인도로 생물 다양성이 매우 잘 보존되어 있었다. 식민화 이후 섬 주민들은 땟목이나 카누를 이용, 섬 근해에서 작살로 혹등고래 등의 고래류를 사냥했다.[1]

오조 블랑코(Ojo Blanco)나 안노본 극락조(Monarca del Paraíso de Annobón) 같은 고유 조류들이 이 섬에 서식한다. 2종의 박쥐를 포함한 29종의 조류, 5종의 파충류와 3종의 바다거북, 18종의 민물고기도 서식한다. 또한 모기, 전갈, 거대 지네 등도 발견된다. 육식 포유류는 발견되지 않지만, 근해에서는 상어가 서식한다.[1]

4. 2. 식물군

208종의 식물군이 보고되고 있으며, 이 중 15%가 이 지역 고유종이다. 이들 중에는 바오밥나무와 케이팝 나무를 비롯하여 다수의 양치식물이끼류가 속해 있다.[1]

5. 주민

안노본섬 주민은 포르투갈인과 앙골라에서 노예로 끌려온 흑인 정착민의 혼혈인 메스티소가 다수이며, 스페인인도 섞여 있다. 섬 주민은 포르투갈 문화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으며, 초기에는 스페인에 대한 반감으로 인해 인근 상투메 프린시페 및 아프리카 본토의 포르투갈어권 국가들과 유대가 강했다. 종교는 가톨릭이 다수이다. 섬 주민은 적도 기니의 제1 공용어인 스페인어도 사용하지만, 스페인어보다 포르투갈어를 널리 사용하며, 16세기 포르투갈어 억양을 남긴 반투어군의 변형과 포르투갈어 크리올인 Fa d'Ambu|파 당보pt(안노본어)를 사용하고 있다.

6. 언어

이 섬의 주된 언어는 포르투갈어 크레올인 안노본어(Fá d'Ambô)이다. 그러나 공용어인 스페인어도 널리 쓰이며 학생들과 관광객들이 주로 사용한다. 스페인어는 안노본어 다음으로 많이 쓰이는 언어이기도 하다.

16세기 포르투갈어 억양이 남아있는 반투어군의 변형과 포르투갈어 크리올어가 혼합된 형태이다. 2014년 포르투갈어 사용국 공동체에 적도 기니가 가입한 이후, 포르투갈어를 사용하는 안노본섬 주민들을 고려하여 적도 기니의 공용어에 포르투갈어를 제3 공용어로 도입했다.

7. 문화

안노본섬의 문화는 스페인보다 포르투갈에 더 가깝다.[1] 이는 역사적으로 이어진 스페인에 대한 반감, 적도 기니 본토와의 거리, 포르투갈 식민지였던 상투메 프린시페와의 근접성 때문이다.[1]

후안 토마스 아빌라 라우렐은 안노본섬 출신의 주목할 만한 작가로, 스페인어로 작품을 저술했다.[1]

8. 경제

안노본섬의 주요 산업은 어업임업이다. 1992년 섬 주변 해저에서 적도 기니 최대 해저 유전이 발견되어 석유 자원이 유망하다.[1] 기니만 석유는 적도 기니 경제의 80% 이상을 차지한다.[1] 전기수도는 잘 보급되어 있지 않다.

8. 1. 주요 산업

주요 산업은 어업임업이다. 전기수도는 잘 보급되어 있지 않다.

8. 2. 석유 자원

1992년 섬 주변 해저에서 적도 기니 최대 해저 유전이 발견되어 석유 자원이 유망하다.[1] 기니만 석유는 적도 기니 경제의 80% 이상을 차지하며, 현재 채굴 속도대로라면 2020년 이전에 고갈될 것으로 예측된다.[1] 상투메 프린시페는 채굴을 중단했지만, 안노본섬과의 경계에 의 원유가 매장된 것으로 추정된다.[1]

9. 국제 관계

안노본섬은 적도 기니영해 설정에 있어 매우 중요한 전략적 거점이다. 적도 기니 본토와 안노본섬 사이에 상투메 프린시페가 위치하여 영해 분쟁이 빈번하게 발생한다.

1988년 적도 기니 정부는 영국 회사와 유독성 방사성 폐기물 보관 계약을 체결했다.[1]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에 걸쳐 유럽 및 미국 기업들과도 유사한 계약을 맺어 대량의 유독 폐기물이 섬에 투기되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1]

9. 1. 영해 분쟁

안노본섬은 적도 기니영해를 설정하는 데 있어 아주 중요한 전략적 거점 역할을 한다. 적도 기니 본토와 안노본섬 사이에 상투메 프린시페가 위치하는데, 이러한 지정학적 위치로 인해 영해 분쟁이 자주 일어난다.

기니만에서 채굴되는 석유가 적도 기니 경제의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고, 현재 속도대로 채굴된다면 2020년 이전에 모두 고갈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현재 상투메 프린시페는 채굴을 그만둔 상태이지만 의 원유가 안노본섬과의 경계에 묻혀 있는 것으로 추측된다.[1] 적도 기니는 북위 1도에서 남위 5도 사이, 그리고 동위 2도에서 동위 7도 사이에 이르는 광범위한 해양의 탄화수소 탐사권과 채굴권을 가진다고 주장하고 있다.[1] 이 면적은 적도 기니 전체 영토와 영해를 합친 것보다 더 크다.[1]

9. 2. 폐기물 투기 문제

1988년 적도 기니 정부는 영국의 회사와 유독성 방사성 폐기물 보관 계약을 체결했다.[1]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에 걸쳐, 유럽 및 미국의 기업들과 유사한 계약이 체결되어 대량의 유독 폐기물이 섬에 투기되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1] 2006년 독일 잡지 슈피겔은 적도 기니 정부가 안노본섬에 방사능 폐기물을 버리려 한다고 보도했다.[1] 테오도로 오비앙 응게마 대통령은 섬 주민들의 빈곤에도 불구하고, 유독 폐기물 보관 허가를 갱신하여 연간 2억달러를 받고 있다는 의혹을 받는다.[1]

참조

[1] PDF Sailing Directions (Enroute), Pub. 123: Southwest Coast of Africa https://msi.nga.mil/[...] P96 2021-10-19
[2] 웹사이트 Isla de Annobón {{!}} Ramsar Sites Information Service https://rsis.ramsar.[...] 2023-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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