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피리투산토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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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에스피리투산토섬은 바누아투 산마 주에 위치한 태평양 멜라네시아 지역의 섬이다. 바누아투에서 두 번째로 큰 정착지인 루간빌이 섬 남동쪽 해안에 위치해 있으며, 바누아투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인 타브웨마사나 산(1,879m)이 섬 중서부에 있다. 1606년 스페인 탐험가 페드루 페르난데스 데 케이로스가 처음으로 섬을 방문했으며, 제2차 세계 대전 중에는 미국군의 군사 기지로 사용되었다. 현재 다이빙 명소로 유명하며, 1980년 바누아투 독립 직전 코코넛 전쟁의 현장이기도 했다. 에스피리투산토섬은 다양한 언어와 문화를 가지고 있으며, 관광, 농업, 어업을 통해 경제 활동이 이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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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스피리투산토섬 - [지명]에 관한 문서 | |
|---|---|
| 지리 | |
| 위치 | 산마 주, 바누아투 |
| 군도 | 뉴헤브리디스 제도 |
| 면적 | 3955.5 km² |
| 최고봉 | 타부웨마사나 산 |
| 해발고도 | 1879 m |
| 행정 구역 | |
| 국가 | 바누아투 |
| 주 | 산마 주 |
| 최대 도시 | 루간빌 |
| 최대 도시 인구 | 10,738명 |
| 인구 | |
| 인구 | 39,606명 |
| 인구 조사 년도 | 2009년 |
| 민족 | 니바누아투 |
| 기타 | |
| 별칭 | 산토 |
2. 지리
에스피리투산토섬은 태평양 멜라네시아 지역의 뉴헤브리디스 제도에 속해 있다. 이 섬은 바누아투의 산마 주에 위치해 있다. 에스피리투산토섬 남동쪽 해안에 있는 루간빌 마을은 바누아투에서 두 번째로 큰 정착지이자 주의 주도이다. 루간빌에서 북쪽과 서쪽으로 도로가 뻗어 있지만, 섬 대부분은 제한적인 도로망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 에스피리투산토섬 주변에는 많은 작은 섬과 섬들이 있는데, 그중에는 다니 섬, 아라키, 코끼리 섬, 사카오, 라타로아, 라타로, 티옹, 말로후, 말웨페, 말바페부, 말파라부, 말티네라바, 오이스터 섬, 탕고아, 보키사가 있다.
1606년 포르투갈 출신 탐험가 페드루 페르난데스 드 케이로스가 이끄는 스페인 탐험대가 유럽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섬에 도달했다. 케이로스는 이곳을 전설 속 남방 대륙 테라 아우스트랄리스로 믿고, 당시 스페인 국왕 펠리페 3세가 오스트리아 왕가 출신임을 기려 La Austrialia del Espíritu Santo|라 아우스트랄리아 델 에스피리투 산토es라고 명명했으며[6], 이것이 현재 섬 이름의 유래가 되었다.[19] 이후 1768년 프랑스의 루이 앙투안 드 부갱빌, 1774년 영국의 제임스 쿡 등이 섬을 방문했다.[13]
바누아투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는 에스피리투산토섬 중서부에 있는 높이 1879m의 타브웨마사나 산이다.
3. 역사
이후 에스피리투산토섬은 영국과 프랑스의 공동 통치령인 뉴헤브리디스의 일부가 되었다. 이 시기 북동 해안의 호그 하버는 영국 지방 행정의 중심지였고, 루간빌 근처의 세곤드는 프랑스 지방 행정의 중심지였다.[14]
제2차 세계 대전 중에는 태평양 전쟁의 주요 전장이었던 과달카날 섬에서 약 800km 떨어진 전략적 위치 덕분에 미국군의 중요한 후방 기지로 활용되었다. 섬에는 대규모 군사 보급 및 지원 기지, 해군 항구, 비행장 등이 건설되었으며, 전쟁 기간 동안 많은 미군 병력이 주둔했다.[19]
1980년 뉴헤브리디스가 바누아투 공화국으로 독립하는 과정에서, 에스피리투산토섬에서는 지미 스티븐스의 나그리멜 운동을 중심으로 분리 독립을 시도하는 코코넛 전쟁이 발발했다. 이는 프랑스계 주민들의 이해관계와 외부 세력의 개입이 얽힌 복잡한 사건이었으나, 독립 이후 파푸아뉴기니 군대의 지원을 받은 바누아투 정부에 의해 진압되어 섬은 바누아투의 영토로 남게 되었다.[19]
3. 1. 초기 탐험
스페인의 세 척의 선박으로 구성된 탐험대가 포르투갈 출신 탐험가 페드루 페르난데스 드 케이로스의 지휘 아래 1606년 섬 북쪽의 빅 베이(Big Bay)에 상륙했다. 케이로스는 당시 스페인 국왕 펠리페 3세가 오스트리아 왕가의 후손임을 기리고, 자신이 전설상의 남방 대륙인 테라 아우스트랄리스에 도착했다고 믿으며 그 땅을 La Austrialia del Espíritu Santo|라 아우스트랄리아 델 에스피리투 산토es라고 명명했다.[6] 이는 현재 섬 이름의 유래가 되었다.[19] 탐험대는 5월 1일과 2일에 걸쳐 만에 들어갔는데, 5월 2일이 성 필립보와 성 야고보 사도 축일이었으므로 케이로스는 이 만을 Bahía de San Felipe y Santiago|바이아 데 산 펠리페 이 산티아고es라고 이름 붙였다.[7]
현지 원주민 족장은 스페인 탐험가들을 배로 돌려보내려 했으나, 이 과정에서 화살과 머스킷 총격전이 벌어져 족장이 사망했다.[8] 스페인 선박들은 약 한 달 동안 Puerto de la Vera Cruz|푸에르토 데 라 베라 크루스es라는 이름의 정박지에 머물렀으며, 무장한 선원들은 식량을 구하기 위해 내륙으로 들어가기도 했다.[9] 케이로스는 '노바 예루살렘'이라는 도시를 건설할 계획을 발표하고 시 공무원을 임명하기도 했다. 그러나 6월 초 식량이 부족해지자 탐험대는 인근 해안선을 탐험하기 위해 만을 떠났다. 항해 중 케이로스가 탄 선두 선박은 나머지 선박들과 분리되었고, 악천후 혹은 선상 반란으로 인해 다시 만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부사령관이자 두 번째 배의 선장이었던 Almirante|알미란테es 루이스 바에스 데 토레스는 케이로스 선박의 흔적을 찾기 위해 해안을 수색했지만 발견하지 못했다.[10][11] 그는 6월 말까지 머무른 뒤, 에스피리투산토가 대륙이 아닌 섬이라고 판단하고 서쪽 해안으로 항해하려 했다. 하지만 바람과 조류가 불리하여 섬을 떠나 서쪽으로 항해했고, 결국 이전에 유럽인들에게 알려지지 않았던 뉴기니 섬의 남쪽 해안에 도달했다.[12] 토레스는 이후 오스트레일리아 북부와 뉴기니 남부 사이의 토레스 해협을 발견하게 된다.
케이로스와 토레스가 떠난 후 160년 동안 유럽인들의 방문은 없다가, 1768년 프랑스의 탐험가 루이 앙투안 드 부갱빌이, 그리고 1774년 영국의 탐험가 제임스 쿡이 다시 이 섬을 방문했다.[13]
3. 2. 제2차 세계 대전
제2차 세계 대전 중, 특히 진주만 공격 이후, 에스피리투산토섬은 미국 해군과 미국 공군의 주요 군사 기지로 활용되었다. 과달카날 섬에서 약 800km 떨어진 전략적 위치 덕분에 중요한 후방 보급 및 지원 기지, 해군 항구, 비행장 역할을 수행했다.[19]
섬에는 여러 군사 시설이 건설되었다. 1943년 해군 건설 대대 40의 시비즈는 대규모 비행장인 루간빌 비행장(폭격기 기지 #3)을 건설했다. 또한 제2 폭격기 기지가 건설되었는데, 이는 전쟁 후 산토-페코아 국제공항으로 전환되었다. 팔리쿨로 만 비행장(폭격기 기지 #1)의 일부는 전쟁 후 주요 도로가 되었다. 수상 비행기를 위한 루간빌 수상 비행장과 전투기 이착륙을 위한 터틀 베이 비행장(전투기 기지 #1)도 운영되었다.
이 기지는 단순한 초계 기지를 넘어 병력 집결, 장비 정비, 병사 휴양 등 다양한 후방 지원 활동의 중심지였다. 부유 도크(드라이 도크)가 설치되고 활주로가 정비되는 등 대규모 시설 확충이 이루어졌다. 당시 기지는 최대 10만 명 규모의 부대를 수용할 수 있었으며, 1942년 5월 기지 건설 시작부터 1945년 9월 철수 완료 시까지 연인원 50만 명의 미군 병력이 이곳을 거쳐 갔다.[19]
전쟁 중에는 개조된 호화 여객선 SS ''프레지던트 쿨리지''가 섬 인근 해역에서 기뢰에 부딪혀 침몰하는 사건도 있었다. 이 난파선은 시간이 흘러 인기 있는 스쿠버 다이빙 명소로 변모했다.
종전 후 미군이 철수하면서 사용했던 막대한 양의 군사 장비와 물자를 섬 동쪽 해안에 폐기했는데, 이 장소는 "밀리언 달러 포인트"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15][19] 아이러니하게도, 버려진 군수품들은 이후 스쿠버 다이빙 명소가 되어 섬의 관광 산업 발전에 기여하는 요소가 되었다.[15]
한편, 에스피리투산토섬은 제임스 미치너의 소설 ''남태평양 이야기''와 이를 원작으로 한 로저스 앤 해머스타인의 뮤지컬 ''사우스 퍼시픽''의 배경이 되기도 했으나, 작품 속 묘사는 실제와는 거리가 있는 허구적인 내용이다.
3. 3. 독립과 코코넛 전쟁
1980년 5월부터 8월까지 에스피리투산토섬은 뉴헤브리디스 식민 통치에서 독립 국가 바누아투로 이양되는 과정에서 발생한 코코넛 전쟁의 중심지가 되었다. 지미 스티븐스가 이끄는 나그리멜 운동은 프랑스 사적 이익 단체, 조세 회피처 건설을 목표로 한 피닉스 재단, 그리고 미국의 자유주의자들과 연합하여 에스피리투산토섬의 분리 독립을 추진했다. 이러한 움직임은 에스피리투산토섬에 프랑스계 주민의 영향력이 강했던 반면, 뉴헤브리디스 제도 전체적으로는 영국계를 중심으로 독립 운동이 진행되었던 배경 속에서 발생했다.[19]
1980년 5월 28일, "베메라나 공화국"이 선포되었고, 6월 3일에는 프랑스가 이 독립을 인정했다. 6월 5일, 산토의 부족장들은 프랑스 대사 필립 알로노를 "베메라나의 왕"으로 추대했으며, 지미 스티븐스는 총리가 되었다. 수도 루간빌은 알로노폴리스로 이름이 바뀌었다. 그러나 새로운 포트빌라 정부와의 협상은 결렬되었다. 7월 27일부터 8월 18일까지 영국 해병대와 프랑스 ''기동 경비대''가 바누아투의 수도 섬에 배치되었지만, 독립 예정 정부의 기대와 달리 에스피리투산토섬에는 진입하지 않았고 독립 직전에 철수했다.
1980년 7월 31일 바누아투가 월터 리니 신부를 총리로 하여 독립한 후, 바누아쿠당이 이끄는 정부는 파푸아뉴기니에 군사 지원을 요청했다. 파푸아뉴기니 군대는 에스피리투산토섬의 분리 독립 운동을 진압했고, 섬은 바누아투 공화국에 속하게 되었다.[19]
4. 문화
에스피리투산토섬에서는 북 바누아투어의 하위 그룹에 속하는 30개 이상의 다양한 지역 언어가 사용된다.
섬 주민들은 주로 관광업, 현금 작물 농업(주요 작물은 코프라이며, 일부 카카오빈, 카바, 땅콩도 재배), 자급자족 농업 및 어업을 통해 생계를 유지한다. 많은 난파선과 암초가 있어 다이버들에게 인기 있는 관광지이며, 샴페인 비치는 흰 모래와 맑은 물로 유명하다. 섬 서쪽에는 탐험할 수 있는 많은 동굴이 있으며, 루간빌에는 유람선이 자주 정박한다.
주민 대부분은 기독교 신자이다. 주요 교단으로는 바누아투 장로교, 로마 가톨릭 교회, 멜라네시아 교회(성공회)가 있으며, 사도 교회, 그리스도 교회,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 교회 등도 활동한다. 그러나 빅 베이나 사우스 산토와 같은 일부 마을에서는 전통 신앙을 유지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바누아투에서 이들을 지칭하는 '이교도'라는 용어는 단순히 기독교를 받아들이지 않은 사람을 의미하며 경멸적인 뜻은 없다. 파나포를 중심으로 한 나그리엘 운동에서는 현대적인 형태의 관습적 신념을 따르기도 한다. 종교와 관계없이 거의 모든 주민에게 전통 관습은 삶의 중요한 부분이며, 대부분 지역에서 족장 제도가 강하게 유지되고 있다. 하지만 서구화의 영향으로 토착 종교는 점차 쇠퇴하고 기독교가 확산되는 추세이다.
섬 주민들은 말라리아와 결핵 같은 건강 문제에 직면해 있으며, HIV 감염도 문제로 지적된다. 병원이 있지만, 많은 주민들은 전통적인 무당이나 서구 선교사가 세운 의료 클리닉을 이용한다. 카바가 섬에서 널리 사용되지만, 알코올 소비 또한 증가하고 있다. 이와 함께 여성에 대한 폭력이나 부족 간 분쟁을 포함한 범죄율 증가가 사회 문제로 나타나고 있다.
4. 1. 스포츠
1998년 9월, 에스피리투산토섬은 1998년 멜라네시아컵 축구 대회를 개최했다.5. 경제 및 인프라
에스피리투산토섬의 중심지는 남동쪽 해안에 위치한 루간빌이다. 루간빌은 바누아투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이자 산마 주의 주도 역할을 한다. 루간빌을 기점으로 세 개의 주요 도로가 뻗어 나가지만, 섬 대부분 지역은 도로 접근성이 제한적이다. 주요 도로 중 하나는 남쪽 해안을 따라 서쪽으로 약 40km 이어져 타시리키 마을까지 가고, 다른 하나는 남쪽과 동쪽 해안을 따라 북쪽의 포트 올리까지 연결된다. 빅 베이 하이웨이는 동쪽 해안에서 갈라져 나와 북쪽의 빅 베이로 향한다. 루간빌 중심부에서 동쪽으로 약 5km 떨어진 곳에는 산토-페코아 국제공항이 있다. 섬의 여러 강 중 가장 큰 사라카타 강은 루간빌을 관통하여 흐른다.
섬 주민 상당수는 여전히 자급자족 농업에 의존해 식량을 해결한다. 대부분의 마을에는 자체적인 채소밭이 있으며 닭과 돼지를 키운다. 이 밭에서는 토란과 참마가 주로 재배되며, 이는 지역 주민들의 주요 식량이다.
과거 프랑스 정착민들이 처음 도입했던 벨몰 가축 프로젝트를 포함하여 여러 소 농장이 운영되고 있으며, 생산된 쇠고기는 일본, 호주 등 다른 태평양 국가로 수출된다.
쇠고기 외에도 통조림 생선과 쌀 등이 소비되며, 현지에서 나는 다양한 먹거리도 풍부하다. 달콤한 파인애플, 망고, 섬 양배추, 날여우, 코코넛 게 등이 있으며, '나토파' 또는 비슬라마어로 '나오스'라 불리는 현지 견과류(Spondias dulcis|큰 돼지 자두eng의 일종)도 맛볼 수 있다. 루간빌에는 시장이 열려 참마, 고구마, 매니옥, 토란, 양배추 등 신선한 농산물과 현지 수공예품을 판매한다. 또한 LCM, Unity Shell, Au bon Marché 같은 소규모 슈퍼마켓에서 식료품과 다양한 포장 제품을 구입할 수 있다.
6. 생물 다양성
에스피리투산토섬에는 바누아투의 모든 고유종 조류가 서식하며, 특히 산토산솔새는 에스피리투산토섬에서만 발견되는 고유종이다. 섬의 생물 다양성을 보호하기 위해 두 개의 보호 구역이 지정되어 있다. 동부 해안의 로루 보존 지역과 북쪽 빅 베이 근처의 바트 보호 지역이 그것이다.
로루 열대 우림 보호 지역은 에스피리투산토섬의 저지대 열대 우림에 자리 잡고 있다. 1993년 족장 칼레브 세르에 의해 설립되었으며, 면적은 220ha에 달한다. 이 보호 구역은 바누아투의 다양한 조류, 박쥐, 식물뿐만 아니라 2km 길이의 산호초에 서식하는 다양한 해양 생물에게 중요한 서식지를 제공한다.[16]
또한, 타브웨마사나산의 높은 산림에는 나무의 일종인 Metrosideros tabwemasanaensis가 고유종으로 서식한다.[17]
7. 교통
에스피리투산토섬의 주요 교통 중심지는 섬 남동쪽 해안의 루간빌이다. 루간빌에서 북쪽과 서쪽으로 도로가 뻗어 있지만, 섬 대부분 지역의 도로 접근성은 제한적이다. 루간빌에서는 세 개의 주요 도로가 시작된다. 메인 스트리트는 서쪽으로 마을을 벗어나 섬의 남쪽 해안을 따라 약 40km 뻗어 타시리키 마을에서 끝난다. 캐널 로드는 섬의 남쪽과 동쪽 해안을 따라 북쪽으로 포트 올리까지 이어진다. 빅 베이 하이웨이는 동쪽 해안의 터틀 베이 근처에서 캐널 로드에서 갈라져 서쪽 산악 지역을 거쳐 북쪽 빅 베이로 향한다.
루간빌 중심부에서 동쪽으로 약 5km 떨어진 곳에 산토-페코아 국제공항이 위치해 있다.[20] 바누아투 항공이 이 공항에서 국내선과 국제선 항공편을 운항하고 있다. 2018년 5월 기준으로 국제선은 오스트레일리아 브리즈번으로 가는 직항편이 있으며[20], 과거에는 시드니로 가는 직항편도 운항했었다.[19]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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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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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행물
A new species of Metrosideros (Myrtaceae) from Vanuatu and notes on the genus
2018-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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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사이트
デジタル大辞泉の解説
https://kotobank.jp/[...]
コトバンク
2018-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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バヌア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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太平洋諸島センター
[20]
웹사이트
INTERNATIONAL FLIGHT SCHEDULE
https://www.airvanua[...]
バヌアツ航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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