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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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연돌은 백제 동성왕 때의 인물로, 490년 달솔에 임명되었고 497년 병관좌평을 역임했다. 그는 연씨 가문 출신으로, 웅진 시대에 신진 세력 등용 정책에 따라 중요한 관직을 맡았다. 연씨 가문의 기원에 대해서는 대성팔족의 일원으로서 토착 세력인지, 아니면 중국 이민 출신인지에 대한 논쟁이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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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실은 백제 건국 공신인 대성팔족 중 하나로, 웅진 시대에 두각을 나타냈으며 중국계 이민족일 가능성이 있고, 무왕 때 연문진이 수나라 사신으로 임명되어 외교에 기여했다. - 연씨 (백제) - 연실 (백제)
연실은 백제 건국 공신인 대성팔족 중 하나로, 웅진 시대에 두각을 나타냈으며 중국계 이민족일 가능성이 있고, 무왕 때 연문진이 수나라 사신으로 임명되어 외교에 기여했다. - 연씨 (백제) - 연신
연신은 478년 백제에서 반란에 가담했다가 실패하여 고구려로 망명한 백제의 은솔이며, 대성팔족 중 하나인 연씨 출신이다. - 백제의 달솔 - 흑치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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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돌 - [인물]에 관한 문서 | |
---|---|
인물 정보 | |
한글 | 연돌 |
한자 | 燕 突 |
히라가나 | 엔 도쓰 |
로마자 표기 | Yeondol |
귀족 정보 | |
이름 | 연돌 |
원어 이름 | 燕突 |
작위 | 백제의 달솔 |
재임 기간 | 490년~497년 |
군주 | 백제 동성왕 |
작위 2 | 백제의 병관좌평 |
재임 기간 2 | 497년~? |
전임자 2 | 진로 |
군주 2 | 백제 동성왕 |
국적 | 백제 |
성별 | 남성 |
왕조 | 백제 |
가문 | 연씨 |
2. 생애
연돌은 동성왕(東城王) 때 웅진(熊津) 토착 세력을 등용하려는 정책의 일환으로 490년 백제의 16관등 중 두 번째인 달솔에 임명되었고, 497년 병관좌평으로 승진했다.[1]
2. 1. 관직 임명
490년(동성왕 12) 9월, 달솔(達率)에 임명되었고, 497년(동성왕 19) 5월, 병관좌평(兵官佐平)이었던 진로(眞老)가 죽자, 그의 뒤를 이어 병관좌평에 임명되었다. 이는 연(燕)씨, 사(沙)씨, 백(苩)씨 등의 웅진(熊津) 토착 세력들을 신진 세력으로서 새로이 등용하려는 동성왕(東城王)의 정책의 일환이었다.[1]3. 출자
대성팔족 중 하나인 연씨 출신으로, 대한민국의 『두산 세계대백과사전』은 연씨의 시조 및 연원은 알 수 없다고 설명한다[2]。그러나 한국 고대사학자 정재윤은 대성팔족이 온조왕을 따랐던 여덟 가문인데, 연씨는 한성부백제 붕괴 및 웅진 천도 이후 부상한 일족이므로 토착계로 보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연(燕)」이라는 한자 성씨를 사용한 점, 군사적으로 부상한 점, 금강 유역에 예씨나 진씨 등 중국인이민커뮤니티가 존재했던 점 등에서 중국인 이민일 가능성을 제시한다.[3] 이홍직이나 김영관은 금강 유역 토착계로 보기도 하지만, 대방군에 토착화했던 중국인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주장한다.[4][5][6] 김영관은 웅진 시대에 활동하다 사비 천도 후 성왕 18년(540년) 이후 자취를 감추고, 무왕 8년(607년) 연문진이 수나라에 사신으로 가는 등 활동을 재개했는데, 대중국 외교에 유리한 중국계를 기용한 것이며, 웅진 시대 권세를 떨치다 사라졌던 연씨가 재등장하게 되었다고 본다.[6]
3. 1. 대성팔족 연씨
대성팔족 중 하나인 연씨 출신이다.[2] 대한민국의 『두산 세계대백과사전』은 연씨의 시조 및 연원은 알 수 없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한국 고대사학자 정재윤은 연씨가 대성팔족의 하나이므로 토착계(=「순수 백제인」)로 볼 수도 있지만, 대성팔족은 백제의 건국자인 온조왕을 따랐던 여덟 가문인데, 연씨는 한성부백제가 붕괴되고 웅진 천도 이후에 부상한 일족이므로 토착계로 보는 것은 석연치 않고, 「연(燕)」이라는 한자 성씨를 사용한 점, 연씨가 군사적으로 부상한 점, 연씨의 거점인 금강은 예씨(예숭, 예새돈, 예복, 예예, 예선, 예군, 예식진, 예소사, 예인수)나 진씨(진명, 진춘, 진덕지, 진미지, 진법자) 등의 대규모 중국인이민커뮤니티가 존재했던 점 등을 감안하면, 중국인 이민일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3] 한국 고대사학자 이홍직이나 김영관은 연씨를 금강 유역의 토착계로 보는 견해도 있지만, 백제로 이주한 대방군에 토착화했던 중국인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주장하고 있다.[4][5][6] 김영관은 연씨는 웅진 시대에 활발히 활동했지만, 사비 천도 후의 성왕 18년(540년) 이후 자취를 감추고, 무왕 8년(607년)에 연문진이 등장하여 수나라에 사신으로 가는 등 연씨는 활동을 재개했다고 하였다.[6] 백제는 대중국 외교에 중국계 인사가 유리하므로, 중국계를 기용하고 있으며 (장위, 장무, 고달, 회매, 모유, 양무, 왕무, 장새, 진명, 왕변나, 왕효린), 연문진은 중국계이므로, 대수 외교에 기용되었으며, 웅진 시대에 권세를 떨치다 자취를 감추었던 연씨가 재등장하게 되었다고 지적하고 있다.[6]3. 2. 가문 기원에 대한 논쟁
대성팔족 중 하나인 연씨 출신이다. 대한민국의 『두산 세계대백과사전』은 연씨의 시조 및 연원은 알 수 없다고 설명한다[2]。그러나 한국 고대사학자 정재윤은 대성팔족은 백제의 건국자인 온조왕을 따랐던 여덟 가문인데, 연씨는 한성부백제가 붕괴되고 웅진 천도 이후에 부상한 일족이므로, 연씨가 대성팔족의 하나이므로 토착계(=「순수 백제인」)로 볼 수도 있지만, 토착계로 보는 것은 석연치 않다고 한다. 「연(燕)」이라는 한자 성씨를 사용한 점, 연씨가 군사적으로 부상한 점, 연씨의 거점인 금강은 예씨(예숭, 예새돈, 예복, 예예, 예선, 예군, 예식진, 예소사, 예인수)나 진씨(진명, 진춘, 진덕지, 진미지, 진법자) 등의 대규모 중국인이민커뮤니티가 존재했던 점 등을 감안하면, 연씨는 중국인이민일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한다[3]。 한국 고대사학자 이홍직이나 김영관은 연씨를 금강 유역의 토착계로 보는 견해도 있지만, 백제로 이주한 대방군에 토착화했던 중국인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주장한다[4][5][6]。김영관은 연씨는 웅진 시대에 활발히 활동했지만, 사비 천도 후의 성왕 18년(540년) 이후 자취를 감추고, 무왕 8년(607년)에 연문진이 등장하여 수나라에 사신으로 가는 등 연씨는 활동을 재개했다고 한다[6]。백제는 대중국 외교에 중국계 인사가 유리하므로, 중국계를 기용하고 있으며 (장위, 장무, 고달, 회매, 모유, 양무, 왕무, 장새, 진명, 왕변나, 왕효린), 연문진은 중국계이므로, 대수 외교에 기용되었으며, 웅진 시대에 권세를 떨치다 자취를 감추었던 연씨가 재등장하게 되었다고 지적한다[6]。참조
[1]
뉴스
연돌(燕突)
http://encykorea.aks[...]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2]
뉴스
연 燕
https://www.doopedia[...]
斗山世界大百科事典
[3]
서적
중국계 백제관료에 대한 고찰
고려대학교|고려대학역사연구소
2012
[4]
뉴스
수서(隋書) > 동이열전(東夷列傳) > 백제(百濟) > 大業 3년(A.D.607; 百濟 武王 8)에 璋이 使者 燕文進을
http://db.history.go[...]
국사편찬위원회
[5]
서적
百濟人名考
新丘文化社
1971
[6]
서적
백제 말기 중앙 귀족의 변천과 왕권
한국고대사탐구학회
2014-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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