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부치 내각 (제2차 개조)
1. 개요
오부치 내각 (제2차 개조)는 1999년 11월 20일에 발족한 일본의 내각이다. 오부치 게이조가 내각총리대신을 맡았으며, 2000년 4월 2일 오부치의 뇌경색으로 인해 아오키 미키오가 총리 임시대리를 수행했다. 내각은 법무대신 우스이 히데오, 외무대신 고노 요헤이, 대장대신 미야자와 기이치 등으로 구성되었다. 주요 정책으로는 경제, 사회, 외교 정책 등이 추진되었으며, 오부치 총리의 뇌경색과 그에 따른 모리 요시로의 후임 선출 과정에서 비판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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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각 명칭 | 오부치 제2차 개조내각 |
|---|---|
| 일본어 표기 | 小渕第2次改造内閣일본어 |
| 대수 | 84 |
| 수상 이름 | 오부치 게이조 |
| 수상 전직 | 중의원 의원 |
| 성립 연도 | 1999년 |
| 성립 월일 | 10월 5일 |
| 종료 연도 | 2000년 |
| 종료 월일 | 4월 5일 |
| 여당 | 자유민주당 자유당 → 보수당 공명당 |
| 명단 | 내각 명단 (일본 총리대신 관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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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일본 -
오부치 내각
오부치 내각은 일본 경제 회복을 위해 노력했으나 구조적 문제 해결에 한계를 보였고, 정치적 혼란과 위안부 문제에 대한 소극적 태도로 비판받은 오부치 게이조 총리의 내각이다. -
1999년 일본 -
오케가와 스토커 살인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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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일본 -
제2차 모리 내각
제2차 모리 내각은 2000년 4월 5일부터 2001년 4월 26일까지 모리 요시로 총리에 의해 조직된 자민당, 공명당, 보수당의 연립 내각이며, 행정 개혁을 추진했으나 잦은 실언과 스캔들로 지지율이 하락하여 모리 총리가 사퇴하고 고이즈미 준이치로가 후임으로 선출되었다. -
2000년 일본 -
제1차 모리 내각
오부치 게이조 총리의 사망 후 모리 요시로가 총리로 선출되어 구성된 제1차 모리 내각은 경제 회복, 정치 개혁, 외교 관계 개선을 목표로 했으나, 실언과 정책적 미흡함으로 낮은 지지율을 기록한 단명 내각이다. -
오부치 게이조 -
국기 및 국가에 관한 법률
《국기 및 국가에 관한 법률》은 히노마루를 국기로, 기미가요를 국가로 정식 규정하고 국기와 국가의 제정 방식, 가사, 악보를 명시하지만, 사용 및 취급에 대한 규정이나 존중 의무, 벌칙 조항은 포함하지 않은 1999년 제정된 일본의 법률이다. -
오부치 게이조 -
오부치 유코
2. 내각 구성
1999년 자유민주당 총재 선거 이후, 오부치 게이조 총리는 내각을 개조하면서 주요 인사를 단행했다. 이 과정에서 여러 정치적 고려와 파벌 간 갈등이 작용했다.
총무회장에는 가토 파벌이 추천한 오자토 사다토시 대신, 이케다 유키히코를 전격 기용했다. 외무대신에는 가토 고이치의 라이벌이자 와세다 대학 출신인 고노 요헤이를 임명했다. 통상산업대신에는 와세다 대학 웅변회 선배인 후카야 다카시를 기용하여, 야마자키 파벌이 추천한 야스오카 오키하루의 입각을 무산시켰다. 이러한 인사는 총재 선거 후 보복 인사라는 평가를 받았다.
후생대신에는 하시모토 류타로 전 총리의 추천을 받은 니와 유야를 기용했다. 하시모토는 입각 제안을 거절했지만, 니와는 가토 파벌이었음에도 가토를 거치지 않고 발탁되었다.
금융재생위원회 위원장에는 타니가키 사다카즈가 내정되었으나, 미야자와 기이치 당시 대장대신과 가토 고이치 간의 갈등으로 인해 사퇴했다. 이후 오치 미치오가 임명되었으나, '온정 발언' 논란으로 사임하고, 최종적으로 타니가키가 취임했다.
자유당에서는 니카이 도시히로가 운수대신 겸 홋카이도 개발청 장관으로, 공명당에서는 츠즈키 노리히로가 총무청 장관으로 처음 입각했다.
2.1. 국무대신
| 직명 | 성명 | 소속 | 특명 사항 등 | 비고 | |
|---|---|---|---|---|---|
| 내각총리대신 | |||||
| 오부치 게이조 | 중의원 자유민주당 (오부치 파) | 자유민주당 총재 | |||
| 법무대신 | 우스이 히데오 | 중의원 자유민주당 (구 가와모토 파) | |||
| 외무대신 | |||||
| 고노 요헤이 | 중의원 자유민주당 (고노G) | ||||
| 대장대신 | 미야자와 기이치 | 중의원 자유민주당 (가토 파) | 유임 | ||
| 문부대신 과학기술청 장관 | |||||
| 나카소네 히로후미 | 참의원 자유민주당 (에토・가메이 파) | 국립국회도서관 연락 조정 위원회 위원 원자력 위원회 위원장 | 첫 입각 | ||
| 후생대신 | |||||
| 니와 유야 | 중의원 자유민주당 (가토 파) | 연금 문제 담당 | |||
| 농림수산대신 | |||||
| 다마자와 도쿠이치로 | 중의원 자유민주당 (모리 파) | ||||
| 통상산업대신 | 후카야 다카시 | 중의원 자유민주당 (야마자키 파) | 국제 박람회 담당 | ||
| 운수대신 홋카이도 개발청 장관 | |||||
| 니카이 도시히로 | 중의원 자유당 →보수당 | 신도쿄 국제공항 담당 | 첫 입각 | ||
| 우정대신 | |||||
| 마에지마 에이사부로 (야시로 에이타) | 중의원 자유민주당 (오부치 파) | 첫 입각 | |||
| 노동대신 | |||||
| 마키노 다카모리 | 중의원 자유민주당 (에토・가메이 파) | 첫 입각 | |||
| 건설대신 국토청 장관 | |||||
| 나카야마 마사아키 | 중의원 자유민주당 (에토・가메이 파) | 연구・학원 도시 담당 토지 대책 담당 수도 기능 이전 담당 | |||
| 자치대신 국가공안위원회 위원장 | |||||
| 호리 고스케 | 중의원 자유민주당 (오부치 파) | ||||
| 내각관방장관 오키나와 개발청 장관 | 아오키 미키오 | 참의원 자유민주당 (오부치 파) | 남녀공동참여 담당 오키나와 담당 내각총리대신 임시대리(2000년 4월 3일-) | 첫 입각 | |
| 금융재생위원회 위원장 | |||||
| 오치 미치오 | 중의원 자유민주당 (모리 파) | 2000년 2월 25일 사임 | |||
| 타니가키 사다카즈 | 중의원 자유민주당 (가토 파) | 2000년 2월 25일 임명 | |||
| 총무청 장관 | |||||
| 속훈홍 | 참의원 공명당 | 중앙성청 개혁 등 담당 | 첫 입각 | ||
| 방위청 장관 | 가와라 쓰토무 | 중의원 자유민주당 (가토 파) | |||
| 경제기획청 장관 | 이케구치 고타로 (사카이야 다이치) | 민간인 | 종합교통 대책 담당 신 천년기 기념 행사 담당 | 유임 | |
| 환경청 장관 | 시미즈 가요코 | 참의원 자유민주당 (모리 파) | 지구 환경 문제 담당 | 첫 입각 |
2.2. 내각관방 부장관·내각법제국 장관
2.4. 정무차관
1999년 9월 20일, 정무차관의 권한 강화에 관한 법 개정이 있었다. 이에 따라 각 성청에 복수로 임명된 경우 첫 번째 정무차관은 '총괄 정무차관'으로 호칭되었다.
| 직책 | 이름 | 정당 |
|---|---|---|
| 법무 정무차관 | 야마모토 유지 | 자유민주당 |
| 외무 정무차관 | 아즈마 쇼조 | 자유당 |
| 외무 정무차관 | 야마모토 이치타 | 자유민주당 |
| 대장 정무차관 | 오노 요시노리 | 자유민주당 |
| 대장 정무차관 | 하야시 요시마사 | 자유민주당 |
| 문부 정무차관 | 가와무라 다케오 | 자유민주당 |
| 문부 정무차관 | 오코노기 하치로 | 자유민주당 |
| 후생 정무차관 | 오노 유리코 | 공명당 |
| 농림수산 정무차관 | 야쓰 요시오 | 자유민주당 |
| 농림수산 정무차관 | 가네다 가쓰토시 | 자유민주당 |
| 통상산업 정무차관 | 호소다 히로유키 | 자유민주당 |
| 통상산업 정무차관 | 모테기 도시미쓰 | 자유민주당 |
| 운수 정무차관 | 주마 고키 | 자유민주당 |
| 운수 정무차관 | 스즈키 세이지 | 자유민주당 |
| 우정 정무차관 | 고사카 겐지 | 자유민주당 |
| 우정 정무차관 | 마에다 다다시 | 개혁 클럽 |
| 노동 정무차관 | 나가세 진엔 | 자유민주당 |
| 건설 정무차관 | 가토 다쿠지 | 자유민주당 |
| 건설 정무차관 | 기시다 후미오 | 자유민주당 |
| 자치 정무차관 | 히라바야시 고조 | 자유민주당 |
| 자치 정무차관 | 다치바나 고타로 | 자유민주당 |
| 총리부 정무차관 | 나가미네 모토이 | 자유민주당 |
| 금융재생 정무차관 | 무라이 진 | 자유민주당 |
| 총무 정무차관 | 모치나가 가즈미 | 자유민주당 |
| 홋카이도 개발 정무차관 | 요네다 겐조 | 자유민주당 |
| 방위 정무차관 | 요다 도모하루 | 자유민주당 |
| 방위 정무차관 | 니시카와 다이이치로 | 자유당 → 보수당 |
| 경제기획 정무차관 | 고이케 유리코 | 자유당 → 보수당 |
| 과학기술 정무차관 | 사이토 데쓰오 | 공명당 |
| 환경 정무차관 | 야나기모토 다쿠지 | 자유민주당 |
| 오키나와 개발 정무차관 | 시라호 다이이치 | 공명당 |
| 국토 정무차관 | 마스다 도시오 | 자유민주당 |
3. 주요 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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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오부치 총리의 뇌경색과 내각 총사퇴
2000년 4월 1일, 오부치 총리는 연립 여당이었던 자유당과의 연립 협상이 결렬된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10초 이상 말을 잇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는 뇌경색의 전조 증상으로 여겨졌다.
다음 날인 4월 2일, 오부치 총리는 뇌경색으로 준텐도 대학 의학부 부속 준텐도 의원에 긴급 입원했다. 입원 후 집무가 불가능한 상태였기 때문에 내각관방장관이었던 아오키 미키오가 총리 임시 대리로 지명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오부치 총리가 의식을 잃은 상태에서 아오키를 총리 임시 대리로 지명하는 것이 가능했는지에 대한 의혹이 제기되었다. 야당과 언론은 이 문제를 집중적으로 추궁했고, 아오키는 의혹을 부인했지만, 담당 의사들의 설명과 엇갈리면서 의혹은 해소되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오부치 총리의 후임으로 모리 요시로가 새로운 총재로 선출되었는데, 이 과정 또한 '5인조에 의한 밀실 담합 정치'라는 비판을 받았다. 결국 4월 5일, 오부치 내각은 총사퇴하고 모리 요시로 내각이 출범하게 되었다.
5. 평가
오부치 내각 (제2차 개조)에 대한 평가는 하위 섹션에서 자세히 다루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