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이시 다이지로
1. 개요
오이시 다이지로는 일본의 전 프로 야구 선수이자 지도자, 야구 해설가이다. 긴테쓰 버펄로스에서 1981년부터 1997년까지 선수로 활약하며, 신인왕, 도루왕 4회, 베스트 나인 3회, 골든 글러브상 3회를 수상했다. 2003년부터 지도자로 활동하며 오릭스 버펄로스 감독 대행 및 감독을 역임했고,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수석 코치를 거쳐, 현재는 야구 해설가로 활동하고 있다.
| 이름 | 오이시 다이지로 |
|---|---|
| 원어 이름 | 大石 大二郎일본어 (おお いし だいじろう) |
| 출생일 | 1958년 10월 20일 |
| 출생지 | 시즈오카현 시즈오카시 (현 시즈오카시 스루가구) |
| 신장 | 166cm |
| 체중 | 71kg |
| 포지션 | 2루수 |
| 투구/타석 | 우투/우타 |
| 고등학교 | 시즈오카현립 시즈오카 상업 고등학교 |
|---|---|
| 대학교 | 아시아 대학 |
| 프로 입단 | 1980년 드래프트 2순위 |
| 소속 구단 | 긴테쓰 버펄로스 (1981년 ~ 1997년) |
| 첫 출장 | 1981년 4월 8일 |
| 마지막 출장 | 1997년 9월 11일 (공식전 마지막), 1998년 3월 14일 (은퇴 경기) |
| 은퇴 | 1997년 |
| 오사카 긴테쓰 버펄로스 | (2003년 ~ 2004년) |
|---|---|
| 오릭스 버펄로스 | (2005년 ~ 2009년) |
|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 (2010년 ~ 2013년) |
| 니가타 알비렉스 베이스볼 클럽 | (2016년) |
| 신인왕 | 1982년 퍼시픽 리그 신인왕 |
|---|---|
| 올스타 | 9회 (1982년 ~ 1984년, 1986년 ~ 1987년, 1989년 ~ 1990년, 1992년 ~ 1993년) |
| 도루왕 | 4회 (1983년 ~ 1984년, 1987년, 1993년) |
| 베스트 나인 | 3회 (1983년, 1984년, 1990년) |
| 미쓰이 골든 글러브상 | 3회 (1982년 ~ 1984년) |
| 타율 | 0.274 |
|---|---|
| 홈런 | 148 |
| 안타 | 18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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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대학 동문 -
이토 가나코
이토 가나코는 일본의 여자 축구 선수로, NTV 벨레자에 입단하여 프로 선수 생활을 시작, 닛폰 TV 벨레자 등 여러 클럽에서 활약하며 L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기도 했고, 2001년부터 2012년까지 일본 여자 축구 국가대표팀에서 13경기 3골을 기록, 2002년 FIFA U-19 여자 월드컵에 참가했으며 2003년에는 일본 여자 축구 리그 감투상을 수상했다. -
아시아 대학 동문 -
황목치승
황목치승은 일본 사회인 야구를 거쳐 고양 원더스에서 활동하다 2014년 LG 트윈스에 입단하여 프로 선수 생활을 시작, 대주자 및 수비 요원으로 활약 후 2017년 은퇴한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이다. -
시즈오카현 출신 야구 선수 -
다도코로 젠지로
다도코로 젠지로는 시즈오카 상업고등학교 시절 선발 고등학교 야구 대회에서 전 경기 완봉승으로 우승을 이끌었으며, 고쿠테쓰 스왈로스에 입단하여 투수로 활동, 은퇴 후에는 코치, 야구 연맹 임원, 유소년 야구팀 대표를 역임했다. -
시즈오카현 출신 야구 선수 -
다케야스 다이치
다케야스 다이치는 일본의 전 프로 야구 선수로, 투수로서 한신 타이거스와 오릭스 버펄로스에서 활동했으며, 2017년 1군 데뷔 후 첫 승을 거두고 2019년에는 완봉승을 기록했으며, 2024년부터는 구마모토 골든 락스의 코치로 활동한다. -
긴테쓰 버펄로스 선수 -
노모 히데오
노모 히데오는 독특한 투구폼으로 유명하며 NPB와 MLB에서 모두 성공을 거둔 일본의 前 프로 야구 선수이자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투수로, 일본 선수들의 메이저 리그 진출 붐을 일으킨 선구자이다. -
긴테쓰 버펄로스 선수 -
백인천
백인천은 중화민국 출신의 대한민국 야구 선수 및 감독으로, 일본과 한국에서 선수와 지도자로 활동하며, KBO 리그에서 1982년 최고 타율을 기록하고, LG 트윈스를 우승으로 이끌었으며, 해설위원으로도 활동했다.
2. 선수 경력
오이시 다이지로는 시즈오카현 시즈오카시 출신으로, 중학교 시절 유도부에 속해 있었으나, 형의 영향으로 야구부에 들어가면서 본격적으로 야구를 시작했다. 시즈오카 상업고등학교 시절에는 전국 대회에 출전하기도 했지만, 팀 사정으로 여름 대회에는 출전하지 못했다. 고등학교 졸업 후 경륜 선수를 꿈꿨지만, 아버지의 권유로 아시아 대학에 진학했다. 대학 시절에는 도토 대학 리그 신기록을 세우는 등 뛰어난 활약을 펼쳤다.
대학 졸업 후에도 경륜 선수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지만, 1980년 프로 야구 드래프트 회의에서 긴테쓰 버펄로스의 지명을 받고 야구부 감독의 설득으로 입단하게 되었다. 계약금은 30, 연봉은 3.3(추정)이었다.
긴테쓰 버펄로스에 입단한 1981년에는 주로 대주자나 수비 요원으로 활약했다. 1982년에는 주전 2루수로 자리 잡으며 신인왕과 다이아몬드 글러브상을 수상했다. 1983년에는 도루왕 타이틀을 획득하며 후쿠모토 유타카의 연속 도루왕 기록을 13년 만에 저지했고, 베스트 나인에도 선정되었다. 1984년에도 도루왕, 다이아몬드 글러브상, 베스트 나인을 수상하며 퍼시픽 리그를 대표하는 2루수로 성장했다.
1985년에는 부상으로 올스타전 출전을 포기해야 했다. 1986년에는 전 경기, 전 이닝 출전하며 긴테쓰 사상 최초의 일본인 야수 50 플레이어가 되었다. 1987년에는 니시무라 노리후미와 함께 도루왕을 획득했지만, 오른쪽 어깨 통증으로 타율이 하락했다. 1988년에는 오른쪽 어깨 수술을 받았다.
1989년에는 부상 재활에 힘쓰며 팀의 우승에 기여했고, 일본 시리즈 1차전에서는 시리즈 사상 유일의 1차전 첫 타자 홈런을 기록했다. 1990년에는 리그 2위의 타율과 20홈런을 기록하며 뛰어난 성적을 거두었다. 1992년에는 긴테쓰 사상 최초의 일본인 1억 엔 플레이어가 되었다. 1993년에는 6년 만에 도루왕을 획득하며 최고령 기록과 타이를 이루었다.
1994년부터는 준 주전 선수로 활약하며 40세까지 현역 생활과 2000안타 달성을 목표로 삼았다. 1997년에는 사사키 쿄스케 감독과의 불화와 구단의 은퇴 권유로 현역에서 은퇴했다. 1998년 3월 14일에 열린 은퇴 경기에서는 1번 타자, 2루수로 선발 출장하여 안타를 기록하고 도루를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2.1. 프로 입단 전
시즈오카현 시즈오카시에서 태어나, 중학교 시절에는 처음에 유도부에 들어갔지만, 2학년 위에 형이 야구부 주장을 맡고 있어서 같은 야구부에 들어가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에, 생각을 바꿔 6월에 야구부로 옮겨 본격적으로 야구를 시작했다.
시즈오카 상업고등학교에 진학하여 1학년 여름부터 벤치에 들어갔다. 1974년 전국 고등학교 야구 선수권 대회에 출전했지만, 본인의 출전 기회는 없었으며, 3학년 에이스 다카하시 미치타케의 호투로 팀은 8강에 진출했다. 이듬해에는 1번 타자로 봄의 선발 대회에 출전하여 팀의 8강 진출에 기여했다. 3학년 때는 동급생이자 훗날 프로 선수가 되는 구보데라 유지가 유격수를 맡으면서 자신은 3번·3루수를 맡았으며 팀은 시즈오카현 예선에서 유력한 후보로 여겨졌다. 그러나 1학년 위의 선배가 1월 말에 다른 학교 학생과 패싸움을 했던 사실이 4월에 발각되면서 팀은 여름 시즈오카현 대회에 출전할 수 없게 되었다.
고등학교 졸업 후에는 경륜 선수가 되려고 생각했었지만, 아버지의 권유로 아시아 대학에 진학했다. 3학년 때인 1979년 춘계 리그에서 17개의 도루를 기록해 당시 도토 대학 리그 신기록을 수립했다. 대학 4년 간 통산 91경기에 출전하여 344타수 99안타, 타율 2할 8푼 8리, 4홈런, 25타점, 44개의 도루를 기록했고 베스트 나인에는 두 차례 선정됐다.
대학 졸업 후에는 경륜 선수가 되겠다는 마음을 굳혔으나, 1980년 프로 야구 드래프트 회의에서 긴테쓰 버펄로스로부터 무토 가즈쿠니의 낙첨 2순위로 지명되었고, 야구부 감독이던 야노 스케히로의 권유도 있어서 긴테쓰에 입단했다. 계약금은 30, 연봉은 3.3(금액은 추정)이었다.
2.2. 긴테쓰 버펄로스 시절 (1981년 ~ 1997년)
1981년에는 주로 대주나 수비로 출전했고, 77경기에 출전하여 타수는 19회에 불과했다. 같은 해는 니시모토 유키오 감독의 마지막 해였고, 정신없이 혹독한 훈련을 받았다.
1982년에는 오픈전에서 2루수 빅터 해리스가 부상으로 외야수로 전향되자, 오픈전에서 3할 이상의 고타율을 기록하며 2루수 주전으로 자리 잡았다. 같은 해, 레귤러 시즌에서 타율 .274, 12홈런, 47도루의 성적을 기록하며 신인왕과 다이아몬드 글러브상을 수상했다. 시즌 후 12월 12일 계약 갱신에서는 약 164% 증가한 연봉 10(추정)에 사인했다.
1983년 7월 14일 세이부 라이온즈와의 경기(니세이 구장)에서 6회 1사 만루 타석에서 키무라 히로시를 상대로 만루 홈런을 날렸다. 시즌에서는 60도루로 도루왕 타이틀을 획득하며, 후쿠모토 유타카의 연속 도루왕 기록을 13년 만에 깼다. 같은 해부터 1번 타자, 2루수로 정착하며 2년 연속 다이아몬드 글러브상과 베스트 나인에 선정되었다. 시즌 후 12월 11일 계약 갱신에서는 100% 증가한 연봉 20(추정)에 사인했다.
1984년에도 도루왕, 다이아몬드 글러브상, 베스트 나인을 수상하며, 퍼시픽 리그를 대표하는 2루수로 성장했다. 1984년 올스타전 3차전(나고야 구장)에서는 당시까지 8연속 탈삼진을 기록하고 있던 에가와 스구루를 상대로 2루 땅볼을 쳐내, 에가와 야스시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9연속 탈삼진 기록을 저지했다. 시즌 후 12월 5일 계약 갱신에서는 60% 증가한 연봉 32(추정)에 사인했다.
1985년, 고등학교 동급생이자 난카이 호크스에 입단했던 구보데라 유지가 급사했다. 오이시는 1월 8일 장례식에서 울면서 조사를 읽었다. 4월 25일 난카이 호크스와의 경기(후지이데라 구장)에서 6-6 동점인 9회 무사 주자 없는 타석에서 하타케야마 준을 상대로 사요나라 홈런을 쳤지만, 7월 7일 한큐 브레이브스와의 경기에서 병살 플레이 도중 왼쪽 무릎을 다쳤다. 검사 결과 "왼쪽 무릎 내측 인대 손상"으로 진단되어 다음 날 8일에 출전 선수 등록이 말소되었다. 1985년 올스타전 팬 투표에서 26만 표 이상을 얻어 2년 연속 최고 득표자가 되었지만, 출전을 포기했다. 시즌 후 12월 6일 계약 갱신에서는 11% 증가한 연봉 36(추정)에 사인했다.
1986년에는 전 경기, 전 이닝 출전했다. 4월 15일 롯데 오리온스와의 경기(헤이와다이 구장)에서 1회 초 소 쇼오를 상대로 첫 타자 홈런을 포함, 한 경기 3홈런을 기록했지만, 팀은 8-9로 패했다. 시즌 후 12월 18일 계약 갱신에서는 45% 증가한 연봉 52(추정)에 사인하며, 긴테쓰 사상 최초의 일본인 야수 50 플레이어가 되었다.
1987년에도 전 경기에 출전했다. 9월 14일 7살 연하의 일반 여성 회사원과 약혼을 발표했다. 다음 날 15일부터 등록명을 "오이시 다이치로"로 변경했다. 시즌에서는 니시무라 노리후미 (롯데)와 함께 41도루로 3번째 도루왕을 획득했지만, 이 무렵부터 오른쪽 어깨 통증이 계속되어 타율은 .265로 하락했다. 시즌 후 12월 15일 계약 갱신에서는 현상 유지의 연봉 52(추정)에 사인했다.
1988년에는 10.19 다음 달에 오사카 후생 연금 병원에서 오른쪽 어깨 수술을 받았고, 12월 8일에는 미야코 호텔 오사카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1989년은 새해부터 부인과 함께 하와이와 사이판에서 재활에 힘썼고, 이후 팀 캠프에 참가하지 않고 고마쓰시 온천에서 단독 훈련을 했다. 8월 3일 오릭스와의 경기에서 오른쪽 종아리 근육 파열이 일어나는 등, 같은 해에는 출전이 109경기로 감소했지만, 타율 .277 등 톱 타자로서 활약하며 팀 우승에 기여했다. 현역 시절 가장 기억에 남는 일로 이 우승과 전년도의 10.19를 꼽았다. 요미우리 자이언츠와의 같은 해 일본 시리즈 1차전(후지이데라 구장)에서는 사이토 마사키를 상대로 시리즈 사상 유일의 1차전 첫 타자 홈런을 날렸다.
1990년에는 어깨가 완전히 회복되어 캠프부터 순조롭게 조정했고, 6월 26일 롯데와의 경기(니세이 구장)에서 3점을 뒤쫓는 9회 1사 만루 타석에서 이라부 히데키를 상대로 역전 사요나라 만루 홈런을 쳤다. 7월 13일 니혼햄 파이터스와의 경기(후지이데라 구장)에서는 1점을 뒤쫓는 9회 1사 2루 타석에서 니시자키 유키히로를 상대로 시즌 2번째 사요나라 홈런인 역전 사요나라 2점 홈런을 날렸다. 같은 해에는 리그 2위인 타율 .314, 20홈런이라는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시즌 후 12월 25일 계약 갱신에서는 16 증가한 연봉 84(추정)에 사인했다.
1991년 5월 16일 세이부와의 경기(후지이데라 구장)에서 1점을 뒤쫓는 9회 1사 2루 타석에서 이시이 타케히로를 상대로 역전 사요나라 2점 홈런을 쳤다.
1992년에 아라이 히로마사가 은퇴하면서, 야마모토 카즈노리가 복귀하는 1996년까지 팀의 최고령 선수가 되었다. 같은 해 계약 갱신에서 연봉이 13 증가한 105(추정)이 되면서, 긴테쓰 사상 최초의 일본인 1억 엔 플레이어가 되었다.
1993년에는 6년 만에 도루왕을 획득했고, 같은 타이틀의 최고령 기록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1994년 즈음부터 준 주전 선수가 되었고, "40세까지 현역과 2000안타 달성"을 목표로 내걸었다.
1997년 5월 15일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와의 경기(오사카 돔)에서 8회 무사 1루 상황에서 와카이 모토야스의 중전 안타성 타구를 쫓아가 1루로 악송구하여 위기를 키웠지만, 4-4 동점인 9회 1사 2루 타석에서 호세 누네스를 상대로 사요나라 2점 홈런을 날렸다. 같은 해 여름부터 사사키 쿄스케 감독의 기용이 급감했고, 9월에는 구단으로부터 은퇴 권유를 받았다. 구단의 태도를 받아들여 같은 달 20일에 현역에서 은퇴했다. 은퇴 경기는 다음 해 1998년 3월 14일 오픈전(야쿠르트)에서 열렸다. 1번 타자, 2루수로 선발 출장하여 1회 말 이토 토모히토를 상대로 우전 안타를 쳤다. 원래는 거기서 교체될 예정이었지만, 팬들의 "달려!"라는 콜에 응해 도루를 시도했지만, 상대 포수 후루타 아쓰야의 송구에 아웃되었다. 1회 말 종료 후, 선수단 전체가 헹가래를 했다.
3. 지도자 경력
오이시 다이지로는 여러 팀에서 지도자 경력을 쌓았다.
2008년, 오릭스 버펄로스 감독 대행으로 부임하면서 선발 투수의 투구 수 제한을 없애고 젊은 선수들을 적극 기용하는 등 팀에 변화를 가져왔다. 터피 로즈, 알렉스 카브레라 등 베테랑 선수들에게는 자율적인 조정을 허용하여 좋은 성적을 이끌어냈다. 그 결과, 팀은 리그 2위를 기록하며 클라이맥스 시리즈에 진출했다. 하지만 2009년에는 팀 성적 부진으로 해임되었다.
2009년 11월 25일,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의 수석 코치로 취임했다. 아키야마 고지 감독은 오이시의 감독 경험을 높이 평가하며 신뢰를 보냈다. 2010년, 소프트뱅크는 압도적인 도루 수(148개)를 기록하며 7년 만에 리그 우승을 달성했고, 2011년에는 리그 2연패 및 일본 시리즈 우승에 기여했다. 2013년 시즌을 끝으로 퇴단했다.
이후 간사이 TV, J 스포츠 해설자, 닛칸 스포츠 평론가로 활동했다. 2015년 1월부터는 시즈오카현 시즈오카시에서 장애인 복지 사업소를 운영하며 키친 카를 활용하는 등 사회 공헌 활동도 이어가고 있다.
3.1. 오사카 긴테쓰 버펄로스 / 오릭스 버펄로스 (2003년 ~ 2009년)
2003년 친정팀 긴테쓰의 1군 수비·주루 코치로 부임했다. 2005년 긴테쓰와 오릭스의 합병으로 오릭스 버펄로스의 2군 코치를 맡게 되었고, 2군 감독 대행을 거쳐 2006년에는 2군 감독으로 정식 취임했다.
2008년 시즌 중 테리 콜린스 감독의 사임으로 1군 감독 대행을 맡게 되었다. 감독 대행 부임 후, 선발 투수의 100구 제한 철폐, 휴일이나 이른 아침 연습 권장 등 기존 팀 방침을 바꾸고 2군 시찰도 적극적으로 실시했다. 오제 히로유키, 모리야마 마코토 등을 1군으로 승격시키고 가지모토 다쓰야를 지배하 선수로 등록하는 등 젊은 선수들을 적극적으로 발굴하고 세심하게 지도했다. 한편, 터피 로즈, 알렉스 카브레라 등 베테랑 선수들에게는 실적을 존중하여 자율적인 조정을 인정했고, 그 결과 두 선수는 76홈런, 222타점을 합작하며 기대에 부응했다. 또한, 그 해를 마지막으로 은퇴한 기요하라 가즈히로에게는 큰 점수 차에서 기용하지 않는 등 배려하는 모습을 보였다.
감독 대행 시절, 팀은 7월 하순에 자력 1위 달성은 사라졌지만, 8월 2일에 감독으로 승격되었다. 구 오사카 긴테쓰 버펄로스 OB로서는 처음으로 오릭스 버펄로스의 감독이 된 것이었고, 이듬해인 2009년에도 계속해서 지휘를 맡게 되었다. 팀은 9월 상순에 2위로 급부상하여 그대로 정규 시즌을 마쳤고, 클라이맥스 시리즈 진출을 확정지었다. 클라이맥스 시리즈 제1 스테이지에서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스와 맞붙었는데, 그해 15승을 기록한 고마쓰 사토시를 1차전이 아닌 2차전에 선발 등판시키는 작전을 취했으나 실책과 불운의 타구가 겹치면서 패했다. 오이시는 1차전에 곤도 가즈키를 선발로 내보낸 것에 대해 “후회는 없지만 투수 교체를 좀 더 빨리 했어야만 했다”라고 말했다.
2008년 추계 스프링 캠프에서는 이전 팀 동료였던 노모 히데오를 임시 투수 코치로 초빙했고, 2009년에는 전년도부터 기요카와 에이지, 아카호리 모토유키 외에도 현역 시절부터 오랫동안 함께 지냈던 사사키 오사무를 투수 수석 코치로 영입하여 ‘투수 코치 3인제’로 팀을 정비했다. 하지만 2009년 시즌에서 팀 평균 자책점은 12개 구단 가운데 최하위로 떨어졌고, 터피 로즈, 알렉스 카브레라, 그렉 라로카, 호세 페르난데스 등 4명의 외국인 선수들이 몸에 맞는 볼 등으로 인한 골절이나 장기 이탈하는 등 타선에서의 장타력도 부진을 겪었다. 결국 6월에 4승 14패, 승률 2할 2푼 2리의 저조한 성적을 기록하는 등 시즌 종료까지 다시 부활할 조짐을 보여주지 못한 채 2년 만에 최하위(6위)로 끝났고, 성적 부진에 대한 책임을 지고 구단본부장인 나카무라 가쓰히로(9월 30일부로)와 함께 해임되었다.
3.2.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2010년 ~ 2013년)
2010년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의 수석 코치로 부임하여 아키야마 고지 감독을 보좌했다. 소프트뱅크 코치 시절 팀의 2010년, 2011년 리그 우승과 2011년 일본 시리즈 우승에 기여했다.
3.3. 기타 경력
2016년 베이스볼 챌린지 리그 니가타 알비렉스 베이스볼 클럽의 야수 종합 코치를 맡았고, 2016년부터 2020년까지 사회인 야구팀 제이 프로젝트의 감독을 역임했다.
4. 해설자 경력
오이시 다이지로일본어는 은퇴 직후인 1998년부터 2002년까지, 그리고 2014년부터 현재까지 후지 TV, 간사이 테레비, 닛칸 스포츠 등에서 야구 해설가 및 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
5. 플레이 스타일
오이시 다이지로는 166cm의 작은 체구에도 불구하고 주루, 타격, 수비에서 뛰어난 능력을 보였다. 특히 빠른 발을 이용한 도루 능력이 돋보였으며, 통산 415개의 도루는 일본 프로 야구 역대 7위에 해당한다. '이테마에 타선'의 1번 타자로서 장타력도 갖추고 있어, 홈런을 의식하며 타석에 들어섰다고 한다.
수비에서는 같은 시기 퍼시픽 리그에서 2루수로 활약했던 쓰지 하쓰히코와 시라이 가즈유키에게 넓은 수비 범위와 정확한 송구를 인정받았다. 1982년부터 1984년까지 3년 연속 골든 글러브상을 수상했다. 타자마다 타구의 경향을 파악하고, 경기의 상황을 고려하여 수비 위치를 결정했으며, 노린 대로 잘 치는 타자의 경우에는 포수의 사인을 보고 투구 모션에 들어간 뒤에야 움직였다고 한다. 타구 예측에는 오랜 기간의 경험이 중요하며, 그 타구를 처리하는 좋은 이미지를 갖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경기 중에는 다른 내야수와 유기적인 협력을 위해 수비 위치를 세밀하게 조정하고, 2루 주자의 움직임을 관찰하여 견제 타이밍을 잡는 등, 2루수로서 항상 모든 상황을 예상하고 플레이했다.
5.1. 주루
오이시는 프로 통산 4차례 도루왕을 차지했으며, 특히 3루 도루 성공률이 매우 높았다. 그는 '발에는 슬럼프가 없다'는 통념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었으며, 투수의 버릇이나 컨디션에 따라 주루 플레이가 달라진다고 밝혔다.
5.2. 타격
오이시는 1번 타자로서 높은 출루율과 득점 찬스에서의 확실한 출루를 중시했다. 주요 타격 기록은 다음과 같다.
* 1982년: 타율 .274, 12홈런, 47도루를 기록하며 신인왕과 다이아몬드 글러브상을 수상했다. 계약 갱신에서는 약 164% 증가한 10(추정)에 사인했다.
* 1983년: 60도루로 도루왕 타이틀을 획득하며 후쿠모토 유타카의 연속 도루왕 기록을 13년 만에 깼다. 1번 타자, 2루수로 정착하며 2년 연속 다이아몬드 글러브상과 베스트 나인에 선정되었다. 계약 갱신에서는 100% 증가한 20(추정)에 사인했다.
* 1984년: 도루왕, 다이아몬드 글러브상, 베스트 나인을 수상하며 퍼시픽 리그를 대표하는 2루수로 성장했다. 1984년 올스타전 3차전에서는 에가와 스구루의 9연속 탈삼진 기록을 저지했다. 계약 갱신에서는 60% 증가한 32(추정)에 사인했다.
* 1986년: 한 경기 3홈런을 기록했다. 계약 갱신에서는 45% 증가한 52(추정)에 사인하며 긴테쓰 사상 최초의 일본인 야수 5천만 엔 플레이어가 되었다.
* 1987년: 니시무라 노리후미와 함께 41도루로 3번째 도루왕을 획득했지만, 타율은 .265로 하락했다. 계약 갱신에서는 현상 유지의 52(추정)에 사인했다.
* 1989년: 요미우리 자이언츠와의 일본 시리즈 1차전에서 사이토 마사키를 상대로 시리즈 사상 유일의 1차전 첫 타자 홈런을 날렸다.
* 1990년: 리그 2위인 타율 .314, 20홈런을 기록했다. 계약 갱신에서는 1,600만 엔 증가한 84(추정)에 사인했다.
* 1992년: 계약 갱신에서 연봉이 1,300만 엔 증가한 105(추정)이 되면서 긴테쓰 사상 최초의 일본인 1억 엔 플레이어가 되었다.
* 1993년: 6년 만에 도루왕을 획득했고, 해당 타이틀의 최고령 기록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 연도 | 기록 | 비고 |
|---|---|---|
| 1982년 | 타율 .274, 12홈런, 47도루 | 신인왕, 다이아몬드 글러브상 수상 |
| 1983년 | 60도루 | 도루왕, 베스트 나인, 다이아몬드 글러브상 수상 |
| 1984년 | 도루왕, 베스트 나인, 다이아몬드 글러브상 수상 | 올스타전 3차전에서 에가와 스구루의 9연속 탈삼진 저지 |
| 1986년 | 한 경기 3홈런 기록 | |
| 1987년 | 41도루 | 도루왕 |
| 1989년 | 일본 시리즈 1차전 첫 타자 홈런 | 시리즈 사상 유일 |
| 1990년 | 타율 .314, 20홈런 | |
| 1993년 | 도루왕 | 최고령 기록 |
5.3. 수비
같은 시기에 퍼시픽 리그에서 2루수로서 활약했던 쓰지 하쓰히코와 시라이 가즈유키는 오이시의 준족을 살린 넓은 수비 범위를 높이 평가했다. 오이시는 1982년부터 1984년까지 3년 연속 골든 글러브상을 수상했는데, 수비에서는 타자마다 타구의 경향을 파악하고 경기의 상황을 고려해서 수비 위치를 결정했다. 노린 대로 잘 치는 타자의 경우에는 예측이 어려워 포수의 사인을 보고 투구 모션에 들어간 뒤에야 움직였다고 한다. 타구 예측에는 오랜 기간의 경험이 매우 중요하고, 그 타구를 처리하는 좋은 이미지를 갖는 것을 소중히 했다고 한다.
경기 중 세밀하게 변하는 수비 위치는 다른 내야수에게 그때마다 알려서 서로의 수비나 송구를 원활하게 하는 것을 유의했다고 한다. 또한 2루 주자가 리드하고 있을 때 스타트하는 버릇을 관찰해서 2루에 견제를 한 번에 결정하기 위해 활용했다고 한다. 스타트를 늦추고 싶은 상황에서는 견제 혹은 그 사인을 반복했다고 한다.
2루수는 항상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상황을 가정해 두는 것이 특히 중요하다고 생각하며, 빈도가 매우 낮은 예로 주자 1루에서 번트가 낮은 플라이가 됐을 경우 노 바운드로 병살되기가 어려우면 원바운드로 1루에 송구하므로, 2루수는 1루를 밟기 전에 주자에게 터치하는 것을 미리 숙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6. 에피소드
현역 시절 응원가로 우주소년 아톰의 원곡이 사용되었다. 타석에 들어설 때면 "다이짱!" 콜이 세 번 울린 후 응원가가 흘러나왔다. 두 아들을 두고 있는데, 1990년생 장남은 경륜 선수를 목표로 했다.
차남 오이시 다카하루는 2012년 시코쿠 아일랜드 리그 플러스의 고치 파이팅 독스에 내야수로 입단, 2013년까지 2년간 뛰었다. 이후 프로 야구 선수를 은퇴하고 경륜 선수로 전향하여 2014년 12월 24일 일본 경륜학교(당시) 109회 입학 시험에 합격했다. 2016년 3월 졸업 후, 같은 해 7월 경륜 선수로 데뷔하여 2경기 만에 첫 승리를 거두었다.
잘생긴 외모로도 알려졌다.
7. 상세 정보
오이시 다이지로는 선수, 지도자, 해설자로서 다양한 경력을 쌓았다.
지도자 및 해설자 경력:
| 연도 | 구분 | 소속팀 | 직책 |
|---|---|---|---|
| 1998년 ~ 2002년 | 후지 TV, 간사이 TV, 닛칸 스포츠 | 야구 해설가, 야구 평론가 | |
| 2003년 ~ 2004년 | 오사카 긴테쓰 버펄로스 | 1군 수비·주루 코치 | |
| 2005년 | 서패스 | 종합 수석 코치·감독 대행 | |
| 2006년 | 서패스 | 감독 | |
| 2007년 | 오릭스 버펄로스 | 1군 수석 코치 | |
| 2008년 ~ 2009년 | 오릭스 버펄로스 | 감독 | |
| 2010년 ~ 2013년 |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 1군 수석 코치 | |
| 2014년 ~ | 간사이 TV, 닛칸 스포츠 | 야구 해설가, 야구 평론가 | |
| 2016년 | 니가타 알비렉스 베이스볼 클럽 | 야수 종합 코치 | |
| 2017년 ~ 2020년 | 제이 프로젝트 | 감독 |
수상 및 개인 기록:
* 도루왕: 4회 (1983년, 1984년, 1987년, 1993년)
* 올스타전 출장: 9회 (1982년 ~ 1984년, 1986년, 1987년, 1989년, 1990년, 1992년, 1993년)
기념비적인 기록:
| 기록 | 달성일 | 상대팀 | 구장 | 비고 |
|---|---|---|---|---|
| 1000안타 | 1989년 6월 7일 |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 | 헤이와다이 야구장 | 8회초 무라타 가쓰키에게서 달성, 역대 155번째 |
| 1000경기 출장 | 1989년 7월 16일 | 오릭스 브레이브스 | 한큐 니시노미야 스타디움 | 1번·2루수로 선발 출장, 역대 287번째 |
| 100홈런 | 1990년 4월 22일 | 세이부 라이온스 | 세이부 라이온스 구장 | 4회초 와타나베 히사노부에게서 선제 솔로 홈런, 역대 158번째 |
| 300도루 | 1991년 5월 19일 | 롯데 오리온즈 | 아키타시 야바세 운동 공원 경식 야구장 | 9회초 2루 도루(투수: 소노카와 가즈미, 포수: 아오야기 스스무), 역대 19번째 |
| 350도루 | 1993년 4월 11일 | 닛폰햄 파이터스 | 후지이데라 구장 | 연장 11회말 2루 도루(투수: 야마하라 가즈토시, 포수: 다무라 후지오), 역대 13번째 |
| 1500안타 | 1993년 6월 4일 |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 | 니혼 생명 구장 | 8회말 키무라 케이지에게서 좌전 안타, 역대 67번째 |
| 1500경기 출장 | 1993년 8월 1일 | 지바 롯데 마린스 | 지바 마린 스타디움 | 1번·2루수로 선발 출장, 역대 108번째 |
| 200번 희생타 | 1994년 4월 9일 | 세이부 라이온스 | 세이부 라이온스 구장 | 9회초 궈타이위안에게서 달성, 역대 12번째 |
| 1000득점 | 1994년 7월 16일 | 오릭스 블루웨이브 | 고베 종합 운동 공원 야구장 | 6회초 랄프 브라이언트의 적시타로 달성, 역대 26번째 |
| 400도루 | 1995년 8월 30일 | 닛폰햄 파이터스 | 도쿄 돔 | 9회초 2루 도루(투수: 니시무라 모토후미, 포수: 야마시타 가즈히코), 역대 7번째, 대졸 선수로서는 유일 |
첫 기록:
* 첫 출장: 1981년 4월 8일, 난카이 호크스전 (니세이 구장) 7회말 아리타 슈조 대주자
* 첫 도루: 1981년 4월 11일, 세이부 라이온즈전 (세이부 라이온즈 구장) 7회초 2루 도루
* 첫 안타: 1981년 4월 26일, 닛폰햄 파이터스전 (고라쿠엔 구장) 8회초 오카베 노리유키에게서 단타
* 첫 선발 출장: 1981년 7월 22일, 롯데 오리온즈전 (이시카와현립 야구장) 9번·2루수
* 첫 타점: 1982년 4월 12일, 롯데 오리온즈전 (니세이 구장) 2회말 오쿠에 히데유키에게서 적시타
* 첫 홈런: 1982년 5월 5일, 세이부 라이온즈전 (세이부 라이온즈 구장) 9회초 나가이 사토시에게서 솔로 홈런
등번호:
* 43 (1981년 ~ 1982년)
* 4 (1983년 ~ 1997년)
* 81 (2003년 ~ 2009년, 2016년)
* 80 (2010년 ~ 2013년)
등록명:
* 大石 大二郎일본어 (1981년 ~ 1987년 9월 14일, 1991년 ~ )
* 大石 第二朗일본어 (1987년 9월 15일 ~ 1990년)
7.1. 출신 학교
시즈오카 상업고등학교와 아시아 대학을 졸업했다.
| 학교 |
|---|
| 시즈오카 상업고 |
| 아시아 대학 |
시즈오카 상업고등학교 시절에는 1974년 여름 선수권에 출전했으며, 3학년 때 동급생으로 후에 프로가 되는 쿠보데라 유지가 유격수를 맡았고, 자신은 3번·3루수가 되었다. 그러나 한 학년 위 선배가 1월 말에 타교 학생과 싸움을 했다는 사실이 4월에 발각되어, 팀은 여름 현 대회에 출전할 수 없었다.
고등학교 졸업 후 경륜 선수가 될 것을 생각했지만, 아버지의 권유로 아시아 대학에 진학했다. 3학년 봄 리그전에서는 17도루를 기록하여 당시 도토 대학 리그 신기록을 수립했다. 대학 4년간 총 91경기 출장, 344타수 99안타, 타율.288, 4홈런, 25타점, 44도루를 기록했다. 또한, 베스트 나인에는 2번 선정되었다.
7.2. 선수 경력
오이시는 시즈오카현 시즈오카시에서 태어나 아시아 대학을 졸업하고 1980년 드래프트 회의에서 긴테쓰 버펄로스에 2순위로 지명되어 입단했다.
프로 1년 차인 1981년에는 주로 대주자나 수비 요원으로 출전했고, 77경기에 출전했지만 타석에는 19번밖에 들어서지 못했다.
1982년에는 시범 경기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어 주전 2루수가 되었고, 정규 시즌에서 타율 0.274, 12홈런, 47도루를 기록하며 신인왕과 다이아몬드 글러브상을 수상했다.
1983년에는 60개의 도루를 기록하며 도루왕 타이틀을 차지했고, 후쿠모토 유타카의 연속 도루왕 기록을 13년 만에 저지했다. 또한, 1983년부터 1번·2루수로 정착하여 2년 연속 다이아몬드 글러브상과 베스트 나인에 선정되었다.
1984년에도 도루왕, 다이아몬드 글러브상, 베스트 나인을 차지하며 퍼시픽 리그를 대표하는 2루수로 성장했다. 1984년 올스타전 3차전에서는 에가와 스구루의 9연속 탈삼진 기록을 저지하기도 했다.
프로 5년 차인 1985년에는 고등학교 시절 동료였던 구보데라 유지가 사망하여 장례식에서 조사를 낭독했다.
1987년에는 통산 세 번째 도루왕을 차지했지만, 오른쪽 어깨 통증이 발생했다. 이듬해 1988년에는 오른쪽 어깨 수술을 받았고, 10.19 더블헤더 이후 결혼식을 올렸다.
1989년에는 부상으로 출전 경기 수가 줄었지만, 팀의 리그 우승에 기여했다. 일본 시리즈 1차전에서는 사이토 마사키로부터 일본 시리즈 역사상 유일하게 1차전 첫 회 선두 타자 홈런을 기록했지만, 이후 타격 부진으로 일본 시리즈 최악의 기록인 21타수 연속 무안타를 기록하기도 했다.
1990년에는 리그 2위인 타율 0.314, 20홈런 등 좋은 성적을 기록했다. 1992년에는 긴테쓰 구단 역사상 처음으로 1억 엔 선수가 되었다.
1993년에는 6년 만에 도루왕을 획득하며 이 타이틀의 최고령 기록을 세웠다. 1994년부터는 준주전 선수가 되었고, 1997년 여름부터 출전 기회가 줄어들면서 그 해를 마지막으로 현역에서 은퇴했다.
오이시 다이지로의 연도별 타격 성적은 다음과 같다.
| 연도 | 소속팀 | 경기수 | 타수 | 안타 | 2루타 | 3루타 | 홈런 | 타점 | 도루 | 볼넷 | 사구 | 삼진 | 타율 |
|---|---|---|---|---|---|---|---|---|---|---|---|---|---|
| 1981 | 긴테쓰 | 77 | 19 | 6 | 0 | 0 | 0 | 0 | 11 | 0 | 0 | 4 | .316 |
| 1982 | 129 | 492 | 135 | 16 | 1 | 12 | 41 | 47 | 55 | 1 | 42 | .274 | |
| 1983 | 130 | 506 | 145 | 23 | 6 | 10 | 46 | 60 | 62 | 1 | 64 | .287 | |
| 1984 | 130 | 528 | 149 | 22 | 5 | 29 | 65 | 46 | 58 | 5 | 58 | .282 | |
| 1985 | 83 | 321 | 99 | 21 | 4 | 11 | 45 | 19 | 35 | 1 | 32 | .308 | |
| 1986 | 130 | 538 | 156 | 16 | 12 | 16 | 55 | 24 | 33 | 3 | 47 | .290 | |
| 1987 | 130 | 532 | 141 | 26 | 4 | 5 | 42 | 41 | 39 | 1 | 58 | .265 | |
| 1988 | 128 | 488 | 123 | 13 | 9 | 5 | 34 | 16 | 51 | 0 | 55 | .252 | |
| 1989 | 109 | 401 | 111 | 22 | 1 | 8 | 33 | 14 | 48 | 1 | 46 | .277 | |
| 1990 | 125 | 471 | 148 | 25 | 6 | 20 | 69 | 20 | 49 | 0 | 51 | .314 | |
| 1991 | 125 | 459 | 123 | 22 | 3 | 6 | 42 | 12 | 62 | 0 | 65 | .268 | |
| 1992 | 130 | 487 | 131 | 24 | 6 | 6 | 47 | 39 | 62 | 1 | 56 | .269 | |
| 1993 | 127 | 470 | 121 | 10 | 2 | 10 | 49 | 31 | 51 | 0 | 65 | .257 | |
| 1994 | 84 | 274 | 74 | 15 | 0 | 2 | 33 | 11 | 31 | 0 | 37 | .270 | |
| 1995 | 102 | 303 | 73 | 13 | 1 | 4 | 21 | 11 | 38 | 2 | 52 | .241 | |
| 1996 | 80 | 224 | 49 | 7 | 3 | 2 | 19 | 11 | 29 | 1 | 44 | .219 | |
| 1997 | 73 | 151 | 40 | 6 | 0 | 2 | 13 | 2 | 22 | 1 | 22 | .265 | |
| 통산: 17년 || 1892 || 6664 || 1824 || 281 || 63 || 148 || 654 || 415 || 725 || 18 || 798 || .274 | |||||||||||||
*각 연도의 굵은 글씨는 리그 최고
오이시 다이지로는 선수 시절 다음과 같은 타이틀 및 상을 수상했다.
* 도루왕: 4회 (1983년, 1984년, 1987년, 1993년)
* 신인왕 (1982년)
* 베스트 나인: 3회 (1983년, 1984년, 1990년)
* 다이아몬드 글러브상: 3회 (1982년 - 1984년)
* 올스타전 출장: 9회 (1982년 - 1984년, 1986년, 1987년, 1989년, 1990년, 1992년, 1993년)
7.3. 지도자 경력
오이시 다이지로는 감독 대행으로 부임하면서 기존 팀 방침을 완전히 바꾸어 선발 투수의 한 경기당 100개의 투구수 제한을 철폐하고, 휴일이나 이른 아침 연습을 권장했다. 또한 전임 감독이 하지 않았던 2군 시찰도 적극적으로 실시했다. 2군에서는 오제 히로유키, 모리야마 마코토 등을 승격시키고 가지모토 다쓰야를 지배하 선수로 등록시키는 등 젊은 선수들을 적극적으로 발굴하고 세심하게 지도했다. 한편, 터피 로즈, 알렉스 카브레라 등 베테랑 선수들에게는 실적을 존중하여 자주적인 조정을 인정했고, 그 결과 두 선수는 합계 76홈런, 222타점을 기록하며 맹활약했다. 기요하라 가즈히로에 대해서도 큰 점수 차가 나는 상황에서는 기용하지 않는 등 배려하는 모습을 보였다.
감독 취임 당시 승률이 저조하여 5위에 머물렀던 팀은 7월 하순 들어 자력 1위 달성은 사라졌지만, 8월 2일에 감독으로 승격되었다. 구 오사카 긴테쓰 버펄로스 OB로서는 처음으로 오릭스 버펄로스의 감독이 된 것이며, 이듬해인 2009년에도 계속해서 지휘를 맡을 것이라고 구단 측이 발표했다. 팀은 9월 상순에 2위로 급부상하여 그대로 정규 시즌을 마쳤고, 리그 2위를 기록하며 클라이맥스 시리즈 진출을 결정지었다. 클라이맥스 시리즈 제1 스테이지에서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스와 맞붙었는데, 그해 15승을 기록한 고마쓰 사토시를 1차전이 아닌 2차전에 선발 등판시키는 작전을 취했으나 실책과 불운한 타구가 겹치면서 팀은 패했다. 오이시는 1차전에 곤도 가즈키를 선발로 내보낸 것에 대해 “후회는 없지만 투수 교체를 좀 더 빨리 했어야만 했다”라고 말했다.
2008년 추계 스프링 캠프에서는 이전 팀 동료였던 노모 히데오를 임시 투수 코치로 초빙했고, 2009년에는 전년도부터 기요카와 에이지, 아카호리 모토유키 외에도 현역 시절부터 오랫동안 함께 지냈던 사사키 오사무를 투수 수석 코치로 영입하여 ‘투수 코치 3인제’로 팀을 정비했다. 하지만 2009년 시즌 팀 평균 자책점은 12개 구단 가운데 최하위로 떨어졌고, 터피 로즈, 알렉스 카브레라, 그렉 라로카, 호세 페르난데스 등 4명의 외국인 선수들의 몸에 맞는 볼 등으로 인한 골절이나 장기 이탈하는 등 타선의 장타력도 부진을 겪었다. 결국 6월에 4승 14패, 승률 2할 2푼 2리의 저조한 성적을 기록하는 등 시즌 종료까지 다시 부활할 조짐을 보여주지 못한 채 2년 만에 최하위(6위)로 끝났고, 성적 부진에 대한 책임을 지고 구단본부장인 나카무라 가쓰히로(9월 30일부로)와 함께 해임됐다.
2009년 11월 25일,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로부터 수석 코치를 맡아달라는 요청을 수락하여 코치 취임이 발표됐고, 이듬해 2010년부터 4년간 아키야마 고지 감독의 지휘 하에 코치를 맡아 2010년에는 12개 구단 가운데 최다 도루수(148)를 기록하며 팀의 7년 만에 리그 우승을 이끌었고, 2011년에는 리그 연패와 일본 시리즈 우승(본인으로서는 처음)에 기여했다. 2013년 시즌 끝으로 퇴단했다.
2014년부터는 다시 간사이 TV의 해설자(복수 계약으로 TV 니시닛폰의 해설자도 겸임), 2015년부터 J SPORTS도 겸임, 닛칸 스포츠(닛칸 스포츠 신문 서일본)의 평론가를 맡고 있다.
2016년 3월 12일, 베이스볼 챌린지 리그 팀인 니가타 알비렉스 베이스볼 클럽의 야수 종합 코치로 부임, 1년 간 맡았다. 다만, 상시 팀엔 대동하지 않는 비상근이었다.
2016년 12월, 아이치현 나고야시에 연고지를 두고 있는 사회인 야구팀 제이 프로젝트의 감독으로 부임했고 2020년 6월 30일부로 퇴임했다.
# 2008년은 5월 23일부터 테리 콜린스를 대신하여 지휘를 맡았다.
# 표 안의 이탤릭체는 시즌 통산 성적
7.4. 해설자 경력
* 후지 TV 야구 해설자 (1998년 ~ 2002년)
* 간사이 TV, 닛칸 스포츠 야구 해설자 (1998년 ~ 2002년, 2014년 ~ )
7.6. 개인 기록
* 도루왕: 4회(1983년, 1984년, 1987년, 1993년)
* 올스타전 출장: 9회(1982년 ~ 1984년, 1986년, 1987년, 1989년, 1990년, 1992년, 1993년)
; 기념비적인 기록
| 기록 | 달성일 | 상대팀 | 구장 | 비고 |
|---|---|---|---|---|
| 1000안타 | 1989년 6월 7일 |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 | 헤이와다이 야구장 | 8회초 무라타 가쓰키에게서 달성, 역대 155번째 |
| 1000경기 출장 | 1989년 7월 16일 | 오릭스 브레이브스 | 한큐 니시노미야 스타디움 | 1번·2루수로 선발 출장, 역대 287번째 |
| 100홈런 | 1990년 4월 22일 | 세이부 라이온스 | 세이부 라이온스 구장 | 4회초 와타나베 히사노부에게서 선제 솔로 홈런, 역대 158번째 |
| 300도루 | 1991년 5월 19일 | 롯데 오리온즈 | 아키타시 야바세 운동 공원 경식 야구장 | 9회초 2루 도루(투수: 소노카와 가즈미, 포수: 아오야기 스스무), 역대 19번째 |
| 350도루 | 1993년 4월 11일 | 닛폰햄 파이터스 | 후지이데라 구장 | 연장 11회말 2루 도루(투수: 야마하라 가즈토시, 포수: 다무라 후지오), 역대 13번째 |
| 1500안타 | 1993년 6월 4일 |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 | 니혼 생명 구장 | 8회말 키무라 케이지에게서 좌전 안타, 역대 67번째 |
| 1500경기 출장 | 1993년 8월 1일 | 지바 롯데 마린스 | 지바 마린 스타디움 | 1번·2루수로 선발 출장, 역대 108번째 |
| 200번 희생타 | 1994년 4월 9일 | 세이부 라이온스 | 세이부 라이온스 구장 | 9회초 궈타이위안에게서 달성, 역대 12번째 |
| 1000득점 | 1994년 7월 16일 | 오릭스 블루웨이브 | 고베 종합 운동 공원 야구장 | 6회초 랄프 브라이언트의 적시타로 달성, 역대 26번째 |
| 400도루 | 1995년 8월 30일 | 닛폰햄 파이터스 | 도쿄 돔 | 9회초 2루 도루(투수: 니시무라 모토후미, 포수: 야마시타 가즈히코), 역대 7번째, 대졸 선수로서는 유일 |
7.6.1. 첫 기록
* 첫 출장: 1981년 4월 8일, 난카이 호크스와의 경기(니혼 생명 구장)에서 7회말에 아리타 슈조의 대주자로 출장
* 첫 도루: 1981년 4월 11일, 세이부 라이온즈와의 경기(세이부 돔)에서 7회초에 2루 도루(투수: 마쓰누마 마사유키, 포수: 오이시 요시유키)
* 첫 안타: 1981년 4월 26일, 닛폰햄 파이터스와의 경기(고라쿠엔 구장)에서 8회초에 오카베 노리유키로부터 단타
* 첫 선발 출장: 1981년 7월 22일, 롯데 오리온즈와의 경기(이시카와현립 야구장)에서 9번·2루수로 선발 출장
* 첫 타점: 1982년 4월 12일, 롯데 오리온즈와의 경기(니혼 생명 구장)에서 2회말에 오쿠에 히데유키로부터 적시타
* 첫 홈런: 1982년 5월 5일, 세이부 라이온즈와의 경기(세이부 돔)에서 9회초에 나가이 사토시로부터 솔로 홈런
7.6.2. 기록 달성 경력
| 연도 | 소속팀 | 포지션 | 비고 |
|---|---|---|---|
| 1998년 ~ 2002년 | 후지 TV, 간사이 TV, 닛칸 스포츠 | 야구 해설가, 야구 평론가 | |
| 2003년 ~ 2004년 | 오사카 긴테쓰 버펄로스 | 1군 수비·주루 코치 | |
| 2005년 | 서패스 | 종합 수석 코치·감독 대행 | |
| 2006년 | 서패스 | 감독 | |
| 2007년 | 오릭스 버펄로스 | 1군 수석 코치 | |
| 2008년 ~ 2009년 | 오릭스 버펄로스 | 감독 | |
| 2010년 ~ 2013년 |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 1군 수석 코치 | |
| 2014년 ~ | 간사이 TV, 닛칸 스포츠 | 야구 해설가, 야구 평론가 | |
| 2016년 | 니가타 알비렉스 베이스볼 클럽 | 야수 종합 코치 | |
| 2017년 ~ 2020년 | 제이 프로젝트 | 감독 |
; 첫 기록
* 첫 출장: 1981년 4월 8일, 난카이 호크스전(니세이 구장), 7회말에 아리타 슈조의 대주자로 출장
* 첫 도루: 1981년 4월 11일, 세이부 라이온즈전(세이부 라이온즈 구장), 7회초에 2루 도루(투수: 마츠누마 마사유키, 포수: 오이시 요시유키)
* 첫 안타: 1981년 4월 26일, 닛폰햄 파이터스전(고라쿠엔 구장), 8회초에 오카베 노리유키로부터 단타
* 첫 선발 출장: 1981년 7월 22일, 롯데 오리온즈전(이시카와현립 야구장), 9번·2루수로 선발 출장
* 첫 타점: 1982년 4월 12일, 롯데 오리온즈전(니세이 구장), 2회말에 오쿠에 히데유키로부터 적시타
* 첫 홈런: 1982년 5월 5일, 세이부 라이온즈전(세이부 라이온즈 구장), 9회초에 나가이 사토시로부터 솔로 홈런
; 기념비적인 기록
* 통산 1000안타: 1989년 6월 7일,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전(헤이와다이 구장), 8회초에 무라타 가쓰요시로부터
* 통산 1000경기 출장: 1989년 7월 16일, 오릭스 브레이브스전(한큐 니시노미야 구장), 1번·2루수로 선발 출장
* 통산 100홈런: 1990년 4월 22일, 세이부 라이온스전(세이부 라이온스 구장), 4회초에 와타나베 히사노부로부터 선제 솔로 홈런
* 통산 300도루: 1991년 5월 19일, 롯데 오리온스전(아키타 시영 야바세 구장), 9회초에 2루 도루(투수: 소노카와 가즈미, 포수: 아오야기 스스무)
* 통산 350도루: 1993년 4월 11일, 닛폰햄 파이터스전(후지이데라 구장), 9회말에 2루 도루(투수: 야마하라 가즈토시, 포수: 다무라 후지오)
* 통산 1500안타: 1993년 6월 4일,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전(니혼 생명 구장), 8회말에 기무라 게이지로부터 좌전 안타
* 통산 1500경기 출장: 1993년 8월 1일, 지바 롯데 마린스전(지바 마린 스타디움), 1번·2루수로 선발 출장
* 통산 200희생타: 1994년 4월 9일, 세이부 라이온스전(세이부 라이온스 구장), 9회초에 궈타이위안으로부터
* 통산 1000득점: 1994년 7월 16일, 오릭스 블루웨이브전(그린 스타디움 고베), 6회초에 랄프 브라이언트의 적시타로 기록
* 통산 400도루: 1995년 8월 30일, 닛폰햄 파이터스전(도쿄 돔), 9회초에 2루 도루(투수: 니시무라 모토후미, 포수: 야마시타 가즈히코) (대졸 선수로서는 2023년 현재 유일)
; 기타 기록
* 올스타전 출장: 9회(1982년 ~ 1984년, 1986년, 1987년, 1989년, 1990년, 1992년, 1993년)
* 도루왕: 4회(1983년, 1984년, 1987년, 1993년)
7.6.3. 기타
은퇴 후 오이시 다이지로는 긴테쓰의 2군 코치직 제안을 고사하고, 간사이 TV와 후지 TV에서 야구 해설가, 닛칸 스포츠에서 야구 평론가(1998년 ~ 2002년)로 활동했다. 2003년부터는 긴테쓰 1군 수비·주루 코치로 복귀하여 슬라이딩 연습에 비디오를 도입하는 등 선수 지도에 힘썼다.
2005년 긴테쓰와 오릭스 합병 후에는 오릭스 2군 종합 수석 코치를 맡았고, 가토 히데지 감독의 요양으로 감독 대행을 맡기도 했다. 2006년에는 2군 감독으로 취임하여 전년도 최하위였던 팀을 상위권으로 이끌었다.
2007년부터는 오릭스 1군 수석 코치를 맡았고, 2008년에는 내야 수비·주루 코치도 겸임했다. 2008년 5월 21일 테리 콜린스 감독의 사임으로 1군 감독 대행을 맡게 되었다.
선수 시절 기록으로는 통산 4회의 도루왕 타이틀(1983년, 1984년, 1987년, 1993년)을 획득했고, 올스타전에 9회(1982년 ~ 1984년, 1986년, 1987년, 1989년, 1990년, 1992년, 1993년) 출전했다.
다음은 오이시 다이지로의 주요 기록이다.
| 구분 | 내용 |
|---|---|
| 첫 출장 | 1981년 4월 8일, 난카이 호크스전 (7회말 아리타 슈조 대주자) |
| 첫 도루 | 1981년 4월 11일, 세이부 라이온즈전 (7회초 2루 도루) |
| 첫 안타 | 1981년 4월 26일, 닛폰햄 파이터스전 (8회초 오카베 노리유키에게서 단타) |
| 첫 선발 출장 | 1981년 7월 22일, 롯데 오리온즈전 (9번·2루수) |
| 첫 타점 | 1982년 4월 12일, 롯데 오리온즈전 (2회말 오쿠에 히데유키에게서 적시타) |
| 첫 홈런 | 1982년 5월 5일, 세이부 라이온즈전 (9회초 나가이 사토시에게서 솔로) |
| 1000안타 | 1989년 6월 7일,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전 (8회초 무라타 가츠키에게서) ※역대 155번째 |
| 1000경기 출장 | 1989년 7월 16일, 오릭스 브레이브스전 (1번·2루수) ※역대 287번째 |
| 100홈런 | 1990년 4월 22일, 세이부 라이온즈전 (4회초 와타나베 히사노부에게서 솔로) ※역대 158번째 |
| 300도루 | 1991년 5월 19일, 롯데 오리온즈전 (9회초 2루 도루) ※역대 19번째 |
| 350도루 | 1993년 4월 11일, 닛폰햄 파이터스전 (연장 11회말 2루 도루) ※역대 13번째 |
| 1500안타 | 1993년 6월 4일,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전 (8회말 키무라 케이지에게서 좌전 안타) ※역대 67번째 |
| 1500경기 출장 | 1993년 8월 1일, 지바 롯데 마린스전 (1번·2루수) ※역대 108번째 |
| 200번 희생타 | 1994년 4월 9일, 세이부 라이온즈전 (9회초 궈타이위안에게서) ※역대 12번째 |
| 1000득점 | 1994년 7월 16일, 오릭스 블루웨이브전 (6회초 랄프 브라이언트 적시타) ※역대 26번째 |
| 400도루 | 1995년 8월 30일, 닛폰햄 파이터스전 (9회초 2루 도루) ※역대 7번째, 대졸 선수로서는 유일 |
7.7. 등번호
* 43(1981년 ~ 1982년)
* 4(1983년 ~ 1997년)
* 81(2003년 ~ 2009년, 2016년)
* 80(2010년 ~ 2013년)
7.8. 등록명
大石 大二郎일본어 (1981년 ~ 1987년 9월 14일, 1991년 ~ )
大石 第二朗일본어 (1987년 9월 15일 ~ 1990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