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치카와 야스오
1. 개요
이치카와 야스오는 일본의 정치인으로, 이시카와현에서 태어나 농림수산성 관료로 근무하다가 정치에 입문했다. 자유민주당, 신생당, 신진당, 자유당, 민주당 등을 거치며 중의원 의원과 참의원 의원을 역임했으며, 2011년에는 노다 요시히코 내각에서 방위대신을 지냈다. 방위대신 재직 당시 부적절한 발언으로 논란을 빚어 경질되었으며, 2013년 참의원 선거에서 낙선한 후 정계를 은퇴했다.
| 이름 | 이치카와 야스오 |
|---|---|
| 본명 | 이치카와 야스오 (一川 保夫) |
| 출생일 | 1942년 2월 6일 |
| 출생지 | 일본 이시카와현 고마쓰시 |
| 학력 | 미에 대학 농학부 |
| 직업 | 정치인 |
| 정당 | 입헌민주당 (2022–현재) |
| 이전 정당 | 자유민주당 (1976–1993) 신생당 (1993–1994) 신진당 (1994–1997) 자유당 (1998–2003) 민주당 (2003–2017) |
| 국가 | 일본 |
| 전직 | 국가공무원 (농림수산성) |
|---|---|
| 친족 (정치인) | 이치카와 야스마사 (아버지) 이치카와 마사유키 (아들) |
| 학위 | 학사 (농학, 미에 대학, 1965년) |
| 훈장 | 욱일중광장 |
| 직책 | 제9대 방위대신 |
|---|---|
| 내각 | 노다 내각 |
| 임기 시작 | 2011년 9월 2일 |
| 임기 종료 | 2012년 1월 13일 |
| 직책2 | 참의원 의원 |
| 선거구2 | 이시카와현 선거구 |
| 당선 횟수2 | 1회 |
| 임기 시작2 | 2007년 7월 29일 |
| 임기 종료2 | 2013년 7월 28일 |
| 직책3 | 중의원 의원 |
| 선거구3 | 비례 호쿠리쿠 신에쓰 블록 (이시카와 2구) |
| 당선 횟수3 | 3회 |
| 임기 시작3 | 1996년 10월 25일 |
| 임기 종료3 | 2005년 8월 8일 |
| 직책4 | 이시카와현 의회 의원 |
| 선거구4 | 고마쓰시 선거구 |
| 당선 횟수4 | 2회 |
| 임기 시작4 | 1991년 4월 30일 |
| 임기 종료4 | 1996년 10월 1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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욱일중광장 수훈자 -
다이호 고키
다이호 고키는 우크라이나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21세에 최연소 요코즈나에 등극, 마쿠우치 32회 우승 및 45연승 등의 압도적인 기록을 세우며 "쇼와 시대의 다이요코즈나" 칭호를 얻고 국민영예상을 추서받은 전설적인 스모 선수이다. -
욱일중광장 수훈자 -
이치카와 곤
이치카와 곤은 일본의 영화감독으로, 애니메이터로 시작하여 다양한 장르의 영화를 만들었으며, 특히 《버마의 하프》, 《들불》, 《도쿄 올림픽》, 《이누가미 일족》 등의 작품으로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고, 아내 와다 나토와의 협업과 "이치카와 터치"로 불리는 독특한 영상 스타일을 확립했다. -
세습 정치인 -
정진석 (정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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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습 정치인 -
글로리아 마카파갈 아로요
글로리아 마카파갈 아로요는 필리핀의 정치인으로, 대통령을 역임했으며, 필리핀 대학교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1992년 상원의원에 당선되었으며, 1998년 부통령에 당선되어 2001년 에드사 혁명으로 대통령직을 승계했고, 2004년 재선에 성공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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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우토카
라우토카는 피지 비치레부섬 서부에 위치한 피지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이자 서부 지방의 행정 중심지로, 사탕수수 산업이 발달하여 "설탕 도시"로 알려져 있으며, 인도에서 온 계약 노동자들의 거주와 미 해군 기지 건설의 역사를 가지고 있고, 피지 산업 생산의 상당 부분을 담당하는 주요 기관들이 위치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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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코넛
코코넛은 코코넛 야자나무의 열매로 식용 및 유지로 사용되며, 조리되지 않은 과육은 100g당 354kcal의 열량을 내는 다양한 영양 성분으로 구성되어 있고, 코코넛 파우더의 식이섬유는 대부분 불용성 식이섬유인 셀룰로오스이며, 태국 일부 지역에서는 코코넛 수확에 훈련된 원숭이를 이용하는 동물 학대 문제가 있다.
2. 생애
이시카와현 고마츠시 출신으로 미에 대학을 졸업하고 1965년부터 1990년까지 일본 농림수산성에서 근무했다. 1991년부터 이시카와현 의회 의원으로 활동하다가 1996년 신진당 소속으로 일본 중의원에 당선되었다. 자유민주당 모리 요시로에게 이시카와현 제2구에서 네 번 연속 패배했고, 2005년에는 비례대표 의석도 잃었다. 2007년 일본 참의원에 처음 당선되었으며, 2011년 노다 요시히코 내각에서 방위대신으로 임명되었다.
2011년 12월, 1995년 오키나와 미군 성폭행 사건에 대한 발언으로 논란이 되어 자유민주당으로부터 불신임 결의안 대상이 되었다. 결국 2012년 1월 13일 개각에서 다나카 나오키로 교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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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농림수산성 관료 시절
1965년 농림성(현 농림수산성)에 입성하여 25년간 근무했다. 1977년 5월 호쿠리쿠 농정국 히미 농업 수리 사업소 공사 과장을 시작으로, 호쿠리쿠 농정국 건설부 수리과 과장 보좌(1979년 4월), 구조개선국 총무과 과장 보좌(수자원 개발 공단 총무반 담당)(1980년 10월), 구조개선국 건설부 정비과 과장 보좌(구획 정비 제2반)(1983년 4월)를 역임했다. 이후 호쿠리쿠 농정국 건설부 설계과장(1985년 4월) 및 차장(1986년 4월)을 거쳐, 수자원 개발 공단 기획부 차장(1987년 10월)을 역임했다. 1989년 4월에는 구조개선국 건설부 방재과 재해 대책 실장을 맡았으며, 1990년에 농림수산성을 퇴직했다.
2.3. 정치 입문
1991년 4월 아버지 이치카와 야스마사의 뒤를 이어 이시카와현 의회 의원 선거에 자유민주당 공천으로 출마하여 첫 당선되었다. 이시카와현 의회에서는 이시카와현 선출의 오쿠다 게이와 계열에 속했다. 1993년 6월 오쿠다가 자민당을 탈당함에 따라 이치카와는 이시카와현 의회의 동료 의원인 가네하라 히로시, 우노 구니오 등과 함께 자민당을 탈당하여 신생당 결성에 참여했다. 이듬해 1994년 12월 신생당이 해산되면서 신진당 결성에 참여했다.
1996년 10월 오쿠다의 추천으로 이시카와현 의원을 사임하고, 제41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 이시카와 2구에서 신진당 공천으로 출마했다. 이시카와 2구에서는 모리 요시로에게 패했지만, 중복 입후보했던 비례 호쿠리쿠 신에쓰 블록에서 부활하여 첫 당선되었다. 중의원 선거 후 오쿠다가 후견 역할을 맡았던 하타 쓰토무와 신진당 당수인 오자와 이치로의 대립이 격화되었다. 하타와 오쿠다 등은 신진당을 탈당하여 태양당을 결성했지만, 이치카와는 신진당에 잔류하여 이후 오자와의 측근으로 행동을 함께 했다.
1997년 12월 오자와 당수가 갑자기 신진당 해산을 선언하고, 자유당 결성에 참여했다.
2.4. 중의원 의원 시절
1996년 10월, 오쿠다 게이와의 추천으로 이시카와현 의회 의원을 사임하고, 제41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 이시카와 2구에서 신진당 공천으로 출마했다. 이시카와 2구에서는 모리 요시로에게 패했지만, 중복 입후보했던 비례 호쿠리쿠 신에쓰 블록에서 부활하여 첫 당선되었다. 중의원 선거 후 오쿠다가 후견 역할을 맡는 하타 쓰토무와 신진당 당수인 오자와 이치로의 대립이 격화되자, 하타와 오쿠다 등은 신진당을 탈당하여 태양당을 결성했지만, 이치카와는 신진당에 잔류하여 이후 오자와의 측근으로 행동을 함께 했다.
1997년 12월, 오자와 당수가 갑자기 신진당 해산을 선언하고 자유당 결당에 참여했다. 1998년 7월 제18회 참의원 의원 통상 선거에서는 이시카와현 선거구에서 민주·자유·사민·사키가케의 4당 추천을 받은 이와모토 소타가 현직 구쓰카케 테쓰오를 꺾고 당선되었다. 참의원 선거 후 오쿠다가 사망하자, 보궐 선거에 오쿠다 게이와의 장남 오쿠다 겐을 옹립하여 당선시키고, 이시카와현의 비자민 세력의 중심 인물이 되었다. 2003년 9월, 민유 합당으로 민주당에 입당했다.
2005년 9월 제44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는 이시카와 2구에서 모리에게 패배하여 비례 부활도 하지 못하고 낙선했지만, 이시카와현 연합 대표 직은 유지했다.
1996년 중의원 의원에 첫 당선된 이후 3선 연속 당선되었다.
2.5. 참의원 의원 시절
2007년 제21회 참의원 의원 통상 선거에 이시카와현 선거구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하여, 자민당 공천의 야다 토미로를 약 4천 표 차이로 꺾고 처음으로 당선되었다. 당초 이시카와현 연합은 다른 후보자 옹립을 모색했지만 실패로 끝나, 현 연합 대표인 이치카와가 옹립되었다.
2010년 9월, 코시이시 아즈마 참의원 의원 회장 아래에서 참의원 정책 심의 회장에 취임했다.
2011년 9월 노다 내각에서 방위대신으로 임명되어 첫 입각했지만, 취임 직후부터 여러 실언과 논란으로 인해 자질 문제가 불거졌다. (방위대신으로서 참조) 결국 2012년 1월 13일 내각 개조로 재임 4개월 만에 경질되었다.
2012년 1월 24일, 참의원 의원 총회에서 코시이시 아즈마 간사장의 제안으로 이치카와가 참의원 간사장에 기용되는 것이 승인되었다. 4월 23일에는 간부 회의에서 소비세 증세 법안 각의 결정에 항의하여 사표를 제출한 스즈키 가쓰마사 간사장 대리의 후임으로 결정되어(참의원 간사장과 겸임), 코시이시와 오자와 이치로의 연결고리 역할을 맡게 되었지만, 7월의 오자와에 의한 국민의 생활이 제일 결당은 막을 수 없었다.
2013년 7월 제23회 참의원 의원 통상 선거에서는 사회민주당 현 연합과 정책 협정을 맺어 지지를 받았지만, 자민당 신인 야마다 슈로에게 3배 가까운 큰 표 차이로 패배하여 낙선했다.
2.6. 정계 은퇴 이후
2014년 4월, 욱일중광장을 수훈받았다. 같은 해 12월, 제47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비례 호쿠리쿠 신에쓰 블록에 입후보했지만 낙선했다.
2022년 현재 입헌민주당 이시카와현 연합 고문을 맡고 있다.
3. 정책 및 주장
* 2001년 10월 구상 일본 설문조사에서 집단적 자위권 행사는 현행 헌법으로도 가능하며, 헌법 해석을 변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2003년 8월, 시즈오카 공항 건설 반대 국회의원 서명 활동에 서명자로 참여했다.
* 2008년 1월, 재일 한국인 등에게 참정권을 부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재일 한국인을 비롯한 영주 외국인 주민의 법적 지위 향상을 추진하는 의원 연맹」에 참가했다.
* 2013년 4월 30일, 헌법 96조의 개정에 대해 "(개정파는) 극히 제한적인 의견이다. 개정 반대 방향으로 정리하는 것이 민주당답다"라고 말하며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4. 논란 및 비판
이치카와 야스오는 방위대신 재임 시절 여러 발언과 행동으로 논란을 빚었다. 특히 1995년 오키나와 미군 성폭행 사건을 "소녀 '윤간' 사건"이라고 표현하는 등 부적절한 발언으로 오키나와 주민들의 강한 반발을 샀고, 결국 경질되는 주요 원인이 되었다.
방위대신 취임 직후에는 "안보에 관해서는 문외한이지만, 이것이 진정한 시빌리언 컨트롤(문민 통제)이다"라고 발언하여 논란이 되었다. 후텐마 비행장 이전 문제와 관련해서는 오키나와 방문 시 "고마쓰 기지를 안고 있으며, 자치체의 고충을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라고 발언하여 미군 기지와 자위대 기지의 차이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2011년 11월에는 국빈으로 방일 중인 부탄 국왕 부부 환영 만찬에 불참하고 정치자금 파티에 참석, "부탄 국왕이 와서 궁중에서 행사가 있지만, 나는 이쪽이 더 중요하다"라고 발언하여 외교적 결례라는 비판을 받았다.
이 외에도 2010년 타운 미팅에서 유권자에게 "민주당을 지원받지 않아도 괜찮다"라고 발언하거나, 제23회 참의원 의원 통상 선거 낙선 후 "민주당은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았다", "자민당만으로 괜찮은가"라고 발언하는 등 여러 논란성 발언을 했다.
이러한 논란들로 인해 2011년 12월 9일 참의원에서 문책 결의안이 가결되었고, 2012년 1월 내각 개조로 방위대신에서 경질되었다.
4.1. 방위대신 시절 언행
; "안보에 관해서는 문외한이지만, 이것이 진정한 시빌리언 컨트롤이다"
: 2011년 9월 2일, 방위대신 인증식 전, 기자단의 취재에 "안보에 관해서는 문외한이지만, 이것이 진정한 시빌리언 컨트롤(문민 통제)이다"라고 말했다. 이 발언에 대해, 전 방위상이었던 자유민주당(자민당)의 이시바 시게루 정조회장은 "각료 해임에 해당한다. 임명한 노다 요시히코총리의 견식도 묻는다"고 비판하며, 국회에서 추궁할 생각을 나타냈다。 같은 날 밤, 기자단에게 수상관저 내에서 "대부분의 국민은 (안보 정책은) 문외한이다. 일반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의원이 감시하는 것이 시빌리언 컨트롤이라고 생각한다. 국민의 시선으로, 국민이 안심할 수 있는 정책이 중요하다(는 의미로 발언했다)"라고 변명했다。
; "고마츠 기지를 안고 있으며, 자치체의 고충을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 2011년 10월 17일, 오키나와현청에서 나카이마 히로카즈 지사와 회담하여, 후텐마 비행장을 나고시헤노코로 이전하기 위한 환경 영향 평가서를 연내에 동현에 제출할 의향을 전달했다。 그 회담 중, "(현지 이시카와현에 자위대) 고마쓰 기지를 안고 있으며, 자치체의 고충을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발언했다. 이후 나카이마 지사는 다케우치 하루히사 오키나와 담당 대사의 취임 인사를 받았을 때 "자위대 기지와 미군 기지는 전혀 다르다"고 말하며, "일본 측의 통제가 전혀 미치지 않는 미군 기지가 오키나와현에 다수 존재한다"는 점을 정부에 전달하도록 주문했다。
; "부탄 국왕이 와서 궁중에서 행사가 있지만, 나는 이쪽이 더 중요하다"
: 2011년 11월 16일, 국빈으로 방일 중인 부탄 국왕 지그메 케사르 남게얼 왕축 부부 환영 만찬에 불참하고, 일본·부탄 친선 의원 연맹 부회장을 맡고 있는 다카하시 치아키 민주당 의원의 정치자금 파티에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부탄 국왕이 와서 궁중에서 행사가 있지만, 나는 이쪽이 더 중요하다"라고 연설했다. 다음날 참의원예산위원회에서 "경솔했다. 죄송하게 생각하며, 반성하고 있다"고 사과했지만, 시이 가즈오일본 공산당 위원장는 "국빈 외교 행사에서, 그런 대응은 각료로서 큰 문제"라고 비판했다。 야마구치 나쓰오공명당 대표도 "상식 밖이며 각료의 자질이 결여되어 있다"고 비판했다。 11월 22일 이치카와 대신은 도쿄에 있는 부탄 총영사관을 방문하여 사과했다。
; "정확한 내용을 자세히 알지 못한다", "소녀 '윤간' 사건"
: 2011년 12월 1일 참의원 동일본 대지진 부흥 특별위원회에서, 자민당 사토 마사히사로부터 미국군후텐마 비행장 반환 운동의 시발점이 된 1995년 미국 해병대원들에 의한 오키나와 미군 소녀 폭행 사건에 대해 질문을 받고, "정확한 내용을 자세히 알지 못한다"라고 답변했다。 다음날 오전 기자회견에서 오키나와 미군 소녀 폭행 사건을 소녀 "윤간" 사건이라고 발언했다. 즉석에서 정정은 없었고, 회견 후 방위성 홍보를 통해 정정을 요청했다. 위 발언 및 전 오키나와 방위국장의 부적절한 발언에 의한 경질을 포함, 나카이마 오키나와현 지사에게 사과했지만 강한 불쾌감을 나타내 회견은 짧게 종료되었다。
; "내각 내 불일치로 비칠 수 있는 느낌을 받았다. 신중하게 대응하는 편이 좋다."
: 2012년 2월 28일, 중가와 마사하루 내각부 특명 담당 대신이 교부 국채 철회에 언급하면서 내각 내 불일치를 야당으로부터 지적받았을 때의 정례 기자 회견에서 한 말。
; "민주당은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았다", "자민당만으로 괜찮은가"
: 제23회 참의원 의원 통상 선거에서 낙선했을 때, 후지 텔레비전 계열 정보 프로그램 『토쿠다네!』의 인터뷰에서 "민주당은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았다. 자민당 정권의 어디가 좋은가?"라고 말했으며, 보도진에게는 "자민당만으로 괜찮은가. 유권자의 판단 기준을 모르겠다", "이제 유권자가 마이너스를 실감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4.2. 오키나와 미군 성폭행 사건 관련 발언
1995년 오키나와 미군 성폭행 사건에 대해 "정확한 내용을 자세히 알지 못한다"라고 답변하고, 해당 사건을 "소녀 '윤간' 사건"이라고 표현하여 큰 비판을 받았다. 이 발언은 오키나와 주민들의 반발을 샀으며, 이치카와 방위대신 경질의 주요 원인 중 하나가 되었다.
4.3. 기타 발언
; "민주당을 지원받지 않아도 괜찮다"
: 2010년 4월 24일, 이시카와현 고마쓰시 하야시마치에서 열린 타운 미팅에서 유권자와 의견을 교환하던 중, 참가자들이 아동 수당 도입으로 배우자 공제가 없어지는 것에 대한 불안감을 표출하자, 이치카와는 "(그렇게 말한다면) 민주당을 지원받지 않아도 괜찮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로 인해 회장 분위기가 얼어붙었다고 요미우리 신문이 보도했다.
; "민주당은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았다", "자민당만으로 괜찮은가"
: 제23회 참의원 의원 통상 선거에서 낙선했을 때, 후지 텔레비전 계열 정보 프로그램 『토쿠다네!』와의 인터뷰에서 "민주당은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았다. 자민당 정권의 어디가 좋은가?"라고 말했다. 또한 보도진에게는 "자민당만으로 괜찮은가. 유권자의 판단 기준을 모르겠다", "이제 유권자가 마이너스를 실감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5. 소속 정당 및 단체
| 소속 정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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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속 단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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