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텐마 기지 이전 문제
1. 개요
후텐마 기지 이전 문제는 1995년 오키나와 미군 소녀 성폭행 사건을 계기로 제기되어, 미·일 양국 간의 주요 현안으로 부상했다. 오키나와 주둔 미군 기지의 75%가 오키나와에 위치하고, 지역 주민들의 반대가 심화되면서, 기지 이전 부지를 놓고 다양한 논의가 진행되었다. 헤노코 해안 매립을 포함한 여러 이전 후보지가 검토되었으나, 환경 문제, 지역 경제 문제, 정치적 문제 등 복잡한 쟁점들이 얽혀 해결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 최근에는 괌으로의 해병대 이전 및 오키나와 내 기지 통합 계획 등이 논의되었으나, 여전히 많은 과제를 안고 있다.
| 주제 | 후텐마 기지 이전 문제 |
|---|---|
| 위치 | 오키나와현 기노완시 |
| 기지 위치 | 기노완시 도심 |
|---|---|
| 위험성 | 주택, 학교 등 인구 밀집 지역 위치 항공기 사고 위험 |
| 1995년 | 오키나와 미군 소녀 강간 사건 발생, 기지 이전 요구 증가 |
|---|---|
| 1996년 | 일본 정부, 미국 정부 간 SACO 합의 통해 기지 이전 합의 |
| 이전 예정지 | 나고시 헤노코 연안 |
| 이전 방식 | 헤노코 연안 매립 방식 vs. 다른 지역 이전 요구 |
|---|---|
| 기지 존재 필요성 | 오키나와 현민의 미군 기지 축소 및 철수 요구 |
| 환경 문제 | 헤노코 연안 매립으로 인한 환경 파괴 우려 |
| 일본 정부 | 기지 이전 추진 |
|---|---|
| 오키나와 현 | 기지 이전 반대 다마키 데니 지사 |
| 미국 정부 | 일본 정부와의 합의 이행 요구 |
| 헤노코 이전 공사 진행 | 오키나와 현의 반대로 공사 중단과 재개 반복 |
|---|---|
| 법적 분쟁 | 일본 정부와 오키나와 현 간의 소송 진행 |
| 주민 투표 | 2019년 2월 실시 헤노코 이전 반대 여론 우세 |
| 관련 사건 | 2015년 미군 헬기 오키나와 해상 추락 사고 BBC 뉴스 기사 |
|---|---|
| 관련 소송 | 오키나와 현, 일본 정부 상대 소송 The Asian Nikkei 기사 |
| 최고재판소 판결 | 미국 기지 이전 찬성 판결 유지 Japan Today 기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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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고시 -
부세나 해중공원
부세나 해중공원은 오키나와현 나고시 기세의 부세나 리조트 내에 위치한 해양 관광 시설로, 해중전망탑과 글래스 바닥 보트 투어 등의 체험 시설을 통해 다양한 열대어와 산호초를 관찰할 수 있다. -
기노완시의 역사 -
2004년 오키나와 국제대학 미군 헬리콥터 추락 사고
2004년 오키나와 국제대학 미군 헬리콥터 추락 사고는 정비 불량으로 오키나와 국제대학 구내에 미국 해병대 헬리콥터가 추락한 사건으로, 미군의 현장 통제, 방사성 물질 검출 의혹, 소극적 정보 공개, 일미 지위 협정 문제점 등으로 반미 감정을 악화시키고 후텐마 비행장 이전 문제와 미군 기지 반환 운동을 촉발시켰다. -
나고시의 역사 -
구시촌 (오키나와현)
오키나와현 북부에 위치했던 구시촌은 과거 쿠시촌으로 개칭되고 히가시촌이 분촌되었으나, 오키나와 전투 후 미군 수용소와 캠프 슈와브 건설로 토지 수용 및 환경 오염 문제를 겪다 1970년 나고시에 합병되어 현재는 미군 기지 문제와 지역 경제 침체 등의 과제를 안고 있는 나고시의 일부 지역이다. -
나고시의 역사 -
나고정 (오키나와현)
나고정은 1673년 분리되어 오키나와 본섬 북부의 중심지로 발전했으며, 1924년 정으로 승격되었으나 1970년 주변 지역과 합병하여 나고시가 되면서 소멸되었다.
2. 배경
1995년 오키나와 미군 병사 소녀 폭행 사건과 2004년 오키나와 국제대학 미군 헬기 추락 사고는 오키나와 내에서 주일 미군 기지 반대 여론을 크게 불러일으켰다. 2006년 기준으로 오키나와현은 일본 전체 면적의 0.6%에 불과했지만, 주일 미군 기지의 75%가 집중되어 있었고, 미군 기지가 오키나와 본섬의 18%를 차지했다. 이는 오키나와 주민들에게 큰 부담으로 작용했다.
1995년 (헤이세이 7년) 오키나와 미군 병사 소녀 폭행 사건을 계기로 오키나와에서 미군 기지 반대 운동, 후텐마 기지 반환 요구, 기지 정리 축소 및 지위 협정 재검토를 요구하는 운동이 일어났다. 1996년 당시에는 5년에서 7년 이내 반환을 목표로 하였고, 1997년 (헤이세이 9년)에는 나고시헤노코 부근으로 이전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2004년 (헤이세이 16년)에 오키나와 국제대학 미군 헬기 추락 사건이 발생하면서, 지역의 기지 반환 요구는 더욱 거세졌다. 미국군은 세계 규모의 재편을 실시 중이었으며, 미일 정부는 후텐마 기지 이전을 기지 문제 해결과 연계하여 오키나와 본섬에 주둔하는 해병대 감축을 결정했다. 감축되는 해병대는 괌으로 이전하게 되었다. 2006년 (헤이세이 18년)에는 2014년 (헤이세이 26년)까지 대체 시설을 건설하고 이전한다는 계획이 결정되었다.
2009년 (헤이세이 21년), 일본에서는 하토야마 유키오 내각이 성립되었고, 이설안을 재검토하였다. 2010년 (헤이세이 22년)에는 현외 이설은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리고, 다시 헤노코의 캠프 슈와브로 이전하는 것으로 결정하였다.
당시 방위상 오노데라 이쓰노리는 산케이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기지 이전 이유에 대해 "약 1만 2000 세대가 인접한 후텐마 비행장의 위험성을 한시라도 빨리 제거해야 하기 때문이다."라고 발언했다.
3. 역사
미군정 및 미국 민정부 시기인 1960년대, 미국은 헤노코 만에 새로운 활주로를 건설하려는 계획을 비밀리에 수립했다. 미군은 "2개의 3,000미터 활주로, 대규모 군항 및 핵무기를 저장할 수 있는 통합 탄약 벙커를 갖춘 해상 매립 시설" 건설을 제안했다. 1967년 7월 20일, 오키나와가 미국의 통제에서 일본으로 반환되기 전, 합참의장 얼 휠러가 로버트 맥나마라 국방장관에게 계획 승인 메모를 보냈다.
이 계획은 지역 주민의 반대와 베트남 전쟁 종식에 따른 미군 병력 감축, 예산 제약 등으로 중단되었다.
2005년 10월, 미국과 일본 정부는 후텐마 비행장 이전 부지를 헤노코 앞바다에서 캠프 슈와브 해병 기지 지역으로 변경하기로 합의했다. 이는 깊은 바다에 활주로를 건설하는 것과 관련된 기술적인 어려움을 줄이기 위한 것이었다. 2004년 8월 오키나와 국제대학교에서 발생한 CH-53D 시 스탤리온 수송 헬리콥터 추락 사고는 이전 계획을 가속화했다.
캠프 슈와브를 관할하는 나고 시장은 2006년 4월 이전을 공식적으로 수락했다. 오키나와 주민 대다수는 기지 이전을 원했지만, 오키나와 북부의 선출된 시장들은 새로운 이전 계획을 수용했다.
2009년 민주당이 후텐마를 섬 밖으로 이전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으나, 하토야마 유키오 총리는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사임했다. 2010년 1월, 이나미네 스스무 나고 시장은 헤노코 이전 계획에 반대하며 후텐마를 오키나와 밖으로 이전할 것을 주장했다. 나고 시의회와 오키나와현 의회 역시 이전 계획에 반대했다.
2011년, 미국 상원 군사위원회는 후텐마 기지를 가데나 공군 기지로 이전하고, 가데나의 항공기를 괌의 앤더슨 공군 기지로 이전하는 계획을 요구했으나, 미국과 일본 정부는 기존 합의를 유지했다. 2012년 4월, 미국과 일본은 오키나와 주둔 해병대 수를 줄이는 계획에서 후텐마 기지 이전을 분리, 미 해병대 5,000명이 괌으로, 4,000명이 하와이나 호주 등 다른 태평양 지역으로 재배치될 예정이었다.
2013년 4월, 미국과 일본은 "오키나와 통합 계획"을 발표, MCAS 후텐마 전체 반환을 명시했다. 같은 해 12월, 오키나와현 지사 나카이마 히로카즈는 일본 정부의 헤노코 매립 제안을 승인했고, 2,000명 이상의 시민들이 항의 시위를 벌였다. 오키나와 현 의회는 나카이마의 사임을 요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오나가 타케시는 반 기지 공약을 내세워 2014년 11월 오키나와 현 지사 선거에서 승리, 2015년 3월 새로운 기지 건설 작업 중단을 명령했다. 2015년 10월 29일, 일본 중앙 정부는 나고시 헨코 해안 지역에 기지 건설을 시작했다.
2018년 12월 14일, 새로운 미군 활주로 건설을 위한 매립이 시작되었고, 데니 다마키 오키나와 지사는 미군 기지 이전 프로젝트에 맞서겠다는 결의를 보였다.
2019년 2월 24일, 매립 찬반 현민투표에서 유효 투표수의 71.74%가 반대했지만, 법적 구속력은 없었다. 2023년 9월 4일, 일본 최고재판소는 오키나와현 정부에 일본 정부의 계획을 승인하라고 명령했다.
3.1. 헤노코 만 계획 (1960년대 ~ 1997년)
미군정 및 미국 민정부 시기였던 1960년대, 미국은 헤노코 만에 새로운 활주로를 건설하려는 계획을 비밀리에 수립했다. 헤노코에 확장된 기지를 건설하는 것은 후텐마 비행장 문제의 "유일한 해결책"으로 언급되었다. 미군은 원래 "2개의 3,000미터 활주로, 대규모 군항 및 핵무기를 저장할 수 있는 통합 탄약 벙커를 갖춘 해상 매립 시설" 건설을 제안했다.
1967년 7월 20일, 오키나와가 미국의 통제에서 일본으로 반환되기 전, 합참의장 얼 휠러가 로버트 맥나마라 국방장관에게 보낸 계획 승인 메모가 40페이지 분량의 문서에 포함되어 있었다. 1966년 해군과 계약을 맺은 미국 회사가 제출한 기지 확장 관련 미 해군 시설 마스터 플랜은 260페이지 분량의 별도 보고서에서 공개되었다.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정부는 "일본의 안보는 상당 부분 미국의 상당한 군사적 태세 유지에 달려 있음을 일본 정부에 계속해서 강조해야 한다."
기지 확장 계획은 여러 이유로 중단되었다. 민간 소유 토지 강탈에 대한 지역 반대와 비판, 베트남 전쟁 종식에 따른 미군 병력 감축으로 인한 기지 필요성 감소 및 예산 제약 등이 그 이유였다.
3.2. 캠프 슈와브 계획 (2005년 ~ 2006년)
2005년 10월 26일, 미국과 일본 정부는 후텐마 비행장 이전 부지를 헤노코 앞바다의 암초 지역에서 기존 캠프 슈와브 해병 기지의 내륙 및 해안 지역으로 옮기기로 합의했다. 이는 이전에 계획했던 해상 시설에서 불과 수백 미터 떨어진 곳이었다. 이러한 변경은 깊은 바다의 암초 위에 활주로를 건설하는 것과 관련된 기술적인 어려움을 줄이기 위한 것이었다. 전문가들은 이전 암초 부지에 새로운 공군 기지를 건설하는 데 15년 이상이 걸리는 대신, 캠프 슈와브 계획을 통해 후텐마를 더 빨리 이전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이러한 계획은 CH-53D 시 스탤리온 수송 헬리콥터가 2004년 8월 오키나와 국제대학교 캠퍼스에서 기계적 문제로 沖国大米軍ヘリ墜落事件일본어한 사건으로 가속화되었다. 승무원 3명 모두 부상을 입었지만 민간인 부상자는 없었다.
캠프 슈와브를 관할하는 나고 시장은 2006년 4월 8일 누카가 방위 대신과 합의서에 서명하면서 이전을 공식적으로 수락했다. 시마부쿠로 시장은 나중에 오키나와 북부의 5개 주요 시장 전원과 합류했다. 비록 일부 오키나와 여론조사에서 오키나와 주민의 대다수가 기지가 현 밖으로 완전히 이전되기를 바란다는 것을 나타냈지만, 오키나와 북부의 선출된 시장 12명 전원이 새로운 이전 계획을 공개적으로 수락하여 오키나와 주민들 사이에서 다양한 상충된 의견을 드러냈다. 군사 시설과 관련 공공 사업 인프라가 섬의 경제에 도움이 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 환경 운동가, 그리고 이념적 근거 또는 뿌리 깊은 감정으로 미국의 군사 주둔에 반대하거나 비판적인 사람들이 있었다.
이전 계획은 2009년 민주당이 후텐마를 섬 밖으로 이전하겠다는 약속을 공약에 포함하면서 다시 전국적인 주목을 받았다. 선거에서 승리한 하토야마 유키오 총리는 약속을 지키기 어렵다는 것을 알고, 기지가 오키나와 밖으로 이전되지 않을 것이 확인된 후 불과 8개월 만에 사임했다. 2009년 오사카 지사 하시모토 토루는 기지의 기능을 오사카의 간사이 국제공항 (이는 인공 섬에 위치)으로 옮기는 것을 공개적으로 제안하면서, "오키나와의 기지 부담을 일본 전역에 더 균등하게 분산해야 한다"고 말했다.
2010년 1월 24일 선출되어 2013년 1월 19일에 재선된 나고 시장 이나미네 스스무는 헤노코 이전 계획에 반대하며 후텐마를 오키나와 밖으로 이전할 것을 주장했다. 나고 시의회는 이전 계획에 반대 투표를 했고, 오키나와현 의회 역시 총리에게 기지를 현 밖으로 이전해 달라고 공식적으로 요청했다. 2010년 5월 17일, 오키나와의 일본 반환 기념일에 약 17,000명의 오키나와 주민들이 항의 시위로 기지를 에워쌌다. 이는 이러한 행동이 다섯 번째로 일어난 것이었다.
3.3. 괌 및 오키나와 계획 (2011년 ~ 2012년)
2011년, 미국 상원 군사위원회 위원장과 간사는 후텐마 항공기 기지를 가데나 공군 기지로 이전하고, 가데나에 있는 현재 항공기를 괌의 앤더슨 공군 기지로 이전하는 대체 계획을 요구했다. 그러나 미국과 일본 정부는 이전 합의안을 유지했고, 2012년 초까지 후텐마 기지의 운명은 해결되지 않았다. 미국은 해병대의 항공 요소를 섬에 유지할 것을 주장했고, 오키나와현 정부와 나고시 정부는 기지를 섬 밖으로 이전하기를 원했다. 미국은 항공 요소가 해병대 항공 지상 임무 부대의 지상 및 물류 요소와 근접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당시 일본 정부는 대체 비행장을 오키나와 내에 유지하는 계획을 고수했다.
2012년 4월, 미국과 일본은 병력 재배치 협정에 따라 오키나와에 주둔하는 해병대 수를 줄이는 계획에서 후텐마 기지 이전을 분리했다. 새로운 미·일 협정에 따라, 미 해병대 5,000명이 괌으로, 4,000명이 하와이나 호주와 같은 다른 태평양 지역으로 재배치될 예정이며, 약 10,000명의 해병대가 오키나와에 남게 된다. 해병대 재배치 일정은 발표되지 않았지만, 워싱턴 포스트는 괌 및 기타 지역에 적합한 시설이 준비되는 즉시 미 해병대가 후텐마를 떠날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 이전에 8600가 소요될 것으로 예상되며, 괌으로의 이전과 괌, 티니안, 북마리아나 제도의 파간섬에 공동 훈련장을 개발하기 위한 일본의 3100 현금 지원이 포함되었다.
이 기간 동안 미국은 2012년 벨 보잉 V-22 오스프리 틸트로터 항공기를 후텐마에 배치하기 시작했으며, 이로 인해 오키나와의 해병대는 오스프리의 속도, 양력 및 항속 거리 증가를 통해 일본 전역과 아시아 태평양 지역 전체에서 훈련할 수 있게 되었다.
3.4. 오키나와 통합 계획 (2013년 ~ 2015년)
2013년 4월, 미국과 일본은 "오키나와 통합 계획"을 발표했다. 이 계획은 1996년 DPRI 계획과 2006년 SACO 계획의 연장선상에 있으며, 일본에 반환될 2500acre의 토지를 명시했다. 여기에는 "오키나와에 대체 시설이 제공"된 후 "일본 회계 연도 2022년 또는 그 이후"까지 MCAS 후텐마 전체를 반환하는 내용이 포함되었다. 원래 DPRI 계획의 일환으로, 2014년 7월 후텐마의 KC-130J '슈퍼 허큘리스' 공중 급유 수송 비행대는 일본 본토의 MCAS 이와쿠니로 이동했다. 이 계획에는 이전 계획과 마찬가지로 해병대 비행장 시설을 헤노코의 캠프 슈와브로 이전하는 내용도 포함되었다. 캠프 슈와브 내의 제안된 위치는 이전의 헤노코 만 제안 위치와 달리 잠재적인 시위대로부터 격리되어 있다.
2013년 12월, 오키나와현 지사 나카이마 히로카즈는 일본 정부가 헤노코에 새로운 군사 시설 건설을 허용하기 위한 매립 제안을 승인했다. 이는 미국으로부터 칭찬을 받았다. 이 결정은 도쿄가 오키나와의 경제 개발을 위해 348을 책정하고, 나카이마가 이전에 선거 운동에서 기지를 현 밖으로 완전히 이전하겠다고 약속한 지 이틀 만에 내려졌다. 2,000명 이상의 시민들이 현청 앞에서 즉각 항의 시위를 벌였고, 약 1,000명이 건물로 진입하여 연좌 농성을 벌였다. 나고 시의회 의장은 "지사가 한 일은 용서받을 수 없다. 반대하는 주민들은 이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도로를 막는 등 무력을 사용할 것이다."라고 응답했다. 오키나와 현 의회는 나카이마가 이전을 동의함으로써 선거 공약을 위반했다며, 나카이마의 사임을 요구하는 결의안을 24-21 표로 채택했다.
새로운 시설이 건설될 예정인 나고 시장 이나미네 스스무는 이 계획에 반대했고, 현재 시설이 위치한 기노완 시장 사키마 아츠시는 이 계획을 지지했다. 2014년 1월 나고 시장 선거에서 이나미네는 당선되었고, 이후 시에서 모든 매립 계획을 막겠다고 맹세했다. 그러나 중앙 정부는 계획을 계속 진행할 것이며, 당시 계획 승인 권한은 오키나와 지사에게 있다고 밝혔다. 이나미네의 주요 경쟁자였던 전 부시장 스에마츠 분신은 이 계획을 "후텐마가 제기하는 위험을 줄이는 중요한 단계"로 지지했다.
오나가 타케시는 반 기지 플랫폼을 내세워 2014년 11월 오키나와 현 지사 선거에서 승리했다. 그는 새로운 기지 건설에 필요한 매립 작업을 거부하겠다고 약속했다. 2015년 3월, 오나가는 새로운 기지 건설 작업을 중단하라고 명령했고, 2015년 8월, 일본 정부는 오키나와 관계자와의 대화가 계속되는 동안 건설 활동을 잠정적으로 중단하기로 합의했다.
3.5. 최근 상황 (2015년 ~ 현재)
2015년 10월 29일, 일본 중앙 정부는 오나가 타케시 지사가 '극도로 부당하다'고 주장하며 오키나와 주민들이 강력하게 반대했음에도 불구하고, 후텐마 비행장을 대체하기 위해 나고시 헨코 해안 지역에 기지 건설을 시작했다.
2014년 11월, 반(反)기지 공약을 내걸고 출마한 오나가 타케시가 오키나와현 지사로 당선되었다. 그의 전임자이자 지사 선거의 주요 경쟁자였던 나카이마 히로카즈 역시 이전 계획에 반대했었지만, 2014년 선거 11개월 전, 도쿄가 오키나와의 경제 개발에 348을 배정한 지 이틀 만에 매립 허가를 승인하며 이전 계획 진행을 허가했다.
2015년 7월 15일 백악관 일일 언론 브리핑에서 미 해군 제독 존 커비는 이 문제에 대한 반대 여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시설 건설은 미국과 일본 간의 수년간의 지속적인 노력의 의미 있는 결과이며, 우리는 건설이 계속될 것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이는 우리가 일본 정부와 오랫동안 이야기해 온 것입니다. 물론 저는 보도를 보았고 오키나와 사람들의 불안을 어느 정도 이해하지만, 해당 시설에 대한 우리의 접근 방식이나 정책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우리는 여러 다른 포럼을 통해 이 이전의 중요성과 그것이 일본과의 동맹을 강화하는 정도에 대해 지속적으로 이야기해 왔습니다."
이전에 대한 반대는 오키나와 외부에서도 주목할 만한 지지를 받았는데, 미야자키 하야오, 오에 겐자부로, 사카모토 류이치 등이 여기에 포함되었다.
2015년 11월, 조지 워싱턴 대학교 교수 마이크 모치즈키는 "현재 계획인 캠프 내 활주로를 해상으로 확장하는 대신, 해병대 캠프 슈와브에 헬기 기지를 설치하는 옵션을 고려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린피스 또한 이전 중단과 산호초 및 듀공 서식지 보존을 촉구하는 164개국 사람들의 서명을 받았다.
2015년 11월, 아사히 신문은 이 문제에 대한 일본 정부의 의제를 '집착'이라고 표현했다.
2015년 12월, 올리버 스톤 감독을 포함한 70명의 미국 유명 인사들은 캐롤라인 케네디 주일 미국 대사가 미국과 일본 간의 논쟁적인 이전 계획에 대한 지지를 표명한 것을 비판했다.
2016년 6월, 미군 기지 직원이 오키나와 여성을 강간하고 살해한 사건 이후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다. USA 투데이는 "이 사건은 오키나와의 해병대 공군 기지를 인구 밀도가 낮은 지역으로 이전하려는 노력을 확실히 복잡하게 만들 것으로 보인다. 오나가와 오키나와 주민 대다수는 기지가 섬 밖으로 이동하기를 원한다."라고 논평했다.
2018년 12월 14일, 수년간의 시위와 법적 문제 끝에 오키나와에서 해병대 후텐마 비행장의 이전 및 폐쇄를 촉진할 논란의 여지가 있는 새로운 미군 활주로 건설을 위한 매립이 시작되었다. 데니 다마키 오키나와 지사는 논란이 많은 미군 기지 이전 프로젝트를 추진하려는 도쿄의 노력에 맞서겠다는 결의를 보였다. 다마키는 헨코에서 열린 시위 집회에서 일본 정부가 이전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오키나와현 나고시 헨코 해안 지구의 매립지에 토사를 투기하기 시작한 것은 "참을 수 없는 일"이며, "국가가 저지른 분노"라고 말했다.
2019년 2월 24일, 매립에 대한 찬반을 묻는 현민투표가 실시되어 유효 투표수의 71.74%가 반대 의사를 표시했지만, 투표 결과에 법적 구속력은 없었다. 3월 25일에는 새로운 구획에 토사 투입이 시작되었다. 2019년 6월에는 2017년 중의원 선거 기간 중에 자민당 의원(니시메 츠네사부로, 쿠바 코노스케, 미야자키 마사히사)이 헤노코 이설 관련 공사를 수주한 업체로부터 헌금을 받은 사실이 밝혀졌다.
2023년 9월 4일, 일본 최고재판소는 지방 주민들의 항의에도 불구하고 오키나와현 정부에 일본 정부의 계획을 승인하라고 명령했다. 이 판결은 고등 법원이 3월에 내린 판결, 즉 중앙 정부의 계획과 오키나와의 승인 지침이 유효하다는 판결을 유지했다.
4. 연표
* 1996년 4월, 『일본경제신문』이 "후텐마 기지 전면 반환에 합의"라는 단독 보도를 게재했다.
* 2013년 12월 27일, 나카이마 히로카즈 지사가 주일 미군 후텐마 비행장의 나고시 헤노코로의 이설을 위한 국가의 매립을 승인했다.
* 2014년 1월, 오키나와현 의회는 나카이마 지사의 매립 승인이 공약 위반이라며 본회의에서 지사 사임을 요구하는 결의를 가결했다.
* 11월, 지사 선거에서 오나가 다케시가 당선되고, 나카이마 히로카즈는 패배했다.
* 2015년, 현과 국가는 후텐마 비행장의 헤노코 이설을 두고 법정 투쟁을 벌였다. 공사는 일시 중지되었고, 양측은 협의를 진행했지만 9월에 결렬되어 공사가 재개되었다. 10월, 오나가 지사는 매립 승인을 취소했고, 국가는 이에 대한 철회를 요청했다.
* 2016년, 정부와 현은 법원의 화해안을 바탕으로 협의를 진행했다. 7월, 국가는 오나가 지사가 승인 취소를 철회하지 않는 것이 위법이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9월 16일, 후쿠오카 고등법원은 헤노코 이설에 대해 현의 패소를 확정했다. 12월, 최고재판소에서도 현의 패소가 확정되었고, 오나가 지사는 승인 취소를 취소했다.
* 2017년 4월, 매립 구역의 방파제 건설이 시작되었다.
* 2018년 8월, 오나가 지사가 사망했다. 이후 부지사가 매립 승인을 철회했다. 9월, 다마키 데니가 지사로 당선되었다. 12월, 매립 구역 2-1에서 토사 반입이 시작되어 원상 복구가 불가능하게 되었다.
* 2019년
* 1월 28일, 동쪽의 N4 호안 공사가 시작되었다.
* 2월 24일, 2019년 오키나와 현민 투표가 실시되어 반대가 70%를 넘었다.
* 3월 25일, 매립 구역 2에서 토사 반입이 시작되었다.
* 4월, 국토교통상이 승인 철회 취소 재결을 내렸다.
* 7월, 현은 국토교통상의 재결이 국가의 위법한 관여라며 취소를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 2020년 3월, 최고재판소에서 현의 패소가 확정되었다.
* 8월, 현은 국가의 승인 철회 취소가 위법이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 2022년 12월, 최고재판소에서 현의 패소가 확정되었다.
* 12월, 방위성은 기지 완공까지 12년이 걸려 후텐마 기지 반환이 2030년대에나 가능하며, 경비는 3500에서 9300으로 증가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 2020년 4월, 국토교통상은 불승인 처분 취소 재결을 내리고, 현에 설계 변경 신청을 승인하도록 시정 지시를 내렸다. 8월은 매립 구역 2의 매립 완료 예정 시점이었다. 9월, 다마키 지사가 재선되었다.
* 2023년 3월, 두 건의 소송에서 후쿠오카 고등법원 나하 지부는 현의 주장을 기각했다. 9월, 최고재판소에서 현의 패소가 확정되었다.
* 2023년 12월 20일, 후쿠오카 고등법원 나하 지부는 헤노코 앞바다의 지반 개량 공사 승인을 명령했다.
* 2024년 2월, 최고재판소에서 현의 패소가 확정되었다.
5. 이전 후보지 검토 과정
1990년 6월, 미일 합동 위원회에서 일부 주일본 미군 기지 용지 반환에 대한 조정이 진행될 때, 오키나와현 내 기지 용지가 "10개 사안"으로 통칭되었고, 그 안에 후텐마 기지 용지 수ha가 포함되었으나, 기지 전체 반환에 대한 움직임은 없었다.
1995년 오키나와 미군 소녀 성폭행 사건을 계기로 오키나와에서 미군 주둔에 대한 대규모 반대 운동이 일어났다. 이를 계기로 미일 안전 보장 협의 위원회는 1995년 11월 오키나와에 관한 특별 행동 위원회(SACO)를 설치하기로 결정했다.
1996년 1월 11일, 무라야마 도미이치 총리의 뒤를 이어 총리대신이 된 하시모토 류타로는 오키나와 문제에 대해 철저히 준비했다. 4월 12일 하시모토와 월터 먼데일 주일 대사 간에 "후텐마 기지의 이전 조건부 반환"이 합의되어, 후텐마 기지 반환 방향성이 진행되었다. 1996년 4월 15일에는 이를 바탕으로 SACO 중간 보고서가 제출되었다. 이 보고서에는 다음 내용이 명시되었다.
* 5년 후부터 7년 후까지의 완전 반환을 목표
* 이전을 실시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대체 시설을 마련
* 대체 시설로서 오키나와현 내 다른 미군 시설 및 구역에 헬리포트 건설
당시 육상막료장이었던 토미자와 아키라에 따르면, 미국 해군 계열의 한 연구 기관에서는 오스트레일리아로의 이전을 포함한 철수 시나리오도 연구했다. 이는 사세보와 요코스카 해군 기지 유지를 위해 후텐마를 포기하는 시나리오였다.
1996년 7월 26일, 미국과 오스트레일리아는 시드니에서 개최한 정기 안보 각료 협의에서 양국 안전 보장 협정의 중요성을 확인하고, 미국 해병대의 훈련 규모를 확대하기로 결정했다. 결국 해외 이전은 기각되었지만, 그 후에도 대체 시설을 반드시 오키나와에 둘 필요는 없다는 의견이 미국 측에서 나왔다는 보도가 있었다.
한편, SACO에서 검토가 진행되던 1996년 단계에서, 일본 본토의 이전 후보지로는 고치현, 도마코마이 동부 등이 검토 대상에 올랐다. 오키나와 본섬 내에서는 다수의 이전 후보지 안이 논의되었다.
SACO 중간 보고를 받아 미일 양국은 이전 후보지 선정에 들어갔지만, 4월 중에는 우선 가데나 탄약고 지구와 가데나 비행장이 후보지로 거론되었다. 후보지로 거론된 지역에서는 반대 집회가 실시되었다. 1996년 여름, 오키나와 타임스는 가데나 탄약고, 캠프 핸슨, 캠프 슈와브, 가데나 비행장, 기노자 촌의 가타하라 해안 매립안 등을 보도했다. 그 외 우라소에 앞바다, 화이트 비치 훈련 수역이 있는 본섬 남부의 나카구스쿠 만 등도 보도되었다.
일본 측은 5월 9일에 국내 조정을 위해 "후텐마 반환 작업 위원회"를 조직했다. 미국군은 캠프 슈와브 및 캠프 한센에 걸쳐 있는 중부 훈련 구역으로의 이전을 검토했다. 아사히 신문에 따르면, 가데나 탄약고 지구가 최적지로 언급되었으며, 캠프 한센으로의 이전안도 검토되었다. 그러나 요미탄촌 등은 탄약고 이전 예정지 주변이 농업용 댐의 수원이며 희귀 동물이 서식하는 삼림 지대이므로 환경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강력히 반대했다. 결국 현(県)도 지역과 동일한 견해를 방위청에 전달했고, 7월 초 가데나 탄약고 지구 이전안은 무산되었다.
가데나 탄약고 지구 다음으로 부상한 것이 가데나 비행장 통합 안이었다.
일본 측의 검토
일본 측은 현내 정치적 사정을 고려하여 '신설' 대신 가데나 통합 안을 검토했다. 가데나 통합 안에는 헬리콥터와 고정익기의 공동 운용 문제가 있었으나, 통합막료회의 의장 스기야마 시게루에게 공동 운용 가능성을 검토하도록 지시, 육자위 헬리콥터 파일럿, 공자위 전투기 파일럿, 비행장 관제관의 검토 결과 "공동 운용은 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미국 측의 검토
그러나 미군은 아래 3가지 이유로 반대했다.
# 저속 헬리콥터와 고속 전투기를 동시에 관제하는 것은 부담이 크다.
# 평시에도 헬리콥터, 전투기가 각각 60~70기씩 훈련하며, 유사시에는 2~3배의 기체가 집결할 것으로 예상되어 가데나 한 곳에서 감당하기는 불가능하다.
# 가데나는 소음 문제로 P-3C 주기장을 이전하거나 방음벽을 설치하고 있었는데, 후텐마 기체를 수용하면 가데나, 기타야 양정에게 더욱 열악한 환경이 된다.
1998년 봄, 벡텔, 이토추 상사, 일본 국내 제네콘, 오키나와의 대형 건설 회사가 헤노코 앞바다 산호초 리프 안쪽 200-300ha를 매립하여 2400m 활주로를 건설하고 육지 부분에도 기지 시설을 건설하는 안(총 공사비 2000~3000억 엔)을 제시했다. 아미티지는 이 안에 대해 공식적으로 긍정적인 의견을 표명했고, 다른 고위 관리는 "메가 플로트 안은 더 이상 최선의 안이 아니다"라고 비공식적으로 일본 정부에 전달했다.
일본 정부는 2000년 8월 25일, 오키나와현, 나고시 등과 "후텐마 비행장 대체 시설에 관한 협의회"를 개최하여 각 안을 비교 검토했다.
협의회에서는 해상 헬리포트 안건 중 폰툰식 메가플로트 안도 후보로 남아 있었지만, "군민 공용 공항" 실현에는 부적합하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2002년 7월 29일, 제9회 대체 시설 협의회에서 QIP와 매립을 비교한 결과, 헤노코 곶 앞바다 서남쪽 리프 부근을 중심으로 한 지역에 매립 공법으로 계획하기로 결정되었다.
주요 계획 개요
* 면적: 184ha
* 길이: 2500m (활주로 2000m)
* 폭: 730m
* 공사 기간: 약 9.5년
기술적인 이유로는 QIP 공법과 비교하여 다음과 같은 점이 고려되었다.
# 현행 기술 수준에서 안정적이고 충분한 실적이 있다.
# 유지 관리비는 호안 점검, 빈도 면에서 육상 비행장이나 항만 시설과 동등하다.
# 시설 안전 대책 면에서도 육상 비행장과 동등하다.
# QIP 공법에 비해 본체 손상 정도, 복구 면에서 우수하다.
# 건설비가 저렴하다 (매립 공법 330, QIP 공법 670).
# 유지 관리비가 저렴하다 (매립 공법 연간 약 80, QIP 공법 약 3100).
2004년 8월, 후텐마 기지에 배치된 CH-53 헬리콥터가 오키나와 국제대학에 추락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오키나와 전체에서 후텐마 기지 조기 반환 요구가 더욱 거세졌다.
2005년 10월 29일, 미일 안전 보장 협의 위원회에서 주일 미군 및 관련 자위대 재편에 관한 권고를 승인한 미일 양국은 이전 부지를 헤노코 곶 연안부로 변경하기로 합의했다.
2006년 1월 22일, 자·공명당 추천으로 기지 건설 용인파가 지지하는 시마부쿠로 요시카즈가 나고 시장에 당선되었다.
2006년 4월, 고정익기의 비행 경로가 주택지를 피하고 가능한 한 해상만 지나도록 활주로 2개를 V자형으로 배치하고 부지를 매립하는 안(현행 안)에 대해 방위청 장관 누카가 후쿠시로와 나고 시장 시마부쿠로가 합의했다. 2006년 5월, 주한 미군 재편 협의(DPRI) 최종 보고서인 "재편 실시를 위한 미일 로드맵"이 미일 양국 정부 간에 합의되었고, 이 안은 그 안에 포함되는 형태로 승인되었다.
;현행 안의 개요
* 헤노코 곶과 오우라만, 헤노코만 수역을 연결하는 형태로 V자형으로 2개의 활주로를 설치한다. 활주로는 각각 1600미터, 2개의 100미터 오버런을 가진다.
* 대체 시설 건설은 2014년까지 완료한다.
* 이설은 대체 시설이 완전히 운용 능력을 갖추었을 때 실시된다.
* 활주로 건설 공법은 원칙적으로 매립으로 한다.
* 제3해병원정군(3MEF) 중 지휘 부대, 제3해병사단 사령부, 제3해병후방군 사령부, 제1해병항공단 사령부 및 제12해병연대 사령부의 8000명 대원과 9000명 가족은 부대 일체성을 유지하며 2014년까지 오키나와에서 괌으로 이전한다.
* 일본은 괌 시설 및 인프라 정비를 위해 2800의 직접적인 재정 지원을 포함, 총 6090를 제공한다.
* 가데나 이남의 통합 및 토지 반환은 해병대 사령부 요원 및 가족 이전 완료에 달려 있다.
2009년부터 2010년 5월까지 정부, 지역 자치단체, 사회민주당·국민신당이 제안한 이전 후보지는 헤노코 육상, 카츠렌 반도 앞바다, 가데나 비행장, 오무라 항공기지, 카노야 항공기지, 토쿠노시마, 마게시마, 이오 섬, 괌 (이미 이전 계획이 있는 것을 전면 이전으로 확대), 테니안 섬 (지역에서 이전을 용인) 등이었지만, 어떤 안도 정식 계획으로 합의되지 않았다.
6. 관련 쟁점
1995년에 주일 미군이 여학생을 납치 및 집단 성폭행한 사건(오키나와 미군 소녀 성폭행 사건)이 발생하자, 오키나와 지역 사회에서는 후텐마 비행장 반환 및 미군 기지 반대 시위가 일어났다. 2004년에는 훈련 중이던 주일 미군 소속 헬리콥터가 오키나와 국제대학에 추락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이러한 움직임은 더욱 거세졌다.
오키나와현은 일본 영토의 0.6%에 불과하지만, 2006년 기준으로 주일 미군 기지의 75%가 오키나와에 있었고, 미군 기지가 본섬의 18%를 차지했다.
새로운 기지 건설에 대한 지역 반대는 매우 컸으며, 인구의 76% 이상이 헤노코로의 이전에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국군과 일본 정부는 다양한 이전 방안을 검토했다.
* 미국 측 검토: 캠프 슈와브 및 캠프 한센에 걸쳐 있는 중부 훈련 구역, 가데나 탄약고 지구, 가데나 비행장 통합 안 등이 검토되었다. 가데나 탄약고 지구는 헬기 집결에 충분한 크기를 가진 기지로 언급되었으나, 요미탄촌 등에서 농업용 댐 수원인 삼림 지대이며 희귀 동물의 보고라는 이유로 강하게 반대했다. 가데나 비행장 통합 안은 저속 헬리콥터와 고속 전투기를 동시에 관제하는 문제, 소음 문제 등으로 인해 미군 측에서 반대했다.
* 일본 측 검토: 가데나 통합 안은 기술적인 문제(헬리콥터와 고정익기 공동 운용)와 정치적인 문제(오키나와 현 내 보수 자치단체 감소)로 인해 기각되었다.
결국, 1996년 5월 27일 개최된 SACO에서, 일본과 미국은 작업반 설치를 결정하고, 가데나 통합안 등과 병행하여 캠프 핸슨 및 캠프 슈와브에 대한 검토를 실시하기로 했다.
[캠프 핸슨] 이전 안에 대해서는 평탄한 지형이 아니어서 공사가 난항을 겪을 가능성, 경비 문제, 삼림 벌채로 인한 붉은 흙 유출 가능성, 소음 문제 등이 문제시되었다.
매립안과 관련하여, 벡텔, 이토추 상사, 구니바구미 등이 참여한 건설 컨소시엄은 헤노코 앞바다 산호초 리프 안쪽을 매립하여 2400m 활주로를 건설하는 안을 제창했다. 그러나 듀공 서식 해역이라는 점과 취락에 가깝다는 점이 문제점으로 지적되었다.
미군 재편 협의와 헬기 추락 사고가 있었던 2003~2005년경, 나하 방위 시설국은 환경 영향 평가, 호안 구조 검토, 현지 기술 조사 등을 진행했다.
6.1. 환경 문제
1996년 12월, 일본과 미국 정부는 후텐마 기지를 오키나와 북부 나고시의 헤노코 해안으로 이전하기로 결정했다. 이는 오키나와 남부 인구 밀집 지역에 대한 군사적 영향을 줄이기 위한 조치였다.
하지만 이 결정은 계획된 부지가 산호초와 해초 서식지이며, 일본법과 미국법에 따라 보호받는 멸종 위기 종인 듀공이 서식하는 곳이라는 점에서 논란이 되었다. 예상되는 환경 영향은 산호초와 해초 서식지 파괴뿐만 아니라 폐기물 투기, 어업 방해, 전반적인 생물 다양성 감소 등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
미국군은 캠프 슈와브 및 캠프 한센에 걸쳐 있는 중부 훈련 구역으로의 이전도 검토했다. 아사히 신문에 따르면, 가데나 탄약고 지구가 헬기 집결에 충분한 크기를 가진 기지로 언급되었고, 캠프 한센으로의 이전안도 검토되었다. 그러나 탄약고 이전안은 요미탄촌 등에서 농업용 댐 수원인 삼림 지대이며 희귀 동물의 보고라는 이유로 강하게 반대했다. 『아사히 신문』은 가데나 탄약고 지구가 미군 관리하에 들어간 지 반세기 동안 일반인 출입이 제한되어 풍요로운 자연이 보존되었고, 반대파는 이 지역에서 15종의 희귀 생물이 서식하고 있다고 발표했다고 보도했다.
[캠프 핸슨] 이전 안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점들이 문제시되었다.
* 평탄한 지형이 아니어서 공사가 난항을 겪을 가능성이 있다.
* 위의 문제점으로 인해 경비 측면에서 문제가 있다.
* 삼림 벌채로 인한 붉은 흙 유출 가능성이 있다.
* 현 상황에서도 야간 헬기 훈련으로 소음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2018년 12월 14일부터 매립 해역에 토사 투입이 시작되어 원상 복구가 극히 불가능하게 되었다. 2019년 2월 24일에는 매립 찬반을 묻는 오키나와현민투표가 실시되어 유효 투표수의 71.74%가 반대 의사를 표시했지만, 투표 결과에 법적 구속력은 없었고, 3월 25일에는 새로운 구획에 토사 투입이 시작되었다.
6.2. 지역 경제 문제
1999년 11월 22일, 이나미네 케이이치 지사는 기지 이전 장소를 공식적으로 헤노코 연안 지역으로 결정했다. 이나미네 지사와 부지사는 기지의 15년 사용 기한 및 나고시를 중심으로 한 북부 시정촌 진흥책을 정부에 요청했다. 같은 해 12월 27일, 키시모토 타케오 나고 시장은 이를 수용하며 기자 회견에서 "대체 시설 수용을 용인한다"고 표명했다. 그러나 7가지 조건에 대한 구체적인 대책이 없으면 이전 용인을 "철회하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15년 사용 기한에 대해서는 명확한 답변을 피했지만, 북부 진흥책에 대해서는 신속하게 각의 결정을 하겠다고 했다. 아오키 간오 내각관방장관은 북부 진흥 사업에 대해 대략 10년간 1000의 특별 예산 조치를 확보하고, 2000년부터 북부 진흥 기금으로 착수하겠다고 발표했다. 이 북부 진흥비는 2000년도부터 정부 예산에 100이 편성되어 실행되었다.
2006년, 모리야 타케마사 방위사무차관은 이 진흥비에 대해 "북부 진흥책과 후텐마 이전은 세트"라며, 기지 수용을 부담하는 자치단체에 대한 국가의 지역 진흥 대응으로 이해하고 있다고 밝혔다. 2007년 7월, 코이케 유리코 방위상은 북부 진흥 동결을 시사했으나, 12월, 후텐마 비행장 이전 조치 협의회에서 동결 해제가 결정되었다.
2000년도부터 시작된 북부 진흥책은 약 10년간 1000이 예정되었지만, 2009년도 상반기 집행분까지 총 770이 투입되었다.
괌은 태평양 전쟁 이전부터 기지가 있었지만, 부시 행정부의 미군 재편 계획 전까지는 큰 병력이 배치되지 않았다. 괌의 주요 산업은 관광이며, 일본인 여행객이 80%를 차지했으나, 2000년대 들어 세계적인 요인으로 인해 하락세가 지속되고 있다. 재하가냐 총영사관은 해병대 이전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요인을 언급했다.
* 중국, 동남아시아 등 새로운 관광지 부상
* 장기 연료비 급등
* 인플루엔자
* 금융 위기
이에 따라, 산업계는 기지 확장과 부대 및 가족 이주를 경제 활성화의 기폭제로 인식하고 있다.
2006년, 로드맵에서 제3해병 원정군 사령부, 후방 부대 등의 이전을 결정한 후, 괌 준주 상층부는 환영 의사를 표했다. 칼레오 모이란 준주 부지사는 2006년 5월 하순 오키나와를 방문, 기노완시에서 이후 완전 이전 설을 주장하게 될 이바 시장과 회담했다.
모이란의 일본 방문에 앞서, 2006년 5월 상순 시모지 간로는 괌을 방문하여 "괌-오키나와 간 직항편(항공 노선) 개설" 및 "오키나와로부터의 기술력과 노동력 공급"을 제안했다. 모이란은 일본 방문 시 시모지와도 회담했으며, 당시 시모지의 보고에 따르면 괌 노동자는 8만 명이었다. 시모지는 "오키나와현 내 기업의 현외 활약과 외향적인 오키나와 경제 구축의 시작"을 활동 동기로 밝혔다.
2006년 5월, 마이클 베니토 괌 미국 상공회의소 회장은 오키나와를 방문하여 기지 산업을 시찰했다. 요미우리 신문은 같은 해 오키나와 지사 선거 중 베니토의 "괌 주민 86%가 오키나와 해병대의 괌 이전에 찬성하며, 인프라 정비 등 수용 준비를 서둘러야 한다"는 발언을 보도했다. 괌 내 민간 기업도 이전으로 인한 경제 활동 증가를 예상했다.
2007년 5월 10일, PIR 뉴스는 괌 준주 정부가 기지 건설에 미크로네시아인 노동자를 요구한다고 보도했다. 괌은 건설 노동자 부족으로 중국 본토, 대만, 필리핀 등에 노동력을 의존했지만, 국무성은 괌과 인접하고 미국과 자유 연합 관계인 팔라우, 마셜 제도, 미크로네시아 연방 인력 활용을 인식하고 있었다. 2007년 9월, 펠릭스 페레스 카마초 준주 지사는 준주 정부 관계자와 방일하여 오노데라 외무 부대신과 회담했다.
2009년 3월 31일, 고야 모리마사 오키나와현 건설 산업 단체 연합회 회장은 기자 회견을 통해 주오키나와 해병대의 괌 이전 관련 정비 사업에 현내 기업 참여를 위한 새로운 조직을 발족한다고 발표했다. 목표는 일본 정부 부담 약 6000 중 60(약 10%) 정도의 공사 수주였다. 조직 설립 후에는 현지 주택·인프라 정비 실시 주체인 SPE(특정 목적 사업체)에 참여할 예정이었다.
2009년 4월 하순에는 "괌 산업 포럼"이 개최되었으며, 웹사이트에 따르면 예정된 공간에 수용할 수 없을 정도로 성황을 이루었다.
2009년 11월, 미국 해군은 괌 기지 건설 관련 환경 영향 평가서를 공표했다. 환경 보호국(EPA)은 2010년 2월, 상하수도 등 사회 자본 미비에 대한 대응으로 환경 악화 대응을 요구하는 의견서를 국방부에 제출했다.
2009년 11월, OEA(Office of Economic Adjustment, Department of Defense 국방성 경제 조정국)는 괌 이전 관련 지역 분석을 공표했다.
일본 정권 교체 후, 정치적 우호 자세는 수정되었다. 카마초는 2009년 12월 기타자와 방위상 방문에 맞춰 후텐마의 모든 기능을 수용할 능력이 없다는 견해를 표명했다. 2010년 1월에는 레이먼드 메이버스 해군 장관에게 현행 계획의 기간 연장을 요구했다. 인프라 능력 부족, 기지 건설 노동자를 포함한 일시적 인구 증가(당시 약 17만 명)가 주요 우려 사항이었다.
카마초는 공화당 계였지만, 괌 출신 하원 준 의원 보달로(민주당)도 이전 연장론에 대해 비슷한 견해를 보였다.
2010년 3월, 미국 본토 정부는 해당 연도 이전 경비 예산 집행을 결정했지만, 아카하타는 로버트 헤일 국방 차관(재무 담당)이 "미국 예산 절약 시 일본의 의심을 살 수 있으므로, 일본에 잘못된 메시지를 보내지 않기 위해 예산이 필요하다"고 말했다고 비판 기사에서 보도했다.
6.3. 정치적 문제
1995년 주일 미군에 의한 오키나와 미군 소녀 성폭행 사건이 발생하자, 오키나와 지역 사회에서는 후텐마 비행장 반환과 미군 기지 반대 시위가 일어났다. 2004년에는 미군 헬기가 오키나와 국제대학에 추락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이러한 움직임은 더욱 커졌다.
오키나와현은 일본 영토의 0.6%에 불과하지만, 2006년 기준으로 주일 미군 기지의 75%가 오키나와에 있었고, 미군 기지가 본섬의 18%를 차지했다. 1997년 12월 나고시 주민투표에서 대다수가 헤노코 이전 계획에 반대했지만, 며칠 후 나고 시장은 주민투표 결과를 무시하고 이전 계획을 수용했다. 이후에도 나고 시장들은 이전 문제에 대해 다양한 입장을 보였다.
2009년 민주당 하토야마 유키오 총리는 후텐마 기지를 섬 밖으로 이전하겠다고 약속했지만, 결국 지키지 못하고 8개월 만에 사임했다. 2010년 1월 24일에는 이전 계획에 반대하는 이나미네 스스무가 나고 시장으로 당선되었고, 나고 시의회와 오키나와현 의회도 기지 이전을 반대하는 결의를 채택했다.
2013년 12월, 나카이마 히로카즈 오키나와 현 지사는 일본 정부의 헤노코 매립 제안을 승인했지만, 이는 오키나와 주민들의 거센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2014년 11월, 반 기지 입장을 내세운 오나가 타케시가 오키나와 현 지사로 당선되어 새로운 기지 건설에 필요한 매립 작업을 거부하겠다고 약속했다.
2015년 10월 29일, 일본 중앙 정부는 오키나와 주민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나고시 헨코 해안에 기지 건설을 시작했다. 2016년 6월, 미군 기지 직원에 의한 오키나와 여성 강간 살해 사건 이후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다.
2018년 12월 14일, 새로운 미군 활주로 건설을 위한 매립이 시작되었고, 데니 다마키 오키나와 지사는 이에 맞서겠다는 결의를 보였다. 2023년 9월 4일, 일본 최고재판소는 오키나와현 정부에 일본 정부의 계획을 승인하라고 명령했다.
이처럼 후텐마 기지 이전 문제는 오키나와 현과 일본 중앙 정부 간의 갈등, 주민 투표 결과와 민주주의적 의사 결정 문제, 미일 동맹과 오키나와의 역할 등 다양한 정치적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6.4. 미 해병대의 존재 의의
미 해병대의 존재 의의에 대해서는 긍정적, 부정적 시각이 모두 존재한다.
긍정적 시각
존 루스 주일 미국 대사는 2010년 강연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 동아시아 지역 안정 및 억제: 무력 행사를 선택하지 않도록 하는 역할.
* 신속한 대응 능력: 통합된 부대(항공, 지상, 후방 지원)로 비상사태 시 신속 대응.
* 기동성: 헬리콥터를 이용, 오키나와 주둔 지상 전투 부대 및 후방 지원 부대를 열도선을 넘어 필요한 곳으로 신속 수송.
* 해군 함대 지원: 사세보 미 해군 함대의 지원을 받아 대규모/장기간 작전 수행.
* 재난 구호: 아시아 지역 주요 자연재해에 대한 주요 대응 주체.
* 분쟁 초기 대응: 중요 시설 확보, 비전투원 피난 유도, 전선에서 지상 및 항공 타격력 제공.
* 미국 약속의 상징: 미 해병대 철수는 이 지역에 대한 미국의 약속을 부정적으로 인식시킬 수 있음.
* 억지력: 실전 훈련 능력은 억지력으로 기능.
가와카미 다카시 다쿠쇼쿠 대학 교수는 일본 국회 참고인으로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 [[제31해병원정대]](31MEU)의 역할: 한반도 위기, 타이완 해협 억제 및 초동 대응, 대테러 작전, 재해 구조, 민간인 구조 작전 등.
* 통합 작전의 중요성: 보병, 포병, 항공 부대, 지원 그룹 등이 통합되어 작전, 분산 배치 시 즉응성 저하.
* 헬기 부대의 중요성: 보병과 헬기의 분산은 어려움.
해병대 전투 단위는 규모 순으로 다음과 같다.
* MEU ([[해병원정대]]): 테러, 저강도 분쟁 대응. 6시간 내 출동, 15일 종전 능력. 1500~3000명 규모.
* MEB ([[해병원정여단]]): 5~14일 내 출동, 30일 종전 능력. 3000~2만명 규모.
* MEF ([[해병원정군]]): 30~45일 내 출동, 60일 종전 능력. 2~9만명 규모. 통합 작전, 후방 지원 능력.
제3MEF는 유일하게 해외 주둔하는 MEF이며, 31MEU가 선봉이다. 아시아 지역 분쟁에 1주일 내 파견 가능하다.
사토 마사히사 참의원 의원은 일본 정부의 NIMBY(혐오 시설) 인식과 군사적 유의성 관점 결여를 비판했다.
2010년 4월에는 미국이 해병대 주둔 장소 거리(65해리 이내)를 군사 기밀로 간주하고, 일본 정부 고위 관계자의 발언에 대해 일본 외무성에 항의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부정적 시각
* 전개 능력 변화: 해병대 전개 능력을 고려하면 오키나와 기지 필요성 낮음 (류큐 신보).
* 3MEF 기동 부대(31MEU)의 부재: 1년 중 약 9개월은 강습 상륙함으로 아시아 태평양 지역 전개.
* 기술 발전: 항공기 항속 거리 연장 등으로 해병대 오키나와 상주 필요성 감소.
* 미군 재편 계획 (2012년): 지상 전투 병력 핵심인 제4보병연대 괌 등 이전 결정.
* 에바타 켄스케: 고속 수송함 실용화로 오키나와-규슈 간 이동 시간 차이 감소.
* 오키나와 기지 집중: 본토에 비해 오키나와에 미군 기지 집중, 불공평한 부담.
* 마이클 아마코스트 전 주일 미국 대사 (2015년 인터뷰):
* 오키나와 주둔 해병대 중요성 의문, 납득할 만한 설명 없음.
* 후텐마 문제: 미일 동맹에 치명적 영향 가능성.
* 헤노코 이전: 비용, 편익 고려 시 타산 불일치.
* 오키나와 반대 운동: 광범위, 정치적 비용 고려 필요.
* 해병대 완전 철수 가능성: 일본의 신 기지 건설(1조 엔) 필요성에 대한 의문 제기.
* 자위대 기지 활용 가능성: 해병대 철수 후 자위대 기지로 사용 가능 지적.
* [[나하 군항]] 이전 문제: 우라소에 시장, 헤노코 이전 반대파의 이중 잣대 비판.
6.5. 기타 미해결 문제
후텐마 기지 기능의 오키나와현 내 이전 문제는 여전히 오키나와 현 내에서 반대 목소리가 높다. 2010년 1월 나고 시장 선거에서는 이전을 용인하는 후보가 당선되었지만, 하토야마 유키오 내각이 현 외 이전을 포기하고 총사퇴하면서 상황은 복잡해졌다. 이후 센카쿠 열도 중국 선박 영해 침범 사건 등이 발생하면서, 이전 반대파인 오나가 타케시가 당선된 후에도 이시가키시 등에서는 이전을 용인하는 움직임이 나타나기도 했다. 2016년 기노완시 시장 선거에서는 후텐마 기지 이전을 추진하는 제2차 아베 정권이 지지하는 사키마 아츠시 시장이 당선되기도 했다.
오키나와현 내 이전 찬성 측은 건설 공사로 인한 지역 중소 건설 사업자의 공사 수주 증가, 현 지사 및 시장의 수용 표명에 따른 경제 진흥책 실행 (예: 규슈 오키나와 서밋 개최, 오키나와 과학기술대학원대학교 설치, 국립 오키나와 공업고등전문학교 설치) 등 경제적 이익을 근거로 제시한다. 또한 아시아 지역 분쟁 발생 가능 지점에 대한 지리·정치학적 우위를 오키나와현의 강점으로 꼽기도 한다. 오키나와 본도 이외에서는 센카쿠 열도 주변에서 일본 어선이 중국 공선의 추격을 받는 등 어업 활동에 어려움을 겪는 상황에서, 자위대 유치와 함께 헤노코 이전을 지지하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반면, 군사적 관점 외의 반대 의견으로는 잦은 해병대원 및 관계자의 사건 사고와 그 처리 과정에 대한 불신, 헤노코 해역 매립으로 인한 듀공 서식지 파괴, 막대한 재정 부담 등이 제기된다.
기노완시는 미군 재편에 따른 환경영향평가가 오키나와 주둔 해병대의 괌 이전을 전제로 하고 있어, 대체 시설을 일본 국내에 만들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괌 이전이 기존 미군 재편 틀 안에 있다고 본다.
비행장으로 사용된 토지의 유해 위험 물질 유출로 인한 토양 오염, 유적 발굴 조사, 불발탄 처리, 오키나와 전투 전사자 유골 수습 문제도 해결해야 할 과제이다. 후텐마 기지 주변은 가즈 전투의 주 전장으로, 수만 명의 미일 병사 유골이 아직 기지 내에 남아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오키나와 전투와 기지 건설로 변형된 토지에 대한 상세한 측량을 통한 지적 조사도 필요하다.
이러한 작업은 일본 측의 기지 출입 및 조사가 필요하지만, 기지 이전이 진행되지 않아 일미 지위 협정에 따른 제약으로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미국 측은 토지 반환 시 원상 회복 의무가 없다.
미군 용지 반환 시에는 부지 이용에 관한 각계각층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어 조정이 매우 어렵다. 군용지료를 받는 지주에게는 반환이 수입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
본 문제의 해결 지연은 다른 정책에도 영향을 미쳤다. 하토야마 유키오 내각의 이설 장소 재검토 시도는 미궁에 빠졌고, 2010년 아이티 지진 복구 지원을 위한 자위대 PKO 파견 결정은 후텐마 이전 문제로 악화된 미국과의 관계 개선 의도가 있었던 것으로 보도되기도 했다.
방위 사무 차관으로 문제 해결에 힘쓴 모리야 타케마사는 이나미네 케이이치 당시 오키나와현지사와의 협의 과정에 해결 불가능한 요인이 있었다고 회고했다.
7. 한국의 관점
후텐마 기지 이전 문제는 한반도 안보와 동북아시아 지역 안보 협력에 중요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 미일 동맹 강화: 후텐마 기지 이전은 미일 동맹을 강화하는 조치로 해석될 수 있다. 이는 한반도 안보에 긍정적, 부정적 영향을 모두 미칠 수 있다. 긍정적인 측면은 미국의 동아시아 지역 방위 공약 강화로 이어져 북한의 도발을 억제하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점이다. 반면, 부정적인 측면은 북한과 중국의 반발을 불러일으켜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 [[주한미군]] 기지 문제: 후텐마 기지 이전은 주한미군 기지 이전 문제와 관련하여 참고할 만한 사례가 될 수 있다. 특히, 지역 주민과의 갈등, 환경 문제, 비용 문제 등은 한국에서도 유사하게 발생할 수 있는 문제들이다.
* 동북아시아 지역 안보 협력: 후텐마 기지 이전 문제는 동북아시아 지역 안보 협력에 대한 논의를 촉발할 수 있다. 한국은 이 문제를 계기로 미국, 일본과 안보 협력을 강화하는 동시에, 중국과의 관계 악화를 피하기 위한 외교적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