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런 카펜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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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캐런 카펜터는 미국의 가수이자 드러머로, 오빠 리처드 카펜터와 함께 팝 음악 듀오 카펜터스를 결성하여 보컬리스트로 활동했다. 1983년 솔로 가수로 데뷔했으나 거식증으로 인해 32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카펜터스는 'Close to You', 'We've Only Just Begun' 등 다수의 히트곡을 발표하며 1970년대 팝 음악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녀의 사망은 섭식 장애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높이는 계기가 되었으며, 사후에도 음악적, 문화적으로 많은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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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런 카펜터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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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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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 캐런 앤 카펜터 |
출생일 | 1950년 3월 2일 |
사망일 | 1983년 2월 4일 (향년 32세) |
출생지 | 코네티컷주 뉴헤이븐 |
사망지 | 캘리포니아주 다우니 |
국적 | 미국 |
직업 | 가수 음악가 |
장르 | 팝 이지 리스닝 소프트 록 재즈 |
악기 | 보컬 드럼 |
활동 기간 | 1965년 – 1983년 |
레이블 | A&M |
배우자 | 토머스 버리스 (1980년 결혼, 1981년 별거) |
관련 인물 | 리처드 카펜터 (오빠) |
웹사이트 | 리처드 앤 캐런 카펜터 공식 웹사이트 |
음악 그룹 | |
과거 소속 그룹 | 카펜터즈 더 리처드 카펜터 트리오 스펙트럼 |
악기 | |
주요 악기 | 라디크 드럼 |
2. 생애
미국 코네티컷주 뉴헤이븐에서 태어나 캘리포니아주 다우니에서 성장했다. 1965년 뮤지컬 배우로 처음 무대에 섰으며, 1969년 오빠 리처드 카펜터와 함께 팝 음악 듀오 카펜터스를 결성하여 보컬리스트로 데뷔했다. 1983년 솔로 가수로도 활동을 시작했으나, 같은 해 오랜 기간 앓아온 신경성 식욕부진증(거식증)으로 인해 3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2. 1. 초기 생애 (1950-1964)
캐런 앤 카펜터는 1950년 3월 2일 미국 코네티컷주 뉴헤이븐의 그레이스 뉴헤이븐 병원(현재의 예일 뉴헤이븐 병원)에서 태어났다. 부모는 해롤드 버트럼 카펜터(1908년 11월 8일 ~ 1988년 10월 15일)와 아그네스 레우어(1915년 3월 5일 ~ 1996년 11월 10일)였다. 아버지 해롤드는 그의 부모가 선교사로 있던 청나라 시대의 중국 우저우에서 태어나 영국 기숙학교에서 교육을 받았으며, 이후 인쇄업에 종사했다.오빠인 리처드 카펜터는 어릴 때부터 음악에 관심을 보여 피아노 신동으로 불렸다. 캐런은 4살 때부터 탭댄스와 발레 수업을 받았고, 길거리에서 소프트볼을 즐겨 했다.
1963년 6월, 아버지가 전 사업 동료로부터 일자리를 제안받자 가족은 캘리포니아주 다우니로 이사했다. 그 무렵, 오빠 리처드가 근처 공원 콘서트에서 피아노를 연주할 때 그의 권유로 스키터 데이비스의 히트곡 "세상 끝까지"를 부르며 남매가 처음으로 함께 대중 앞에서 공연했다.[69] 당시 13세였던 카렌은 장래에 간호사나 화가가 되는 것을 꿈꿨다고 한다.[69]
1964년 14세의 나이로 다우니 고등학교에 입학했는데, 이는 동급생보다 한 살 어린 나이였다. 처음에는 체육 수업을 피하기 위해 학교 마칭 밴드에 들어갔다. 지휘자 브루스 기포드는 그녀에게 글로켄슈필을 맡겼으나 카렌은 이 악기를 좋아하지 않았다. 드러머 친구 프랭키 차베스(재즈 드러머 버디 리치를 우상으로 삼음)의 연주에 감탄한 후, 카렌은 대신 드럼을 연주하고 싶다고 요청했다. 그녀는 비틀즈의 링고 스타나 재즈 드러머 조 모렐로가 사용했던 러드윅 드럼 세트를 원했고, 차베스의 설득으로 가족은 300USD 상당의 러드윅 키트를 사주었다. 차베스는 그녀에게 드럼 연주법을 가르쳐주었다. 드럼에 열정을 느낀 카렌은 복잡한 연주 라인을 독학하고 스틱 컨트롤, 드럼 스타일, 전통적인 그립 및 매칭 그립과 같은 기법을 연구하며 매일 연습했다. 1년 안에 데이브 브루벡의 "테이크 파이브"에 나오는 5/4 박자와 같은 복잡한 박자표로 연주할 수 있을 정도로 빠르게 실력이 늘었다. 이후 베니 굿맨, 아트 테이텀과 함께 활동했던 재즈 드러머 빌 더글러스에게 드럼 기법을 배우기도 했다.
2. 2. 다우니 이주와 음악 활동 시작 (1963-1968)
1963년 캐런의 가족은 캘리포니아주 다우니로 이주했다.[69] 캐런은 다우니 고등학교에 입학하여 마칭 밴드부에서 활동했다. 오빠 리처드 카펜터가 음악적 재능을 보이자, 캐런 역시 음악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특히 비틀즈의 링고 스타나 재즈 드러머 조 모렐로의 영향을 받아 드럼에 매력을 느꼈고, 부모님을 설득해 러딕 드럼 세트를 마련했다.[69] 이전 악기들을 금방 포기했던 전력 때문에 가족들은 반신반의했지만, 캐런은 드럼 연습에 몰두하여 빠르게 실력을 키웠고 복잡한 변박자까지 소화하게 되었다.[69] 한편, 보컬 트레이닝을 받으러 갔을 때는 트레이너로부터 "당신에게는 아무것도 가르칠 것이 없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타고난 가창력을 지니고 있었다.[69]1965년, 캐런은 오빠 리처드, 그리고 리처드의 대학 친구이자 베이시스트 겸 튜바 연주자인 웨스 제이콥스와 함께 '딕 카펜터 트리오'를 결성했다. 이들은 매일 연습하며 나이트클럽에서 재즈를 연주했다. 리처드는 동생의 드럼 실력에 크게 감명받아 "드럼 공장에서 태어난 것처럼 빠르게 스틱을 다룬다"고 회상했다. 당시 캐런은 드럼 연주에만 집중했고, 노래는 마가렛 섀너라는 가수가 몇몇 곡에서 객원 보컬로 참여했다. 트리오는 RCA 레코드와 계약하고 두 개의 기악곡을 녹음했으나, 이 곡들은 발매되지 않았다.
1966년 4월, 카펜터 남매는 유명 스튜디오 뮤지션 그룹 더 레킹 크루의 일원이었던 베이시스트 조 오스본의 세션 오디션에 참여했다. 캐런은 원래 드러머로만 참여할 예정이었으나, 노래를 부르면서 그녀의 독특한 목소리가 주목받았다. 오스본은 캐런의 가능성을 보고 자신의 레이블인 매직 램프 레코드와 계약을 맺었지만, 리처드의 참여에는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1967년, 웨스 제이콥스가 줄리어드 학교 진학을 위해 트리오를 떠나자, 캐런과 리처드는 새로운 음악 스타일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게리 심스, 존 베티스 등 다른 음악가들과 함께 '스펙트럼(Spectrum)'이라는 새로운 그룹을 결성했다. 스펙트럼은 조화로운 보컬 사운드에 집중했고, 조 오스본의 차고 스튜디오에서 여러 데모 테이프를 녹음하며 목소리를 여러 트랙에 겹쳐 녹음하는 오버더빙 기술을 익혔다. 그 테이프 중 다수는 음반 회사에서 거절당했다.[8] 또한 스펙트럼의 음악은 당시 클럽에서 유행하던 하드 록이나 사이키델릭 록과는 거리가 멀어 라이브 공연 기회를 잡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1968년, 딕 카펜터 트리오는 TV 탤런트 쇼 ''Your All American College Show''에 출연했다. 이 쇼에서 캐런은 드럼을 연주하며 "Dancing in the Street"를 공연했고,[9][10] 트리오는 그 해 결선에서 최종 우승을 차지했다.[11][12]
2. 3. 카펜터스 활동과 성공 (1969-1982)

1969년, A&M 레코드는 캐런과 오빠 리처드 카펜터로 구성된 듀오 카펜터스와 음반 계약을 체결했다.[16] 캐런은 그룹의 드러머이자 공동 리드 싱어로 활동을 시작했으며, 초기에는 드럼 세트 뒤에서 모든 노래를 불렀다. 그녀는 밴드의 첫 앨범 《Offering》(나중에 《Ticket to Ride》로 제목 변경)의 대부분 곡에서 보컬을 담당했다. 오빠 리처드는 앨범 13곡 중 10곡을 작곡하고 그중 5곡을 불렀으며, 오프닝과 마지막 트랙은 남매가 함께 불렀다. 캐런은 드럼 연주 외에도 "All of My Life"와 "Eve" 두 곡에서 베이스 기타를 연주하기도 했다. "All I Can Do"에서는 5/4 박자로 드럼을 연주했고, "Your Wonderful Parade"에서는 여러 개의 스네어 드럼과 베이스 드럼을 오버더빙하여 행진 밴드 사운드를 구현했다.[11] 앨범의 타이틀 곡이 된 비틀즈의 커버곡 "Ticket to Ride"는 카펜터스의 첫 싱글로 발매되어 빌보드 핫 100에서 54위를 기록했다.[8]
1970년 발표된 다음 앨범 《Close to You》는 큰 성공을 거두었다. 이 앨범에 수록된 "(They Long to Be)Close to You"와 "We've Only Just Begun"은 빌보드 핫 100 차트에서 각각 1위와 2위를 차지하며 카펜터스를 세계적인 스타로 만들었다.[9]

캐런의 키는 약 1.63m 정도로 크지 않았기 때문에, 무대에서 드럼 키트 뒤에 앉으면 관객들이 그녀를 보기 어렵다는 문제가 있었다.[10] 라이브 공연에서 그룹의 초점이 명확하지 않다는 비평이 나오자, 리처드와 매니저 셔윈 배시는 캐런에게 마이크 앞에 서서 노래에 집중하도록 설득했다. 대신 다른 연주자가 드럼을 맡게 되었는데, 전 미키 마우스 클럽 멤버였던 커비 오브라이언 등이 밴드의 드러머로 활동했다.[10][46] 캐런은 처음에는 드럼 키트 뒤에서 안정감을 느꼈기 때문에 무대 앞에서 노래하는 것을 다소 어색해했다.[12] 1973년 앨범 《Now & Then》 발매 이후, 캐런은 점차 보컬에 더 집중하고 드럼 연주 비중은 줄어들었다. 그녀는 음반과 라이브 공연 모두에서 그룹의 중심인물이 되었고, 매니저 배시는 그녀를 "사람들이 주목하는 사람"이라고 표현했다.[13] 1976년 콘서트 투어부터는 무대에서 다양한 드럼 구성을 연주하며 개인기를 선보이는 쇼케이스를 포함시키기도 했다.[14]
스튜디오 녹음에서는 그녀 목소리의 미묘한 뉘앙스를 포착하기 위해 근접 마이킹 기법이 활용되었다. 캐런은 3옥타브에 달하는 넓은 음역대를 가졌지만, 카펜터스의 많은 히트곡에서는 그녀 특유의 낮은 알토 음역이 강조되었다. 그녀 스스로 "돈은 지하(낮은 음역대)에 있다"고 농담하기도 했다.[46][14]
캐런은 스스로를 항상 "노래하는 드러머"로 여겼으며,[15] 특히 러딕 드럼을 선호했다.[16] 하지만 그녀가 모든 카펜터스 음반에서 드럼을 연주한 것은 아니었다. 《Ticket to Ride》 앨범과 《Now & Then》 앨범의 "Jambalaya"를 제외하면, 많은 곡에서 유명 세션 드러머인 할 블레인 등이 참여했다.[11][15] 캐런과 리처드는 히트 싱글을 만들기 위해 블레인의 참여를 알고 있었고 이를 승인했다.[13][14] 블레인은 캐런의 드럼 실력을 칭찬하면서도, 그녀의 가장 큰 강점은 보컬이며 스튜디오 녹음 환경에 더 능숙하다고 평가했다.[15] 1981년 앨범 《Made in America》에서는 "Those Good Old Dreams"에서 파울리뉴 다 코스타와 함께 퍼커션을 연주했고, "When It's Gone (It's Just Gone)"에서는 래리 론딘과 함께 드럼을 연주했다.[16]
1970년대 중반, 오빠 리처드가 수면제 메타퀄론 중독으로 어려움을 겪으면서 카펜터스는 투어 일정을 자주 취소해야 했고, 1978년 9월 4일 라스베이거스 MGM 그랜드 공연을 마지막으로 투어를 완전히 중단했다. 1980년, 캐런은 카펜터스의 TV 스페셜 《Music, Music, Music》에서 엘라 피츠제럴드와 듀엣으로 스탠더드 메들리를 불렀다.[17] 1981년, 마지막 정규 앨범이 된 《Made in America》 발매 후, 카펜터스는 다시 활동을 재개하여 BBC 프로그램 《Nationwide》에 출연하는 등 홍보 활동을 펼쳤다.[18][19]
캐런이 마지막으로 녹음한 곡은 1982년 4월의 "Now"였다. 당시 리처드는 캐런의 건강을 염려하면서도 그녀의 목소리는 여전히 최고 상태라고 생각했다.[20]
1979년, 리처드가 약물 중독 치료를 위해 1년간 활동을 중단했을 때, 캐런은 뉴욕에서 프로듀서 필 라모운과 함께 솔로 앨범 작업을 시작했다. 이 앨범은 기존 카펜터스 음악과 달리 디스코와 업템포 곡 위주였으며, 더 성숙한 가사와 캐런의 높은 음역대를 활용하는 시도를 담았다. 그러나 1980년 초, 이 앨범은 리처드와 A&M 레코드 경영진으로부터 미온적인 반응을 얻었다. 프로듀서 퀸시 존스가 리믹스 후 발매를 설득했음에도 불구하고, A&M 레코드의 공동 소유주 허브 알퍼트는 앨범 발매를 보류했다. 이후 A&M은 미발매된 솔로 앨범 제작 비용으로 40만달러를 카펜터스에게 청구했고, 이는 향후 로열티에서 공제될 예정이었다. 이 솔로 앨범의 일부 곡들은 캐런 사후인 1989년 《러브라인스》 앨범에 리처드의 리믹스 버전으로 수록되었고, 전체 앨범은 1996년 《캐런 카펜터》라는 제목으로 발매되었다.[24][21]
2. 4. 섭식장애와 투병 (1970년대 초-1983)
캐런 카펜터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다이어트를 시작했다. 의사의 지시에 따라 스틸만 다이어트를 하여 살코기를 먹고, 하루에 물을 여덟 잔 마시며, 지방이 많은 음식을 피했다. 그녀는 체중을 약 54.43kg까지 줄였고, 카펜터스의 경력이 절정에 달했던 1973년경까지 그 정도의 체중을 유지했다. 그러나 자신의 체형에 대해 과체중이라는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었고, 이는 정신적인 문제로 이어졌다. 당시 카렌의 키는 163cm였고 적정 체중은 58.45kg이었지만, 실제 체중은 최대 66kg에 달하기도 했다.[70]1973년, 그녀는 콘서트 사진을 보고 자신의 옷차림이 뚱뚱해 보인다고 느꼈다. 개인 트레이너를 고용했지만, 새로운 다이어트가 근육을 만들어 오히려 더 무겁게 느껴지자 트레이너를 해고했다. 이후 운동 기구를 사용하고 칼로리를 계산하는 자신만의 체중 감량 프로그램을 시작하여 약 약 9.07kg를 감량했고, 추가로 약 2.27kg를 더 감량할 계획이었다. 이 시기 그녀의 식습관도 변해, 다른 사람들에게 음식을 맛보게 하며 자신의 몫을 줄이려 했다.[31]
카렌은 언제부터인가 섭식 장애(거식증)로 고통받게 되었다. 1975년 9월까지 카펜터의 몸무게는 약 41.28kg까지 줄었다.[71] 라이브 공연에서 팬들은 그녀의 야윈 모습에 우려를 표했고,[20] 많은 이들이 그녀의 건강 상태에 대해 질문했다. 하지만 그녀는 공개적으로 섭식 장애를 앓고 있다고 밝히기를 거부했으며, 1981년 TV 인터뷰에서는 단순히 "녹초가 되었다"고만 말했다.[32] 결국 건강 문제로 인해 1975년에 예정되었던 일본 공연이 취소되었고, 당시 초청 측에서는 "신경성 식욕부진증"이 원인이라고 발표했다.
1981년, 카펜터는 오빠 리처드에게 자신의 문제와 도움이 필요함을 털어놓았다.[20] 거식증에서 회복된 배우 체리 분과 상담 후, 빠른 해결책을 원했지만 장기 치료가 필요하다는 말을 들었다.[35] 결국 뉴욕의 정신 치료사 스티븐 레벤크론에게 치료를 받기 시작했다.[20][23] 이 시기 카펜터는 신진대사를 높이기 위해 갑상선 호르몬 제제인 레보티록신을 복용했으며, 음식이 소화관을 빨리 통과하도록 하루에 90정에 달하는 많은 양의 완하제를 함께 사용했다.
레벤크론의 치료에도 불구하고 카펜터의 상태는 계속 악화되어 체중이 최저 약 34.93kg까지 떨어졌다. 그녀는 어지럼증과 불규칙한 심장 박동을 호소했다. 1982년 9월, 뉴욕의 레녹스 힐 병원에 입원하여 정맥 주사를 통한 비경구 영양 공급 치료를 받았다. 이 치료로 비교적 짧은 시간에 약 13.61kg의 체중이 늘었지만, 이는 거식증으로 이미 약해진 심장에 큰 부담을 주었다.[38] 이후 그녀는 비교적 안정적인 체중을 유지하려 노력했다.[36][37]
1982년 11월, 카펜터는 캘리포니아로 돌아와 활동 재개를 준비했다.[38] 그해 12월 17일, 셔먼 오크스의 한 학교에서 크리스마스 캐롤을 부른 것이 그녀의 마지막 공연이 되었다. 1983년 1월 11일, 그래미상 역대 수상자 모임에 참석한 것이 마지막 공식 석상이었는데, 다소 허약해 보였지만 활기찬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39] 이 무렵 다시 노래를 쓰기 시작하며 재기에 대한 의지를 보였다.[35]
1983년 2월 4일 아침, 카펜터는 캘리포니아주 다우니에 있는 부모의 집에서 쓰러진 채 발견되었다. 심정지 상태로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오전 9시 51분, 32세의 나이로 사망했다.[40][41] 부검 결과, 사망 원인은 약물 과다 복용이 아닌 "거식증의 결과 또는 그 결과로 인한 에메틴 심독성"으로 밝혀졌다.[38] 사망 당시 그녀의 혈당 수치는 평균치의 10배 이상인 1,110 mg/dL (61.6 mmol/L)였다. 이후 검시관은 심부전의 원인으로 구토 유발제인 이페칵 시럽의 반복적인 사용 가능성을 제기했으나,[38] 담당 의사였던 레벤크론은 이를 부인했다. 친구들은 카펜터가 낮은 체중을 유지하기 위해 완하제와 갑상선 약물을 남용했다고 증언했다.
2. 5. 결혼과 이혼 (1980-1982)
격정적인 로맨스 끝에 캐런 카펜터는 1980년 8월 31일 더 비벌리 힐스 호텔의 크리스탈 룸에서 부동산 개발업자 토머스 제임스 버리스와 결혼했다. 버리스는 이혼한 경험이 있고 18세 아들이 있었으며, 캐런보다 9살 연상이었다. 결혼식 며칠 전 캐런은 새로운 노래 "Because We Are in Love"를 녹음했고, 이 곡은 결혼식에서 하객들에게 들려주었다. 그녀의 오빠 리처드와 존 베티스가 작곡한 이 노래는 1981년에 발매되었다. 부부는 뉴포트비치에 정착했다.그러나 결혼 생활은 오래가지 못했다. 캐런은 아이를 간절히 원했지만, 버리스는 이미 정관 수술을 받은 상태였고 이를 되돌리기를 거부했다.[30] 이러한 의견 불일치는 결혼 생활의 큰 갈등 요소가 되었고, 결국 14개월 만에 파경을 맞았다. 또한 버리스는 자신의 수입 이상으로 생활하며 캐런에게 한 번에 최대 5만달러까지 빌리는 등 경제적인 문제를 일으켰고, 캐런에게는 주식과 채권만 남게 되었다. 캐런의 친구들은 버리스가 참을성이 부족했다고 증언하기도 했다. 친구 카렌 카몬은 이 결혼이 "낙타의 등을 부러뜨린 마지막 지푸라기였다. 그녀에게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일이었다"고 회고했다.
1981년 9월, 캐런은 유언을 수정하여, 결혼 생활을 했던 집과 그 안의 물건들은 버리스에게 남기지만, 그 외의 모든 재산(당시 추정 가치 500만달러에서 1000만달러)은 오빠 리처드와 부모님에게 남긴다고 명시했다. 두 달 뒤인 11월, 레스토랑에서 가족과 식사 후 버리스와 크게 다툰 끝에 두 사람은 별거에 들어갔다. 캐런은 1982년 10월 28일, 뉴욕의 레녹스 힐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이혼 소송을 제기했다.[30] 하지만 이혼 합의서에 서명하기로 예정되었던 1983년 2월 4일 아침, 캐런이 갑작스럽게 사망하면서 법적으로는 이혼 절차가 마무리되지 못하고 기혼 상태로 남게 되었다.
2. 6. 사망 (1983)
1982년 11월 캘리포니아로 돌아온 캐런 카펜터는 활동 재개, 이혼 마무리, 오빠 리처드와 새 앨범 작업을 계획했다.[38] 1982년 12월 17일, 캘리포니아주 셔먼 오크스의 버클리 학교에서 자신의 대자녀들과 친구들을 위해 크리스마스 캐럴을 부른 것이 그녀의 마지막 공연이 되었다. 그녀의 마지막 공식 석상 모습은 1983년 1월 11일, 그래미상 25주년을 기념하는 역대 수상자 모임이었다.[39] 당시 약간 허약해 보였지만 활기찬 모습이었다고 전해진다. 1983년 2월 1일, 리처드를 만나 카펜터즈 활동 재개와 투어 계획을 논의했다.1983년 2월 4일 아침, 캐런 카펜터는 캘리포니아주 다운니에 있는 부모의 집에서 의식을 잃고 쓰러진 채 발견되었다. 발견 당시 심정지 상태였으며, 심장은 1분당 6회 정도로 매우 느리게 뛰고 있었다.[41] 즉시 PIH 헬스 병원 – 다운니로 옮겨졌으나, 오전 9시 51분, 32세의 나이로 사망 선고를 받았다.[40]
장례식은 1983년 2월 8일 다운니 연합 감리교회에서 열렸다. 디온 워윅,[42][43] 도로시 해밀, 올리비아 뉴턴존, 페툴라 클라크 등 동료 연예인과 친구들을 포함한 약 1,000명의 조문객이 참석했다. 당시 별거 중이던 남편 토마스 제임스 버리스는 그녀의 관에 결혼반지를 넣었다. 캐런 카펜터는 캘리포니아주 사이프러스의 포레스트 론 메모리얼 공원에 안장되었다.[42] 2003년, 그녀의 유해는 부모의 유해와 함께 캘리포니아주 웨스트레이크 빌리지에 있는 피어스 브라더스 밸리 오크스 메모리얼 공원의 가족 묘소로 이장되었다.
1983년 3월 11일에 발표된 부검 결과, 사인은 약물 과다 복용이 아닌 "거식증의 결과 또는 그 결과로 인한 에메틴 심독성"으로 규정되었다.[38] 사망 당시 그녀의 혈당 수치는 1,110 밀리그램/데시리터 (61.6 mmol/L)로, 평균치의 10배 이상이었다. 2년 후, 검시관은 카펜터의 심부전이 구토 유도제인 이페칵 시럽의 반복적인 사용 때문일 수 있다고 언급했으나,[38] 그녀를 치료했던 정신 치료사 스티븐 레벤크론은 이 주장을 반박하며 그녀가 이페칵을 사용하거나 구토를 했다는 증거를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카펜터의 친구들은 그녀가 낮은 체중을 유지하기 위해 완하제와 갑상선 약물을 남용했으며, 이는 결혼 생활의 어려움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추측했다.
3. 사후
캐런 카펜터 사후, 그녀의 삶을 다룬 여러 작품이 등장했다. 1987년에는 바비 인형을 이용한 독특한 형식의 영화 ''슈퍼스타: 캐런 카펜터 이야기''가 개봉되었으나, 저작권 침해 문제로 유통이 중단되기도 했다.[58] 1989년에는 신시아 깁 주연의 TV 영화 ''캐런 카펜터 이야기''가 CBS에서 방영되어 카펜터스 음악에 대한 관심을 다시 불러일으켰다.[60][3] 오빠 리처드 카펜터는 ''가까이 당신 곁에: 카펜터스를 기억하며''(1997)[61]와 ''오직 어제: 카펜터스 이야기''(2007) 같은 다큐멘터리 제작에 참여하여 카펜터스를 기렸다. 또한, 그녀의 삶과 음악 세계를 조명하는 전기 ''Little Girl Blueeng''(2010)[62]와 ''Carpenters: The Musical Legacyeng''(2021)[63][64] 등이 출판되었다.
카펜터스의 역사도 참조.
3. 1. 영향
캐런 카펜터는 자신의 외모, 특히 체형에 대해 스스로 과체중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의 키는 163cm였고, 적정 체중은 약 58.45kg으로 여겨졌으나, 한때 체중이 66kg까지 나가기도 했다.[70] 카펜터는 체중 감량을 결심하고 다이어트에 집중했지만, 이는 오히려 그녀의 건강을 심각하게 악화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1975년 9월에는 체중이 41kg까지 줄어들었다.[71]이후 카펜터는 섭식 장애의 일종인 신경성 식욕부진증(거식증) 진단을 받고 오랜 기간 투병했다. 일부에서는 이러한 정신 건강 문제가 부모와의 관계에서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을 제기하기도 했다. 그녀의 건강 문제로 인해 1975년 예정되었던 일본 공연이 취소되었으며, 당시 공연 주최 측은 취소 사유로 "신경성 식욕 부진증"을 공식적으로 언급했다.
결국 카펜터는 1983년, 만 32세의 젊은 나이에 신경성 식욕부진증으로 인한 합병증으로 사망했다. 그녀의 죽음은 대중에게 섭식 장애의 심각성과 위험성을 알리는 중요한 계기가 된 것으로 평가받는다.
3. 2. 평가
버트 바카락은 카렌 카펜터가 "이전에는 들어본 적 없는 매우 독특한 목소리를 가지고 있었다"고 평가했다.[40] 폴 매카트니는 그녀가 "세계 최고의 여성 목소리: 멜로디컬하고, 음감이 뛰어나며, 독특하다"고 극찬했으며,[30] 엘튼 존은 "우리 시대 최고의 목소리 중 하나"라고 칭했다.[54] BBC 다큐멘터리 ''오직 어제: 카펜터스 이야기''에서는 그녀의 친구 니키 친이 존 레논이 로스앤젤레스의 한 식당에서 그녀에게 다가가 "사랑하는 당신, 당신은 정말 훌륭한 목소리를 가지고 있어요"라고 말했다고 전하기도 했다.카펜터는 보컬뿐만 아니라 드러머로서도 높은 평가를 받았다. 그녀의 드럼 연주는 동료 음악가 할 블레인, 커비 오브라이언, 버디 리치, 그리고 ''모던 드러머'' 잡지로부터 칭찬을 받았다.[46] 그녀는 1974년부터[48] 1980년까지[49] 매년 ''플레이보이'' 음악 설문 조사에서 드러머 순위에 이름을 올렸으며, ''플레이보이'' 독자들은 1975년 그녀를 10번째 최고의 드러머로, 1976년에는 10번째 최고의 팝/록 드러머로 선정했다.[50][51] 『예스터데이 원스 모어』 녹음 당시, 오빠 리처드가 전반부만 다시 녹음하기를 원했을 때, 카렌은 정확한 연주 시간과 흔들림 없는 리듬 유지력을 보여주며 후반부와 완벽하게 연결되는 재녹음에 성공했다. 이 일화는 그녀의 뛰어난 리듬감을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된다.[73]
카펜터의 음악은 마돈나, 셰릴 크로우, 팻 메스니, 소닉 유스의 킴 고든, 샤니아 트웨인, 나탈리 임브루글리아, k.d. 랭 등 후대의 여러 중요한 음악가와 가수들에게 영향을 미쳤다.[46][47]
사후에도 그녀에 대한 평가는 이어졌다. 1983년 10월 12일, 카펜터스가 사망한 지 8개월 후, 카펜터스는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에 별을 받았다.[52] 당시 리처드 카펜터는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 연설에서 "오늘은 슬픈 날이지만, 동시에 제 가족과 저에게 매우 특별하고 아름다운 날입니다. 제가 유일하게 아쉬운 점은 캐런이 우리와 함께 이 자리에 물리적으로 함께 할 수 없다는 것이지만, 저는 그녀가 우리의 마음과 영혼 속에 살아있다는 것을 압니다."라고 말했다.

1999년, VH1은 카펜터를 '100명의 위대한 여성 록앤롤 음악가' 목록에서 29위로 선정했으며,[53] 2010년 ''롤링 스톤''은 '역대 가장 위대한 가수 100인' 목록에서 그녀를 94위로 선정하며, 그녀의 목소리를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풍성하고 거의 충격적일 정도로 친밀하다"고 묘사하고 "가장 감상적인 노래조차도 마치 당신의 눈을 직접 바라보는 것처럼 들린다"고 덧붙였다.[54]
카펜터의 죽음은 신경성 식욕부진증과 같은 섭식 장애에 대한 미디어와 대중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되었다.[55] 당시 이 질환은 널리 알려지지 않았었다.[56] 그녀의 가족은 신경성 식욕 부진증 및 기타 섭식 장애 연구를 위한 기금을 모금하는 캐런 A. 카펜터 기념 재단을 설립했다.[57]
3. 3. 추모
캐런 카펜터의 죽음 이후, 작곡가 버트 바카락은 그녀가 "이전에는 들어본 적 없는 매우 독특한 목소리를 가지고 있었다"고 회고했다.[40] 그녀의 노래는 비평가들의 찬사를 받았으며, 마돈나, 셰릴 크로우, 팻 메스니, 소닉 유스의 킴 고든, 샤니아 트웨인, 나탈리 임브루글리아, k.d. 랭 등 여러 중요한 음악가와 가수들에게 영향을 미쳤다.[46][47] 폴 매카트니는 그녀를 "세계 최고의 여성 목소리: 멜로디컬하고, 음감이 뛰어나며, 독특하다"고 평가했으며,[30] 엘튼 존은 "우리 시대 최고의 목소리 중 하나"라고 칭했다.[54] 그녀의 친구 니키 친은 BBC 다큐멘터리 ''오직 어제: 카펜터스 이야기''에서 존 레논이 로스앤젤레스의 한 식당에서 그녀에게 다가가 "사랑하는 당신, 당신은 정말 훌륭한 목소리를 가지고 있어요"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또한 그녀의 드럼 연주는 동료 음악가 할 블레인, 커비 오브라이언, 버디 리치, 그리고 ''모던 드러머'' 잡지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았다.[46] 그녀는 1974년부터[48] 1980년까지[49] 매년 ''플레이보이'' 음악 설문 조사에서 드러머 순위에 이름을 올렸고, ''플레이보이'' 독자들은 1975년에 그녀를 10번째 최고의 드러머로, 1976년에는 10번째 최고의 팝/록 드러머로 선정하기도 했다.[50][51]
1983년 10월 12일, 캐런 카펜터가 사망한 지 8개월 후, 카펜터즈는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에 별을 헌액받았다.[52] 이 자리에서 오빠 리처드 카펜터는 "오늘은 슬픈 날이지만, 동시에 제 가족과 저에게 매우 특별하고 아름다운 날입니다. 제가 유일하게 아쉬운 점은 캐런이 우리와 함께 이 자리에 물리적으로 함께 할 수 없다는 것이지만, 저는 그녀가 우리의 마음과 영혼 속에 살아있다는 것을 압니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1999년, 음악 채널 VH1은 캐런 카펜터를 '100명의 위대한 여성 록앤롤 음악가' 목록에서 29위로 선정했다.[53] 2010년에는 음악 잡지 ''롤링 스톤''이 그녀를 '역대 가장 위대한 가수 100인' 목록에서 94위로 선정하며, 그녀의 목소리를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풍성하고 거의 충격적일 정도로 친밀하다"고 묘사하고 "가장 감상적인 노래조차도 마치 당신의 눈을 직접 바라보는 것처럼 들린다"고 덧붙였다.[54]
캐런 카펜터의 죽음은 신경성 식욕부진증과 같은 섭식 장애에 대한 대중과 미디어의 관심을 높이는 계기가 되었다.[55] 이전까지는 이러한 질환이 널리 알려지지 않았었다.[56] 그녀의 가족은 신경성 식욕 부진증 및 기타 섭식 장애 연구를 위한 기금을 모으는 '캐런 A. 카펜터 기념 재단'(Karen A. Carpenter Memorial Foundationeng)을 설립했다.[57]
한편, 캐런 카펜터는 일부 팬들에게 "리드 시스터"(Lead Sistereng)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는데, 이는 1974년 한 일본 기자가 "리드 싱어"(Lead Singereng)를 잘못 발음한 데서 유래했으며, 그녀는 나중에 라이브 공연에서 이 별명이 적힌 티셔츠를 입기도 했다.
3. 4. 미디어
1987년, 토드 헤인스 감독은 캐런 카펜터의 생애를 다룬 43분짜리 영화 ''슈퍼스타: 캐런 카펜터 이야기''(Superstar: The Karen Carpenter Story)를 제작했다. 이 영화는 등장인물로 바비 인형을 사용했으며, 제목은 카펜터스의 1971년 히트곡 "슈퍼스타"(Superstar)에서 따왔다. 그러나 1990년, 리처드 카펜터가 제기한 저작권 침해 소송에서 헤인스 감독이 패소하면서 영화 유통이 중단되었다.[58] 이후 이 영화는 컬트 영화로 알려졌으며, 2003년 ''엔터테인먼트 위클리''(Entertainment Weekly)가 선정한 최고의 컬트 영화 50선에 포함되기도 했다.[59]1989년 1월 1일에는 CBS에서 TV 영화 ''캐런 카펜터 이야기''(The Karen Carpenter Story)가 방영되었다. 신시아 깁이 캐런 카펜터 역을 맡았으며, "세상의 종말"(The End of the World)을 제외한 모든 노래 장면에서 캐런 카펜터의 실제 목소리에 맞춰 립싱크를 했다. 이 영화와 '슈퍼스타: 캐런 카펜터 이야기' 모두 캐런 카펜터의 결혼 장면에서 "This Masquerade"를 배경 음악으로 사용했다.[60] 이 TV 영화는 방영 이후 카펜터스에 대한 비평적 관심을 다시 불러일으키고 음악의 인기를 높이는 데 기여했다.[3]
리처드 카펜터는 동생 캐런과 카펜터스에 대한 다큐멘터리 제작에 참여했다. 대표적으로 ''가까이 당신 곁에: 카펜터스를 기억하며''(Close to You: Remembering The Carpenters, 1997)[61]와 ''오직 어제: 카펜터스 이야기''(Only Yesterday: The Carpenters Story, 2007)가 있다.
캐런 카펜터에 관한 전기도 여러 권 출판되었다. 랜디 슈미트(Randy Schmidt)는 2010년 ''리틀 걸 블루''(Little Girl Blue)를 출판했으며, 이 책은 다른 공식 전기와는 달리 캐런의 친구 및 동료들과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다른 관점을 제공했다. ''뉴욕 타임스''(The New York Times)는 이 책을 "팝 음악계에서 가장 슬픈 이야기 중 하나"라고 평했다.[62] 2021년에는 크리스 메이(Chris May)와 AP 통신 기자 마이크 시도니 레녹스(Mike Cidoni Lennox)가 리처드 카펜터와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카펜터스: 음악적 유산''(Carpenters: The Musical Legacy)을 출판했다.[63] 이 책은 희귀 사진과 앨범 제작 비하인드 스토리를 담고 있으며, ''골드마인(Goldmine)''은 "카펜터스 사운드 제작 과정과 오늘날 음악 산업에 대한 리처드의 생각을 솔직하고 상세하게 보여준다"고 평가했다.[64]
4. 음반 목록
캐런 카펜터는 주로 오빠 리처드 카펜터와 함께 결성한 듀오 카펜터스의 멤버로 활동하며 많은 음반을 발표했다. 카펜터스의 자세한 음반 목록은 카펜터스 음반 목록 문서에서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캐런 카펜터는 솔로 앨범을 녹음하기도 했으며, 이는 그녀의 사후에 발매되었다. 각 앨범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아래 하위 섹션에서 다룬다.
4. 1. 솔로 앨범
연도 | 제목 | 비고 |
---|---|---|
1996 | '카렌 카펜터' |
연도 | 싱글 | 차트 순위 | 앨범 |
---|---|---|---|
US AC[65] | |||
1966 | "Looking for Love" | — | 논앨범 싱글 |
1989 | "If I Had You" | 18 | Lovelines (카펜터스) |
1996 | "Make Believe It's Your First Time" | — | Karen Carpenter |
4. 2. 카펜터스 앨범
- Offering (나중에 Ticket to Ride로 재발매) (1969)
- Close to You (1970)
- Carpenters (1971)
- A Song for You (1972)
- Now & Then (1973)
- Horizon (1975)
- A Kind of Hush (1976)
- Passage (1977)
- Christmas Portrait (1978)
- Made in America (1981)
- Voice of the Heart (1983)
- An Old-Fashioned Christmas (1984)
- Lovelines (1989)
- As Time Goes By (2001–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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