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존슨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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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폴 존슨은 1928년 맨체스터에서 태어나 2023년 사망한 영국의 작가, 저널리스트, 역사가이다.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교육을 받았으며, 군 복무 후 프랑스 잡지 부편집장으로 일했다. 이후 좌익 정치적 견해를 갖게 되었고, '뉴 스테이츠먼'에서 편집장으로 활동하며 다양한 저술 활동을 펼쳤다. 1970년대 이후 보수주의로 전향하여 '스펙테이터'와 '데일리 메일' 등에 칼럼을 기고했으며, 역사, 종교, 예술 등 다양한 분야의 저서를 펴냈다. 그는 2006년 미국 대통령 자유 훈장을 수여받았으며, 2016년 대영 제국 훈장 사령관으로 임명되었다.
존슨은 맨체스터에서 태어나 스토니허스트 칼리지에서 예수회 교육을 받았다.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역사학자 A. J. P. 테일러의 지도를 받았고, 2급 우등 학위로 졸업 후 병역을 수행했다.[3][4] 군 복무 중 지브롤터에서 프랑코 정권의 잔혹함을 목격했다.[5]
1970년대 후반, 존슨은 노동조합과 좌익을 공격하는 기사를 ''뉴 스테이츠맨''에 기고하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뉴 스테이츠맨''은 우익 언론인들을 다룬 "서방의 허풍선이" 연재 기사를 통해 존슨을 비판했다.[15]
폴 존슨은 1957년 ''수에즈 전쟁''을 시작으로 역사, 종교, 예술, 현대 사회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방대한 저술을 남겼다. 특히 1976년 ''기독교의 역사''[1], 1987년 ''유대인의 역사''를 통해 각각 기독교와 유대인의 역사를 폭넓게 조명했다.
2. 초기 생애 및 경력
군 제대 후 파리의 잡지 ''레알리테''에서 부편집장으로 일하며 저널리스트 경력을 시작했다.[4] 1952년 파리 폭동을 목격하며 좌익 성향을 갖게 되었고, ''뉴 스테이츠먼'' 특파원을 거쳐 1955년 런던으로 돌아와 ''뉴 스테이츠먼''에 합류했다.[6][7] 1957년 수에즈 전쟁에 관한 첫 저서를 출간했고, 이언 플레밍의 소설과 비틀즈에 대한 비판적인 글로 주목받았다.[8][9][10] 1965년부터 1970년까지 ''뉴 스테이츠먼''의 편집장을 역임했다.[13]
2. 1. 유년 시절과 교육
존슨은 맨체스터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윌리엄 알로이시우스 존슨은 미술가이자 스토크온트렌트 벌슬렘에 있는 미술학교 교장이었다. 존슨은 스토니허스트 칼리지에서 예수회식 교육을 받았는데,[3] 이는 옥스퍼드의 더욱 세속적인 교육 과정보다 그가 선호하는 것이었다. 옥스퍼드 재학 중 존슨은 역사가 A. J. P. 테일러에게 지도를 받았으며,[4] 유명한 스터브스 협회의 회원이었다.
2급 우등 학위를 받고 졸업한 존슨은 육군에서 병역을 수행했으며, 킹스 로열 라이플 군단과 육군 교육 군단에 입대하여 장교로 임관하여 주로 지브롤터에 주둔하는 대위 (임시)로 복무했다.[4] 그는 이곳에서 "프랑코 정권의 끔찍한 비참함과 잔혹함"을 보았다.[5]
2. 2. 군 복무 및 저널리즘 입문
2급 우등 학위를 받고 졸업한 존슨은 육군에서 병역을 수행했으며, 킹스 로열 라이플 군단과 육군 교육 군단에 입대하여 장교로 임관하여 주로 지브롤터에 주둔하는 대위 (임시)로 복무했다.[4] 그는 이곳에서 "프랑코 정권의 끔찍한 비참함과 잔혹함"을 보았다.[5] 존슨의 군 경력은 파리의 잡지 ''레알리테''가 그를 고용하는 데 도움이 되었으며,[4] 1952년부터 1955년까지 그곳에서 부편집장으로 일했다.
1952년 5월, 존슨은 파리 폭동에 대한 경찰의 대응을 목격하면서 좌익 정치적 견해를 갖게 되었다. 당시 공산주의자들은 한국 전쟁에서 미 제8군을 지휘하고 NATO 유럽 최고 사령관으로 임명된 매튜 리지웨이 미국 장군의 방문에 항의하며 폭동을 일으켰다. 그는 "그 맹렬함[은] 내가 내 눈으로 보지 않았다면 믿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6] 그 후 그는 ''뉴 스테이츠먼''의 파리 특파원으로 활동했다. 한동안 그는 확신에 찬 베번파였으며 아네이린 베번 본인과도 교류했다. 1955년 런던으로 돌아온 존슨은 ''스테이츠먼''에 합류했다.[7]
2. 3. 뉴 스테이츠먼 시절 (1955-1970)
존슨은 1952년 5월 파리 폭동에 대한 경찰의 대응을 목격하면서 좌익 정치적 견해를 갖게 되었다. 당시 공산주의자들은 한국 전쟁에서 미 제8군을 지휘하고, NATO 유럽 최고 사령관으로 임명된 매튜 리지웨이 미국 장군의 방문에 항의하며 폭동을 일으켰는데, 존슨은 "그 맹렬함[은] 내가 내 눈으로 보지 않았다면 믿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6] 그 후 그는 ''뉴 스테이츠먼''의 파리 특파원으로 활동했다. 한동안 그는 확신에 찬 베번파였으며 아네이린 베번 본인과도 교류했다. 1955년 런던으로 돌아온 존슨은 ''뉴 스테이츠먼''에 합류했다.[7]
존슨의 글 중 일부는 이미 파격적인 조짐을 보였다. 그의 첫 번째 책은 수에즈 전쟁에 관한 것으로 1957년에 출간되었다. ''더 스펙테이터''의 익명의 논평가는 "그[존슨]가 휴 게이츠켈에 대해 한 말 중 하나는 앤서니 에덴 경에 대해 말하는 것만큼이나 치명적이다"라고 썼지만, 노동당이 수에즈 개입에 반대하면서 존슨은 "당의 오래된 투쟁 정신이 돌아왔다"고 주장했다.[8] 이듬해 그는 이언 플레밍의 제임스 본드 소설 ''007 살인번호''를 공격했고,[9] 1964년에는 "비틀즈의 위협"에 대해 경고했는데,[10] 이는 당시 ''더 스펙테이터''의 헨리 페어리에 의해 "다소 과장된" 것으로 묘사되었다.[11]
존슨은 1965년부터 1970년까지 ''뉴 스테이츠먼''의 수석 작가, 부편집장, 편집장을 차례로 역임했다. 그는 당시 보수당 국회의원과 결혼한 레이디 안토니아 프레이저의 사교 모임에 참석하여 의심을 받았다. 존슨의 ''뉴 스테이츠먼'' 편집장 임명에 대해 반대가 있었는데, 특히 작가 레너드 울프가 가톨릭 신자가 그 자리를 맡는 것에 반대했고, 존슨은 6개월의 수습 기간을 거쳤다.[13]
3. 우파로의 전향 (1970년대 이후)
1981년부터 2009년까지 ''스펙테이터''에 칼럼을 기고했는데, 처음에는 미디어 발전에 초점을 맞추다가 나중에는 "그리고 또 다른 것"이라는 제목으로 예술, 교육, 종교 의례 등에서 나타나는 사회적 쇠퇴를 다루었다. 그는 ''데일리 메일''에도 칼럼을 기고했으나, 2001년 유해한 영향을 미친다는 이유로 그만두었다.[16]
존슨은 ''데일리 텔레그래프'', ''뉴욕 타임스'', ''월 스트리트 저널'', ''코멘터리'', ''내셔널 리뷰'', ''포브스'' 등에 기고했다. 1980년대 초에는 루퍼트 머독의 권유로 ''더 선''에 글을 쓰기도 했다.[18]
그는 도덕적 상대주의로 인해 현대성을 비판했으며,[19] 찰스 다윈의 진화 이론을 이용해 무신론을 정당화하는 리처드 도킨스나 스티븐 핑커를 비판했다.[20][21][22] 해방 신학을 이단으로 여겼고 성직자 독신주의를 옹호했지만, 여성 사제 서품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입장을 보였다.[23]
반공주의자였던 존슨은[24] 워터게이트 스캔들에서 리처드 닉슨을 옹호했으며, 빌 클린턴의 위증보다 덜 끔찍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칠레 독재자 아우구스토 피노체트와 스페인 파시스트 독재자 프란시스코 프랑코를 옹호했다.[28]
노먼 라몬트가 주도한 피노체트의 스페인 송환 반대 캠페인에 참여했으며,[29] 인권 잔혹 행위에 대한 증거가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피노체트 독재에 대한 비판이 소련의 선전에서 비롯되었다고 주장했다.[30]
존슨은 프랑스를 "파업, 거리 폭동, 봉쇄로 오류를 처리하는 관료 및 정당 엘리트가 운영하는 공화국"이라고 묘사했다.[31]
1975년 국민투표에서 "No" 캠페인에 참여한 유럽 회의론자였으며, 2010년에는 EU가 관료들에 의해 운영된다고 비판했다.[32]
존슨은 프레스 왕립 위원회 (1974–77)와 케이블청 (1984–1990)에서 활동했다.
4. 저술 활동
존슨은 현대사에 대한 저술도 활발히 펼쳐, 1983년 ''현대 세계의 역사: 1917년부터 1980년대까지'', 1991년 ''현대의 탄생: 세계 사회 1815-1830'', 1997년 ''미국인의 역사'' 등을 통해 19세기부터 20세기까지 세계사를 분석했다.
1988년 ''지식인들''에서는 마르크스, 톨스토이, 사르트르, 촘스키 등 유명 지식인들의 삶과 사상을 비판적으로 조명했으며,[47] 1996년 ''피카소를 지옥으로, 그리고 다른 에세이들''과 같은 논쟁적인 저술을 발표하기도 했다.
예술과 건축 분야에서는 1980년 ''영국 대성당'', 2003년 ''예술: 새로운 역사'' 등을 출간했다.
4. 1. 주요 저서
4. 2. 주제별 저서 목록
존슨의 저서들은 주제 또는 유형별로 나열되어 있으며, 출판 국가는 별도로 명시하지 않는 한 영국이다.- ''수에즈 전쟁''(The Suez War), (Macgibbon & Kee, 1957).
- ''에드워드 3세의 생애와 시대''(The Life and Times of Edward III), (Weidenfeld and Nicolson, 1973).
- ''엘리자베스 1세: 권력과 지성의 연구''(Elizabeth I: A Study in Power and Intellect), (Weidenfeld and Nicolson, 1974).
- ''역사 속의 장소''(A Place in History), (Book Club Associates, 1974).
- ''오프쇼어 아일랜더: 로마 점령 시대부터 현재까지의 잉글랜드 사람들''(The Offshore Islanders: England's People from Roman Occupation to the Present), (Penguin, 1975, 개정판, 1992).
- ''기독교의 역사''(A History of Christianity), (Weidenfeld and Nicolson, 1976).
- 별궁정덕 번역 『기독교 2000년 (상/하)』(교도통신사, 1999년)
- ''사회의 적들''(Enemies of Society), (Weidenfeld and Nicolson, 1977).
- ''고대 이집트 문명''(The Civilization of Ancient Egypt), (Weidenfeld and Nicolson, 1978).
- ''영국 대성당''(British Cathedrals), (Weidenfeld and Nicolson, 1980).
- ''아일랜드, 고난의 땅: 12세기부터 현재까지의 역사''(Ireland, Land of Troubles: A History from the Twelfth Century to the Present Day), (Eyre Methuen, 1980).
- ''자유의 회복''(The Recovery of Freedom), (Blackwell, 1980).
- ''현대 세계의 역사: 1917년부터 1980년대까지''(A History of the Modern World: from 1917 to the 1980s), (Weidenfeld and Nicolson, 1983, 개정판, 1991).
- 별궁정덕 번역 『현대사 1917-1991 (상/하)』(교도통신사, 1992년)
- ''영국인의 역사''(A History of the English People), (Weidenfeld and Nicolson, 1985).
- ''유대인의 역사''(A History of the Jews), (Weidenfeld and Nicolson, 1987).
- 아카와 나오유키・이케다 준・야마다 게이코 번역 『유대인의 역사 (상/하)』(도쿠마 서점, 1999년/도쿠마 문고, 2006년)
- ''지식인들''(Intellectuals), (Harper & Row, 1988).
- 별궁정덕 번역 『지식인들』(교도통신사, 1990년/고단샤 고단샤 학술 문고, 2003년) 후자는 발췌판
-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의 성들''(Castles of England, Scotland, and Wales), (Weidenfeld and Nicolson, 1989).
- ''현대의 탄생: 세계 사회 1815-1830''(The Birth of the Modern: World Society 1815-1830), (Weidenfeld and Nicolson, 1991).
- 별궁정덕 번역 『근대의 탄생 1815-1830년 (전 3권)』(교도통신사, 1995년)
- ''신을 향한 탐구: 개인적인 순례''(The Quest for God: A Personal Pilgrimage), (HarperCollins, 1996).
- 다카하시 테루코 번역 『신의 탐구 — 어떤 역사가의 영혼의 여정』(교도통신사, 1997년)
- ''피카소를 지옥으로, 그리고 다른 에세이들''(To Hell with Picasso, and Other Essays), (Weidenfeld and Nicolson, 1996).
- 스즈키 요시미 번역 『피카소 따위 날려버려 — 폭탄 칼럼집』(교도통신사, 1999년)
- ''미국인의 역사''(A History of the American People), (HarperCollins, 1997).
- 별궁정덕 번역 『미국인의 역사 (전 3권)』(교도통신사, 2001년)
- ''르네상스: 짧은 역사''(The Renaissance: A Short History), (Modern Library, 2000).
- 토미나가 사치코 번역 『르네상스를 살았던 사람들』(랜덤하우스 고단샤, 2006년)
- ''나폴레옹''(Napoleon), (Lipper/Viking Book, 2002).
- 토야마 요시코 번역 『나폴레옹』(이와나미 서점 「펭귄 평전 총서」, 2003년)
- ''예술: 새로운 역사''(Art: A New History), (Weidenfeld and Nicolson, 2003).
- ''조지 워싱턴: 건국의 아버지''(George Washington: the Founding Father), (HarperCollins, 2005).
- ''처칠''(Churchill), (Viking, 2009).
- 야마오카 요이치、다카오 유코 번역, 노나카 이쿠지로 해설 『처칠 불굴의 리더십』(닛케이BP사, 2013년)
- ''소크라테스: 우리 시대의 사람''(SOCRATES : A MAN FOR OUR TIMES), (Viking, 2011).
- 나카야마 하지메 번역 『소크라테스 - 우리 시대의 사람』(닛케이BP사, 2015년)
- ''옥스퍼드 정치 일화집''(The Oxford Book of Political Anecdotes), (옥스퍼드 대학교 출판부, 1986).
4. 2. 1. 앤솔로지, 논쟁 및 현대사
폴 존슨은 1950년대와 1960년대에 ''뉴 스테이츠맨''에 기고한 글들을 모아 1971년에 ''정치가와 국가(Statesmen and Nations)''라는 앤솔로지를 출간했다. 이 책에 실린 글들은 존슨의 후기 저작들에 비해 놀라울 정도로 온건한 어조를 띠고 있다.[47] 1986년에는 ''옥스퍼드 정치 일화집(The Oxford Book of Political Anecdotes)''을 출간했고,[47] 1988년에는 ''지식인: 마르크스에서 톨스토이, 사르트르에서 촘스키까지(Intellectuals: From Marx and Tolstoy to Sartre and Chomsky)''를 출간했다.[47]1994년에는 조지 J. 말린, 리처드 P. 라바틴, 헤더 히긴스가 편집한 ''인용할 만한 폴 존슨: 그의 재치, 지혜, 풍자의 주제별 편집(The Quotable Paul Johnson A Topical Compilation of His Wit, Wisdom and Satire)''이 출간되었다.[47] 또한 같은 해 ''영국, 일어나라 – 후대의 팸플릿(Wake Up Britain – a Latter-day Pamphlet)''을,[47] 1996년에는 ''피카소는 지옥에나 가라 & 기타 에세이: "스펙테이터"지에서 발췌한 글 (To Hell with Picasso & Other Essays: Selected Pieces from "The Spectator")''을 출간했다.[47]
존슨은 논쟁적인 저술 활동도 활발히 펼쳤는데, 1977년 ''사회의 적(Enemies of Society)'',[47] 1980년 ''자유의 회복(The Recovery of Freedom)''을 출간했다.[47]
4. 2. 2. 예술 및 건축
폴 존슨은 예술 및 건축과 관련된 여러 저서를 출간했다.- 1980년: 《영국 대성당(British Cathedrals)》 (Weidenfeld & Nicolson)
- 1993년: 《제럴드 랭: 초상 토마스 깁슨》(Gerald Laing : Portraits Thomas Gibson)》 (Fine Art Ltd, 제럴드 랭, 데이비드 멜러와 공저)
- 1999년: 《줄리안 바로의 런던》(Julian Barrow's London)》 (Fine Art Society)
- 2003년: 《예술: 새로운 역사》(Art: A New History)》 (Weidenfeld & Nicolson)
4. 2. 3. 역사
폴 존슨은 1970년대부터 영국과 세계 역사에 관한 다양한 책을 저술했다. 주요 저서는 다음과 같다.출판 연도 | 제목 |
---|---|
1972 | 도서: 아웃 오브 쇼어 아일랜더: 로마 점령 시대부터 현재/유럽 연합 가입까지의 잉글랜드 사람들 (1985년 도서: 잉글랜드 국민의 역사로, 1998년 도서: 아웃 오브 쇼어 아일랜더: 잉글랜드 국민의 역사로 재출간) |
1974 | 도서: 엘리자베스 1세: 권력과 지성의 연구 |
1974 | 도서: 에드워드 3세의 생애와 시대 |
1976 | 도서: 성지 문명 |
1978 | 도서: 고대 이집트 문명 |
1981 | 도서: 아일랜드: 12세기부터 현재까지의 간결한 역사 |
1983 | 도서: 1917년부터 1980년대까지의 현대 세계사 |
1983 | 도서: 모던 타임스: 192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의 세계사 (이후 2005년까지 개정판 출간) |
1987 | 도서: 유대인 역사 (이후 여러 판본으로 출간) |
1991 | 도서: 현대의 탄생: 세계 사회 1815–1830 |
1997 | 도서: 미국 국민의 역사 |
2000 | 도서: 르네상스: 짧은 역사 |
4. 2. 4. 회고록
- 2004년 ''The Vanished Landscape: A 1930s Childhood in the Potteries영어'' Weidenfeld & Nicolson
- 2010년 ''Brief Lives영어'' Hutchinson
4. 2. 5. 소설
- 1959년 ''Left of Centre'' (맥기번 앤 키) ["Left Of Centre는 무관심한 젊은이와 분노한 늙은 도시의 만남을 묘사한다."][1]
- 1964년 ''Merrie England'' (맥기번 앤 키)[1]
4. 2. 6. 종교
폴 존슨은 종교 관련 저술을 많이 남겼다. 1975년 《요한 23세 교황》을 출간했고, 1977년 《기독교 역사》를 출간하여 기독교 역사에 대한 폭넓은 시각을 제시했다.[1] 1982년 《요한 바오로 2세와 가톨릭 복원》을 통해 가톨릭 교회의 변화를 조명했다.[1]1996년 《신을 향한 탐구: 개인적인 순례》를 통해 개인적인 신앙 여정을 담아냈으며,[1] 1997년 《교황》을 통해 교황 제도에 대한 역사적 고찰을 제시했다.[1] 2010년 《예수: 신자의 전기》를 통해 예수의 생애를 신앙인의 관점에서 서술했다.[1]
4. 2. 7. 여행
- 1973년 조지 게일(George Gale)과 함께 《고원 여행》(The Highland Jaunt)을 콜린스(Collins)에서 출간했다.
- 1974년 《역사 속의 장소: 영국 역사의 장소와 건물》(A Place in History: Places & Buildings of British History)을 오메가(Omega)에서 출간했다. [템스 TV(Thames TV, 영국) 연계]
- 1978년 《내셔널 트러스트 영국 성곽 도서》(National Trust Book of British Castles)를 그래나다 페이퍼백(Granada Paperback)에서 출간했다. [1992년, 바이덴펠트(Weidenfeld) 판본은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의 성》으로 출판]
- 1984년 《에어로필름 런던 상공에서 본 책》(The Aerofilms Book of London from the Air)을 바이덴펠트 & 니콜슨(Weidenfeld & Nicolson)에서 출간했다.
5. 정치 및 사회적 관점
폴 존슨은 정치, 사회 문제에 대해 다양한 견해를 보였다. 1970년대 후반부터 노동조합과 좌익을 비판하는 글을 기고하기 시작했으며, 도덕적 상대주의를 비판하고 진화 이론을 바탕으로 한 무신론에 반대하는 등 보수적인 입장을 견지했다.[19][20][21][22] 가톨릭 신자로서 해방 신학을 이단으로 간주하고 성직자 독신주의를 옹호했지만, 여성 사제 서품에는 긍정적이었다.[23]
반공주의자로서[24] 리처드 닉슨을 옹호하고 아우구스토 피노체트와 프란시스코 프랑코 같은 독재자를 옹호하기도 했다.[28] 유럽 회의론자로서 1975년 국민투표에서 "No" 캠페인에 참여했으며, 유럽 연합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유지했다.[32]
그는 ''스펙테이터'', ''데일리 메일'', ''데일리 텔레그래프'', ''뉴욕 타임스'', ''월 스트리트 저널'' 등 다양한 매체에 글을 기고하며 자신의 관점을 피력했다.[16][18] 프레스 왕립 위원회(1974-77)와 케이블청(1984-1990)에서 활동하기도 했다.
5. 1. 보수주의 및 반공주의
1970년대 후반, 존슨은 ''뉴 스테이츠맨''에 노동조합과 좌익을 비판하는 글을 기고하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뉴 스테이츠맨''은 "서방의 허풍선이"라는 연재 기사를 통해 그의 주장을 반박했다.[15]1981년부터 2009년까지 ''스펙테이터''에 칼럼을 기고했는데, 처음에는 미디어 발전에 초점을 맞추다가 나중에는 "그리고 또 다른 것"이라는 제목으로 예술, 교육, 종교 의례, 개인적 행동 등에서 나타나는 사회적 쇠퇴를 다루었다. 그는 2001년까지 ''데일리 메일''에도 칼럼을 기고했지만, ''데일리 텔레그래프''와의 인터뷰에서 ''데일리 메일''이 사회에 해로운 영향을 미친다고 비판했다.[16]
존슨은 ''데일리 텔레그래프'', ''뉴욕 타임스'', ''월 스트리트 저널'', ''코멘터리'', ''내셔널 리뷰'', ''포브스'' 등 다양한 매체에 글을 기고했다. 1980년대 초에는 루퍼트 머독의 권유로 ''더 선''에 글을 쓰기도 했다.[18]
그는 도덕적 상대주의를 비판하고,[19] 찰스 다윈의 진화 이론을 바탕으로 무신론을 정당화하거나 생명공학 실험을 장려하는 리처드 도킨스, 스티븐 핑커와 같은 사람들에게 반대했다.[20][21][22] 가톨릭 보수주의자인 존슨은 해방 신학을 이단으로 간주하고 성직자 독신주의를 옹호했지만, 여성 사제 서품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입장을 보였다.[23]
존슨은 강력한 반공주의자로,[24] 워터게이트 스캔들에서 리처드 닉슨을 옹호하고, 이란-콘트라 사건에 연루된 올리버 노스보다 닉슨의 은폐 행위가 덜 끔찍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스펙테이터'' 칼럼에서 친구 조나단 에이트킨을 옹호하고, 칠레 독재자 아우구스토 피노체트와 스페인 파시스트 독재자 프란시스코 프랑코에 대한 존경심을 표했다.[28]
노먼 라몬트가 주도한 피노체트의 스페인 송환 반대 캠페인에 적극 참여했으며, 1999년에는 "인권 잔혹 행위와 피노체트를 연결하려는 시도가 많았지만 증거는 없었다"고 주장했다.[29] 2008년 저서 ''영웅들''에서[27] 피노체트 독재에 대한 인권 비판은 소련에서 비롯된 것이며, 소련 선전 기계가 피노체트를 악마화하는 데 성공했다고 주장했다.[30]
존슨은 프랑스를 민주주의가 아닌 "파업, 거리 폭동, 봉쇄로 오류를 처리하는 관료 및 정당 엘리트가 운영하는 공화국"이라고 묘사했다.[31]
그는 1975년 국민투표 당시 "No" 캠페인에서 활동한 유럽 회의론자였다. 2010년에는 "공통 통화, 공통 재정 정책, 공통 정부는 상호 연결되어 있으며, EU는 관료들이 운영한다"고 언급했다.[32]
존슨은 프레스 왕립 위원회 (1974–77)와 케이블청 (1984–1990)에서 활동했다.
5. 2. 유럽 회의론
존슨은 1975년 국민투표 당시 "No" 캠페인에서 두드러진 역할을 한 유럽 회의론자였다. 2010년 존슨은 "공통 통화가 없으면 공통 재정 정책도 가질 수 없고, 공통 재정 정책이 없으면 공통 정부도 가질 수 없다. 이 세 가지는 상호 연결되어 있다. 따라서 이 [유럽 통합]은 완전히 예측 가능했다. EU에는 그다지 신중한 생각과 판단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전적으로 관료들이 운영한다"고 언급했다.[32]5. 3. 현대성 비판
1970년대 후반, 존슨은 ''뉴 스테이츠맨''에 노동조합과 좌익을 비판하는 글을 기고했다. 이에 ''뉴 스테이츠맨''은 "서방의 허풍선이"라는 연재 기사를 통해 존슨을 비판했다.[15]1981년부터 2009년까지 ''스펙테이터''에 칼럼을 기고했는데, 처음에는 미디어 발전에 초점을 맞추다가 나중에는 "그리고 또 다른 것"이라는 제목으로 예술, 교육, 종교 의례, 개인적 행동 등에서 나타나는 사회적 쇠퇴를 다루었다. 2001년까지 ''데일리 메일''에 칼럼을 기고했으나, 2003년 ''데일리 텔레그래프''와의 인터뷰에서 ''데일리 메일''이 유해한 영향을 미친다고 비판했다.[16]
존슨은 ''데일리 텔레그래프'', ''뉴욕 타임스'', ''월 스트리트 저널'', ''코멘터리'', ''내셔널 리뷰'', ''포브스'' 등에서 서평가로 활동했다. 1980년대 초 루퍼트 머독의 권유로 ''더 선''에 글을 쓰기도 했다.[18]
도덕적 상대주의를 이유로 현대성을 비판했으며,[19] 찰스 다윈의 진화 이론을 바탕으로 무신론을 정당화하거나 생명공학 실험을 장려하는 리처드 도킨스, 스티븐 핑커 등을 비판했다.[20][21][22] 해방 신학을 이단으로 간주했고, 성직자 독신주의를 옹호했지만, 여성 사제 서품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입장을 보였다.[23]
반공주의자였던 존슨은[24] 워터게이트 스캔들에서 리처드 닉슨을 옹호했고, 이란-콘트라 사건에 연루된 올리버 노스보다 닉슨의 은폐 행위가 덜 끔찍하다고 주장했다. ''스펙테이터'' 칼럼에서 친구 조나단 에이트킨을 옹호하고, 칠레 독재자 아우구스토 피노체트와 스페인 파시스트 독재자 프란시스코 프랑코에 대한 존경심을 표했다.[28]
1998년 런던에서 체포된 피노체트의 스페인 송환을 막기 위한 캠페인에 참여했다. 1999년 "인권 잔혹 행위와 피노체트를 연결하려는 시도가 많았지만 증거는 없었다"고 주장했다.[29] 2008년 저서 ''영웅들''에서[27] 피노체트 독재에 대한 인권 비판이 소련에서 비롯되었으며, 소련 선전 기계가 피노체트를 악마화했다고 주장했다.[30]
존슨은 프랑스를 민주주의가 아닌 "파업, 거리 폭동, 봉쇄로 오류를 처리하는 관료 및 정당 엘리트가 운영하는 공화국"이라고 묘사했다.[31]
유럽 회의론자였던 존슨은 1975년 국민투표에서 "No" 캠페인에 참여했다. 2010년 "공통 통화, 공통 재정 정책, 공통 정부는 상호 연결되어 있다. EU는 관료들이 운영한다"고 언급했다.[32]
프레스 왕립 위원회 (1974–77)와 케이블청 (1984–1990)에서 활동했다.
6. 사생활
폴 존슨은 1958년부터 심리 치료사이자 전 노동당 국회의원 후보인 마리골드 헌트와 결혼했다. 그녀는 윈스턴 처칠, 클레멘트 애틀리, 앤서니 에덴의 주치의였던 토마스 헌트의 딸이다. 폴 존슨 부부는 세 아들과 딸 하나를 두었다. 장남 다니엘 존슨[33]은 언론인이자 프리랜서 작가이며 잡지 ''스탠드포인트''의 편집자이고, 이전에 ''데일리 텔레그래프''의 부편집자였다. 차남 루크 존슨[33]은 사업가이자 전 채널 4 텔레비전 회장이다. 딸 소피 존슨-클라크는 독립 텔레비전 임원이며, 막내 아들 코스모 존슨은 극작가이다. 폴과 마리골드 존슨은 10명의 손주를 두었다. 마리골드 존슨의 여동생 사라(Sarah)는 언론인이자 전 외교관, 정치인인 조지 월든과 결혼했고, 그들의 딸 셀리아 월든은 텔레비전 진행자이자 전 신문 편집자인 피어스 모건과 결혼했다.[34]
1998년, 존슨이 프리랜서 언론인 글로리아 스튜어트와 11년 동안 불륜 관계를 가졌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스튜어트는 "영국 타블로이드의 지시"에 따라 존슨의 서재에서 그들이 함께 있는 모습을 녹음했다.[35][36][37] 그녀는 처음에는 존슨의 종교와 가족 가치에 대한 위선에 반대하여 불륜 사실을 공개했다고 주장했지만, 나중에는 존슨이 "다른 여자친구를 사귀었을 때" 불륜 관계가 끝났다고 인정했다.[38]
존슨은 열렬한 수채화가였다.[1] 그는 또한 극작가 톰 스토파드의 친구였으며, 스토파드는 1978년 희곡 ''나이트 앤 데이''를 그에게 헌정했다.
존슨은 2023년 1월 12일 런던 자택에서 94세의 나이로 사망했다.[1][39]
7. 서거
8. 서훈
- 2006년 미국 대통령 자유 훈장
- 2016년 대영 제국 훈장 3등급(CBE)[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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