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 우르스 폰 발타자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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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스 우르스 폰 발타자르는 스위스 출신의 가톨릭 신부이자 신학자이다. 그는 20세기 후반 가장 영향력 있는 신학자 중 한 명으로, 미학, 드라마, 논리를 아우르는 방대한 신학적 저술을 남겼다. 예수회에서 활동하다가 탈퇴 후, 아드리엔 폰 슈파이어와 협력하여 '요한 공동체'를 설립했다. 그의 주요 저서로는 삼부작인 《주님의 영광》, 《신학적 드라마》, 《신학적 논리》 등이 있으며, 칼 바르트의 신학을 분석한 책도 유명하다. 발타자르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추기경으로 임명될 예정이었으나, 서임식 직전에 사망했다. 그의 사상은 교황 베네딕토 16세 등 많은 이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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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스 우르스 폰 발타자르 - [인물]에 관한 문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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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애
한스 우르스 폰 발타자르는 스위스 루체른에서 태어나, 오스트리아 펠트키르히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빈과 베를린에서 독일 문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1929년 예수회에 입회하여 바젤에서 포교 활동을 시작했으며, 이후 쿠어로 거점을 옮겼다. 사제 서품 후에는 칼 라너와 개신교 신학자 칼 바르트와의 대화로 주목받았다.[58]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시대에 추기경으로 추천되었으나, 서임 전에 세상을 떠났다.
2. 1. 초기 생애 (1905-1929)
발타자르는 어린 시절, 할머니가 운영하는 펠스베르크 호텔 펜션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이곳에서 그는 전기 작가 Peter Henrici가 언급한 것처럼 "3개 국어(독일어, 프랑스어, 영어)가 당연하게 여겨지는" "국제적인" 분위기에 정기적으로 노출되었다.[19] 절대 음감을 가진 한스는 특히 슈베르트, 차이콥스키, 말러와 같은 클래식 음악에 몰두했으며, 이러한 관심은 청년기까지 이어졌다. 그는 "피아노를 치며 끝없는 시간을 보냈다"고 직접 말했다.[20] 비엔나에서 대학 공부를 하는 동안, 그는 룸메이트 Rudolf Allers와 거의 매일 밤 피아노 4중주(4 hands)를 연주했으며, 훗날 예수회 사제가 되어서는 모차르트의 ''돈 조반니''를 기억을 되살려 연주하기도 했다.[21]발타자르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고, "흔들림 없는 믿음"과 "우리 성모님에 대한 헌신"을 가지고 있었지만, 대학교에 다니기 전까지는 신학이나 영성에 거의 관심이 없었다.[20] 빈 대학교에서 무신론이 만연했던 그는 한스 아이블과 가톨릭으로 개종한 친구 루돌프 알러스의 영향을 받았다.[20][28] 베를린에서 공부하면서 신학자 로마노 과르디니의 강의를 듣기도 했다.[29]
1929년 발타자르는 빌렌에서 열린 학생들을 위한 피정 모임에 참석했고,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라는 갑작스러운 부르심을 느꼈다고 믿었다. 그는 이 경험을 로욜라의 이냐시오를 통해 받은 것으로 이해했으며, 훗날 "나는 그를 선택하지 않았다. 그는 번개처럼 나를 불태웠다"고 썼다.[31]
> 오늘날 [1959년]에도, 30년이 지난 후에도 나는 바젤에서 멀지 않은 검은 숲 속에서 잃어버린 길 위의 나무를 다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그 나무 아래에서 번개에 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다.... 그 순간 내 마음에 스쳐 지나간 것은 신학도, 사제직도 아니었다. 오직 이것뿐이었다. 선택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 너는 부름을 받았다. 너는 섬기지 않을 것이다. 다른 이가 너를 사용할 것이다. 너는 계획을 세울 것이 없다. 너는 오래전에 준비된 모자이크의 작은 타일일 뿐이다. 나는 계획도, 소망도, 생각도 없이 오직 "모든 것을 버리고 따르라"는 것만 필요했다. 나는 그저 거기 서서 기다리며 내가 무엇에 사용될지 지켜보기만 하면 되었다. 그리고 그렇게 되었다.[30]
1929년 11월 18일, 발타자르는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남부 독일에서 예수회에 들어갔다.[32] 당시 스위스에서는 헌법에 의해 예수회 활동과 사역이 금지되어 있었다.[33]

2. 1. 1. 출생과 가정 환경

발타자르는 1905년 8월 12일 스위스 루체른의 명문가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오스카 루드비히 카를 폰 발타자르(1872–1946)는 교회 건축가였으며, 그의 어머니 가브리엘 피에츠커(1929년 사망)는 Schweizerischer Katholischer Frauenbund|스위스 가톨릭 여성 연맹de을 설립하는 데 기여했다. 피에츠커는 1945년 소련 군인들이 술에 취해 여성들을 보호하려다 사살된 헝가리 주교 복자 빌모스 아포르와 친척 관계였다.[16] 오스카와 가브리엘은 세 자녀를 두었다. 한스 우르스는 장남이었다. 그들의 아들 디터는 스위스 근위대에 입대했다. 그들의 딸 르네(1908–1986)는 Franciscan Sisters of Sainte-Marie des Anges|Franciscaines de Sainte Marie des Anges프랑스어의 총장이 되었다.[17] 한스 우르스는 나중에 그의 가족에 대해 "단도직입적인 가톨릭 신자... 나는 의심에 얽매이지 않는 똑같이 단도직입적인 신앙을 가지고 자랐다. 나는 루체른의 프란체스코 교회 성가대에서 혼자 드렸던 조용하고 감동적인 새벽 미사와, 내가 놀랍도록 아름답다고 생각했던 예수회 교회에서의 10시 미사를 여전히 기억한다."라고 묘사했다.[18]
2. 1. 2. 교육 과정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그는 스위스 중부에 있는 엥겔베르크 수도원 학교에서 베네딕토회 수도사들에게 교육을 받았다. 이후 오스트리아 펠트키르히에 있는 예수회 운영 예비학교인 슈텔라 마투티나로 전학했는데, 이곳은 아르투르 코난 도일[22]과 토마스주의 추기경 프란츠 에를레[23]를 졸업생으로 둔 학문적으로 더 엄격한 학교였다. 발타자르는 음악 외에도 문학에 깊은 관심을 보였으며, 단테 알리기에리와 요한 볼프강 폰 괴테를 중요한 초기 영향력으로 꼽았다.[24]그는 슈텔라 마투티나 졸업 1년 전 취리히 대학교에 조기 입학하여 독일 문학을 공부했다. 빈과 베를린에서 연구를 계속한 후, 1928년 독일 및 독일어권 사상에서 종말론을 주제로 한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 논문은 가톨릭 신학에 크게 의존했다.[25] 1980년대에 그는 이 논문에 대해 "그 근본적인 충동은 ... 종종 숨겨진 현대 독일 문학의 위대한 인물들의 궁극적인 종교적 태도를 드러내려는 열망이었다. 나는 그들이 말하자면 '고백'하게 하고 싶었다. 이 연구는 성숙도가 부족했고 — 대부분의 장은 다시 써야 하지만 —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중 일부는 여전히 유효할 수 있다."라고 회고했다.[26] 헨리치에 따르면, 이러한 성격의 논문을 "자유주의 개신교" 취리히 대학교에 제출하는 것은 당시 학생에게 학문적으로 위험했지만, 교수는 발타자르에게 ''최우수''로 박사 학위를 수여했다.[27]
2. 2. 예수회 입회와 활동 (1929-1950)
1945년, 발타자르는 『세계의 심장』(Das Herz der Welt) 출판과 함께 여러 어려움을 겪었다.[58] 스위스 공영 라디오 크리스마스 설교는 예수회 활동 금지 조항으로 인해 취소되었고, 1946년에는 아버지와 대모, 친구이자 동료인 로베르트 라스트가 사망했다.[50]같은 해, 예수회는 발타자르가 아드리엔 폰 슈파이어와 함께 설립한 세속 연구소인 성 요한 공동체에 대한 책임을 질 수 없다고 통보했다.[51] 그는 예수회 총장 장-밥티스트 얀센스의 요청으로 30일간 피정을 했고, 그 결과 사제직을 유지하면서 성 요한 공동체와 협력하기 위해 예수회를 떠나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52] 1950년, 발타자르는 공식적으로 예수회를 떠났다.[53] 몇 달 후 그는 종교적 서약을 갱신했다. 예수회 탈퇴 직전, 루트비히 막시밀리안 뮌헨 대학교는 로마노 과르디니의 후임으로 교수직을 제안했지만 그는 거절했다.[54] 그는 1956년 쿠어 교구에 환속되어 평신도 사제가 되기 전까지 교회에서 성직 역할을 맡지 않았다.
예수회를 떠난 후, 발타자르는 독일 전역에서 강연을 하며 생계를 유지하고 요하네스 출판사 운영을 도왔다.[55] 젊은이들을 위한 피정도 계속 제공했다. 1950년부터 1956년 사이, 『리지외의 테레즈』(''Thérèse of Lisieux'') (1950), 『성채의 파괴』(''Razing the Bastions'') (1952) 등 다수의 저서를 출간했다. 이 시기 저술의 대부분은 교황 비오 12세의 사도적 헌장 『Provida Mater Ecclesia』 발표 이후, 그리스도교 제자가 세상 안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과 관련되어 있다.[56]
쿠어 교구에서 환영받은 후, 바젤시에 정착하여 친구 부부와 아드리엔 폰 슈파이어의 집에 머물렀다. 1958년 백혈병 진단을 받았지만,[57] 1967년까지 그들의 집에서 지내면서 7권으로 된 『주님의 영광』(The Glory of the Lord) (1961–1967)을 집필하는 등 왕성한 저술 활동을 이어갔다. 이 책은 미, 선, 진이라는 세 가지 초월관념에 대한 신학적 삼부작의 첫 번째 부분이었다.
2. 2. 1. 예수회 입회
1929년에 예수회에 입회하여 바젤에서 포교 활동을 시작했다.[58] 이후 스위스의 쿠어로 활동 거점을 옮겼다. 사제가 된 후에는 같은 예수회 소속인 칼 라너와 개신교 신학자 칼 바르트와 대화를 나누며 주목을 받았다.2. 2. 2. 신학 연구와 사목 활동
1969년, 교황 바오로 6세는 발타자르를 국제 신학 위원회에 임명했다.[59] 1971년 주교 시노드 제2차 정기 총회에서 신학 서기로 활동하며 사제 영성에 관한 시노드 문서를 집필했고, 바이에른 가톨릭 아카데미에서 Romano-Guardini-Preis|로마노 과르디니 상de을 수상했다.[59] 요제프 라칭거, 앙리 드 뤼박과 함께 1971년 국제 신학 저널 ''코뮤니오''(Communio)를 창간했으며, 안젤로 스콜라를 포함한 이탈리아 친교와 해방 운동 회원들과 협력했다.[60] 이 저널은 진보적인 ''공의회''(Concilium)에 대한 보다 전통적인 대안으로 구상되었으며, 발타자르는 용기라는 측면에서 그 사명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우리가 믿는 이 진리는 우리를 벌거벗게 만든다. 마치 늑대 떼 속의 어린 양과 같다. 이것은 허세의 문제가 아니라, 위험에 자신을 노출시키는 기독교적 용기의 문제이다."[61] 카롤 보이티야는 이 저널의 폴란드어판 편집자가 되었다.1970년대 후반, 발타자르는 번역 관련 상 외에도 대영 학술원과 아카데미 데스 사이언스 모랄레 에 폴리티크에서 펠로우십을 받았다. 1984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그의 신학적 기여를 기리기 위해 첫 번째 바오로 6세 국제상을 수여했다.[53] 이듬해에는 아드리아나 폰 슈페이어의 삶과 업적에 관한 공식적인 바티칸 심포지엄이 열렸으며, 교황의 칭찬 연설로 마무리되었다.
2. 2. 3. 아드리엔 폰 슈파이어와의 만남
1945년, 발타자르는 『세계의 심장』(Das Herz der Welt)을 출판한 해에 여러 어려움에 직면했다.[58] 스위스 공영 라디오에서 크리스마스 설교를 할 예정이었으나, 예수회 활동에 대한 국가 헌법상의 금지로 인해 마지막 순간에 취소되었다. 1946년 6월에는 그의 아버지가, 얼마 지나지 않아 대모도 세상을 떠났다. 같은 해 5월에는 슐룽스게마인샤프트에서 그의 친구이자 협력자였던 예수회 수련자 로베르트 라스트가 결핵으로 사망했다.[50]같은 해, 예수회 상사들은 그에게 예수회가 아드리엔 폰 슈파이어와 함께 조직하기 시작한 세속 연구소인 성 요한 공동체에 대해 책임을 질 수 없다고 통보했다.[51] 그는 "교회에서 특정한 임무를 수행하도록 하느님께 부름받았다"고 느껴, 예수회 총장 장-밥티스트 얀센스의 요청에 따라 30일간의 피정을 했다. 그곳의 지도자는 발타자르가 사제로 남으면서도 성 요한 공동체와 협력하기 위해 예수회에서 떠나야 한다고 확신했다. 발타자르는 이것을 "매우 심각한" 단계로 여겼고,[52] 1950년에 공식적으로 예수회를 떠났다.[53]
2. 3. 예수회 탈퇴와 새로운 시작 (1950-1988)
발타자르는 1961년부터 1987년까지 16권 분량의 조직신학 "삼부작"과 ''에필로그''를 출판했다. 이 삼부작은 ''Herrlichkeit''(《주님의 영광》), ''Theodramatik''(《신학적 드라마》), ''Theologik''(《신학적 논리》)의 세 부분으로 나뉜다. 이들은 요한 복음서의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라"는 예수의 자기 묘사와 초월론인 ''bonum''(선), ''verum''(진), ''pulchrum''(미)을 따른다.[67][68] 삼부작은 아름다움(''pulchrum'')에 대한 연구인 ''Herrlichkeit''로 시작한다.''주님의 영광''(''Herrlichkeit'')은 신학 미학에 관한 7권의 작품이다. 이 삼부작에서 가장 자주 인용되는 구절은 첫 번째 권인 ''형상의 관조''(''Schau der Gestalt'')에 있다. "아름다움 앞에서, 아니, '앞에서'가 아니라 아름다움 '안에서' 전 인격이 떨린다. 그는 아름다움에 감동을 '받는' 것뿐만 아니라, 스스로가 그 아름다움에 의해 감동받고 사로잡히는 것을 경험한다."[13]
2. 3. 1. 예수회 탈퇴
카를 라너와 버나드 로너건과 함께 발타자르는 전통적인 가톨릭 사상에 도전하는 서구 근대성에 대한 응답을 제시하고자 했다.[13] 라너가 근대성에 대한 진보적이고 포용적인 입장을 제시했고, 로너건이 근대성을 비판적으로 수용하려는 역사 철학을 제시한 반면, 발타자르는 근대성의 환원주의와 인간 중심에 저항하며, 기독교가 현대적 감성에 더 도전적이기를 원했다.[13] [65] 발타자르는 그의 접근 방식, 자료 및 관심사에 있어 절충적이며 범주화하기 어렵다.[13] 그의 절충주의의 한 예는 영향력 있는 개혁파 스위스 신학자 칼 바르트와의 오랜 연구와 대화였으며, 그는 바르트의 저작에 대한 최초의 가톨릭 분석 및 응답을 썼다. 발타자르가 바르트의 저작에 대한 주요 분석점에 대해 논쟁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저서 ''칼 바르트의 신학: 해설과 해석'' (1951)은 그의 예민함과 통찰력으로 인해 고전으로 남아 있다; 바르트 자신도 그의 신학적 사업에 대한 이 분석에 동의하며, 자신의 신학에 대한 최고의 책이라고 불렀다.[66] 발타자르의 저작에서 독특한 생각은 우리가 태어난 후 처음으로 경험하는 것이 어머니의 사랑의 얼굴이며, 여기서 "나"는 처음으로 "너"와 마주하고, "너"는 사랑과 양육의 관계에서 미소를 짓는다는 것이다.[13]1929년에 예수회에 입회하여 바젤에서 포교 활동을 시작했다. 그 후 스위스의 쿠어라는 도시로 활동 거점을 옮겼다. 사제가 된 후 같은 예수회 소속인 칼 라너와 개신교 신학자 칼 바르트와의 대화가 주목을 받았다.
2. 3. 2. 저술 활동과 국제적 인정
카를 라너와 버나드 로너건과 함께 발타자르는 전통적인 가톨릭 사상에 도전하는 서구 근대성에 대한 응답을 제시하고자 했다.[13] 라너가 근대성에 대한 진보적이고 포용적인 입장을 제시했고, 로너건이 근대성을 비판적으로 수용하려는 역사 철학을 제시한 반면, 발타자르는 근대성의 환원주의와 인간 중심에 저항하며, 기독교가 현대적 감성에 더 도전적이기를 원했다.[13][65] 발타자르는 그의 접근 방식, 자료 및 관심사에 있어 절충적이며 범주화하기 어렵다.[13] 그의 절충주의의 한 예는 영향력 있는 개혁파 스위스 신학자 칼 바르트와의 오랜 연구와 대화였으며, 그는 바르트의 저작에 대한 최초의 가톨릭 분석 및 응답을 썼다. 발타자르가 바르트의 저작에 대한 주요 분석점에 대해 논쟁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저서 ''칼 바르트의 신학: 해설과 해석''(1951)은 그의 예민함과 통찰력으로 인해 고전으로 남아 있다. 바르트 자신도 그의 신학적 사업에 대한 이 분석에 동의하며, 자신의 신학에 대한 최고의 책이라고 불렀다.[66] 발타자르의 저작에서 독특한 생각은 우리가 태어난 후 처음으로 경험하는 것이 어머니의 사랑의 얼굴이며, 여기서 "나"는 처음으로 "너"와 마주하고, "너"는 사랑과 양육의 관계에서 미소를 짓는다는 것이다.[13]발타자르는 1961년부터 1987년 사이에 출판된 16권 분량의 조직신학 "삼부작"으로 더 잘 알려져 있으며, 마지막으로 ''"에필로그"''가 추가되었다. 이 삼부작은 세 부분으로 나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즉, ''Herrlichkeit''(《주님의 영광》), ''Theodramatik''(《신학적 드라마》), 그리고 ''Theologik''(《신학적 논리》)이다. 이들은 요한 복음서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라")에서 예수의 세 가지 자기 묘사, 그리고 따라서 초월론인 ''bonum''(선), ''verum''(진), 그리고 ''pulchrum''(미)을 따른다.[67][68] 비록 이 삼부작이 아름다움, 즉 ''pulchrum''에 대한 연구인 ''Herrlichkeit''로 시작하지만 말이다.
스위스 루체른에서 태어난 발타자르는 오스트리아의 펠트키르히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빈과 베를린에서 독일 문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1929년에 예수회에 입회하여 바젤에서 포교 활동을 시작했고, 이후 스위스의 쿠어로 활동 거점을 옮겼다. 사제가 된 후 같은 예수회 소속인 칼 라너와 개신교 신학자 칼 바르트와의 대화가 주목을 받았다. 교황요한 바오로 2세 시대에 추기경으로 추천받았으나, 실현되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
2. 3. 3. 죽음과 유산
카를 라너, 버나드 로너건과 함께 발타자르는 서구 근대성에 대한 응답을 제시하고자 했다.[13] 라너가 근대성에 대한 진보적이고 포용적인 입장을 제시했고, 로너건이 근대성을 비판적으로 수용하려는 역사 철학을 제시한 반면, 발타자르는 근대성의 환원주의와 인간 중심에 저항하며, 기독교가 현대적 감성에 더 도전적이기를 원했다.[13]rp|262영어[65] 발타자르는 그의 접근 방식, 자료 및 관심사에 있어 절충적이며 범주화하기 어렵다.[13]rp|2영어 그의 절충주의의 한 예는 영향력 있는 개혁파 스위스 신학자 칼 바르트와의 오랜 연구와 대화였으며, 그는 바르트의 저작에 대한 최초의 가톨릭 분석 및 응답을 썼다. 발타자르가 바르트의 저작에 대한 주요 분석점에 대해 논쟁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저서 ''칼 바르트의 신학: 해설과 해석''(1951)은 그의 예민함과 통찰력으로 인해 고전으로 남아 있다. 바르트 자신도 그의 신학적 사업에 대한 이 분석에 동의하며, 자신의 신학에 대한 최고의 책이라고 불렀다.[66] 발타자르의 저작에서 독특한 생각은 우리가 태어난 후 처음으로 경험하는 것이 어머니의 사랑의 얼굴이며, 여기서 "나"는 처음으로 "너"와 마주하고, "너"는 사랑과 양육의 관계에서 미소를 짓는다는 것이다.[13]rp|236영어''하늘의 영광''(''Herrlichkeit'')은 신학 미학에 관한 7권으로 구성된 작품이다. 이 3부작에서 가장 자주 인용되는 구절 중 하나는 첫 번째 권인 ''형상의 관조''(''Schau der Gestalt'')에서 발췌되었다. "아름다움 앞에서, 아니, '앞에서'가 아니라 아름다움 '안에서' 전 인격이 떨린다. 그는 아름다움에 감동을 '받는' 것뿐만 아니라, 스스로가 그 아름다움에 의해 감동받고 사로잡히는 것을 경험한다."[13]rp|270영어
''하늘의 영광''(''Herrlichkeit'')의 구성은 다음과 같다.
권 | 제목 | 출판 연도 |
---|---|---|
1 | 형상의 관조 (Schau der Gestalt) | 1961 |
2 | 스타일의 영역: 성직자적 스타일 (Fächer der Stile: Klerikale Stile) | 1962 |
3 | 스타일의 영역: 평신도적 스타일 (Fächer der Stile: Laikale Stile) | 1962 |
4 | 형이상학의 영역: 고대 (Im Raum der Metaphysik: Altertum) | 1965 |
5 | 형이상학의 영역: 현대 (Im Raum der Metaphysik: Neuzeit) | 1965 |
6 | 신학: 옛 언약 (Theologie: Alter Bund) | 1967 |
7 | 신학: 새 언약 (Theologie: Neuer Bund) | 1967 |
발타자르는 5권으로 구성된 "신학적 드라마 이론"을 통해 성금요일, 성 토요일, 부활절 사건에서 나타나는 하느님의 행위와 인간의 반응, 특히 윤리와 선함에 대해 고찰했다. 이 저작에서는 구원론, 기독론, 종말론이 전개된다.[70][26]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본성(그리스도론)과 현실 자체(존재론)의 관계에 대한 진리를 설명하는 "신학적 논리 이론"에 관한 3권의 저작을 썼다.
노트르담 대학교의 시릴 오레건에 따르면, "아퀴나스는 3,000 페이지에 달하는 ''하늘의 영광''에서 거의 빠짐없이 등장하며", "3부작 전체에서 아퀴나스를 가톨릭 교회의 '유일한' 철학자이자 신학자로 간주하는 토마스주의적 승리주의의 흔적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69]
발타자르는 스위스 루체른에서 태어났다. 오스트리아의 펠트키르히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빈과 베를린에서 독일 문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1929년에 예수회에 입회하여 바젤에서 포교 활동을 시작했다. 그 후 스위스의 쿠어로 활동 거점을 옮겼다. 사제가 된 후 같은 예수회 소속인 칼 라너와 개신교 신학자 칼 바르트와의 대화가 주목을 받았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시대에 추기경으로 추천받았으나, 실현되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
3. 주요 사상
발타자르는 성인과 교부들의 삶을 기독교인의 삶의 예시로 제시하며, 자신의 신학을 관상 기도와 깊이 연결된 "무릎 꿇는 신학"이자 가톨릭 교회의 인도에 따르는 "앉는 신학"이라고 묘사했다.[13] 그는 자신의 신학이 아드리엔 폰 스파이어의 신비로운 경험과 분리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71]
발타자르는 바빌론의 창녀라는 용어가 특정 전통에서 허용될 수 있다고 주장하며 "Casta Meretrix"라는 표현을 사용했다.[72]
1987년 저서 『우리는 희망해도 되는가?』에서 발타자르는 보편주의 또는 아포카타스타시스를 옹호했다는 비난을 받았으나,[101][74][75][76] 그는 보편적 구원 교리를 비난하고 멸망 가능성을 긍정하며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를 희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82][83][84]
랄프 마틴과 제임스 오코너는 발타자르의 보편주의 부정이 불완전하다고 주장한다.[85][86] 에디트 슈타인은 모든 사람에게 자비로운 사랑이 내려갈 수 있지만, 영원히 닫힌 영혼이 있을 가능성을 부정할 수 없다고 썼다.[87]
나치즘 이후, 에디트 슈타인은 최종적인 손실 가능성이 더 현실적이라고 보았다.[88]
발타자르는 이단 혐의에 대해 "희망하는 것과 아는 것을 어떻게 동일시할 수 있는가?"라고 반문했다.[91]
3. 1. 신학적 미학 (Herrlichkeit)
''하늘의 영광''(''Herrlichkeit'')은 신학 미학에 관한 7권으로 구성된 작품이다. 이 3부작에서 가장 자주 인용되는 구절 중 하나는 첫 번째 권인 ''형상의 관조''(''Schau der Gestalt'')에서 발췌되었다. "아름다움 앞에서, 아니, '앞에서'가 아니라 아름다움 '안에서' 전 인격이 떨린다. 그는 아름다움에 감동을 '받는' 것뿐만 아니라, 스스로가 그 아름다움에 의해 감동받고 사로잡히는 것을 경험한다."[13]
''하늘의 영광''(''Herrlichkeit'')의 구성은 다음과 같다.
권 | 제목 | 출판 연도 |
---|---|---|
1 | 형상의 관조 (Schau der Gestalt) | 1961 |
2 | 스타일의 영역: 성직자적 스타일 (Fächer der Stile: Klerikale Stile) | 1962 |
3 | 스타일의 영역: 평신도적 스타일 (Fächer der Stile: Laikale Stile) | 1962 |
4 | 형이상학의 영역: 고대 (Im Raum der Metaphysik: Altertum) | 1965 |
5 | 형이상학의 영역: 현대 (Im Raum der Metaphysik: Neuzeit) | 1965 |
6 | 신학: 옛 언약 (Theologie: Alter Bund) | 1967 |
7 | 신학: 새 언약 (Theologie: Neuer Bund) | 1967 |
노트르담 대학교의 시릴 오레건에 따르면, "아퀴나스는 3,000 페이지에 달하는 ''하늘의 영광''에서 거의 빠짐없이 등장하며", "3부작 전체에서 아퀴나스를 가톨릭 교회의 '유일한' 철학자이자 신학자로 간주하는 토마스주의적 승리주의의 흔적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69]
3. 2. 신학적 드라마 (Theodramatik)
''신학적 드라마''는 5권으로 구성된 "신학적 드라마 이론"으로, 특히 성금요일, 성 토요일, 부활절의 사건에서 드러나는 하느님의 행위와 인간의 반응, 특히 윤리와 선함에 대해 고찰한다. 발타자르의 구원론, 기독론, 종말론이 이 책에서 전개된다.- ''서론''(1973)
- ''극의 등장인물: 하느님 안의 인간''(1976)
- ''극의 등장인물: 그리스도 안의 인물들''(1978)
- ''행동''(1981)
- ''마지막 막''(1983)
이 저서는 발타자르의 주요 저작 중 하나이며, 그의 신학적 사상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이다.[70][26]
3. 3. 기타 사상
발타자르는 성인과 교부들의 삶에 관해 글을 썼으며, 이들을 살아있는 기독교인의 삶의 예시로 제시했다. 그는 자신의 신학을 관상 기도와 깊이 연결된 "무릎 꿇는 신학"이자 가톨릭 교회의 마음과 정신에 의해 인도되는 이해를 추구하는 믿음과 강하게 연결된 "앉는 신학"이라고 묘사했다.[13]발타자르는 자신의 신학이 오랜 친구이자 개종자인 의사 아드리엔 폰 스파이어(Adrienne von Speyr)의 신비로운 경험과 분리되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71]
발타자르는 바빌론의 창녀라는 용어가 라바누스 마우루스의 저술에서처럼 교회의 특정 전통에서 허용될 수 있다고 주장하기 위해 "Casta Meretrix"라는 표현을 사용했다.[72]
발타자르의 장례식에서, 후에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된 요제프 라칭거 추기경은 "교황이 추기경 서임이라는 영예로운 칭호로 표현하고자 했던 것은 유효하며, 더 이상 개인뿐만 아니라 공식적인 책임을 지닌 교회 자체가 그가 믿음에 대해 가르치는 것이 옳다고 우리에게 말해줍니다."라고 말했다.[73]
1987년 저서 『우리는 희망해도 되는가?』(영어 제목: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를 희망해도 되는가?』)와 관련하여, 많은 비평가들은 발타자르가 모든 사람이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는 가르침인 보편주의 또는 아포카타스타시스를 옹호했다고 비난했다. 이는 오리게네스와 연관된다.[101][74][75][76]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이러한 비판을 신학자의 저작을 잘못 읽은 것이라고 일축한다.[77][78][79][80][81] 발타자르 자신은 확실한 보편적 구원의 교리를 비난하고 멸망할 구체적인 가능성을 긍정하며,[82][83]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를 자비롭게 희망해야 한다는 기독교인의 의무를 강조한다. 그는 "토마스 아퀴나스는 '사랑으로 다른 사람과 결합하는 한, 다른 사람을 위해 영원한 생명을 희망할 수 있다'라고 가르쳤고, 우리 형제 중 누구에게서 이러한 사랑을 거부할 수 있겠는가?"라고 말했다.[84]
랄프 마틴과 제임스 오코너[85][86]는 발타자르가 보편주의를 부정하는 것은 불완전하다고 주장한다. 맨발의 가르멜회 성녀 에디트 슈타인은 "모든 자비로운 사랑은 따라서 모든 사람에게 내려갈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된다고 믿습니다. 그렇다면, 그러한 사랑에 영원히 닫혀 있는 영혼이 있다고 추정할 수 있을까요? 원칙적으로는 이러한 가능성을 거부할 수 없습니다. ''실제로'' 그것은 무한히 개연성 없는 것이 될 수 있습니다."라고 썼다.[87]
나치즘의 공포를 목격한 후, 십자가의 테레지아 베네딕타는 "어떤 최종적인 손실의 가능성이 무한히 개연성이 없어 보이는 것보다 더 현실적이고 절박하게 보인다"고 말했다.[88]
에이버리 덜레스 추기경은 이 구절을 체계적인 구원론적 교리가 아닌 "정통적인" "희망"의 표현으로 해석한다.[89] 다른 학자들도 신학자의 저작에서 이 구분을 일반적으로 인식해 왔다.[90] 발타자르는 이단 혐의에 대해 "어떻게 누군가가 희망하는 것과 아는 것을 동일시할 수 있는가? 저는 제 친구가 심각한 병에서 회복되기를 희망합니다. 그래서 제가 이것을 압니까?"라고 질문했다.[91]
이 입장은 신학적 덕목 사이의 갈등으로 묘사되어 왔다. '신앙'을 위해서는 거부해야 하는 것이 '희망'을 위해서는 받아들여야 하며, 553년에 교리 신학이 제5차 콘스탄티노폴리스 공의회의 아나테마로 아포카타스타시스 또는 보편적 구원의 가능성에 반대하여 정죄한 것을 희망의 신학으로 회복해야 한다.[92][76][90] 앨리사 핏스틱은 보편적 구원은 만약 일어난다면, "아들이 겪는 완전한 포기"의 결과일 것이라고 말했다.[93]
『지옥에 대한 짧은 강론』에서 발타자르는 에리히 프시와라, 앙리 드 루박, 가스통 페사르, 모리스 블롱델, 샤를 페기, 폴 클로델, 가브리엘 마르셀, 레옹 블로아, 요제프 라칭거, 발터 카스퍼, 로마노 과르디니, 그리고 카를 라너를 희망에 대한 자신의 관점을 공유하는 가톨릭 사상가로 꼽았다.[94]
4. 평가와 영향
발타자르의 "성 토요일 신학"과 "그리스도의 지옥 하강"에 대한 논쟁은, 특히 《신학-드라마》 마지막 권에서 설명된 바와 같이, 아직도 매우 뜨겁다.[95][96] "그리스도께서 취하지 않으신 것은 온전하게 되지 못한다"는 교부들의 교도권적 원칙을 따라([97] 나지안조의 그레고리오의 서신 101: "그가 취하지 않으신 것은 고치지 못하셨다"[98], quod non est assumptum non est sanatumla[99] 또는 quod non assumpsit, non redemitla[100]), 구원은 십자가에서의 죽음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지옥 하강''의 카타바시스로만 완성될 것이다.[101] 요제프 라칭거는 《신학-드라마》를 "기독교 희망의 본질에 대한 심오한 분석"이자 종말론 신학 분야에 대한 "기초적인 기여"라고 불렀다.[102] 그러나 삼부작을 쓰는 동안, 발타자르는 자신의 구원론적 주장이 기독론적 케노시스 또는 케노틱 기독론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경제적 삼위일체에서 내재적 삼위일체로 이동된 십자가 신학에서 비롯되었음을 뒤늦게 깨달았고, 이것이 그것의 본질적인 특징, 즉 기독교적 신적 사랑의 헌신성이 "영원한 수퍼-케노시스"를 구성한다는 것을 깨달았다.[103] 초월성은 "존재의 속성"이므로, ''pulchrum, bonum et verum''은 ''Ens''에서 유래하며, 마찬가지로 예수가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라고 한 복음의 자기 정의에서, 그것들은 "나는"의 결과적인 측면이다. 크리스티안 볼프의 용어로, 일반 형이상학은 세 가지 특수 형이상학을 구별하기 위한 전제 조건으로 제시되어야 한다.
5. 주요 저서
한스 우르스 폰 발타자르의 주요 저서는 다음과 같다.
제목 | 출판 연도 |
---|---|
기독교인과 불안(The Christian and Anxiety) | 1951 |
기독교 명상(Christian Meditation) | 1984 |
기독교적 삶의 상태(The Christian State of Life) | 1977 |
수렴점(Convergences) | 1969 |
우주 전례: 고백자 막시무스에 따른 우주(Cosmic Liturgy: The Universe According to Maximus the Confessor) | 1941 |
크레도(Credo) | 1988 |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를 희망할 수 있는가? 지옥에 대한 짧은 담론과 함께(Dare We Hope "That All Men Be Saved"? with a Short Discourse on Hell) | 1986/1987 |
예수님은 우리를 아시는가? 우리가 그분을 아는가?(Does Jesus Know Us? Do We Know Him?) | 1980 |
명료화(Elucidations) | 1971 |
하느님과의 약혼(Engagement with God) | 1971 |
에필로그(Epilogue) | 1987 |
신학 탐구, 제1권: 말씀이 육신이 되다(Explorations in Theology, Vol. 1: The Word Made Flesh) | 1960 |
신학 탐구, 제2권: 말씀의 배우자(Explorations in Theology, Vol. 2: Spouse of the Word) | 1961 |
신학 탐구, 제3권: 창조주 성령(Explorations in Theology, Vol. 3: Creator Spirit) | 1967 |
신학 탐구, 제4권: 성령과 제도(Explorations in Theology, Vol. 4: Spirit and Institution) | 1974 |
신학 탐구, 제5권: 사람은 창조되었다(Explorations in Theology, Vol. 5: Man Is Created) | 1986 |
아드리안 폰 스페이어에 대한 첫 만남(A First Glance at Adrienne von Speyr) | 1968 |
주님의 영광: 신학적 미학, 제1권: 형태를 바라봄(The Glory of the Lord: A Theological Aesthetics, Vol. 1: Seeing the Form) | 1961 |
주님의 영광: 신학적 미학, 제2권: 신학적 스타일 연구: 성직자 스타일(The Glory of the Lord: A Theological Aesthetics, Vol. 2: Studies in Theological Style: Clerical Styles) | 1962 |
주님의 영광: 신학적 미학, 제3권: 신학적 스타일 연구: 평신도 스타일(The Glory of the Lord: A Theological Aesthetics, Vol. 3: Studies in Theological Style: Lay Styles) | 1962 |
주님의 영광: 신학적 미학, 제4권: 고대 시대의 형이상학 영역(The Glory of the Lord: A Theological Aesthetics, Vol. 4: The Realm of Metaphysics in Antiquity) | 1965 |
주님의 영광: 신학적 미학, 제5권: 현대 시대의 형이상학 영역(The Glory of the Lord: A Theological Aesthetics, Vol. 5: The Realm of Metaphysics in the Modern Age) | 1965 |
주님의 영광: 신학적 미학, 제6권: 구약(The Glory of the Lord: A Theological Aesthetics, Vol. 6: The Old Covenant) | 1967 |
주님의 영광: 신학적 미학, 제7권: 신약(The Glory of the Lord: A Theological Aesthetics, Vol. 7: The New Covenant) | 1969 |
밀알: 격언집(The Grain of Wheat: Aphorisms) | 1944 |
세계의 심장(Heart of the World) | 1944 |
신앙의 충만함 안에서: 특별히 가톨릭적인 것에 대하여(In the Fullness of the Faith: On the Distinctively Catholic) | 1975 |
평의회 생애에서의 평신도(The Laity in the Life of the Counsels) | 1993 |
죽음으로부터의 삶: 파스칼 신비에 대한 묵상(Life Out of Death: Meditations on the Paschal Mystery) | 1984 |
말씀의 빛(Light of the Word) | 1987 |
사랑만이 신뢰할 만하다(Love Alone is Credible) | 1963 |
오늘날의 마리아(Mary for Today) | 1987 |
그리스도교적 증언의 순간(The Moment of Christian Witness) | 1966 |
내 회고록(My Work in Retrospect) | 1990 |
파스카 신비: 부활의 신비(Mysterium Paschale: The Mystery of Easter) | 1969, 1983년 두 번째 판 |
베드로의 직무와 교회의 구조(The Office of Peter and the Structure of the Church) | 1974 |
우리의 과제(Our Task) | 1984 |
바오로, 그의 회중과 씨름하다(Paul Struggles with His Congregation) | 1988 |
기도(Prayer) (독일어 제목: Das Betrachtende Gebet "관상 기도") | 1955 |
사제 영성(Priestly Spirituality) | 2007 |
요새 파괴(Razing the Bastions) | 1952 |
로마노 과르디니: 근원으로부터의 개혁(Romano Guardini: Reform from the Source) | 1970 |
동요하는 평신도를 위한 짧은 입문서(A Short Primer for the Unsettled Layman) | 1980 |
테오-드라마-신학적 드라마 이론, 제1권; 서론(Theo-Drama-Theological Dramatic Theory, Vol. 1; Prologomena) | 1973 |
테오-드라마-신학적 드라마 이론, 제2권: 극중 인물: 하느님 안의 인간(Theo-Drama-Theological Dramatic Theory, Vol. 2: Dramatis Personae: Man in God) | 1976 |
테오-드라마-신학적 드라마 이론, 제3권: 극중 인물: 그리스도 안의 사람들(Theo-Drama-Theological Dramatic Theory, Vol. 3: Dramatis Personae: Persons in Christ) | 1978 |
테오-드라마-신학적 드라마 이론, 제4권: 공연(Theo-Drama-Theological Dramatic Theory, Vol. 4: The Performance) | 1980 |
테오-드라마-신학적 드라마 이론, 제5권: 마지막 막(Theo-Drama-Theological Dramatic Theory, Vol. 5: The Last Act) | 1983 |
앙리 드 루박의 신학: 개요(The Theology of Henri de Lubac: An Overview) | 1976 |
역사 신학(A Theology of History) | 1959 |
칼 바르트의 신학(The Theology of Karl Barth) | 1951 |
테오-로직, 제1권: 세계의 진리(Theo-Logic, Vol. 1: Truth of the World) | 1985 |
테오-로직, 제2권: 하느님의 진리(Theo-Logic, Vol. 2: Truth of God) | 1986 |
테오-로직, 제3권: 진리의 성령(Theo-Logic, Vol. 3: The Spirit of Truth) | 1987 |
삼중 화관(The Threefold Garland) | 1977 |
구원의 신비의 심장으로(To the Heart of the Mystery of Redemption) | 1980 |
진리는 교향곡이다: 기독교 다원주의의 측면(Truth is Symphonic: Aspects of Christian Pluralism) | 1972 |
영 안의 두 자매(Two Sisters in the Spirit) | 1970 |
이 아이와 같이 되지 않으면(Unless You Become Like This Child) | 1988 |
그리스도인이란 누구인가?(Who is a Christian?) | 1965 |
독일 영혼의 묵시록 | 1937년~1939년 |
세계의 심장 | 1945년 |
리지외의 테레즈 | 1950년 |
칼 바르트 | 1951년 |
마르틴 부버와 기독교 | 1958년 |
신학적 미학 | 1961년~1969년 |
그의 저작에 대한 가장 포괄적인 목록(2005년까지의 번역 포함)은 다음에서 찾을 수 있다.
- Hans Urs von Balthasar: Bibliographie 1925-2005|한스 우르스 폰 발타자르: 1925-2005년 문헌 목록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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