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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바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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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칼 바르트는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신학자 중 한 명으로, 자유주의 신학에 대한 비판과 신정통주의 신학의 정립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스위스에서 목회 활동을 시작하여 사회주의 운동에 참여했으나, 자유주의 신학의 한계를 느끼고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강조를 통해 신학적 방향을 전환했다. 나치즘에 반대하며 고백교회 활동을 했으며, 《교회교의학》을 통해 삼위일체론, 그리스도 일원론, 선택론 등 다양한 신학적 주제를 다루었다. 그의 신학은 말씀 중심, 예수 그리스도 중심, 교회 중심, 예언자적 특징을 가지며, 현대 신학에 큰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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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바르트
기본 정보
이름칼 바르트
로마자 표기Karl Barth
출생일1886년 5월 10일
출생지스위스 바젤
사망일1968년 12월 10일
사망지스위스 바젤
직업교수
신학자
배우자넬리 호프만
1956년 3월의 칼 바르트
1956년 3월의 칼 바르트
종교개신교
주요 활동 및 업적
주요 연구 분야신학
영향변증법적 신학
신정통주의
고백교회
주요 저서《로마서 주석》
《교회 교의학》
신학적 사상
핵심 사상하나님 중심주의
계시 강조
예수 그리스도 중심 신학
은총 강조
죄의 심각성 인식
윤리관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순종 강조
생애
초기 생애스위스 바젤 출생
개신교 목사의 아들
베른 대학교, 베를린 대학교, 튀빙겐 대학교, 마르부르크 대학교에서 신학 공부
목회 활동스위스 자펜빌에서 목사로 활동
'붉은 목사'라는 별명으로 불림
교수 활동괴팅겐 대학교, 뮌스터 대학교, 본 대학교에서 신학 교수 역임
나치 정권에 대한 비판으로 인해 교수직에서 해고
후기 생애스위스 바젤 대학교에서 교수 활동
사망 시까지 신학 연구 지속
바르멘 선언
참여나치에 대한 저항 운동인 고백교회에 참여
영향바르멘 선언 작성에 참여
기타
영향력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신학자 중 한 명
평가신학계에 큰 영향을 미침
그의 사상은 현대 신학의 발전에 큰 기여

2. 생애

칼 바르트는 신학자 프리드리히 프리츠 바르트의 장남으로 유년기와 청년기를 베른에서 보냈다. 1904년 베른 대학교, 베를린 대학교, 튀빙겐 대학교에서 공부하였으며, 신학생 시절 자유주의 신학을 배웠다.[1]

1911년부터 스위스 공단지역인 자펜빌에서 목회하면서 노동자들이 자본가들의 억압과 착취를 받는 현실을 보았다. 그는 자본가가 노동자를 착취하는 잘못된 사회를 하나님의 나라의 복음으로써 바로잡고자 하였다. 그래서 자본가들로부터는 '빨갱이 목사'(Red Pastor)라는 비난을 받았고, 일부 공장주들은 개신교에서 로마 가톨릭으로 교파를 바꾸기도 했다. 바르트는 1913년 스위스 사회민주노동당에 입당하였고, 종교 사회주의 운동에도 참여하였다.

1914년 8월 자유주의 신학자들 대부분이 전쟁을 지지하자, 그는 자신이 배운 자유주의 신학에 대해 환멸을 느꼈다. 이때부터 그는 하나님은 인간을 심판하시는 분이라고 반박하며 하나님의 심판을 가르치지 않는 자유주의 신학을 비판하였다.

칼 바르트는 자유주의 신학과 결별한 후 자신이 속한 개혁교회의 전통에서 길을 찾았다. 그는 장 칼뱅, 울리히 츠빙글리의 종교개혁 사상 및 제2 스위스 신앙고백 등의 교의를 연구하여 신정통주의 신학을 정립했다.

아돌프 히틀러가 자신을 그리스도로 숭배하게 하자, 칼 바르트는 나치에 반대하는 기독교인들의 공동체인 고백교회의 중심인물로 활동하였다. 그는 히틀러의 나치즘이 히틀러를 그리스도로 숭배하는 우상숭배이며, 유대인, 집시 등 다른 민족을 차별하고 박해하는 악마적인 것으로 보았다. 이러한 반 나치 이념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문헌은 《바르멘 선언》이다. 결국 그는 나치 독일의 탄압으로 독일 밖으로 영구 추방되어, 스위스 바젤 대학교로 이직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칼 바르트는 독일 본 대학교에서 신학을 가르쳤다. 1948년에는 공산주의 국가가 된 헝가리를 방문하여 헝가리 개혁교회와 대화하였다. 또한 세계 교회 협의회(WCC)의 성립 과정에 참여하여 에큐메니칼 운동에 기여했다.

바르트는 《교회교의학》, 《개신교 신학입문》등을 저술하였다. 1968년 별세 전날, "세상은 여전히 어둡고, 고통에 차 있다. 하지만 우리 주님은 부활하셨다."[16]라며 어두운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구원을 기대했다.

2. 1. 초기 생애와 교육

칼 바르트는 신학자 프리드리히 프리츠 바르트의 장남으로 유년기와 청년기를 베른에서 보냈으며, 1904년 베른 대학교, 베를린 대학교, 튀빙겐 대학교에서 공부하였다. 신학생 시절 칼 바르트는 교수들의 영향으로 당시 유럽 신학계의 주류였던 자유주의 신학을 배웠다.[1]

2. 2. 목회 경험과 사회주의 활동

칼 바르트는 1911년부터 스위스 공단지역인 자펜빌에서 목회하면서 노동자들이 자본가들의 억압과 착취를 받는 현실을 보았으므로 현실참여적 성직자가 되었다. 그는 자본가가 노동자를 착취하는 잘못된 사회를 하나님의 나라의 복음으로써 바로잡고자 하였다. 그래서 자본가들로부터는 '빨갱이 목사'(Red Pastor)라는 비난을 받았고, 일부 공장주들은 개신교에서 로마 가톨릭으로 교파를 바꾸는 일도 있었다. 바르트는 1913년 스위스 사회민주노동당에 입당하였고, 당시 유럽 교회가 관심을 갖고 있던 종교 사회주의 운동에도 중심인물로 참여하였다.

2. 3. 자유주의 신학과의 결별

그는 자신이 배운 자유주의 신학에 대해 한계를 느끼게 된다. 하나님의 거룩함과 정의에 대해 설교하지 않으며 성경을 윤리책으로 오해하는 자유주의 신학의 잘못들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특히 1914년 8월 자유주의 신학자들 대부분이 전쟁을 지지한 '어둠의 날'은 그에게 자신이 배운 자유주의 신학에 대해 환멸을 느끼게 했다. 이때부터 그는 하나님은 인간을 심판하시는 분이라고 반박하며 하나님의 심판을 가르치지 않는 자유주의 신학을 신랄하게 비판하였다. 당시 로마 가톨릭 신학자 칼 아담은 '칼 바르트가 자유주의 신학자들의 놀이터에 폭탄을 던졌다'고 말할 정도로 유럽 신학계의 충격은 컸는데, 칼 바르트 자신도 '나는 우연히 잡은 교회 종의 줄을 잡아당겨, 마을 사람들이 모두 잠에서 깨게 한 사람 같았다'고 할 정도였다.

2. 4. 신정통주의 신학 정립

칼 바르트는 자유주의 신학과 결별한 후 자신이 속한 개혁교회의 전통에서 길을 찾았다. 그는 개혁교회 신학의 뿌리인 장 칼뱅, 울리히 츠빙글리의 종교개혁 사상 및 제2 스위스 신앙고백 등의 교의를 연구하였다. 이러한 학문적 노력은 바르트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을 중요하게 여기는 신학 곧 신정통주의 신학으로 기독교 사상의 열매를 맺게 했으며, 신학무용론이 지배하는 반지성적인 한국의 대다수 교회들과 성직자들에게 신학의 중요성을 말해준다.

2. 5. 반 나치 운동과 고백교회

아돌프 히틀러가 "하나님은 인간의 영혼 구원을 위해 예수를 보내고, 경제적, 사회적 구원을 위해 히틀러를 보냈다"라며 히틀러를 그리스도로 숭배하는 우상숭배를 하자, 칼 바르트는 나치에 반대하는 기독교인들의 공동체인 고백교회의 중심인물로 활동하였다. 그는 히틀러의 나치즘 운동이 히틀러를 그리스도로 숭배하는 우상숭배이며, 유대인, 집시 등 다른 민족을 차별하고 박해하는 악마적인 것으로 보았고, 이러한 예언자적인 목소리를 대중 강의와 설교를 통해 드러냈다. 이러한 반 나치 이념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문헌은 《바르멘 선언》이다. 바르멘 선언은 1934년 독일 바르멘에서 친나치적인 독일 교회에 반대하는 가톨릭 성직자들과 개신교인들이 모여서 발표한 反 나치 신학 선언으로, 하나님의 말씀(Logos)인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누구에게도 복종할 수 없으며, 자신을 길이요 진리로 선언한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계시가 될 수도, 설교의 주제가 되어서도 안 된다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결국 그는 나치 독일의 탄압으로 독일 밖으로 영구 추방되어, 스위스 바젤 대학교로 이직했다. 칼 바르트의 나치 반대 운동은 칼 바르트 연구의 핵심으로 불릴 만큼 중요한 의미를 가지며, 폴 틸리히, 디트리히 본회퍼 등이 그 명맥을 이었다.

2. 6. 전후 활동과 에큐메니컬 운동

히틀러의 패망으로 끝난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칼 바르트는 독일 본 대학교에서 신학을 가르쳤다. 1948년에는 공산주의 국가가 된 헝가리를 방문하여 헝가리 개혁교회와 대화하였다. 또한 세계 교회 협의회(WCC)의 성립 과정에 참여하여 에큐메니칼 운동에 기여했다.

바르트의 주요 활동은 저술 활동으로, 《교회교의학》을 저술했으며, 1961년부터 1962년 사이에는 자신의 강의 내용을 정리한 《개신교 신학입문》을 저술하였다. 《교회교의학》은 1968년 바르트의 죽음으로 일부 내용이 저술되지 못한 미완성 작품이며, 한국어판은 대한기독교서회에서 번역, 출판 중이고 현재 4권까지 출판되었다. 1968년 별세 전날, 20세기의 대표 신학자인 바르트는 "세상은 여전히 어둡고, 고통에 차 있다. 하지만 우리 주님은 부활하셨다."[16]라며 어두운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구원을 기대했다.

3. 신학

칼 바르트의 신학은 그의 대작 《교회교의학》에서 정점을 이룬다. 그는 이 책에서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 화해, 구속의 교리를 다루며, 모든 신학적 논의를 예수 그리스도 중심으로 재정립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바르트는 마르틴 루터장 칼뱅의 전통적 구분법 대신 임마누엘 칸트의 구분을 따랐으며, 프리드리히 슐라이어마허의 주관적 관점을 수용하면서도 그와 반대 입장에 섰다. 바르트에게 성경은 객관적인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말씀을 실존적으로 만나는 가능성이었다.[17]

바르트는 자유주의 신학에서 삼위일체 교리가 상실되었다고 보고 이를 회복하고자 했다.[18] 그는 하나님이 스스로를 인식하는 대상이며, 성경 속 계시는 인간이 스스로 발견할 수 없는 하나님이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주장했다.[19] 또한, 하나님의 계시가 '위로부터 수직으로' 온다고 강조했다.

바르트는 성경 전체를 신구약성서의 주제인 그리스도의 언약 안에서 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코닐리어스 반틸은 바르트의 신학이 예수 그리스도만을 중심으로 보게 되는 부적절한 강조라고 비판한다.[20]

《교회교의학》에서 가장 논란이 된 부분 중 하나는 선택의 교리이다. 바르트는 하나님이 각 개인을 구원하거나 정죄하도록 선택했다는 사상을 거부한다.[21] 그는 그리스도 중심적 방법론으로, 인류의 구원이나 정죄를 추상적인 계획에 귀속시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하나님의 구원 행위보다 더 결정적인 요소를 하나님 안에 만드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바르트는 이중예정 개념을 유지하지만, 하나님의 인류 선택과 인류 죄의 거부를 모두 구현한 것을 예수로 본다.[23]

바르트의 선택 교리는 아우구스티누스와 칼뱅의 구원론을 개선한 것으로 평가받기도 하지만,[24] 에밀 브루너 등은 바르트의 관점이 온건한 보편주의(soft universalism)로 이어진다고 지적한다.[25] 바르트는 "나는 보편구원론을 믿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모든 것을 화해시키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라며 보편구원론과 거리를 두었다.[26] 그러나 그는 하나님을 거부하는 사람들조차도 영원한 구원을 받을 가능성이 있으며, 이는 하나님의 은혜로 인해 기독교인들이 희망을 가져야 하는 문제라고 주장했다.[27]

바르트는 현대에 와서는 "전통적 신학을 상당히 넘어서는 중요한 단계"를 밟았다 평가받는다. 그는 보수적인 개신교 신학이 다수 또는 대부분의 사람이 정죄받는 것을 절대적인 확실성으로 간주하는 관점에 반대했다. 바르트에게는 그리스도의 은혜가 중심이며, 정죄는 절대적인 결론으로 여겨져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27]

바르트 신학의 특징은 하나님 말씀에 대한 신뢰, 즉 "하나님은 말씀하신다."(Deus Dixit)라는 명제에서 나타난다. 그는 철저히 하나님 말씀을 높이고, 예수 그리스도 중심의 신학을 전개했다. 그는 신학의 출발점과 귀결점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자신을 계시한 하나님을 있는 그대로 가르치는 데 있다고 보았다. 따라서 바르트는 성서가 말하는 예수 그리스도를 떠나서는 하나님에 대해서 말할 수 없다고 보았는데, 이는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기복신앙[28]윤리를 가르쳐 온 일부 한국교회에 시사하는 바가 있다.

또한 바르트는 신학교회가 하나님 말씀을 분별하고 실천하게 하는 데 있다고 보았다. 교회는 신학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신학의 지혜에 따라 교회를 이끌 책임이 있으며, 신학자는 교회에 대해 생각하고, 교회에 생명을 불어넣는 책임이 있다고 보았다. 그는 구약성서에 나오는 예언자들처럼 하나님의 말씀으로 시대를 분별하고 인도해야 한다고 보았으며, 바르멘 선언 발표에 참여하기도 했다.

3. 1. 《교회교의학》

칼 바르트의 가장 중요한 신학적 업적은 그의 신학 대작인 《교회교의학》이다. 이 작품에서 바르트는 하나님의 말씀의 교리, 하나님 교리, 화해의 교리, 구속의 교리를 논하며, 모든 신학적 논의를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재정립하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3. 2. 신학의 방법

바르트의 신학적 구분법은 마르틴 루터장 칼뱅의 전통적 구분법인 원형/모형을 따르지 않고, 임마누엘 칸트의 현상적(phenomenal)/본체적(noumenal)의 구분을 따랐다. 그는 프리드리히 슐라이어마허와 반대 입장이었지만, 슐라이어마허의 주관적인 관점을 받아들였다. 바르트에게 성경은 객관적인 역사에 기초한 객관적인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말씀을 실존적으로 만나는 가능성을 뜻하였다.[17]

3. 3. 삼위일체론

바르트는 자유주의 신학에서 삼위일체 교리가 상실되었다고 보고, 이를 개신교 신학에서 회복하고자 했다.[18] 그는 하나님이 스스로를 인식하는 대상이며, 성경 속 계시는 인간이 스스로 발견할 수 없는 하나님이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주장했다.[19] 바르트는 하나님의 계시가 '위로부터 수직으로(Senkrecht von Oben)' 온다고 강조했다.

3. 4. 그리스도 일원론 (Christomonism)

바르트는 성경 전체를 신구약성서의 주제인 그리스도의 언약 안에서 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코닐리어스 반틸은 그것이 삼위일체의 하나님의 중심이 아닌, 성자 하나님인 예수 그리스도만을 중심으로 보게 되는 부적절한 강조라고 말한다.[20]

3. 5. 선택론 (예정론)

《교회교의학》에서 가장 영향력 있고 논란이 된 부분 중 하나는 선택의 교리(선택론, 교회교의학 II/2)이다. 바르트의 신학은 하나님이 각 개인을 구원하거나 정죄하도록 선택한 것이 신적 의지의 목적에 따른 것이며, 왜 어떤 사람은 선택되고 다른 사람은 그렇지 않은지를 알 수 없다는 사상을 거부한다.[21]

바르트의 선택 교리는 영원하고 숨겨진 신적 계획이라는 개념을 단호히 거부한다.[22] 바르트는 그리스도 중심적 방법론으로, 인류의 구원이나 정죄를 추상적이고 절대적인 계획에 귀속시키는 것은, 하나님의 구원 행위인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행위보다 더 결정적이고 최종적인 요소를 하나님 안에 만드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바르트는 만약 "절대적 계획"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인류를 위한 하나님의 은혜로운 결정을 의미한다고 보았다. 바르트는 초기 개혁 신학 전통에서 이중예정 개념을 유지하지만, 하나님의 인류 선택과 인류 죄의 거부를 모두 구현한 것을 예수로 본다.[23]

바르트의 선택 교리는 아우구스티누스와 칼뱅의 구원론의 개인 구원 예정 교리를 개선한 것으로 평가받기도 하지만,[24] 에밀 브루너를 비롯한 이들은 바르트의 관점이 온건한 보편주의(soft universalism)로 이어져 아우구스티누스-칼빈주의와 다르다고 지적한다.[25]

3. 6. 구원론

칼 바르트는 엄격한 칼뱅주의의 영향을 받은 기존의 죄와 구원에 대한 관점이 기독교인들에게 잘못된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고 보았다. 그는 예정론이 인간을 미리 불순종하고 하나님을 거부하도록 설정한 것처럼 보이게 하고, 다수의 인간이 운명적으로 정죄받는다는 인식을 낳았다고 비판했다.

바르트의 구원론은 철저히 그리스도 중심적이며, 그의 저술에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인류 전체와 하나님의 화해가 본질적으로 이미 이루어졌고, 그리스도를 통해 인간은 이미 선택되고 의롭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바르트는 "나는 보편구원론을 믿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모든 것을 화해시키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라며 보편구원론과 거리를 두었다.[26] 그러나 그는 하나님을 거부하는 사람들조차도 영원한 구원을 받을 가능성이 있으며, 이는 단순히 열린 질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인해 기독교인들이 희망을 가져야 하는 문제라고 주장했다. 그는 또한 "신학적 일관성이 우리를 이 방향으로 가장 분명히 이끈다 하더라도, 그것이 단지 자유로운 선물로만 주어지고 받을 수 있는 것이라면, 우리가 스스로 그것을 주장해서는 안 된다"라며 단순히 전적 화해(total reconciliation)를 희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27]

바르트는 현대에 와서는 "전통적 신학을 상당히 넘어서는 중요한 단계"를 밟았다 평가받는다. 그는 보수적인 개신교 신학이 다수 또는 대부분의 사람이 정죄받는 것을 절대적인 확실성으로 간주하는 관점에 반대했다. 바르트에게는 그리스도의 은혜가 중심이며, 정죄는 절대적인 결론으로 여겨져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27]

3. 7. 말씀 중심, 예수 그리스도 중심의 신학

바르트 신학의 특징은 하나님 말씀에 대한 신뢰였다. 바르트는 "하나님은 말씀하신다."(Deus Dixit)라는 명제를 가지고 말씀 중심의 신학을 전개했다. 철저히 하나님 말씀을 높이고, 존중하는 신학을 전개한 것이다. 여기서 말씀은 사람으로 오신 말씀(Logos) 예수 그리스도를 뜻하므로, 바르트 신학은 그리스도 중심의 신학을 말한다. 그는 신학의 출발점과 귀결점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자신을 계시한 하나님을 있는 그대로 가르치는 데 있다고 보았다. 따라서 바르트는 성서가 말하는 예수 그리스도를 떠나서는 하나님에 대해서 말할 수 없다고 보았는데, 이는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기복신앙[28]윤리를 가르쳐 온 일부 한국교회에 시사하는 바가 있다.

3. 8. 교회 중심의 신학

바르트는 신학교회가 하나님 말씀을 분별하고 실천하게 하는 데 있다고 보았다. 즉, 교회는 신학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신학의 지혜에 따라 교회를 이끌 책임이 있으며, 신학자는 교회에 대해 생각하고, 교회에 생명을 불어넣는 책임이 있다고 보았다.

3. 9. 예언자적 신학

바르트는 구약성서에 나오는 예언자들처럼 하나님의 말씀으로 시대를 분별하고 인도해야 한다고 보았다. 그래서 형제교회 성직자들과 함께 바르멘 선언을 발표할 수 있었던 것이다.

4. 칼 바르트 관련 도서 목록

제목저자역자출판사출판연도
칼 바르트에버하르트 부쉬손성현복있는 사람2014년
위대한 열정에버하르트 부쉬박성규새물결플러스2017년
칼 바르트 말씀의 신학 해설정승훈새물결플러스2017년
칼 바르트의 신학김명용이레서원2007년
칼 바르트와 동시대성의 신학정승훈대한기독교서회2006년
칼 바르트 - 말씀하시는 하나님, 응답하는 인간마이클 레이든윤상필비아 (출판사)
로마서칼 바르트손성현복있는 사람2017년
왕양명과 칼 바르트김흡영예문서원2020년
설교자의 기도칼 바르트박정수비아 (출판사)2019년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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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웹인용 Karl Barth – Christian History http://www.christian[...]
[3] 웹인용 The Life of Karl Barth: Church Dogmatics Vol IV: The Doctrine of Reconciliation 1953–1967 (Part 7) https://postbarthian[...] 2019-04-05
[4] 웹사이트 Name (Boston Collaborative Encyclopedia of Western Theology) http://people.bu.edu[...] 2012-07-15
[5] 웹인용 Karl Barth's Church Dogmatics Original Publication Dates https://postbarthian[...] 2016-04-21
[6] 뉴스 Theologian Karl Barth https://content.time[...] 1962-04-20
[7] 웹인용 The Life of Karl Barth: Early Life from Basel to Geneva 1886–1913 (Part 1) https://postbarthian[...] 2018-04-18
[8] 웹인용 The Romans commentary by the Red Pastor of Safenwil: Karl Barth's Epistle to the Romans https://postbarthian[...] 2017-10-03
[9] 웹인용 The Life of Karl Barth: Early Life from Basel to Geneva 1886–1913 (Part 2) https://postbarthian[...] 2018-04-18
[10] 저널 Man Encountered by the Command of God: the Ethics of Karl Barth http://www.biblicals[...]
[11] 서적 Commanding Grace: Studies in Karl Barth's Ethics https://books.google[...] W.B. Eerdmans Publishing Company 2010-08-15
[12] 웹사이트 Ethics in Crisis: Interpreting Barth's Ethics http://libweb.ptsem.[...] 2012-07-15
[13] 웹사이트 The Hastening that Waits http://www.oup.com/u[...] 2012-07-15
[14] 웹사이트 Journal – The Influence of Karl Barth on Christian Ethics http://www.kevintayl[...] 2012-07-15
[15] 웹사이트 A Study on Jacques Ellul's Dialectical Approach to the Modern and Spiritual World http://robertoigarza[...] 2003
[16] 서적 현대 신학 이야기 살림출판사
[17] 서적 Recovering the Reformed confession : our theology, piety, and practice https://www.worldcat[...] 2008
[18] 문서 Braatan
[19] 문서 Gorringe
[20] 서적 An introduction to systematic theology : prolegomena and the doctrines of revelation, scripture, and God https://www.worldcat[...] P & R Pub 2007
[21] 문서 Mangina
[22] 문서 Chung
[23] 문서 Webster
[24] 서적 The Quest For Paul's Gospel: A Suggested Strategy https://books.google[...] T & T Clark International
[25] 서적 The Christian Doctrine of God: Dogmatics: Volume 1 Westminster 1950
[26] 서적 Karl Barth: His Life from Letters and Autobiographical Texts Wipf & Stock
[27] 저널 Universalism: a historical survey http://www.theologic[...] 1978-09
[28] 문서 바알 신앙, 번영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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