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루스의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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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호루스의 눈은 고대 이집트 신화에서 유래한 상징으로, 다산의 여신 우제트의 눈에서 시작되어 태양신 라, 호루스와 이시스 신화와 결합되었다. 호루스의 눈은 파라오와 왕권을 보호하는 상징으로 여겨졌으며, 호루스와 세트의 갈등에서 훼손되고 치유되는 과정을 통해 치유, 수호, 재생의 의미를 갖게 되었다. 또한, 호루스의 눈은 분수를 나타내는 데 사용되었고, 상형 문자 및 다양한 부적으로 활용되었다. 의례에서는 제물, 치유, 부적으로 사용되었으며, 이집트 미술과 주변 문화에도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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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루스의 눈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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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루스의 눈 | |
![]() | |
다른 이름 | 와제트 (Wadjet), 우제트 (Udjat) |
상형문자 | 𓂀 |
개요 | |
의미 | 보호, 왕권, 건강 |
문화권 | 고대 이집트 |
시대 | 기원전 2686년 ~ 기원전 1650년경 |
관련 인물 | 호루스 |
관련 개념 | 태양신 라 |
신화 | |
기원 | 호루스가 세트와의 싸움에서 잃은 눈 |
치유 | 토트가 치유 |
상징 | 완전함, 회복 |
용도 | |
장식 | 보석, 부적 |
보호 | 악으로부터 보호 |
의학 | 약의 양을 측정 |
항해 | 안전한 항해 |
수학 | 분수 표기 |
기타 | |
유니코드 | U+1329A (𓂀) |
2. 기원
이집트 선왕조 시대에 사랑과 미의 여신 하카르, 풍요의 여신 바마테트, 신들의 어머니 무트가 혼합된 '우제트' 여신의 눈이 최초로 태양을 상징하는 상징물로 사용되었다. 그래서 이집트 초기 시대 벽화에는 우제트의 눈이 그려진 하토르나 무트의 모습이 있다.[3]
고왕국 시대부터 태양신 라가 국가적 절대신으로 숭배받으면서, 태양을 상징하는 '''라의 눈'''으로 불렸다. 이시스와 호루스 신화가 대중화되면서 '''호루스의 눈'''으로도 불리게 되었다. 고대 이집트 사람들은 태양신 라로부터 왕권을 세속받은 호루스가 파라오와 정권을 수호한다고 믿었기 때문에 호루스의 눈은 파라오와 왕권을 보호하는 상징이 되었다.
3. 호루스 신화
호루스는 죽음과 부활의 신 오시리스와 최고의 여성신 이시스의 아들이며 사랑과 미의 여신인 하토르의 남편이다. 오시리스가 동생 세트의 질투로 죽임을 당하자 이시스가 주술로 오시리스를 부활시키고 호루스를 잉태하였다. 이시스는 지식과 달의 신 토트의 도움을 받아 세트로부터 멀리 피해 호루스를 낳고 길렀다. 호루스는 원래 매우 허약했으나 이시스의 지혜와 주문으로 강하게 자랄 수 있었다. 이시스는 태양신 라의 힘을 빌려 호루스를 키웠다.
성년이 된 호루스는 아버지로부터 병법을 물려받고 토트의 도움을 얻어 세트에게 복수하고 이집트의 왕이 되었다. 그러나 세트가 죽기 전에 호루스의 왼쪽 눈을 공격하여 호루스의 눈은 산산조각이 났지만, 토트가 마법으로 왼쪽 눈을 다시 치유해주었다.[1]
토트의 마법으로 회복된 왼쪽 눈은 검은 빛을 띠며 치유와 달을 상징하게 되었고, 오른쪽 눈은 태양신 라의 성질로 인해 태양을 상징하게 되었다. 호루스는 파라오와 왕권을 수호하는 상징이 되었다.
고대 이집트 신 호루스는 하늘의 신이었으며, 많은 이집트 텍스트는 호루스의 오른쪽 눈은 태양, 왼쪽 눈은 달이라고 말한다. 태양의 눈과 달의 눈은 때때로 각각 이집트의 붉은 왕관과 하얀 왕관과 동일시되었다. 일부 텍스트는 호루스의 눈을 라의 눈과 같은 것으로 취급하는데, 다른 맥락에서 라의 눈은 태양신 라의 권능의 연장이며 종종 여신으로 의인화된다.
세트에게 패한 후 왕이 된 호루스는 죽은 아버지에게 제물을 바쳐 그를 부활시키고 사후 세계에서 유지시킨다. 이는 고대 이집트 장례 관습의 중요한 부분이었던 죽은 자에게 바치는 제물의 신화적 원형이었다. 호루스가 바치는 제물 중에는 그의 눈도 있는데, 오시리스는 이를 섭취한다. 오시리스 아들의 일부인 눈은 궁극적으로 오시리스 자신에게서 유래된다. 따라서 이 맥락에서 눈은 이집트의 제물에 대한 개념을 나타낸다. 눈의 회복력은 이집트인들이 그것을 악에 대한 보호의 상징으로 여겼음을 의미했다.
고대 이집트에서 아주 옛날부터 태양과 달은 매의 모습 또는 머리를 가진 천공신 호루스의 두 눈("호루스의 눈")이라고 여겨졌다. 이윽고 두 눈은 구별되어, 왼쪽 눈("와제트(우자트)의 눈")은 달의 상징, 오른쪽 눈("라의 눈")은 태양의 상징이 되었다.
"우아제트의 눈"은 주기적으로 차고 기우는 달을 상징하며, "잃어버린 것을 회복한다", "완전한 것, 수복된 것"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호루스 신의 왼쪽 눈인 "우아제트의 눈"은 호루스가 아버지 오시리스의 원수인 세트를 칠 때 잃어버렸지만, 토트에 의해 치유되어 회복되었다. 그 때문에 "우아제트의 눈"은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지혜"와 "치유·수복·재생"의 상징이 되었다. 또한 호루스가 치유된 눈을 아버지 오시리스에게 바쳤다는 일화에서 공물의 상징이 되기도 했다.
수호신으로서의 우아제트의 성질에서 수호와 액막이 부적으로 사용되었다. 미라에 곁들여지기도 하며, 투탕카멘의 "우자트의 눈 흉식"이 유명하다.
제1중간기와 중왕국 시대에는 "우아제트의 눈"(왼쪽 눈)과 "라의 눈"(오른쪽 눈)을 좌우에 합친 양쪽 눈이 미라를 안치한 널의 왼쪽에 그려지기도 했다. 이는 미라를 지키는 부적이자, 사자(미라)가 이 세상(관 밖)을 보기 위한 창으로 해석된다. 눈은 해가 뜨는 방향인 동쪽을 향하고 있었다.
3. 1. 호루스와 세트의 갈등
오시리스 신화에서 호루스와 세트의 갈등은 중요한 부분이며, 호루스의 눈은 이 갈등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1] 여러 텍스트에서 세트는 호루스의 눈을 훔치거나 훼손하지만, 호루스는 눈을 되찾거나 다른 신(주로 토트)의 도움으로 회복한다.[1]
피라미드 텍스트는 고대 왕국 말기(기원전 2686–2181년경)로 거슬러 올라가며 이집트 신화의 가장 초기 자료 중 하나이다. 이 텍스트에는 호루스와 세트의 갈등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며, 호루스의 눈은 피라미드 텍스트를 구성하는 구절의 약 1/4에서 언급된다. 이 텍스트에서 세트는 호루스의 눈을 훔치고, 때로는 짓밟고 먹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루스는 보통 무력으로 그 눈을 되찾는다. 텍스트는 종종 호루스의 눈을 훔친 것과 세트의 고환을 잃은 것을 함께 언급하는데, 이는 역시 치유되는 부상이다.
눈을 둘러싼 갈등은 후대의 많은 텍스트에서 언급되고 상세히 설명된다. 이러한 텍스트 대부분에서 눈은 다른 신에 의해 복원되는데, 가장 흔하게는 호루스와 세트 사이에서 평화를 이루었다고 전해지는 토트에 의해 복원된다. 어떤 버전에서는 세트가 호루스의 눈을 찢은 후 토트가 그것을 재조립했다고 한다. 신왕국 시대의 사자의 서에서 세트는 호루스의 눈을 칠 때 검은 멧돼지의 형상을 취했다고 한다.
호루스와 세트의 싸움에서 세트는 호루스의 두 눈을 뽑아 땅에 묻고, 다음 날 아침 그것들은 연꽃으로 자란다. 여기에서는 여신 하토르가 가젤의 젖으로 그 눈에 기름을 발라 호루스의 눈을 복원한다.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초(기원전 332–30년)의 신화적 텍스트인 파피루스 주미약에서 호루스의 어머니 이시스는 묻힌 두 눈에 물을 주어 처음으로 포도 덩굴로 자라게 한다.
눈의 복원은 종종 눈을 "채우는" 것으로 언급되었다. 하토르는 가젤의 젖으로 호루스의 눈구멍을 채웠고, 그리스-로마 시대의 사원 텍스트에서는 토트가 다른 14명의 신들과 함께 특정 식물과 광물을 사용하여 눈을 채웠다고 한다. 호루스의 눈을 채우는 과정은 달의 삭망에 비유되었고, 그리스-로마 텍스트의 15명의 신들은 초승달에서 보름달까지의 15일을 나타냈다.
이집트학자 헤르만 테 벨데는 호루스의 눈이 두 신 사이의 갈등에서 또 다른 에피소드와 연결되어 있다고 주장하는데, 이 에피소드에서 세트는 호루스에게 성적 폭력을 가하고, 이에 대한 보복으로 이시스와 호루스는 세트가 호루스의 정액을 섭취하게 만든다. 이 에피소드는 "호루스와 세트의 싸움"에서 가장 명확하게 서술되어 있는데, 여기서 호루스의 정액은 세트의 이마에 황금 디스크로 나타나고, 토트가 그것을 자신의 머리에 놓는다.
이집트 텍스트의 다른 언급들은 신화의 어떤 버전에서는 호루스의 정액으로 세트가 임신한 후 토트 자신이 세트의 머리에서 나왔으며, 피라미드 텍스트의 한 구절은 호루스의 눈이 세트의 이마에서 나왔다고 말한다. 테 벨데는 세트의 머리에서 나오는 디스크가 호루스의 눈이라고 주장한다. 만약 그렇다면, 신체 훼손과 성적 학대의 에피소드는 단일 이야기를 형성할 것이며, 세트가 호루스를 공격하고 그에게 정액을 잃고, 호루스가 보복하여 세트를 임신시키고, 세트는 호루스의 눈이 세트의 머리에 나타날 때 그것을 소유하게 된다. 토트가 다른 기능 외에도 달의 신이기 때문에, 테 벨데에 따르면 토트가 눈의 형태로 나타나 갈등하는 신들 사이에서 평화를 이루는 것은 합리적일 것이다.
신왕국 시대부터, 호루스의 눈은 "완전한", "완성된", 또는 "부상 없는" 눈을 의미하는 ''wḏꜣt''(종종 ''wedjat'' 또는 ''udjat''로 표기)으로 알려졌다. 용어 ''wḏꜣt''이 파괴되고 복원된 눈을 가리키는지, 세트가 손상시키지 않은 눈을 가리키는지는 불분명하다.
4. 상징
이집트 선왕조 시대에 사랑과 미의 여신인 하카르와 풍요의 여신 바마테트, 신들의 어머니 무트가 혼합되어 '우제트'라는 여신으로 불렸다. 그녀의 눈은 최초로 태양을 상징하는 상징물로 사용되었다. 그래서 이집트 초기 시대의 벽화에는 우제트의 눈이 그려진 하토르나 무트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3]
고왕국 시대부터 태양신 라가 국가적 절대신으로 숭배받으면서, 태양을 상징하는 '''라의 눈'''으로 불리게 되었으며, 이시스와 호루스 신화가 대중화되면서 '''호루스의 눈'''으로도 불리게 되었다. 고대 이집트 사람들은 태양신 라로부터 왕권을 받은 호루스가 파라오와 정권을 수호한다고 믿었기 때문에 호루스의 눈은 파라오와 왕권을 보호하는 상징이 되었다.
호루스는 죽음과 부활의 신 오시리스와 최고의 여성신 이시스의 아들이며 사랑과 미의 여신인 하토르의 남편이다. 오시리스가 동생 세트의 질투로 죽임을 당하자 이시스가 주술로 오시리스를 부활시키고 호루스를 잉태하였다. 이시스는 지식과 달의 신 토트의 도움을 받아 세트로부터 멀리 피해 호루스를 낳고 길렀다. 호루스는 원래 매우 허약했으나 이시스의 지혜와 주문으로 강하게 자랄 수 있었다. 이시스는 꾀를 부려 태양신 라의 힘을 빌려 호루스를 키웠다.
성년이 된 호루스는 아버지로부터 병법을 물려받고 토트의 도움을 얻어 원수인 세트를 죽여 복수를 하고 이집트의 왕이 되었다. 그러나 세트가 죽기 전에 호루스의 왼쪽 눈을 공격하여 호루스의 눈은 산산조각이 나지만, 토트가 마법의 힘으로 왼쪽 눈을 다시 치유해주었다고 한다.
그리하여 토트의 마법으로 회복된 왼쪽 눈은 검은 빛을 띠며 치유와 달을 상징하게 되었고, 오른쪽 눈은 태양신 라의 성질로 인하여 태양을 상징하게 되었다. 또한 세트를 죽이고 이집트의 왕이 됨으로써, 호루스는 파라오와 왕권을 수호하는 상징이 되었다.
고대 이집트 신 호루스는 하늘의 신이었으며, 많은 이집트 텍스트는 호루스의 오른쪽 눈이 태양이고 왼쪽 눈이 달이라고 말한다. 태양의 눈과 달의 눈은 때때로 각각 이집트의 붉은 왕관과 하얀 왕관과 동일시되었다. 일부 텍스트는 호루스의 눈을 라의 눈과 같은 것으로 취급하는데, 다른 맥락에서 라의 눈은 태양신 라의 권능의 연장이며 종종 여신으로 의인화된다. 이집트학자 리처드 H. 윌킨슨은 호루스의 두 눈이 점차 달의 호루스의 눈과 태양의 라의 눈으로 구별되었다고 믿는다. 그러나 다른 이집트학자들은 호루스의 눈이 이집트 신왕국 시대(기원전 1550~1070년)까지 태양과 달과 명확하게 동일시되는 텍스트는 없다고 주장한다. 롤프 크라우스는 호루스의 눈이 원래 금성을 샛별과 저녁별로 나타냈으며 나중에 달과 동일시되었다고 주장한다.
카트야 괴브스는 호루스의 눈과 라의 눈을 둘러싼 신화가 동일한 신화소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사라지거나 소유자로부터 멀리 떨어진 객체의 구조적 관계에 기반한 (유연한) 신화의 관점에서 생각하는 것이 더 유익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피라미드 텍스트는 고대 왕국 말기(기원전 2686–2181년경)로 거슬러 올라가며 이집트 신화의 가장 초기 자료 중 하나이다. 이 텍스트에는 호루스와 세트의 갈등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며, 호루스의 눈은 피라미드 텍스트를 구성하는 구절의 약 1/4에서 언급된다. 이 텍스트에서 세트는 호루스의 눈을 훔치고, 때로는 짓밟고 먹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루스는 보통 무력으로 그 눈을 되찾는다. 텍스트는 종종 호루스의 눈을 훔친 것과 세트의 고환을 잃은 것을 함께 언급하는데, 이는 역시 치유되는 부상이다. 눈을 둘러싼 갈등은 후대의 많은 텍스트에서 언급되고 상세히 설명된다. 이러한 텍스트 대부분에서 눈은 다른 신에 의해 복원되는데, 가장 흔하게는 호루스와 세트 사이에서 평화를 이루었다고 전해지는 토트에 의해 복원된다. 어떤 버전에서는 세트가 호루스의 눈을 찢은 후 토트가 그것을 재조립했다고 한다. 신왕국 시대의 사자의 서에서 세트는 호루스의 눈을 칠 때 검은 멧돼지의 형상을 취했다고 한다. 호루스와 세트의 갈등을 짧은 이야기로 묘사하는 신왕국 말기의 텍스트인 "호루스와 세트의 싸움"에서 세트는 호루스의 두 눈을 뽑아 땅에 묻고, 다음 날 아침 그것들은 연꽃으로 자란다. 여기에서는 여신 하토르가 가젤의 젖으로 그 눈에 기름을 발라 호루스의 눈을 복원한다.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초(기원전 332–30년)의 신화적 텍스트인 파피루스 주미약에서 호루스의 어머니 이시스는 묻힌 두 눈에 물을 주어 처음으로 포도 덩굴로 자라게 한다.
눈의 복원은 종종 눈을 "채우는" 것으로 언급되었다. 하토르는 가젤의 젖으로 호루스의 눈구멍을 채웠고, 그리스-로마 시대의 사원 텍스트에서는 토트가 다른 14명의 신들과 함께 특정 식물과 광물을 사용하여 눈을 채웠다고 한다. 호루스의 눈을 채우는 과정은 달의 삭망에 비유되었고, 그리스-로마 텍스트의 15명의 신들은 초승달에서 보름달까지의 15일을 나타냈다.
이집트학자 헤르만 테 벨데는 호루스의 눈이 두 신 사이의 갈등에서 또 다른 에피소드와 연결되어 있다고 주장하는데, 이 에피소드에서 세트는 호루스에게 성적 폭력을 가하고, 이에 대한 보복으로 이시스와 호루스는 세트가 호루스의 정액을 섭취하게 만든다. 이 에피소드는 "호루스와 세트의 싸움"에서 가장 명확하게 서술되어 있는데, 여기서 호루스의 정액은 세트의 이마에 황금 디스크로 나타나고, 토트가 그것을 자신의 머리에 놓는다. 테 벨데는 세트의 머리에서 나오는 디스크가 호루스의 눈이라고 주장한다. 만약 그렇다면, 신체 훼손과 성적 학대의 에피소드는 단일 이야기를 형성할 것이며, 세트가 호루스를 공격하고 그에게 정액을 잃고, 호루스가 보복하여 세트를 임신시키고, 세트는 호루스의 눈이 세트의 머리에 나타날 때 그것을 소유하게 된다. 토트가 다른 기능 외에도 달의 신이기 때문에, 토트가 눈의 형태로 나타나 갈등하는 신들 사이에서 평화를 이루는 것은 합리적일 것이다.
신왕국 시대부터, 호루스의 눈은 "완전한", "완성된", 또는 "부상 없는" 눈을 의미하는 ''wḏꜣt''(종종 ''wedjat'' 또는 ''udjat''로 표기)으로 알려졌다.
세트의 패배 후 왕이 된 호루스는 죽은 아버지에게 제물을 바쳐 그를 부활시키고 사후 세계에서 유지시킨다. 이 행위는 고대 이집트 장례 관습의 중요한 부분이었던 죽은 자에게 바치는 제물의 신화적 원형이었다. 그것은 또한 이집트 사원에서 신들을 위해 수행되었던 제례에 대한 개념에 영향을 미쳤다. 호루스가 바치는 제물 중에는 그의 눈도 있는데, 오시리스가 그것을 섭취한다. 오시리스의 아들의 일부인 눈은 궁극적으로 오시리스 자신에게서 유래된다. 따라서 이 맥락에서 눈은 이집트의 제물에 대한 개념을 나타낸다. 신들은 그들이 바쳐지는 모든 재물의 존재에 책임이 있었으므로 제물은 신들 자신의 실체의 일부였다. 제물을 받으면서 신들은 호루스의 눈을 섭취했을 때의 오시리스처럼 그들 자신의 생명력으로 보충되었다. 눈의 회복력은 이집트인들이 그것을 악에 대한 보호의 상징으로 여겼음을 의미했다.
호루스는 매로, 예를 들어 알락할미새나 송골매로, 또는 매의 머리를 가진 인간으로 묘사되었다. 호루스의 눈은 양식화된 인간 또는 매의 눈이다. 이 상징은 종종 눈썹, 눈의 뒤쪽 모서리 뒤로 뻗어 나가는 어두운 선, 눈의 중앙 또는 앞쪽 모서리 아래의 뺨 표시, 그리고 눈의 뒤쪽을 향해 아래로 뻗어 소용돌이 모양으로 끝나는 선을 포함한다. 뺨 표시는 많은 매에서 발견되는 것과 유사하다. 이집트학자 리처드 H. 윌킨슨은 구불구불한 선이 이집트인들이 별과 유사하다고 여겼던 얼룩무늬가 있는 치타의 얼굴 표식에서 유래되었다고 제안한다.
양식화된 눈 상징은 라의 눈을 나타내기 위해 바꿔가며 사용되었다. 이집트학자들은 종종 이 상징을 단순히 ''웨자트''의 눈이라고 부른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아주 옛날부터 태양과 달은 매의 모습 또는 머리를 가진 천공신 호루스의 두 눈("호루스의 눈")이라고 여겨졌다.
이윽고 두 눈은 구별되어, 왼쪽 눈("와제트(우자트)의 눈")은 달의 상징, 오른쪽 눈("라의 눈")은 태양의 상징이 되었다.
4. 1. 우제트(와제트)의 눈
우아제트 (우자트)는 코브라의 모습, 혹은 머리 위에 코브라를 얹은 여성의 모습으로 묘사되는 하(下) 이집트의 수호 여신이다."우아제트의 눈"은 주기적으로 차고 기우는 달을 상징하며, 잃어버린 달이 다시 차오르듯 "잃어버린 것을 회복한다", "완전한 것, 수복된 것"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이집트 신화에서 호루스 신의 왼쪽 눈인 "우아제트의 눈"은 호루스 신이 아버지 오시리스 신의 원수인 세트 신을 칠 때 잃어버렸지만, (이 왼쪽 눈은 호루스 신을 떠나 이집트 전역을 여행하며 지식을 얻은 후) 지혜의 신이자 달의 신, 시간의 신인 토트 신에 의해 치유되어 (호루스 신에게 돌아와) 회복되었다. 그 때문에 "우아제트의 눈"은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지혜"와 "치유·수복·재생"의 상징이 되었다. 또한 호루스 신이 치유된 눈을 아버지 오시리스 신에게 바쳤다는 일화에서 공물의 상징이 되기도 했다.
또한, 수호신으로서의 우아제트의 성질에서 수호와 액막이의 부적으로 사용되었다.
미라 (사자)에 곁들여지기도 한다. 투탕카멘의 "우자트의 눈 흉식"이 유명하다.
제1중간기와 중왕국 시대에는 "우아제트의 눈"(왼쪽 눈)과 "라의 눈"(오른쪽 눈)을 좌우에 합친 양쪽 눈이 미라를 안치한 (미라는 몸의 왼쪽을 아래로 하여 안치되는 경우가 많았다) 널의 왼쪽에 그려지기도 했다. 이는 미라를 지키는 부적이자, 사자(미라)가 이 세상(관 밖)을 보기 위한 창으로 해석된다. 눈은 해가 뜨는 방향인 동쪽을 향하고 있었다.
4. 2. 라의 눈
고왕국 시대부터 태양신 라가 국가적 절대신으로 숭배받으면서, 태양을 상징하는 '''라의 눈'''으로 불리게 되었다.[3] 라의 눈은 태양신 라의 권능을 상징하며, 종종 여신으로 의인화된다.라는 스스로를 숭배하지 않는 인간을 멸망시키기 위해 자신의 한쪽 눈(오른쪽 눈이기도 하고 왼쪽 눈이기도 하다)을 암컷 사자의 머리를 가진 파괴의 여신 세크메트로 만들어 지상에 보내어 인간계에서 살육을 자행하게 했다.
4. 3. 호루스의 눈과 분수
고대 이집트의 측량 제도에서 호루스의 눈은 각 부분에 분수를 배치하여 사용되었다. 1/2, 1/4, 1/8, 1/16, 1/32, 1/64을 모두 더하면 63/64이다. 부족한 1/64은 호루스의 눈을 치유해준 지식과 달의 신인 토트가 채워준다고 여겼다.[4]
- 1/2은 후각을 상징한다.
- 1/4은 시각을 상징한다.
- 1/8은 생각을 상징한다.
- 1/16은 청각을 상징한다.
- 1/32은 미각을 상징한다.
- 1/64은 촉각을 상징한다.
4. 4. 상형 문자
앨런 가디너가 작성한 상형 문자 부호 목록에서 D10으로 표시된 ''웨자트'' 기호는 호루스의 눈을 나타내는 상형 문자이다.[1]이집트인들은 때때로 ''웨자트'' 눈 상형 문자의 조각을 나타내는 기호를 사용했다. 게오르크 묄러는 신관 문자 시스템에서 사용된 기호들이 호루스의 눈 상형 문자에서 파생되었다고 보았다. 그는 눈의 안쪽 모서리는 1/2, 동공은 1/4, 눈썹은 1/8, 바깥쪽 모서리는 1/16, 구불거리는 선은 1/32, 뺨의 표시는 1/64를 나타낸다고 생각했다.[2] 그러나 과학 및 수학 역사가인 짐 리터는 신관 기호가 호루스의 눈 기호와 다르다고 주장하며 묄러의 가설에 의문을 제기했다.[3]
호루스의 눈 상형 문자는 유니코드 표준의 이집트 상형 문자 블록에 U+13080 (𓂀)으로 등재되어 있다. 눈의 부분에 대한 상형 문자 (𓂁, 𓂂, 𓂃, 𓂄, 𓂅, 𓂆, 𓂇)는 U+13081부터 U+13087까지 등재되어 있다.[4]
5. 의례에서의 사용
오시리스 신화에서 호루스가 자신의 눈을 오시리스에게 바치는 것은 모든 장례 의례와 제례 의례의 원형이었다. 인간이 신에게 제물을 바치는 행위는 호루스에 비유되었고, 제물을 받는 신은 오시리스에 비유되었다. 이집트어 단어 "눈"(''jrt'')은 "행위"를 뜻하는 단어 ''jrj''와 비슷하여, 호루스의 눈은 어떤 의례적 행위와도 동일시될 수 있었다. 이러한 이유로 호루스의 눈은 신전에서 신들에게 바쳐지는 모든 양식을 상징했다.
세트에게 패배 후 왕이 된 호루스는 죽은 아버지에게 제물을 바쳐 그를 부활시키고 사후 세계에서 유지시켰다. 이 행위는 고대 이집트 장례 관습의 중요한 부분이었던 죽은 자에게 바치는 제물의 신화적 원형이었다. 신들은 그들이 바쳐지는 모든 재물의 존재에 책임이 있었으므로 제물은 신들 자신의 실체의 일부였다. 제물을 받으면서 신들은 호루스의 눈을 섭취했을 때의 오시리스처럼 그들 자신의 생명력으로 보충되었다. 이집트의 세계관에서 생명은 신들로부터 시작되어 세상을 통해 순환하는 힘이었으므로, 이 힘을 신들에게 돌려줌으로써 제례는 생명의 흐름을 유지했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치료법과 함께 신의 힘을 빌리는 의례가 행해졌으며, 이 둘은 명확히 구분되지 않았다. 치유 의례에서는 환자를 호루스와 동일시하여, 신화 속 호루스처럼 치유되기를 기원했다. 이 때문에 호루스의 눈은 치유 주문에 자주 등장했다. 특히 호루스의 눈은 눈병을 막는 힘이 있다고 여겨졌다.
5. 1. 제물과 축제
오시리스 신화에서 호루스의 눈을 오시리스에게 바치는 것은 모든 장례 의례와 제례 의례의 원형이었다. 인간이 신에게 제물을 바치는 행위는 호루스에 비유되었고, 제물을 받는 신은 오시리스에 비유되었다. 이집트어 단어 "눈"(''jrt'')은 "행위"를 뜻하는 단어 ''jrj''와 유사해, 말장난을 통해 호루스의 눈은 어떤 의례적 행위와도 동일시될 수 있었다. 이러한 이유로 호루스의 눈은 신전 숭배에서 신들에게 제공되는 모든 양식을 상징했다. 매장된 눈에서 꽃이나 포도나무가 자라는 신화의 버전은 눈과 의례적 제물의 관계를 강화하는데, 이러한 식물에서 파생된 향수, 음식, 음료는 제례 의례에 일반적으로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눈은 종종 마아트와 동일시되었는데, 이는 신전 숭배의 지속에 의존하고 모든 종류의 제물과 마찬가지로 동일시될 수 있는 우주 질서에 대한 이집트 개념이었다.세트에게 패배 후 왕이 된 호루스는 죽은 아버지에게 제물을 바쳐 그를 부활시키고 사후 세계에서 유지시킨다. 이 행위는 고대 이집트 장례 관습의 중요한 부분이었던 죽은 자에게 바치는 제물의 신화적 원형이었다. 또한 이집트 사원에서 신들을 위해 수행되었던 제례에 대한 개념에도 영향을 미쳤다. 호루스가 바치는 제물 중에는 그의 눈도 있는데, 오시리스가 그것을 섭취한다. 오시리스 아들의 일부인 눈은 궁극적으로 오시리스 자신에게서 유래된다. 따라서 이 맥락에서 눈은 이집트의 제물에 대한 개념을 나타낸다. 신들은 그들이 바쳐지는 모든 재물의 존재에 책임이 있었으므로 제물은 신들 자신의 실체의 일부였다. 제물을 받으면서 신들은 호루스의 눈을 섭취했을 때의 오시리스처럼 그들 자신의 생명력으로 보충되었다. 이집트의 세계관에서 생명은 신들로부터 시작되어 세상을 통해 순환하는 힘이었으므로, 이 힘을 신들에게 돌려줌으로써 제례는 생명의 흐름을 유지했다. 오시리스에게 눈을 바치는 것은 고통받는 신이 눈을 받고 건강을 되찾는다는 신화적 주제의 또 다른 예이다. 눈의 회복력은 이집트인들이 다른 의미 외에도 그것을 악에 대한 보호의 상징으로 여겼음을 의미했다.
이집트인들은 매달 달의 위상에 따라 여러 축제를 거행했는데, 예를 들어 음력 축제(달의 첫날), 월례 축제(둘째 날), 반월 축제가 있었다. 이 축제 기간 동안 살아있는 사람들은 죽은 자들에게 제물을 바쳤다. 이 축제들은 장례 텍스트에 자주 언급되었다. 이집트 중왕국 시대(기원전 2055–1650년경)부터 관 텍스트 시대에 시작하여, 장례 텍스트는 호루스의 눈의 치유와 함께 이러한 축제의 진행, 즉 달의 차오름을 병행했다.
5. 2. 치유 의례
고대 이집트에서는 실질적인 치료법과 함께 신의 힘을 빌리는 의례가 행해졌으며, 이 둘은 명확히 구분되지 않았다. 치유 의례에서는 환자를 호루스와 동일시하여, 신화 속 호루스처럼 치유되기를 기원했다. 이 때문에 호루스의 눈은 치유 주문에 자주 등장했다. 예를 들어 허스트 파피루스에는 의례를 행하는 의사를 "호루스의 눈의 의사인 토트"로, 의사가 약을 잴 때 쓰는 도구를 "호루스가 눈을 잰 척도"로 묘사하는 내용이 있다. 특히 호루스의 눈은 눈병을 막는 힘이 있다고 여겨졌다. 파피루스 레이덴 I 348과 같은 문서에는 인체 각 부위를 신과 동일시하여 보호를 기원하는 내용이 있는데, 왼쪽 눈은 호루스의 눈과 동일시되었다.6. 부적
''우자트'' 눈 모양의 부적은 고왕국 시대 말기에 처음 등장하여 로마 시대까지 계속 제작되었다.[3] 고대 이집트인들은 보통 부적과 함께 매장되었으며, 호루스의 눈은 가장 꾸준히 인기 있는 부적 형태 중 하나였다.[3] 이는 고왕국 시대의 미라에서 흔히 발견되는 몇 안 되는 유형 중 하나이며, 장례 부적의 수와 종류가 크게 증가했음에도 불구하고 이후 2천 년 동안 널리 사용되었다.[3] 신왕국 이전까지 장례용 ''우자트'' 부적은 가슴에 놓이는 경향이 있었지만, 신왕국 시대와 그 이후에는 미라화 과정에서 시체의 내부 장기가 제거된 절개 부위 위에 흔히 놓였다.[4]
''우자트'' 부적은 이집트 파이앙스, 유리, 금, 라피스 라줄리와 같은 반귀석을 포함한 다양한 재료로 만들어졌다. 그 형태 또한 매우 다양했다. 이러한 부적은 오른쪽 또는 왼쪽 눈을 나타낼 수 있었으며, 눈은 오픈워크로 형성되거나, 판에 통합되거나, 동공과 눈썹의 위치를 나타내는 최소한의 장식으로 눈 모양의 윤곽선에 불과하게 축소될 수 있었다. 신왕국 시대에는 우라에우스, 즉 솟아오르는 코브라가 눈 앞에 나타나고, 뒤쪽 나선은 새의 꼬리 깃털이 되며, 볼 자국은 새의 다리나 인간의 팔이 되는 등 정교한 형태가 나타났다.
제3중간기 (기원전 1070–664년경)에는 눈의 부분 사이의 틈새에 여러 개의 작은 동물이나 신의 형상이 삽입되거나, 눈이 네 개 세트로 그룹화되는 등 더욱 복잡한 디자인이 등장했다.
눈 기호는 ''앙크'' 및 ''제드'' 기호와 다양한 신의 문장과 같은 다른 보호 기호와 함께 더 큰 장신구에 통합될 수도 있었다. 기원전 13세기부터 눈 모양의 반점이 있는 유리 구슬이 ''우자트'' 부적과 함께 목걸이에 꿰어졌는데, 이것이 현대의 나자르의 기원일 수 있으며, 이는 악마의 눈을 막기 위한 일종의 구슬이다.
질병이나 출산과 같이 특히 위험한 상황에서 보호를 위해 임시 부적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의식 주문의 지침에는 수행자가 임시 부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린넨이나 파피루스에 ''우자트'' 눈을 그리도록 지시하는 경우가 많았다.
미라 (사자)에 곁들여지기도 하며, 투탕카멘의 "우자트의 눈 흉식"이 유명하다. 또한, 수호신으로서의 우아제트의 성질에서 수호와 액막이 부적으로 사용되었다.
7. 기타 용도
이집트 제1중간기(기원전 2181-2055년경)와 중왕국 시대의 관에는 종종 왼쪽 면에 한 쌍의 ''웨자트'' 눈이 그려졌다. 이 시기의 미라는 종종 왼쪽을 향하도록 돌려졌는데, 이는 죽은 자가 관 밖을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눈은 아마도 위험을 막기 위한 것이기도 했을 것이다.[1] 이와 유사하게, 호루스의 눈은 종종 배의 선수에 그려졌는데, 이는 배를 보호하고 앞길을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을 것이다.[1] ''웨자트'' 눈은 때때로 날개를 달고 왕이나 신 위에 보호적으로 떠 있는 모습으로 묘사되었다.[1] 석비에는 종종 ''웨자트'' 눈이 새겨졌다. 이집트 역사상 일부 시대에는 신이나 왕만이 석비의 반원형 부분에 자주 나타나는 날개 달린 태양 상징 바로 아래에 직접 묘사될 수 있었고, 호루스의 눈은 일반 사람들의 형상 위에 배치되었다.[2] 이 상징은 또한 문신에도 포함될 수 있었는데, 이는 여러 ''웨자트'' 눈을 포함한 정교한 문신으로 장식된 신왕국 시대 후반의 한 여성 미라로 입증되었다.[3]
이집트와 인접한 일부 문화권에서는 자체 예술에 사용하기 위해 ''웨자트'' 상징을 채택했다. 일부 이집트 미술 모티프는 가나안과 시리아에서 중기 청동기 시대에 널리 퍼졌다. 이 시대의 예술은 때때로 ''웨자트''를 포함했지만, ''앙크''와 같은 다른 이집트 상징보다 훨씬 드물었다.[4] 반면, ''웨자트''는 기원전 1천년과 기원후 초에 누비아의 쿠시 왕국 예술에 자주 나타났으며, 이는 쿠시에 대한 이집트의 강력한 영향을 보여준다. 오늘날까지, 많은 지중해 국가에서는 배의 선수에 눈을 그리는 관습이 있는데, 이는 배에 ''웨자트''의 눈을 사용한 데서 유래되었을 수 있다.
처방전의 심볼인 Rx 마크와의 관련성도 지적되지만, 이 설에는 객관적인 증거가 없다.
뇌의 단면도에서 송과체로 보는 가설이 있다.
사타닉 사인(콜나, 일본의 여우의 그림자극 제스처)을 옆에서 본 모습이라는 가설이 있다.
참조
[1]
서적
Egyptian Art
Duncan Baird Publishers
1997
[2]
서적
The Legacy of Ancient Egypt
Facts on File, Inc.
1997
[3]
웹인용
Lady of the West at hethert.org
http://www.hethert.o[...]
2010-01-14
[4]
서적
명화와 함께 떠나는 수학사 여행
살림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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