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라타 가쓰오
1. 개요
히라타 가쓰오는 1982년부터 1994년까지 한신 타이거스에서 선수로 활동한 일본의 전 프로 야구 선수이다. 나가사키현 출신으로, 대학 시절 도쿄 육대학 야구 리그에서 4번 우승하고 미일 대학 야구에도 출전했다. 1981년 드래프트에서 한신에 입단하여 유격수와 2루수로 활약하며 4년 연속 골든 글러브상을 수상했고, 1985년에는 팀의 센트럴 리그 우승과 일본 시리즈 제패에 기여했다. 은퇴 후에는 마이니치 방송 해설가와 스포츠 닛폰 평론가로 활동했으며, 1997년부터 한신 타이거스 코치로 복귀하여 2군 감독을 역임했다. 2023년에는 1군 헤드코치로 활동하며 38년 만에 일본 시리즈 우승을 경험했고, 2025년부터 다시 2군 감독을 맡을 예정이다.
| 선수명 | 히라타 가쓰오 |
|---|---|
| 원어명 | Katsuo Hirata |
| 일본어 표기 | 平田 勝男 (히라타 가쓰오) |
| 출신 국가 | 일본 |
| 출생지 | 나가사키현 마쓰우라시 |
| 생년월일 | 1959년 7월 31일 |
| 신장 | 177cm |
| 체중 | 78kg |
| 포지션 | 유격수 |
| 투구 | 우투 |
| 타석 | 우타 |
| 프로 입단 연도 | 1981년 |
| 드래프트 순위 | 2순위 |
| 첫 출장 | 1982년 4월 7일 |
| 마지막 경기 | 1994년 10월 1일 (인퇴 경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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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등학교 | 해성고등학교 |
|---|---|
| 대학교 | 메이지 대학 |
| 프로 구단 | 한신 타이거스 (1982년 ~ 1994년) |
| 소속 구단 | 한신 타이거스 (1997년 ~ 2001년, 2004년 ~ 2010년, 2013년 ~ ) |
|---|---|
| 기타 | 사무라이 재팬 U21 초대 감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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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9년 출생 -
심상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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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9년 출생 -
유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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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고등법원
광주고등법원은 1952년에 설치되어 광주광역시, 전라남도, 전북특별자치도, 제주특별자치도를 관할하며, 제주와 전주에 원외재판부를 두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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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2년
1502년은 율리우스력으로 수요일에 시작하는 평년으로, 이사벨 1세의 이슬람교 금지 칙령 발표, 콜럼버스의 중앙아메리카 해안 탐험, 바스쿠 다 가마의 인도 상관 설립, 크리미아 칸국의 킵차크 칸국 멸망, 비텐베르크 대학교 설립, 최초의 아프리카 노예들의 신대륙 도착 등의 주요 사건이 있었다. -
일본의 야구 선수 -
도마시노 겐지
도마시노 겐지는 1988년 야쿠르트 스왈로스에 입단하여 1989년 신인왕을 수상하고 빠른 발과 수비력을 갖춘 유틸리티 플레이어로 활약한 일본의 전 프로 야구 선수이자 현재 야구 해설가이다. -
일본의 야구 선수 -
다도코로 젠지로
다도코로 젠지로는 시즈오카 상업고등학교 시절 선발 고등학교 야구 대회에서 전 경기 완봉승으로 우승을 이끌었으며, 고쿠테쓰 스왈로스에 입단하여 투수로 활동, 은퇴 후에는 코치, 야구 연맹 임원, 유소년 야구팀 대표를 역임했다.
2.1. 프로 입단 전
마쓰우라시 이마후쿠정 출신이다. 나가사키시의 카이세이 고등학교에 진학하여 2학년 때 유격수 주전 선수가 되었다. 1년 선배인 사카이 케이이치 투수와 함께 제58회 전국 고등학교 야구 선수권 대회에 출전했지만 준결승에서 PL 학원 고등학교에 연장전 끝에 패했다. 다음 해 제49회 선발 고등학교 야구 대회에도 출전하여 개회식에서 선수 선서를 했다. 대회 2회전(첫 경기)에서 고치현립 나카무라 고등학교의 야마오키 유키히코 투수에게 막혀 탈락했다.
고등학교 졸업 후 메이지 대학에 진학하여, 당시 야구부 감독인 시마오카 키치로의 지도를 받았다. 도쿄 육대학 야구 리그에서는 재학 중 4번의 우승을 경험했고, 전일본 대학 야구 선수권 대회에서 3회, 메이지 진구 야구 대회에서도 1979년에 우승했다. 리그 통산 성적은 다음과 같다.
| 구분 | 기록 |
|---|---|
| 출장 경기 | 83 |
| 타수 | 307 |
| 안타 | 96 |
| 타율 | .313 |
| 홈런 | 2 |
| 타점 | 39 |
| 베스트 나인 | 4회 |
대학 시절부터 희생 번트 기술이 뛰어났으며, 1980년부터 2년 연속 출전한 미일 대학 야구에서는 해설자가 "히라타의 번트는 백발백중"이라고 소개할 정도였다. 대학 동기로는 에이스 모리오카 신이치(닛산 자동차) 등이 있다. 히라타가 4학년 때 대학 선수권에서 우승한 이후 메이지 대학은 오랫동안 이 대회에서 우승하지 못했다. 2019년에 메이지 대학이 다시 우승했을 때, 당시 1학년이었던 젠바 타츠야 감독(히로사와 카츠미 등과 동기)은 우승 인터뷰에서 히라타를 포함한 당시 우승 멤버 9명의 이름을 언급하기도 했다.
2.2. 한신 타이거스 시절 (1982년 ~ 1994년)
1981년 드래프트 회의에서 2순위로 요코하마 다이요 웨일스와 한신 타이거스로부터 중복 지명을 받았고, 추첨 결과 한신에 입단하게 되었다.
당시 히라타는 타격이 약점으로 평가받았고, 메이지 대학의 시마오카 감독은 "프로에 가도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히라타 본인도 사회인 야구 진출을 고려하며 입단 교섭을 시마오카 감독에게 맡겼다. 시마오카 감독은 한신 측에 히라타를 프로에 보내지 않겠다고 했으나, 한신의 신임 감독 안도 모토오(게이오대 출신)가 "대학 시절 시마오카 감독에게 자주 당했다"며 칭찬하자 기분이 좋아져, 그 자리에서 히라타에게 "너, 한신으로 가라"고 지시했다. 시마오카 감독은 특히 와세다 대학과 게이오기주쿠 대학 야구부 간의 라이벌전인 소케이에 강한 경쟁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히라타 본인이 후에 말했다.
입단 초기 한신의 주전 유격수는 마유미 아키노부였으나, 1983년 5월 마유미가 부상을 당하면서 히라타가 유격수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마유미는 복귀 후 오카다 아키노부의 부상으로 비어 있던 2루수로 포지션을 변경했다. 히라타는 그해 83경기에 선발 출장하며 주전 유격수로 자리 잡았다.
1984년에는 처음으로 규정 타석에 도달했고(리그 29위, 타율 .268), 그해부터 1987년까지 4년 연속 골든 글러브상을 수상하며 수비의 명수로 활약했다. 한신이 21년 만에 센트럴 리그 우승과 구단 역사상 첫 일본 시리즈 우승을 달성한 1985년에는 타격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이며, 7번 타순에서 50타점 이상을 기록하는 등 팀의 중심 선수로 활약했다. 같은 해 10월 10일 한신 고시엔 구장에서 열린 야쿠르트 스왈로스전에서는 프로 첫, 그리고 야구 인생 첫 만루 홈런을 쏘아 올렸다. 세이부와의 일본 시리즈에서는 1차전 3안타를 포함해 시리즈 통산 22타수 7안타 1타점을 기록하며 팀의 일본 시리즈 우승에 기여했다.
1988년 무라야마 미노루 감독이 부임하면서 주전 유격수 자리는 와다 유타카가 차지하게 되었고, 히라타는 주로 백업 선수로 활동하게 되었다. 이후 출장 경기 수가 100경기를 넘지 못했지만, 뛰어난 수비력과 번트 기술을 바탕으로 팀의 귀중한 백업 선수로 공헌했다. 1990년에는 선발 출장이 8경기에 불과했지만, 타격은 호조를 보여 주로 대타로 나와 타율 .347의 좋은 성적을 기록했다.
1994년 시즌을 끝으로 현역에서 은퇴했다. 10월 1일 한신 고시엔 구장에서 열린 히로시마 도요 카프전이 그의 은퇴 경기가 되었으며, 2번 타자 겸 유격수로 선발 출장했다. 현역 마지막 타석에서는 나카무라 카츠히로 감독으로부터 "휘둘러라"는 지시를 받았지만, 히라타 자신의 판단으로 희생 번트를 했다. 현역 시절 나카니시 키요오키・히라타・키도 카츠히코 3명으로 NHK 트리오라고 불렸다.
3. 지도자 경력
주로 한신 타이거스에서 지도자 생활을 했으며, 재임 기간은 1997년부터 2001년, 2004년부터 2010년, 그리고 2013년부터 현재까지이다.
3.1. 한신 타이거스 코치 (1997년 ~ 2010년, 2013년 ~ 현재)
은퇴 후에는 마이니치 방송 해설가 및 스포츠 닛폰 평론가(1995년 ~ 1996년)로 활동하다가, 1997년에 1군 내야 수비 코치로 한신에 복귀했다. 1999년부터 2000년까지는 1군 수비 코치, 2001년에는 1군 수비 주루 코치를 맡았다. 코치 시절에도 특유의 큰 목소리로 팀 분위기를 주도했으며, "엄격하고 즐겁게"를 지도 모토로 삼았다。
2002년, 대학 선배인 호시노 센이치가 감독으로 부임하자, 감독 전속 홍보 담당 및 운전기사를 맡게 되었다. 당시 감독 차량의 번호판을 자신의 생일인 '731'로 정했다가, 이유를 묻는 호시노 감독에게 "제 생일입니다"라고 답해 꾸중을 들을 뻔한 일화가 있다。
호시노 감독이 물러난 2004년부터는 오카다 아키노부 감독 체제 하에서 1군 헤드코치로 현장에 복귀했다. 2005년 9월 7일 주니치 드래곤스와의 경기(나고야 돔)에서는 9회말 홈 크로스 플레이 판정에 항의하다 구심 타치바나 아츠시를 밀쳐 퇴장당하기도 했다.
2007년부터는 2군 감독을 맡아, 2010년에 팀을 4년 만의 웨스턴 리그 우승으로 이끌었으나, 시즌 종료 후 퇴단했다.
2011년 시즌부터 다시 마이니치 방송 해설가와 스포츠 닛폰 평론가로 활동했다. 해설가 복귀 후 첫 일정은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감독으로 부임한 호시노 센이치와의 인터뷰였다。 2012년에는 해설 및 평론 활동과 더불어 '아시야 학원 스포츠 모더니즘 프로젝트' 멤버로 초빙되어, 같은 해 4월부터 아시야 대학의 객원 교수로도 활동했다.
2013년, 2군 감독으로 2년 만에 한신에 복귀했으며, 2014년까지 같은 직책을 유지했다. 2015년에는 1군 헤드코치, 2016년부터는 1군 치프 겸 수비 주루 코치를 맡았고, 2019년부터 다시 2군 감독으로 부임했다。
2019년 6월 14일, 전날 열린 오릭스 버팔로스 2군과의 경기에서 선수 교체를 제때 통보하지 않아 사이토 쥰 커미셔너로부터 엄중 주의를 받았다。
2021년에는 히라타가 이끄는 한신 2군이 7월 30일 오릭스전(한신 나루하마 구장)부터 9월 15일 소프트뱅크전(고시엔)까지 무승부를 포함해 18연승을 기록하며, 1999년 요미우리 자이언츠 2군이 세운 15연승 기록을 넘어선 팜 일본 신기록을 수립했다。 이후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2군과 치열한 선두 경쟁 끝에 9월 24일 오릭스전(고시엔) 승리로 팀을 3년 만의 리그 우승으로 이끌었다。 해당 시즌 팀 최종 성적은 106경기 65승 34패 7무, 승률 .657이었다。 이어 10월 9일 열린 팜 일본 선수권(히나타 선 마린 스타디움 미야자키)에서는 이스턴 리그 우승팀인 지바 롯데 마린스 2군을 꺾고 팜 일본 정상에 올랐다。
오카다 아키노부 감독이 1군 감독으로 복귀한 2023년부터는 다시 1군 헤드코치를 맡았다。 그해 현역 드래프트에서 한신이 소프트뱅크의 오타케 코타로를 지명했는데, 이는 2군 감독 시절 팜에서 오타케와 상대하며 그의 기량을 높이 평가했던 히라타의 의견이 반영된 결과였다。 이 해, 히라타는 현역 시절인 1985년 이후 38년 만에 팀의 일본 시리즈 우승을 코치로서 경험했다.
2025년부터는 다시 2군 감독을 맡을 예정이다.
4. 선수로서의 특징
힘은 부족했지만, 희생타 등의 작은 기술과 승부 근성을 갖춘 타격, 그리고 견실한 수비가 강점이었다. 1987년까지 유격수 주전 선수로 4년 연속 골든 글러브상을 수상했으며, 이후에는 중요한 백업 선수로서 팀에 기여했다. 동료 투수였던 야마모토 카즈유키는 "자신이 잡을 수 있는 타구는 절대 실책하지 않았다. 그것만으로도 투수로서 계산이 서고, 안심하고 던질 수 있다"라고 히라타의 수비를 높이 평가했다. 깊은 수비 위치에서 강한 어깨를 바탕으로 빠른 송구를 하여 타자 주자를 잡아내는 능력이 뛰어났으며, 1985년 일본 시리즈에서도 여러 차례 좋은 수비를 보여주었다. 현역 시절에는 나카니시 키요오키, 히라타, 키도 카츠히코 세 명을 묶어 NHK 트리오라고 부르기도 했다.
5. 인물 및 에피소드
1981년 드래프트에서 2순위로 요코하마 다이요 웨일스와 한신 타이거스가 중복 지명했고, 추첨 결과 한신에 입단하게 되었다.
당시 메이지 대학의 시마오카 다케시 감독은 히라타의 타격 능력을 낮게 평가하여 "프로에 가도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고, 히라타 본인도 이에 동의하여 사회인 야구로 진로를 정한 상태였다. 입단 교섭 자리에서도 히라타는 별실에서 대기하고 시마오카 감독이 교섭을 맡았다. 시마오카 감독은 한신 측에 "히라타를 프로에 보낼 생각이 없다"고 거절했다. 하지만 당시 한신의 신임 감독이었던 안도 모토오(게이오기주쿠 대학 출신)가 "대학 리그 시절 시마오카 감독님께 많이 당했다"며 칭찬하자 기분이 좋아진 시마오카 감독은 별실의 히라타를 불러 "너, 한신으로 가라"고 그 자리에서 입단을 명령했다고 히라타 본인이 후에 밝혔다. 시마오카 감독은 특히 게이오기주쿠 대학에 강한 경쟁심을 가지고 있었다.
입단 초기 한신의 주전 유격수는 마유미 아키노부였으나, 1983년 5월 마유미가 부상으로 이탈하면서 히라타가 유격수 자리를 차지했다. 마유미는 복귀 후 오카다 아키노부의 부상으로 비어있던 2루수로 포지션을 변경했다. 히라타는 그해 83경기에 선발 출장했다.
1984년에는 처음으로 규정 타석(리그 29위, 타율 .268)을 채웠고, 그해부터 1987년까지 4년 연속 골든 글러브상을 수상하며 수비의 명수로 활약했다. 한신이 21년 만에 센트럴 리그 우승과 창단 첫 일본 시리즈 우승을 달성한 1985년에는 타격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여주며 7번 타자임에도 50타점 이상을 기록했다. 같은 해 10월 10일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와의 경기(한신 고시엔 구장)에서는 프로 데뷔 후 처음이자 야구 인생 처음으로 만루 홈런을 치기도 했다. 세이부 라이온스와의 1985년 일본 시리즈에서는 1차전 3안타를 포함해 시리즈 통산 22타수 7안타 1타점을 기록하며 팀의 일본 시리즈 우승에 기여했다.
1988년 무라야마 미노루 감독이 부임하면서 주전 유격수 자리는 와다 유타카에게 넘어갔고, 이후 주로 백업 선수로 활동했다. 출장 경기는 줄었지만, 뛰어난 수비력과 번트 기술로 팀에 기여했다. 1990년에는 선발 출장은 8경기에 그쳤지만, 대타로 나와 타율 .347을 기록하며 타격에서 좋은 성적을 남겼다.
1994년에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10월 1일 히로시마 도요 카프전(고시엔 구장)이 은퇴 경기가 되었으며, 2번 타자 유격수로 선발 출장했다. 마지막 타석에서는 나카무라 카츠히로 감독이 "마음껏 휘두르라"고 지시했지만, 히라타 자신의 판단으로 희생 번트를 성공시켰다. 현역 시절 나카니시 키요오키, 히라타, 키도 카츠히코 세 선수는 'NHK 트리오'라고 불리기도 했다.
은퇴 후에는 1995년부터 1996년까지 마이니치 방송 해설가 및 스포츠 닛폰 평론가로 활동하다가, 1997년 한신 타이거스의 1군 내야 수비 코치로 복귀했다. 1999년부터 2000년까지는 1군 수비 코치, 2001년에는 1군 수비 주루 코치를 맡았다. 코치 시절에도 특유의 큰 목소리로 팀 분위기를 주도했으며, "엄격하고 즐겁게"를 지도 모토로 삼았다.
2002년, 대학 선배인 호시노 센이치가 감독으로 부임하자 감독 전속 홍보 담당 및 운전기사를 맡았다. 당시 감독 차량 번호판을 '1001'(센이치) 등으로 고민하다가 자신의 생일인 '731'로 정했는데, 호시노 감독이 이유를 묻자 "제 생일입니다"라고 답해 혼날 뻔한 일화가 있다.
호시노 감독이 물러난 2004년부터는 오카다 아키노부 감독 체제 하에서 1군 수석 코치로 현장에 복귀했다. 2005년 9월 7일 주니치 드래곤스전(나고야 돔)에서는 9회말 홈 크로스 플레이 판정에 항의하다 구심 타치바나 아츠시를 밀쳐 퇴장당하기도 했다.
2007년부터는 2군 감독을 맡아, 2010년에는 팀을 4년 만의 웨스턴 리그 우승으로 이끌었으나, 시즌 종료 후 팀을 떠났다.
2011년 시즌부터 마이니치 방송 해설가, 스포츠 닛폰 평론가로 다시 활동했다. 복귀 후 첫 일정은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감독으로 부임한 호시노 센이치와의 인터뷰였다. 2012년에는 해설 및 평론 활동과 병행하며 아시야 대학의 객원 교수로도 활동했다.
2013년부터는 2군 감독으로서, 2년 만에 현장에 돌아왔다. 2014년도 같은 직을 맡았고, 2015년은 1군 수석 코치, 2016년부터는 1군 수석 겸 수비 주루 코치, 2019년부터는 다시 2군 감독을 맡았다.
2019년 6월 14일, 전날 열린 오릭스 버팔로스 2군과의 경기에서 선수 교체 통보를 누락하여 NPB 커미셔너 사이토 쥰으로부터 엄중 주의를 받았다.
2021년, 히라타가 이끄는 한신 2군은 7월 30일 오릭스 2군전(한신 나루하마 구장)부터 9월 15일 소프트뱅크 2군전(고시엔 구장)까지 무승부를 포함하여 18연승을 기록했다. 이는 1999년 요미우리 자이언츠 2군이 세운 15연승 기록을 넘어서는 일본 프로야구 2군 신기록이었다. 이후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2군과 치열한 선두 경쟁 끝에 9월 24일 오릭스 2군전(고시엔 구장) 승리로 팀을 3년 만의 웨스턴 리그 우승으로 이끌었다. 해당 시즌 팀 최종 성적은 106경기 65승 34패 7무, 승률 .657이었다. 10월 9일 미야자키 선 마린 스타디움에서 열린 팜 일본 선수권에서는 이스턴 리그 우승팀 지바 롯데 마린스 2군을 꺾고 2군 일본 시리즈 우승을 달성했다.
오카다 아키노부가 1군 감독으로 복귀한 2023년부터, 1군의 수석 코치로 복귀했다. 그 해의 현역 드래프트에서는 한신은 소프트뱅크의 오타케 코타로를 지명했는데, 이것은 2군 감독 시절 오타케와 상대하며 그의 실력을 높이 평가했던 히라타의 의견이 반영된 결과였다. 히라타는 이 해, 현역 시절인 1985년 이후 38년 만에 2023년 일본 시리즈 우승을 코치로서 경험했다.
2025년부터는 다시 2군 감독을 맡는다.
6. 상세 정보
(내용 없음)
6.2. 개인 기록
; 첫 기록
* 첫 출장: 1982년 4월 7일, 주니치 드래곤스 3차전(나고야 구장), 6회 초에 우다 히가시쇼쿠의 대타로 출장
* 첫 안타: 1982년 7월 31일, 요미우리 자이언츠 19차전(한신 고시엔 구장), 8회 말에 신우라 히사오를 상대로 단타
* 첫 타점: 1982년 9월 2일, 요코하마 다이요 웨일스 23차전(요코하마 스타디움), 7회 초에 히라마쓰 마사지를 상대로 적시타
* 첫 선발 출장: 1983년 5월 7일, 야쿠르트 스왈로스 2차전(메이지 진구 야구장), 2번 타자·유격수로 선발 출장
* 첫 홈런: 1983년 5월 28일, 요미우리 자이언츠 8차전(한신 고시엔 구장), 1회 말에 신우라 히사오를 상대로 솔로 홈런
; 기타 기록
* 올스타전 출장: 1회 (1985년)
6.3. 연도별 타격 성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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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도 | 소속 | 경기 | 타석 | 타수 | 득점 | 안타 | 2루타 | 3루타 | 홈런 | 루타 | 타점 | 도루 | 도루자 | 희생번 | 희생플 | 볼넷 | 고의4 | 사구 | 삼진 | 병살타 | 타율 | 출루율 | 장타율 | OPS |
|---|---|---|---|---|---|---|---|---|---|---|---|---|---|---|---|---|---|---|---|---|---|---|---|---|
| 1982년 | 한신 | 23 | 22 | 17 | 3 | 4 | 0 | 0 | 0 | 4 | 1 | 1 | 0 | 2 | 0 | 2 | 0 | 1 | 2 | 0 | .235 | .350 | .235 | .585 |
| 1983년 | 100 | 340 | 292 | 33 | 73 | 12 | 1 | 2 | 93 | 28 | 1 | 2 | 22 | 1 | 20 | 1 | 5 | 25 | 8 | .250 | .308 | .318 | .627 | |
| 1984년 | 128 | 493 | 437 | 42 | 117 | 24 | 1 | 6 | 161 | 41 | 2 | 0 | 24 | 2 | 28 | 0 | 2 | 26 | 9 | .268 | .313 | .368 | .682 | |
| 1985년 | 125 | 455 | 402 | 47 | 105 | 15 | 2 | 7 | 145 | 53 | 6 | 2 | 25 | 1 | 23 | 0 | 4 | 35 | 12 | .261 | .307 | .361 | .668 | |
| 1986년 | 124 | 448 | 405 | 47 | 108 | 15 | 1 | 5 | 140 | 33 | 1 | 2 | 22 | 0 | 16 | 0 | 5 | 41 | 7 | .267 | .303 | .346 | .648 | |
| 1987년 | 126 | 454 | 418 | 30 | 109 | 15 | 0 | 3 | 133 | 21 | 3 | 2 | 13 | 0 | 21 | 0 | 2 | 42 | 16 | .261 | .299 | .318 | .618 | |
| 1988년 | 90 | 200 | 180 | 12 | 51 | 9 | 1 | 0 | 62 | 16 | 0 | 3 | 7 | 1 | 10 | 1 | 2 | 24 | 3 | .283 | .326 | .344 | .671 | |
| 1989년 | 89 | 119 | 102 | 7 | 14 | 3 | 1 | 0 | 19 | 6 | 1 | 0 | 9 | 1 | 6 | 2 | 1 | 9 | 3 | .137 | .191 | .186 | .377 | |
| 1990년 | 60 | 84 | 72 | 6 | 25 | 3 | 0 | 0 | 28 | 10 | 0 | 2 | 6 | 1 | 5 | 0 | 0 | 6 | 4 | .347 | .385 | .389 | .774 | |
| 1991년 | 44 | 54 | 49 | 5 | 13 | 1 | 0 | 0 | 14 | 2 | 0 | 1 | 2 | 0 | 2 | 0 | 1 | 8 | 1 | .265 | .308 | .286 | .593 | |
| 1992년 | 40 | 55 | 48 | 2 | 8 | 2 | 0 | 0 | 10 | 6 | 3 | 0 | 5 | 0 | 0 | 0 | 2 | 8 | 2 | .167 | .200 | .208 | .408 | |
| 1993년 | 29 | 29 | 28 | 1 | 6 | 1 | 0 | 0 | 7 | 3 | 1 | 0 | 0 | 1 | 0 | 0 | 0 | 3 | 0 | .214 | .207 | .250 | .457 | |
| 1994년 | 1 | 1 | 0 | 0 | 0 | 0 | 0 | 0 | 0 | 0 | 0 | 0 | 1 | 0 | 0 | 0 | 0 | 0 | 0 | ---- | ---- | ---- | ---- | |
| 통산: 13년 | 979 | 2754 | 2450 | 235 | 633 | 100 | 7 | 23 | 816 | 220 | 19 | 14 | 138 | 8 | 133 | 4 | 25 | 229 | 65 | .258 | .302 | .333 | .635 | |
7. 미디어 출연
미키 마우스를 닮은 외모와 밝고 사교적인 성격 때문에 한신 타이거스 현역 선수 시절에는 미키라는 애칭으로 불렸다. MBS 라디오의 야구 해설자로 복귀했을 때, MBS 프로야구 중계에서 한신 타이거스 경기 해설을 맡을 경우 "돌아온 축제의 남자"(2012년 이후에는 "호랑이 축제의 남자")라는 캐치프레이즈가 붙었다.
7.1. 방송
미키 마우스를 닮은 외모와 밝고 사교적인 성격 덕분에 한신 타이거스 현역 선수 시절에는 미키라는 애칭으로 불렸다. MBS 라디오의 야구 해설자로 활동할 때는 MBS 프로야구 중계에서 한신 타이거스 경기 해설을 맡을 경우 "돌아온 축제의 남자"(2012년 이후에는 "호랑이 축제의 남자")라는 별명이 붙었다.
1군 코치 시절 팀이 센트럴 리그 우승이나 일본 시리즈 우승을 차지했을 때 열린 축승회 '맥주 파티'에서 다음과 같은 일화들을 남겼다.
* 2005년 센트럴 리그 우승 축승회에서는 당시 주력 선수였던 가네모토 도모노리의 권유로 단상에 올라, 인사를 시작한 오카다 감독(와세다 대학 야구부 출신 선배)에게 "요! 오카다!"라고 반말로 외쳤다. 이어서 "일본 제일이 되면 나를 헹가래 쳐줘!"라고 소리쳤으나, 팀은 이후 일본 시리즈에서 지바 롯데 마린스에게 4연패를 당해 헹가래는 무산되었다.
* 오카다 감독 체제에서 38년 만에 일본 시리즈 우승을 차지한 2023년 축승회(11월 6일 새벽 오사카부 내에서 개최)에서는 "중간 마무리" 인사를 하며 "연회도 [[다케나카 나오토|다케나카]](한창이라는 의미)입니다만, 날도 저물었으니, 나카지마(중간 마무리라는 의미)하겠습니다"라는 아재 개그를 선보였다. 선수들을 향해 "38년 만에, 오카다 감독(과) 히라타 헤드(코치) 선수 시절에, 겨우 너희들이 따라왔다. 이제부터는 따라잡아 봐!"라고 격려한 뒤, 아사히 맥주가 제공한 [[아사히 슈퍼 드라이]] 병을 들고 카메라를 향해 "전국의 야구 팬 여러분, 수고하셨습니다. 슈퍼 드라이! 광고 기다리고 있어요!"라고 외치며 축승회를 마무리했다. 이 장면이 방송과 YouTube 등에서 큰 화제가 되자, 아사히 맥주는 히라타에게 광고 출연을 제안했다. 실제로 히라타가 등장하는 [[YouTube]]용 광고와 간사이 지역용 포스터가 제작되었고, 히라타가 맥주잔을 들고 건배하는 사진과 "수고하셨습니다." 문구가 담긴 손수건이 한신 타이거스의 기간 한정 공식 상품으로 발매되기도 했다.
아사히 맥주는 한신 타이거스의 공식 스폰서이며, "일본 여러분! 수고하셨습니다."라는 문구를 아사히 생맥주 '마루에프'의 광고나 포스터에 사용하고 있었다. 히라타는 이 광고를 좋아해서 축승회 "중간 마무리"에 해당 문구를 차용했다고 밝혔다. 한편, 앞서 언급한 아재 개그는 1985년 우승 당시 팀 동료였던 나카니시 기요키가 현역 시절 자주 사용했던 것임을 밝혔다.
'아사히 생맥주' 이미지 캐릭터 중 한 명으로 당시 광고에 출연했던 마쓰시타 고헤이는 축승회 다음 주(2023년 11월 14일) 이벤트에서 "'저 대신 히라타 코치가 광고에 출연하는 게 아닐까' 불안하다", "(히라타가) 들고 있던 병이 '슈퍼 드라이'였는데, '마루에프' 병을 들고 있었으면 했다"고 언급했다. 한편 히라타는 광고 출연 제의에 대해 "터무니없다. 저 따위가 주제넘다. 기세로 마무리 인사를 했을 뿐인데, 그런 이야기를 해주시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 사실 광고 출연이 하고 싶었던 게 아니라 흥에 겨워 말해버린 거라 반성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히라타가 출연한 광고는 "[https://www.youtube.com/watch?v=o9Vc1Td92JM '아사히 생맥주'의 PR 동영상]"("야구 팬 여러분, 수고하셨습니다."라는 제목, 56초 분량)으로, 2023년 11월 24일부터 YouTube 아사히 맥주 그룹 공식 채널에서 공개되었다. 영상에는 축승회 당시 히라타의 발언 장면([[아사히 방송 텔레비전]] 촬영분)과 광고 음악인 [[다케우치 마리야]]의 '[[힘을 내]]' 음원이 사용되었다. 또한 히라타가 타이거스 유니폼 차림으로 '아사히 생맥주' 병을 들고 "'마루에프'는 이제 틀림없이, '슈퍼 드라이'와 함께, '야구'에만 '히트' 상품"이라고 말하는 장면이 새로 촬영되었으며, "'수고하셨습니다.'는, 슈퍼 드라이가 아니라, 마루에프입니다."라는 자막이 크게 삽입되었다. 이 광고는 같은 해 12월부터 간사이 지방 영화관 등에서도 상영되었다.
팀 우승 기념 여행으로 [[하와이 주|하와이]]에 머물던 2023년 12월 13일(현지 시간) [[호놀룰루]] 호텔에서 열린 우승 기념 파티에서도 "광고가 쇄도하고 있다"며 "중간 마무리" 인사를 맡아, 준비된 아사히 슈퍼 드라이 병을 들고 "여러분. 1년 동안, 수고하셨습니다."라고 외친 뒤, "중간 마무리 미유키의 인사"라며 "(엔화 환율이) 1달러에 145엔이라 하와이 쇼핑이 힘든 세상이 되었지만, 여러분 하와이를 즐깁시다. 엔조이! 하와이! 카이산(해산)!"이라는 발언으로 장내를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 출연 목록 ===
| 방송사 | 프로그램명 | 비고 |
|---|---|---|
| MBS TV | 사무라이 프로야구 | 2011년·2012년 |
| MBS TV | 맹호 파일 → with 타이거즈'12 | 2011년·2012년, "히라타 가쓰오의 이긴다!"→"히라타 가쓰오의 승약남" 코너 담당 |
| MBS TV | 세야넨! | 한신 2군 감독 시절부터 "세야넨! 스포츠" 부정기 게스트 출연, 해설가 시절(2011년 7월 2일~2012년 10월 13일) 동 코너 레귤러 |
| MBS TV | 치친푸이푸이 | 프로야구 관련 내용 시 부정기 출연 |
| MBS 라디오 | MBS 타이거스 라이브 | 2011년·2012년 |
| MBS 라디오 | MBS 토라구미 타이거스 라이브! | 2011년도 비시즌 프로그램, 목요일 담당 |
| ABC 라디오 | 호리에 마사오의 호리 네비!! | 2016년 10월 19일 방송분 "요시다 요시오의 그 사람은 지금 전 프로 야구 선수 명감" 코너 스튜디오 출연 |
7.2. 광고
한신 타이거스가 2023년 일본 시리즈에서 38년 만에 우승했을 때, 11월 6일 새벽 오사카부 내에서 열린 축승회에서 히라타는 헤드 코치로서 "중간 마무리" 인사를 맡았다. 그는 "연회도 다케나카 나오토(한창)입니다만, 날도 푹 저물었으니, 나카지마 미유키(중간 마무리)하겠습니다"라는 아재 개그를 선보였다. 이어서 선수들을 향해 "38년 만에, 오카다 감독(과) 히라타 헤드(코치) 선수 시절에, 겨우 너희들이 따라왔다. 이제부터는 따라잡아 봐!"라고 격려한 뒤, 아사히 맥주가 제공한 아사히 슈퍼 드라이 중간 병을 들고 TV 카메라를 향해 "전국의 야구 팬 여러분, 수고하셨습니다. 슈퍼 드라이! 광고 기다리고 있어요!"라고 외치며 축승회를 마무리했다.
이 발언은 큰 화제를 모았고, 아사히 맥주는 실제로 히라타에게 광고 출연을 제안했다. 히라타 본인은 "저 따위가 주제넘습니다. 기세로 마무리 인사를 했을 뿐인데, 그런 이야기를 해주시는 것만으로도 감사합니다. 사실은 CM 출연이 갖고 싶은 게 아니라, 흥에 취해서 말해버린 거라 반성하고 있습니다"라고 겸손한 반응을 보였다.
* 아사히 맥주와의 관계: 아사히 맥주는 한신 타이거스의 공식 스폰서이며, 당시 "일본 여러분! 수고하셨습니다."라는 문구를 아사히 생맥주 〈마루에프〉의 CM과 포스터에 사용하고 있었다. 히라타는 이 CM을 좋아해 해당 문구를 축승회 인사에 차용한 것이었다. 한편, 아재 개그는 1985년 우승 당시 팀 동료였던 나카니시 기요키가 자주 사용하던 것을 빌린 것이라고 밝혔다.
* 관련 인물 반응: 당시 '아사히 생맥주' CM에 출연 중이던 배우 마쓰시타 고헤이는 "저 대신 히라타 코치가 CM에 출연하는 게 아닐까 불안하다", "(히라타가) 들고 있던 병이 '슈퍼 드라이'였는데, 꼭 '마루에프' 병을 들고 있었으면 했다"고 농담 섞인 코멘트를 했다.
결국 히라타가 출연하는 YouTube용 광고 영상과 간사이 지역용 포스터가 제작되었다.
* YouTube 광고 영상: "야구 팬 여러분, 수고하셨습니다."라는 제목의 56초짜리 [https://www.youtube.com/watch?v=o9Vc1Td92JM "아사히 생맥주"의 PR 동영상]으로 제작되어 2023년 11월 24일부터 아사히 맥주 그룹 공식 채널에서 공개되었다. 영상에는 히라타가 축승회에서 외치는 장면(아사히 방송 텔레비전 촬영 영상)과 CM송인 다케우치 마리야의 『힘을 내』 음원이 사용되었다. 또한, 히라타가 타이거스 유니폼 차림으로 '아사히 생맥주' 병을 들고 "'마루에프'는 이제 틀림없이, '슈퍼 드라이'와 함께, '야구'에만 '히트' 상품"이라고 말하는 장면이 새로 촬영되었다. 영상에는 ""수고하셨습니다."는, 슈퍼 드라이가 아니라, 마루에프입니다."라는 자막이 크게 삽입되었다. 이 영상은 같은 해 12월부터 간사이 지역 영화관 등에서도 상영되었다.
* 굿즈 발매: 히라타가 맥주잔을 들고 건배하는 사진과 "수고하셨습니다." 문구가 담긴 손수건이 한신 타이거스의 기간 한정 공식 굿즈로 발매되기도 했다.
이후 팀 우승 기념 여행으로 떠난 하와이 호놀룰루의 호텔에서 2023년 12월 13일(현지 시간) 열린 우승 기념 파티에서도 히라타는 "'광고'가 쇄도하고 있으므로"라며 다시 "중간 마무리" 인사에 나섰다. 그는 스태프가 준비한 아사히 슈퍼 드라이 병을 들고 "여러분. 1년 동안, 수고하셨습니다."라고 참가자들을 격려한 뒤, "중간 마무리 미유키의 인사"라며 "(엔화 환율이 1달러에) 145JPY이라 하와이 쇼핑이 힘들지만, 여러분 하와이를 즐깁시다. 엔조이! 하와이! 카이산(해산)!"이라는 재치 있는 발언으로 장내를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 아사히 맥주 아사히 생맥주 <마루에프> (2023년 11월 24일 - ) - YouTube 웹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