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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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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7세기 철학은 새로운 자연과학의 등장과 더불어 인간관, 가치관의 변환을 가져온 시기이다. 유럽에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목적론적 자연관이 부정되고, 자연을 기계론적으로 파악하는 기계론적 자연관이 발전했다. 이러한 변화는 르네 데카르트의 철학적 기반을 통해 더욱 확립되었다. 17세기 철학은 대륙합리론과 경험론으로 대표되며, 수학적 방법을 중시하는 대륙합리론은 생득적이고 명증적인 원리를 강조했다. 주요 철학자로는 프랜시스 베이컨, 르네 데카르트, 바뤼흐 스피노자, 존 로크, 아이작 뉴턴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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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 철학
개요
시대근세 철학
기간1601년 - 1700년
주요 철학자프랜시스 베이컨
르네 데카르트
블레즈 파스칼
베네딕트 데 스피노자
아이작 뉴턴
존 로크
고트프리트 빌헬름 라이프니츠
철학적 경향
주요 특징합리주의
경험주의
기계론적 자연관
근대 과학의 발전
사회문화적 배경
주요 사건30년 전쟁 (1618년-1648년)
청교도 혁명 (1642년-1651년)
명예혁명 (1688년)
과학 혁명
관련 분야
연관 학문과학사
정치사
사회사
문화사

2. 유럽

17세기 유럽에서는 과학 혁명과 맞물려 철학 사상에 큰 변화가 일어났다. 특히 새로운 자연과학의 등장은 이전 시대와는 다른 방식으로 세계를 이해하려는 시도를 촉발했다. 고대 그리스부터 이어져 온 전통적인 자연학이 사물의 본질을 묻는 데 집중했다면, 17세기의 새로운 과학은 자연 현상 간의 관계를 양적으로 파악하고 수학적으로 표현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히 과학의 영역에만 머무르지 않고, 우주와 자연을 바라보는 관점 자체를 근본적으로 바꾸었다. 니콜라우스 쿠사누스나 브루노 등이 제시한 무한 우주 개념은 중세의 닫힌 세계관을 넘어서는 계기가 되었으며, 갈릴레이 이후 발전한 기계론적 자연관은 자연을 생명이나 목적이 아닌, 수학적 법칙에 따라 움직이는 거대한 기계로 파악하게 만들었다. 이러한 지적 흐름은 르네 데카르트와 같은 철학자들에 의해 철학적으로 정당화되었고, 아이작 뉴턴고전역학 체계 확립으로 이어지며 근대 과학 및 철학의 토대를 마련했다.

2. 1. 과학적 자연관의 성립

17세기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 중 하나는 새로운 자연과학의 등장이었다. 고대 그리스로부터 이어져 온 전통적인 자연학(自然學)은 "사물의 본성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답하며 사물의 형상이나 본질을 규명하는 데 주력했다. 이는 자연 현상이 어떻게 발생하는지에 대한 법칙적 설명보다는, 현상 뒤에 숨겨진 '가려진 성질'을 탐구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근대의 수학적 자연과학은 사물의 본질보다는 현상들 사이의 관계에 주목했다. '왜'라는 질문 대신 '어떻게' 현상이 일어나는지를 묻고, 그 관계를 양적으로 파악하여 수학적으로 표현하고자 했다. 이러한 과학적 자연관의 성립 과정은 크게 두 단계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 번째 단계는 15세기에서 16세기에 걸쳐 자연철학자들이 스콜라 철학의 전통적인 자연관을 극복하려 한 시도이다. 예를 들어, 니콜라우스 쿠사누스와 브루노는 중세 시대의 질서정연하고 유한하며 완결된 우주상(코스모스)을 비판하고, '무한하며 특정한 중심이 없는' 새로운 우주 개념을 제시했다. 이를 통해 전통적으로 여겨졌던 우주의 계층적 구조는 근본적으로 해체되었고, 대신 무한을 향해 열려 있는 생명적인 우주상이 나타났다. 이러한 변화는 '닫힌 세계에서 무한의 우주로'라는 표현으로 요약될 수 있다.

두 번째 단계는 르네상스 자연철학자들이 중세적 우주관을 파괴한 이후, 과학적 자연관이 탄생하기까지의 사상적 전환이다. 이 변화는 케플러에서 갈릴레이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명확하게 드러난다. 케플러는 처음에는 천체를 움직이는 원인을 영적인 힘으로 생각했지만, 나중에는 물리적인 힘으로 간주하게 되었다. 갈릴레이에 이르러서는, 자연의 변화를 가능태(可能態)에서 현실태(現實態)로의 이행으로 설명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목적론적 방식이 전면적으로 부정되었다. 대신 자연은 수량적으로 파악 가능한 물체들이 운동하는 세계로 이해되었다. 이 과정에서 아리스토텔레스적 목적론뿐만 아니라, 자연을 무한한 생명력의 표현으로 보았던 르네상스적 자연관 역시 부정되었다. 자연은 생명이나 인간성이 제거된 순수한 기계론적 존재로 여겨지게 된 것이다. 이러한 변천은 '생명적·유기적 자연관에서 과학적·기계론적 자연관으로'의 전환으로 설명할 수 있다.

17세기의 기계론적 자연관은 갈릴레이 이후 네덜란드의 물리학자 크리스티안 하위헌스(1629-1695), 영국의 물리학자 로버트 보일(1627-1691), 그리고 혈액순환설로 유명한 하비(1578-1657) 등에 의해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이후 아이작 뉴턴(1643-1727)에 의해 고전역학(古典力學) 체계로 완성되었으며, 이러한 새로운 자연관에 철학적 기반을 마련하고 시대의 세계관으로 확립한 인물로는 르네 데카르트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2. 2. 기계론적 자연관의 발전

17세기의 가장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새로운 자연과학의 등장이었다. 그리스 시대부터 이어져 온 전통적인 자연학은 "사물의 본성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답하며 사물의 형상이나 본질을 규명하는 데 집중했다. 자연 현상 이면에 숨겨진 성질을 탐구했지만, 현상이 어떤 방식으로 발생하는지를 법칙적으로 설명하려는 시도는 부족했다.

이에 반해 근대의 수학적 자연과학은 사물의 본성보다는 현상 사이의 관계에 주목했다. '왜'라는 질문보다 '어떻게' 현상이 발생하는지에 답하고자 했으며, 현상 간의 관계를 양적으로 파악하여 수학적으로 표현하는 것을 특징으로 삼았다.

이러한 과학적 자연관의 성립은 두 단계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 번째 단계는 15-16세기 자연철학자들이 스콜라 학파의 전통적인 자연관을 비판하고 해체한 것이다. 예를 들어, 니콜라우스 쿠사누스나 브루노는 중세의 닫힌 우주, 즉 정해진 질서를 가진 유한한 우주상을 부정하고, '무한하며 특정한 중심이 없는' 새로운 우주 개념을 제시했다. 이를 통해 전통적인 우주의 계층적 구조는 근본적으로 해체되었고, 무한을 향해 열린 생명력 있는 우주상이 등장했다. 이 변화는 '닫힌 세계에서 무한의 우주로'라는 말로 요약될 수 있다.

두 번째 단계는 르네상스의 자연철학자들이 중세적 우주관을 파괴한 이후, 과학적 자연관이 탄생하기까지의 사상적 전환이다. 이 변화는 케플러에서 갈릴레이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명확하게 나타난다. 케플러는 처음에는 천체를 움직이는 원인을 영적인 것으로 보았으나, 나중에는 물리적인 힘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갈릴레이에 이르러서는, 자연의 변화를 가능태에서 현실태로의 이행으로 설명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목적론적 방식이 전면적으로 부정되었다. 대신 자연은 수량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물체들의 운동으로 이루어진 세계로 간주되었다. 이 과정에서 아리스토텔레스적 목적론뿐만 아니라, 자연을 무한한 생명의 표현으로 보았던 르네상스적 자연관 역시 부정되었다. 자연은 생명성이나 인간성이 완전히 제거된 순수한 기계론적 존재로 이해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 변천은 '생명적·유기적 자연관에서 과학적·기계론적 자연관으로'의 전환으로 표현할 수 있다.

17세기의 기계론적 자연관은 갈릴레이 이후 네덜란드의 물리학자 크리스티안 하위헌스, 영국의 물리학자 로버트 보일, 그리고 혈액순환설로 유명한 하비 등의 연구를 통해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이러한 흐름은 이후 아이작 뉴턴에 의해 고전역학 체계로 완성되었다. 이 새로운 과학적 세계관에 철학적 기초를 제공하고 시대정신으로 확립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인물은 르네 데카르트였다.

3. 지성의 시대

17세기에 등장한 기계론적 자연관은 단순히 자연을 이해하는 방식의 변화를 넘어, 인간과 가치관에도 큰 영향을 미친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세계를 기계처럼 이해하려는 시도가 심화되면서, 인간의 정신은 감정에서 벗어난 순수한 지성(순수 지정)으로서 세계로부터 독립적인 위치를 확보하게 되었다. 인간은 세계 밖에 존재하는 독립적인 존재로서, 세계를 자신과 분리된 인식의 대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자연 세계를 철저히 기계론적으로 파악하는 것은, 이처럼 세계와 독립된 인간의 주관을 통해서만 가능했다. 마르틴 하이데거는 인간이 이러한 주체(주관이라는 의미 포함)가 된 것이 근대의 가장 중요한 변화이며, 이 변화가 바로 17세기에 일어났다고 지적했다.

"아는 것이 힘이다"라고 말한 프랜시스 베이컨은 과학을 통해 자연을 지배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했다. 이러한 자연 지배가 현실화되기 위해서는 먼저 인간이 지적인 주체로서 세계 위에 군림하는 것이 필요했다. 이처럼 지적 주체로서의 인간의 존재 방식을 확립하는 데 가장 큰 공헌을 한 인물은 데카르트라고 할 수 있다.

4. 대륙합리론

대륙합리론(大陸合理論)의 공통적인 특징은 무엇보다도 수학적 방법에 대한 깊은 신뢰이다. 데카르트물리학에 수학적 방법을 성공적으로 적용한 경험을 바탕으로, 이를 모든 학문에 적용할 수 있는 보편적인 방법으로 확장하고자 했다. 스피노자 역시 수학을 학문의 이상적인 모델로 보고, 기하학적 방법을 철학에 도입하여 철학을 엄밀하게 논증하는 학문으로 만들려 노력했다. 라이프니츠는 수학적 기호를 활용하여 가장 기본적인 진리로부터 모든 진리를 논리적으로 연역해내는 '결합술'(Ars combinatoriala)이라는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영국의 경험론과 비교했을 때, 대륙합리론의 특징은 인식론적 관점, 즉 인식의 기원에 대한 논의에서 두드러진다. 경험론이 모든 인식은 경험에서 비롯된다고 주장하는 반면, 합리론은 모든 확실한 인식은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는 명확한 원리(본유관념), 즉 직관적으로 파악되는 원리에서 출발한다고 본다. 따라서 합리론은 감각적인 경험을 혼란스러운 것으로 여겨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고, 수학적 인식처럼 논리적인 증명을 통해 얻어지는 지식을 더 중시하는 경향을 보인다.

5. 17세기 철학자 목록

17세기에는 서양 철학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다양한 철학자들이 활동했다.

5. 1. 주요 철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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