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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파키스탄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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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인도-파키스탄 관계는 1947년 영국령 인도의 분할 이후 지속적인 갈등과 협력의 역사를 겪어왔다. 양국은 카슈미르 지역을 둘러싼 분쟁으로 여러 차례 전쟁을 치렀으며, 테러 문제와 수자원 분쟁 등 다양한 문제로 대립하고 있다. 1972년 심라 협정을 통해 관계 정상화를 시도했지만, 1999년 카르길 전쟁, 2008년 뭄바이 테러 공격 등으로 인해 관계가 악화되기도 했다.

문화적 유대감을 바탕으로 사회적 교류도 이루어지고 있으며, 스포츠 경기와 문화 교류를 통해 긍정적인 관계를 형성하려는 노력도 지속되고 있다.

2019년 인도 정부의 잠무 카슈미르 재편성 법안 통과 이후 양국 관계는 다시 악화되었지만, 2021년 통제선에서의 포격 중단 합의를 통해 긴장 완화의 가능성을 보여주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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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파키스탄 관계
관계 개요
국가파키스탄
인도
관계 명칭인도-파키스탄 관계
역사적 배경
분할 시기1947년
주요 사건인도-파키스탄 전쟁 (1947년)
인도-파키스탄 전쟁 (1965년)
인도-파키스탄 전쟁 (1971년)
카길 전쟁 (1999년)
정치 및 외교 관계
외교 공관파키스탄 고등판무관부 (뉴델리)
인도 고등판무관부 (이슬라마바드)
주요 이슈카슈미르 분쟁
테러리즘
국경 분쟁
현재 상태관계가 "최소화"된 상태
경제 관계
무역 규모비공식 무역 존재
주요 교역 품목정보 부족
사회 및 문화 관계
국민 감정BBC 월드 서비스 여론 조사 결과, 상호 부정적 인식 존재 (2017년)
기타 정보
관련 서적마셜 캐번디시, 세계와 그 민족들 (2006)

2. 양국의 비교

인도와 파키스탄은 여러 면에서 차이를 보인다. 인도는 2023년 추정치 기준 약 14억 명의 인구를 가진 세계 1위 인구 대국인 반면,[126] 파키스탄은 2020년 추정치 기준 약 2억 3천만 명의 인구를 가진 세계 5위 국가이다.[127]

양국의 비교
항목인도파키스탄
공식 국명인도 공화국파키스탄 이슬람 공화국
국기----
국장
인도 국장
파키스탄 국장
인구14억 2862만 7663명 (2023년 추정치)[126]2억 3350만 636명 (2020년 추정치)[127]
초대 지도자자와할랄 네루무하마드 알리 진나
현재 지도자나렌드라 모디 총리, 람 나트 코빈드 대통령임란 칸 총리, 아리프 알비 대통령
여당인도 인민당파키스탄 정의 운동
공용어영어, 힌디어영어, 우르두어
민족 구성인도아리아인 (72%), 드라비다인 (25%), 몽골로이드 (3%) 등[136]펀자브인 (45%), 파슈툰인 (15%), 신드인 (14%) 등[137]
인간 개발 지수(HDI)0.647 (중간)[138]0.562 (중간)[139]
국내 총생산(GDP) — 명목2.7조달러 (2018년)[140]3146억달러 (2018년)[141]
국내 총생산(GDP) — 구매력 평가(PPP)12.4조달러 (2020년 추정치)[142]1.2조달러 (2020년 추정치)[143]
군사비711억달러[144]114억달러[145]
군사력 지수0.0953[146]0.2364[147]


2. 1. 인도

공식 국명인도 공화국
국기
국장
인구14억 2862만 7663명 (2023년 추정치)[126] — 1위
면적328만 7263km2[128] — 7위
인구 밀도406명/km2[130]
수도뉴델리
최대 도시뭄바이 (2074만 8395명)[132]
정치 형태Federal parliamentary republic|연방 의회제 공화국영어
초대 지도자자와할랄 네루
현재 지도자나렌드라 모디 총리
여당인도 인민당
공용어영어, 힌디어
주요 종교힌두교 (80%)
민족 구성인도아리아인 (72%)
인간 개발 지수(HDI)0.647 (중간)[138] — 129위
국내 총생산(GDP) — 명목2.7조달러 (2018년)[140] — 7위
국내 총생산(GDP) — 구매력 평가(PPP)12.4조달러 (2020년 추정치)[142] — 3위
군사비711억달러[144] — 3위
군사력 지수 — 세계 군사력 지수0.0953[146] — 4위


2. 2. 파키스탄

파키스탄의 면적은 881913km2[129]이며, 인구 밀도는 287명/km2[131]이다. 수도는 이슬라마바드이고, 최대 도시는 카라치이다.[133] 정치 형태는 연방 의회 공화국이다. 이슬람교가 96%로 대다수를 차지하고, 힌두교는 2%이다.[135]

파키스탄의 기본 정보
항목내용
면적881913km2[129]
인구 밀도287명/km2[131]
수도이슬라마바드
최대 도시카라치[133]
정치 형태연방 의회 공화국
주요 종교이슬람교 (96%), 힌두교 (2%)[135]


3. 역사

인도-파키스탄 관계는 1947년 인도 분할로 시작되었으며, 이 과정에서 발생한 폭력 사태와 난민 문제는 양국 관계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111]

인도와 파키스탄은 독립 이후 여러 차례 무력 분쟁을 겪었다. 1947년, 1965년, 1971년 방글라데시 독립 전쟁 등 세 차례의 주요 전쟁이 있었고, 1999년 카르길 전쟁과 같은 비공식적인 전쟁과 여러 차례의 국경 충돌이 있었다.[20]

1965년 인도-파키스탄 전쟁은 파키스탄의 지브롤터 작전으로 시작되었다. 이 작전은 잠무 카슈미르에 병력을 침투시켜 인도에 대한 반란을 유발하려는 의도였다.[22] 인도는 서파키스탄에 대한 전면적인 군사 공격으로 보복했고, 17일간의 전쟁으로 양측에서 수천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이 전쟁은 국제 연합의 휴전 명령과 타슈켄트 선언으로 종결되었다.[23]

1998-99년 겨울, 파키스탄군은 카르길 지역의 카슈미르에 있는 높은 봉우리를 점령했다. 인도군은 1999년 5월 이를 발견하고 격렬한 전투를 벌였으며, 이는 카르길 분쟁으로 이어졌다. 인도 공군의 지원을 받은 인도군은 파키스탄이 점령했던 많은 주둔지를 되찾았고, 파키스탄은 국제적 압력과 많은 사상자로 인해 철수했다.

2001년 인도 의회 공격은 뉴델리에 있는 인도 의회에서 발생한 테러 공격으로, 14명이 사망했다. 범인은 라슈카르-에-타이바와 자이시-에-무함마드 테러리스트였다.[37][38] 이 공격으로 인도와 파키스탄 간의 긴장이 고조되어 2001-02년 인도-파키스탄 대치로 이어졌다.[40]

2001-2002 인도-파키스탄 대치는 인도와 파키스탄 간의 군사적 대치 상황이었다. 인도는 2001년 인도 의회 공격과 2001년 잠무 카슈미르 입법 의회 공격에 대응하여 군사력을 증강했다.[41] 인도는 이 공격이 파키스탄에 근거지를 둔 테러 단체의 소행이라고 주장했으며, 파키스탄은 이를 부인했다.[42][43][44][45] 국제적인 외교 중재로 긴장이 완화되었고, 2002년 10월 양국 군대는 국경에서 철수했다.[46][47]

3. 1. 분리 독립과 갈등의 씨앗

1947년 영국령 인도 제국의 해체와 인도 분할은 인도 연방과 파키스탄이라는 두 개의 새로운 주권 국가를 탄생시켰다. 이 과정에서 최대 1,250만 명이 고향을 떠나야 했고, 수십만 명에서 100만 명까지 사망자가 발생했다.[111]

인도 분할 직후 몇 달 동안, 새로 형성된 두 국가 간에 대규모 인구 교환이 발생했다. 분할 때문에 인구 이동이 필요할 것이라는 생각은 전혀 없었으나, 펀자브에서는 지역 사회 폭력으로 인해 조직적인 인구 이동이 이루어졌다.[12][13] 영국령 펀자브 주와 벵골이 인도와 파키스탄으로 나뉘면서, 많은 힌두교도와 시크교도가 서쪽에, 많은 무슬림이 동쪽에 살았고, 분할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이산되었고 지역 사회 간의 폭력이 발생했다. 펀자브 전역에서 총 1,200만 명의 이주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15]

진나간디가 격렬한 대화를 나누는 모습. 최근 쿨완트 로이의 작품으로 알려진 유명한 사진.


영국령 인도의 분할에 대한 영국 계획에 따르면, 680개의 모든 번왕국은 두 국가 중 어디에 가입할지 결정할 수 있었다. 소수를 제외한 대부분의 무슬림 다수 번왕국은 파키스탄에 합류했고, 대부분의 힌두교 다수 번왕국은 인도에 합류했다. 그러나 일부 번왕국의 결정은 이후 양국 관계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3. 2. 번왕국 문제

인도 분할 당시, 영국령 인도 제국에 속했던 680개의 번왕국들은 인도파키스탄 중 어느 쪽에 가입할지 스스로 결정할 수 있었다. 대부분의 번왕국들은 종교 분포에 따라 인도 또는 파키스탄에 합류했지만, 주나가드카슈미르의 경우는 예외였다. 이 두 번왕국의 결정은 인도-파키스탄 관계에 지속적인 긴장을 초래하며, 양국 간 영토 분쟁의 핵심 요인이 되었다.

3. 2. 1. 주나가드 문제

주나가드는 현대 구자라트 주의 사우라슈트라 지역의 일부이다.


주나가드는 구자라트 주 남서쪽 끝에 위치한 지역으로, 마나바다르, 망그롤, 바바리아와드 등 3개의 토후국이 있었다. 주민의 80%가 힌두교도였지만, 통치자인 나바브 마하바트 칸은 무슬림이었다. 1947년 8월 15일, 마하바트 칸은 주나가드를 파키스탄에 귀속시키기로 결정했고, 파키스탄은 같은 해 9월 15일에 이를 승인했다.[148]

인도는 주나가드가 파키스탄과 인접하지 않고, 주민 대다수가 인도 귀속을 원하며, 영토가 3면에서 인도에 둘러싸여 있다는 이유로 파키스탄 귀속을 인정하지 않았다. 반면 파키스탄은 주나가드의 통치자가 파키스탄 귀속을 선택했고, 해안선을 통해 해상 교역이 가능하다는 점을 내세웠다.[148]

양국은 이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지 못했다. 발라브바이 파텔 인도 내무부 장관은 주나가드의 파키스탄 귀속이 구자라트 지역의 소요 사태를 일으킬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인도 정부는 파키스탄에 귀속 결정을 무효화하고 주민투표를 실시할 것을 요구했다. 사말다스 간디는 주나가드 인민의 망명 정부인 '임시 정부'(''Arzi Hukumat'')를 수립했다.[148]

인도는 주나가드에 대한 연료와 석탄 공급을 차단하고, 항공 및 우편 연결을 끊었으며, 국경에 군대를 파견했다. 또한 인도에 가입한 망그롤 토후국과 바바리아와드 토후국을 점령했다.[148] 1947년 10월 26일, 인도군과의 충돌이 발생하자 주나가드의 나바브와 가족은 파키스탄으로 도피했다. 11월 7일, 주나가드 궁정은 인도 정부에 행정 인수를 요청했다. 주나가드의 데완(총리)이었던 샤 나와즈 부토 경(줄피카르 알리 부토의 아버지)은 인도 정부에 서한을 보내 개입을 요청했다.[149] 파키스탄 정부는 이에 항의했지만, 인도 정부는 데완의 요청을 받아들여 1947년 11월 9일 주나가드를 점령했다.[150] 1948년 2월, 주민 투표가 실시되어 압도적인 지지로 인도와의 병합이 결정되었다.[151] 그러나 파키스탄은 이 병합을 인정하지 않고 있으며, 일부 파키스탄 지도에는 주나가드가 파키스탄 영토로 표시되어 있다.[151]

3. 2. 2. 카슈미르 분쟁

카슈미르는 무슬림이 다수였지만 힌두교 왕 마하라자 하리 싱이 통치하는 번왕국이었다. 인도 분할 당시, 하리 싱은 인도 자치령이나 파키스탄 자치령 어느 쪽에도 합류하지 않고 독립을 유지하려 했다.[152]

파키스탄과의 현상 유지 협정에도 불구하고, 파키스탄군은 카슈미르에 파견되었다. 파키스탄 준군사 조직의 지원을 받은 파슈툰족 메수드 부족민[153]들은 1947년 10월, 카슈미르를 점령하기 위해 "굴마르그 작전"이라는 암호명으로 카슈미르를 침공했다. 마하라자는 인도에 군사 지원을 요청했고, 인도는 마하라자가 인도에 가입할 것을 조건으로 군대를 파견했다.[152] 이에 따라, 가입 문서가 1947년 10월 26일부터 27일까지 서명되고 수락되었다.

찰스 체네빅스 트렌치는 저서 『The Frontier Scouts』(1985년)에서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 1947년 10월…부족 병사는 트럭을 타고 (분명히 공식적인 보급 지원을 받으면서) 카슈미르에 들어갔다…이 작전에는 적어도 영국 장교 1명, 하비 켈리가 참가했다. 이 부족민 부대가 매우 중요한 비행장이 있는 스리나가르를 탈취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듯했다. 확실히 그랬다. 그들 자신의 욕망 외에는. 특히 마수드족은 약탈, 강간, 살인에 탐닉하며 시간을 낭비했다. 그 사이에 인도군이 공수되었고, 부족 병사는 카슈미르 분지에서 산악 지대로 밀려났다. 마수드족은 썰렁한 분위기로 귀국했다. ㅡ 손쉬운 기회를 놓치고, 스리나가르에서의 약탈도 하지 못했고, 웃음거리가 되었다.

무하마드 아크바르 칸 장군에 따르면 침공 부대는 "알 수 없는 이유로 바라물라에서 (이틀을) 낭비했다"[154]

인도군은 카슈미르 계곡에서 침략 부족을 몰아내는 데 성공했지만, 겨울의 시작으로 인해 주의 많은 지역이 통행 불가능해졌다. 1947년 12월, 인도는 분쟁을 유엔 안전 보장 이사회에 회부했다. 안전 보장 이사회는 결의안 47을 통과시켜, 파키스탄에게 모든 자국민을 카슈미르에서 철수할 것을 요구하고, 인도에게는 군대의 대부분을 철수할 것을 요구했으며, 주민들의 의사를 결정하기 위한 주민 투표를 실시할 것을 제안했다. 인도는 결의안을 거부했지만, 1948년 말까지 파키스탄과 함께 수정된 버전을 받아들였다. 그 다음 해 1월 1일에 휴전이 선언되었다. 그러나 인도와 파키스탄은 주민 투표의 전조로 발생할 적절한 비무장화 단계에 동의할 수 없었다.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았고 주민 투표는 결코 실시되지 않았다.

이러한 정치적 이견으로 인해, 이 지역의 영유권을 놓고 1947년, 1965년, 1999년에 분쟁이 발생했다. 카슈미르 주는 1947년 분쟁에서 합의된 정전선인 통제선 (LoC)(1972년 심라 협정으로 일부 수정)에 의해 두 나라로 분단된 채이다.

4. 전쟁, 분쟁, 논쟁

인도 분할 직후, 카슈미르는 힌두교 왕 하리 싱이 통치하는 무슬림 다수 지역이었다. 하리 싱은 인도와 파키스탄 어느 쪽에도 가입하지 않고 독립을 원했다. 그러나 파키스탄은 카슈미르를 자국 영토로 간주하고 군대를 파견했다. 1947년 10월, 파키스탄의 지원을 받는 파슈툰족 부족민들이 카슈미르를 침공하자, 하리 싱은 인도에 군사 지원을 요청했고, 인도는 가입 문서 서명을 조건으로 군대를 파견했다.[19]

파키스탄은 카슈미르의 인도 가입을 인정하지 않고 분쟁을 확대했다. 인도군은 침략 부족을 격퇴했지만, 겨울철 진입으로 인해 주의 많은 지역이 통행 불가능해졌다. 1947년 12월, 인도는 유엔 안전 보장 이사회에 분쟁을 회부했고, 유엔 안전 보장 이사회 결의안 47이 통과되었다. 이 결의안은 파키스탄에 카슈미르 철수, 인도에 군대 감축, 주민 투표 실시를 요구했다. 인도는 결의안을 거부했지만, 수정된 버전을 수용했고, 1949년 1월 1일 휴전이 선언되었다. 그러나 주민 투표는 실시되지 않았다.

1949년, 동파키스탄 (현재 방글라데시)에서 종교적 폭력 등으로 인해 약 100만 명의 힌두교 난민이 인도로 유입되었다. 난민 문제는 인도 내 힌두교도와 민족주의자들을 격분시켰다. 자와할랄 네루 총리와 사르다르 발라브바이 파텔은 리아카트 알리 칸 파키스탄 총리를 초청하여 회담을 가졌고, 소수 민족 보호 및 소수 민족 위원회 창설을 약속하는 협정을 체결했다. 양국은 무역 협정 체결, 평화적 분쟁 해결에도 합의했지만, 카슈미르 분쟁으로 인해 관계 개선은 오래가지 못했다.

외교 협의회 보고서에 따르면, 파키스탄 군대와 ISI는 알 카에다 지부인 자이쉬-에-무하마드 등 카슈미르 내 테러 단체를 은밀히 지원해 왔다.[25][26] 파키스탄은 테러 활동 관여를 부인하고, 인도 통치에서 벗어나려는 분리주의 단체에 정치적, 도덕적 지원만 제공한다고 주장한다. 많은 카슈미르 무장 단체는 파키스탄령 카슈미르에 본부를 두고 있다.

2001년 인도 의회 공격은 파키스탄 테러리스트 소행으로 주장되는 대표적인 공격이다. 인도는 파키스탄을 배후로 지목했지만, 파키스탄은 부인했다. 이 사건으로 2001–2002 인도-파키스탄 대치가 발생하여 핵전쟁 위기까지 고조되었다.

인더스강 물 분배 조약은 인도에서 파키스탄으로 흐르는 강을 관리하는 조약이다. 물 문제는 양국 간 갈등 요인이 될 수 있지만, 외교를 통해 해결되고 있다.[158]

2000년대 이후 주요 테러 사건은 다음과 같다:

날짜사건내용사망자비고
2001년 10월 1일잠무 카슈미르 주 의회 공격차량 폭탄 폭발27명
2002년압둘 가니 론 암살스리나가르 추모 집회 중 총격1명
2003년 7월 13일카심 나가르 공격스리나가르 시장에 수류탄 투척 및 총격27명[29][30][31][32][33]
2005년 7월 20일스리나가르 폭탄 테러차량 폭탄 폭발5명 (자살 폭탄범 포함)히즈불 무자히딘 범행 주장
2005년 7월 29일부드샤 초크 공격테러 공격2명
2005년 10월 18일굴람 나비 론 살해잠무 카슈미르 교육부 장관 살해1명
2016년 우리 공격2016년 9월 18일무장 테러리스트 4명 공격18명[34]
2019년 풀와마 공격2019년 2월 14일차량 자살 폭탄 공격39명 (공격자 포함)자이쉬-e-무하마드 범행 주장[35]


4. 1. 주요 전쟁

인도와 파키스탄은 독립 이후 여러 차례 무력 분쟁을 겪었다. 1947년 1947-1948년 인도-파키스탄 전쟁, 1965년 1965년 인도-파키스탄 전쟁, 1971년 방글라데시 독립 전쟁 등 세 차례의 주요 전쟁과 1999년 카르길 전쟁 등 여러 국경 충돌이 있었다.[20]

1965년 인도-파키스탄 전쟁은 1965년 4월부터 9월 사이에 발생한 소규모 교전과 파키스탄의 지브롤터 작전으로 시작되었다. 지브롤터 작전은 인도령 잠무 카슈미르에 병력을 침투시켜 인도에 대한 반란을 일으키려는 목적이었다.[22] 인도는 서파키스탄에 대한 전면적인 군사 공격으로 보복했다. 17일간의 전쟁으로 양측에서 수천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으며,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가장 큰 규모의 장갑차 교전과 전차전이 벌어졌다. 소련미국의 외교적 중재 이후 국제 연합이 명령한 휴전이 선언되고 타슈켄트 선언이 발표된 후 양국 간의 적대 행위가 종식되었다.[23]

1971년 전쟁은 동파키스탄(현 방글라데시)의 독립 문제와 관련하여 인도가 개입하면서 발생했다. 이 전쟁으로 동파키스탄은 방글라데시로 독립했다.

1998-99년 겨울, 파키스탄군카슈미르 카르길 지역의 고지대 주둔지를 점령했다. 인도군은 1999년 5월 눈이 녹으면서 이를 발견했고, 카르길 전쟁으로 이어졌다. 인도 공군의 지원을 받은 인도군은 파키스탄이 점령했던 많은 주둔지를 되찾았다. 파키스탄은 이후 국제적 압력과 많은 사상자로 인해 남은 지역에서 철수했다.

4. 2. 국경 분쟁 및 기타 분쟁

카슈미르는 힌두교 왕인 마하라자 하리 싱이 통치하는 무슬림 다수 인구의 번왕국이었다. 인도 분할 당시, 이 지역의 통치자인 마하라자 하리 싱은 독립을 유지하기를 원했고, 인도 자치령이나 파키스탄 자치령 어느 쪽에도 합류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19]

파키스탄과의 현상 유지 협정에도 불구하고, 파키스탄군은 카슈미르에 파견되었다. 파키스탄 준군사 조직의 지원을 받은 파슈툰족 메수드 부족민[19]들은 1947년 10월, 카슈미르를 점령하기 위해 "굴마르그 작전"이라는 암호명으로 카슈미르를 침공했다. 마하라자는 인도에 군사 지원을 요청했고, 인도는 군대 파견 이전에 마하라자가 인도에 가입할 것을 요구했다. 이에 따라, 가입 문서가 1947년 10월 26일부터 27일까지 서명되고 수락되었다.[153]

파키스탄은 주의 인도 가입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하고, 반군과 침략 부족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을 제공함으로써 분쟁을 확대했다. 파슈툰 부족에 대한 지속적인 보충이 조직되었고, 무기와 탄약뿐만 아니라 군사 지도부도 제공되었다.

인도군은 카슈미르 계곡에서 침략 부족을 몰아내는 데 성공했지만, 겨울의 시작으로 인해 주의 많은 지역이 통행 불가능해졌다. 1947년 12월, 인도는 두 신생 국가 간의 전면전 발발을 막아달라고 요청하며 분쟁을 유엔 안전 보장 이사회에 회부했다. 안전 보장 이사회는 결의안 47을 통과시켜, 파키스탄에게 모든 자국민을 카슈미르에서 철수할 것을 요구하고, 인도에게는 군대의 대부분을 철수할 것을 요구했으며, 주민들의 의사를 결정하기 위한 주민 투표를 실시할 것을 제안했다. 인도는 결의안을 거부했지만, UN 위원회에 의해 협상된 수정 버전을 파키스탄과 마찬가지로 1948년 말까지 받아들였다. 그 다음 해 1월 1일에 휴전이 선언되었다.

그러나 인도와 파키스탄은 주민 투표 이전에 발생할 적절한 비무장화 단계에 동의할 수 없었다. 파키스탄은 아자드 카슈미르의 반군 부대를 32개 대대의 정규 군대로 조직했으며, 인도는 비무장화의 일환으로 해산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았고 주민 투표는 결코 실시되지 않았다.

인도와 파키스탄은 독립 이후 1947년, 1965년, 1971년 방글라데시 독립 전쟁 등 세 번의 주요 전쟁과 1999년 카르길 전쟁을 포함한 여러 무력 분쟁을 벌였다.[20] 2003년부터 불안정한 휴전 협정을 유지하고 있지만, 분쟁 지역을 넘어 서로 포격을 계속하고 있다. 양국은 휴전 협정 위반에 대해 서로를 비난하며, 공격에 대한 보복으로 발포했다고 주장한다.[21] 2016년 말부터 2018년까지 격화된 분쟁으로 국경 양쪽에서 수백 명의 민간인이 사망하고 수천 명이 집을 잃었다.[20][21]

1965년 인도-파키스탄 전쟁은 파키스탄의 지브롤터 작전으로 시작되었다. 이 작전은 인도가 통치하는 잠무 카슈미르에 병력을 침투시켜 인도에 대한 반란을 촉발시키려는 의도였다.[22] 인도는 서파키스탄에 대한 전면적인 군사 공격으로 보복했다. 17일간의 전쟁으로 양측에서 수천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으며,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가장 큰 규모의 장갑차 교전과 전차전이 벌어졌다. 소련과 미국의 외교적 중재 이후 국제 연합이 명령한 휴전이 선언되고 타슈켄트 선언이 발표되었다.[23]

1998-99년 겨울, 카르길 지역의 카슈미르 고지대에서 인도군은 매년 주둔지를 비웠다. 파키스탄군은 통제선을 넘어 침입하여 주둔지를 점령했다. 1999년 5월, 인도군은 이를 발견하고 카르길 분쟁이 발발했다. 인도 공군의 지원을 받은 인도군은 파키스탄이 점령했던 많은 주둔지를 되찾았다. 파키스탄은 국제적 압력과 많은 사상자로 인해 남은 지역에서 철수했다.

인더스강 조약은 인도에서 파키스탄으로 흐르는 강을 규제한다. 물 분쟁은 외교를 통해 해결되고 있다.[24]

2000년대 이후 주요 분쟁 및 사건들은 다음과 같다:

  • 2001년 10월 1일: 잠무 카슈미르 주 의회에 대한 반군 공격, 차량 폭탄 폭발로 27명 사망.
  • 2002년: 압둘 가니 론 암살.
  • 2003년 7월 13일: 카심 나가르 공격, 무장 세력의 공격으로 27명 사망, 다수 부상.[29][30][31][32][33]
  • 2005년 7월 29일: 부드샤 초크 공격, 테러 공격으로 2명 사망, 17명 이상 부상.
  • 2005년 10월 18일: 굴람 나비 론 살해, 잠무 카슈미르 교육부 장관 살해.
  • 2016년 우리 공격: 무장 테러리스트 4명의 공격으로 18명 사망, 20명 이상 부상.[34]
  • 2019년 풀와마 공격: 차량 자살 폭탄범의 공격으로 중앙 예비 경찰 부대(CRPF) 요원 38명과 공격자 사망.[35]


인도 의회에 대한 공격(2001)은 파키스탄 테러리스트 소행으로 주장되는 공격 중 가장 극적인 사건이었다. 인도는 파키스탄을 공격 배후로 지목했지만 파키스탄은 부인했다. 이후 2001–2002 인도-파키스탄 대치로 인해 핵전쟁 우려가 제기되었다.

4. 3. 테러 문제

인도는 파키스탄이 카슈미르 지역과 인도 내 다른 지역에서 발생하는 테러를 지원하고 있다고 비난해왔다.[63] 특히 2001년 인도 의회 공격과 2008년 뭄바이 공격은 양국 관계를 극도로 악화시켰다.[41][51] 파키스탄은 인도의 주장을 부인하며, 오히려 인도가 자국 내 분리주의 운동을 지원하고 있다고 주장한다.[64]

외교 협의회의 일부 보고서에 따르면, 파키스탄 군대와 ISI는 알 카에다의 지부인 자이쉬-에-무하마드를 포함하여 카슈미르에서 활동하는 테러 단체에 은밀한 지원을 제공해 왔다.[25][26] 파키스탄은 인도 통치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분리주의 단체에 정치적, 도덕적 지원만을 제공한다며 카슈미르의 테러 활동 관여를 부인해 왔다. 많은 카슈미르 무장 단체들이 파키스탄령 카슈미르에 본부를 두고 있으며, 이는 인도 정부가 제시하는 추가적인 증거이다.

2001-2002년 인도-파키스탄 대치는 2001년 인도 의회 공격과 2001년 잠무 카슈미르 입법 의회 공격에 대한 대응으로 발생한 인도와 파키스탄 간의 군사적 대치 상황이었다.[41] 인도는 이 공격이 파키스탄에 근거지를 둔 라슈카르-에-타이바와 자이시-에-무하마드에 의해 수행되었으며, 이 두 단체가 파키스탄 ISI의 지원을 받고 있다고 주장했다.[42] 파키스탄은 이를 부인했다.[43][44][45]

2008년 뭄바이 공격은 10명의 파키스탄 테러리스트가 감행한 테러로 173명 이상이 사망하고 308명이 부상을 입었다. 공격 중 체포된 유일한 생존자인 아자말 카사브는 파키스탄 국적자로 밝혀졌으며, 파키스탄 당국도 이를 인정했다.[49] 인도는 공격을 계획하고 실행한 단체로 파키스탄에 근거한 무장 단체인 라슈카르-e-타이바를 지목하고, 파키스탄에 용의자 인도를 요구했다. 또한 인도 관계자들은 공격의 정교함을 고려할 때, 범인들이 "파키스탄의 일부 공식 기관의 지원을 받았음에 틀림없다"고 말했다.[51]

4. 4. 수자원 분쟁

인더스강 물 분배 조약은 인도에서 파키스탄으로 흐르는 강을 관리하는 조약이다.[24] 물 문제는 양국 간의 갈등 요인이 될 수 있다고 지적되어 왔으나, 님무 바즈고 수력 발전소와 같은 문제는 외교를 통해 해결되어 왔다.[158]

5. 대화와 신뢰 구축 조치

인도와 파키스탄은 복잡한 역사를 공유하며, 관계 개선을 위해 여러 차례 대화와 협상을 시도했다. 1972년 심라 협정[48], 1999년 라호르 선언 등 উল্লেখযোগ্য 진전이 있었으나, 카슈미르 분쟁과 테러 문제 등으로 인해 관계는 여전히 긴장 상태에 놓여 있다.

1980년대 초반 이후 양국 관계는 시아첸 분쟁, 1989년 카슈미르 폭동의 격화, 1998년 인도와 파키스탄의 핵실험, 1999년 카르길 전쟁으로 특히 악화되었다.

2003년 휴전 합의와 델리-라호르 간 버스 운행 재개와 같은 신뢰 구축 조치(CBM)는 일시적인 긴장 완화에 기여했다. 그러나 2001년 인도 의회 공격, 2007년 삼자우타 익스프레스 폭탄 테러, 2008년 뭄바이 연쇄 테러 등 테러 사건들은 양국 관계에 심각한 타격을 입혔다.[114]

2010년대 초반, 양국은 관계 개선을 위해 노력했으나, 2016년 파탄코트 공격 사건, 2016년 우리 공격 사건 등으로 인해 대화가 다시 중단되었다. 특히 2019년 풀와마 공격 이후 인도는 파키스탄에 부여했던 최혜국 대우를 철회하고, 무역 관세를 인상하는 등 강경한 조치를 취했다.[118]

양국은 남아시아 지역 협력 연합과 남아시아 자유 무역 지대에 가입되어 있지만, 관계 악화로 인해 경제 협력은 제한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다.

최근까지도 양국 간의 긴장은 계속되고 있으며, 특히 카슈미르 지역에서의 군사적 충돌과 테러 공격은 관계 회복의 전망을 어둡게 하고 있다.[116][117]

5. 1. 주요 대화 노력

1972년 7월, 인도의 인디라 간디 총리와 파키스탄의 줄피카르 알리 부토 대통령은 인도의 산악 휴양지 심라에서 만나 심라 협정을 체결했다. 이 협정에서 양국은 "양자 협상을 통해 평화적 수단으로 차이를 해결"하기로 합의했다.[48] 1976년에는 외교 및 무역 관계가 재개되었다.

1997년, 3년간 중단되었던 인도-파키스탄 고위급 회담이 재개되었다. 양국 총리들은 두 차례 회담을 가졌고, 외무 장관들은 세 차례 회담을 가졌다. 같은 해 6월, 외무 장관들은 지속적인 회담의 초점이 될 8개의 "미결 문제"를 식별했다. 이 중 카슈미르 분쟁은 양국 간 대화의 주요 걸림돌로 남아있다. 인도는 과거 번왕국 전체가 인도 연방의 불가분의 일부라고 주장하는 반면, 파키스탄은 해당 주/주의 주민의 자결을 요구하는 유엔 결의안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파키스탄은 결의안의 이전 부분, 즉 점령된 모든 영토를 비워야 한다는 내용에는 따르기를 거부하고 있다.

1997년 9월, 카슈미르 문제 및 평화와 안보 문제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에 대한 구조를 두고 회담이 결렬되었다. 파키스탄은 이 문제들을 별도의 실무 그룹에서 다뤄야 한다고 주장했고, 인도는 두 가지 문제를 다른 6가지 문제와 동시에 다루어야 한다고 응답했다.

1999년 2월, 양국 총리의 라호르 회담과 세 가지 협정 서명을 통해 대화 재개 시도가 크게 탄력을 받았다. 같은 해 10월, 민주적으로 선출된 나와즈 샤리프 정부를 전복한 파키스탄의 군사 쿠데타는 양국 관계에 차질을 빚었다.

2001년, 아그라에서 정상 회담이 열렸다. 파키스탄의 페르베즈 무샤라프 대통령이 아탈 베하리 바지파이 총리를 만나기 위해 참석했으나, 회담은 결렬되었다.

2004년 6월 20일, 인도에 새 정부가 들어선 후, 양국은 핵 실험 금지를 연장하고 핫라인을 설치하여 핵전쟁으로 이어질 수 있는 오해를 방지하기로 합의했다.[68]

2004년 5월 만모한 싱 박사가 인도 총리가 된 후, 펀자브 주 정부는 그의 출생지인 가를 그의 이름을 기려 모델 마을로 개발하고 그의 이름을 딴 학교를 짓겠다고 선언했다.[69] 스리나가르-무자파라바드 버스 노선은 인도와 파키스탄 사이의 긴장을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69] 2004년, 양국은 이 지역에 주둔하는 병력 수를 줄이기로 합의했다.

2005년, 파키스탄의 셰이크 라시드 정보부 장관은 1990년 파키스탄 N.W. 국경에서 테러 훈련소를 운영한 혐의를 받았다. 파키스탄 정부는 자국 장관에 대한 혐의를 두 이웃 간의 진행 중인 평화 프로세스를 방해하려는 시도로 일축했다.

인도와 파키스탄은 양국 간의 긴장을 완화하기 위해 여러 상호 신뢰 구축 조치 (CBM)를 시행했다. 여기에는 더 많은 고위급 회담, 비자 제한 완화, 양국 간의 크리켓 경기 재개가 포함된다. 스리나가르무자파라바드 간의 새로운 버스 노선도 양측을 더 가깝게 만들었다. 파키스탄과 인도는 또한 경제적 측면에서 협력하기로 결정했다.

2008년 3월 3일, 스파이 혐의로 1975년부터 파키스탄 감옥에 수감되었던 한 인도인이 국경을 넘어 자유의 몸이 되었다. 이는 파키스탄이 양국 관계 개선을 위해 시행한 무조건적인 석방이었다.[71]

2010년 12월, 몇몇 파키스탄 신문들은 인도의 지도력과 파키스탄 내 무장 세력과의 관계에 대한 기사를 게재했는데, 이 기사는 미국 외교 기밀 유출(United States diplomatic cables leak)에서 발견된 내용이라고 주장했다. 영국의 신문인 ''가디언''(The Guardian)은 위키리크스 케이블을 입수하여 검토한 결과, 파키스탄의 주장이 "정확하지 않다"고 결론 내렸으며 "위키리크스가 선전 목적으로 악용되고 있다"고 밝혔다.[74]

2011년 2월 10일, 인도는 26/11 뭄바이 테러 공격 이후 중단되었던 파키스탄과의 회담을 재개하기로 합의했다.[75] 인도는 뭄바이 테러 공격의 피고인에 대해 파키스탄이 조치를 취할 경우에만 외교 관계를 지속하겠다고 밝히며 모든 외교 관계를 보류했었다.

2012년 4월 13일, 인도가 파키스탄에서 최혜국 대우(MFN) 지위를 획득하는 등 관계가 해빙된 후, 인도는 파키스탄으로부터의 외국인 직접 투자(FDI) 투자를 제한하는 조치를 철회한다고 발표했다.[76]

2012년 7월 11일, 히나 라바니 카르 파키스탄 외무부 장관(Foreign Minister of Pakistan)은 프놈펜에서 시르 크리크와 시아첸 빙하(Siachen Glacier)와 같은 분쟁을 과거에 합의된 내용을 바탕으로 해결할 의향이 있다고 밝혔다.[77]

2012년 9월 7일, S. M. 크리슈나 인도 외무부 장관(Minister of External Affairs (India))은 파키스탄을 3일간 방문하여 파키스탄 측과의 양자 대화 진전 상황을 검토할 예정이다.[78]

2015년 12월, 파키스탄을 방문한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를 나와즈 샤리프 파키스탄 총리가 맞이했다.[73]

2019년 8월, 잠무 카슈미르 재편성 법안, 2019(Jammu and Kashmir Reorganisation Bill, 2019)이 인도 의회에서 통과된 후, 이 법안은 잠무 카슈미르의 특별 지위 폐지(Indian revocation of Jammu and Kashmir's special status)를 통해 잠무 카슈미르 (주)(Jammu and Kashmir (state))의 특별 지위를 철폐[79][80] 하면서 양국 간의 긴장이 고조되었고, 파키스탄은 외교 관계를 격하하고, 자국 영공을 폐쇄하며, 인도와의 양자 무역을 중단했다.[81]

카르타푸르 회랑은 2019년 11월에 개통되었다.[82]

2021년 2월 25일, 인도와 파키스탄은 양측이 통제선 (LOC, 분쟁 중인 ''사실상의'' 국경)인 카슈미르에서 서로에게 포격을 중단하기로 합의했다는 공동 성명을 발표했다.[83]

그럼에도 불구하고, 2021년 7월 인도 정부는 "평화와 번영은 테러와 공존할 수 없다"라고 밝히며 파키스탄의 회담 제안을 거부했다.[84]

2024년 10월 16일, 외교부 장관 S 자이샨카르는 이슬라마바드에서 열린 SCO 정상 회담 만찬에서 파키스탄 총리 셰바즈 샤리프와 만나 여러 주제에 대해 논의했다.[85][86][87]

5. 2. 신뢰 구축 조치

인도와 파키스탄은 양국 간의 긴장을 완화하기 위해 여러 상호 신뢰 구축 조치(CBM)를 시행했다. 여기에는 고위급 회담 확대, 비자 제한 완화, 양국 간의 크리켓 경기 재개 등이 포함된다.[71] 특히, 스리나가르무자파라바드 간의 버스 노선(스리나가르-무자파라바드 버스) 개설은 양측 주민 간 교류를 촉진하는 상징적인 조치였다.[71] 2005년 4월 7일 스리나가르에서 만모한 싱 총리가 스리나가르-무자파라바드 버스 출발을 알리는 모습이 공개되기도 했다.

스리나가르-무자파라바드 버스 노선은 인도와 파키스탄 사이의 긴장을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파키스탄과 인도는 경제적 측면에서도 서로 협력하기로 결정했다.[71]

인도-파키스탄 국경 근처의 일련의 교통망(버스 노선, 철도 노선) 재개는 양국 관계 개선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71]

6. 사회적 관계

인도와 파키스탄은 문화, 언어, 지리적 측면에서 많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어 양국 관계 개선의 잠재적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1947년 영국령 인도 제국이 해체되면서 인도 연방과 파키스탄이 건국되었고, 이 과정에서 최대 1,250만 명이 고향을 떠나야 했으며, 수십만 명에서 100만 명까지 사망자가 발생했다.[111] 인도와 파키스탄은 공식적인 외교 관계를 수립했지만, 분리 과정의 혼란과 영토 문제로 인해 관계가 악화되었다.

양국 관계 개선을 위한 노력은 여러 차례 있었다. 1972년 심라 협정을 통해 양국은 평화적인 방법으로 분쟁을 해결하기로 합의했다. 1999년 라호르에서 양국 총리 회담과 3개의 합의 문서 서명이 이루어졌다. 2004년에는 핵실험 금지 협정을 연장하고 핫라인을 설치하여 핵전쟁 위험을 줄이기로 합의했다.[68] 스리나가르-무자파라바드 버스 노선 개설[69]과 같은 교통망 재개는 양국 국민 간의 교류를 증진시켰다. 2006년에는 "국경 없는 친구들" 계획을 통해 양국 어린이들이 펜팔을 맺고 우호적인 편지를 주고받는 프로그램이 시작되어 큰 성공을 거두었다.[72]

그러나 양국 관계는 카슈미르 분쟁과 테러 문제로 인해 지속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다. 2001년 인도 국회 공격, 2007년 삼자우타 익스프레스 폭탄 테러,[114] 2008년 뭄바이 연쇄 테러 등은 양국 관계에 심각한 타격을 주었다.

6. 1. 문화적 유대

인도와 파키스탄, 특히 북인도와 파키스탄은 인도아리아인의 공통된 역사 유산을 바탕으로 비슷한 문화, 요리, 언어를 공유한다.[15] 이러한 유산은 양국과 남아시아 북부 지역 전체에 걸쳐 있으며, 양국의 역사적 관계를 보여준다. 파키스탄 가수, 음악가, 스탠드업 코미디언은 인도에서 널리 인기를 얻고 있으며, 많은 이들이 인도 영화 산업인 볼리우드에서 명성을 얻었다. 마찬가지로 인도 음악과 인도 영화는 파키스탄에서 매우 인기가 높다. 남아시아 북서부에 위치한 파키스탄의 문화는 북인도, 특히 북서부와 유사한 점이 많다.

펀자브 지역은 1947년 양국이 독립하고 분할되면서 파키스탄의 펀자브주인도의 펀자브주로 나뉘었다. 펀자브인은 오늘날 파키스탄에서 가장 큰 민족 집단이자 북인도에서도 중요한 민족 집단이다. 시크교의 창시자는 현대 파키스탄 펀자브주에 있는 난카나 사히브에서 태어났다. 매년 수백만 명의 인도 시크교 순례자들이 난카나 사히브의 시크교 성지를 방문하기 위해 국경을 넘는다. 신드인은 파키스탄 신드주의 토착 민족이다. 많은 힌두 신드인들이 1947년에 인도로 이주하여 인도에는 상당한 규모의 신드인 공동체가 형성되었다. 또한 독립 과정에서 인도에서 새로 건국된 파키스탄으로 이주한 수백만 명의 무슬림들은 무하지르로 알려지게 되었으며, 그들은 주로 카라치에 정착했고 여전히 인도에 가족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파키스탄과 인도의 관계는 미디어 및 통신과 같은 플랫폼을 통해 재개되었다. 아만 키 아샤는 ''더 타임스 오브 인디아''와 ''장 그룹'' 간의 공동 벤처이자 캠페인으로, 상호 평화와 외교 및 문화 관계 발전을 촉구하고 있다.

6. 2. 지리적 연결

인도와 파키스탄은 국경을 맞대고 있으며, 와가 국경은 양국을 연결하는 유일한 육로이다. 이 국경은 인도 펀자브, 라자스탄, 구자라트 주와 파키스탄 펀자브, 신드 주의 경계를 긋는 공식적인 국제 경계선이다. 와가 국경은 라호르(파키스탄)와 암리차르(인도)를 연결하는 그랜드 트렁크 로드에 위치해 있다.

저녁 국기 하강 의식은 와가 근처 인도-파키스탄 국경에서 열린다.


매일 저녁, 와가-아타리 국경 통행 의식이 열리며, 양측의 국기가 내려지고 경비병들이 과장된 군사적 시위를 벌이며 악수를 나눈다.[111]

6. 3. 언어적 유대

힌두스탄어북인도파키스탄에서 널리 쓰이는 언어이며, 펀자브어, 카슈미르어, 신드어 등 지역 언어도 양국에서 공통적으로 사용된다.[12] 이는 두 나라가 공유하는 인도아리아인 계통의 언어 유산으로, 아대륙 북부 지역에 걸쳐 나타나며 양국의 역사적 관계를 보여준다.[12] 1947년 인도-파키스탄 분할로 펀자브 지역은 파키스탄 펀자브주와 인도 펀자브주로 나뉘었다.[12] 펀자브인은 현재 파키스탄에서 가장 큰 민족 집단이자 북인도에서도 중요한 민족 집단이다.[12] 신드인은 파키스탄 신드주의 토착 민족이다.[12]

6. 4. 결혼 관계

인도와 파키스탄은 문화적으로 많은 유사점을 공유한다. 따라서 국경을 초월하여 양국 사람들 간의 결혼이 이루어지기도 하며, 특히 미국 등 해외에서 이러한 경우가 종종 있다.[224]

2010년 4월, 파키스탄의 크리켓 선수 쇼아이브 말리크와 인도의 테니스 스타 사니아 미르자의 결혼은 양국에서 큰 화제를 모았다.[225][226]

6. 5. 스포츠 교류

크리켓하키는 양국에서 모두 인기 있는 스포츠이며, 양국 간의 스포츠 경기는 종종 정치적인 성격을 띠기도 한다.[227]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당시 무하마드 지아울하크 장군은 인도가 소련을 지원하는 것을 막기 위해 "크리켓 외교"를 펼쳤고, 페르베즈 무샤라프도 10년 이상 후에 같은 시도를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테니스에서는 인도의 로한 보판나와 파키스탄의 아이삼 울 하크 쿠레시가 "인도-파크 익스프레스"로 불리는 성공적인 복식조를 결성했다.[227]

2012년부터 인도는 파키스탄과의 양자 크리켓 시리즈를 중단했다. 현재는 국제 크리켓 협의회(ICC) 및 아시아 크리켓 위원회 주관 행사(예: 크리켓 월드컵, T20 월드컵, 아시아컵, ICC 챔피언스 트로피)에서만 경기를 한다. 2017년 당시 인도 스포츠부 장관 비자이 고엘은 파키스탄의 테러 지원 혐의를 이유로 양자 시리즈에 반대하며 "파키스탄 측의 테러가 있는 한 두 나라 사이에는 스포츠 관계가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100] 인도 크리켓 통제 위원회(BCCI)는 인도 정부의 허가 없이는 추가 시리즈를 반대하며,[101] 파키스탄 선수들의 인도 프리미어 리그 참가를 허용하지 않는다.[102]

6. 6. 해외 동포 관계

전 세계 여러 국가에 거주하는 비거주 인도인 및 인도계와 파키스탄 디아스포라는 서로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 있으며, 이는 양국 관계 개선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104][105] 영국 인도인과 영국 파키스탄인은 각각 영국에 거주하는 가장 큰 규모와 두 번째로 큰 규모의 소수 민족으로, 서로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해외 국가의 남아시아 디아스포라 민족 거주 지역에서는 "리틀 인디아"와 "리틀 파키스탄"이 공존하는 경우가 흔하다. 버밍엄, 블랙번, 맨체스터와 같은 여러 도시에서는 영국 인도인과 영국 파키스탄인이 평화롭게 함께 거주하고 있다. 영국에 거주하는 인도인과 파키스탄인 모두 영국 아시아인 범주에 속한다. 영국에는 또한 파키스탄-인도 우호 포럼이 있다.[106] 미국에서 인도인과 파키스탄인은 남아시아계 미국인 범주로 분류되며 많은 문화적 특징을 공유한다. 미국에서는 인도인과 파키스탄인 간의 결혼이 흔하다.[97]

영국 유럽 의회 의원 사자드 카림은 파키스탄 출신으로, 유럽 의회 인도 친선 그룹의 멤버이며, 유럽을 인도와의 자유 무역에 개방하는 데 기여했다.[107][108]

7. 결론 및 한국에 대한 시사점

인도-파키스탄 관계는 복잡하고 다층적인 갈등과 협력의 역사를 보여준다. 1947년 영국령 인도 제국이 해체되면서 인도 연방과 파키스탄으로 분리 독립한 이후, 양국은 지속적인 갈등을 겪어왔다. 특히 카슈미르 분쟁은 양국 관계의 핵심 쟁점으로, 1947년 전쟁, 1965년 전쟁, 1999년 분쟁 등 여러 차례의 무력 충돌을 야기했다.[111] 이 외에도 1971년 전쟁은 동파키스탄방글라데시로 독립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시아첸 빙하 등 다른 영유권 분쟁도 양국 관계를 악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1998년 인도와 파키스탄의 핵실험은 양국 간의 긴장을 더욱 고조시켰다.[204]

그러나 양국은 관계 개선을 위한 노력도 꾸준히 진행해왔다. 심라 협정 등 여러 차례의 정상회담과 합의가 이루어졌지만, 테러 공격 등으로 인해 번번이 좌절되었다.[114]

최근에는 2019년 잠무-카슈미르 연방 직할령의 특별 지위 폐지 이후 양국 관계가 더욱 악화되었다.[125] 파키스탄은 외교 관계를 격하시키고, 영공을 봉쇄했으며, 인도와의 양자 무역을 중단했다.

이러한 인도-파키스탄 관계의 전개 과정은 한반도 분단 상황과 유사한 측면이 있다. 한국은 인도-파키스탄 관계를 통해 분단 상황에서의 갈등 관리와 평화 구축, 주변 강대국과의 관계 설정 등 중요한 교훈을 얻을 수 있다.

특히, 인도-파키스탄 관계에서 나타나는 문화, 언어, 스포츠 등 비정치적 교류의 중요성은 한국이 북한과의 관계 개선을 위해 활용할 수 있는 유용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양국은 인도아리아인의 공통된 역사 유산으로서 문화, 요리, 언어 등에서 유사성을 공유하며, 볼리우드 영화나 파키스탄 음악가 등이 양국에서 인기를 얻는 등 문화적 교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크리켓 경기 등 스포츠 교류도 양국 관계 개선에 기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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