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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일본 자유민주당 총재 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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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009년 일본 자유민주당 총재 선거는 2009년 8월 30일 제45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자민당이 참패하여 아소 다로 총재가 사임한 후 치러졌다. 9월 28일에 실시된 선거에서 다니가키 사다카즈가 총 499표 중 300표를 얻어 당선되었으며, 고노 타로와 니시무라 야스토시가 각각 2, 3위를 기록했다. 이 선거는 자민당이 창당 이후 처음으로 야당이 된 상황에서 치러졌으며, 다니가키 사다카즈는 자민당 재건이라는 과제를 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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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일본 자유민주당 총재 선거
선거 정보
선거 이름2009년 자유민주당 총재 선거
국기 이미지
선거 유형총재 선거
진행 여부아니오
이전 선거2008년 일본 자유민주당 총재 선거
이전 선거 연도2008년
다음 선거2012년 일본 자유민주당 총재 선거
다음 선거 연도2012년
선거일2009년 9월 28일
선거 제도총재 공선 규정에 따른 총재 선거
공시일2009년 9월 18일
유권자 수중의원 의원 118표
참의원 의원 81표
도도부현 300표
총합 499표
투표 결과
1blank국회의원 투표
2blank당원 투표 (환산)
3blank합계
후보 1
다니가키 사다카즈
후보 1다니가키 사다카즈
색상 1556B2F
1data1120
2data1180
3data1300
후보 2
고노 다로
후보 2고노 다로
색상 28FBC8F
1data235
2data2109
3data2144
후보 3
니시무라 야스토시
후보 3니시무라 야스토시
색상 38FBC8F
1data343
2data311
3data354
직책
직책총재
선거 전아소 다로
선거 후다니가키 사다카즈

2. 역사적 배경

2009년 7월 12일 실시된 도쿄도의회 선거에서 자민당은 127석 중 38석을 얻는 데 그쳐 참패했다. 반면 야당인 민주당은 54석을 얻어 제1당을 차지했다. 이는 늦어도 2009년 10월까지 실시되어야 했던 총선거의 전초전으로 여겨졌으며, 자민당에 대한 민심 이반을 보여주는 중요한 지표였다. 이시하라 신타로 도쿄도 지사는 도의회 선거 참패에 대해 아소 다로 등 당 지도부에 강한 불만을 표출했다.

이에 내각총리대신이자 자민당 총재였던 아소 다로는 당내 반발을 무마하기 위해 7월 13일 "7월 21일 중의원을 해산하고 8월 30일에 총선거를 치른다"라고 예고했다. 그러나 자민당 내 "아소 퇴진 운동"은 더욱 거세졌고, 일부 중진 의원들까지 아소 총재 체제로는 총선거에서 패배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민주당 등 야당들은 중의원내각 불신임 결의안을, 참의원에는 총리 문책 결의안을 제출하기도 했다(전자는 중의원에서 부결, 후자는 참의원에서 가결됨). 자민당 지도부는 "총선거 전 조기 총재 선거 실시" 주장을 일축하며 아소 총재 체제로 총선거를 치르기로 결정했지만, 당내 불협화음은 계속되었다.

2009년 7월 21일 아소 다로의 예고대로 중의원이 해산되어 8월 30일 제45회 총선거가 실시되었다. 야당이었던 민주당이 308석을 얻어 과반을 훌쩍 뛰어넘는 압승을 거두었다. 반면 자민당은 119석을 얻는데 그쳐 1955년 창당 이래 처음으로 제2당이 되어 야당으로 전락했다. 이에 아소 총재는 선거 참패의 책임을 지고 다음날 사임을 발표했다.

자민당 집행부는 임시 이사회를 열고 국회에서 총리 지명 선거를 실시하는 9월 16일까지는 아소 총재가 그 직을 유지하고, 9월 16일 아소 총재가 공식적으로 사임한 후에 9월 28일 총재 선거를 치르기로 하였다.

총재가 임기 중 사임함에 따라 원칙상 보궐선거를 실시해 잔여 임기를 재임하도록 해야 하지만, 아소 다로 총재의 임기가 2009년 9월 30일까지라 사임 시기가 임기 만료 직전이었으므로 이번 선거에서 선출된 총재의 임기는 정식 총재 임기인 3년으로 하였다.

선거 당시 자민당은 중의원참의원 양원 모두에서 과반수에 못 미치는 상태였으므로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선출된 총재가 총리에 취임하지 않게 되었다. 제1당으로서의 자민당이 아닌 완전한 야당으로서의 자민당 총재를 선출하는 것은 1955년 창당 이래 처음 있는 일이었다.

총선 참패에 따라 당이 혼란스러운 상태였으므로 별다른 사건 없이 다니가키 사다카즈가 새 총재에 당선되었다.

아소 다로 총재는 총선거 참패의 책임을 지고 2009년 8월 31일 사임을 발표했다. 이에 자민당 집행부는 임시 이사회를 열어 9월 16일 국회에서 총리 지명 선거를 실시할 때까지는 아소 총재가 직을 유지하고, 9월 16일 공식적으로 사임한 후 9월 28일에 총재 선거를 치르기로 결정했다.

아소 다로 총재의 잔여 임기는 2009년 9월 30일까지였으므로, 이번 선거에서 선출된 총재는 정식 임기인 3년을 재임하게 되었다.

2. 1. 아소 다로 내각의 위기

2009년 7월 12일 실시된 도쿄도의회 선거에서 자민당은 127석 중 38석을 얻는 데 그쳐 참패했다. 반면 야당인 민주당은 54석을 얻어 제1당을 차지했다. 이는 늦어도 2009년 10월까지 실시되어야 했던 총선거의 전초전으로 여겨졌으며, 자민당에 대한 민심 이반을 보여주는 중요한 지표였다. 이시하라 신타로 도쿄도 지사는 도의회 선거 참패에 대해 아소 다로 등 당 지도부에 강한 불만을 표출했다.

이에 내각총리대신이자 자민당 총재였던 아소 다로는 당내 반발을 무마하기 위해 7월 13일 "7월 21일 중의원을 해산하고 8월 30일에 총선거를 치른다"라고 예고했다. 그러나 자민당 내 "아소 퇴진 운동"은 더욱 거세졌고, 일부 중진 의원들까지 아소 총재 체제로는 총선거에서 패배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민주당 등 야당들은 중의원내각 불신임 결의안을, 참의원에는 총리 문책 결의안을 제출하기도 했다(전자는 중의원에서 부결, 후자는 참의원에서 가결됨). 자민당 지도부는 "총선거 전 조기 총재 선거 실시" 주장을 일축하며 아소 총재 체제로 총선거를 치르기로 결정했지만, 당내 불협화음은 계속되었다.

2. 2. 제45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 참패와 정권 교체

2009년 7월 21일 아소 다로의 예고대로 중의원이 해산되어 8월 30일 제45회 총선거가 실시되었다. 야당이었던 민주당이 308석을 얻어 과반을 훌쩍 뛰어넘는 압승을 거두었다. 반면 자민당은 119석을 얻는데 그쳐 1955년 창당 이래 처음으로 제2당이 되어 야당으로 전락했다. 이에 아소 총재는 선거 참패의 책임을 지고 다음날 사임을 발표했다.

자민당 집행부는 임시 이사회를 열고 국회에서 총리 지명 선거를 실시하는 9월 16일까지는 아소 총재가 그 직을 유지하고, 9월 16일 아소 총재가 공식적으로 사임한 후에 9월 28일 총재 선거를 치르기로 하였다.

총재가 임기 중 사임함에 따라 원칙상 보궐선거를 실시해 잔여 임기를 재임하도록 해야 하지만, 아소 다로 총재의 임기가 2009년 9월 30일까지라 사임 시기가 임기 만료 직전이었으므로 이번 선거에서 선출된 총재의 임기는 정식 총재 임기인 3년으로 하였다.

선거 당시 자민당은 중의원참의원 양원 모두에서 과반수에 못 미치는 상태였으므로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선출된 총재가 총리에 취임하지 않게 되었다. 제1당으로서의 자민당이 아닌 완전한 야당으로서의 자민당 총재를 선출하는 것은 1955년 창당 이래 처음 있는 일이었다.

총선 참패에 따라 당이 혼란스러운 상태였으므로 별다른 사건 없이 다니가키 사다카즈가 새 총재에 당선되었다.

2. 3. 총재 선거 실시 결정

아소 다로 총재는 총선거 참패의 책임을 지고 2009년 8월 31일 사임을 발표했다. 이에 자민당 집행부는 임시 이사회를 열어 9월 16일 국회에서 총리 지명 선거를 실시할 때까지는 아소 총재가 직을 유지하고, 9월 16일 공식적으로 사임한 후 9월 28일에 총재 선거를 치르기로 결정했다.

아소 다로 총재의 잔여 임기는 2009년 9월 30일까지였으므로, 이번 선거에서 선출된 총재는 정식 임기인 3년을 재임하게 되었다.

3. 선거 과정

3. 1. 후보자

아베 개조 내각·아소 내각에서 후생노동대신을 역임한 마스조에 요이치는 일부에서 출마 기대론이 있었으나 9월 2일에 불출마를 표명했다. 2008년 총재 선거에 입후보했던 고이케 유리코도 일찍 불출마를 표명했다.[1]

9월 12일에는 2008년 총재 선거에 입후보했던 이시하라 노부테루도 불출마를 표명했다. 이시바 시게루는 젊은 층을 중심으로 옹립 움직임이 있었지만, 2008년 총재 선거에서 자신의 추천인을 맡았던 의원 대부분이 총선에서 낙선했고, 소속된 누카가 파벌에서도 지지가 확산되지 않아 출마를 단념하고 타니가키 사다카즈 지지로 돌아섰다.[2] 오노데라 이쓰노리는 출마 의욕을 보였지만, 추천인을 확보하지 못해 단념했다.[3]

9월 15일, 타니가키 사다카즈가 입후보를 정식 표명했다. 9월 17일에는 고노 타로, 니시무라 야스토시가 잇따라 출마를 표명했다.

9월 18일 고시 당일에는 타니가키, 고노, 니시무라가 입후보 신고를 함으로써 3명의 경쟁이 되었다.

후보자명연령파벌현직입후보 경력
60px니시무라 야스토시46세마치무라 파벌중의원 의원 (3선, 효고 9구)첫 출마
60px고노 타로46세아소 파벌중의원 의원 (5선, 가나가와 15구)첫 출마
60px타니가키 사다카즈64세고가 파벌중의원 의원 (9선, 교토 5구)2번째 (2006년)


3. 2. 선거 운동

2009년 일본 자유민주당 총재 선거는 다음과 같은 일정으로 진행되었다.

3. 3. 표 산출 방식

2009년 일본 자유민주당 총재 선거의 표 산출 방식은 다음과 같다.

선거인
종류인원
중의원 의원118표 (1인 1표)
참의원 의원81표 (1인 1표)
도도부현300표 (기초표 3표 × 47 도도부현, 159표를 도도부현에서 선거인에 따라 배분)
합계499표


  • 국회의원 투표는 중의원 의원 118표 (1인 1표), 참의원 의원 81표 (1인 1표)로 구성된다.
  • 당원 투표는 총 300표로, 각 도도부현 지부 연합회 대표 3명(1인 1표)에게 141표(47개 도도부현)가 배정된다. 나머지 159표는 일반 당원 투표에서의 후보별 득표율에 따라 환산하여 배분된다.

4. 선거 결과

2009년 일본 자유민주당 총재 선거의 결과는 다음과 같다.

후보자국회의원 투표당원 투표합계결과
득표수득표율득표수득표율득표수득표율
다니가키 사다카즈12060.6%180 (환산)60.0%30060.2%1위(당선)
고노 다로3517.7%109 (환산)36.3%14428.9%2위
니시무라 야스토시4321.7%11 (환산)3.7%5410.8%3위
무효표1---1-colspan="2" rowspan="2"|
합계199-300 (환산)-499-



총 499표 중 다니가키 사다카즈가 300표(60.2%)를 얻어 신임 총재로 당선되었다. 고노 다로는 144표(28.9%, 국회의원 투표 35표, 당원 투표 109표), 니시무라 야스토시/西村康稔일본어는 54표(10.8%, 국회의원 투표 43표, 당원 투표 11표)를 득표하였고, 무효표는 1표였다.

5. 영향 및 결과

'''굵은 글씨'''는 당선자.

득표수국회의원 표당원 산정표
야가키 사다카즈300표120표180표
고노 다로144표35표109표
니시무라 야스토시54표43표11표



(무효 투표: 1)

2009년 총재 선거는 자민당이 1955년 창당 이후 처음으로 제1당 지위를 잃고 야당이 된 상황에서 치러졌다. 다니가키 사다카즈는 총재로서 자민당의 재건을 이끌어야 하는 중책을 맡게 되었다. 고노 다로를 지지했던 스가 요시히데는 당선된 다니가키 사다카즈 체제 하에서 국회 논전에서 중용되며 하토야마 유키오, 오자와 이치로의 금전 의혹을 추궁하는 등 정치적 입지를 강화했다.

5. 1. 정치적 영향

2009년 총재 선거는 자민당이 1955년 창당 이후 처음으로 제1당 지위를 잃고 야당이 된 상황에서 치러졌다. 다니가키 사다카즈는 총재로서 자민당의 재건을 이끌어야 하는 중책을 맡게 되었다. 고노 다로를 지지했던 스가 요시히데는 당선된 다니가키 사다카즈 체제 하에서 국회 논전에서 중용되며 하토야마 유키오, 오자와 이치로의 금전 의혹을 추궁하는 등 정치적 입지를 강화했다.

5. 2. 평가

참조

[1] 뉴스 出直しの顔 暗中模索 自民総裁選 舛添氏不出馬で本命不在政治 東京新聞
[2] 뉴스 石破農水相、総裁選不出馬を表明 谷垣氏を支持 朝日新聞
[3] 뉴스 小野寺五典氏 自民党総裁選出馬断念 読売新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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