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모가미 도시오
1. 개요
다모가미 도시오는 1948년 후쿠시마현 출생으로, 방위대학교를 졸업하고 항공자위대에서 항공막료장까지 역임한 인물이다. 2008년 역사관 관련 논문으로 항공막료장에서 해임되었으며, 이후 정치 활동을 시작하여 도쿄도지사 선거에 출마하기도 했다. 그는 역사 수정주의적 견해와 핵무장론을 주장하며 논란을 일으켰으며,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체포되어 유죄 판결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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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공막료장 -
겐다 미노루
겐다 미노루는 일본 제국 해군 항공대 장교이자 정치인으로, 뛰어난 비행 실력과 항공 주력론 주창을 통해 해군 항공 전략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진주만 공격 계획 수립, 태평양 전쟁 초반 해전 참모, 제343해군항공대 사령관, 자위대 항공막료장, 자유민주당 참의원 등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며 명성을 얻었으나 우익 단체 연루로 비판받기도 했다. -
방위 대학교 동문 -
모리모토 사토시
모리모토 사토시는 1941년생 일본의 정치인이자 국제정치학자로, 2012년 민간인 출신 최초로 방위대신을 역임했으며, 국가 안보 전문가로서 활동하며 일본회의 연관성 및 독도 관련 발언 등으로 논란을 빚기도 했다. -
방위 대학교 동문 -
야마자키 고지
야마자키 고지는 1983년 육상자위대에 입대한 일본 군인으로, 제9사단장, 북부방면총감을 거쳐 육상막료장, 통합막료장을 역임하며 자위대 전력 강화와 미일 동맹 강화에 기여했고, 퇴임 후 방위성 고문으로 활동하며 다수의 훈장을 받았다. -
일본의 군사 평론가 -
모리모토 사토시
모리모토 사토시는 1941년생 일본의 정치인이자 국제정치학자로, 2012년 민간인 출신 최초로 방위대신을 역임했으며, 국가 안보 전문가로서 활동하며 일본회의 연관성 및 독도 관련 발언 등으로 논란을 빚기도 했다. -
일본의 군사 평론가 -
요코이 쇼난
요코이 쇼난은 1809년 구마모토에서 태어나 쇄국 정책과 막번 체제를 비판하고 공공성과 교역 활성화를 기반으로 한 새로운 국가와 사회를 구상했으며, 신분제를 초월한 토론과 통상을 통한 경제 발전을 주장하다가 1869년 교토에서 암살당했다.
2. 생애
다모가미 도시오는 1948년 7월 후쿠시마현고리야마시다무라정의 농촌에서 태어났다. 후쿠시마현립 아사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방위대학교에 입학하여 1971년 3월에 졸업했다(제15기, 전기 공학 전공).
방위대학교 졸업 후 항공자위관으로 임관하여 지대공 미사일 지휘 병과를 받았다. 항공자위대 간부후보생으로 시작, 1971년 1등공조로 임관하여 항공자위대 간부후보생학교에 입교했고, 이후 승진을 거듭하여 2007년에는 아베 신조 총리에 의해 제29대 항공막료장(대장)에 취임했다.
2008년 아파 그룹이 주최한 현상 논문에서 "일본은 침략 국가였는가"라는 논문으로 최우수상을 수상했으나, 중일 전쟁과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일본이 침략 국가였다는 주장은 거짓이며, 장제스와 프랭클린 D. 루스벨트에 의해 전쟁에 끌려들어갔다는 등의 주장을 펼쳐 논란이 되었다. 결국 하마다 야스카즈 방위 대신은 이 논문이 정부 견해와 다르다는 이유로 그를 항공막료장 직에서 경질했다.
항공자위대 퇴역 후, 일본 민족주의 단체 활동에 적극 참여, 2010년 간바레 닛폰을 결성하고 회장에 취임했다. 센카쿠 열도 중국 어선 충돌 사건에 항의하는 집회를 조직, 댜오위다오에 대한 일본의 영유권을 주장했다.
2014년 도쿄도지사 선거에 출마했으나 마스조에 요이치 전 후생노동대신에게 밀려 낙선했고, 이후 제47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 차세대당 공천으로 출마했으나 역시 낙선했다. 2024년 2024년 도쿄도지사 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2016년 4월, 2014년 도쿄도지사 선거 당시 선거 운동원에게 불법 자금을 지급한 혐의(공직선거법 위반)로 체포되어 유죄 판결을 받았다.
2.1. 출생과 성장
1948년 7월 후쿠시마현고리야마시다무라정의 농촌에서 태어났다. 후쿠시마현립 아사카 고등학교에 진학하여, 1967년(쇼와 42년) 3월에 졸업했다. 방위대학교에 입학하여 1971년(쇼와 46년) 3월에 졸업했다(제15기, 전기 공학 전공).
2.2. 항공자위대 경력
다모가미 도시오일본어는 방위대학교를 졸업하고 항공자위관으로 임관하여 고사 운용(지대공 미사일 지휘) 병과를 받았다. 이후 항공자위대에서 간부후보생으로 경력을 시작하여 다음과 같은 주요 직책을 역임했다.
| 연도 | 주요 직책 및 사건 |
|---|---|
| 1971년 | 1등공조 임관, 항공자위대 간부후보생학교 입교 |
| 1972년 | 3등공위 승진 |
| 1974년 | 2등공위 승진 |
| 1977년 | 1등공위 승진 |
| 1982년 | 3등공좌 승진 |
| 1986년 | 2등공좌 승진 |
| 1990년 | 1등공좌 승진 |
| 1991년 | 항공막료감부 방위부 방위과 근무 |
| 1992년 | 항공막료감부 방위부 방위과 업무 계획 반장 |
| 1993년 | 제3항공단기지 업무군 사령 |
| 1995년 | 항공막료감부 인사교육부 후생과장 |
| 1996년 | 공장보 승진 |
| 1997년 | 남서항공혼성단 사령부 막료장 |
| 1998년 | 제6항공단 사령 겸 고마쓰 기지 사령 |
| 1999년 | 항공막료감부 장비부장 |
| 2002년 | 공장으로 승진, 통합막료학교장 취임 |
| 2004년 | 제38대 항공총대사령관 취임 |
| 2007년 | 제29대 항공막료장 (대장) 취임 (아베 신조 당시 총리가 임명) |
| 2008년 | 아파 그룹 주최 현상 논문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하였으나, 같은 날 밤 항공막료장에서 경질 |
2.3. 다모가미 논문 문제와 경질
2008년 10월 31일, 아파 그룹이 주최한 제1회 '「진정한 근현대사관」현상 논문'에서 다모가미의 논문 "일본은 침략 국가였는가"가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같은 날 밤, 하마다 야스카즈 방위 대신은 이 논문이 정부 견해와 다르다는 이유로 다모가미를 항공막료장 직에서 경질한다고 발표했다.
이 논문에서 다모가미는 중일 전쟁과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일본이 침략 국가였다는 것은 거짓 주장"이며, 오히려 장제스와 프랭클린 D. 루스벨트에 의해 전쟁에 끌려들어 갔다고 주장했다. 그는 코민테른이 이들을 조종했다고 주장했다. 또한, 전쟁이 점령된 중국, 타이완, 한국에 번영을 가져다주었고, "일본군을 직접 보지도 못한 사람들이 군의 잔혹 행위에 대한 소문을 퍼뜨리고 있다"고 주장하며, 대동아 전쟁이 많은 아시아 국가에서 긍정적으로 여겨진다고 주장했다. 전범 재판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입장을 보였다.
방위성은 다모가미에게 퇴직금 6000만 엔을 지급하는 것에 대한 비판을 우려하여 징계 면직을 검토했지만, 다모가미는 이에 맞서는 모습을 보였다. 11월 3일, 방위성은 다모가미가 제복 차림으로 지론을 주장하는 것을 우려하여 정년 연장을 중단하고, 같은 날 정년 퇴관시켰다.
11월 13일, 아소 다로 총리는 다모가미의 논문 작성 결정이 "극히 부적절"하며, 정부가 오랫동안 그의 견해를 간과한 것이 잘못이라고 말했다.
다모가미의 해임을 초래한 이 논문은 그의 친구이자 사업가이며 민족주의자인 모토야 도시오가 주최하고 후원한 글쓰기 공모전에 제출된 것이었다. 모토야와 죠치 대학 명예교수인 와타나베 쇼이치를 포함한 심사위원들은 다모가미에게 300만 엔(3)의 상금을 수여했다. 이 작품은 나중에 모토야가 출판한 "현대사에 대한 충격적인 진실"이라는 책에 실렸다.
다모가미는 10월 31일 참모총장직에서 해임되면서 중장으로 강등되었다. 그는 2008년 11월 3일, 강등된 계급에 따른 의무 퇴직 연령에 도달하여 항공자위대에서 퇴역했다.
논문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 "대동아 전쟁은 일본의 침략 전쟁이 아니라, 장제스국민당이나 미국을 조종한 코민테른에 의한 책략이 원인이며, 오히려 유럽과 미국 국가에 침략당했던 아시아 국가들의 독립의 길을 결과적으로 만들어냈다"
* "장쭤린 열차 폭파 사건도 일본군이 했다고 단정할 수 없게 되었다. 코민테른의 소행이라는 설이 매우 유력해지고 있다"
* "미일 전쟁은 일본을 전쟁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코민테른에 조종된 루스벨트에 의해 시작된 책략이었다"
* "일본은 '한반도나 중국 대륙에 군대를 진군'했지만, '상대국의 승인을 얻지 않고 일방적으로 군대를 진군한 적은 없다'"
* "우리나라가 침략 국가였다는 것은 바로 누명"
* "미국에 보호받으면 일본의 미국화가 가속화되고, 일본의 전통 문화가 파괴되어 간다"
2.4. 퇴역 이후 정치 활동
항공자위대 퇴역 후, 다모가미는 일본 민족주의 단체 활동에 적극 참여했다. 2010년 2월 간바레 닛폰을 결성하고 회장에 취임했으며, 같은 해 10월 센카쿠 열도 중국 어선 충돌 사건에 항의하는 집회를 조직하여 댜오위다오에 대한 일본의 영유권을 강력히 주장했다. 2011년 8월에는 후지 TV 항의 데모에 참가하여 항의서를 제출했다.
2012년 8월, 일본 활동가 그룹을 이끌고 댜오위다오에 상륙하여 중국 측에 항의했다.
2014년 2월, 이노세 나오키 지사 사임으로 치러진 2014년 도쿄도지사 선거에 출마했으나, 마스조에 요이치 전 후생노동대신에게 밀려 4위로 낙선했다. (61만 865표 획득) 이후 태양의 당 대표 간사 및 국민운동본부장을 역임했고, 2014년 12월 제47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는 차세대당 공천으로 도쿄 12구에 출마했으나 최하위로 낙선했다.
2024년 7월, 2024년 도쿄도지사 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했으나, 56명 중 4위(약 26.8만 표)로 낙선했다.
| 당락 | 선거 | 시행일 | 선거구 | 정당 | 득표수 | 득표율 | 득표 순위 / 후보자 수 | 비례구 | 석패율 |
|---|---|---|---|---|---|---|---|---|---|
| 낙 | 2014년 도쿄도지사 선거 | 2014년 2월 9일 | - | 무소속 (유신정당・신풍 지지 등) | 610,865 | 12.5% | 4 / 16 | - | 28.9% |
| 낙 | 제47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 | 2014년 12월 14일 | 도쿄 12구 | 차세대당 | 39,233 | 18.5% | 4 / 4 | 중복 | 44.3% |
| 낙 | 2024년 도쿄도지사 선거 | 2024년 7월 7일 | - | 무소속 | 267,699 | 3.92% | 4 / 56 | - | 9.17% |
2.5. 체포 및 유죄 판결
2014년 도쿄도지사 선거에서 다모가미 선거 진영이 운동원에게 보수로 현금을 지급한 문제가 2015년에 보도되었다. 이는 다모가미의 자금 관리 단체가 모금한 1억 3265만 엔 중 5000만 엔 이상을 사용처 불명금으로 기재하면서 드러났다. 도쿄 지방 검찰청 특별 수사부가 수사를 시작했고, 정치 자금의 부정한 유용에 따른 업무상 횡령 혐의도 조사했다.
2016년 4월 14일, 다모가미는 공직선거법 위반(운동원 매수) 혐의로 도쿄 지방 검찰청특별 수사부에 체포되었다. 2017년 5월 22일, 도쿄 지방 법원은 징역 1년 10개월, 집행 유예 5년의 유죄 판결을 내렸다. 2018년 3월 13일, 도쿄 고등 법원은 항소심에서 1심 판결을 지지하고 항소를 기각했다. 다모가미는 상고했으나, 2018년 12월 18일 최고 재판소는 상고를 기각하고 유죄 판결을 확정했다. 다모가미는 재판 과정에서 보수 지급을 승낙한 적이 없다며 무죄를 주장했다. 유죄 확정으로 5년간 공민권이 정지되었으며, 2023년 12월에 공민권이 회복되었다.
3. 주장 및 논란
다모가미 도시오는 항공자위대 퇴역 이후 일본 민족주의 단체 간바레 닛폰을 이끌었으며, 아사히 게이노지에 칼럼을 기고하며 중국과 북한의 군사적 위협, 체벌 등에 대해 논평했다. 2011년에는 일본의 집단 자위권 보유와 핵무기, 항공모함 등 군사력 강화를 주장하는 책을 출간했다.
센카쿠 열도 분쟁과 관련하여, 중국 어선과 일본 해상보안청 순찰선 충돌 사건에 항의하고, 댜오위다오가 일본 영토임을 주장하며 반중 시위를 주도했다.
2012년 오키나와 미군 병사 강간 사건에 대해서는, 피해자 비난성 트위터 게시물로 논란이 되었다.
3.1. 역사 인식
다모가미 도시오는 중일 전쟁 및 제2차 세계 대전에 대한 역사 수정주의적 견해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일본이 침략 국가였다는 것은 거짓 주장"이라며, 장제스와 프랭클린 D. 루스벨트가 코민테른에 의해 조종당해 일본을 전쟁으로 끌어들였다고 주장했다. 또한, 전쟁이 점령된 한국 등에 번영을 가져다주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여성들이 강제로 성 노예가 되었다는 사실을 부인하고 있다. 또한 난징 대학살 역시 전승국에 의해 날조된 것이라며 부정하고 있다.
3.2. 핵무장 주장
다모가미 도시오는 일본의 핵무장에 대해 긍정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으며, 일본의 비핵 3원칙에 대해서도 부정적이다. 그는 2011년에 출간한 자신의 책에서 일본이 집단 자위권을 보유해야 하며, 이를 위해 핵무기를 포함한 군사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3.3. 자위대 이라크 파병 옹호
2008년 4월, 나고야 고등법원이 자위대 이라크 파견을 일본국 헌법 제9조 위반이라고 판결한 것에 대해, 유행하던 코미디언의 말투를 빌려 "그런 건 아무 상관 없어"라고 기자 회견에서 발언하여 논란이 되었다.
이는 자위대 이라크 파견 중지 소송에서 나고야 고등법원이 자위대의 활동이 이라크 특별 조치법 위반 및 일본국 헌법 제9조를 위반한다고 판결한 다음 날 기자회견에서 나온 발언이었다. 다모가미는 "순수한 대원들은 마음의 상처를 입은 사람도 있을지 모르지만, 내가 심경을 대변한다면 대다수는 그런 건 아무 상관 없어라는 상황이다"라고 발언했다.
이 발언은 국회 등에서 문제시되었고, 다모가미는 "판결로 인해 자위대가 즉시 행동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 정부의 명령으로 움직인다는 의미"였다고 해명하며, "개그맨과 같은 표현이 되어 부적절했다"라고 말했다. 이시바 시게루 당시 방위대신은 다모가미가 코지마 요시오의 개그를 의식한 것이 아니라고 변호했다.
이후에도 "그런 건 아무 상관 없어"라는 표현은 여러 매스컴에서 반복 인용되었다. 다모가미는 자신의 저서에서 이 발언이 웃음을 유발하려는 의도였지만, 일부 언론에서 "위험 인물"로 불렸다고 회고했다.
3.4. 헌법 9조 개정 주장
다모가미 도시오는 헌법 9조 개정을 주장하며, 집단 자위권 행사를 인정해야 한다는 개헌론을 펼치고 있다. 그는 비핵 3원칙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며, "처음부터 '가지지 않겠다'고 말해버리면 핵 억지력이 저하된다"고 주장했다.
3.5. 기타 주장
다모가미 도시오는 전수방위, 자위대법, 징병제 등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밝혔다. 그는 일본이 집단 자위권을 보유하고 핵무기, 항공모함, 폭격기, 순항 미사일을 획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양륙 부대와 정보 수집 능력을 강화하는 등 일본의 방위 정책을 더욱 독립적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언론의 자유에 대해, 일본에 반일적인 언론의 자유는 무한하지만, 친일적인 언론의 자유는 제한되어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자위대와 역사 인식에 대한 언론의 자유가 억압되어 있다고 비판하며, 이는 일본의 붕괴를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적기지 공격 능력이나 핵무기에 대한 논의조차 어려운 현실을 독재 국가와 같다고 비판했다.
북한에 의한 납치 피해자 문제에 대해서는, 자위대를 동원해서라도 강경한 자세를 보여야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북한은 이러한 발언에 대해 "반조선 대결과 전쟁의 광신자"라며 비난하기도 했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으로 발생한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에 대해서는, 방사선의 위험성이 과장되었다고 주장하며, 원자력 발전소 추진 입장을 밝혔다. 그는 "원자력 발전소 위를 나는 까마귀가 떨어졌습니까?"와 같은 발언으로 원자력 발전소의 안전성을 옹호했다.
그는 지속 가능한 개발 목표, 헤이트 스피치 규제, LGBT 용인, 남녀평등을 "일본 약화를 위한 함정"이라고 비판하며,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춰 일본의 제도를 바꾸는 것에 반대했다. 특히, 규제 완화와 시장 원리주의가 경제 침체를 초래했다고 주장하며, 공공 사업 중심의 적극적인 재정 정책을 옹호했다.
선택적 부부 별성 제도 도입, 남녀 공동 참여, 동성 결혼에 반대하며, LGBT는 잘못되었다고 주장했다. 백신 정책 재검토, 외국인 생활 보호 폐지, 외국인 참정권 반대 등 보수적인 입장을 견지했다. 자학사관 교육 수정, 도덕 교육 강화, 교육 칙어와 수신 교과서 부활, 국가·국기 존중을 주장했다.
체벌을 옹호하며, 토츠카 요트 스쿨 사건으로 유죄 판결을 받은 토츠카 히로시와 공동 저서를 출판하기도 했다. 가족 제도 부활을 주장하며, 성희롱 문제를 경시하는 발언으로 비판을 받았다.
오키나와 미군 병사 성폭행 사건에 대해서는 피해자를 비난하는 듯한 발언으로 논란을 일으켰다. 그는 트위터에 "새벽 4시쯤에 거리를 어슬렁거리는 여성이나 여고생은 뭘 하고 있었던 걸까요"라고 게시하여 2차 가해라는 비판을 받았다.
통일교 관련 단체와의 관계도 논란이 되었다. 그는 통일교 계열 일간지 '세계일보' 인터뷰에서 구 통일교 해산 명령 청구에 대해 비판적인 견해를 밝혔다.
4. 비판 및 평가
다모가미 도시오는 역사관으로 인해 논란의 중심에 있으며, "일본 우익의 옹호자"로 묘사되기도 한다. 그는 위안부 강제 동원을 부정하고, 난징 대학살을 부정한다.
2008년 11월 제170회 국회참의원외교방위위원회에 참고인으로 소환되었을 때, "집단적 자위권을 인정해야 한다"는 개헌론을 펼쳤다. 그는 "나라를 지키는 문제에 대해 이렇게 의견이 갈리는 것은 고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답변하여 물의를 빚었으며, 자위대 내에서 위헌 교육을 주도했다는 지적도 받았다.
2009년 5월 2일 일본 청년회의소 오이타 블록 협의회에서 개최된 헌법 타운 미팅에서는 개헌파로 참여하여, "무엇을 하고 싶은지 명확하지 않고, 자신의 몸도 지킬 수 없는 영원한 어린아이 헌법이다. 지금 상태로는 국익을 지킬 수 없다", "군인은 호전적이라고 하지만, 자신의 부하를 죽이고 싶지 않기 때문에, 전쟁에는 신중하다"라고 말하며, "헌법 9조에 '육해공군은 이를 보유한다'라고 쓰면 된다"고 주장했다.
2024년 도쿄도지사 선거 공약에서는, "일본군을 되찾기 위해 점령 헌법의 무효화를 목표로 한다"고 밝혔다.
뉴욕 타임스는 다모가미를 "우익의 챔피언"으로 묘사하며, 그의 정치적 입장과 영향력에 주목했다. 타임지는 그를 "극우 정치인", "반체제적인 민족주의 운동의 화신"으로 묘사했다.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 기관지인 인민일보 국제판 환구시보는 다모가미를 "일본의 양심적인 매스미디어와 협력하여 도지사 당선을 저지해야 할 인물"로 비판했다. 또한, "자국의 침략 역사를 인정하지 않아 악명 높은 우익 인물", "우리나라를 적대시하는 다모가미는 공공연하게 중국 위협론을 선전하는 인물"이라고 비판하며, 그의 도지사 선거 출마에 경계심을 나타냈다.
일본 공산당 기관지 신문 아카하타는 다모가미의 주장을 "망상"이라고 비판했다.
민주당 오가와 준야 의원은 2014년 도쿄도지사 선거에서 다모가미가 610,865표를 획득한 것에 대해 "여론의 일정한 지지가 있다는 것을 매우 꺼림칙하게 우려하고 걱정한다"고 말했다.
5. 저서
田母神 俊雄일본어의 저서는 다음과 같다.
| 단독 저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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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저·대담·편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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