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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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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단색화는 1970년대 한국 현대 미술을 대표하는 단색조의 추상 회화 작품들을 아우르는 용어이다. 2000년 광주 비엔날레 특별전을 통해 처음 사용되었으며, 2012년 국립현대미술관 전시 이후 본격적으로 사용되었다. 단색화는 1950~60년대 한국의 격동기 속에서 물질성과 행위를 강조하며, 단순함 속에 복합성을 담아내는 특징을 보인다. 주요 작가로는 박서보, 윤형근, 정상화, 하종현 등이 있으며, 2010년대 이후 국내외에서 재평가받으며 다양한 전시가 개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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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색화
단색화
유형미술 운동
스타일추상미술
기원1970년대 대한민국
영향미니멀리즘
모노크롬
특징반복적인 행위
물질의 탐구
정신성 강조
주요 재료캔버스
한지
마대
돌가루
주요 기법지우기
찢기
바르기
담기
그리기
누르기
긋기
주요 작가정상화
박서보
이우환
윤형근
하종현
김기린
김창열
최병소
이동엽
곽인근
권영우
서승원
허황
남관
정강자
최명영
이강소
김태호
오세열
전광영
이배
조용익
정창섭
관련 용어한국 현대 미술
추상 미술
미니멀리즘
모노크롬
물질성

2. 유래

미술평론가 윤진섭이 2000년 제3회 광주 비엔날레 특별전 <한일 현대미술의 단면>전을 기획·큐레이팅하면서 처음 사용한 용어로 알려져 있다.[53] 2012년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열린 <한국의 단색화>전 이후 '단색화'라는 한국어 명칭과 'Dansaekhwa'라는 영문 표기를 내세우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1975년 일본 도쿄화랑에서 권영우, 박서보, 서승원, 허황, 이동엽의 작품으로 기획한 <다섯가지의 흰색(白):한국 5인의 작가>전은 백색을 중심으로 한국 현대미술의 단색조 개념을 만드는데 영향을 끼쳤다고 알려져 있다.[54]

3. 정의

1970년대 한국 현대미술의 중심을 이룬 단색조의 미니멀리즘계 추상회화 작품들을 아우르는 말로 쓰이고 있다. 당시에는 ‘한국적 미니멀리즘’ 혹은 ‘한국 모노크롬 회화’로 불렸다. 2010년 중반 '단색화 열풍' 이후 단색화에 대한 보다 정교한 정의가 필요해졌고, 그 범주에 대해서도 논란이 많다.[3]

단색화는 이 범주에 속하는 것으로 확인된 작품들을 설명하는 데 사용되는 여러 용어 중 하나일 뿐이다. 다른 용어로는 '단색파'("dansaekpa"), "백색 회화", "모노크롬 회화"(음역 대신 사용된 번역), "모노톤 학교"가 있다.[3] 미술사학자 김미경은 작가들이 단일 색상이 아닌 한 가지 색조를 사용한다는 점을 나타내기 위해 단색화를 '단색조 회화'로 대체할 것을 옹호했다.[4] 2014년 전시 "모던 극복: 단색화: 한국 모노크롬 운동"(Alexander Gray Associates, 뉴욕)의 큐레이터 샘 바르다우일과 틸 펠라스는 단색화 작품의 색상 팔레트보다는 물리성을 강조하기 위해 "모노크롬" 대신 "과정"이라는 용어를 제안했다.[5]

큐레이터 윤진섭은 영어 음역 "Dansaekhwa"가 "한국 모노크롬 회화"라는 번역보다 널리 사용된 것은 그가 "한국 및 일본 현대 미술의 한 측면"을 집필한 데 기인한다고 본다. 그는 2000년 광주시립미술관에서 열린 단색화와 모노하 전시의 도록에 음역을 사용하기로 결정했다.[6] 한국문화예술위원회(KAMS)가 발간한 2017년 단색화에 관한 주요 문서 모음집 또한 이 전시가 국제 미술계에서 "Dansaekhwa"의 사용을 촉진했다고 본다.[3] 미술사학자 조안 키는 매큔-라이샤워 표기법이 한국어 자료를 식별하는 데 영어 데이터베이스, 아카이브 및 도서관에서 여전히 사용되고 있기 때문에 로마자 표기 "Tansaekhwa"를 선택했다.[7]

4. 역사

2000년 제3회 광주 비엔날레 특별전 <한일 현대미술의 단면>전을 기획한 미술평론가 윤진섭이 '단색화'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했다.[53] 1975년 일본 도쿄화랑에서 열린 권영우, 박서보, 서승원, 허황, 이동엽의 <다섯가지의 흰색(白):한국 5인의 작가>전은 한국 현대미술의 단색조 개념 형성에 영향을 주었다.[54]

1970년대 한국 현대미술의 중심이었던 단색조 미니멀리즘계 추상회화를 아우르는 말로, 당시에는 ‘한국적 미니멀리즘’ 혹은 ‘한국 모노크롬 회화’로 불렸다. 2010년대 중반 '단색화 열풍' 이후, 단색화에 대한 더 정교한 정의와 범주에 대한 논란이 제기되었다.

2012년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의 <한국의 단색화>전 이후 '단색화'라는 한국어 명칭과 'Dansaekhwa'라는 영문 표기가 본격적으로 사용되었다. 2013년 미네소타 대학교 출판부에서 간행된 "Contemporary Korean Art: Tansaekhwa and the Urgency of Method"는 컬리지 아트 어소시에이션의 찰스 루퍼스 모레이 상 최종 후보에 올랐다. 2014년 이후 한국과 미국에서 단색화 관련 전시회가 잇따라 개최되면서 미술 비평적, 상업적 재평가가 이루어졌다.[48][49][50][51][52]

4. 1. 태동: 1960년대 후반 – 1970년대

1956년 일본으로 건너간 이우환1960년대부터 모노파라는 미술 동향의 중심 인물 중 한 명이 되었다. 이후 1970년대 중반부터 그는 한국인 작가들에게 도쿄의 아트 씬을 소개하는 역할을 맡았다.[13] 1975년 5월 도쿄 화랑에서 "한국・다섯 명의 작가 다섯 개의 흰색"이라는 최초의 주요 단색화 작가 그룹전이 개최되었다. 이 전시에는 권영우, 이동엽, 허황, 서승원, 박서보 등 5명의 작가가 소개되었다.[17]

4. 1. 1. 시대적 배경

단색화 작가들은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여러 군사적 갈등(분단, 한국 전쟁 등)과 60~70년대 권위주의 정권의 격변 속에서 경력을 쌓기 시작했다. 조앤 키(Joan Kee)는 단색화와 관련하여 이러한 배경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며, 작가들이 대상성에 중점을 둔 것은 한국 전쟁 동안의 물질적 박탈의 역사와 전후 한국에서 시민적 자유의 유예로 인한 추가적인 상실에 대한 불안감에 의해 영향을 받았다고 주장한다.[8] 단색화가 형식에 대해 제기한 질문은 유신헌법 하에서 표현과 대리인의 한계와 씨름했다.[8]

그들의 물질적 초점은 또한 급격한 산업화와 국가의 건축적 변혁에 대한 예리한 인식을 드러내는데, 예를 들어 하종현의 캔버스에 철사를 관통하는 것에서 분명히 나타난다.[8] 60~70년대 한국 현대 미술의 상황에 대한 하종현의 글은 20세기 한국 미술에 대한 도시 건축과 대량 생산의 지배의 영향을 강조한다.[9]

4. 1. 2. 미술사적 배경

전후 한국의 격동은 예술에 관한 담론, 특히 추상화의 역할에 대한 논의에 어느 정도 반영되었다. 실험적이고 아방가르드 예술가들은 한국 미술계에서 일어나는 주요 변화를 반영하고 신진 작가들에게 작품을 선보일 수 있는 플랫폼을 제공할 제도적 지원을 요구했다.[10] 그러나 집단과 선언문을 조직하여 한국 미술계를 변화시키려 했던 동시대 예술가들과 달리, 단색화 작가들은 새로운 예술 운동을 만들기 위해 뭉치지 않았다. 많은 단색화 작가들은 1950년대 후반부터 1960년대 중반까지 한국의 앵포르멜 운동에서 활동했으며, 박서보는 단색화에서 제한된 색상 팔레트를 사용하는 경향이 이 운동에서 비롯되었다고 본다.[11] 그러나 한국 앵포르멜 운동 이후, 많은 예술가들은 1967년 젊은 작가 연립, 그리고 이후 A.G.(아방가르드) 및 S.T.(공간과 시간)과 같은 그룹이 주도한 1960년대와 70년대 후반의 아방가르드 운동에 참여하지 않았다.[6] 단색화 작가들은 설치와 퍼포먼스에 집중하기 위해 기존의 회화 관행에서 벗어난 젊은 세대의 예술가들(예: 젊은 작가 연립, A.G., S.T.)과 자신들을 구분하고 대조를 이루었다. 단색화 작가들의 불참은 윤진섭이 주장하는 단색화의 부상이 60년대와 70년대 한국의 많은 아방가르드 운동에서 흔히 볼 수 있는 2차원 표면의 거부에 대한 일종의 응답이었다는 주장과 일치한다. 주류 미술사적 견해는 앵포르멜 세대가 70년대와 80년대에 단색화를 사용하여 지위를 회복했다는 것이지만, 윤진섭은 이러한 그룹에 대한 그들의 저항이 그들 자신의 위기를 의미한다고 주장한다.[12]

이우환이 설명하는 것처럼, 단색화는 어떤 "-이즘"이나 운동이 없이[13] 추상과 구상, 회화와 조각, 전통과 현대성, 지역과 세계 사이의 경계를 허무는 형식적인 문제에 몰두했다. 그들의 재료에 대한 집중은 이러한 날카로운 미적 구분을 거부했다. 권영우처럼 해외에서 시간을 보낸 일부 예술가들은 동양과 서양의 회화 간의 구분을 약화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며, 회화를 어느 한쪽에 속하는 것으로 구분하려는 시도는 대개 매체나 작품의 이미지에 기반한 피상적인 차이에 의존한다고 주장했다.[14] 초기 단색화 작가 중 일부는 회화적 전통을 거부하는 광범위한 재료를 실험하기 시작했지만, 전후 한국의 자원 부족과 유가 상승 속에서 등장하기도 했다.[8] 60년대와 70년대 한국 밖의 미술에 대한 정보 획득과 언어적 매개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8] 한국 예술가들은 세계 미술계와의 관계와 그것을 어떻게 형성할 수 있을지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이우환은 1956년 일본으로 건너가 1960년대부터 일어난 모노파라는 미술 동향의 중심 인물 중 한 명이 된다. 이후 1970년대 중반부터 그는 동포인 한국인 작가들에게 도쿄의 아트 씬을 소개하는 역할을 맡았다. 최초의 주요 단색화 작가 그룹전 "한국・다섯 명의 작가 다섯 개의 흰색"이 1975년 5월 도쿄 화랑에서 개최되었다. 이 전시에서는 권영우, 이동엽, 허황, 서승원, 박서보 등 5명의 작가를 소개했다.

4. 1. 3. 전시와 제도적 지원

1970년대 초, "백색전"(명동화랑, 서울, 1972-3), "한국 현대 미술 연맹전"(1973), 박서보: 에크리튀르(무라마츠 화랑, 도쿄; 명동화랑, 서울, 1973) 등 일련의 전시가 열렸다. 미술 평론가 오광수는 이를 실험적인 조각과 설치에서 "이미지의 부재"를 특징으로 하는 회화로 이동하는 추세로 보았다.[15] 오광수는 이후 1975년부터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서울의 아카데미" 전시를 단색화를 가장 잘 나타내는 전시로 꼽았다.[16]

큐레이터와 미술사학자들은 김문호 명동화랑 소유주, 미술 평론가 나카하라 유스케, 이일, 이우환의 지원을 받아 야마모토 타카시 관장이 주최한 1975년 도쿄 화랑의 그룹전 "한국의 다섯 작가, 다섯 가지 흰색"을 단색화로 분류된 작품의 첫 번째 주요 전시로 꼽는다.[6] 이 전시회에는 권영우, 박서보, 서승원, 이동엽, 허황 등 다섯 명의 작가가 참여했다. 야마모토와 나카하라가 이 전시회를 기획하게 된 동기는 작가들의 흰색 사용[17]과 유로-아메리카 현대 미술 운동과는 구별되는 색채에 대한 폭넓은 이해에 대한 관심이었다.[6] 미술사학자 구진경은 1972년 명동화랑에서 열린 "백색" 전시회가 1975년 도쿄 화랑 전시회의 선구자이자 모델이라고 주장한다.[18] 반면, 이순 김은 단색화의 기원을 1973년부터 1974년까지 명동화랑에서 열린 박서보, 권영우, 윤형근, 하종현의 개인전으로 본다.[4] 명동화랑은 젊은 실험 예술가들에게 무료로 전시할 수 있게 해준 덕분에 단색화의 주요 전시 공간 중 하나였다.[8]

이우환은 한국과 일본 사이의 매개자, 박서보는 한국의 중심 인물로서 단색화에 대한 관심과 발전을 이끌었다.[19] 1956년 일본으로 건너간 후, 1970년대 초부터 파리와 가마쿠라를 오가며 살았던 이우환은 단색화 작가들이 일본과 프랑스에서 작품을 전시할 수 있도록 홍보했다.[20] 이우환은 박서보가 제도와 예술가 사이에서 중재하여 전자의 자원을 후자에게 할당하는 역할이 없었다면 단색화는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19] 박서보는 한국미술협회 국제분과 부회장(1970–77)과 회장(1977-1980)을 역임하면서 실험 미술의 대규모 전시회를 조직, 신진 실험 예술가들의 경력을 시작하고, 전위 예술가들이 국제 미술 무대에 진출하는 데 필요한 가시성을 제공했다.[6] 그 결과, 문화공보부가 주최한 대한민국 미술 전람회(약칭 "국전")는 더 이상 젊은 한국 예술가들의 주요 전시 무대로 기능하지 못했다. 대신, 언론 보도와 대중의 관심은 이러한 실험적이고 국제적인 전시회로 옮겨갔다.[6] 하종현과 같은 전위 예술가들은 추상 미술보다 앵포르멜을 선호하는 연고주의, 부실한 관리, 보수주의를 비판하며 안도했다.[9]

단색화 작가들의 전시가 증가하고 관심이 높아지자, 나카하라는 1977년 전시회 "한국: 현대 미술의 단면"(도쿄 중앙 미술관)의 도록에서 반색채 미술이 한국에서 운동이 될 정도로 확산되었다고 언급했다.[21] 당시 많은 단색화 작가들이 한국 외의 기관에서 정기적으로 전시를 하고 있었다. 이우환은 1956년 일본, 김창열은 1965년 뉴욕으로 갔다가 1969년 파리, 정상화는 1967년 파리, 1969년 일본, 1977년 프랑스로 돌아가는 등 많은 단색화 작가들은 해외에서 활동했다.

4. 2. 제도화와 대중화: 1980년대

1980년대에 단색화는 한국 현대 미술의 대표적인 양식으로 자리 잡았다. 많은 단색화 작가들이 미술 협회와 대학교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되었고, 정부의 검열에서도 비교적 자유로울 수 있었다.[22] 이러한 단색화의 부상은 한국의 급속한 경제 성장과 1986년 아시안 게임과 1988년 서울 올림픽 개최를 통한 국제적 인지도 상승에 힘입은 바가 컸다. 이 시기 한국 국내 미술계는 새로운 박물관, 갤러리, 미술 출판물, 박람회 등이 등장하며 확장되었다.[22]

4. 2. 1. 정치적 수용

일부 미술사학자들은 단색화가들의 비구상적 표현을 정치 선전에서 지배적이었던 구상에 대한 일종의 저항으로 해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색화는 한국 고유의 양식으로서 특별한 지위를 가지게 되면서 국가의 소프트 파워 도구로 수용되었다.[23] 문화공보부는 1978년 파리에서 열린 "제2회 국제 현대 미술전"과 같은 전시회에 단색화 작가들을 후원했다.[23] 이는 한국의 작가들과 예술가들로부터 비판을 받았다. 1970년대와 1980년대에 국가가 단색화의 정치적 가치를 약화시키면서 홍보한 것은 1980년대 민중 미술 운동과 담론적으로 대립하게 만들었다. 이는 한국 미술계에서 세계 미술계와의 관계 속에서, 그리고 양식(사실주의 vs 추상)을 통해 한국 현대 미술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에 대한 논쟁을 촉발시켰으며,[20] 어느 쪽에도 속하고 싶지 않은 젊은 예술가들이 자체적인 단체와 운동을 창설하도록 만들었다.[22]

4. 2. 2. 국제 무대

알렉산드라 문로 큐레이터는 단색화가 전 세계의 다른 개념 미술 및 포스트 미니멀리즘 운동과 동시성을 가지면서, 서구 및 미국의 미술계가 한국 현대 미술을 주변부로 격하시키는 것을 거부하고, 일반적으로 아시아 현대 미술에 부여된 예술적 혁신의 지체성을 무시했다고 주장한다.[20] 문로는 단색화가 한국 미술가들이 접했던 해외 현대 미술 운동에서 파생되었지만, 그 자체로 축소될 수 없는 "대안적 모더니즘"의 한 예로 간주될 수 있다고 믿는다. 단색화 작가들은 실제적이고 상상적인 한국의 과거에서 미학적 전략을 끌어와 서구와 일본과는 구별되는 자신들만의 모더니즘 정의를 창조했다.[20]

윤진섭은 최근 세계 미술계에서 단색화에 대한 관심이 부분적으로 대한민국 특유의 미적 특성, 즉 영성, 물질성 및 수행성에 대한 관심 때문이라고 믿고 있다.[6]

2013년, 단색화에 대한 학술 에세이가 처음 게재된 "Contemporary Korean Art: Tansaekhwa and the Urgency of Method"가 미네소타 대학교 출판으로 간행되었다. 이 책은 컬리지 아트 어소시에이션(College Art Association)이 주최하는 미술 분야의 우수한 논문을 평가하는 찰스 루퍼스 모레이 상(Charles Rufus Morey Award)에서 최종 후보 4작품 중 하나로 선정되었는데, 이는 근현대 아시아 미술론으로는 최초의 쾌거이다. 2014년 이후 한국과 미국에서 단색화를 검증하는 전시회가 잇따라 개최되면서 단색화에 대한 미술 비평적, 상업적 재평가의 계기가 되었다.[48][49][50][51][52]

4. 3. 유산: 1990년대 - 2010년대

단색화에 대한 국내외의 관심은 2세대 단색화 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하는 전시회와 그 역사를 기록하려는 미술사적 노력으로 이어졌다.[22] 2013년에는 미네소타 대학교 출판부에서 단색화에 대한 학술 에세이를 처음으로 게재한 "Contemporary Korean Art: Tansaekhwa and the Urgency of Method"를 간행했다. 이 책은 컬리지 아트 어소시에이션(College Art Association)이 주최하는 미술 분야의 우수한 논문을 평가하는 찰스 루퍼스 모레이 상(Charles Rufus Morey Award)에서 최종 후보 4작품 중 하나로 선정되었는데, 이는 근현대 아시아 미술론으로는 최초의 쾌거였다. 2014년 이후 한국과 미국에서 단색화를 검증하는 전시회가 잇따라 개최되면서 단색화에 대한 미술 비평적, 상업적 재평가의 계기가 되었다.[48][49][50][51][52]

4. 3. 1. 다음 세대

서성록 평론가는 환기미술관에서 열린 1994년 "단색화 이후" 전시에 참여한 최인선, 박영하, 김춘수, 윤명재, 한명호, 한창욱 등을 선배들의 작업을 부활시키고 확장할 "포스트 단색화" 세대의 일원으로 묘사했다.[24] 윤진섭은 김춘수 외에도 고산금, 노상균, 문범, 천광엽, 남춘모, 장승택, 이강소, 김태호, 김택상, 박기원, 안중숙, 이배, 이인현을 단색화 후기 작가로 꼽았다.[25]

4. 3. 2. 역사화

2000년대 초반부터 학자들과 큐레이터들은 단색화의 역사를 구성하려는 시도를 해왔다. 미술사학자 정무정은 이러한 시도의 시작을 알리는 것으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2002년에 열린 "철학과 미학의 시대" 전시와 이 전시의 서문인 오광수의 "한국 단색화와 그 정체성"을 꼽았다.[26] 이 전시와 에세이는 단색화에 대한 다양한 연대기 및 등장인물 목록을 제시하는 수많은 사례 중 하나이다. 일부는 김환기[25]와 곽인식[27]을 포함하여 단색화의 새로운 연결 고리를 찾거나 선구자를 찾으려 했으며, 이 운동을 주도한 주요 인물들을 밝히려고 했다. 윤진섭은 단색화를 처음 발견한 사람이 한국인이 아닌 외국인, 즉 도쿄 화랑의 디렉터 야마모토 타카시라고 주장한다.[25]

단색화의 역사를 개략적으로 설명하는 것 외에도, 일부는 단색화와 관련된 예술을 이해하는 데 사용되는 개념적 틀을 재평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평론가 김찬동은 "자연에 대한 무관심"과 같은 시대에 뒤떨어진 개념, 한국 문화에서 흰색의 중요성에 대한 이론화, 단색화의 주요 작가들의 관점에 대한 의존이 단색화에 대한 담론을 침체시켰다고 주장한다. 김찬동은 단색화를 분석할 때 관점의 다양화와 새로운 틀의 구축을 요구한다.[28]

2013년, 미네소타 대학교 출판부는 단색화에 관한 최초의 영어 학술 서적인 조앤 키의 『현대 한국 미술: 단색화와 방법의 절박성』을 출판했다. 조앤 키는 단색화 작품에 대한 형식주의적 분석을 통해 이 작가들이 외부 세계와 어떻게 관련되어 있었는지를 보여주며, 당시 한국의 급격한 사회적, 정치적 변화에 의해 지울 수 없이 표시된 미적 매개변수에 도전했다.

2017년, 한국예술경영서비스(KAMS)는 196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 단색화에 관한 1차 자료 모음을 출판했다. 이 책의 서문은 어떤 작가를 포함해야 하는지, 어떤 용어를 사용해야 하는지를 결정하는 데 어려움과 이견이 있음을 설명한다.[3] 특히 공동 편집자 이필이 그 시대에 활동했던 여성 예술가에 대한 1차 자료를 찾을 수 없었고, 미래의 학자들이 이 누락된 부분을 찾아줄 것을 요청한 점에 주목할 만하다.[22] 그러나 윤난지의 저널 기사 발췌문은 단색화를 대중화하는 데 있어 여성이 전시를 기획하거나 화상으로 활동한 역할에 대한 폭넓은 그림을 제공한다. 윤난지는 또한 70년대에 진옥선, 이향미, 신옥주, 80년대에 이충지, 윤미란, 이미영을 포함하여 단색화 작가들과 함께 전시된 몇몇 여성 예술가들을 열거한다.[29]

단색화 작가를 밝히려는 큐레이터 및 미술사학적 시도에 대해, 일부 작가들은 자신들의 포함에 반대했다. 이강소와 최병소는 이러한 분류가 그들 자신의 작품과 단색화의 특징을 모두 오해하고 있다고 말하며, 이러한 연관성을 거부했다.[30]

5. 특징

단색화는 1970년대 한국 현대미술의 중심을 이룬 미니멀리즘계 추상회화 작품들을 아우르는 말이다. 당시에는 ‘한국적 미니멀리즘’ 혹은 ‘한국 모노크롬 회화’로 불렸다. 2010년 중반 '단색화 열풍' 이후 단색화에 대한 보다 정교한 정의가 필요해졌고, 그 범주에 대해서도 논란이 많다.[31]

5. 1. 물성과 행위

단색화는 2차원 캔버스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작품의 3차원성에 대한 뚜렷한 관심을 특징으로 한다. 단색화의 물질성은 예술적 과정에서 분명하게 드러나는데, 예를 들어 박서보의 유동적인 선을 만들어내기 위한 지속적이고 반복적인 움직임, 그리고 캔버스에 포착된 이우환의 제스처의 흔적 등이 있다. 이우환은 심지어 자신의 움직임을 퍼포먼스 아트와 관련하여 설명하기도 했다.[31] 권영우와 박서보와 같은 일부 작가들은 미리 정해진 기법이나 개념 없이 작품을 창작하는 것의 필요성을 주장하며, 행위의 역할을 강조하고 의도를 약화시켰다.[14][32] 이러한 과정에 대한 강조는 자신의 작품을 "과정"이라고 부른 정상화와 같은 많은 단색화 작가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나타난다.[33]

물리성에 대한 초점은 또한 작가들의 재료 사용에서도 나타난다. 단색화 작가들은 평면적이고 고체적인 화면을 거부하며 이러한 평평한 표면에 새로운 형태의 객체성을 부여하기 위해 재료를 조작하는 다양한 실험을 해왔다. 김기린은 닥나무에 페인트를 반복적으로 칠하여 표면에 입체성을 더했다. 정상화는 말린 페인트를 긁어내고, 그림의 앞면과 뒷면 모두에 흔적을 남기며, 캔버스 표면을 노출하거나 비틀어 작품의 근본적인 부분으로 활용했다. 일부 작가들은 재료를 변형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재료의 구조적 완전성을 훼손하기도 했다. 하종현은 캔버스에 페인트를 밀어 넣었고, 권영우는 손이나 도구를 사용하여 종이를 찢었다.

5. 2. 단순함 속의 복합성

1970년대 한국 현대미술의 중심을 이룬 단색조의 미니멀리즘계 추상회화 작품들을 아우르는 말로 쓰이고 있다. 당시에는 ‘한국적 미니멀리즘’ 혹은 ‘한국 모노크롬 회화’로 불렸다. 2010년 중반 '단색화 열풍' 이후 단색화에 대한 보다 정교한 정의가 필요해졌고, 그 범주에 대해서도 논란이 많다.

최명영의 작품 앞에 서 있는 모습


일부 작품은 단순하거나 심지어는 노력 없이 만들어진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모든 각 마크의 신중함은 보는 사람의 면밀한 관찰을 필요로 한다. 예를 들어, 이우환의 붓질은 무관심하게 보일 수 있지만, 그의 캔버스에는 신중하게 구성된 구성을 보여주는 멈춤과 획이 담겨 있다.[8] 윤형근의 작품에 대해 글을 쓰면서, 이우환은 그의 동료 단색화가에 대해 비슷한 관찰을 하며, 윤형근의 작품이 소박하고 단순해 보일 수 있지만, 복잡한 정신적, 육체적 과정의 산물임을 인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34] 윤형근의 과정에 대한 묘사는 이 진술과 일치하며, 그는 그림을 완성하는 데 며칠 또는 몇 달이 걸릴 수 있다고 확언했다.[35]

서승원과 최명영 모두 자신의 작품을 묘사하는 가장 좋은 단어는 "단조로움"이라고 말하며, 색상의 반복과 균일성의 역할을 강조하지만, 바로 이러한 작품의 단조로움이 풍부한 표현과 변화의 가능성을 열어준다고 주장한다.[36][37]

5. 3. 이분법의 해체

권영우, 정상화와 같은 단색화 화가들은 전통과 현대 사이의 엄격한 이분법을 거부하며 캔버스 작업에 한지와 먹과 같은 전통적인 예술 재료를 사용했다. 윤형근과 같은 일부 화가들은 유화 재료를 사용했지만 캔버스를 바닥에 놓고 색상 팔레트를 제한하는 등 이를 활용하는 다른 방식을 찾았다.

많은 단색화 화가들은 도형과 배경의 관계를 재평가하여 날카로운 가장자리의 사용을 거부하고 표면 위와 표면을 통해 작업하며 캔버스의 역할을 이미지 자체의 일부로 강조했다.

6. 용어

단색화는 이 범주에 속하는 것으로 확인된 작품들을 설명하는 데 사용되는 여러 용어 중 하나일 뿐이다. 다른 용어로는 '단색파'(dansaekpa), "백색 회화", "모노크롬 회화"(음역 대신 사용된 번역), "모노톤 학교"가 있다.[3] 미술사학자 김미경은 작가들이 단일 색상이 아닌 한 가지 색조를 사용한다는 점을 나타내기 위해 단색화를 '단색조 회화'로 대체할 것을 옹호했다.[4] 2014년 뉴욕에서 열린 "모던 극복: 단색화: 한국 모노크롬 운동"(Alexander Gray Associates) 전시의 큐레이터 샘 바르다우일과 틸 펠라스는 단색화 작품의 색상 팔레트보다는 물리성을 강조하기 위해 "모노크롬" 대신 "과정"이라는 용어를 제안했다.[5]

큐레이터 윤진섭은 영어 음역 "Dansaekhwa"가 "한국 모노크롬 회화"라는 번역보다 널리 사용된 것은 그가 "한국 및 일본 현대 미술의 한 측면"을 집필한 데 기인한다고 본다. 그는 2000년 광주시립미술관에서 열린 단색화와 모노하 전시의 도록에 음역을 사용하기로 결정했다.[6] 한국문화예술위원회(KAMS)가 발간한 2017년 단색화에 관한 주요 문서 모음집 또한 이 전시가 국제 미술계에서 "Dansaekhwa"의 사용을 촉진했다고 본다.[3] 미술사학자 조안 키는 매큔-라이샤워 표기법이 한국어 자료를 식별하는 데 영어 데이터베이스, 아카이브 및 도서관에서 여전히 사용되고 있기 때문에 로마자 표기 "Tansaekhwa"를 선택했다.[7]

7. 비평

미술평론가 심상용은 '단색화'가 2010년대 중후반 갑자기 주목받은 것은 학계나 비평계의 요구보다는 시장의 과도한 개입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작품 거래와 가격 상승 관련 소식이 연일 미디어를 통해 들려오면서, 학계와 전시도 덩달아 단색화에 집중하는 듯한 상황이 펼쳐졌다는 것이다.[57] 그는 시장이 인위적으로 이러한 현상을 조성했고, 작가들에 대한 심층적 접근과 성찰을 억압하는 신화화를 촉구했다고 비판한다. 또한 '단색화'라는 용어가 미술사적 적절성에 대한 학적 논의를 거치지 않고 관례적으로 사용되었다고 지적한다.[58]

단색화 작가들 자신도 이 용어에 대한 불편함을 표현한다. 서구의 모노크롬을 따르는 '한국의 모노크롬'이라는 단순한 이해에서 벗어나기 위해 한국 명칭을 쓴 것은 의미 있지만,[59] '단색'이 여전히 색의 문제를 가리키기 때문에 서구 모노크롬과의 차별성을 드러내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작가들마다 자기중심적으로 서로 다른 정의를 내리려고 하는 경향도 나타난다.[60][61] '단색화' 용어를 처음 사용한 평론가 윤진섭은 단색화의 핵심으로 '촉각성', '정신성', '행위성'을 꼽지만,[62] 심상용은 이러한 정의가 추상적이고 관념적이어서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비판한다.[63]

김정희는 단색화의 기저에 있는 '백색 담론'을 한국성으로 인식하는 것 자체가 일본적인 것이라고 지적했고,[64] 심상용은 이를 "식민지 미학의 어두운 그림자"라고까지 표현했다.[65] 심상용은 윤진섭의 '단색화' 용어가 "상품출시와 관련된 브랜드 마케팅"과 유사하며, 국제화 전략의 일환이었다고 평가한다. 그는 이러한 '전략화'된 용어 선택이 오히려 담론을 빈곤하게 만든다고 주장한다.[66]

2017년 런던 내셔널갤러리에서 열린 <모노크롬: 흑백의 회화>전에 한국 단색화가 포함되지 않은 것을 두고 여러 해석이 나왔다. 큐레이터는 한국 단색화의 학계 인지도가 낮다고 언급하여 단색화 열풍이 거품이라는 의심을 더욱 자극했다.[67] 박서보의 이름이 도록 서문에 간략하게 언급된 것이 전부였다.[68] 하지만 일각에서는, 해당 전시가 서구 회화사에서 색채를 배제한 회화를 선별하여 색채의 의미를 재조명하고 서구 미술사의 사적 고찰에 충실했기 때문에 한국 단색화가 포함되기에는 적합하지 않았다는 의견도 제시한다. 유화를 기본으로 하는 서구 회화와 달리, 종이와 먹을 기본으로 하는 동아시아 문화권에서는 '모노크롬'의 의미가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는 것이다.[69]

방근택과 오광수 같은 평론가들은 단색화의 약점을 지적했는데, 방근택은 기호학적 실패를 이유로 단색화를 폄하했고, 오광수는 단색화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현대 미술가들이 따르는 피상적인 유행으로 변질되었다고 주장했다.[42][43] 권영진은 박정희 정권에 대한 침묵과 소극적인 태도, 그리고 시대의 정치적 현실에 대응할 수 있는 실험 미술의 등장을 억압하는 역할을 했다는 이유로 단색화를 비판했다.[46]

결론적으로, 단색화는 서구미술과 한국미술의 공통점과 차이, 그리고 그 강조점을 어떻게 설득하느냐에 따라 다양한 담론을 생산하는 용어이자 주제 개념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7. 1. 긍정적 평가

단색화는 현대 비평가들에게 쉽게 분류되지 않았으며, 유화수묵화 사이 어딘가에 위치했다.[20] 단색화의 기원이 지역적, 세계적, 과거와 현재의 관계 속에서 쉽게 파악되지 않아, 초기 전시회에 대한 혼란스러운 반응을 낳았다.[23] 일부는 단색화를 단순하고 본질주의적으로 해석하여 흰색 사용에 초점을 맞추어 한국 도자기와 비교하거나, 선불교와의 공명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38][23]

평론가 이일은 한국 현대 추상 미술가와 해외 단색 화가(예: 이브 클랭) 사이의 연관성을 제시했지만, 전자는 색을 심리적 공간으로, 후자는 물질화된 공간으로 간주한다는 점에서 둘을 구별했다.[39] 이일과 평론가 이구열은 단색화 화가에 대해 글을 쓸 때 카지미르 말레비치를 언급했지만, 공백 개념이 아시아 미학에서 훨씬 더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음을 강조했다.[40] 이일은 심지어 말레비치의 절대주의 사상을 아시아 철학까지 거슬러 올라갔다.[39]

도쿄 거주 미국 미술 평론가 조셉 러브(Joseph Love)는 박서보, 윤형근, 김한, 김환기 등 1974년 ''제2회 앙데팡당전''(국립현대미술관)에 작품이 전시된 전위 예술가들이 결과보다 과정에 집중하는 것이 관람객에게 어려움을 줄 수 있다고 보았다. 하지만 그는 그들이 예술적 관습을 거부하면서도 강한 정체성을 유지하는 것을 높이 평가했으며, 작품에서 질감의 중요성을 파악했다.[41]

단색화가 현대 미술 담론에서 확고한 입지를 굳히자, 미네무라 토시아키는 민중미술에 반하여 단색화의 우수성과 지속성을 재확인했다.[44] 로버트 C. 모건은 단색화가 해외 예술 운동과 어떤 관계에 있는지 명확히 해야 했는데, 단색화 작가들이 뉴욕 미니멀리즘을 인지했을 가능성이 높지만, 접근 방식은 근본적으로 달랐다고 주장했다.[45]

2013년, 단색화 학술 에세이 "Contemporary Korean Art: Tansaekhwa and the Urgency of Method"가 미네소타 대학교 출판으로 간행되었다. 이 책은 컬리지 아트 어소시에이션 주최 찰스 루퍼스 모레이 상 최종 후보 4작품 중 하나로 선정되었는데, 이는 근현대 아시아 미술론으로는 최초였다. 2014년 이후 한국과 미국에서 단색화 검증 전시회가 잇따라 개최되면서 미술 비평적, 상업적 재평가가 이루어졌다.[48][49][50][51][52]

7. 2. 부정적 평가

미술평론가 심상용은 '단색화'가 2010년대 중후반 갑자기 주목받은 것은 학계나 비평계의 요구보다는 시장의 과도한 개입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작품 거래와 가격 상승 관련 소식이 연일 미디어를 통해 들려오면서, 학계와 전시도 덩달아 단색화에 집중하는 듯한 상황이 펼쳐졌다는 것이다.[57] 그는 시장이 인위적으로 이러한 현상을 조성했고, 작가들에 대한 심층적 접근과 성찰을 억압하는 신화화를 촉구했다고 비판한다. 또한 '단색화'라는 용어가 미술사적 적절성에 대한 학적 논의를 거치지 않고 관례적으로 사용되었다고 지적한다.[58]

단색화 작가들 자신도 이 용어에 대한 불편함을 표현한다. 서구의 모노크롬을 따르는 '한국의 모노크롬'이라는 단순한 이해에서 벗어나기 위해 한국 명칭을 쓴 것은 의미 있지만,[59] '단색'이 여전히 색의 문제를 가리키기 때문에 서구 모노크롬과의 차별성을 드러내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작가들마다 자기중심적으로 서로 다른 정의를 내리려고 하는 경향도 나타난다.[60][61] '단색화' 용어를 처음 사용한 평론가 윤진섭은 단색화의 핵심으로 '촉각성', '정신성', '행위성'을 꼽지만,[62] 심상용은 이러한 정의가 추상적이고 관념적이어서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비판한다.[63]

김정희는 단색화의 기저에 있는 '백색 담론'을 한국성으로 인식하는 것 자체가 일본적인 것이라고 지적했고,[64] 심상용은 이를 "식민지 미학의 어두운 그림자"라고까지 표현했다.[65]

심상용은 윤진섭의 '단색화' 용어가 "상품출시와 관련된 브랜드 마케팅"과 유사하며, 국제화 전략의 일환이었다고 평가한다. 그는 이러한 '전략화'된 용어 선택이 오히려 담론을 빈곤하게 만든다고 주장한다.[66]

2017년 런던 내셔널갤러리에서 열린 <모노크롬: 흑백의 회화>전에 한국 단색화가 포함되지 않은 것을 두고 여러 해석이 나왔다. 큐레이터는 한국 단색화의 학계 인지도가 낮다고 언급하여 단색화 열풍이 거품이라는 의심을 더욱 자극했다.[67] 박서보의 이름이 도록 서문에 간략하게 언급된 것이 전부였다.[68]

하지만 일각에서는, 해당 전시가 서구 회화사에서 색채를 배제한 회화를 선별하여 색채의 의미를 재조명하고 서구 미술사의 사적 고찰에 충실했기 때문에 한국 단색화가 포함되기에는 적합하지 않았다는 의견도 제시한다. 유화를 기본으로 하는 서구 회화와 달리, 종이와 먹을 기본으로 하는 동아시아 문화권에서는 '모노크롬'의 의미가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는 것이다.[69]

결론적으로, 단색화는 서구미술과 한국미술의 공통점과 차이, 그리고 그 강조점을 어떻게 설득하느냐에 따라 다양한 담론을 생산하는 용어이자 주제 개념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단색화는 현대 비평가들에게 쉽게 정의되지 않았으며, 유화수묵화 사이 어딘가에 위치한 것으로 여겨졌다.[20] 단색화의 기원이 명확하지 않아 초기 전시회에 대한 반응은 혼란스러웠다.[23] 일부 단순한 해석은 흰색 사용에 초점을 맞춰 한국 도자기나 선불교와의 연관성을 찾기도 했다.[38][23] 평론가 이일은 한국 현대 추상 미술가와 해외 단색 화가(이브 클랭 등)를 비교하며, 전자는 색을 심리적 공간으로, 후자는 물질화된 공간으로 간주한다는 차이점을 제시했다.[39] 이일과 이구열은 카지미르 말레비치를 언급하면서도, 공백 개념이 아시아 미학에서 더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음을 강조했다.[40] 이일절대주의 아이디어를 아시아 철학까지 연결하기도 했다.[39]

미국 미술 평론가 조셉 러브(Joseph Love)는 박서보, 윤형근 등 단색화와 연관된 전위 예술가들이 결과보다는 과정에 집중하는 것이 관람객의 이해를 어렵게 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그는 그들이 예술적 관습을 거부하면서도 강한 정체성을 유지하는 것을 높이 평가했다.[41] 반면 방근택과 오광수 같은 평론가들은 단색화의 약점을 지적했는데, 방근택은 기호학적 실패를, 오광수는 현대 미술가들이 따르는 피상적인 유행으로 변질되었다고 비판했다.[42][43]

단색화가 현대 미술 담론에서 확고해지자, 미네무라 토시아키 같은 평론가들은 민중미술에 반하여 단색화의 우수성과 지속성을 주장했다.[44] 그러나 90년대 이후 글에서도 단색화 윤곽을 규정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예를 들어, 평론가 이동석은 이우환과 단색화 사이 시각적, 양식적 차이 때문에 둘을 묶는 것이 어렵다고 주장했다.[33] 로버트 C. 모건은 단색화 작가들이 뉴욕 미니멀리즘을 인지했을 가능성이 높지만, 그들 접근 방식은 근본적으로 달랐다고 주장했다.[45] 권영진은 박정희 정권에 대한 침묵과 소극적인 태도, 그리고 시대 정치적 현실에 대응할 수 있는 실험 미술 등장을 억압하는 역할을 했다는 이유로 단색화를 비판했다.[46]

8. 주요 작가

단색화 1세대'라고 불리는 작가들로는 박서보, 윤형근, 정상화, 정창섭, 하종현 등이 있다.[55]

1996년 2월 갤러리 현대에서 열린 <1970년대 한국의 모노크롬>전을 기준으로 하면, 대표적인 한국 모노크롬 작가로는 정창섭, 윤형근, 김창열, 박서보, 정상화, 이우환, 하종현, 김기린, 이승조, 서승원, 최명영, 이동엽, 진옥선, 윤명로, 김진석, 이봉렬, 곽인식, 김홍석, 권영우 등이 있다. 이 작가들은 미술평론가 이일, 오광수, 김복영, 서성록의 견해를 바탕으로 선정되었다.[56]

이우환은 1956년 일본으로 건너가 1960년대부터 모노파의 중심 인물 중 한 명으로 활동했다. 1970년대 중반부터는 한국 작가들에게 도쿄의 미술계를 소개하는 역할을 했다. 1975년 5월 도쿄 화랑에서 최초의 주요 단색화 작가 그룹전인 "한국・다섯 명의 작가 다섯 개의 흰색"이 개최되었으며, 이 전시에는 권영우, 이동엽, 허황, 서승원, 박서보 등 5명의 작가가 참여했다.

9. 관련 전시

2014년부터 한국과 미국에서 일련의 기획 전시가 시작되면서 단색화에 대한 비평적, 상업적 관심이 다시 높아졌다. 다음은 이러한 전시 중 일부를 나열한 것이다.

연도전시명개최 장소
2012한국의 단색화국립현대미술관, 과천
2012한국의 단색화전북도립미술관, 완주
2014모던 극복 - 단색화: 한국 단색조 운동[1]알렉산더 그레이 앤 어소시에이츠, 뉴욕
2014단색화의 예술[2]국제갤러리, 서울
2014사방에서: 추상에 대한 단색화[3]블룸 & 포, 로스앤젤레스
2014Overcoming the Modern Dansaekhwa: The Korean Monochrome MovementAlexander Gray Associates, New York, USA
2014From all Sides: Dansaekhwa on AbstractionBlum and Poe(LA), LA, USA
2015단색화아트이슈 프로젝트, 타이페이, 대만
2015아방가르드 아시아: 한국 단색 미학소더비 전시장, 홍콩
2015한국 추상 회화[4]갤러리현대, 서울
2015단색화[5]제56회 베니스 비엔날레 부대 전시, 팔라초 콘타리니 폴리냐크, 베네치아, 이탈리아
2015단색화국제갤러리 주관, 팔라죠 콘타리니 폴리냑, 베니스, 이탈리아
2015한국현대미술의 테이블: II. 단색화 - 박서보 & 윤형근 & 이강소 & 이우환 & 이동엽 & 정상화 & 정창섭 & 하종현리안 갤러리, 대구
2016단색화 & 미니멀리즘[6]블룸 & 포, 로스앤젤레스 (2016년 1월–3월); 블룸 & 포, 뉴욕 (2016년 5월–7월)
2016DansaekhwaThe Boghossian Foundation - Villa Empain, Brussels, Belgium
2018한국의 추상미술: 김환기와 단색화파워롱 미술관, 상하이, 중국
2019윤형근[7]포르투니 궁전(Palazzo Fortuny), 베니스 비엔날레 2019,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베니스 시립 미술관, 악셀 베르보르트 갤러리(Axel Vervoordt Gallery), 데이비드 즈워너 갤러리(David Zwirner Gallery), 사이먼 리 갤러리(Simon Lee Gallery), 블룸 & 포 갤러리(Blum & Poe), PKM 갤러리 공동 주최
2018윤형근윤형근[8]국립현대미술관 서울
2015윤형근윤형근 (최초의 유작 개인전)[9]PKM 갤러리, 서울
2014정상화정상화[10]갤러리 현대, 서울
2014박서보박서보[11]페로탱 갤러리(Galerie Perrotin) 파리
2014하종현하종현 (미국 첫 개인전)[12]블룸 & 포 갤러리(Blum & Poe), 뉴욕
2015박서보박서보 (미국 첫 개인전)[13]페로탱 갤러리(Galerie Perrotin), 뉴욕
2015정창섭정창섭 (프랑스 첫 개인전)[14]페로탱 갤러리(Galerie Perrotin), 파리
2015윤형근윤형근 (미국 최초의 유작 개인전)[15]블룸 & 포 갤러리(Blum & Poe), 뉴욕
2015정창섭정창섭 (미국 첫 개인전)[16]페로탱 갤러리(Galerie Perrotin), 뉴욕
2015하종현하종현[17]국제 갤러리, 서울
2015이우환이우환[18]페이즈 갤러리(Pace Gallery) 런던
2015권영우권영우[19]국제 갤러리, 서울
2015하종현하종현[20]티나 김 갤러리(Tina Kim Gallery), 뉴욕
2016박서보박서보 (영국 첫 개인전)[21]화이트 큐브(White Cube), 런던
2016권영우권영우 (미국 첫 개인전)[22]블룸 & 포 갤러리(Blum & Poe), 뉴욕
2016조용익조용익[23]성곡미술관, 서울



이우환은 1956년 일본으로 건너가 1960년대부터 일어난 모노파라는 미술 동향의 중심 인물 중 한 명이 된다. 이후 1970년대 중반부터 그는 동포인 한국인 작가들에게 도쿄의 아트 씬을 소개하는 역할을 맡았다. 최초의 주요 단색화 작가 그룹전 "한국・다섯 명의 작가 다섯 개의 흰색"이 1975년 5월 도쿄 화랑에서 개최되었다. 이 전시에서는 권영우, 이동엽, 허황, 서승원, 박서보 등 5명의 작가를 소개했다.

10. 관련 논문


  • 이승현, 〈물질과 행위로 보는 단색화의 기원과 차이〉, 《현대미술사연구》 46, 현대미술사학회, 2019년
  • 강묘수, 〈단색화 전통의 계승과 확장 - 마크 로스코와 하종현의 마주침, 그리고 〈빛의 숭고〉〉, 《기초조형학연구》 25-2, 한국기초조형학회, 2024년

미네소타 대학교 출판으로 2013년에 간행된 "Contemporary Korean Art: Tansaekhwa and the Urgency of Method"는 단색화에 대한 학술 에세이가 처음 게재된 책이다. 이 책은 컬리지 아트 어소시에이션(College Art Association)이 주최하는 미술 분야의 우수한 논문을 평가하는 찰스 루퍼스 모레이 상(Charles Rufus Morey Award)에서 최종 후보 4작품 중 하나로 선정되었는데, 이는 근현대 아시아 미술론으로는 최초의 쾌거이다.[48][49][50][51][52] 2014년 이후 한국과 미국에서 단색화를 검증하는 전시회가 잇따라 개최되면서 단색화에 대한 미술 비평적, 상업적 재평가의 계기가 되었다.[48][49][50][51][52]

참조

[1] 간행물 Skin & Surface https://www.frieze.c[...] Frieze 2020-02-15
[2] 간행물 Skin & Surface https://www.frieze.c[...] Frieze 2020-02-15
[3] 서적 Introduction Korea Arts Management Service 2017
[4] 서적 Dansaekhwa: Aesthetics of Korean Abstract Painting Phaidon 2020
[5] 간행물 Skin & Surface https://www.frieze.c[...] Frieze 2020-02-15
[6] 전시도록 The World of Dansaekhwa: Spirit, Tactility, and Performance Kukje Gallery 2014
[7] 서적 Contemporary Korean Art: Tansaekhwa and the Urgency of Method University of Minnesota Press 2013
[8] 전시도록 Tansaekhwa, Inside and Out Blum & Poe 2014
[9] 전시도록 Korean Art, on Entering the 1970s Blum & Poe 2014
[10] 전시도록 Korean Art, on Entering the 1970s Blum & Poe 2014
[11] 전시도록 On Color in Contemporary Painting: A Roundtable Discussion with Park Seobo, Shim Moon-seup, Takamatsu Jirō, Suga Kishio, Hikosaka Naoyoshi, and Lee Ufan (moderator) Blum & Poe 2014
[12] 서적 The Intensification and Diffusion of Dansaekhwa: Introduction Korea Arts Management Service 2017
[13] 서적 Current Status of Korean Contemporary Art: Interview with Lee Ufan Korea Arts Management Service 2017
[14] 서적 Revealing Paper through Action: A Continuous Experience of Objects and Actions: A conversation between Kwon Young-Woo and Kim Bok-yeong Korea Arts Management Service 2017
[15] 서적 The Absence of Image Korea Arts Management Service 2017
[16] 서적 Korean Monochrome and Its Identity Korea Arts Management Service 2017
[17] 서적 Five Korean Artists: Five Kinds of White Korea Arts Management Service 2017
[18] 서적 Korean Artists and Critics Who Shaped the Discourse of 1970s Korean Dansaekhwa and the 'White Aesthetic' Korea Arts Management Service 2017
[19] 전시도록 The World of Dansaekhwa: Spirit, Tactility, and Performance Kukje Gallery 2014
[20] 전시도록 The Ethics of Abstraction, or, for the West, a Rediscovery of Dansaekhwa Kukje Gallery 2014
[21] 서적 Facets of Modern Korean Art Korea Arts Management Service 2017
[22] 서적 The Maturing Phase of Dansaekhwa: Introduction Korea Arts Management Service 2017
[23] 전시도록 Dansaekhwa: when less becomes so much more... Kukje Gallery 2014
[24] 서적 Monochromes after the Monochromes Korea Arts Management Service 2017
[25] 서적 Landscape of the Mind Korea Arts Management Service 2017
[26] 서적 Exhibitions, Critical Literature, and Research Related to Korean Dansaekhwa: Introduction Korea Arts Management Service 2017
[27] 서적 Korean Monochrome Painting in the 1970s-1980s: Object and the Other, A Social History on Non-representation Korea Arts Management Service 2017
[28] 서적 New Perspectives and Problems on the Discourse of Dansaekhwa Korea Arts Management Service 2017
[29] 서적 The Multicolored Context of Monochrome Painting: A Gender Perspective Korea Arts Management Service 2017
[30] 웹사이트 Lee Kang-so and Choi Byung-so in Conversation with Ines Min https://ocula.com/ma[...] 2016-09-28
[31] 서적 Encountering the Absolute through Point and Line: A conversation between Lee Ufan and Oh Kwang-su Korea Arts Management Service 2017
[32] 전시도록 From My Notebook of Fragmentary Thoughts Blum & Poe 2014
[33] 서적 Korean Dansaekhwa: Ideas and Spirits Korea Arts Management Service 2017
[34] 전시도록 The Works of Yun Hyongkeun Blum & Poe 2014
[35] 전시도록 The Eccentricities of an Artist Blum & Poe 2014
[36] 간행물 A Keep of Performance...that Communicates with a Given Element Korea Arts Management Service 2017
[37] 간행물 Inhibiting the Act of Contact with Material Korea Arts Management Service 2017
[38] 간행물 Revisiting Monochrome Art of the 1970s, Simplicity and Elegance: 50 Monochrome Paintings to Be Shown at Gallery Hyundai from February 1 to 25 Korea Arts Management Service 2017
[39] 간행물 Korean Artists of the Seventies: 'Return to the Essence' Korea Arts Management Service 2017
[40] 간행물 A Drama Forged of Hwaseonji: Kwon Young-Woo Solo Exhibition Korea Arts Management Service 2017
[41] 간행물 Avant-garde of Texture Korea Arts Management Service 2017
[42] 간행물 Illusion and Nonsense: Criticism of the Korean Avant-garde and Its Substance Korea Arts Management Service 2017
[43] 간행물 Gye-pyeong Korea Arts Management Service 2017
[44] 간행물 Korean Contemporary Art as Aeon Korea Arts Management Service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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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 학술논문 “한국현대미술의 제 이름 찾기” 2001-01
[60] 뉴스 "세계적 단색화 작가 박서보 '행위의 반복성이 단색화의 핵심'" 서울경제 2016-07-06
[61] 뉴스 “이우환 ‘단색화는 현실 외면 아니라 저항 자세’" 연합뉴스 2014-09-01
[62] 학술논문 "Special Feature I: 단색화의 세계 - 정신·촉각·행위" 2014-09
[63] 학술논문 "단색화의 담론기반에 대해 비평적으로 묻고 답하기: 독자적 유파, 한국적 미, ‘Dansaekhwa’ 표기를 중심으로" 2016
[64] 학술논문 “한지(韓紙): 종이의 한국 미학화” 2006
[65] 학술논문 "단색화의 담론기반에 대해 비평적으로 묻고 답하기: 독자적 유파, 한국적 미, ‘Dansaekhwa’ 표기를 중심으로" 2016
[66] 학술논문 "단색화의 담론기반에 대해 비평적으로 묻고 답하기: 독자적 유파, 한국적 미, ‘Dansaekhwa’ 표기를 중심으로" 2016
[67] 뉴스 "한국 단색화는 빛 좋은 개살구?" 동아일보 2018-02-20
[68] 서적 Monochrome: Painting in Black and White The National Gallery, London 2017
[69] 간행물 "박서보의 추상: 자아·현대·형식"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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