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의 남북 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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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만의 남북 격차는 역사적 배경, 경제적 불균형, 정치적 성향 차이, 사회문화적 차이, 환경 문제 등으로 나타난다. 국민당 정부의 북부 중심 정책과 백색 테러 시기 동안의 차별이 격차를 심화시켰으며, 선거 결과에서도 남부와 북부의 뚜렷한 정치적 성향 차이가 나타난다. 경제적으로는 북부의 소득 및 부동산 가격이 높고, 교육 및 의료 자원 접근성에서도 불균형이 존재한다. 환경 문제 역시 남부의 대기 오염이 심각하며, 이러한 격차를 해소하기 위한 정부와 지역 사회의 노력이 진행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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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만의 남북 격차 | |
|---|---|
| 개요 | |
| 개념 | 대만 내 자원 불균형 분포 |
| 관련 용어 (중국어) | (Zhòng Běi Qīng Nán, Heavy North, Light South) |
| 배경 | |
| 원인 | 국민당 권위주의 시기 정부의 북부 중심 정책 추진 |
| 심리적 영향 | 남부 주민들의 사회적 불공정 대우 인식, 통치자와 자본가를 상징하는 타이베이에 대한 반감 |
| 정치적 노력 | |
| 차이잉원 정부 | 남북 균형 발전 정책 추진, 남부 경제 재생을 위한 남부 대만 총통 판공실 설립 (3개월 이내) 약속 |
| 경제적 불균형 | |
| 특징 | 북부 지역 (타이베이) 중심의 경제 발전 남부 지역의 상대적 소외 |
| 해결 노력 | 남부 지역 경제 발전을 위한 정부 투자 및 정책 지원 필요 남부 지역의 국제적 역할 재정립 |
| 사회적 영향 | |
| 의료 불균형 | 소득 및 지역 불평등으로 인한 의료비 지출 부담의 차이 |
| 재정 불균형 | 지방 정부의 부채 증가 및 재정 자립도 악화 |
| 남부 지역의 요구 | |
| 관광 산업 | 양안 관계 평화 발전 과정에서 남부 대만 주민들의 의식 존중 요구 |
| 규제 완화 | 남부 대만의 경제 활성화를 위한 규제 완화 필요 |
2. 역사적 배경
대만의 남북 격차는 정부 정책의 편향성에서 비롯된 측면이 있다는 지적이 있다. 국공 내전에서 중국공산당에 패배한 국민당이 본토에서 대만으로 이동하면서 정부 본부를 북부의 타이베이시로 이전한 것이 그 시작점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1949년 이후 국민당은 민주진보당의 집권 기간(14년)에 비해 훨씬 긴 60년 이상(1945년~2000년, 2008년~2016년) 동안 집권했다. 이 오랜 기간 동안, 특히 백색 테러 시기를 포함하여 국민당 정부의 정책은 북부 지역에 편중되는 경향을 보였고, 이는 남북 간의 사회, 경제적 격차를 점차 확대시키는 결과를 낳았다는 비판이 제기된다.[17][5][6] 국민당이 본토에서 건너온 외성인들이 주로 정착하고 상대적으로 독립 운동의 움직임이 적었던 북부 지역, 특히 신주와 타이베이 수도권의 기술 산업에 집중적으로 투자한 반면, 남부 지역 투자는 주로 전통적인 산업 분야에 머물렀다는 분석이 있다. 이후 산업 구조의 변화와 공장의 중국 본토 이전 등으로 남부 지역 경제는 성장 동력을 잃어갔고, 이는 고임금 일자리가 많은 북부로 남부의 젊은 고학력 인재들이 유출되는 '두뇌 유출' 현상을 심화시켰다.
1990년부터 1998년까지 가오슝 시장을 지낸 우둔이는 국민당 소속임에도 불구하고 중앙 정부의 북부 편향 정책을 여러 차례 비판하기도 했다.[7]
한편, 대만의 경제 성장을 이끌었던 중공업 시설이 밀집했던 가오슝시는 1970년대부터 대만 민주화 운동의 중심지 역할도 했다. 특히 가오슝 사건은 대만 민주주의 발전에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일각에서는 당시 권위주의 통치하의 국민당 정부가 남부 지역의 이러한 움직임을 체제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하여, 의도적으로 남부 지역에 대한 경제 개발 지원을 축소했을 가능성을 제기하기도 한다.
이러한 남북 간의 불균형 문제를 지칭하는 용어로 "중북경남(重北輕南)"이라는 표현이 사용되는데, 이는 민간에서 제기된 중앙 정부의 불공정한 자원 배분 비판('중북경남론')과 과거 정치인들이 출신 지역에 따라 주민을 구분하려 했던 시도('남북 차이론')라는 두 가지 의미를 내포한다.[36] "남북 격차론"은 본래 국민당 내부의 성적(省籍) 갈등에서 비롯되었다는 분석도 있다.[36] 당시 국민당 내 외성인 중심의 주류파 그룹이었던 '신 국민당 연선'(현 신당의 전신)이 외성인과 본성인 간의 기존 갈등 구도를 '타이베이 수도권의 중산층' 대 '중남부 향촌 출신의 시민'이라는 지역 구도로 대체하려 시도했다는 것이다.[36]
초기에는 국민당 내부의 정치 투쟁에서 비롯된 "남북 격차론"은 점차 국민당과 민주진보당이라는 양대 정당 간의 경쟁 구도 속에서, 특히 선거 시기에 정치적 지지 기반의 차이를 부각하는 용어로 사용되었다. 2000년 이후에는 남부는 민진당 지지(녹색), 북부는 국민당 지지(남색) 성향이 강하다는 의미의 '남록북람(南綠北藍)'[38]이라는 용어가 등장하여 이러한 정치 지형의 남북 차이를 설명하는 데 사용되기도 했다.[36]
21세기에 들어 타이완 고속철도와 가오슝 첩운 개통 등으로 남부의 교통 인프라가 개선되었지만, 여전히 지역 불균형 문제는 남아있다. 특히 타이중을 중심으로 한 중부 지역의 발전이 상대적으로 더디다는 지적이 제기되면서, 2016년 시대역량 소속의 타이중 출신 입법위원 훙츠융은 타오위안 국제공항 중심의 항공 정책을 비판했고[39], 2017년 린자룽 당시 타이중 시장은 철도 인프라 정비 지연을 지적하며 각각 "중북경남망태중(重北輕南忘台中)" (북부를 중시하고 남부를 경시하며 타이중을 잊는다)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기도 했다.[40]
2. 1. 국민당 정부의 북부 중심 정책
국공 내전에서 중국공산당에 패배한 국민당은 중국 본토에서 대만으로 이동하며 정부 본부를 북부의 타이베이로 이전했다.[3][4] 이러한 결정은 이후 대만 사회의 남북 격차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 중 하나로 작용했다는 평가가 있다.1949년 국민당 정부가 대만으로 이전한 후, 국민당은 1945년부터 2000년, 그리고 2008년부터 2016년까지 총 60년 이상 집권했다. 이는 민주진보당이 집권한 14년(2000년~2008년, 2016년~현재)과 비교된다. 오랜 기간 이어진 국민당 집권기 동안, 특히 백색 테러 시기를 거치면서 사회 및 경제 발전 측면에서 남북 간의 격차가 점차 확대되었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비판적인 시각에서는 국민당이 본토에서 건너온 외성인들이 주로 정착한 북부 지역에 경제 투자를 집중했다고 지적한다. 이는 남부에 비해 북부에서 대만 독립 운동의 움직임이 상대적으로 적었던 점도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 국민당은 신주와 타이베이 수도권 등 북부 지역의 기술 산업 육성에 집중한 반면, 남부 지역 투자는 주로 전통적인 산업 분야에 머물렀다는 분석이 있다. 이후 수십 년간 대만 내 산업 구조 변화와 중국 본토로의 공장 이전 등이 맞물리면서 남부 지역의 산업 기반이 약화되고 성장이 둔화되었다. 이는 결과적으로 고임금의 서비스 및 기술 산업 일자리가 집중된 북부 지역으로 남부의 고학력 청년 인구가 유출되는 현상, 즉 '두뇌 유출'을 심화시키는 원인이 되었다.[17][5][6]
1990년부터 1998년까지 가오슝 시장을 역임한 우둔이는 국민당이 주도하는 중앙 정부가 북부를 우대하고 남부를 홀대하는 정책적 편향성을 가지고 있다고 여러 차례 비판하기도 했다.[7]
한편, 대만의 경제 성장을 이끌었던 중공업 시설 대부분이 위치했던 가오슝은 1970년대부터 대만의 정치적 자유화와 민주화 운동의 중심지 역할도 수행했다. 특히 가오슝 사건은 대만 민주주의 발전에 중요한 계기가 된 사건으로 평가받는다. 일각에서는 당시 권위주의 통치하에 있던 국민당 정부가 남부 지역의 이러한 민주화 요구 움직임을 체제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하여, 의도적으로 남부 지역에 대한 경제 개발 지원을 축소했을 가능성을 제기하기도 한다.
이러한 남북 간의 불균형 발전 문제를 설명하는 용어로 "중북경남(重北輕南)"이라는 표현이 사용되기도 한다. 이는 민간에서 중앙 정부의 자원 배분이 북부에 편중되어 있다는 비판적 인식(중북경남론)과, 과거 정치인들이 출신 지역에 따라 주민을 구분하려 했던 시도(남북 차이론)라는 두 가지 맥락을 포함한다.[36] "남북 격차론"의 기원은 국민당 내부의 성적(省籍) 갈등과 관련이 있다는 분석도 있다.[36] 당시 국민당 내 외성인을 중심으로 한 주류파 그룹이었던 신 국민당 연선(新國民黨連線)(현 신당의 전신)은 자신들의 외성인 정체성을 희석하고 당내 주류파와의 성적(省籍) 차이를 지역적 차이로 치환하려는 시도를 했다. 즉, 기존의 외성인 대 본성인 구도를 '타이베이 수도권의 중산층' 대 '중남부 향촌 출신의 시민'이라는 지역 구도로 대체하려 했다는 것이다.[36]
초기에는 국민당 내부의 정치적 갈등에서 비롯된 "남북 격차론"은 점차 국민당과 민진당이라는 양대 정당 간의 경쟁 구도 속에서, 특히 선거 시기에 더욱 부각되는 양상을 보였다. 2000년 이후에는 남부는 민진당 지지 성향(녹색), 북부는 국민당 지지 성향(남색)이 강하다는 의미의 '남록북람(南綠北藍)'[38]이라는 용어가 등장하며 정치 지형에서의 남북 차이를 설명하는 표현으로 사용되기도 했다.[36]
2. 2. 백색테러와 정치적 탄압
대만의 남북 격차는 정부의 정책적 편향에서 비롯된 측면이 있다. 제2차 국공 내전에서 중국공산당에 패배한 중국국민당은 본토에서 대만으로 이동하며 정부 본부를 북부의 타이베이시로 이전했다.1949년 대만으로 이전한 이후 국민당 정부는 1945년부터 2000년, 그리고 2008년부터 2016년까지 총 60년 이상 집권했으며, 이는 민주진보당의 집권 기간인 14년(2000~2008, 2016~현재)과 비교된다. 국민당의 오랜 집권 기간 동안, 특히 백색테러 시기에 나타난 정책적 편향은 사회 및 경제 발전 측면에서 남북 간의 격차를 점차 심화시킨 요인으로 지적된다. 비판적인 시각에서는 국민당이 본토 패배 후 본토인들이 주로 정착한 북부 대만에 경제 투자를 집중했다고 본다. 이는 상대적으로 독립 운동이 덜 활발했던 북부 지역의 정치적 안정성을 고려한 결과일 수 있다. 국민당은 신주와 타이베이 광역 지역 등 북부의 기술 산업에 집중적으로 투자한 반면, 남부 대만에는 주로 산업 분야 투자가 이루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지난 수십 년간 중국 본토로 산업 시설이 이전하면서 남부 대만의 경제 성장은 둔화되었고, 이는 고임금 서비스 및 기술 산업이 집중된 북부로 고학력 청년 인재들이 유출되는 현상으로 이어졌다.
1990년부터 1998년까지 가오슝 시장을 역임한 우둔이는 국민당 소속임에도 불구하고, 당시 국민당이 이끌던 중앙 정부가 북부 지역을 우대하고 남부 지역을 홀대하는 편향된 정책을 펴고 있다고 자주 비판했다.
연구에 따르면, 대만의 경제 성장을 이끌었던 중공업 시설 대부분이 위치했던 가오슝시는 1970년대부터 대만의 정치적 자유화 운동에서도 중심적인 역할을 했다. 특히 대만의 민주화를 촉진한 가오슝 사건이 대표적이다. 일각에서는 국민당 정부가 남부 지역의 이러한 민주화 요구와 시위를 자신들의 권위주의 통치에 대한 심각한 위협으로 간주하여, 이에 대한 대응으로 남부 지역에 대한 경제 개발 지원을 의도적으로 축소했을 가능성을 제기하기도 한다.
3. 경제적 격차
대만의 남북 간 경제적 격차는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이지만, 종종 정부 정책의 영향이 큰 원인으로 지목된다. 국공 내전 이후 국민당 정부가 1949년 대만으로 이전하면서 북부의 타이베이를 수도로 삼은 것이 지역 불균형의 시작점으로 여겨지기도 한다.[3][4]
국민당은 민주진보당의 집권 기간(2000년~2008년, 2016년~현재, 총 14년)을 제외하고 1945년부터 2016년까지 60년 이상 집권했다. 이 기간 동안, 특히 권위주의 통치 시기였던 백색 테러 기간을 거치며 사회·경제 발전 측면에서 남북 간 격차가 심화되었다는 비판이 있다. 국민당 정부는 본토인들이 주로 정착했고 상대적으로 독립 움직임이 적었던 북부 지역, 특히 신주와 타이베이 수도권의 기술 산업에 투자를 집중한 반면, 남부 지역에는 주로 중공업 등 전통적인 산업 투자가 이루어졌다는 평가가 일반적이다.[17][5][6] 이러한 산업 구조의 차이는 이후 남부 지역의 성장 둔화와 고학력 인재의 북부 유출 현상으로 이어지는 원인이 되었다.[17][5][6]
이러한 불균형을 상징하는 용어로 "'''중북경남'''"(重北輕南, 북부를 중시하고 남부를 경시함)이라는 말이 사용되는데, 이는 청나라 말부터 일본 통치 시대를 거치며 타이베이가 정치·경제 중심지로 부상한 역사적 배경에서 비롯되었다.[36] 1967년 타이베이시가 직할시로 승격되면서 재정적 우위를 확보한 것도 격차를 심화시킨 요인으로 분석된다.[36] 1980년대 이후 대만의 산업 구조가 변화하면서 노동 인구가 북부로 집중되는 현상이 나타났고, 이는 남북 격차 문제를 더욱 심화시키는 결과를 낳았다.[36]
경제적 격차는 소득 불균형뿐만 아니라 부동산 가격에서도 뚜렷하게 나타난다. 북부 지역의 주택 가격 급등은 장기간 지속된 '중북경남' 정책으로 인해 고용 기회가 북부에 집중되고, 이로 인해 인구가 북부 대도시권으로 몰리면서 발생했다는 분석이 있다.[52] 특히 린커우 대지(林口台地)나 타이베이 분지(台北盆地)와 같은 지형적 요인으로 개발 가능한 토지가 제한적인 점도 북부의 부동산 가격 상승을 부추겼다.[52][36]
3. 1. 산업 구조의 차이
국공 내전에서 국민당이 패배하고 중국 본토에서 철수한 후, 국민당 정부는 본부를 대만 북부의 타이베이로 이전했다.[3][4] 1949년 이후 국민당은 60년 이상(1945년~2000년, 2008년~2016년) 비연속적으로 집권했으며, 이는 민주진보당의 14년(2000년~2008년, 2016년~현재) 집권 기간과 비교된다.국민당의 오랜 집권 기간 동안, 특히 백색 테러 시기를 거치면서 사회 경제 발전 측면에서 남북 간의 격차가 점차 확대되었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비평가들은 국민당이 본토인들이 주로 정착했고 독립 운동이 상대적으로 적었던 북부 대만에 경제 투자를 편중했다고 지적한다. 구체적으로 국민당은 신주와 타이베이 수도권 등 북부 지역의 기술 분야에 집중적으로 투자한 반면, 남부 대만에는 주로 중공업 등 전통 산업 투자가 이루어졌다고 알려졌다.[17][5][6]
1970년대부터 대만의 경제 성장을 이끌었던 중공업 대부분이 위치한 가오슝시는 대만의 정치적 자유화 운동에서도 중심적인 역할을 했다. 가오슝 사건과 같은 민주화 운동이 남부에서 활발히 일어나자, 일각에서는 국민당 정부가 이를 권위주의 통치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하여 남부 지역에 대한 경제 개발 지원을 의도적으로 줄였다고 추측하기도 한다.
지난 수십 년간 대만 남부의 주요 산업들이 인건비가 저렴한 중국 본토 등으로 이전하면서 남부 지역의 경제 성장은 둔화되었다. 이로 인해 고임금의 서비스 및 기술 산업 일자리가 많은 북부 지역으로 남부 출신의 고학력 젊은 인재들이 유출되는 두뇌 유출 현상이 발생했다.[17][5][6]
이러한 남북 불균형 문제는 "중북경남(重北輕南, 북부를 중시하고 남부를 경시함)"이라는 용어로 표현되기도 한다. 이 용어는 청나라 말기부터 일본 통치 시대를 거치며 타이베이가 정치·경제 중심지로 부상한 데서 유래했으며[36], 1967년 타이베이시가 직할시로 승격되면서 재정적 우위를 점하게 된 것이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분석도 있다.[36] 1980년대 대만의 산업 구조 변화와 함께 노동력 이동이 과거의 남북 분산형에서 북부 집중형으로 변화하면서[36] 이러한 불균형 문제는 더욱 심화되었다.
정치권에서도 이러한 불균형에 대한 비판이 꾸준히 제기되었다. 1990년부터 1998년까지 가오슝 시장을 역임한 우둔이는 국민당 중앙 정부가 북부를 편애하고 남부를 차별한다고 자주 비판했다.[7] 또한, 2017년 가오슝시 인구가 타이중시에 추월당해 3위로 밀려나자 당시 시장이었던 천쥐는 반세기에 걸친 '중북경남' 정책이 초래한 불균형한 국토 발전 때문이라고 지적했다.[37]
21세기에 들어 타이완 고속철도와 가오슝 첩운 개통 등으로 남부의 교통 인프라가 일부 개선되었지만, 여전히 지역 불균형 문제는 남아있다. 특히 타이중시를 중심으로 한 중부 지역의 발전이 더디다는 지적도 나오면서, 2016년 시대역량 소속 훙츠융 입법위원이나 2017년 린자룽 타이중 시장 등은 기존의 '중북경남'에 더해 타이중마저 소외된다는 의미로 "'''중북경남망대중'''(重北輕南忘台中, 북부를 중시하고 남부를 경시하며 타이중을 잊는다)"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며 비판하기도 했다.[39][40]
3. 2. 소득 및 고용 불균형
대만의 남북 간 소득 및 고용 불균형은 종종 정부의 정책적 편향에서 비롯되었다는 지적이 있다. 국공 내전에서 국민당이 중국공산당에게 패배한 후, 1949년 대만으로 이전하면서 정부 본부를 북부의 타이베이에 두었다.[3][4]국민당은 1945년부터 2000년, 그리고 2008년부터 2016년까지 총 60년 이상 집권했으며, 이는 민주진보당의 집권 기간(2000년~2008년, 2016년~현재)과 비교된다. 오랜 기간 집권한 국민당 정부의 정책적 편향, 특히 백색 테러 시기를 거치면서 사회 경제 발전 측면에서 남북 간 격차가 점차 확대되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국민당은 본토 패배 후 본토인들이 주로 정착한 북부 지역, 특히 신주와 타이베이 수도권의 기술 분야에 집중적으로 투자한 반면, 남부 지역에는 주로 중공업 등 산업 분야 투자가 이루어졌다고 알려졌다. 그러나 지난 수십 년간 대만 남부의 주요 산업들이 중국 본토로 이전하면서 남부의 경제 성장이 둔화되었고, 이는 고임금 서비스 및 기술 산업이 집중된 북부로 남부의 고학력 젊은 인재들이 유출되는 현상(두뇌 유출)을 초래했다.[17][5][6]
이러한 경향은 청나라 말기부터 일본 통치 시대를 거치며 타이베이가 정치·경제 중심지로 부상하면서 시작되었으며, "중북경남(重北軽南, 북부를 중시하고 남부를 경시함)"이라는 말이 민간에서 사용되기도 했다.[36] 결정적으로 1967년 타이베이시가 직할시로 승격되면서 재정적 우위를 확보하게 되었고, 이는 다른 현(縣) 및 시(市)와의 재정 격차를 심화시켰다.[36] 1980년대 대만 산업 구조 변화와 함께 노동력 이동이 과거의 남북 분산 형태에서 북부 집중 형태로 변화하면서[36] 이러한 격차는 더욱 뚜렷해졌다.
한편, 대만 경제 성장을 이끌었던 중공업 단지가 위치한 가오슝시는 1970년대부터 대만의 정치적 자유화 및 민주화 운동의 중심지이기도 했다. 특히 가오슝 사건은 대만 민주화에 중요한 계기가 되었는데, 일각에서는 당시 권위주의적 통치를 이어가던 국민당 정부가 남부 지역의 민주화 요구를 위협으로 간주하여 의도적으로 남부의 경제 개발 지원을 축소했을 가능성을 제기하기도 한다. 실제로 1990년부터 1998년까지 가오슝 시장을 역임한 우둔이는 국민당 중앙 정부가 북부를 편애하고 남부를 차별한다고 자주 비판했다.[7] 2017년 가오슝시 인구가 타이중시에 밀려 3위로 내려앉자 당시 시장이었던 천쥐 역시 "반세기 동안 이어진 '중북경남' 정책이 초래한 불균형한 국토 발전 때문"이라고 지적했다.[37]
아래 표는 2016년 기준 대만 각 지역의 1인당 지역 내 총생산(GRDP)을 보여주며, 북부와 남부 간의 경제적 격차를 확인할 수 있다.
| 순위 | 현시 | NT$ | US$ | PPP (US$) | 지역 구분 |
|---|---|---|---|---|---|
| 1 | 타이베이시 | 990292TWD | 30699USD | 65,539 | 북 |
| 2 | 신주시 | 853089TWD | 26446USD | 56,459 | 북 |
| - | 타이베이 도시권(베이베이지) | 830788TWD | 25754USD | 54,982 | 북 |
| - | 베이베이지타오 도시권 | 807860TWD | 25044USD | 53,465 | 북 |
| 3 | 롄장 현 | 776615TWD | 24075USD | 51,397 | 도서 |
| 4 | 신베이시 | 733776TWD | 22747USD | 48,562 | 북 |
| 5 | 타오위안시 | 731518TWD | 22677USD | 48,413 | 북 |
| - | 대만 전체 현시 평균 | 727098TWD | 22540USD | 48,120 | - |
| 6 | 타이중시 | 724905TWD | 22472USD | 47,975 | 중 |
| 7 | 신주 현 | 724840TWD | 22470USD | 47,971 | 북 |
| 8 | 펑후 현 | 709066TWD | 21981USD | 46,927 | 도서 |
| 9 | 자이시 | 709033TWD | 21980USD | 46,925 | 남 |
| 10 | 지룽시 | 706808TWD | 21911USD | 46,777 | 북 |
| 11 | 이란 현 | 700034TWD | 21701USD | 46,329 | 북 |
| 12 | 화롄 현 | 693292TWD | 21492USD | 45,883 | 동 |
| 13 | 가오슝시 | 684260TWD | 21212USD | 45,285 | 남 |
| 14 | 진먼 현 | 668582TWD | 20726USD | 44,248 | 도서 |
| 15 | 먀오리 현 | 657292TWD | 20376USD | 43,500 | 중 |
| 16 | 타이난시 | 643743TWD | 19956USD | 42,604 | 남 |
| 17 | 타이둥 현 | 623485TWD | 19328USD | 41,263 | 동 |
| 18 | 장화 현 | 618969TWD | 19188USD | 40,964 | 중 |
| 19 | 윈린 현 | 607776TWD | 18841USD | 40,223 | 중 |
| 20 | 핑둥 현 | 592066TWD | 18354USD | 39,184 | 남 |
| 21 | 난터우 현 | 569453TWD | 17653USD | 37,687 | 중 |
| 22 | 자이 현 | 562743TWD | 17445USD | 37,243 | 남 |
3. 3. 부동산 가격 격차
북부 지역의 부동산 가격 급등은 중앙 정부가 오랫동안 시행해 온 '중북경남' 重北軽南|중베이칭난중국어 경제 정책 때문이라는 연구 결과가 있다.[52] 2014년 연구에 따르면, 일자리를 늘릴 수 있는 대규모 공공 사업이 중남부 지역에는 오랫동안 이루어지지 않아 사람들이 북부 대도시권으로 몰리는 결과를 낳았다.[52][36] 많은 사람이 북부로 이주하면서 부동산 공급은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게 되었고, 린커우 대지(林口台地)나 타이베이 분지(台北盆地)와 같은 지형적 특성 때문에 거주 가능한 땅이 부족해진 것도 가격 상승의 원인이 되었다.[52][36]4. 정치적 격차
대만 남북 간의 정치적 격차는 역사적 배경과 정책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나타난다. 국공 내전 이후 1949년 국민당이 대만으로 이동하며 정부 본부를 북부 타이베이시에 수립한 것은 이러한 격차의 시발점 중 하나로 볼 수 있다. 이후 국민당의 장기 집권 기간 동안, 특히 권위주의 통치 시기에는 정부 정책이 북부 지역에 편중되었다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되었다.[36] 이는 남부 지역의 상대적 소외감과 불만을 야기하며 남북 간 정치적 인식 차이를 심화시키는 배경이 되었다.
이러한 정치적, 경제적 격차는 "'''중북경남'''(重北輕南)"이라는 용어로 표현되기도 하는데, 이는 중앙 정부의 자원 분배가 북부에 편중되어 남부가 소외된다는 인식을 반영한다.[36] 또한, 정치 지형의 차이를 나타내는 "'''북람남록'''"北藍南綠중국어[38]이라는 용어도 사용된다. 이는 전통적으로 북부 지역은 국민당(파란색 상징) 지지세가 강하고, 남부 지역은 민주진보당(녹색 상징) 지지세가 강한 경향을 나타내는 표현이다.[36] 이러한 용어들은 대만 사회 내에 존재하는 남북 간의 정치적, 지역적 갈등 구도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남북 격차론"은 초기 국민당 내부의 성적(省籍) 갈등에서 비롯되어 점차 정당 간 대립 구도를 설명하는 용어로 변화해왔다.[36]
4. 1. 정치적 성향의 차이
이러한 남북 격차는 종종 정부 정책의 영향으로 발생한다. 국공 내전에서 국민당이 중국공산당에게 패배한 후, 국민당은 대만으로 이동하여 북부의 타이베이시에 정부를 수립했다.[36]1949년 이후 국민당은 대만에서 연속적으로 60년 이상(1945년~2000년, 2008년~2016년) 집권했으며, 이는 민주진보당(민진당)의 집권 기간 14년(2000년~2008년, 2016년~현재)과 비교된다. 국민당의 장기 집권 기간 동안, 특히 백색테러 시기에 사회 및 경제 발전 측면에서 남북 간의 격차가 점차 확대되었다는 비판이 있다. 비평가들은 국민당 정부가 중국 본토 출신들이 주로 정착한 북부 지역에 경제 투자를 집중했으며, 이는 대만 독립운동이 남부보다 북부에서 상대적으로 덜 활발했던 점과 무관하지 않다고 지적한다. 국민당은 신주와 타이베이 수도권 등 북부 지역의 기술 산업에 집중적으로 투자한 반면, 남부 지역 투자는 주로 전통적인 산업 분야에 집중되었다. 이로 인해 지난 수십 년간 산업 시설이 중국 본토로 이전하면서 남부의 성장이 둔화되었고, 고임금 서비스 및 기술 산업이 밀집한 북부로 남부 출신 고학력 청년 인재들이 유출되는 현상이 발생했다.
1990년부터 1998년까지 가오슝시 시장을 역임한 우둔이는 국민당이 이끄는 중앙 정부가 북부 지역을 우대하고 남부 지역을 차별하는 정책적 편향성을 가지고 있다고 자주 비판했다.
연구에 따르면, 대만의 경제 성장을 이끌었던 중공업 시설 대부분이 위치한 가오슝시는 1970년대부터 대만 정치 자유화 운동의 중심지 역할도 했다. 특히 대만의 민주화를 촉발한 가오슝 사건이 대표적이다. 일각에서는 국민당 정부가 남부 지역의 민주화 요구 시위를 권위주의 통치에 대한 심각한 위협으로 간주하여, 남부 지역에 대한 경제 개발 지원을 의도적으로 축소했을 가능성을 제기하기도 한다.
전통적으로 대만 남서부 지역 유권자들은 독립 성향의 범녹 연합과 민주진보당을 선호하는 경향이 강한 반면, 북부 지역 유권자들은 중국과의 통일을 지지하는 범람 연합과 중국국민당을 선호하는 경향을 보인다. 스웨덴 출신 한 기자는 타이베이에서 "대부분의 대만 언론은 전통적으로 대만의 독립을 지지하는 범녹 진영이나 대만의 중국과의 통일을 옹호하는 범람 진영과 입장을 같이 한다."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역대 선거 자료는 도시와 농촌 유권자, 그리고 대만 북부와 남부 유권자 간의 정치적 성향 차이를 보여준다.[12][13] 예를 들어, 동성 결혼 합법화 문제에 대해 북부 지역 유권자들이 남부 지역 유권자들보다 더 높은 지지율을 보이는 경향이 나타났다. 동성 결혼 찬성률 상위 10개 도시에는 타이베이, 신베이, 신주, 지룽 등 북부 도시들이 다수 포함되었다.[13]
"중북경남(重北輕南)"이라는 표현은 두 가지 의미로 사용된다. 하나는 민간에서 유래한 "중북경남론"으로, 중앙 정부의 자원 분배가 오랫동안 북부에 편중되어 남부가 소외되었다는 인식을 반영한다. 다른 하나는 정치권에서 비롯된 "남북 차이론"으로, 초기에는 정치인들이 지지 기반을 다지기 위해 출신 지역에 따른 구분을 강조하면서 사용되었다.[36]
"남북 격차론"은 본래 중국 국민당(국민당) 내부의 출신 성(省) 간 갈등에서 비롯되었다.[36] 국민당 내에는 외성인을 중심으로 한 그룹인 '신 국민당 연선新國民黨連線중국어'(현 신당의 전신)이 존재했는데, 이들은 자신들과 당 주류파 간의 출신 성(省) 차이를 지역(대만 내 남북) 차이로 치환하려는 시도를 했다. 즉, 기존의 외성인 대 본성인 구도를 '타이베이 수도권의 중산층' 대 '중남부 농촌 출신 시민' 구도로 대체하려 한 것이다.[36]
원래 국민당 내부의 정치 투쟁에서 비롯된 "남북 격차론"은 점차 국민당과 민주진보당(민진당) 간의 정당 대립 구도를 설명하는 용어로 의미가 변화했다. 특히 선거 기간에 이러한 구분이 강조되는 경향이 있다. 2000년 이후에는 남부는 민진당(녹색), 북부는 국민당(파란색) 지지 성향이 강하다는 의미의 '''북람남록'''南綠北藍중국어[38]이라는 용어가 등장하여 남부인과 북부인의 정치적 차이를 부각하는 데 사용되고 있다.[36]
4. 2. 선거 결과의 차이
이러한 남북 간의 격차는 종종 정부의 정책적 편향에서 비롯된 것으로 여겨진다. 제2차 국공 내전에서 중국공산당에 패배한 국민당은 대만으로 이동하면서 정부 본부를 북부의 타이베이시에 두었다.1949년 이후 국민당은 민주진보당(민진당)이 집권한 14년(2000~2008, 2016~현재)을 제외하고 60년 이상(1945~2000, 2008~2016) 대만을 통치했다. 오랜 기간 이어진 국민당 집권기, 특히 백색테러 시기 동안 사회 및 경제 발전 측면에서 남북 간 격차는 점차 벌어졌다. 비판적인 시각에서는 국민당이 중국 본토 패배 후 외성인들이 주로 정착한 북부 지역에 경제 투자를 집중했다고 지적한다. 이는 남부에 비해 북부에서 대만 독립운동이 상대적으로 덜 활발했던 점도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 국민당은 신주와 타이베이 수도권 등 북부의 기술 산업에 집중적으로 투자한 반면, 남부에 대한 투자는 주로 전통적인 산업 분야에 머물렀다. 수십 년간 이러한 산업들이 중국 본토로 이전하면서 남부의 성장은 둔화되었고, 이는 고임금 서비스 및 기술 산업이 발달한 북부로 남부 출신 고학력 청년 인재들이 유출되는 결과를 낳았다.
1990년부터 1998년까지 가오슝시 시장을 지낸 우둔이는 국민당이 이끄는 중앙 정부가 북부를 우대하고 남부를 소외시키는 편향된 정책을 편다고 자주 비판했다.
연구에 따르면, 대만의 경제 성장을 이끌었던 중공업 시설 대부분이 위치한 가오슝시는 1970년대부터 대만 민주화 운동의 중심지이기도 했다. 특히 대만 민주화의 중요한 계기가 된 가오슝 사건이 이곳에서 발생했다. 일각에서는 당시 권위주의 통치를 하던 국민당 정부가 남부의 민주화 요구를 체제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하여, 남부 지역에 대한 경제 개발 지원을 의도적으로 줄였다고 추측하기도 한다.
전통적으로 대만 남서부 지역 유권자들은 민주진보당 중심의 범녹 연합을 선호하는 경향이 강하며, 북부 지역 유권자들은 중국 국민당 중심의 범람 연합을 지지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러한 정치적 지형을 "'''남록북람'''(南綠北藍)"[38]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는 남부는 민진당(녹색 상징), 북부는 국민당(파란색 상징) 지지세가 강하다는 의미이다.[36] 스웨덴의 한 기자는 "대부분의 대만 언론은 전통적으로 대만의 독립을 지지하는 범녹 진영이나 대만의 중국과의 통일을 옹호하는 범람 진영 중 하나의 입장을 따른다."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역대 선거 결과는 도시와 농촌, 그리고 북부와 남부 유권자 간의 뚜렷한 차이를 보여준다.[12][13] 예를 들어, 동성 결혼 합법화와 같은 사회적 이슈에 대한 지지율에서도 차이가 나타나는데, 북부 도시 지역 유권자들이 더 높은 지지를 보내는 경향이 있다. 실제로 동성 결혼 찬성률 상위 10개 도시에는 타이베이, 신베이시, 신주, 지룽시 등 북부 도시들이 다수 포함되었다.[13]
"중북경남(重北輕南)"이라는 표현은 두 가지 맥락에서 사용된다. 하나는 민간에서 유래한 "'''중북경남론'''"으로, 중앙 정부의 자원 분배가 오랫동안 북부에 편중되어 남부가 소외되었다는 인식을 반영한다. 다른 하나는 정치권에서 비롯된 "'''남북 차이론'''"으로, 초기에는 정치인들이 지지 기반을 다지기 위해 출신 지역을 기준으로 유권자를 구분하려는 의도에서 사용되었다.[36]
"남북 격차론"은 본래 중국 국민당 내부의 본성인과 외성인 간의 갈등, 즉 "성적(省籍) 갈등"에서 비롯되었다는 분석도 있다.[36] 국민당 내 비주류였던 '신 국민당 연선'(현 신당의 전신)과 같은 그룹은 자신들의 외성인 정체성을 희석하고 당내 주류와의 차이를 지역적 차이로 포장하려 했다. 이들은 기존의 외성인 대 본성인 구도를 "타이베이 수도권의 중산층" 대 "중남부 농촌 출신 시민"이라는 구도로 대체하려 시도했다.[36]
초기에 국민당 내부의 정치 투쟁에서 제기되었던 "남북 격차론"은 점차 국민당과 민주진보당 간의 정당 대결 구도로 의미가 변화했다. 특히 2000년 이후에는 선거 기간 동안 남부와 북부 유권자 간의 차이를 부각하는 수단으로 "'''남록북람'''(南綠北藍)"[38]이라는 용어와 함께 자주 사용되고 있다.[36]
5. 사회문화적 격차
대만 남북 간에는 다양한 사회문화적 측면에서 격차가 존재한다. 이러한 격차는 주로 인구 구성의 지역적 차이, 교육 기회의 불균형, 그리고 지역 간 평균 수명의 차이 등으로 나타나며, 이는 역사적, 정치적 요인과도 복합적으로 연관되어 있다. 각 구체적인 격차의 양상과 원인은 하위 항목에서 더 자세히 다룬다.
5. 1. 인구 구성의 차이
타이완 내 본토인, 호클로인, 객가 집단 간의 역사적 긴장은 타이완 남북 격차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 중 하나이다.[8][9][10]대만 전체 면적의 약 20%에 불과한 북부 지역에 대만 전체 인구의 거의 절반이 집중되어 있으며,[14][15] 이는 북부 지역의 인구 과잉 문제와 다른 지역의 성장 둔화를 야기하는 원인이 되고 있다.[16]
국립 정치 대학교에서 발간된 인구 통계 및 토지 경제학 저널의 한 기사에 따르면, 북부 지역의 높은 주택 가격은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이다. 주요 원인으로는 오랫동안 지속된 정부의 경제 정책이 남부보다 북부를 우선시했다는 점, 대도시 지역의 높은 인구 밀집도, 그리고 남부 지역의 고용 기회를 창출할 대규모 건설 프로젝트 부족 등이 지적된다.[17] 또한 이 기사는 북부 지역이 평야보다 산, 고지대, 대지가 많아 지리적으로 토지 공급이 제한적인 상황에서 사람들이 부동산 투자에 몰리게 되었다고 분석한다.[17]
사람들이 계속해서 북부 지역으로 이주함에 따라, 북부 지역을 대표하는 대만 입법원 의원의 수도 증가했다. 이러한 현상이 도시화된 북부와 농촌 지역인 남부 간의 발전 격차를 더욱 심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18] 실제로 1980년부터 2016년까지의 인구 통계에 따르면 북부 지역의 인구 증가가 중부나 남부 지역에 비해 두드러지게 나타났다.[51]
5. 2. 교육 기회의 불균형
대만 남북 간 교육 기회의 불균형은 과거 국민당 정부가 장기 집권하는 동안 형성된 정책적 편향과 깊은 관련이 있다. 국공 내전 이후 대만으로 이전한 국민당은 타이베이시를 중심으로 한 북부 지역에 정치, 경제적 자원을 집중시켰다. 특히 백색테러 기간을 거치며 이러한 경향은 더욱 심화되었고, 북부 지역, 특히 신주와 타이베이 광역권의 기술 산업 육성에 투자가 집중되었다. 반면 남부 지역은 주로 중공업 위주로 투자가 이루어졌으나, 이후 산업 구조 변화와 공장 해외 이전 등으로 성장 동력을 점차 잃어갔다.[26]이러한 경제적 격차는 교육 기회의 불균형으로 이어졌다. 남부 지역의 경제가 상대적으로 침체되고 양질의 일자리가 북부에 집중되면서, 고등 교육을 받은 젊은 인재들이 더 나은 기회를 찾아 북부로 이동하는 두뇌 유출 현상이 심화되었다.[26] 이는 남부 지역의 교육 환경에도 간접적인 영향을 미쳐 우수 인재 확보 및 교육 자원 배분 등에서 어려움을 야기했을 가능성이 있다. 1970년대 가오슝시를 중심으로 민주화 요구(가오슝 사건)가 거셌던 점 등을 이유로, 당시 국민당 정부가 의도적으로 남부 지역 발전을 제약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26]
이러한 구조적 불균형은 고등 교육 접근성에서도 나타난다. 대만 최고 명문 대학인 국립 타이완 대학 재학생의 절반 이상이 수도 타이베이시와 인근 신베이시 출신이라는 점은[26] 교육 기회의 지역적 편중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이다.
5. 3. 수명 격차
대만 북부 지역 주민들은 일반적으로 남부 지역 주민들보다 더 오래 산다. 신주와 타이베이 지역은 평균 수명이 80세 이상으로 가장 높았다.[19]대만 남부의 주요 도시인 타이난과 가오슝은 평균 수명이 80세 미만이었지만, 타이중, 타오위안, 신베이, 타이베이, 신주 등 대만 중부와 북부의 다른 주요 도시들은 모두 평균 수명이 80세 이상이었다.[19] 이러한 차이는 의료 자원 접근성, 삶의 질, 개인의 건강 수준 등 여러 요인의 불균형에서 비롯된 것으로 여겨진다.[19][20][21][22]
의료 자원의 북부 편중 현상은 심각한 수준이다. 학자들의 통계에 따르면 2019년 기준 대만에는 12개의 의과대학이 있었는데, 그중 절반 이상이 타이베이 등 북부 지역에 위치해 있다.[23] 이는 이용 가능한 의료 서비스와 교육 기회가 북부에 집중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실제로 2018년에는 한 해 동안 400명의 의사가 배출되었지만, 남부의 중심 도시인 가오슝에서 일하기로 선택한 의사는 32명에 불과했다.[23] 이러한 현실은 대만 남북 간 의료 서비스 역량의 심각한 불평등을 드러낸다. 2019년 국립 쑨원 대학교 총장은 "중앙 정부는 가오슝, 핑둥, 펑후, 타이둥에 공립 의과대학을 유치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하며 정부의 역할을 촉구하기도 했다.[23]
또한, 흉부 종양 저널(Journal of Thoracic Oncologyeng)에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대만 남부의 폐암 발생률은 북부보다 15배나 높으며, 이는 남부 지역 주민들의 평균 수명을 낮추는 주요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된다.[24][25]
6. 환경 격차
대만의 남북 격차는 경제, 사회뿐만 아니라 환경 문제에서도 뚜렷하게 나타난다. 21세기 들어 타이완 고속철도와 가오슝 첩운 개통 등으로 남부의 교통 인프라가 일부 개선되었지만, 여전히 지역 간 불균형은 해소되지 않고 있다. 특히 타이중시를 중심으로 한 중부 지역의 발전이 더디다는 지적이 제기되었는데, 타이중시 출신 시대역량 소속 입법위원 훙츠융은 2016년 타오위안 국제공항 중심의 항공 정책을 비판하였고[39], 타이중 시장 린자룽 역시 2017년 철도 인프라 정비 지연을 지적하며 "중부와 북부는 중시하고 남부는 경시하며 타이중은 잊힌다"는 의미의 '중베이 칭난 왕타이중'(重北輕南忘台中zho)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40]
과거 국민당의 장기 집권 시기 정책 또한 환경 격차의 원인으로 지목되기도 한다. 2018년 중화민국 지방공직 선거를 앞두고 민진당 진영은 가오슝시 유세에서 "국민당의 장기 집권이 가져온 '중북경남'(북부를 중시하고 남부를 경시함)은 타이베이시 지하에는 MRT를 만들었지만, 가오슝시 지하에는 석유화학 파이프라인을 만들었다"고 비판했다. 또한 "과거 국민당 집권 중앙 정부는 가오슝을 중공업 기지로 만들었지만, 이는 모두 환경 오염을 유발하는 산업이었다. 대만 경제에 대한 기여는 컸지만, 가오슝 시민들은 오랫동안 고통받아 왔다"고 지적하며, 천쥐 시장 집권 12년 동안 가오슝을 살기 좋은 도시로 변화시켜왔다고 강조했다.[41]
남북 간 환경 격차의 대표적인 사례로는 심각한 '''대기 오염''' 문제와 남부 지역 발전소에서 생산된 전력을 북부로 보내는 '''남전북송'''(南電北送) 문제가 꼽힌다. 이러한 문제들은 남부 지역 주민들의 건강권과 삶의 질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며, 지역 간 갈등의 요인이 되기도 한다. 특히 대기 오염의 경우, 남북 간의 심각한 격차를 비판하며 "하나의 대만, 두 개의 하늘(一個台灣,兩種天空zho)"이라는 표현이 사용되기도 했다.[42][43] 남전북송 문제 역시 남부 지역의 환경 부담을 가중시킨다는 비판 속에서, 가오슝시 시장 천쥐가 남부 화력 발전소 건설 계획에 대해 강하게 반발하는 등[50] 정치적 쟁점이 되었다.
6. 1. 대기 오염
2018년 1월, 민주진보당의 입법위원 류젠궈(윈린현 출신), 중국 국민당의 입법위원 천이민(가오슝시 출신), 시대역량의 입법위원 쉬융밍(타이중시 출신), 대만 건강 공기 행동 연맹 이사장 예광펑 등은 입법원에서 합동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하나의 대만, 두 개의 하늘 ()"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며, 대만의 남북 간 '''공기 오염''' 격차가 날마다 확대되고 있다는 우려를 표명했다.[42][43]회견에서 위원들은 탁수계 이남 지역과 북부 대만의 공기 품질 차이가 2008년부터 2016년까지 계속 확대되었고, 2017년에 그 차이가 가장 커졌다고 지적했다.[44] 구체적으로 자이현 및 자이시의 PM10 농도는 가장 심각하여 1입방미터당 62.5µg/m³이었고, 가오슝시도 60.2µg/m³에 달했다. 반면 같은 기간 타이베이 도시권은 35.1µg/m³ 수준이었다. 이처럼 공기 오염 악화 지역이 탁수계 이남에 집중되어 있다는 것이다.[42][45] 또한 중남부 지역에서는 유해 기준을 나타내는 보라색 경보가 발령된 연간 총 시간이 타이베이 도시권의 10배 이상이었다.[46]
시대역량 소속 쉬융밍 위원은 공기 품질의 남북 격차가 명백하며, 북부의 공기 질이 개선되어도 남부는 오히려 악화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행정원 환경보호서와 입법원은 차라리 남부에 가서 관리들이 실제로 행동하게 하여 이 문제를 정면으로 마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42][47]
민주진보당 소속 류젠궈 위원은 환경 보호 관련 자원이 주로 중남부에 투입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환경보호서가 장래 환경자원부로 승격 개편될 때 본부를 중남부에 설치해야 한다"며, 그렇지 않으면 차이잉원 정부가 유권자들에게 설명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압박했다.[42][44][48]
저서 '젊은 힘이 국회로 진출'에서는 북부 대기 오염의 주된 원인이 중국 대륙에서 오는 것인 반면, 중남부 대기 오염은 지역 자체 발생원에 의한 것이라고 분석한다. 또한 경제 발전의 성과가 공평하게 분배되지 않아 깨끗한 물, 공기, 식량을 보장하지 못하며, 획일적인 경제 발전 모델이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책은 오랫동안 대만의 정책이 소수 고위 관료에 의해 좌우되어 왔으며, 국민의 이익은 우선순위에서 밀려났다고 비판한다.[49]
대기 오염 문제는 발전소 문제와도 연관된다. 2009년 기준으로 남부 발전소의 연간 발전량 1,358만 kW 중 975만 kW만 남부 대만에서 사용되고 나머지는 북부로 송전되었다. 당시 마잉주 정부가 남부에 화력 발전소를 계속 건설하려 하자 논란이 일었다. 가오슝시 시장이었던 천쥐는 시내 샤오강 구의 다린 화력 발전소 건설 계획에 대해 "'''남전북송'''(남부 전력을 북부로 보내는 것)만 강요한다면 가오슝 시민들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강하게 반발했다.[50]
6. 2. 남부 발전소 문제 (南電北送)
2009년 기준으로 남부 발전소의 연간 발전량은 1,358만 킬로와트였으며, 이 중 남부 대만에서 소비된 양은 975만 킬로와트였고 나머지는 북부로 송전되었다.[50] 이는 남부 지역에서 생산된 전력이 북부 지역으로 보내지는 이른바 '남전북송(南電北送)' 문제로 이어졌다.당시 마잉주 국민당 정권은 남부 지역에 화력 발전소 건설을 지속적으로 추진하여 논란을 일으켰다.[50] 이는 환경 부담은 남부가 지고 혜택은 북부가 본다는 비판을 받았다. 가오슝 시장이었던 천쥐 민진당 총통은 시내 샤오강 구에서의 다린 화력 발전소 계획에 대해 "남전북송밖에 없다면 가오슝 사람들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언급하며 강하게 반발했다.[50] 이는 지역 불균형 문제에 대한 남부 지역 주민들의 불만을 대변하는 것이었다.
7. 남북 격차 해소를 위한 노력
대만 내 남북 격차 문제는 오랜 기간 동안 지적되어 왔으며, 이를 해소하기 위한 다양한 목소리가 정치권과 지역 사회에서 꾸준히 제기되었다. 과거 국민당 집권 시기인 1990년부터 1998년까지 가오슝시 시장을 역임한 우둔이조차 중앙 정부가 북부에 우호적이고 남부에 편향된 정책을 편다고 자주 비판했다.
격차 문제는 남부뿐 아니라 중부 지역에서도 제기되었다. 21세기 들어 타이완 고속철도와 가오슝 첩운 개통 등으로 남부 교통 인프라가 일부 개선되었지만, 타이중시를 중심으로 한 중부 지역의 발전은 상대적으로 더디다는 비판이 나왔다. 2016년 시대역량 소속 입법위원 훙츠융(타이중시 출신)은 타오위안 국제공항에 편중된 항공 정책을 비판했으며[39], 2017년 린자룽 타이중 시장 역시 철도 인프라 정비 지연을 지적하며 중앙 정부의 불균형적인 지원을 "중북경남 왕타이중(重北輕南忘台中중국어, 북부를 중시하고 남부를 경시하며 타이중을 잊는다)"이라고 표현했다.[40]
환경 문제 역시 남북 격차의 심각성을 드러내는 주요 지표로 부각되었다. 2018년 1월, 정당을 초월한 입법위원들은 "하나의 대만, 두 개의 하늘(一個台灣,兩種天空중국어)"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며 심화되는 공기 오염의 남북 격차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고 정부의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42][43] 이들은 특히 탁수계 이남 지역의 공기 질 악화가 심각함을 지적하며 환경 보호 자원의 중남부 우선 투입 필요성을 강조했다.[42][44][48]
에너지 정책에서의 불균형, 특히 남부에서 생산된 전력을 북부로 보내는 이른바 '남전북송(南電北送)' 정책 역시 지속적인 갈등 요소였으며, 지역 주민들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50] 이러한 다양한 문제 제기는 대만 사회 내에서 남북 및 지역 간 불균형 해소와 공정한 발전을 위한 실질적인 노력이 필요함을 보여준다.
7. 1. 민주진보당 정부의 정책
2018년 중화민국 지방공직 선거를 앞두고 민주진보당(민진당) 진영은 가오슝시 유세에서 과거 중국국민당(국민당)의 장기 집권이 초래한 '중북경남(重北輕南)' 현상을 비판했다. 이들은 "타이베이시의 지하 공간은 MRT로 채워졌지만, 가오슝시의 지하 공간은 석유 화학 제품 파이프라인으로 채워졌다"고 지적하며, 과거 국민당 중앙 정부가 가오슝에 중공업을 집중시켜 환경 오염을 유발했다고 주장했다. 또한, 천쥐 시장이 12년간 가오슝을 살기 좋은 행복 도시로 전환시키기 위해 노력했다고 강조했다.[41]공기 오염 문제 역시 남북 격차의 주요 쟁점으로 부각되었다. 2018년 1월, 민진당 소속 입법위원 류젠궈(윈린현 출신)는 국민당의 천이민(가오슝시 출신), 시대역량의 쉬융밍(타이중시 출신) 등 다른 정당 의원 및 환경 운동가 예광펑과 함께 입법원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하나의 대만, 두 개의 하늘 (一個台灣,兩種天空중국어)' 현상, 즉 공기 오염의 남북 격차가 심화되고 있다는 우려를 표명했다.[42][43] 류젠궈 의원은 환경 보호 자원이 중남부에 우선적으로 투입되어야 하며, 향후 환경자원부로 승격될 경우 본부를 중남부에 설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것이 실현되지 않으면 차이잉원 정부가 유권자들에게 설명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42][44][48]
에너지 정책과 관련해서는 '남전북송(南電北送, 남부의 전력을 북부로 보냄)' 문제가 지속적인 갈등 요소였다. 2009년 당시 마잉주 (국민당) 정부는 남부 지역에 화력 발전소 건설을 지속 추진했는데, 이는 남부에서 생산된 전력의 상당 부분이 북부로 송전되는 상황과 맞물려 논란을 일으켰다. 당시 민진당 소속의 가오슝 시장이었던 천쥐는 시내 샤오강 구의 다린 화력 발전소 증설 계획에 대해 "단순히 '남전북송'만을 위한 것이라면 가오슝 시민들은 받아들일 수 없다"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50]
7. 2. 지역 사회의 노력
민간에서 "중북경남(重北軽南)"이라는 용어가 사용된 것은 청나라 말부터 일본 통치 시대에 걸쳐 타이베이가 정치 경제의 중심지가 된 것에서 비롯되었다.[36] 특히 1967년 타이베이시가 직할시로 승격된 이후 재정적으로 다른 시에 비해 우위를 점하게 되면서, 다른 현(縣) 및 시(市)와의 재원 격차가 발생했다.[36]1980년대 대만의 산업 구조 변화와 함께 노동력 유동이 북부로 집중되는 현상이 나타났으며, 이러한 변화와 관련된 다양한 인과 관계에 대한 시민들의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36] 가오슝시의 인구가 2017년 여름 타이중시에 추월당해 국내 3위로 내려앉자, 당시 가오슝 시장이었던 천쥐는 이를 "반세기에 걸친 '중북경남' 정책이 초래한 불균형한 국토 발전 때문"이라고 지적했다.[37]
2018년 중화민국 지방공직 선거를 앞두고 민진당 진영은 가오슝시 유세에서 국민당의 장기 집권이 '중북경남' 현상을 심화시켰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국민당의 장기 집권은 타이베이시 지하에는 MRT를, 가오슝시 지하에는 석유 화학 제품 파이프라인을 만들었다"고 비판하며, 과거 국민당 정부가 가오슝을 중공업화하면서 환경 오염을 유발했다고 지적했다. 또한 "대만 경제에 대한 기여는 컸지만, 가오슝 시민들은 오랫동안 고통받아왔다"고 언급하며, 천쥐 시장이 지난 12년간 가오슝을 행복하고 살기 좋은 도시로 전환시키기 위해 노력해왔다고 강조했다.[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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