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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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반제선은 베를린의 첫 교외 철도 노선으로, 1874년 개통되어 첼렌도르프, 반제, 포츠담 등을 연결했다. 1891년 신 반제선 개통으로 베를린과 포츠담 간 근교선과 장거리 열차선이 분리되었고, 1900년부터 2년간 전철 시험 운행을 거쳐 전철화가 이루어졌다. 20세기 초반 여러 역이 추가되었고, 1939년 남북 S반선 연결로 노선이 변경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과 분단 시기를 거치며 운행에 변화가 있었고, 1980년 파업으로 중단되었다가 1985년 S반 운행이 재개되었다. 1992년 베를린 장벽 붕괴 후 노선이 확장되었고, 현재는 베를린 남서부 주거 지역과 도심을 연결하는 중요한 노선으로 기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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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제선 - [철도 노선]에 관한 문서 | |
|---|---|
| 노선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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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선 이름 | 반제선 |
| 원어 이름 | Wannseebahn |
| 원어 이름 (언어) | 독일어 |
| 노선 번호 | 6032 (안할터역-쇠네베르크) 6033 (쇠네베르크-반제) 6024 (반제-포츠담) 6184 (첼렌도르프-반제 화물선) |
| 노선 길이 | 27.8 km |
| 전철화 | 직류 750V 제3궤조 |
| 주요 위치 | 베를린, 독일 |
| 일반 정보 | |
| 종류 | 광역 철도 |
| 체계 | 베를린 S반 |
| 복선 구간 | 베를린 요르크슈트라세-베를린 반제 |
| 보안 장치 | ZBS |
| 노선도 정보 | |
| 비고 | 열차선 일부 구간은 베를린-마그데부르크선과 중첩된다. 쇠네베르크-반제 구간 거리는 구 베를린 반제선역을 원점으로 한다. |
2. 역사
반제선은 1874년 첼렌도르프에서 포츠담 간선에서 분기되어 그리브니츠제역에서 다시 합류하는 형태로 건설되었다. 1872년 리히터펠데 서역 개통 이후, 슐라흐텐제, 반제, 뒤펠 지역도 철도 연결을 원했다.
확장 노선은 1874년 6월 1일에 개통되었다. 리히터펠데 서역과 달리, 새로운 역의 계획 및 건설은 철도 회사와 프로이센 정부가 담당했다.
1891년 10월 1일, 독일 최초의 교외 노선으로 새로운 반제선이 개통되어 자체 운임 체계를 갖추었다. 포츠다머 반호프와 첼렌도르프 사이, 반제와 포츠담 사이에 장거리 및 교외선 서비스를 위한 별도의 선로가 건설되었고, 반제 반호프라는 별도의 역이 설치되었다.
1900년 7월 13일부터 1902년 7월 1일까지 베를린과 첼렌도르프 사이에서 상부 접촉식 세 번째 레일을 사용하여 750볼트 직류 전철화 시험이 진행되었고, 증기 기관차는 포츠담까지 계속 운행되었다.
1903년에는 '은행가 열차'(독일어: ''Bankierszüge'')가 베를린에서 첼렌도르프까지 논스톱으로 운행되었다. 1907년부터 이 열차는 간선을 통해 첼렌도르프까지 운행되었고, 포츠다머 반호프의 간선역에서 종착했다.
1911년과 1912년 사이, 첼렌도르프에서 반제선으로 연결되는 기존의 평면 교차는 입체 교차로 대체되었다.
2. 1. 구 반제선 (1874-1891)
1860년대 베를린과 포츠담 사이의 미개발지에 택지 조성이 시작되었다. 베를린에는 요한 안톤 빌헬름 폰카르스텐(Johann Anton Wilhelm von Carstenn)의 설계로 리히터펠데(Lichterfelde) 지구가 개발되었고, 1872년 리히터펠데 B.M.역(현재의 리히터펠데 베스트역)이 개업했다. 1860년대 중반에는 베를린-포츠담-마그데부르크 철도회사(Berlin-Potsdam-Magdeburger Eisenbahn-Gesellschaft, BPME)의 이사회 의장이었던 빌헬름 콘라트(Wilhelm Conrad)가 대반호(Großer Wannsee) 일대에 주거지를 개발하기로 결정했고, 이후 택지지구가 분할되어 개발되었다.[4]
1869년 당시 프리드리히 카를 폰프로이센 왕자(Prinz Friedrich Karl von Preußen)를 포함한 여러 지주는 반호와 슐라흐텐호를 향한 철도 노선을 건설하기로 합의했다. 베를린-포츠담 간선의 첼렌도르프역에서 향후 복선으로 확장할 수 있는 단선으로 분기하여, 슐라흐텐호와 반호 일대에 정차역을 건설하고, 콜하젠교(Kohlhasenbrück)에서 다시 합류하는 형태로 설계되었다.[4]
BPME에서는 1870년 2월 노선 건설 준비를 시작했고, 1871년 5월 31일 주 건축허가를 받았고, 그 다음 해에 주 경찰의 허가를 받았다. 이 과정에서 단선 철도 건설 계획이 복선 철도로 확대되었다. 당시 이 노선이 지나가는 곳 일대는 개발되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복선 철도 건설은 독일어의 언어 유희(Wannsee/Wahnsinn)를 사용하여 "비정상적인 철도"(Wahnsinnsbahn auf Conrädern)로 취급받았다.[4]
반제선 건설 당시에는 늪지와 숲지를 따라서 철도 건설에 필요한 자재를 이송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문제가 제기되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한 쪽 철도 노선을 먼저 건설하고, 해당 노선을 다른 쪽 철도 노선 건설용으로 사용하기로 하면서 공사 기간이 연장되었다.[12][19]
공식적인 반제선 개통일은 1874년 7월 1일이며, 베를린의 첫 교외 철도 노선이었다. 슐라흐텐제역과 바넨제역(1878년부터 반제로 개칭됨) 외에도 베를린-마그데부르크선 노선 상에 노이바벨스베르크역(현재의 그리브니츠제역)이 개업했다. 반제선을 경유하여 베를린과 포츠담을 연결했던 열차는 모든 중간역에 정차했다. 개통 4개월 후인 1874년 11월 1일에는 당시 독립 지자체였던 슈테글리츠 북부 지역에 프리데나우역이 개업했다.[19]
2. 2. 신 반제선 (1891-1900)
1880년대부터 베를린과 당시 독립시였던 슈테글리츠, 첼렌도르프의 인구가 급속하게 증가하면서 근교선 수요도 증가했다. 1883년 슈테글리츠역에서 철도 사고가 발생하여 39명이 사망하고 6명이 부상당했다. 이 사고로 슈테글리츠역 구조 개선이 최우선 과제가 되었고, 1885년 10월 슈테글리츠역 개선 공사가 완료되었다.1887년 4월 1일에 통과된 철도채권법을 통해서 베를린-첼렌도르프간 복복선 철도 건설 자본을 확보할 수 있었다. 1889년에는 첼렌도르프까지의 구간 예산을 386만 금 마르크에서 194만 금 마르크를 추가하기로 하면서 남부 순환선 연결선 건설이 포함되었다. 신 반제선의 역사는 동일한 규격으로 건설되었으며, 빠른 승하차를 위해서 반제역까지의 모든 역 승강장 높이는 궤도면에서 76 cm로 설계되었다.[7][29]
베를린-첼렌도르프간 신 반제선(Neue Wannseebahn) 및 노이바벨스베르크-포츠담 구간 근교선은 1891년 10월 1일에 영업을 시작했다. 이 노선을 갖추면서 베를린과 포츠담간 근교선과 장거리 열차선이 각각 복선으로 분리되었다. 프로이센 국영철도에서는 노선 개통에 맞추어서 베를린 도심선과 베를린 순환선 및 방사형으로 뻗어 나가는 대부분 노선에 할인된 근교선 요금을 도입했다. 근교선 요금 도입 이후 한 달만에 반제선 승객이 50% 증가했다.
1891년부터는 베를린 왕립 철도국(KED Berlin)에서 베를린 도심선, 순환선, 근교선의 완전한 전철화를 계획하고 있었다. 반제선은 근교선과 장거리 열차선이 분리되어 있었고, 전철화에 적합하다고 판단되었다. 지멘스 운트 할스케에서는 전철 시설을 설치하고 필요한 전력을 그로스리히터펠데 노면전차(Straßenbahn Groß-Lichterfelde)를 위한 회사 소유 발전소에서 충당할 계획을 제안했다. 급전 방식은 직류 750 V 제3궤조를 사용했고, 급전 궤도는 주행 궤도 옆에 설치되어 상면 접촉 방식을 사용했다.[27]
1900년 8월 1일부터는 베를린 반제선역부터 첼렌도르프역 사이 전철 영업 시운전이 시작되었다. 시험 운행 결과가 호평받으면서 프로이센 국영철도는 안할트 근교선의 전철 시험 운행을 결정했고, 차후 모든 근교선 열차가 전철화되었다.[21]
2. 3. 전철 시험 운행 (1900-1902)
19세기 말 베를린과 포츠담 사이 지역이 개발되면서 베를린 근교선의 전철화 필요성이 커졌다. 1860년대부터 리히터펠데(Lichterfelde) 지구가 개발되었고, 1872년에는 리히터펠데 B.M.역(현재의 리히터펠데 베스트역)이 개업하면서 철도 교통이 중요해졌다.20세기 초, 지멘스 운트 할스케(Siemens & Halske)는 1899년 베를린-반제선의 전철 운행을 제안했다.[8] 이 회사는 1881년에 세계 최초의 전기 노면 전차 노선인 그로스 리히터펠데 노면전차를 개통한 경험이 있었다. 지멘스 운트 할스케는 반제선에 600V 직류 전철을 설치하고, 전동차 6편성을 투입하여 10분 간격으로 운행하며, 베를린-첼렌도르프 간 무정차 열차도 운행할 계획이었다.[8]
그러나 프로이센 국영철도는 지멘스 운트 할스케의 제안을 거부하고, 자체적으로 전철 시험 운행을 진행했다. 1900년부터 1902년까지 반제선의 베를린 포츠담역-첼렌도르프 구간과 첼렌도르프-반제 구간에서 다양한 전철 시험 운행이 이루어졌다.[8] 이 시험 운행에는 750V 직류 제3궤조 방식이 사용되었고, 1901년에는 알토나 근교선에서 사용되었던 6000V 단상 교류 15Hz 가공 전차선 방식도 시험했다.[8]
시험 운행 결과, 프로이센 국영철도는 직류 방식이 교류 방식보다 적합하다고 판단했다. 당시 기술로는 교류 전동기의 출력이 충분하지 않았고, 변전소 간 거리가 멀어 전압 강하 문제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1903년 5월 1일부터 반제선에 급행 근교선 열차가 도입되어 베를린-첼렌도르프 간 무정차 운행으로 두 역간 운행 시간을 15분으로 단축했다.[8] 그러나 다른 열차 운행에 방해가 되어 1907년 5월 1일 운영을 중단했다가, 같은 해 12월 16일에 다시 도입했다.[8]
2. 4. 20세기 초반의 개발 (1902-1928)
1891년 10월 1일 베를린-첼렌도르프 간 신 반제선(Neue Wannseebahn) 및 노이바벨스베르크-포츠담 구간 근교선이 영업을 시작하면서 베를린과 포츠담 간 근교선과 장거리 열차선이 각각 복선으로 분리되었다.[7] 프로이센 국영철도는 노선 개통에 맞춰 베를린 도심선, 베를린 순환선 및 방사형으로 뻗어 나가는 대부분 노선에 할인된 근교선 요금을 도입했고, 반제선을 따라 포츠담을 넘어 베르더까지 운행하는 열차에도 근교선 요금이 적용되었다.[7]1900년 8월 1일부터 1902년 7월 1일까지 베를린 반제선역부터 첼렌도르프역 사이에서 전철 영업 시운전이 진행되었다.[27] 시험 운행 결과가 긍정적이어서 프로이센 국영철도는 안할트 근교선의 전철 시험 운행을 결정했고, 이후 모든 근교선 열차가 전철화되었다.[21]
20세기 초반, 그루네발트 숲 남쪽 개발과 함께 투자 유치를 위해 새로운 철도역이 건설되었다.[8] 1902년 5월 1일 베를린 니콜라스제역이 개통했고,[8] 2년 후에는 첼렌도르프 베렌슈트라세역(Zehlendorf Beerenstraße, 1987년 이후 멕시코플라츠역)이 개통했다.[8] 1909년 5월 1일에는 리히터펠데역과 슈테글리츠역 사이에 베를린 보타니셔 가르텐역이 개통했다.[8]
1903년 5월 1일부터는 선로 수송량 증가를 위해 급행 근교선 열차가 도입되었다.[8] 급행 열차는 베를린-첼렌도르프 간을 무정차 운행했으나, 다른 열차 운행에 지장을 주어 1907년 5월 1일 운행이 중단되었다가 같은 해 12월 16일에 다시 도입되었다.[8]
1913년에는 총 4230만 명의 승객을 수송하여 당시 최고 기록을 달성했다.[19]
1920년 10월 1일 대베를린이 결성되면서 당시 근교 지자체가 베를린에 통합되었고, 베를린의 새로운 시계는 콜하젠교까지 확대되었다.[9] 베를린에 편입된 모든 역 명칭에는 '베를린-'이라는 접두사가 붙었다.[9]
반제역은 전철화 계획에 따라 방향별 복복선 승강장으로 개축되었고, 반제선은 복복선의 내선 승강장 내선에서 종착했다.[9] 1928년 6월 11일에는 (에르크너-베를린 도심선-)반제-포츠담 구간이 전철화되었으며, 같은 해 10월 7일에 마지막 증기 기관차 견인 열차가 운행했다.[9] 전철화와 동시에 반제선 열차는 반제역 종착으로 변경되었다.[9]
2. 5. 전철화 (1928-1939)
1920년대 반제선은 다른 근교선에 비해 발전이 더뎠다. 베를린 순환선과의 환승은 그로스괴르셴슈트라세역과 쇠네베르크역 사이에서만 가능했는데, 두 역 사이를 400m나 걸어야 했다. 베를린 반제선역은 프리드리히슈트라세역 일대보다 도심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다. 1929년에는 지하철 노선이 크루메 랑케역까지 연장되었고, 베를린교통공사는 첼렌도르프-포츠담 간 고속 노면전차를 계획하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 변화로 1929년 반제선 승객 수는 3150만 명으로 감소했다.[9][13][22]베를린 철도국은 1927년 가을 반제선의 전철화 초기 계획을 세웠다. 베를린 남북 S반선 계획을 고려하여 반제선, 순환선, 안할트 근교선의 환승을 간소화할 예정이었다. 반제선 선로를 순환선상의 에버스슈트라세역 근처로 옮기고 남부 순환선 연결선과 연결, 순환선과 안할트 근교선의 파페슈트라세역과 같은 구조의 환승역을 건설할 계획이었다. 새 쇠네베르크역은 노선별 승강장이 건설되고, 반제선 열차는 포츠담 순환선역으로 재배치되며, 구 반제선역은 다른 용도로 사용하기로 했다. 반제선 구간 내에서는 펠트슈트라세 및 첼렌도르프 오스트역 추가 건설이 계획되었다. 1930년 베를린 철도국은 쇠네베르크 지역의 반제선 재건축안 3가지를 작성했고, 이 중 1안과 2안은 반제선과 순환선이 교차하는 환승역 건설을 포함했다.[22] 1931년 11월 25일 1안으로 확정되었다. 기존 쇠네베르크역에 영향을 주지 않아 비용을 최소화할 수 있었다. 이 외에도 노반 구조물 재건축, 포츠담역-첼렌도르프 미테 구간 장거리선 전철화, 반제역 일대의 새로운 S반 기지 건설이 추가되었다. 란트베어 운하 일대 기지는 객차 유치용으로만 사용하게 되었다. 반제-슐라흐텐제 구간 화물선도 첼렌도르프 미테역까지 연장에 대비되었다.[23] 인상선도 같이 전철화되었고 승강장 높이도 76cm에서 96cm로 높아졌다. 에버스슈트라세 일대에 새 급전소가 설치되고 리히터펠데 베스트에도 추가 급전소가 설치되었다.[14][24]
1933년 3월 1일 베를린 쇠네베르크역이 개통했다. 1932년 12월 1일부터는 콜로넨슈트라세역이라는 명칭을 사용했다. 과거 순환선에 있었던 에버스슈트라세역은 기능을 상실했고, 대합실 건물은 신 쇠네베르크역의 서쪽 출구로 전용되었다. 더 서쪽에는 순환선의 인스브루커 플라츠역이 개업했다. 펠트슈트라세역과 첼렌도르프 오스트역은 각각 포이어바흐슈트라세역과 준트가우어 슈트라세역으로 이름이 변경되었다.[9][14]
1933년 4월 15일 S반 반제 기지가 개업했다. 1933년 5월 15일 18.61km 구간이 전철화되었다.[24] 전철화와 함께 포이어바흐슈트라세역의 영업이 시작되었다. 준트가우어 슈트라세역과 첼렌도르프 미테-슐라흐텐제 구간 화물선은 1934년 7월 1일에 개통했다. S반 운영을 위해 2량 편성 51편성 열차(반제선형, ET/EB 1658)가 제작되었다. 전철화로 반제역까지 운행 시간이 36분에서 29분으로, 포츠담역에서 첼렌도르프 미테역까지는 15분에서 11분으로 단축되었다. 전철화 이후 상시 10분 배차 간격으로 운행했다. 출퇴근 시간대에는 첼렌도르프까지, 일부 시간에는 반제까지 5분 배차 간격으로 운행했다. 1936년부터는 시속 120km로 운행 가능한 DR ET 125 2량 18편성이 투입되었다.[9] 총 건축 비용은 약 였다.[19]
2. 6. 남북 S반선 연결 (1939)
베를린 남북 S반선이 개통되면서 반제선 북부 구간도 운행이 변경되었다. 터널로 진입하기 위해 반제선 선로는 장거리선 선로의 동쪽으로 진행해야 했다. 그로스괴르셴슈트라세역도 이 과정에서 위치가 변경되었고 요르크슈트라세 일대로 이전했다. 이에 따라서 과거의 환승 경로가 불필요해졌다. 초기 계획은 그로스괴르셴슈트라세역을 쌍섬식 승강장으로 건설하여 반제선과 순환선 열차를 방향별 복복선으로 취급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콜로넨슈트라세역이 순환선과 반제선의 환승역으로 건설될 예정이었기 때문에 그로스괴르셴슈트라세역은 단순 섬식 승강장으로 축소되었다.[25] 반제선역은 1939년 10월 6일까지만 열차가 운행되었고 이후 폐역되었다. 시설물은 장거리 열차에 전용되었고, 승강장은 객차 유치용으로 사용되었다. 그 다음 이틀간 반제선과 남북 S반선이 연결되었고, 1939년 10월 9일부터 남북 S반선을 경유하여 오라니엔부르크역까지 반제선 열차가 운행했다.[15] 쇠네베르크역 북쪽의 구간은 남북 S반선과 운행이 통합되었다. 베츨라어선의 근교선이 1937년까지 분리되면서, 반제-포츠담 구간의 영업거리는 반제선이 아닌 베를린 도심선 기준으로 계산되었다.[9]1937년 발표된 세계수도 게르마니아 계획에서도 반제선 자체는 크게 변경되지 않았다. 반제선 열차 일부는 FS반(Fern-S-Bahn)으로 변경되어 첼렌도르프역에서 결합/분리될 예정이었다. 동서 S반선 계획에는 안할트역에서 시작하여 괴를리츠선과 연결되어 FS반이 운행되고, 이 과정에서 포츠담역과 안할트역의 지상 시설물은 철거될 예정이었다. 남북 방향으로 운행하는 열차와 대규모 환승역이 계획되었다. 기존의 근교선은 포츠담에서 베르더 방면으로 연장될 예정이었고, 첼렌도르프-바벨스베르크 우파슈타트 구간 열차선과 평행하게 또 다른 S반 노선이 건설될 예정이었다.[9][15][17]
2. 7. 제2차 세계 대전과 분단기 (1939-1984)
제2차 세계 대전 중에도 반제선 배차 간격은 크게 줄어들지 않아, 1945년 2월 18일까지 20분 간격으로 운행되었다. 그러나 1945년 4월 연합군의 베를린 폭격으로 베를린 포츠담역이 파괴되고, 란트베어 운하 및 텔토 운하를 건너는 철교가 파괴되면서 운행이 중단되었다.[9] 1945년 5월 2일에는 란트베어 운하 폭파로 남북 S반선이 침수되기도 했다.[15] 종전 후에는 전쟁 배상으로 일부 구간 선로가 징발되었다. 베를린 시내에서 반제까지는 복선이 유지되었지만, 반제에서 텔토 운하까지는 단선으로 축소되었고, 포츠담까지는 두 선로 모두 징발되었다.[10]1945년 6월 6일부터 쇠네베르크-반제 구간에서 아침, 저녁 각 1편성씩 운행이 재개되었고, 이후 반제-그로스괴르셴슈트라세 구간에 매일 4편성씩 셔틀 운행이 재개되었다가 7월 21일에는 12편성으로 확대되었다. 1944년에 철거되었던 남부 순환선 연결선이 복구되어 8월 6일부터 포츠담 순환선역에 반제선 열차가 다시 정차했으며,[26] 이날부터 그로스괴르셴슈트라세-반제 구간 복선 운행 및 전 구간 20분 배차 간격이 재도입되었다. 9월 6일부터는 출퇴근 시간대에 포츠담 순환선역-첼렌도르프역 구간 10분 배차 운행이 시행되었다. 1946년 2월 16일에는 반제-텔토 구간 운행이 시작되었는데, 텔토 운하 지역에서 열차를 갈아타야 했으며, 운하 양쪽에 임시 승강장이 건설되고 교량으로 연결되었다. 포츠담 구간은 1946년 5월 12일까지 30분 간격으로 운행하다가 건넘선 복구 후 20분 간격으로 조정되었다. 1946년 7월 7일부터 전 구간 직통 운행이 시작되었다. 베를린 시내에서는 1946년 7월 27일부터 남북 S반선을 경유하여 베를린 프리드리히슈트라세역까지, 1947년 11월 16일에는 베를린 북역까지 운행이 재개되었다. 1948년 6월 6일부터는 북쪽으로 비르켄베르더역까지 운행이 재개되어 오라니엔부르크 방면 열차와 환승할 수 있었고, 1950년 2월 8일에는 오라니엔부르크행 직통 열차가 운행을 재개했다.[10]
1961년 시간표에서 1 열차군은 반제-오라니엔부르크간 20분 배차, 반제-빌헬름스루간 10분 배차로 출퇴근 시간대에 운행했다. 베를린 장벽 건설 이후에는 반제-프로나우간으로 단축되었고, 동베를린에 있던 남북 S반선 지하역은 베를린 프리드리히슈트라세역을 제외하고 모두 무정차 통과했다. 추가 열차는 안할트역-반제 사이만 운행했다. 당시 S반 보이콧 여파로 독일국영철도는 1967년부터 승객 감소에 따른 1인 승무를 도입했다.[16]
1980년 독일국영철도 파업으로 인해 그 해 9월부터 반제선의 S반 운행이 중단되었다. 리히텐라데/리히터펠데 쥐트-하일리겐제 구간을 운행했던 S반 전동차 유지 보수용 회송 열차만 운행했으며, 회송 열차 운행 시간 단축을 위해 신호기 운영이 중단되었다.[16]
1984년 1월 9일 서베를린 S반 영업권이 베를린 내각을 거쳐 베를린교통공사에 양도되었다. 반제선 열차 운행 재개를 위해 역 시설 개보수공사가 진행되었고, 1985년 2월 1일 반제선 S반 영업이 재개되었다. S1 노선은 반제-안할트역 구간을 운행했다. 리히텐라데발 S2 열차는 1984년 1월 안할트역 종착에서 5월 게준트브루넨, 가을 프로나우로 연장되었다.[11]
2. 8. 재통일 이후 (1984-현재)
1980년 서베를린의 동독 철도 직원 파업 이후 반제선에서는 여객 운송이 재개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 노선은 리히텐라데 또는 리히터펠데 쥐트와 하일리겐제 사이를 운행하는 북-남 터널을 통과하는 서베를린 S반 열차의 반제 차량 기지로 연결되는 역할을 계속 수행했다.[5]1984년 1월 9일 서베를린이 서부 S반 네트워크를 인수한 후, 반제 노선을 다시 운행하기로 결정했다. 역에서 광범위한 작업이 필요했다. 1985년 2월 1일 S1 노선으로 다시 개통되었다.[5]
오늘날 반제 노선은 남서부 주거 지역에서 베를린 중심부로 연결되는 중요한 연결 고리이다. 베를린 장벽 붕괴 이후, 이 노선은 반제와 오라니엔부르크 사이의 S1 노선의 일부를 형성한다. 교통량이 꾸준히 증가하여 기본 운행 간격인 10분 외에, 수년 동안 피크 시간대에 추가 운행이 이루어지고 있다.[5]
3. 역 목록
| 역명 | 개업일 | 비고 |
|---|---|---|
| 첼렌도르프 | 1874년 7월 1일 | 최초 개업 당시에는 반제선 소속이 아니었음. |
| 멕시코플라츠 | 1904년 | 1911년까지 첼렌도르프 베렌슈트라세(Zehlendorf Beerenstraße), 이후 첼렌도르프 베스트(Zehlendorf West)로 개칭. |
| 슐라흐텐제 | 1874년 7월 1일 | |
| 니콜라스제 | 1902년 5월 1일 | |
| 반제 | 1874년 7월 1일 | 1878년까지 바넨제(Wannen See)로 불림. |
| 그리브니츠제 | 1874년 7월 1일 | 최초 개업 당시에는 반제선 소속이 아니었으며, 노이바벨스베르크(Neubabelsberg)로 불림. |
| 프리데나우 | 1874년 11월 1일 | |
| 라트하우스 슈테글리츠 | 1883년 이전 | (구)슈테글리츠역, 1883년 고가화됨. |
| 리히터펠데 베스트 | 1872년 | 최초 개업 당시에는 반제선 소속이 아니었으며, 리히터펠데 B.M.으로 불림. |
| 보타니셔 가르텐 | 1909년 5월 1일 | |
| 포이어바흐슈트라세 | 1933년 5월 15일 | (구)펠트슈트라세(Feldstraße)로 불림. |
| 준트가우어 슈트라세 | 1934년 7월 1일 | (구)첼렌도르프 오스트(Zehlendorf Ost)로 불림. |
| 쇠네베르크 | 1933년 3월 1일 | 1932년에는 콜로넨슈트라세(Kolonnenstraße)로 불림. |
| 인스브루커 플라츠 | 1933년 3월 1일 | |
| 요르크슈트라세 (그로스괴르셴슈트라세) | 1939년 10월 9일 | (구)그로스괴르셴슈트라세, 베를린 남북 S반선 개통과 함께 이전됨. |
참조
[1]
서적
Eisenbahnatlas Deutschland (German railway atlas)
Schweers + Wall
[2]
서적
Kurzmeldungen – S-Bahn
[3]
서적
Berlin und seine Eisenbahnen 1846–1896
Julius Springer Verlag
[4]
서적
175 Jahre Berlin-Potsdamer Eisenbahn. 175 Jahre Eisenbahn in Preußen
VBN Verlag B. Neddermeyer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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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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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BN Verlag B. Neddermey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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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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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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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BN Verlag B. Neddermey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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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적
150 Jahre Berlin-Potsdamer Eisenba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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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적
Die elektrische Wannseebahn. Zeitreisen mit der Berliner S-Bahn durch Schöneberg, Steglitz und Zehlendor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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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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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적
Die elektrische Wannseebahn. Zeitreisen mit der Berliner S-Bahn durch Schöneberg, Steglitz und Zehlendorf
Verlag GVE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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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e elektrische Wannseebahn. Zeitreisen mit der Berliner S-Bahn durch Schöneberg, Steglitz und Zehlendorf
Verlag GVE
2004
[16]
서적
Die elektrische Wannseebahn. Zeitreisen mit der Berliner S-Bahn durch Schöneberg, Steglitz und Zehlendorf
Verlag GVE
2004
[17]
서적
Eisenbahn-Größenwahn in Berlin. Die Planungen von 1933 bis 1945 und deren Realisierung
Verlag G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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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인용
Potsdam: S-Bahn soll schneller werden. Land finanziert Planungen für die Bahn
http://www.mil.br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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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적
„Alte Wannseebahn“ und „Neue Wannseebahn“ (Teil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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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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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r elektrische Betrieb auf der Berliner S-Bahn. Band 2.2: Die große Elektrisierung – 1931 bis 1936
VBN Verlag B. Neddermeyer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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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r elektrische Betrieb auf der Berliner S-Bahn. Band 3: Zehn dramatische Jahre – 1937 bis 1946
VBN Verlag B. Neddermeyer
2013
[26]
서적
Der elektrische Betrieb auf der Berliner S-Bahn. Band 3: Zehn dramatische Jahre – 1937 bis 1946
VBN Verlag B. Neddermeyer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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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적
Elektrische Zugförderung auf der Wannseebahn. Der Versuchsbetrieb von 1900 bis 1902
Verlag GVE
1999
[28]
서적
Sanierung 1999 bis 2003
Verlag GVE
2004
[29]
서적
Die neue Vorortbahn Berlin–Potsdam (Wannseebahn) und der Umbau des Potsdamer Bahnhofs in Berlin
1891-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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