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도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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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베를린 도심선은 베를린의 주요 기차역들을 연결하는 고가 철도 노선으로, 1870년대 베를린에 여러 간선 철도 노선이 종착하면서 환승의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해 건설되었다. 1882년 개통 이후, 장거리 열차와 근교 열차의 운행을 통해 베를린의 교통망을 연결하는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으며, 특히 베를린 장벽 건설 이후 동서 베를린을 잇는 중요한 교통로가 되었다. 현재는 S반 노선과 장거리 열차 노선이 함께 운행되며, 베를린 중앙역 개통 이후 장거리 열차 운행은 일부 감소했지만, 여전히 베를린의 중요한 교통 동맥으로 기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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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도심선 - [철도 노선]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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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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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 베를린 |
노선 번호 | 6003, 6024 (DB) |
전철화 | 베를린 S반: 750 V/DC 제3궤조 간선: 15 kV; 16.7 Hz/AC 가공선 |
노선 정보 | |
기점 | 리히텐베르크 / 칼스호르스트 근처 |
종점 | 베스트크로이츠 근처 |
주요 역 | 오스트반호프 야노비츠브뤼케 알렉산더플라츠 하케셔 마르크트 프리드리히슈트라세 하우프트반호프(중앙역) 벨뷰 티어가르텐 동물원 사비니플라츠 샤를로텐부르크 |
복선 구간 | 전체 구간 |
기술 정보 | |
독일 철도 노선 번호 | 6024 (S반) 6109 (장거리선) |
선로 폭 | 1435 mm |
최대 경사 | 알 수 없음 |
최소 곡선 반경 | 알 수 없음 |
최고 속도 | 알 수 없음 |
역사 | |
개통 | 알 수 없음 |
기타 | |
관련 전투 | 베를린 시가전 |
2. 건설 배경
19세기 후반, 베를린의 철도 교통은 여러 간선 철도 노선이 도시 외곽에 흩어진 종착역으로 연결되어 있어, 다른 노선으로 갈아타기 위해서는 마차를 이용해야 하는 등 환승에 큰 불편이 따랐다.[1]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고 도시 내 이동성을 높이기 위해, 기존 역들을 연결하는 베를린 순환선 건설과 함께 베를린 도심을 동서로 관통하여 주요 지점을 빠르게 연결하는 새로운 철도 노선인 베를린 도심선의 건설 필요성이 제기되었다.[2]
2. 1. 초기 철도망과 문제점
1871년 당시 베를린에는 총 8개의 간선 철도 노선이 운행 중이었으나, 각 노선의 종착역은 당시 베를린 시가지의 가장자리나 외곽에 서로 떨어져 있었다. 이 때문에 승객들은 다른 노선으로 열차를 갈아타기 위해 도시를 가로질러 마차를 이용해야 하는 큰 불편을 겪었다.이러한 문제를 일부 해소하고자 1871년부터 베를린의 주요 장거리 기차역들을 연결하는 베를린 순환선 건설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초기 순환선은 도시 동쪽을 반원 형태로 잇는 수준에 머물렀다. 따라서 여러 종착역을 도심에서 직접 연결하여 환승 편의성을 높이고 도시 교통을 원활하게 할 새로운 철도 노선의 필요성이 제기되었으며, 이것이 베를린 도심선 계획의 중요한 배경이 되었다.
2. 2. 순환선 건설과 도심선 계획

1871년 당시 베를린에는 총 8개의 간선 철도 노선(포츠담선, 안할트선, 슈테틴선, 함부르크선, 괴를리츠선, 동방철도, 레어테선)이 종착했다. 이 간선 철도 노선들은 각각 베를린 시계 외곽에 두단식 종착역을 개별적으로 가지고 있었다. 이 때문에 다른 노선의 열차로 갈아타려면 도시를 가로지르는 마차를 이용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1871년부터 베를린의 여러 장거리 기차역을 연결하는 베를린 순환선 건설이 시작되었다. 순환선은 처음에는 동쪽을 반원형으로 잇는 형태로 시작했으며, 이후 베를린 도심선 건설 시기에 도시 전체를 둘러싸는 완전한 순환 고리 형태를 갖추게 되었다.
그러나 순환선만으로는 도시 중심부를 관통하여 여러 역을 빠르게 연결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이에 따라 베를린 도심을 동서로 가로질러 주요 역들을 직접 연결하고, 승객들이 더욱 빠르고 편리하게 환승할 수 있도록 하는 새로운 철도 노선, 즉 베를린 도심선의 건설이 계획되었다. 이 계획은 단순히 여객 편의 증진뿐만 아니라, 1870-1871년 프랑스-프로이센 전쟁 이후 철도망 연결 부족이 군대의 동원을 방해할 수 있다는 군사적 고려도 반영되었다.[5]
3. 건설 역사
베를린 도심선 건설은 1872년 독일 철도건설회사(Deutsche Eisenbahnbaugesellschaftde)의 제안으로 시작되었다. 이 회사는 당시 프랑크푸르트역에서 샤를로텐부르크를 거쳐 포츠담까지 이어지는 노선을 구상했다. 1873년, 프로이센 왕국과 여러 민간 철도 회사가 참여하여 베를린 도심철도회사(Berliner Stadteisenbahngesellschaftde)가 설립되었고, 1875년부터 본격적인 건설에 착수했다.
그러나 건설 시작 3년 만인 1878년, 독일 철도건설회사가 파산하면서 사업은 위기를 맞았다. 이에 프로이센 왕국 정부가 직접 개입하여 사업을 인수하고 건설과 운영을 책임지게 되었다. 프로이센 국가의 개입은 프랑스에 대항하기 위한 참모본부의 의도가 강했다. 건설 관리는 1878년 7월 15일, 에른스트 디르크센이 이끄는 왕립 베를린 도심철도 본부(Königlichen Direktion der Berliner Stadteisenbahnde)로 이관되었다.
여러 우여곡절 끝에 베를린 도심선은 1882년 2월 7일 시내 교통용으로 먼저 개통되었고, 같은 해 5월 15일에는 장거리 교통 노선으로도 운영을 시작했다.[35][17] 당시 토지 매입 비용을 포함한 건설 비용은 킬로미터당 약 500만 마르크에 달했다.
3. 1. 초기 계획과 회사 설립
1871년 당시 베를린에는 8개의 간선 철도가 있었지만, 종착역들은 도시 외곽이나 가장자리에 흩어져 있었다. 이 때문에 승객들은 기차를 갈아타기 위해 마차를 이용해야 하는 불편을 겪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러 종착역을 서로 연결하는 철도 노선 건설이 계획되었다.[4]1872년, 베를린의 '독일 철도건설회사'(Deutsche Eisenbahnbaugesellschaft|도이체 아이젠반바우게젤샤프트de, DEG)는 당시 슐레지엔역(현재의 베를린 동역)에서 샤를로텐부르크를 거쳐 포츠담까지 이어지는 도심선(Stadtbahn|슈타트반de) 건설 계획을 제안했다.
이 계획을 바탕으로 1873년 12월, 프로이센 왕국과 민간 철도 회사들인 베를린-포츠담 철도, 마그데부르크-할버슈테터 철도, 베를린-함부르크 철도가 독일 철도건설회사(DEG)와 함께 주식을 출자하여 '베를린 도심철도회사'(Berliner Stadteisenbahngesellschaft|베를리너 슈타테이젠반게젤샤프트de)를 공동으로 설립했다.[4]
3. 2. 프로이센 왕국의 개입과 건설
도심선 건설은 1875년에 시작되었으나, 3년 뒤인 1878년 사업 주체 중 하나였던 독일 철도건설회사(Deutsche Eisenbahnbaugesellschaft|독일 철도건설회사de, DEG)가 파산(지불 불능 상태)하면서 위기를 맞았다.[4] 이에 프로이센 왕국 정부가 개입하여 파산한 회사의 지분을 인수하고 건설 및 운영 비용을 직접 부담하기로 결정했다. 프로이센 국가가 직접 나선 배경에는 군사적인 고려도 있었는데, 1870년~1871년 프랑스-프로이센 전쟁 이후 제대로 연결되지 않은 철도망이 군대 동원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프로이센 참모 본부의 판단이 작용했다.[5]건설 관리는 1878년 7월 15일 새로 설립된 왕립 베를린 도심철도 본부(Königlichen Direktion der Berliner Stadteisenbahn|왕립 베를린 도심철도 본부de)로 이관되었다. 본부장은 에른스트 디르크센이 맡았다. 이 조직은 처음에는 프로이센 상무성(또는 교통부)의 지휘를 받다가, 이후 독립된 공공사업부(공부성) 소속으로 변경되었다.
3. 3. 개통과 초기 운영
1882년 2월 6일, 정식 개통 하루 전에 빌헬름 1세가 탑승하여 모든 역에 정차하는 특별 열차가 운행되었다.[35][17] 다음 날인 1882년 2월 7일에 시내 교통용으로 정식 개통하였고, 같은 해 5월 15일에는 장거리 교통 노선으로도 개통하였다. 당시 부지 매입 비용을 포함한 건설 비용은 킬로미터당 약 500만 금 마르크에 달했다.개통 당시의 모습을 담은 목판화는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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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도심선은 이후 베를린 S반의 핵심 노선이 되었다. 개통 초기에는 하르만 시스템의 종방향 철제 침목으로 건설되었으나,[7] 20세기 초에 나무 침목으로 교체되었다.
개통 당시에는 9개의 역만 운영되었으나, 이후 두 개의 역이 추가되었다. 1885년 1월 5일에는 동물원역과 벨뷔역 사이에 티어가르텐역이 개업했고, 1896년 8월 1일에는 샤를로텐부르크역과 동물원역 사이에 사비니플라츠역이 문을 열었다.
1888년 5월 1일부터 도심선 운행 구간은 동쪽으로 슈트랄라우-룸멜스부르크(1933년부터 오스트크로이츠역)까지, 서쪽으로는 베스트크로이츠역을 경유하여 베스트엔트역까지 연장되었다.
4. 노선
베를린 도심선은 베를린 동역에서 샤를로텐부르크역까지 베를린 도심을 동서로 가로지르는 핵심 철도 노선이다. 베를린 순환선과 달리 여객 수송을 주목적으로 설계되어, 베를린 시내 주요 지점과 교외 노선망을 연결하는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노선은 복복선으로 건설되어 S반(광역철도)과 지역 열차, 장거리 열차가 함께 운행하며, 대부분 고가교 형태로 건설된 것이 특징이다. 자세한 경로, 구조, 역, 연결 노선 등은 하위 문서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4. 1. 경로 선정과 특징
베를린 순환선이 주로 화물 운송을 위해 설계된 것과 달리, 베를린 도심선은 여객역 간을 최단 거리로 연결하는 것을 주요 목적으로 설계되었다. 또한 베를린으로 진입하는 다른 철도 노선들과의 연계를 고려하여 건설되었다.
건설 당시 베를린은 이미 고밀도로 개발된 도시였기 때문에 철도 부지를 확보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초기 계획에서는 Leipziger Straße|라이프치커 슈트라세de를 따라 노선을 건설하는 방안이 검토되었으나, 해당 지역의 토지 가격이 너무 높아 실현되지 못했다.
대신, 17세기에 건설된 베를린 요새의 해자(垓子)가 있던 부지를 활용하는 방안이 채택되었다. 이 부지는 공공 소유였기 때문에 토지 매입 비용 부담이 적었다. 현재의 하케셔 마르크트역과 야노비츠브뤼케역 사이 구간이 이 해자 부지를 따라 건설되었으며, 이로 인해 알렉산더플라츠역과 야노비츠브뤼케역 사이의 노선이 직선이 아닌 곡선 형태를 띠게 되었다.[6]
베를린 도심선은 전 구간이 복복선 전철로 건설되었다. 한 쪽 복선 선로는 광역철도(S반)가 운행하며, 다른 한 쪽 복선 선로는 지역열차(RB), 지역급행(RE), 인터시티(IC), 인터시티익스프레스(ICE) 등 광역 및 장거리 열차가 운행한다. 이를 통해 베를린 도심선은 베를린 광역철도 시스템의 핵심적인 중심 노선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4. 2. 구조와 기술


베를린 도심선은 건설 당시 고밀도 시가지였던 베를린 중심부를 통과하기 위해 대부분의 구간이 고가교 형태로 건설되었다. 이는 1851년에 개통되어 지상 구간 운행으로 문제를 일으켰던 베를린 연결 철도(Berliner Verbindungsbahn)와 대조되는 방식이다.
전체 약 12km 노선 중 8km 구간은 벽돌 고가교(건설 당시 아치 731개)로 이루어져 있으며, 2km 구간은 철교로 건설되었다. 나머지 2km 구간은 제방 위에 선로가 놓였고, 일부 구간에는 흙막이 옹벽이 설치되어 있다. 노선을 따라 총 64개의 교량이 있으며, 대표적인 것으로는 총 길이 240m의 훔볼트하펜 철교(Humboldthafenbrücke)가 있다. 폭이 넓은 교량의 지지대로는 주로 하르퉁식 기둥(Hartungsche Säulen)이 사용되었는데, 이는 1880년부터 1910년까지 베를린의 철도 건축 양식을 특징짓는 요소이다.
궤도의 경우, 초기에는 하르만 시스템(System Haarmann)으로 불리는 철제 종방향 침목 위에 설치되었다.[7] 그러나 20세기 초에 이르러 가로 방향의 목재 침목으로 교체되었다.
4. 3. 기차역
건설 당시 계획된 기차역은 동쪽에서 서쪽 순서로 다음과 같다.개통 당시 역명 | 현재 역명 (또는 주요 변경 사항) | 비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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슐레지엔역 (Schlesischer Bahnhof) | 베를린 동역 | 1950년-1987년 및 1998년 이후 동역(Ostbahnhof). 1987년-1998년에는 베를린 중앙역(Berlin Hauptbahnhof)으로 불렸다. |
야노비츠브뤼케역 (Jannowitzbrücke) | 야노비츠브뤼케역 | |
알렉산더플라츠역 (Alexanderplatz) | 알렉산더플라츠역 | |
증권거래소역 (Börse) | 하케셔 마르크트역 (Hackescher Markt) | 1951년-1992년: 마르크스엥겔스플라츠역(Marx-Engels-Platz) |
프리드리히슈트라세역 (Friedrichstraße) | 프리드리히슈트라세역 | |
레어테 도심선역 (Lehrter Stadtbahnhof) | 베를린 중앙역 (Hauptbahnhof) | 현재의 베를린 중앙역 |
벨뷔역 (Bellevue) | 벨뷔역 | |
동물원역 (Zoologischer Garten) | 동물원역 | |
샤를로텐부르크역 (Charlottenburg) | 샤를로텐부르크역 |
건설 이후 다음 두 개의 역이 추가되었다.

4. 4. 추가 경로와 연결
도심선은 동쪽의 슐레지엔역에서 슐레지엔선과 직접 연결되며, 이 역을 통해 동방철도 및 베를린 순환선 남쪽으로도 이어진다. 1882년에는 이 연결선 상에 승강장이 건설되었는데, 처음에는 슈트랄라우-루멜스부르크(Stralau-Rummelsburg)역으로 불렸으나 이후 오스트크로이츠역이 되었다. 순환선 북쪽으로 이어지던 연결선은 2006년에 철거되었다.서쪽의 샤를로텐부르크역에서는 장거리 열차선이 반제역 방면 베츨라어선 및 슈판다우역 방면 함부르크선 도심연결선과 이어진다. 과거 샤를로텐부르크와 순환선을 연결하며 슈판다우 방면으로 가던 레어테선 도심연결선은 1945년에 영업을 중단했다.
S반 열차의 경우, 할렌제(Halensee) 방면 연결선은 주로 영업 종료 시간대나 회송 목적으로만 사용된다. 베스트엔트(Westend) 방면으로 이어지던 북부 연결선 역시 1945년에 영업이 중단되었다.
4. 5. 기점과 영업 거리
S반 노선과 열차선 모두 베를린 동역을 기점으로 삼는다. S반의 영업거리는 샤를로텐부르크역 서쪽에서 포츠담과 슈판다우 방면(슈판다우 근교선을 통해서)으로 계속 이어진다. 열차선의 영업거리는 함부르크선 도심연결선을 통해서 슈판다우역 동쪽까지 이어진다. 운영 내부적으로는 베를린 동역-베를린 샤를로텐부르크역-베를린 슈판다우역 간 열차선이 선로 번호 6109, 베를린 동역-베를린 샤를로텐부르크역-포츠담 중앙역 간 S반선이 선로 번호 6024번을 사용한다.5. 운영 및 확장
베를린 도심선은 개통 초기부터 활발하게 운영되었으며, 지속적인 확장과 개량을 거쳐왔다. 1905년에는 이미 배차 간격이 2분 30초에 달할 정도로 빈번하게 열차가 운행되었다.[37][18] 이후 시대 변화에 따라 증기 기관차 운행에서 전동차 운행으로 전환되었고, 역 시설 역시 꾸준히 현대화되었다.
5. 1. 광역 교통
도심선을 운행했던 근교 열차와 순환선 열차(북부 순환선과 남부 순환선)는 영업 초기에는 프로이센 T 12형과 같은 증기 기관차로 견인되었다. 매연과 악취를 줄이기 위해 연료로 코크스를 사용했다. 객차는 컴파트먼트 차량이었으며, 승객이 직접 문을 열어야 했고 별도의 역 안내방송은 없었다.
초기에도 영업은 오전 4시부터 다음 날 밤 1시까지 이루어졌다. 각 열차는 9량의 객차로 편성되었고 시간대에 따라 2분, 3분, 5분 배차 간격으로 운행했다. 1905년에는 이미 2분 30초 배차 간격으로 운행하기도 했다.[37][18] 20세기 초반의 운임은 3등석 10 페니히, 2등석 15 페니히였다.
5. 2. 화물 운송
알렉산더플라츠 근처에 있었던 중앙 시장(Zentralmarkthallede)으로 화물을 운송하기 위해 하루 총 7편성의 특별 화물 열차가 운행되었다. 이 중 4편성은 야간에, 2편성은 주간에, 1편성은 저녁에 운행했다. 이를 제외하면 도심선 상에서는 정규 화물열차가 운행하지 않았다. 일반적인 화물 운송은 베를린 순환선 상에 위치한 샤를로텐부르크, 모아비트, 베딩, 바이센제, 중앙가축시장, 프랑크푸르터 알레, 노이쾰른(당시 릭스도르프), 템펠호프, 빌머스도르프-프리데나우, 할렌제 등의 화물역을 통해 이루어졌다.5. 3. 장거리 열차
도심선 개통 초기에는 이전에 레어테역, 괴를리츠역, 포츠담역 등에서 종착하던 많은 장거리 열차가 도심선을 경유하여 운행했다. 이를 통해 기존 종착역의 선로 용량 부담을 줄일 수 있었다. 그러나 19세기 말 도심선 자체의 지역 교통량이 증가하면서, 대부분의 장거리 열차는 다시 원래의 종착역에서 출발하고 도착하게 되었다.
도심선으로 계속 운행한 장거리 열차는 다음과 같다.
- 레르터 철도를 통해 하노버와 쾰른으로 가는 급행열차
- 카노넨반을 통해 데사우로 가는 열차
- 동방철도를 통해 쾨니히스베르크와 단치히로 가는 열차
- 프랑크푸르트(오더)와 포젠을 경유하여 브레슬라우, 카토비츠로 가는 열차
또한 슈판다우와 슈트라우스베르크 방면으로 가는 교외 열차도 1928년까지는 도심선의 장거리 열차용 선로를 이용했다.
일반적으로 서쪽으로 향하는 장거리 열차는 슐레지엔역에서 출발했고, 동쪽으로 향하는 열차는 샤를로텐부르크역에서 출발했다. 착발 열차의 기관차와 객차 취급을 위한 차량기지는 룸멜스부르크(당시 명칭은 Bw 카를스호르스트)와 그루네발트에 있었다.
5. 4. 역 확장 및 육교 보강
1914년 프리드리히슈트라세역이 증축되어 장거리 열차선이 4선으로 확장되었고, 오늘날까지 사용되는 역사 건물과 트레인 셰드가 건축되었다.[8]
1922년부터 1932년까지 도심선 고가교의 아치 구조물에 대한 대대적인 보수 공사가 진행되었다. 벽돌 아치는 콘크리트로 보강되었고, 철교 역시 보강되거나 교체되었다. 이는 건설된 지 50년 가까이 된 도심선을 현대화하고, 차축 하중이 20ton에 달하는 01형 급행 증기 기관차의 운행에 대비하기 위함이었다.[8]
같은 시기에 알렉산더플라츠역의 대합실과 슐레지엔역(현재의 베를린 동역) 북쪽의 대합실(트레인 셰드)도 교체되었다. 또한, 교외선 승강장의 높이는 새로 도입될 S반의 신형 전동차였던 ET 165 운행을 준비하기 위해 96cm로 높아졌다.[8]
1934년부터 1940년까지 동물원역이 증축되었다. 이 공사를 통해 두 번째 장거리 열차 승강장(섬식 승강장)과 두 개의 대합실(트레인 셰드), 그리고 테라스 형태의 정면 돌출부가 새로 건설되었다. 다만, 대합실에 유리 지붕이 설치된 것은 1950년대에 이르러서였다.[8]
5. 5. 도심 및 교외선 전철화
1928년 6월 11일, 교외선 포츠담-도심선-에르크너 구간이 직류 제3궤조 방식으로 전철화되었다.[9] '슈타트반'(Stadtbahn, 도심선)이라는 별칭이 붙은 신형 DRG 165형 전동차 5개 편성이 운행을 시작했으며, 초기에는 기존 증기 기관차와 같은 선로를 사용했다.
1928년 11월까지 도심선으로 이어지는 주요 지선들, 즉 카울스도르프, 슈판다우, 그뤼나우 방면 노선과 순환선이 완전히 전철화되었다. 이에 따라 슈판다우 방면 교외선 열차는 장거리 선로 대신 도심선의 지역 선로로 운행할 수 있게 되었다. 1929년 순환선 전 구간이 전동차로 운행되기 시작하면서 마지막 증기 기관차가 운행을 종료했다. 이후 순환선을 절반만 운행하는 열차는 출퇴근 시간대에만 운행하게 되었다.
1930년 12월, 베를린의 도심, 순환, 교외선 철도 시스템을 통칭하는 S반(S-Bahn)이라는 명칭과 함께 녹색 원 안에 흰색 'S'가 그려진 로고가 도입되었다.
6. 전후 시기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베를린 폭격으로 도심선 여러 곳이 파괴되었으나 빠르게 복구되었다. 전쟁 직후인 1945년 7월에는 포츠담 회담에 참석하려는 이오시프 스탈린을 위해 도심선의 장거리 열차 선로가 일시적으로 1524mm 러시아 궤간으로 변경되기도 했다.[39][19][20][21] 전후 독일 분단과 구 독일 동부 영토 상실로 인해 도심선을 경유하는 장거리 열차의 중요성은 점차 감소하였다.
냉전이 심화되면서 베를린 봉쇄 기간에는 장거리 열차 운행이 거의 중단되었으나, S반 운행은 계속되었다. 1952년 5월 18일, 동독의 도이체 라이히스반은 서베를린 내 주요 역들을 폐쇄하고 장거리 열차 운행을 동물원역으로 집중시켰다. 동독 국내선 열차는 1953년 이후 도심선 운행을 중단했다.
1961년 베를린 장벽 건설은 도심선 운영에 결정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프리드리히슈트라세역은 동서 베를린 S반 노선의 종착역이자 동서독 간 열차의 시발역, 그리고 국경 통과 지점이 되었다.[10] 서베를린에서는 동물원역이, 동베를린에서는 동역이 사실상의 중앙역 역할을 수행했다. 국제 열차를 제외하면 동물원역과 동역을 직접 오가는 열차는 거의 없었다.
한편, 서베를린 내 도심선 구간은 법적으로 동독의 도이체 라이히스반 소유였기 때문에 운영권을 둘러싼 갈등이 발생했다. 서베를린에서는 동독이 운영하는 S반에 대한 보이콧 운동이 벌어지기도 했으며, 이는 서베를린 내 대중교통 정책에도 영향을 미쳤다. 이러한 분단 상황은 독일 통일 이전까지 지속되었다.
6. 1. 전쟁 피해와 복구
제2차 세계 대전 중 베를린 폭격으로 도심선 여러 곳이 파괴되었으나, 빠르게 복구되었다. 비행기공포증이 있었던 소련의 지도자 이오시프 스탈린이 1945년 7월 포츠담 회담에 참석하기 위해 열차를 이용하고자 했기 때문에, 도심선의 장거리 열차 선로가 일시적으로 1524mm 러시아 궤간으로 변경되었다.[39][19][20][21]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구 독일 동부 영토 상실로 인해 도심선을 경유하는 장거리 열차의 중요성은 감소했다. 서방 점령 지구로 향하는 열차 운행은 줄어들었고, 소련 점령 지구에서 출발하는 일부 열차는 도심선에서 운행을 마쳤다.베를린 봉쇄 기간 동안 장거리 열차 운행은 거의 중단되었으나, S반 운행은 계속되었다. S반 노선은 쾨니히스 부스터하우젠, 슈트라우스베르크, 슈타켄, 팔켄제 등 새로운 지역까지 연결되었다.
1952년 5월 18일, 도이체 라이히스반은 서베를린 내에 있거나 서베를린으로 연결되는 모든 종착역과 장거리 열차역을 폐쇄했다. 이 조치로 베를린 동물원역이 서베를린의 유일한 장거리 열차역이 되었다 (이후 슈판다우역과 반제역에서 일부 기능을 분담). 독일 민주 공화국(동독) 국내선 열차는 1953년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도심선을 운행하지 않게 되었다.
6. 2. 베를린 봉쇄와 장거리 열차 운행 중단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베를린 폭격으로 도심선의 여러 곳이 파괴되었지만 빠르게 재건되었다. 소련의 통치자 이오시프 스탈린이 1945년 7월 포츠담 회담으로 이동하기 위해 도심선의 장거리 열차선을 임시로 1524mm 러시아 궤간으로 변경해야 했다.[39][19][20][21]구독일 동부 영토를 상실하면서 도심선을 통한 장거리 열차의 중요성도 줄어들었다. 서방 점령 지구로 가는 열차는 매우 적게 운행했고, 소련 점령 지구에서 오는 열차 중 일부는 도심선에서 운행을 마쳤다.
베를린 봉쇄 기간 동안 장거리 열차 운행은 대부분 중단되었다. 하지만 이 시기에도 베를린 S반 운행은 계속되었으며, 쾨니히스 부스터하우젠, 슈트라우스베르크노르트, 슈타켄, 팔켄제 등 새로운 목적지로 노선이 연결되었다.
1952년 5월 18일, 동독의 도이체 라이히스반은 서베를린 영토에 있거나 서베를린으로 이어지는 베를린의 종착역들을 폐쇄했다. 이 조치로 서베를린의 모든 장거리 열차는 베를린 동물원역에 집중되었다(이후 베를린 슈판다우역과 베를린 반제역에도 일부 열차가 정차하게 됨). 동독 국내선 열차는 1953년 이후로는 더 이상 도심선을 운행하지 않았다.
6. 3. 베를린 장벽 건설과 분단

1961년 8월 13일 베를린 장벽이 건설되면서 도심선의 운행도 동서로 단절되었다. 동쪽이나 서쪽에서 오는 열차는 모두 프리드리히슈트라세역에 종착해야 했으며, S반 운행도 이 역을 경계로 나뉘었다. 프리드리히슈트라세역은 동독과 서독 구역이 강철벽으로 구분되었고, 동베를린으로 들어갈 수 있는 국경검문소가 설치되었다.[10] 서베를린에서 온 승객은 프리드리히슈트라세역에서 동독으로 입경하는 절차 없이 남북 S반 터널을 통과하는 S반 노선이나 지하철 6호선으로 환승할 수 있었다. 또한, 동독 영토를 통과하여 서독으로 가는 인터존엔추크(Interzonenzug, 구역간 열차)도 프리드리히슈트라세역에서 출발했다.

동독 국내선 열차는 베를린 도심선 구간에서는 동역에만 정차했다. 동물원역과 동역 사이를 직접 운행하는 열차는 파리-바르샤바 구간 등 국제 열차로 한정되었다. 1962년부터는 스칸디나비아(코펜하겐, 스톡홀름 방면)나 오스트리아 빈 방면 열차도 도심선을 통해 직통 운행했다.
한편, 근교 교통에서는 서베를린 정치권이 주도한 S반 보이콧(S-Bahn-Boykott)의 영향이 나타났다. 동독 국영 철도인 도이체 라이히스반(DR)이 서베를린 S반 운영권을 가졌다는 이유로, 서베를린 시민들에게 S반 이용 자제를 권고하고 노선도에서도 S반 표기를 삭제하는 등 보이콧 운동이 벌어졌다. 이에 따라 베를린교통공사(BVG)는 S반 노선과 평행한 버스 노선을 강화하고, S반을 대체할 지하철 노선 건설을 추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심선 S반은 동물원역과 국경 통과 지점인 프리드리히슈트라세역을 연결하는 중요한 교통수단으로 계속 기능했다.
날짜 | 운임 구역 | 운임 |
---|---|---|
1966년 7월 1일 | PS 2 | |
1972년 9월 1일 | PS 3 | |
1976년 7월 1일 | PS 4A | |
1977년 11월 1일 | PS 5 (HP5) | |
1979년 11월 1일 | PS 8 (HP8) | |
1981년 8월 1일 | PS S (HP S) | |
1982년 8월 1일 | PS S (HP S) | |
1983년 10월 1일 | PS S (HP S) |
서베를린 내 S반 운임은 1970년대까지 BVG 운임보다 저렴하게 유지되었으나, 도이체 라이히스반의 적자를 보전하기 위해 이후 급격하게 인상되었다. 반면 동베를린 지역의 도심선 S반 운임은 1991년 통일 이후까지도 20페니히의 저렴한 기본 요금을 유지했다.
6. 4. 냉전 시대의 보수 공사

동독 도이체 라이히스반(DR)은 분단 이후에도 서베를린 내 도심선 구간의 운영과 유지보수를 담당했다. 특히 늪지에 건설되어 기반이 약했던 베스트크로이츠역의 개량 공사에는 상당한 노력을 투입했다.
그러나 1980년 9월, 도이체 라이히스반 소속 서베를린 직원들의 파업으로 인해 서베를린 내 S반 운행은 단 3개 노선으로 크게 축소되었다.
이후 동독 정부와 서베를린 상원 간의 협상이 진행되어, 1984년 1월 9일부로 서베를린 내 S반 운영권이 서베를린 교통 당국인 BVG로 이관되었다. 운영권 이관 직후 BVG는 동독 측과 서베를린 내 도심선 구간의 개보수 및 동물원역 현대화에 대한 협의를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레어터 시타트반호프는 1880년대의 원래 모습으로 복원되어 문화재로 지정되기도 했다.
동베를린에서도 도심선 구간에 대한 유사한 보수 공사가 진행되었다. 특히 1987년 베를린 750주년 기념 축제에 맞추어 동역(Ostbahnhof)이 대대적으로 개축되었고, '중앙역'(Hauptbahnhof)이라는 새로운 이름이 붙여졌다.[11]
7. 베를린 장벽 붕괴 이후
베를린 장벽 붕괴는 베를린 도심선에 새로운 기회를 열어주었다. 분단되었던 독일의 동서를 잇는 교통망의 핵심축으로서 도심선의 중요성이 다시 부각되기 시작했다. 1990년 쾰른으로 향하는 첫 인터레지오 열차가 운행을 시작했으며, 이는 통일 이후 도심선을 통한 장거리 교통 재개의 신호탄이 되었다.[40]
이후 장거리 열차 운행은 점차 확대되었다. 1991년부터는 카를스루에, 쾰른, 함부르크를 오가는 인터시티(IC) 열차가 도심선을 경유하기 시작했다. 1992년에는 함부르크 노선이 드레스덴과 프라하까지 연장되었고, 과거 동서독 분단 시절부터 운행되던 뮌헨 방면 급행열차도 IC 등급으로 승격되어 도심선을 이용하게 되었다.[40]
늘어나는 교통량을 처리하고 노선을 현대화하기 위한 시설 개선도 이루어졌다. 1993년 6월에는 반제에 전자식 신호소가 가동을 시작하여 S반과 장거리 열차 운행을 제어하게 되었다.[40][22] 또한, 1993년 7월까지 베를린 동물원역 서쪽 구간의 전철화가 완료되었고, 베를린 동역 동쪽 구간은 이미 1987년에 전철화되어 있었다. 이로써 도심선 주요 구간의 전철화가 마무리되면서 1993년 6월 3일부터 고속열차인 ICE가 베를린 동물원역에 정규적으로 정차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기존의 ICE 임시 정차역이었던 미헨도르프와 베를린 리히텐베르크역 사이의 셔틀 열차 운행은 중단되었다.[40][22] 이러한 변화들은 베를린 장벽 붕괴 이후 도심선이 독일 통일의 상징적인 교통축으로 자리매김하는 중요한 과정이었다. 이후 도심선은 대대적인 보수 및 현대화 공사를 거치게 된다.
7. 1. 장거리 열차 운행 재개
베를린 장벽 붕괴는 분단되었던 독일의 교통망을 다시 잇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으며, 이에 따라 베를린 도심선의 중요성도 크게 부각되었다. 1990년에는 첫 인터레지오 열차가 쾰른까지 운행을 시작하며 변화의 서막을 알렸다. 이듬해인 1991년부터는 카를스루에, 쾰른, 함부르크 방면 인터시티(IC) 열차가 도심선을 경유하여 운행되기 시작했다. 1992년에는 함부르크 방면 노선이 드레스덴과 프라하까지 연장되었고, 과거 동서독 분단 시기부터 운행되던 뮌헨 방면 급행열차 또한 IC 등급으로 격상되어 도심선을 통해 운행되었다.늘어나는 교통 수요에 맞춰 시설 개선 작업도 진행되었다. 1993년 6월 16일에는 반제에 전자식 신호소가 문을 열고 S반 운행 제어를 담당하기 시작했으며, 같은 해 6월 24일부터는 장거리 열차선 제어 기능까지 확대되었다.[40][22] 또한, 도심선의 서쪽 구간(베를린 동물원역까지)에 대한 전철화 공사가 1993년 7월 4일 완료되었다. 베를린 동역에서 동쪽으로 이어지는 구간은 이미 1987년에 전철화가 완료된 상태였다. 전 구간 전철화가 이루어짐에 따라, 1993년 6월 3일부터 고속열차인 ICE가 베를린 동물원역에 정규적으로 운행하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기존에 ICE 임시 승강장 역할을 하던 미헨도르프역과 임시 종착역이었던 베를린 리히텐베르크역 사이를 운행하던 셔틀 열차는 더 이상 운행되지 않게 되었다.[40][22]
7. 2. 1994-1998년: 동물원역-동역 구간 보수 및 전철화

1994년 9월부터 전체 도심선에 대한 보수 공사가 시작되었다. 고가교 아치 다리 530개 위에는 18m 너비, 25cm 두께의 복복선 선로 하중을 분산시키기 위한 철근 콘크리트 슬래브가 설치되었다. 노선 중 7.6km 거리에 슬래브 트랙이 설치되었다. 기존 다리 27곳이 보수되었고 25곳은 새로 건설되었다. 베를린 동물원역부터 동역까지의 열차선도 이 시기에 전철화되었다. 이 과정에서 분기기 78개, 가선 지지대 410개, 전선 800km가 투입되었다.[41][23]
공사 기간 동안 동물원역과 동역 사이의 열차선 운행은 중단되었으며, S반 열차는 임시로 장거리 열차선으로 우회 운행했다.[24] 1996년에 S반은 다시 원래 선로로 복귀했으며,[41][23] 1998년 3월 24일에 도심선 보수 공사가 완료되어 재개통되었다.[12][41][23] 투입된 총 비용은 7.79억유로이다.[42][25]
7. 3. 추가 보수 및 현대화
2003년 2월 24일부터 동물원역과 샤를로텐부르크역 사이 2.4km 구간의 S반 노선 보수공사가 시작되었다. 이 공사는 구조적 개선과 함께 신호 기술을 갱신하여 배차 간격을 기존 2분 30초에서 1분 30초로 단축하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약 1년간 이어진 공사 기간 동안 장거리 열차 노선은 영향을 받지 않았다.[43][26] 도이체반과 베를린 시의회 간의 분쟁으로 인해 3개월간 지연이 있었으나, 2004년 4월 19일부터 해당 구간의 S반 운행이 재개되었다.[44][27]2016년 10월 말부터는 S반 노선에 새로운 보안 장치인 ZBS(Zugbeeinflussungssystem Berlin S-Bahn)의 사용이 시작되었다. 다만, ZBS가 장착되지 않은 구형 열차(480, 485형)가 순환선의 우회 구간을 이용할 수 있도록, 샤를로텐부르크역 S반 최남단 승강장에는 기존의 열차 정지 장치가 계속 사용되고 있다.
7. 4. 1998년 열차선 재개통 이후 개발
1998년 5월 24일부터 베를린 도심선 전 구간의 열차선 운행이 재개되었다. 재개통 초기 하루 360편성 운행 시, 전자식 신호소 오작동과 시운전 부족 등으로 운영상 문제가 발생했다. 이로 인해 장거리 열차가 최대 2~3시간 지연되었고, 일부 열차는 도심선 중간에서 1시간 30분가량 정차하기도 했다.[45][28]재개통 이후 ICE 및 IC 노선 2개(이후 3개로 증가)와 레기오날엑스프레스(RE) 노선 5개가 도심선을 운행했다.[12] 하지만 운행 시작 직후 장거리 열차선의 선로 용량이 포화 상태에 이르렀다. 3분 간격 운행으로 설계된 장거리 노선은 용량 한계에 도달했고, 도심선 내 작은 지연이 전체 철도망의 연쇄 지연으로 확산되기 쉬웠다.[46][29] 레기오날엑스프레스(RE) 노선은 동역과 반제역 및 슈판다우역 사이에서 시내 교통 역할도 담당했다.
1998년부터 2006년까지 도심선은 장거리 열차가 베를린을 지나는 유일한 경로였고, 열차는 동물원역과 동역에 정차했다. 2006년 5월 28일 새로운 베를린 중앙역 개통과 베를린 남북 장거리선 영업 시작으로 도심선의 부담이 일부 완화되었다. 신설 중앙역은 기존 도심선보다 약간 남쪽에 위치하며, 개통 후 동서 방향 장거리 열차는 주로 중앙역에, 일부만 동역에 정차하게 되었다.[16] 현재 도심선에는 하루에 S반 약 600편성, 광역 및 장거리 열차 약 300편성이 운행된다. 도이치반에 따르면 2007년 초 동역과 샤를로텐부르크역 사이 S반 하루 이용객은 약 60만 명으로, 전년 대비 20% 증가했다.[47][30]
높은 교통량 때문에 2013년 도심선 장거리 선로는 공식적으로 과포화 선로로 지정되었다. 중장기적으로 도심선을 경유하는 ICE 운행을 남북 장거리선을 통해 베를린 중앙역 지하 승강장으로 전환할 계획이 세워졌다.[31] 이에 따라 2015년 12월부터 쾰른-베를린 간 ICE 10호선은 도심선 대신 남북 장거리선과 베를린 중앙역 지하 승강장을 이용한다. 2018년 기준 프리드리히슈트라세역과 하케셔 마르크트역 사이 구간은 하루 이용객 약 23만 명으로 베를린 S반에서 가장 혼잡한 구간 중 하나이다.
8. 운임 구역
2006년 5월까지 베를린 도심선은 전체가 '베를린 슈타트반'(Berlin Stadtbahn)이라는 단일 운임 구역으로 지정되었으나, 이후에는 단순히 '베를린'(Berlin)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베를린 도심선의 각 역에서 출발하거나 도착하며 영업 킬로미터 기준으로 100km 이상 운행하는 열차의 승차권에는 이 운임 구역 명칭('Berlin Stadtbahn' 또는 'Berlin')이 표시된다.
해당 승차권을 소지하면 베를린 도심선 구간의 S반 이용은 물론, 베를린 순환선 안쪽에 있는 모든 역(동쪽 방면으로는 Bahnhof Berlin-Lichtenberg|베를린-리히텐베르크역de 포함)에서 자유롭게 승하차할 수 있다. 운임 계산 시 거리 산정의 기준점은 베를린 프리드리히슈트라세역이 된다. 이러한 운임 처리 방식을 tarifliche Gleichstellung|운임 균등화de라고 부르며, 이는 일본 철도의 특정도구시내 제도와 유사한 방식이다.
9. 현재 운영
베를린 도심선의 S반 선로는 2020년 12월 기준으로 다음 노선이 운행되고 있다.
장거리 선로에서는 레기오날반 및 레기오날 익스프레스(RE) 노선이 운행된다.
노선 | 구간 |
---|---|
RE1 | 마그데부르크 ~ 아이젠휘텐슈타트 |
RE2 | 라테노 ~ 코트부스 |
RE7 | 데사우 ~ 윈스도르프-발트슈타트 |
RB14 | 나우엔 ~ 베를린 쇠네펠트 공항 |
대부분의 인터시티(IC) 및 인터시티 익스프레스(ICE) 열차는 이제 중앙역을 경유하는 남북 터널 노선을 이용하지만, 일부 열차는 여전히 도심선의 장거리 선로를 이용한다. 주로 하노버 및 쾰른 방면으로 운행하는 이 열차들은 보통 중앙역과 동역에 정차한다.
1998년 5월 24일 이후 도심선 전 구간에서 열차 운행이 재개되었다. 그러나 운행 초기에는 전자식 신호취급소 컴퓨터 시스템 문제로 인해 많은 열차가 지연되는 등 어려움을 겪었다. 장거리 선로에서는 2~3분 지연이 빈번했고, 일부 열차는 최대 90분 동안 역 사이에 정차하는 상황도 발생했다.[28]
개통 초기에는 ICE와 IC 2개 노선(이후 3개 노선으로 증가) 외에 레기오날 익스프레스(RE) 5개 노선이 도심선을 운행했다. 장거리 선로의 운행 간격은 3분에 불과하여 용량 한계에 도달했고, 개별 열차의 작은 지연조차 전체 노선망에 영향을 미치는 결과를 낳았다.[29] RE 노선은 동역에서 반제역 또는 슈판다우역 구간에서 도시 내 교통 수단으로도 활발히 이용되고 있으며, 높은 운행 빈도로 인해 S반과 유사한 급행열차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2006년 여름까지 도심선은 동물원역과 동역에 정차하는 장거리 열차의 주요 경로였다. 그러나 2006년 5월 28일 중앙역이 개통되면서 (필츠 콘체프트(Pilzkonzept, 버섯 구상) 참조), 도심선 장거리 열차 운행의 중요성은 이전보다 감소했다. 현재 도심선을 운행하는 장거리 열차는 중앙역과 동역에만 정차한다. 중앙역 건설 과정에서 도심선 선로는 약간 남쪽으로 이전되었다. 현재 하루에 약 600편의 S반 열차와 300편의 지역 및 장거리 열차가 도심선을 운행하고 있다. 도이치반의 2007년 자료에 따르면, 2007년 초 동역과 샤를로텐부르크역 사이 구간의 S반 하루 평균 이용객 수는 60만 명으로, 전년 대비 20% 증가했다.[30]
동서독 통일 이후 지역 수송량이 급격히 증가하면서 도심선의 장거리 선로는 현재 과부하 상태에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중기적으로는 ICE 노선을 도심선 대신 중앙역 지하 승강장을 통해 운행하도록 경로를 변경할 계획이 있다.[31]
10. 베를린 도심선과 S반 용어의 관계
현재 독일어권의 대도시나 인구 집중 지역에서 널리 사용되는 S반(S-Bahn)이라는 용어는 Berliner Stadtbahn|베를리너 슈타트반de의 약자가 아니다. S반이라는 용어는 1930년 12월 베를린의 도심선, 순환선, 근교선을 하나의 상표(브랜드)와 로고로 통합하면서 생겨났다.[48][32] 하지만 'S'가 무엇을 가리키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그 기원은 1930년대에 사용되었던 '도시고속철도'(Stadtschnellbahn|슈타트슈넬반de)의 약어 'SS'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49][50][3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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