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슐레스비히홀슈타인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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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슐레스비히홀슈타인주는 북해와 발트해 사이의 윌란반도 남단에 위치한 독일의 주이다. 덴마크, 니더작센주, 함부르크, 메클렌부르크포어포메른주와 국경을 접하며, 킬 운하는 북해와 발트해를 연결하는 중요한 수송로이다. 이 지역은 갯벌, 국립공원, 섬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역사적으로 덴마크와 독일의 지배를 받으며 슐레스비히-홀슈타인 문제는 민족주의의 영향을 받아 덴마크와 독일 간의 분쟁을 초래했다. 1920년 슐레스비히 주민투표를 통해 슐레스비히 북부는 덴마크에, 중부는 독일에 귀속되었고, 1949년 서독에 편입되었다. 주의 상징으로는 두 마리 사자와 쐐기풀 잎을 결합한 문장, 청·백·적 삼색의 기가 있으며, "영원히 분열되지 않음"을 뜻하는 모토를 사용한다. 슐레스비히홀슈타인주는 11개의 군과 4개의 독립시로 행정 구역이 나뉘며, 독일어, 저지 독일어, 덴마크어, 프리지아어를 사용한다. 종교적으로는 개신교가 우세하며, 인구는 2022년 기준 약 293만 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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슐레스비히홀슈타인주
지도 정보
기본 정보
공식 명칭슐레스비히홀슈타인 주
현지 명칭

유형
주도
정부 기관주의회
집권 정당/
주지사다니엘 귄터
연방상원 표4 (총 69표 중)
연방하원 의석28석 (총 736석 중)
면적15,763.17km²
인구2,920,850명 (2022년 1월 4일)
인구 밀도자동 계산
GDP (총액)1,127억 5,500만 유로 (2022년)
GDP (1인당)41,925 유로 (2022년)
시간대CET
UTC 오프셋+1
서머타임CEST
UTC 오프셋 (서머타임)+2
차량 등록 번호판과거: S (1945–1947)
SH (1947)
BS (1948–1956)
HDI (2021년)0.921 (16개 주 중 13위, 매우 높음)
NUTS 지역DEF
ISO 코드DE-SH
공식 웹사이트schleswig-holstein.de
슐레스비히홀슈타인 브랜드마크
브랜드마크
언어
역사적 정보
과거 차량 등록 번호판1956년 7월 1일 연방 차량 등록 개혁 이전에는 각 지역마다 고유 접두사가 부여되었음.

2. 지리

슐레스비히홀슈타인 주는 북해발트해 사이의 유틀란트 반도 남단에 위치한다.[24] 동쪽으로는 발트해와 메클렌부르크포어포메른주, 남쪽으로는 니더작센주함부르크, 서쪽으로는 북해, 북쪽으로는 덴마크 (남덴마크 지역)와 국경을 접한다.[24] 킬 운하는 북해의 브룬스뷔텔(Brunsbüttel)과 발트해의 킬(Kiel)을 연결하는 중요한 수송로이다.[66]

주 경계에 있는 엘베강을 제외하고 주 내에서 가장 긴 강은 아이더강이다.[24] 아이더 강은 오랫동안 신성 로마 제국덴마크 사이의 경계이자, 슐레스비히홀슈타인의 경계였다.

북해 연안에는 넓은 갯벌 지역이 형성되어 있으며, 슐레스비히홀슈타인 바텐메어 국립공원(Nationalpark Schleswig-Holsteinisches Wattenmeer)으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다. 이 국립공원은 중앙유럽 최대 규모이다. 헬골란트섬은 독일 유일의 외해 섬이며,[24] 질트 섬, 푀어 섬, 펠름웜 섬, 암룸 섬 등 북프리지아 제도와 동해안의 페마른 섬도 슐레스비히홀슈타인 주에 속한다.[24]

슐레스비히홀슈타인 주 서부 저지대는 평평하며, 홀슈타인 스위스와 이전 라우엔부르크 공국에는 구릉지대와 많은 호수가 있다. 노이엔도르프-작센반데에는 독일에서 가장 해발고도가 낮은 지점(-3.539m)이 있다. 발트해에 면한 북동부 앙겔른 반도는 앵글족과 관련된 곳이다. 409년 로마 제국호노리우스브리타니아를 포기한 후(로마의 브리타니아 지배 종식), 5세기에 앵글족이 유트족, 색슨족과 함께(앵글로색슨족) 브리튼섬에 상륙하여(게르만 민족의 대이동) 원주민인 브리톤인을 정복하였다.

슐레스비히홀슈타인 주는 산림 면적 비율이 11.0%(전국 평균 32.0%)로 가장 낮은 곳 중 하나이다.[23]

슐레스비히-홀슈타인 지형도


3. 역사

"홀슈타인"이라는 지명은 고대 저지독일어 Holseta Landnds(숲에 사는 자들의 땅)에서 기원한다. "슐레스비히"라는 지명은 슐레스비히 시에서 유래했으며, 슐라이 만을 의미하는 고대 저지독일어 또는 고대 노르드어 "vik"에서 기원한다.

슐레스비히 공국은 본래 덴마크 영토였으나, 중세 시대 덴마크 왕국 내 봉건 영지로 자치를 누렸다. 1100년경 작센 공작이 홀슈타인을 샤우엔부르크의 아돌프 1세 백작에게 넘겨주었다.

슐레스비히와 홀슈타인은 덴마크독일 양국과 깊은 관계를 맺으며, 여러 시기에 걸쳐 복속되거나 독립했다. 그러나 1864년 제2차 슐레스비히 전쟁 이전까지 슐레스비히는 독일 영토였던 적이 없다. 수 세기 동안 덴마크의 국왕이 덴마크의 슐레스비히 공작, 독일의 홀슈타인 및 작센 공작을 겸임했다. 1721년 슐레스비히 전 지역이 덴마크 왕 아래 하나의 공국으로 통합되었고, 유럽 열강은 덴마크 국왕의 슐레스비히 공작 지위 자동 승계를 합의했다.

3. 1. 민족 대이동 시대

민족 대이동(Migration Period) 시기 유틀란트 반도에는 여러 부족들이 거주하고 있었다. 유트족(Jutes)은 그레넨(Grenen)에서 올거스 다이크(Olgerdige)까지 반도의 북쪽 대부분을 차지했다. 1세기경에 만들어진 이 방어시설은 북쪽의 유트족과 남쪽의 앵글족(Angles (tribe)) 사이의 경계 역할을 했다.[6] 200년대에 앵글족이 북쪽으로 확장하면서 이 방어시설은 그 중요성을 잃었고, 벤더스볼드(Vendersvold) (벤디시 방어시설)이라 불리는 새로운 방어시설이 건설되었다. 앵글족의 남쪽 경계는 아이더 강(Eider (river)) 주변의 습지대였으며, 강 남쪽의 울창한 원시림(Old-growth forest)과 더불어 자연적인 장벽을 형성했다.[7] 숲의 남쪽에는 현재 홀스타인(Holstein)으로 알려진 지역이 있었는데, 이 지역은 서쪽에 거주하는 게르만 민족(Germanic peoples) 색슨족(Saxons)과 동쪽에 거주하는 슬라브족(Slavs) 바그리아(Wagria) 사이에 나뉘어 있었다. 8세기에 바그리아는 오보트리트(Obotrites)라 불리는 슬라브 부족 연맹의 일부가 되었다.[8] (덴마크인과 색슨족에게는 벤드족(Wends)으로도 알려져 있다.)[9]

4세기와 5세기 초, 유트족, 앵글족, 색슨족은 영국 제도(British Isles)로 이주했다.[10] 이 대규모 이주로 유틀란트 반도의 많은 지역이 인구 밀도가 낮아졌고, 남 스칸디나비아와 젤란디아(Zealand), 퓔른(Funen) 및 기타 작은 덴마크 섬에서 온 덴마크인들이 반도로 이주하여 정착하였다. 그들은 점차 이 지역에 정착하여 영국으로 떠나지 않은 나머지 유트족과 앵글족을 통합했다. 5세기 중반까지 덴마크인들은 북쪽의 그레넨에서 아이더 강과 그 습지대 바로 북쪽까지 정착지를 건설했다. 그들의 최남단 정착지는 슈반센(Schwansen), 헤데비(Hedeby), 후숨(Husum) 주변에 있었는데, 이는 이전 앵글족의 남쪽 경계와 일치했다.[11]

덴마크인, 색슨족, 바그리아인 사이에서 약탈이 빈번했기 때문에, 국경 지대는 적대적이고 위험한 지역이었다. 이러한 위협에 대응하여 덴마크인들은 다네비르케(Danevirke)를 건설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방어시설로 건설되었지만, 점차 30km에 달하는 토루와 울타리 방어시설로 확장되어 덴마크인과 남쪽 이웃 사이의 장벽 역할을 했다. 다네비르케는 반도의 가장 좁은 지점에 전략적으로 위치해 있으며, 동쪽 끝은 트레네 강(Treene (river))에서 시작하여 슐라이 만까지 뻗어 있다.[12]

동부의 트레네 강(Treene River)에서 서부의 슐라이 만(Schlei Bay)까지 뻗어 있는 다네비르케(Danevirke)


이 방어시설은 색슨족과 바그리아인의 침략을 막는 동시에 덴마크인들이 남쪽 지역으로 약탈을 감행할 수 있도록 했다. 다네비르케는 1864년까지 사용되었으며, 여러 차례 덴마크군의 변화하는 군사적 요구에 맞춰 확장되고 개조되었다.[13]

다네비르케의 건설은 색슨족과 바그리아인의 덴마크 영토 침략을 막는 데 도움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통행세 징수소 역할도 했다. 덴마크 족장들은 반도를 가로지르는 주요 무역로인 헤르베이엔(Hærvejen) (헤르베그/아미웨이)를 따라 이동하는 상인, 상인, 농민에게서 세금을 징수했다.

북쪽 종착역인 비보르에서 남쪽 종착역인 함부르크까지 이어지는 헤르베이엔(Hærvejen)


색슨족, 바그리아인, 덴마크인 모두 헤르베이엔을 통해 꿀, 모피, 호박, 유리, 금속 세공품과 같은 상품과 가축, 특히 소와 소가 중요한 상품을 거래했다. 특히 덴마크인들은 번영하는 가축 사육 산업을 발전시켜 헤르베이엔을 따라 대규모 가축 떼를 몰고 대륙으로 팔러 갔다. 이 무역으로 인해 이 길은 덴마크어로 "스투데베이엔(Studevejen)"(가축 길), 독일어로 "옥센베그(Ochsenweg)"(소 길)과 같은 다른 이름을 갖게 되었다.[14] 따라서 헤르베이엔이 지나가는 다네비르케의 통제는 엄청난 경제적 중요성을 지녔다. 다네비르케의 관문을 통제하는 자는 헤르베이엔의 무역을 통제하여 상당한 부를 얻을 수 있었다.

3. 2. 중세 초기

800년대에 프리지아인들이 프리지아에서 두 차례 이주하여 헬골란트, 질트, 푀어, 암룸 섬들과 아이더슈테트 및 유틀란트 해안에 정착했다.[15][16] 이 지역은 북프리지아로 알려지게 되었으며, 프리지아인들은 어업과 무역 기지를 설립하고 햐르베옌 무역망에 기여했다.[17] 현지 덴마크인들은 소수가 되어 프리지아인들에게 동화되었다.[17]

810년경 작센인과 오보트리테인 사이의 국경인 리메스 작소니애


작센 전쟁(772년 - 804년)으로 프랑크 왕국이 작센으로 확장되면서 이 지역에 전례 없는 규모의 전쟁이 촉발되었다. 샤를마뉴는 데벤터 교회 습격을 구실로 작센인들을 정복하고 기독교로 강제 개종시키려 했다. 772년 또는 773년에 파더보른 근처의 성스러운 기둥 이르민술을 파괴한 후, 베저 강까지 모든 작센인 정착지를 파괴했다.

패배한 작센 지도자 비두킨트는 장인인 덴마크 왕 시그프리드에게 피신했고, ''왕립 프랑크 연대기''는 시그프리드가 비두킨트를 지원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샤를마뉴는 오보트리테인과 동맹을 맺고 덴마크인들을 정복하려 했으나, 구드프리드 시그프리드손이 이끄는 덴마크인들이 먼저 공격했다. 이후 하일리겐 조약을 통해 아이더 강이 덴마크 국경으로 설정되었고, 샤를마뉴는 홀슈타인을 포함한 작센을 유지했다. Bornhöved 전투 (798년) 이후 신성 로마 제국 영토가 되었다.

3. 3. 덴마크 왕국 내 공국

500년에서 1200년 사이 슐레스비히는 덴마크의 일부였으나, 12세기에는 슐레스비히 공 아벨이 그의 형제인 에리크 4세 왕과 갈등을 빚었다. 아벨은 그의 형제로부터 자치권을 얻어 슐레스비히를 자치 공국으로 만들었으며, 나중에 아벨은 에리크를 암살하고 왕위를 찬탈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슐레스비히는 왕국 내에서 자치 공국으로 남아 이후 갈등의 단초를 제공했다.

1460년부터 슐레스비히 공국과 홀슈타인 공국은 모두 덴마크 국왕이 두 지역의 공작으로서 통치했다. 홀슈타인 공국은 신성 로마 제국 내의 공국이었기 때문에 덴마크 국왕은 덴마크의 군주이면서 동시에 신성 로마 제국 내의 공작이라는 상황이 만들어졌다. 1721년, 슐레스비히 전체가 덴마크 국왕 아래 단일 공국으로 통합되었고, 유럽 열강들은 국제 조약에서 향후 모든 덴마크 국왕이 자동적으로 슐레스비히 공작이 되어야 함을 확인했다. 그 결과 슐레스비히는 항상 덴마크 왕국의 계승 순서를 따르게 되었다.

프로테스탄트 종교 개혁 이후, 슐레스비히에서 상업, 행정, 교육, 성직자의 언어로 독일어가 확립되었다. 이는 슐레스비히가 킬에 있는 독일 관청(1806년 슐레스비히-홀슈타인 관청으로 개명됨)에 의해 관리되었기 때문이다.

3. 4. 슐레스비히-홀슈타인 문제

19세기, 민족주의의 영향으로 덴마크인과 독일인 모두 슐레스비히홀슈타인을 자국의 영토로 주장하였다. 독일인들은 슐레스비히와 홀슈타인이 덴마크로부터 분리되어 독일 연방에 합류하기를 원했고, 리베 조약을 근거로 들었다. 덴마크인들은 아이더 강을 덴마크의 자연적인 국경으로 주장하는 아이더 정책(da:Ejderpolitikken)을 추진하며 슐레스비히를 덴마크 왕국에 재통합하고, 홀슈타인은 독립된 주체로 독일 연방에 합류하게 하려 했다. 홀슈타인은 완전히 독일어 사용 지역이었지만, 슐레스비히는 19세기 초까지 대부분 덴마크어를 사용하는 지역이었으나 남부에서 독일어로의 언어 변화가 시작되어 언어적으로 분열되었다.

1848년, 프레드리크 7세 국왕은 덴마크에 자유주의 헌법을 부여하겠다고 선포했고, 덴마크 민족 운동은 이 헌법이 슐레스비히에 거주하는 덴마크인과 독일인에게도 권리를 부여하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또한 슐레스비히에서 덴마크어 보호를 요구했다. 홀슈타인의 정치 엘리트가 코펜하겐보다 더 보수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었기 때문에 홀슈타인의 자유주의 헌법은 코펜하겐에서 심각하게 고려되지 않았다. 독일 성향의 슐레스비히-홀슈타인 주민 대표들은 슐레스비히와 홀슈타인이 통합되어 자체 헌법을 가지고 슐레스비히가 독일 연방의 일원으로서 홀슈타인에 합류할 것을 요구했다. 이러한 요구는 덴마크 정부에 의해 거부되었고, 홀슈타인과 슐레스비히 남부의 독일인들은 반란을 일으켰다.

나폴레옹 전쟁 이후, 독일 민족주의가 고조되면서 (프로이센 왕국 주도의) 독일 통일 분위기가 고조되었고, 1848년에는 슐레스비히 공국과 홀슈타인 공국에 거주하는 독일인들이 덴마크에 반대하는 봉기를 일으켰으나 실패했다. 이 때문에 프로이센 왕국이 개입하여 제1차 슐레스비히-홀슈타인 전쟁(Schleswig-Holsteinischer Kriegde 1848년~1852년)이 발발했다. 덴마크는 6월 헌법을 제정하여 대응했다. 이 전쟁은 스웨덴이 의용군을 파병하고, 러시아, 영국의 압력에 의해 런던 의정서가 체결되어 덴마크의 승리로 끝났다. 그러나 덴마크 측에서 결의된 6월 헌법은 공국에는 채택되지 않았고, 반란자 처벌조차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후, 비스마르크오스트리아와 연합하여 제2차 슐레스비히-홀슈타인 전쟁(Deutsch-Dänischer Kriegde, 1864년)을 일으켰다. 덴마크군은 항복했고 두 공국은 프로이센-오스트리아의 공동 관리 지역이 되었다. 이후, 덴마크의 스나유란 주(Sønderjylland)로 불렸으나, 1866년에 덴마크에서 독일로 할양되었다.[79]

1866년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에서 오스트리아가 패배함에 따라 두 공국은 프로이센의 단독 관리 지역으로 이관되었고, 독일 통일에 따라 프로이센의 슐레스비히-홀슈타인 주로서 독일 제국 영토가 되었다. 이 시대에는 북해발트해를 잇는 킬 운하가 완전 개통되었다(1895년).

3. 5. 제1차 슐레스비히 전쟁 (1848-1851)

나폴레옹 전쟁 이후, 독일 민족주의가 고조되면서 (프로이센 왕국 주도의) 독일 통일 분위기가 고조되었고, 1848년에는 슐레스비히 공국과 홀슈타인 공국에 거주하는 독일인들이 덴마크에 반대하는 봉기를 일으켰다.[79] 프로이센 왕국이 개입하여 제1차 슐레스비히-홀슈타인 전쟁(Schleswig-Holsteinischer Kriegde 1848년~1852년)이 발발했다.[79] 덴마크 측은 슐레스비히 중북부의 덴마크계 주민들의 지지 속에, 통일 국가 정책과 입헌군주제를 명시한 "6월 헌법"을 제정하여 대응했다.[79] 이는 덴마크인 특유의 민족 국가에 대한 민족주의의 표현이었다.[79]

믿을 수 없는 역경 속에서 덴마크는 보 전투, 디비외 전투, 프레데리시아 전투, 이스테드 전투에서 독일군을 물리치며 승리했다.[79] 스웨덴이 의용군을 파병하고, 러시아, 영국의 압력에 의해 런던 의정서가 체결되어 현상 유지가 인정됨으로써 덴마크의 승리로 끝났다.[79] 그러나 열강의 압력, 특히 프로이센과 오스트리아를 덴마크에서 몰아낸 알렉산드르 3세의 압력 아래, 덴마크는 슐레스비히를 덴마크에 재통합할 수 없었다.[79] 알렉산드르 3세는 이를 통해 유럽 공동체의 원칙에 따라 기존의 유럽 질서를 유지하려 했다.[79]

덴마크 측에서 결의된 6월 헌법은 공국에는 채택되지 않았고, 반란자 처벌조차 이루어지지 않았다.[79]

3. 6. 제2차 슐레스비히 전쟁 (1863-1864)

1863년, 프레데리크 7세가 후계자 없이 사망하면서 슐레스비히와 홀슈타인의 계승 문제가 발생했다.[79] 덴마크와 슐레스비히의 왕위는 글뤼크스부르크 가문의 크리스티안 9세에게 이어졌으나, 홀슈타인 공국의 계승은 아우구스텐부르크 가문이 주장하여 논란이 되었다. 1863년 11월 덴마크와 슐레스비히에 대한 공동 헌법이 공포되자, 비스마르크는 이를 빌미로 프로이센오스트리아를 끌어들여 제2차 슐레스비히 전쟁을 일으켰다.[79]

덴마크는 미스운데 전투와 산켈마르크 전투에서 초기 승리를 거두었지만, 쾨니히스휘겔 전투와 베일레 전투에서 오스트리아군에게 패배했다. 결정적으로 뒤뷔엘 전투와 알스 전투에서 프로이센이 승리하면서 덴마크는 패배했다. 1864년 런던 회의에서 영국의 중재 시도는 실패했고, 1864년 비엔나 조약에 따라 덴마크는 슐레스비히를 프로이센에, 홀슈타인을 오스트리아에 할양해야 했다.[79] 이후 덴마크의 스나유란 주로 불렸으나, 1866년에 덴마크에서 독일로 할양되었다.

나폴레옹 전쟁 이후 독일 민족주의가 고조되었고, 1848년 슐레스비히 공국과 홀슈타인 공국의 독일인들이 봉기를 일으켰으나 실패했다. 프로이센이 개입하여 제1차 슐레스비히-홀슈타인 전쟁이 발발했으나, 런던 의정서 체결로 덴마크가 승리했다. 비스마르크는 제2차 슐레스비히 전쟁에서 외교를 통해 열강의 중립을 유지시켰고, 덴마크는 패배하여 영토의 40%를 잃었다.[79]

3. 7.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 이후

1866년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 이후 체결된 프라하 조약 5조는 북슐레스비히 주민들이 프로이센 통치하에 남을지 아니면 덴마크 통치로 돌아갈지를 결정하는 국민투표를 통해 의견을 물을 것을 규정했다. 그러나 이 조건은 프로이센에 의해 결코 이행되지 않았다. 독일 슐레스비히홀슈타인 주민들의 희망과는 달리, 이 지역은 독립을 얻지 못하고 1867년 프로이센의 한 주로 병합되었다. 독일 제국 시대 프로이센 통치 수십 년 동안, 당국은 주로 덴마크인이 거주하는 슐레스비히 북부 지역에서 독일화 정책을 시도했다. 이 기간은 또한 슐레스비히홀슈타인의 산업화 증가와 키일과 플렌스부르크를 중요한 독일 제국 해군 기지로 사용하는 것을 의미했다. 이 주의 북쪽 끝과 서해안에서는 미국으로 이주하는 물결이 일었고, 북슐레스비히의 덴마크인들 중 일부는 덴마크로 이주했다.

3. 8.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1920년 슐레스비히 주민투표 결과


제1차 세계 대전에서 독일 제국이 패배한 후, 연합국은 슐레스비히 북부와 중부 지역에서 주민투표를 실시하기로 결정하였다. 이 주민투표는 슐레스비히 북부와 남중부 지역을 포함하는 두 개의 투표구역을 지정한 국제 위원회의 주관 하에 진행되었다. 슐레스비히 남부 지역을 포함하는 세 번째 구역을 만드는 조치도 취해졌지만, 덴마크 정부가 위원회에 주민투표를 이 지역으로 확대하지 말 것을 요청함에 따라 3구역은 취소되었고 투표가 실시되지 않았다.

1920년 2월 10일에 실시된 슐레스비히 북부(1구역) 주민투표에서는 75%가 덴마크와의 재통합에, 25%가 독일과의 통합에 투표하였다. 1920년 3월 14일에 실시된 슐레스비히 중부(2구역) 주민투표에서는 결과가 역전되어 80%가 독일, 20%가 덴마크에 투표하였다. 휘어 섬의 일부 지역에서만 덴마크가 다수를 차지했고, 나머지 덴마크 득표는 주로 플렌스부르크 시에서 나왔다.[18] 1920년 6월 15일, 슐레스비히 북부는 공식적으로 덴마크 통치하에 돌아왔다. 제1차 세계 대전 후 베르사유 조약에 따라 독일에 부과된 국경 중 덴마크/독일 국경은 아돌프 히틀러에 의해 결코 문제되지 않은 유일한 국경이었다.

1937년, 나치는 인근의 함부르크 자유 한자 도시를 확장하여 이전에 프로이센 슐레스비히홀슈타인 주에 속했던 도시들을 포함하는 소위 대함부르크 법](Groß-Hamburg-Gesetz)을 통과시켰다. 프로이센의 이러한 손실을 보상하기 위해(그리고 부분적으로 히틀러가

3. 9. 나치 시대

3. 10.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프로이센의 슐레스비히홀슈타인 주는 영국 점령 지역이 되었다.[20] 1946년 8월 23일, 연합군 군정은 프로이센 자유주를 해체하고 슐레스비히홀슈타인을 주(Land)로 재편성했다.[20]

1946년 9월 9일, 영국과 소련은 덴마크에 남슐레스비히를 제공했다. 이들은 독일어를 사용하는 남슐레스비히 주민들을 덴마크에 통합하거나 동유럽에서 독일인들에게 행해졌던 것처럼 강제 추방할지에 대한 전권을 덴마크에 부여했다. 당시 덴마크 총리 크누트 크리스텐센은 이 제안을 열렬히 받아들였으나, 사회자유당의 우려와 사회민주당의 반대로 무산되었다.

1944년부터 1950년 사이에 독일인들의 강제 이주로 인해 슐레스비히홀슈타인 주는 약 백만 명의 난민을 수용하여 인구가 33% 증가했다.[21]

슐레스비히에서는 덴마크 편향적인 정치 운동이 일어났지만, 영국 점령 당국이나 덴마크 정부의 지지를 받지 못했다. 1955년, 독일과 덴마크 정부는 국경 양쪽의 소수 민족의 권리를 확인하는 본-코펜하겐 선언을 발표했다.[22]

본-코펜하겐 선언을 기념하는 독일 우표


제1차 세계 대전에서 독일이 패배한 후, 1920년 슐레스비히 주민 투표에 따라 슐레스비히는 다시 분할되어 현재의 국경선이 확정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 후에는 영국 점령 지역이 되었고, 남슐레스비히 반환 문제가 연합국 측에서 제기되었다. 덴마크는 독일과의 국제 관계상 거절했지만, 남부 플렌스부르크 등에도 많은 덴마크계 주민이 거주하며 덴마크 사회를 형성하고 있다. 1949년 5월 23일 서독(독일 연방 공화국)이 성립하여 슐레스비히홀슈타인 주는 그 일부가 되었다.

4. 상징물

슐레스비히홀슈타인 주의 문장은 슐레스비히 공국의 상징인 두 마리의 사자와 홀슈타인 공국의 상징인 쐐기풀 잎이 결합된 형태이다.[34] 오토 폰 비스마르크가 사자들이 쐐기풀에서 등을 돌리면 엉덩이가 불편할 것이라는 이유로 두 마리 사자가 쐐기풀을 향하도록 명령했다고 한다.

주의 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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슐레스비히홀슈타인 정부 기관들은 슐레스비히 사자와 홀슈타인 쐐기풀의 양식화된 버전과 "SH"라는 슐레스비히-홀슈타인 약자를 결합한 로고를 사용한다. 사자와 쐐기풀 아래 또는 오른쪽에는 "슐레스비히-홀슈타인"이 쓰여 있으며, 그 아래에는 로고를 사용하는 기관의 이름이나 "Der echte Norden"(진정한 북쪽, 독일어)이라는 모토가 표시된다.[34]

슐레스비히-홀슈타인의 모토는 "Up ewich ungedeelt"(중부 저지 독일어: "영원히 분열되지 않음", 현대 고지 독일어: "Auf ewig ungeteilt")이다. 이는 1460년 리베 조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리펜(리베)은 북슐레스비히에 있는 역사적인 작은 도시로, 현재는 덴마크에 속해 있다.[22]

1844년의 국가는 "Wanke nicht, mein Vaterland"("흔들리지 마라, 나의 조국")이지만, 일반적으로 첫 줄인 "Schleswig-Holstein meerumschlungen"("바다에 둘러싸인 슐레스비히-홀슈타인") 또는 "슐레스비히-홀슈타인 노래"(슐레스비히-홀슈타인-리드)로 불린다.

뤼벡 구시가지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이다.

주기(州旗)는 청·백·적의 줄무늬로, 주 문장에 사용되는 색과 같다. 이 깃발 디자인은 1992년 이후의 유고슬라비아와 이를 계승한 세르비아 몬테네그로의 국기와 동일했다. 또한, 네덜란드 국기와 상하가 반전되어 있으며, 1843년에 슐레스비히-홀슈타인의 깃발 디자인을 고안할 때 참고했다는 설명도 있다.[83] 주정부 청사 등에서 게양되는 정부기에는 중앙에 문장이 들어간다.

4. 1. 문장

슐레스비히홀슈타인 주의 문장은 연방주의 기원이 된 2개 공국의 연합을 상징한다. 슐레스비히 공국의 상징인 2마리의 사자가 왼쪽에, 홀슈타인 공국의 상징인 쐐기풀 잎이 오른쪽에 그려져 있다.[34] 오토 폰 비스마르크가 사자들이 쐐기풀에서 등을 돌리면 엉덩이가 불편할 것이라는 이유로 두 마리 사자가 쐐기풀을 향하도록 명령했다고 한다.

슐레스비히홀슈타인 정부 기관들은 슐레스비히 사자와 홀슈타인 쐐기풀의 양식화된 버전과 "SH"라는 슐레스비히-홀슈타인 약자를 결합한 로고를 사용한다. 사자와 쐐기풀 아래 또는 오른쪽에는 "슐레스비히-홀슈타인"이 쓰여 있으며, 그 아래에는 로고를 사용하는 기관의 이름이나 "Der echte Norden"(진정한 북쪽, 독일어)이라는 모토가 표시된다.[34]

슐레스비히-홀슈타인의 모토는 "Up ewich ungedeelt"(중부 저지 독일어: "영원히 분열되지 않음", 현대 고지 독일어: "Auf ewig ungeteilt")이다. 이는 1460년 리베 조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리펜(리베)은 북슐레스비히에 있는 역사적인 작은 도시로, 현재는 덴마크에 속해 있다.[22]

1844년의 국가는 "Wanke nicht, mein Vaterland"("흔들리지 마라, 나의 조국")이지만, 일반적으로 첫 줄인 "Schleswig-Holstein meerumschlungen"("바다에 둘러싸인 슐레스비히-홀슈타인") 또는 "슐레스비히-홀슈타인 노래"(슐레스비히-홀슈타인-리드)로 불린다.

뤼벡 구시가지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이다.

주기(州旗)는 청·백·적의 줄무늬로, 주 문장에 사용되는 색과 같다. 이 깃발 디자인은 1992년 이후의 유고슬라비아와 이를 계승한 세르비아 몬테네그로의 국기와 동일했다. 또한, 네덜란드 국기와 상하가 반전되어 있으며, 1843년에 슐레스비히-홀슈타인의 깃발 디자인을 고안할 때 참고했다는 설명도 있다.[83] 주정부 청사 등에서 게양되는 정부기에는 중앙에 문장이 들어간다.

4. 2. 주기

슐레스비히홀슈타인 주의 기는 파란색, 흰색, 빨간색의 가로 삼색기로, 주 문장의 색깔을 바탕으로 선정되었다.[34] 주기는 1992년 이후의 유고슬라비아와 이를 계승한 세르비아 몬테네그로의 국기와 동일했다. 또한, 네덜란드 국기와 상하가 반전되어 있으며, 1843년에 슐레스비히-홀슈타인의 깃발 디자인을 고안할 때 참고했다는 설명도 있다.[83]

문장에는 슐레스비히홀슈타인에 통합된 두 공국의 상징, 즉 슐레스비히의 두 마리 사자와 홀슈타인의 쐐기풀 잎이 나와 있다.[34] 문장의 왼쪽 절반은 슐레스비히 공국의 상징이었던 두 마리의 사자, 오른쪽 절반은 홀슈타인 공국의 상징이었던 쐐기풀 잎으로, 두 지역의 통합을 상징한다. 오토 폰 비스마르크가 사자들이 쐐기풀에서 등을 돌리면 엉덩이가 불편할 것이라는 이유로 두 마리 사자가 쐐기풀을 향하도록 명령했다고 한다.

주정부 청사 등에서 게양되는 정부기에는 중앙에 문장이 들어간다. 슐레스비히-홀슈타인 정부 기관들은 슐레스비히 사자와 홀슈타인 쐐기풀의 양식화된 버전과 "SH"라는 슐레스비히-홀슈타인 약자를 결합한 로고를 사용한다.[34]

슐레스비히-홀슈타인의 모토는 "Up ewich ungedeelt"(중부 저지 독일어: "영원히 분열되지 않음", 현대 고지 독일어: "Auf ewig ungeteilt")이다. 이는 1460년 리베 조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22]

1844년의 국가는 "Wanke nicht, mein Vaterland"("흔들리지 마라, 나의 조국")이지만, 일반적으로 첫 줄인 "Schleswig-Holstein meerumschlungen"("바다에 둘러싸인 슐레스비히-홀슈타인") 또는 "슐레스비히-홀슈타인 노래"(슐레스비히-홀슈타인-리드)로 불린다.

5. 행정 구역

슐레스비히홀슈타인 주의 행정구역


슐레스비히홀슈타인주는 11개의 (Kreise)과 4개의 독립시(kreisfreie Städte)로 나뉜다.[25]

크라이스(군)자동차 등록 번호판면적
1
Dithmarschen의 문장
Dithmarschen
HEI[25]1,428.17 km2[26]
2
Herzogtum Lauenburg의 문장
Herzogtum Lauenburg
RZ[25]1,263.07 km2[26]
3
Nordfriesland의 문장
Nordfriesland
NF[25]2,083.56 km2[26]
4
Ostholstein의 문장
Ostholstein
OH[25]1,393.02 km2[26]
5
Pinneberg의 문장
Pinneberg
PI[25]664.25 km2[26]
6
Plön의 문장
Plön
PLÖ[25]1,083.56 km2[26]
7
Rendsburg-Eckernförde의 문장
Rendsburg-Eckernförde
RD, ECK[25]2,189.79 km2[26]
8
Schleswig-Flensburg의 문장
Schleswig-Flensburg
SL[25]2,071.28 km2[26]
9
Segeberg의 문장
Segeberg
SE[25]1,344.47 km2[26]
10
Steinburg의 문장
Steinburg
IZ[25]1,055.70 km2[26]
11
Stormarn의 문장
Stormarn
OD[25]766.22 km2[26]
독립시
Kiel의 문장
Kiel
KI[25]118.65 km2[26]
독립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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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übeck
HL[25]214.19 km2[26]
독립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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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umünster
NMS[25]71.66 km2[26]
독립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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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lensburg
FL[25]56.73 km2[26]


5. 1. 군 (Kreis)

슐레스비히홀슈타인 주는 11개의 군(郡, Kreis)으로 나뉜다.[25] 각 군의 명칭과 위치는 우측 그림과 같다.

크라이스(군)자동차 등록 번호판면적
1 DithmarschenHEI[25]1,428.17 km2[26]
2 Herzogtum LauenburgRZ[25]1,263.07 km2[26]
3 NordfrieslandNF[25]2,083.56 km2[26]
4 OstholsteinOH[25]1,393.02 km2[26]
5 PinnebergPI[25]664.25 km2[26]
6 PlönPLÖ[25]1,083.56 km2[26]
7 Rendsburg-EckernfördeRD, ECK[25]2,189.79 km2[26]
8 Schleswig-FlensburgSL[25]2,071.28 km2[26]
9 SegebergSE[25]1,344.47 km2[26]
10 SteinburgIZ[25]1,055.70 km2[26]
11 StormarnOD[25]766.22 km2[26]



각 군의 군청 소재지는 다음과 같다.


  • 디트마르센 군 (Kreis Dithmarschen) - 하이데
  • 헤르초크툼 라우엔부르크 군 (Kreis Herzogtum Lauenburg) - 라츠부르크
  • 노르트프리슬란트 군 (Kreis Nordfriesland) - 후숨
  • 오스트홀슈타인 군 (Kreis Ostholstein) - 외틴
  • 핀네베르크 군 (Kreis Pinneberg) - 피네베르크
  • 플뢴 군 (Kreis Plön) - 플뢴
  • 렌츠부르크-에커른푀르데 군 (Kreis Rendsburg-Eckernförde) - 렌츠부르크
  • 슐레스비히-플렌스부르크 군 (Kreis Schleswig-Flensburg) - 슐레스비히
  • 제게베르크 군 (Kreis Segeberg) - 바트 제게베르크
  • 슈타인부르크 군 (Kreis Steinburg) - 이체호
  • 슈토르마른 군 (Kreis Stormarn) - 바트 올데슬로


핀네베르크 군에는 헬골란트섬이 속한다.[25]

5. 2. 독립시 (Kreisfreie Stadt)

슐레스비히홀슈타인주에는 군에 소속되지 않는 독립시(Kreisfreie Stadt) 4개가 있다.[25] 이들은 플렌스부르크 (Flensburg, 약칭 FL), (Kiel, 약칭 KI), 뤼베크 (Lübeck, 약칭 HL), 노이뮌스터 (Neumünster, 약칭 NMS)이다.[25] 킬은 슐레스비히홀슈타인 주의 주도이다.[25]

도시약칭면적(km2)문장
플렌스부르크FL56.73[26]
KI118.65[26]
뤼베크HL214.19[26]
노이뮌스터NMS71.66[26]


6. 인구

슐레스비히홀슈타인주의 인구는 1960년 2,309,409명에서 2022년 2,927,542명으로 증가하였다.[28][29] 1972년 이후 자연 증가율이 감소하고 있으나, 2016년 합계출산율은 1.61명으로 40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평균 1.4명).[87]

연도인구
19602,309,409
19702,510,608
19802,611,285
19902,626,127
20002,789,761
20102,834,259
20182,896,900
20222,927,542

[87][28][29]

2016년 출생아 수는 25,420명, 사망자 수는 33,879명으로 자연 감소는 -8,459명이었다. 2016년 1월부터 9월까지 출생아 수는 19,138명으로 증가하였으나,[30] 2017년 같은 기간에는 19,086명으로 감소하였다. 같은 기간 사망자 수는 2016년 25,153명에서 2017년 25,832명으로 증가하여, 자연 증감은 2016년 -6,015명에서 2017년 -6,746명으로 감소폭이 커졌다.

7. 언어

슐레스비히홀슈타인주의 공용어는 독일어이다.[35] 이외에도 저지 독일어, 덴마크어, 프리지아어가 법적 보호를 받으며 사용되고 있다.[36]

저지 독일어는 이 지역의 옛말이지만, 주 내의 대부분의 지역에서 사용되고 있다. 표준 독일어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저지 독일어 방언인 미싱어는 주 전역에서 비공식적으로 흔히 사용된다. 플렌스부르크와 그 주변 지역에서는 표준 독일어와 덴마크어가 혼합된 혼합어인 페투가 사용된다.

덴마크어는 덴마크 소수 민족이 사용한다.[37][38][39] 프리지아어는 북해 연안의 북프리슬란트 제도에서 사용된다. 헬골란트섬에서 쓰이는 북프리지아어 방언은 "Halunder"라고 불린다.

독일어(고지 독일어)는 16세기부터 공공 목적으로 이 지역에서 쓰이기 시작했으나, 1864년 제2차 슐레스비히 전쟁의 결과 이 지역이 프로이센 왕국의 영토가 되면서 가장 많이 쓰는 언어가 되었다. 오늘날에는 미디어, 법률 및 입법부의 주요 언어이며, 공식적인 상황에서는 사실상 모든 주민이 표준 독일어를 사용한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TV, 라디오 및 기타 대중 매체의 널리 보급으로 도시 지역에서도 지역 방언을 점차 대체해 왔다.

8. 종교

종교 개혁 이래로 슐레스비히-홀슈타인는 전통적인 개신교 지역이다.[31] 2011년 기준, (EKD) 53%, 로마 가톨릭 6%, 이슬람교 3%, 기타 또는 무종교 38%로 구성된다.[31] 슐레스비히-홀슈타인 지역은 프로테스탄트 개혁 시대 이후로 강하게 프로테스탄트적인 성격을 띠어왔으며, 16개의 현대 주들 중에서 비율적으로 가장 프로테스탄트적인 주이다. 2018년 기준으로 독일 복음교회 신자들은 인구의 44.6%를, 가톨릭 교회 신자들은 6.1%를 차지한다.[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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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일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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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웹사이트 Olgerdiget: Den første grænse https://politikenhis[...] 2020-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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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웹사이트 Bundeswaldinventur https://bwi.inf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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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웹사이트 Liste der Kfz-Kennzeichen und auslaufenden Kennzeichen in Deutschland https://www.kba.d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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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웹사이트 Responsibilities of the Government http://www.schleswig[...] State of Schleswig-Hol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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