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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노동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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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신 노동당은 1990년대 토니 블레어의 지도 하에 영국 노동당이 채택한 정치적 노선으로, 1994년 블레어가 당 대표로 선출되면서 시작되었다. 이 용어는 블레어가 1994년 당 전당대회에서 "새로운 노동당, 새로운 영국"이라는 슬로건과 함께 처음 사용했으며, 당 헌법의 국유화 조항을 수정하고 시장 경제를 수용하는 등 변화를 시도했다. 1997년 총선에서 압승을 거두며 18년간의 보수당 집권을 종식시켰으며, 2001년과 2005년에도 승리하여 블레어를 3선 총리로 만들었다. 신 노동당은 제3의 길을 추구하며 사회 정의, 경제 효율성, 복지 정책, 범죄 정책, 다문화주의 등 다양한 분야에서 정책 변화를 시도했다. 그러나 우경화, 중산층 및 부자 중심 정책으로 서민과 사회적 약자를 외면했다는 비판과, 2010년 총선 패배 이후 신노동당의 시대가 끝났다는 평가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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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노동당
지도 정보
뉴 레이버
설립1994년
해산2010년
이념제3의 길
정치적 위치중도좌파
당색빨강
당수토니 블레어, 고든 브라운
사무총장톰 소여
매튜 파커
데이비드 트랩
역사적 배경
이전 정당노동당 (영국)
주요 사건1994년 당수 선출
1997년 총선 승리
2001년 총선 승리
2005년 총선 승리
정책 및 특징
주요 정책최저 임금제 도입
국민보건서비스 투자 확대
스코틀랜드 의회웨일스 의회 설치
특징대중주의적 경향
기업 친화적 정책
언론 홍보 강조
미디어 활용
정치 컨설턴트의 영향력 증대
평가 및 비판
평가영국 정치 지형 변화
노동당 장기 집권
선거 전략 성공
경제 성장
비판신자유주의적 정책
대처주의 계승
이라크 전쟁 참여
권위주의적 경향
당내 민주주의 약화
관련 인물
주요 인물토니 블레어
고든 브라운
피터 맨델슨
알래스테어 캠벨
기타 정보
관련 용어블레어주의
관련 문서노동당 (영국), 제3의 길

2. 역사

1983년 총선에서 노동당이 참패한 후, 닐 키녹과 존 스미스는 당 현대화를 추진했다. 1994년 토니 블레어가 당 대표가 되면서 "신노동당, 새로운 영국"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당 헌법 4조를 수정하여 국유화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시장경제를 수용했다. 이는 사회 정의와 경제적 효율성의 균형을 추구하는 새로운 방향이었다.[4] 블레어는 "변화하지 않는 정당은 죽는다"고 주장하며 현대화 필요성을 강조했다.[8]

1997년 총선에서 신노동당은 압승을 거두었고, 이후 스코틀랜드웨일스 지방분권을 추진하고, 북아일랜드 평화 협상에 참여했다. 1998년 인권법을 도입하여 유럽 인권 협약 내용을 영국 법에 반영했다. 대외적으로는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및 수단 공격을 지지하고, 아프가니스탄 침공과 이라크 침공에 참여했다. 그러나 이라크 전쟁 참전은 대규모 반전 시위를 불러왔다.[18]

2007년 블레어가 사임하고 고든 브라운이 총리직을 계승했으나, 2008년 금융 위기 대응 과정에서 노던 록 은행을 국유화하는 등 어려움을 겪었다.[21] 2010년 총선에서 패배하여 정권을 보수당-자유민주당 연립 정부에 내주었다. 이후 에드 밀리밴드는 신노동당 브랜드를 버리고 좌파적인 원 네이션 레이버(One Nation Labour) 브랜드를 사용했다.[28] 제러미 코빈은 당을 더욱 좌파로 이동시켰고, 키어 스타머는 다시 중도로 당 입장을 재편했다.

2. 1. 등장 배경

1983년 총선에서 노동당이 참패한 이후, 당의 현대화에 대한 요구가 높아졌다. 좌파 온건파(soft left) 트리뷴 그룹(Tribune Group) 출신의 닐 키녹은 당의 패배로 이어진 정책을 검토했고, 피터 맨덜슨은 당의 대중적 이미지 개선을 요구했다. 토니 블레어는 존 스미스(노동당 지도자)(John Smith (Labour Party leader))의 지도 이후 '신노동당'이라는 슬로건 아래 당의 선거 지지율을 확대하고자 했다.

2. 2. 블레어 정부 (1997년 ~ 2007년)

1997년 총선에서 신노동당은 영국 하원에서 총 418석을 차지하며 압승을 거두었고, 이는 당 역사상 최대 승리였다.[10] 이로써 18년간의 보수당 정부가 막을 내리고 정권 교체가 이루어졌다. 토니 블레어는 노동당 최장수 총리이자 3번 연속 총선에서 승리한 최초의 총리가 되었다.[11]

집권 후 몇 달 동안 스코틀랜드웨일스에서 지방분권에 관한 주민투표가 실시되었다. 스코틀랜드에서는 지방분권을 지지하는 다수 의견이, 웨일스에서는 근소한 차이로 다수 의견이 나타났다. 스코틀랜드는 웨일스보다 더 높은 수준의 지방분권을 받았다. 노동당 정부는 1998년 스코틀랜드 의회웨일스 의회를 설립하는 법률을 통과시켰고, 1999년에 첫 선거가 실시되었다.[12] 북아일랜드에서는 1998년 벨파스트 협정이 체결되어 선출된 108명의 의원으로 구성된 의회와 민족주의자와 연합주의자 간의 권력 분점 체제가 마련되었다. 블레어는 이러한 협상에 직접 참여했다.[13]

1998년 블레어 정부는 인권법을 도입하여 유럽 인권 협약 내용을 영국 법에 반영했다. 이 법은 2000년 10월부터 완전히 시행되었다.[15] 또한, 에드 볼스의 소책자를 바탕으로 영란은행 독립을 추진했다.

1998년 미국의 아프가니스탄과 수단 공격 이후 블레어는 이를 지지하는 성명을 발표했다.[15] 그는 2001년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에 군사 지원을 제공했다.[16] 2003년 3월, 노동당 정부는 사담 후세인대량살상무기 접근 가능성을 우려하여 미국 주도의 이라크 침공에 참여했다.[17] 영국의 이라크 개입은 공개적인 항의를 불러왔으며, 2002년 10월과 2003년 봄에 40만 명이 넘는 군중이 시위를 벌였다.[18] 2003년 2월 15일에는 1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이라크 전쟁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였다.[18]

2. 3. 브라운 정부 (2007년 ~ 2010년)

2007년 토니 블레어가 총리직에서 사임하면서 고든 브라운이 총리직을 승계받았다.[54] 브라운 정부는 2008년 세계 금융 위기에 대응하여 여러 은행들을 국유화하는 등 긴급 조치를 시행했다.[54] 그러나 2010년 총선에서 노동당은 패배했고, 정권은 보수당-자유민주당 연립 정부에게 넘어갔다.[54]

2. 4. 신노동당 이후

에드 밀리밴드, 제러미 코빈 등 후임 당 대표들은 신노동당 노선에서 벗어나 좌파적인 정책을 추진했다.[98] 그러나 키어 스타머 현 대표는 다시 중도 노선으로 복귀하며 토니 블레어 시절과 유사한 정책을 제시하고 있다.

3. 정치 철학

신노동당의 정치 철학은 제3의 길을 핵심 이념으로 삼았다. 이는 자본주의사회주의의 통합을 시도한 것이다.[77] 신노동당은 사회 정의와 균등한 기회를 강조하고, 경제적 효율성과 사회 정의를 달성하기 위해 시장을 이용해야 한다고 믿었다.[77]

플로렌스 포셔-킹과 패트릭 르 갈레스에 따르면, 신노동당 지도부는 세계화된 자본주의를 받아들이고 노동조합에 종종 적대적인 중산층과 힘을 합쳐야 할 필요성을 확신했다.[54] 신노동당은 신우파의 신자유주의 시장경제와 1945년 이후 노동당의 윤리적 개혁주의 사이의 중도적인 길을 제시했다.[79]

3. 1. 제3의 길

영국 노동당은 당 강령에서 사회민주주의를 삭제하고 그 자리에 제3의 길(신중도)을 대신하였다.[1] 이는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장점을 결합한 중도 노선을 추구하는 것으로, 시장 경제의 효율성을 인정하면서도 사회 정의와 균등한 기회를 강조한다. 이 과정에서 앤서니 기든스 등 사회학자들의 이론적 영향을 받았다.

토니 블레어는 1994년 당 대표 선거 이후 노동당 당수가 되었으며,[1] 같은 해 10월 당 대회에서 "신 노동당(New Labour)"이라는 용어를 만들었다.[4] 그는 공공 및 민간 부문을 활용하여 경제 성장을 촉진하고 노동당의 국유화 공약을 포기하려는 제3의 길 철학을 추구했다.[66]

이러한 변화는 사회민주주의 성향의 노동조합이나 정통 노동당원들로부터 많은 비판을 받았다. 구 노동당의 국유화 정강을 삭제하고 마가릿 대처를 비판하면서도 적절했다고 평가하며, 자본주의적인 시장경제를 옹호하였다.[1] 소득 분배와 사회 정의도 중요하지만, 성공할 수 있는 희망과 부자가 될 수 있는 길을 열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1]

이러한 주장은 정통 노동당원들과 사회민주주의자들로부터 영국 노동당이 영국 보수당과 다를 바 없는 중도우파~중도주의 스펙트럼의 신자유주의 정당으로 전락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실제로 토니 블레어는 사회적 약자와 저소득층을 외면하고 중산층과 고소득층을 옹호하여, 표를 얻기 위한 선거 포퓰리즘이라는 비판도 받았다.[1]

신노동당은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를 넘어서는 대안을 제시하기 위해 제3의 길을 개발하고 지지했다.[77] 이 이념은 당을 진보적으로 만들고 정치적 스펙트럼 전반의 유권자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개발되었다.[78] 신노동당은 경제적으로 효율적이라고 본 신우파의 신자유주의 시장경제와 사회 정의에 대한 신노동당의 우려를 공유한 1945년 이후 노동당의 윤리적 개혁주의 사이의 중도적인 길을 제시했다.[79]

3. 2. 사회 정의

신노동당은 이전 노동당 정부가 강조했던 평등보다 사회 정의를 더 강조했으며, 사회 정의와 경제 효율성이 서로 상반된다는 생각에 동의하지 않았다. 최소 기준과 기회균등이 결과의 평등보다 더 중요하게 여겨지면서, 당의 전통적인 평등 추구는 약해졌다. 존 스미스가 설립한 사회 정의 위원회는 1994년 보고서에서 시민의 동등한 가치, 기본적인 욕구를 충족할 수 있는 동등한 권리, 기회의 최대한 확대, 그리고 불합리한 불평등 제거의 필요성을 사회 정의의 가치로 제시했다. 신노동당은 사회 정의를 주로 시민에게 동등한 정치적, 경제적 자유를 부여해야 할 필요성과 사회 시민권의 필요성으로 보았다. 여기에는 기회의 균등한 분배에 대한 필요성이 포함되지만, 성공한 사람들에게서 빼앗아 실패한 사람들에게 줄 필요는 없다는 단서가 붙는다.[81]

3. 3. 경제 정책

신노동당은 마가릿 대처의 자본주의적 시장경제를 옹호하며, 국유화 정강을 삭제했다.[33] 소득 분배와 사회 정의도 중요하지만, 성공과 부의 기회를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34][35] 시장의 경제적 효율성을 인정하고, 사회주의 목표 달성을 위해 자본주의의 효율성을 활용할 수 있다고 믿었다.[79] 공공-민간 파트너십과 민간투자사업에 의존하여 자금을 조달하고, 재정확대정책에 대한 우려를 완화했다.[82] 고든 브라운은 처음 2년간 보수당의 지출 계획을 유지하며 "철의 재무장관"이라는 명성을 얻었다.[83][84]

3. 4. 복지 정책

토니 블레어 정부는 근로 연계 복지를 강조하며, 근로가정세액공제(Working Families Tax Credit), 국가 보육 전략, 최저임금제 등을 도입했다.[85] 이러한 정책들은 일자리를 늘리는 것을 목표로 했다.[85]

그러나 이러한 신노동당의 복지 정책은 워크페어주의적이라는 비판도 존재한다. 캐피탈 앤 클래스(Capital & Class)에 기고한 크리스 그로버(Chris Grover)는 신노동당의 복지 개혁이 시장 경제 성장에 맞춰져 있으며, 일자리 장려 정책을 통해 이러한 입장이 강화되었다고 주장했다.[85]

3. 5. 범죄 정책

신노동당은 '범죄에 단호하고, 범죄의 원인에도 단호하다(tough on crime, tough on the causes of crime)'라는 슬로건[86]을 내걸고 범죄 예방과 처벌을 강화하는 정책을 추진했다. 이들은 범죄를 사회적 배제와 연관시키고, 사회 및 경찰 당국 간의 협력을 장려했다.

신노동당은 1998년 범죄 및 무질서 법을 통해 반사회적 행위 금지 명령(Anti-social behaviour order)[88]이라는 새로운 제도를 도입했다.

3. 6. 다문화주의

신노동당은 다문화주의를 지지하며 이민 정책을 완화했다. 그러나 이러한 정책은 사회적 결속력을 약화시키고, 이민자들의 통합을 저해한다는 비판을 받았다.[52] 2011년, 보수당의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는 '국가 다문화주의'가 실패했다고 선언하며, 다문화주의 정책에 대한 비판적인 입장을 표명했다.[53]

4. 핵심 인물

앨리스테어 캠벨

  • '''토니 블레어''': 1983년 세지필드 지역구 국회의원으로 당선, 1994년 노동당 당대표 선거에서 승리하여 노동당 당수가 되었다. 1994년 노동당 전당대회에서 "새로운 노동당, 새로운 영국" 슬로건을 내걸며 '신노동당' 용어를 처음 사용,[4] 4조항(Clause IV)을 수정하여 시장경제를 지지하도록 했다.[6] 1997년 총선 압승 이후 2001년, 2005년 총선에서도 승리하여 노동당 최초로 3연속 총선 승리를 이끌었다.

  • '''고든 브라운''': 토니 블레어에 이어 2007년 6월 총리가 되었다.[3] 1994년 블레어-브라운 협상을 통해 당대표 선거에 불출마, 언론은 블레어가 사퇴 후 브라운에게 총리직을 넘기기로 합의했다고 추측했다.[3]

  • '''피터 맨덜슨''': 토니 블레어, 고든 브라운과 함께 신노동당 핵심 인물로,[50][51] 노동당 홍보 책임자로서 당 이미지 개선과 언론 대응 전략을 수립했다.

  • '''앨리스테어 캠벨''': 토니 블레어 정부 보도 비서관으로, 정부 소통 조율 및 통일된 메시지 전달을 담당했다.[48]

4. 1. 토니 블레어

1994년 노동당 당대표 선거에서 57%의 득표율로 존 프레스콧과 마가렛 베켓을 물리치고 승리하여 노동당 당수가 되었다.[1] 1988년 11월 닐 키녹이 그를 에너지 담당 그림자 장관으로 임명하면서 첫 번째 그림자 내각 역할을 맡았고, 1992년 7월 존 스미스가 노동당 당수로 선출되면서 그림자 내무장관으로 승진했다.

1994년 노동당 전당대회 연설에서 "새로운 노동당, 새로운 영국"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신노동당이라는 용어를 만들었다.[4] 이 연설에서 블레어는 당 헌법의 4조를 수정하여 노동당의 국유화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시장경제를 수용했다.[6] 수정된 조항은 시장과 공공 소유의 균형을 이루고 부의 창출과 사회 정의를 균형 있게 추구하는 데 노동당의 의지를 담았다.[6][7] 블레어는 전당대회에서 "변화하지 않는 정당은 죽고, 노동당은 역사적 기념물이 아니라 살아있는 운동"이라고 주장하며 현대화의 증진을 옹호했다.[8]

1994년부터 1997년까지 블레어가 당수로 선출된 이후 노동당은 당원 수를 약 40% 증가시켜 수십 년 동안의 쇠퇴를 반전시켰다.[9] 이는 권력 경쟁력을 높이고 블레어의 지도력을 정당화하는 데 기여했다.

1997년 영국 총선에서 영국 하원의 총 418석을 차지하며 당 역사상 최대 승리를 거두었고,[10] 2001년과 2005년에도 승리하여 블레어는 노동당 최장수 총리이자 3번 연속 총선에서 승리한 최초의 총리가 되었다. 그는 또한 1974년 해럴드 윌슨 이후 총선에서 승리한 최초의 노동당 당수였다.[11]

블레어 정부는 1998년 스코틀랜드 의회와 웨일스 의회를 설립하는 법률을 통과시켰고, 이에 대한 첫 선거는 1999년에 실시되었다.[12] 블레어는 지역 의회와 정부의 설립을 제안하며 북아일랜드에서 평화 협상을 계속하려고 노력했다. 1998년 벨파스트 협정이 체결되어 선출된 108명의 의원으로 구성된 의회와 민족주의자와 연합주의자 간의 권력 분점 체제가 마련되었다. 블레어는 이러한 협상에 직접 참여했다.[13]

1998년 블레어와 그의 신노동당 정부는 인권법을 도입했다. 이 법은 유럽 인권 협약이 확립한 내용을 영국 법에 반영하기 위한 것이었다. 1998년 11월 9일 왕실의 재가를 받았지만 2000년 10월 초까지는 완전히 시행되지 않았다.

1998년 미국의 아프가니스탄과 수단 공격 이후 블레어는 이러한 행동을 지지하는 성명을 발표했다.[15] 그는 2001년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에 군사 지원을 제공했다.[16] 2003년 3월 노동당 정부는 사담 후세인의 추정 대량살상무기 접근 가능성을 우려하여 미국 주도의 이라크 침공에 참여했다.[17] 영국의 이라크 개입은 공개적인 항의를 불러왔다. 2002년 10월과 그 이듬해 봄에 40만 명이 넘는 군중이 시위를 벌였고, 2003년 2월 15일에는 1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이라크 전쟁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였고, 노동당 전당대회 전에는 6만 명이 맨체스터에서 행진했으며, 시위대의 문제는 아프가니스탄 점령과 이라크 침공을 포함했다.[18]

2007년 6월 블레어는 노동당 당수직에서 사퇴했고, 이전 재무장관이었던 고든 브라운이 2007년 노동당 전당대회를 거쳐 그를 계승했다. 3년 전 블레어는 2005년 총선에서 승리한다면 노동당 당수로서 4번째 총선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19]

블레어는 공공 및 민간 부문을 활용하여 경제 성장을 촉진하고 노동당의 국유화 공약을 포기하려는 제3의 길 철학을 추구했다.[66] 블레어의 정부 운영 방식에는 언론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져, 의회(웨스트민스터)가 아닌 언론을 통해 국가 정책 의제를 설정하는 것이 포함되었다. 그는 대중적 이미지 유지를 위해 상당한 자원을 투입했고, 때로는 내각보다 이를 우선시하기도 했다. 블레어는 내각 장관들이 부서에서 관리적 역할을 하고, 전략적 비전은 총리가 다루는 중앙 집중적인 정치 의제를 채택했다.[67] 이념적으로 블레어는 개인은 강력한 사회에서만 번영할 수 있으며, 이는 실업 속에서는 불가능하다고 믿었다.[68]

4. 2. 고든 브라운

고든 브라운토니 블레어의 노동당 정부에서 고위직을 역임한 후 2007년 6월 총리를 계승했다.[3] 1997년 노동당의 선거 승리 후 재무장관으로 임명되었다.[69] 그는 공공 지출을 통제하려고 시도했고 교육과 의료에 대한 자금 지원을 늘리려고 했다. 그의 경제 전략은 시장 기반이었으며, 저소득 근로 가정을 위한 세액 공제(tax credit) 제도를 통해 복지 국가를 개혁하려고 시도했고, 영란은행에 금리 설정 권한을 부여했다.[70]

2007년 6월 블레어가 노동당 당수직에서 사퇴했고, 이전 재무장관이었던 고든 브라운이 그를 계승했다. 블레어는 3년 전 2005년 총선에서 승리한다면 노동당 당수로서 4번째 총선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19] 브라운은 처음에 대중의 강력한 지지를 받았고, 조기 총선 계획이 널리 알려졌지만 공식적으로 발표된 적은 없었다.[20] 2008년 2월 18일 재무장관 앨리스터 달링은 파산 직전의 은행 노던 록을 국유화하고 500억파운드의 대출과 보증을 제공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 은행은 전년도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불안정해졌고 민간 매수자를 찾을 수 없었다.[21]

2010년 총선은 교수형 정부[22]로 끝났고, 노동당은 2005년보다 91석 적은 258석을 차지했다.[23] 자유민주당과의 연정 협상이 실패하자 브라운은 5월 10일 당수직에서 사퇴할 의향을 발표했고,[24] 다음 날 총리직에서 사임했다.[25]

4. 3. 피터 맨덜슨

피터 맨덜슨은 토니 블레어고든 브라운과 함께 신노동당의 핵심 인물 중 하나였다. 그는 노동당의 홍보 책임자로서 당의 이미지 개선과 언론 대응 전략을 수립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특히, 앨리스테어 캠벨과 함께 당의 미디어 전략을 주도하며, 긍정적인 언론 보도를 확보하고 효율적인 메시지 전달을 통해 신노동당의 이미지를 구축하는 데 기여했다.[50][51]

맨덜슨은 블레어와 브라운 정부에서 여러 요직을 거치며 정책 자문 역할을 수행했다. 2010년 에드 밀리밴드는 "토니 블레어고든 브라운과 피터 맨덜슨에서 벗어나 신노동당 기득권에서 벗어날 때"라고 언급하며 신노동당 시대의 종언을 이야기했다.[29]

4. 4. 앨리스테어 캠벨



앨리스테어 캠벨은 블레어 정부에서 보도 비서관을 역임하며 정부의 소통을 조율하고 장관들이 전달해야 할 통일된 메시지를 만들었다. 이 과정은 "밀뱅크화(Millbankization)"[48]라고 불렸는데, 이는 밀뱅크에 있는 노동당 선거 본부를 참고한 것이다. 캠벨은 명확한 메시지가 전달되도록 미디어 관계에 대한 전문적인 접근 방식을 따랐고, 긍정적인 반응을 얻기 위해 미리 기사를 계획했다.[50] 그는 저널리즘 경험을 바탕으로 세부 사항에 주의를 기울이고 사운드 바이트를 효과적으로 활용했다. 또한 뉴스 인터내셔널과 관계를 맺고 긍정적인 언론 보도를 대가로 신문에 미리 정보를 제공했다.[51]

5. 평가 및 영향

신노동당은 긍정적 평가와 부정적 평가를 동시에 받으며, 국제적으로도 영향을 미쳤다.
긍정적 평가로는 1997년, 2001년, 2005년 총선에서 연승하며 토니 블레어가 노동당 역사상 최장수 총리가 된 점, 경제 성장, 복지 확대, 사회 개혁 등의 성과, 1998년 인권법 도입, 스코틀랜드웨일스에 지방분권 추진, 벨파스트 협정 체결 등이 있다. 토니 블레어는 시장경제를 수용하는 방향으로 당 노선을 전환하여 중도층을 공략하고 노동당의 지지 기반을 확대했다.
부정적 평가로는 당 강령에서 사회민주주의를 삭제하고 제3의 길을 채택하여 전통적인 노동당원들로부터 비판받은 점, 국유화 정강 삭제 및 마가릿 대처 정책 일부 긍정, 자본주의적 시장경제 옹호, 소득 분배와 사회 정의보다 성공과 부의 추구를 강조하여 신자유주의 정당으로 변질되었다는 비판, 포퓰리즘이라는 지적 등이 있다. 신노동당의 정책들은 2010년 이후 여러 문제점을 드러냈고, 2015년 영국 총선에서 노동당이 부진한 성적을 거두자, 제레미 코빈을 비롯한 전통적인 노동당원들은 토니 블레어고든 브라운이 시도한 노동당의 우경화가 서민과 사회적 약자에게 외면받는 원인이 되었다고 주장했다.[29]
국제적 영향으로, 신노동당의 제3의 길은 전 세계의 다양한 중도좌파 정당에 영향을 미쳤으며,[32] 대한민국더불어민주당도 국민의 정부 시절 신노동당의 영향을 받아 비슷한 노선을 추구한 적이 있다.

5. 1. 긍정적 평가

1997년 총선에서 압승을 거두는 등 선거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다.[10] 노동당은 1997년, 2001년, 2005년 총선에서 연이어 승리하여 토니 블레어는 노동당 역사상 최장수 총리이자 3번 연속 총선에서 승리한 최초의 총리가 되었다.[11] 경제 성장, 복지 확대, 사회 개혁 등 여러 분야에서 성과를 거두었다. 1998년 인권법을 도입하여 유럽 인권 협약의 내용을 영국 법에 반영했다.[6] 스코틀랜드웨일스에 지방분권을 추진하여 스코틀랜드 의회웨일스 의회를 설립했다.[12] 또한, 북아일랜드 평화 협상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벨파스트 협정을 체결하고 북아일랜드 의회를 수립하는 데 기여했다.[13] 토니 블레어는 1994년 노동당 전당대회 연설에서 "새로운 노동당, 새로운 영국"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시장경제를 수용하는 방향으로 당의 노선을 전환하여 중도층을 공략하며 노동당의 지지 기반을 확대했다.[4]

5. 2. 부정적 평가

신노동당은 당 강령에서 사회민주주의를 삭제하고 제3의 길을 채택하여, 사회민주주의 성향의 노동조합 및 전통적인 노동당원들로부터 많은 비판을 받았다.[1] 토니 블레어고든 브라운의 제3의 길 도입은 보수당의 집권과 노동당의 쇠퇴를 가져왔다는 평가를 받는다. 또한, 구 노동당의 국유화 정강을 삭제하고 마가릿 대처의 정책을 일부 긍정적으로 평가하며 자본주의적 시장경제를 옹호했다.[6] 소득 분배와 사회 정의보다 성공과 부의 추구를 강조하여, 신노동당이 신자유주의 정당으로 변질되었다는 비판도 받았다.[7] 토니 블레어는 사회적 약자와 저소득층을 외면하고 중산층과 고소득층을 옹호한다는 비판과 함께, 선거 포퓰리즘이라는 지적도 받았다.

신노동당의 정책들은 2010년 이후 여러 문제점을 드러냈고, 2015년 영국 총선에서 노동당이 부진한 성적을 거두자, 제레미 코빈을 비롯한 전통적인 노동당원들은 토니 블레어고든 브라운이 시도한 노동당의 우경화가 중산층과 부자들의 지지를 얻었지만, 서민과 사회적 약자에게 외면받았고, 많은 하위계층과 노동자들이 정치에 무관심해져 투표에 참여하지 않게 된 원인이라고 주장했다.[29]

5. 3. 국제적 영향

신노동당의 제3의 길은 전 세계의 다양한 중도좌파 정당에 영향을 미쳤다.[32] 이들은 신노동당의 모델을 참고하여 자신들의 정치 노선을 설정하고, 정책을 개발하는 데 활용했다.

대한민국더불어민주당도 국민의 정부 시절 신노동당의 영향을 받아 비슷한 노선을 추구한 적이 있다.

6. 관련 항목

6. 1. 관련 개념

제3의 길토니 블레어가 1994년 당 대표 선거[1] 이후 노동당 당수가 되면서 추구한 신중도 철학이다.[66] 블레어는 '신 노동당'이라는 용어를 만들고,[4] 공공 및 민간 부문을 활용하여 경제 성장을 촉진하고 노동당의 국유화 공약을 포기하려 했다.[66] 신 노동당은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를 넘어서는 대안을 제시하기 위해 제3의 길을 개발하고 지지했다.[77]

블레어주의는 블레어가 영향을 받은 윤리적 사회주의 및 기독교 사회주의 견해를 바탕으로, 현대적인 형태의 사회주의 또는 자유주의 사회주의로 여겨지는 이념이다.[80] 블레어는 개인은 강력한 사회에서만 번영할 수 있으며, 이는 실업 속에서는 불가능하다고 믿었다.[68]

브라우니즘은 고든 브라운이 재무장관 시절 보여준 보수적인 예산 운영 방식과 관련이 있다. 브라운은 취임 후 처음 2년 동안 보수당의 지출 계획을 유지하면서 "골든룰"과 보수적인 예산 운영으로 "철의 재무장관"이라는 명성을 얻었다.[83][84]

사회 정의는 신 노동당이 이전 영국 노동당 정부의 초점이었던 평등보다 더 강조한 개념이다. 존 스미스가 설립한 사회 정의 위원회는 1994년 보고서에서 사회 정의의 가치로 시민의 동등한 가치, 기본적인 욕구를 충족할 수 있는 동등한 권리, 기회의 최대한 확대, 그리고 불합리한 불평등 제거의 필요성을 제시했다.[81]

워크페어는 신 노동당의 복지 개혁과 관련된 개념이다. 2001년 신 노동당 선거 공약에서 제안된 복지 개혁에는 근로가정세액공제(Working Families Tax Credit), 국가 보육 전략(National Childcare Strategy), 그리고 최저임금(National Minimum Wage)이 포함되어 있었다.[85]

6. 2. 관련 사건

1997년 영국 총선에서 신노동당은 18년간의 보수당 집권 이후 압승을 거두며 하원에서 418석을 차지, 당 역사상 최대 승리를 기록했다.[10] 2001년과 2005년 총선에서도 승리하여 토니 블레어는 노동당 최장수 총리이자 3번 연속 총선에서 승리한 최초의 총리가 되었다.[11]

2001년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에 영국군을 파병하여 군사 지원을 제공했다.[16] 2003년 3월에는 사담 후세인대량살상무기 접근 가능성을 우려하여 미국 주도의 이라크 침공에 참여했다.[17] 영국의 이라크 개입은 대규모 시위를 불러왔는데, 2002년 10월과 2003년 봄에는 40만 명 이상, 2003년 2월 15일에는 100만 명 이상이 이라크 전쟁 반대 시위에 참여했다.[18]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당시, 재무장관 앨리스터 달링은 파산 직전의 은행 노던 록을 국유화하고 500억파운드의 대출 및 보증을 제공한다고 발표했다.[21] 이 은행은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인해 어려움을 겪었고, 민간 매수자를 찾지 못했다.[21]

6. 3. 관련 인물

토니 블레어 (총리 1997~2007)와 고든 브라운 (재무장관 1997~2007 및 총리 2007~2010)은 신노동당의 핵심 인물이었다.[1] 고든 브라운토니 블레어의 노동당 정부에서 고위직을 역임한 후 2007년 6월 총리를 계승했다.[3]

제3의 길 발전에 중요한 인물인 사회학자 앤서니 기든스는 일상 정치 영역에서 만들어진 제3의 길에 대한 많은 해석과 거리를 두었다. 그에게 있어 제3의 길은 신자유주의나 자본주의 시장의 지배에 굴복하는 것이 아니었다.[102]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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