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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어송라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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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싱어송라이터는 자신이 작사, 작곡한 음악을 직접 부르는 대중음악 아티스트를 지칭한다. 작곡, 작사, 보컬, 연주, 자기 관리를 모두 수행하며, 록, 포크, 컨트리, 팝 등 다양한 장르에서 활동한다. 1960년대부터 가사의 내면성, 고백적인 송라이팅, 부드러운 음악 편곡, 절제된 공연 스타일을 따르는 아티스트를 묘사하는 데 사용되었으며, 미국 포크 음악 부흥 시대에는 정치적 저항을 노래하는 경우도 있었다. 싱어송라이터는 작곡, 작사, 가수의 역할을 겸하며 사회학적 행위자로서의 역할도 수행한다.

싱어송라이터라는 용어는 1970년대 초 미국에서 제임스 테일러가 주목받고, 영국에서 엘튼 존, 미국의 캐롤 킹 등이 활약하면서 널리 퍼지게 되었다. 비틀즈나 밥 딜런 등이 자작곡을 직접 부르는 방식을 도입한 것이 시초가 되었으며, 1970년대에는 록적인 열정과는 거리가 먼 퍼포먼스의 가치를 노래와 작곡을 강조함으로써 보완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에 사용되었다.

싱어송라이터는 음유시인의 구전 전통에서 유래하며, 각국에서 다양한 형태로 발전해왔다. 북미에서는 블루스와 포크 음악 스타일의 리드 벨리, 지미 로저스 등이, 프랑스에서는 샹송 전통의 샤를 트르네 등이 대표적이다. 이탈리아의 칸타우토레 전통은 도메니코 모두뇨로부터 시작되었으며, 이베리아-라틴 아메리카에서는 누에바 칸시온, 트로피칼리스모 등의 형태로 발전했다. 소련 및 러시아에서는 바드, 불가리아에서는 기타를 든 시인, 독일에서는 리더마허, 스웨덴에서는 트루바두르, 네덜란드에서는 에데 스탈이 활동했다. 일본에서는 1930년대부터 1960년대까지 엔카 가수, 배우 등이 자작곡을 불렀으며, 1970년대 이후 요시다 타쿠로의 인기를 기점으로 싱어송라이터라는 용어가 널리 사용되었다.

싱어송라이터 활동에는 가짜 관계자나 악의적인 관계자로 인한 피해가 발생할 수 있으며, 객관적인 실적을 갖추어야 진정한 싱어송라이터로 인정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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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어송라이터
직업 개요
직업 유형음악 산업
관련 직업음반 프로듀서
정의
의미자작곡을 쓰고, 작곡하며, 직접 노래하는 음악가
설명싱어송라이터는 비교적 최근의 현상이며, 수세기 역사를 가진 미국의 포크 음악에서 나타남.

2. 정의 및 용법

"싱어송라이터"(또는 "송라이터/싱어")[2]라는 용어는 레코드 회사와 비평가들이 자신이 작곡하고 작사한 음악을 직접 부르는 대중음악 아티스트를 정의하는 데 사용된다.[3] 이들은 작곡가, 작사가, 보컬, 때로는 연주자의 역할을 하며, 종종 자기 관리도 한다.[4] 올뮤직에 따르면, 싱어송라이터의 가사는 개인적인 내용이 많지만 정교한 은유와 모호한 이미지로 표현되며, 창작의 중심은 공연 자체가 아닌 노래 자체에 있다.[5]

이 용어는 , 포크, 컨트리, 팝 음악 등 다양한 장르의 송라이터들을 지칭하는 데 사용될 수 있다. 헨리 러셀(1812–1900), 아리스티드 브륀(1851–1925), 행크 윌리엄스(1923–1953), 버디 홀리(1936–1959) 등이 그 예이다. 1949년부터 기록된[6] "싱어송라이터"라는 구절은 1960년대부터[7] 특정한 스타일과 주제적 관습, 특히 가사의 내면성, 고백적인 송라이팅, 부드러운 음악 편곡, 절제된 공연 스타일을 따르는 송라이터들을 묘사하는 데 널리 사용되었다.[8]

작가 래리 데이비드 스미스에 따르면, 싱어송라이터는 작곡가, 작사가, 가수의 역할을 겸함으로써 미국 대중음악의 틴 팬 앨리 시대 이후 "대중적인 인물이 등장하는 노래"라는 중세 트루바두르 전통을 재도입했다.[9] 미국 포크 음악 부흥 시대의 싱어송라이터들은 우디 거스리(1912–1967)와 피트 시거(1919–2014)처럼 정치적 저항을 노래 주제로 삼기도 했다.[10]

''Journal of Popular Music Studies''에 따르면, 싱어송라이터의 역할에는 여러 차원의 창작적 정체성이 포함된다.[11] 송라이터들은 자신의 작품을 직접 부르며 노래 가사에 자신만의 스타일을 불어넣는다. 이들은 작품이 완성된 후에도 작품과 독립적이지 않으며, 보컬과 음악적 공연을 통해 노래 가사에 생명력을 불어넣고 인증한다. 또한, 싱어송라이터는 노래하고 작곡하는 것 외에도 편곡, 믹싱, 제작, 협업, 미디어 관리 등 다양한 사회학적 행위를 수행한다. 즉, 싱어송라이터는 공연 스타일의 페르소나, 다른 목소리의 축적, 다른 사회학적 기술의 조정을 포함한 2중 목소리를 통해 단일 저자 이미지 아래 유동적이고 다중적이며 이질적인 목소리를 보여준다.[11]

대중음악(팝 뮤직)에서 자신이 부르는 노래의 작사, 작곡(편곡도 직접 하는 경우가 있다)을 스스로 하는 가수를 가리킨다. 작곡만 하고 편곡을 다른 사람에게 의뢰하는 경우에도 일반적으로 싱어송라이터라고 하지만, 작사만 하는 경우에는 싱어송라이터라고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44][45] 자작곡의 비율이 적으면 싱어송라이터라고 하지 않는 경우가 많고,[44] 반대로 자작곡이 100%가 아니더라도 그 비율이 크면 싱어송라이터라고 부르는 경우도 있다.[44]

곡을 만드는 방법은 가수마다 다르다. 먼저 작곡하고 나중에 작사하는 "곡선(曲先)" 또는 "멜로디 선행" 방식과, 반대로 먼저 작사하고 나중에 작곡하는 "시선(詞先)" 방식이 있으며, 작사와 작곡을 병행하는 경우도 있다.

“싱어송라이터”라는 말은 1970년대 초 미국에서 제임스 테일러가 주목받고, 영국에서 엘튼 존, 미국의 캐롤 킹 등이 활약하면서[57] 널리 퍼지게 되었다.[58][59][60][72]

원래 영미권과 일본 모두 팝 음악(팝스)에서는 작곡과 노래가 분업으로 이루어졌다.[44][61] 거기에 자작곡을 직접 부르는 방식을 도입한 것은 비틀즈밥 딜런 등이다.[44][61][62][63] 1960년대에는 많은 자작곡을 직접 부르는 뮤지션들이 큰 인기를 얻었다. 그럼에도 1970년대 초 미국에서 “싱어송라이터”라는 명칭이 사용된 이유는 “록적인 열정과는 거리가 먼 퍼포먼스의 가치를 노래와 작곡을 강조함으로써 보완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레코드 컬렉터스지는 설명하고 있다.[64] 영미권의 “싱어송라이터”는 “큰 꿈이나 분노보다는 주변의 일에 눈을 돌린 노래를 만들고 부르는”, “진솔한 자기 고백적인 노래를 부르는” 등의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64] 롤링 스톤지의 록 역사에서는 “싱어송라이터”를 영화 ‘졸업’의 더스틴 호프만처럼 스타답지 않은 스타가 탄생한 뉴 시네마 현상과 관련지어 이야기하고 있다고 한다.[64] 본래 “싱어송라이터”라는 말에는 “록의 반(反)테제”와 같은 의미가 있었다. 하지만 이 말이 일본에 수입되었을 당시에는 아직 일본에서 록이 주류가 아니었기 때문에, 일본에서의 “싱어송라이터”는 처음에는 가요의 반(反)테제로서의 역할을 부여받았다고 생각된다.[44][65]

3. 역사

싱어송라이터의 개념은 전 세계적으로 다양한 형태로 존재해온 고대 음유시인의 구전 전통에서 유래한다.[167] 시는 성가나 노래로 연주되었으며 때로는 하프나 기타와 같은 악기가 반주되기도 했다. 인쇄술이 발명된 후에는 발라드 판매자들이 노래를 작곡하고 연주했다. 이러한 노래들은 지속적으로 발전하는 기존 곡과 가사의 버전인 경우가 많았으며, 이것이 민속 문화의 싱어송라이팅 전통으로 발전했다.

행크 윌리엄스(Hank Williams), 1951


유럽 전역에는 순회 공연자들이 존재했다. 민속학자 아나톨르 르 브라즈(Anatole Le Braz)는 19세기 후반 브르타뉴를 여행하며 노래를 작곡하고 연주했으며 인쇄본을 판매했던 발라드 가수 얀 아르 미누즈(Yann Ar Minouz)에 대해 자세히 설명한다.[12]

대도시에서는 공공장소에서 공연을 하며 생계를 유지하는 것이 가능했고, 축음기의 발명으로 테오도르 보트렐(Théodore Botrel), 조지 엠. 코언(George M. Cohan), 행크 윌리엄스(Hank Williams)와 같은 초기 싱어송라이터들이 유명인사가 되었다. 라디오는 대중의 인지도와 매력을 더욱 높여주었다.

1940년대부터 1960년대까지 미국 포크 음악 부흥으로 촉발된 기간 동안, 전통 포크 음악과 알마낙 싱어스(Almanac Singers) 및 위버스(the Weavers)와 같은 그룹에서 영감을 받은 젊은 연주자들이 자신만의 독창적인 자료를 작곡하고 연주하며 자신만의 음악 편곡을 만들기 시작했다.[13]

21세기 초, 많은 싱어송라이터 지망생들이 개러지밴드를 활용하여 음악을 작곡하고 녹음해 왔다.[14] 에리카 바두(Erykah Badu), 빌랄(Bilal (American singer)) 등이 개러지밴드를 통해 전문적으로 음악을 작곡했다.

4. 각국의 싱어송라이터 전통


제임스 테일러 1969년


2000년 지중해의 USS ''해리 S. 트루먼''에서 공연하는 캐롤 킹

  • 60년대 후반, 새로운 여성 싱어송라이터들이 등장하여 앤 섹스턴과 실비아 플래스 같은 시인들의 고백적인 스타일로 가사를 썼다. 뉴스위크는 1969년 기사에서 조니 미첼, 로티 골든, 로라 나이로 등을 언급하며 이들이 쓴 개인적인 노래가 자기 발견의 여정과 같다고 평했다.[34] 로티 골든은 앨범 ''모터사이클''에서 성 정체성, 과도한 마약 사용 등과 같은 주제를 다루었다.

 로티 골든 공연, 내슈빌, 테네시, 1971 text
고백적인 전통에서 공연하는 로티 골든, 내슈빌, 테네시, 1971년

  • 1970년대 중반과 1980년대 초, 초기 싱어송라이터들은 대부분 더 일반적인 팝 또는 소프트 록 형식으로 흡수되었지만, 빌리 조엘, 스티비 원더, 브루스 스프링스틴 등이 싱어송라이터 전통을 이어갔다. 1980년대 후반에는 수잔 베가를 시작으로 트레이시 채프먼, 멜리사 에더리지, 낸시 그리피스, 케이디 랭, 마라이어 캐리, 샤니아 트웨인, 사라 맥라클란, 션 콜빈, 셰릴 크로, 리사 로브, 조안 오스본, 인디고 걸스, 토리 아모스 등이 등장했다.

데이비드 크로스비, 1976년


트레이시 채프먼은 1980년대 미국 사회의 사회 문제에 대해 노래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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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일러 스위프트는 현대 싱어송라이터이다 (2015년 사진)


매티 힐리는 영국의 싱어송라이터이다 (2019년 사진)

  • 2000년대에는 노라 존스, 코너 오버스트, 수프잔 스티븐스, 데이비드 바잔 등 인상적인 가사를 사용한 아티스트들이 등장했다. 1990년대 후반, 개인의 음악 녹음 및 판매가 가능해지면서 "인디" 아티스트들이 등장했고, 인터넷은 이들이 더 넓은 청중에게 음악을 들려줄 수 있는 수단을 제공했다.
  • 196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 초반까지 로큰롤과 소울 음악계에서는 사회적 메시지를 강하게 담은 히트곡들이 많이 탄생했다.[66] 1970년 제임스 테일러는 앨범 『스위트 베이비 제임스(Sweet Baby James)』를 발표했는데, 이 앨범은 싱어송라이터의 오리지널 버전이 히트한 드문 사례로 당시 큰 주목을 받았다.[66][67]
  • 1960년대 후반 포크 붐 시대에는 캐나다의 싱어송라이터 고든 라이트풋, 레너드 코헨, 이언 & 실비아, 톰 러시 등도 미국으로 진출했다.[68]

4. 1. 북미, 영국, 아일랜드

북미에서 "싱어송라이터"라는 용어는 블루스포크 음악 스타일로 작품을 개발한 가수들에게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20세기 초중반 미국의 싱어송라이터로는 리드 벨리,[17] 지미 로저스,[18] 블라인드 레몬 제퍼슨,[19] 티본 워커,[20] 블라인드 윌리 맥텔,[21] 라이트닝 호프킨스,[22] 손 하우스,[23] 그리고 로버트 존슨[24][25]이 있다. 1940년대와 1950년대에는 행크 윌리엄스와 같은 컨트리 싱어송라이터가 유명해졌고,[26] 우디 거스리피트 시거,[27] 로니 길버트와 리 헤이스 그리고 주로 시사적인 노래를 불렀던 위버스의 다른 멤버들도 늘어나는 더 넓은 청중들에게 공연을 했다.[28] 시사적인 노래를 쓰는 전통은 이들에 의해 확립되었으며, 조쉬 화이트, 시스코 휴스턴, 말비나 레이놀즈 등 다른 포크 가수들과 존슨, 호프킨스 같은 블루스 가수들도 자신의 개인적인 삶의 경험에 관한 노래를 썼다. 사회 문제에 대한 이러한 초점은 싱어송라이터 장르에 큰 영향을 미쳤다.

1930년대부터 1950년대까지 호지 카마이클, 빌리 할리데이 같은 여러 재즈, 블루스 싱어송라이터들이 등장했고, 록앤롤 장르에서도 제리 리 루이스, 버디 홀리, 척 베리 등이, 컨트리 음악 분야에서는 행크 윌리엄스, 패티 클라인, 태미 와이넷 등이 등장했다.

영어권 북미와 영국에서 싱어송라이터가 처음으로 대중적으로 인정받은 것은 1960년대와 1970년대 초로, 밥 딜런, 닐 영, 존 레논, 반 모리슨, 윌리 넬슨, 폴 사이먼, 레너드 코헨, 앨버트 해몬드, 고든 라이트풋, 조니 미첼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매우 개인적이고 자기 성찰적인 관점에서 노래를 썼으며, "고백적인", "섬세한"이라는 형용사가 싱어송라이터 스타일을 설명하는 데 사용되기도 했다. 1960년대 초반, 조안 바에즈와 밥 딜런은 블로잉 인 더 윈드(1963)로 "항의의 노래"를 더 넓은 청중에게 알렸다.[29] 1960년대 중반 밥 딜런은 포크와 록의 융합을 주도했고, 1965년 7월에는 "라이크 어 롤링 스톤"을 발매했다.

60년대 후반, 새로운 여성 싱어송라이터들이 등장하여 앤 섹스턴과 실비아 플래스 같은 시인들의 고백적인 스타일로 가사를 썼다. 뉴스위크는 1969년 기사에서 조니 미첼, 로티 골든, 로라 나이로 등을 언급하며 이들이 쓴 개인적인 노래가 자기 발견의 여정과 같다고 평했다.[34] 로티 골든은 앨범 ''모터사이클''에서 성 정체성, 과도한 마약 사용 등과 같은 주제를 다루었다.

1970년대 중반과 1980년대 초, 초기 싱어송라이터들은 대부분 더 일반적인 팝 또는 소프트 록 형식으로 흡수되었지만, 빌리 조엘, 스티비 원더, 브루스 스프링스틴 등이 싱어송라이터 전통을 이어갔다. 1980년대 후반에는 수잔 베가를 시작으로 트레이시 채프먼, 멜리사 에더리지, 낸시 그리피스, 케이디 랭, 마라이어 캐리, 샤니아 트웨인, 사라 맥라클란, 션 콜빈, 셰릴 크로, 리사 로브, 조안 오스본, 인디고 걸스, 토리 아모스 등이 등장했다.

2000년대에는 노라 존스, 코너 오버스트, 수프잔 스티븐스, 데이비드 바잔 등 인상적인 가사를 사용한 아티스트들이 등장했다. 1990년대 후반, 개인의 음악 녹음 및 판매가 가능해지면서 "인디" 아티스트들이 등장했고, 인터넷은 이들이 더 넓은 청중에게 음악을 들려줄 수 있는 수단을 제공했다.

196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 초반까지 로큰롤과 소울 음악계에서는 사회적 메시지를 강하게 담은 히트곡들이 많이 탄생했다.[66] 1970년 제임스 테일러는 앨범 『스위트 베이비 제임스(Sweet Baby James)』를 발표했는데, 이 앨범은 싱어송라이터의 오리지널 버전이 히트한 드문 사례로 당시 큰 주목을 받았다.[66][67]

1960년대 후반 포크 붐 시대에는 캐나다의 싱어송라이터 고든 라이트풋, 레너드 코헨, 이언 & 실비아, 톰 러시 등도 미국으로 진출했다.[68]

4. 2. 프랑스의 샹송 전통

프랑스의 "샹송"은 중세 시대부터 이어져 내려온 오랜 전통에서 비롯되었다. 프랑스어의 리듬을 기반으로 하며, 1960년대부터 현재까지 영미권 록 음악과 록 밴드 시대의 문화적 영향 아래 프랑스에 퍼지기 시작한 다른 프랑스 "팝" 음악이나 소프트 록 형식과 구분된다.

최초의 현대 프랑스 싱어송라이터는 1938년 솔로 경력을 시작한 샤를 트르네였다. 그는 샹송에 재즈 리듬을 사용한 최초의 인물이었으며,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시대인 1940년대 중반과 1950년대 새로운 세대의 창작 활동이 꽃피기 전까지는 독보적인 존재였다. 이 시대에는 레오 페레, 조르주 브라상, 퀘벡 출신 펠릭스 르클레르, 세르주 갱스부르, 벨기에 출신 자크 브렐, 프랑스령 기아나 출신 앙리 살바도르, 샤를 아즈나부르, 그리고 바바라 등 대조적이고 풍부한 상상력을 지닌 예술가들이 등장했다. 이들 중 대부분은 특히 페레와 갱스부르를 중심으로 젊은 세대 프랑스 예술가들에게 위대한 거장으로 인정받고 있다.

1960년대와 1970년대에는 클로드 누가로, 장 페라, 보비 라푸앵트, 프랑수아즈 아르디 등이 저명한 싱어송라이터로 활동했다.

4. 3. 이탈리아의 칸타우토레 전통

''칸타우토레''(Cantautori, 칸타우토레/cantautoreit의 복수형)는 영어의 싱어송라이터에 해당하는 이탈리아어 표현으로, ''cantante''(가수)와 ''autore''(작가)를 합쳐 만든 포트만토이다.[38] 국제적으로 명성을 얻은 최초의 ''칸타우토레''는 1958년 볼라레를 발표한 도메니코 모두뇨였다.[38] 1950년대 후반에는 지노 파올리, 루이지 텐코, 움베르토 빈디, 조르조 가베르, 엔조 야나치 등이 활동했다.

루치오 바티스티, 1969


1960년대에는 파브리치오 데 안드레, 루치오 바티스티, 프란체스코 구치니가, 1970년대에는 에도아르도 베나토, 루치오 달라, 프란체스코 데 그레고리, 프랑코 바티아토, 리노 가에타노, 이바노 포사티, 안토넬로 벤디티, 클라우디오 바글리오니, 피노 다니엘레, 로베르토 베키오니, 안젤로 브란두아르디, 우제니오 피나르디 등 많은 ''칸타우토레''들이 등장했다. 이들의 노래는 소외되거나 반항적인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거나 정치적인 배경을 가진 경우가 많았고, 오늘날까지도 인기가 높다.

안젤로 브란두아르디는 중세와 바로크 음악의 영향을 받았으며, 그의 가사는 고대 우화에서 영감을 받았다. 프랑코 바티아토는 1970년대에 프로그레시브 록과 현대 클래식 음악으로 시작하여 1980년대에는 팝, 일렉트로닉, 뉴 웨이브, 월드 뮤직을 혼합한 독특한 음악을 선보였다. 제노바 출신의 ''칸타우토레''들은 제노바 학파로 불리기도 한다. 나폴리 출신의 피노 다니엘레는 R&B, 퓨전, 블루스, 팝, 재즈, 타란텔라 등 다양한 장르를 융합하고 이탈리아어, 나폴리어, 영어를 사용한 독특한 음악을 만들었다. 파올로 콘테는 재즈 전통에 더 가까웠다.

1980년대에는 바스코 로시가 블루스 기반의 록 음악과 이탈리아 멜로디를 혼합한 음악으로 명성을 얻었으며, 팬들은 그를 "유일한 이탈리아 록스타"라고 불렀다.[38] 2000년대 부고는 국제적인 사운드와 이탈리아어 가사를 섞어 "''판타우토레''"라는 신조어로 불렸다.[39] 그는 1970년대 정치적인 내용에서 벗어나 이탈리아 작사의 혁신을 이끈 선구자로 여겨진다.[40]

지난 25년 동안 이 전통은 사무엘레 베르사니, 카파레짜, 그리고 막스 가체, 니콜로 파비, 다니엘레 실베스트리, 시모네 크리스티치 등이 포함된 "2세대 로마 칸타우토레 학파"에 의해 계승되었다. ''칸타우토레''라는 단어는 스페인어, 포르투갈어, 카탈루냐어 ''cantautor'', 프랑스어 ''chantauteur'', 말타어 ''kantawtur'', 루마니아어 ''cantautor'', 슬로베니아어 ''kantavtor'' 등 다른 언어로도 차용되었다.

4. 4. 이베리아-라틴 아메리카 전통

1960년대부터 1950년대 이탈리아의 칸타우토레(도메니코 모두뇨) 스타일을 계승하여, 많은 라틴 아메리카 국가들은 다양한 대중 음악 스타일의 요소들을 채택한 싱어송라이터 전통을 발전시켰다. 최초의 이러한 전통은 1960년대 중반에 등장한 누에바 칸시온으로, 칠레, 페루, 아르헨티나, 볼리비아와 같은 안데스 국가들에서 자리 잡았다.

카에타누 벨로소, 2006


같은 시기에 브라질 대중 음악 스타일인 보사노바는 트로피칼리스모라고 불리는 정치적으로 날카로운 싱어송라이터 전통으로 발전했다. 질베르투 질과 카에타누 벨로소 두 명의 공연자는 트로피칼리스모에서의 활동을 통해 브라질 전역에서 가장 유명한 인물 중 두 명이 되었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에도 싱어송라이터 전통이 있었는데, 때로는 라틴 요소를 빌린 것으로 여겨진다. 카탈루냐는 누에바 칸소 전통으로 유명하며, 호안 마누엘 세라트와 류이스 랴크가 대표적이다. 포르투갈 민속/저항 가수이자 싱어송라이터인 조제 아폰수는 현대화되고 사회적으로 더욱 의식적인 형태의 파두인 누에바 칸상(nova canção)을 포함한 포르투갈 민속 문화의 부흥을 이끌었다. 1974년 포르투갈의 카네이션 혁명 이후, 누에바 칸상은 더욱 정치화되었고 칸토 리브레(canto livre)로 알려졌다. 다른 중요한 스페인 싱어송라이터로는 호아킨 사비나, 호세 루이스 페랄레스, 루이스 에두아르도 아우테가 있다.

196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까지 실비오 로드리게스와 파블로 밀라네스와 같은 사회적, 정치적으로 의식 있는 싱어송라이터들이 쿠바에서 등장하여 누에바 트로바로 알려진 장르를 탄생시켰다. 트로바는 장르로서 라틴 아메리카 전역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쳤다. 예를 들어 멕시코에서는 유카탄 반도의 칸시온 유카테카(canción yucateca)와 시에라 후아레스의 트로바 세라나(trova serrana)가 모두 트로바의 지역적 적응이다. 오늘날 과테말라의 리카르도 아르호나는 라틴 아메리카에서 가장 상업적으로 성공한 싱어송라이터로 여겨진다. 그의 작품에서 사회정치적 참여는 고르지 않지만, 일부는 아르호나의 더욱 적극적인 작품을 이탈리아 칸타우토레(cantautori) 전통에 놓는 것으로 본다.

1970년대 중반에는 칸토 포풀라르(canto popular)라는 싱어송라이터 전통이 우루과이에서 등장했다.

트로피칼리스모, 전통적인 삼바, 보사노바의 영향으로 MPB(브라질 대중 음악), 즉 브라질 대중 음악은 싱어송라이터 기반으로 높이 발전했다. 수년 동안 솔로 아티스트들은 조빙처럼 낭만적인 냉소주의 또는 시쿠 부아르크처럼 암시적인 반정부 메시지를 담은 브라질 대중 음악을 지배했다. 브라질의 군사 독재가 끝난 후 브라질 음악은 정치적, 사회적으로 덜 의식하게 되었다. 검열을 받았던 라울 세이샤스나 유머러스한 영적주의자 조르지 벤은 펑크 카리오카, 악세 뮤직, 그리고 브라질 디스코에 의해 서서히 묻혔다. 그러나 최근 몇 년 동안 1980년대 이후로 지배해 온 거의 순수하게 댄스 음악의 추세를 깨기 시작하는 새로운 사회 의식적인 브라질 싱어송라이터들이 등장하고 있다.

4. 5. 소련 및 러시아

1960년대 이후 소련 체제 외부에서 노래를 지은 가수들은 "바드"로 알려졌다. 전통적으로 바드송으로 불리는 최초의 노래는 1930년대 후반과 1940년대 초에 쓰여진 것으로 여겨진다. 1950년대에 활동을 시작한 최초의 전국적으로 유명한 바드들은 전통적으로 "5인의 선구자"로 불리는데, 미하일 안차로프, 알렉산드르 고로드니츠키, 노벨라 마트베예바, 불라트 오쿠자바, 유리 비즈보르가 포함된다. 1960년대에는 블라디미르 비소츠키, 빅토르 베르코프스키, 율리 킴 등 많은 이들이 그 대열에 합류했다.

소련 및 러시아의 바드 불라트 오쿠자바, 1976


많은 바드들은 러시아 기타를 사용하여 소규모 그룹으로 노래를 공연했으며, 다른 음악가나 가수와 함께 공연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비록 피아노나 아코디언을 사용하는 바드들도 알려져 있다. 인기를 얻은 바드들은 소규모 콘서트를 열었다. 1970년대에는 클래식 6줄 기타로 전환되었고, 현재 러시아 기타는 바드들에게는 드문 악기가 되었다. 같은 시기에 KSP(Kluby Samodeyatelnoy Pesni – 아마추어 노래 팬 클럽) 운동이 등장하여 바드들에게 고등 교육을 받은 청중을 제공했고, 1980년대 말까지 그들의 주요 홍보 수단이 되었다. 바드들은 많은 노래의 정치적 성격과 소련의 엄격하게 조직된 국가 지원 쇼 비즈니스 체제에서 그들의 모호한 지위 때문에 음악 녹음을 거의 허용받지 못했다. 그 결과 바드의 노래는 대개 구전으로 또는 콘서트에서 만들어진 아마추어 녹음(때때로 마그니티즈다트라고 불림)의 복사를 통해 전파되었다. 특히 정치적인 노래가 그러했다. 바드 시는 다른 시와 달리 말로 하는 것이 아니라 간단한 기타 선율과 함께 부르는 점이 다르다. 또 다른 차이점은 이러한 형태의 시가 스타일보다는 의미에 더 중점을 둔다는 것이다. 즉, 수사적 기교가 적게 사용되고 시가 서사적 형태를 취하는 경우가 많다. 바드 시를 다른 노래와 구분하는 것은 음악이 가사보다 훨씬 덜 중요하다는 점이다. 코드 진행은 종종 매우 단순하고 바드송에서 다른 바드송으로 반복되는 경향이 있다. 반면 소련에서는 주요 바드 후원자는 국가 작곡가 연맹이었고, 주요 바드 반대자는 국가 작가 연맹이었다. 훨씬 더 명확한 차이점은 이 장르의 상업적이지 않은 성격이었다. 노래는 팔기 위해서가 아니라 부르기 위해 쓰여졌다. 가수 싱어송라이터가 주도하는 유사한 장르는 다른 포스트소비에트 국가에서는 낭송시로 알려져 있다.

4. 6. 불가리아

불가리아에서 싱어송라이터는 "바드(bards)" 또는 "기타를 든 시인"으로 불리며 인기를 얻고 있다. 이들의 음악은 전통 민요, 20세기 초 도시 속담, 현대적인 영향이 혼합된 특징을 보인다. 1960년대, 1970년대, 1980년대 공산 정권은 "정치 노래"를 주로 1인 밴드 형식으로 공연하는 "바드"들을 용인했다. "알렌 마크(Alen Mak, 붉은 양귀비)"라는 전국 축제 전통이 확립되었는데, 이는 불가리아에서 강력한 공산주의적 의미를 지닌 상징이었다. 그러나 안젤 "젠데마" 안젤로프, 야보르 "야브카타" 릴로프, 벨리자르 "발데스" 뱅코프와 같이 공식 공산당 노선에 반대하는 저명한 지하 인물들도 있었다.

1989년 공산주의 붕괴 이후, 싱어송라이터의 전통은 재건되었다. 현재 불가리아의 "바드"들은 하르만리 마을에서 열리는 포키 페스티벌(PoKi Festival, 기타를 든 시인, 시적인 현악기), 로베치에서 열리는 바드페스트, 소피아 싱어송라이터의 밤 등 연간 여러 축제를 개최하고 있다. 불가리아 전통의 주요 인물로는 디미타르 타라레즈코프, 안젤 "젠데마" 안젤로프, 야보르 "야브카타" 릴로프, 벨리자르 "발데스" 뱅코프, 디미타르 도브레프, 안드로 스투벨, 브라니미르 "버니" 스토이코프, 도로테아 타바코바, 미하일 벨체프, 아센 마슬라르스키, 그리샤 트리포노프, 플라멘 스타브레프, 블라디미르 레브코프, 마르가리타 드루메바, 마리아 바치바로바, 플라멘 시보프, 크라시미르 파르바노프 등이 있다.

4. 7. 루마니아

공산주의적 폐쇄에도 불구하고, 루마니아의 싱어송라이터 전통은 1960년대 후반부터 번영했으며, 루마니아 민속 음악(ethno folk), 미국식 민속 음악(American-style folk), 서정적(숭배적) 민속 음악(lyrical (cult) folk)의 맥락에서 자리 잡았다. 이러한 활동은 플러커라 세낙룰(Cenaclul Flacăra)이라는 대중 문화 행사 시리즈의 형태로 이루어졌으며, 이데올로기적 영향을 받기도 했지만, 밥 딜런(Bob Dylan), 조안 바에즈(Joan Baez)와 우드스톡(Woodstock) 세대와 같은 서구 아티스트들을 수용하고, 복음 음악 공연, 국제적 문제(대중 문화, 지도부의 책임, 냉전 중 긴장 고조 등)에 대한 개방성을 보여주었다.

전반적으로 루마니아 민속 음악은 비동맹 음악과 저항 음악 사이의 지하 문화 운동으로 여겨진다.

4. 8. 독일의 리더마허 전통

유럽의 뱅켈잔크(Bänkelsang, "벤치 노래")와 모리타트(Moritat) 전통에 뿌리를 두면서도 프랑스 샹송과 미국 포크 음악 부흥에서 직접적인 영향을 받은 1960년대와 1970년대에는 리더마허(Liedermacher, "노래 만드는 사람")라고 불리는 독일어권 싱어송라이터 세대가 등장했다.[41] 서독 출신의 하네스 바더(Hannes Wader), 프란츠 요제프 데겐하르트(Franz Josef Degenhardt), 라인하르트 마이(Reinhard Mey), 콘스탄틴 베커(Konstantin Wecker), 동독 출신의 볼프 비어만(Wolf Biermann), 그리고 오스트리아 출신의 루트비히 히르슈(Ludwig Hirsch)와 게오르크 단처(Georg Danzer) 등이 그 예이다.[41] 내용과 스타일 면에서 리더마허는 정치적인 발라드부터 관찰적인 이야기와 러브송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여준다.[41] 가사는 종종 사회 불의, 군국주의, 소비주의, 환경 문제 또는 나치 과거의 영향과 같은 주제를 다루며, 기술 회의론과 반체제적인 견해를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41]

라인하르트 마이(Reinhard Mey), 2014

4. 9. 스웨덴

1960년대 중반, 스웨덴에서는 싱어송라이터의 스웨덴식 버전인 "트루바두르(trubadur)"의 부흥이 일어났다.[42] 코르넬리스 프리스빅과 프레드 악스트롬은 칼 미카엘 벨만과 에베르트 타우베와 같은 예술가들이 구분 지은 비사(visa)의 유산을 현대적인 발라드 기법과 결합하려는 노력에서 특히 영향력이 컸다.[42]

4. 10. 네덜란드

에데 스탈(바르품(Warffum))(1941–1986)은 네덜란드 북부 흐로닝언 출신의 가수 겸 작곡가로, 주로 흐로닝언 방언으로 노래를 불렀다.

5. 일본의 싱어송라이터 역사

5. 1. 전사(前史)

일본에서도 스스로 작곡한 곡을 직접 부르는 가수는 예전부터 있었다. 작사가이자 연주가였던 添田唖蝉坊도 넓은 의미에서는 싱어송라이터라고 할 수 있다.[69]

1930년대에는 엔카 가수 石田一松이 자작자연한 「酋長の娘」를 히트시켰다. 넓은 의미에서 본격적인 싱어송라이터의 시초라고 여겨지는 林伊佐緒는 1930년대부터 「出征兵士を送る歌」 등 자신의 곡 대부분을 스스로 작곡·노래했다.[70][71] 1950년대에는 大橋節夫가 자작곡을 불러 히트시키며 하와이안 붐의 선구자가 되었고, 1958년에는 「록빌리 3인조」라고 불린 平尾昌晃도 자작곡 「미요짱(ミヨちゃん)」을 히트시켰다.[70][71]

1960년대에는 森繁久彌, 加山雄三, 荒木一郎, 市川染五郎, 美輪明宏 등 인기 배우가 자작곡으로 히트를 내는 경우도 나타났다.[72] 가요곡에는 예전부터 레코드 회사와 프로덕션의 주도로 직업 작곡가가 만든 곡을 가수가 부르는 엄격한 분업 시스템이 있었지만,[62][73] 이들 가수에게도 음악적 재능이 있어 작곡 능력이 있었고, 인지도를 더해 자작곡을 발표할 수 있었다.[74] 가산웅삼(加山雄三)의 경우 자신의 주연작 『ハワイの若大将』의 극중가에 자작곡이 채택되어 히트한 후 자작곡을 많이 부르게 되었다.[75] 그러나 가산은 작곡만 스스로 하고 작사는 직업 작사가가 했기 때문에 그 대부분이 러브송이며 가요곡과 다를 바 없었다.[76]

후에 나타난 「포크 싱어」나 「싱어송라이터」는 반체제 노래나 비가요곡을 지향한 점과, "우리 자신의 말로 노래로 만들어 간다"며 자기 표현적인 가사에도 특징이 있었던 점에서 다르다.[77][78][79][80][81] 또한 음악적 기반도 가산은 그룹 사운즈이며 록에 가까웠고, 이것도 후의 「싱어송라이터」가 밥 딜런이나 PP&M 등 미국의 포크송을 기반으로 한 것과 다르다.[78][82] 가산 자신 "나는 배우다. 노래는 취미적인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으며,[84] 이 점에서도 그 후의 「싱어송라이터」와 계통적으로 연결되어 있지 않다고 말할 수 있다.[85] 荒木一郎는 "당시에는 나만이 순수하게 작사·작곡을 하고, 게다가 상업적이지 않았다. 그대로였다"라고 말하고 있다.[86]

岡林信康이나 吉田拓郎, 小室等, 井上陽水 등은 가산 등을 선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87][88][89] 小室等는 "히라오 씨 등 그런 사람들은 가요곡에 적극적으로 기대는 형태로 나타난 싱어송라이터였지만, 우리는 그 실을 끊었다. 그들과 다르다」「그 당시 포크송을 시작한 무리는 반상업주의였다"[89], 吉田拓郎는 "음악 세계에서 나의 선배들은 가요곡이나 그룹 사운즈다. 송라이팅은 하지 않는다. 일본 음악계에 관해서는 나의 위 세대는 없다. 내가 항상 처음이다"[88] 등이라고 말하고 있다. 1960년대 후반부터 나타난 포크 계열 싱어송라이터의 대부분은 기존의 가요곡과는 거의 무관한 활동에서 탄생한 사람들이다.[90]

5. 2. 1970년대 이후

「シンガーソングライター」という言葉が日本で認知され始めたのは、1972年の吉田拓郎の人気の急上昇以降である。[90][91][92][93] 『ニューミュージック・マガジン』1972年5月号には「今、シンガー=ソングライターって騒がれてる連中のやってる事は…」という内田裕也の発言が、[94] 同年7月発行の『爆発するロック』内の富澤一誠とかまやつひろしの対談では、富澤が「今話題のシンガー・ソングライターはどう思いますか?」と質問する場面がある。[95] 1973年「guts」1月号には、「1972年度、日本フォーク界の大きなニュース」として、「吉田拓郎、あがた森魚等のシングルヒットで、“シンガー・ソング・ライター”が日本の音楽界に注目される様になった」とある。[96][97] 吉田拓郎がヒット曲を連発すると、各レコード会社やプロダクションも競ってシンガーソングライターを発掘し始めた。[93][98][99]

1972年7月に荒井由実をデビューさせた村井邦彦は、「最初は作家として契約したが、シンガーソングライターの時代に変わりつつあったので、シンガーソングライターとしてデビューさせた」と述べている。[100] 当時は自作自演でヒットすることが珍しく、マスメディアも「シンガーソングライター」を大きく扱った。[101] 「シンガーソングライター」という言葉が使われ始めたのは1972年以降で、それ以前は「自作自演」という表現が使われていた。[85][102][103][104]

1970年代初めには、高石友也や岡林信康ら「自作自演」のフォークシンガーが若者の支持を得ていたが、マイナーレーベル所属だったため、レコードはあまり売れず、[105] 歌謡界を揺るがすほどではなかった。[77][106] しかし、その後の吉田拓郎や小椋佳、かぐや姫、井上陽水らは、テレビ出演を拒否し、アルバム制作とコンサート活動を重視する「自作自演」のフォークシンガーでありながら、メガヒットを記録し、演歌や歌謡歌手に曲を提供するなど、世間の注目を集め、既存の芸能界に影響を与えた。[62][77][81][108][109] 小室等、吉田拓郎、井上陽水、泉谷しげるの4名が自身のレコード会社「フォーライフ・レコード」を設立した1975年には、シンガーソングライターによるフォークがレコードシェアの4割近くを占めた。[110] このように、自分の言葉で、個性で、歌を歌い、表現するシンガーソングライターが若者の支持を得て定着した。[44][62][80][111][112] 彼らの多くがギターを弾きながら歌う「ソロフォークシンガー」だったため、「シンガーソングライター=フォーク系のソロシンガー」というイメージがついた。[99][108][113][114]

一方、当時は職業作詞家・作曲家と同レベルの曲を歌手が作れるとは考えられていなかった。内田裕也は、[94](シンガー=ソングライターは)「ロカビリーがだんだん歌謡曲になったのと同じ。長続きしないだろう」という趣旨の発言をし、富澤一誠とかまやつひろしの対談では、富澤が「作詞・作曲・歌の三つをこなすのは難しいのでは。それぞれプロがやった方が良いものが生まれると思う」と述べている。[95] 南こうせつ自身も「ブームが続くとは思わなかった」と述べており、[115] シンガーソングライターによるフォークブームは短命に終わるという見方もあった。しかし、1970年代に才能あるシンガーソングライターが多く続いたため、一時的なものではなく日本の音楽界のメインストリームとなった。[62][108][116][117][118]

特に1973年頃から、五輪真弓、金延幸子、りりィ、荒井由実、吉田美奈子、小坂明子、小坂恭子、中島みゆきらが頭角を現し、[44][119][120][121] ギターを持たずピアノを弾きながら歌うなどフォーク風でない人もいたため、彼女らを「女性フォークシンガー」と呼ぶのは難しく、「女性シンガーソングライター」という言葉が多く使われた。[99][118] これは「シンガーソングライター」という言葉の認知度向上に影響を与えたと考えられる。[122] ヤマハポピュラーソングコンテストの功績も大きい。[123][124] 「女性シンガーソングライター」の原型は、1967年に小薗江圭子の作詞に自ら曲をつけた「この広い野原いっぱい」でデビューした森山良子という見方もあるが、森山は職業作詞家・作曲家の作品や洋楽のカバーを歌うことが多く、1970年代半ばまで「歌謡歌手」というイメージがついていた。[44][125]

『guts』1972年8月号で、「座談会・72年前期日本のフォークの決算 市民権を得たばかりの新しい音楽は俺たちの手で守ろう」という対談が掲載され、[126] この中で「女性フォーク・シンガーが少ない理由」という話の流れで、レコーディングされる女性歌手が少ないという発言があり、「女性の場合、個性がない。キャロル・キングが流行ればみんなキャロルみたいになる」等と発言している。[126] 同記事で「72年版日本のフォーク&ロック・アルバムガイド…秀作30枚ピックアップ」という記事で、りりィのアルバム『たまねぎ』のレコード評に「日本では初めてといえる本格的な女性シンガー=ソング・ライターといえる りりィ」と書かれている。[127] その他、1972年にアルバムデビューした金延幸子、五輪真弓、りりィ、中山ラビ程度という見方もある。[121] 「女性シンガーソングライター」による最初の大ヒット曲は、ヤマハポプコン出身の小坂明子が1973年12月に発表した「あなた」である。[44][124] シンガーソングライターの台頭は、職業作詞家・作曲家の安定を揺るがす存在となり、[92][128] 歌謡歌手にも大きな影響を与えた。[129] 1970年代中盤になると、フォークという言葉では説明できない音楽が多くなり、フォークはニューミュージックという名称に吸収されていった。[117][130] 歌謡分野でも渡辺真知子のように自作曲で日本レコード大賞最優秀新人賞を受賞する人も現れた。1980年代以降には、シンガーソングライターの影響を受けた職業作詞家・作曲家が現れ始めた。[113][131] 現在の音楽界は、シンガーソングライターたちが成し遂げた変革の上に成り立っている。[107][111]

平尾昌晃は、「昭和40年代後半のアイドルブームに、海岸から大きな波が押し寄せていた。それが『フォーク・ブーム』である。吉田拓郎、井上陽水らのヒットをきっかけに、南こうせつやかぐや姫、グレープなど、抒情的なフォークソングもヒットし『昭和歌謡』の幅は広がった。この頃から、フォークソングはニューミュージックと呼ばれる時代に入ったと思う。私は作曲家で歌手だが、彼らの才能には感嘆した。何よりも、自作自演し、楽器を演奏しながら歌う彼らが一人ではなく、次々登場してきた。しかも彼らが歌う『結婚しようよ』や『傘がない』、『神田川』、『精霊流し』、『なごり雪』は名曲だった」と論じている。[132]

小西良太郎は、『スター』1975年1月号の記事で、[133] 1974年10月最終週のLPレコードの売り上げはフォーク勢が上位を独占し、シングルでも話題が豊富で、ガロ、かぐや姫、あのねのね、なぎらけんいち、海援隊、加藤登紀子、長谷川きよし、りりィ、山本コウタローとウィークエンド、NSP、ダ・カーポ、三輪車、チェリッシュ、吉田拓郎も健在で大盛況だったと述べている。それらの多くが自作自演であり、聴く若者たちと年齢的にも感性の点でも近いところにいるため、ファンの気持ちに合う割合が高いことが、ファン不在に近い歌作りに陥った歌謡プロデューサーの失点を挽回したと言える。ダークホースが大ヒットしたのが1974年のヒット曲の3分の1、中堅のヒットが3分の1、残りの3分の1がフォーク系という計算が成り立ち、フォークは流行歌世界の一大勢力に成長したと言える。70年安保を前に岡林信康や高石友也らによって芽生えたこのジャンルだが、最近のフォークの精神不在を嘆く声も出ている。しかし、重要なのは、ファンを掴み始めた「主流」を排斥するのではなく、それぞれの立場でフォークの意味を再確認し、その根源を振り返ることだと論じている。[133] この記事で小西は「ニューミュージック」という言葉を使っていないため、1974年末には音楽関係者の間でもまだ「ニューミュージック」という言葉は普及していなかったと考えられる。

最初は「歌謡の反テーゼ」としての意味が含まれていた「シンガーソングライター」という言葉だったが、ニューミュージックがフォーク以上に歌謡との区別が難しかったこともあり、1970年代後半には歌謡側の自作自演歌手を含め、自作の歌を歌う人はジャンルに関係なく「シンガーソングライター」と呼ばれるようになった。[134]

関ジョージは1977年デビュー時から「シンガーソング・コメディアン」と名乗り、[135] 1981年の週刊誌は俳優寺尾聰の大ヒットを「大人の味のあるシンガーソングライター」[136]、『南斗』という自作曲レコードを出したプロ野球選手松岡弘を「プロ野球界初のシンガーソングライター誕生!」と紹介した。[137] 戸田昭夫という本職が小学校の先生がレコードを出した時は「シンガーソングティーチャー登場」と書いている。[137] また「自作自演」という言葉より、「シンガーソングライター」という言葉が定着したため、簡単に「歌を作って歌う人」は全て「シンガー・ソングライター」、遡って、その人も昔に歌を作って歌ったから「シンガー・ソングライター」と言い始めたと考えられる。そのため、現在、先に挙げた人物の多くが文献やインターネットで「シンガーソングライター第1号」、「シンガーソングライターの元祖」などと紹介されている。[71][138]

先に述べたように「シンガーソングライター」という言葉が使われ始めたのは1971年、1972年以降で、この以前に活動した加山雄三や荒木一郎、1960年代後半に現れた高石友也や岡林信康らはリアルタイムでは「シンガーソングライター」と呼ばれず、後になってそう呼ばれるようになった。[60][72] 高石は「フォークシンガーです。と自己紹介をすると『シンガーソングライターでしょ?』と聞き返される。そんな大したもんじゃないんですけどね」と述べている。[139] 高石には「シンガーソングライター」という呼ばれ方には馴染みがなく違和感があるのか、商業的に大きな成功を収めた1970年代以降の(一部)「シンガーソングライター」は、自分たち「フォークシンガー」とは違うという意識があったのかもしれない。なぎら健壱は「(1970年代後半に出現したシンガーソングライター)と自分がやっていたフォークとの繋がりは感じられない。拓郎さんやかぐや姫には繋がりがあったかもしれないが、それがメジャーになり商業資本と結びつき大きな人気を得ていくに従い、フォークだった部分はなくなったと思う。アコースティックギターが入っていたり、曲調や歌の内容がそうであっても、精神自体がフォークではなくなったと思う」と述べている。[140]

現在「シンガーソングライター」を「歌手を兼ねる作曲家」と答える人はいないと思われるが、過去には違った。毎日新聞社が1978年に出した『別冊1億人の昭和史 昭和の流行歌手』という本に「最近はシンガー・ソング・ライターといって自作自演する人が増えたが、戦前はごくまれだった。特に作曲家が歌手を兼ねて両方ヒットするというのは全く珍しいことだった」という記録があり、ここで林伊佐緒を紹介している。[141] 林は作詞はしない作曲家兼歌手であり、「シンガー・ソング・ライター」と呼ばれる前は「自作自演歌手」は「作詞+作曲もする歌手」はもちろん「作曲のみする歌手」両方を指すものだったと考えられる。そして現在も「作詞と作曲のうち作曲のみしかしていない場合でも、一般的にはシンガーソングライターと呼ばれるのに対し、作詞のみしかしていない場合は、シンガーソングライターとは言わないことが多い」。[76]

「ヤマハポピュラーソングコンテスト」でプロデビューしたアーティストが所属したヤマハ音楽振興会(現ヤマハミュージックエンタテインメントホールディングス)は[142]、ゴダイゴなどが所属したABCプロモーションと共に、1979年所属アーティスト・歌手のレコード・テープ総売上高が1969年創立以来「タレント帝国」という名をほしいままにしてきた渡辺プロダクション(ナベプロ)を抜いて1位・2位になった。[142] これは芸能界支配構造の再編成を象徴する事件だった。[142] 莫大な利権構造を独占する大型芸能プロを中心とする芸能共同体に反旗を翻した最も有名な事件が、先に述べた1975年のシンガーソングライター4名によるフォーライフ・レコードの設立だが、[142] これをきっかけに芸能界の利権のメカニズムを知った多くのシンガーソングライターが、その後個人事務所などを設立した。[142] 世良公則&ツイスト(後にツイスト)は最初はヤマハに所属していたが、1979年9月にヤマハから独立し、個人事務所・MRT(ミュージシャン・レボリューション・トレイン)を設立した。[142] 出演契約の業務はヤマハに委託したが原盤権や著作権を自分で握り、人気自体は下降したが利益は莫大だったという。[142] シンガーソングライターはうまくいけば100%利益を独占できるという。[142] 当時公表されていた長者番付の歌手部門でニューミュージック系シンガーソングライターが上位を独占したのは、こういった事情があった。[142]

作詞と作曲のうち、作曲のみしかしていない場合でも、一般的にはシンガーソングライターと呼ばれるのに対し、作詞のみしかしていない場合は、シンガーソングライターとは言わないことが多い理由について、阿久悠は1985年の和田誠との共著の中で言及している。阿久悠は「GSが流行ってきてギターが普及して、素人が曲を作るようになりましたね。で、それからずーっとフォークの段階がきて、5年ぐらい前までは、やっぱり曲のほうが専門的で詞は誰でも書けるという意識があったわけです。字が書けますから。何となく詞らしきものはできる。その代わり、曲は専門的な知識とか才能が必要だって思い込みがあったんですけどね。近頃すっかり逆になってきちゃってね、曲の方が簡単になってきてるんですね。で、詞を書ける人がいないんですよ」と述べている[143]

シンガーソングライターが主流となった1980年代以降[144]はあまり見られなくなったが、かつてはラジオや歌謡誌などで一般(素人)から募集した詞に対して作曲家が曲を付けてプロの歌手が歌うということがよくあった。逆に素人から曲を募集して作詞家が詞を付けるということはなかった。こうした影響もあって、かつては作詞家は作曲家より下、「作詞だけする歌手」をシンガーソングライターとは呼べない、という感覚があったものと考えられる[145]

しかし2000年代頃からはむしろ作詞家が注目される機会が増えている[146][147]。と言うよりも、作曲家、歌い手の功績を無視して、作詞家が時代を創ったかのような論調が増えている。また古くから存在する「作曲だけする歌手」に比べ「作詞だけする歌手」の出現は比較的最近のことで、まだ評価が定まっていないとも考えられる。この「作詞だけする歌手」は、シングルレベルでは森高千里あたりが最初と思われ、森高の歌詞を当時のマスメディアがユニーク等と好意的に紹介したことも「作詞だけする女性歌手」のその後の急増に繋がったかも知れない。金澤寿和は「重要なのは、自己表現の手段として有効に機能しているか否か。シンガーなのだから、曲を書けるのが基本。森高千里のように、作詞はするが作曲は他人任せというケースは、広義ではシンガーソングライターに当てはまるものの、敢えてそう呼びたくない。つまり、音や旋律で自分を表現する欲求を持つのが、シンガーソングライターの第一歩。更に自分自身の言葉を持っていれば、それが理想的なシンガーソングライターということになる」などと論じている[44]。2013年『Disc Collection 日本の女性シンガー・ソングライター』という書は、「自身で作曲(作詞だけではなく)をしているシンガー」のみを掲載しており、「作詞だけするシンガー」をシンガー・ソングライターと認めていない[45]

1980年前後に"軟弱""ネクラ"などと世間から叩かれてイメージを悪くした「ニューミュージック」という言葉に比べると[148]、「シンガーソングライター」という言葉は好イメージが持続した[149][150]。1980年に突如、漫才ブームが勃興したが[151]、人気を集めた当時の(若手と表現された)B&B・ツービート・紳助・竜介たちは、それまでの漫才師が台本作家が書いたネタを演じていたのに比べて[149][152][153]、自分たちでネタを書いた[149][152][153]。これを当時のマスメディアが「彼らはそれぞれが自分たちで考えたネタで勝負。いわばシンガーソング・ライター。彼らの本音をぶつけたネタがヤングの共鳴を受けている」と、「シンガーソング・ライター」という言葉を自作自演の良い例えとして使用している[149]

また映画界でも1980年前後に日本映画界に石井聰亙や大森一樹ら、新しい才能が続々輩出された状況について、長谷川和彦と高林陽一は『キネマ旬報』1981年5月下旬号で、長谷川「音楽でいえば、フォークソングフォークとかニューミュージックと言われて、シンガーソング・ライターが出てきた状況と似ているんじゃないかね」、高林「僕はそっくりだと思う」などと述べている[150]

1970年代に「シンガーソングライター」という言葉は定着したものの、1980年代以降に言われ始めた「J-POP」というカテゴリーでは、自作自演であることが強調されなくなった時期もあった。ビーイングや小室哲哉、つんく♂等のプロデューサー主導による楽曲や、バンドブーム以降のロックバンドやヒップホップグループによるグループ単位での音楽活動が目立ったため、ソロシンガーのイメージがある「シンガーソングライター」とはあまり呼ばれなかったのかも知れない[44]。しかし現在のミュージシャンは大抵曲を自作しており、むしろ自分で曲を作らない人が少数派になっている[108][119]。宇崎竜童は「ここ20年くらいは、みんながシンガーソングライターになって、演歌以外は職業作家へのオファーが少なくなりましたね。『歌謡曲』というものは一回滅びたのかなと思います」と述べている[154]。「歌謡曲=流行歌」「昭和の流行歌=歌謡曲」「歌謡曲は昭和で終焉した」などと定義付けるなかにし礼は[155]、「アルファレコードの村井邦彦と川添象郎が松任谷由実をデビューさせたように、1970年代に少なからぬシンガーソングライターを世に送り出したのは、われわれの世代のクリエイターたちである。ところが送り出される当人たちは『自分たちのつくる自分たちの歌を歌いたい』と主張したという。その時代のムードにわれわれの生み出すヒット曲はそぐわないと、彼らは感じたのだろう(中略)そのうちのあるものは若者たちに熱狂的な支持を受けた。しかし、ではそこにどれだけの名曲があるかとなると、話は怪しくなる。フォークやニューミュージックは、一つのムーブメントをつくりはしたものの、そこから生まれる名曲はそれほど多くない(中略)たいていは一曲かせいぜい二曲であとが続かないのがシンガーソングライターの特徴と言えるかもしれない。一人ひとりはそれほど多くの名曲、ヒット曲を生み出したわけではなくとも、彼らの歌や社会に対する姿勢が、ひとかたまりのムーブメントとして意識されていたことは間違いない(中略)彼らが本当の意味において"自力"で自らの歌を世に送り出したかというと、そんなことはない。そもそもレコードをつくり、それを売るという作業は企業体がやる仕事であって、個人でやれることではない。要するに彼らは、全て自分の力でやっているというポーズをとった、新しいタイプのスターだったのである。彼らのヒット曲も、歌そのもののパワーというより"既成のものに媚びないシンガーソングライターとしての生き方"という一種のブランドによるところが大きかったのではないか、彼らの音楽活動を商売として支えたのは、芸能事務所とテレビ局が作った音楽出版社とレコード会社であった事実を忘れてはならない」などと述べている[155]

5. 3. 2000년대 이후

2000년대 무렵부터 텔레비전 아사히(テレビ朝日)의 『뮤직스테이션(ミュージックステーション)』은 자작곡을 직접 부르는 가수를 싱어송라이터로 소개하는 경우가 많아졌다.[156] 오리콘(オリコン)이 CD 판매 1위 기록을 “여성 싱어송라이터로서 ○○ 이래의 쾌거” 등으로 보도하거나,[156] 전문학교(専門学校)나 음악 스쿨에 “싱어송라이터과(シンガーソングライター科)” 등이 설치된 것은[157] “싱어송라이터”라는 말 자체가 정착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158] 일본경제신문(日本経済新聞)은 폴 매카트니(ポール・マッカートニー)를 “영국 싱어송라이터”라고 소개하고 있다.[161]

현재 젊은 가수들 중에는 직함을 “싱어송라이터 ○○”라고 칭하거나, “○살 때 싱어송라이터가 되겠다고 결심했다”, “평생 싱어송라이터” 등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많고,[162] 베테랑 뮤지션 중에서도 직함을 “싱어송라이터 ○○”라고 칭하는 사람이 늘어났다.[163] 2022년(2022年), 마쓰토야 유미(松任谷由実)가 문화공로자(文化功労者)로 선출되었는데, 문부과학성(文部科学省)은 마쓰토야의 “직명 등”에 “싱어송라이터”라고 적었다.[164]

라이브하우스(ライブハウス)나 스트리트 등에서 활동하는 아티스트(アーティスト) 중에도, 인디즈(インディーズ) 기획사에 소속되어 있든 아니든, 수많은 싱어송라이터라고 자칭하는 젊은이들이 있다. 이들은 자신의 연주와 노래로 메시지를 직접 관객에게 전달하며, 메이저 데뷔를 꿈꾸거나 취미로 활동하는 등 다양한 동기와 연령층을 보인다. 이러한 배경에는 인터넷(インターネット)을 통한 다양한 기술과 서비스에 의해 음악 배포(音楽配信)가 개인 또는 소규모 레이블 등의 수준에서 가능해진 것이 크게 작용했다.

엔카(演歌) 업계에서는 21세기(21世紀)에 들어와서도 작곡가(作曲家)·거장 가수에게 사사하는 등을 거쳐 데뷔(デビュー)라는 사실상의 도제 제도가 남아 있다. 요시 이쿠조(吉幾三)처럼 스스로 작사 작곡할 수 있는 일부 예외를 제외하면 많은 가수들이 베테랑(ベテラン)이 되어도 스승이나 외부에서 곡을 받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는 상태이다.

6. 싱어송라이터에 관한 피해

싱어송라이터로 활동하는 경우, 음악 업계에는 가짜 관계자나 악의를 가진 관계자가 다수 활동하며 꿈을 좇는 사람들을 이용하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51][52][53][54] 데뷔 제의를 해놓고 돈이나 성관계를 요구하는 가짜 프로듀서나 사기 레이블 등에 속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55][56] 싱어송라이터로서의 활동은 개인의 존재를 직접 사회에 드러내는 활동이므로, 악의를 가진 여러 사람이 접근하기 쉬운 상태에 있기 때문에, 먼저 제의를 받으면 의심하고, 그 자리에서 신뢰할 만한 증거를 제시하도록 요구하거나, 제의를 받은 후에도 스스로 상대의 행동을 관찰·조사하여 신뢰할 수 있는 인물·단체인지 여부를 생각해야 한다.[51]

7. 싱어송라이터의 진위

싱어송라이터로서의 활동은 누구든 쉽게 시작할 수 있지만, 본래는 직업인의 직함이기 때문에 스스로를 "싱어송라이터"라고 부르려면 객관적으로 인정받을 만한 실적이 요구된다.[46] 이는 연예 활동을 하더라도 작품 출연이나 동영상 재생 횟수 등의 실적이 없다면 연예인이라고 부를 수 없는 것과 같다.

작품의 질이 아마추어 수준으로 들어볼 가치가 없거나, 신원이 명확한 레코드 회사로부터 데뷔나 작품 판매량 등 객관적으로 인정받을 만한 실적이 없는 경우, 다른 사람들에게 "자칭 싱어송라이터"라고 불릴 가능성이 있다.[46] 활동이 사회적 영향력을 갖는 경우 연예인에 포함되지만, 무명이라면 일반인으로 취급될 수 있다.

제대로 된 직업인으로서의 싱어송라이터는 계약에 따라 계획적으로 작품을 제작하고, 사운드 디자인을 신중하게 고려하며, 매출이 부진하면 조기에 계약을 해지하고, 문제를 일으키면 즉시 계약을 해지하는 등 엄격한 실적주의 하에 활동한다. 반면, 아마추어 싱어송라이터(라고 자칭하는 사람)는 마감 기한 없이 즉흥적으로 작품을 만들기 시작하고, 사운드 디자인은 조잡하며, 발매 시기도 임의로 정하기 때문에, 서로 매우 다르다.[47]

아마추어의 경우 자기만족이 심하면, 다른 사람들로부터 평가받은 실적이 전혀 없는데도 프로가 된 척하거나, 음악조차 되지 않은 엉망인 음악을 공개하거나 라이브를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경우도 있다.[48][49] 또한, 실력이 없는데도 자신의 주의·신조를 최우선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의 지적을 받아들이지도 않고, 음악 학원에 다니는 등 전문가에게 음악의 기초를 배우려고 하지도 않는다. 급기야 기존의 음악 이론을 완전히 무시한 앞뒤가 맞지 않는 노래나 연주를 "틀에 얽매이지 않은 독창성"이라고 착각하고, 더욱 악순환에 빠져든다.[48]

따라서, 수준 낮은 아마추어는 다른 사람들의 평가로는 "착각하는 사람"이 되고, 라이브 하우스 등 라이브 공연장에서 앞뒤가 맞지 않는 노래나 연주를 한 결과, 출입 금지 처분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48] 다른 사람들의 평가를 중시하고 전략적으로 활동하는 프로 싱어송라이터들 사이에서도 실력과 매출에는 큰 차이가 있으며, 항상 대중매체에서 다루어지는 인기 싱어송라이터와 특정 계층에서만 인지도가 있는 간신히 프로로 남아 있는 사람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차이가 있다.[50] 싱어송라이터는 자기만족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매우 큰 격차가 있는 고된 직업이며, 상업적으로 성공하는 방법은 누군가 알려주는 것이 아니며, 업계 관계자나 고객으로부터 심한 비판을 받으면서 스스로 개선을 반복하는 등 힘든 영업 활동을 쌓아 올려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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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 서적 別冊一億人の昭和史 昭和の流行歌手 毎日新聞社
[142] 논문 岐路に立つ大手芸能プロダクションの内憂外患 噂の眞相
[143] 서적 A面B面 文藝春秋
[144] 서적 A面B面
[145] 웹사이트 さいたさいたちゅーりっぷの花 - 日本チューリップ協会公式サイト http://tulip.gr.jp/e[...]
[146] 뉴스 川内康範氏、独占手記「森は歌の心がわからない」 - ZAKZAK http://www.zakzak.co[...] ZAKZAK
[147] 웹사이트 佐野元春のザ・ソングライターズ - Moto's Web Server http://www.moto.co.j[...]
[148] 웹사이트 さだまさし 歌手生活40年…しんどかった「さだは暗い」批判【さだまさし】 https://jisin.jp/new[...] 光文社 2014-01-09
[149] 논문 本音で勝負する新人漫才ブーム 毎日新聞社
[150] 논문 【特別座談会】 自主映画の明日を語ろう キネマ旬報社
[151] 웹사이트 1980年「MANZAI」に賭けた男たち 鬱屈した野心の化学反応が、大革命を起こした https://business.nik[...] 日経BP 2016-05-03
[152] 논문 《総力テーマワイド特集》 紳助・竜介ほか『ザ・マンザイ』のTVではわからない全内幕 講談社
[153] 웹사이트 エンタツ・アチャコから知ってます、僕は。糸井重里 人生を変えた、 あの漫才。 https://brutus.jp/ar[...] マガジンハウス 2016-11-01
[154] 웹사이트 「作家で聴く音楽」 宇崎竜童 https://www.jasrac.o[...]
[155] 서적 歌謡曲から「昭和」を読む https://www.nhk-book[...] NHK出版
[156] 뉴스 YUI、女性シンガー・ソングライター2人目の5作連続首位 宇多田以来6年ぶりの快挙 https://www.oricon.c[...] ORICON STYLE
[157] 웹사이트 音楽学校 東京の音楽学校 英国音楽大学と提携 音楽専門校国立音楽院 http://www.kma.co.jp[...]
[158] 뉴스 鬼束ちひろ容疑者は「自称シンガー・ソングライター」? 朝日新聞が記事修正 https://www.j-cast.c[...] J-CASTニュース
[159] 뉴스 市井紗耶香5年ぶり子連れ復帰“モー烈”反響と不安 - 芸能 - ZAKZAK https://www.zakzak.c[...] ZAKZAK
[160] 뉴스 中村あゆみ 日本を代表する男性シンガーソングライターの名曲をカバー https://jisin.jp/ent[...] 女性自身
[161] 뉴스 ポールさん武道館公演 2年ぶり、ファン1万人熱狂 https://www.nikkei.c[...] 日本経済新聞社 2017-04-25
[162] 웹사이트 20100221|LIVE|阿部真央オフィシャルサイト http://abemao.com/li[...]
[163] 웹사이트 プロフィール |やもり(森山良子と矢野顕子)オフィシャルホームページ http://www.やもり.com/p[...]
[164] 웹사이트 令和4年度 文化功労者 https://www.mext.go.[...] 文部科学省 2022-11-03
[165] 웹사이트 =TOP=ofUEMURA KANA https://web.archive.[...]
[166] 웹사이트 Essential Folk Music Singer-Songwriters http://folkmusic.abo[...]
[167] 서적 The Pardon of the Singers Methuen
[168] 서적 Rainbow Quest: The Folk Music Revival & American Society, 1940–1970 https://archive.org/[...] University of Massachusetts Press
[169] 잡지 Why GarageBand Can't Make You a Rock Star https://www.theatlan[...] 2011-05-13
[170] 웹사이트 Erykah Badu http://www.venuszine[...] Venus Holdings 2008-06-01
[171] 웹사이트 Q&A With Bilal: The Return & Revenge of a Genre Blender https://www.ballerst[...] 2010-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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