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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미르 알무미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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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아미르 알무미닌(ʾAmīr al-Muʾminīn)은 아랍어로 "신실한 자들의 지휘관"이라는 뜻으로, 역사적으로 다양한 무슬림 지도자들에게 사용된 칭호이다. 이 칭호는 무함마드 시대의 군 지휘관에게 처음 사용되었으며, 두 번째 칼리프 우마르가 공식적으로 채택하면서 칼리프의 칭호로 자리 잡았다. 수니파 이슬람에서는 칼리프 자격을 주장하는 것과 동일시되었으며, 우마이야, 아바스, 파티마 칼리프조 등 주요 이슬람 왕조에서 사용되었다. 칭호는 지하드 지휘의 의미를 내포하며, 탈레반, 이슬람 국가 지도자 등 현대의 여러 인물들도 사용했다. 시아파에서는 알리에게만 적용되며, 이스마일파와 자이드파에서도 특정한 의미로 사용된다. 바하이 신앙에서도 알리를 칭하는 데 사용되었으며, 비무슬림 국가에서도 유사한 칭호가 사용된 사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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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미르 알무미닌
일반 정보
유형이슬람 칭호
어원아랍어
의미'신자들의 지도자 또는 사령관'
성별남성
동의어칼리파
용어
아랍어أَمِيْر ٱلْمُؤْمِنِيْن
로마자 표기ʾAmīr al-Muʾminīn
번역'신자들의 지도자 또는 사령관'
역사적 사용
사용 시작정통 칼리파 시대
주요 사용자정통 칼리파
우마이야 칼리파조
압바스 칼리파조
알모라비데 왕조
알모아데 왕조
무굴 제국
소코토 칼리파조
탈레반

2. 명칭

비록 어원적으로 ʾamīr|아미르ar (أَمِيْر|아미르ar)가 영어의 "지휘관"과 동일하지만, 역사적, 현대적 사용례가 매우 다양하기 때문에 여러 가지 번역이 가능하다. 그러나 역사가 H.A.R. 깁은 "신도들의 왕자"라는 번역은 "언어학적으로나 역사적으로나 정확하지 않다"고 조언한다.

3. 역사

ʾamīrar라는 칭호는 예언자 무함마드 생전에 무슬림 군 지휘관에게 사용되었으며, 알-카디시야 전투에서 무슬림 사령관도 이 칭호를 사용했다.[4] 634년에 즉위한 두 번째 칼리프 우마르(재위 634년~644년)는 이 칭호를 채택했다. 이는 군사적 함의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을 순종하고, 사도를 순종하며, 너희 가운데 지휘를 맡은 자들을 순종하라"는 쿠란의 명령(수라 4, 58–62절)에서 유래했을 가능성이 높다.[4]

프레드 M. 도너에 따르면, 이 칭호의 채택은 신생 무슬림 국가의 중앙 집권화에 중요한 사건이었다. 아미르 알무미닌은 확장되는 무슬림 제국의 중앙 권위자로 인정받아 장군과 총독 임명 및 해임, 주요 정치적 결정, 정복 전리품 분배 자격이 있는 무슬림 명단인 (دیوانar)을 유지하는 책임을 맡았다.[3] 우마르부터 이 칭호는 칼리프의 공식 칭호의 고정된 부분이 되었다.[4] 칼리프( خليفة|칼리파ar)라는 칭호는 우마이야 칼리프 압드 알-말리크 이븐 마르완(재위 685년~705년)의 통치 기간까지 채택되지 않은 것으로 보이며, 그는 제2차 피트나 이후 흔들린 자신의 입지를 강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 칭호를 채택했다.[3]

이후 '아미르 알무미닌' 칭호는 다양한 세력과 지도자들이 사용하였다.


  • 수니파에서는 칼리프 자격을 주장하는 것과 같았으며, 우마이야, 아바스, 파티마 등 주요 이슬람 왕조들이 사용했다.
  • 무슬림 세계 서부 지역의 지역 통치자들은 자신들의 독립적 권위와 정당성을 강조하기 위해 이 칭호를 채택했다. 코르도바의 우마이야 왕조는 928년에, 알-안달루스의 다른 몇몇 소규모 통치자들도 사용했다. 1253년부터 이프리키야하프스 왕조, 모로코의 마린 왕조, 사디 왕조와 현재의 알라위 왕조를 포함한 모든 모로코 왕조들이 무함마드의 후손이라는 점을 근거로 이 칭호를 주장했다.
  • 모로코 헌법은 여전히 아미르 알무미닌이라는 용어를 모로코 국왕의 주요 칭호로 사용하며, 이는 "[군주의] 패권적 역할과 상당한 헌법적 제약에서 벗어난 그의 지위를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사용된다.
  • (جِهَادar, "성전")에서의 지휘라는 함의를 유지해 왔으며, 초기 오스만 술탄과 현대까지 다양한 서아프리카의 무슬림 군벌들이 사용했다.
  • 무굴 제국아우랑제브와 코칸 칸국의 무함마드 우마르 칸도 이 칭호를 사용했다.
  • 1834년 압델카데르 엘 제자이리, 1836년 아프가니스탄 통치자 도스트 무함마드 칸이 시크 제국에 대항하여 지하드를 선포했을 때 이 칭호를 사용했다.
  • 티무르도 이 칭호를 사용했다.
  • 1931년 후세인 빈 알리가 알-아크사 사원 단지에 묻혔을 때, 그의 무덤에 "신실한 자의 사령관 후세인 빈 알리의 무덤"이라는 비문이 새겨졌다.
  • 1996년 탈레반 지도자 무함마드 오마르가 칸다하르에서 열린 슈라에서 이 칭호를 받았고, 이후 물라 아크타르 모하마드 만수르와 히바툴라 아쿤드자다가 이 칭호를 받았다.
  • 2005년 이슬람 국가 지도자 아부 오마르 알-바그다디가 2006년 이라크 이슬람 국가의 첫 번째 에미르로 임명된 후 이 칭호를 채택했다.

3. 1. 초기 이슬람 국가

ʾamīr al-Muʾminīnar(아미르 알무미닌)이라는 칭호는 예언자 무함마드 생전에 무슬림 군 지휘관에게 사용되었다. 634년에 즉위한 두 번째 칼리프 우마르(재위 634년~644년)는 이 칭호를 채택했는데, 이는 신생 무슬림 국가의 중앙 집권화에 중요한 사건이었다. 아미르 알무미닌은 확장되는 무슬림 제국의 중앙 권위자로 인정받아 장군과 총독 임명 및 해임, 주요 정치적 결정, 정복 전리품 분배 자격이 있는 무슬림 명단인 (دیوانar)을 유지하는 책임을 맡았다.[10] 우마르 이후 이 칭호는 칼리프의 공식 칭호의 고정된 부분이 되었다.

수니파에서 아미르 알무미닌 칭호의 채택은 사실상 칼리프 자격을 주장하는 것과 같았다. 그 결과, 이 칭호는 무슬림 공동체에 대한 보편적 지도권을 주장한 주요 이슬람 왕조들, 즉 우마이야, 아바스, 파티마에 의해 사용되었다.

3. 2. 수니파

ʾAmīr al-Muʾminīnar(아미르 알무미닌)이라는 칭호는 수니파에서 사실상 칼리프 자격을 주장하는 것과 같았다. 그 결과, 이 칭호는 무슬림 공동체에 대한 보편적 지도권을 주장한 우마이야, 아바스, 파티마 등 주요 이슬람 왕조들이 사용했다.[4] 수 세기 후, 특히 무슬림 세계 서부 지역의 지역 통치자들이 자신들의 독립적 권위와 정당성을 강조하기 위해 칼리프 지위를 사용하면서 이 칭호를 채택했다.[4]

코르도바의 우마이야 왕조는 928년에 이 칭호를 채택했고, 이후 알-안달루스의 다른 몇몇 소규모 통치자들도 사용했다. 1253년부터 이프리키야하프스 왕조가 칼리프 지위를 주장했고, 그 뒤를 이어 모로코의 마린 왕조가 따랐으며, 사디 왕조와 현재의 알라위 왕조를 포함한 모든 모로코 왕조들이 무함마드의 후손이라는 점을 근거로 이 칭호를 주장했다.[3][4] 모로코 헌법은 여전히 (아미르 알무미닌)이라는 용어를 모로코 국왕의 주요 칭호로 사용하며, 이는 "[군주의] 패권적 역할과 상당한 헌법적 제약에서 벗어난 그의 지위를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사용된다.[3]

동시에, 이 칭호는 (, "성전")에서의 지휘라는 함의를 유지해 왔으며, 칼리프 지위 주장을 반드시 함축하지 않고 역사를 통틀어 이와 같이 사용되어 왔다.[4][3] 초기 오스만 술탄이 이러한 의미로 사용했으며, 특히 1517년 아바스 왕조로부터 칭호를 빼앗은 후 칼리프 칭호를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현대까지 다양한 서아프리카의 무슬림 군벌들도 이 칭호를 사용했다.[4] 무굴 제국의 여섯 번째 황제인 아우랑제브[10] 코칸 칸국의 무함마드 우마르 칸도 이 칭호를 사용했다.[8]

1834년 압델카데르 엘 제자이리가 이 칭호를 사용했다. 1836년 아프가니스탄 통치자 도스트 무함마드 칸 역시 시크 제국에 대항하여 (지하드)를 선포했을 때 이 칭호를 사용했다.[3] 역사가 리처드 페넬에 따르면, 이러한 패턴은 (아미르 알무미닌)이라는 용어를 지역 통치자들에게 사용하여 광범위하고 절대적인 권위, 외국과의 관계 수행 권한, 샤리아 준수 및 비신자로부터 무슬림 영토 보호와 같은 의미를 부여한 것을 반영한다.[3] 티무르 (타메르레인)도 이 칭호를 사용했다.

1931년 후세인 빈 알리가 알-아크사 사원 단지 내에 샤리프 칼리프조로서 묻혔을 때, 그의 무덤 위 창문에 "이것은 신실한 자의 사령관 후세인 빈 알리의 무덤이다"로 번역되는 라는 비문이 새겨졌다.[1][2]

1996년, 탈레반 지도자 무함마드 오마르가 이 칭호를 채택했다.[3] 물라 무함마드 오마르는 1996년 4월 약 1000~1500명의 아프가니스탄 울라마칸다하르에서 소집한 슈라()에서 이 칭호를 받았다. 그는 대중 앞에서 무함마드의 망토를 전시했다. 이 칭호는 오마르의 아프가니스탄 지도력과 부르하누딘 라바니가 이끄는 정부에 대한 선포된 지하드를 정당화했다. 오마르는 여전히 그의 추종자들과 다른 지하디스트들, 특히 알 카에다 지도자 아이만 알-자와히리에 의해 (아미르 알무미닌)으로 불렸다. 물라 아크타르 모하마드 만수르는 물라 오마르의 후계자로, 2015년 7월 탈레반의 새로운 지도자로 임명되면서 이 칭호를 받았다.[6] 히바툴라 아쿤드자다는 세 번째 탈레반 최고 지도자로, 2016년 선출되면서 이 칭호를 받았고, 2021년 아프가니스탄의 지도자가 되었다.[9]

2005년, 이슬람 국가 지도자 아부 오마르 알-바그다디는 2014년 이슬람 국가가 칼리프 지위를 선포하기 9년 전에 이 칭호를 채택했다.[3] 아부 오마르 알-바그다디는 2006년 10월 무자헤딘 슈라 위원회에 의해 새로 선포된 이라크 이슬람 국가의 첫 번째 에미르로 임명된 후 이 칭호를 받았다.[7][5] 리처드 페넬은 이 칭호를 주장함으로써 그들이 잠재적인 "차기 칼리프"의 위치를 ​​차지했다고 언급했지만,[3] 현재로서는 그 칭호가 그들이 통제하는 지역에 대한 포괄적인 "활동가 권위"에 대한 주장을 표현하는 것에 불과했다.[3]

3. 3. 오스만 제국과 무굴 제국

오스만 제국의 술탄들은 초기부터 ʾAmīr al-Muʾminīnar(아미르 알무미닌)이라는 칭호를 사용했다. 특히 1517년 아바스 왕조로부터 이 칭호를 가져온 후에는 칼리프 칭호를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10] 무굴 제국의 여섯 번째 황제였던 아우랑제브도 이 칭호를 사용했다.[8]

3. 4. 근대

ʾamīr|아미르ar라는 칭호는 무함마드 생전에 무슬림 군 지휘관에게 사용되었고, 알-카디시야 전투에서 무슬림 사령관이 사용했다.[4] 634년에 즉위한 두 번째 칼리프 우마르는 이 칭호를 채택했는데, 이는 군사적 함의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을 순종하고, 사도를 순종하며, 너희 가운데 지휘를 맡은 자들을 순종하라"는 쿠란의 명령(수라 4, 58–62절)에서 유래했을 가능성이 높다.[4]

프레드 M. 도너에 따르면, 이 칭호의 채택은 신생 무슬림 국가의 중앙 집권화 단계에서 중요한 사건이었다. 아미르 알무미닌은 확장되는 무슬림 제국의 중앙 권위자로 인정받아 장군과 총독 임명 및 해임, 주요 정치적 결정, 그리고 정복 전리품 분배 자격이 있는 무슬림 명단인 dīwān|디완ar을 유지하는 책임을 맡았다.[3] 우마르부터 이 칭호는 칼리프의 공식 칭호의 고정된 부분이 되었다.[4] 칼리프(khalifa|칼리파ar)라는 칭호는 우마이야 칼리프 압드 알-말리크 이븐 마르완의 통치 기간까지 채택되지 않은 것으로 보이며, 그는 제2차 피트나 이후 흔들린 자신의 입지를 강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 칭호를 채택했다.[3]

수니파 사이에서, 아미르 알무미닌이라는 칭호의 채택은 사실상 칼리프 자격을 주장하는 것과 같았다. 그 결과, 이 칭호는 무슬림 공동체에 대한 보편적 지도권을 주장한 주요 이슬람 왕조들, 즉 우마이야],

3. 5. 현대

ʾAmīr al-Muʾminīnar(아미르 알무미닌)이라는 칭호는 수 세기 후, 특히 무슬림 세계 서부 지역의 지역 통치자들이 자신들의 독립적 권위와 정당성을 강조하기 위해 칼리프 지위를 사용하면서 채택되었다.[4] 코르도바의 우마이야 왕조는 928년에 이 칭호를 채택했고, 이후 알-안달루스의 다른 몇몇 소규모 통치자들도 사용했다. 1253년부터 이프리키야하프스 왕조가 칼리프 지위를 주장했고, 그 뒤를 이어 모로코의 마린 왕조가 따랐으며, 그 뒤를 이어 모든 연속적인 모로코 왕조들(마지막 두 왕조, 사디 왕조와 현재의 알라위 왕조) 또한 그들이 주장하는 무함마드의 후손이라는 점을 근거로 하여[3] 이 칭호를 주장했다.[4] 모로코 헌법은 여전히 (아미르 알무미닌)이라는 용어를 모로코 국왕의 주요 칭호로 사용하며, 이는 "[군주의] 패권적 역할과 상당한 헌법적 제약에서 벗어난 그의 지위를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사용된다.[3]

동시에, 이 칭호는 جِهَاد|지하드|성전ar에서의 지휘라는 함의를 유지해 왔으며, 칼리프 지위 주장을 반드시 함축하지 않고 역사를 통틀어 이와 같이 사용되어 왔다.[4][3] 그것은 초기 오스만 술탄에 의해 이러한 의미로 사용되었으며, 특히 1517년 아바스 왕조로부터 칭호를 빼앗은 후 칼리프 칭호를 거의 사용하지 않았고, 현대까지 다양한 서아프리카의 무슬림 군벌들에 의해 사용되었다.[4] 이 칭호는 무굴 제국의 여섯 번째 황제인 아우랑제브[10] 코칸 칸국의 무함마드 우마르 칸이 사용했다.[8]

압델카데르 엘 제자이리는 1834년에 이 칭호를 사용했다. 아프가니스탄 통치자 도스트 무함마드 칸 역시 1836년 시크 제국에 대항하여 jihād|지하드ar를 선포했을 때 이 칭호를 사용했다.[3] 역사가 리처드 페넬에 따르면, 이러한 패턴은 ʾAmīr al-Muʾminīn|아미르 알무미닌ar이라는 용어를 지역 통치자들에게 사용하여 광범위하고 절대적인 권위, 외국과의 관계 수행 권한, 샤리아 준수 및 비신자로부터 무슬림 영토 보호와 같은 의미를 부여한 것을 반영한다.[3] 티무르 (타메르레인)도 이 칭호를 사용했다.

후세인 빈 알리가 1931년 알-아크사 사원 단지 내에 샤리프 칼리프조로서 묻혔을 때, 그의 무덤 위 창문에 "이것은 신실한 자의 사령관 후세인 빈 알리의 무덤이다"로 번역되는 هَذَا قَبْرُ أَمِيرِ ٱلْمُؤْمِنِينَ ٱلْحُسَيْن بْنُ عَلِي|translit=Haḏa qabru ʾamīri ʾal-mūˈminīna ʾal-Ḥusayn bnu ʿAlīar라는 비문이 새겨졌다.[1][2]

1996년, 이 칭호는 탈레반 지도자 무함마드 오마르에 의해 채택되었다.[3] 물라 무함마드 오마르는 1996년 4월 약 1000~1500명의 아프가니스탄 울라마칸다하르에서 소집한 슈라(شُورَىٰ|슈라|assemblyar)에서 이 칭호를 받았다. 그는 대중 앞에서 무함마드의 망토를 전시했다. 이 칭호는 오마르의 아프가니스탄 지도력과 부르하누딘 라바니가 이끄는 정부에 대한 선포된 지하드를 정당화했다. 오마르는 여전히 그의 추종자들과 다른 지하디스트들, 특히 알 카에다 지도자 아이만 알-자와히리에 의해 ʾAmīr al-Muʾminīn|아미르 알무미닌ar으로 불렸다. 물라 아크타르 모하마드 만수르, 물라 오마르의 후계자는 2015년 7월 탈레반의 새로운 지도자로 임명되면서 이 칭호를 받았다.[6] 히바툴라 아쿤드자다, 세 번째 탈레반 최고 지도자 역시 2016년 선출되면서 이 칭호를 받았고, 2021년 아프가니스탄의 지도자가 되었다.[9]

2005년, 이슬람 국가 지도자 아부 오마르 알-바그다디는 2014년 이슬람 국가가 칼리프 지위를 선포하기 9년 전에 이 칭호를 채택했다.[3] 아부 오마르 알-바그다디는 2006년 10월 무자헤딘 슈라 위원회에 의해 새로 선포된 이라크 이슬람 국가의 첫 번째 에미르로 임명된 후 이 칭호를 받았다.[7][5] 리처드 페넬은 이 칭호를 주장함으로써 그들이 잠재적인 "차기 칼리프"의 위치를 ​​차지했다고 언급했지만,[3] 현재로서는 그 칭호는 그들이 통제하는 지역에 대한 포괄적인 "활동가 권위"에 대한 주장을 표현하는 것에 불과했다.[3]

4. 시아파의 관점

나자프의 알리 사원


시아파에서 '아미르 알무미닌'이라는 칭호는 알리에게 적용되는 경우가 있다.[1] 알리는 무함마드의 사촌이자 사위로, 시아파에서는 첫 번째 이맘이자 무함마드의 후계자로 여겨진다.

이스마일파 파티마 칼리프들은 이 칭호를 사용했으며,[3] 니자리 이스마일파에서는 항상 현재의 이맘을 가리킨다. 나시르 알딘 앗투시는 저서 ''여행''(Sayr wa-Suluk)에서 신자들의 마음은 꾸란뿐만 아니라 살아있는 이맘에게도 묶여 있으며, 그를 따르면 길을 잃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한다.[3]

자이드파에서는 이 칭호가 무력 투쟁의 지도력과 관련이 깊으며, 무력으로 권리를 주장하는 이맘의 권리를 의미했다. 이 칭호는 예멘 군주제가 끝날 때까지 자이드파 이맘들의 칭호 중 하나였다.

4. 1. 십이 이맘파

십이 이맘파는 이 칭호를 알리에게만 적용하며,[1] 그는 무함마드의 사촌이자 사위이며, 시아파에 의해 첫 번째 이맘으로 여겨지며, 무함마드의 공식적인 후계자로 지정되었다.

4. 2. 이스마일파

이스마일파 파티마 칼리파들은 그들의 칭호의 일부로 이 칭호를 사용했으며,[3] 니자리 이스마일파에서는 ʾAmīr al-Muʾminīn|아미르 알무미닌ar이 항상 현재의 시대의 이맘이다. 나시르 알딘 앗투시의 저서 ''여행''(Sayr wa-Suluk)에서 그는 신자들의 마음이 단지 명령 (기록된 말씀) 그 자체뿐만 아니라 신자들의 지도자에게 묶여 있다고 설명한다. 세상에는 항상 살아있는 이맘이 존재하며, 그를 따르면 신자는 결코 길을 잃지 않을 것이다.[3]

4. 3. 자이드파

자이드파 사이에서 이 칭호는 지하드|지하드ar의 지도력과 강한 연관성을 유지했으며, 따라서 무력으로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기 위해 나선 정당한 이맘의 권리였다. 이 칭호는 예멘 군주제가 끝날 때까지 자이드파 이맘의 칭호의 일부였다.

5. 비무슬림의 사용

바하이 신앙의 주요 신학 저서인 ''키타브-이-이칸''은 이슬람교의 예언자 무함마드의 사위인 알리에게 '신실한 자들의 사령관'이라는 칭호를 부여한다.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의 군주인 리투아니아 대공에게는 튀르크어족 언어를 사용했던 립카 타타르족이 이와 비슷한 칭호를 부여했다. "국부"라는 칭호는 "바타드"로 사용되었는데, 이는 "비이슬람 국가에서 무슬림의 권리를 옹호하는 자"를 의미했다. 대공국은 새로운 고향으로 여겨졌다. 바타드는 리투아니아어로 비타우타스, 폴란드어로는 Władysław의 변형으로 여겨졌으며, 킵차크 칸국과 폴란드(Lechistan) 및 리투아니아(Lipka) 국가 간의 외교 문서에서는 "다우드"로 알려졌다. 카지미에시 3세 이래로 폴란드 왕인 폴란드-리투아니아 군주는 유대인 및 기타 비기독교인의 권리를 보호하는 임무를 맡았다고 주장할 수 있다.

6. 대중문화

제임스 조이스의 1939년 소설 《피네건의 경야》 (34.6페이지)에서, 주인공에게 악의적인 소문을 퍼뜨리는 밀고자는 "Ibid, 공포의 지휘관"으로 묘사된다.

프랑스어 만화 시리즈 《이즈노구드》에서, 시리즈의 주인공 중 한 명인 칼리프 하룬 엘 푸사는 부하들로부터 종종 신도들의 지휘관(commandeur des croyants|코망되르 데 크루아양프랑스어)으로 불린다.[1]

마거릿 애트우드의 1985년 디스토피아 소설 《시녀 이야기》에서, 군국주의적 신정론인 가상의 길르앗 공화국 지도자들은 "충실한 자들의 지휘관"으로 불린다.[2]

참조

[1] 서적 La Mecque au XIVème siècle de l'Hégire / مكة في القرن الرابع عشر الهجري / 1964
[2] 서적 الشريف الحسين الرضي والخلافة لنضال داود المومني https://books.google[...] IslamKotob 2023-12-26
[3] 간행물 Salvation and Imamate http://dx.doi.org/10[...] Oxford University Press 2007-04-01
[4] Webarchive The Kitáb-i-Íqán PART ONE http://reference.bah[...] 2014-09-11
[5] 간행물 From Paper State to Caliphate: The Ideology of the Islamic State https://www.brooking[...] Center for Middle East Policy, Brookings Institution 2015-03
[6] 웹사이트 The Taliban's new leadership is allied with al Qaeda http://www.longwarjo[...] 2015-07-31
[7] 웹사이트 Controversy Grows Over Supposed Unity of Iraqi Mujahideen as Al-Qaida Announces Founding of Sunni Islamic State http://counterterror[...] Counterterrorism Blog 2006-10-15
[8] 서적 Latest History of the Khanates of Bokhara and Kokand https://books.google[...] Foreign Department Press 1876
[9] 웹사이트 Statement by the Leadership Council of Islamic Emirate regarding the martyrdom of Amir ul Mumineen Mullah Akhtar Muhammad Mansour and the election of the new leader http://shahamat-engl[...] 2016-05-25
[10] 서적 هندوستان ميں فارسى تاريخ نگارى: ٧١ويں صدى كے آخرى نصف سے ٨١ويں صدى كے پهلے نصف تک فارسى تاريخ نگارى كا ارتقاء https://books.google[...] Kanishka Publishing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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