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턴 라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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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앤턴 라베이는 1930년 일리노이주 시카고에서 태어나, 사탄교의 창시자이자 작가이다. 그는 다양한 악기를 연주하며 샌프란시스코에서 활동하다가, 1966년 사탄교회를 창립했다. 라베이는 《사탄의 성경》 등 여러 저서를 출판하며 사탄주의 철학을 제시했고, 초자연 현상 연구와 대중 매체 출연을 통해 대중적 인지도를 얻었다. 1997년 사망했지만, 그의 저서와 사상은 현대 사탄주의에 큰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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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턴 라베이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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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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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 하워드 스탠턴 레비 |
직업 | 작가, 음악가, 레비안 사탄주의자 |
종교 | 레비안 사탄주의 |
소속 | 사탄 교회 |
대표작 | 《사탄의 성서》 |
직함 | 사탄 교회의 창시자 겸 대제사장 |
개인 정보 | |
출생지 |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 |
사망지 |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 |
배우자 | 캐롤 랜싱 (1951년 결혼, 1960년 이혼) |
동반자 | 다이앤 헤거티 (1960년~1984년), 블랑쉬 바턴 (1984년~1997년) |
자녀 | 3명, 칼라 라베이, 제나 슈렉 포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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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애
어린 시절부터 바이올린, 드럼, 트롬본, 오보에, 피아노, 오르간 등 다양한 악기를 배우며 음악적 재능을 보였고, 16세에는 샌프란시스코 발레 교향 악단에서 오보에를 연주했으며, 이후 시의 공식 오르간 연주자로 활동하기도 했다.
본래 루터교 신자였으나, 청소년기에 여러 축제에서 오르간 연주자로 활동하며 기독교인들의 위선을 목격하고 환멸을 느꼈다고 전해진다. 또한 사자 조련사, 범죄 현장 사진사 등의 경험을 통해 인간의 어두운 본성에 주목하게 되었다.
이러한 경험과 사상을 바탕으로 1966년 4월 30일, 라베이는 사탄 교회(Church of Sataneng)를 창립했다. 그는 '교회'라는 명칭이 사회적 반감과 관심을 동시에 유발하여 조직의 성공에 도움이 될 것이라 판단했다. 사탄교는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모아 자연계에 존재하는 어둠의 힘, 즉 '사탄'으로 상징되는 힘을 일깨우고, 인간 내면의 참된 본능을 따르는 것이 잘못되지 않았음을 알리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이를 통해 사탄교는 인간의 이기심과 쾌락 추구를 긍정하는 최초의 대중적 종교 단체 중 하나가 되었다. 그의 핵심 사상은 대표 저서인 《사탄 성경》(The Satanic Bibleeng)과 《사탄 의식》(The Satanic Ritualseng)에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
2. 1. 초기 생애 (1930-1950)
앤턴 라베이는 1930년 4월 11일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에서 하워드 스탠턴 레비(Howard Stanton Levey)라는 이름으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마이클 조셉 레비(Michael Joseph Levey, 1903–1992)였고, 어머니는 거트루드 오거스타 콜트론(Gertrude Augusta Coultron)이었다. 라베이의 전기에 따르면 그는 프랑스인, 러시아인, 우크라이나인, 독일인, 루마니아인, 그루지아인, 알자스인의 혈통을 가졌다고 하나,[7] 다른 자료에서는 그의 조부모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출신 이민자로 1900년에 미국 시민권을 취득했다고 언급한다.그의 가족은 캘리포니아주로 이주하여, 그는 샌프란시스코 베이 에어리어에서 유년기를 보냈다. 부모는 그의 음악적 재능을 지지했으며, 그는 다섯 살 때부터 바이올린, 드럼, 트롬본, 오보에, 피아노, 오르간 등 다양한 악기를 접했다. 특히 피아노와 아코디언, 파이프 오르간, 칼리오페와 같은 건반 악기를 선호했다.[7][8] 어린 시절에는 침례교회에서 피아노를 연주했고, 16세에는 샌프란시스코 발레 교향 악단에서 오보에를 연주하기도 했다.[7][8]
그는 캘리포니아주 밀 밸리에 있는 타말파이스 고등학교에 다녔으나, 16세에 중퇴했다고 주장했다.[9][10] 이후 클라이드 비티 서커스와 카니발에 합류하여 처음에는 잡역부(짐꾼)로, 이후에는 맹수 조련 보조(cage boy)와 칼리오페 연주자로 일했다고 주장했다.[11] 그는 얼 헤이건의 "할렘 녹턴(Harlem Nocturne영어)"과 같은 곡을 연주했다고 한다.[12] 라베이는 카니발에서 토요일 밤의 저속한 쇼와 일요일 아침의 텐트 부흥회에 같은 사람들이 참여하는 것을 보며 기독교에 대한 냉소적인 시각을 갖게 되었다고 주장했다.[13] 그러나 언론인 로렌스 라이트의 조사에 따르면 라베이가 서커스에서 이러한 역할로 일했다는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다.[1][14]
1948년 겨울부터는 바, 라운지, 나이트클럽 등지에서 오르간 연주자로 활동하기 시작했다.[6][15] 그는 로스앤젤레스의 한 부르스크 극장에서 오르간을 연주할 당시, 마야 극장(Mayan Theater영어)의 무명 댄서였던 마릴린 먼로와 짧은 관계를 가졌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는 당시 먼로를 알던 지인들과 마야 극장 매니저 폴 발렌타인에 의해 반박되었는데, 발렌타인은 먼로가 극장의 댄서가 아니었으며 해당 극장이 부르스크 공연장으로 사용된 적도 없다고 밝혔다.[16]
이후 라베이는 샌프란시스코로 돌아왔고, 1950년에 캐롤 랜싱(Carole Lansing)을 만났다.
2. 2. 샌프란시스코에서의 활동 (1950-1966)
16살 때 샌프란시스코 발레 교향 악단에서 오보에를 연주했고, 얼마 후 샌프란시스코 시의 공식 오르가니스트가 되었다.본래 독실한 루터교 신자였으나, 청소년기에 여러 축제에서 오르간 연주자로 일하며 기독교도들의 위선에 환멸을 느꼈다고 한다. 특히 사자 조련사와 범죄 현장 사진사로 일하면서 인간의 사악한 면을 직접 목격하고 인간이 가장 악한 존재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샌프란시스코의 로스트 위크엔드 칵테일 라운지(Lost Weekend cocktail lounge영어)에서 울리처(Wurlitzer) 오르간 연주자로 활동했다. 초자연 현상 연구로 지역 명사가 된 라베이는 자신의 집에서 파티를 자주 열었는데, 이 모임에는 카린 드 플레신(Carin de Plessin영어), 인류학자 마이클 하너(Michael Harner), 체스터 A. 아서 3세(Chester A. Arthur III영어), SF 및 공포 문학 작가 포레스트 J. 애커먼, 판타지 소설가 프리츠 라이버, 세실 E. 닉슨 박사(Dr. Cecil E. Nixon영어), 실험 영화 감독 케네스 앵거 등 다양한 분야의 인물들이 참석했다.
1966년 4월 30일, 라베이는 사탄 교회(Church of Satan)의 창립을 선언했다. 그는 이 단체를 '교회'라 부르는 것이 다른 사회 조직들의 반감과 관심을 동시에 불러일으켜 오히려 성공의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 단체의 주된 목적은 비슷한 생각을 지닌 사람들을 모아, 자연계에 존재하는 어둠의 힘, 소위 '사탄'이라 불리는 힘을 일으키자는 것이었다. 라베이는 자신과 추종자들이 뿔과 꼬리가 달린 괴물이 아닌 평범한 인간임을 알림으로써, 인간 내면에 있는 참된 본능을 따르는 것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는 점을 알리려 했다. 이로써 사탄교는 자신을 이롭게 하고 즐기려는 본능이 부끄럽지 않다고 주장한 최초의 대중적 종교 단체 중 하나가 되었다. 자세한 교리는 그의 저서 《사탄 성경》(The Satanic Bible영어)과 《사탄 의식》(The Satanic Rituals영어)에 나와 있다.
2. 3. 사탄교회 창립 (1966-1997)
1966년 4월 30일, 발푸르기스의 밤에 앤턴 라베이는 자신의 머리를 삭발하는 의식을 거행하며 사탄교회(Church of Sataneng)의 창립을 공식적으로 선언했다. 그는 이 해를 사탄 시대의 원년, 즉 'Anno Satanaseng' 제1년으로 선포했다. 라베이는 이 단체를 "교회"라고 명명함으로써 사회의 이목을 끌고 논란을 일으키는 것이 오히려 성공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판단했다. 사탄교회의 주된 목표는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모아 자연계에 존재하는 어둠의 힘, 즉 "사탄"으로 상징되는 힘을 일깨우는 것이었다. 라베이는 자신과 추종자들이 뿔과 꼬리가 달린 악마가 아닌, 인간 본연의 욕망과 본능에 충실한 평범한 인간임을 강조하며, 이러한 본능을 따르는 것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다.[22]라베이는 초자연 현상 연구와 오르간 연주 활동을 통해 샌프란시스코 지역에서 이미 어느 정도 알려진 인물이었다. 그는 시체 안치소를 직접 몰고 다니거나 애완 동물로 흑표범 '졸탄'을 데리고 다니는 등 독특한 행보로 대중의 시선을 끌었다.[6] 그는 자신의 집에서 파티를 열어 카린 드 플레신, 마이클 하너, 체스터 A. 아서 3세, 포레스트 J. 애커먼, 프리츠 라이버, 세실 E. 닉슨, 케네스 앵거 등 샌프란시스코의 여러 유명 인사들과 교류했다. 이 모임은 '트라페조이드단'으로 발전했고, 훗날 사탄교회의 운영 조직이 되었다.[23] 사탄교회는 일관된 사탄 담론을 옹호하는 최초의 공개적이고 눈에 띄며 오래 지속되는 조직으로 평가받는다. 라베이는 이론보다는 실제적인 경험을 중시했으며, 종교, 철학, 심리학, 심지어 서커스 쇼맨십까지 다양한 요소를 혼합하여 독자적인 신념 체계를 구축했다. 그의 사상의 핵심은 자수성가 정신과 인간의 욕망을 긍정하고 활력 넘치는 삶을 추구하는 것이었다.
사탄교회 창립 이전부터 라베이는 오컬트와 의식에 관한 금요일 밤 강연을 진행하고 있었는데, 이 모임의 한 참석자가 그에게 새로운 종교를 창설할 것을 제안한 것이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다. 라베이의 외모는 메피스토펠레스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는데, 이는 사탄교회 창립 직전 방영된 TV 쇼 와일드 와일드 웨스트의 한 에피소드("The Night of the Druid's Blood")에서 배우 돈 리클스가 연기한 악마적 마법사 캐릭터 '아스모데우스'의 모습에서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사탄교회는 1967년 2월 1일, 언론인 존 레이먼드와 뉴욕 사교계 명사 주디스 케이스의 사탄주의 방식 결혼식을 주관하면서 큰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로스앤젤레스 타임스''와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 같은 주요 언론들은 그를 "Black Pope|검은 교황eng"이라 칭하며 보도했다. 라베이는 사탄교 방식의 세례식도 거행했는데, 특히 자신의 세 살배기 딸 지나 라베이에게 행한 세례는 세계적인 관심을 끌었으며, 그 과정은 ''The Satanic Mass''라는 제목의 LP 음반으로 녹음되기도 했다.[24][25][26][27] 그는 또한 해군 군인 에드워드 올슨의 장례식을 사탄교 방식으로 집례했으며, 이 역시 ''The Satanic Mass'' 음반에 기록되었다.
196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 초반에 걸쳐 라베이는 프리드리히 니체, 에인 랜드,[28] H. L. 멘켄, 잭 런던, 그리고 사회 다윈주의[29] 사상가들의 영향을 받아 사탄교의 교리를 체계화했다. 그는 라그나르 레드비어드의 저서 ''힘은 정의다''(Might is Righteng)의 내용을 발췌하여 해석하고, 존 디의 에녹어 체계를 사탄주의적으로 재해석한 글들을 발표했다. 이러한 저술들은 이후 《사탄 성경》(The Satanic Bibleeng), 《사탄 의식》(The Satanic Ritualseng), ''완전한 마녀''(The Complete Witcheng, 1989년 ''사탄적 마녀''(The Satanic Witcheng)로 재출간) 등의 책으로 출판되었다. 특히 《사탄 의식》에는 H. P. 러브크래프트의 크툴루 신화에서 영감을 받은 의식과 삽화가 포함되어 있는데, 이 삽화는 훗날 세트 사원을 창립하는 마이클 A. 아키노가 그린 것이다. 라베이는 ''힘은 정의다''를 인용한 것에 대해 "나에게 깊은 영향을 준 작가를 불멸화"시키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저서 출판과 언론 활동을 통해 라베이의 인지도는 더욱 높아졌다. 그는 ''Look'', ''McCall's'', ''Newsweek'', 타임 등 유력 잡지들과 인터뷰를 가졌고, ''Joe Pyne'', ''Phil Donahue'', 조니 카슨 등이 진행하는 유명 토크쇼에도 출연했다. 1970년에는 그의 활동을 다룬 장편 다큐멘터리 영화 ''Satanis: The Devil's Mass''가 제작되기도 했다. 이 시기 라베이는 사탄주의와 흑마술 분야에서 가장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인물로 자리매김했다.
1972년 무렵부터 라베이는 샌프란시스코의 블랙 하우스에서의 공개적인 활동을 줄이고, 대신 지역별 지부인 "grotto|그로토eng"를 통해 활동을 이어갔다. 1975년 초, 라베이는 금전적 기부를 통해 더 높은 단계의 사탄교 입문을 허용하는 정책을 발표했는데, 이는 내부적으로 논란을 일으켰다. 같은 해 6월, 사탄교 뉴스레터 편집자였던 마이클 A. 아키노는 이 정책에 반발하며 일부 신도들과 함께 교회를 떠나 독자적인 단체인 세트 사원을 창설했다. 그는 미지의 수의 반대자들이 그와 함께 떠났다고 주장했다. 사탄교 측은 이 정책 변경이 사탄 철학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회원들을 "정리"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라고 주장한다.[30]
이후 라베이는 세 번째이자 마지막 파트너인 블랑쉬 바튼을 만났고, 1993년 11월 1일 아들 Satan Xerxes Carnacki LaVey를 낳았다. 그는 1997년까지 사탄교회의 수장으로 활동했다.
2. 4. 사망
라베이의 세 번째이자 마지막 동반자는 블랑쉬 바튼이었으며, 1993년 11월 1일 두 사람 사이에서 아들 사탄 크세르크세스 카르나키 라베이가 태어났다.[32]가족들에 따르면, 앤턴 라베이는 1997년 10월 29일 샌프란시스코의 세인트 메리 메디컬 센터에서 폐부종(폐수종)으로 사망했다.[33][56] 그가 사탄교의 창시자임에도 불구하고 가장 가까운 병원이었던 가톨릭계 병원 세인트 메리로 이송되었다는 점 때문에 여러 추측이 있었다.[57] 그의 사망진단서에는 실제 사망일보다 이틀 늦은 1997년 10월 31일 (핼러윈) 아침으로 사망 날짜가 기록되었다.[34][57]
초청된 소수의 인원만 참석한 비밀 사탄교 장례식이 콜마에서 열렸으며, 이후 라베이의 시신은 화장되었다.[57] 라베이 사후, 블랑쉬 바튼이 사탄교회 지도자 자리를 잠시 맡았으나, 이후 그 역할을 피터 H. 길모어 마구스에게 넘겨주었다.[32][57]
1998년 2월 2일, 라베이와 별거 중이던 딸 지나 슈레크와 당시 그녀의 남편이었던 니콜라스 슈레크는 9페이지 분량의 문서를 통해 라베이가 자신의 삶에 대해 많은 부분을 꾸며냈다고 주장하며 비판적인 입장을 밝혔다.[35]
3. 사탄주의 철학
앤턴 라베이의 사탄주의 철학은 다양한 사상과 경험이 혼합된 결과물이다. 그는 젊은 시절 서커스와 카니발 등에서 활동하며 관찰한 인간의 이중적인 모습과 기존 종교에 대한 냉소적인 시각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철학을 구축하기 시작했다고 주장했다.[11][12][13] (다만 라베이의 서커스 경력에 대해서는 언론인 로렌스 라이트에 의해 반박된 바 있다.[1][14])
1966년 발푸르기스의 밤에 사탄교를 창립한 라베이는 프리드리히 니체, 에인 랜드,[28] H. L. 멘켄, 잭 런던, 사회 다윈주의[29] 등으로부터 받은 사상적 영향을 사탄교의 이념과 의식에 접목시켰다. 특히 개인의 욕망 충족과 지상에서의 삶을 중시하는 사상은 에인 랜드의 객관주의 철학에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라베이 사상의 핵심 목표는 "자수성가의 장치와 욕망에 기초한 탐닉과 활력 넘치는 존재"를 추구하는 것이었다. 이는 기존 종교의 금욕주의나 도덕적 제약에서 벗어나 개인의 자유로운 욕망 실현을 강조하는 급진적인 개인주의를 표방한다.
그는 라그나르 레드비어드(Ragnar Redbeard)의 저서 ''Might is Right|마이트 이즈 라이트eng''의 일부 내용을 발췌하여 자신의 저서에 포함시켰는데, 이는 그의 사상에 강한 개인주의와 엘리트주의적 요소가 있음을 시사한다. 또한 존 디의 ''Enochian Keys|에노키안 키스eng''를 사탄주의적으로 재해석하여 ''The Compleat Witch|더 컴플리트 위치eng''(1989년 ''The Satanic Witch|더 사타닉 위치eng''로 재출간)와 ''The Satanic Rituals|더 사타닉 리추얼스eng'' 같은 저서에 활용했다. ''사탄적 의식''에는 H. P. 러브크래프트의 작품에서 영감을 받은 의식도 포함되어 있다.
라베이는 자신의 저술에서 야지디교도나 템플 기사단과 같은 과거의 비밀주의 및 종교 단체들이 사탄주의 전통을 계승했다고 주장하기도 했으나, 학자들은 이러한 주장이 라베이 특유의 반어적이고 아이러니한 표현일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탄교 신자들은 이를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이기도 했다. 이는 라베이 사상 내에 존재하는, 권위 있는 사탄주의 선구자를 내세우려는 욕망과 스스로를 최초의 진정한 사탄주의 사회의 창시자로 여기려는 욕망 사이의 긴장감을 보여준다.
후기로 갈수록 라베이는 개인의 자율성에 대한 현대 사회의 영향력을 우려하며 음모론적인 시각을 공유했다. 그는 법과 질서를 존중하는 보수적인 태도를 보였으며, 우생학을 지지하고 미래 사회에 필요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록 음악이나 헤비 메탈 음악에 대해서는 그 내용과 관계없이 강한 혐오감을 표현하기도 했다.[2]
3. 1. 개인주의와 자유
앤턴 라베이는 프리드리히 니체, 에인 랜드,[28] H. L. 멘켄, 사회 다윈주의[29]와 같은 사상가들의 영향을 받아 사탄교의 이념과 의식을 형성했다. 특히 그는 개인의 욕망 충족과 현실에서의 삶을 중시하는 에인 랜드의 객관주의 철학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역사학자 페르 팍스넬드(Per Faxneld)와 예스페르 페테르센(Jesper Petersen)에 따르면, 라베이는 종교, 철학, 심리학, 심지어 카니발(또는 서커스) 쇼맨십까지 다양한 요소를 혼합하여 독특한 신념 체계를 구축했다. 그는 과학, 신화, 비주류 신념 등을 자유롭게 차용했으며, 그의 사상의 핵심 목표는 "자수성가의 장치와 욕망에 기초한 탐닉과 활력 넘치는 존재"였다. 이는 기존의 종교적 금욕주의나 도덕적 제약에서 벗어나 개인의 자유로운 욕망 실현을 강조하는 급진적인 개인주의 사상을 반영한다.
라베이는 라그나르 레드비어드(Ragnar Redbeard)의 저서 ''힘은 정의다''(Might Is Right)에서 일부 내용을 발췌하여 자신의 저서에 포함시키기도 했는데, 이는 그의 사상에 강한 개인주의와 엘리트주의적 요소가 있었음을 보여준다. 그는 이 책의 저자가 자신에게 깊은 영향을 주었기 때문에 그의 글을 인용했다고 밝혔다. 이러한 사상적 배경은 라베이가 사탄교를 통해 추구하고자 했던 개인의 해방과 자유의 의미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3. 2. 엘리트주의
앤턴 라베이는 사회 다윈주의의 영향을 받아 이를 사탄교의 이념과 의식에 결합시켰다.[29] 그는 또한 우생학을 지지했으며, 미래 사회에 우생학이 필요하게 될 것이라고 믿었다. 라베이는 록 음악이나 헤비 메탈 음악에 대해서는 "사탄교적" 가사의 유무와 관계없이 혐오감을 가지고 있었으며, 이를 자주 표현했다.[2]3. 3. 힘의 의지
1960년대 후반과 1970년대 초, 라베이는 프리드리히 니체, 에인 랜드,[28] H. L. 멘켄, 사회 다윈주의[29]로부터 받은 사상적 영향을 사탄교의 이념 및 의식과 결합했다. 그는 라그나르 레드비어드(Ragnar Redbeard)의 저서 ''힘은 정의다''(Might is Righteng)에서 발췌한 내용을 자신의 저서에 포함시켰다. 또한 존 디의 ''에녹의 열쇠''(Enochian Keyseng)를 사탄주의적으로 재해석하여 ''완전한 마녀''(The Compleat Witcheng, 1989년 ''사탄적 마녀''(The Satanic Witcheng)로 재출간)와 ''사탄적 의식''(The Satanic Ritualseng) 같은 책에 실었다. ''사탄적 의식''에는 H. P. 러브크래프트의 작품을 활용한 의식도 포함되어 있다. 라베이는 ''힘은 정의다''를 인용한 것에 대해 "나에게 깊은 영향을 준 작가를 불멸하게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3. 4. 반기독교적 관점
라베이는 젊은 시절 클라이드 비티 서커스와 카니발 등에서 일하면서, 토요일 밤의 음탕한 쇼와 일요일 아침의 텐트 부흥회에 같은 사람들이 참여하는 모순적인 모습을 목격했다고 주장했다.[11][12] 이러한 경험은 그가 기독교를 포함한 기존 종교에 대해 점점 더 냉소적인 시각을 갖게 된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그는 특히 독일어판 ''사탄의 성경''의 서문에서 이러한 경험이 자신이 기독교에 도전하게 된 주요 원동력이라고 밝혔으며,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이 보이는 도덕적 이중 잣대를 비판적으로 지적했다.[13] (다만, 언론인 로렌스 라이트는 라베이가 실제로 서커스에서 일했다는 주장을 뒷받침할 증거를 찾지 못했다고 반박했다.[1][14])4. 저서
1960년대 말부터 70년대 초, 라베이는 프리드리히 니체, 아인 랜드[55], H.L. 멘켄, 잭 런던과 같은 인물들의 사상에 영향을 받아 이를 사탄 교회의 이념과 의식에 도입하고 자신의 저술 활동에 반영했다.
그는 라그나르 레드베어드의 Might is Right|힘은 정의다영어를 인용하고 해석했으며, 존 디의 에녹어를 악마어 버전으로 각색한 소론을 발표했다. 이후 이러한 글들은 책으로 묶여 출판되었다. 대표적인 저서로는 1971년에 출간된 The Complete Witch영어 (1989년에 The Satanic Witch영어로 재발행됨)와 1972년에 출간된 The Satanic Rituals영어가 있다. 특히 The Satanic Rituals영어에는 H.P. 러브크래프트의 문학에서 영향을 받은 종교적인 그림이 수록되었는데, 이 그림은 후에 세트 사원을 설립한 마이클 A. 아키노가 그린 것이다.
5. 영향
앤턴 라베이는 사탄교를 창립하고 관련 저서를 출판하며 현대 사탄주의에 큰 영향을 미쳤다. 학자 페르 팍스넬드와 예스페르 페테르센에 따르면, 라베이가 창립한 사탄교는 "일관된 사탄 담론을 옹호하는 최초의 공개적이고 눈에 띄며 오래 지속되는 조직"으로 평가받는다. 라베이는 종교, 철학, 심리학, 카니발 문화 등 다양한 요소에서 영감을 받아 자신만의 신념 체계를 구축했으며, 이는 과학, 신화, 주변적 신념 등을 혼합한 형태였다. 그의 사상의 핵심 목표는 개인의 자수성가적 욕망에 기반한 탐닉과 활력 넘치는 삶의 추구였다.
1960년대 후반과 1970년대 초, 라베이는 프리드리히 니체, 에인 랜드,[28] H. L. 멘켄, 사회 다윈주의[29] 등의 사상적 영향을 사탄교의 이념 및 의식과 결합했다. 그는 라그나르 레드비어드의 저서 ''힘은 정의다''의 내용을 일부 차용하고, 존 디의 ''에녹의 열쇠''를 사탄주의적으로 재해석하여 ''완전한 마녀''(이후 ''사탄적 마녀''로 재출간)나 ''사탄적 의식''과 같은 저서를 집필했다. 특히 ''사탄적 의식''에는 H. P. 러브크래프트의 작품에서 영감을 받은 의식도 포함되어 있다. 라베이는 ''힘은 정의다''를 인용한 이유에 대해 "나에게 깊은 영향을 준 작가를 기리기 위해서"라고 밝혔다.
그의 저서, 특히 ''사탄의 성경''과 ''사탄의 의례''는 사탄교의 공식적인 회원 수를 훨씬 넘어서는 광범위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1995년 종교학자 그레이엄 하비는 영국 내에 사탄교의 조직적인 활동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라베이의 저서들이 서점에서 널리 유통되고 있음을 지적했다.
라베이는 저서를 통해 얻은 인지도를 바탕으로 Look, ''맥콜스'', ''뉴스위크'', ''Time'' 등 다수의 대중 잡지와 남성 잡지에 소개되었으며, ''조 파인 쇼'', ''도나휴'', ''더 투나잇 쇼''와 같은 유명 토크 쇼에도 출연했다. 1970년에는 그를 다룬 장편 다큐멘터리 ''사타니스''가 제작되기도 했다. 라베이는 영화 ''로즈메리의 아기'' 제작 당시 기술 자문을 맡았으며, 악마 역할로 카메오 출연했다고 주장했으나, 일부 비평가들은 이러한 주장이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하기도 했다.[51] 저널리스트 로렌스 라이트는 1991년 ''롤링 스톤'' 기사를 통해 라베이의 생애에 대한 여러 주장이 사실과 다름을 밝히기도 했다.[6]
학계에서도 라베이의 영향력은 중요하게 평가된다. 악마 숭배 연구가 가레스 J. 메드웨이는 라베이를 "타고난 쇼맨"이라고 묘사했으며,[21] 인류학자 장 라 퐁텐은 그를 "상당한 개인적 매력을 가진 다채로운 인물"로 평가했다. 페르 팍스넬드와 예스페르 아아가르드 페테르센은 라베이를 "사탄주의 환경에서 가장 상징적인 인물"로, 아스비욘 디렌델은 "현대 사탄주의의 창시자"로 규정했다. 사회학자 제임스 R. 루이스는 자신의 연구 결과가 "일관되게 라베이가 현대 사탄주의에 미치는 영향력의 중심성을 지적한다"고 언급하며, 라베이가 이전 사상가들에게 의존했음에도 불구하고 사탄주의를 단순한 문학적 흐름이 아닌 실제적인 종교 운동으로 발전시킨 핵심 인물이라고 결론지었다.[5]
라베이의 사상은 다른 인물이나 단체에도 영향을 미쳤다. 예를 들어, 기독교에 반대하며 새로운 종교 사상을 찾던 제임스 매돌은 파시즘과 사탄주의의 결합에 매력을 느껴 라베이와 교류했다. 니콜라스 굿릭-클라크에 따르면, 전직 보안 에셜론(SE) 사령관 제임스 와그너는 전미 르네상스당(NRP)과 사탄교의 관계가 우호적이었으며, 매돌과 라베이가 자주 만났다고 회상했다.[36] 한편, 1975년 사탄교 내부에서는 금전적 기여에 따른 상위 입문 자격 부여 문제로 갈등이 발생하여, 당시 뉴스레터 편집자였던 마이클 아퀴노가 일부 회원들과 함께 탈퇴하여 세트 사원을 창설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6. 비판과 논란
앤턴 라베이의 생애와 주장에 대해서는 여러 비판과 논란이 제기되었다. 특히 언론인 로렌스 라이트는 1991년 ''롤링 스톤'' 잡지에 게재된 기사에서 탐사 보도를 통해 라베이가 스스로 밝힌 삶의 여러 부분이 사실과 다르다는 점을 지적했다.[1]
라이트의 조사에 따르면, 라베이가 주장한 클라이드 비티 서커스에서의 경력(음악가 또는 우리 안의 소년)[14], 샌프란시스코 경찰국(SFPD) 사진사 경력[17] 등은 관련 증거를 찾을 수 없었다.[1] 라베이는 젊은 시절 로스앤젤레스의 한 부르스크 극장에서 오르간을 연주하며 당시 무명이었던 마릴린 먼로와 짧은 관계를 가졌다고 주장했으나, 이는 당시 먼로를 알던 사람들 및 해당 극장의 매니저에 의해 반박되었다.[16] 또한 SFPD로부터 의뢰받아 초능력 수사관으로 활동했다는 주장 역시 뒷받침하는 기록이 없다.[1][18]
라베이는 영화 ''로즈메리의 아기'' 제작 당시 기술 컨설턴트로 참여하고 악마 역할로 카메오 출연했다고 주장했지만, 비평가들은 이 역시 사실이 아니라고 지적한다.
사탄교 운영과 관련해서도 논란이 있었다. 1975년, 라베이는 금전적 기여를 대가로 더 높은 등급의 입문을 허용하는 정책을 발표했는데, 이는 일부 구성원들의 반발을 샀다. 이 시기 교회의 뉴스레터 편집자였던 마이클 아퀴노는 라베이의 철학에 반대하며 사탄교를 떠나 세트 사원을 창설했다. 교회 측은 이 정책이 사탄 철학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구성원들을 걸러내기 위한 조치였다고 해명했다.[30]
라베이의 사상과 태도 역시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그는 우생학을 지지했으며 미래 사회에 필요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사회 변화에 대한 음모론적 시각을 드러내기도 했으며, 록 음악과 헤비 메탈 음악에 대해서는 혐오감을 자주 표현했다.
한편, 라베이는 파시즘 성향의 인물인 제임스 매돌과 교류했으며, 이들의 관계는 매돌이 속했던 전미 르네상스당(National Renaissance Party, NRP)과 사탄 교회 간의 우호적인 관계로 묘사되기도 했다. 매돌과 라베이는 뉴욕의 NRP 사무실 등에서 자주 만난 것으로 알려졌다.[36] 이러한 관계는 라베이와 사탄주의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강화하는 요인이 되었다.
7. 대중문화 속 앤턴 라베이
라베이는 저서를 통해 인지도가 높아지면서 ''Look'', ''맥콜스'', ''뉴스위크'', ''Time''과 같은 대중 잡지와 남성 잡지를 포함한 여러 매체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그는 ''조 파인 쇼'', ''필 도나휴 쇼'', ''더 투나잇 쇼''와 같은 토크 쇼에도 출연했다.
라베이는 여러 영화 및 다큐멘터리에 직접 출연하거나 제작에 참여했다.
- 1969년 단편 영화 Invocation of my Demon Brother영어에 사탄 역으로 크레딧 없이 출연했다.
- 1970년 장편 다큐멘터리 ''Satanis: The Devil's Mass''에 출연했다. 이 작품은 2003년 Something Weird Video영어에서 DVD로 발매되었다.
- 1975년 영화 The Devil's Rain에서는 기술 고문으로 참여하고 대사제(High Priest영어) 역으로 직접 출연하기도 했다.
- 1977년 영화 The Car와 1981년 영화 Doctor Dracula영어(또는 Svengali영어)에서 기술 고문으로 참여했다.
- 1989년 다큐멘터리 Charles Manson Superstar영어에 리서치 컨설턴트로 참여했으며, 같은 해 다큐멘터리 Death Scenes에서는 내레이션을 맡았다.
- 1995년 다큐멘터리 Speak of the Devil영어에도 출연했다.
그는 영화 ''로즈메리의 아기''(1968)의 기술 자문을 맡고 악마 역으로 카메오 출연했다고 주장했으나, 비평가들은 이를 사실이 아니라고 본다.
다른 미디어 작품에서 라베이가 묘사되기도 했다.
- 2018년 TV 시리즈 ''아메리칸 호러 스토리: 아포칼립스''의 에피소드 Return To Murder House영어에서는 배우 카를로 로타가 라베이를 연기했다. 사탄교 측은 이 묘사가 라베이를 문자 그대로의 사탄을 숭배하는 인물로 왜곡했다며 비판했다.[37]
- 영화 ''폴란스키 언오서라이즈드''(Polanski Unauthorized영어)에서는 배우 톰 드루일헤트가 ''로즈메리의 아기'' 제작 당시 로만 폴란스키 감독에게 조언하는 라베이 역을 연기했다.[38]
라베이에 대한 공식적인 전기 두 권이 출판되었다: 버턴 H. 울프의 The Devil's Avenger영어(악마의 복수자, 1974)와 블랑쉬 바튼의 ''사탄주의자의 은밀한 삶''(The Secret Life of a Satanist영어, 1990)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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