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쓰미 데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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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우쓰미 데쓰야는 일본의 프로 야구 선수로, 좌완 투수로서 활약했다. 쓰루가 게히 고등학교 시절부터 '호쿠리쿠 3인방'으로 불리며 유망주로 주목받았고, 2000년 드래프트에서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지명을 받아 입단했다. 2006년부터 요미우리의 에이스로 성장하여 2011년과 2012년에는 2년 연속 최다승을 기록했으며, 2013년에는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일본 대표로도 참가했다. 2018년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스로 이적하여 2022년 은퇴할 때까지 선수 생활을 이어갔으며, 은퇴 후에는 팜 투수 코치를 거쳐 2023년부터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1군 투수 코치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통산 2000이닝 투구를 달성했으며, 사회 공헌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골든 스피릿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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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쓰미 데쓰야 - [인물]에 관한 문서 | |
|---|---|
| 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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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생일 | 1982년 4월 29일 |
| 출생지 | 일본 교토부 조요시 |
| 신장 | 186cm |
| 체중 | 92kg |
| 포지션 | 투수 / 코치 |
| 투구 / 타석 | 좌투 / 좌타 |
| 선수 경력 | |
| 고등학교 | 쓰루가기히 고등학교 |
| 사회인 | 도쿄 가스 |
| 프로 | 요미우리 자이언츠 (2004년 ~ 2018년)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스 (2019년 ~ 2022년) |
| 코치 경력 | |
| 드래프트 정보 | |
| 드래프트 년도 | 2003년 |
| 드래프트 순위 | 자유 획득 범위 |
| NPB 데뷔 | |
| 데뷔일 | 2004년 5월 25일 |
| 마지막 출장 | 2022년 9월 19일 (은퇴 경기) |
| 등번호 | |
| 선수 | 77 |
| 국가대표 | |
| 대표팀 | 일본 |
|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 2009년 2013년 |
| 개인 성적 (NPB) | |
| 승-패 | 135승 104패 |
| 평균 자책점 | 3.24 |
| 탈삼진 | 1,519개 |
| 수상 내역 | |
| 일본 시리즈 우승 | 2009년 2012년 |
| 일본 시리즈 MVP | 2012년 |
2. 프로 입단 전
쓰루가 게히 고등학교 시절 다나카 료헤이, 모리 다이스케와 함께 ‘호쿠리쿠 3인방’으로 불리며 주목받았다. 1999년 추계 후쿠이 현 대회와 호쿠신에쓰 대회에서 우승하며 이듬해 선발 고등학교 야구 대회 진출을 확정지었다. 메이지 진구 야구 대회에서는 컨디션 난조에도 불구하고 팀은 준우승을 차지했다. 그러나 제72회 선발 고등학교 야구 대회 직전 동료 선수 나카자와 다다아쓰의 음주운전 사고로 인해 고시엔 대회 출전이 좌절되었다.[5]
고교 3학년 여름, 전국 고등학교 야구 선수권 후쿠이 대회 결승전에서 야마기시 미노루, 아마야 소이치로가 소속된 후쿠이 상업고등학교에 패하며 고시엔 진출에 실패했다. 하지만, 뛰어난 탈삼진 능력을 바탕으로 '호쿠리쿠의 닥터 K'라는 별명을 얻으며 프로 구단의 주목을 받았다.[104]
2000년 프로 야구 드래프트를 앞두고, 요미우리 자이언츠 외 구단 지명 거부 의사를 밝혔다. 오릭스 블루웨이브의 1순위 지명에도 불구, 요미우리 입단 의지를 굽히지 않고 도쿄 가스에 입단했다. 사회인 야구 시절에는 가쓰키 료타, 모리 다이스케와 함께 ‘3인방’으로 불렸다.
2. 1. 유소년 시절
쓰루가 게히 고등학교의 에이스 좌완 투수로서 활약하며 주목받았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다나카 료헤이, 모리 다이스케와 함께 ‘호쿠리쿠 3인방’이라고 불렸다.[104] 나카자와 타다히로나 이경일 등과 함께 1999년 가을 후쿠이 대회·호쿠리쿠 신에쓰 대회에서 우승하여 이듬해 선발 고등학교 야구 대회 출전을 확정지었다. 제30회 메이지 신궁 야구 대회에서는 컨디션이 좋지 않았지만, 강력한 타선의 지원으로 준우승했다. 제72회 선발 고등학교 야구 대회에 출전이 결정되어 우승 후보로 거론되었지만, 다른 부원의 불상사로 인해 쓰루가 게히 고등학교는 고시엔 출전을 거부했다.[5]고3 여름 후쿠이 대회 예선에서는 타선의 중심이었던 나카자와가 퇴부하여 전력이 약화된 영향으로, 첫 경기에서는 후쿠이 고등학교, 준결승에서는 와카사 고등학교를 상대로 모두 연장전을 제압하여 간신히 승리했지만, 결승에서는 야마기시 조, 아마야 소이치로를 거느린 후쿠이 상업고등학교를 상대로 연장 10회 말 2-3으로 아쉽게 패배하여 고시엔 출전은 이루지 못했다.[5] 한신 타이거스 스카우트에게 "고등학생은 칠 수 없다"라고 평가받은 낙폭이 큰 커브와 좋은 체격에서 던지는 각도가 있는 최고 속도 144km의 속구의 완급 조절로 삼진의 산을 쌓았다. 1경기 평균 14개 이상의 탈삼진율을 자랑하며 "호쿠리쿠의 닥터 K"라는 이명을 얻었다.[104]
2000년 드래프트 회의에서는 여러 구단의 1위 지명 경쟁이 확실시되었지만, 조부 우쓰미 이소오가 요미우리의 야수였던 것도 있어, 드래프트 직전에 요미우리 이외의 지명은 거부할 것을 표명했다. 그 때문에, 드래프트 회의에서는 요미우리가 단독으로 3위 이후에 지명할 것으로 예상되었지만, 오릭스 블루웨이브가 1위 지명했다. 지명 직후 당시 감독 오기 아키라로부터 전화를 받는 등 하여, 한때 오릭스 입단을 생각했지만, 고등학교 시절 배터리를 이루었던 리 게이이치가 요미우리에서 8위로 지명되면서 반대로 요미우리로의 마음이 강해져, 최종적으로 도쿄 가스로 진출했다. 사회인 시절에는 가쓰키 료타, 모리 다이스케와 함께 ‘삼우 유리’라고 불렸다.[104]
2003년의 제74회 도시 대항 야구 대회에 시다 믹스의 보강 선수로 출전하여 준우승했다. 같은 해 드래프트 회의에서 요미우리가 자유 획득 틀로 교섭권을 획득하여 입단했다. 등번호는 조부와 같은 26으로 결정되었다.[7]
2. 2. 고교 시절
쓰루가 게히 고등학교의 에이스 좌완 투수로 활약하며 세간의 주목을 받았고, 고교 시절에는 다나카 료헤이, 모리 다이스케와 함께 ‘호쿠리쿠 3인방’이라고 불렸다. 1999년 추계 후쿠이 현 대회와 호쿠신에쓰 대회에서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고, 다음 해인 2000년 선발 고등학교 야구 대회 진출을 확정지었다. 메이지 진구 야구 대회에서는 컨디션이 좋지 않았지만 타선의 지원을 받아 준우승을 차지했다. 제72회 선발 고등학교 야구 대회에서도 유력한 우승 후보로 거론되었지만, 대회 직전 동료였던 나카자와 다다아쓰가 무면허 및 음주운전 사고를 일으켜 쓰루가 게히 고등학교는 고시엔 대회 출전을 포기했다.[5]고교 3학년 때 하계 예선에서는 컨디션 난조로 뚜렷한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고, 전국 고등학교 야구 선수권 후쿠이 대회 결승전에서는 야마기시 미노루, 아마야 소이치로가 소속된 후쿠이 상업고등학교와의 경기에서 연장 10회말에 2대 3으로 패하며 고시엔 대회에 출전하지 못했다. 그러나 한신 타이거스 스카우트는 우쓰미의 활약에 주목했고, 1경기 평균 14개를 넘는 탈삼진율을 자랑하는 등 ‘호쿠리쿠의 닥터 K’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다.
2. 3. 드래프트와 사회인 야구
쓰루가 게히 고등학교의 에이스 좌완 투수로서 활약하며 세간의 주목을 받았고, 고교 시절에는 다나카 료헤이, 모리 다이스케와 함께 ‘호쿠리쿠 3인방’이라고 불렸다.[104] 1999년 추계 후쿠이 현 대회와 호쿠신에쓰 대회에서 팀의 우승을 이끌었고, 다음 해인 2000년 선발 고등학교 야구 대회에 진출을 확정지었다. 제72회 선발 고등학교 야구 대회에서도 유력한 우승 후보로 거론되었지만, 대회 직전 동료였던 나카자와 다다아쓰가 무면허 상태에서 차를 몰고 가다 음주운전 사고를 일으켜 이 사건으로 인해 쓰루가케히 고등학교는 고시엔 대회 출전을 포기했다.[104]고교 3학년 때 하계 예선에서는 컨디션이 좋지 않아 뚜렷한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고, 전국 고등학교 야구 선수권 후쿠이 대회 결승전에서는 야마기시 미노루, 아마야 소이치로가 소속된 후쿠이 상업고등학교와의 경기에서 연장 10회말에 2대 3으로 패하는 등 고시엔 대회에 출전하지 못했다.[104] 그러나 한신 타이거스 스카우트는 우쓰미의 활약상에 주목했고, 1경기에서 평균 14개를 넘는 탈삼진율을 자랑하는 등 ‘호쿠리쿠의 닥터 K’라는 별명이 불리기도 했다.[104]
2000년 프로 야구 드래프트에서는 복수 구단에 의한 1순위 지명에서의 쟁탈전이 확실시되고 있었지만, 그의 조부인 우쓰미 이소오가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야수로 활약했던 적도 있어 드래프트 직전에 요미우리 이외로부터의 지명을 거부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104] 그 때문에 2000년 드래프트 회의에서는 요미우리가 단독으로 3순위 이후에 지명하는 것이 상정되었지만, 오릭스 블루웨이브가 1순위로 지명했다.[104] 지명 직후에 오기 아키라 감독으로부터 전화를 받는 등 한때는 오릭스의 입단으로 기울었지만, 고교 시절에 함께 배터리를 짰던 리 게이이치가 요미우리로부터 8순위로 지명됨에 따라 다시 오릭스에 입단을 거부하겠다는 자세를 굳혀 최종적으로는 사회인 야구팀인 도쿄 가스에 입단했다.[104] 사회인 시절에는 가쓰키 료타, 모리 다이스케와 함께 ‘3인방’이라고 불리고 있었다.[104]
2003년에는 자유 획득 범위로 요미우리에 입단, 등번호는 조부와 똑같은 26번으로 정해졌다.[104]
3. 프로 선수 경력
2000년 드래프트에서 오릭스 블루웨이브가 1순위로 지명했지만 입단하지 않고, 2003년까지 도쿄 가스에서 뛰었다. 2003년 드래프트에서 요미우리 자이언츠에 지명되어 입단했다.[1]
2018년 12월 20일, 스미타니 긴지로의 FA 보상 선수로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스로 이적했다.[2][3]
3. 1. 요미우리 자이언츠 시절 (2004-2018)
우쓰미 데쓰야는 2006년부터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주축 투수로 성장했다. 2007년 처음으로 개막전 선발 투수를 맡아 승리 투수가 되었고, 최다 탈삼진 타이틀을 획득하며 팀의 에이스로 자리매김했다. 2008년에는 부상으로 시즌 초반 결장했지만, 복귀 후 12승을 거두며 팀의 리그 우승(메이크 레전드)에 기여했다.2009년에는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 일본 대표로 선출되었지만, 제구 난조로 1경기에만 등판하고 강판되었다. 시즌에는 부침을 겪으며 4년 연속 두 자릿수 승리 달성에 실패했지만, 팀은 리그 3연패를 달성했다.
2010년 선수 회장으로 취임했고, 2년 만에 두 자릿수 승리(11승)를 거두었다. 2011년에는 18승을 거두며 다승왕 타이틀을 획득했고, 평균자책점도 1.70(리그 2위)으로 뛰어난 성적을 기록했다. 2012년에도 2년 연속 다승왕을 차지하며 전성기를 이어갔다.
하지만 2013년부터 부상과 부진이 겹치면서 어려움을 겪었다. 2015년에는 왼쪽 팔뚝 부상으로 시즌 대부분을 2군에서 보냈고, 2016년에는 중반에 복귀했지만 규정 투구 이닝을 채우지 못했다. 2017년에는 2승 7패, 평균자책점 5점대로 부진하며 2년 연속 연봉이 삭감되었다. 2018년에는 5승 5패, 평균자책점 4.17을 기록하며 재기를 노렸지만, 시즌 후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스로 이적하게 되었다.
3. 1. 1. 2004-2005: 초기 경력
2004년에는 2군에서 9승을 거두며 이스턴 리그 최우수 방어율을 획득했다. 승리는 없었지만, 1군에서 처음으로 선발 등판하는 경험을 했다.2005년에는 호리우치 츠네오 감독에게 재능을 인정받아[8] 하야시 마사노리 등과 경쟁하여 개막 로테이션에 들어갔다. 4월에 프로 데뷔 첫 승을 포함해 3승을 기록했지만, 이후 부진으로 6월 이후에는 1승도 추가하지 못하고 4승 9패, 평균자책점 5점대로 시즌을 마쳤다.
3. 1. 2. 2006-2009: 에이스로의 성장
2006년에는 중간 계투로 시즌을 시작했지만, 4월 8일 주니치 드래건스와의 경기(나고야 돔)에서 다카하시 히사노리가 부상으로 빠지자 대체 선발로 나와 6이닝 무실점으로 시즌 첫 승을 거두었다.[10][11] 4월 15일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스와의 경기(요코하마 스타디움)에서는 첫 완투승을,[12] 7월 2일 한신 타이거스와의 경기(도쿄 돔)에서는 첫 완봉승을 기록했다.[13]
그 해에는 선발로 정착하여 슬라이더를 익히면서 팀 내 1위인 12승을 기록했다.[9] 올스타전과 미일 야구에도 출전했다. 리그 4위의 평균자책점 2.78과 리그 3위의 179탈삼진을 기록했지만, 타선의 지원을 받지 못해 리그 최다 타이인 13패를 기록했다.[14] 투구에서는 9개의 폭투(리그 최다 타이)를 기록했고,[15] 좌타자 상대 피안타율이 높다는 과제를 안고 오프 시즌에 슈트 습득을 목표로 했다.[16] 12월 12일에는 4000만(2,000만 엔 증가)으로 계약을 갱신했다.[9]
2007년 3월 30일, 요코하마와의 경기(요코하마 스타디움)에서 처음으로 개막전 선발 투수를 맡아 7이닝 2실점으로 승리 투수가 되었다. 이후에도 안정적인 활약을 이어가 9월 19일 한신전에서는 개인 최다인 13승을 올렸다. 최종적으로 다카하시 히사노리와 함께 팀 내 1위인 14승(리그 2위)을 거두었고, 평균자책점 3.02(리그 3위), 개인 첫 타이틀인 최다 탈삼진(180개)을 획득했다. 주니치를 상대로 4승 1패의 좋은 성적을 거두었고, 홈 경기에서는 무패였다. 주니치와의 클라이맥스 시리즈 첫 경기에 선발 출전했지만, 타이론 우즈에게 2점 홈런을 맞는 등 4이닝 4실점(자책점 2)으로 강판되어 패전 투수가 되었다.[17] 팀은 3연패로 일본 시리즈 진출에 실패했다.[18]
2008년에는 스프링 캠프 중 옆구리 부상으로 오픈전 전반을 결장했다. 개막전 선발 투수 자리는 다카하시 히사노리에게 양보했지만, 1년 동안 선발 로테이션을 지키며 12승 8패를 기록했다. 타선의 지원을 받지 못하고, 실책으로 자멸하거나 갑작스러운 연속 볼넷으로 강판되는 경기도 있었으며, 68개의 볼넷은 센트럴 리그 최다 기록이었다. 전년도에 4승 1패로 강했던 주니치전에서도 0승 5패로 부진했다. 하지만 한신전에는 강한 면모를 보여 막판 직접 대결에서 호투하며(마지막 3경기 모두 선발 등판 승리) 팀의 우승(메이크 레전드)에 기여했다. 포스트 시즌에서는 주니치와의 CS 3차전에 선발 등판하여 5이닝 3실점으로 강판되었다.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스와의 일본 시리즈에서는 3차전과 7차전에 선발 등판하여, 3차전에서는 5이닝 1/3을 3실점으로 막고 타선의 지원을 받아 승리 투수가 되었다. 7차전에서는 5이닝 1/3을 1실점으로 막았으나, 볼넷으로 강판되었다. 이후 구원 등판한 오치 다이스케가 역전을 허용하며 일본 시리즈 우승에는 실패했다. 볼넷이 많은 점은 과제로 남았지만, 피홈런은 7개로 양대 리그 규정 투구 이닝을 채운 투수 중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의 이와쿠마 히사시, 한신의 이와타 미노루에 이어 적었고, 평균자책점 2.73, 탈삼진 154개는 모두 리그 3위를 기록했다.
2009년에는 개막 전 3월에 개최된 제2회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의 일본 대표로 선출되었다. 3월 20일(일본 시간) 대한민국전에 선발 등판했지만, 머리에 직접 맞는 사구를 던지는 등 제구 난조를 겪으며 3이닝 1실점으로 강판(승패 없음)되었다. 이번 대회에서 유일한 등판이었다. 시즌에는 5월 4일 한신전 패배 후 2군으로 내려갔지만, 재승격 후 본래의 투구를 되찾았다. 8월에 다시 부진했지만, 9월에는 1완봉승을 포함해 4승 무패, 평균자책점 1.16으로 개인 첫 월간 MVP를 수상했다. 공식전 마지막인 10월 12일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전에 10승을 걸고 선발 등판했으나, 6이닝 2실점 후 승리 투수 요건을 갖추고 강판되었지만 8회 말에 역전당하며 승리 투수가 되지 못했다.[20] 최종적으로 전년도에 이어 2점대(리그 7위) 평균자책점을 기록했지만, 전반기 4승에 그친 것이 영향을 미쳐 4년 연속 두 자릿수 승리에는 실패했다. 팀 1위인 179 2/3이닝을 던졌고, 볼넷은 줄었지만 피홈런이 급증하고 탈삼진이 줄었다. 팀은 리그 3연패를 달성했고, CS 파이널 스테이지는 등판 예정이었던 경기 전에 승리가 결정되어 등판하지 않았다.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스와의 일본 시리즈 2차전에 선발 등판하여 3회 말 2사에서 5연타를 맞고 4실점하며 패전 투수가 되었지만, 6차전에서는 선발 히가시노 슌이 다카하시 신지의 직선 타구를 오른손에 맞아 강판된 후 급하게 등판, 4 2/3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아 승리 투수가 되며 일본 시리즈 우승에 기여했다.
3. 1. 3. 2010-2012: 전성기
2010년에는 요미우리 선수 회장으로 취임하여 2013년까지 역임했다. 3월 26일 야쿠르트전에서 개인 두 번째 개막전 선발 투수를 맡아, 8이닝 1실점으로 승리 투수가 되었다. 왼쪽 옆구리 부상으로 선수 등록에서 말소되었지만, 재승격 직후 등판한 5월 9일 요코하마전에서 요미우리의 좌완 투수로서 전년도 야마구치 테츠야 이후 처음으로 개막 5연승을 달성했다(선발에 한정하면 1971년 다카하시 카즈미, 2002년·2007년 다카하시 히사노리, 2004년 구도 기미야스에 이어 4번째). 6월 18일 완봉 승리로 주니치 상대로 3년 만의 승리를 거뒀다. 그러나 8월 11일 경기에서 결과가 좋지 않아 하라 감독으로부터 중간 계투 강등을 통보받았다. 다음날 경기에서 전날부터 이어진 연투 형태로 중간 계투로 등판해 1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았고, 8월 27일 주니치전에서 완투 승리하며 8승을 거두었다. 최종적으로 2년 만의 두 자릿수 승리(11승)를 거두었지만, 초반에 난타당하며 강판되는 경기가 많아 방어율이 개인 최저인 4.38로 부진했다. 포스트 시즌에서는 주니치와의 CS 파이널 스테이지 2차전에 선발 등판하여 6이닝 2실점으로 분전했지만, 타선의 지원을 받지 못해 패전 투수가 되었다. 계약 갱신 때 연봉 삭감을 불복하여 1차 갱신 시에는 유보했지만, 최종적으로 2000만엔 삭감으로 계약을 갱신했다.[9]2011년에는 개막전 선발 투수를 히가시노 슌에게 넘겨주었지만, 초반부터 좋은 컨디션을 유지했다. 4월 13일 야쿠르트전(기타큐슈 시민 구장)에서 시즌 첫 승리를 거두었고, 5월 6일 주니치전부터 6월 18일 세이부전까지 7연승을 기록했다. 이 기간 동안 5월 28일 지바 롯데 마린스전(QVC 마린 필드)에서 완봉 승리, 앞서 언급한 세이부전에서 1실점 완투 승리를 거두었고, 그해 5월 월간 MVP(월간 MVP 수상은 개인 2번째)와 교류전 우수 선수를 각각 수상했다. 그 후에도 새롭게 습득한 포크볼을 무기로 안정된 투구를 이어갔고, 전년도의 부진을 씻고 에이스급의 활약을 보였다. 7월 19일 주니치전(HARD OFF ECO 스타디움 니가타)에서 센트럴 리그 투수 중 가장 먼저 10승에 도달했다. 9월 25일 한신전(고시엔)에서는 개인 신기록인 15승을 거두었다. 요미우리 좌완 투수의 15승 달성은 1979년 신우라 스미오 이후 32년 만이었다. 최종전이었던 10월 22일 요코하마전에서는 나가노 히사요시의 대타 역전 끝내기 만루 홈런으로 18승을 거두며[21] 요시미 가즈키(주니치)와 함께 요미우리 좌완 투수로는 1969년 다카하시 카즈미 이후 42년 만에 다승왕을 획득[22]했다. 방어율도 개인 최고인 1.70(리그 2위)으로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야쿠르트와의 CS 퍼스트 스테이지에서는 2차전에 선발 등판하여 6이닝 1실점으로 호투, 5회에는 직접 스퀴즈 번트를 성공시키는 등 투타에 걸쳐 활약하며 승리했다. 계약 갱신에서는 1억엔 증가한 추정 연봉 2.2억엔으로 계약했다.

2012년에는 2년 만에 개막전 선발 투수가 된 개막전에서 야쿠르트와 대결하여 6이닝 3실점으로 강판, 패배로 시작했다. 4월 12일 주니치전에서 사상 130번째 1000탈삼진을 달성했고, 시즌 첫 승리를 거두었다. 시즌 초반에는 다소 안정감이 부족했지만, 교류전에서는 4승 무패, 방어율 1.29의 성적으로 팀을 센트럴 리그 구단 사상 첫 우승에 기여하며 MVP를 획득했다. 7월 16일 한신전(한신 고시엔 구장)부터 정규 시즌 최종 등판인 10월 5일 요코하마전(도쿄 돔)까지 8연승을 기록했다. 선발진 중에서 유일하게 로테이션을 지켰고, 요미우리에서는 사이토 마사키(1995년~1996년) 이후 요미우리 좌완 투수로는 사상 처음으로 2년 연속 최다 승리를 획득했다. 방어율은 2년 연속 1점대(1.98)였지만, 방어율 타이틀을 획득하지 못하고 리그 3위로 마감했다(프로 야구 역사상 무라야마 미노루의 1965~1966년 이후 46년 만의 진기한 일). 주니치와의 클라이맥스 시리즈 1차전에 선발 등판했지만 6이닝 2실점으로 패전 투수가 되었고, 5차전에서는 5회 도중 토니 블랑코에게 2점 홈런을 맞고 동점이 된 곳에서 강판했다. 일본 시리즈에서는 1차전에 7이닝 무실점, 5차전에도 선발 등판하여 8이닝 2실점으로 호투, 2경기 모두 승리했다. 그 좋은 성적으로 인해 센·파 교류전에 이어 일본 시리즈에서도 MVP로 선정되었다. 12월 4일 제3회 WBC의 일본 대표 후보 선수 34명이 발표되었고[23] 후보에 포함되었다[24]. 계약 갱신에서는 추정 연봉 4억엔으로 4년 계약을 체결했다.[25]
3. 1. 4. 2013-2018: 부상과 부진
2013년 제3회 WBC 일본 대표로 선출되었다.[26][27][28][29] 이번 대회에서 2경기에 중간 계투로 등판하여, 2와 1/3이닝 동안 2피안타 4자책점, 평균자책점 15.43을 기록했다. 시즌에서는 6월 16일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전에서 완투승을 거두며 프로 통산 100승을 달성했고,[30] 8월 6일 DeNA전에서는 통산 1500투구 이닝을 달성했다.[31] 후반기에는 컨디션을 회복하여 4년 연속 두 자릿수 승리(13승)를 달성했지만, 전반기 부진으로 3년 연속 최다승은 놓쳤고, 평균자책점도 1점 이상 악화된 3.31을 기록했다. 또한 2006년 이후 최소인 1완투, 2005년 이후 8년 만에 완봉승이 없었다. 클라이맥스 시리즈 파이널 스테이지 1차전에 등판했지만 4이닝 2실점으로 강판되었다. 일본 시리즈 1차전과 5차전에 선발 등판하여, 1차전에서는 6이닝 무실점으로 호투하며 승리 투수가 되었고, 5차전에서는 선제점을 허용했지만 6이닝 2실점으로 경기를 만들었다. 7차전에는 중간 계투로 등판하여 3이닝 무실점을 기록, 팀은 3승 4패로 패했지만 우수 선수상을 수상했다.2014년에는 호투에도 불구하고 승리가 따르지 않는 불운이 겹쳐 개막 후 9경기 동안 승리를 거두지 못했고, 5월 29일 라쿠텐전에서 첫 승을 거두었다. 6월에는 왼쪽 어깨 통증으로 선발 등판을 급히 피하고 말소되는 등 7월까지 단 1승에 그쳤다. 8월 이후 회복하여 후반기에만 8월과 9월에 총 6승을 기록했다. 특히 DeNA에 강한 모습을 보여 8월 29일, 9월 12일 등판에서는 완봉승을 거두었고, 9월 26일 경기에서는 팀의 우승을 결정짓는 경기에서 선발로 나서 8회 초까지 던졌다. 규정 투구 이닝은 달성했지만(9년 연속), 100탈삼진과 평균자책점 3.17(리그 6위)을 기록했다. 그러나 시즌 전체로는 7승 9패로, 연속 두 자릿수 승리는 4년 만에 중단되었다. 한신과의 클라이맥스 시리즈 개막전 선발 투수를 맡았지만, 1회에 토리타니 타카시에게 선제 2루타, 마우로 고메스에게 2점 홈런을 맞는 등 3점을 먼저 내주고, 3회에도 고메스에게 적시타를 맞아 3회까지 4실점했다. 4회 이후에는 무실점으로 막았지만, 6과 2/3이닝 4실점으로 패전 투수가 되었다.[32] 이후 팀도 타선 부진으로 CS 사상 첫 4연패를 당했다.
2015년에는 시범 경기에서 왼쪽 팔뚝 부상을 당해 개막을 2군에서 시작했다. 6월 5일 소프트뱅크전에서 선발로 나섰으나 4이닝 5실점으로 부진했고, 경기 후 다시 2군으로 내려갔다.[33] 이후 스기우치가 말소되면서 7월 29일 1군에 등록되었고,[34] DeNA전(교세라 돔 오사카)에 선발 등판하여 6회까지 2실점으로 호투했지만, 7회에 주자를 모았고 다리에 쥐가 나 이닝 도중 강판되었다. 뒤이어 등판한 스콧 매시슨이 가지야 타카유키에게 동점 적시타를 맞아 승리 투수가 되지 못했다. 이 경기에서 다리에 문제가 생겨 다시 등록 말소되었다.[35] 8월 12일 다시 1군에 등록되어[36] 같은 날 DeNA전(도쿄 돔)에 선발 등판, 초반에는 좋았지만 4회에 무너지며 5와 2/3이닝 4실점(2자책)을 기록했다. 그러나 타선의 지원과 구원진의 분투로 팀이 접전 끝에 승리하며 그해 첫 승을 거두었다.[36] 10월 4일 출전 선수 등록이 공시되었고,[37] 그날 시즌 최종전인 야쿠르트전에 선발 등판하여 5이닝 무실점 투구로 2승을 거두었지만, 1년차를 제외하고 1군에 정착한 2005년 이후 최저 성적으로 시즌을 마감했다. 클라이맥스 시리즈 퍼스트 스테이지 1차전에 중간 계투로 벤치에 있었지만, 2차전과 3차전은 벤치에서 제외되었다. 팀은 2승 1패로 한신을 꺾고 파이널 스테이지에 진출했고, 우쓰미는 파이널 스테이지 1차전에 선발로 나섰다. 2012년부터 4년 연속 파이널 스테이지 첫 경기 선발 등판이었다. 3회까지 무실점으로 막았지만 4회에 하타야마 카즈히로에게 선제 솔로 홈런을 허용했다. 팀은 곧바로 역전에 성공했지만, 5회 2사 상황에서 교체되며 5안타 3볼넷 4와 2/3이닝 1실점을 기록, 승리 투수 요건을 갖추지 못하고 마운드를 내려왔다. 이후 구원진이 무실점으로 막아 팀은 승리했지만, 다음 날부터 3연패를 당하며 일본 시리즈 진출에 실패했다.
2016년 전반기에는 시범 경기 부진과 부상으로 1군 등판이 없었고, 중반부터 선발로 복귀했다. 7월 19일 한신전에서는 2년 만에 두 자릿수 탈삼진을 기록했다. 전성기 시절의 구위는 없었지만, 완급 조절과 정교한 코너워크, 견제, 퀵 모션 등의 기술을 활용하여 순조롭게 승수를 쌓았다. 9월 30일 한신전 최종 등판에서는 7이닝 무실점으로 호투하며 승리 투수 요건을 갖추고 마운드를 내려왔지만, 구원 사와무라 히로카즈가 2실점하며 역전패, 10승 달성에는 실패했다. 2년 만에 100이닝을 던졌지만 규정 투구 이닝에는 미치지 못했다. 하지만 중반부터 복귀했음에도 불구하고 전년, 전전년도를 넘는 9승을 거두었다. CS 퍼스트 스테이지 DeNA와의 3차전에 선발 등판했지만 2이닝 도중 3실점으로 강판되었고, 연장 접전 끝에 팀은 패배했다. 3년 연속 두 자릿수 승수를 놓친 탓에 계약 갱신에서는 삭감 제한을 넘는 2억 엔이 삭감된 추정 연봉 2억 엔으로 계약했다.
2017년 시즌 초에는 선발 로테이션에 포함되었고, 첫 등판인 DeNA전에서 직접 적시타를 치는 등 승리를 거두었지만, 점차 컨디션이 나빠졌다. 다른 선발 투수와의 조율 문제도 있어 등판과 등록 말소를 반복하며 시즌을 보냈고, 결국 2승 7패, 평균자책점도 5점대 후반으로 부진했다. 계약 갱신에서는 2년 연속 삭감 제한을 초과하는 50% 삭감된 1억 엔으로 계약을 갱신했다.
- -|]]|요미우리 시절]]
2018년에는 2년 만에 개막을 2군에서 맞이했지만, 첫 등판인 5월 10일 한신전에서 첫 승을 거두었다. 교류전 이후에도 좋은 컨디션을 유지했고, 7월 31일 DeNA전에서는 개인통산 4년 만의 완봉승을 거두었다.[38] 이후 컨디션이 나빠져 9월 5일 DeNA전에서는 7년 만에 구원 등판(2이닝 2실점)했다. 최종 성적은 15경기 등판, 5승 5패, 평균자책점 4.17을 기록했다.
3. 2.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스 시절 (2019-2022)
2018년 12월 20일, 스미타니 긴지로의 트레이드에 따른 보상 선수로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스로 이적했다.[2][3] 요미우리에서 개막 투수를 맡았던 선수가 FA 이적에 따른 보상 선수로 다른 구단으로 이적하는 것은 구단 역사상 처음이었다.[39] 등번호는 '''27'''번으로 결정되었는데, 이는 스미타니의 뒤를 잇지만 26번보다 앞서 나가겠다는 본인의 의지를 담은 것이었다.[42] 세이부에서 27번을 투수가 착용한 것은 구단 역사상 처음이었다.
(2022년 4월 29일 벨루나 돔)
2019년에는 개막 전 왼쪽 팔뚝 부상으로 2군에서 시즌을 시작했다. 한때 부상이 회복되었지만 5월에 재발하여 재활과 조정을 거쳤다. 8월 중순부터 2군 경기에서 조정 등판을 시작했지만, 8월 16일 친정팀 요미우리전에서 6회부터 등판해 아웃 카운트를 하나도 잡지 못하고 8실점하며 부진했다.[43] 결국 2019년 시즌에는 1군에 등판하지 못했고, 9월 27일 현역 속행을 표명했다.[44] 10월 10일, 미야자키 피닉스 리그 등판 후 왼팔 통증을 호소했고, 10월 24일 왼쪽 팔뚝 근건 수술을 받았다.[46][47]
2020년에는 전년도 수술의 재활로 캠프는 B반에서 시작하여 개막을 2군에서 맞이했다. 이스턴 리그에서 6경기에 등판하여 3승 2패, 평균자책점 5.58을 기록한 후, 8월 22일 이적 후 처음으로 1군에 승격했다.[48] 같은 날, 오릭스 버팔로스전에서 이적 후 첫 등판이자 2년 만의 선발 등판을 가졌지만, 아담 존스에게 2타석 연속 홈런을 허용하며 6이닝 4실점(3자책)으로 패전 투수가 되었다. 그러나 이 경기에서 스기모토 유타로로부터 헛스윙 삼진을 잡아내며 통산 1500탈삼진을 달성했다.[49] 9월 2일 지바 롯데 마린스전에서는 5이닝 2안타 6탈삼진 무실점으로 호투하며 이적 후 첫 승리를 거두었다.[50] 이는 요미우리 시절 2018년 8월 21일 이후 743일 만의 승리였다. 9월 9일 오릭스전에서는 홈 첫 등판을 가졌지만, 타구에 왼쪽 무릎을 맞는 등 4이닝 4실점으로 홈 첫 승은 실패했다. 9월 18일 롯데전에서 4이닝 4실점(2자책)으로 패전 투수가 된 후 9월 23일 1군 등록이 말소되었다.
2021년에는 캠프는 B반에서 시작하여 개막을 2군에서 맞이했다. 이스턴 리그에서 7경기에 등판, 4승 무패, 평균자책점 1.80의 좋은 성적을 거두고[51] 6월 3일 1군에 승격했다.[52] 같은 날 친정팀 요미우리 자이언츠전에서 2이닝 5안타 3실점으로 부진했지만,[53] 6월 9일 DeNA전에서 5이닝 6안타 3실점을 기록하고 승리 투수 요건을 갖춘 후 교체되었고, 팀이 승리하며 이적 후 홈 첫 승리를 따냈다.[54] 11월 3일, 다음 해부터 투수 겸 투수 코치로 취임하는 것이 발표되었다.[55][56]
2022년에는 2군에서 18이닝 무실점의 좋은 결과를 내고, 5월 7일 일본 햄 파이터스전에서 시즌 첫 선발 등판하여 통산 2000이닝 투구(역대 92번째)를 달성했다.[58] 5월 21일 일본 햄 파이터스전에서 시즌 두 번째 선발 등판했지만, 4와 2/3이닝 3실점으로 강판되었다.[59] 8월 16일, 시즌을 마지막으로 현역 은퇴를 발표했다.[61][62] 9월 19일 은퇴 등판에서 야마자키 고를 2루 땅볼로 처리했고, 10월 2일 팜 최종전인 친정팀 요미우리 2군 경기에서 이시카와 신고를 헛스윙 삼진으로 잡아내며 선수 생활을 마무리했다.

4. 은퇴 후
2023년 세이부에서 팜 투수 코치를 맡았으며,[63] 등번호는 97번이었다. 같은 해 10월 6일 퇴단했다.[64]
2023년 10월 16일, 아베 신노스케가 감독으로 취임하면서 요미우리 자이언츠 1군 투수 코치로 부임했다. 등번호는 77번이다.[65]
5. 투구 스타일
쓰리쿼터에서 던지는 평균 구속 약 139km, 최고 구속 148km의 스트레이트와 투심, 슬라이더(슬러브), 세로로 떨어지는 커브, 스크류(체인지업), 컷 패스트볼 등 다채로운 변화구를 결정구로 투구를 구성한다.[67] 2011년 시즌 개막 전에는 포크볼 습득에 도전하고 있다.[68]
스크류는 2012년까지 체인지업이라고 불렸지만, "최근 체인지업이 제멋대로가 되어가고, 스크류라는 말이 절멸해 가고 있다. 나는 앞으로 스크류로 가고 싶다"며 스크류라고 부르도록 요구했다.[69]
2008년에는 갑자기 볼넷을 연발하는 모습이 보이면서 "돌발성 볼넷병"이라고 불리기도 했지만,[70] 2009년 이후 개선되었다. 2010년 오프 시즌부터는 체간 강화나 관절 가동 범위 확장에 효과가 있다고 알려진 PNF (고유수용성 신경근 촉진법) 훈련이라는 조정법을 도입했다.[71]
퀵 모션은 평균 1.1초대를 기록하며, 좌완 투수라는 점도 있어 견제도 매우 능숙하다. 2012년의 도루 시도는 1개뿐이었다.[72]
6. 수상 및 타이틀 경력
| 수상 내용 | 연도 |
|---|---|
| 월간 MVP | 2009년 9월, 2011년 5월 |
| 센트럴 리그 최다승 | 2011년 |
| 교류전 우수 선수 | 2011년 |
| 올스타전 출장 | 2006년, 2007년, 2010년 ~ 2012년 |
7. 개인 기록
- 첫 안타: 2005년 5월 11일, 대 오릭스 버펄로스 2차전(도쿄 돔), 7회말에 제러미 파웰로부터 중전 안타
- 첫 타점: 2006년 5월 6일, 대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 7차전(도쿄 돔), 6회말에 다카쓰 신고로부터 중전 적시타
- 통산 1000투구 이닝: 2010년 9월 15일, 대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 21차전(메이지 진구 야구장), 3회말 3아웃에 미야모토 신야를 유격수 플라이로 달성 ※역대 323번째
- 통산 1000탈삼진: 2012년 4월 12일, 대 주니치 드래건스 3차전(도쿄 돔), 8회초에 토니 블랑코로부터 헛스윙 삼진 ※역대 130번째
- 통산 100승: 2013년 6월 16일, 대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4차전(후쿠오카 야후오쿠! 돔), 9이닝 3실점 완투승 ※역대 131번째
8. 사회 공헌 활동
우쓰미 데쓰야는 프로 입단 후부터 꾸준히 사회 공헌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특히 2008년부터는 탈삼진 개수만큼 어린이 책가방을 기부해 왔으며,[79] 2013년부터는 투구 이닝 수만큼으로 변경하여 더 많은 책가방을 기부하고 있다.[81] 2012년까지 655개,[80] 2014년에는 144개, 2015년에는 128개를 기부했으며,[83] 세이부 이적 후인 2022년까지 총 1500개 이상의 책가방을 기부했다.[81] 세이부 이적 후에는 2군 경기 투구 이닝 수도 기부 개수에 포함하고 있다.[81]
또한, 2014년부터는 동일본 대지진 피해 지역의 아동 양육 시설을 지원하고 있으며,[84]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2016년 골든 스피릿 상을 수상했다.[84]
우쓰미는 프로 입단 직후 계약금으로 교토에 있는 친가에 2층 5LDK 단독 주택을 선물하고,[77] 연봉의 절반을 용돈으로 드릴 정도로 가족에 대한 사랑이 깊다.[77]
9. 기타
요미우리 자이언츠 시절 팀 동료였던 야마구치 데쓰야와 사이가 좋았으며, 야마구치는 2012년 일본 시리즈 우승 당시 "처음 만났을 때부터 내가 씨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육성 선수로 들어온 저를 깔보지 않았다. 처음부터 스스럼없이 말을 걸어줬다"라고 말했다.[90] 2015년부터 팀 주장을 맡고 있는 사카모토 하야토와도 나이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공적으로나 사적으로나 친분이 두터우며, 사카모토는 "만약 내가 여자였다면, 내가 씨와 사귀고 싶다"라고 말하기도 했다.[90]
2012년 요미우리에 소속되었던 나카타니 히토시는 내가를 선수로서뿐만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존경한다고 말한다. 같은 해, 나카타니는 친정팀 라쿠텐과의 경기에서 얼리 워크(조기 훈련)를 하던 중 라쿠텐 관계자가 "너는 우리 팀에 남아줬으면 좋았는데. 하지만 좋네, 자이언츠 유니폼을 입고"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이 말을 들은 내가는 흥분하여 나카타니에게 "있을 수 없는 일이에요. 보통 팀에 남아줬으면 한다면 남겨야죠. 형식적인 말이라고 해도, 그런 건 없어요. 되갚아 줍시다"라고 말했다. 나카타니는 이듬해 은퇴했지만, "내가 뒤편에서 일하게 되어도, 대하는 방식은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한 인간으로서 존경할 수 있는 의식, 생각을 가진 선수입니다."라고 말했다.[91]
내가를 따르는 요미우리 후배 이마무라 노부타카는 "(내가는) 그렇게 프로에서 실적을 남겼는데, 누구에게나, 언제나 태도가 변하지 않는다. 잘난 체하지 않고, 어린 우리들과도 스스럼없이 이야기해주는 그릇이 큰 분입니다."라고 말했다.[92]
자신이 중간 계투 시절, 매 경기 후 불펜의 쓰레기를 줍고 깨끗하게 정리하고 나서 철수했다. 스태프는 "처음 봤을 때, 감동했다. 앞과 뒤를 통틀어 그 사람 뿐"이라고 말했다.[86]
2014년에 전력 외 통보를 받은 이노 다쿠와 가지마에 류이치의 자율 훈련에 깜짝 참가하여 약 30분 동안 타격 투수를 맡았다. 시즌을 마친 지 얼마 안 된 베테랑이 투구 연습을 할 시기가 아니었고, 가을 캠프도 종료하고 오프 시즌이었으며, 원래는 다른 곳에서 연습할 예정이었지만, 두 사람과의 합동 연습을 우선했다. 그는 "같은 팀이었고, 힘이 되고 싶어서. 조금이라도 실전 감각을 쌓아줬으면 하고, 감각을 갈고 닦아 합격에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라고 말하며 한 구, 한 구를 정성스럽게 던졌다. 이 배려에 가지마에는 "몇 억을 받는 사람이 전력 외인 우리에게 던져준다니. 대단하다"라고 말했다.
10. 한국과의 관계
우쓰미 데쓰야는 일본 프로 야구 선수로, 주어진 자료에는 한국과의 직접적인 관계에 대한 기록은 나타나 있지 않다. 제공된 기록은 주로 일본 내 구단과의 경기 기록이다.
참조
[1]
웹사이트
2003年 新人選手選択会議(ドラフト会議)自由獲得選手(契約締結内定選手)
http://draft.npb.jp/[...]
[2]
웹사이트
内海哲也投手の移籍について
http://www.giants.jp[...]
2018-12-20
[3]
웹사이트
FA補償による選手の獲得合意について
https://www.seibulio[...]
2018-12-20
[4]
서적
プロ野球カラー名鑑 2008
ベースボール・マガジン社
[5]
웹사이트
この悔しさを糧にプロで輝いた!「夏の地方大会決勝で涙をのんだ選手」名鑑/第27回
https://yakyutaro.jp[...]
2022-05-12
[6]
웹사이트
【12月3日】2000年(平12) 破格の提示にもやっぱり…内海哲也、オリックス入り拒否
http://www.sponichi.[...]
スポニチアネックス
[7]
웹사이트
左腕イメージ定着? プロ野球における背番号26の選手たち
https://spaia.jp/col[...]
【SPAIA】スパイア
[8]
간행물
雑誌「NUMBER」2009年6月21日号
[9]
웹사이트
内海、倍増4000万 納得評価に一発サイン
http://hochi.yomiuri[...]
報知新聞社
2006-12-13
[10]
웹사이트
尚成代役の内海が好投
http://hochi.yomiuri[...]
報知新聞社
2006-04-08
[11]
웹사이트
内海もいる!デカい!!「ヒサさん」と1勝…前夜に電話「頑張れよ」に燃えた
http://hochi.yomiuri[...]
報知新聞社
2006-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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内海プロ初完投!!天敵・土肥に投げ勝ち2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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報知新聞社
2006-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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内海も続いた!プロ初完封…巨人1か月ぶり連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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報知新聞社
2006-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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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年度 セントラル・リーグ 敗北【リーダーズ(投手部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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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PB.jp 日本野球機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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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年度 セントラル・リーグ 暴投【リーダーズ(投手部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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内海のカミソリ…新球シュート習得意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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報知新聞社
2006-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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内海「情けない」4回4失点KO…セCS第2S・第1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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報知新聞社
2007-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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眠ったまま3連敗!原巨人終戦…セCS第2S・第3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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報知新聞社
2007-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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巨人内海、際どい発言封印し沢村賞狙う 「チームの補強はもう言いません、怒られたん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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サンケイスポーツ
2007-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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飛車角抜きのヤクルト打線に内海2ケタ勝利逃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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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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長野サヨナラ弾 内海18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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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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内海18勝で最多勝 長野サヨナラ弾に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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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刊スポー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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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2013WBC日本代表候補選手発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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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本野球機構
2012-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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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WORLD BASEBALL CLASSIC 日本代表候補選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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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本野球機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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内海「大満足」4年16億“生涯巨人”契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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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刊スポー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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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WBC日本代表28選手の発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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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WORLD BASEBALL CLASSIC 日本代表メンバ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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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BC日本代表 最終メンバーにG戦士7選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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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巨人】内海通算100勝「まさか僕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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内海 通算1500投球回達成、プロ野球167人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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スポーツニッポ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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内海7回途中4失点「本当に情けな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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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刊スポーツ
2014-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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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内海、故障から復帰で今季初登板も足つり降板&2軍降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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デイリースポーツ
2015-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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巨人が内海を1軍登録、相川を抹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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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刊スポーツ
2015-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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巨人・内海、登録抹消へ…原監督「彼の次の役割は早く治すこ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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巨人内海今季初勝利「しゃべると泣いちゃいそ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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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日の公示 巨人が大竹を抹消、内海を登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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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ull-Count
2015-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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巨人・内海 おっさんず完封 36歳以上は工藤以来球団15年ぶり「もうできない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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スポニチ
2018-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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内海哲也投手の移籍につい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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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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トレード 2018年度公示 2018年度シーズン終了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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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本野球機構 公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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内海哲也投手 入団会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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埼玉西武ライオンズ
2018-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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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사이트
西武内海 背番27「1つでも上に行くという思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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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刊スポーツ]]
2018-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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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西武内海2軍復帰戦で炎上 1死も取れず8失点降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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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刊スポーツ
2019-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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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第16回みやざきフェニックス・リーグ参加メンバー決定(10/14更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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埼玉西武ライオンズ
2019-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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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西武】内海、現役続行「今のままではライオンズ・ファンに申し訳な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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スポーツ報知
2019-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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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内海投手の手術終了についてのお知ら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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埼玉西武ライオンズ
2019-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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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西武】内海、左前腕の筋腱修復手術を先月受けていた
https://hochi.news/a[...]
スポーツ報知
2019-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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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사이트
2020年8月22日の出場選手登録、登録抹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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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本野球機構 公示
[49]
뉴스
西武内海、732日ぶり白星ならず 史上56人目の1500奪三振も、移籍後初先発は6回4失点
https://full-count.j[...]
Full-Count
2020-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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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西武内海、743日ぶり白星の移籍後初勝利! 両足つっても5回0封「粘り強く投げれ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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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ull-Count
2020-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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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西武・内海が、6・3古巣巨人戦への思いを明かす「やっときた!と緊張するか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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スポニチ Sponichi Annex
2021-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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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사이트
2021年6月3日の出場選手登録、登録抹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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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本野球機構 公示
[53]
뉴스
西武内海、古巣の巨人戦2回5安打3失点降板 中島に適時打、炭谷に被弾
https://www.nikkansp[...]
日刊スポーツ
2021-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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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西武内海哲也、今季初勝利で135勝目「粘っていれば味方が打ってくれる」
https://www.nikkansp[...]
日刊スポーツ
2021-06-10
[55]
웹사이트
松井稼頭央1軍ヘッドコーチ、内海哲也は選手兼任コーチ/西武組閣一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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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刊スポーツ
2021-11-03
[56]
웹사이트
西武・渡辺GM、兼任コーチの内海に期待「経験、スキルをチームに還元してほし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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スポーツニッポン
2021-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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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사이트
2000本安打達成の西武 栗山 推定年俸1億7900万円で契約更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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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HK
2021-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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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西武】今季初登板の内海哲也、史上92人目の2000投球回達成 場内から万雷の拍手
https://www.nikkansp[...]
2022-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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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사이트
西武・内海 今季初勝利お預け…5回途中3失点で降板、巨人時代の同僚・宇佐見に2試合連続で被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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株式会社スポーツニッポン新聞社
2022-0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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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사이트
プロ野球 西武 内海哲也「やりきりました」今季で現役引退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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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HK
2022-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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内海投手の現役引退についてのお知ら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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埼玉西武ライオンズ
2022-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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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사이트
【西武】内海哲也が今季限り引退、コメント発表「やりきりました」 9月に会見と引退セレモニ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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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刊スポーツ新聞社
2022-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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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사이트
2023シーズン コーチングスタッフ決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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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西武】内海哲也2軍投手コーチが退団 「感謝しかありません。その言葉に尽きると思いま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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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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来季のコーチングスタッフ につい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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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적
2011プロ野球オール写真選手名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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交流戦負けなしの内海、元同僚が感じた変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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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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内海 フォーク習得で投球の幅広げ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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スポーツニッポン
2011-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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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사이트
【巨人】内海「スクリュー」と呼ん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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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刊スポーツ
2012-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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内海 “突発性四球病”改善で大一番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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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onichi Annex
2008-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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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사이트
内海 久保流PNFトレの効果早くも実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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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onichi Annex
2017-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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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사이트
内海 盗塁ゼロの誓い WBCへ「土台はできた。今度は技術」
https://www.sponichi[...]
スポニチ
2021-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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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사이트
極意を教わりましたよ」バントが苦手の巨人・内海に小坂が助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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スポーツ報知
2008-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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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사이트
西武・内海哲也インタビュー 燃え続ける闘争心。 「優勝のために1勝でも多く挙げることしか考えていません」 {{!}} 野球情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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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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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사이트
林昌範も慕う巨人・内海の人望が厚い理由とは? {{!}} 野球情報
https://column.sp.ba[...]
2021-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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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사이트
巨人・内海に第4子となる長女が誕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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サンスポ
2021-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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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ヒーロークローズアップ
日刊ゲンダイ
2007-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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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행물
週刊少年ジャンプ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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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사이트
【巨人】内海来季はランドセル200個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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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刊スポーツ
2021-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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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사이트
【巨人】内海655個目のランドセル寄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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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刊スポーツ
2021-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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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사이트
【こんな人】引退決めた西武内海贈り続けた1500個超ランドセル「子どもたちの笑顔」のため
https://www.nikkansp[...]
日刊スポーツ新聞社
2022-08-16
[82]
웹사이트
内海も太鼓判!巨人印ランドセル 23日発売
https://www.sponichi[...]
スポニチ
2021-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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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사이트
【巨人】内海、ランドセル基金100個上積み
https://www.hochi.co[...]
スポーツ報知
2021-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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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2016年ゴールデンスピリット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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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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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사이트
西武に移籍「内海哲也」が語っていた「巨人の暗黒時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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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mart FLASH
2021-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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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사이트
巨人内海、トライアウトの後輩にエー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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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刊スポーツ
2021-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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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행물
週刊ベースボール
2012-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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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행물
Number
2009-06-21
[89]
웹사이트
内海の激白
http://www.plus-blog[...]
破天荒なG-spo
2021-04-16
[90]
웹사이트
【巨人】坂本、女性だったら「内海さんと付き合いたい」公式ツイッターでファンに返答
https://www.hochi.co[...]
スポーツ報知
2021-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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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사이트
巨人の秘密。内海哲也の統率力が投手陣を蘇らせる
https://sportiva.shu[...]
web Sportiva
2021-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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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사이트
巨人・今村信貴投手「内海哲也さんみたいになりたい」/憧れの人 {{!}} 野球コラム
https://column.sp.ba[...]
2022-0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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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ヤナセ・プロ野球MVP賞、2011年度は3球団の投手が受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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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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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年4月15日 【公式戦】 試合結果 (横浜vs読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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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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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年7月2日 【公式戦】 試合結果 (読売vs阪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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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PB.jp 日本野球機構
2022-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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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内海“意地”の9勝目!節目の登板飾った
https://www.sponichi[...]
2022-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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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巨人】内海1000K 内角突き1勝
https://www.nikkansp[...]
2022-05-07
[98]
뉴스
内海通算100勝!クロスファイア生きた!
https://www.nikkansp[...]
2022-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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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内海 通算1500投球回達成、プロ野球167人目
https://www.sponichi[...]
2022-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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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西武内海が通算1500奪三振達成 史上56人目
https://www.nikkansp[...]
2022-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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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사이트
2022年5月7日 【公式戦】 試合結果 (埼玉西武vs北海道日本ハ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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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PB.jp 日本野球機構
2022-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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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인용
西武 - 契約更改 - プロ野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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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刊スポー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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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적
프로 야구 컬러 명감 2008
베이스볼 매거진사
2008
[104]
문서
그 해에는 역지명에 의해서 1순위는 [[아베 신노스케]], 2순위는 [[우에노 유헤이]]가 이미 결정되어 있었다.
[105]
문서
선발로 한정하면 1971년의 [[다카하시 가즈미]], 2002년과 2007년의 [[다카하시 히사노리]], 2004년의 [[구도 기미야스]]에 이은 4번째다.
[106]
문서
아베 신노스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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