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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 합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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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워싱턴 합의는 냉전 종식 이후 미국식 시장 경제를 위기에 처한 국가 또는 체제 이행 중인 국가에 이식하려는 정책 합의를 일컫는 용어이다. 1989년 미국의 경제학자 존 윌리엄슨이 명명했으며, 1980년대 라틴 아메리카 국가들의 거시 경제 위기를 배경으로 국제통화기금(IMF), 세계은행 등에서 채택되었다. 윌리엄슨은 재정 규율, 정부 지출 전환, 세제 개혁, 금리 자유화, 경쟁적인 환율, 무역 자유화, 외국인 직접 투자 자유화, 민영화, 규제 완화, 재산권 보호 등 10가지 정책을 제시했다. 그러나 워싱턴 컨센서스는 시장 근본주의,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비판받았으며, 경제 성장 효과에 대한 의문과 사회 불평등 심화 등의 문제점을 지적받았다. 아르헨티나와 베네수엘라 사례는 워싱턴 합의의 경제적 결과를 보여주는 예시로 제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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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 합의
지도 정보
기본 정보
개념1989년 존 윌리엄슨이 제시한 개발도상국 경제 정책 처방
특징신자유주의 경제 정책 강조
국제 통화 기금 (IMF)과 세계 은행 (WB)의 구조 조정 정책 핵심 내용
정책 목표
주요 목표개발도상국의 경제 성장 및 안정 추구
세부 목표재정 적자 감축
세제 개혁
금리 자유화
경쟁적인 환율 유지
무역 자유화
대외 직접 투자 자유화
국영 기업 민영화
규제 완화
재산권 보호 강화
역사
기원1980년대 라틴 아메리카 채무 위기 대응 과정에서 형성
명칭 유래정책 처방이 워싱턴 D.C.의 국제 금융 기관에서 주로 논의되어 유래
비판 및 논쟁
주요 비판경제 불평등 심화
공공 서비스 약화
환경 파괴
금융 위기 유발
논쟁워싱턴 합의 정책의 효과 및 정당성에 대한 지속적인 논쟁
영향
주요 영향개발도상국 경제 정책에 큰 영향
세계 경제 질서 재편에 기여
관련 인물
주요 인물존 윌리엄슨
관련 문서
관련 문서신자유주의, 국제 통화 기금, 세계 은행

2. 역사적 배경

냉전 붕괴 이후, 미국 행정부와 국제통화기금(IMF), 세계은행 등 워싱턴 D.C.의 정책 결정자들 사이에서는 '위기에 처한 국가'나 '체제 이행 중인 국가'에 대해 미국식 시장경제를 도입하자는 합의가 이루어졌다. 미국의 정치 경제학자 존 윌리엄슨은 1989년 자신의 글에서 이를 '워싱턴 합의(Washington consensus)'라고 불렀다.[6]

2. 1. 윌리엄슨의 10가지 정책 제안

존 윌리엄슨이 제시한 워싱턴 합의의 10가지 정책은 다음과 같다.[1][3]

# 재정 정책 규율: 국내총생산(GDP) 대비 큰 재정 적자를 피한다.

# 공공 지출 전환: 초등 교육, 보건의료, 인프라 투자 등 성장 촉진 및 빈곤 퇴치에 힘쓰는 방향으로 공공 지출을 전환한다. 특히 무차별적인 보조금은 지양한다.

# 세제 개혁: 세금 기반을 확대하고 적절한 한계 세율을 채택한다.

# 금리: 시장에서 결정하며, 실질적으로 양(+)의 값을 가지면서도 적절한 수준을 유지한다.

# 환율: 경쟁적인 환율을 유지한다.

# 무역 자유화: 수입 자유화를 추진하며, 특히 수량 제한(허가 등)을 철폐한다. 무역 보호는 낮고 비교적 균일한 관세를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

# 외국인 직접 투자 자유화: 내국인 투자를 자유화한다.

# 민영화: 국영 기업을 민영화한다.

# 규제 완화: 시장 진입을 막거나 경쟁을 제한하는 규제를 폐지한다. 단, 안전, 환경 및 소비자 보호를 위한 규제나 금융 기관에 대한 감독은 예외로 한다.

# 재산권 보호: 재산권에 대한 법적 안전을 확보한다.

윌리엄슨은 1980년대 개발도상국의 채무 누적 문제 해결을 위해 "최대 공약수"라며 위 정책들을 제시했다.[1][3]

2. 1. 1. 정책 의제의 기원

냉전 시대 붕괴 이후, 미국 행정부와 국제통화기금, 세계은행 등 워싱턴의 정책 결정자들 사이에서는 '위기에 처한 국가' 또는 '체제 이행 중인 국가'에 대해 미국식 시장경제를 이식시키자는 합의가 이루어졌다. 미국의 정치 경제학자 존 윌리엄슨은 1989년 자신의 글에서 이를 '워싱턴 합의'(Washington consensus)라고 불렀다.[6]

윌리엄슨이 제시한 워싱턴 컨센서스라는 용어는 워싱턴에 기반을 둔 기관들의 정책 의제 추진 역할에 주목했지만, 많은 학자들은 라틴 아메리카 정책 입안자들이 자국 상황에 대한 자체 분석을 바탕으로 정책 개혁 패키지를 도출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조셉 스타니슬라우와 다니엘 예르긴은 저서 "세계를 지배하는 힘(The Commanding Heights)"에서 워싱턴 컨센서스에 기술된 정책 처방은 "라틴 아메리카에서 라틴 아메리카인들에 의해, 지역 내외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한 대응으로 개발되었다"고 평가했다.[6] 조지프 스티글리츠는 "워싱턴 컨센서스 정책은 라틴 아메리카의 매우 현실적인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고안되었으며 상당히 타당했다"고 기술했다.[7] 스타니슬라우와 예르긴은 윌리엄슨이 "그 이후로 줄곧 해당 용어를 후회했다"고 전하며, "더 외교적이지 못한 용어를 생각하기 어렵다"고 말했다고 보고한다.[6]

윌리엄슨은 "워싱턴"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을 후회했는데, 이는 개발 정책이 워싱턴에서 비롯되어 다른 국가에 외부적으로 부과된 것으로 잘못 인식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8] 그는 2002년에 "워싱턴 컨센서스라는 구절은 손상된 브랜드 이름입니다... 전 세계의 청중들은 이것이 워싱턴에 본부를 둔 국제 금융 기관들이 무능한 국가들에 부과하여 위기와 불행으로 이끈 신자유주의 정책 집합을 의미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다.[25]

낸시 버즈올, 아우구스토 드 라 토레, 펠리페 발렌시아 카이세도의 2011년 연구에 따르면, 원래 컨센서스의 정책들은 주로 라틴 아메리카 정치인들과 기술관료들이 만들어낸 것이었고, 윌리엄슨의 역할은 정책 패키지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처음으로 10가지 항목을 한 곳에 모은 것에 불과했다.[9] 하버드 대학교 데이비스 러시아 유라시아 연구 센터의 케이트 지오히건은 페루 신자유주의 경제학자 에르난도 데 소토가 워싱턴 컨센서스에 영감을 주었다고 말했다.[10] 윌리엄슨은 처방에 대해 데 소토에게 일부 공로를 돌리며, 그의 연구는 "라틴 아메리카가 제공한 전 세계적인 지적 흐름의 결과"라고 말했고, 재산권에 대한 법적 안전에 대한 권고에 대해 데 소토가 직접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10]

2. 2. 넓은 의미의 워싱턴 합의

윌리엄슨의 의견에도 불구하고, 워싱턴 합의라는 용어는 1970년대 케인지안 경제학의 쇠퇴 이후 자유 시장 정책으로의 전반적인 전환을 설명하는 데 더 광범위하게 사용되었다. 이러한 광범위한 의미에서 워싱턴 합의는 1980년경에 시작된 것으로 간주되기도 한다.[13][14] 많은 논평가들은 이 용어가 광범위한 의미로 해석될 때, 합의가 1990년대에 가장 강력했던 것으로 본다. 어떤 이들은 이러한 의미에서 합의가 세기말에 끝났거나, 적어도 2000년 이후 영향력이 줄어들었다고 주장했다.[9][15] 더 일반적으로, 논평가들은 합의가 광범위한 의미에서 2008년 세계 금융 위기 시점까지 지속되었다고 제안했다.[2] 강력한 개입을 통해 정부가 시장 실패에 대응하여 조치를 취한 이후, 세계은행과 같은 글로벌 기관의 언론인, 정치인 및 고위 관리들은 워싱턴 합의가 사망했다고 말하기 시작했다.[16][17] 고든 브라운 전 영국 총리는 2009년 G20 런던 정상회의 이후 "구 워싱턴 합의는 끝났다"고 선언했다.[18] 2009년 4월 ''워싱턴 포스트''는 윌리엄슨에게 고든 브라운이 워싱턴 합의가 사망했다는 데 동의하는지 물었고, 그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2010년 G20 서울 정상회의에서 서울 개발 컨센서스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졌다고 발표한 후, ''파이낸셜 타임스''는 사설에서 "개발에 대한 실용적이고 다원적인 견해는 충분히 매력적이다. 그러나 이 문서는 오래전 사망한 워싱턴 합의의 관에 못을 박는 것 이상의 효과를 거의 발휘하지 못할 것이다."라고 논평했다.[20]

이토추상사 회장이자 경제재정자문회의 위원인 다니와 우이치로는 『문예춘추』2007년 3월호에 "재계도 불평등 사회는 안 된다"라는 논문을 기고했다. 이 논문에서 그는 워싱턴 합의를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 후 사회주의의 패배가 명확해진 이후, IMF, 세계은행 및 미국 재무부 사이에서 널리 합의된 미국식 신고전파 대외 경제 전략으로, '작은 정부', '규제 완화', '시장 원리', '민영화'를 전 세계에 널리 수출하여 미국 주도의 자본주의를 확산시키려는 움직임"이라고 설명하며 비판했다.

또한, 경제학자 조지프 E. 스티글리츠 등은 워싱턴 합의의 실현으로 불평등 사회가 전 세계에 확산되고 있다는 비판을 제기하고 있다. 말레이시아는 권고를 거부하여 국내 경제 혼란을 억제했으며, 라틴 아메리카와 유럽 연합 국가들은 규제 완화와 시장 원리주의와는 다른 정책을 추구하고 있다.

3. 워싱턴 합의의 내용 (윌리엄슨의 초기 제안)

존 윌리엄슨이 처음 제시한 워싱턴 합의는 다음과 같은 10가지 정책 권고안을 포함한다.[1][3]

번호내용
1재정 정책 규율: GDP 대비 큰 재정 적자를 피하는 것
2공공 지출 전환: 보조금(특히 무차별적인 보조금)을 줄이고, 초등 교육, 보건의료 및 인프라 투자와 같이 광범위한 성장 촉진 및 빈곤 퇴치 서비스 제공으로 전환
3세제 개혁: 세금 기반 확대 및 적당한 한계 세율 채택
4시장에 의해 결정되고 실질적으로 양(+)의(그러나 적당한) 금리
5경쟁적인 환율
6무역 자유화: 수입 자유화, 특히 수량 제한(허가 등) 철폐에 중점을 둠; 모든 무역 보호는 낮고 비교적 균일한 관세로 제공
7내국인 외국인 직접 투자 자유화
8민영화: 국영 기업 민영화
9규제 완화: 시장 진입을 저해하거나 경쟁을 제한하는 규제 폐지(안전, 환경 및 소비자 보호를 이유로 정당화되거나 금융 기관의 신중한 감독을 제외)
10재산권의 법적 안전



윌리엄슨은 1980년대 개발도상국의 채무 누적 문제 해결을 위한 노력에서, "최대 공약수"라고 언급하며 위와 같은 정책들을 제시했다.

4. 한국과 워싱턴 합의

워싱턴 합의는 한국 사회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는 않았지만, 중남미 국가들에 미친 영향은 간접적으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아르헨티나는 워싱턴 합의를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경제 개혁을 추진한 대표적인 국가였다. 카를로스 메넴 대통령은 국제 통화 기금(IMF)의 권고에 따라 강력한 민영화자유 시장 정책을 추진했다. 그러나 이러한 정책은 1999년-2002년 아르헨티나 경제 위기를 초래하는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되기도 한다. 도밍고 카발로 경제부 장관은 아르헨티나가 워싱턴 컨센서스의 모범생으로 여겨졌다고 회고했지만, 고정 환율제 등의 문제점이 경제 위기를 심화시켰다는 비판도 제기되었다.[31][33]

네스토르 키르치네르 대통령은 가격 통제 등 워싱턴 합의에 반하는 정책을 펼쳤지만, 긴축 재정과 변동 환율제를 통해 경제 회복을 이루었다. 그러나 장기적인 지속 가능성에 대한 우려는 여전히 남아있었다.[35] 크리스티나 키르치네르 대통령은 연금 기금 국유화를 발표하고, 경제 성과를 조작했다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37][38]

베네수엘라는 석유 가격 하락과 라틴 아메리카 채무 위기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다. 카를로스 안드레스 페레스 대통령은 경제 자유화와 워싱턴 컨센서스 개혁을 추진했지만, 카라카소라는 대규모 시위와 폭동을 겪었다.[47][46] 이러한 사회적 혼란은 우고 차베스의 볼리바르 혁명 운동-200 부상으로 이어졌고, 차베스는 워싱턴 합의에 반대하는 정책을 펼쳤다.[55][56][57]

이러한 사례들은 워싱턴 합의가 경제 성장과 안정에 기여할 수 있지만, 동시에 사회적 불평등 심화, 경제 위기 초래 등 부정적인 결과를 낳을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각 국가의 특수한 상황과 맥락을 고려하지 않은 획일적인 정책 적용은 위험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4. 1. IMF 구제금융과 구조조정

1999년-2002년 아르헨티나 경제 위기는 워싱턴 합의 적용으로 인한 경제적 결과라고 주장하는 사례로 제시되기도 한다. 1998년 10월, 국제 통화 기금(IMF)은 아르헨티나의 성공적인 경험을 논의하기 위해 카를로스 메넴 아르헨티나 대통령을 총재 이사회 연례 회의에 초청했다.[30] 메넴 행정부의 경제 정책, 특히 "통화 개혁"을 설계한 도밍고 카발로 경제부 장관(1991년-1996년)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 1998년 하반기 아르헨티나는 브래디 계획 체계 내에서 부채를 구조조정한 국가들 중 가장 성공적인 경제로 워싱턴에서 여겨졌습니다. 워싱턴 컨센서스의 지지자들은 아르헨티나의 경제 개혁이 10가지 권고 사항과 차이가 있다는 점을 지적하는 데 관심이 없었습니다. 반대로 아르헨티나는 IMF, 세계은행, 미국 정부의 최고 모범생으로 여겨졌습니다.[31]

세계은행 보고서 "1990년대의 경제 성장: 10년간의 개혁에서 배우기"는 고정 환율제에 대한 의존과 관련된 문제점을 논의하며, 정부의 손을 묶는 것이 기대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1990년대 초에는 국가들이 외환 문제에서 정부의 재량권을 완전히 제거한다는 것을 시장 참여자들에게 확신시키기 위해 고정 환율 또는 완전히 유연한 환율로 이동해야 한다는 견해가 있었다. 아르헨티나 붕괴 이후 일부 관찰자들은 큰 불이익을 부과하는 메커니즘을 만들어 정부의 재량권을 제거하는 것이 오히려 기대를 약화시킬 수 있다고 믿는다. Velasco와 Neut(2003)[32]은 "세계가 불확실하고 재량권의 부족으로 큰 손실을 초래하는 상황이 있다면, 사전 약속 장치가 실제로 상황을 악화시킬 수 있다"고 주장한다.[33] 세계은행은 보고서 7장("금융 자유화: 무엇이 잘되었고, 무엇이 잘못되었는가?")에서 아르헨티나에서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분석하고, 이 경험에서 얻은 교훈을 요약하고, 미래 정책에 대한 제안을 제시한다.[33]

IMF의 독립 평가 사무소는 아르헨티나의 교훈에 대한 기관 검토를 발표했으며, 다음 인용문에 요약되어 있다.

> 아르헨티나 위기는 IMF에 여러 가지 교훈을 제공하며, 그중 일부는 이미 개정된 정책과 절차에 반영되었습니다. 이 평가는 감시 및 프로그램 설계, 위기 관리 및 의사 결정 과정 분야에서 10가지 교훈을 제안합니다.[34]

네스토르 키르치네르 대통령이 가격 통제 및 유사한 행정 조치(주로 공익 사업체와 같은 외국 투자 기업을 목표로 함)에 의존한 것은 명백히 컨센서스의 정신에 반하는 것이었지만, 그의 행정부는 실제로 매우 긴축적인 재정 정책을 시행하고 매우 경쟁적인 변동 환율을 유지했다. 부채를 탕감하고 원자재 가격이 우연히 급등하면서 아르헨티나가 위기에서 즉시 회복되었다는 사실은 장기적인 지속 가능성에 대한 문제를 남긴다.[35] ''이코노미스트''는 네스토르 키르치네르 행정부가 아르헨티나의 오랜 포퓰리즘 정부 역사에서 또 하나의 정부로 끝날 것이라고 주장했다.[36] 2008년 10월, 키르치네르의 아내이자 후임 대통령인 크리스티나 키르치네르는 메넴-카발로가 시행한 민영화된 시스템에서 연금 기금을 국유화할 정부의 의도를 발표했다.[37] 키르치네르 부부(가장 악명 높게는 인플레이션에 대해)가 공식 통계를 조작하여 경제 성과에 대한 부정확하게 긍정적인 그림을 만들었다는 비난이 제기되었다.[38] ''이코노미스트''는 아르헨티나의 인플레이션 측정치가 더 이상 신뢰할 수 없다고 말하며 공식 지표에서 제외했다.[39]

2003년 아르헨티나와 브라질의 대통령인 네스토르 키르치네르와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는 워싱턴 컨센서스 정책에 반대하는 선언문인 "부에노스아이레스 컨센서스"에 서명했다.[40] 그러나 회의적인 정치 관찰자들은 그러한 공개적인 자리에서 룰라의 수사는 그의 행정부가 실제로 시행한 정책과 구별되어야 한다고 지적한다.[41]

4. 2. 한국 사회에 미친 영향

워싱턴 합의는 한국 사회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는 않았지만, 중남미 국가들에 미친 영향은 간접적으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아르헨티나는 워싱턴 합의를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경제 개혁을 추진한 대표적인 국가였다. 카를로스 메넴 대통령은 국제 통화 기금(IMF)의 권고에 따라 강력한 민영화자유 시장 정책을 추진했다. 그러나 이러한 정책은 1999년-2002년 아르헨티나 경제 위기를 초래하는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되기도 한다. 도밍고 카발로 경제부 장관은 아르헨티나가 워싱턴 컨센서스의 모범생으로 여겨졌다고 회고했지만, 고정 환율제 등의 문제점이 경제 위기를 심화시켰다는 비판도 제기되었다.[31][33]

네스토르 키르치네르 대통령은 가격 통제 등 워싱턴 합의에 반하는 정책을 펼쳤지만, 긴축 재정과 변동 환율제를 통해 경제 회복을 이루었다. 그러나 장기적인 지속 가능성에 대한 우려는 여전히 남아있었다.[35] 크리스티나 키르치네르 대통령은 연금 기금 국유화를 발표하고, 경제 성과를 조작했다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37][38]

베네수엘라는 석유 가격 하락과 라틴 아메리카 채무 위기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다. 카를로스 안드레스 페레스 대통령은 경제 자유화와 워싱턴 컨센서스 개혁을 추진했지만, 카라카소라는 대규모 시위와 폭동을 겪었다.[47][46] 이러한 사회적 혼란은 우고 차베스의 볼리바르 혁명 운동-200 부상으로 이어졌고, 차베스는 워싱턴 합의에 반대하는 정책을 펼쳤다.[55][56][57]

이러한 사례들은 워싱턴 합의가 경제 성장과 안정에 기여할 수 있지만, 동시에 사회적 불평등 심화, 경제 위기 초래 등 부정적인 결과를 낳을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각 국가의 특수한 상황과 맥락을 고려하지 않은 획일적인 정책 적용은 위험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5. 비판과 논쟁

워싱턴 합의는 여러 측면에서 비판과 논쟁의 대상이 되어 왔다. 주요 비판점은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다.


  • 사회 불평등 심화: 비판론자들은 워싱턴 합의가 사회 불평등을 심화시켰다고 주장한다. 조지프 E. 스티글리츠 등은 워싱턴 합의의 실현으로 불평등 사회가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다고 비판한다. 다니와 우이치로 이토추상사 회장은 워싱턴 컨센서스를 '작은 정부', '규제 완화', '시장 원리', '민영화'를 전 세계에 널리 수출하여 미국 주도의 자본주의를 확산시키려는 움직임이라고 비판했다.
  • 경제 성장 효과에 대한 의문: 워싱턴 합의의 경제 성장 효과에 대해서도 의문이 제기된다. 일부 연구에서는 긍정적인 효과를 보고하지만, 다른 연구에서는 엇갈리거나 실망스러운 결과를 보여준다. 존 윌리엄슨은 많은 국가의 성장, 고용 및 빈곤 감소에 대한 전반적인 결과가 "적어도 실망스럽다"고 평가했다.
  • 대안적 발전 모델: 워싱턴 합의에 대한 대안으로 다양한 발전 모델이 제시되고 있다. 일부 라틴 아메리카 국가들은 워싱턴 합의와 반대되는 정책을 추진하기도 했다. 대한민국중화민국(대만)과 같은 동아시아 국가들의 성공 사례는 정부의 적극적인 역할, 즉 산업 정책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사례로 언급된다. 조지프 스티글리츠는 "포스트 워싱턴 컨센서스 컨센서스" 기사에서 워싱턴 컨센서스 정책이 개발도상국의 경제 구조를 효율적으로 처리하지 못했다고 주장하며,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 아르헨티나와 베네수엘라의 사례: 아르헨티나와 베네수엘라의 경제 위기는 워싱턴 합의의 부정적인 결과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자주 언급된다.
  • 아르헨티나의 경우, 카를로스 메넴 대통령 시절 워싱턴 합의에 따른 경제 개혁을 추진했으나, 결국 심각한 경제 위기를 겪었다.
  • 베네수엘라의 경우, 카를로스 안드레스 페레스 대통령이 워싱턴 합의에 기반한 경제 정책을 추진하면서 카라카소와 같은 사회적 불안을 야기했고, 이는 우고 차베스볼리바르 혁명으로 이어지는 배경이 되었다.


이러한 비판과 논쟁은 워싱턴 합의가 단순한 경제 정책 집합이 아니라, 사회, 정치, 경제 전반에 걸쳐 광범위한 영향을 미치는 복잡한 문제임을 보여준다.

5. 1. 사회 불평등 심화

2020년 연구에 따르면 워싱턴 컨센서스와 관련된 정책을 시행하면 5~10년 동안 1인당 실질 GDP가 상당히 증가했다.[22] 2021년 연구에서는 브라질, 칠레, 멕시코에서 워싱턴 컨센서스를 시행한 결과가 "엇갈렸다"고 평가했다. 거시경제 안정성은 크게 개선되었지만, 경제 성장은 1980년대에 비해 개선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전반적으로 실망스러웠다.[23] 또 다른 2021년 연구는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서 워싱턴 컨센서스를 시행한 결과, 1980년대와 1990년대에는 1인당 경제 성장이 초기에 감소했지만, 2000년대 이후 1인당 실질 GDP 성장이 상당히 증가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 연구는 시장 지향적 개혁과 함께 빈곤층을 위한 정책을 시행할 수 있는 능력이 성공적인 정책 성과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밝혔다.[24]

윌리엄슨은 많은 국가의 성장, 고용 및 빈곤 감소에 대한 전반적인 결과가 "적어도 실망스럽다"고 요약했다. 그는 이러한 제한적인 영향의 원인을 세 가지로 꼽았다. 첫째, 컨센서스 자체가 경제 위기를 피하기 위한 메커니즘을 특별히 강조하지 않았는데, 이는 매우 해로운 것으로 판명되었다. 둘째, 그의 기사에 나열된 개혁과 실제로 시행된 개혁 모두 불완전했다. 셋째, 인용된 개혁은 소득 분배 개선을 목표로 하는 데 있어서 충분히 야심적이지 않았으며, 이러한 방향으로 더 강력한 노력을 보완해야 한다.[25]

일부에서는 워싱턴 컨센서스의 적용으로 인한 경제적 결과와 관련하여 1999년-2002년 아르헨티나 경제 위기를 예로 제시한다.

아르헨티나 대통령 카를로스 메넴(Carlos Menem)


1998년 10월, IMF는 아르헨티나의 성공적인 경험에 대해 논의하기 위해 아르헨티나 대통령 카를로스 메넴(Carlos Menem)을 총재 이사회 연례 회의에 초청했다.[30] 메넴 행정부의 경제 정책(특히 "통화 개혁") 설계자인 도밍고 카발로(Domingo Cavallo)는 1998년 하반기 아르헨티나가 브래디 계획 체계 내에서 부채를 구조조정한 국가들 중 가장 성공적인 경제로 워싱턴에서 여겨졌다고 말했다. 그는 워싱턴 컨센서스의 지지자들이 아르헨티나의 경제 개혁이 10가지 권고 사항과 차이가 있다는 점을 지적하는 데 관심이 없었으며, 아르헨티나는 IMF, 세계은행, 미국 정부의 최고 모범생으로 여겨졌다고 덧붙였다.[31]

고정 환율제에 대한 의존과 관련된 문제점은 세계은행 보고서 "1990년대의 경제 성장: 10년간의 개혁에서 배우기"에서 논의되는데, 이 보고서는 정부의 손을 묶는 것이 기대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1990년대 초에는 국가들이 외환 문제에서 정부의 재량권을 완전히 제거한다는 것을 시장 참여자들에게 확신시키기 위해 고정 환율 또는 완전히 유연한 환율로 이동해야 한다는 견해가 있었다. 아르헨티나 붕괴 이후 일부 관찰자들은 큰 불이익을 부과하는 메커니즘을 만들어 정부의 재량권을 제거하는 것이 오히려 기대를 약화시킬 수 있다고 믿는다. Velasco와 Neut(2003)[32]은 "세계가 불확실하고 재량권의 부족으로 큰 손실을 초래하는 상황이 있다면, 사전 약속 장치가 실제로 상황을 악화시킬 수 있다"고 주장한다.[33]

카라카소 당시 시위대가 버스를 밀어 넘어뜨리려는 모습


카라카소 당시 진압에 나선 베네수엘라군


1991년 민영화된 국영 통신회사 CANTV의 옛 로고


1980년대 석유 가격 하락과 라틴 아메리카 채무 위기의 시작으로 베네수엘라는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다. 루이스 에레라 캄핀스(Luis Herrera Campins) 대통령의 경제 정책으로 인해 베네수엘라 볼리바르가 미국 달러에 대해 평가절하되는 사건이 발생했는데, 이는 "비에르네스 네그로"(Black Friday영어)로 알려지게 되었다.[42]

카를로스 안드레스 페레스는 1988년 베네수엘라 총선 선거 운동에서 그의 첫 번째 대통령 임기 동안의 풍요로운 유산을 바탕으로 했으며,[45] 처음에는 자유화 정책을 거부했다.[46] 페레스는 부채, 공공 지출, 경제 제약 및 수입 의존 국가에 대응하기 위해 경제 자유화[45]를 결정하고 워싱턴 컨센서스 개혁을 시행했다.[47][46]

거시경제적 발전에도 불구하고 라틴 아메리카에서는 빈곤과 불평등이 심각한 수준으로 남아 있다. 3명 중 1명, 즉 총 1억 6500만 명이 하루 2달러 미만으로 생활하고 있다. 인구의 약 3분의 1은 전기나 기본 위생 시설을 이용할 수 없으며, 약 1000만 명의 어린이가 영양실조로 고통받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는 새로운 것이 아니다. 라틴 아메리카는 1950년 당시 세계에서 경제적 불평등이 가장 심한 지역이었으며, 국가 주도의 수입 대체 정책 시대와 (그 이후) 시장 지향적 자유화 시대를 거치는 동안에도 그러한 상태를 유지해 왔다.[75]

이토추상사 회장이자 경제재정자문회의 위원인 다니와 우이치로는 『문예춘추』2007년 3월호에 기고한 "재계도 불평등 사회는 안 된다"라는 논문에서 워싱턴 컨센서스를 '작은 정부', '규제 완화', '시장 원리', '민영화'를 전 세계에 널리 수출하여 미국 주도의 자본주의를 확산시키려는 움직임이라고 설명하며 비판했다.

또한, 워싱턴 컨센서스의 실현으로 불평등 사회가 전 세계에 확산되고 있다는 비판이 경제학자 조지프 E. 스티글리츠 등으로부터 제기되고 있다.

5. 2. 경제 성장 효과에 대한 의문

2020년 연구에 따르면 워싱턴 합의와 관련된 정책을 시행하면 5~10년 동안 1인당 실질 GDP가 상당히 증가했다.[22] 2021년 연구에서는 브라질, 칠레, 멕시코에서 워싱턴 합의를 시행한 결과가 "엇갈렸다"고 평가했는데, 거시경제 안정성은 크게 개선되었지만, 1980년대에 비해 경제 성장은 전반적으로 실망스러웠다고 한다.[23] 또 다른 2021년 연구는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서 워싱턴 합의 시행 결과 1980년대와 1990년대에는 1인당 경제 성장이 초기에 감소했지만, 2000년대 이후에는 1인당 실질 GDP 성장이 상당히 증가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24] 이 연구는 시장 지향적 개혁과 함께 빈곤층을 위한 정책을 시행할 수 있는 능력이 성공적인 정책 성과에 중요하다고 보았다.[24]

윌리엄슨은 많은 국가의 성장, 고용 및 빈곤 감소에 대한 전반적인 결과가 "적어도 실망스럽다"고 평가했다. 그는 이러한 제한적인 영향의 원인을 세 가지로 보았다.

(a) 컨센서스 자체가 경제 위기를 피하기 위한 메커니즘을 강조하지 않았는데, 이는 매우 해로운 것으로 판명되었다.

(b) 그의 기사에 나열된 개혁과, 실제로 시행된 개혁 모두 불완전했다.

(c) 인용된 개혁은 소득 분배 개선을 목표로 하는 데 있어서 충분히 야심적이지 않았으며, 이러한 방향으로 더 강력한 노력을 보완해야 했다.[25]

그러나 윌리엄슨은 원래의 10가지 처방을 포기하자는 주장은 아니며, 그것들이 "자명한 진리"이며 "논쟁할 가치가 없다"고 결론 내렸다.[25]

5. 3. 대안적 발전 모델

2000년대에 이르러 여러 라틴 아메리카 국가들은 사회주의 또는 좌파 정부의 지도를 받았다. 아르헨티나와 베네수엘라를 포함한 일부 국가들은 워싱턴 컨센서스 정책에 반대되는 정책을 지지하고 채택했다.[12] 브라질, 칠레, 페루 등 좌파 정부를 가진 다른 라틴 아메리카 국가들은 비판적인 시각에도 불구하고 윌리엄슨의 목록에 포함된 대부분의 정책을 실제로 채택했다. 이러한 정책들은 종종 시장 근본주의와 관련되어 있다.

워싱턴 컨센서스 경제에 대한 일반적인 비판은 현재 더 광범위하게 확립되었다. 하버드 대학교 국제 정치 경제학 교수인 대니 로드릭(Dani Rodrik)은 그의 논문 "워싱턴 컨센서스 안녕, 워싱턴 혼란 어서 와?"에서 이러한 비판을 개괄했다.[58]

윌리엄슨이 지적했듯이, 이 용어는 원래 의도보다 더 광범위한 의미로, 시장 근본주의 또는 신자유주의의 동의어로 사용되게 되었다. 윌리엄슨은 이러한 광범위한 의미에서 조지 소로스(George Soros)와 조지프 스티글리츠(Joseph Stiglitz)와 같은 사람들로부터 비판을 받았다고 말한다.[12] 워싱턴 컨센서스는 일부 라틴 아메리카 정치인과 에릭 라인하르트(Erik Reinert)와 같은 이종 경제학(heterodox economists) 등 다른 사람들로부터도 비판을 받았다.[59] 이 용어는 일반적으로 신자유주의 정책과 관련되어 있으며, 자유 시장의 확대되는 역할, 국가에 대한 제약, 그리고 미국과 전반적인 세계화의 영향에 대한 광범위한 논쟁에 끌어들여졌다.

조지프 스티글리츠대니 로드릭과 같은 일부 미국 경제학자들은 국제 통화 기금(IMF)과 미국 재무부의 정책이 때때로 '근본주의적'이라고 묘사되는 것에 대해, 스티글리츠가 '모든 것을 위한 하나의 크기'로 개별 경제를 다루는 방식에 대해 이의를 제기했다. 스티글리츠에 따르면 IMF가 제안한 처방은 너무 단순했다. 한 번의 투약과 빠른 속도로 안정화, 자유화, 민영화를 진행하며, 우선 순위를 정하거나 부작용을 관찰하지 않았다.[60]

스티글리츠는 워싱턴 컨센서스의 실패에 대한 시장 근본주의와 국제 경제 기구에 대한 과도한 신념 외에도 추가적인 설명을 제공했다. 그는 "포스트 워싱턴 컨센서스 컨센서스" 기사에서[62] 워싱턴 컨센서스 정책이 개발도상국의 경제 구조를 효율적으로 처리하지 못했다고 주장한다. 대한민국중화민국(대만)과 같은 동아시아 국가의 사례는 주목할 만한 경제 성장이 정부의 더 큰 역할, 즉 산업 정책을 수행하고 자국 내에서 국내 저축을 증가시킨 데 기인하는 성공 사례로 알려져 있다.

세계은행 연구 "1990년대 경제 성장: 10년간의 개혁으로부터의 교훈"(2005)[63]에 제시된 비판은 워싱턴 컨센서스의 원래 아이디어로부터 논의가 얼마나 진전되었는지를 보여준다. 세계은행 아프리카 부사장을 역임한 고빈드 난카니는 서문에서 "고유한 보편적인 규칙 집합은 없습니다.... [우리는] 공식과 파악하기 어려운 '최상의 관행'을 찾는 것으로부터 벗어날 필요가 있습니다...."라고 썼다. 세계은행의 새로운 강조점은 겸손, 정책 다양성, 선택적이고 신중한 개혁, 그리고 실험의 필요성이다.[64]

세계은행 보고서 "개혁으로부터의 교훈"은 1990년대의 일부 발전 상황을 보여준다. 공산주의에서 시장 경제로 전환하는 일부 국가(그러나 결코 모든 국가가 아님)에서 심각하고 장기적인 생산량 감소가 있었다. 학술 연구에 따르면 전환 20년이 넘도록 일부 전 공산주의 국가, 특히 소련의 일부 지역은 여전히 1989년 이전의 생산량 수준에 도달하지 못했다.[65][66] 경제학자 스티븐 로즈필드(Steven Rosefielde)의 2001년 연구에 따르면 1990년부터 1998년까지 러시아에서 340만 명의 조기 사망이 있었는데, 그는 이를 부분적으로 워싱턴 컨센서스가 부과한 쇼크 요법의 책임으로 돌렸다.[67]

상당수의 경제학자와 정책 입안자들은 윌리엄슨이 원래 공식화한 워싱턴 컨센서스의 문제점이 무엇이 '포함'되었는지보다 무엇이 '누락'되었는지와 더 관련이 있다고 주장한다.[70] 브라질, 칠레, 페루, 우루과이와 같은 국가들이 좌파 정당에 의해 통치되었지만, 실제로 컨센서스의 대부분의 실질적인 요소를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재정 및 통화 규율을 통해 거시경제적 안정을 달성한 국가는 그것을 포기하기를 꺼렸다. 브라질의 전 대통령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Lula)는 초인플레이션의 패배가 그의 대통령 시절 국가 빈곤층의 복지에 가장 중요한 긍정적인 기여 중 하나였다고 언급했지만,[71] 빈곤 해결과 안정적인 저인플레이션 유지에 대한 그의 정책의 남은 영향은 현재 브라질 경제 위기의 여파로 논의되고 의심받고 있다.[72]

이러한 경제학자와 정책 입안자들은 워싱턴 컨센서스가 '불완전'했으며, 라틴 아메리카 및 기타 지역의 국가는 "1세대" 거시경제 및 무역 개혁을 넘어 생산성 증대 개혁과 빈곤층 지원을 위한 직접 프로그램에 더 중점을 두어야 한다는 데 동의한다.[73] 여기에는 투자 환경 개선 및 규제 완화, 사법 제도 강화, 멕시코와 브라질의 조건부 현금 이전 프로그램, 초중등 교육의 질 개선, 기술 개발, 아메리카 원주민과 아프로 라틴 아메리카인을 포함한 역사적으로 불리한 집단의 요구 사항 해결 등이 포함된다.

2003년 페루의 미래 대통령인 페드로 파블로 쿠친스키(Pedro Pablo Kuczynski)와 함께 편집한 책에서 존 윌리엄슨은 경제의 위기 방지, "2세대" 개혁 및 불평등과 사회 문제 해결 정책을 강조하는 확장된 개혁 의제를 제시했다.

마이클 스펜스(Michael Spence)는 워싱턴 컨센서스를 옹호하며 "나는 국가별 개발 전략 수립에 대한 지침으로 적절히 해석될 때 워싱턴 컨센서스가 시간의 시험을 아주 잘 견뎌냈다고 계속 생각합니다."[8]라고 주장했다. 스펜스에 따르면 "워싱턴 컨센서스는 완전하거나 모든 것을 위한 하나의 크기의 개발 프로그램으로 의도된 것이 아닙니다."[8] 그러나 그는 워싱턴 컨센서스가 "동반하는 명시적인 개발 모델이 없기 때문에 오용될 위험이 있었다"[8]는 점을 지적한다.

노엄 촘스키(Noam Chomsky), 타리크 알리(Tariq Ali), 수전 조지(Susan George), 나오미 클라인(Naomi Klein) 등 많은 무역 자유화 비판가들은 워싱턴 컨센서스를 저개발국의 노동 시장을 더욱 발전된 경제의 기업들이 착취할 수 있도록 개방하는 수단으로 본다. 규정된 관세 및 기타 무역 장벽 감축은 시장 원리에 따라 국경을 넘는 상품의 자유로운 이동을 허용하지만, 비자 또는 취업 허가 요건으로 인해 노동력은 자유롭게 이동할 수 없다. 이는 저개발국에서 저렴한 노동력을 사용하여 상품을 생산한 다음 부유한 선진국 경제에 수출하여 비판가들이 주장하는 막대한 마크업으로 판매하는 경제적 환경을 조성한다. 비판의 요지는 제3세계 경제의 노동자들은 여전히 빈곤한 상태를 유지한다는 것이다. 무역 자유화 이전보다 임금이 인상되었다고 하더라도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상쇄되며, 선진국 노동자들은 실업자가 되는 반면, 다국적 기업의 부유한 소유주들은 더욱 부유해진다는 것이다.[74]

거시경제적 발전에도 불구하고 라틴 아메리카에서는 빈곤과 불평등이 심각한 수준으로 남아 있다. 3명 중 1명, 즉 총 1억 6500만 명이 하루 2달러 미만으로 생활하고 있다. 인구의 약 3분의 1은 전기나 기본 위생 시설을 이용할 수 없으며, 약 1000만 명의 어린이가 영양실조로 고통받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는 새로운 것이 아니다. 라틴 아메리카는 1950년 당시 세계에서 경제적 불평등이 가장 심한 지역이었으며, 국가 주도의 수입 대체 산업화 정책 시대와 (그 이후) 시장 지향적 자유화 시대를 거치는 동안에도 그러한 상태를 유지해 왔다.[75]

라틴 아메리카의 일부 사회주의 정치 지도자들은 워싱턴 컨센서스에 대해 공개적으로 비판해 왔다. 베네수엘라 대통령 우고 차베스(Hugo Chávez), 쿠바 전 대통령 피델 카스트로(Fidel Castro), 볼리비아 대통령 에보 모랄레스(Evo Morales), 에콰도르 대통령 라파엘 코레아(Rafael Correa) 등이 그 예이다. 아르헨티나에서도 네스토르 키르치네르(Néstor Kirchner)와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데 키르치네르(Cristina Fernández de Kirchner)의 후스티살리스트당 정부는 워싱턴 컨센서스 정책 중 일부를 거부하는 정책 조치를 취했다.[76]

일부 유럽과 아시아 경제학자들은 노르웨이, 싱가포르, 중국과 같은 "인프라 중심 경제" 국가들이 워싱턴 컨센서스를 특징짓는 신고전파적인 "금융 정통주의"를 부분적으로 배격하고, 대신 전략적 인프라 프로젝트에 대한 지속적이고 대규모의 정부 지원 투자를 기반으로 하는 실용적인 개발 경로를 개척했다고 주장한다.[77]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대한민국과 같은 성공적인 국가들은 여전히 1997년~1998년 아시아 금융 위기 당시 IMF와 세계은행이 갑자기 부과한 가혹한 조정 메커니즘을 기억하고 있다. […] 지난 10년 동안 그들이 달성한 것은 더욱 주목할 만하다. 그들은 인프라 프로젝트에 대규모로 투자함으로써 워싱턴 컨센서스를 조용히 버렸다. […] 이 실용적인 접근 방식은 매우 성공적임이 입증되었다." [78]

경제학자들 사이의 의견은 다양하지만, 대니 로드릭은 중국과 인도가 자유 시장 세력에 대한 경제 의존도를 제한적으로 증가시켰지만, 그들의 일반적인 경제 정책은 워싱턴 컨센서스의 주요 권고 사항과 정반대였다고 지적했다. 두 나라 모두 1990년대 내내 높은 수준의 보호무역주의, 민영화의 부재, 광범위한 산업 정책 계획, 그리고 느슨한 재정 및 금융 정책을 유지했다. 만약 이들이 비참한 실패였다면, 권장되는 워싱턴 컨센서스 정책을 뒷받침하는 강력한 증거를 제시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성공했다.[79] 로드릭에 따르면, "지지자와 회의론자들이 도출한 교훈은 다르지만, 더 이상 워싱턴 컨센서스를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말하는 것이 공정하다. 이제 문제는 워싱턴 컨센서스가 죽었는지 살았는지가 아니라 무엇이 그것을 대체할 것인가이다." [58]

이토추상사 회장이자 경제재정자문회의 위원인 다니와 우이치로는 『문예춘추』2007년 3월호에 "재계도 불평등 사회는 안 된다"라는 논문을 기고했는데, 이 논문에서 워싱턴 컨센서스를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 후 사회주의의 패배가 명확해진 이후, IMF, 세계은행 및 미국 재무부 사이에서 널리 합의된 미국식 신고전파 대외 경제 전략으로, '작은 정부', '규제 완화', '시장 원리', '민영화'를 전 세계에 널리 수출하여 미국 주도의 자본주의를 확산시키려는 움직임"이라고 설명하며 비판했다.

또한, 워싱턴 컨센서스의 실현으로 불평등 사회가 전 세계에 확산되고 있다는 비판이 경제학자 조지프 E. 스티글리츠 등으로부터 제기되고 있다. 말레이시아는 권고를 거부하여 국내 경제 혼란을 억제했으며, 라틴 아메리카와 유럽 연합 국가들은 규제 완화와 시장 원리주의와는 다른 정책을 추구하고 있다.

5. 3. 1. 아르헨티나의 사례



1999년-2002년 아르헨티나 경제 위기는 워싱턴 합의 적용의 결과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의 예시로 제시되기도 한다.

1998년 10월, 국제 통화 기금(IMF)은 아르헨티나의 카를로스 메넴 대통령을 총재 이사회 연례 회의에 초청하여 아르헨티나의 성공적인 경험에 대해 논의하도록 했다.[30] 메넴 행정부의 경제 정책, 특히 "통화 개혁"을 설계한 도밍고 카발로 경제부 장관(1991년-1996년)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세계은행 보고서 "1990년대의 경제 성장: 10년간의 개혁에서 배우기"는 고정 환율제에 대한 의존과 관련된 문제점을 논의하면서, 정부의 손을 묶는 것이 기대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1990년대 초에는 국가들이 외환 문제에서 정부의 재량권을 완전히 제거한다는 것을 시장 참여자들에게 확신시키기 위해 고정 환율 또는 완전히 유연한 환율로 이동해야 한다는 견해가 있었다. 아르헨티나 붕괴 이후 일부 관찰자들은 큰 불이익을 부과하는 메커니즘을 만들어 정부의 재량권을 제거하는 것이 오히려 기대를 약화시킬 수 있다고 믿는다. Velasco와 Neut(2003)[32]은 "세계가 불확실하고 재량권의 부족으로 큰 손실을 초래하는 상황이 있다면, 사전 약속 장치가 실제로 상황을 악화시킬 수 있다"고 주장한다.[33]

네스토르 키르치네르 대통령은 가격 통제 및 유사한 행정 조치(주로 공익 사업체와 같은 외국 투자 기업을 목표로 함)에 의존했는데, 이는 명백히 워싱턴 합의의 정신에 반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의 행정부는 실제로 매우 긴축적인 재정 정책을 시행하고 매우 경쟁적인 변동 환율을 유지했다. 부채 탕감과 원자재 가격의 급등으로 아르헨티나가 위기에서 즉시 회복되었지만, 장기적인 지속 가능성에 대한 문제는 여전히 남아있다.[35]

2003년, 아르헨티나와 브라질의 대통령인 네스토르 키르치네르와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는 워싱턴 합의 정책에 반대하는 선언문인 "부에노스아이레스 컨센서스"에 서명했다.[40]

5. 3. 2. 베네수엘라의 사례

1980년대 석유 가격 하락과 라틴 아메리카 채무 위기로 베네수엘라는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다. 루이스 에레라 캄핀스 대통령의 경제 정책은 베네수엘라 볼리바르 가치를 미국 달러 대비 폭락시키는 "비에르네스 네그로(검은 금요일)" (Black Friday영어) 사태를 야기했다.[42] 석유 가격 위기 이후, 에레라 캄핀스 정부는 국제 금융계에 파산을 선언하고 통화 규제를 실시했다.[42] 이로 인해 베네수엘라의 구매력은 단 몇 시간 만에 75%나 하락했다.[44]

카를로스 안드레스 페레스는 1988년 베네수엘라 총선에서 자신의 첫 번째 임기 동안의 경제 호황을 내세웠지만,[45] 초기에는 자유화 정책을 거부했다.[46] 그러나 취임 당시 베네수엘라의 외환 보유고는 3억달러에 불과했다. 페레스는 부채, 공공 지출, 경제 제약, 수입 의존 국가에 대응하기 위해 경제 자유화[45]를 결심하고 워싱턴 합의에 따른 개혁을 시행했다.[47][46]

페레스는 기술 관료 내각과 함께 "엘 그란 비라헤"(The Great Turn영어)라는 경제 정책을 발표했는데, 반대자들은 이를 "엘 파케타소 에코노미코"(The Economic Package영어)라고 불렀다. 이 정책에는 연료 보조금 삭감과 대중교통 요금 30% 인상(16 베네수엘라 볼리바르 또는 0.4USD)이 포함되었다.[48][49][50] 요금 인상은 1989년 3월 1일에 시행될 예정이었지만, 버스 운전사들은 베네수엘라의 월급날 전날인 2월 27일에 인상을 적용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1989년 2월 27일 아침 카라카스 근교 도시 과레나스에서 시위와 폭동이 시작되었다.[51] 파업 중이어서 당국의 적절한 개입이 이루어지지 못하면서, 시위와 폭동은 수도와 전국으로 빠르게 확산되었다.[52][46][47] 이 사건은 카라카소로 불린다.

1991년 말, 페레스 정부는 경제 개혁의 일환으로 3개의 은행, 조선소, 2개의 제당 공장, 항공사, 통신 회사, 휴대전화 사업권을 매각하여 총 22.87억달러를 벌어들였다.[53] 가장 주목할 만한 매각은 통신 회사 CANTV였는데, 미국 AT&T 인터내셔널, 제너럴 텔레폰 일렉트로닉, 베네수엘라의 카라카스 전력(Electricidad de Caracas) 및 메르칸틸 은행(Banco Mercantil)으로 구성된 컨소시엄에 18.85억달러에 매각되었다. 이 민영화는 베네수엘라의 통신 독점을 종식시켰고, 기준 가격보다 10억달러 이상, 경쟁 그룹이 제시한 입찰가보다 5억달러 이상 높은 가격으로 가장 낙관적인 예상치조차 뛰어넘었다.[54]

연말까지 인플레이션은 31%로 떨어졌고, 베네수엘라의 외환 보유고는 140억달러에 달했으며, 경제 성장률은 9%(당시 라틴 아메리카에서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53] 그러나 카라카소와 베네수엘라의 불평등은 1992년 베네수엘라 쿠데타 시도를 정당화하는 데 사용되었고, 우고 차베스가 이끄는 볼리바르 혁명 운동-200의 부상으로 이어졌다.[55][56] 1998년에 당선된 차베스는 전임자들의 정책을 되돌리기 시작했다.[57]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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