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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정치범수용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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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정치범수용소는 북한 정권에 의해 운영되는 강제 수용 시설로, 정치적 이유로 수감된 사람들을 수용한다. 초기에는 비교적 느슨한 경비 체제였으나, 탈출 시도와 폭동이 발생하면서 현재와 같은 엄격한 통제 형태를 갖추게 되었다. 수감 혐의는 명확하게 정해져 있지 않으며, 지도자 비난, 탈북 시도, 종교 관련 활동 등이 이유가 될 수 있다. 수용소 내에서는 강제 노동, 고문, 열악한 식량 공급, 공개 처형 등 가혹한 인권 침해가 이루어지고 있으며, 수감자들은 혁명화 구역과 완전통제구역으로 나뉘어 관리된다. 탈북자, 전직 경비병, 인공위성 사진 등을 통해 수용소의 존재가 확인되었으며, 국제 사회는 북한 정치범수용소의 실태를 알리고 개선을 촉구하는 노력을 지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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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정치범수용소
개요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 지도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 지도
유형강제 수용소
위치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운영 주체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
존속 기간1940년대 ~ 현재
수감 목적정치적 반대자, 정부 비판자, 범죄자 격리 및 처벌
수용 시설 유형
관리소 (Kwanliso)정치범 수용소, 완전 통제 구역
교화소 (Kyohwaso)재교육 수용소, 일반 범죄자 수용
인권 상황
고문만연함
강제 노동일반적
기아심각한 문제
공개 처형보고됨
성폭력보고됨
강제 낙태 및 영아 살해보고됨 (특히 중국-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경 지역의 조선족 여성 대상)
추정 수감자 수
과거수십만 명
현재8만 ~ 12만 명 (추정)
주요 수용소 (정치범 관리소)
온성 정치범 수용소 (12호)폐쇄된 것으로 추정
개천 정치범 수용소 (14호)존속 중
요덕 정치범 수용소 (15호)존속 중
화성 정치범 수용소 (16호)존속 중
북창 정치범 수용소 (18호)존속 중
대흥 정치범 수용소 (19호)존속 중
회령 정치범 수용소 (22호)폐쇄된 것으로 추정
청진 정치범 수용소 (25호)존속 중
주요 수용소 (교화소)
개천 교화소 (1호)존속 중
동림 교화소 (2호)존속 중
신의주 교화소 (3호)존속 중
강동 교화소 (4호)존속 중
사리원 교화소 (6호)존속 중
강계 교화소 (7호)존속 중
용담 교화소 (8호)존속 중
증산 교화소 (11호)존속 중
전거리 교화소 (12호)존속 중
함흥 교화소 (15호)존속 중
오로 교화소 (22호)존속 중
단천 교화소 (77호)존속 중
원산 교화소 (88호)존속 중
승호리 교화소존속 중
회령 재교육 수용소존속 중
관련 보고서 및 조사
국제 연합 북한 인권 조사 위원회 (COI) 보고서2014년, 북한의 인권 침해에 대한 상세 보고
관련 단체
국제사면위원회 (Amnesty International)북한 인권 문제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 및 보고
휴먼 라이츠 워치 (Human Rights Watch)북한 인권 상황에 대한 조사 및 보고
북한인권위원회 (Committee for Human Rights in North Korea)북한 정치범 수용소 및 인권 문제 연구

2. 역사

정치범수용소는 초기에는 사회안전성 안전과에서 담당하였으며, 개천교화소와 청진 수성교화소를 정치범 교화소로 개조하여 운영하기 시작하면서 그 역사가 시작되었다. 초기에는 경비가 삼엄하지 않아 허가를 받으면 외출도 가능했었다고 한다.[19]

하지만 탈출자가 속출하고 대규모 폭동이 일어나면서 경비가 강화되어 오늘날과 같은 정치범수용소가 되었다.

처음에는 수용소가 10곳 정도 있었으나, 이후 5곳으로 통합되었다.[29][30][31] 1960년대까지는 김일성의 권력 장악 과정에서 숙청된 남조선로동당 파, 연안파, 소련파, 갑산파 등의 분파주의자, 종파주의자 및 주민의 성분 분류 작업에서 색출된 반동 분자들이 주로 체포 및 수용되었다.

1970년대와 1980년대에는 후계자 문제에 따른 파벌 항쟁이나, 조선인민군의 파벌 대립과 관련된 사람들이 체포 및 수용되었다. 예를 들어, 김정일의 이복 동생 김평일을 추종했다는 이유로 수용되는 경우도 있었다. 이처럼 숙청 대상 파벌에 조금이라도 연관된 인물들이 수용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1990년대 이후에는 고난의 행군으로 인한 경제 범죄로 수용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예를 들어, 국경의 두만강을 무단으로 넘은 사람, 중화인민공화국옌볜 조선족 자치주에 있는 친척에게 의지하여 식량이나 의류 등을 구입하여 '''장마당'''이라고 불리는 암시장에서 장사한 사람, 국가 재산을 횡령한 사람 등이 이에 해당한다.

2000년대 이후에는 한국 탈북자 단체 "NK지식인연대"에 따르면, 교화소 전체 수용자 수의 1/3 이상이 한국 영화나 드라마를 시청했기 때문에 수감되었다고 한다.

3. 수용 혐의

북한 정치범수용소의 수용 혐의는 명확하게 정해져 있지 않다.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은 행위가 수용 혐의로 간주된다.


  • 우상화물 훼손
  • 지도자 비난
  • 탈북 시도 (단순 중국 방문인지, 이민 목적인지에 따라 처벌 수위가 달라짐)
  • 종교인 접촉
  • 숙청 대상 관련


북한은 연좌제를 적용하기 때문에, 본인뿐만 아니라 가족, 친척, 동료까지 함께 강제 수감되는 경우도 빈번하다. 또한, 범죄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지도자의 자의적인 판단에 따라 수감되는 경우도 많다.[19]

1990년대 중후반, 이른바 고난의 행군 시기에는 기근을 피해 식량과 일자리를 찾아 국경을 넘어 중국으로 가는 주민들이 많았다. 중국 정부는 이들을 북한으로 강제 송환했으며, 송환된 주민들은 노동 수용소나 교화소(중죄 수형자를 위한 교도소)로 보내졌다.[19]

탈북자나 체제를 비판한 정치범은 국가보위성에 의해 비밀리에 납치, 구금되어 재판 없이, 혹은 형식적인 재판만으로 수용소로 이송된다.

수용소 수감 사례는 다음과 같다:

  • 1960년대: 김일성의 권력 장악 과정에서 숙청된 남조선로동당 파, 연안파, 소련파, 갑산파 등 분파주의자, 종파주의자 및 성분 분류 작업에서 색출된 반동 분자
  • 1970-1980년대: 후계자 문제에 따른 파벌 항쟁, 조선인민군 파벌 대립 관련자 (예: 김정일의 이복동생 김평일 추종자), 숙청 대상 파벌과 সামান্য 연관이 있는 자
  • 1990년대 이후: 고난의 행군으로 인한 경제 범죄자 (예: 두만강 무단 월경, 중화인민공화국 옌볜 조선족 자치주 친척에게 의지하여 장마당에서 장사, 국가 재산 횡령)
  • 2000년대 이후: 한국 영화·드라마 시청자 (한국 탈북자 단체 "NK지식인연대"에 따르면, 교화소 전체 수용자 수의 1/3 이상)

4. 현황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은 특유의 폐쇄성으로 인해 정치범수용소의 실체가 국제사회에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대부분의 모습은 탈북자 및 수감 경험자들의 진술로 추정되며, 최근에는 인공위성 등으로 존재가 확인되기도 한다.[100]

북창관리소는 가족이 함께 수용되지만, 개천수용소는 당사자만 단독으로 수감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100] 수감자들은 적법한 절차 없이 의견이 무시된 채 끌려가 처참한 고문, 폭행, 공개 처형, 영양실조 등 열악한 환경에서 강제 중노동에 시달린다.[101]

수감자들에게는 하루 배급량 350g 미만, 염장배추 3줄기, 소금 1.5g이 배급되며, 1990년대 중후반 식량난 시기에는 하루 200g만 배급되었다.[101]

로버트 박은 "수용소에는 25만 명 정도의 사람이 수감되어 있고, 2002년 이후 최소 100만 명 가량이 수용소에서 죽었을 것"이라고 진술했다.

모 탈북자는 수용소 내에 가스실이 있었다고 진술했으며, 또 다른 탈북자는 의식주 보장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구덩이를 파고 생활하며, 먹을 것을 찾아 갯벌과 돌산을 헤매고, 굶거나 병들어 죽어도 시신이 방치되는 등 원시인과 다름없는 비참한 생활을 한다고 증언했다.[102]

15호의 혁명화구역과 사회안전성 관할인 18호를 제외하면 일반적으로 모두 종신형으로 알려져 있다. 석방 가능 수용소도 교화소와 달리 형기를 알 수 없어 사실상 무작위로 운영되며, 수형 태도에 따라 수용소 내에서도 완전통제구역으로 이송될 수 있다.

혁명화구역은 수용자들을 교화 가능한 존재로 여겨 우상화물을 설치하지만, 완전통제구역은 북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지도자 우상화물이 없다. 이는 종신 정치범 수용자들을 북한 사회에서 인간으로 취급하지 않겠다는 선언이며, 완전통제구역 간수로 복무하는 보위원 교육 시에도 이를 철저히 세뇌시킨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내 정치범 수용소(관리소)와 일반 교화소의 위치 지도. 2014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인권 조사 위원회 보고서에 수록된 지도이며, 유엔 인권 이사회 산하 위원회에서 발간.


정치범으로 기소된 사람들과 정치적으로 믿을 수 없다고 기소된 사람들을 위한 수용소는 국가안전보위부에서 운영한다.

탈북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모든 종교 활동은 불법이며, 위반자는 체포되어 정치범 수용소로 보내진다. 탈북자들은 성경을 소지했다는 이유로 사람들이 체포되고 실종되었다고 증언했다.[19]

과거에는 연좌제에 따라 정치범의 직계 가족도 수용되었으나, 1994년에는 반정부 낙서와 같은 특정 범죄에만 적용되도록 제한되었다.[20][21]

여전히 25만 명의 사람들이 정치범으로 추정되며, 그 중 3분의 1이 어린이이며, 이들은 노예 노동을 강요받고 고문과 강간을 당한다. 위성 사진과 탈북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이러한 인권 침해는 끊임없이 자행되고 있다.[22]

북한에서 탈북한 전직 교도관들에 따르면 김씨 일가 정권이 붕괴되거나 북한에 위기가 발생할 경우, 모든 정치범을 살해하라는 명령을 받았다고 한다. 약 12만 명의 북한 정치범을 즉각 살해하는 것은 집단 학살에 해당한다.[23]

수용소는 북한 중부와 북동부에 위치하며, 외부와 완전히 격리된 외딴 산골짜기에 있다. 총 수감자 수는 8만 명[24]에서 20만 명[25]으로 추정된다. 요덕 수용소와 북창 수용소는 종신형을 선고받은 정치범 구역과 5년에서 20년 사이의 징역형을 선고받은 수감자들이 있는 재교육 수용소와 유사한 구역으로 나뉜다.

수감자들은 원시적인 수단으로 광산과 농업에서 힘들고 위험한 노예 노동을 강요받는다. 식량 배급은 매우 적어 굶주림에 시달리며, 수감자의 40%가 영양실조로 사망하는 것으로 추정된다.[26]

많은 수감자들이 작업 중 사고, 동상 또는 고문으로 불구가 된다. 수용소에는 엄격한 처벌 체제가 존재하며, 느리게 일하거나 명령을 따르지 않는 수감자는 구타당하거나 고문을 받는다.[27] 음식을 훔치거나 탈출을 시도한 혐의로 기소될 경우 다른 수감자들이 보는 앞에서 공개 처형된다.

처음에는 약 12개의 정치범 수용소가 있었지만 일부는 합병되거나 폐쇄되었다. 오늘날 북한에는 6개의 정치범 수용소가 있으며, 그 규모는 위성 사진[29]과 전 수감자 및 NGO에 의해 추정된 수감자 수에 의해 결정된다.[30][31] 대부분의 수용소는 전 수감자들의 증언에 의해 문서화되어 있으며, 모든 수용소에 대한 좌표와 위성 사진을 사용할 수 있다.

1990년대 중후반 기근 당시, 수천 명의 북한 주민들이 식량이나 일자리를 찾아 중국으로 건너갔다. 중국 정부는 북한 난민들을 본국으로 송환했고, 북한 국경 수비대는 강제 송환된 북한 주민들을 자주 고문했지만, 당시 북한 정부는 송환된 자국민들을 공정하게 대우할 것이라고 밝혔다. 중국으로 탈출한 사람들이 남한 사람이나 개신교 단체와 접촉한 사실이 확인되면, 그들은 노동 수용소나 교화소로 보내졌다.[19]

탈북자나 체제를 비판한 정치범 등이 수용되며, 일본의 형무소나 대한민국교도소와 유사하지만, 이들과 달리 하루 약 12시간의 가혹한 중노동이 부과되며, 감시원에 의한 부당한 제재(여성 수용자에 대한 성적 폭행 포함)를 받기도 한다. 많은 경우 국가보위성에 의해 은밀하게 납치·구금되며, 재판 없이, 형식적인 재판만으로 수용소로 이송된다. 관리소와 교화소에서는 비위생적인 환경과 영양실조 때문에 수용 중 병사하거나 중노동 중 사고사가 많다.

1960년대까지는 김일성의 권력 장악 과정에서 숙청된 남조선로동당 파, 연안파, 소련파, 갑산파 등의 분파주의자·종파주의자·주민의 성분 분류 작업에서 색출된 반동 분자의 체포·수용이 많았다.

1970, 1980년대까지는 후계자 문제에 따른 파벌 항쟁이나, 조선인민군의 파벌 대립 관련 체포·수용이 많았고, 숙청 대상 파벌 소속 인물과 약간이라도 연관이 있는 것만으로도 수용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1990년대 이후에는 고난의 행군으로 인한 경제 범죄 수용자가 많았다("국경의 두만강을 무단 월경한 자", 중화인민공화국옌볜 조선족 자치주의 친척에게 의지하여 식량이나 의류 등을 구입하여 '''장마당'''이라고 불리는 암시장에서 장사한 자", "국가 재산을 횡령한 자" 등).

2000년대 이후에는 한국 탈북자 단체 "NK지식인연대"에 따르면, 교화소 전체 수용자 수의 1/3 이상이 한국 영화·드라마를 시청했기 때문에 수감되었다고 한다.

2020년 10월 19일, 휴먼 라이츠 워치는 북한에서의 재판 전 피구금자의 고문·학대·비위생적 상황을 상세히 설명한 보고서를 발표했다.[46]

가장 가혹한 '관리소'는 2년에서 7년 정도의 유기형인 '교화소'와 종신형인 '완전통제구역'으로 나뉜다. 국가전복죄 (김씨 일가에 대한 반역 행위 등)를 범한 가장 중대한 범죄자를 수용한다. 드물게 완전통제구역에서 교화소로 감형 이송되는 경우가 있지만, 하루에 겨우 약간의 사료용 옥수수와 소금물 정도의 음료만 제공되기 때문에 어느 곳에 수용되든 무사히 출소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

수용자는 태도에 따라 등급이 매겨지며, '소대장'이나 '반장'으로 임명된 수용자는 특혜를 얻어 다른 수용자의 감시와 고문을 한다. 식사는 조금만 제공되어 굶어 죽는 자가 많고, 쥐, 뱀, 바퀴벌레, 돼지 먹이, 소똥 속 옥수수 알갱이를 먹기도 한다.[49][50][51][68] 관리소의 하루 노동 시간은 약 12시간이며, 남녀를 가리지 않고 죄상에 따라 농장, 공장, 과수원, 탄광, 산림 벌채, 채석 등의 중노동이 부과된다.[68] 할당량을 채우지 못한 자는 할당량을 채울 때까지 무거운 노동을 밤샘으로 하거나, 그 자리에서 총살당하기도 한다.[68][52] 반이 그날의 작업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면 반원 전체가 집단으로 벌을 받고, 굶주림과 쇠약으로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면 벌로 구타당하고, 식량 할당량이 줄어들고, 작업 후 회의에서 다른 죄수들로부터 심하게 비난받고 맞으며, 병이 나면 생산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식사가 제공되지 않는다.[68]

안명철 (전 경비병)은 "정치범은 인간이 아니라 개, 돼지라고 생각하도록" 교육받았다고 말하고 있다.[53] 식사 시간 외 식사나 운동 시간 외 운동 등 규칙 위반의 경우에는 '공개 총살', '감시원의 격투술 훈련 대상', '나무에 하루 종일 묶어두기', '몽둥이로 백 수십 번 맞기' 등의 벌이 있으며, 총살이 아니더라도 외상성 쇼크로 결국 사망한다. 수용자는 남녀를 불문하고 감시원의 분노를 사면 죽음에 이르는 폭력과 고문을 당하며, 관리소 내부에서는 감시원의 변덕에 의한 공개 처형도 빈번하게 이루어진다. 감시원의 비위 행위는 많고, 발각되어도 대부분 처벌받지 않는다. 수용소 직원을 위한 식품을 생산하는 공장이 있으며, 배역된 수용자는 감시원과의 정교를 조건으로 술, 담배, 훈제 육류, 수용소 밖에서도 구하기 어려운 귀중품을 받을 기회를 얻지만 발각되면 감시원은 징계 면직되고, 출신 성분이 낮은 사람들이 있는 지역으로 추방되며, 정교를 한 수용자는 고문 후 공개 총살형에 처해진다. 수용소 근처에는 감시원과 감시원 가족이 거주하는 집락도 있으며, 감시원 가족이 수용자와 마주치는 경우도 있으며, 성인 수용자가 감시원 가족과 길에서 마주쳤을 때는 90도 가까이 머리를 숙이고, 아이에게 "선생님"이라고 부르며 인사해야 한다. 젊은 여성 수용자는 국가보위성의 감시원으로부터 성적 학대를 받기도 하지만, 발각된 경우에는 여성 수용자는 고문 끝에 죽는 경우도 많고, 감시원도 수용자와 관계를 맺었다는 이유로 징계 면직되어 광산으로 보내지기도 한다. 임산부가 수용된 경우에는 "반동 분자의 자손을 끊는다"는 이유로 강제 낙태하거나, 출산 후 신생아를 산 채로 질식사시키거나, 구타를 반복하여 살해한다. 산 채로 개의 먹이가 된 예도 있다.

관리소에는 '표창 결혼'이라는 제도가 존재하며, 국가보위성이 인정한 '모범수'로 여겨지는 남녀를 1, 2주 동거시키고, 태어난 아이 (신동혁 등)는 '강제 노동의 노동력'으로 산 채로 수용하는 경우가 있다. 태어난 아이는 강제 노동의 노동력으로만 간주되며, 수용소 내 학교에서는 북한에서 일반적으로 가르치는 김정일, 김일성의 존재도 가르치지 않고, 덧셈, 뺄셈, 노동에 필요한 단어만 교육한다.

10살 어린이는 하루 30번 자신의 체중보다 무거운 30kg의 흙이 든 자루를 들도록 지시받고, 할 수 없으면 교사에게 몽둥이로 맞으며, 처음 10번을 넘을 무렵 양 다리가 떨리기 시작하고, 몸이 아프고, 어깨의 피부가 긁히고, 쓰러질 듯하다.[68] 높은 시멘트 벽 위에서 3명의 남자가 작업을 하고, 아래에서 15세 소녀 3명과 소년 2명이 모르타르 보급 작업을 하고 있을 때 시멘트 벽이 무너져내려 수 톤의 모르타르에 모두가 생매장되었지만 아무도 돕지 않았고, 심지어 경비원들은 "작업을 멈추지 마라"고 지시했다.[68] 흙을 파서 200m 떨어진 작업장으로 옮기라는 명령을 받았을 때 무너질 듯한 작은 산이 있었고, 감독하던 교사들은 아이들에게 계속 파라고 했지만 3일 후에 산이 갑자기 무너져, 산 정상에 있던 아이 6명 중 3명이 사망하고, 다른 3명이 중상을 입었지만 교사들은 아이들의 부주의라고 나무랐다.[68]

강제 수용소에서 질서를 어지럽힌 자는 일어설 수도 누울 수도 없는 독방에 갇히고, 최소 1주일 갇힌다.[68][52] '물고문'(비닐봉투를 머리에 씌워 오랫동안 물에 담그는 고문), '비행기'(손발을 뒤로 묶어 얼굴을 땅에 대고 하루 최대 5회 각 30분 동안 매달아두는 고문), '수면 박탈', '손톱 밑에 날카로운 대나무 조각을 꽂기', '수갑, 손목을 묶어 매달기' 등의 고문이 행해지고 있다.[68] 낮은 책상에 묶여 주전자를 입에 밀어넣어 물을 먹이는 고문도 있으며, 조금 지나면 입안에 물이 넘쳐 콧구멍으로 물이 들어가기 시작하고, 날카로운 통증을 느끼고, 숨이 막혀 기절하고, 깨어나면 심문관이 부풀어 오른 배 위에 놓인 판 위에서 점프하여 물을 토하게 한다.[68] 고통스럽게 구토하기 시작하고, 일어설 수 없어 독방으로 끌려가 고열에 시달리며 의식을 잃고, 그 후 5개월 동안 매달아 고문을 당한다.[68]

많은 관리소는 국가보위성 (비밀 경찰)의 제7국 (농장 지도국)의 관할에 있지만, 사회안전성 (구 인민보안부, 일반 경찰)의 관할 관리소도 존재하며, 수용자는 약 20만 명에서 30만 명으로 추정된다.[54] 2004년에 제15호 관리소의 영상이 후지 TV에 의해 보도되었다.

유명 전 수용자로는 신동혁, 강철환, 안혁, 김혜숙, 오토 웜비어 등이 있으며, 증언이 확인되고 있다.

  • 최광호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는 더 이상 살 수 없다"고 말했기 때문에 15호 관리소로 보내졌고, 굶주림으로 작업반에서 벗어나 산딸기를 따러 갔기 때문에 2001년 4월 28일에 공개 처형되었다.[68]
  • 동출미 (26세)는 종교를 이유로 1999년에 처형되었다.[68]
  • 2001년 9월에 박인식 (38세)은 술에 취해 국가의 경제 구조를 비판했기 때문에 15호 관리소로 보내졌고, 2003년 2월에 벌집에서 꿀을 따 먹다가 잡혀 독방으로 보내졌으며, 음식 할당량이 줄어 영양실조로 사망했다.[68]
  • 강근 (북한 출신·한국 국적)은 2005년 3월 4일에 중국 지린성에서 납치되어 함경북도 청진시의 구금 시설에서 구타당하는 등 고문을 당하고, 두 다리가 절단되었으며, 2008-2009년 사이에 관리소로 이송되었다.[68]
  • 해외에서 강제 송환된 한 탈북 여성은 영양실조에 걸렸기 때문에 교화소 당국은 여성을 식당 근무로 옮겼지만, 남은 음식을 주어 영양을 섭취하게 하려는 배려가 아니라 "음식 냄새라도 맡으며 살아라"라는 것이었고, 여성은 곧 사망했다.[55]


수용소를 둘러싼 철조망을 넘어 탈주를 시도한 자는 발견 즉시 사살되지만, 겨울에는 눈으로 뒤덮이는 인적이 드문 지역이며, 가혹한 처우로 인한 쇠약, 극도의 심로·정신적 고통이 수용자의 탈주를 어렵게 한다. 탈주자는 붙잡힌 후 2-3개월간의 심문 후에 처형된다.[68] 수용소는 인적이 드문 산간 지역이나 산으로 둘러싸인 하천의 상류부에 위치하며, 철조망과 무장한 감시원으로 광대한 토지를 둘러싸고 있다. 미국의 인공위성이 촬영한 북한 전체의 이미지와, 전 수감자·전 경비병의 증언에 의해 약 20곳의 강제 수용소 소재지와 명칭이 확인되었다고 한다. 국제앰네스티에 따르면, 6곳의 정치범 수용소가 가동되고 있으며, 약 20만 명의 정치범이 있다고 한다. 현재는 대략 5곳으로 축소되었으며, 하나는 일반 형무소로 전용되었다고 한다.[56]

북한에는 수용자의 자살을 방지하기 위한 사회적 시스템이 있으며, 자살자가 발생할 경우 당국으로부터 "김일성·김정일 부자에 대한 반역 책임을 면하기 위해 자살했다"고 간주되어, 연좌제에 의해 유족이 공개 장소로 끌려 나와 위해를 입거나 모욕을 당한다. 이로써 수용자의 자살은 억제된다고 하며, 처우를 견디지 못한 수용자가 자살하는 것은 극히 드물다. 정치범은 조선 왕조 시대와 마찬가지로 연좌제로 처분되며, 반동 분자 억제를 이유로 부모 자식 손자 삼대가 수용되거나, 산간 지역이나 탄광 등 벽지로의 추방 처분이 내려진다.

질병 수용자는 수용소 내 병원에서 치료가 가능하다는 명목이 있지만, 실상은 국가보위성 소속 의사단의 판단으로 "임상 실험"이라고 칭하는 각종 인체 실험을 받거나, 치료받지 못하고 병원이라고 불리는 격리 막사로 밀려나 사망한다. 사망 후에는 묘지에 매장되지 않고 밭의 깊은 곳에 비료로 묻히거나, 근처에 파놓은 구덩이에 적당히 매장되거나, 수용소 경비용 군견의 먹이로 사용된다. 질병 수용자에게 행해지는 "임상 실험"은, 외과 수술 적응증이 없는 환자에게 어려운 수술을 강행하거나, 동물 실험을 마치지 않은 개발 중인 신약을 사용하여 치료하는 사실상의 인체 실험이다. 최근에는 북한의 주 수출품인 대마·하시시·아편·헤로인·각성제 등의 남용이 사람의 뇌나 장기를 어떻게 파괴하고 폐인으로 만드는지, 약물 남용 과정을 조사하거나, 세균 및 바이러스 연구, 생체 해부, 방사선·방사성 물질이 인체에 미치는 악영향 확인 실험이 행해지고 있다고 한다. 환자인 수용자가 사망한 경우에는 수용자의 시체의 각 부위에서 꺼낸 조직을 표본으로 하여 다양한 연구가 지속된다. 탈북자 단체에 따르면 의사단은 술이나 약물을 남용하면서 "임상 실험"을 한다고 하며, 생체 해부를 통한 학살이 반복되고 있다고 한다.

케네스 배(배준호, 한국계 미국인)는 2012년부터 2014년까지 735일 동안 북한에 억류되었다.[63] 2013년 4월 북한 최고재판소에서 국가전복음모죄로 15년 노동교화형을 선고받고, 5월에 미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북한의 교화소에 수용되었다.[64] 배에 따르면, 평양 중심부에서 자동차로 20km 거리에 있는 농촌 지역에 외국인 전용 교화소가 있으며, 직원 30~40명이 있고, 독방은 8개였다.[64] 교화소에는 감시 카메라가 3대 설치되어 있었고, 취침 시간을 제외하고는 의자에 앉아 있어야 했다. 방에는 욕조가 없었고, 양동이에 담은 물로 하루에 한 번 몸을 씻었다. 겨울에는 난방이 있었지만 냉방이 없었고, 여름에는 창문을 열었지만 벌레가 많이 들어와서 괴로웠다. 의류는 2벌만 지급되었다. 전등은 없었고, 등불은 촛불뿐이었다.[64] 주 6일 노동을 강요받았고, 오전 8시부터 오후 6시까지 농작업이나 석탄 분말 제조 작업에 종사했다.[64] 오후 8시부터 오후 10시까지 조선중앙텔레비전 시청을 강요받았는데, 고통스러웠다고 한다.[64] 여름 식사는 쌀밥과 국에 나물이 나오거나 과자나 생선도 조금 나오는 등 비교적 식량은 풍족했지만, 겨울에는 식사가 적어서 젓갈과 국뿐이었고, 배는 체중이 27kg이나 줄었다. 수용소 입소 3개월 후에 영양실조에 걸려 병원으로 이송되었다.[63][65]

5. 강제 노동

탈북자 김혜숙은 1975년부터 2002년까지 18호 정치범수용소에 수감되었으며, 증언에 따르면 북창 관리소는 대부분 탄광으로 이루어져 있고 거의 모든 수감자가 탄광에서 강제 노역을 한다.[101] 김혜숙 역시 28년간 탄광에서 강제 노동에 시달리다 기관지병을 얻었다. 사방이 철조망으로 막힌 18호 관리소는 기강이 엄격하고 탈출이 어려우며, 탄광 사고로 인한 사망 사례도 빈번한 것으로 알려졌다.[103]

수용소는 공개처형을 통해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고 수감자들의 복종을 강요한다.[104] '비둘기 고문', '펌프훈련 고문'(앉았다 일어서기 반복), '마구잡이 전신 고문' 등 가혹 행위가 벌어져 수감자들은 인간 이하의 삶을 살아간다.[101]

수감자는 태도에 따라 등급이 매겨지며, '소대장'이나 '반장'으로 임명된 수용자는 특혜를 받고 다른 수용자를 감시, 고문한다. 식사는 극히 적게 제공되어 굶어 죽는 경우가 많으며, 쥐, 뱀, 바퀴벌레, 돼지 먹이, 소똥 속 옥수수 알갱이 등을 먹으며 연명하기도 한다.[49][50][51][68] 하루 노동 시간은 약 12시간이며, 남녀 구분 없이 죄목에 따라 농장, 공장, 과수원, 탄광, 산림 벌채, 채석 등 중노동이 부과된다.[68] 할당량을 채우지 못하면 밤샘 노동을 하거나 총살당하기도 한다.[68][52]

전 경비병 안명철은 "정치범은 인간이 아니라 개, 돼지라고 생각하도록" 교육받았다고 증언한다.[53] 규칙 위반 시에는 '공개 총살', '감시원의 격투술 훈련 대상', '나무에 하루 종일 묶어두기', '몽둥이로 백 수십 번 맞기' 등의 벌이 가해지며, 이로 인해 외상성 쇼크로 사망하는 경우도 빈번하다.

수용소는 철저히 통제되어 탈출 시도는 거의 불가능하며, 붙잡히면 공개 처형된다.[105]

6. 수용소 종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정치범수용소는 크게 관리소, 교화소, 노동교양소, 집결소, 비밀 감옥, 노동단련대, 부랑아 수용 시설, 초대소 등으로 나뉜다.


  • 관리소 (정치범 수용소): 국가안전보위부가 운영하며, 정치범과 그 가족, 정치적으로 신뢰할 수 없는 사람들이 수용된다. 완전통제구역과 혁명화구역으로 나뉜다. 완전통제구역은 종신형, 혁명화구역은 5~20년 형을 받은 수감자들이 수용된다. 수감자들은 열악한 환경에서 강제 노역에 시달리며, 많은 수가 영양실조, 질병, 사고 등으로 사망한다.
  • 교화소 (일반 범죄자 수용소): 사회안전성이 운영하며, 일반 범죄자와 정치범이 함께 수용되기도 한다. 허위 자백 강요, 고문, 가혹 행위가 빈번하며, 수감 환경은 정치범 수용소와 유사하다.
  • 노동교양소 (경범죄자 수용소): 경범죄자를 수용하며, 6개월 이내에 석방된다.
  • 집결소 (미결수 수용소): 미결수를 수용한다.
  • 비밀 감옥 (탈북 실패자 수용소): 탈북에 실패한 사람들을 수용한다.
  • 노동단련대 (탈북자, 경범죄자 강제 노동): 탈북자나 경범죄자에게 강제 노동을 시킨다.
  • 부랑아 수용 시설 (꽃제비 수용): 꽃제비라 불리는 부랑아를 수용한다.
  • 초대소 (납치 인물 감금, 정치범 예심): 납치한 인물을 감금하거나 정치범을 예심하는 시설이다.

관리소 현황

정치범 수용소공식 명칭위치수감자 (추정)비고현재 상태
개천 정치범 수용소관리소 제14호개천, 평안남도15,000[33]신동혁 증언현재 운영 중, 확장 가능성
요덕 정치범 수용소관리소 제15호요덕, 함경남도50,000[25]강철환 증언2014년 이후 폐쇄
화성 정치범 수용소관리소 제16호화성, 함경북도20,000[31]풍계리 핵실험장 인접현재 운영 중
북창 정치범 수용소관리소 제18호북창, 평안남도30,000[86]김용 증언재개장 또는 제14호와 통합 가능성
회령 정치범 수용소관리소 제22호회령, 함경북도50,000[30]안명철 증언2012년 이후 폐쇄
청진 정치범 수용소관리소 제25호청진, 함경북도5,000[29]현재 운영 중


교화소 현황

교화소공식 명칭위치수감자 (추정)설명현재 상태
개천 교화소제1교화소개천시, 평안남도6,000[43]이순옥 증언운영 중
신의주 교화소제3교화소신의주시, 평안북도2,500[41]중국 국경 근처운영 중
강동 교화소제4교화소강동군, 평양직할시7,000[42]30km 평양 외곽운영 중
사리원 교화소제6교화소사리원시, 황해북도4,000[40]운영 중
룡담 교화소제8교화소원산시, 강원도3,000[36]운영 중
함흥 교화소제9교화소함흥시, 함경남도500[37]구 식민지 감옥운영 중
중산 교화소제11교화소중산군, 평안남도3,300[38]귀환 탈북자 다수운영 중
회령 교화소제12교화소회령시, 함경북도2,000[16]귀환 탈북자 다수운영 중


7. 수용소 생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정치범수용소는 열악한 환경으로 악명이 높다.[101] 수감자들은 적은 배급량과 염장배추, 소금 등으로 연명하며, 1990년대 식량난 시기에는 더욱 심각한 영양실조에 시달렸다.[101] 이로 인해 많은 수감자들이 질병에 걸리거나 사망했다.[102]

수용소 내에서는 감시원들에 의한 폭행, 고문, 성폭력이 빈번하게 발생한다.[101] '비둘기 고문', '펌프훈련 고문' 등 가혹행위가 자행되며, 여성 수용자들은 성적 학대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101]

공개 처형은 수감자들에게 공포심을 심어주고 복종을 강요하는 수단으로 활용된다.[104] 탈출을 시도하다 잡히면 공개 처형될 수 있으며,[105] 수감자들은 극심한 감시와 통제 속에 놓여있다.

수용소는 수감자 간의 감시와 고발을 조장하는 시스템으로 운영된다.[49] '소대장'이나 '반장'으로 임명된 수용자는 다른 수용자를 감시하고, 고문에 가담하기도 한다.

수감자들은 쥐, 뱀, 바퀴벌레 등을 잡아먹으며 연명하고,[49][50][51][68] 하루 12시간 이상의 중노동에 시달린다.[68] 할당량을 채우지 못하면 가혹한 처벌을 받으며, 병에 걸려도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한다.[68]

정치범은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으며,[53] 감시원들은 수용자들을 폭행하고 고문하며, 심지어는 살해하기도 한다. 임산부의 경우 강제 낙태를 당하거나, 출산 후 신생아가 살해당하는 경우도 있다.

수용소 내에서는 '표창 결혼'이라는 제도가 존재하여, '모범수'로 선정된 남녀를 동거시키고, 태어난 아이는 강제 노동력으로 활용한다.

어린이 수감자들 역시 가혹한 노동과 학대에 시달린다.[68] 이들은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하고, 노동에 필요한 최소한의 지식만 배운다.

수용소에서는 각종 고문이 자행되며, 수감자들은 극심한 신체적, 정신적 고통을 겪는다.[68]

국가보위성과 사회안전성이 관리소를 운영하며, 수용자 수는 약 20만 명에서 30만 명으로 추정된다.[54]

북한 당국은 수용자의 자살을 '반역'으로 간주하여, 연좌제를 통해 유족에게 불이익을 준다. 질병에 걸린 수용자는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하고, 인체 실험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일부 수용소에는 조국 귀환 사업으로 북한에 건너간 재일 조선인과 그 일본인 아내도 수용되어 있으며, 이들은 더욱 가혹한 처우를 받는다고 알려져 있다.[57]

8. 수용소 목록

다음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정치범수용소 목록이다. 크게 정치범수용소(관리소)와 교화소로 나뉜다.
정치범수용소 (관리소)

정치범 수용소공식 명칭위치수감자비고현재 상태
개천 정치범수용소관리소 제14호개천, 평안남도15,000명신동혁 증언운영 중, 확장 가능성[33]
요덕 수용소관리소 제15호요덕, 함경남도50,000명강철환 증언2014년 이후 폐쇄
화성 관리소관리소 제16호화성, 함경북도20,000명풍계리 핵실험장 인접운영 중
북창 관리소관리소 제18호북창, 평안남도30,000명김용 증언재개장 또는 14호와 통합 가능성
회령 수용소관리소 제22호회령, 함경북도50,000명안명철 증언2012년 이후 폐쇄
청진 수용소관리소 제25호청진, 함경북도5,000명진경숙 납치 및 이송운영 중
경성 정치범 수용소관리소 제11호경성, 함경북도20,000명김일성 별장으로 개조1990년 이후 폐쇄
온성 정치범 수용소관리소 제12호온성, 함경북도15,000명[32]수감자 폭동 (5,000명 사망)1989년 이후 폐쇄
청송 정치범 수용소관리소 제13호청송, 함경북도20,000명중국 국경 근접으로 이감1990년 이후 폐쇄
덕성 정치범 수용소관리소 제17호덕성, 함경남도30,000-40,000명18호 광산 개발 지원1984년 이후 폐쇄
단천 수용소관리소 제19호단천, 함경남도10,000명수용소 수 감축1990년 이후 폐쇄
단천 수용소관리소 제21호단천, 함경남도10,000명국가정보원 보고 (19호와 동일 추정)1990년 이후 폐쇄
덕성 정치범 수용소관리소 제23호덕성, 함경남도10,000명수감자 석방, 교도소 변경1987년 이후 폐쇄
동신 정치범 수용소관리소 제24호동신, 자강도17,000명1990년 이후 폐쇄
승호리 정치범 수용소관리소 제26호승호, 평양직할시1991년 이후 폐쇄
천마 정치범 수용소관리소 제27호천마, 함경북도15,000명1991년 이후 폐쇄


교화소

교화소공식 명칭위치수감자설명현재 상태
개천 교화소제1교화소개천시, 평안남도6,000명[43]이순옥 증언운영 중
동림 교화소제2교화소동림군, 평안북도미상NKDB 보고, 운영 상태 미상[43]미상
신의주 교화소제3교화소신의주시, 평안북도2,500명중국 국경 근처운영 중
강동 교화소제4교화소강동군, 평양직할시7,000명평양에서 30km운영 중
강원 교화소제5교화소강원도미상KINU 목록, 정보 없음미상
사리원 교화소제6교화소사리원시, 황해북도4,000명알리 라메다, 자크 세딜로 수감운영 중
강계 교화소제7교화소강계시, 자강도미상미상
룡담 교화소제8교화소원산시, 강원도3,000명운영 중
함흥 교화소제9교화소함흥시, 함경남도500명구 식민지 감옥운영 중
용담 교화소제10교화소원산시, 강원도미상8호에 흡수폐쇄
중산 교화소제11교화소중산군, 평안남도3,300명귀환 탈북자운영 중
회령 교화소제12교화소회령시, 함경북도2,000명귀환 탈북자운영 중
오로 교화소제22교화소영광군, 함경남도6,000명2008년경 폐쇄폐쇄 추정
천마 교화소제55교화소천마군, 평안북도미상과밀 수용, 77호 이송미상
탄광 교화소제77교화소단천시, 함경남도6,000명1997년경 폐쇄폐쇄
원산 교화소제88교화소원산시, 강원도미상운영 중
회령 교화소교화소회령시, 함경북도1,500명12호 명명 또는 폐쇄미상
승호리 교화소제8교화소평양직할시, 황해북도2,000명폐쇄 후 재개장운영 중


9. 수용자 증언

강철환은 요덕 정치범 수용소에서의 경험을 담은 책 ''평양의 수족관''을 저술했다.[34] 신동혁은 개천 정치범 수용소에서 탈출한 것으로 알려진 유일한 인물로, 수용소에서의 경험을 증언했다.[35] 이순옥은 개천 제1호 교화소에서의 수용 경험을 바탕으로 『꼬리 없는 짐승들의 눈: 북한 여성 수형자의 회상록』을 기록하고, 미국 상원 앞에서 증언했다.[44] 전 경비병 안명철은 정치범을 인간이 아닌 개, 돼지로 생각하도록 교육받았다고 증언했다.[53]

10. 외국인 수용 사례

케네스 배(배준호, 한국계 미국인)는 2012년부터 2014년까지 735일 동안 북한에 억류되었다.[63] 2013년 4월 북한 최고재판소에서 국가전복음모죄로 15년 노동교화형을 선고받고, 5월에 미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교화소에 수용되었다.[64] 배준호에 따르면, 평양 중심부에서 자동차로 20분 거리에 있는 농촌 지역에 외국인 전용 교화소가 있으며, 직원 30~40명이 있고, 독방은 8개였다.[64] 교화소에는 감시 카메라가 3대 설치되어 있었고, 취침 시간을 제외하고는 의자에 앉아 있어야 했다. 방에는 욕조가 없었고, 양동이에 담은 물로 하루에 한 번 몸을 씻었다. 겨울에는 난방이 있었지만 냉방이 없었고, 여름에는 창문을 열었지만 벌레가 많이 들어와서 괴로웠다. 의류는 2벌만 지급되었고, 전등은 없었고 등불은 촛불뿐이었다.[64] 주 6일 노동을 강요받았고, 오전 8시부터 오후 6시까지 농작업이나 석탄 분말 제조 작업에 종사했다.[64] 오후 8시부터 오후 10시까지 조선중앙텔레비전 시청을 강요받았는데, 고통스러웠다고 한다.[64] 여름 식사는 쌀밥과 국에 나물이 나오거나 과자나 생선도 조금 나오는 등 비교적 식량은 풍족했지만, 겨울에는 식사가 적어서 젓갈과 국뿐이었고, 배준호는 체중이 27kg이나 줄었다. 수용소 입소 3개월 후에 영양실조에 걸려 병원으로 이송되었다.[63][65]

2007년 6월 28일, 도희륜(탈북자 인권연대 사무총장)은 탈북자의 증언을 발표했다.[57] 탈북자에 따르면, '''수 명의 일본인 납치 피해자가 북한의 관리소에 수용되어 있었으며''', 2003년 7월 양강도 북부 지역의 관리소를 순시했을 때, 일본인 납치 피해자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한다.[57] '''그 일본인은 약 60세였으며, 집단 작업을 하던 사람들과는 달리, 혼자 허리를 굽힌 채 보일러에 석탄을 때는 작업을 하고 있었고''', 경비병이 근처에서 감시하고 있었다고 한다.[57] 또한 수용소 책임자로부터 '''일본인 납치 피해자가 3~4명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한다.[57]

관리소 중 일부에는 1959년부터 진행된 조국 귀환 사업으로 일본에서 북한으로 건너간 전 재일 조선인과 그 일본인 아내도 많이 수용되어 있다. 북한의 공작 기관은 일본에 거주하는 재일 조선인에게 북한에 거주하는 친족을 강제 수용소에 수용하겠다고 암시하며 협박하여 북한 본국에 헌금을 강요하거나, 토대인으로 만들고 있다. 민주주의 경험자인 전 재일 조선인 귀국자와 일본인 아내는 북한 사회의 르상티망(증오)의 대상으로 박해받고 있으며, 강제 수용소로 보내진 귀국자는 특히 가혹한 처우를 받고 있다고 한다. 안명철의 증언에 따르면, '''강제 수용소에 수감된 일본인 아내가 "일본의 스파이, 식민지 지배자"로 몰려 몽둥이로 맞아 죽는 현장을 목격했다고 한다.'''

11. 국제 사회의 노력

북한 정치범수용소 문제 해결을 위한 국제 사회의 노력은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대한민국 정부는 북한 인권 문제 개선을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며, 국제 앰네스티를 비롯한 여러 인권 단체들은 북한 정치범수용소의 실태를 조사하고 관련 보고서를 발간하여 국제 사회의 관심을 촉구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은 북한 주민들의 인권 개선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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