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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서 (서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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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해서체는 한자를 표기하는 서체의 한 종류로, 한나라 때 왕차중이 전서체를 기반으로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다. 동한과 삼국 시대에 인기를 얻었으며, 조위의 종요는 해서체의 아버지로 여겨진다. 당나라 시대에는 구양순, 우세남, 저수량, 설지 등 유명 서예가들이 등장하여 양식적으로 성숙해졌으며, 송나라 시대에는 송 휘종이 수금체를 만들었다. 한국에는 삼국시대부터 유입되어 통일신라 시대에 구양순체와 왕희지체가 유행했고, 현대에는 전통 서예뿐만 아니라 디지털 폰트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된다. 용(永)자 팔법은 해서체의 획 변형을 요약하며, 해서체는 인쇄 서체인 명조체, 고딕체 등의 기반이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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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서 (서체)
개요
해서
"해서"의 전통 (왼쪽) 및 간체 (오른쪽) 형태
종류표의 문자
사용 시기2세기 경 ~ 현재
계통갑골문
소전
예서
파생명조체
방송체
유니코드https://unicode.org/charts/PDF/U4E00.pdf CJK 통합 한자 (가장 일반적)
(전체 목록)
명칭
한국어 (표준어)해서 (楷書)
한자 (간체)楷书
한자 (번체)楷書
로마자 표기kaesyu
한자 의미모범 서체
다른 이름진서 (真書)
정해 (正楷)
해체 (楷體)
정서 (正書)
일본어 (가나)かいしょ
일본어 (로마자)Kaisho
베트남어khải thư, chữ khải
중국어 (병음)kǎishū
역사
기원후한 시대
발전삼국 시대
완성진나라 시대
대표 서예가왕희지
구양순
안진경
유공권
특징
구조정방형
획의 균형과 조화
가로획 (ㅡ)
세로획 (ㅣ)
삐침 (丿)
파임 (乀)
점 (、)
용도
현대인쇄
서예
컴퓨터 글꼴
과거공문서
교과서
서적

2. 역사

《선화서보(宣和書譜)》에 따르면 초기 한나라(기원전 202년~서기 220년) 때 왕차중왕차중/王次仲중국어이 전서체를 기반으로 한 정자체를 만들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동한과 삼국 시대에 인기를 얻었으며, 조위(220–266)의 서예가인 종요(151-230)는 정자체의 첫 번째 대가로 여겨지며, 정자체의 아버지로 알려져 있다. 그의 유명한 작품으로는 《선시표(宣示表)》, 《천계직표(薦季直表)》, 《역명표(力命表)》가 있다. 추시귀는 《선시표》의 서체를 초기 행서체에서 명확하게 나타나는 형태로 묘사하며, 더 품위있게 쓰고 획의 시작과 끝을 강조하는 특징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당시에는 소수의 문인 외에는 이 서체로 글을 쓰는 사람이 거의 없었고, 대부분은 신예서체 또는 행서체와 신예서체의 혼합 형태를 사용했다. 정자체는 남북조 시대 초기(420–589)의 5세기가 되어서야 지배적인 서체가 되었다. 신예서체뿐만 아니라 정자체에서 파생된 다양한 정자체가 있었는데, 이는 정자 또는 위 비석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정자체는 초기 행서체 스타일과 신예서체에서 모두 파생되었다.

남북조 시대 초기에는 정자체(正字體)가 지배적인 서체가 아니었지만, 5세기에 이르러 점차 널리 사용되기 시작했다. 신예서체뿐만 아니라 정자체에서 파생된 다양한 정자체가 있었는데, 이는 정자(魏楷) 또는 위 비석(魏碑)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에는 개서의 자형이 표준화되지 않아, 다른 자형의 문자가 많았으며, 이러한 이체자를 육조별자라고 불렀다.

당나라 시대에는 양식적으로 성숙해졌다고 여겨지며, 구양순, 우세남, 저수량, 설지를 포함한 초당 4대 서예가와 안진경, 유공권 등 유명한 서예가들이 등장했다. 특히 구양순의 구성궁예천명은 개법의 극치를 보여주는 것으로 유명하다. 안진경은 소전을 바탕으로 개서의 자형을 표준화하려고 했으며, 그의 특징적인 자형을 안체, 서법을 안법이라고 한다. 또한, 태종 시대에 개서가 세련된 배경에는 율령제에 따른 문서 행정과 과거의 도입에 따라 모든 관인이 사용할 수 있는 서체의 확립이 요구되었던 사정이 있었고, 그 때 태종이 애호했던 왕희지의 영향을 받은 서법이 채용되었다고 여겨진다.

북송 (960–1127) 시대에 송 휘종은 로 알려진 상징적인 스타일을 만들었다.[2] 원나라 (1271–1368) 시대에 조맹부 (1254–1322)는 자신의 서예 스타일인 로 유명해졌다.

청나라 (1644–1912) 시대에는 해서체의 기본 구조를 다루는 92개의 규칙이 제정되었으며, 서예가 은 이러한 규칙을 설명하는 안내서를 작성했다.

목판 인쇄는 당나라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해서 서체가 세련된 것은 시대이다. 대부분의 목판 인쇄는 정판(보통 2페이지를 1장의 목판 한 면에 조각함)으로 제작되었다. 송나라 시대에 인쇄된 책에 사용된 해서 서체 중 특히 널리 사용된 서체를, 나라 시대 후반 이후에 모방한 인쇄 서체가 송조체이다. 명나라 시대 후반에는 서적의 상업적 인쇄 간행이 성행하여, 분업으로 효율적으로 조각할 수 있고 읽기 쉬운 서체로서 명조체가 발명되었다.

중국과 일본의 서적 활자 인쇄는, 19세기 중반까지 소량의 서적에 한정되어 있었다. 조선을 제외하고는 일반적이지 않았으므로, 활자 서체는 정판 서체와 동일하다.

한국에서는 삼국시대부터 해서가 유입되어 사용되었다. 통일신라시대에는 구양순체와 왕희지체가 유행하였다. 고려시대에는 구양순체와 더불어 안진경체가 유행하였고, 조선시대에는 안진경체와 조맹부체가 주류를 이루었다.

당나라 (618–907) 시대에 해서는 양식적으로 성숙해진 것으로 여겨지는데, 당시 가장 유명하고 자주 모방된 서예가들은 초기 당나라의 4대 서예가()인 구양순, 우세남, 저수량, 설지와 안진경, 유공권이었다.

북송 (960–1127) 시대에 송 휘종은 로 알려진 상징적인 스타일을 만들었으며,[2] 원나라 (1271–1368) 시대에 조맹부 (1254–1322) 또한 정자체에 대한 자신의 서예 스타일인 로 유명해졌다.

현대 한국에서는 전통 서예뿐만 아니라 디지털 폰트, 디자인 등 다양한 분야에서 해서체가 활용되고 있다.

2. 1. 초기 역사

《선화서보》(宣和書譜)에 따르면 초기 한나라(기원전 202년~서기 220년) 때 왕차중왕차중/王次仲중국어이 전서체를 기반으로 한 정자체를 만들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동한과 삼국 시대에 인기를 얻었으며, 조위(220–266)의 서예가인 종요(151-230)는 정자체의 첫 번째 대가로 여겨지며, 정자체의 아버지로 알려져 있다. 그의 유명한 작품으로는 《선시표(宣示表)》, 《천계직표(薦季直表)》, 《역명표(力命表)》가 있다. 추시귀는 《선시표》의 서체를 초기 행서체에서 명확하게 나타나는 형태로 묘사하며, 더 품위있게 쓰고 획의 시작과 끝을 강조하는 특징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당시에는 소수의 문인 외에는 이 서체로 글을 쓰는 사람이 거의 없었고, 대부분은 신예서체 또는 행서체와 신예서체의 혼합 형태를 사용했다. 정자체는 남북조 시대 초기(420–589)의 5세기가 되어서야 지배적인 서체가 되었다. 신예서체뿐만 아니라 정자체에서 파생된 다양한 정자체가 있었는데, 이는 정자 또는 위 비석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정자체는 초기 행서체 스타일과 신예서체에서 모두 파생되었다.

2. 2. 남북조 시대 ~ 당나라

남북조 시대 초기에는 정자체(正字體)가 지배적인 서체가 아니었지만, 5세기에 이르러 점차 널리 사용되기 시작했다. 신예서체뿐만 아니라 정자체에서 파생된 다양한 정자체가 있었는데, 이는 정자(魏楷) 또는 위 비석(魏碑)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에는 개서의 자형이 표준화되지 않아, 다른 자형의 문자가 많았으며, 이러한 이체자를 육조별자라고 불렀다.

당나라 시대에는 양식적으로 성숙해졌다고 여겨지며, 구양순, 우세남, 저수량, 설지를 포함한 초당 4대 서예가와 안진경, 유공권 등 유명한 서예가들이 등장했다. 특히 구양순의 구성궁예천명은 개법의 극치를 보여주는 것으로 유명하다. 안진경은 소전을 바탕으로 개서의 자형을 표준화하려고 했으며, 그의 특징적인 자형을 안체, 서법을 안법이라고 한다. 또한, 태종 시대에 개서가 세련된 배경에는 율령제에 따른 문서 행정과 과거의 도입에 따라 모든 관인이 사용할 수 있는 서체의 확립이 요구되었던 사정이 있었고, 그 때 태종이 애호했던 왕희지의 영향을 받은 서법이 채용되었다고 여겨진다.

2. 3. 송나라 ~ 청나라

북송 (960–1127) 시대에 송 휘종은 로 알려진 상징적인 스타일을 만들었다.[2] 원나라 (1271–1368) 시대에 조맹부 (1254–1322)는 자신의 서예 스타일인 로 유명해졌다.

청나라 (1644–1912) 시대에는 해서체의 기본 구조를 다루는 92개의 규칙이 제정되었으며, 서예가 은 이러한 규칙을 설명하는 안내서를 작성했다.

목판 인쇄는 당나라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해서 서체가 세련된 것은 시대이다. 대부분의 목판 인쇄는 정판(보통 2페이지를 1장의 목판 한 면에 조각함)으로 제작되었다. 송나라 시대에 인쇄된 책에 사용된 해서 서체 중 특히 널리 사용된 서체를, 나라 시대 후반 이후에 모방한 인쇄 서체가 송조체이다. 명나라 시대 후반에는 서적의 상업적 인쇄 간행이 성행하여, 분업으로 효율적으로 조각할 수 있고 읽기 쉬운 서체로서 명조체가 발명되었다.

중국과 일본의 서적 활자 인쇄는, 19세기 중반까지 소량의 서적에 한정되어 있었다. 조선을 제외하고는 일반적이지 않았으므로, 활자 서체는 정판 서체와 동일하다.

2. 4. 한국의 해서

한국에서는 삼국시대부터 해서가 유입되어 사용되었다. 통일신라시대에는 구양순체와 왕희지체가 유행하였다. 고려시대에는 구양순체와 더불어 안진경체가 유행하였고, 조선시대에는 안진경체와 조맹부체가 주류를 이루었다.

당나라 (618–907) 시대에 해서는 양식적으로 성숙해진 것으로 여겨지는데, 당시 가장 유명하고 자주 모방된 서예가들은 초기 당나라의 4대 서예가()인 구양순, 우세남, 저수량, 설지와 안진경, 유공권이었다.

북송 (960–1127) 시대에 송 휘종은 로 알려진 상징적인 스타일을 만들었으며,[2] 원나라 (1271–1368) 시대에 조맹부 (1254–1322) 또한 정자체에 대한 자신의 서예 스타일인 로 유명해졌다.

현대 한국에서는 전통 서예뿐만 아니라 디지털 폰트, 디자인 등 다양한 분야에서 해서체가 활용되고 있다.

3. 특징

용(永)자 팔법은 해서체에 나타나는 대부분의 획의 변형을 요약한 것이다. 해서체 글자 중 크기가 5cm보다 큰 것은 보통 '대해'로 분류되며, 2cm보다 작은 것은 보통 '소해', 그 중간 크기는 '중해'로 분류된다.

해서체로 쓰인 주목할 만한 작품으로는 남북조 시대의 《요백다조상기》와 《광무장군비》, 수나라 시대의 《용장사비》, 《소효자묘지》, 《동미인묘지》, 당나라 시대의 《구성궁예천명》 등이 있다.

3. 1. 서예적 특징

용(永)자 팔법은 해서체에 나타나는 대부분의 획의 변형을 요약한 것이다. 해서체 글자 중 크기가 5cm보다 큰 것은 보통 '대해'로 분류되며, 2cm보다 작은 것은 보통 '소해', 그 중간 크기는 '중해'로 분류된다.

해서체로 쓰인 주목할 만한 작품으로는 남북조 시대의 《요백다조상기》와 《광무장군비》, 수나라 시대의 《용장사비》, 《소효자묘지》, 《동미인묘지》, 당나라 시대의 《구성궁예천명》 등이 있다.

3. 2. 현대적 특징

현대 일본에서는 해서를 활자체(명조체)의 자형을 따라 한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이는 강희자전의 서체를 바탕으로 한 것으로 전통적인 해서와는 다르다. 목판 인쇄는 당나라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해서 서체가 세련된 것은 송나라 시대이다. 대부분의 목판 인쇄는 정판(보통 2페이지를 1장의 목판 한 면에 조각함)으로 제작되었다. 명나라 시대 후반에는 서적의 상업적 인쇄 간행이 성행하여, 분업으로 효율적으로 조각할 수 있고 읽기 쉬운 서체로서 명조체가 발명되었다.

중국과 일본의 서적 활자 인쇄는 19세기 중반까지 소량의 서적에 한정되어 있었다. 조선을 제외하고는 일반적이지 않았으므로, 활자 서체는 정판 서체와 동일했다.

4. 파생 서체

방송체는 송나라 시대에 개발된 인쇄 스타일을 기반으로 한다. 가장 일반적인 인쇄 서체 스타일인 명조체고딕체는 방송체를 기반으로 한다.

일본 교과서체(kyōkashotai/教科書体일본어)는 해서체를 기반으로 하지만, 연필이나 펜으로 쓴 것처럼 보이도록 수정되었다. 또한 ''상용한자''의 글자 형태를 따른다.

주음 부호 반음절 문자는 거의 항상 해서체의 획을 사용하여 작성된다.

현재 인쇄 서체로 사용되며, 청나라 초기의 목판 인쇄에 사용된 '''연체 해서체'''・'''청조체''' 등으로 불리는 서체를 바탕으로 한다. 이 서체는 명조체의 영향을 받으면서, 강희제가 좋아했던 명나라 말기의 동기창, 건륭제가 좋아했던 조맹부의 서풍의 영향을 받았다. 이 연체 해서는 일본의 교과서체, 홍도헌청조체, 정해 서체, 대만의 표준 해서체(표준 해서체) 등에서 볼 수 있다. 이 외에도 송조체, 명조체, 고딕체 등 다수의 서체가 있다.

5. 컴퓨터 서체

CJK 글꼴 목록에서 정자체 부분을 참고할 수 있다.

6. 갤러리

종요의 ''선시표'' (''Xuanshi Biao''), 예서에서 해서로 넘어가는 초기 시대 작품


참조

[1] 간행물 Chinese Writing https://asiasociety.[...] 2023-10-01
[2] 간행물 Huizong https://www.britanni[...]
[3] 서적 楷書体について 同成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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