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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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병풍은 여러 폭의 얇은 판을 연결하여 세워두는 가구로, 동아시아에서 유래하여 장식, 칸막이, 바람막이 등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었다. 중국에서는 한나라 시대에 접이식 병풍이 발명되었으며, 신화, 궁중 생활, 자연 등을 주제로 한 그림으로 장식되어 예술 작품으로도 여겨졌다. 한국, 일본, 베트남 등 동아시아 각국으로 전파되어 고유한 형태로 발전했으며, 특히 한국에서는 일월오봉도와 같은 왕실의 상징으로 사용되었다. 중세 후기에는 유럽에 소개되어 예술품으로 수집되었으며, 현재까지도 다양한 문화 행사와 예술 작품에 활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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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풍 | |
---|---|
지도 정보 | |
기본 정보 | |
명칭 | 병풍 |
한자 | 屏風 |
로마자 표기 | byeongpung |
의미 | 바람을 막는 물건, 바람막이 |
형태 | |
종류 | 외짝 병풍 두 짝 병풍 네 짝 병풍 여섯 짝 병풍 여덟 짝 병풍 열 짝 병풍 |
재료 | 나무, 종이, 비단, 옻칠 |
용도 | |
기능 | 실내 장식 공간 분리 가림막 |
사용 장소 | 궁궐 사대부 집 사찰 일반 가정 |
역사적 맥락 | 고대 중국에서 시작 한국, 일본 등 동아시아 문화권에서 발전 현대에는 장식용으로 사용 |
문화적 의미 | |
그림 | 산수화 화조화 인물화 문자도 고사인물도 |
상징 | 장수 부귀 다산 행운 |
추가 정보 | |
관련 항목 | 간막이 |
외부 링크 | 국립중앙박물관 |
2. 역사
병풍의 역사는 매우 오래되었다. 중국의 한나라 시대에는 이미 바람을 막는 도구로 존재했다. 위, 진, 남북조 시대에는 왕족의 사치스러운 장식품으로 변해갔다.[23]
일본에서는 문헌상으로는 『일본서기』에 처음으로 병풍에 관한 기록이 보인다.[23]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병풍은 686년 조선반도의 신라에서 헌상된 것이라고 전해진다. 현존하는 것 중에서는 8세기에 만들어진 것(『조우모리츠죠병풍』)이 정창원에 보관되어 있다.
헤이안 시대나 가마쿠라 시대의 병풍은 극소수만 확인되었지만, 무로마치 시대가 되면 수묵화나 극채색의 병풍이 많이 제작되었다.[23] 무로마치 시대에는 오늘날의 병풍 그림 형태가 정비되고, 근세의 금벽장병화로 발전했다.[24]
중세에는 수출품으로 귀하게 여겨지고, 외국에 대한 선물로도 사용되었다. 천명선의 경우에는 반드시 금병풍 세 폭을 보내는 관습이었다. 1433년 천명선의 조공품 예산 목록인 「도당어물갖가지어요각」에는 「어병풍 삼쌍 대백오관문」이라고 계상되었고, 1541년 다이나이 요시타카가 가노 모토노부에게 제작을 의뢰한 발주서에는 「일쌍분대. 삼십오관문」이라고 명기되어 있다. 근세에는 안토쿠지마 시대부터 에도 시대에 걸쳐 사치스러운 금빛의 화려한 병풍이 많이 만들어졌다.
2. 1. 기원
병풍은 기원전 771년부터 기원전 256년까지의 중국 동주(주)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1][2] 초기에는 한 폭짜리 병풍이었으나, 한나라(Han dynasty)(기원전 206년~서기 220년) 때 접이식 병풍이 발명되었다.[3][4] 산둥성 주청(Zhucheng)의 한나라 시대 무덤 등에서 접이식 병풍의 묘사가 발견되었다.[1]

접이식 병풍은 종종 아름다운 예술 작품으로 장식되었으며, 신화, 궁중 생활 장면, 자연 등이 주요 주제였다. 중국 문학(Chinese literature)에서는 종종 음모와 로맨스와 관련되었으며, 예를 들어 사랑에 빠진 젊은 여성이 병풍 뒤에 숨어 몰래 엿볼 수 있었다.[1][2] 조설진(Cao Xueqin)의 고전 소설 ''홍루몽(Dream of the Red Chamber)''에 이러한 예가 등장한다.[5] 접이식 병풍은 당 문학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요소였다.[6] 당나라 시인 이하(Li He)(790-816)는 "병풍곡"()에서 신혼 부부의 접이식 병풍을 묘사했는데, 열두 폭의 판넬에 나비가 석죽(China pink) 꽃에 내려앉은 모습(연인을 암시)으로 장식되어 있었고, 유리 동전을 닮은 은색 경첩이 있었다.[6]
2. 2. 동아시아로의 확산
병풍은 동아시아 전역으로 확산되며 각 지역의 문화와 예술에 큰 영향을 미쳤다.중국에서는 한나라 시대부터 바람을 막는 도구로 병풍이 사용되었으며, 위, 진, 남북조 시대에는 왕족의 사치스러운 장식품으로 발전했다.
일본에서는 『일본서기』에 병풍에 관한 기록이 처음 등장한다.[23]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병풍은 686년 신라에서 헌상된 것이라고 전해지며,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병풍은 8세기에 만들어진 『조우모리츠죠병풍』으로 정창원에 보관되어 있다. 무로마치 시대에는 수묵화나 극채색 병풍이 많이 제작되었고,[23] 오늘날의 병풍 그림 형태가 정비되어 근세의 금벽장병화로 발전했다.[24]
중세 시대에는 병풍이 수출품으로 귀하게 여겨졌고, 외국에 대한 선물로도 사용되었다. 천명선의 경우에는 반드시 금병풍 세 폭을 보내는 관습이 있었다. 1433년 천명선의 조공품 예산 목록인 「도당어물갖가지어요각」에는 「어병풍 삼쌍 대백오관문」이, 1541년 다이나이 요시타카가 가노 모토노부에게 제작을 의뢰한 발주서에는 「일쌍분대. 삼십오관문」이 명기되어 있다. 근세에는 안토쿠지마 시대부터 에도 시대에 걸쳐 화려한 금빛 병풍이 많이 만들어졌다.
2. 2. 1. 한국

병풍은 통일신라(668~935) 시대부터 중요하게 사용되었다.[9] 온돌 난방에서 발생하는 바람을 막거나, 장식, 칸막이 용도로 한국 전역에서 사용되었다.[10] 한국 병풍에는 풍경화, 꽃 그림, 서예 작품 등이 흔히 그려졌다. 조선 국왕의 어좌 뒤에 놓이는 일월오봉도는 왕궁의 중요한 요소로서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등 여러 궁궐에서 볼 수 있다.

책장에 놓인 책과 같은 학문적인 모티브가 특징인 책가도(책가도) 병풍도 있었다.
조선 시대에 제작된 일반적인 병풍 유형은 다음과 같다.
종류 | 설명 |
---|---|
침병(寢屛) | 침대 옆에 두는 병풍 |
백납병(百衲屛) | 다양한 주제의 그림이나 글씨로 장식된 병풍 |
장생도병(長生圖屛) | "십장생도"(10가지 장수의 상징)를 묘사한 병풍[11] |
신선도병(神仙圖屛) | 도교 사상의 영향을 받은 신선 그림이 그려진 병풍 |
소병(素屛) | 그림 없이 흰 종이만 사용하여 제사나 상례에 사용하는 병풍 |
2. 2. 2. 일본
일본 병풍(byōbu)은 중국의 한나라에서 유래하여 7세기 또는 8세기에 일본으로 전래된 것으로 여겨진다. 일본에서 제작된 가장 오래된 병풍은 8세기의 '토리게 릿슈조노 병풍'(鳥毛立女屏風)으로, 정소원(正倉院)에 보관되어 있다.[12] 9세기 헤이안 시대에는 일본 고유의 국풍문화(国風文化) 발전에 따라 디자인이 더욱 토착화되어 신전 츠쿠리(寝殿造) 건축 양식의 가구로 사용되게 되었다.무로마치 시대의 병풍 특징은 정적 공간 표현이었지만, 아즈치모모야마 시대에는 다이묘(大名, 봉건 영주)들의 패권 다툼 속에 호랑이와 용 그림 병풍이 유행했다.[13] 에도 시대에는 경제 발전과 함께 등장한 상인들이 병풍 제작의 후원자가 되었다. 이 시대에는 금박이나 은박을 사용한 화려한 장식, 단순한 사물을 묘사한 대담한 구성, 반복되는 패턴이 특징인 림파(琳派) 병풍이 유행했다.[14]


2. 2. 3. 베트남
베트남에서 병풍은 ''bình phong''(屏風)이라고 불린다. 응우옌 왕조 시대에 병풍이 유행했는데, 이는 중국에서 유래했다. 중국의 영향을 받아 베트남에 전래된 병풍에는 용과 풍경화 같은 일반적인 모티프가 사용되었다. 병풍은 종종 ''khảm xà cừ'' (자개를 박는 기법)로 장식되었다.[15][16] 베트남에서는 풍수의 영향으로 병풍이 집 앞에 보호와 행운을 위해 지어지는 건축물 형태로 발전하기도 했다.[15][16]



2. 3. 유럽으로의 전파
중세 후기에 병풍이 유럽에 소개되었다.[1] 17세기와 18세기에는 많은 병풍이 중국에서 유럽으로 수입되었다.[1][2][18] 특히 프랑스를 중심으로 유럽인들은 중국 병풍에 대한 큰 관심과 함께 예술 작품으로 장식된 대형 칠기 병풍을 수입하기 시작했다.[1][2] 프랑스 패션 디자이너 코코 샤넬은 중국 병풍의 열렬한 수집가로 알려져 있는데, 32개의 병풍을 소유했으며 그 중 8개는 파리 캉봉 거리 31번지에 있는 그녀의 아파트에 있었다고 한다.[19] 그녀는 "18세 때부터 중국 병풍을 좋아했습니다. 중국 상점에 들어가 처음으로 코로만델을 보았을 때 기뻐서 거의 기절할 뻔했습니다. 병풍은 제가 처음으로 산 물건이었습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20]3. 구조
기본적인 구조는 직사각형 나무틀 골격에 종이나 천을 붙인 형태이다. 가늘고 긴 패널 하나를 한 폭이라고 하며, 여러 폭을 연결하여 병풍을 만든다.[24] 초기에는 각 폭을 가죽끈 등으로 연결했지만, 가마쿠라 시대에 종이 경첩이 고안되어 앞뒤로 개폐가 가능해졌다.[23] 무로마치 시대 초기에는 병풍 전체가 하나로 이어지는 대형 화면이 실현되었다.[23]
4. 예술
병풍은 단순한 가구를 넘어 예술 작품을 전시하는 중요한 수단으로 활용되었다. 당나라 시대에는 많은 화가들이 자신의 그림과 서예를 전시하는 데 병풍을 사용했다.[2][3] 당시 역사 문헌에는 그림 병풍과 글씨 병풍 두 가지 종류가 언급되었다.[3][7] 송나라 시대에는 접이식 병풍의 풍경화가 전성기를 맞이했다.[1] 명나라 후기에는 코로만델 병풍의 칠기 기법을 활용하여 어두운 병풍에 그림을 새기고, 진주층, 상아 등으로 장식한 병풍이 등장했다.[8][21]
무로마치 시대에는 수묵화나 극채색 병풍이 많이 제작되었고,[23] 아즈치모모야마 시대에는 호랑이와 용 그림 병풍이 유행했다.[13] 에도 시대에는 림파 병풍이 유행했다.[14] 중세에는 병풍이 수출품이나 선물로 사용되기도 했다. 1433년 천명선의 조공품 예산 목록에 병풍이 포함되었고, 1541년에는 병풍 제작 발주서가 기록되기도 했다.
아즈치모모야마 시대부터 에도 시대에 걸쳐 병풍 그림은 예술로서 지위를 높여갔다. 가노 에이토쿠 등이 유명한 화가이다. 일본의 병풍 그림은 남만 무역을 통해 서구로 건너가 영향을 주었고, 포르투갈어와 스페인어로는 "비온보(BIOMBO)"라고 불렸다.[25]
4. 1. 병풍 그림

당나라 시대에는 접이식 병풍이 많은 화가들이 자신의 그림과 서예를 전시하는 이상적인 장식으로 여겨졌다.[2][3] 많은 예술가들이 종이 또는 비단에 그림을 그린 후 접이식 병풍에 붙였다.[2] 당시 역사 문헌에는 ''화병''(畫屛, 그림 병풍)과 ''서병''(書屛, 글씨 병풍) 두 가지 종류의 접이식 병풍이 언급되었다.[3][7] 당나라 시대 화가 조박(Cao Ba)이나 송나라 시대 화가 곽희(Guo Xi)처럼 예술가에게 접이식 병풍을 주문하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었다.[2] 송나라(960-1279) 시대에는 접이식 병풍의 풍경화가 전성기를 맞이했다.[1] 명나라 후기(1368-1644)에는 코로만델 병풍의 칠기 기법으로 알려진 ''관채''()가 등장하여[8] 어두운 병풍에 새기고, 그림을 그리고, 진주층, 상아 또는 기타 재료의 예술 작품을 상감하여 접이식 병풍에 적용되었다.[21]
무로마치 시대에는 수묵화나 극채색의 병풍이 많이 제작되었다.[23] 아즈치모모야마 시대에는 다이묘(大名, 봉건 영주)들의 패권 다툼 속에 호랑이와 용 그림 병풍이 유행했다.[13] 에도 시대에는 경제 발전과 함께 등장한 상인들이 병풍 제작의 후원자가 되었다. 이 시대에는 금박이나 은박을 사용한 화려한 장식, 단순한 사물을 묘사한 대담한 구성, 반복되는 패턴이 특징인 림파 병풍이 유행했다.[14]
중세에는 병풍이 수출품으로 귀하게 여겨지고, 외국에 대한 선물로도 사용되었다. 천명선의 경우에는 반드시 금병풍 세 폭을 보내는 관습이었다. 1433년 천명선의 조공품 예산 목록인 「도당어물갖가지어요각」에는 「어병풍 삼쌍 대백오관문」이라고 계상되었고, 1541년 다이나이 요시타카가 가노 모토노부에게 제작을 의뢰한 발주서에는 「일쌍분대. 삼십오관문」이라고 명기되어 있다.
아즈치모모야마 시대부터 에도 시대에 걸쳐 성곽에는 거의 예외 없이 병풍이 놓였고, 그로 인해 병풍 그림은 예술로서 그 지위를 높여갔다. 그 시대의 유명한 화가로는 가노 에이토쿠 등이 있다.
일본의 병풍 그림은 서구로 건너가 영향을 주었다. 전국 시대부터 에도 시대 초기에 걸쳐 이루어진 남만 무역을 통해 해외로 건너간 일본의 병풍 그림은 포르투갈어와 스페인어로 “비온보(BIOMBO)”라고 불렸다.[25] 작가는 확정되지 않았지만, 노아의 방주 전설을 일본식으로 그린 「대홍수도 병풍」도 제작되었다(멕시코 소우마야 미술관 소장). 또한 중국에서 서구로 수출된 병풍은 「콜로만델 병풍」이라고 불리며, 서양화를 끼워 넣어 사용되거나, 유럽이나 그 식민지에서 병풍 그림이 제작되기도 했다.[26]
4. 2. 금병풍
무로마치 시대에는 금박, 끊은 금박, 금분, 금채 등으로 장식한 금병풍이 제작되기 시작했다.[23] 금병풍은 일상이나 의례용 가구일 뿐만 아니라, 막부나 제후들로부터 중국, 조선, 유럽 등의 국왕에게 선물로 사용되기도 했다.[23]5. 문화
금색 병풍은 고급스러우면서도 무늬가 없어 앞쪽의 인물 등을 더욱 돋보이게 하고, 반사판으로서의 효과도 있어 결혼식장 등에서 활용되고 있다. 연예인의 약혼 기자회견장 등의 세트에도 사용된다. 2008년에는 춘풍정 소조(春風亭小朝)·타이요(泰葉) 부부가 열었던 '''이혼''' 기자회견에서도 사용되어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1]
가야금병창(箏曲), 지가(地歌) 등의 근세 일본 음악(近世邦楽)의 정식 연주회에서는 붉은 모전(毛氈)과 함께 사용되는 것이 일반적이며, 지가부(地歌舞), 일본 무용, 가부키 등의 공연 배경으로도 자주 사용된다.[1] 또한 고전 원예 식물의 실내 전시 시에도 배경으로 자주 사용된다.[1]
병풍은 완전히 접거나, 판처럼 완전히 펼친 상태에서는 쓰러지기 쉽고, 중간 정도 펼쳤을 때 안정적으로 설치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세상을 살아가는 데는 타협과 약간의 규칙 위반도 필요하다는 의미에서 "사람과 병풍은 곧바로 설 수 없다", "병풍과 상인은 구부려야 설 수 있다", "장사와 병풍은 펼치면 펼칠수록 쓰러지기 쉽다"라는 속담이 있다.[1]
중국 대륙에서는 유령이 병풍을 벽으로 여긴다는 속설이 있다. 중국의 전통적인 건물 입구가 ―_― 모양인 것은 그 때문이라는 설도 있다.[1]
6. 한국의 문화재
일월반도도 병풍은 대한민국의 보물 제1442호이다.[1] 왕세자탄강진하도 병풍은 대한민국의 보물 제1443호이다.[2]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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