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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태 타이거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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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해태 타이거즈는 1982년 창단하여 2001년 KIA 타이거즈로 팀명이 변경되기 전까지 활동한 프로 야구단이다. 9번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하며 1986년부터 1989년까지 4년 연속 우승을 달성하는 등 KBO 리그에서 독보적인 존재감을 과시했다. 김응용 감독, 선동열, 이종범 등 스타 선수들을 배출했으며, 방수원은 KBO 리그 최초의 노히트 노런을 기록했다. 5.18 민주화 운동과 관련된 사건으로 인해 한때 광주에서 홈 경기를 치르지 못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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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태 타이거즈 - [스포츠팀]에 관한 문서
구단 정보
구단 이름해태 타이거즈
구단 이름 (영문)Haitai Tigers
구단명KIA 타이거즈
회사명해태타이거즈
소속 리그한국프로야구
가맹 단체한국야구위원회
설립 연도1982년
해체 연도2001년
연고지광주, 전남, 전북
이전 홈구장광주무등경기장 야구장 (1982년 ~ 2001년)
전주종합경기장 야구장 (1982년 ~ 1989년)
수용 인원13,400명
영구 결번18 선동열 7 이종범
구단주이은경 (구단주 대행, 전 해태 타이거즈 감독 대행)
감독김동엽 (1982년)
조창수 (1982년, 감독대행)
김응룡 (1983년 ~ 2000년)
김성한 (2001년)
우승 기록
리그 우승 횟수6
리그 우승1983전기·1988통합·1991·1993·1996·1997
한국시리즈 우승 횟수9
한국시리즈 우승1983·1986·1987·1988·1989·1991·1993·1996·1997
한국시리즈 출장 횟수9
한국시리즈 출장1983·1986·1987·1988·1989·1991·1993·1996·1997
플레이오프 횟수4
플레이오프1987·1989·1990·1992
준플레이오프 횟수1
준플레이오프1994
기타 정보
마스코트호랑이

2. 역사

해태 타이거즈는 1982년 1월 30일 해태제과 본사에서 15명의 선수로 창단되었다. 6개 구단 중 가장 적은 선수단으로, OB 베어스MBC 청룡에 이어 3번째였다. 선수 대부분은 군산상업고등학교 출신이었다. 창단 초기, 감독과 코치진 간의 불화로 김동엽 감독이 사임하고 조창수 코치가 감독 대행을 맡는 등 어려움을 겪었다. 첫 시즌은 38승 42패, 4위로 마감했다. 김성한은 투타 겸업으로 10승(3선발승)-타점왕(69타점)이라는 진기록을 세웠고, 김봉연은 22홈런으로 원년 홈런왕에 올랐다.

1983년 미국 조지아 서던 칼리지에서 야구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김응용 감독이 해태 2대 감독으로 취임하여 대대적인 팀 개편에 들어갔다. 먼저 조창수와 유남호로 이뤄진 기존의 코치진에 군산상고 감독 출신 백기성과 동국대 감독으로 있던 김인식을 추가 영입해 코치스태프를 강화했다. 그 외에도 부족했던 선수를 보강하기 위해 삼성에서 벤치로 밀려나있던 서정환을 현금 트레이드로 영입했고 재일교포 선수인 김무종주동식을 영입해 팀의 약점인 배터리를 든든하게 했다. 한편 김응용감독은 스파르타식 훈련을 앞세운 전임 감독과는 정반대로 팀 훈련 외 시간은 철저하게 선수들의 자율에 맡겼다. 단체 훈련도 하루 3시간을 넘기는 일이 드물었다.

그 결과, 해태는 시즌 전 중위권 전력이라는 전문가들의 예상을 뒤엎고 1983년 6월 24일 구덕야구장에서 열린 롯데와의 경기에서 전기 리그 우승을 확정지었다. 6월 초까지 장명부를 앞세운 삼미와 1위 자리를 놓고 엎치락뒤치락을 거듭했고 2.5게임 차로 뒤진 가운데 6월 7일부터 열린 광주 3연전 맞대결을 싹쓸이 하며 단독 1위로 올라섰다. 그리고 마침내 6월 24일 삼미가 OB에게 패하면서 해태는 남은 경기와 관계없이 한국시리즈 직행을 확정 짓게 되었다. 이상윤이 20승(13선발승)을 거두는 활약으로 에이스로 거듭났고 기존의 김용남(13승)(7선발승)과 강만식(6승)도 호투하며 힘을 보탰다. 김일권으로 시작해 김성한, 김봉연, 김종모, 김준환 등으로 이어지는 타선은 전기리그 1위를 기록하는데 큰 공을 세웠다. 후기 리그 우승을 MBC 청룡에 넘겨 주고, 55승 44패 1무, 최종 순위 2위로 정규 시즌을 마감한다. MBC 청룡과 맞붙었던 1983년 한국시리즈에서 해태는 이상윤과 김용남, 주동식과 타선에서는 김봉연, 김성한, 김종모 등 'KKK포'의 활약 속에 4승 1무로 첫 한국시리즈 우승 트로피를 안게 된다.

그러나 1984년은 연봉처우에 대한 선수단의 불만이 극에 달하면서 전기 리그 4위, 후기 리그 3위, 최종 순위 5위로 추락했다. 그러나 5월 5일 광주무등구장에서 벌어진 삼미와의 경기에서 투수 방수원한국 프로 야구 최초의 노히트 노런을 기록했다.

1985년에도 에이스 이상윤의 부상 공백으로 투수력에 문제가 생겨 전기 리그 3위, 후기 리그 3위, 최종 순위 3위에 그쳤다. 그러나 신인 외야수 이순철투수 선동열, 그리고 홈런왕과 최다 안타, MVP를 차지한 김성한의 활약으로 1986년 ~ 1989년 한국시리즈 4연패의 기틀을 쌓게 된다.

1986년 해태 타이거즈는 평균 자책점 2.86을 기록한 철벽 마운드와 김봉연, 김종모, 김성한, 한대화, 이순철 등의 맹활약으로 전·후기 리그 2위를 기록하여 한국시리즈에 직행하였다. 삼성 라이온즈와의 한국시리즈에서 투수 김정수의 맹활약으로 4승 1패로 두 번째 우승을 차지한다.

이후 해태 타이거즈는 1989년까지 삼성 라이온즈를 1번, 빙그레 이글스를 2번 누르고 4년 연속 한국시리즈 우승을 거머쥐게 된다. 각각 김정수, 김준환, 문희수, 박철우가 한국시리즈 MVP를 차지하였다.

1989년 전라북도를 연고지로 하는 제8구단 쌍방울 레이더스가 창단되면서 그동안 유지해 온 전라북도 지역 연고권을 신생 구단인 쌍방울 레이더스에 양도하게 된다. 또한 해태 타이거즈의 연고지 및 신인 1차 지명 연고 지역도 호남 전 지역에서 광주직할시전라남도로 축소되었다. 해태 타이거즈는 1982년부터 1989년까지 전주야구장에서 홈 경기를 분산 개최해 왔는데, 전주에서 거둔 통산 성적은 40승 1무 24패, 승률 0.623로 높았다. 특히 1987년에는 전국체전광주 개최로 인해 플레이오프를 전주야구장으로 옮겨서 치렀는데, 해태 타이거즈는 OB 베어스전주에서 물리치고 한국시리즈에 진출한 적이 있다.

1990년 해태는 플레이오프에서 삼성 라이온즈에게 패해 한국시리즈 5연패에 실패하나, 1991년 빙그레 이글스를 누르고 6번째 우승에 성공하게 된다. 이 해 골든 글러브 수상자 10명 중 무려 6명(선동열, 장채근, 김성한, 한대화, 이호성, 이순철)의 골든 글러브 수상자를 배출하였으며, 팀 최다 수상 신기록을 경신하였다.

1992년 선동열의 부상으로 플레이오프에서 롯데 자이언츠에게 패배하였으나, 1993년 괴물 신인 유격수 이종범의 등장과 다승왕 조계현을 비롯해 선동열, 이대진, 송유석, 이강철 등의 맹활약으로 81승 42패 3무의 압도적인 승률을 기록하며 한국시리즈에서 진출하여 삼성 라이온즈를 꺾고 우승하였다.

1994년 이종범이 0.393(역대 2위)의 타율을 기록하였으나, 준 플레이오프에서 한화 이글스에게 패배하여 4위에 머물게 된다. 1995년에는 이종범이대진의 방위 복무로 인한 전력 공백으로 4위로 시즌을 마치고, KBO 규정에 따라 준 플레이오프에도 진출하지 못하여 시즌을 마친다.

1996년 선동열주니치 이적의 공백을 투수 임창용강태원이 메우며, 현대 유니콘스와의 한국시리즈에서 4승 2패로 여덟 번째 우승을 확정지었다. 1997년에도 이종범, 이대진 등의 맹활약으로 아홉 번째 우승을 거머쥐어, 15년간 우승 9번이라는 전무한 기록을 세우는데, 투수 김상진이 한국시리즈 5차전에서 최연소 완투승을 거두었다.

이종범주니치로 이적한 후 맞은 첫 시즌인 1998년에 해태는 시즌 5위를 기록했다. 1996년 2차 1순위로 지명한 좌타자 장성호(.312)를 발견한 데에 위안을 삼았다. 대한민국이 IMF 관리 체제 하에 들어가 모기업 해태제과의 자금난이 심해지면서, 이는 2001년까지 해태 타이거즈의 악재가 되었다. 이 여파로 쌍방울 레이더스처럼 몇몇 선수들이 현금 트레이드로 이적했다. 1999년 투수 임창용을 상대로 트레이드로 영입한 좌타자 양준혁홍현우, 트레이시 샌더스의 맹활약으로 팀 최다 홈런 기록(210개)을 경신하였으나, 마운드의 부진으로 통합 7위에 머물게 된다. 2000년에도 역시 모기업의 자금난으로 6위에 머물렀고, 해태의 통산 우승 9회를 이룬 김응용 감독마저 2000 시즌을 마치고 라이벌 팀 삼성 라이온즈로 떠나면서 김성한 수석코치가 후임 감독으로 승격했다. 2001년 시즌 중반인 7월에 기아자동차가 해태 타이거즈 야구단을 인수했고, 동년 8월 1일부터 KIA 타이거즈로 팀명을 변경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2. 1. 창단 (1982년)

해태 타이거즈는 1982년 1월 30일 해태제과 본사에서 15명의 선수로 창단되었다. 6개 구단 중 가장 적은 선수단으로, OB 베어스MBC 청룡에 이어 3번째였다. 선수 대부분은 군산상업고등학교 출신이었다. 창단 초기, 감독과 코치진 간의 불화로 김동엽 감독이 사임하고 조창수 코치가 감독 대행을 맡는 등 어려움을 겪었다. 첫 시즌은 38승 42패, 4위로 마감했다. 김성한은 투타 겸업으로 10승(3선발승)-타점왕(69타점)이라는 진기록을 세웠고, 김봉연은 22홈런으로 원년 홈런왕에 올랐다.

2. 2. 김응용 감독 시대 (1983년 ~ 2000년)

1983년 미국 조지아 서던 칼리지에서 야구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김응용 감독이 해태 2대 감독으로 취임하여 대대적인 팀 개편에 들어갔다. 먼저 조창수와 유남호로 이뤄진 기존의 코치진에 군산상고 감독 출신 백기성과 동국대 감독으로 있던 김인식을 추가 영입해 코치스태프를 강화했다. 그 외에도 부족했던 선수를 보강하기 위해 삼성에서 벤치로 밀려나있던 서정환을 현금 트레이드로 영입했고 재일교포 선수인 김무종주동식을 영입해 팀의 약점인 배터리를 든든하게 했다. 한편 김응용감독은 스파르타식 훈련을 앞세운 전임 감독과는 정반대로 팀 훈련 외 시간은 철저하게 선수들의 자율에 맡겼다. 단체 훈련도 하루 3시간을 넘기는 일이 드물었다.

그 결과, 해태는 시즌 전 중위권 전력이라는 전문가들의 예상을 뒤엎고 1983년 6월 24일 구덕야구장에서 열린 롯데와의 경기에서 전기 리그 우승을 확정지었다. 6월 초까지 장명부를 앞세운 삼미와 1위 자리를 놓고 엎치락뒤치락을 거듭했고 2.5게임 차로 뒤진 가운데 6월 7일부터 열린 광주 3연전 맞대결을 싹쓸이 하며 단독 1위로 올라섰다. 그리고 마침내 6월 24일 삼미가 OB에게 패하면서 해태는 남은 경기와 관계없이 한국시리즈 직행을 확정 짓게 되었다. 이상윤이 20승(13선발승)을 거두는 활약으로 에이스로 거듭났고 기존의 김용남(13승)(7선발승)과 강만식(6승)도 호투하며 힘을 보탰다. 김일권으로 시작해 김성한, 김봉연, 김종모, 김준환 등으로 이어지는 타선은 전기리그 1위를 기록하는데 큰 공을 세웠다. 후기 리그 우승을 MBC 청룡에 넘겨 주고, 55승 44패 1무, 최종 순위 2위로 정규 시즌을 마감한다. MBC 청룡과 맞붙었던 1983년 한국시리즈에서 해태는 이상윤과 김용남, 주동식과 타선에서는 김봉연, 김성한, 김종모 등 'KKK포'의 활약 속에 4승 1무로 첫 한국시리즈 우승 트로피를 안게 된다.

그러나 1984년은 연봉처우에 대한 선수단의 불만이 극에 달하면서 전기 리그 4위, 후기 리그 3위, 최종 순위 5위로 추락했다. 그러나 5월 5일 광주무등구장에서 벌어진 삼미와의 경기에서 투수 방수원한국 프로 야구 최초의 노히트 노런을 기록했다.

1985년에도 에이스 이상윤의 부상 공백으로 투수력에 문제가 생겨 전기 리그 3위, 후기 리그 3위, 최종 순위 3위에 그쳤다. 그러나 신인 외야수 이순철투수 선동열, 그리고 홈런왕과 최다 안타, MVP를 차지한 김성한의 활약으로 1986년 ~ 1989년 한국시리즈 4연패의 기틀을 쌓게 된다.

2. 2. 1. 첫 우승과 시련 (1983년 ~ 1985년)

1983년 미국 조지아 서던 칼리지에서 야구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김응용 감독이 해태 2대 감독으로 취임하여 대대적인 팀 개편에 들어갔다. 그 결과, 해태는 시즌 전 중위권 전력이라는 전문가들의 예상을 뒤엎고 1983년 6월 24일 구덕야구장에서 열린 롯데와의 경기에서 전기 리그 우승을 확정지었다. 이상윤이 20승(13선발승)을 거두는 활약으로 에이스로 거듭났고 기존의 김용남(13승)(7선발승)과 강만식(6승)도 호투하며 힘을 보탰다. 김일권으로 시작해 김성한, 김봉연, 김종모, 김준환 등으로 이어지는 타선은 전기리그 1위를 기록하는데 큰 공을 세웠다. 후기 리그 우승을 MBC 청룡에 넘겨 주고, 55승 44패 1무, 최종 순위 2위로 정규 시즌을 마감한다. MBC 청룡과 맞붙었던 1983년 한국시리즈에서 해태는 이상윤과 김용남, 주동식과 타선에서는 김봉연, 김성한, 김종모 등 'KKK포'의 활약 속에 4승 1무로 첫 한국시리즈 우승 트로피를 안게 된다.

그러나 1984년은 연봉처우에 대한 선수단의 불만이 극에 달하면서 전기 리그 4위, 후기 리그 3위, 최종 순위 5위로 추락했다. 그러나 5월 5일 광주무등구장에서 벌어진 삼미와의 경기에서 투수 방수원한국 프로 야구 최초의 노히트 노런을 기록했다.

1985년에도 에이스 이상윤의 부상 공백으로 투수력에 문제가 생겨 전기 리그 3위, 후기 리그 3위, 최종 순위 3위에 그쳤다. 그러나 신인 외야수 이순철투수 선동열, 그리고 홈런왕과 최다 안타, MVP를 차지한 김성한의 활약으로 1986년 ~ 1989년 한국시리즈 4연패의 기틀을 쌓게 된다.

2. 2. 2. 해태 왕조 (1986년 ~ 1997년)

1986년 해태 타이거즈는 평균 자책점 2.86을 기록한 철벽 마운드와 김봉연, 김종모, 김성한, 한대화, 이순철 등의 맹활약으로 전·후기 리그 2위를 기록하여 한국시리즈에 직행하였다. 삼성 라이온즈와의 한국시리즈에서 투수 김정수의 맹활약으로 4승 1패로 두 번째 우승을 차지한다.

이후 해태 타이거즈는 1989년까지 삼성 라이온즈를 1번, 빙그레 이글스를 2번 누르고 4년 연속 한국시리즈 우승을 거머쥐게 된다. 각각 김정수, 김준환, 문희수, 박철우가 한국시리즈 MVP를 차지하였다.

1989년 전라북도를 연고지로 하는 제8구단 쌍방울 레이더스가 창단되면서 그동안 유지해 온 전라북도 지역 연고권을 신생 구단인 쌍방울 레이더스에 양도하게 된다. 또한 해태 타이거즈의 연고지 및 신인 1차 지명 연고 지역도 호남 전 지역에서 광주직할시전라남도로 축소되었다. 해태 타이거즈는 1982년부터 1989년까지 전주야구장에서 홈 경기를 분산 개최해 왔는데, 전주에서 거둔 통산 성적은 40승 1무 24패, 승률 0.623로 높았다. 특히 1987년에는 전국체전광주 개최로 인해 플레이오프를 전주야구장으로 옮겨서 치렀는데, 해태 타이거즈는 OB 베어스전주에서 물리치고 한국시리즈에 진출한 적이 있다.

1990년 해태는 플레이오프에서 삼성 라이온즈에게 패해 한국시리즈 5연패에 실패하나, 1991년 빙그레 이글스를 누르고 6번째 우승에 성공하게 된다. 이 해 골든 글러브 수상자 10명 중 무려 6명(선동열, 장채근, 김성한, 한대화, 이호성, 이순철)의 골든 글러브 수상자를 배출하였으며, 팀 최다 수상 신기록을 경신하였다.

1992년 선동열의 부상으로 플레이오프에서 롯데 자이언츠에게 패배하였으나, 1993년 괴물 신인 유격수 이종범의 등장과 다승왕 조계현을 비롯해 선동열, 이대진, 송유석, 이강철 등의 맹활약으로 81승 42패 3무의 압도적인 승률을 기록하며 한국시리즈에서 진출하여 삼성 라이온즈를 꺾고 우승하였다.

1994년 이종범이 0.393(역대 2위)의 타율을 기록하였으나, 준 플레이오프에서 한화 이글스에게 패배하여 4위에 머물게 된다. 1995년에는 이종범이대진의 방위 복무로 인한 전력 공백으로 4위로 시즌을 마치고, KBO 규정에 따라 준 플레이오프에도 진출하지 못하여 시즌을 마친다.

1996년 선동열주니치 이적의 공백을 투수 임창용강태원이 메우며, 현대 유니콘스와의 한국시리즈에서 4승 2패로 여덟 번째 우승을 확정지었다. 1997년에도 이종범, 이대진 등의 맹활약으로 아홉 번째 우승을 거머쥐어, 15년간 우승 9번이라는 전무한 기록을 세우는데, 투수 김상진이 한국시리즈 5차전에서 최연소 완투승을 거두었다.

2. 2. 3. 왕조의 쇠락 (1998년 ~ 2001년)

이종범주니치로 이적한 후 맞은 첫 시즌인 1998년에 해태는 시즌 5위를 기록했다. 1996년 2차 1순위로 지명한 좌타자 장성호(.312)를 발견한 데에 위안을 삼았다. 대한민국이 IMF 관리 체제 하에 들어가 모기업 해태제과의 자금난이 심해지면서, 이는 2001년까지 해태 타이거즈의 악재가 되었다. 이 여파로 쌍방울 레이더스처럼 몇몇 선수들이 현금 트레이드로 이적했다. 1999년 투수 임창용을 상대로 트레이드로 영입한 좌타자 양준혁홍현우, 트레이시 샌더스의 맹활약으로 팀 최다 홈런 기록(210개)을 경신하였으나, 마운드의 부진으로 통합 7위에 머물게 된다. 2000년에도 역시 모기업의 자금난으로 6위에 머물렀고, 해태의 통산 우승 9회를 이룬 김응용 감독마저 2000 시즌을 마치고 라이벌 팀 삼성 라이온즈로 떠나면서 김성한 수석코치가 후임 감독으로 승격했다. 2001년 시즌 중반인 7월에 기아자동차가 해태 타이거즈 야구단을 인수했고, 동년 8월 1일부터 KIA 타이거즈로 팀명을 변경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3. 5.18 민주화 운동과 홈경기 금지

5월 18일에 광주 연고 구단인 해태 타이거즈는 프로야구 출범 이후 1982년부터 1999년까지 18년 동안 광주에서 경기를 한 번도 치르지 못했다.[3] 5·18민주화운동 이후 신군부가 5월 18일에는 광주에서 프로야구 경기를 하지 못하도록 개입했기 때문이라는 주장이 있다. 실제로 1986년, 1991년, 1993년, 1995년, 1997년, 1998년 5월 18일에 호남 지역에서 경기가 예정되어 있었지만, 며칠 전에 신군부의 권유에 따라 다른 구장으로 경기 장소가 변경되었다.[3]

2000년부터 5월 18일에 광주에서 프로야구 경기가 열렸다.

4. 주요 선수

해태 타이거즈는 선동열, 이종범, 김성한, 이순철 등 수많은 스타 플레이어를 배출했다.

이름국적포지션년도
강만식투수1982-1986
강태원투수1989-2000
김대현투수1986-1988
김상진투수1996-1999
김용남투수1982-1986
김정수투수1986-1999
문희수투수1984-1995
선동열투수1985-1995
송유석투수1987-1996
신동수투수1986-1993
이강철투수1989-1999
이대진투수1993-2000
이상윤투수1983-1988
이원식투수1995-2000
조계현투수1989-1997
주동식투수1983-1984
차동철투수1986-1989
황기선투수1983-1985



이름국적포지션년도
김무종포수1983-1989
박전섭포수1983-1986
유승안포수1984-1985
장채근포수1986-1994
정회열포수1990-1997
최해식포수1995-2000



이름국적포지션년도
김봉연내야수1982-1988
김성한내야수1982-1995
김종국내야수1996-2000
박철우내야수1987-1993
백인호내야수1987-1992
1997-1999
서정환내야수1983-1989
윤재호내야수1989-1993
이건열내야수1986-1997
이종범내야수1993-1997
이호준내야수1994-2000
장성호내야수1996-2000
장진범내야수1983-1987
차영화내야수1982-1989
한대화내야수1986-1993
홍현우내야수1990-2000



이름국적포지도년도
김일권외야수1982-1987
김종모외야수1982-1992
김준환외야수1982-1989
김창희외야수1997-2000
김평호외야수1986-1990
동봉철외야수1996
박재용외야수1994-1998
양준혁외야수1999
이순철외야수1985-1997
이호성외야수1990-2000
최훈재외야수1997-1998


4. 1. 투수

4. 2. 타자

5. 역대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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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도순위경기승률득점실점PW%ERAWHIPOAVGOOBPAVGOBPSLGOPS안타홈런BB삼진도루병살
종합정규
19824480380420.4753743880.4913.791.400.2620.3410.2610.3280.4080.7366968423529615559
198312100551440.5564223900.5203.171.230.2440.3110.2680.3340.3880.7228817829237213076
198455100433540.4433693980.4813.161.240.2490.3120.2480.3170.3650.682822763134968787
198533110571520.5234834650.5093.641.290.2650.3250.2720.3370.4020.73910099934838613085
198612108674370.6444743720.5602.861.210.2380.3080.2590.3250.3900.7159299932140612082
198712108555480.5343934010.4953.161.260.2440.3190.2520.3210.3600.681910713353799096
198811108682380.6425053640.5812.861.180.2390.3030.2830.3500.4210.771101911234538213697
198912120654510.5605004420.5313.341.230.2360.3100.2550.3390.3640.703101190470508111111
199032120683490.5815384580.5403.361.230.2330.3120.2700.3520.3920.744106687466544101100
199111126795420.6536184090.6022.891.100.2260.2900.2590.3500.4180.7681069144516588152102
199232126711540.5687015710.5514.211.360.2630.3360.2720.3650.4250.7891139138559656134114
199311126813420.6595134200.5502.921.160.2290.3040.2510.3300.3680.698103095452606161107
199444126652590.5245635090.5253.601.260.2430.3210.2710.3280.3880.71611539333358316476
199544126644580.5254314340.4983.061.160.2320.3040.2420.3090.3450.6549897534167513094
199611126732510.5895544410.5573.141.160.2310.3040.2450.3290.3660.69510229246374417086
199711126751500.6006165100.5473.651.220.2390.3170.2580.3400.4080.7481081133466722148102
199855126611640.4884895310.4793.911.270.2570.3240.2580.3250.3760.70110679436766958125
199977132603690.4657657430.5075.211.480.2800.3570.2780.3620.4660.828126421055587198104
200066133574720.4425887280.4474.951.480.2760.3540.2520.3330.3630.696113786527866112107


5. 1. 팀 기록

해태 타이거즈는 1983년, 1986년, 1987년, 1988년, 1989년, 1991년, 1993년, 1996년, 1997년 통산 9회 한국시리즈 우승을 달성했다. 특히 1986년부터 1989년까지 4년 연속 우승이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1982년부터 2001년까지 19시즌 동안 1202승 51무 976패를 기록했다.

연도팀명순위승률포스트 시즌수상 선수감독
1982해태전기 4위
후기 4위
380420.475김동엽
조창수(감독대행)
1983전기 1위
후기 4위
551440.556* 한국시리즈 : MBC 전 4-1 승 김응용
1984전기 5위
후기 3위
433540.443
1985전기 3위
후기 3위
571520.523김성한 (최)
이순철 (신)
1986전기 2위
후기 2위
674370.644* 한국시리즈 : 삼성 전 4-1 승 선동열 (최)
1987전기 3위
후기 2위
555480.532* 한국시리즈 : 삼성 전 4-0 승
1988전기 1위
후기 1위
682380.639* 한국시리즈 : 빙그레 전 4-2 승 김성한 (최)
19891위654510.558* 한국시리즈 : 빙그레 전 4-1 승 선동열 (최)
19903위683490.579* 플레이오프 : 삼성 전 0-3 패선동열 (최)
19911위795420.647* 한국시리즈 : 빙그레 전 4-0 승
19923위711540.567* 플레이오프 : 롯데 전 2-3 패
19931위813420.655* 한국시리즈 : 삼성 전 4-2 승
19944위652590.524* 플레이오프 : 한화 전 0-2 패이종범 (최)
19954위644580.524
19961위732510.587* 한국시리즈 : 현대 전 4-2 승
19971위751500.599* 한국시리즈 : LG 전 4-1 승
19985위611640.488
1999드림 4위603690.465
2000드림 4위574720.442
해태 타이거즈 19시즌120251976한국시리즈 우승 9회



연도최종 결과라운드상대결과
승/패
1983한국시리즈 우승한국시리즈MBC 청룡410
1986한국시리즈 우승한국시리즈삼성 라이온즈401
1987한국시리즈 우승플레이오프OB 베어스302
한국시리즈삼성 라이온즈400
1988한국시리즈 우승한국시리즈빙그레 이글스402
1989한국시리즈 우승플레이오프태평양 돌핀스300
한국시리즈빙그레 이글스401
1990플레이오프 진출플레이오프삼성 라이온즈003
1991한국시리즈 우승한국시리즈빙그레 이글스400
1992플레이오프 진출플레이오프롯데 자이언츠203
1993한국시리즈 우승한국시리즈삼성 라이온즈412
1994준플레이오프 진출준플레이오프한화 이글스002
1996한국시리즈 우승한국시리즈현대 유니콘스402
1997한국시리즈 우승한국시리즈LG 트윈스401



5. 2. 개인 기록 (주요 기록)

방수원은 1984년 5월 5일 삼미를 상대로 프로 야구 최초 노히트 노런을 기록했다. 선동열은 1986년, 1987년, 1993년에 최초 및 최다 0점대 평균 자책점을 기록했다. 김성한은 투타 겸업으로 1982년 10승과 타점왕을 기록하였고, 1988년에는 프로야구 최초로 30홈런을 달성했으며, 1989년에는 프로 야구 최초로 20-20 클럽에 가입했다. 이종범은 1993년 단일 경기 최다 도루(6개), 1994년 단일 시즌 최다 안타(196개), 국내 출신 선수 최고 타율(0.393), 단일 시즌 최다 도루(84개)를 기록했고, 1997년에는 30-30 클럽에 가입했다. 이대진은 1998년 5월 12일 현대를 상대로 10타자 연속 삼진을 기록했다. 홍현우는 1999년에 2루수 최초로 30-30 클럽에 가입했다.

6. 역대 수상

해태 타이거즈는 KBO 리그에서 여러 차례 골든글러브, 최우수 선수(MVP), 신인왕을 배출하고, 개인 타이틀을 수상하였다.

;골든글러브



;MVP

;신인왕

;개인 타이틀

  • 세이브
  • 1993년 선동열 31세이브, 41SP(10구원승 포함)
  • 1995년 선동열 33세이브, 38SP(5구원승 포함)
  • 1998년 임창용 34세이브, 42SP(8구원승 포함)

7. 영구 결번

해태 타이거즈의 영구 결번은 2개가 있다. 18번 선동열과 7번 이종범이다.

참조

[1] 뉴스 "[M&A 그 이후]그 많던 와인 애호가는 어디 갔을까?" https://news.naver.c[...] 이데일리 2017-10-01
[2] 문서 역대 최장 감독
[3] 뉴스 "[단독]신군부 “5월18일에는 광주서 프로야구 하지 마라”" http://news.khan.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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