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하라 시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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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후쿠하라 시노부는 일본의 전 프로 야구 선수로, 투수였다. 히로시마현 미요시시 출신으로, 고등학교 졸업 후 도요 대학을 거쳐 1998년 드래프트에서 한신 타이거스에 3순위로 지명되어 입단했다. 1999년 한신에서 데뷔하여 선발과 구원 투수로서 활약했으며, 2004년 월간 MVP와 올스타전 신인상을 수상했다. 2014년과 2015년에는 최우수 중간 계투상을 수상했고, 2016년에는 투수 캡틴을 맡았다. 2017년부터는 한신 타이거스의 2군 육성 코치, 1군 투수 코치를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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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하라 시노부 - [인물]에 관한 문서 | |
---|---|
선수 정보 | |
이름 | 후쿠하라 시노부 |
로마자 표기 | Fukuhara Shinobu |
출생일 | 1976년 12월 28일 |
출생지 | 히로시마현 미요시시 |
신장 | 180cm |
체중 | 96kg |
포지션 | 투수 / 코치 |
투구 | 우투 |
타석 | 우타 |
프로 입단 정보 | |
드래프트 연도 | 1998년 |
드래프트 순위 | 3순위 |
NPB 데뷔 | 1999년 |
첫 출장일 | 1999년 4월 2일 |
최종 출장일 | 2016년 10월 1일 (은퇴 경기) |
선수 경력 | |
소속 구단 | 한신 타이거스 (1999년 ~ 2016년) |
지도자 경력 | |
소속 구단 | 한신 타이거스 (2017년 ~ 2024년) |
역할 | 2군 육성 코치 (2017년 ~ 2018년) 1군 투수 코치 (2019년 ~ 2024년) |
등번호 | |
선수 | 85 |
수상 | |
수상 내역 | 센트럴 리그 최우수 중간 계투 (2014년, 2015년) |
통계 (2016 시즌) | |
리그 | NPB |
승-패 | 83승 104패 |
평균 자책점 | 3.49 |
탈삼진 | 1081 |
세이브 | 29 |
홀드 | 118 |
2. 프로 입단 전
히로시마현 미요시시 출신으로 니오카 도모히로와는 초등학교부터 고료 고등학교 시절까지 동창이었으며, 초등학교 때 4번이나 같은 반이었다.[2] 야구를 시작한 것도 니오카의 형에게 영향을 받았다.[2] 고교 3학년 때 니오카와 함께 투수진의 주축으로 여름 히로시마 현 대회에서 강력한 우승 후보로 점쳐졌으나 아라이 다카히로를 앞세운 히로시마 현립 히로시마 공업고등학교에게 패배했다.[2] 이후 도토 대학 야구 연맹에 속한 도요 대학에 진학했다.[2] 1부 리그 통산 14경기에 등판, 1승 4패 방어율 4.87을 기록했으며, 4학년 때는 봄부터 2부 리그였지만 가을에 6연승을 거두며 MVP로 1부 복귀의 원동력이 되었다.[2] 도요 대학에는 3학년 선배로 시미즈 타카유키와 가와나카 모토시, 2학년 선배로 이마오카 마코토, 1학년 선배로 다나카 미츠루, 1학년 후배로 마에다 타다요시, 2학년 후배로 미우라 타카시가 있었다.[2] 이마오카와 마에다와는 후에 프로에서 다시 팀 동료가 된다. 1998년 프로 야구 드래프트 회의에서 한신 타이거스에게 3순위로 지명받아 입단하였다.[2]
2. 1. 유소년 시절
히로시마현 미요시시 출신으로 니오카 도모히로와는 초등학교부터 고료 고등학교 시절까지 동창이었으며, 초등학교 때 4번이나 같은 반이었다.[2] 야구를 시작한 것도 니오카의 형에게 영향을 받았다.[2] 고교 3학년 때 니오카와 함께 투수진의 주축으로 여름 히로시마 현 대회에서 강력한 우승 후보로 점쳐졌으나 아라이 다카히로를 앞세운 히로시마 현립 히로시마 공업고등학교에게 패배했다.[2] 이후 도토 대학 야구 연맹에 속한 도요 대학에 진학했다.[2] 1부 리그 통산 14경기에 등판, 1승 4패 방어율 4.87을 기록했으며, 4학년 때는 봄부터 2부 리그였지만 가을에 6연승을 거두며 MVP로 1부 복귀의 원동력이 되었다.[2] 도요 대학에는 3학년 선배로 시미즈 타카유키와 가와나카 모토시, 2학년 선배로 이마오카 마코토, 1학년 선배로 다나카 미츠루, 1학년 후배로 마에다 타다요시, 2학년 후배로 미우라 타카시가 있었다.[2] 1998년 프로 야구 드래프트 회의에서 한신 타이거스에게 3순위로 지명받아 입단하였다.[2]2. 2. 고등학교 시절
히로시마현 미요시시 출신으로 니오카 도모히로와는 초등학교부터 고료 고등학교 시절까지 동창이었다. 초등학교 때 4번이나 같은 반이었으며, 야구를 시작한 것도 니오카의 형에게 영향을 받았다.[2] 고교 3학년 때 니오카와 함께 투수진의 주축으로 여름 히로시마 대회에서 우승 후보로 거론되었으나, 아라이 다카히로를 앞세운 히로시마 공업고등학교에게 패했다.[2] 이후 도토 대학 야구 연맹에 속한 도요 대학에 진학했다.[2]2. 3. 대학교 시절
후쿠하라 시노부는 히로시마현 미요시시 출신으로, 니오카 도모히로와는 초등학교부터 고료 고등학교 시절까지 동창이었다.[2] 초등학교 때 4번이나 같은 반이었으며, 야구를 시작한 것도 니오카의 형에게 영향을 받았다.[2] 고교 3학년 때 니오카와 함께 투수진의 주축으로 여름 히로시마 대회에서 우승 후보로 거론되었으나, 아라이 다카히로를 앞세운 히로시마 공업고등학교에게 패배했다.[2]이후 도토 대학 야구 연맹에 속한 도요 대학에 진학했다.[2] 1부 리그 통산 14경기에 등판, 1승 4패 방어율 4.87을 기록했다.[2] 4학년 때는 봄부터 2부 리그였지만 가을에 6연승을 거두며 MVP로 1부 복귀의 원동력이 되었다.[2] 도요 대학에는 3학년 선배로 시미즈 타카유키와 가와나카 모토시, 2학년 선배로 이마오카 마코토, 1학년 선배로 다나카 미츠루, 1학년 후배로 마에다 타다요시, 2학년 후배로 미우라 타카시가 있었다.[2] 이마오카와 마에다와는 후에 프로에서 다시 팀 동료가 된다.[2]
3. 프로 선수 경력
1999년 한신 타이거스에 입단한 후쿠하라는 입단 초기부터 150km/h대의 빠른 공으로 주목받았다. 노무라 가쓰야 감독에 의해 발탁되어 4월 4일 요미우리 자이언츠와의 경기에서 5번째 투수로 등판하여 프로 첫 승을 거두었고, 그 해 신인 투수 중 첫 승리 투수가 되었다.[3] 신인 투수로서 4월 중에 첫 승과 첫 세이브를 올리는 구단 사상 첫 쾌거를 달성했으며, 중계, 마무리 투수로서 풀가동하며 10승 7패 9세이브를 기록했다. 노무라 감독은 "(드래프트) 3위로 이런 선수를 얻었다"라고 말할 정도로 뛰어난 성적을 거둔 루키 시즌이었지만, 센트럴 리그 신인왕 투표에서는 신인으로 10승을 거두었음에도 후쿠하라에게 투표는 없었다(요미우리의 우에하라 고지가 수상).
2000년과 2001년에는 모두 선발 투수로 시작했고, 2000년 4월 18일 자이언츠와의 4차전에서는 상대 타선을 4안타로 막아내며 프로 첫 완봉을 달성했지만[4], 득점 지원을 받지 못해 후반에는 릴리프로 전환하게 된다.
2002년 오프에 수술을 받았다.
2003년에는 재활 중에 2군 투수 코치 야마구치 다카시로부터 축이 되는 오른쪽 무릎을 굽히지 않고 체중을 앞으로 싣는 폼에 대한 지도를 받고, 이를 받아들였다.[5] 같은 해 8월 31일 야쿠르트 스왈로스와의 경기에서 선발로 복귀하여 승리 투수가 되었다. 팀은 1985년 이래 리그 우승을 달성했고, 일본 시리즈에서는 6차전에 선발 이라부 히데키가 2회에 강판된 후 두 번째 투수로 등판하여 4이닝 2/3를 1실점으로 막아 경기를 만들었다.
2004년에는 선발 로테이션에 정착하여, 4월에는 5승 0패 평균 자책점 2.43으로 월간 MVP를 수상했다. 감독 추천으로 그 해 올스타전에 출전, 2차전에서 선발 등판하여 3이닝을 신조 쓰요시의 홈스틸 1실점으로 막아 신인상을 수상했지만, 타선의 득점 지원을 받지 못해 패전 투수가 되었다. 그러나 후반기에는 컨디션이 떨어져, 호투해도 득점 지원을 받지 못하는 경기가 계속되어 승수를 올리지 못했고, 최종적으로 평균 자책점은 리그 7위였지만, 10승 15패로 리그 최다 패전 투수가 되었다. 또한, 그 해에는 자이언츠전에 매우 강했고, 5월 13일에는 7회까지 던져 자이언츠가 개막부터 이어오던 연속 경기 홈런 기록을 막는 등, 8경기에 등판하여 6승 무패 평균 자책점 1.73의 대전 성적을 남겼다.
2005년에는 개막 두 번째 경기에 등판하여 시즌 첫 승을 거두었지만, 전년보다 득점 지원을 받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수비에서도 발목을 잡혀 6연패를 기록했다. 오릭스 버팔로스와의 경기에서 2경기 모두 완봉을 거두어, 리그 최다 타이 2완봉(다른 5명)을 기록했지만, 이 해에도 호투했음에도 패배가 앞서 8승 14패로 끝났고, 1995년·1996년에 기록한 야부 게이이치·유후네 도시로 이후 2년 연속 리그 최다 패전 투수가 되었다. 팀은 2년 만에 리그 우승을 달성했다. 참고로, '''우승 구단에서 리그 최다 패전 투수'''가 나온 것은, 이 때의 후쿠하라가 사상 유일하다. 일본 시리즈에서는 팀이 4경기에서 4연패를 당했기 때문에 시리즈 4차전에 릴리프 등판으로 끝났다.
2006년에는 허리 통증으로 출전이 늦어졌지만, 슬로 커브를 주무기로 한 완급 조절 투구로 뛰어난 안정감을 보여, 승수를 쌓게 되었다. 페넌트레이스 후반에는 이가와 케이를 제치고 로테이션의 중심을 담당했다. 9월 10일 요코하마 베이스타스와의 경기에서 자기 신기록인 11승을 거두었고, 최종적으로 자기 최다인 12승 5패, 리그 2위인 평균 자책점 2.09의 좋은 성적을 남겼다. 오프에는 팀 동료 안도 유야와 함께 영화 '푸른 하늘의 룰렛'(2007년 공개)에 출연했다.
2007년에는 부상으로 출전이 늦어져, 2승 8패, 평균 자책점 6.53으로 끝났다.
2008년에는 부상 없이 순조롭게 컨디션을 조절할 수 있었고, 개막 3번째 경기인 3월 30일 요코하마와의 경기에서 시즌 첫 등판을 완봉 승리로 장식하는 좋은 출발을 보였지만, 4월 24일 주니치 드래건스와의 경기에서 번트를 시도하다 공이 오른쪽 집게손가락에 직격하여 부상으로 퇴장했다. 이후, 오른쪽 손가락 끝마디뼈 골절로 진단받고 이탈했다.
2009년에는 완투하는 경기도 있었지만, 시즌 내내 극심한 부진으로 3승 10패로 크게 패했다.
2010년에는 선발 로테이션에서 제외되어, 7월까지 거의 2군에서 보냈다. 8월 이후에는 주로 패전 처리로 등판했지만, 평균 자책점 5.18로 결과를 남기지 못하고, 프로 입단 후 처음으로 승리를 거두지 못했다.
2011년에는 시즌 초, 주로 뒤지는 상황에서 구원으로 등판. 시즌 중반부터는 자신의 호조에 더해, 고바야시 히로유키나 구보타 도모유키의 부진 등으로 인해 승리 패턴에서의 기용이 늘었다. 9월 7일 히로시마 도요 카프와의 경기에서 1군 공식전에서 2년 만에 승리를 기록했다. 1군 공식전 전체에서는, 자기 최다 시즌 55경기 등판을 달성함과 동시에, 평균 자책점 2.59, 11홀드를 기록했다.
2012년에도 중계 투수로서 안정적인 피칭을 보여, 5월 4일 자이언츠와의 경기에서 직구 구속이 153km/h를 기록했다. 6월 14일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와의 경기에서는 1점 리드의 9회말에 4번째 투수로 등판. 삼자 범퇴로 막아내며 11년 만에 세이브를 기록했다. 최종적으로 자기 시즌 최다인 60경기에 등판, 평균 자책점 1.76, 18홀드를 기록하며 전년보다 안정적인 성적을 남겼고, 메이저 리그 복수 구단이 영입에 나선다는 보도도 나왔다.[6]
2013년에도 중계 투수로서 개막 초부터 안정적인 피칭을 이어갔고, 허리 통증으로 인한 출전 선수 등록 말소는 있었지만[7], 개막 초의 수호신이었던 구보 야스토모가 부진하여 2군으로 내려가는 등의 배경도 있어, 클로저로 정착, 8월 24일 주니치와의 경기(나고야 돔)에서 자기 첫 10세이브를 거두었다.[8]
2014년에는 새로운 외국인 선수 오승환이 수호신으로 기용되었기 때문에, 셋업으로 복귀. 5월 4일 야쿠르트와의 경기에서 통산 1000탈삼진을 달성했다.[9] 오른쪽 내전근의 통증으로 인한 이탈 외에는 1군에서 계속 던졌고, 후반에는 피로로 인해 다소 안정감이 떨어져 오승환의 릴리프를 받는 경우도 있었지만, 시즌 통산 42홀드포인트를 기록했을 때부터, 센트럴 리그의 최우수 중간 계투로 선정되었다. 후쿠하라에게는 처음 얻는 타이틀이었지만, 한신 구단의 역대 최고령 기록인 38세에 획득했다.[10]
2015년에는 1군에서 중계 투수 부족을 배경으로, 전년에 이어 셋업으로 분투. 39홀드포인트로 2년 연속 최우수 중간 계투로 선정되어, 타이틀 획득 구단 사상 최고령 기록을 경신했다.
2016년에는 1군 감독으로 복귀한 전 팀 동료 가네모토 도모노리로부터 투수 캡틴으로 임명되었다.[11] 공식전 개막부터 1군의 셋업을 맡았지만, 4월 18일 주니치와의 경기에서 다얀 비시에도에게 끝내기 홈런을 맞는 등 구원에 실패하는 일이 잦아,[12] 4월 20일에 출전 선수 등록을 말소. 자신의 부진에 따른 2군 조정을 전제로 한 말소는 2010년 5월 27일 이후 6년 만이었다.[13]
3. 1. 한신 타이거스 시절 (1999년 ~ 2016년)
1999년 한신 타이거스에 입단한 후쿠하라는 입단 초기부터 150km/h대의 빠른 공으로 주목받았다. 노무라 가쓰야 감독에 의해 발탁되어 4월 4일 요미우리 자이언츠와의 경기에서 5번째 투수로 등판하여 프로 첫 승을 거두었고, 그 해 신인 투수 중 첫 승리 투수가 되었다.[3] 신인 투수로서 4월 중에 첫 승과 첫 세이브를 올리는 구단 사상 첫 쾌거를 달성했으며, 중계, 마무리 투수로서 풀가동하며 10승 7패 9세이브를 기록했다. 노무라 감독은 "(드래프트) 3위로 이런 선수를 얻었다"라고 말할 정도로 뛰어난 성적을 거둔 루키 시즌이었지만, 센트럴 리그 신인왕 투표에서는 신인으로 10승을 거두었음에도 후쿠하라에게 투표는 없었다(요미우리의 우에하라 고지가 수상).2000년과 2001년에는 모두 선발 투수로 시작했고, 2000년 4월 18일 자이언츠와의 4차전에서는 상대 타선을 4안타로 막아내며 프로 첫 완봉을 달성했지만[4], 득점 지원을 받지 못해 후반에는 릴리프로 전환하게 된다.
2002년 오프에 수술을 받았다.
2003년에는 재활 중에 2군 투수 코치 야마구치 다카시로부터 축이 되는 오른쪽 무릎을 굽히지 않고 체중을 앞으로 싣는 폼에 대한 지도를 받고, 이를 받아들였다.[5] 같은 해 8월 31일 야쿠르트 스왈로스와의 경기에서 선발로 복귀하여 승리 투수가 되었다. 팀은 1985년 이래 리그 우승을 달성했고, 일본 시리즈에서는 6차전에 선발 이라부 히데키가 2회에 강판된 후 두 번째 투수로 등판하여 4이닝 2/3를 1실점으로 막아 경기를 만들었다.
2004년에는 선발 로테이션에 정착하여, 4월에는 5승 0패 평균 자책점 2.43으로 월간 MVP를 수상했다. 감독 추천으로 그 해 올스타전에 출전, 2차전에서 선발 등판하여 3이닝을 신조 쓰요시의 홈스틸 1실점으로 막아 신인상을 수상했지만, 타선의 득점 지원을 받지 못해 패전 투수가 되었다. 그러나 후반기에는 컨디션이 떨어져, 호투해도 득점 지원을 받지 못하는 경기가 계속되어 승수를 올리지 못했고, 최종적으로 평균 자책점은 리그 7위였지만, 10승 15패로 리그 최다 패전 투수가 되었다. 또한, 그 해에는 자이언츠전에 매우 강했고, 5월 13일에는 7회까지 던져 자이언츠가 개막부터 이어오던 연속 경기 홈런 기록을 막는 등, 8경기에 등판하여 6승 무패 평균 자책점 1.73의 대전 성적을 남겼다.
2005년에는 개막 두 번째 경기에 등판하여 시즌 첫 승을 거두었지만, 전년보다 득점 지원을 받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수비에서도 발목을 잡혀 6연패를 기록했다. 오릭스 버팔로스와의 경기에서 2경기 모두 완봉을 거두어, 리그 최다 타이 2완봉(다른 5명)을 기록했지만, 이 해에도 호투했음에도 패배가 앞서 8승 14패로 끝났고, 1995년·1996년에 기록한 야부 게이이치·유후네 도시로 이후 2년 연속 리그 최다 패전 투수가 되었다. 팀은 2년 만에 리그 우승을 달성했다. 참고로, '''우승 구단에서 리그 최다 패전 투수'''가 나온 것은, 이 때의 후쿠하라가 사상 유일하다. 일본 시리즈에서는 팀이 4경기에서 4연패를 당했기 때문에 시리즈 4차전에 릴리프 등판으로 끝났다.
2006년에는 허리 통증으로 출전이 늦어졌지만, 슬로 커브를 주무기로 한 완급 조절 투구로 뛰어난 안정감을 보여, 승수를 쌓게 되었다. 페넌트레이스 후반에는 이가와 케이를 제치고 로테이션의 중심을 담당했다. 9월 10일 요코하마 베이스타스와의 경기에서 자기 신기록인 11승을 거두었고, 최종적으로 자기 최다인 12승 5패, 리그 2위인 평균 자책점 2.09의 좋은 성적을 남겼다. 오프에는 팀 동료 안도 유야와 함께 영화 '푸른 하늘의 룰렛'(2007년 공개)에 출연했다.
2007년에는 부상으로 출전이 늦어져, 2승 8패, 평균 자책점 6.53으로 끝났다.
2008년에는 부상 없이 순조롭게 컨디션을 조절할 수 있었고, 개막 3번째 경기인 3월 30일 요코하마와의 경기에서 시즌 첫 등판을 완봉 승리로 장식하는 좋은 출발을 보였지만, 4월 24일 주니치 드래건스와의 경기에서 번트를 시도하다 공이 오른쪽 집게손가락에 직격하여 부상으로 퇴장했다. 이후, 오른쪽 손가락 끝마디뼈 골절로 진단받고 이탈했다.
2009년에는 완투하는 경기도 있었지만, 시즌 내내 극심한 부진으로 3승 10패로 크게 패했다.
2010년에는 선발 로테이션에서 제외되어, 7월까지 거의 2군에서 보냈다. 8월 이후에는 주로 패전 처리로 등판했지만, 평균 자책점 5.18로 결과를 남기지 못하고, 프로 입단 후 처음으로 승리를 거두지 못했다.
2011년에는 시즌 초, 주로 뒤지는 상황에서 구원으로 등판. 시즌 중반부터는 자신의 호조에 더해, 고바야시 히로유키나 구보타 도모유키의 부진 등으로 인해 승리 패턴에서의 기용이 늘었다. 9월 7일 히로시마 도요 카프와의 경기에서 1군 공식전에서 2년 만에 승리를 기록했다. 1군 공식전 전체에서는, 자기 최다 시즌 55경기 등판을 달성함과 동시에, 평균 자책점 2.59, 11홀드를 기록했다.
2012년에도 중계 투수로서 안정적인 피칭을 보여, 5월 4일 자이언츠와의 경기에서 직구 구속이 153km/h를 기록했다. 6월 14일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와의 경기에서는 1점 리드의 9회말에 4번째 투수로 등판. 삼자 범퇴로 막아내며 11년 만에 세이브를 기록했다. 최종적으로 자기 시즌 최다인 60경기에 등판, 평균 자책점 1.76, 18홀드를 기록하며 전년보다 안정적인 성적을 남겼고, 메이저 리그 복수 구단이 영입에 나선다는 보도도 나왔다.[6]
2013년에도 중계 투수로서 개막 초부터 안정적인 피칭을 이어갔고, 허리 통증으로 인한 출전 선수 등록 말소는 있었지만[7], 개막 초의 수호신이었던 구보 야스토모가 부진하여 2군으로 내려가는 등의 배경도 있어, 클로저로 정착, 8월 24일 주니치와의 경기(나고야 돔)에서 자기 첫 10세이브를 거두었다.[8]
2014년에는 새로운 외국인 선수 오승환이 수호신으로 기용되었기 때문에, 셋업으로 복귀. 5월 4일 야쿠르트와의 경기에서 통산 1000탈삼진을 달성했다.[9] 오른쪽 내전근의 통증으로 인한 이탈 외에는 1군에서 계속 던졌고, 후반에는 피로로 인해 다소 안정감이 떨어져 오승환의 릴리프를 받는 경우도 있었지만, 시즌 통산 42홀드포인트를 기록했을 때부터, 센트럴 리그의 최우수 중간 계투로 선정되었다. 후쿠하라에게는 처음 얻는 타이틀이었지만, 한신 구단의 역대 최고령 기록인 38세에 획득했다.[10]
2015년에는 1군에서 중계 투수 부족을 배경으로, 전년에 이어 셋업으로 분투. 39홀드포인트로 2년 연속 최우수 중간 계투로 선정되어, 타이틀 획득 구단 사상 최고령 기록을 경신했다.
2016년에는 1군 감독으로 복귀한 전 팀 동료 가네모토 도모노리로부터 투수 캡틴으로 임명되었다.[11] 공식전 개막부터 1군의 셋업을 맡았지만, 4월 18일 주니치와의 경기에서 다얀 비시에도에게 끝내기 홈런을 맞는 등 구원에 실패하는 일이 잦아,[12] 4월 20일에 출전 선수 등록을 말소. 자신의 부진에 따른 2군 조정을 전제로 한 말소는 2010년 5월 27일 이후 6년 만이었다.[13]
3. 1. 1. 입단 초기 ~ 2004년
1999년 입단 초기부터 시속 150km를 넘는 강속구로 주목받았으며, 그 해 노무라 가쓰야 감독에게 발탁되어 4월 4일 요미우리 자이언츠와의 경기에서 5번째 투수로 등판해 프로 첫 승을 거두었다. 같은 해 신인 투수 중 첫 승리 투수가 되었으며,[29] 신인 투수로서 4월에 첫 승과 첫 세이브를 올리는 구단 사상 최초의 기록을 세웠다. 릴리프 및 마무리로 전천후 활약하며 10승 7패 9세이브의 성적을 남겼다. 센트럴 리그 신인왕 투표에서는 신인으로 10승을 거두었음에도 불구하고 후쿠하라에게 투표는 없었다(요미우리의 우에하라 고지가 수상).2000년과 2001년에는 선발 투수로 로테이션에 합류해 2000년 4월 18일 요미우리와의 4차전에서 상대 타선을 4피안타로 억제하며 프로 첫 완봉승을 기록했다.[30] 이후 시즌 후반에는 릴리프로 자리 잡았다.
2002년 오프 시즌에 오른쪽 어깨 수술을 받았다. 2003년 8월 31일 야쿠르트 스왈로스 전에서 선발로 복귀전을 치러 승리를 거두었다. 한신에서 같은 등번호를 달았던 에나쓰 유타카와는 좌우의 차이가 있었지만 속구왕으로 팬들의 인기가 높았다.
2004년에는 선발 로테이션에 합류하여 4월에 5승 무패, 평균자책점 2.43으로 월간 MVP를 차지했다. 감독 추천으로 같은 해 올스타전에 출전, 2차전에서 선발 등판해 3이닝을 신조 쓰요시의 홈스틸 1실점으로 억제하며 신인상을 수상했지만 타선의 도움을 받지 못해 패전 투수가 되었다. 후반기에는 상태가 나빠지며 호투한 경기에서도 타선의 지원을 받지 못해 승리를 거두지 못하며 평균자책점은 리그 7위였으나 10승 15패로 5할을 밑도는 성적을 거두었다. 같은 해 요미우리 전에서는 강한 면모를 보여 5월 13일에는 7이닝 동안 호투하며 요미우리가 개막전부터 이어오던 연속 홈런 기록을 중단시키는 등 8경기에 등판해 6승 무패, 평균자책점 1.73의 성적을 남겼다.
3. 1. 2. 2005년 ~ 2008년
2005년에는 전년도와 마찬가지로 호투를 하고도 승리를 챙기지 못하는 불운한 경기가 이어지며 리그 7위인 8승 14패의 성적을 거두었다.2006년에는 허리 통증으로 부진했지만 슬로우 커브를 중심으로 완급 조절을 이용한 투구로 발군의 안정감을 보이며 승리를 거두게 되었다. 페넌트 종반에는 이가와 게이를 밀어내고 선발 로테이션의 중심에 서게 되었다. 9월 10일 대 요코하마 베이스타스 전에서 개인 신기록인 11승 째를 거두었고 최종 성적 12승 5패, 리그 2위의 기록인 방어율 2.09의 좋은 성적을 남겼다. 오프 시즌에는 팀 메이트인 안도 유야와 영화 《푸른 하늘의 룰렛》(2007년)에 출연했다.[31]
2007년에는 이적한 이가와를 대신해 에이스의 역할을 맡아줄 것으로 기대되었으나 캠프의 합류가 늦어져 투구 내용도 2승 8패, 방어율 6.53에 그쳤다.
2008년에는 부상없이 조정하는 방법을 터득해 개막 3차전인 3월 30일의 요코하마 전에서 시즌 첫 등판을 완봉승으로 장식하는 등 절호의 스타트를 끊었으나 4월 24일의 주니치 드래곤스와의 경기에서 번트를 시도하던 중 공이 오른손 검지 손가락에 맞으며 부상으로 이탈했다. 시즌 후반에 복귀했으나 2007년과 마찬가지로 실망스러운 성적에 그쳤다.
3. 1. 3. 2009년 ~ 2012년
2009년에는 완투하는 경기도 종종 있었으나 시즌 내내 극심한 부진으로 3승 10패로 크게 패했다.2010년에는 선발 로테이션에서 제외되어 7월까지 거의 2군에서 보냈다. 8월 이후에는 주로 패전 처리로 등판했지만, 평균 자책점 5.18로 결과를 남기지 못하고, 프로 입단 후 처음으로 승리를 거두지 못했다.
2011년에는 시즌 초, 주로 뒤지는 상황에서 구원으로 등판했다. 시즌 중반부터는 자신의 호조에 더해, 고바야시 히로유키나 구보타 도모유키의 부진 등으로 인해 승리 패턴에서의 기용이 늘었다. 9월 7일 히로시마 도요 카프와의 경기에서 1군 공식전에서 2년 만에 승리를 기록했다. 1군 공식전 전체에서는, 자기 최다 시즌 55경기 등판을 달성함과 동시에, 평균 자책점 2.59, 11홀드를 기록했다.
2012년에도 중계 투수로서 안정적인 피칭을 보여, 5월 4일 자이언츠와의 경기에서 직구 구속이 153km/h를 기록했다. 6월 14일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스와의 경기에서는 1점 리드의 9회말에 4번째 투수로 등판해 삼자 범퇴로 막아내며 11년 만에 세이브를 기록했다. 최종적으로 자기 시즌 최다인 60경기에 등판, 평균 자책점 1.76, 18홀드를 기록하며 전년보다 안정적인 성적을 남겼고, 메이저 리그 복수 구단이 영입에 나선다는 보도도 나왔다.[6]。 그러나 한신 잔류를 결정했다.
3. 1. 4. 2013년 ~ 2016년
2013년에도 중간 계투로 뛰며 개막 초부터 안정적인 투구를 이어갔다. 허리 통증으로 출전 선수 등록이 말소되기도 했지만,[7] 구보 야스토모가 부진으로 2군으로 내려가면서 클로저로 정착했다. 8월 24일 나고야 돔에서 열린 주니치와의 경기에서 자신의 첫 10세이브를 거두었다.[8]2014년에는 새로운 외국인 선수 오승환이 수호신으로 기용되었기 때문에 셋업으로 복귀했다. 5월 4일 야쿠르트와의 경기에서 통산 1000탈삼진을 달성했다.[9] 오른쪽 내전근 통증으로 이탈한 것을 제외하면 1군에서 계속 던졌다. 후반에는 피로로 인해 다소 안정감이 떨어져 오승환에게 마무리를 넘기는 경우도 있었지만, 시즌 통산 42홀드포인트를 기록하며 센트럴 리그 최우수 중간 계투로 선정되었다. 후쿠하라에게는 처음 얻는 타이틀이었지만, 한신 구단의 역대 최고령 기록인 38세에 획득했다.[10]
2015년에는 1군에서 중간 계투 부족을 배경으로, 전년에 이어 셋업으로 분투했다. 39홀드포인트로 2년 연속 최우수 중간 계투로 선정되어, 타이틀 획득 구단 사상 최고령 기록을 경신했다.
2016년에는 1군 감독으로 복귀한 전 팀 동료 가네모토 도모노리로부터 투수 캡틴으로 임명되었다.[11] 공식전 개막부터 1군의 셋업을 맡았지만, 4월 18일 주니치와의 경기에서 다얀 비시에도에게 끝내기 홈런을 맞는 등 구원에 실패하는 일이 잦아,[12] 4월 20일에 출전 선수 등록을 말소. 자신의 부진에 따른 2군 조정을 전제로 한 말소는 2010년 5월 27일 이후 6년 만이었다.[13]
4. 지도자 경력
2017년부터 한신 타이거스에 신설된 팜 육성 코치로 취임하여, 신인 및 젊은 투수 지도를 담당했다.[21]
2019년부터 2022년까지 1군 투수 코치를 역임했으며, 2023년부터는 2군 투수 코치로 보직이 변경되었다.[22][23]
4. 1. 한신 타이거스 코치 (2017년 ~ 현재)
2017년부터 한신 타이거스에 신설된 팜 육성 코치로 취임하여 신인 및 젊은 투수 지도를 담당했다.[21] 2019년부터 2022년까지 1군 투수 코치를 역임했으며, 2023년부터는 2군 투수 코치로 보직이 변경되었다.[22][23]5. 플레이 스타일
평균 구속은 약 145 km/h[35], 최고 구속은 153 km/h인 속구와 110 km/h 전후에서 형성되는 낙차 큰 슬로우 커브를 중심으로 커터, 슬라이더, 포크볼, 슈트 등을 구사한다.[35] 2012년에는 스트레이트 평균 구속 144.9km/h[24], 최고 구속 155km/h[25]의 정통 직구와 낙폭이 큰 커브는 강력하다고 평가받았다. 투수치고는 타격에도 소질이 있어 2006년 시즌까지 2개의 홈런을 기록했다. 2006년 8월 19일에는 적시타 2개 포함 3안타를 날리며 승리 투수가 되기도 하였다.
6. 수상 및 기록
- 최우수 중간 계투: 2회 (2014년, 2015년) ※ 2년 연속은 이와세 히토키, 모리 신지, 후지카와 큐지, 쿠보타 토모유키, 셋츠 타다시, 아사오 타쿠야, 야마구치 테츠야, 사토 타츠야, 미야니시 나오키, 시미즈 노보루와 동회수로 최장 타이기록
- 월간 MVP: 1회 (투수 부문: 2004년 4월)
- 올스타 게임 신인상 (2004년)
- 야나세・한신 타이거스 MVP상: 1회 (2006년)
- 산스포 MVP 신인상 (1999년)
; 첫 기록
; 투수 기록
- 첫 등판: 1999년 4월 2일, 요미우리 자이언츠 1차전 (도쿄 돔), 8회말 1사에서 4번째 투수로 구원 등판, 2/3이닝 2실점
- 첫 승리: 1999년 4월 4일, 요미우리 자이언츠 3차전 (도쿄 돔), 7회말에 5번째 투수로 구원 등판, 1과 1/3이닝 2실점
- 첫 탈삼진: 상동, 7회말에 고토 타카시로부터 헛스윙 삼진
- 첫 세이브: 1999년 4월 18일, 야쿠르트 스왈로스 3차전 (후쿠오카 돔), 7회말에 3번째 투수로 구원 등판・완료, 3이닝 무실점
- 첫 선발・첫 선발 승리: 2000년 4월 4일, 야쿠르트 스왈로스 1차전 (메이지 진구 야구장), 7과 1/3이닝 무실점
- 첫 완투 승리・첫 완봉 승리: 2000년 4월 18일, 요미우리 자이언츠 4차전 (도쿄 돔)
- 첫 홀드: 2011년 4월 16일, 주니치 드래건스 2차전 (나고야 돔), 12회말에 6번째 투수로 구원 등판, 1/3이닝 무실점
; 타격 기록
- 첫 안타: 1999년 5월 8일,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스 7차전 (요코하마 스타디움), 8회초에 야노 에이지로부터 우전 안타
- 첫 홈런・첫 타점: 2001년 4월 1일, 요미우리 자이언츠 3차전 (도쿄 돔), 2회초에 사이토 마사키로부터 좌월 솔로
; 이정표 기록
- 1000 투구 이닝: 2009년 4월 25일, 히로시마 도요 카프 5차전 (MAZDA Zoom-Zoom 스타디움 히로시마), 2회말 3사에서 기타 고를 2루 땅볼로 달성 ※역대 317번째
- 1000 탈삼진: 2014년 5월 4일, 야쿠르트 스왈로스 8차전 (메이지 진구 야구장), 8회말에 유헤이로부터 헛스윙 삼진 ※역대 137번째
- 500경기 등판: 2014년 7월 25일, 히로시마 도요 카프 11차전 (MAZDA Zoom-Zoom 스타디움 히로시마), 8회초에 3번째 투수로 구원 등판, 1이닝 무실점 ※역대 93번째
; 기타 기록
- 올스타 게임 출장: 1회 (2004년)
6. 1. 타이틀
최우수 중간 계투 2회(2014년, 2015년)최우수 중간 계투 투수 2회 (2014년, 2015년) ※ 2년 연속은 이와세 히토키, 모리 신지, 후지카와 큐지, 쿠보타 토모유키, 셋츠 타다시, 아사오 타쿠야, 야마구치 테츠야, 사토 타츠야, 미야니시 나오키, 시미즈 노보루와 동회수로 최장 타이기록
6. 2. 수상
6. 3. 개인 기록
후쿠하라 시노부는 1999년 4월 2일 도쿄 돔에서 열린 요미우리 자이언츠와의 1차전에 8회말 1사에 4번째 투수로서 구원 등판하여 2/3이닝 2실점을 기록하며 첫 등판을 기록했다. 같은 해 4월 4일 요미우리 자이언츠와의 3차전에서는 7회말에 5번째 투수로서 구원 등판, 1과 1/3이닝 2실점을 기록하며 첫 승리를 따냈다. 또한, 같은 경기 7회말에 고토 고지로부터 헛스윙 삼진을 잡아내며 첫 탈삼진을 기록했다. 1999년 4월 18일 후쿠오카 돔에서 열린 야쿠르트 스왈로스와의 3차전에서는 7회말에 3번째 투수로서 구원 등판하여 3이닝 무실점으로 첫 세이브를 올렸다.2000년 4월 4일 메이지 진구 야구장에서 열린 야쿠르트 스왈로스 1차전에서는 7과 1/3이닝 무실점으로 첫 선발 및 첫 선발 승리를 거두었다. 같은 해 4월 18일 도쿄 돔에서 열린 요미우리 자이언츠 4차전에서는 첫 완투 승리와 첫 완봉 승리를 동시에 달성했다. 2011년 4월 16일 나고야 돔에서 열린 주니치 드래건스와의 2차전에서는 12회말에 6번째 투수로서 구원 등판, 1/3이닝 무실점을 기록하며 첫 홀드를 따냈다.
타격 기록으로는 1999년 5월 8일 요코하마 스타디움에서 열린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스와의 7차전에서 8회초 야노 에이지로부터 우전 안타를 기록하며 첫 안타를 신고했다. 2001년 4월 1일 도쿄 돔에서 열린 요미우리 자이언츠 3차전에서는 2회초 사이토 마사키로부터 좌월 솔로 홈런을 터뜨리며 첫 홈런과 첫 타점을 동시에 올렸다.
후쿠하라 시노부는 2009년 4월 25일 MAZDA Zoom-Zoom 스타디움 히로시마에서 열린 히로시마 도요 카프 5차전에서 2회말 3아웃에서 기다 고를 2루 땅볼로 잡아내며 통산 1000투구 이닝을 달성했다(역대 317번째). 2014년 5월 4일 메이지 진구 야구장에서 열린 야쿠르트 스왈로스 8차전에서는 8회말에 유헤이로부터 헛스윙 삼진을 잡아내며 통산 1000탈삼진을 기록했다(역대 137번째). 같은 해 7월 25일 MAZDA Zoom-Zoom 스타디움 히로시마에서 열린 히로시마 도요 카프 11차전에서는 8회초에 3번째 투수로서 구원 등판, 1이닝 무실점을 기록하며 통산 500경기 등판을 달성했다(역대 93번째).
그는 2004년에 올스타전에 출장하기도 했다.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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阪神・今岡打撃Cが今季限りで退団…岡田政権下で23年から2年務め「契約満了」 福原2軍投手コーチ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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阪神・福原、今季限りで引退 2年連続で最優秀中継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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阪神・福原 来季メジャー挑戦も レ軍、ナ軍筆頭に6球団が興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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福原 金本監督との“橋渡し”任せ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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またビシエドにやられた…虎・福原、サヨナラ被弾で配置転換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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阪神・福原 2軍で無期限調整へ 香田コーチ「期限は設けな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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阪神福原が戦力外 ベテラン右腕に球威戻ら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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阪神 福原が引退会見、涙ぐんで「支えられ18年間。僕は幸せ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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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引退会見での一問一答】阪神・福原、涙で感謝…甲子園は「最高のマウン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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福原号泣引退会見…高校の先輩・金本監督を胴上げしたかっ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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阪神福原が18年分の涙 ラスト登板142キロ締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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阪神福原「阪神園芸の皆様ありがとう」引退あいさ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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阪神福原がファーム育成コーチ就任「投手育てた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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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阪神】岡田政権はコーチ陣大刷新 井上ヘッドら1軍6人が退任、2軍監督には和田TAが就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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阪神が今季の全首脳陣を発表 OB今岡真訪氏が6年ぶり復帰、元オリ水口栄二氏が新入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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