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라이 다카히로
1. 개요
아라이 다카히로는 일본의 전 프로 야구 선수이자, 현재 히로시마 도요 카프의 감독이다. 재일 한국인 출신으로 한국 이름은 박귀호이며, 2004년 일본으로 귀화했다. 선수 시절에는 히로시마 도요 카프, 한신 타이거스에서 활동했으며, 2005년에는 홈런왕을 차지하고 2016년에는 리그 MVP를 수상하는 등 뛰어난 활약을 펼쳤다. 2018년 은퇴 후, 해설가와 평론가로 활동하다가 2023년부터 히로시마 도요 카프의 감독을 맡아 팀을 이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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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름 | 아라이 다카히로 |
|---|---|
| 출생 이름 | 박귀호 |
| 출생일 | 1977년 1월 30일 () |
| 출생지 | 히로시마현 히로시마시 사에키구 또는 니시구 |
| 포지션 | 1루수, 3루수, 감독 |
| 팀 | 히로시마 도요 카프 |
| 등번호 | 25 |
| 타석 | 우타 |
| 투구 | 우투 |
| 프로 입단 | 1998년 드래프트 6순위 |
| 첫 출장 (NPB) | 1999년 4월 3일 |
| 데뷔 팀 | 히로시마 도요 카프 |
| 마지막 출장 (NPB) | 2018년 11월 3일 |
| 최종 팀 | 히로시마 도요 카프 |
| 팀 | 히로시마 도요 카프 (1999–2007) 한신 타이거스 (2008–2014) 히로시마 도요 카프 (2015–2018) |
|---|
| 팀 | 히로시마 도요 카프 (2023–현재) |
|---|
| 대표팀 | 일본 |
|---|---|
| 올림픽 | 2008년 |
|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 2006년 |
| 타율 | 0.278 |
|---|---|
| 안타 | 2,203 |
| 홈런 | 319 |
| 타점 | 1,303 |
| 수상 | 센트럴 리그 MVP (2016년) 올스타 8회 (2002년, 2005년, 2007년, 2008년, 2013년, 2015년 - 2017년) 센트럴 리그 홈런왕 1회 (2005년) 센트럴 리그 타점왕 1회 (2011년) 센트럴 리그 베스트 나인 2회 (2005년, 2016년) 센트럴 리그 골든 글러브 1회 (2008년) NPB 올스타전 MVP (2013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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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달 정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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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부 링크 | 新井貴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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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로시마시의 야구 선수 -
장훈
장훈은 일본 히로시마 출신의 재일 한국인 야구 선수이자 해설가로, 일본 프로야구에서 최다 안타 기록과 3,000안타-500홈런-300도루라는 이례적인 기록을 보유했으며, 은퇴 후에는 해설가로 활동하며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지만 대한민국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수상했다. -
히로시마시의 야구 선수 -
다카쓰 신고
다카쓰 신고는 일본의 전 야구 선수이자 감독으로, 야쿠르트 스왈로스에서 마무리 투수로 활약하며 일본 프로 야구 통산 세이브 기록을 경신하고, 메이저 리그에서도 활동했으며, 지도자로 변신하여 야쿠르트 스왈로스 1군 감독을 맡아 팀을 리그 우승으로 이끌고 일본 야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
고마자와 대학 동문 -
마쓰카와 도모아키
마쓰카와 도모아키는 쇼난 벨마레 등에서 활약한 일본의 전 축구 선수이며, 주로 중앙 미드필더로 뛰었고 2003년 YKK에서 선수 생활을 마감했다. -
고마자와 대학 동문 -
모리 시게카즈
모리 시게카즈는 일본 프로야구 선수, 감독, 야구 해설가 및 평론가로,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스 선수 시절 최우수 구원 투수상을 수상했으며, 주니치 드래곤즈 감독으로 NPB 최고령 감독 데뷔 기록을 세웠고, 은퇴 후 야구 해설 및 평론가, 저술가로 활동하고 있다. -
연도별 타격 성적을 포함한 문서 -
도마시노 겐지
도마시노 겐지는 1988년 야쿠르트 스왈로스에 입단하여 1989년 신인왕을 수상하고 빠른 발과 수비력을 갖춘 유틸리티 플레이어로 활약한 일본의 전 프로 야구 선수이자 현재 야구 해설가이다. -
연도별 타격 성적을 포함한 문서 -
나가오카 히데키
나가오카 히데키는 일본 프로 야구 선수로, 유격수 및 2루수로 활동하며 2022년 골든 글러브상을 수상하고 2024년 최다 안타 타이틀을 획득했다.
2. 프로 입단 전
1998년 드래프트 회의 전, 아라이는 고마자와 대학 시절 도토 대학 야구 연맹에서 미국 대학 올스타팀을 상대로 12타수 6안타를 기록, 리그 타점왕을 차지했다. 대학 통산 홈런은 2개였다. 이후 히로시마 도요 카프에 6순위로 지명되었다.
2.1. 유년 시절과 학창 시절
히로시마 시립 사쓰키가오카 초등학교 4학년 때(1986년) 시립 덴마 초등학교에서 전학, 1989년 3월 졸업 당시 장래 희망으로 "프로 야구 선수가 된다"고 적었다. 히로시마 시립 사쓰키가오카 중학교 (사에키구)를 거쳐, 현립 히로시마 공업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고등학교에서는 고시엔 출전은 없었으나, 1994년 봉황대기 전국고교야구대회에 긴조 다쓰히코와 함께 재일동포 야구단팀의 4번 타자로 출장하여 팀을 8강으로 이끌었다. 이때 팀 동료로는 후에 요코하마 베이스타스에 입단하는 김용의가 있었다. 고교 3학년 여름 현 대회에서는 베스트 16에 선정되었다.
고교 졸업 후 고마자와 대학에 진학하여, 4학년 때 미일 대학 야구에서 타율 5할을 기록했다. 같은 해 가을 도토 대학 리그에서는 타점왕과 베스트나인을 차지하였다. 대학 1년 선배인 다카하시 히사노리는 당시 아라이에 대해 “치지 않고 지키지 않았던가. 의외로 발바닥은 적당히 빨랐으므로 순순히 선배를 받아들인 것은 매우 좋았다” 라고 말했다. 리그 통산 60경기에 출장, 187타수 45안타, 타율 .241, 2홈런, 26타점을 기록했다. 고마자와 대학에서는 1학년 선배에 다카하시 히사노리, 2학년 후배에 다케다 히사, 3학년 후배에 이나다 나오토, 마에다 다이스케, 가와기시 츠요시가 있었다.
1998년 드래프트 회의 전에, 아라이는 대학 선배인 노무라 겐지로의 자택을 방문하여 자신의 배트 스윙을 어필했다. 이 인연으로, 드래프트에서는 노무라의 강력한 추천으로 히로시마 도요 카프에 6순위로 지명되었다. 고마자와 대학의 당시 감독 오타 마코토는 "아라이가 꼭 프로에 들어가고 싶다고 해서 고마자와 대학 OB인 오시타 쓰요시에게 상담하여, 당시 히로시마 스카우트 와타나베 히데타케에게 이야기를 정리해 달라고 했다"고 말했다.
2.2. 드래프트 지명과 히로시마 입단
아라이 다카히로는 히로시마 현립 히로시마 공업고등학교 시절 봉황대기 전국고교야구대회에 재일동포 야구단팀의 4번 타자로 출전하여 팀을 8강으로 이끌었다. 고교 졸업 후 고마자와 대학에 진학, 4학년 때 미일 대학 야구 선수권 대회에서 타율 5할을 기록하며 활약했다. 같은 해 가을 도토 대학 리그에서는 타점왕과 베스트나인을 차지했다. 대학 시절 통산 홈런은 2개에 불과했고, 수비에도 과제가 있었지만, 1998년 히로시마 도요 카프에 드래프트 6순위로 지명되어 입단했다. 여기에는 대학 선배인 노무라 겐지로의 강력한 추천이 있었다. 당시 고마자와 대학 감독이었던 오타 마코토는 "아라이가 꼭 프로에 들어가고 싶다고 해서 고마자와 대학 OB인 오시타 쓰요시에게 상담하여, 당시 히로시마 스카우트 와타나베 히데타케에게 이야기를 정리해 달라고 했다"고 회고했다. 아라이는 입단 후 "장래의 4번 후보"로 기대받았으며, 등번호 25번을 배정받았다.
3. 프로 선수 시절
2008년, 아라이 다카히로는 친정팀 히로시마를 떠나 한신 타이거스로 이적했다. 이적 후 첫 히로시마 시민 구장 원정 경기(4월 1일)에서는 히로시마 팬들의 야유를 받기도 했지만, 3타수 2안타 2사사구로 팀 승리에 기여했다. 같은 달 12일 요코하마전에서는 데라하라 하야토에게서 안타를 쳐 통산 1000안타를 달성했다. 시즌 전반기에는 좋은 성적을 유지하며 팀의 독주에 기여했으나, 허리 통증으로 인해 부진에 빠지기도 했다. 비록 시즌 성적은 8홈런 59타점으로 저조했지만, 수비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 1루수 부문 골든 글러브상을 처음으로 수상했다. 12월에는 미야모토 신야의 뒤를 이어 일본 프로 야구 선수회 회장직을 맡게 되었다.
2009년, 제2회 WBC 일본 대표팀 1차 후보로 거론되었으나, 허리 상태를 이유로 사퇴했다. 정규 시즌에서는 전 경기에 선발 출장하여 15홈런 82타점을 기록했지만, 리그 최다 병살타(20개)를 기록하는 등 아쉬운 부분도 있었다.
2010년에는 오랫동안 한신의 4번 타자를 맡았던 가네모토 도모아키를 대신해 이적 후 처음으로 4번 타자로 출전하게 되었다. 이후 거의 모든 경기에서 4번 타자로 활약하며 개인 최고 타율, 타점, 도루를 기록했다. 또한 2년 연속 풀이닝 출장(모두 3루수)을 달성했다. 오프 시즌에는 동생 아라이 료타가 한신으로 이적하여, 2014년까지 형제가 함께 뛰게 되었다.
2011년 3월, 동일본 대지진 발생 후 센트럴 리그의 시즌 개막 발표에 대해 선수회 회장으로서 개막 연기를 강력하게 요청했다. 시즌 중에는 지진 피해 지역 지원을 위해 홈런 1개당 10만 엔, 타점 1점당 5만 엔의 의연금을 기부하겠다고 발표했다. 리그 최고인 93타점으로 타점왕 타이틀을 획득했지만, 병살타와 실책 수도 리그 최고를 기록했다. 오프에는 FA권을 행사한 후 3년 재계약을 맺고 잔류했다.
2012년에는 오른쪽 어깨 통증 악화로 타격 부진에 빠져 4번 타자 자리를 가네모토 도모아키에게 내주기도 했다. 9월에는 오른쪽 어깨 통증으로 등록 말소되었고, 122경기 출전에 그치며 한신 이적 후 최저 성적을 기록했다.
2013년에는 올스타전에 출전하여 2차전에서 MVP, 3차전에서 감투상을 수상했다. 그러나 후반기에는 성적이 하락했고, 8월 25일 이후 홈런을 기록하지 못했다.
2014년에는 마우로 고메스의 입단으로 4번 타자 경쟁에서 밀려 대타나 3루 대기 선수로 출전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시즌 오프에는 대폭 삭감된 연봉 통보를 받고, 다음 해에도 대타 중심이 될 것이 확실해지자 11월 4일 구단에 자유 계약을 신청하여 승인받았다. 12월 2일, NPB에서 자유 계약 선수로 공시되었다.
3.1. 히로시마 도요 카프 (1999년 ~ 2007년)
新井 貴浩일본어는 히로시마 도요 카프에 입단하여 '장래의 4번 타자'로 큰 기대를 받았다. 입단 2년 차인 2000년에 16개, 이듬해에는 18개의 홈런을 기록하며 성장세를 보였다. 2002년에는 28개의 홈런을 기록하며 처음으로 올스타전에 출전, 당시 히로시마 구단주였던 마쓰다 고헤이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러나 마쓰다 고헤이 구단주가 타계하면서 큰 슬픔을 겪기도 했다.
2003년에는 가네모토 도모아키가 한신 타이거스로 이적하면서 4번 타자 자리를 이어받았지만, 부담감과 부진으로 인해 앤디 시츠에게 4번 타자 자리를 내주기도 했다. 2004년에도 타격 부진이 이어졌으나, 12월 결혼 후 야마모토 고지에게 격려를 받고 재기를 다짐했다.
1999년 아라이는 히로시마에서 .221의 타율을 기록했지만, 95타수에서 7개의 홈런을 쳤다. 그는 9월 14일, 에디 디아즈의 홈런에 대해 잡힐 것이라고 생각하여 진루를 시도하지 않았고, 디아즈가 그를 지나쳐 아웃되었다. 일주일 후, 그는 아웃 카운트를 세지 못하고 더블 플레이 후 공을 던져 주자가 득점하도록 했다.
2005년, 훈련을 통해 집중력을 높이고 스윙을 교정하여 43홈런, 94타점을 기록하며 최고의 시즌을 보냈다. 특히 6경기 연속 홈런을 기록하며 릭 랜셀로티의 구단 기록과 타이를 이루었다. 이 활약을 바탕으로 베스트 나인(3루수)에 선정되기도 했다.
2006년에는 25홈런, 100타점을 기록하며 꾸준한 활약을 이어갔다. 2007년에는 28홈런, 102타점을 기록하며 팀의 중심 타자로 자리매김했다. 수비에서도 3루수로서 리그 최고의 수비율을 기록했다. 시즌 후에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아시아 예선에 출전하여 일본 대표팀의 올림픽 출전권 획득에 기여했다.
입단 후, 대학 선배이기도 한 오시타 쓰요시 헤드코치에게 철저하게 훈련받았다. 아라이는 후에 "나를 관대하게 대하는 일은 결코 없었고, 부상이라도 당하면 그 선수로서는 끝이라는 마음으로 지도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2월에는 봄 캠프에서 가네모토 도모노리와 에토 사토시의 타격을 보고 큰 수준 차이를 느꼈다고 한다.
1999년에는 신인임에도 53경기에 출장하여 7홈런을 기록했다. 그해 오프에는 에토가 자유 계약 (FA) 권리를 행사하여 요미우리 자이언츠로 이적했기 때문에, 아라이는 "포스트 에토"로 기대를 받게 되었다. 2000년에는 특별 강화 지정 선수로 지명되어, 92경기에 출장하여 16홈런을 기록하는 등 활약했다. 2001년은 규정 타석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레귤러로 정착하여 124경기에 출장했다. 타율 .284, 18홈런, 56타점을 기록했다. 2002년은 전 140경기에 풀 출장하여, 프로 입문 후 처음으로 규정 타석에도 도달했다. 28홈런을 기록했고, 올스타에도 처음 출전했다.
2003년은 전년 오프에 한신으로 FA 이적한 가네모토의 뒤를 이어 개막부터 4번 타자로 나섰지만, 타격 부진에 빠져 후반전부터 앤디 시츠에게 4번 타자를 양보했고, 타율 .236, 19홈런으로 전년보다 성적이 떨어졌다. 2004년도 전년에 이어 타격 부진이 이어져, 시즌 통틀어 103경기 출장에 그쳐 규정 타석에도 미치지 못하고, 타율 .263, 10홈런의 성적으로 끝났다.
2005년은 우치다 준조 코치의 지도에 따른 폼 개조와 초구부터 적극적으로 치는 타격 스타일로 바꾼 것이 주효하여, 본인 처음으로 3할을 넘는 타율 .305를 기록했고, 홈런왕을 획득하여, 완전 부활을 이뤘다. 3루수로 출전하는 것이 중심이었지만, 시즌 막바지에는 타구를 오른쪽 어깨에 맞은 영향으로, 구리하라 겐타와 교체되어 1루수로 출전하는 경우도 있었고, 처음으로 베스트 나인을 1루수 부문에서 획득했다. 2006년 1월에는 가고시마현・사이후쿠지에서의 호마 수행 합숙을 단독으로 3박 4일 동안 했다. 시즌에서는, 홈런 수는 25개로 전년보다 감소했지만, 전년을 웃도는 100타점을 기록했다.
2007년은 자기 최다인 55볼넷을 골라, 28홈런, 102타점을 기록했다. 수비에서는 3루수로서 최다의 수비 기회로 리그 톱의 수비율을 기록. 시즌 종료 후에는 베이징 올림픽 아시아 예선 겸 제24회 아시아 야구 선수권 대회에 전 경기에 4번 타자·1루수로 출전하여, 일본 대표팀의 올림픽 출전권 획득에 크게 공헌했다. 이 해에 국내 FA 권리를 획득했다.
이후 FA 권리 행사와 관련된 내용은 다음 섹션에서 다루어진다.
3.2. 한신 타이거스 (2008년 ~ 2014년)
新井 貴浩일본어는 2008년 시즌을 앞두고 FA로 한신 타이거스로 이적하여 7년간 팀에서 활약했다. 2008년 4월 12일,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스전에서 데라하라 하야토에게 프로 통산 1000안타를 달성했다.
2008년 시즌 전반기에는 높은 타율을 유지하며 팀의 선두 독주에 기여했으나, 허리 통증으로 인해 일시 등록이 말소된 이후 부진에 빠졌다. 시즌 성적은 8홈런, 59타점으로 저조했지만, 1루수 부문에서 처음으로 골든 글러브상을 수상했다. 12월에는 미야모토 신야의 뒤를 이어 일본 프로 야구 선수회 회장으로 취임했다.
2009년에는 제2회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일본 국가대표팀 1차 후보에 올랐지만 허리 상태를 이유로 사퇴했다. 정규 시즌에서는 전 경기에 선발 출장하여 15홈런, 82타점을 기록했지만, 리그 최다인 20개의 병살타와 .299의 출루율을 기록했다.
2010년에는 이적 후 처음으로 4번 타자를 맡아 대부분의 경기에서 4번 타자로 출전하며 개인 최고 타율, 타점, 도루를 기록했다. 또한 2년 연속 풀이닝 출장(모두 3루수)을 달성했다. 오프 시즌에는 트레이드로 동생 아라이 료타가 한신으로 이적하여 2014년까지 함께 뛰었다.
2011년 3월 동일본 대지진 발생 후, 센트럴 리그의 시즌 개막 발표에 대해 선수회 회장으로서 개막 연기를 강력하게 요청했다. 시즌 중에는 지진 피해 지역 지원을 위해 홈런 1개당 10만 엔, 타점 1점당 5만 엔의 의연금을 기부하겠다고 발표했다. 리그 최고인 93타점으로 타점왕 타이틀을 획득했지만, 병살타와 실책 수도 리그 최고를 기록했다. 오프에는 FA권을 행사한 후 3년 재계약을 맺고 잔류했다.
2012년에는 오른쪽 어깨 통증 악화로 타격 부진에 빠져 4번 타자 자리를 가네모토 도모아키에게 내주기도 했다. 9월에는 오른쪽 어깨 통증으로 등록 말소되었고, 122경기 출전에 그치며 한신 이적 후 최저 성적을 기록했다.
2013년에는 올스타전에 출전하여 2차전에서 MVP, 3차전에서 감투상을 수상했다. 그러나 후반기에는 성적이 하락했고, 8월 25일 이후 홈런을 기록하지 못했다.
2014년에는 마우로 고메스의 입단으로 4번 타자 경쟁에서 밀려 대타나 3루 대기 선수로 출전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시즌 오프에는 대폭 삭감된 연봉 통보를 받고, 다음 해에도 대타 중심이 될 것이 확실해지자 11월 4일 구단에 자유 계약을 신청하여 승인받았다. 12월 2일, NPB에서 자유 계약 선수로 공시되었다.
3.3. 히로시마 도요 카프 복귀 (2015년 ~ 2018년)
2014 시즌을 마치고 7년 동안 뛰었던 한신 타이거스를 떠나 2015년 친정팀 히로시마 카프에 복귀했다. 2015년 시즌에는 124경기에 출전하여 117안타, 7홈런, 57타점, 타율 2할 7푼 5리를 기록하며 전성기 시절의 타격감을 되찾기 시작했다. 2016년 시즌에는 한신 타이거스 시절이었던 2010년 이후 5년 만에 시즌 3할 타율을 기록하며 베테랑의 면모를 보여주었고, 2016년 일본 시리즈에도 출전했다. 같은 해, 아라이는 타율 0.300, 19홈런, 101타점을 기록하며 팀의 25년 만의 센트럴 리그 우승에 기여했고, 센트럴 리그 MVP로 선정되었다.
2017 시즌에는 2할 9푼 2리를 기록했다. 2018 시즌 정규 시즌 종료 전 은퇴를 선언했고, 2018년 일본 시리즈 6차전에서 8회말 대타로 등장하여 땅볼로 마지막 경기를 치렀다.
4. 국가대표 경력
2006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 일본 대표팀 선수로 출전했지만, 출장 기회는 많지 않았다. 2차 리그 대한민국전에서 역전 기회를 놓치는 등 좋은 결과를 얻지 못했다. 대회에서 일본 대표팀은 우승했고, 아라이는 3타수 1안타 2삼진을 기록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아시아 예선에서 4번 타자 겸 1루수로 출전, 일본의 올림픽 출전권 획득에 기여했다. 2007년 아시아 야구 선수권 대회에서는 3경기 타율 0.500, 출루율 0.571, 장타율 1.000, 5타점으로 활약, 천진봉에 이어 타점 2위를 기록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본선에서는 부상에도 불구, 주전 1루수로 9경기에서 타율 .257, 출루율 .289, 장타율 .486, 2개의 3루타, 7타점을 기록했다. 한국전에서 6회 윤석민에게 2점 홈런을 쳤으나, 일본 투수진이 리드를 지키지 못해 패했다. 예선 라운드 장타율 .563으로 10위를 기록했다. 귀국 후 허리 척추 피로 골절 진단을 받았지만, "다시는 야구를 할 수 없어도 상관없다는 각오로 올림픽에 임했다"고 밝혔다.
5. 지도자 경력
TBS 텔레비전, 주고쿠 방송 야구 해설자와 스포츠 닛폰, 데일리 스포츠 야구 평론가를 역임했다.(2019년 ~ 2022년) 2022년 10월 12일, 히로시마 도요 카프의 감독으로 발표되었다.
5.1. 히로시마 도요 카프 감독 (2023년 ~ 현재)
2022년 10월 7일, 사사오카 신지 감독이 성적 부진의 책임을 지고 물러남에 따라, 아라이 다카히로는 제20대 히로시마 도요 카프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지도자 경력이 없다는 단점이 있었으나, 선수 생활의 시작과 마지막을 친정팀에서 보냈다는 점이 고려되었다. 10월 12일, 마쓰다 스타디움에서 취임 회견을 가졌다.
취임 회견에서 등번호에 관한 질문에 "구단에서는 15번(2016년까지 구로다 히로키가 사용했던 영구결번)을 제안했지만, 스즈키 씨가 본인에게 직접 말하라고 해서 무서워서 말하지 못하고 있다"라고 답하며 유머를 섞어 웃음을 자아냈다. 이후 구로다에게 직접 15번을 부탁하여 "네, 쓰세요."라는 허락을 받았다고 밝혔다.
한신 타이거즈 전 감독이자 같은 재일교포인 가네모토 도모아키(한국명 김지헌) 감독에게 격려 메일을 받았는데, "저는 자동차 운전이 무사고 무위반이니 안심하고 뒷좌석에 타실 수 있습니다"라며 운전기사를 자처했지만 정중히 거절했다는 일화를 공개하기도 했다.
2022년 10월 15일, 2023년부터 착용할 새 유니폼과 함께 등번호는 현역 시절 오랫동안 사용했던 25번으로 결정되었다.
2023년 시즌, 아라이 감독은 첫 시즌에 팀을 리그 2위(74승 65패 4무)로 이끌었다. 플레이오프에서 아쉽게 탈락했지만, 첫해에 우승에 근접하는 훌륭한 리더십을 보여주었다.
2024년 시즌에는 68승 70패 5무, 승률 .493으로 리그 4위를 기록했다.
감독으로서의 통산 성적은 다음과 같다.
6. 선수로서의 특징
아라이 다카히로는 왼발을 높이 드는 타격 폼이 특징이다. 2005년에 그립 위치를 조정하면서 타격이 개선되어, 그 해 43홈런으로 홈런왕을 차지했고, 처음으로 타율 3할(.305)을 기록했다. 그러나 30홈런 이상은 이 해가 유일했다. 한신 이적 후에는 허리 통증과 고시엔 구장의 영향으로 홈런이 감소했다.
2010년에는 가네모토 도모아키의 선발 제외로 한신 이적 후 처음 4번 타자를 맡아, 타율, 타점, 도루에서 개인 최고 성적을 기록했고, 2년 연속 시즌 풀 이닝 출전(144경기, 3루수)했다.
| 연도 | 소속 | 경기 | 타석 | 타수 | 득점 | 안타 | 2루타 | 3루타 | 홈런 | 루타 | 타점 | 도루 | 도루자 | 희생 번트 | 희생 플라이 | 볼넷 | 고의 4구 | 사구 | 삼진 | 병살타 | 타율 | 출루율 | 장타율 | OPS |
|---|---|---|---|---|---|---|---|---|---|---|---|---|---|---|---|---|---|---|---|---|---|---|---|---|
| 1999년 | 히로시마 | 53 | 105 | 95 | 14 | 21 | 2 | 1 | 7 | 46 | 14 | 1 | 1 | 1 | 0 | 8 | 0 | 1 | 31 | 2 | .221 | .288 | .484 | .773 |
| 2000년 | 92 | 233 | 208 | 26 | 51 | 6 | 0 | 16 | 105 | 35 | 3 | 1 | 0 | 2 | 18 | 0 | 5 | 54 | 6 | .245 | .318 | .505 | .822 | |
| 2001년 | 124 | 354 | 313 | 38 | 89 | 12 | 0 | 18 | 155 | 56 | 2 | 3 | 1 | 1 | 36 | 2 | 3 | 86 | 11 | .284 | .363 | .495 | .858 | |
| 2002년 | 140 | 559 | 512 | 63 | 147 | 28 | 2 | 28 | 263 | 75 | 1 | 3 | 0 | 3 | 38 | 2 | 6 | 124 | 17 | .287 | .342 | .514 | .855 | |
| 2003년 | 137 | 537 | 488 | 58 | 115 | 20 | 2 | 19 | 196 | 62 | 2 | 1 | 1 | 3 | 39 | 4 | 6 | 120 | 16 | .236 | .299 | .402 | .700 | |
| 2004년 | 103 | 294 | 262 | 36 | 69 | 10 | 1 | 10 | 111 | 36 | 3 | 0 | 0 | 1 | 29 | 0 | 2 | 55 | 4 | .263 | .340 | .424 | .764 | |
| 2005년 | 142 | 587 | 541 | 91 | 165 | 30 | 1 | 43 | 326 | 94 | 3 | 3 | 1 | 3 | 37 | 1 | 5 | 126 | 16 | .305 | .353 | .603 | .956 | |
| 2006년 | 146 | 611 | 566 | 78 | 169 | 23 | 2 | 25 | 271 | 100 | 1 | 1 | 0 | 9 | 32 | 2 | 4 | 117 | 14 | .299 | .336 | .479 | .814 | |
| 2007년 | 144 | 619 | 556 | 84 | 161 | 22 | 0 | 28 | 267 | 102 | 1 | 2 | 0 | 7 | 55 | 2 | 1 | 136 | 17 | .290 | .351 | .480 | .831 | |
| 2008년 | 한신 | 94 | 410 | 366 | 54 | 112 | 22 | 4 | 8 | 166 | 59 | 2 | 1 | 0 | 4 | 35 | 1 | 5 | 83 | 7 | .306 | .371 | .454 | .824 |
| 2009년 | 144 | 599 | 558 | 68 | 145 | 32 | 1 | 15 | 224 | 82 | 4 | 5 | 0 | 7 | 28 | 0 | 6 | 82 | 20 | .260 | .299 | .401 | .700 | |
| 2010년 | 144 | 641 | 570 | 96 | 177 | 42 | 0 | 19 | 276 | 112 | 7 | 2 | 0 | 8 | 52 | 1 | 11 | 89 | 19 | .311 | .374 | .484 | .858 | |
| 2011년 | 144 | 602 | 550 | 68 | 148 | 25 | 3 | 17 | 230 | 93 | 5 | 0 | 0 | 7 | 41 | 2 | 4 | 106 | 20 | .269 | .321 | .418 | .739 | |
| 2012년 | 122 | 493 | 460 | 46 | 115 | 25 | 0 | 9 | 167 | 52 | 1 | 3 | 0 | 2 | 30 | 2 | 1 | 85 | 12 | .250 | .296 | .363 | .659 | |
| 2013년 | 140 | 548 | 476 | 60 | 127 | 20 | 0 | 15 | 192 | 70 | 2 | 3 | 0 | 7 | 60 | 3 | 5 | 110 | 17 | .267 | .350 | .403 | .753 | |
| 2014년 | 94 | 194 | 176 | 13 | 43 | 6 | 0 | 3 | 58 | 31 | 0 | 0 | 0 | 1 | 15 | 2 | 2 | 33 | 6 | .244 | .309 | .330 | .639 | |
| 2015년 | 히로시마 | 124 | 476 | 426 | 52 | 117 | 22 | 2 | 7 | 163 | 57 | 3 | 0 | 0 | 4 | 48 | 1 | 2 | 73 | 15 | .275 | .349 | .386 | .735 |
| 2016년 | 132 | 513 | 454 | 66 | 136 | 23 | 2 | 19 | 220 | 101 | 0 | 1 | 0 | 4 | 54 | 1 | 1 | 101 | 12 | .300 | .372 | .485 | .857 | |
| 2017년 | 100 | 288 | 243 | 36 | 71 | 14 | 0 | 9 | 112 | 48 | 2 | 0 | 0 | 4 | 40 | 0 | 1 | 56 | 7 | .292 | .389 | .461 | .850 | |
| 통산: 19년 | 2320 | 8667 | 7820 | 1471 | 2178 | 384 | 21 | 315 | 3549 | 1279 | 43 | 30 | 4 | 77 | 695 | 26 | 71 | 1667 | 238 | .279 | .340 | .454 | .794 | |
* 2017년 기준, 굵은 글씨는 시즌 최고 성적.
주루에서는 1루 도달 시간이 4.38초이다.
수비에서는 주로 1루수와 3루수로 뛰었으며, 외야수로도 출전했다. 통산 1루수 수비율은 .996, 3루수 수비율은 .950이다.
| 포지션 | 연도 | 경기 | 척살 | 보살 | 실책 | 병살 | 수비율 |
|---|---|---|---|---|---|---|---|
| 1루수 | 1031 | 7655 | 650 | 33 | 605 | .996 | ||||||
| 2013 | 133 | 1202 | 87 | 7 | 105 | .995 | |||||||
| 2016 | 118 | 996 | 93 | 5 | 82 | .995 | |||||||
| 3루수 | 1163 | 709 | 1948 | 139 | 132 | .950 | ||||||
| 2007 | 144 | 105 | 284 | 12 | 15 | .970 | |||||||
| 2009 | 144 | 86 | 279 | 10 | 24 | .973 | |||||||
| 외야수 | 41 | 37 | 3 | 1 | 1 | .976 |
* 2017년 기준, 굵은 글씨는 시즌 최고 성적.
6.1. 타격
가네모토 도모아키가 2002년 시즌 종료 후 한신 타이거스로 이적하면서 생긴 4번 타자 자리를 개막전부터 맡았다. 하지만 지역 출신 슬러거에 대한 중압감과 정신적 지주였던 가네모토의 부재로 인해 성적이 부진했다. 결국 후반기부터 앤디 시츠에게 4번 타자 자리를 내주었고, 그 해 19홈런, 타율 .236으로 저조한 성적을 기록했다. 이듬해인 2004년에도 극심한 타격 부진으로 홈런 10개, 36타점에 그쳤다. 타석에서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며 좋지 않은 결과를 반복했다. 그해 12월 결혼식 피로연에서 야마모토 고지에게 격려를 받았다.
2005년, 우치다 준조 코치의 지도로 그립을 높이고 발을 올리는 타법을 익혔다. 또한 적극적인 타격을 시도하며 타격 스타일을 완전히 바꾸었다. 그 결과 43홈런으로 홈런왕을 차지했고, 처음으로 타율 3할(.305)을 기록했다. 6월 28일 한신전에서는 리처드 랜스와 함께 구단 타이 기록인 6경기 연속 홈런을 기록하는 등 최고의 성적을 냈다. 그러나 다음날 무안타로 랜디 바스와 오 사다하루가 기록한 일본 최고 기록(7경기 연속 홈런) 달성에는 실패했다. 야마모토 고지의 구단 연간 홈런 기록(44개) 경신도 기대되었지만, 결국 1개 차이로 미치지 못했다.
2006년 1월, 가네모토, 사사오카 신지와 함께 가고시마·사이후쿠지(最福寺)에서 3박 4일간 호마(護摩) 합숙 훈련을 했다. 2005년 홈런왕 타이틀 획득 공로로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일본 국가대표팀 선수로 지명되었지만, 출전 기회는 적었다. 그 시즌에는 마티 브라운 감독의 케이스 배팅 지시에 따라 홈런 수는 25개로 감소했지만, 100타점을 기록하며 주자를 불러들이는 타격이 향상되었다. 한편, 적극적인 타격 스타일에도 불구하고 볼넷 수가 적어 선구안의 부족을 지적받았다.
2007년에는 개인 최다인 55개의 볼넷을 얻어냈지만, 타점도 102타점을 기록했다. 그러나 기회에 강해진 만큼 호쾌한 타격이 무뎌졌다는 지적도 있었다. 수비에서는 3루수를 맡아 리그 1위의 수비율과 최다 수비 기회를 기록했다. 시즌 종료 후 베이징 올림픽 아시아 예선 겸 아시아 선수권에서 4번 타자 겸 1루수로 출전하여 일본 팀의 올림픽 출전권 확보에 기여했다. 이후 구로다 히로키와 함께 FA를 선언했다.
한신 타이거스 외에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등 다른 구단들도 영입에 나섰지만, 아라이에게는 가네모토가 있는 한신이 유리했다. 결국 아라이는 한신 입단을 발표했고, 12월 11일 FA 계약이 체결되었다.
2010년, 가네모토가 선발에서 제외되면서 한신 이적 후 처음으로 4번 타자를 맡았다. 이후 거의 모든 경기에서 4번 타자로 활약하며 타율, 타점, 도루 등에서 개인 최고 성적을 기록했다. 2년 연속 시즌 풀 이닝 출전(144경기, 모두 3루수)도 달성했다. 시즌 종료 후 동생 아라이 료타가 트레이드로 한신에 입단했다.
2011년, 도호쿠 지방 대지진 직후 선수 노조 회장으로서 개막일 변경 문제를 놓고 분주했다. 개막전에서는 4번·3루수로 출전했고, 4월 22일에는 4번 타자로서 시즌 첫 끝내기 안타를 때려냈다. 그러나 교류전 이후 극심한 타격 부진으로 4번 타자 자리를 박탈당하기도 했지만, 리그 1위인 93타점으로 타점왕을 차지했다.
타격 폼은 왼발을 높이 드는 것이 특징이다. 2004년까지는 그립 위치가 낮았고, 가슴 앞에서 자세를 잡았다. 2003년에 극심한 타격 부진에 빠진 이후 폼 만들기에 고생했지만, 2005년에 그립 위치를 올리고, 얼굴 뒤에서 자세를 잡는 형태로 개조한 것이 적중하여 배트가 부드럽게 나오게 되어 확실성이 증가했고, 타율·홈런·타점의 3개 부문 모두에서 커리어 하이의 성적을 기록하며 생애 첫 타격 타이틀인 홈런왕(43개)을 획득했다. 하지만 시즌 30홈런 이상을 기록한 것은 이 해뿐이다. 또한, 시즌 100타점 이상을 2006년, 2007년 2년 연속을 포함하여 4번 기록했다. 한신 이적 후에는 허리 통증의 영향도 있어, 타격 폼을 오픈 스탠스로 변경하는 등 타격 폼을 변경했고, 또한 홈 구장이 히로시마 시민 구장에서 넓은 고시엔 구장으로 바뀐 것도 있어, 홈런 수는 감소했다.
| 연도 | 소속 | 경기 | 타석 | 타수 | 득점 | 안타 | 2루타 | 3루타 | 홈런 | 루타 | 타점 | 도루 | 도루자 | 희생 번트 | 희생 플라이 | 볼넷 | 고의 4구 | 사구 | 삼진 | 병살타 | 타율 | 출루율 | 장타율 | OPS |
|---|---|---|---|---|---|---|---|---|---|---|---|---|---|---|---|---|---|---|---|---|---|---|---|---|
| 1999년 | 히로시마 | 53 | 105 | 95 | 14 | 21 | 2 | 1 | 7 | 46 | 14 | 1 | 1 | 1 | 0 | 8 | 0 | 1 | 31 | 2 | .221 | .288 | .484 | .773 |
| 2000년 | 92 | 233 | 208 | 26 | 51 | 6 | 0 | 16 | 105 | 35 | 3 | 1 | 0 | 2 | 18 | 0 | 5 | 54 | 6 | .245 | .318 | .505 | .822 | |
| 2001년 | 124 | 354 | 313 | 38 | 89 | 12 | 0 | 18 | 155 | 56 | 2 | 3 | 1 | 1 | 36 | 2 | 3 | 86 | 11 | .284 | .363 | .495 | .858 | |
| 2002년 | 140 | 559 | 512 | 63 | 147 | 28 | 2 | 28 | 263 | 75 | 1 | 3 | 0 | 3 | 38 | 2 | 6 | 124 | 17 | .287 | .342 | .514 | .855 | |
| 2003년 | 137 | 537 | 488 | 58 | 115 | 20 | 2 | 19 | 196 | 62 | 2 | 1 | 1 | 3 | 39 | 4 | 6 | 120 | 16 | .236 | .299 | .402 | .700 | |
| 2004년 | 103 | 294 | 262 | 36 | 69 | 10 | 1 | 10 | 111 | 36 | 3 | 0 | 0 | 1 | 29 | 0 | 2 | 55 | 4 | .263 | .340 | .424 | .764 | |
| 2005년 | 142 | 587 | 541 | 91 | 165 | 30 | 1 | 43 | 326 | 94 | 3 | 3 | 1 | 3 | 37 | 1 | 5 | 126 | 16 | .305 | .353 | .603 | .956 | |
| 2006년 | 146 | 611 | 566 | 78 | 169 | 23 | 2 | 25 | 271 | 100 | 1 | 1 | 0 | 9 | 32 | 2 | 4 | 117 | 14 | .299 | .336 | .479 | .814 | |
| 2007년 | 144 | 619 | 556 | 84 | 161 | 22 | 0 | 28 | 267 | 102 | 1 | 2 | 0 | 7 | 55 | 2 | 1 | 136 | 17 | .290 | .351 | .480 | .831 | |
| 2008년 | 한신 | 94 | 410 | 366 | 54 | 112 | 22 | 4 | 8 | 166 | 59 | 2 | 1 | 0 | 4 | 35 | 1 | 5 | 83 | 7 | .306 | .371 | .454 | .824 |
| 2009년 | 144 | 599 | 558 | 68 | 145 | 32 | 1 | 15 | 224 | 82 | 4 | 5 | 0 | 7 | 28 | 0 | 6 | 82 | 20 | .260 | .299 | .401 | .700 | |
| 2010년 | 144 | 641 | 570 | 96 | 177 | 42 | 0 | 19 | 276 | 112 | 7 | 2 | 0 | 8 | 52 | 1 | 11 | 89 | 19 | .311 | .374 | .484 | .858 | |
| 2011년 | 144 | 602 | 550 | 68 | 148 | 25 | 3 | 17 | 230 | 93 | 5 | 0 | 0 | 7 | 41 | 2 | 4 | 106 | 20 | .269 | .321 | .418 | .739 | |
| 2012년 | 122 | 493 | 460 | 46 | 115 | 25 | 0 | 9 | 167 | 52 | 1 | 3 | 0 | 2 | 30 | 2 | 1 | 85 | 12 | .250 | .296 | .363 | .659 | |
| 2013년 | 140 | 548 | 476 | 60 | 127 | 20 | 0 | 15 | 192 | 70 | 2 | 3 | 0 | 7 | 60 | 3 | 5 | 110 | 17 | .267 | .350 | .403 | .753 | |
| 2014년 | 94 | 194 | 176 | 13 | 43 | 6 | 0 | 3 | 58 | 31 | 0 | 0 | 0 | 1 | 15 | 2 | 2 | 33 | 6 | .244 | .309 | .330 | .639 | |
| 2015년 | 히로시마 | 124 | 476 | 426 | 52 | 117 | 22 | 2 | 7 | 163 | 57 | 3 | 0 | 0 | 4 | 48 | 1 | 2 | 73 | 15 | .275 | .349 | .386 | .735 |
| 2016년 | 132 | 513 | 454 | 66 | 136 | 23 | 2 | 19 | 220 | 101 | 0 | 1 | 0 | 4 | 54 | 1 | 1 | 101 | 12 | .300 | .372 | .485 | .857 | |
| 2017년 | 100 | 288 | 243 | 36 | 71 | 14 | 0 | 9 | 112 | 48 | 2 | 0 | 0 | 4 | 40 | 0 | 1 | 56 | 7 | .292 | .389 | .461 | .850 | |
| 통산: 19년 | 2320 | 8667 | 7820 | 1471 | 2178 | 384 | 21 | 315 | 3549 | 1279 | 43 | 30 | 4 | 77 | 695 | 26 | 71 | 1667 | 238 | .279 | .340 | .454 | .794 | |
* 2017년 기준, 굵은 글씨는 시즌 최고 성적.
6.2. 주루
2012년 시즌 이후 타격이 좋지 않아 출전 수가 감소하기 시작했다. 2012년에 122경기, 2013년에 140경기, 2014년에 94경기에 출전했고, 타율은 2012년에 2할 5푼, 2013년에 2할 6푼 7리, 2014년에는 2할 4푼 4리를 기록했다. 2014년 시즌 후, 7년 동안 뛰었던 한신 타이거스를 떠나 2015년 친정팀 히로시마 도요 카프로 복귀했다. 2015년 시즌에는 124경기에 출전하여 117안타, 7홈런, 57타점, 타율 2할 7푼 5리를 기록하며 전성기 시절의 타격감을 회복하기 시작했다. 2016년 시즌에는 한신 타이거스 시절인 2010년 이후 5년 만에 시즌 3할 타율을 기록하며 베테랑의 면모를 보여주었고, 2016년 일본 시리즈에도 출전했다. 2017년 시즌에는 2할 9푼 2리를 기록했다. 2018년 시즌 정규 시즌 종료 전 은퇴를 선언했고, 2018년 일본 시리즈 6차전에서 8회말 대타로 출장하여 땅볼로 마지막 경기를 치렀다.
1루 도달 시간은 4.38초이다.
6.3. 수비
아라이 다카히로는 주로 1루수와 3루수로 뛰었으며, 외야수로도 출전한 경험이 있다.
| 포지션 | 연도 | 경기 | 척살 | 보살 | 실책 | 병살 | 수비율 |
|---|---|---|---|---|---|---|---|
| 1루수 | 1031 | 7655 | 650 | 33 | 605 | .996 | ||||||
| 2013 | 133 | 1202 | 87 | 7 | 105 | .995 | |||||||
| 2016 | 118 | 996 | 93 | 5 | 82 | .995 | |||||||
| 3루수 | 1163 | 709 | 1948 | 139 | 132 | .950 | ||||||
| 2007 | 144 | 105 | 284 | 12 | 15 | .970 | |||||||
| 2009 | 144 | 86 | 279 | 10 | 24 | .973 | |||||||
| 외야수 | 41 | 37 | 3 | 1 | 1 | .976 |
* 2017년 기준, 굵은 글씨는 시즌 최고 성적.
* 연도별 수비 기록
| 연도 | 소속팀 | 포지션 | 경기 | 자살 | 보살 | 실책 | 병살 | 수비율 |
|---|---|---|---|---|---|---|---|---|
| 1999 | 히로시마 도요 카프 | 1루수 | 28 | 136 | 14 | 2 | 16 | .987 | |||||||
| 1999 | 3루수 | 3 | 0 | 5 | 0 | 0 | 1.000 | |||||||
| 1999 | 외야수 | 2 | 2 | 0 | 0 | 0 | 1.000 | |||||||
| 2000 | 1루수 | 25 | 146 | 12 | 0 | 17 | 1.000 | |||||||
| 2000 | 3루수 | 39 | 21 | 45 | 5 | 3 | .930 | |||||||
| 2000 | 외야수 | 2 | 0 | 0 | 0 | 0 | ---- | |||||||
| 2001 | 1루수 | 47 | 122 | 12 | 0 | 9 | 1.000 | |||||||
| | 3루수 | 45 | 22 | 64 | 8 | 7 | .915 | ||||||||
| 2001 | 외야수 | 37 | 35 | 3 | 1 | 1 | .974 | |||||||
| 2002 | 1루수 | 72 | 406 | 41 | 1 | 40 | .998 | |||||||
| 2002 | 3루수 | 102 | 69 | 142 | 16 | 13 | .930 | |||||||
| 2003 | 1루수 | 106 | 898 | 97 | 3 | 69 | .997 | |||||||
| 2003 | 3루수 | 37 | 28 | 49 | 3 | 5 | .963 | |||||||
| 2004 | 1루수 | 70 | 512 | 45 | 3 | 60 | .995 | |||||||
| 2004 | 3루수 | 8 | 4 | 13 | 3 | 0 | .850 | |||||||
| 2005 | 1루수 | 35 | 210 | 18 | 2 | 16 | .991 | |||||||
| 2005 | 3루수 | 121 | 82 | 224 | 21 | 21 | .936 | |||||||
| 2006 | 1루수 | 1 | 2 | 0 | 0 | 0 | 1.000 | |||||||
| 2006 | 3루수 | 143 | 84 | 255 | 19 | 13 | .947 | |||||||
| 2007 | 1루수 | 1 | 2 | 0 | 0 | 0 | 1.000 | |||||||
| 2007 | 3루수 | 144 | 105 | 284 | 12 | 15 | .970 | |||||||
| 2008 | 한신 타이거스 | 1루수 | 91 | 818 | 59 | 1 | 75 | .999 | |||||||
| 2008 | 3루수 | 1 | 1 | 0 | 0 | 0 | 1.000 | |||||||
| 2009 | 3루수 | 144 | 86 | 279 | 10 | 24 | .973 | |||||||
| 2010 | 3루수 | 144 | 83 | 232 | 16 | 12 | .952 | |||||||
| 2011 | 1루수 | 29 | 119 | 7 | 1 | 9 | .992 | |||||||
| 2011 | 3루수 | 138 | 84 | 215 | 17 | 14 | .946 | |||||||
| 2012 | 1루수 | 78 | 509 | 34 | 3 | 40 | .995 | |||||||
| 2012 | 3루수 | 68 | 25 | 96 | 6 | 3 | .953 | |||||||
| 2013 | 1루수 | 133 | 1202 | 87 | 7 | 105 | .995 | |||||||
| 2014 | 1루수 | 16 | 95 | 9 | 0 | 3 | 1.000 | |||||||
| 2014 | 3루수 | 26 | 15 | 35 | 3 | 2 | .943 | |||||||
| 2015 | 히로시마 도요 카프 | 1루수 | 111 | 991 | 76 | 4 | 64 | .996 | |||||||
| 2016 | 1루수 | 118 | 996 | 93 | 5 | 82 | .995 | |||||||
| 2017 | 1루수 | 70 | 491 | 46 | 1 | 37 | .998 | |||||||
| 2018 | 1루수 | 24 | 152 | 12 | 2 | 14 | .988 |
* 각 연도의 굵은 글씨는 리그 최고
* 굵은 글씨 연도는 골든 글러브상 수상
* '----'는 1군 출장 기록 없음.
7. 인물
그는 재일 한국인으로, 한국 이름은 박귀호(박귀호한국어)이다. 2004년 6월에 일본으로 귀화했다.
좋아하는 말은 만화 『맨발의 겐』에 나오는 "밟혀도 밟혀도, 강하고 곧게 뻗는 보리가 되어라"이다.
온후하고 상냥한 성격으로, 대학교 1년 선배인 다카하시 히사노리는 대학 시절의 아라이를 "타격도 수비도 못했지만, 발은 그럭저럭 빨랐고, 순수하고 예의가 바르기 때문에 선배들에게 인기가 매우 좋았다"고 말했다. 젊은 시절에는 선배들에게 놀림감이 되었으며, 히로시마 시절 가네모토가 홈런을 쳤을 때, 다른 선수들과는 하이파이브를 했지만 아라이에게만 손바닥을 때리는 등의 일화가 있다. 선수회 골프 시구식에서 타구 방향에 서게 되는 등의 에피소드도 남아 있다. "스포츠 닛폰"과의 인터뷰에서 아라이는 가네모토의 취미가 "아라이 놀리기"여서 한신 시절 호텔 방에서 가네모토에게 "핀포다시" 피해를 당했다고 고백했다. 게다가 가네모토는 매번 벨 누르는 방식을 바꿔서 아라이도 "무시할 수 없었다"고 한다. 그 외에도 밤중에 전화가 걸려와 받아보니 전화의 주인공은 가네모토였고, "빨리 자야지. 그래야 찬스에서 못 치는 거야."와 같은 말을 들었다고 한다. 가네모토가 은퇴한 후 2년 동안은 니시오카 쓰요시가 주도하여 선배임에도 팀 동료들에게 놀림을 받는 경우가 많았다(모두 한신 재적 당시).
영어를 잘하며, 통역 없이도 외국인과 대화할 수 있었다. 오랫동안 피처폰 애용자로 알려졌지만, 2020년 이후 스마트폰을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화제가 되었다.
히로시마 입단 2년 차에 만들어진 자신의 응원가를 2015년 복귀 후에도 사용했는데, 그는 그 응원가를 "모든 것이 완벽하다"고 말할 정도로 마음에 들어 했다. 다른 응원가 중에서는 한신 시절 도리타니 다카시의 곡을 좋아했다고 말했다.
어린 시절부터 히로시마의 열렬한 팬이었으며, 잠옷은 카프 유니폼을 본뜬 것이었다.
고마자와 대학 시절 야구부 매니저였던 호리우치 츠네오(요미우리 자이언츠 전 투수, 감독)의 장녀와 동급생이었으며, 호리우치의 장녀는 아라이를 "츄 씨"라고 불렀다. 야구부 합숙소에서는 호리우치의 장남 코지시와 같은 방을 썼다고 한다.
2024년 히로시마 시절 친구인 구로다 히로키가 야구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을 때, 아라이가 광고주가 되어 시상식 당일인 7월 23일자 주고쿠 신문 조간에 구로다를 칭찬하는 전 2페이지 분량의 전면 광고를 게재했다. 아라이의 은퇴 시 구로다가 광고주가 된 신문 광고(히로시마 복귀~2018년 항목 참조)와 같은 지면 구성으로, "역시, 구로다 씨는 대단했다.", "광고주 아라이 다카히로"라는 문구가 덧붙여졌다.
8. 에피소드
* 2005년, 우치다 준조 코치의 지도에 따라 타격 폼을 개조하고 초구부터 적극적으로 치는 타격 스타일로 바꾸었다. 그 결과, 처음으로 3할이 넘는 타율(.305)을 기록했다. 같은 해 6월 28일 한신전에서는 리처드 런스와 함께 구단 타이 기록인 6경기 연속 홈런을 기록했다. 비록 야마모토 고지의 구단 연간 홈런 기록(44개)에는 1개 미치지 못했지만, 홈런왕을 차지하며 완벽하게 부활했다.
* 재일대한야구협회 한재우 회장은 1990년대 중반부터 재일동포 고교 선발팀을 한국에 데려오지 못하는 상황에 대해 아쉬움을 표하며, "얼마 전 끝난 올림픽 예선에서 일본 대표팀 4번 타자로 활약한 아라이 다카히로는 봉황대기에 재일동포 선수로 출전했던 귀화 선수다. 최근에는 돌림자 이름이 줄어들고 일찍 귀화하는 선수들이 많아져 재일동포 선수들을 모으기 어렵다"고 언급했다.
* 2008년 한신으로 이적한 후에도 "지금도 역시 히로시마 경기는 신경이 쓰인다"며 친정팀 히로시마에 대한 강한 애착을 드러냈다. 하지만 같은 해 히로시마 시민 구장에서 열린 히로시마와의 첫 경기 도중, 히로시마 응원 관중석에서 아라이가 히로시마 시절 입었던 유니폼이 그라운드에 던져지는 등 야유를 받기도 했다.
* 현역 시절, 오랫동안 자율 훈련 메뉴로 호마행을 포함시켰다. 은퇴 후인 2019년에도 야구 해설가로 활동하던 여름, "스스로의 마음을 다잡고 싶었다"는 이유로 호마행을 했다고 한다.
* 한신 이적 후, 팬들 사이에서는 이름과 이적 당시 발언을 빗댄 "괴로운 씨"라는 별명으로 불리며 놀림감이 되었다. (온라인 상에서는 "괴로운 씨"라고 가타카나로 표기되기도 한다.) 2003년, 2009년, 2011년에는 센트럴 리그 최다 병살타를 기록했는데, 아라이가 치는 병살타는 "괴로운 씨"와 "병살타(ゲッツー)"를 합쳐 "괴로게"라고 불렸다.
* 2023년, 카프 감독으로 취임하며 『히로시마 우승 심원 성취』를 외쳤다.
* 2024년, 고야산 쇼조신인에서 21년 연속으로 호마행을 진행했다.
9. 상세 정보
| 연도 | 날짜 | 상대 팀 | 구장 | 이닝 | 상대 투수 |
|---|---|---|---|---|---|
| 1 | 1999년 6월 6일 | 주니치 11차전 | 하마마쓰 구장 | 4회초 | 노구치 시게키 |
| 2 | 6월 8일 | 한신 9차전 | 오사카 돔 | 1회초 | 대럴 메이 |
| 3 | 9월 7일 | 야쿠르트 20차전 | 메이지 진구 야구장 | 1회초 | 야마베 후토시 |
| 4 | 2000년 4월 21일 | 요미우리 4차전 | 히로시마 시민 구장 | 7회말 | 기무라 류지 |
| 5 | 8월 15일 | 요코하마 19차전 | 히로시마 시민 구장 | 2회말 | 미우라 다이스케 |
| 6 | 2005년 5월 21일 | 라쿠텐 2차전 | 히로시마 시민 구장 | 5회말 | 아리메 가네히사 |
| 7 | 6월 1일 | 지바 롯데 5차전 | 지바 마린 스타디움 | 9회초 | 오노 신고 |
| 8 | 6월 5일 | 오릭스 6차전 | 히로시마 시민 구장 | 7회말 | 가쓰키 료타 |
| 9 | 6월 8일 | 소프트뱅크 5차전 | 히로시마 시민 구장 | 5회말 | 사이토 가즈미 |
| 10 | 6월 15일 | 닛폰햄 5차전 | 삿포로 돔 | 9회초 | 다르빗슈 유 |
| 11 | 2006년 5월 18일 | 세이부 2차전 | 히로시마 시민 구장 | 1회말 | 호아시 가즈유키 |
| 12 | 2008년 5월 14일 | 히로시마 7차전 | 이시카와 현립 야구장 | 7회초 | 오타케 간 |
* 등번호
25 (1999년 ~ 2014년, 2016년 ~ 2018년, 2023년 ~ )
28 (2015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