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승환은 대한민국 출신의 야구 선수로, 투수로서 KBO, NPB, MLB에서 활약했다. 고등학교 시절 부상으로 타자로 전향하기도 했으나, 단국대학교에서 투수로 복귀하여 두각을 나타냈다. 2005년 삼성 라이온즈에 입단하여 KBO 리그에서 신인왕과 한국시리즈 MVP를 석권하며 두각을 나타냈고, 이후 일본 한신 타이거스, 미국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토론토 블루제이스, 콜로라도 로키스 등에서 활약했다. KBO 통산 300세이브를 최초로 달성했으며, 한미일 통산 400세이브를 기록했다. 국가대표로도 여러 차례 활약했으며, 2015년 해외 원정 도박 사건에 연루되어 논란이 일기도 했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한국 프로 야구 200세이브 클럽 - 김용수 (야구인) 김용수는 1985년 MBC 청룡에 입단하여 LG 트윈스에서 선발과 마무리 투수로 활약하며 KBO 리그 통산 126승 227세이브를 기록하고 1990년과 1994년 한국시리즈 MVP를 수상, LG 트윈스 최초의 영구 결번 선수로 지정된 후 해설위원과 코치, 중앙대학교 야구부 감독을 역임한 야구인이다.
한국 프로 야구 200세이브 클럽 - 구대성 구대성은 KBO, 일본, 미국, 호주 프로야구에서 투수로 활약하며 다승왕, MVP 등을 석권하고 올림픽 메달과 한국시리즈 우승에 기여했으며, 은퇴 후 지도자와 해설위원으로 활동하면서도 50세 넘는 나이에도 선수 생활을 이어가는 야구 선수이다.
우신중학교 동문 - 이용호 (1970년) 이용호는 서울 출신의 야구 선수로, OB 베어스, 두산 베어스 등 여러 팀에서 투수로 활동하며 통산 495경기에 출전, 57승 49패 10세이브, 평균자책점 4.69를 기록했다.
우신중학교 동문 - 장정석 장정석은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출신 감독이자 해설가, 前 KIA 타이거즈 단장으로, 선수 시절 외야수로 활동했고 넥센 히어로즈/키움 히어로즈의 감독을 역임했으며 KBS N 스포츠 해설위원을 거쳐 KIA 타이거즈 단장으로 선임되었으나 논란으로 해임되었다.
전북특별자치도 출신 스포츠인 - 최수연 최수연은 대한민국 펜싱 선수로, 2021년 도쿄 올림픽 여자 사브르 단체전에서 동메달을 획득했으며, 하계 유니버시아드, 아시안 게임 등 다수의 국제 및 국내 대회에서 수상했다.
전북특별자치도 출신 스포츠인 - 정해영 (2001년) 정해영은 KIA 타이거즈 소속 야구 선수이며, 2020년 입단하여 2021년과 2022년 KBO 리그에서 2년 연속 세이브 1위를 기록했고, 그의 아버지는 해태 타이거즈의 포수 정회열이다.
KBO 리그 신인왕 (2005) 8× KBO 올스타 (2005–2008, 2011–2013, 2022) 6× KBO 세이브왕 (2006–2008, 2011–2012, 2021) KBO 통산 세이브 1위 5× 한국시리즈 우승 (2005–2006, 2011–2013) 2× 한국시리즈 MVP (2005, 2011) 아시아 시리즈 우승 (2011)
빠른 공을 던지는 투수로 이름이 나 MLB 스카우트들의 관심을 얻었지만 팔꿈치 인대가 파열됐다. 이후 타자로 전향하고 고등학교 2학년 때 경기고등학교로 전학을 갔다. 그는 전국 대회에서 타자로서 별다른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고, 팔꿈치 부상 경력이 있어 프로 팀과 대학 팀의 관심을 많이 받지 못했다. 당시 단국대학교의 강문길 감독은 고등학교 초기 그가 뛰어난 투수였다는 점에 주목했고 투수로서의 자질을 발견해 단국대학교 체육교육과에 입학할 것을 권유했다.[144] 진학 후 1학년 때 갑자기 팔꿈치를 다쳐 팔꿈치 인대 접합 수술을 받았다. 3학년이 돼서야 제한적으로 2이닝씩 투구할 수 있게 됐고, 재활에 더욱 매진한 그는 3학년 때 시속 138km/h에 머물던 구속을 졸업할 무렵에 148km/h가 넘게 끌어올렸다.[144]
2004년, 단국대학교 4학년이었던 오승환은 한국 대학 야구에서 많은 투수 부문 상을 수상했다. 6월에는 타이완 타이난에서 열린 2004 세계대학야구선수권대회에서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에 첫 출전했다. 그는 대부분의 경기에서 마무리 투수로 활약하며 팀의 동메달 획득에 기여했다. 구문은 제거함.
2차 1라운드 지명에서 삼성 라이온즈의 지명 순위는 전체 5순위였다. 상위 지명 순위를 가진 네 팀은 모두 고졸 선수를 지명했지만, 삼성 라이온즈는 단국대학교 졸업 예정인 오승환을 지명했다. 경기고등학교 시절부터 잘 알려진 선수가 아니었고, 단국대 시절 팔꿈치 수술을 받는 등 두 번의 수술 경력이 있어 다소 모험적인 지명이었다. 시즌 개막 후 중간 계투를 맡았고, 그 해 7월 당시 마무리 투수였던 권오준이 부진하자 마무리 투수를 맡게 되었다. 권오준에 앞서 해크먼이 마무리로 기용될 예정이었지만 제구력 불안 때문에 선발로 보직을 변경했고, 중도 퇴출됐다.[145]7월 5일[146] 오승환과 권오준은 K-O 펀치라고 불렸다. 이후 신인답지 않게 마무리 투수로서 독보적인 모습을 보여줬다. 한국시리즈 3경기에 등판해 7이닝 무실점, 11탈삼진, 평균자책점 0의 완벽한 마무리 능력을 보이며 한국시리즈 MVP로 선정됐다. 시즌 후 신인왕과 한국시리즈 MVP를 동시에 차지했는데 이는 오승환이 유일했으며, 팀 내 역대 3번째 신인왕을 수상했다. 또 KBO 최초 시즌 승리, 세이브, 홀드 모두 10개 이상을 기록했다.
10월 1일현대전에서 47세이브를 기록하며[147], 일본의 이와세 히토키가 가지고 있던 아시아 통산 최다 세이브 기록인 46세이브를 경신했다. 이는 진필중이 가지고 있던 한 시즌 최다 세이브(42개) 기록과 이와세 히토키가 2005년에 세운 한 시즌 최다 세이브(46개) 기록을 깬 아시아 신기록이었다.
9월 18일KIA전에서 데뷔 후 3년 180경기 만에 최단 기간 세 자릿수 세이브를 기록했다.
2년간 꾸준한 성적을 올려 세 시즌 연속 세이브 부문 1위를 차지했다. 덕분에 야구 국가대표팀에 선발됐다. 하지만 그는 승리하는 경기마다 등판하며 과부하로 인해 구위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6월 21일LG와의 더블 헤더 2차전에서 박용택에게 데뷔 후 첫 만루 홈런을 허용했다. 이후 마운드에 글러브를 집어던졌다.[148] 어깨 부상까지 당하며 시즌을 마감했고, 데뷔 후 가장 부진한 성적을 기록했다. 그를 대신해 권혁, 정현욱 등이 번갈아 가며 마무리를 맡아 불펜이 과부하에 걸리는 원인이 됐다.[149] 이 영향으로 2년간 구원왕을 이용찬, 애킨스, 손승락에게 내줬다.
종전 시즌부터 생겨난 부상의 여파가 이어지며 마무리 자리를 넘겨줬고, 등판 수가 현저히 줄었다. 마운드 위에서는 2009년 시즌과 같은 구위의 저하가 드러났으며, 그는 2년 연속 4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다. 시즌 16경기에 등판했다.
많은 휴식과 훈련을 한 그는 스프링캠프에서 이례적으로 147km/h의 공을 던졌다. 그 후 시범 경기에서 5경기 5이닝 무실점, 2세이브, 6탈삼진, 평균자책점 0, 최고 구속 148km/h를 기록했다. 시즌 첫 등판에서 1.1이닝 무실점, 2볼넷, 2탈삼진을 기록하며 첫 세이브를 올렸다. 5월 7일 그가 가지고 있던 최소 경기(12경기) 두 자릿수 세이브와 타이 기록을 세웠다. 5월 20일두산 베어스전에서 블론 세이브를 기록했지만, 신명철의 끝내기 안타로 승리 투수가 됐다. 8월 2일넥센 히어로즈전에서 역대 최소 경기(37경기) 30세이브 타이 기록을 세웠다. 8월 12일KIA전에서 최연소(만 29세 28일), 최소 경기(334경기) 통산 200세이브 세계 신기록을 세웠다.[150]8월 27일두산 베어스전에서 16경기 연속 세이브를 기록하며, 2006년정재훈의 15경기 연속 세이브 기록을 경신했다. 9월 10일LG전에서 1이닝 1실점으로 역대 최소 경기(47경기) 40세이브를 기록했다. 10월 1일SK전에서 그가 가지고 있던 아시아 세이브 타이 기록(47세이브)을 세웠다. 그는 두산 베어스, LG 트윈스를 제외한 5개 구단을 상대로 점수를 허용하지 않았다. 한국시리즈 2차전에서 구원 등판해 2이닝 3탈삼진을 기록했고, 한국시리즈 5차전에서 구원 등판해 1.1이닝을 막으며 KS 통산 최다 세이브인 6세이브를 기록했다. 한국시리즈에서 3세이브를 기록하며 한국시리즈 MVP에 올랐다. 또 KBO 최초 무패 구원왕 기록을 세웠고, 역대 세이브 1·2위간의 최대 격차 기록을 경신했다.
2013년 11월 22일, 오승환은 한신 타이거스와 2년 9억 9천만 엔의 계약을 맺었다. 이는 일본 프로야구 역사상 한국인 선수가 받은 최고액 계약이었다.[4]와다 유타카 타이거스 감독은 선수들에게 한국어 수업을 제공하는 것을 제안했다.[5]
2014년 시즌 내내 그는 한신 타이거스의 마무리 투수 역할을 맡았다. 7월 22일 요미우리 자이언츠와의 경기에서 300세이브를 달성한 두 번째 한국인 선수가 되었다(임창용에 이어).[6]9월 21일주니치와의 경기에서 동점 상황에 타자로 나와 데뷔 첫 안타를 기록했다. 9월 24일베이스타스와의 경기에서 시즌 36세이브를 기록하며 NPB 역사상 첫해에 가장 많은 세이브를 기록한 외국인 투수가 되었다.[7] 에디 게일러드(2000년)와 데니스 사파테(2011년)는 각각 한 시즌에 35세이브를 기록했다.[8] 또한 그는 일본에서 첫해에 가장 많은 세이브를 기록한 한국인 투수 기록도 보유하게 되었는데, 이는 2008년 스왈로스에서 활약하며 33세이브를 기록했던 임창용의 기록을 넘어선 것이다.[9]9월 26일 37세이브를 기록하며 센트럴 리그 세이브 1위를 확정지었고, 9월 27일에 38세이브를 기록하며 선동열의 일본 프로 야구 한국인 최다 세이브 기록을 경신했고, 데뷔 첫해 센트럴 리그 구원왕에 올랐다. 그는 한국인 최초 일본 프로 야구 구원왕이 됐고, 39세이브는 외국인 투수 첫 시즌 최다 세이브 기록이었다. 오승환은 시즌 총 39세이브를 기록하며, 1997년 주니치에서 38세이브를 기록한 선동열의 기록을 깨고 NPB 단일 시즌 최다 세이브를 기록한 한국인 투수가 되었다.[10]
3월 29일에 첫 등판했다. 첫 타자인 아베 신노스케를 초구 플라이로 잡았지만 다음 타자인 호세 셀레스티노 로페스에게 안타를 허용했다. 다음 타자인 야노 켄지, 하시모토 이타루를 범타 처리했지만 1이닝동안 32구나 투구했다. 첫 세이브를 기록한 그는 4월 3일주니치와의 경기에 등판했으나 NPB 데뷔 후 첫 실점을 기록했다. 5월 28일 세이부와의 경기에 구원 등판했지만, 3실점(비자책)으로 NPB 데뷔 후 첫 블론 세이브와 첫 패전을 기록했다. 이 날 포수였던 히다카 다케시는 그와 처음으로 호흡을 맞췄는데, 일본 언론에서는 히다카 다케시가 그의 공에 익숙하지 않은 것을 패전의 이유로 꼽았다. 9월 26일 ~ 10월 1일까지 5경기 연속 등판했는데, 이 기간 동안 실점 없이 3세이브를 올렸다. 그 중 두 개가 2위 자리를 다투던 히로시마 도요 카프를 상대로 거둔 것이었다. 그가 입단해서 등번호 22번을 받았을 때 팬들은 의아해 했는데, 많은 연봉에다 후지카와 규지의 등번호까지 줄 필요가 있느냐는 이유였다. 게다가 그가 삼성 라이온즈 시절 47세이브로 한 시즌 아시아 최다 기록을 세운 것도 후지카와 규지의 46세이브 기록을 넘어선 것이기 때문에 탐탁해 하지 않았다. 그는 10월 11일히로시마 도요 카프와의 센트럴 리그 클라이맥스 시리즈 퍼스트 스테이지 1차전에 등판해 1이닝 무피안타, 무실점, 3탈삼진으로 퍼펙트 피칭을 했다. 그는 임창용 이후 3년 만에 일본 PS에서 세이브를 기록한 한국인 투수가 됐다.
오승환은 10월 일본 시리즈 진출에 큰 역할을 했다. 클라이맥스 시리즈(1차전)에서 히로시마와의 경기에서 2경기에 걸쳐 4이닝을 투구한 후, 요미우리 자이언츠와의 4경기에 모두 마운드에 올라 팀의 연승을 이끌었다. 마지막 5경기를 포함하여 11경기 연속으로 등판하여 모든 경기에서 세이브를 기록했다. 10월 18일 타이거스가 시리즈 우승을 차지했을 때, 오승환은 클라이맥스 시리즈 MVP를 수상하며 NPB 첫해에 이 상을 수상한 최초의 한국인 투수가 되었다. 그의 빠르고 무거운 공과 위기 상황에서도 침착하고 흔들림 없는 표정은 일본 야구 팬들에게 "돌부처"라는 새로운 별명을 얻게 해주었다.[11]
2015년 한신에서 오승환은 54경기에 출전하여 이닝을 소화하며 66탈삼진, 16볼넷, 2.75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다.[12] 그는 그 해 41세이브를 추가하며 한국인 투수로서 NPB 단일 시즌 최다 세이브 기록을 경신했다.[2]4월 29일 야쿠르트전에서 구원 등판해 1이닝 무실점으로 세이브를 기록하며, 팀의 외국인 개인 통산 최다 세이브 신기록을 세웠다. 일본에서 2시즌 동안 2.25의 평균자책점과 80세이브를 기록했다. 한국과 일본에서 총 11시즌 동안 357세이브, 1.81의 평균자책점, 이닝당 10.7개의 탈삼진을 기록했다.[13]
한신 타이거스 외국인 개인 통산 최다 세이브 제프 윌리엄스 (47세이브) 오승환 (49세이브)
2014년 한신 타이거스의 오승환
3. 3.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시절 (2016년 ~ 2017년)
2016년 1월 11일, 오승환은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MLB)의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와 1년 계약을 맺었고,[14] 2년차 옵션이 포함되어 있었다. 세인트루이스는 오승환이 아시아에서 활동하는 동안 7년 동안 그를 스카우트해왔다. 세인트루이스와의 계약 협상 중 오승환은 한국시리즈, 일본시리즈, 월드시리즈에 모두 출전하는 최초의 선수가 되는 것이 자신의 목표라고 밝혔다.[15] 그는 처음에 기존 마무리 투수인 트레버 로젠솔을 돕는 역할을 맡았다.[13] 오승환은 2016년개막전에서 피츠버그 파이리츠와의 경기에서 메이저 리그 데뷔전을 치렀다. 그는 1이닝을 던지며 2볼넷 2탈삼진을 기록했고, 총 27개의 공을 던졌다. 4월 10일애틀랜타 브레이브스와의 경기에서 1이닝 무실점으로 메이저 리그 첫 승을 거두었고, 경기는 12-6으로 끝났다.[16]
5월에 오승환은 내셔널리그(NL) 신인상의 최고 후보로 주목받기 시작했다.[17] 31경기 32⅔이닝 동안 46개의 탈삼진을 기록했는데, 이는 NL 구원 투수 중 1위와 동률이었고, 8개의 볼넷을 허용하며 평균자책점 1.65를 기록했다.[12]6월 25일, 카디널스는 부진한 로젠솔을 마무리 투수에서 제외했고, 대신 오승환, 좌완 케빈 지그리스트, 우완 조나단 폭스턴이 마무리 투수 역할을 공동으로 수행하기로 결정했다.[18] 오승환은 7월 2일밀워키 브루어스와의 경기에서 9회 완벽 투구와 2개의 탈삼진을 기록하며 메이저 리그 첫 세이브를 올렸다.[19]7월 20일샌디에이고 파드리스와의 더블헤더 두 경기 모두 세이브를 기록하며, 오승환은 2004년 제이슨 이싱하우젠 이후 이 기록을 달성한 최초의 카디널스 투수가 되었다.[20]9월 9일 30번째 경기를 마치면서 그는 275만 달러의 가치가 있는 2017년 옵션을 발동시켰다.[21]
2017년 그는 1승 6패, 평균자책점 4.10을 기록했고, 메이저 리그에서 9개의 고의사구로 1위를 기록했다.[22]
2018년 2월 26일, 토론토 블루제이스와 1년 200만달러 계약을 맺었으며, 여기에는 2019년 시즌에 대한 계약 조항도 포함되어 있었다.[23] 시즌 중에는 48경기에 등판하여 4승 3패, 2세이브, 13홀드를 기록했고, 평균자책점 2.68, 을 던지며 37개의 안타와 5개의 홈런을 허용했고, 10개의 볼넷과 55개의 탈삼진을 기록하며 1.00의 WHIP를 기록했다.[148]
3. 5. 콜로라도 로키스 시절 (2018년 ~ 2019년)
2018년 7월 26일, 토론토 블루제이스는 오승환을 콜로라도 로키스로 트레이드했고, 그 대가로 포레스트 월, 채드 스팬버거, 그리고 추후 지명될 선수 또는 현금을 받았다.[24] 2019년 7월 16일, 오승환이 수술을 받고 2019년 시즌 잔여 경기를 결장할 것이라고 발표되었고, 이후 7월 23일 지명 선수 지정(DFA)되었다. 그는 2019년 7월 26일에 방출되었다. 2019년 그의 커터는 평균 시속 약 132.29km로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느렸다.[25]
3. 6. 삼성 라이온즈 복귀 (2019년 ~ 현재)
2019년 8월 5일, 오승환은 삼성 라이온즈와 계약하며 한국 프로야구로 복귀했다.[26]
2020년 시즌에는 30경기 출장 정지 징계가 해제된 후 6월 중순부터 경기에 나섰다. 6월 9일 키움 히어로즈와의 경기에서 복귀전을 치렀다.[26] 그 해 45경기에 출전해 3승 2패 18세이브 2홀드, 평균자책점 2.64를 기록했다.
2021년 시즌에는 64경기에 등판하여 2패, 44세이브, 평균자책점 2.03의 성적을 거두었다.
2004년 6월, 타이완 타이난시에서 열린 2004 세계대학야구선수권대회에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소속으로 처음 출전했다. 그는 대부분의 경기에서 마무리 투수로 활약하며 대표팀의 동메달 획득에 기여했다.
2006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한국 대표팀
2006년 아시안 게임 야구 한국 대표팀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야구 한국 대표팀
2009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한국 대표팀
2013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한국 대표팀
2017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한국 대표팀
2020년 도쿄 올림픽 야구 한국 대표팀
5. 논란
2015년12월 7일 해외 원정 도박 사건에 연루되어 검찰에 소환되었고, 12월 9일 도박 혐의를 시인했다.[29] 검찰은 오승환과 임창용, 윤성환, 안지만을 700만 원의 벌금형으로 약식 기소했다. KBO는 오승환이 국내 복귀 시 해당 시즌의 50% 출장 정지 징계를 내렸다.
2016년 1월, 서울중앙지검은 오승환과 임창용에게 벌금을 부과했고,[33] KBO는 오승환에게 6개월 출전 정지 처분을 내렸다.[31]
2019년 8월 6일, 삼성 라이온즈로 복귀했지만, 앞서 언급된 마카오 불법 도박으로 인한 72경기 출장 정지 징계가 적용되어 해당 연도에는 실전 등판을 하지 못했다.[99]
6. 수상
KBO 정규리그 우승 5회 (2005년, 2006년, 2011년, 2012년, 2013년)
KBO 한국시리즈 우승 5회 (2005년, 2006년, 2011년, 2012년, 2013년)
삼성 라이온즈는 2005년 KBO 신인 드래프트 2차 1라운드(전체 5순위)에서 단국대학교를 졸업 예정이던 오승환을 지명했다. 오승환은 입단 후 2005년 시즌에 셋업맨과 마무리 투수로 활약하며 61경기에 등판해 10승 1패, 16세이브, 11홀드, 평균자책점 1.18을 기록했다. 특히, 2005 한국시리즈에서는 3경기에 등판해 7이닝 무실점, 11탈삼진을 기록하며 팀의 우승을 이끌었고, 한국시리즈 MVP를 수상했다. 시즌 후에는 KBO 리그 신인상을 수상하며 KBO 최초로 시즌 승리, 세이브, 홀드를 모두 10개 이상 기록한 선수가 되었다.[2]
2006년에는 47세이브를 기록하며 KBO 리그 한 시즌 최다 세이브 기록을 세웠고, 2011년에도 47세이브를 기록하며 자신의 기록과 타이를 이루었다.[3] 2007년에는 최소 경기(180경기) 100세이브, 2011년에는 최연소(만 29세 28일), 최소 경기(334경기) 200세이브 세계 신기록을 세웠다.[150] 2012년 7월 1일에는 김용수의 227세이브를 넘어 한국 프로야구 통산 최다 세이브(228세이브)를 달성했다.[2]
2009년부터 어깨 부상으로 어려움을 겪었지만, 2010년 포스트시즌에 복귀하여 활약했다.[3] 2011년에는 아시아 시리즈 우승을 이끌며 2011년 한국시리즈에서 두 번째 한국시리즈 MVP를 수상했다.[2]
오승환은 삼성 라이온즈에서 9시즌 동안 KBO 정규리그 우승 5회(2005년, 2006년, 2011년, 2012년, 2013년), KBO 한국시리즈 우승 5회(2005년, 2006년, 2011년, 2012년, 2013년)를 달성했다.
오승환은 2013년 11월 22일 한신 타이거스와 2년 9억 9천만 엔에 계약하며 일본 프로야구(NPB)에 진출했다.[4] 이는 일본 프로야구 역사상 한국인 선수가 받은 최고액 계약이었다.
2014년 시즌, 오승환은 한신 타이거스의 마무리 투수로 활약하며 39세이브를 기록, 선동열이 1997년 주니치에서 기록한 38세이브를 넘어 NPB 단일 시즌 최다 세이브를 기록한 한국인 투수가 되었다.[10] 또한, 클라이맥스 시리즈 MVP를 수상하며 NPB 첫해에 이 상을 수상한 최초의 한국인 투수가 되었다.[11] 일본 야구 팬들은 그의 빠르고 무거운 공과 침착한 표정에 "돌부처"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11]
2015년에는 41세이브를 기록하며 자신의 NPB 단일 시즌 최다 세이브 기록을 경신했다.[2] 2시즌 동안 2.25의 평균자책점과 80세이브를 기록했다.
한신 시절 등번호 표기는 "'''S H OH'''"였다.
; NPB
; 투수 기록
첫 등판·첫 세이브: 2014년 3월 29일, 요미우리 자이언츠 2차전 (도쿄 돔), 9회말 5번째 투수로 구원 등판, 완료, 1이닝 무실점
2016년 1월 11일, 오승환은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MLB)의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와 1년 계약을 맺었고,[14] 2년차 옵션이 포함되어 있었다. 카디널스는 그가 아시아에서 활동하는 동안 7년 동안 그를 스카우트해왔다. 세인트루이스와의 계약 협상 중 오승환은 한국시리즈, 일본시리즈, 월드시리즈에 모두 출전하는 최초의 선수가 되는 것이 자신의 목표라고 밝혔다.[15] 그는 처음에 기존 마무리 투수인 트레버 로젠솔을 돕는 역할을 맡았다.[13] 오승환은 2016년 개막전에서 피츠버그 파이어리츠와의 경기에서 메이저 리그 데뷔전을 치렀다. 그는 1이닝을 던지며 2볼넷 2탈삼진을 기록했고, 총 27개의 공을 던졌다. 그는 4월 10일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와의 경기에서 1이닝 무실점으로 메이저 리그 첫 승을 거두었고, 경기는 12-6으로 끝났다.[16]
5월에 오승환은 내셔널리그(NL) 신인상의 최고 후보로 주목받기 시작했다.[17] 31경기 이닝 동안 46개의 탈삼진을 기록했는데, 이는 NL 구원 투수 중 1위와 동률이었고, 8개의 볼넷을 허용하며 평균자책점 1.65를 기록했다.[12] 6월 25일, 카디널스는 부진한 로젠솔을 마무리 투수에서 제외했고, 대신 오승환, 좌완 케빈 지그리스트, 우완 조나단 폭스턴이 마무리 투수 역할을 공동으로 수행하기로 결정했다.[18] 오승환은 7월 2일 밀워키 브루어스와의 경기에서 9회 완벽 투구와 2개의 탈삼진을 기록하며 메이저 리그 첫 세이브를 올렸다.[19] 7월 20일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와의 더블헤더 두 경기 모두 세이브를 기록하며, 오승환은 2004년 제이슨 이싱하우젠 이후 이 기록을 달성한 최초의 카디널스 투수가 되었다.[20] 9월 9일 30번째 경기를 마치면서 그는 275만 달러의 가치가 있는 2017년 옵션을 발동시켰다.[21]
2017년 그는 1승 6패, 평균자책점 4.10을 기록했고, 메이저 리그에서 9개의 고의사구로 1위를 기록했다.[22]
한신 시절 등번호 표기는 "'''S H OH'''"이었지만, MLB에서는 성만 표기한 "'''OH'''"으로 하였다.
한신 시절 등번호는 "'''S H OH'''"였지만, MLB에서는 "'''OH'''"로 표기했다.
삼성에서 투수 코치를 맡았던 낙합 에이지로부터 조언을 받아 약점을 개선했다.[134]
지일파이며, 좋아하는 음식은 스시와 야키니쿠이다. 나고야 원정 경기 때는 히츠마부시를 즐겨 먹는다.[137]
2015년 4월, 소녀시대의 유리와 교제 사실이 알려졌으나,[138] 같은 해 10월 결별했다.[139]
일본 시절 일본어 습득에 힘썼으며,[140] 일본어로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141]
동료 선수들에게 "정말 좋은 사람"이라고 평가받으며, 특히 한신 시절에는 어린 선수들에게도 존경받았다.[135] 후쿠하라 시노부는 오승환이 야구에 대해 매우 진지하고 향상심이 강하며, 상대 타자의 특징이나 공의 그립 등에 대해 자주 질문했다고 회상했다.[136] 안도 유야는 오승환이 매우 열정적이고 강인한 정신력을 가진 선수이며, 클로저로서 뛰어난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평가했다.[136]
; KBO
최다 세이브 투수: 6회 (2006년 ~ 2008년, 2011년, 2012년, 2021년)
; NPB
최다 세이브 투수: 2회 (2014년, 2015년)
; NPB
; 투수 기록
첫 등판·첫 세이브: 2014년 3월 29일, 요미우리 자이언츠 2차전 (도쿄 돔), 9회말 5번째 투수로 구원 등판, 완료, 1이닝 무실점
오승환은 2005년 KBO 신인 드래프트 2차 1라운드(전체 5순위)에서 삼성 라이온즈에 지명되었다. 단국대학교 졸업 예정이었던 그는 경기고등학교 시절부터 잘 알려진 선수는 아니었고, 대학 시절 팔꿈치 수술을 두 번이나 받은 경력이 있어 지명은 다소 모험이었다.[145]
입단 후 첫 시즌에는 중간 계투를 맡았다. 그해 7월, 마무리 투수였던 권오준이 부진에 빠지자 오승환이 마무리를 맡게 되었고, 권오준은 셋업맨으로 보직을 변경했다. 해크먼이 마무리로 기용될 예정이었지만 제구력 불안으로 선발로 변경되었고, 결국 중도 퇴출되었다.[145]7월 5일[146]부터 오승환과 권오준은 'K-O 펀치'라고 불렸다. 오승환은 신인답지 않은 독보적인 마무리 투수 능력을 보여주었다. 한국시리즈 3경기에 등판해 7이닝 무실점, 11탈삼진, 평균자책점 0을 기록하며 한국시리즈 MVP로 선정되었다. 시즌 후에는 신인왕과 한국시리즈 MVP를 동시에 차지했는데, 이는 KBO 리그 역사상 유일한 기록이었다. 또한 팀 내 역대 3번째 신인왕을 수상했고, KBO 최초로 시즌 승리, 세이브, 홀드를 모두 10개 이상 기록했다.
2006년 스프링캠프에서 147km/h의 공을 던지며 좋은 컨디션을 보였다. 시범 경기에서 5경기 5이닝 무실점, 2세이브, 6탈삼진, 평균자책점 0, 최고 구속 148km/h를 기록했다. 시즌 첫 등판에서 1.1이닝 무실점, 2볼넷, 2탈삼진으로 첫 세이브를 올렸다. 5월 7일에는 최소 경기(12경기) 두 자릿수 세이브 타이 기록을 세웠다. 5월 20일두산 베어스전에서 블론 세이브를 기록했지만, 신명철의 끝내기 안타로 승리 투수가 되었다. 8월 2일넥센 히어로즈전에서 역대 최소 경기(37경기) 30세이브 타이 기록을 세웠다. 8월 12일KIA 타이거즈전에서는 최연소(만 29세 28일), 최소 경기(334경기) 통산 200세이브 세계 신기록을 세웠다.[150]8월 27일두산 베어스전에서는 16경기 연속 세이브를 기록하며, 2006년정재훈의 15경기 연속 세이브 기록을 경신했다. 9월 10일LG 트윈스전에서 1이닝 1실점으로 역대 최소 경기(47경기) 40세이브를 기록했다. 10월 1일SK 와이번스전에서는 자신의 아시아 세이브 타이 기록(47세이브)을 세웠다. 두산 베어스, LG 트윈스를 제외한 5개 구단을 상대로 점수를 허용하지 않았다. 한국시리즈 2차전에서 구원 등판해 2이닝 3탈삼진을 기록했고, 5차전에서 구원 등판해 1.1이닝을 막으며 한국시리즈 통산 최다 세이브인 6세이브를 기록했다. 3세이브를 기록하며 한국시리즈 MVP에 올랐다. 또한 KBO 최초 무패 구원왕 기록을 세웠고, 역대 세이브 1·2위간의 최대 격차 기록을 경신했다.
2020년 8월 13일, 두산 베어스와의 경기에서 8회말 2사부터 등판하여 1⅓이닝 무실점으로 일본, 미국, 한국 통산 아시아인 최다 세이브(408세이브) 기록을 경신했다.[142]
2013년 11월 22일, 오승환은 한신 타이거스와 2년 9.9억엔의 계약을 맺었는데, 이는 일본 프로야구 역사상 한국인 선수가 받은 최고액 계약이었다.[4]와다 유타카 한신 타이거스 감독은 새로운 동료, 특히 포수와 투수 코치들과의 원활한 소통을 위해 선수들에게 한국어 수업을 제공하는 것을 제안했다.[5]
2014년 시즌 내내 그는 한신 타이거스의 마무리 투수 역할을 맡았다. 2014년 7월 22일 요미우리 자이언츠와의 경기에서 3-0 승리를 거두며 임창용에 이어 두 번째로 300세이브를 달성한 한국인 선수가 되었다.[6] 9월 24일 베이스타스와의 경기에서 시즌 36세이브를 기록하며 NPB 역사상 첫 해에 가장 많은 세이브를 기록한 외국인 투수가 되었다.[7] 이전까지 에디 게일러드(2000년)와 데니스 사파테(2011년)가 각각 한 시즌에 35세이브를 기록했다.[8] 또한 그는 일본에서 첫 해에 가장 많은 세이브를 기록한 한국인 투수 기록도 보유하게 되었는데, 이는 2008년 스왈로스에서 활약하며 33세이브를 기록했던 임창용의 기록을 넘어선 것이다.[9] 오승환은 시즌 총 39세이브를 기록하며, 1997년 주니치에서 38세이브를 기록한 선동열의 기록을 깨고 NPB 단일 시즌 최다 세이브를 기록한 한국인 투수가 되었다.[10]
오승환은 10월 일본 시리즈 진출에 큰 역할을 했다. 클라이맥스 시리즈(1차전)에서 히로시마와의 경기에서 2경기에 걸쳐 4이닝을 투구한 후, 요미우리 자이언츠와의 4경기에 모두 등판하여 팀의 연승을 이끌었다. 마지막 5경기를 포함하여 11경기 연속으로 등판하여 모든 경기에서 세이브를 기록했다. 10월 18일 타이거스가 시리즈 우승을 차지했을 때, 오승환은 클라이맥스 시리즈 MVP를 수상하며 NPB 첫 해에 이 상을 수상한 최초의 한국인 투수가 되었다. 그의 빠르고 무거운 공과 위기 상황에서도 침착하고 흔들림 없는 표정은 일본 야구 팬들에게 "돌부처"라는 새로운 별명을 얻게 해주었다.[11]
2015년 한신에서 오승환은 54경기에 출전하여 이닝을 소화하며 66탈삼진, 16볼넷, 2.75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다.[12] 그는 그 해 41세이브를 추가하며 한국인 투수로서 NPB 단일 시즌 최다 세이브 기록을 경신했다.[2] 일본에서 2시즌 동안 2.25의 평균자책점과 80세이브를 기록했다. 한국과 일본에서 총 11시즌 동안 357세이브, 1.81의 평균자책점, 이닝당 10.7개의 탈삼진을 기록했다.[13]
2016년 1월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의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로 이적했다.[153]4월 11일애틀랜타 브레이브스와의 경기에서 구원 등판해 1이닝 무피안타, 2탈삼진, 무실점으로 MLB 첫 승을 기록했다.[153] 시즌 초에는 셋업맨으로 나섰지만, 전반기 종료 전 트레버 로젠탈의 부진으로 마무리 투수로 보직이 변경되었다. 7월 21일 샌디에고 파드리스를 상대로 더블 헤더 1차전과 2차전에서 모두 세이브를 기록하며 한국인 투수 최초로 더블 헤더 경기에서 모두 세이브를 기록한 선수가 되었다. 시즌 76경기에 등판해 79.2이닝 6승 3패, 103탈삼진, 19세이브를 기록했다.
메이저 리그 첫 시즌을 마치고 귀국 인터뷰
2017 WBC 국가대표팀에 선발되어 좋은 투구를 보여주었다. 시즌에서는 트레버 로젠탈이 지난 시즌 부상과 부진으로 인해 마무리 투수로 시즌을 시작했다. 전반기에는 좋은 활약을 펼쳤으나 후반기에는 슬라이더 구종의 난조로 인해 부진했다. 시즌 1승 6패, 20세이브, 4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다.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와의 계약 종료 후, 추신수가 있는 텍사스 레인저스가 좋은 계약 조건과 마무리 투수 보장을 제시하며 계약에 임박했으나 메디컬 테스트에서 탈락해 계약이 무산되었다. 2018년 2월 27일 토론토 블루제이스와 1+1년 최대 750만달러의 계약을 맺었다.[154]
오승환의 주 구종은 패스트볼이며, 강한 상승 움직임 때문에 한국에서 '돌직구'라는 별명을 얻었다. 최고 구속은 시속 159km/h[159], 평균 구속은 시속 148~150km/h(92~93마일)이다.[160] 직구는 볼 끝이 좋아서 약간 떠오르는 듯한 라이징 패스트볼 형태를 보인다. 변화구는 슬라이더, 커브, 컷 패스트볼, 체인지업을 구사한다. 슬라이더는 커터와 비슷하게 휘어지는 움직임을 보인다.[27]
2008년 전지 훈련 때는 체인지업을, 2008년 시즌 초반에는 컷 패스트볼을 익혔다. 2009년 전지 훈련 때는 구속 증가를 위해 웨이트 트레이닝에 집중했다.[159]2011년에는 150km/h가 넘는 직구를 다시 던지며 '돌직구'와 '돌부처'라는 별명을 되찾았다.[159]
2012년 조사에 따르면 오승환의 직구 회전 속도는 1초에 약 47회전으로 한국 리그 평균(약 41회전)보다 훨씬 높다.[119] 일본에서도 헛스윙 유도율이 높았으며, 2015년에는 리그 최고의 직구 헛스윙 유도율을 기록했다.[120]
9. 별명
돌부처: 투구할 때 표정 변화가 거의 없어 붙여진 별명이다.[162]
끝판대장: 세이브를 많이 기록하여 붙여진 별명이다.
칩승환: 도박 사건에 연루되어 붙여진 별명이다.
돌직구: 삼성 라이온즈 시절 그의 빠르고 묵직한 직구를 빗대어 표현한 말이다. '돌처럼 무거운 직구'라는 뜻으로, 방망이에 맞히기 어렵고 맞아도 멀리 나아가지 않는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정식 야구 용어는 아니다.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