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라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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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가라쿠리는 '실을 잡아당겨 움직인다'는 의미의 일본어에서 유래한 자동 인형 장치를 의미한다. 일본서기에 기록된 남침차(指南車)와 같이 고대부터 존재했으며, 17세기 초 유럽 시계 기술 도입 이후 발전하여 에도 시대에 대중적인 인기를 얻었다. 가라쿠리는 무대 공연, 가정용, 축제용 등 다양한 형태로 제작되었으며, 도시바의 창업자 다나카 히사시게와 같은 장인들에 의해 기술적으로 정교하게 발전했다. 현재는 전통 기술을 보존하고 복원하는 노력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세 종류로 분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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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라쿠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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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라쿠리 인형 | |
![]() | |
개요 | |
종류 | 전통적인 일본 인형 |
로마자 표기 | karakuri ningyō |
특징 | 섬세한 속임수 장치와 로봇 데모에 사용 |
어원 | |
유래 | '기계', '장치', '비밀', '트릭'을 의미하는 일본어 'からくり'에서 유래 |
역사 | |
제작 시기 | 대략 1800년경 |
용도 | 엔터테인먼트 종교적 의식 |
관련 단어 | (가라쿠리) (가라쿠리) (기코) (기칸) (가라쿠리) |
주요 제작자 | 다케다 오미 |
기술 | |
작동 방식 | 복잡한 톱니바퀴, 캠, 레버 등의 기계 장치 사용 |
추가 정보 | |
관련 항목 | 자동인형 에도 시대 |
참고 서적 | Puppets of Nostalgia – The Life, Death and Rebirth of the Japanese Awaji Ningyo Tradition (Jane Marie Law 저) Nihon kokugo daijiten (Nihon-Daijiten-Kankōkai Tōkyō 저) |
관련 연구 | Karakuri: Subtle Trickery in Device Art and Robotics Demonstrations at Miraikan (Michael Shea 저) |
2. 어원
어원에 대해서는, "실을 잡아당겨 움직인다"라는 의미의 동사 'からくる(카라쿠루)'의 연용형 명사화라고 여겨지며, 16세기 후반부터 용례가 확인되고 있다.[14]
가라쿠리의 초기 기록은 일본서기에서 찾을 수 있으며, 658년 고교쿠 천황 재위 기간 남침차[4]에 대한 언급이 있다.
3. 역사
평안 시대 후기 『곤쟈쿠 이야기집』 제24권에는 간무 천황의 황자 가양친왕이 자동인형을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다. 같은 책 제24권 제5편에는 "비다노타쿠미"[16]가 백제하성을 놀라게 하기 위해 자동문 장치를 만들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센고쿠 시대인 17세기 초, 유럽의 시계 제작 기술이 도입되면서 가라쿠리는 더욱 발전했다.[5] 시계 제작에 사용되는 기어와 캠을 이용해 움직이는 인형을 만들었다. 에도 시대에 가라쿠리는 오락의 한 형태로 인기를 얻으며 황금기를 맞이했다.[5]
가라쿠리는 처음에는 귀족이나 다이묘 등 상류층에게만 알려졌으나, 나고야의 도쇼구 축제와 같은 거리 축제에서 사용되면서 널리 퍼졌다.[6] 1620년 (겐나 6년) 나고야 도쇼궁제에서 우시와카와 벤케이의 "카라쿠리 인형을 실은 축제의 야마"가[17] 주쿄권을 중심으로 퍼졌다.
1662년 (관문 2년) 오사카 도톤보리에서 초대 다케다 오미가 카라쿠리 시바이를 공연하여 약 100년간 대대로 이어지는 브랜드가 되었다.
18세기 초 교호(享保) 연간에는 히코네번 봉사 히라이시 큐헤이지 토키미츠가 삼륜차에 해당하는 신제육주차를 발명하였다. 1796년 (관정 9년)에는 호소카와 반자쿠의 저서 『기교도휘』가 출판되었다.[18]
19세기에는 도시바의 창업자 다나카 히사시게가 정교한 가라쿠리 인형을 제작하여 명성을 얻었다. 그의 걸작으로는 유미히키도지(화살 쏘는 아이)와 모지카키 인형(글씨 쓰는 인형)이 있다.[8] 같은 시기 "쓰쿠바의 카라쿠리 이가"라 불리는 이이즈카 이가시치가 인력 비행기와 길을 걸어가 술을 사오는 가라쿠리 인형을 만들었다고 한다.
막말 이시카와현에는 차 운반 인형을 응용한 것으로 보이는 벤키치작 삼번소가 확인되고 있다.[19] "가가의 히라가 겐나이"라 불리는 오오노 벤키치는 공기총과 증기선 모형, 사진기를 제작하였다.
3. 1. 고대
일본에서 자동인형 장치에 대한 가장 초기의 기록 중 하나는 『일본서기』에서 찾을 수 있는데, 658년 고교쿠 천황 재위 기간에 나타난 남침차에 대한 언급이 있다.[4]
가라쿠리는 센고쿠 시대인 17세기 초 유럽의 시계 제작 기술이 도입된 후 일본에서 더욱 발전했다.[5] 시계 제작에 사용되는 기어와 캠을 이용하여 움직이는 인형을 만들었다. 일본은 기계식 인형극을 오락의 한 형태로 받아들였고, 에도 시대에 가라쿠리 제작과 사용의 황금기로 여겨진다.[5]
가라쿠리는 처음에는 귀족이나 다이묘와 같이 가라쿠리를 살 여유가 있는 사회 상류층 일본인들에게만 알려졌다. 그러나 나고야의 도쇼구 축제와 같은 거리 축제에서 사용되면서 널리 인기를 얻었다.[6]
1662년 시계 제작자 다케다 오미는 오사카 도톤보리 지역에서 최초의 무대 가라쿠리, 즉 무대 공연용 가라쿠리를 완성했다.[5] 그는 이후 몇 개의 대형 인형을 극장 공연용으로 제작했고, 극장은 그의 가족 대대로 전해졌다.[5][7]
19세기에는 도시바의 창업자 다나카 히사시게가 기술적으로 정교한 가라쿠리 인형을 제작하여 명성을 얻었다. 그의 걸작으로는 유미히키도지(화살 쏘는 아이)와 모지카키 인형(글씨 쓰는 인형)이 있다. 유미히키의 경우 기계적인 힘을 이용해 인형이 활과 화살로 표적을 쏘고, 모지카키의 경우 인형이 붓에 먹을 찍어 종이에 글자를 쓴다.[8]
일본의 마지막 가라쿠리 인형극 대가 중 한 명의 제자였던 커스티 보일에 따르면, 가라쿠리 전통은 기술을 감추는 예술에 중점을 두고 있으며, 이는 감정을 더 효과적으로 불러일으킨다고 믿었기 때문이다.[9] 또한 가라쿠리 인형은 사람의 모습과 비슷하지만, 육안으로는 포착할 수 없는 빠른 변화를 특징으로 하는 결정적인 움직임의 형태를 가지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10]
가장 오래된 기록은 『일본서기』로, 재명천황 4년(658년)의 남침차[15]이다.
평안 시대 후기의 『곤쟈쿠 이야기집』 제24권에는 간무 천황의 황자 가양친왕이 자동인형을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으며, 제24권 제5편에는 "비다노타쿠미"[16]가 백제하성을 놀라게 하기 위해 사방에 문이 있는 당을 만들고, 어느 문 앞에 서더라도 눈앞의 문은 닫히고 다른 곳의 문이 열리는 장치를 만들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당나라 시대 중국에 있었던 한지화라는 일본인도 "비다노타쿠미" 중 한 명으로 여겨진다.
3. 2. 중세 (센고쿠 시대)
일본에서 자동인형 장치에 대한 초기 기록은 일본서기에서 찾을 수 있는데, 658년 고구여황 재위 기간에 나타난 남쪽을 가리키는 수레(지남차)에 대한 언급이 있다.[4]
가라쿠리는 17세기 초 센고쿠 시대에 유럽의 시계 제작 기술이 도입된 후 일본에서 더욱 발전했다.[5] 시계 제작에 사용되는 기어와 캠을 이용하여 움직이는 인형을 만들었다. 일본은 기계식 인형극을 오락의 한 형태로 받아들였고, 에도 시대에 가라쿠리는 인기를 얻었다.[5]
가라쿠리는 처음에는 귀족이나 다이묘와 같이 가라쿠리를 살 여유가 있는 사회 상류층 일본인들에게만 알려졌다. 그러나 나고야의 도쇼구 축제와 같은 거리 축제에서 사용되면서 널리 인기를 얻었다.[6]
1662년 시계 제작자 다케다 오미는 오사카 도톤보리 지역에서 최초의 무대 가라쿠리, 즉 무대 공연용 가라쿠리를 완성했다.[5] 그는 이후 몇 개의 대형 인형을 극장 공연용으로 제작했고, 극장은 그의 가족 대대로 전해졌다.[5][7]
19세기에는 도시바의 창업자 다나카 히사시게가 기술적으로 정교한 가라쿠리 인형을 제작하여 명성을 얻었다. 그의 걸작으로는 유미히키도지(弓曳童子, 화살 쏘는 아이)와 모지카키(文字書き) 인형(글씨 쓰는 인형)이 있다. 유미히키는 기계적인 힘을 이용해 인형이 활과 화살로 표적을 쏘고, 모지카키는 인형이 붓에 먹을 찍어 종이에 글자를 쓴다.[8]
17세기 무렵 전국 시대에는 서양 기술(특히 기계식 시계에 사용되는 톱니바퀴와 캠 등)을 응용한 자동인형이 만들어지기 시작하여, 축제나 엔니치(일본의 재래시장) 등에서 구경거리로서 대중의 인기를 얻게 되었다. 전문 장인에 의해 매우 정교한 것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겐나 6년(1620년)에 오와리국나고야의 도쇼궁제에서 우시와카 벤케이의 "카라쿠리 인형을 실은 축제의 야마" [17]가 주쿄권을 중심으로 퍼진다.
3. 3. 근세 (에도 시대)
일본에서 자동인형 장치에 대한 초기 기록은 일본서기에서 찾을 수 있는데, 658년 고구여황 재위 기간에 남쪽을 가리키는 수레(지남차)가 언급된다.[4]
센고쿠 시대인 17세기 초 유럽의 시계 제작 기술이 도입된 후 일본에서 가라쿠리가 더욱 발전했다.[5] 시계 제작에 사용되는 기어와 캠을 이용하여 움직이는 인형을 만들었다. 일본은 기계식 인형극을 오락의 한 형태로 받아들였고, 에도 시대에 가라쿠리는 황금기를 맞이했다.[5]
가라쿠리는 처음에는 귀족이나 다이묘와 같이 가라쿠리를 살 여유가 있는 상류층에게만 알려졌다. 그러나 나고야의 도쇼구 축제와 같은 거리 축제에서 사용되면서 널리 인기를 얻었다.[6]
1662년 시계 제작자 다케다 오미는 오사카 도톤보리 지역에서 최초의 무대 가라쿠리, 즉 무대 공연용 가라쿠리를 완성했다.[5] 그는 이후 몇 개의 대형 인형을 극장 공연용으로 제작했고, 극장은 그의 가족 대대로 전해졌다.[5][7]
19세기에는 도시바의 창업자 다나카 히사시게가 기술적으로 정교한 가라쿠리 인형을 제작하여 명성을 얻었다. 그의 걸작으로는 유미히키도지(화살 쏘는 아이)와 모지카키 인형(글씨 쓰는 인형)이 있다. 유미히키의 경우 기계적인 힘을 이용해 인형이 활과 화살로 표적을 쏘고, 모지카키의 경우 인형이 붓에 먹을 찍어 종이에 글자를 쓴다.[8]
일본의 마지막 가라쿠리 인형극 대가 중 한 명의 제자였던 커스티 보일(Kirsty Boyle)에 따르면, 가라쿠리 전통은 기술을 감추는 예술에 중점을 두고 있으며, 이는 감정을 더 효과적으로 불러일으킨다고 믿었기 때문이다.[9] 또한 가라쿠리 인형은 사람의 모습과 비슷하지만, 육안으로는 포착할 수 없는 빠른 변화를 특징으로 하는 결정적인 움직임의 형태를 가지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10]
17세기 무렵 전국 시대에는 서양 기술(특히 기계식 시계에 사용되는 톱니바퀴와 캠)을 응용한 자동인형이 만들어지기 시작하여, 축제나 (엔니치, 일본의 재래시장) 등에서 구경거리로서 대중의 인기를 얻게 된다. 전문 장인에 의해 매우 정교한 것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겐나 6년(1620년)에 오와리국나고야의 도쇼궁제에서 우시와카 벤케이의 "카라쿠리 인형을 실은 축제의 야마" [17]가 주쿄권을 중심으로 퍼진다.
3. 4. 근대 이후
일본에서 자동인형 장치에 대한 초기 기록은 일본서기에서 찾을 수 있는데, 658년 고구여황(孝德天皇) 재위 기간에 나타난 남쪽을 가리키는 수레(指南車)에 대한 언급이 있다.[4]
가라쿠리는 센고쿠 시대인 17세기 초 유럽의 시계 제작 기술이 도입된 후 일본에서 더욱 발전했다.[5] 시계 제작에 사용되는 기어와 캠을 이용하여 움직이는 인형을 만들었다. 일본은 기계식 인형극을 오락의 한 형태로 받아들였고, 에도 시대에 인기를 얻었다.[5]
가라쿠리는 처음에는 귀족이나 다이묘와 같이 가라쿠리를 살 여유가 있는 사회 상류층 일본인들에게만 알려졌다. 그러나 나고야의 도쇼구 축제와 같은 거리 축제에서 사용되면서 널리 인기를 얻었다.[6]
1662년 시계 제작자 다케다 오미는 오사카 도톤보리 지역에서 최초의 무대 가라쿠리인 무대 공연용 가라쿠리를 완성했다.[5] 그는 이후 몇 개의 대형 인형을 극장 공연용으로 제작했고, 극장은 그의 가족 대대로 전해졌다.[5][7]
19세기에는 도시바의 창업자 다나카 히사시게가 기술적으로 정교한 가라쿠리 인형을 제작하여 명성을 얻었다. 그의 걸작으로는 유미히키도지(弓曳童子)(화살 쏘는 아이)와 모지카키(文字書き) 인형(글씨 쓰는 인형)이 있다. 유미히키는 기계적인 힘을 이용해 인형이 활과 화살로 표적을 쏘고, 모지카키는 인형이 붓에 먹을 찍어 종이에 글자를 쓴다.[8]
17세기 무렵 전국 시대에는 서양 기술(특히 기계식 시계에 사용되는 톱니바퀴와 캠 등)을 응용한 자동인형이 만들어지기 시작하여, 축제나 엥니치(縁日, 일본의 재래시장) 등에서 구경거리로서 대중의 인기를 얻게 된다. 전문 장인에 의해 매우 정교한 것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1620년 (겐나 6년) 오와리국나고야의 도쇼궁제에서 우시와카 벤케이의 "카라쿠리 인형을 실은 축제의 야마"가[17] 주쿄권을 중심으로 퍼진다.
1662년 (관문 2년) 오사카의 도톤보리에서 초대 다케다 오미가 카라쿠리 시바이(からくり芝居)를 공연하였다. 이 공연은 "다케다 카라쿠리"라고 불리며, 이후 약 100년에 걸쳐 대대로 이어지는 대표적인 브랜드가 되었다.
18세기 초 교호(享保) 연간에는 히코네번 봉사인 히라이시 큐헤이지 토키미츠가 후대의 삼륜차에 해당하는 신제육주차를 발명하였다.
1796년 (관정 9년)에는 호소카와 반자쿠의 저서 『기교도휘』가 출판되었다.[18]
19세기에는 "쓰쿠바의 카라쿠리 이가"라 불리는 이이즈카 이가시치가 인력 비행기와 길을 걸어가 술을 사오는 카라쿠리 인형을 만들었다고 한다.
막말의 이시카와현에는 차 운반 인형을 응용한 것으로 보이는 벤키치작이라는 삼번소가 확인되고 있다.[19] 또한 "가가의 히라가 겐나이"라 불리는 오오노 벤키치가 공기총과 증기선 모형, 사진기를 제작하였다.
4. 종류
- 부타이 가라쿠리(舞台からくり): 연극 등 공개적인 공연을 위해 제작된 실물 크기의 인형이다.[12]
- 다시 가라쿠리(山車からくり): 종교 축제에서 사용된 대형 기계식 인형이다.[11] 이 인형들은 전통적인 신화와 전설을 재현하는 데 사용되었다.
- 자시키 가라쿠리(座敷からくり): 크기가 작아 가정에서 사용되었다.
다나카 히사시게가 제작한 만년자명종은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으며,[24] 한 번 태엽을 감으면 1년 동안 작동한다.
가라쿠리의 움직임은 노, 가부키[5], 분라쿠 등 극장 예술에 영향을 주었다는 학설도 있다.
그 외에도 다음과 같은 종류의 가라쿠리가 있다.
- 가라쿠리 장난감(からくり玩具): 민예품이나 지방 장난감으로, 주석 장난감의 기원이 되기도 했다.
- 가라쿠리 우산(からくり傘): 개폐 장치가 있는 일본 우산(和傘)이다.
- 가라쿠리 가구(からくり家具): 가라쿠리 장롱(箪笥) 등이 있다.
- 가라쿠리 과녁(からくり的): 활쏘기(弓矢)나 불화살쏘기(吹き矢) 과녁(的)으로, 맞힌 위치에 따라 장식이 움직인다.
- 가라쿠리 저택(からくり屋敷): 닌자 저택 등에서 볼 수 있다.
4. 1. 자시키 가라쿠리(座敷からくり)
다이묘(大名)나 부유한 상인(豪商) 등이 소유한 정자(座敷, 실내)에서 감상하는 가라쿠리이다.[11] 대부분 고가(高価)이며, 받침대 위에 설치된 인형 등이 북을 치거나 춤을 추는 등의 연출을 한다.[11] 차나 술을 따른 잔을 운반하는 다다시(茶運び人形)처럼 이동하는 것도 있다.[11]오늘날 가장 흔한 자시키 가라쿠리(座敷からくり) 메커니즘의 예는 차를 따르는 로봇이다. 이 로봇은 손에 든 접시에 찻잔을 올려놓으면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한다. 차하코비(茶運び)라고도 알려진[13] 이 가라쿠리(からくり)는 주인이 손님을 재미있게 대접하고자 할 때 사용되었다. 로봇은 정해진 거리만큼 직선으로 움직이며, 마치 걷는 것처럼 발을 움직인 후 고개를 숙인다. 찻잔을 치우면 인형은 멈춘다. 찻잔을 다시 올려놓으면 로봇은 고개를 들고 돌아서서 제자리로 돌아온다. 일반적으로 고래뼈로 만든 감긴 용수철로 작동하며, 캠과 레버 세트로 동작을 제어한다.[11]

좌식 가라쿠리(座敷からくり)의 대표적인 작품이다. 차를 담은 찻잔을 인형이 찻잔 받침에 올려놓으면 손님이 있는 곳까지 차를 운반하고, 손님이 찻잔을 가져가면 멈춘다. 차를 운반하는 거리는 미리 설정한다. 손님이 차를 마시고 빈 찻잔을 찻잔 받침에 돌려놓으면, 발걸음을 돌려 찻잔을 원래 자리로 운반한다. 태엽과 기어, 캠, 막대기 등으로 그 움직임을 제어한다. 현재 잘 알려진 차 운반 인형은 호소카와 반조(細川半蔵) 저의 『기교도휘』(機巧図彙)를 바탕으로 복원된 것이다. 하지만 현재 각지에 남아 있는 차 운반 인형은 기구적으로 『기교도휘』에서 설명하는 것과 다른 점이 있으며, 『기교도휘』에 따라 제작된 에도 시대의 것은 확인되지 않았다.
쇼와 57년(1982년)에는 일본 모형에서 플라스틱제 차 운반 인형이 발매되었다. 헤이세이 14년(2002년) 11월에는 「학연의 어른의 과학 시리즈 Vol.8」로 발매되었고, 헤이세이 19년(2007년) 6월 29일 발매된 어른의 과학 Vol.16에는 미니 차 운반 인형이 부록으로 들어 있었다.


현존하는 원본은 두 개이며, 모두 田中久重의 제작이다. 인형이 화살꽂이에서 화살을 꺼내 활에 장착하여 과녁에 명중시키는 실내 장식용 가라쿠리이다.
인형의 동작은 태엽과 캠, 레버, 실에 의해 제어되며, 자동으로 네 개의 화살을 발사할 수 있다. "다나카 큐쥬가 그중 하나는 과녁을 빗나가도록 장치했다"는 설명이 일반적으로 퍼져 있지만, 이것은 잘못된 것이다.[25] 실제로는 인형을 수리할 때 부속된 화살을 모두 새로 만들었고,[25] "새로 만든 화살 중 하나가 우연히 잘 날아가지 않았다"는 것이 사실이다. 참고로, 인형이 앉아 있는 받침대에 부착된 작은 당자(중국풍 의상을 입은 인형)와 당자가 돌리는 손잡이의 기구도 수리 전 원본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이 부분은 수리 의뢰자의 의향에 따라 새로 부착된 것이다.[26] 弓曳童子는 글씨 쓰는 인형과 함께 에도 가라쿠리의 최고 걸작 중 하나로 여겨진다.
東野進이 헤이세이 2년(1990년)에 도쿠가와가로부터 하나를 발견하고, 헤이세이 3년(1991년)에 후시미의 마에카와가로부터 또 하나를 발견하여 미네자키 주고에 의해 수리 및 복원되었다.[27] 현재, 도쿠가와가 구장의 弓曳童子は 도요타산업기술기념관에, 마에카와가 구장의 弓曳童子は 다나카 큐쥬의 고향 구루메시의 교육위원회에 소장되어 있다. 같은 움직임을 하는 조립 모형 키트가 학켄에서 발매되고 있다. 헤이세이 25년(2013년) 기계유산 61호로 인정받았다.
현재까지 발견된 원본은 두 개이다.
하나는 미국에서 발견되었다. 1991년(헤이세이 3년), 미국의 연구가로부터 일본의 연구가에게 미국의 수집가가 소유하고 있다는 정보가 제공되었지만, 그 수집가는 에도 시대 문자쓰기 인형에 대한 지식이 없었다.[28] 일본의 연구가는 미국의 연구가에게 에도 시대의 가라쿠리 인형에 관한 자료를 지속적으로 제공하여 수집가의 이해와 신뢰를 오랜 시간에 걸쳐 얻었다. 2002년(헤이세이 14년), 인형 매각에 대한 동의를 얻어냈다. 폭넓게 구매자가 모집된 결과, 2004년(헤이세이 16년)에 오사카부 네야가와시의 히가시노 스스무가 구입하였다. 이 인형의 제작에 관한 구체적인 자료는 발견되지 않았지만, 받침대를 덮는 병풍의 무늬가 다나카 큐쥬 작품인 활쏘는 아이(弓曳童子)의 받침대 병풍과 일치하여, 큐쥬 작품으로 추정되고 있다. 일본으로 가져온 인형은 새로운 소유자에 의해 움직이지 않던 기구가 수리되는 동시에, 인형의 얼굴과 손이 완전히 다시 칠해지고, 의상이 새로 제작되었으며, 또한 받침대의 기구에는 이전에는 없던 장치가 내장되었다.[29] 그리고 이듬해인 2005년 일본 국제 박람회(애・지구 박람회)에서 전시되었다.[30] 현재 소유자는 구루메시 교육위원회이다.
다른 하나는 오른손과 입에 문 붓으로 "松"과 "竹" 두 글자를 동시에 쓸 수 있는 문자쓰기 인형으로, 2009년(헤이세이 21년)에 안조시 내의 고민가에서 발견되었다. 현재 안조시 지정 유형 민속 문화재로 지정되어 안조시 역사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또한 9대째 타마야 쇼베에에 의해 복제품이 제작되어 동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32][33]
4. 2. 다시 가라쿠리(山車からくり)
다시 가라쿠리는 종교 축제에서 사용된 대형 기계식 인형이었다.[11] 이 인형들은 전통적인 신화와 전설을 재현하는 데 사용되었다.일부 학자들은 가라쿠리의 몸짓과 움직임이 노, 가부키[5] 및 분라쿠 극장에 영향을 미쳤다고 지적한다.
4. 3. 부타이 가라쿠리(舞台からくり)
부타이 가라쿠리(舞台からくり)는 연극 등 공개적인 공연을 위해 제작된 실물 크기의 인형이었다.[12] 일부 학자들은 가라쿠리의 제스처와 움직임이 노, 가부키[5] 및 분라쿠 극장에 영향을 미쳤다고 지적한다.4. 4. 기타
가라쿠리에는 크게 세 가지 유형이 있다.[11] 무대 가라쿠리(Butai karakuri)는 연극 등 공개적인 공연을 위해 제작된 실물 크기의 인형이었다.[12] 자시키 가라쿠리(Zashiki karakuri)는 크기가 작아 가정에서 사용되었다. 대부분 탁자 위에 놓여 춤을 추거나 북을 치는 역할을 했지만, 차나 술(사케)을 따르는 용도로 제작된 것도 있었다. 이러한 가라쿠리는 매우 비쌌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다이묘(daimyo) 또는 다른 고위층 인물이 소유했다. 다시 가라쿠리(Dashi karakuri)는 종교 축제에서 사용된 대형 기계식 인형이었다.[11] 이 인형들은 전통적인 신화와 전설을 재현하는 데 사용되었다.전통 가라쿠리를 기반으로 한 저렴한 장난감도 있었다. 한때 일본에서 자주 만들어져 수출되었던 깡통 장난감은 가끔 가라쿠리를 본떠 만들어졌다.
일부 학자들은 가라쿠리의 제스처와 움직임이 노, 가부키[5] 및 분라쿠(Bunraku) 극장에 영향을 미쳤다고 지적한다.
- 자시키 가라쿠리(座敷からくり): 다이묘(大名)나 부유한 상인(豪商) 등이 소유한 자시키(座敷, 실내)에서 감상하는 가라쿠리. 대부분 고가(高価)이며, 받침대 위에 설치된 인형 등이 북을 치거나 춤을 추는 등의 연출을 한다. 차나 술을 따른 잔을 운반하는 차 운반 인형(茶運び人形)처럼 이동하는 것도 있다.
- 가라쿠리 장난감(からくり玩具): 민예품이나 지방 장난감으로서 일본 각지에서 옛날부터 그 지역 고유의 다양한 장치를 가진 장난감. 현재에도 기념품으로 판매되는 것이 많다. 한때 일본의 수출 산업을 떠받쳤던 "주석(ブリキ) 장난감"의 장치도 가라쿠리 장난감에서 유래한다.
- 가라쿠리 우산(からくり傘): 일본 우산(和傘) 또는 당산(唐傘). 중국에서 유래한 천개(天蓋)에 개폐식 장치를 한 당산(唐繰傘).
- 가라쿠리 가구(からくり家具): 가라쿠리 장롱(箪笥) 등.
- 가라쿠리 과녁(からくり的): 시장(市)이나 축제(縁日), 온천(温泉場)에서 행해지는 활쏘기(弓矢)나 불화살쏘기(吹き矢)의 사격(射的) 과녁(的). 맞힌 위치에 따라 판으로 만든 장식이 움직인다. 다이쇼 시대까지 번화가나 온천가의 사격장에 존재했지만, 현재는 "귀 울음"(鬼泣かせ)이라는 기계 장치의 귀신(鬼) 과녁에 흔적이 남아 있다.
- 야마차 가라쿠리(山車からくり): 야마차(山車)·차가쿠(車楽) 등에 가라쿠리 인형을 싣는 것. 야마차 내부에 조작자가 타고, 행진 시나 신사 참례 시 연주에 맞춰 조작하고, 공개·봉납한다. 대부분 제2차 세계대전의 전재로 소실되었지만, 전재를 면한 기후현 다카야마시(高山市)의 다카야마 축제(高山祭), 미노시(美濃市)의 미노 축제(美濃まつり), 아이치현 이나야마시(犬山市)의 이나야마 축제(犬山祭), 쓰시마시(津島市)의 오와리 쓰시마 가을 축제(尾張津島秋まつり), 한다시(半田市)의 가메자키 조간 축제(亀崎潮干祭) 등 주변 지역에는 많이 남아 있다. 사마귀(カマキリ) 가라쿠리로 유명한 교토 기온 축제의 도로야마(蟷螂山), 에도의 산노 축제(山王祭)·칸다 축제(神田祭) 등.[23] 게이와 5년(1619년)의 나고야시(名古屋市) 도쇼궁 축제 이래, 주쿄권(中京圏)(주로 아이치현(愛知県)과 기후현(岐阜県))에 특색 있는 축제 문화를 형성하고 있다. 교호 15년(1730년)에 7대 오와리 번(尾張藩)주가 된 도쿠가와 무네하루(徳川宗春)는 "백성과 함께 세상을 즐긴다"는 정책을 실시하여, 8대 장군 도쿠가와 요시무네(徳川吉宗)의 검소 절약책으로 자숙되고 있던 도쇼궁 축제의 화려함을 부활시키고, 다른 축제나 유흥을 성대히 행하는 것을 장려하여, 활동의 장을 잃은 교토의 타마야 쇼베에(玉屋庄兵衛)를 비롯한 전국의 가라쿠리 인형사들을 나고야로 초청하여 가라쿠리 인형사들이 오와리 지방으로 이주함으로써 나고야를 중심으로 하는 주쿄권에서 가라쿠리 문화가 발전하여 뿌리내렸다.
- 무대 가라쿠리(舞台からくり): 데라쿠가에시(田楽返し)나 조친누케(提灯抜け), 가고누케(葛籠抜け) 등 가부키(歌舞伎)의 무대에서 사용되는 가라쿠리. 현재의 인형 조루리(人形浄瑠璃)에서는 인형사가 중심이 되고 있지만, 근마쓰 몬자에몬(近松門左衛門)의 조루리(浄瑠璃)에는 가라쿠리가 다용되었다.
- 가라쿠리 저택(からくり屋敷): 닌자 저택 등에서 볼 수 있다.
1851년(가에이(嘉永) 4년)에 발명가 다나카 히사시게가 발명한 만년자명종은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24] 태엽식으로, 한 번 감으면 1년 동안 작동한다는 놀라운 지속 시간을 실현했다.
자시키 가라쿠리(座敷からくり)의 대표적인 작품이다. 차를 담은 찻잔을 인형이 찻잔 받침에 올려놓으면 손님이 있는 곳까지 차를 운반하고, 손님이 찻잔을 가져가면 멈춘다. 차를 운반하는 거리는 미리 설정한다. 손님이 차를 마시고 빈 찻잔을 찻잔 받침에 돌려놓으면, 발걸음을 돌려 찻잔을 원래 자리로 운반한다. 태엽과 기어, 캠, 막대기 등으로 그 움직임을 제어한다. 현재 잘 알려진 차 운반 인형은 호소카와 한조(細川半蔵) 저의 『기교도휘』(機巧図彙)를 바탕으로 복원된 것이다. 하지만 현재 각지에 남아 있는 차 운반 인형은 기구적으로 『기교도휘』에서 설명하는 것과 다른 점이 있으며, 『기교도휘』에 따라 제작된 에도 시대의 것은 확인되지 않았다.
쇼와 57년(1982년)에는 일본 모형에서 플라스틱제 차 운반 인형이 발매되었다. 헤이세이 14년(2002년) 11월에는 「학연의 어른의 과학 시리즈 Vol.8」로 발매되었고, 헤이세이 19년(2007년) 6월 29일 발매된 어른의 과학 Vol.16에는 미니 차 운반 인형이 부록으로 들어 있었다.
현존하는 원본은 두 개이며, 모두 다나카 히사시게의 제작이다. 인형이 화살꽂이에서 화살을 꺼내 활에 장착하여 과녁에 명중시키는 실내 장식용 가라쿠리이다.
인형의 동작은 태엽과 캠, 레버, 실에 의해 제어되며, 자동으로 네 개의 화살을 발사할 수 있다. "다나카 규주가 그중 하나는 과녁을 빗나가도록 장치했다"는 설명이 일반적으로 퍼져 있지만, 이것은 잘못된 것이다.[25] 실제로는 인형을 수리할 때 부속된 화살을 모두 새로 만들었고,[25] "새로 만든 화살 중 하나가 우연히 잘 날아가지 않았다"는 것이 사실이다. 덧붙여, 인형이 앉아 있는 받침대에 부착된 작은 당자(중국풍 의상을 입은 인형)와 당자가 돌리는 손잡이의 기구도 수리 전 원본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이 부분은 수리 의뢰자의 의향에 따라 새로 부착된 것이다.[26] 유미히키도지는 글씨 쓰는 인형과 함께 에도 가라쿠리의 최고 걸작 중 하나로 여겨진다.
도노 스스무가 헤이세이 2년(1990년)에 도쿠가와가로부터 하나를 발견하고, 헤이세이 3년(1991년)에 후시미의 마에카와가로부터 또 하나를 발견하여 미네자키 주고에 의해 수리 및 복원되었다.[27] 현재, 도쿠가와가 소장의 유미히키도지는 도요타 산업기술 기념관에, 마에카와가 소장의 유미히키도지는 다나카 규주의 고향 구루메시의 교육위원회에 소장되어 있다. 같은 움직임을 하는 조립 모형 키트가 학켄에서 발매되고 있다. 헤이세이 25년(2013년) 기계유산 61호로 인정받았다.
현재까지 발견된 원본은 두 개이다.
하나는 미국에서 발견되었다. 1991년(헤이세이 3년), 미국의 연구가로부터 일본의 연구가에게 미국의 수집가가 소유하고 있다는 정보가 제공되었지만, 그 수집가는 에도 시대 문자쓰기 인형에 대한 지식이 없었다.[28] 일본의 연구가는 미국의 연구가에게 에도 시대의 가라쿠리 인형에 관한 자료를 지속적으로 제공하여 수집가의 이해와 신뢰를 오랜 시간에 걸쳐 얻었다. 2002년(헤이세이 14년), 인형 매각에 대한 동의를 얻어냈다. 폭넓게 구매자가 모집된 결과, 2004년(헤이세이 16년)에 오사카부 네야가와시의 도노 스스무가 구입하였다. 이 인형의 제작에 관한 구체적인 자료는 발견되지 않았지만, 받침대를 덮는 병풍의 무늬가 다나카 규주 작품인 활 쏘는 아이(유미히키도지)의 받침대 병풍과 일치하여, 규주 작품으로 추정되고 있다. 일본으로 가져온 인형은 새로운 소유자에 의해 움직이지 않던 기구가 수리되는 동시에, 인형의 얼굴과 손이 완전히 다시 칠해지고, 의상이 새로 제작되었으며, 또한 받침대의 기구에는 이전에는 없던 장치가 내장되었다.[29] 그리고 이듬해인 2005년 일본 국제 박람회(아이치 엑스포)에서 전시되었다.[30] 현재 소유자는 구루메시 교육위원회이다.
다른 하나는 오른손과 입에 문 붓으로 "松"(소나무 송)과 "竹"(대나무 죽) 두 글자를 동시에 쓸 수 있는 문자쓰기 인형으로, 2009년(헤이세이 21년)에 안조시 내의 고민가에서 발견되었다. 현재 안조시 지정 유형 민속 문화재로 지정되어 안조시 역사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또한 9대째 타마야 쇼베에에 의해 복제품이 제작되어 동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32][33]
5. 현대의 가라쿠리
다나카 히사시게의 「유미비키도우지」(弓曳童子) 등은 미네자키 주고(峰崎十五)가 수리 복원하였다.[20] 9대째 타마야 쇼우베에는 「유미비키도우지」와 교토 기온마츠리의 산인 「카마키리야마」[21]을, 히가시노 신(東野進)은 「문자쓰기 인형」을[22], 고토 히데히데는 오가키마츠리의 「아이아이야마」(相生山)와 오오츠마츠리의 「류몬타키야마」(竜門滝山)를 복원하였다.
좌식 가라쿠리(座敷からくり)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찻잔을 인형의 찻잔 받침에 올려놓으면 손님이 있는 곳까지 차를 운반하고, 손님이 찻잔을 가져가면 멈춘다. 빈 찻잔을 받침에 돌려놓으면, 발걸음을 돌려 찻잔을 원래 자리로 운반한다. 현재 잘 알려진 차 운반 인형은 호소카와 반조(細川半蔵)의 『기교도휘』(機巧図彙)를 바탕으로 복원된 것이다. 쇼와 57년(1982년)에는 일본 모형에서 플라스틱제 차 운반 인형이 발매되었다. 헤이세이 14년(2002년) 11월에는 「학연의 어른의 과학 시리즈 Vol.8」로 발매되었고, 헤이세이 19년(2007년) 6월 29일 발매된 어른의 과학 Vol.16에는 미니 차 운반 인형이 부록으로 들어 있었다.
현존하는 원본은 두 개이며, 모두 다나카 히사시게의 제작이다. 인형이 화살꽂이에서 화살을 꺼내 활에 장착하여 과녁에 명중시키는 실내 장식용 가라쿠리이다. 인형의 동작은 태엽과 캠, 레버, 실에 의해 제어되며, 자동으로 네 개의 화살을 발사할 수 있다. 유미비키도우지는 글씨 쓰는 인형과 함께 에도 가라쿠리의 최고 걸작 중 하나로 여겨진다. 東野進이 헤이세이 2년(1990년)에 도쿠가와가로부터 하나를 발견하고, 헤이세이 3년(1991년)에 후시미의 마에카와가로부터 또 하나를 발견하여 미네자키 주고에 의해 수리 및 복원되었다.[27] 현재, 도쿠가와가 구장의 유미비키도우지는 도요타산업기술기념관에, 마에카와가 구장의 유미비키도우지는 다나카 큐쥬의 고향 구루메시의 교육위원회에 소장되어 있다. 헤이세이 25년(2013년) 기계유산 61호로 인정받았다.
현재까지 발견된 원본은 두 개이다. 하나는 미국에서 발견되었고, 다른 하나는 안조시 내의 고민가에서 발견되었다. 안조시의 것은 현재 안조시 지정 유형 민속 문화재로 지정되어 안조시 역사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교토 니시키시장 동쪽 끝에 있는 니시키 덴만궁에 있다. 사람이 다가가면 가가쿠(神楽) 소리가 나면서 기계 장치의 사자춤이 시작되고, 동전을 넣어 제비뽑기 종류를 선택하면 가가쿠에 맞춰 사자가 춤을 추면서 제비뽑기를 전달하는 장치가 인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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