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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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엔카는 일본의 대중음악 장르로, 19세기 말 자유민권운동 시기 정치적 내용을 담은 노래에서 유래했다. 요나누키 단온카이 음계를 주로 사용하며, 사랑, 상실, 고독 등을 주제로 하는 가사와 멜리스마 창법이 특징이다. 1920년대 류코카 시대를 거쳐 1950년대 후반 카스가 하치로의 '와카레노 잇폰스기'를 시작으로 현대 엔카가 자리 잡았다. 1960-70년대 미소라 히바리, 모리 신이치 등 유명 가수의 등장과 가라오케의 보급으로 상업적으로 성공했으나, 1980년대 이후 J-POP의 등장과 함께 쇠퇴했다. 한국의 트로트에 영향을 미쳤으며, 타이완, 동남아시아, 브라질 등 해외에서도 다양한 형태로 수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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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카 | |
---|---|
기본 정보 | |
장르 | 엔카 |
스타일 기원 | 유행가 낭곡 민요 탱고 블루스 두왑 |
문화적 기원 | 1950년대, 일본 |
演歌 (えんか, 엔카) | |
스타일 기원 | 연설가 민요 낭곡 가요낭곡 유행가 등 |
문화적 기원 | 연대 불명, 일본 |
사용 악기 | 보컬 기타 만돌린 베이스 드럼 세트 바이올린 샤미센 샤쿠하치 와다이코 박자목 비브라스랩 등 |
융합 장르 | 엔카 메탈 뉴 어덜트 뮤직 |
기타 주제 | 가요곡 J-POP 포크송 일본풍 록 |
2. 어원
'엔카'라는 용어는 처음에는 메이지 시대(1868~1912) 동안 자유민권운동에 참여했던 반정부 활동가들이 정치적 반대 의견에 대한 정부의 억압을 우회하는 수단으로 불렀던, 정치적 내용을 담은 음악을 가리키는 데 사용되었다. 이러한 의미에서 이 단어는 "연설의 노래"를 의미하는 演説の歌|엔제쓰노 우타일본어에서 유래했다.
엔카는 가요곡의 한 장르이지만, 더욱 표현력이 풍부하고 감정적이라고 여겨진다.[3][11] 엔카 가사는 사랑, 상실, 고독, 어려움을 견디는 것, 어려움에 직면하여 굴하지 않는 것, 심지어 자살이나 죽음과 같은 주제를 중심으로 쓰여진다.
또 다른 설은 현대 엔카가 "공연하는 노래"를 의미하는 演じる歌|엔지루 우타일본어를 뜻한다고 주장한다.[3][4]
'엔카'라고 불리는 장르는 레코드 회사뿐만 아니라 J-POP을 위한 편의적인 분류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일반적으로 엔카 가수로 여겨지는 미야코 하루미는 "저는 제가 엔카를 부른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사실 제가 데뷔했을 때는 '엔카'라는 용어 자체가 없었습니다"라고 말했다.[5][6]
3. 음악적 특징
전형적인 엔카 가수들은 "고부시"라고 알려진 멜리스마 스타일을 사용하는데, 이는 여러 다른 음표 사이를 연속적으로 이동하면서 하나의 음절을 부르는 것이다.[10][12] 고부시는 가수의 목소리 음높이가 하나의 음계 내에서 불규칙적으로 변동할 때 발생하며, 규칙적인 주기로 진동하는 비브라토와 비교된다.[13] 고부시 기법은 엔카에만 국한되지 않으며, 이탈리아 노래 "산타 루치아"에서도 들을 수 있다.[13]
1930년대 후반과 1940년대 초, 작곡가 고가 마사오의 음악은 레코드 회사의 요청으로 불교식 염불과 유사해지기 시작했다.[14] 고가는 이 장르의 창작에 중요한 작곡가가 되었지만, 현대 엔카는 고가의 주요 음악과 다른데, 많은 전후 가수들의 노래 스타일이 고가의 음표의 고부시와 달랐기 때문이다.[15] 현대 엔카 가수 기타야마 타케시도 2006년에 "고가의 음표는 옛 가수의 음표와 달라서 혼란스러웠다"고 인정했다.[15][16]
엔카는 일본 문화와 태도의 전통적, 이상적 또는 낭만적인 측면을 시사한다. 엔카의 멜로디는 기본적으로 서양의 화성이며, 신디사이저와 왜곡이 많은 일렉트릭 리드 기타와 같은 전자 악기가 사용되지만, 샤쿠하치와 샤미센과 같은 전통 일본 악기도 포함된다.[17] 주로 여성인 엔카 가수들은 보통 기모노나 이브닝 드레스를 입고 공연하며, 남성 엔카 가수들은 정장이나 일부 공연에서는 전통 일본 의상을 입는 경향이 있다.
남녀 간의 애정 외의 테마는 다음과 같다.테마 예시 행복한 부부 이야기 무라타 히데오 "부부춘추(夫婦春秋)", 미카사 유코 "부부배(夫婦舟)", 가와나카 미치코 "이륜초" 등 어머니 이야기 키쿠치 아키코, 후타바 유리코 "절벽의 어머니", 키타다 타츠에 "꽃거리의 어머니" 등 가족 이야기 토바 이치로 "형제배(兄弟船)", 아시야 간노스케 "딸이여", 오이즈미 이츠로 "손자" 등 인생, 기개 이야기 무라타 히데오 "인생극장(人生劇場)", "꽃과 용", 키타지마 사부로 "산", "강", 나카무라 미츠코 "가와치 남자가락" 등 떠돌이 이야기 딕 미네 "여행 모습 세 남자", 하시 유키오 "시오라이가사(潮来笠)", 히카와 키요시 "하코네 팔리의 반지로(箱根八里の半次郎)" 등 의협심 이야기 키타지마 사부로 "형제의연(兄弟仁義)", 타카쿠라 켄 "당사자모단(唐獅子牡丹)" 등 가요랑곡 이야기 미나미 하루오 "다와라보시 겐반", "오오타니 무정", "키이노쿠니야 분자에몬", 무라타 히데오 "왕장", "무법송의 일생(無法松の一生)", 마야마 이치로 "칼부림 마츠노로카" 등 고향 그리움 카스가 하치로 "이별의 한 그루 소나무(別れの一本杉)", 미하시 미치야 "사과 마을에서", 키타지마 사부로 "돌아갈까나(帰ろかな)", 센 쇼후 "북국의 봄(北国の春)", "고향의 술집(望郷酒場)" 등 온도
3. 1. 음계
현대 엔카의 주요 음계는 ヨナ抜き短音階|요나누키 단온카이일본어(4도와 7도(파와 테)가 없는 단음계)로 불리며, 이는 보다 오래된 일본 음계인 呂音階|료 온카이일본어에서 유래한 ヨナ抜き長音階|요나누키 쵸온카이일본어(4도와 7도(파와 시)가 없는 장음계)의 변형이다.[7] 이를 부분적으로 사용했다고 알려진 가장 초기의 일본 노래 중 하나는 다키 렌타로의 "고조의 달"이며, 이는 메이지 시대에 唱歌|쇼카일본어(학교 노래)로 불렸다.[8][9]
오음 음계를 기반으로 한 음악은 블루스와 약간 유사하다.[10]
일본 고유의 민요 등에서 불려 온 음계를 평균율에 맞춰 변환한 오음 음계(펜타토닉 스케일)가 자주 사용된다. 서양 음악의 7음계에서 4음과 7음을 빼고, 5음과 6음을 각각 4음과 5음으로 하는 오음 음계를 사용하므로, '''장음계에서 4도와 7도를 뺀 음계'''라고 불리는 음계법을 사용한다.
이 음계법은 일본 최초의 장음계에서 4도와 7도를 뺀 단조곡인 아름다운 자연의 영향을 받은 고가 마사오에 의해 '''고가풍 멜로디'''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장음계에서 4도와 7도를 뺀 음계 자체는 뱃사공 소곡, 새장 속의 새 등 엔카 이외에도 많이 사용되었다.[60]
3. 2. 창법
현대 엔카의 주요 음계는 요나누키 단음계(4도와 7도(파와 테)가 없는 단음계)로, 이는 오래된 일본 음계인 료 음계에서 유래한 요나누키 장음계(4도와 7도(파와 시)가 없는 장음계)의 변형이다.[7] 이를 부분적으로 사용한 초기 일본 노래 중 하나는 다키 렌타로의 "고조의 달"이며, 메이지 시대에 쇼카(학교 노래)로 불렸다.[8][9] "고조의 달"은 변가단조의 노래이며 7도는 사용되지 않는다.[9]
오음 음계를 기반으로 한 음악은 블루스와 약간 유사하다.[10] 엔카 가사는 사랑, 상실, 고독, 어려움, 굴하지 않음, 심지어 자살이나 죽음과 같은 주제를 중심으로 쓰여진다. 엔카는 가요곡의 한 장르이지만, 더욱 표현력이 풍부하고 감정적이라고 여겨지지만, 이에 대한 명확한 합의는 없다.[3][11]
전형적인 엔카 가수들은 "고부시"(kobushi)라고 알려진 멜리스마 스타일을 사용하는데, 이는 여러 다른 음표 사이를 연속적으로 이동하면서 하나의 음절을 부르는 것이다.[10][12] 고부시는 가수의 목소리 음높이가 하나의 음계 내에서 불규칙적으로 변동할 때 발생하며, 규칙적인 주기로 진동하는 비브라토와 비교된다.[13] 고부시 기법은 엔카에만 국한되지 않으며, 이탈리아 노래 "산타 루치아"에서도 들을 수 있다.[13]
1930년대 후반과 1940년대 초, 작곡가 고가 마사오의 음악은 레코드 회사의 요청으로 불교식 염불과 유사해지기 시작했다.[14] 현대 엔카는 고가의 주요 음악과 다른데, 많은 전후 가수들의 노래 스타일이 고가의 음표의 고부시와 달랐기 때문이다.[15] 현대 엔카 가수 기타야마 타케시도 2006년에 "고가의 음표는 옛 가수의 음표와 달라서 혼란스러웠다"고 인정했다.[15][16]
엔카는 일본 문화와 태도의 전통적, 이상적 또는 낭만적인 측면을 시사한다. 엔카의 멜로디는 기본적으로 서양의 화성이며, 신디사이저와 왜곡이 많은 일렉트릭 리드 기타와 같은 전자 악기가 사용되지만, 샤쿠하치와 샤미센과 같은 전통 일본 악기도 포함된다.[17]
일본 고유의 민요 등에서 불려 온 음계를 평균율에 맞춰 변환한 오음 음계(펜타토닉 스케일)가 자주 사용된다. 서양 음악의 7음계에서 4음과 7음을 빼고, 5음과 6음을 각각 4음과 5음으로 하는 오음 음계를 사용하므로, 4와 7을 뺀 '''장음계에서 4도와 7도를 뺀 음계'''라고 불리는 음계법을 사용한다.
이 음계법은 일본 최초의 장음계에서 4도와 7도를 뺀 단조곡인 「아름다운 자연」의 영향을 받은 고가 마사오에 의해 '''고가풍 멜로디'''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장음계에서 4도와 7도를 뺀 음계 자체는 「뱃사공 소곡」「새장 속의 새」 등 엔카 이외에도 많이 사용되었다.[60] 고가풍 멜로디는 클래식 정통파·후지야마 이치로의 성악 기술을 해석한 크룬창법으로 한때 크게 유행했지만, 후에 엔카 가수들이 마디를 꺾어 가며 부르는 방식으로 변형되었다. 악기는 클래식 기타·스틸 현 아코스틱 기타나 바이올린이 많이 사용된다.
창법은 「마디(코부시)」(멜리스마와 거의 동의어)를 많이 사용하고 비브라토를 깊게 넣는다.
3. 3. 가사 및 주제
현대 엔카의 주요 음계는 요나누키 단음계(4도와 7도(파와 테)가 없는 단음계)로, 이는 더 오래된 일본 음계인 료 음계에서 유래한 요나누키 장음계(4도와 7도(파와 시)가 없는 장음계)의 변형이다.[7] 초기 일본 노래 중 하나인 다키 렌타로의 "고조의 달"은 변가단조로 7도를 사용하지 않는다.[9]
오음 음계를 기반으로 한 엔카 가사는 사랑, 상실, 고독, 어려움, 굴하지 않음, 자살, 죽음 등을 주제로 한다.[10] 가요곡의 한 장르지만, 더 표현력이 풍부하고 감정적이라고 여겨진다.[3][11]
엔카 가수들은 "고부시"라는 멜리스마 스타일을 사용하는데, 이는 여러 음표 사이를 연속적으로 이동하며 한 음절을 부르는 것이다.[10][12] 고부시는 가수의 목소리 음높이가 음계 내에서 불규칙적으로 변동할 때 발생하며, 비브라토와는 다르다.[13]
엔카는 일본 문화와 태도의 전통적, 이상적, 낭만적인 측면을 시사한다. 여성 가수들은 기모노나 이브닝 드레스를, 남성 가수들은 정장이나 전통 일본 의상을 입는 경향이 있다. 엔카의 멜로디는 서양 화성이지만, 샤쿠하치와 샤미센 같은 전통 일본 악기도 사용된다.[17]
일본 고유 민요의 음계를 평균율에 맞춰 변환한 오음 음계(펜타토닉 스케일)가 자주 사용된다. 4도와 7도를 뺀 '''장음계에서 4도와 7도를 뺀 음계'''를 사용한다.
이 음계법은 고가 마사오에 의해 '''고가풍 멜로디'''로 자리 잡았다. 고가풍 멜로디는 후지야마 이치로의 성악 기술을 해석한 크룬창법으로 유행했지만, 후에 엔카 가수들이 마디를 꺾어 부르는 방식으로 변형되었다. 클래식 기타, 스틸 현 아코스틱 기타, 바이올린이 많이 사용된다.
창법은 "마디(코부시)"(멜리스마와 거의 동의어)를 많이 사용하고 비브라토를 깊게 넣는다. 가사 내용은 "바다, 북쪽 지방, 술, 눈물, 여자, 비, 유흥가, 눈, 이별"이 자주 등장하며, 애정이나 비련 등을 노래한 것이 많다.
남녀 간의 애정 외의 테마는 다음과 같다.
테마 | 예시 |
---|---|
행복한 부부 이야기 | 무라타 히데오 "부부춘추(夫婦春秋)", 미카사 유코 "부부배(夫婦舟)", 가와나카 미치코 "이륜초" 등 |
어머니 이야기 | 키쿠치 아키코, 후타바 유리코 "절벽의 어머니", 키타다 타츠에 "꽃거리의 어머니" 등 |
가족 이야기 | 토바 이치로 "형제배(兄弟船)", 아시야 간노스케 "딸이여", 오이즈미 이츠로 "손자" 등 |
인생, 기개 이야기 | 무라타 히데오 "인생극장(人生劇場)", "꽃과 용", 키타지마 사부로 "산", "강", 나카무라 미츠코 "가와치 남자가락" 등 |
떠돌이 이야기 | 딕 미네 "여행 모습 세 남자", 하시 유키오 "시오라이가사(潮来笠)", 히카와 키요시 "하코네 팔리의 반지로(箱根八里の半次郎)" 등 |
의협심 이야기 | 키타지마 사부로 "형제의연(兄弟仁義)", 타카쿠라 켄 "당사자모단(唐獅子牡丹)" 등 |
가요랑곡 이야기 | 미나미 하루오 "다와라보시 겐반", "오오타니 무정", "키이노쿠니야 분자에몬", 무라타 히데오 "왕장", "무법송의 일생(無法松の一生)", 마야마 이치로 "칼부림 마츠노로카" 등 |
고향 그리움 | 카스가 하치로 "이별의 한 그루 소나무(別れの一本杉)", 미하시 미치야 "사과 마을에서", 키타지마 사부로 "돌아갈까나(帰ろかな)", 센 쇼후 "북국의 봄(北国の春)", "고향의 술집(望郷酒場)" 등 |
온도 |
엔카는 "'''일본의 소울 뮤직'''"이라고도 불린다.[61]
3. 4. 악기 구성
현대 엔카의 주요 음계는 ヨナ抜き短音階|요나누키 단온카이일본어(4도와 7도(파와 테)가 없는 단음계)로 불리며, 이는 보다 오래된 일본 음계인 료 음계|呂音階|료 온카이일본어(Ryo Onkai)에서 유래한 ヨナ抜き長音階|요나누키 쵸온카이일본어(4도와 7도(파와 시)가 없는 장음계)의 변형이다.[7] 이를 부분적으로 사용했다고 알려진 가장 초기의 일본 노래 중 하나는 다키 렌타로의 "고조의 달"이며, 메이지 시대에 唱歌|쇼카일본어(학교 노래)로 불렸다.[8][9]오음 음계를 기반으로 한 음악은 블루스와 약간 유사하다.[10] 엔카 가사는 일반적으로 사랑과 상실, 고독, 어려움을 견디는 것, 어려움에 직면하여 굴하지 않는 것, 심지어 자살이나 죽음과 같은 주제를 중심으로 쓰여진다.[3][11]
전형적인 엔카 가수들은 "고부시"(kobushi)라고 알려진 멜리스마 스타일을 사용하는데, 이는 여러 다른 음표 사이를 연속적으로 이동하면서 하나의 음절을 부르는 것이다.[10][12] 고부시는 가수의 목소리 음높이가 하나의 음계 내에서 불규칙적으로 변동할 때 발생한다. 이는 규칙적인 주기로 진동하는 비브라토와 비교된다.[13]
엔카의 멜로디는 기본적으로 서양의 화성이며, 신디사이저와 왜곡이 많은 일렉트릭 리드 기타와 같은 전자 악기가 사용되지만, 샤쿠하치와 샤미센과 같은 전통 일본 악기도 포함된다.[17]
일본 고유의 민요 등에서 불려 온 음계를 평균율에 맞춰 변환한 오음 음계(펜타토닉 스케일)가 자주 사용된다. 서양 음악의 7음계에서 4음과 7음을 빼고, 5음과 6음을 각각 4음과 5음으로 하는 오음 음계를 사용하므로, 4와 7을 뺀 '''장음계에서 4도와 7도를 뺀 음계'''라고 불리는 음계법을 사용한다.
이 음계법은 고가 마사오에 의해 '''고가풍 멜로디'''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장음계에서 4도와 7도를 뺀 음계 자체는 엔카 이외에도 많이 사용되었다.[60] 악기는 클래식 기타, 스틸 현 아코스틱 기타나 바이올린이 많이 사용된다.
창법은 「마디(코부시)」(멜리스마와 거의 동의어)를 많이 사용하고 비브라토를 깊게 넣는다.

4. 역사
자유민권운동에 참여했던 반정부 활동가들이 정치적 반대 의견에 대한 정부의 억압을 우회하는 수단으로 정치적 내용을 담은 음악을 불렀는데, 이것이 '엔카'라는 용어의 시초이다. 이 단어는 "연설의 노래"를 의미하는 演説の歌|엔제쓰노 우타일본어에서 유래했다.
메이지 시대(1868년–1912년)의 정치적인 노래인 엔카(演歌)는 현대 엔카와 구분하기 위해 壮士演歌|소시 엔카일본어라고도 불린다. 거리 가수는 演歌師|엔카시일본어라고 불렸다. 최초의 엔카 노래는 ダイナマイト節|다이나마이토부시일본어라고 알려져 있다.[18] 이 시대의 노래에는 가와카미 오토지로의 "오페케페"가 포함된다.[19]
다이쇼 시대(1912년–1926년)에는 엔카시가 바이올린을 도입하기 시작하여 그들의 노래는 바이올린 엔카라고 불리게 되었다. 당시의 엔카시로는 사쿠라이 도시오(桜井敏雄|사쿠라이 도시일본어오)가 있으며, 그는 오카 하루오를 가르쳤다.[20]
현재 일본에서는 도로교통법이 거리 공연자의 모습을 규제하고 있다. 그러나 후쿠오카 우타지(福岡詩二|후쿠오카 우타지일본어)와 같은 일본 공연자들은 여전히 다이쇼 시대의 엔카를 부르고 있다.[21] 1995년 대지진이 발생했을 때, 록 밴드 소울 플라워 유니온의 음악 프로젝트인 소울 플라워 모노노케 서밋은 재해 피해자들의 사기를 북돋우기 위해 소시 엔카를 연주했다.[22]
1920년대 후반 쇼와 시대 초기, 레코드 회사들은 엔카시 대신 류코카(流行歌)를 제작했다.[23] 엔카시는 기타를 사용하기 시작했고, 나가시(流し)라고 불렸다.[3] 1939년 오카 하루오는 킹 레코드에서 "국경의 봄"(国境の春|곳쿄노 하루일본어)이라는 노래로 데뷔했다.[24] 그러나 엔카라는 용어는 전후에는 일반적이지 않게 되었다.[3]
1948년, 가스가 하치로는 킹 레코드의 신인 발굴대회에서 우승하여 다음 해에 데뷔했다. 그의 선배는 오카 하루오였다. 1952년 발매된 가스가 하치로의 데뷔 싱글 赤いランプの終列車|아카이 람푸노 슈렛샤|붉은 등불의 종착역일본어은 큰 인기를 얻었다.[26] 가부키풍 노래 お富さん|오토미 상일본어은 원래 오카 하루오를 위해 만들어졌지만, 가스가 하치로가 부르게 되면서 1954년 일본에서 큰 인기를 얻었다.[26] 가스가 하치로는 그 해 "오토미 상"으로 NHK 홍백가합전에 처음 출연했다.[27]
한편,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후 일본에서는 재즈가 인기를 얻으면서, 미소라 히바리는 1949년 불과 12세의 나이로 일본 컬럼비아에서 "카파 부기우기"를 발표하며 데뷔했다.[25] 그녀는 1950년대와 1960년대에 걸쳐 재즈 노래를 불렀으며, 이후 60년대와 70년대에는 많은 엔카를 불렀다.[25]
"오토미 상"의 작곡가인 토쿠치 마사노부는 오키나와섬에서 태어나 아마미오시마에서 자랐으며, 류큐 열도의 음악을 일본 주류에 소개하는 데 중요한 인물이 되었다.[28]
카스가 하치로는 후나무라 토루가 작곡한 "와카레노 잇폰스기(작별의 한 그루 삼나무)"를 녹음했다.[2] 이 노래는 1955년에 발매되었고, 나중에 진정한 엔카 노래로 여겨졌다.[29] 역설적이게도 이 노래는 탱고 음악의 리듬의 영향을 받았는데, 후나무라가 탱고가 지역적 색채 면에서 엔카와 비슷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29] "와카레노 잇폰스기"는 나중에 미하시 미치야, 무라타 히데오, 후지 케이코, 미소라 히바리, 키타지마 사부로, 호소카와 타카시, 이츠키 히로시 등 다양한 가수들에 의해 커버되었다.[30] 카스가는 나중에 최초의 엔카 가수로 불리게 되었다.[2]
원래 일본 민요(민요)를 부르고 쓰가루 자미센을 연주했던 미하시 미치야는 1954년에 데뷔 싱글 "사케노 니가사요"를 발매했다.[31] 미하시의 "온나 센도 우타"는 1955년에 히트했다.[31] "와카레노 잇폰스기"의 작사가이자 후나무라의 친구였던 타카노 키미오는 1956년 26세의 나이로 사망했다.[29] 미소라 히바리는 더 이상 십대 아이돌로 여겨지지 않게 되면서 음악 활동을 엔카로 전환했다.[32]
전후 시대 무렵, 전쟁 중에 유명했던 랑요쿠(나니와부시)는 주로 발표 길이가 너무 길다고 여겨졌기 때문에 인기가 떨어졌다. 반면에 그 무렵 인기를 얻게 된 엔카는 랑요쿠의 축약판이라고 여겨졌는데, 무라타 히데오와 미나미 하루오 등 여러 엔카 가수들이 원래 랑요쿠 가수였고 엔카는 랑요쿠와 공통된 주제를 많이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33] 엔카에 영향을 미친 주목할 만한 랑요쿠 가수로는 토추켄 쿠모에몬이 있는데, 그의 제자의 제자가 바로 무라타였다.[33] 미나미 하루오는 1957년에 데이치쿠 레코드에서 데뷔했고, 무라타는 1958년에 니폰 컬럼비아에서 데뷔했다. 무라타는 코가 마사오가 작곡한 "진세이 게키죠"(인생 극장)를 커버했다.[15] 미나미 하루오는 당시 남성 가수에게는 드문 스타일이었던 기모노를 입는 것으로 유명했다.[34]
1955년경부터 라디오가 지방에 보급됨에 따라 지방을 무대로 한 음악("'''시골풍'''")이 만들어졌다.
1960년대 초, 엘비스 프레슬리의 영향을 받은 로큰빌리가 일본에서 인기를 얻었다. 하지만 많은 일본 음악 평론가들은 로큰빌리를 비판했고, 이에 무라타 히데오의 1961년 곡 "오쇼"(大将)는 "순수 일본식" 스타일의 노래로 백만 장 이상 판매되며 큰 성공을 거두었다.[36] 같은 해, 사카모토 큐가 "위를 보고 걷자"(스키야키)로 NHK 홍백가합전에 처음 출연했을 때, 무라타 히데오 역시 "오쇼"로 데뷔했다.[37]
1960년대에는 하시 유키오(1960년), 키타지마 사부로(1962년), 미야코 하루미(1964년) 등 젊은 엔카 가수들이 등장했다. 고바야시 사치코는 1964년 만 10세의 나이로 데뷔했다. 미소라 히바리(1937~1989)는 "엔카의 여왕"이자 "쇼와의 여왕"으로 불리며 가장 유명하고 사랑받는 엔카 가수로 꼽힌다. 그녀의 노래 "야와라"(柔)는 1965년 일본 레코드 대상에서 대상을 수상했다.[38]
1966년 아오에 미나는 "황홀한 블루스"(恍惚のブルース|고케쓰노 부루스일본어)로 "엔카-블루스" 장르를 개척했다.[39] 모리 신이치는 1966년 데뷔, 1969년 곡 "항구 마을 블루스"(港町ブルース|미나토마치 부루스일본어)로 오리콘 차트 5주간 1위, 100만 장 이상 판매를 기록했다.[40] 후지 케이코는 1969년 데뷔했으며, 그녀의 활동으로 전후 사용되지 않던 "엔카"라는 용어가 부활했다.[3]
1970년 후지 케이코의 "케이코의 꿈은 밤에 피어난다"는 일본 레코드 대상 인기상과 일본 가요 대상 대상을 수상했다. 그녀의 앨범 "신주쿠의 여자/엔카의 별 후지 케이코 전곡"은 오리콘 차트 20주 연속 1위라는 기록을 세웠다.[41] 1972년 미야 시로와 핑카라 트리오의 "여자의 길"은 오리콘 차트 16주 연속 1위, 325만 장 이상 판매되며 일본에서 두 번째로 많이 팔린 싱글이 되었다.
이츠키 히로시의 "밤하늘"(夜空|요조라일본어)은 1973년 일본 레코드 대상 대상을 수상했다. 모리 신이치의 "에리모 곶"은 요시다 타쿠로가 작곡했지만 1974년 일본 레코드 대상 대상을 수상했다. 미야코 하루미의 "북쪽 여관에서"도 1976년 일본 레코드 대상 대상을 받았다. 1970년대에는 이시카와 사유리와 호소카와 타카시가 데뷔했다.[31]
호소카와 다카시의 노래 "키타 사카바"는 1982년 제24회 일본 레코드 대상에서 대상을 수상했다.[31] 그는 이듬해 나오미 치아키의 원곡 "야기리노 와타시"를 커버했는데, 이 노래 역시 다음 일본 레코드 대상에서 대상을 수상했다.[31] 1983년 미하시 미치야의 작품 총 판매량은 1억 장을 돌파하여 일본 최초로 이 기록을 달성한 아티스트가 되었다.[31]
1986년, 고쿠쇼 사유리는 엔카 싱글 "아지사이바시"를 발매하여 오리콘 주간 싱글 차트에서 1위로 데뷔했다.[43] 요시 이쿠조의 1986년 싱글 "유키구니"는 1987년 오리콘 차트 1위 싱글 300곡이 되었다.[44]
사카모토 후유미와 후지 아야코가 이 무렵 등장했다. 미소라 히바리는 1987년 싱글 "미다레가미"를 발매하여 오리콘 주간 차트에서 9위에 올랐다.[45] 아키모토 야스시는 그녀의 1989년 싱글 "강물처럼"의 가사를 썼다. 그러나 그녀는 1989년에 사망했고, 엔카의 영역은 가요쿄쿠 장르로 확장되었지만, 가요쿄쿠 장르 자체는 쇠퇴해 갔다.[11]
1991년 카스가 하치로가 사망했다. 엔카의 전통적인 주제가 젊은 일본인들에게 더 이상 인기를 얻지 못하고 서구식 J-POP 음악이 더욱 인기를 얻으면서 엔카의 판매량은 감소했다. 그러나 이 장르는 여전히 많은 지지자들을 보유하고 있었다.
후지 케이코의 노래 "케이코노 유메와 요루 히라쿠"와 같은 어두운 엔카 노래가 인기를 얻었을 때는 주목받지 못했던 밝은 엔카 가수 텐도 요시미는 1993년 처음으로 홍백가합전에 출연했다.[46] 타가와 토시미와 사카모토 후유미와 같은 다른 새로운 엔카 가수들도 TV 엔카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엔카를 계속해서 이어나갔다. 대만의 디바 등려군 또한 1995년 사망할 때까지 일본어로 노래를 부르고 엔카 노래를 커버했다.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일본 젊은 세대 사이에서 엔카의 인기가 다시 높아졌다. 히카와 키요시는 2000년 데뷔 싱글 "하코네 하치리노 한지로"로 큰 인기를 얻었다.[47] 당시 모닝구 무스메 멤버였던 나카자와 유코의 초기 솔로 앨범도 엔카였다. 미즈키 나나 역시 어린 시절부터 엔카를 배워, 성우이자 가수로 활동하며 2000년에 킹 레코드에 출연했다.[47]
2004년에는 칸쟈니∞가 "나니와 이로하 부시"를 발표하며 데뷔했다. 이 곡은 가와치 온도를 기반으로 랩을 더한 것이 특징으로, 오리콘 주간 싱글 차트 1위를 차지했다. 이는 1987년 이시하라 유지로 이후 17년 만에 엔카 싱글이 1위를 차지한 기록이었다.
2005년, 히카와 키요시는 "하츠코이 렛샤"로 오리콘 차트 1위에 올랐다. 베테랑 가수 아키모토 준코도 킹 레코드에서 데뷔했으나, 그녀의 음악 스타일은 70년대 가요곡에 가까웠다.[48]
2006년, 이츠키 히로시는 "타카세부네"로 22년 만에 톱 10에 진입했다.[49] 히카와 키요시의 "이켄"은 제48회 일본 레코드 대상에서 대상을 받았다. 2007년, 칸쟈니∞는 임페리얼 레코드로 이적했다. 나카모리 아키나는 엔카 곡들로 채워진 앨범을 발표하며 엔카에 대한 존경을 표했다.
2008년, 아키모토 준코는 "아이노 마마데…"로 61세의 나이에 오리콘 차트 1위를 차지한 최고령 솔로 가수가 되었다.[50] 같은 해, 히카와 키요시는 "료쿄쿠 이치다이"와 "토키메키노 룸바"로 연속 1위를 기록했다. 사카모토 후유미의 2009년 노래 "아시아노 카이조쿠"는 나카무라 아유미가 작곡한 엔카 곡으로 록 음악적인 요소를 담고 있었다.[51] 사카모토는 "나카무라 아유미가 부르면 록 음악이지만, 제가 부르면 엔카가 된다"고 말했다.[51][52]
2010년, 기타지마 사부로는 싱글 夫婦一生|부부 일생일본어을 발매하여 오리콘 주간 차트 10위에 올랐다. 이는 70대에 톱 10에 진입한 최초의 솔로 아티스트라는 기록이다.[53] 사카모토 후유미는 싱글 "다시 너를 사랑하고 있어/아시아의 해적"으로 오리콘 차트 9위에 올라, 1989년 이후 21년 만에 톱 10에 진입했다.[54]
헤이세이 시대(1989년~2019년)에는 J-POP이 등장했고, 엔카는 엔카·가요곡으로 불리며 오리콘 차트에 「엔카·가요곡 부문」이 신설되었다.
1990년대 후반에는 TV 프로그램에서 히트곡이 탄생하기도 했다.
2000년대 전반에는 J-POP의 부진으로 CD 판매량에서 엔카의 점유율이 상대적으로 상승했다.[74]
코로나19 범유행으로 콘서트나 홍보 활동 현장 판매에 의존하던 CD 판매량이 급감했다.[76]
한편, 지바 TV 등 일부 독립 방송국에서는 엔카 정규 프로그램을 방송하고 있으며, 타츠미 유토, 니이하마 레온 등 2010년대에 데뷔한 가수들을 "엔카 제7세대"라 부르기도 한다.[87][88]
또한, 니코니코 동화에서 "최종 보스"라는 애칭으로 젊은 세대에게 친숙한 고바야시 사치코[89], 유튜브에서 해외 인기를 얻은 미타 료[99], 미국의 페스티벌에 출연한 칸노 미카[90], 프랑스에서 살롱 드 파리 종신 회원 칭호를 얻고 2022년 파리 공연을 개최한 야시로 아키[91] 등 디지털 전환을 활용하거나 해외로 활동 무대를 확장하는 엔카 가수들도 늘어나고 있다.
4. 1. 19세기 말~1920년대: 자유민권운동과 연설가
자유민권운동에 참여했던 반정부 활동가들이 정치적 반대 의견에 대한 정부의 억압을 우회하는 수단으로 정치적 내용을 담은 음악을 불렀는데, 이것이 '엔카'라는 용어의 시초이다. 이 단어는 "연설의 노래"를 의미하는 演説の歌|엔제쓰노 우타일본어에서 유래했다.메이지 시대(1868년–1912년)의 정치적인 노래인 엔카(演歌)는 현대 엔카와 구분하기 위해 壮士演歌|소시 엔카일본어라고도 불린다. 거리 가수는 演歌師|엔카시일본어라고 불렸다. 최초의 엔카 노래는 ダイナマイト節|다이나마이토부시일본어라고 알려져 있다.[18] 이 시대의 노래에는 가와카미 오토지로의 "오페케페"가 포함된다.[19]
다이쇼 시대(1912년–1926년)에는 엔카시(演歌師)가 바이올린을 도입하기 시작하여 그들의 노래는 바이올린 엔카라고 불리게 되었다. 당시의 엔카시로는 사쿠라이 도시오( 桜井敏雄|사쿠라이 도시일본어오)가 있으며, 그는 오카 하루오를 가르쳤다.[20]
현재 일본에서는 도로교통법이 거리 공연자의 모습을 규제하고 있다. 그러나 후쿠오카 우타지(福岡詩二|후쿠오카 우타지일본어)와 같은 일본 공연자들은 여전히 다이쇼 시대의 엔카를 부르고 있다.[21] 1995년 대지진이 발생했을 때, 록 밴드 소울 플라워 유니온의 음악 프로젝트인 소울 플라워 모노노케 서밋은 재해 피해자들의 사기를 북돋우기 위해 소시 엔카를 연주했다.[22]
4. 2. 1920년대~1940년대: 류코카 시대
1920년대 후반 쇼와 초기, 레코드 회사들은 엔카시(演歌師) 대신 류코카(流行歌)를 제작했다.[23] 엔카시는 기타를 사용하기 시작했고, 나가시(流し)라고 불렸다.[3] 1939년 오카 하루오(岡晴夫)는 킹 레코드에서 "국경의 봄"(Kokkyō no Haru, 国境の春)이라는 노래로 데뷔했다.[24] 그러나 엔카라는 용어는 전후에는 일반적이지 않게 되었다.[3]4. 3. 1940년대 후반~1954년: 새로운 가수들의 등장
1948년, 가스가 하치로는 킹 레코드의 신인 발굴대회에서 우승하여 다음 해에 데뷔했다. 그의 선배는 오카 하루오였다. 1952년 발매된 가스가 하치로의 데뷔 싱글 赤いランプの終列車|아카이 람푸노 슈렛샤|붉은 등불의 종착역일본어은 큰 인기를 얻었다.[26] 가부키풍 노래 お富さん|오토미 상일본어은 원래 오카 하루오를 위해 만들어졌지만, 가스가 하치로가 부르게 되면서 1954년 일본에서 큰 인기를 얻었다.[26] 가스가 하치로는 그 해 "오토미 상"으로 NHK 홍백가합전에 처음 출연했다.[27]한편,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후 일본에서는 재즈가 인기를 얻으면서, 미소라 히바리는 1949년 불과 12세의 나이로 일본 컬럼비아에서 "카파 부기우기"를 발표하며 데뷔했다.[25] 그녀는 1950년대와 1960년대에 걸쳐 재즈 노래를 불렀으며, 이후 60년대와 70년대에는 많은 엔카를 불렀다.[25]
"오토미 상"의 작곡가인 토쿠치 마사노부는 오키나와섬에서 태어나 아마미오시마에서 자랐으며, 류큐 열도의 음악을 일본 주류에 소개하는 데 중요한 인물이 되었다.[28]
4. 4. 1955년~1959년: 현대 엔카의 초기 역사
카스가 하치로는 후나무라 토루가 작곡한 "와카레노 잇폰스기(작별의 한 그루 삼나무)"를 녹음했다.[2] 이 노래는 1955년에 발매되었고, 나중에 진정한 엔카 노래로 여겨졌다.[29] 역설적이게도 이 노래는 탱고 음악의 리듬의 영향을 받았는데, 후나무라가 탱고가 지역적 색채 면에서 엔카와 비슷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29] "와카레노 잇폰스기"는 나중에 미하시 미치야, 무라타 히데오, 후지 케이코, 미소라 히바리, 키타지마 사부로, 호소카와 타카시, 이츠키 히로시 등 다양한 가수들에 의해 커버되었다.[30] 카스가는 나중에 최초의 엔카 가수로 불리게 되었다.[2]원래 일본 민요(민요)를 부르고 쓰가루 자미센을 연주했던 미하시 미치야는 1954년에 데뷔 싱글 "사케노 니가사요"를 발매했다.[31] 미하시의 "온나 센도 우타"는 1955년에 히트했다.[31] "와카레노 잇폰스기"의 작사가이자 후나무라의 친구였던 타카노 키미오는 1956년 26세의 나이로 사망했다.[29] 미소라 히바리는 더 이상 십대 아이돌로 여겨지지 않게 되면서 음악 활동을 엔카로 전환했다.[32]
전후 시대 무렵, 전쟁 중에 유명했던 랑요쿠(나니와부시)는 주로 발표 길이가 너무 길다고 여겨졌기 때문에 인기가 떨어졌다. 반면에 그 무렵 인기를 얻게 된 엔카는 랑요쿠의 축약판이라고 여겨졌는데, 무라타 히데오와 미나미 하루오 등 여러 엔카 가수들이 원래 랑요쿠 가수였고 엔카는 랑요쿠와 공통된 주제를 많이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33] 엔카에 영향을 미친 주목할 만한 랑요쿠 가수로는 토추켄 쿠모에몬이 있는데, 그의 제자의 제자가 바로 무라타였다.[33] 미나미 하루오는 1957년에 데이치쿠 레코드에서 데뷔했고, 무라타는 1958년에 니폰 컬럼비아에서 데뷔했다. 무라타는 코가 마사오가 작곡한 "진세이 게키죠"(인생 극장)를 커버했다.[15] 미나미 하루오는 당시 남성 가수에게는 드문 스타일이었던 기모노를 입는 것으로 유명했다.[34]
1955년경부터 라디오가 지방에 보급됨에 따라 지방을 무대로 한 음악("'''시골풍'''")이 만들어졌다. 이들은 떠돌이극이나 후의 "향토곡"과 같은 양식화된 지방이 아니라, 상경 후의 "고향 그리움"을 테마로 하는 경우가 많았다(카스가 하치로 "이별의 한 그루 삼나무", 시마쿠라 치요코 "만나고 싶어요 그 사람을", 미하시 미치야 "사과 마을에서" 등). 작곡가로는 후나무라 토루가 있다. 시마쿠라는 앞서 언급한 기생풍의 창법을 사용하고, 미하시는 처음으로 민요풍의 발성을 레코드에 담는 등 시골풍은 논단에서는 열세인 "일본풍"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시골풍 음악은 회화적인 가사에 기복이 풍부한 선율이 붙은 것으로, 도시풍이 압도하고 있던 레코드 가요에 충격을 주었다.
4. 5. 1960년대~1970년대: 상업적 성공
1960년대 초, 엘비스 프레슬리의 영향을 받은 로큰빌리가 일본에서 인기를 얻었다. 하지만 많은 일본 음악 평론가들은 로큰빌리를 비판했고, 이에 무라타 히데오(村田英雄)의 1961년 곡 "오쇼(大将)"는 "순수 일본식" 스타일의 노래로 백만 장 이상 판매되며 큰 성공을 거두었다.[36] 같은 해, 사카모토 큐(坂本九)가 "위를 보고 걷자"(스키야키)로 NHK 홍백가합전(紅白歌合戦)에 처음 출연했을 때, 무라타 히데오 역시 "오쇼"로 데뷔했다.[37]1960년대에는 하시 유키오(橋幸夫)(1960년), 키타지마 사부로(北島三郎)(1962년), 미야코 하루미(都はるみ)(1964년) 등 젊은 엔카 가수들이 등장했다. 고바야시 사치코(小林幸子)는 1964년 만 10세의 나이로 데뷔했다. 미소라 히바리(美空ひばり)(1937~1989)는 "엔카의 여왕"이자 "쇼와의 여왕"으로 불리며 가장 유명하고 사랑받는 엔카 가수로 꼽힌다. 그녀의 노래 "야와라(柔)"는 1965년 일본 레코드 대상(日本レコード大賞)에서 대상을 수상했다.[38]
1966년 아오에 미나(青江三奈)는 "황홀한 블루스(恍惚のブルース)"로 "엔카-블루스" 장르를 개척했다.[39] 모리 신이치(森進一)는 1966년 데뷔, 1969년 곡 "항구 마을 블루스(港町ブルース)"로 오리콘 차트 5주간 1위, 100만 장 이상 판매를 기록했다.[40] 후지 케이코(藤圭子)는 1969년 데뷔했으며, 그녀의 활동으로 전후 사용되지 않던 "엔카"라는 용어가 부활했다.[3]
1970년 후지 케이코의 "케이코의 꿈은 밤에 피어난다"는 일본 레코드 대상 인기상과 일본 가요 대상(일본가요대상) 대상을 수상했다. 그녀의 앨범 "신주쿠의 여자/엔카의 별 후지 케이코 전곡(新宿の女/"演歌の星" 藤圭子のすべて)"은 오리콘 차트 20주 연속 1위라는 기록을 세웠다.[41] 1972년 미야 시로(宮史郎)와 핑카라 트리오의 "여자의 길(女のみち)"은 오리콘 차트 16주 연속 1위, 325만 장 이상 판매되며 일본에서 두 번째로 많이 팔린 싱글이 되었다.
이츠키 히로시(五木ひろし)의 "밤하늘(夜空)"은 1973년 일본 레코드 대상 대상을 수상했다. 모리 신이치의 "에리모 곶(襟裳岬)"은 요시다 타쿠로(吉田拓郎)가 작곡했지만 1974년 일본 레코드 대상 대상을 수상했다. 미야코 하루미의 "북쪽 여관에서"도 1976년 일본 레코드 대상 대상을 받았다. 1970년대에는 이시카와 사유리(石川さゆり)와 호소카와 타카시(細川たかし)가 데뷔했다.[31]
4. 6. 1980년대~1990년대: 정의 상실과 쇠퇴
호소카와 다카시의 노래 "키타 사카바"는 1982년 제24회 일본 레코드 대상에서 대상을 수상했다.[31] 그는 이듬해 나오미 치아키의 원곡 "야기리노 와타시"를 커버했는데, 이 노래 역시 다음 일본 레코드 대상에서 대상을 수상했다.[31] 1983년 미하시 미치야의 작품 총 판매량은 1억 장을 돌파하여 일본 최초로 이 기록을 달성한 아티스트가 되었다.[31]1986년 6월 11일, 아이돌 그룹 오냥코 클럽의 멤버였던 고쿠쇼 사유리는 아키모토 야스시가 작사한 엔카 싱글 "아지사이바시"를 발매하여 오리콘 주간 싱글 차트에서 1위로 데뷔했다.[43] 요시 이쿠조의 1986년 싱글 "유키구니"는 1987년 오리콘 차트 1위 싱글 300곡이 되었다.[44]
그 무렵 등장한 다른 새로운 엔카 가수로는 사카모토 후유미와 후지 아야코가 있다. 미소라 히바리는 50세의 나이에 1987년 12월 10일 싱글 "미다레가미"를 발매하여 오리콘 주간 차트에서 9위에 올랐다.[45] 아키모토 야스시는 그녀의 1989년 싱글 "강물처럼(Kawa no Nagare no Yō ni)"의 가사를 썼다. 그러나 그녀는 1989년에 사망했고, 엔카의 영역은 가요쿄쿠 장르로 확장되었지만, 가요쿄쿠 장르 자체는 쇠퇴해 갔다.[11]
1991년 카스가 하치로가 사망했다. 엔카의 전통적인 주제가 젊은 일본인들에게 더 이상 인기를 얻지 못하고 서구식 J-POP 음악이 더욱 인기를 얻으면서 엔카의 판매량은 감소했다. 그러나 이 장르는 여전히 많은 지지자들을 보유하고 있었다. TV 프로그램 외에도 엔카는 많은 음식점, 주점, 가라오케 바, 카페에서 들을 수 있었다. 반면에 후지 케이코의 노래 "케이코노 유메와 요루 히라쿠"와 같은 어두운 엔카 노래가 인기를 얻었을 때는 주목받지 못했던 밝은 엔카 가수 텐도 요시미는 1993년 처음으로 홍백가합전(Kōhaku Uta Gassen)에 출연했다.[46] 타가와 토시미와 사카모토 후유미와 같은 다른 새로운 엔카 가수들도 TV 엔카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엔카를 계속해서 이어나갔다. 대만의 디바 등려군(Teresa Teng) 또한 1995년 42세의 나이로 사망할 때까지 1970년대부터 일본어로 노래를 부르고 엔카 노래를 커버했다.
4. 7. 2000년대: 음악적 혼합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일본 젊은 세대 사이에서 엔카의 인기가 다시 높아졌다. 히카와 키요시는 2000년 데뷔 싱글 "하코네 하치리노 한지로"로 큰 인기를 얻었다.[47] 당시 모닝구 무스메 멤버였던 나카자와 유코의 초기 솔로 앨범도 엔카였다. 미즈키 나나 역시 어린 시절부터 엔카를 배워, 성우이자 가수로 활동하며 2000년에 킹 레코드에 출연했다.[47]2004년에는 칸쟈니∞가 테이치쿠 레코드에서 "나니와 이로하 부시"를 발표하며 데뷔했다. 이 곡은 가와치 온도를 기반으로 랩을 더한 것이 특징으로, 오리콘 주간 싱글 차트 1위를 차지했다. 이는 1987년 이시하라 유지로 이후 17년 만에 엔카 싱글이 1위를 차지한 기록이었다.
2005년, 히카와 키요시는 "하츠코이 렛샤"로 오리콘 차트 1위에 올랐다. 베테랑 가수 아키모토 준코도 킹 레코드에서 데뷔했으나, 그녀의 음악 스타일은 70년대 가요곡에 가까웠다.[48]
2006년, 이츠키 히로시는 "타카세부네"로 22년 만에 톱 10에 진입했다.[49] 히카와 키요시의 "이켄"은 제48회 일본 레코드 대상에서 대상을 받았다. 2007년, 칸쟈니∞는 임페리얼 레코드로 이적했다. 나카모리 아키나는 엔카 곡들로 채워진 앨범을 발표하며 엔카에 대한 존경을 표했다.
2008년, 아키모토 준코는 "아이노 마마데…"로 61세의 나이에 오리콘 차트 1위를 차지한 최고령 솔로 가수가 되었다.[50] 같은 해, 히카와 키요시는 "료쿄쿠 이치다이"와 "토키메키노 룸바"로 연속 1위를 기록했다. 사카모토 후유미의 2009년 노래 "아시아노 카이조쿠"는 나카무라 아유미가 작곡한 엔카 곡으로 록 음악적인 요소를 담고 있었다.[51] 사카모토는 "나카무라 아유미가 부르면 록 음악이지만, 제가 부르면 엔카가 된다"고 말했다.[51][52]
4. 8. 2010년대 이후
2010년 1월 1일, 기타지마 사부로는 73세의 나이로 싱글 夫婦一生|부부 일생일본어을 발매하여 오리콘 주간 차트 10위에 올랐다. 이는 70대에 톱 10에 진입한 최초의 솔로 아티스트라는 기록이다.[53] 2010년 3월 19일, 사카모토 후유미는 싱글 "다시 너를 사랑하고 있어/아시아의 해적"으로 오리콘 차트 9위에 올라, 1989년 이후 21년 만에 톱 10에 진입했다.[54]헤이세이 시대(1989년~2019년)에 들어서면서 J-POP이 등장했고, 엔카는 엔카·가요곡(演歌・歌謡曲)으로 불리며 오리콘 차트(オリコンチャート)에 「엔카·가요곡 부문」이 신설되었다. 이 시대에 엔카 시장 규모는 꾸준히 축소되었다. 1996년에는 오리콘 연간 싱글 차트 100위 안에 엔카가 한 곡도 진입하지 못했다.[71] 헤이세이 30년 동안 오리콘 연간 랭킹 20위 안에 든 엔카는 2000년 오이즈미 이츠로의 「손자(孫)」뿐이었다. 1990년대 후반에는 레코드 회사들이 엔카 부문에서 철수하고, 대가수조차 감원되는 상황이 벌어졌다.
1990년대 후반에는 TV 프로그램에서 히트곡이 탄생하기도 했다. 일본TV의 『톤네루즈의 생방송 막 나가는 방송!!』 기획에서 탄생한 켄사부로 & 조지 야마모토의 로망-ROMAN-(浪漫-ROMAN-), NHK의 『푸타릿코』의 극중가였던 오로라 테루코의 「부부길(夫婦みち)」 등이 그 예이다.[73]
2000년대 전반에는 J-POP의 부진으로 CD 판매량에서 엔카의 점유율이 상대적으로 상승했다.[74] 2008년에는 아키모토 준코의 사랑 그대로…(愛のままで…), 제로의 바다눈(海雪) 등의 히트로 엔카·가요곡의 점유율이 10%대까지 회복되었다.[75]
헤이세이 시대에는 카스가 하치로, 미하시 미치야, 미나미 하루오, 무라타 히데오 등 엔카의 기반을 닦은 남성 가수들과 미소라 히바리, 시마쿠라 치요코 등 여성 가수들이 세상을 떠났다. 또한 작사·작곡가 등 공동 제작자가 줄어들고 팬들의 고령화가 진행되었다.[76]
오이즈미 이츠로의 "손자" 이후 큰 히트곡이 없는 가운데, 일본 레코드 대상에서도 2006년 히카와 키요시의 일검(一剣) 이후 엔카계에서 대상 수상자가 나오지 않았다.[78] 2015년 이후에는 엔카 가수들이 팝스풍의 싱글을 발표하기도 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콘서트나 홍보 활동 현장 판매에 의존하던 CD 판매량이 급감했다.[76] 2022년 음악 시장 규모에서 엔카는 1.4%에 그쳤다.[79]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 정치의 지원을 요청하는 목소리도 나왔다.[80] 2016년 3월, 자민당 니카이 도시히로의 제안으로 의원 연맹 "엔카·가요곡을 응원하는 국회의원 모임(엔카 의련)"이 발족했다.[80] 이츠키 히로시는 2020년 도쿄 올림픽에서 장르와 세대를 초월한 많은 아티스트들이 주제가를 부르는 것을 제안하기도 했다.[83][84]
한편, 지바텔레비방송 등 일부 독립 방송국에서는 엔카 정규 프로그램을 방송하고 있으며, 타츠미 유토, 니이하마 레온 등 2010년대에 데뷔한 가수들을 "엔카 제7세대"라 부르기도 한다.[87][88]
또한, 니코니코 동화에서 "최종 보스"라는 애칭으로 젊은 세대에게 친숙한 고바야시 사치코[89], 유튜브에서 해외 인기를 얻은 미타 료[99], 미국의 페스티벌에 출연한 칸노 미카[90], 프랑스에서 살롱 드 파리 종신 회원 칭호를 얻고 2022년 파리 공연을 개최한 야시로 아키[91] 등 디지털 전환을 활용하거나 해외로 활동 무대를 확장하는 엔카 가수들도 늘어나고 있다. 2022년에는 한국인 DJ 나이트 템포가 호소카와 타카시의 "북쪽 술집"을 리에디트[92][93][94]한 버전이 발매되는 등 국경을 초월한 엔카 팬 확보에도 기대가 모아지고 있다.
5. 한국과의 관계
한국에서는 일제강점기에 들어온 일본의 엔카에서 유래한 것으로 여겨지는 트로트라는 장르가 있다[95].
6. 해외에서의 엔카
엔카는 한때 일본 식민지였던 타이완의 음악에 큰 영향을 미쳤다.[55]
최초의 비일본인 엔카 가수는 인도 출신의 사르브짓 싱 차다였다. 그의 엔카 앨범은 1975년에 발매되어 일본에서 15만 장이 팔리는 성공을 거두었다. 그는 몇 년 후 인도로 돌아갔지만 2008년에 일본으로 돌아왔다.[56]
2002년에는 필리핀 출신의 욜란다 타시코가 최초의 필리핀 엔카 가수가 되어 "시아와세니 나로", "나가이 아이다" 등의 싱글을 가지고 일본으로 진출했다.
미국에서는 엔카가 주로 (대체로 고령의) 일본계 미국인들 사이에서 인기를 유지하고 있지만, 비일본인 팬들도 많다. 산호세 치도리 밴드와 같이 미국에서 활동하는 엔카 오케스트라와 연주자들이 있으며, 여름에는 오봉 축제에서 공연하기도 한다.
타이완에서는 전전에 일본어 교육을 받은 세대가 일본의 노래를 즐겨 들었던 것으로부터, 타이완 가수들에 의해 일본의 엔카가 가요쇼 등에서 불려왔을 뿐만 아니라, 타이완어로 된 커버곡도 많이 등장하여, 일본에서 히트한 엔카의 대부분은 타이완어(일부는 국어 (중국어)인 베이징어)로 커버되는 상황이 계속되어 왔다. 또한 타이완에서 작곡된 오리지널 엔카도 많으며, 그 소재와 가창법은 일본의 엔카와 다르지 않다. 타이완 가요계에서는 전후 오랫동안 팝스=베이징어, 엔카=타이완어라는 언어에 의한 분담이 계속되었기 때문에, 엔카는 「타이어우거(台語歌)」라고도 불린다. 일본에서 엔카의 쇠퇴가 말해지는 현재에도, 타이완에서는 엔카의 인기는 여전히 높고, 텔레비전에서는 엔카를 중심으로 한 가요 프로그램이 정기적으로 방송되고 있으며, 일본어 원곡과 타이완어 커버곡을 번갈아 가며 부르는 등의 연출도 일반적이다.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를 중심으로 한 동남아시아에는 중국계 주민이 많으며, 그중 복건성 출신 주민들은 타이완어와 거의 같은 언어(민남어)를 사용하기 때문에, 타이완어로 불려진 일본 엔카와 타이완어 오리지널 엔카가 "복건가(福建歌)" 또는 "Hokkien Song"으로서 널리 퍼져 있으며, 현지 작사가에 의해 새롭게 가사를 붙인 커버곡도 존재한다. 인도계 가수 중에서도 복건가(즉, 엔카)를 주로 부르는 가수도 있다. 또한, 이러한 엔카들은 태국어, 베트남어, 크메르어, 말레이어, 인도네시아어 등 현지 언어로 다시 커버된 곡도 있지만, 일반적으로 "중국어 노래의 커버"로 인식되고 있다.
중국에서는 등려군 등 대만 가수들이 표준중국어로 부른 일본 엔카가 널리 보급되어 있지만, 이러한 엔카는 일반적으로 대만 노래로 인식되어 "대만 노래"라고 불린다. 또한 1980년대에는 북국의 봄을 중국 가수가 커버하여 유행한 적도 있다.
아프리카계 미국인인 제로는 유년 시절 일본인 할머니에게서 엔카를 접하고, 2008년 일본에서 엔카 가수로 데뷔했다. 또한 2010년에는 래퍼인 예(Kanye West)(당시는 카니에 웨스트)가 자신의 앨범 「My Beautiful Dark Twisted Fantasy」의 수록곡 「Dark Fantasy」에서 梶芽衣子의 「은조 나그네새」를 샘플링하여 판매원인 테이치쿠 엔터테인먼트와 분쟁 소동을 일으켰다.[96]
2007년 브라질 상파울루에서 열린 일본계 이민 100주년 기념 행사에서는 일본 음악으로 엔카가 연주되었다. 또한 다이조 바네사나 미나미 카나코와 같은 남미 출신의 일본계 엔카 가수들도 있다.
포르투갈의 민속 음악인 파두는 엔카와 유사성이 높다고 여겨진다.[97] 인도 고아 지방의 고아 가요는 포르투갈의 영향을 받아 엔카와 유사성이 높다고 알려져 있다.[98]
중앙아시아의 키르기스스탄에서는 2013년 8월, 미타 료가 키르기스스탄 독립 22주년 기념 콘서트에서 '바람의 여행자'를 공연하여 5만 명 이상의 관객으로부터 찬사를 받았으며, 그 모습은 이듬해 동영상 공유 사이트 유튜브에 게시되어 2개월 만에 100만 회 재생을 기록하며 활약을 보였다.[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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