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석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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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금석학은 고대 비문을 연구하는 학문으로, 16세기부터 발전해 왔다. 유럽 금석학은 라틴어 비문에 집중했으며, 《라틴어 비문집》과 같은 방대한 자료를 통해 연구가 이루어졌다. 그리스 금석학은 《그리스 비문집》과 《그리스 비문》을 중심으로 발전했으며, 다양한 언어와 문화권의 비문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금석문의 내용은 종교, 정치, 사회, 예술 등 다양한 분야를 포괄하며, 재료와 기법은 시대와 지역에 따라 다르다. 금석학은 에피도크, 고고학 등 다양한 학문 분야와 관련 있으며, 자모표, 묘비명 등 여러 종류의 비문이 존재한다. 베히스툰 비문, 로제타석 등 다양한 비문들이 금석학 연구의 중요한 자료로 활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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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석학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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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석학 | |
학문 분야 | 역사, 고고학, 언어학의 보조 학문 |
연구 대상 | 비문 |
주요 연구 내용 | 비문의 판독 및 해석 비문의 제작 시기 및 배경 연구 비문에 나타난 역사적 사실 규명 비문을 통해 과거 사회의 문화, 정치, 경제, 종교 등 이해 |
개요 | |
정의 | 비문에 새겨진 내용, 형태, 제작 방법 등을 연구하는 학문 |
어원 | 그리스어 "ἐπιγραφή" (epigraphē, 'inscription'의 의미) |
관련 학문 | 고고학 역사학 언어학 문헌학 미술사학 종교학 |
연구 방법 | |
비문 판독 | 비문에 새겨진 문자 또는 기호를 정확하게 읽어내는 과정. 손상된 비문의 경우, 문맥과 다른 비문의 사례를 참고하여 추정하기도 함. |
비문 해석 | 판독된 내용을 바탕으로 비문의 의미를 해석하는 과정. 당시의 역사적, 문화적 배경 지식이 필요함. |
비문 분석 | 비문의 재료, 제작 기법, 내용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하여 비문의 성격과 가치를 평가하는 과정. |
디지털 기술 활용 | 3D 스캔을 통한 비문 디지털 이미지 획득 및 분석 데이터베이스 구축을 통한 비문 정보 관리 및 공유 |
비문의 종류 | |
묘비명 | 무덤에 세워진 비석에 새겨진 글 |
기념비 | 역사적 사건이나 인물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비석 |
건축 명문 | 건축물에 새겨진 글 |
봉헌 명문 | 신에게 바치는 글 |
낙서 | 벽이나 물건 등에 긁거나 써서 남긴 글 |
금석문 위조 | |
위조 목적 | 역사적 권위 주장 종교적 목적 달성 고고학적 가치 조작 |
위조 사례 | 예루살렘의 야곱의 뼈 상자 위조 논란 |
역사 | |
기원 | 고대 문명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그리스, 로마 등) |
중요성 부각 시기 | 19세기 (고대 문명 발굴 및 연구 활발) |
현대의 금석학 | 디지털 기술 발전으로 새로운 연구 방법론 도입, 연구 범위 확장 (고대부터 현대까지의 모든 종류의 비문) |
2. 역사
금석학은 16세기부터 꾸준히 발전해 왔다. 금석학의 원리는 문화권마다 다르며, 각 문화권은 고유한 특징을 보인다.
유럽 외 지역에서도 금석학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이집트 상형 문자는 로제타석을 사용하여 해독되었는데, 이는 고대 그리스어, 민중 이집트어 및 고대 이집트 상형 문자로 된 다국어 비석이었다. 이 작업은 프랑스 학자 장 프랑수아 샹폴리옹과 영국 과학자 토머스 영이 수행했다.
마야 상형 문자의 해석은 중앙 아메리카에 대한 스페인 정복의 결과로 사라졌으나, 최근 마야 금석학자들과 언어학자들의 연구를 통해 이 복잡한 필기 시스템에 대한 상당한 양의 정보가 얻어졌다.[8] 하버드 대학교의 이안 그레이엄을 중심으로 마야 문명 유적의 비문 전집인 「마야 신성 문자 비문 전집(Corpus of Maya Hieroglyphic Inscriptions)」이 1975년부터 간행되었다. 주요 유적으로는 나란호 (2권) (1975~1980년), 야슈칠란 (3권) (1977~82년), 우슈말 (4권 제2부, 제3부) (1992년), 슐투운 (제5권 제1부, 제2부) (1978년, 1984년), 토니나 (6권) (1983~1999년), 세이발 (제7권 제1부) (1996년), 피에드라스 네그라스 (제9권 제1부) (2003년) 등이 있다.
유럽의 금석학은 문자 문화를 다루는 경우 고고학의 주요한 도구 중 하나가 된다. 미국의 미국 의회 도서관 분류표에서는 역사의 보조 학문으로 분류된다. 금석학은 위조품 식별에도 활용된다. 새겨진 문자 자체는 금석학의 주요 연구 대상이지만, 명문의 내용과는 별개로 취급된다. 명문의 본문(텍스트)은 텍스트 자체로 연구된다. 돌에 새겨진 명문(텍스트)은 대개 공식 견해이거나 베히스툰 비문처럼 신의 관점에서 새겨져 있으며, 각 문화마다 본질적으로 다르다. 새겨진 명문(텍스트) 중 공개되지 않는 것도 있다. 미케네 문명의 선 문자 B는 경제적, 정치적 기록을 보존하기 위해 사용되었음이 해독을 통해 밝혀졌다. 비공식 기록으로는 낙서(graffiti)와 같은 독자적인 감각으로 쓰인 것도 있다.
2. 1. 유럽의 금석학
유럽의 금석학은 16세기부터 꾸준히 발전해 왔다. 초기에는 라틴어 비문 연구에 집중했으며, 게오르크 파브리치우스, 테오도르 몸젠, 루이 로베르 등 여러 학자들이 금석학 발전에 기여했다.몸젠 등이 시작한 《라틴어 비문집(Corpus Inscriptionum Latinarum)》은 1863년부터 현재까지 베를린에서 출판되고 있으며, 라틴어 비문의 가장 크고 광범위한 컬렉션이다. 비문이 계속 발견됨에 따라 새로운 분책이 여전히 제작되고 있다. 《라틴어 비문집(Corpus Inscriptionum Latinarum)》은 지리적으로 배열되어 있는데, 로마의 모든 비문은 6권에 수록되어 있다. 이 권에는 비문이 가장 많이 수록되어 있으며, 6권 8부 3분책은 최근(2000년)에 출판되었다.[31]
그리스 금석학은 다른 팀에 의해 별도의 코퍼스로 발전되었다. 두 가지가 있는데, 첫 번째는 《그리스 비문집(Corpus Inscriptionum Graecarum)》으로, 1825년부터 1877년까지 베를린에서 4권으로 출판되었다. 이는 그리스어를 사용하는 전 세계에서 복사한 그리스 비문의 포괄적인 출판을 시도한 첫 번째 시도였다. 더 나은 판본의 텍스트가 이를 대체했기 때문에 고급 학생들만 여전히 이를 참고한다. 두 번째 현대 코퍼스는 《그리스 비문(Inscriptiones Graecae)》으로, 칙령, 목록, 명예 칭호, 장례 비문 등 범주에 따라 지리적으로 배열되어 있으며, 이 분야의 국제적 중립성을 유지하기 위해 모두 라틴어로 제시되었다.
이 외에도 《에트루리아 비문집(Corpus Inscriptionum Etruscarum)》, 《십자군 비문집(Corpus Inscriptionum Crucesignatorum Terrae Sanctae)》, 《켈트 비문집(Corpus Inscriptionum Insularum Celticarum)》, 《이란 비문집(Corpus Inscriptionum Iranicarum)》 등 다양한 언어와 문화권의 비문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3. 내용
유럽의 금석학은 문자 문화를 다루는 경우 고고학의 주요한 도구 중 하나가 된다. 미국의 미국 의회 도서관 분류표에서는 역사의 보조 학문으로 분류된다. 금석학은 위조품 식별에도 활용된다. 새겨진 문자 자체는 금석학의 주요 연구 대상이지만, 명문의 내용과는 별개로 취급된다. 명문의 본문(텍스트)은 텍스트 자체로 연구된다. 돌에 새겨진 명문(텍스트)은 대개 공식 견해이거나 베히스툰 비문처럼 신의 시각에서 새겨져 있으며, 각 문화마다 본질적으로 다르다. 새겨진 명문(텍스트) 중에는 공개되지 않는 것도 있는데, 미케네 문명의 선 문자 B는 경제적, 정치적 기록을 보존하기 위해 사용되었음이 해독을 통해 밝혀졌다. 비공식 기록으로는 낙서(graffiti)와 같이 독자적인 감각으로 쓰인 것도 있다.
3. 1. 재료와 기법

3. 2. 그리스 비문
그리스 비문은 주로 정치, 사회와 관련된 내용이 많다.초기 그리스의 법률은 나무판에 새겨졌으나 소실되었고, 돌에 새겨진 고르티나 법전과 같은 매우 초기의 법전이 남아있다. 여러 도시에서 식민지 개척민 파견 조건과 시민 권리 보장에 관한 비문도 발견된다. 예를 들어 로크리스인이 나우팍투스에 식민지를 건설했을 때의 약정을 기록한 청동판과, 기원전 6세기 살라미스 섬에 대한 아테네의 식민지화를 설명하는 비문이 있다.[1]
수많은 포고령 형태의 비문이 발견되었는데, 아테네의 포고령은 매우 정형화되어 있어 연대 측정이 가능할 정도이다.[9] 헬레니즘 시대와 그 이후에는 왕과 로마 황제의 편지가 공공장소에 새겨졌다.
공공 회계, 보물 목록, 건축 비문 등을 통해 시민들은 재정 문제에 대한 국가의 통제를 확인할 수 있었다. 피라이에우스의 필론의 아르세날 건축 사양, 에레크테이온 관련 기록, 파르테논 신전 건설 회계 기록 등이 대표적인 예시이다.[10][11][12]
에페비 제도는 비문을 통해 그 변화 과정을 추적할 수 있다. 초기에는 아테네 청소년을 위한 군사 훈련 시스템이었으나, 헬레니즘 시대와 로마 시대에는 국제적인 대학으로 변화하였다.[13]
여러 도시와 국가 간의 조약, 중재 기록도 비문으로 남아있다. 헬레니즘 시대에는 조약의 조항이 더욱 복잡해지는 경향을 보였다.[14] 코린토스와 에피다우로스 간의 국경 분쟁과 같이 중재 기록도 역사적으로 중요하다.
프록세니아는 다른 국가 시민에게 도움을 주는 영사와 유사한 직책으로, 관련 포고령이 많이 남아있다.[15]
국가와 개인에게 주어진 명예와 특권에 대한 기록도 비문에 나타나며, 아테네의 프뤼타네이온에서 식사 초대를 받는 내용 등이 포함된다.
예술가 서명은 미술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를 제공한다. 아티카 도기 화가들의 서명은 역사적, 양식적 연구의 기반이 되었다.[16]

아우구스투스의 아우구스투스의 자서전 (앙카라 기념비)과 파리안 대리석과 같은 역사 기록 비문도 존재한다.[17]
묘비명은 초기에는 단순했으나, 후기에는 더 정교한 칭찬이 추가되었다.[23] 로마 스키피오 가문의 무덤 묘비명은 사투르니안 운율로 업적과 명성을 기록하고 있다.[23]
thumb의 무덤에는 사투르니안 운율로 쓰여진 고대 라틴어 비문이 있다.]]
3. 2. 1. 법률 및 규정
고대 작가들은 아테네의 초기 법률이 나무판에 새겨져 피라미드 형태로 조립되었다고 전한다. 그러나 이 법률은 재료 때문에 소실되었다. 돌에 보존된 매우 초기의 법전은 남아있으며, 특히 고르티나 (크레타 섬)에서 발견된다. 여기에는 극장 모양 구조의 석판에 새겨진 매우 긴 비문이 있는데, 각 열에 50행씩 12개의 열로 구성되어 있다. 이 비문은 주로 상속, 입양 등에 관한 법률을 다루고 있다.[1] 그리스의 많은 지역에서도 이와 유사한 비문들이 세워졌을 것으로 보인다. 여러 도시에서 식민지 개척민을 파견하는 조건과 시민으로서 그들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취해진 조치들을 다루는 흥미로운 비문들도 있다. 한 청동판에는 로크리스인이 나우팍투스에 식민지를 건설했을 때 만들어진 세부적인 약정이 기록되어 있으며, 다른 비문은 기원전 6세기에 살라미스 섬에 대한 아테네의 식민지화를 설명한다.[1]3. 2. 2. 포고령, 왕과 황제의 편지
수많은 비문은 다양한 도시와 민족의 포고령 형태를 띠고 있으며, 그 주제가 다른 범주로 분류되어야 함을 시사하는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거의 모든 입법 조치와 많은 행정 조치들이 이러한 형태를 취하며, 종종 포고령은 비문을 어떻게 어디에 설치해야 하는지를 규정한다. 이러한 포고령의 공식과 전문은 장소와 시기에 따라 상당히 다르다. 아테네의 포고령은 발견된 수가 엄청나기 때문에 가장 정확하게 알려져 있으며, 매우 정형화되어 있어 대수 공식의 정확성으로 분류할 수 있고, 이 테스트만으로도 몇 년 이내로 연대를 측정할 수 있다.[9] 일반적으로 연도(동명의 집정관의 이름으로), 프루타니 (또는 부족별 주재 위원회)의 달과 날짜, 다양한 서기, 주재 관리, 그리고 포고령 제안자를 기록한다. 또한 결의안이 원로원(불레) 또는 민회(에클레시아)에서 통과되었는지, 아니면 둘 다에서 통과되었는지 명시한다. 그런 다음 결의안의 상황이나 이유가 제시되고, 마지막으로 결정 자체가 제시된다. 다른 도시들은 필요한 지역적 변형을 제외하고는 아테네의 포고령 형식을 따랐고, 다른 도시들은 더 독립적인 발전을 보였으며, 다른 행정부나 정부 형태가 다양한 결과를 낳았다. 헬레니즘 시대와 그 이후에는 독립 정부의 형태가 상당 부분 유지되었지만, 실제 권력은 거의 국민에게 남아 있지 않았다. 반면에, 왕의 편지, 그리고 나중에는 로마 황제의 편지가 공공 장소에 새겨져 설치된 것을 흔히 볼 수 있다.3. 2. 3. 공공 회계, 보물 목록, 건축 비문
공공 자금이나 보물의 수령, 보관, 지출에 관한 모든 기록은 돌에 새기는 것이 관례였으며, 이를 통해 시민들은 모든 재정 문제에 있어 국가의 안전과 적절한 통제를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사원 회계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임시 관료 위원회는 각자 후임자에게 그들의 관리 책임과 인계한 자원 및 보물에 대한 보고서를 제출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10] 모든 공공 사업의 경우, 지출은 국가에 의해 명령되었고, 작업이 진행되는 동안 상세한 보고서가 작성되어 돌에 새겨졌다. 많은 경우 건물 작업에 대한 상세한 사양이 있어, 사용된 모든 기술적 세부 사항과 과정을 파악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건물의 전체 계획과 구조를 파악할 수 있었다. 주목할 만한 예는 건축 사양을 바탕으로 건축가들이 종이에 완전히 재구성한 피라이에우스의 필론의 아르세날이다.[10] 에레크테이온의 경우, 기원전 409년에 미완성된 건물에 대한 상세한 보고서뿐만 아니라, 이를 완성하는 데 고용된 노동자들에게 지출된 비용과 지불에 대한 회계 기록도 가지고 있다. 비슷한 회계 기록은 15년에 걸쳐 파르테논 신전 건설에 대해 보존되어 있으며, 파르테논 신전과 에레크테이온 모두에 조각을 제작한 사람들에게 지불된 금액이 포함되어 있다.[11][12]3. 2. 4. 에페보스 제도
에페비 제도는 비문을 통해 주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기관이다. 에페보이와 그들의 보호자, 강사들의 명단 기록뿐만 아니라 종교 의식과 기타 의식에 참여하는 그들의 공로를 기리는 칙령, 그리고 임원들을 기리는 에페비 자체의 결의안도 발견된다. 수 세기에 걸쳐 기록된 비문들을 통해, 원래 18세에서 20세 사이의 아테네 청소년을 위한 신체 및 군사 훈련 시스템으로 시작하여 전초 기지 및 경찰 임무를 수행하던 에페비 제도가 점차 변화해 온 과정을 추적할 수 있다.[13] 후대에는 군사 훈련 강사 외에도 오늘날 예술 및 과학 과목이라고 부르는 주제에 대한 강의를 제공하는 사람들이 추가되었다. 헬레니즘 시대와 로마 시대에는 문명 세계 각지에서 온 청소년들이 지적 중심지로서 아테네로 몰려들면서 에페비 제도가 일종의 국제적인 대학이 되었다.[13]3. 2. 5. 조약, 중재
여러 도시와 국가 간의 조약이나 기타 국제적 성격의 협정을 기록한 비문들이 많이 존재한다. 이러한 비문은 청동이나 돌에 새겨져 관련 도시의 공공 장소나 올림피아, 델포이와 같은 공통 종교 중심지에 세워졌다. 가장 단순한 형태의 조약은 특정 기간 동안의 동맹으로, 위반 시 벌칙이 따르는 경우가 일반적이었다.[14] 조약에는 각 측 대표자의 서약이 규정되거나, 조약이 전시된 신전의 신에게 호소하는 내용, 또는 양측이 맹세해야 하는 신들의 목록이 정해지기도 했다.[14] 동맹 조약에 상품 및 기타 물품의 수출입에 합의하는 상업 조항이 추가되기도 했다.[14] 특히 헬레니즘 시대 왕들의 시대에는 조약의 조항이 더욱 복잡하고 상세해지는 경향을 보였다.[14]주로 국경과 관련된 문제에 대해 여러 국가 간의 중재와 관련된 기록들도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하다. 분쟁 발생 시, 분쟁 당사자들이 제3자를 중재자로 임명하는 경우가 많았다. 때로는 다른 국가가 중재자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특정 수의 개인들이 중재를 맡기도 했다. 예를 들어, 코린토스와 에피다우로스 간의 국경 분쟁에서는 메가라 시민 151명이 중재를 위해 지명되었고, 결정에 이의가 제기되자 그 중 31명이 이를 수정하고 확인했다. 이러한 모든 경우, 중재의 전체 기록을 돌에 새겨 관련 장소에 세우는 것이 관례였다. 아카이아 동맹이 중재에 문제를 회부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한 경우도 있었다.
3. 2. 6. 프록세니아 포고령
프록세니아는 매우 방대한 종류의 비문과 관련이 있다. 어느 국가의 시민이든 다른 국가의 프록세노스로 임명될 수 있었다. 프록세노스의 임무는 다른 국가의 시민이 그의 도시를 방문할 경우 도움과 환대를 제공하고, 분쟁이 발생하거나 법적 권리를 확보하는 데 도움을 주는 것이었다. 이 직책은 현대의 영사 임명과 비교될 수 있는데, 중요한 차이점은 프록세노스는 항상 그가 거주하는 국가의 시민이며, 그가 시민과 이익을 돕는 국가의 시민이 아니라는 것이다. 프록세노스 포고령에는 프록세노스의 임명과 그의 봉사에 대한 보답으로 특정 혜택과 특권을 수여하는 내용이 자주 기록되어 있다. 또한 프록세노스가 봉사하는 도시에서 감사의 결의안을 담고 있으며, 그에게 수여된 명예를 기록하고 있다.[15]3. 2. 7. 개인에게 주어진 명예와 특권
이 종류의 비문은 앞선 종류와 형태가 유사하지만, 국가와 개인을 위한 모든 종류의 공적, 사적 서비스에 대해 주어진 명예가 기록되어 있다는 점이 다르다. 빈번하게 추가되는 내용은 아테네의 프뤼타네이온에서 식사 초대를 받는 것이다. 어떤 비문은 수혜자에게 세워진 조각상 기단에 새겨져 있다. 초기에는 이러한 비문이 대개 간결하고 단순했다. 페리클레스의 아크로폴리스 흉상에는 페리클레스 본인과 조각가 크레실라스의 이름 외에는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았다. 이후에는 수여된 명예에 대한 이유를 자세히 적는 것이 일반화되었고, 헬레니즘 시대와 로마 시대에는 찬양하는 내용이 더욱 상세하고 과장되게 되었다.3. 2. 8. 예술가 서명
조각상, 도기 등 예술 작품에 새겨진 예술가의 서명은 미술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를 제공한다.[16] 특히 초기에는 조각가 이름이 조각상 받침대 기단에 새겨지는 경우가 많았으며, 조각상이 옮겨지거나 파괴되면 쉽게 분리되었다. 조각상과 받침대가 모두 보존된 사례로는 올림피아에서 파에오니오스가 기단에 서명한 ''니케''가 있다. 때때로, 그리고 후대에는 더 빈번하게 예술가의 서명이 조각상 자체의 일부에 새겨졌다. 그러나 잘 알려진 작품의 후기 복사본의 경우, 그 이름이 원작자의 이름인지, 아니면 그의 작품을 복제한 복제자의 이름인지 고려해야 한다.특별한 종류의 예술가 서명은 아티카 도기와 기타 도기 화가들이 자신의 도기에 서명한 이름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러한 서명들은 이들 화가들의 작품에 대한 세밀한 역사적, 양식적 연구의 기반이 되었으며, 서명되지 않은 도기들도 서명된 도기들과 함께 그룹화되어 그리스 예술 작품의 이 분야에 대한 정확하고 상세한 기록을 만들었다.[16]
이러한 서명이 조각상에 부착되어 있을 경우, 그 이름이 실제로 조각상을 만든 사람의 이름인지, 아니면 그의 작품을 복제한 장인의 이름인지 불분명한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리시포스가 조각한 헤라클레스 조각상의 유명한 복제품 두 점이 있는데, 하나는 리시포스의 작품이라고 하고, 다른 하나는 글리콘이 만들었다고 한다. 로마 시대에 더 흔하게 나타나는 예술가 또는 장인의 서명은 램프나 다양한 종류의 용기에 새겨진 도공들의 서명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들은 보통 틀에 새겨져 테라코타나 다른 재료 위에 부조로 나타난다. 이러한 서명들은 다양한 종류의 수공예품의 상업적 확산과 그것들이 제조된 조건에 대한 많은 정보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3. 2. 9. 역사 기록
비문은 대부분 이미 언급된 범주 중 하나에 속하지만, 단순히 기록을 위해 세워진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운동 경기나 기타 대회에서 승리한 사람은 자신의 승리 목록을 비문에 새길 수 있다. 가장 유명한 역사적 기록은 아우구스투스의 아우구스투스의 자서전으로, 여러 곳에 복제되어 세워졌다. 가장 완벽한 사본은 앙카라에서 발견되었기 때문에 앙키라 기념비로 널리 알려져 있다. 옥스퍼드에 있는 파리안 대리석은 파로스에서 발견되었으며, 교육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그리스 역사의 연대기적 기록이다. 이 기록은 가장 초기의 사건들에 대한 전통적인 날짜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17]3. 2. 10. 무덤과 묘비명
초창기 아테네에서는 사망자의 이름, 아버지, 데모스 이름을 함께 표기하는 경우가 많았고, "훌륭하고 현명한 사람"과 같은 관례적인 칭찬 한두 마디가 덧붙여지기도 했다. 전투나 해상에서 사망한 경우에는 사망 상황이 언급되기도 했다. 이러한 묘비명은 흔히 미터법 형태였으며, 주로 헥사미터 또는 엘레지아였다. 후기에는 사망자에 대한 더 정교한 칭찬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지만, 현대의 묘비에 비해 상세하거나 과장된 경우는 거의 없었다.[23]thumb의 무덤에는 사투르니안 운율로 쓰여진 고대 라틴어 비문이 있다.]]
로마의 스키피오 가문의 무덤에 새겨진 초기 묘비명들은 대부분 사투르니안 운율로 그 가문의 다양한 구성원들의 업적과 명성을 기록하고 있다.[23] 공화정 말과 제정 초에는 묘비 머리 부분에 D.M.|D.M.la 또는 D.M.S.|D.M.S.la (Dis Manibus sacrum|디스 마니부스 사크룸la)라는 문구를 새겨 넣어, 고인의 무덤을 죽은 자의 영혼 또는 유령의 집단의 일원으로서 신성하게 했다. 이 문구 뒤에는 고인의 이름, 아버지 이름, 부족, 명예와 칭호, 때로는 나이가 기록되었다. 비문은 종종 H.I.|H.I.la (Hic iacet|히크 야케트la, 여기에 잠들다) 또는 이와 유사한 문구로 끝났다.[23]
3. 3. 라틴 비문
그리스 비문과 거의 같은 방식으로 분류될 수 있지만, 라틴 비문은 처음부터 몇 가지 광범위한 구분을 할 수 있다. 로마와 이탈리아뿐만 아니라 로마 제국 전역에서 형식과 내용 면에서 일반적으로 더 표준화되어 있다는 특징이 있다. 라틴 비문을 해독할 때 어려운 점 중 하나는 이니셜과 약어를 광범위하게 사용한다는 것이다.[19] 이러한 약어는 종류가 매우 다양하며, 일부는 잘 알려진 공식이라 쉽게 해석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특히 경험이 없는 사람들에게 어려움을 줄 수 있다. 종종 동일한 이니셜이 문맥에 따라 여러 다른 의미를 가지기도 한다.'''V.S.L.M.la''' (votum solvit libens merito|서약을 기꺼이 이행함la) 또는 '''H.M.H.N.S.la''' (hoc monumentum heredem non sequetur|이 기념물은 상속자에게 상속되지 않음la)와 같은 몇 가지 일반적인 공식은 큰 어려움을 주지 않지만, 덜 명확하여 추측의 여지를 남기는 공식도 많다. 이럴 때 의미를 결정하는 유일한 방법은, 현대 라틴어 비문학자들이 제시한 이니셜 목록을 검색하여 문맥에 맞는 공식을 찾는 것이다.
그리스 비문과 마찬가지로 로마 비문에도 돌, 대리석, 청동이 가장 흔한 재료였다. 하지만 건물이나 기타 구조물을 식별하고 날짜를 표시하는 데 역사적 가치가 있는 각인된 벽돌과 타일이 더 광범위하게 사용되었다는 차이점이 있다. 날짜와 공무원의 이름이 자주 새겨진 납으로 된 수도관도 마찬가지다. 테라코타 램프에도 제작자의 이름과 기타 정보가 새겨져 있는 경우가 많았다. 무기, 특히 방패에는 소유자의 이름과 부대가 새겨졌으며, 납 디스크는 현대의 식별 디스크와 동일한 용도로 사용되었다. 비문은 그리스뿐만 아니라 로마의 투석탄에서도 발견된다. 또한 극장이나 기타 쇼의 입장권인 ''테세라''도 다양하게 존재한다.
비문의 내용에 관해서는, 수많은 독립적인 도시 국가의 기록과 거의 모든 문명 세계를 포함하는 제국 간에는 분명 상당한 차이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자치구는 로마 시대에도 독립적인 전통의 상당 부분을 유지했으며, 그 결과 그들의 비문은 종종 오래된 공식을 따랐다.
3. 3. 1. 종교
라틴어 비문에서 종교적인 내용은 신전, 제단 등의 봉헌문에서 흔히 발견된다. 이러한 봉헌문에는 신이나 다른 수여 대상, 기증자의 이름이 포함되며, "D.D.|dedit, donavit|바쳤다, 기증했다la"나 "L.M.|libens merito|기꺼이, 합당하게la"와 같은 문구가 자주 사용되었다.[19] 봉헌은 종종 서약의 결과로 이루어졌으며, "V.S.|votum solvit|서약을 이행했다la"라는 문구가 추가되기도 했다.[19]사제직은 정치적인 직책과 연관되어, 개인의 업적 목록에 함께 언급되는 경우가 많았다. 사제직은 특정 계층에게 제한되었는데, 최고위직은 원로원 계급, 그 다음은 기사 계급에게 주어졌다.[19]
아르발 형제단의 고대 노래와 춤에 대한 기록은 종교 의식의 수행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이다. 또한, 로마와 이탈리아 도시들에서 발견된 달력들은 종교 축제와 기념일을 알려주는 역할을 했다.[19]


3. 3. 2. 정치와 사회
라틴어 비문은 내용과 형식면에서 로마 제국 전역에서 표준화되어 있는 경향을 보인다. 라틴 비문을 해독할 때 어려운 점 중 하나는 이니셜과 약어가 광범위하게 사용된다는 것이다.[19]비문의 내용에 있어서는 독립적인 도시 국가의 기록과 제국 간에 차이가 존재한다. 하지만 자치구는 로마 시대에도 독립적인 전통을 유지하여, 그들의 비문은 종종 오래된 공식을 따랐다.
로마 비문의 분류는 그리스 비문과 유사하지만, 그리스에서는 발견되지 않는 다른 범주들이 존재한다. 종교적 목적의 다양한 칼리지(collegia)가 있었는데, 로마와 이탈리아, 지방 자치 도시에는 사제직 성격의 칼리지가 많았다. 아우구르, 페티알레스, 살리이와 제정 시대의 소달레스 디보룸 아우구스토룸la 등은 원로원 계급에게만 열려 있는 높은 지위의 직책이었다. 하러스펙스와 루페르키는 기사 계급이었다.
3. 3. 3. 예술가 서명
그리스 비문과 마찬가지로 예술가 서명은 미술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다. 특히 초기에는 조각가 이름이 조각상 받침대 기단에 새겨지는 경우가 많았으며, 조각상이 옮겨지거나 파괴되면 쉽게 분리되었다. 조각상과 받침대가 모두 보존된 사례로는 올림피아에서 파에오니오스가 기단에 서명한 ''니케''가 있다.[16] 때때로, 그리고 후대에는 더 빈번하게 예술가의 서명이 조각상 자체의 일부에 새겨졌다. 그러나 잘 알려진 작품의 후기 복사본의 경우, 그 이름이 원작자의 이름인지, 아니면 그의 작품을 복제한 복제자의 이름인지 고려해야 한다.특별한 종류의 예술가 서명은 아티카 도기와 기타 도기 화가들이 자신의 도기에 서명한 이름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러한 서명들은 이들 화가들의 작품에 대한 세밀한 역사적, 양식적 연구의 기반이 되었으며, 서명되지 않은 도기들도 서명된 도기들과 함께 그룹화되어 그리스 예술 작품의 이 분야에 대한 정확하고 상세한 기록을 만들었다.[16]
3. 3. 4. 역사 기록
비문은 단순히 기록으로서 세워지기도 한다. 예를 들어, 운동 경기나 기타 대회에서 승리한 사람은 자신의 승리 목록을 새길 수 있다. 가장 유명한 역사적 기록은 아우구스투스의 아우구스투스의 자서전으로, 여러 곳에 복제되어 세워졌다. 가장 완벽한 사본은 앙카라에서 발견되었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앙키라 기념비로 알려져 있다.[17]중요한 사건을 기념하거나 기록을 보존하기 위해 특별히 만들어진 비문도 있다. 가장 흥미로운 것 중 하나는 가이우스 두일리우스가 카르타고인을 상대로 거둔 대규모 해상전 승리를 기록한 로마의 로스트랄 기둥la 비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원본이 아니라, 이후에 약간 수정된 버전이다. 안키라의 기념비(Monumentum Ancyranum)로 알려진 아우구스투스의 생애와 업적에 대한 요약은 매우 중요한 문서이다. 다양한 종류의 파스티는 집정관, 기타 고위 관리의 이름과 정복 장군에게 주어진 개선을 기록했다.
3. 3. 5. 무덤과 묘비명
로마 제국 전역에서 가장 많이 발견되는 비문은 무덤과 묘비명이다. 이 묘비명들은 인구 분포, 직업, 건강, 장수 등 고대 생활의 다양한 조건에 대한 귀중한 정보를 제공한다.[23] 초창기 아테네에서는 사망자의 이름, 아버지, 데모스 이름을 표기하고, 전투나 해상에서 사망한 경우 사망 상황을 헥사미터 또는 엘레지아 같은 미터법 형태로 기록했다.thumb의 무덤에는 사투르니안 운율로 쓰여진 고대 라틴어 비문이 있다.]]
로마에서는 스키피오 가문의 무덤에 새겨진 초기 비문이 유명하며, 대부분 사투르니안 운율로 가문의 업적과 명성을 기록했다.[23] 공화정 말과 제정 초에는 묘비에 '''D.M.la''' 또는 '''D.M.S.la''' (Dis Manibus sacrum|죽은 자의 영혼에 바침la)라는 문구를 새겨 고인의 무덤을 죽은 자의 영혼에게 바쳤다. 이 문구 뒤에는 고인의 이름, 아버지 이름, 부족, 명예, 칭호, 나이 등이 기록되었다. 비문은 '''H.I.la''' (Hic iacet|여기에 잠들다la) 또는 '''H.M.H.N.S.la''' (hoc monumentum heredem non sequetur|이 기념물은 상속자에게 상속되지 않는다la)와 같은 문구로 끝나는 경우가 많았다. 기념물을 세운 사람과 고인의 관계, 또는 살아있을 때 무덤을 준비한 경우 '''V.S.F.la''' (vivus sibi fecit|살아있는 동안 스스로 만들었다la)로 명시하기도 했다.[23]
3. 3. 6. 이정표와 경계석
terminila라고 불리는 경계석은 공공 및 사유 재산 모두에서 자주 발견된다. 잘 알려진 예로는 그라쿠스 형제 시대에 III. viri A.I.A.la( agris iudicandis adsignandisla)라고 불리는 위원회에서 세운 것들이 있다.[24] 밀리아리움(이정표)은 도로 건설의 기록으로도 볼 수 있다.3. 4. 산스크리트 비문
산스크리트 금석학은 주로 인도와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발견되며, 종교, 철학, 문학, 역사 등 다양한 내용을 담고 있다.[25][26][27][28]4. 관련 학문 분야
5. 비문의 종류
6. 주목할 만한 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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