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강하폭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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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급강하폭격기는 급강하 비행을 통해 목표물을 정확하게 타격하는 폭격기이다. 제1차 세계 대전 중 개발되어 제2차 세계 대전에서 전성기를 누렸으며, 특히 독일의 Ju 87 슈투카, 미국의 SBD 돈틀리스 등이 유명하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미사일과 유도 폭탄의 발달로 인해 전술적 가치를 잃고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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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급강하폭격기 | |
|---|---|
| 개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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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형 | 급강하폭격기 |
| 개발 국가 | 나치 독일 |
| 역사 | |
| 개발 시작 | 1930년대 초반 |
| 실전 배치 | 1937년 |
| 주요 사용 국가 | 나치 독일 이탈리아 왕국 루마니아 왕국 |
| 관련 분쟁 | 스페인 내전 제2차 세계 대전 |
| 제원 (융커스 Ju 87 D-5) | |
| 길이 | 11.1 m (36 ft 5 in) |
| 날개폭 | 15.0 m (49 ft 2 in) |
| 높이 | 4.0 m (13 ft 1 in) |
| 날개 면적 | 39 m² (420 ft²) |
| 자체 중량 | 4,400 kg (9,700 lb) |
| 총 중량 | 6,600 kg (14,600 lb) |
| 엔진 | 융커스 Jumo 211J 액체 냉각식 V12 엔진 |
| 엔진 출력 | 1,044 kW (1,400 hp) |
| 성능 | |
| 최대 속도 | 410 km/h (255 mph, 221 kn) |
| 순항 속도 | 338 km/h (210 mph, 183 kn) |
| 항속 거리 | 795 km (494 mi, 429 nmi) |
| 실용 상승 한도 | 7,500 m (24,600 ft) |
| 상승률 | 208 m/min (682 ft/min) |
| 무장 | |
| 기관총 | 2 x 7.92 mm MG 17 기관총 (전방) 1 x 7.92 mm MG 81Z 기관총 (후방) |
| 폭탄 | 최대 1,800 kg (3,970 lb) |
2. 역사
제1차 세계 대전 동안, 영국 육군 항공대(RFC)는 2인승 복엽 폭격기의 정확도가 서부 전선에서의 작전에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지휘관들은 조종사들에게 진지 및 참호와 같은 작은 목표물을 더 잘 맞히기 위해 순항 고도에서 500 피트 (150 미터)이하로 급강하할 것을 촉구했다.[11] 이는 항공기와 승무원을 보호되지 않은 개방형 조종석에서 파괴적인 지상 화기에 노출시켰기 때문에, 이 명령을 따르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일부는 로그북과 비행대 기록에 급강하 상단과 하단의 고도를 기록했지만, 급강하의 가파른 정도는 기록하지 않았다. 이러한 초기 항공기는 지속적인 수직 급강하의 스트레스를 견딜 수 없었기 때문에, 확실히 수직에 가까운 급강하는 아니었다.[12]
영국 해군 항공대는 독일과 점령된 벨기에의 제플린 격납고를 폭격했으며, 지상 화기로 인한 사상자 증가에도 불구하고, 명중을 보장하기 위해 이러한 격납고에 급강하하는 것이 가치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다시 말하지만, 이러한 공격에서의 급강하 각도는 기록되지 않았다.[11]
1918년 6월 18일부터 RFC의 후계 조직인 영국 공군(RAF)은 소프위스 TF.2 살라만더를 대량으로 주문했다. "TF"는 "참호 전투기"를 의미하며, 이 항공기는 비커스 .303 기관총과 25 파운드 (11 킬로그램) 폭탄으로 적의 참호를 공격하도록 설계되었다. 1918년 10월 말까지 생산된 37대의 살라만더 중 2대만 프랑스로 인도되었으며, 이들이 실전에 투입되기 전에 전쟁이 끝났다.[13] 살라만더가 좀 더 현대적인 용어로는 전투 폭격기 또는 급강하 폭격기로 간주될지는 "급강하"의 정의에 달려 있다. 이 항공기는 조종사를 위한 장갑 보호와 저고도 공격을 위한 연료 시스템을 갖추었지만, 수직 급강하를 위한 급강하 브레이크는 없었다.
참호에 대한 공대지 공격으로 인한 막대한 사상자는 새로 창설된 RAF의 고위 장교들이 급강하 폭격을 반대하게 만들었다. 따라서 항공부가 육상 기반 및 항공모함 기반 급강하 폭격기 모두에 대한 사양을 발표한 것은 1934년이 되어서였다. RAF는 요구 사항을 취소하고 호커 헨리 급강하 폭격기를 다른 역할로 격하시켰으며, 함대 항공대의 블랙번 스쿠아는 육상 기반 전투기의 지원이 미치지 않는 곳에서는 전투기로, 급강하 폭격기로 이중 역할을 수행할 것으로 예상되었다. 이 항공기는 항공모함 착륙을 위한 플랩 역할을 하는 급강하 브레이크를 갖추었다.[14] 호커 헨리는 최고 속도가 호커 허리케인 전투기보다 50 마일 (80 킬로미터) 느릴 뿐이었다. 미국과 일본 해군, 그리고 독일 공군은 현대 전투기와 조우했을 때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하는 저속의 수직 급강하 폭격기를 선택했다.[12]
2. 1. 제1차 세계 대전
영국 해군 항공대(Royal Naval Air Service)는 제플린 격납고에 대항하는 전술로 급강하 폭격을 개발했다.[11] 1914년 10월 8일, 소프위스 태블릿(Sopwith Tabloid)이 뒤셀도르프의 격납고를 공격했고,[11] 11월 14일에는 4대의 아브로 504(Avro 504)가 프리드리히샤펜에 있는 제플린 공장을 공격했다.[11]로열 비행단(Royal Flying Corps)은 기관총과 소형 폭탄을 사용하여 지상 공격을 개발했다.[15] 1915년 덩컨 그리넬-밀른 중위와 아서 굴드 중위는 급강하 폭격으로 철도 조차장과 건물들을 타격했다.[11] 1917년 캉브레 전투(Battle of Cambrai (1917))에서 소프위스 카멜(Sopwith Camel)과 에어코 DH 5(Airco DH 5)가 투입되었으나, 조종사 손실이 매우 컸다.[15] J. F. C. 풀러 중령은 이 결과를 바탕으로 전격전 전술의 기초를 형성했다.[16]
1918년, 윌리엄 헨리 브라운(William Henry Brown (aviator)) 소위는 탄약 바지선을 폭격하여 최초의 함선 공격을 감행했다.[17] 그의 기술은 다른 영국 비행대에 의해 모방되었으나, 막대한 사상자는 20년간 RAF에 영향을 미쳤다.[12]
급강하 폭격은 폭격 조준기의 한계와 기체 강도의 문제를 안고 있었다.[59][61] 미국 육군 항공대는 1919년 아이티와 도미니카 공화국 작전에서 급강하 폭격을 실전에서 실시했다.[62]
미국 해군은 대함 공격 수단으로 연구를 진행하여, 1934년에 SBC를 개발했다.[63] 일본 해군은 1931년부터 급강하 폭격기 개발을 시작하여 94식 함상 폭격기를 완성했다.
겐다 미노루 대위는 "단좌 급강하 폭격기"를 구상했지만, 야마모토 이소로쿠 소장은 항법상의 이유로 기각했다.[64][65] 에른스트 우데트는 독일 공군용 급강하 폭격기 개발에 진력하여 융커스Ju 87을 개발했다.[59] 그러나 독일 공군은 Do 217, Ju 88, He 177에도 급강하 폭격 능력을 요구하여 개발에 실패했다.[59]
2. 2. 전간기
영국 왕립 항공대는 오퍼드네스에서 수행한 시험에서 급강하 폭격이 자살 행위와 같다는 결론을 내리고, 소프위드 살라만더 급강하 폭격기를 퇴역시켰다.[13][18] 반면, 빌리 미첼 대령은 급강하 폭격기의 강력한 옹호자로, 노획한 독일 선박과 구식 미국 선박을 이용한 시험을 통해 급강하 폭격의 유용성을 입증했다.[19][20] 영국과 미국은 급강하 폭격에 대해 상반된 결론을 내렸지만, 양측 해군은 급강하 폭격에 주목했다.[21]1919년, 미국 해병대 (USMC) 조종사 L. H. 샌더슨 중위는 커티스 JN-4를 개조하여 미국의 아이티 점령 중 아이티인에게 갇힌 미 해병대 병력을 지원하는 데 성공했다.[22] 1920년, 샌더슨은 대서양 해안의 USMC 부대 조종사들에게 급강하 폭격 기술을 전수했고, 니카라과 미국의 점령 기간 동안에도 급강하 폭격이 사용되었다.[23] 미국 해군은 1925년부터 항공모함에 커티스 F8C 팰컨 복엽기를 배치했다.[21]
일본 제국 해군은 1931년 하인켈 He 50을 주문하고, 하인켈 He 66을 기반으로 아이치 D1A를 개발했다.[24]

제1차 세계 대전 독일 에이스였던 에른스트 우데트는 헤르만 괴링을 설득하여 커티스 호크 II를 구입하고, 루프트바페의 급강하 폭격기 개발을 추진했다.[12] 융커스 K 47을 거쳐 융커스 Ju 87 ''슈투카''가 개발되었다.[24] 스페인 내전에서 콘도르 군단의 경험은 급강하 폭격기의 가치를 입증했다.[26] 우데트는 융커스 Ju 88과 하인켈 He 177에도 급강하 폭격 능력을 요구했지만, He 177은 실패했다.[27]
이탈리아는 브레다 Ba 65를 스페인 내전에 투입했다.[28] 영국 해군은 1936년부터 페어리 소드피시를, 1938년부터 블랙번 스쿠아를 도입했다. 스쿠아는 해수면에서 의 최고 속도를 낼 수 있었다.[14] HMS ''글로리어스''는 소드피시를 이용한 급강하 폭격 시험을 실시했다.[31] 페어리 앨버코어도 급강하 폭격기 역할을 했다.[32]
영국 항공부는 호커 헨리를 개발했지만, 호커 허리케인 개발에 밀려 표적 견인기로 전락했다.[33] 벌티 A-31 벤전스도 비슷한 운명을 맞았다. 커티스 SBC 헬다이버는 1934년 에 탑재되었지만, 느렸다.[34]
일본은 1940년에 아이치 D3A 발을 도입했다.[28] 베르됭 전투 (1916년)를 통해 국방군은 급강하 폭격기를 탱크와 함께 사용하는 전술을 발전시켰다. 하인츠 구데리안은 판처와 급강하 폭격기를 조합한 전격전을 구상했다.[16]
급강하 폭격은 기체에 큰 부하를 주어 탑재량이 제한되었고, 폭격 조준기의 한계로 인해 수평 폭격의 정확도가 낮아 정확도가 높은 급강하 폭격이 선호되었다.[61][59] 미국 육군 항공대에 의해 실용 단계까지 발전되었고, 1919년, 아이티와 도미니카 공화국에 대한 미국 해병대의 작전에서 최초로 실전에서 실시되었다.[62] SBC는 함상 폭격기로 변경되어 1935년에 급강하 폭격기로 최초 비행했다.[63]
일본 해군에서는 94식 함상 폭격기가 일본 최초의 급강하 폭격기이다. 겐다 미노루 대위는 "단좌 급강하 폭격기"의 시제, 채용을 주장했지만, 찬동을 얻지 못했다.[64] 야마모토 이소로쿠 소장은 전투기를 공격에 사용하는 것에는 찬성했지만, 복좌를 선호하여 겐다의 의견을 기각했다.[65]
에른스트 우데트는 독일 공군용 급강하 폭격기 개발에 진력하여 Ju 87이 개발되었다.[59] 독일 공군은 Do 217, Ju 88, He 177에도 급강하 폭격 능력을 요구했지만, 실패했다.[59]
2. 3. 제2차 세계 대전


제2차 세계 대전에서 급강하폭격기는 추축국과 연합국 양측 모두에서 활용되었다.[35]뇌격이나 수평 폭격에 비해 명중률이 높고 기습 효과가 커 함상 구조물 파괴에 효과적이었다.[50] 또한, 뇌격기보다 운동성이 뛰어나 대공포화 회피에 유리했고, 적 전투기에 대한 자위 전투도 가능했다. 반면, 투하하는 폭탄의 파괴력이 작아 방어력이 높은 함선에는 효과가 제한적이었다.
폴란드 침공(1939년 9월~10월)과 프랑스 공방전(1940년 5월~6월)에서 독일의 Ju 87 슈투카는 전격전 전술의 핵심 요소로 활약했다.[26] 영국 원정군의 방어선을 돌파하고, 세당 전투에서 프랑스 방어선에 300회의 출격을 감행하여 독일군의 진격을 지원했다.[26] 그러나 영국 본토 항공전 (1940년 7월~10월)에서 호커 허리케인과 같은 전투기에 취약함을 드러내어 큰 피해를 입고 작전이 중단되었다.[26]
바르바로사 작전 초기(1941년), 슈투카는 37mm 기관포를 장착하여 전차 파괴에 큰 성공을 거두었다.[37] 한스 울리히 루델은 크론시타트에서 소련 전함 ''마라트''를 격침시키고, 쿠르스크 전투에서 수많은 소련 전차를 파괴했다.[38]
이탈리아의 브레다 Ba.65는 북아프리카에서 영국군을 상대로 사용되었으나 취약한 성능을 보였다.[40] 미군의 커티스 P-40 워호크는 1942년 11월 11일 모로코에서 Ju 87D 15대를 격추하기도 했다.[41]
미국 육군 항공대는 노스아메리칸 P-51 머스탱을 급강하폭격기로 개조한 노스아메리칸 A-36 아파치를 개발하여 아프리카, 시칠리아, 이탈리아 전선에서 사용했다.[42]
영국 해군은 페어리 소드피쉬, 페어리 알바코어, 블랙번 스쿠아를 페어리 바라쿠다로 교체하고, 텅스텐 작전(1944년 4월 3일)에서 HMS ''빅토리어스''와 HMS ''퓨리어스''에서 발진한 42대의 바라쿠다가 독일 전함 티르피츠를 공격하여 큰 피해를 입혔다.[44]
소련은 아르한겔스키 Ar-2와 페틀랴코프 Pe-2를 급강하폭격기로 활용했다.
일본 제국 해군은 아이치 D3A ("Val")를 운용했으나, 전쟁이 진행되면서 엔진 성능과 고정식 착륙 장치의 한계로 구식이 되었다.[45]
미국 해군은 더글러스 SBD 돈틀리스를 주력 급강하폭격기로 사용하다가 커티스 SB2C 헬다이버로 교체했다.[45] 진주만 공습(1941년 12월 7일)에서 일본군은 D3A를, 미군은 SBD를 투입했다.[46] 산호해 해전에서 돈틀리스는 경항공모함 ''쇼호''를 격침시키고 ''쇼카쿠''에 피해를 입혔다.[47]
미드웨이 해전(1942년 6월 4일)에서 미국 해군의 SBD 돈틀리스는 일본 제국 해군의 항공모함 ''소류'', ''가가'', ''아카기'', ''히류'' 4척 모두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주어 격침 또는 대파시키는 최대의 전과를 올렸다.[50][51]
미국 육군 항공대는 돈틀리스의 변형인 더글러스 A-24 반시를 사용했으나, 미쓰비시 A6M 제로에 비해 성능이 부족하여 큰 피해를 입었다.[12]
일본은 요코스카 D4Y를 개발하여 D3A를 대체하려 했으나, 필리핀 해 해전(1944년 6월 19일~20일)에서 큰 손실을 입고 가미카제 공격에 의존하게 되었다.[52]
2. 4. 종언
높은 명중률을 자랑하며 제2차 세계 대전 전반에 대활약한 급강하폭격기는 큰 각도로 급강하할 때 속도가 너무 빨라져 상승 불능 상태가 되는 것을 막기 위해 공력 브레이크(에어 브레이크)를 사용해 속도를 제한했지만, 이로 인해 대공포화에 취약해졌다. 신형 급강하폭격기도 강하 중에는 속도를 줄여야 했기 때문에 같은 문제에 직면했다. 대전 후반에는 근접신관을 사용한 대공화기 성능 향상과 전투기의 엄호 부재로 인해 더욱 큰 위협에 노출되었다.1942년 초, 영국 공군은 에르빈 롬멜의 아프리카 군단 기갑부대를 저지하기 위해 헨리 티저드의 제안으로 로켓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로켓은 얕은 급강하에서 비교적 정확하게 발사할 수 있었고, 기존 항공기에 장착 가능했다.[53] 영국 육군은 영국 본토 항공전 동안 RP-3 로켓을 대전차 무기로 사용했고, 호커 타이푼은 8발의 RP-3 로켓을 장착하여 큰 효과를 발휘했다.[54] 1943년 5월에는 페어리 소드피시와 RAF 연안 사령부 소속 로크히드 허드슨이 특수 로켓을 사용하여 ''U-752''와 ''U-755''를 격침시켰다.[55]
미국은 캘리포니아 공과대학교에서 개발한 고속 항공기 로켓(HVAR)을 D-Day와 태평양 전선에서 사용했다.[56] 리퍼블릭 P-47 썬더볼트는 10발의 HVAR을 탑재할 수 있는 대형 단발 전투 폭격기였다.[57] 1944년 11월, 아브로 랭커스터는 톨보이 폭탄을 투하하여 독일 전함 ''티르피츠''를 격침시켰다. 반스 왈리스가 개발한 톨보이와 그랜드 슬램 폭탄은 철도 고가교와 다리 파괴에 사용되었다.[58] 태평양의 조종사들은 스키핑 폭격 기술을 개발하여 낮은 고도에서 폭탄을 투하했다.
새로운 항공기는 여전히 목표물을 향해 급강하할 수 있었지만, 스마트 폭탄의 발전으로 정확도를 높이고 승무원의 위험을 최소화할 수 있게 되었다. 제트 엔진은 포물선 폭격을 가능하게 했다. 제2차 세계 대전 후반, 미국 해군과 일본 해군은 엔진 출력 향상과 기체 강도 증가로 탑재량을 늘린 급강하 폭격기와 운동성을 높인 뇌격기를 겸하는 기체를 개발했다.[61]
전후 제트기 시대에 접어들면서 폭격 조준 시스템의 진보와 유도 폭탄, 미사일의 등장으로 급강하 폭격이라는 전술은 사실상 소멸되었다. 현대에는 대함 미사일이나 순항 미사일 등에 홉업/다이브 모드가 탑재되는 방식으로 발전했다.
3. 전술 및 운용
3. 1. 급강하 폭격 방식
급강하 폭격기는 통상 45도에서 60도 사이의 가파른 각도로 급강하하며, 융커스 Ju 87과 같은 경우 80도에 달하는 거의 수직에 가까운 급강하를 수행한 후 폭탄 투하 후 급격하게 기수를 들어올려야 한다.[2][3][4] 이는 조종사와 항공기 모두에게 큰 부담을 주며, 강력한 구조와 급강하 속도를 늦추는 수단을 갖춘 항공기가 필요하다.급강하 폭격은 항공기가 수직으로 급강하하면 수평 속도 성분이 최소화되어 폭탄이 투하될 때 중력의 힘이 거의 수직 궤적을 따라 속도를 증가시키는 원리를 이용한다. 폭탄은 투하 시점부터 충돌 시점까지 거의 직선으로 이동하므로 복잡한 계산이 필요하지 않다. 항공기는 목표물을 조준하고 폭탄을 투하하기만 하면 된다. 주요 오류 원인은 투하 후 폭탄의 비행 경로에 대한 바람의 영향이지만, 폭탄은 유선형이고 무거우므로 바람은 폭탄에 약간의 영향만 미치며 폭탄은 목표물의 치명적인 반경 내에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
폭탄 조준은 간단해져서 목표물에 대한 직선 시야만 필요하며, 항공기가 목표물을 정면으로 가리키기 때문에 기수 위에서 조준하는 것이 훨씬 쉬워졌다. 서로 다른 탄도학으로 인한 서로 다른 폭탄의 경로 차이는 표준화된 폭격 고도를 선택한 다음 각 경우에 대해 급강하 각도를 약간 조정하여 수정할 수 있었다. 폭격기가 급강하하면서 조준을 지속적으로 조정할 수 있었다.
급강하 폭격기는 급강하 하단에서 수평을 유지할 때 발생하는 힘은 상당하기 때문에 거의 수직 급강하를 위해 항공기를 개조하고 강화해야 했으며, 이는 성능 손실을 야기했다. 더 큰 강도 요구 사항 외에도, 정상적인 수평 비행 중에는 항공기가 일반적으로 직선으로 수평 비행으로 돌아오도록 설계되었지만, 급강하 상태에 놓이면 항공기에 영향을 미치는 힘의 변화로 인해 조종사가 기수를 내리기 위해 상당한 힘을 가하지 않는 한 항공기가 목표물을 가로질러 이동하게 되며, 이에 따라 정확성이 감소한다. 이를 보상하기 위해 많은 급강하 폭격기는 특수 급강하 플랩 (예: Fairey Youngman 플랩) 또는 수평 미익 트림의 변경을 통해 트림되도록 설계되었으며, 급강하가 완료되면 다시 조정해야 한다.
벌티 Vengeance는 급강하를 위해 트림되도록 설계되었으며, 급강하를 왜곡하는 양력이 없었다. 단점은 수평 비행 시 기수가 위로 올라가 항력이 증가한다는 것이었다. 트림을 재조정하지 못하면 항공기가 급강하에서 벗어나기가 어렵거나 불가능해졌다.[9]
급강하 폭격기는 목표물을 향해 급강하할 때 저고도 지상 화력에 취약했다. 방어자를 향해 직선으로 향하기 때문이다. 다이브 브레이크는 많은 설계에 사용되어 급강하 시 항공기의 속도를 늦추고 정확성을 높이는 항력을 생성했다. 현대 항공기의 에어 브레이크는 과도한 속도를 줄이는 데 유사한 방식으로 작동한다.[10]
3. 2. 지상전에서의 운용
제2차 세계 대전 중 독일 공군은 독일 육군을 지원하기 위해 급강하폭격기를 대포 대신 활용했다. 전차와 함께 전격전 전술의 핵심 요소로, 전차 부대의 돌파구를 만드는 "날아다니는 대포" 역할을 수행했다.[26] 폴란드 침공과 프랑스 공방전에서 급강하폭격기는 파괴적인 효과를 발휘했다.[26] 특히, 1940년 5월 세당 전투에서 프랑스 방어선을 상대로 300회의 출격을 수행하여 독일군이 빠르게 진격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26]그러나 제공권이 확보되지 않은 상황에서는 느린 속도로 인해 적 전투기에 취약하여 큰 피해를 입었다. 영국 본토 항공전에서 큰 손실을 입은 후, 동부전선에서도 독일군이 제공권을 잃으면서 운용이 감소했다.[26] 세당 상공에서 커티스 H-75 6대가 호위 없이 비행하는 Ju 87 편대를 공격하여 피해 없이 12대 중 11대를 격추한 사례는 이러한 취약점을 보여준다.[36]
한스 울리히 루델과 같은 숙련된 조종사는 급강하폭격기를 효과적으로 사용했다. 루델은 소련 전함 ''마라트'' 격침에 기여했으며, 쿠르스크 전투에서 다수의 소련 전차를 파괴했다고 알려져 있다.[38] 쿠투조프 작전에서 루프트바페는 하루에 35대의 전차를 파괴했다고 주장했다.[38]
한편, 연합군은 전투폭격기(미국, 영국)나 습격기(소련)를 지상 지원에 활용했다. 미국 육군 항공대는 노스아메리칸 P-51 머스탱을 개조한 노스아메리칸 A-36 아파치를 투입하여 아프리카 군단을 몰아내는 데 기여했다.[42] 영국 해군은 페어리 바라쿠다를 이용하여 독일 전함 ''티르피츠''를 공격했다.[44] 텅스텐 작전에서 42대의 항공기가 14발의 폭탄을 명중시켜 ''티르피츠''의 작전을 두 달 넘게 중단시켰다.[44]
3. 3. 해상전에서의 운용
제2차 세계 대전 중, 급강하폭격기는 뇌격기에 비해 높은 운동성과 명중률을 바탕으로 함선 공격에 효과적이었다. 특히 함상 구조물 공격에 유리했으며, 함선의 대공 화력 강화로 뇌격기의 공격 효율이 감소하면서 급강하폭격기의 중요성이 상대적으로 커졌다. 다만, 어뢰가 함선에 더 큰 피해를 줄 수 있었고, 대형 함선 격침에는 어뢰 공격이 필수적이었기에 뇌격기와 급강하폭격기는 상호 협력하여 공격했다.급강하폭격기가 투하한 폭탄은 항공기의 궤적을 따라 움직이며, 항력과 중력의 영향을 받아 복잡한 포물선 궤도를 그린다. 이러한 이유로 수평 폭격은 넓은 범위에 폭탄을 투하하는 "면적 폭격"에는 효과적이었지만, 정확도가 중요한 전술 폭격이나 해상 이동 목표물 공격에는 부적합했다. 미드웨이 해전에서 고고도 B-17 폭격기가 일본 항공모함을 공격했지만 단 한 발도 명중시키지 못한 사례가 이를 보여준다.
반면, 급강하폭격은 항공기가 수직으로 급강하하면서 수평 속도 성분을 최소화하여 폭탄이 거의 수직 궤적을 그리게 된다. 따라서 복잡한 계산 없이 목표물에 폭탄을 투하할 수 있었다. 주요 오차 원인은 바람의 영향이었지만, 폭탄의 유선형 설계와 무게 덕분에 바람의 영향은 적었고, 폭탄은 목표물의 치명적인 반경 내에 떨어질 가능성이 높았다.
급강하 폭격 시 조준은 목표물에 대한 직선 시야만 확보하면 되었고, 항공기가 목표물을 정면으로 향했기 때문에 조준이 훨씬 쉬웠다. 또한, 급강하 중 지속적인 조준 조정이 가능했다. 1930년대와 1940년대 초반, 급강하 폭격은 다리와 선박과 같은 고가치 목표물을 정확하게 공격하는 최상의 방법이었다.
벌티 Vengeance는 급강하 시 양력이 발생하지 않도록 설계되어 수직 강하에 완벽했지만, 수평 비행 시 기수가 위로 올라가 항력이 증가하는 단점이 있었다.[9] 급강하 폭격기는 목표물을 향해 급강하할 때 저고도 대공포에 취약했지만, 다이브 브레이크를 사용하여 급강하 속도를 늦추고 정확성을 높였다.[10]
일본 제국 해군과 미국 해군은 급강하폭격기 개발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일본은 아이치 D3A ("Val")를 운용했으나, 전쟁이 진행되면서 엔진 출력 제한과 고정식 착륙 장치로 인한 속도 제한으로 구식이 되었다. 미 해군은 더글러스 SBD 돈틀리스를 운용했으며, 이후 커티스 SB2C 헬다이버로 교체했다.[45]
산호해 해전에서 돈틀리스는 경항공모함 쇼호를 격침시키고, 더글러스 TBD 데버스테이터 뇌격기와 함께 기동 항공모함 쇼카쿠에 피해를 입혔다.[47] 1942년 4월, 일본군은 아이치 D3A로 영국 해군 중순양함 과 를 격침시켰고,[48] 영국 해군 항공모함 와 구축함 도 격침시켰다.[49]
미드웨이 해전에서 미 해군 SBD 돈트레스 급강하폭격기는 일본 해군 항공모함 소류, 가가, 아카기를 공격하여 단시간에 큰 타격을 입혔다.[50] 또한, 히류에 치명적인 피해를 입혔고,[50] 중순양함 미쿠마를 격침시키고, 모가미와 2척의 호위 구축함에 심각한 피해를 입혔다.[51]
미국 육군 항공대는 돈틀리스의 변형인 더글러스 A-24 반시를 운용했으나, 미쓰비시 A6M 제로와의 경쟁에서 밀려 큰 피해를 입었다.[12] 일본은 요코스카 D4Y 스이세이(주디)를 개발하여 Val을 대체하려 했으나, 필리핀 해 해전에서 큰 손실을 입고, 이후 공격은 주로 가미카제로 제한되었다.[52]
4. 주요 급강하폭격기
- 육군
- * 미쓰비시 항공기 97식 경폭격기
- * 가와사키 항공기 98식 경폭격기
- * 가와사키 항공기 99식 쌍발 경폭격기
- * 미쓰비시 항공기 99식 습격기
- 해군
- * 아이치 항공기 94식 함상 폭격기
- * 아이치 항공기 96식 함상 폭격기
- * 아이치 항공기 99식 함상 폭격기
- * 항공 기술창/아이치 항공기 함상 폭격기 혜성
- * 항공 기술창/나카지마 비행기 육상 폭격기 은하
- * 아이치 항공기 수상 정찰기 즈이운
- * 아이치 항공기 함상 공격기 류세이
- * 아이치 항공기 특수 공격기 세이란
- 미국
- * 커티스 SBC 헬다이버
- * 노스롭 BT
- * 보트 SB2U 빈디케이터
- * 더글러스 SBD 돈틀리스
- * 커티스 SB2C 헬다이버
- 영국
- * 블랙번 스쿼
- * 페어리 바라쿠다
- * 페어리 스피어피시
- 루마니아 왕국
- * IAR IAR-81
4. 1. 미국
미국은 커티스 SBC 헬다이버, 노스롭 BT, 보트 SB2U 빈디케이터, 더글러스 SBD 돈틀리스, 커티스 SB2C 헬다이버를 개발하여 운용하였다.4. 2. 영국
영국은 블랙번 스쿠아와 페어리 바라쿠다를 개발하여 사용하였다. 페어리 바라쿠다는 함상 뇌격기와 기종 통합을 이루었다.4. 3. 독일
독일에서는 에른스트 우뎃 항공기총감의 영향으로 급강하폭격기 개발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는 급강하폭격기 외에 본래 수평폭격에 적합했던 Do-217, Ju-88, He-177에도 급강하폭격 능력을 요구했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는 대부분 실패로 돌아갔고, Do-217은 생산 도중 에어브레이크가 철거되었으며, He-177은 급강하폭격이 불가능했다. 융커스 Ju 88은 완만한 강하각도로 가하는 "완강하폭격"만이 가능했다.융커스 Ju 87 (슈투카)가 대표적인 급강하폭격기이다. 「'''Stuka'''」는 급강하폭격기를 전반적으로 가리키는 독일어 단어인 "Sturz Kampf flugzeug"(슈투어츠 캄프 플룩초이크)의 약자이다.
4. 4. 일본
일본 제국 해군은 아이치 항공기의 99식 함상폭격기(D3A)와 해군 항공 기술창/아이치 항공기의 함상폭격기 혜성(D4Y)을 운용했다.4. 5. 소련
소련은 알한겔스키 Ar-2, 페트랴코프 Pe-2, 투폴레프 Tu-2 등의 급강하폭격기를 개발하여 운용했다.5. 한국과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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