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반 (158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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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김반은 김장생의 셋째 아들로, 송익필에게 학문을 배우고 1605년 사마시에 합격하여 관직에 나아갔다. 광해군의 정치에 반대하여 사퇴했다가 인조반정 이후 관직에 복귀했으나 이괄의 난을 겪고 인조를 호종한 공으로 문과에 급제했다. 이후 형조, 사간원, 이조 등 요직을 두루 거쳤으며,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으로 인조를 호종하고 아들을 잃는 슬픔을 겪었다. 정축하성 이후 예조 참판 등을 지냈으며, 1639년 관직에서 물러난 후 대광보국숭록대부에 추증되었다.

김반 (1580년)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이름김반
한자 이름金槃
출생일1580년
출생지조선 충청도 논산군
사망일1640년 (향년 61세)
사망지조선 충청도 공주목 회덕현
국적조선
본관광산(光山)
거주지조선 한성부
정당무소속
분야유교 성리학
사일(士逸)
허주(虛舟)·허주자(虛舟子)
서훈대광보국숭록대부(증 영의정)
가족 관계
부모김장생(부)
창녕 조씨 부인 조어화(생모)
순천 김씨 부인(계모)
연안 이씨 측실(서모)
덕수 장씨 측실(서모)
예안 이씨 측실(서모)
신평 이씨 측실(서모)
배우자초배 안동 김씨
계배 연산 서씨
측실 부여 김씨
측실 함양 여씨
형제김집(둘째 형)
자녀6남 3녀
(그들 가운데 적차남 김익희, 적3남 김익겸,
서4남 김익훈, 서6남 김익경)
친인척김만기(친적손)
김만중(친적손)
김진려(초배 빙부)
서주(계배 빙부)
김재용(첩장인)
여해천(첩장인)
관직 및 경력
임기 시작1628년 춘3월 중순
임기 종료1629년 춘2월 초순
직책조선의 형조좌랑
주요 경력형조참의
임금인조 이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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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애

김장생의 셋째 아들로, 아버지와 둘째 형 김집이 스승으로 모셨던 구봉 송익필에게서 글과 학문을 배우고 예학을 전수받았다. 1605년(선조 38) 사마시에 합격하여 관직에 나갔다.

광해군의 정치에 반대하여 사퇴했다가, 1623년(인조 1) 인조반정 이후 빙고 별제(氷庫 別提)에 임명되었으나 두 달도 채 되지 않아 사퇴하였다. 이괄이괄의 난을 일으키자 아버지 김장생과 함께 충청도 공주로 가 인조를 호종하였다. 공주행재소에서 실시된 특별 정시 문과에 급제, 성균관 전적이 되었다. 이후 형조 좌랑, 사간원 정랑, 이조 정랑, 사간원 정언, 홍문관 수찬, 홍문관 교리, 홍문관 응교 등을 역임했다.

1635년 병조참지, 사간원 대사간, 형조참의, 홍문관 부제학 등을 역임했다.

1636년 병자호란남한산성으로 왕을 호종했고, 강화산성을 지키던 셋째 아들(익겸)이 자결하는 슬픔을 겪었다. 정축하성 이후 예조 참판, 사헌부 대사헌, 한성부 우윤, 이조 참판 등을 지냈다. 1639년 관직을 그만둘 때까지 공신들과 별다른 갈등 없이 순탄하게 관직을 역임했다. 사후 대광보국숭록대부( 영의정)에 추증되었다.

2.1. 가문 배경과 초기 생애

사계 김장생의 셋째 아들로, 일찍이 아버지 김장생과 둘째 형 김집이 스승으로 모셨던 구봉 송익필에게서 글과 학문을 배웠고, 그로부터 예학을 전수받았다. 그 뒤 아버지(김장생)와 두 형(김은·김집)에게서 글을 배우다가 1605년(선조 38) 사마시에 합격하였고 이후 관직에 나갔다.

2.2. 관직 생활

1623년 인조반정 직후 인조를 충청도 공주로 호종한 공로로 특별 정시 문과에 급제하여 성균관 전적이 되었다. 이후 형조 좌랑, 사간원 정랑, 이조 정랑, 사간원 정언, 홍문관 수찬, 홍문관 교리, 홍문관 응교 등을 역임했다. 1635년에는 병조참지, 사간원 대사간, 형조 참의, 홍문관 부제학 등을 역임했다.

2.2.1. 인조반정 이전

김장생의 셋째 아들로 일찍이 아버지 김장생과 둘째 형 김집에게 가르침을 받았던 구봉 송익필에게 글과 학문을 배우고, 그로부터 예학을 전수받았다. 그 뒤 아버지(김장생)와 두 형(김은·김집)에게서 글을 배우다가 1605년(선조 38) 사마시에 합격하였고 이후 관직에 나갔다.

그 뒤 광해군의 정치에 반대하여 사퇴하였다가, 1623년(인조 1) 인조반정 이후 빙고 별제(氷庫 別提)에 임명되었으나 두 달도 채 되지 않아 다시 관직에서 물러났다. 이후 이괄이 논공행상에 불만을 품고 흥안군 이제를 옹립하려 이괄의 난을 일으켰는데, 이것이 확산되자 아버지 김장생과 함께 충청도 공주로 가서 인조를 호종하였다.

2.2.2. 인조반정 이후

1623년(인조 1) 인조반정 이후 빙고 별제(氷庫 別提)에 임명되었으나 두 달도 채 되지 않아 사퇴하였다. 이후 이괄이 논공행상에 불만을 품고 흥안군 이제를 옹립하려 이괄의 난을 일으키자, 아버지 김장생과 함께 충청도 공주로 가 인조를 호종하였다. 공주행재소에서 실시한 특별 정시 문과에 급제하여 성균관 전적이 되었다. 이후 형조 좌랑, 사간원 정랑, 이조 정랑, 사간원 정언, 홍문관 수찬, 홍문관 교리, 홍문관 응교 등을 역임했다.

1635년 병조참지, 사간원 대사간, 형조 참의, 홍문관 부제학 등을 역임했다.

1636년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남한산성으로 왕을 호종하였고, 이 과정에서 강화산성을 지키던 셋째 아들(익겸)이 자결하는 슬픔을 겪었다. 정축하성 이후 예조 참판, 사헌부 대사헌, 한성부 우윤, 이조 참판 등의 요직을 지냈다. 성격이 원만하여 1639년에 스스로 관직을 그만둘 때까지 공신들과 별다른 갈등 없이 순탄하게 관직을 역임했다. 사후 대광보국숭록대부( 영의정)에 추증되었다.

2.2.3. 병자호란과 그 이후

1636년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남한산성으로 왕을 호종하였고, 이 과정에서 강화산성을 지키던 셋째 아들(익겸)이 자결하여 순국하는 슬픔을 겪었다. 정축하성 이후 예조 참판, 사헌부 대사헌, 한성부 우윤, 이조 참판 등의 요직을 지냈다. 성격은 원만하여 1639년에 스스로 관직을 그만둘 때까지 공신들과 별다른 갈등을 겪지 않고 순탄하게 관직을 역임했다. 사후 대광보국숭록대부( 영의정)에 추증되었다.

3. 가족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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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이름출생사망비고
할아버지김계휘(金繼輝)
아버지김장생(金長生)1548년 7월 8일1631년 8월 3일
어머니
(생모)
창녕 조씨1583년
어머니
(계모)
순천 김씨1613년
첫째 형님김은(金檃)1567년1592년?임진왜란 당시 곽재우 휘하 의병으로 참전 중 실종
첫째 형수부여 서씨1570년1591년
둘째 형님김집(金集)1574년 음력 6월 6일1656년 음력 5월 13일
둘째 형수기계 유씨
본인김반(金槃)1580년1540년
초배 정실
(사별)
구 안동 김씨1590년1611년첨추 김진려(金進礪)의 딸, 1599년 결혼, 1611년 상배.
장남김익렬(金益烈)1606년 음력 10월 3일1630년 음력 5월 18일
손자김만준(金萬埈)1634년 음력 12월 22일1691년 음력 4월 6일
차남김익희(金益熙)1610년 음력 3월 5일1656년 음력 4월 8일
손자김만균(金萬均)1631년 음력 3월 22일1700년 음력 2월 29일
손자김만증(金萬增)
손자김만배(金萬培)
계배 정실
(재혼)
연산 서씨1596년1637년증 참판 서주(徐澍)의 딸, 1612년 재혼, 1637년 상배.
삼남김익겸(金益兼)1614년 12월 21일1637년 2월 16일
손자김만기(金萬基)
손자김만중(金萬重)
측실부여 김씨김재용(金渽溶, 1576년 음력 5월 20일 ~ 1634년 음력 9월 6일)의 딸.
사남김익훈(金益勳)1619년1689년
자부신 안동 김씨친정아버지는 김언
손자김만채(金萬埰)김익훈의 첫째아들이자 적출
손자김만선(金萬墡)김익훈의 셋째아들이자 적출
자부구 안동 김씨(첩실)친정아버지는 김형록
손자김만게(金萬垍)김익훈의 둘째아들이자 서얼
육남
(막내)
김익경(金益炅)1629년1675년생모 부여 김씨
손자김만재(金萬裁)
손자김만지(金萬謹)
손자김만근(金萬謹)
측실함양 여씨여해천(呂海天, 1575년 음력 3월 26일 ~ 1638년 음력 4월 10일)의 딸.
오남김익후(金益煦)1624년1648년
손자김만길(金萬吉)1645년1673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