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근 (야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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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김성근은 일본 교토 출신의 야구인으로, 선수 시절에는 좌완 투수로 활약했으며, 이후 지도자로 변신하여 여러 프로 및 아마추어 야구팀을 이끌었다. 선수 시절에는 실업 야구에서 활약하며 국가대표로도 활동했고, 지도자로서 OB 베어스, 태평양 돌핀스, 삼성 라이온즈, 쌍방울 레이더스, LG 트윈스, SK 와이번스, 한화 이글스 등 여러 팀의 감독을 역임했다. SK 와이번스 감독 시절에는 팀을 3번의 한국시리즈 우승으로 이끌었으며, 고양 원더스 감독을 거쳐 현재는 JTBC 최강야구의 최강 몬스터즈 감독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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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근 (야구인)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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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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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 김성근 |
영어 표기 | Kim, Sung-Kun |
일본어 표기 | 金星根 |
출생일 | 1941년 10월 30일 |
출생지 | 일본 교토부 교토시 우쿄구 |
신장 | 180 |
체중 | 82 |
던지는 팔 | 좌 |
타석 | 좌 |
국적 | 대한민국 |
선수 경력 | |
포지션 | 투수 |
선수 은퇴 | 은퇴 |
감독 및 코치 경력 | |
두산 베어스 | OB 베어스 (1982 - 1988) |
현대 유니콘스 | 태평양 돌핀스 (1989 - 1990) |
삼성 라이온즈 | (1991 - 1992) |
기아 타이거즈 | 해태 타이거즈 (1994 - 1995) |
쌍방울 레이더스 | (1996 - 1999) |
삼성 라이온즈 | (2000) |
LG 트윈스 | (2001 - 2002) |
지바 롯데 마린스 | (2005 - 2006) |
SK 와이번스 | (2007 - 2011) |
고양 원더스 | (2012 - 2014) |
한화 이글스 | (2015 - 2017) |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 (2022) |
최강 몬스터즈 | (2023년 ~ 현재) |
OB 베어스 | (1984–1988) |
태평양 돌핀스 | (1989–1990) |
삼성 라이온즈 | (1991–1992) |
쌍방울 레이더스 | (1996–1999) |
LG 트윈스 | (2002) |
SK 와이번스 | (2007–2011) |
고양 원더스 | (2012–2014) |
한화 이글스 | (2015–2017) |
지바 롯데 마린스 | (2005–2006) |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 (2022) |
OB 베어스 | (1982–1983) |
해태 타이거즈 | (1994–1995) |
삼성 라이온즈 | (2000) |
LG 트윈스 | (2001) |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 (2018–2021) |
수상 | |
한국시리즈 우승 | 3회 (2007년, 2008년, 2010년) |
KBO 올해의 감독상 | 4회 (1986년, 2007년, 2008년, 2010년) |
학력 | |
고등학교 | 교토부립 가쓰라 고등학교 |
대학교 | 동아대학교 중퇴 |
기타 | |
병역 | 대한민국 교통부 |
은행 | 중소기업은행 |
2. 선수 시절
김성근은 동아대학교를 중퇴하고 대한민국 실업 야구에 투신해 1961년 교통부에 입단했고, 기업은행의 창단 멤버로 1969년 초까지 활동했다. 좌완 투수로 빠른 직구를 주 무기로 삼아 1961년 제4회 아시아 야구 선수권 대회 때 대표팀에 선발돼 대한민국을 준우승으로 이끌었다. 1963년 11월 13일 대통령배 가을 리그 인천시청과의 경기에서 볼넷 1개만을 내주며 노히트 노런을 기록했고, 1964년 실업야구 연맹전에선 다승 공동 2위(20승 5패)에 오르는 등 활약을 보였다. 그러나 혹사로 어깨 부상을 당한 후 야수로 전업했고, 1969년 이른 나이에 현역에서 은퇴했다. 1967년 오효순과 결혼하였으며, 은퇴 후 다음 해 마산상고 감독을 맡을 무렵에 아들 김정준이 태어났다.[44]
2. 1. 일본 출생과 유년 시절
昭和일본어 17년(1942년) 일본 교토부에서 5남매의 막내로 태어났다.[42] 본적(부모 고향)은 경상남도 진양군(지금의 진주시)이다. 어렸을 때 아버지가 사망하면서 가난했는데, 어머니는 본인이 OB 감독으로 재직하던 시절이었던 1986년 4월 6일 세상을 떠났으며,[43] 이 해와 1987년 사이 어머니, 큰 형, 큰 누나, 작은 형이 잇달아 별세해 현재 남은 형제자매로는 작은 누나 밖에 없다. 가쓰라 고등학교에 재학 중이던 1959년, 제4회 재일 동포 학생 모국 방문 경기를 통해 처음으로 대한민국 땅을 밟았고, 고교 졸업 후 일본 사회인 야구 팀인 교토상호차량에서 뛰다가 1960년 재일교포 성인 구단 방문 경기를 하고 나서 동아대학교에 스카우트됐다.2. 2. 학창 시절과 실업 야구
쇼와 17년(서기 1942년) 일본 교토부에서 5남매의 막내로 태어났다.[42] 본적(부모 고향)은 경상남도 진양군(지금의 진주시)이다. 어렸을 때 아버지가 사망하면서 가난했는데, 어머니는 본인이 OB 감독으로 재직하던 시절이었던 1986년 4월 6일 세상을 떠났으며,[43] 이 해와 1987년 사이 어머니, 큰 형, 큰 누나, 작은 형이 잇달아 별세해 현재 남은 형제자매로는 작은 누나 밖에 없다. 교토부립 가쓰라 고등학교에 재학 중이던 1959년, 제4회 재일 동포 학생 모국 방문 경기를 통해 처음으로 대한민국 땅을 밟았다. 고교 졸업 후 일본 사회인 야구 팀인 교토상호차량에서 뛰다가 1960년 재일교포 성인 구단 방문 경기를 하고 나서 동아대학교에 스카우트됐다. 동아대학교를 중퇴하고 대한민국 실업 야구에 투신해 1961년 교통부에 입단하고 기업은행의 창단 멤버가 되면서[44] 1969년 초까지 활동했다.좌완 투수로 빠른 직구를 주 무기로 삼아 1961년 제4회 아시아 야구 선수권 대회 때 대표팀에 선발돼 대한민국을 준우승으로 이끌었다. 1963년 11월 13일 대통령배 가을 리그 인천시청과의 경기에서는 볼넷 1개만을 내주며 노히트 노런을 기록했고, 1964년 실업야구 연맹전에선 다승 공동 2위(20승 5패)에 오르는 등 놀라운 활약을 보였다. 그러나 지나친 혹사로 어깨 부상을 당한 후 야수로 전업했고, 1969년 이른 나이에 현역에서 은퇴했다. 선수로 뛰었던 1967년 현재의 아내 오효순과 결혼하였으며, 은퇴한 후 다음 해 마산상고 감독을 맡을 무렵에 아들 김정준이 태어났다.
2. 3. 실업 야구 활약과 국가대표
쇼와일본어 17년(1942년) 일본 교토부에서 5남매의 막내로 태어났다.[42] 본적(부모 고향)은 경상남도 진양군(지금의 진주시)이다. 어렸을 때 아버지가 사망하면서 가난했는데, 어머니는 OB 감독으로 재직하던 시절인 1986년 4월 6일 세상을 떠났으며,[43] 이 해와 1987년 사이 어머니, 큰 형, 큰 누나, 작은 형이 잇달아 별세해 현재 남은 형제자매로는 작은 누나 밖에 없다. 교토부립 가쓰라 고등학교에 재학 중이던 1959년, 제4회 재일 동포 학생 모국 방문 경기를 통해 처음으로 대한민국 땅을 밟았고, 고교 졸업 후 일본 사회인 야구 팀인 교토상호차량에서 뛰다가 1960년 재일교포 성인 구단 방문 경기를 하고 나서 동아대학교에 스카우트됐다. 동아대학교를 중퇴하고 대한민국 실업 야구에 투신해 1961년 교통부에 입단하고 기업은행의 창단 멤버가 되면서[44] 1969년 초까지 활동했다. 좌완 투수로 빠른 직구를 주 무기로 삼아 1961년 제4회 아시아 야구 선수권 대회 때 대표팀에 선발돼 대한민국을 준우승으로 이끌었다. 1963년 11월 13일 대통령배 가을 리그 인천시청과의 경기에서는 볼넷 1개만을 내주며 노히트 노런을 기록했고, 1964년 실업야구 연맹전에선 다승 공동 2위(20승 5패)에 오르는 등 놀라운 활약을 보였다. 그러나 지나친 혹사로 어깨 부상을 당한 후 야수로 전업했고, 1969년 이른 나이에 현역에서 은퇴했다. 선수로 뛰었던 1967년 현재의 아내 오효순과 결혼하였으며, 은퇴한 후 다음 해 마산상고 감독을 맡을 무렵에 아들 김정준이 태어났다.3. 지도자 시절
김성근은 마산상고 감독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지도자 경력을 시작했다. 기업은행, 충암고, 신일고 감독을 거쳐, 1982년 OB 베어스 창단 투수 코치로 프로야구에 입문했다. 이후 여러 팀의 감독을 맡으며 지도자 경력을 쌓았다.
만년 하위권이었던 태평양 돌핀스와 쌍방울 레이더스를 포스트시즌에 진출시켰고, 2002년에는 LG 트윈스를 한국시리즈 준우승으로 이끄는 등 뛰어난 지도력을 보였다. 그러나 '데이터 야구'가 팀 컬러와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구단 고위층과의 갈등을 빚으며 석연치 않게 퇴진했다. 그는 '지옥 훈련'으로 불릴 정도로 강도 높은 훈련을 통해 선수들의 기량을 향상시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다른 팀에서 방출된 선수들을 부활시키기도 했다.
2007년 SK 와이번스 감독으로 부임한 후에는 2007, 2008, 2010년 세 번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끌며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다. 특히 2009년에는 19연승이라는 아시아 신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그러나 2011년, 프런트와의 갈등으로 인해 시즌 중 경질되는 아픔을 겪었다.
이후 대한민국 최초의 독립 야구단 고양 원더스 감독을 맡아 22명의 선수를 프로에 진출시켰으나, 팀은 해체되었다. 2015년 한화 이글스 감독으로 프로야구에 복귀했지만, 투수 혹사 논란과 성적 부진, 단장과의 불화 등으로 경질되었다.
어린 시절 일본에서 자랐지만 한국 국적을 유지했으며, 일본 프로야구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에서 코칭 어드바이저를 역임하기도 했다.
3. 1. 아마추어 야구 지도자
은퇴한 후 바로 마산상고의 지휘봉을 잡아[45] 본격적으로 지도자의 길로 들어섰다. 그는 기업은행 투수코치(1970년)[46] 및 감독(1971년∼1975년)[47], 충암고(1976년∼1979년), 신일고(1979년∼1981년)에서 감독을 맡았다. 1975년 제11회 아시아 선수권 때 대표팀 코치로 참가해 우승을 일궈 내어 체육 훈장 기린장을 받았고, 1977년 봉황기에서 충암고를 창단 9년 만에 전국 대회 우승으로 이끌었다. 1981년에는 화랑기에서 신일고도 정상에 올려 놓았다.대부분의 코칭스태프는 백넘버를 뒷번호로 이용하지만, 김성근은 1977년 충암고등학교를 봉황대기 대회에서 우승으로 이끌었을 때 이용했던 백넘버 38번을 OB 베어스 시절을 포함해 오래 사용했다.[48] 하지만 예외도 있었다. 1984년 OB 베어스, 삼성 라이온즈, 쌍방울 레이더스 감독을 맡았던 시절에는 백넘버 91번을, 태평양 돌핀스 감독 시절에는 81번, LG 트윈스 감독 시절에는 76번을 달았다.
3. 2. 프로 야구 지도자
김성근은 1982년 OB 베어스 창단 투수 코치로 프로 야구 지도자 경력을 시작했다.[49] 이후 OB 베어스(1984~1988), 태평양 돌핀스(1989~1990), 삼성 라이온즈(1991~1992), 쌍방울 레이더스(1996~1999), LG 트윈스(2001~2002), SK 와이번스(2007~2011), 고양 원더스(2012~2014), 한화 이글스(2015~2017) 감독을 역임했다.만년 하위권 팀을 포스트시즌에 진출시키는 등 뛰어난 지도력을 보였는데, 특히 2002년에는 LG 트윈스를 2002년 한국시리즈로 이끌며 준우승을 차지했으나, 구단 고위층과의 갈등으로 석연치 않게 퇴진했다.[49] 그는 '지옥 훈련'으로 불릴 정도로 많은 훈련을 통해 선수들의 기량을 향상시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49] 박정환 등 다른 팀에서 방출된 선수들도 그의 지도하에 부활하기도 했다.[50] SK 와이번스 감독 시절에는 2007, 2008, 2010년 세 번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끌었다.
3. 2. 1. OB 베어스
1982년 OB 베어스의 창단 투수 코치였던 김성근은 1984년 김영덕 감독의 후임으로 OB 감독에 부임했다. 1984년 후기 리그에서 OB 베어스는 롯데 자이언츠와 1위 자리를 다투며 한국시리즈 진출을 노렸으나, 전기 리그 우승 팀 삼성 라이온즈 감독 김영덕의 '고의 패배 작전'으로 인해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 OB 베어스는 전·후기 통합 승률 1위를 달성했으나 한국시리즈에는 진출하지 못했다. 이후 OB 베어스는 긴 침체기를 겪었고, 1988년 시즌 후 김성근은 감독직에서 물러났다.[49]3. 2. 2. 태평양 돌핀스
1988년 9월 10일부터 3년 계약 형식으로[51] 태평양 돌핀스의 감독으로 부임해 인천 연고 팀과 인연을 맺었다. 그 해 강력한 신인 투수 박정현, 최창호, 정명원 등을 바탕으로 만년 꼴찌 팀이었던 태평양 돌핀스를 사상 첫 포스트시즌에 진출시켰다. 당시 삼성 라이온즈를 2승 1패로 꺾고 플레이오프에 진출했으나 해태 타이거즈에게 3연패로 스윕당해 한국시리즈 진출에는 실패했다. 이후 1990년에 다시 5위로 추락했고, "임호균 각서 파동" 탓인지[52] 태평양 돌핀스는 계약 기간을 1년 남긴 그와 재계약하지 않았다.3. 2. 3. 삼성 라이온즈
1990년 11월 2일부터 3년 계약 형식으로 삼성 라이온즈 감독을 맡았으나, 부임 첫 해인 1991년에는 스파르타식 훈련으로 인해 부상 선수가 속출하여 3위에 그쳤다.[53] 1992년에는 4위로 간신히 준플레이오프에 진출했지만 2패로 탈락, 2년 연속 한국시리즈 진출에 실패하며 임기를 1년 남기고 우용득에게 감독직을 넘겼다.[53] 이후 해태 타이거즈에서 투수 인스트럭터와 2군 감독으로 지도자 생활을 했다.1999년 시즌 후 삼성 라이온즈는 다시 그를 불러 이듬해 1년 동안 2군 감독을 맡겼으나, 시즌 후 코치진 대개편 과정에서 해임됐다.[64]
연도 | 팀 | 순위 | 공식전 순위[27][28] | 경기 | 승리 | 패배 | 무 | 승률 | 게임차[29] |
---|---|---|---|---|---|---|---|---|---|
1991 | 삼성 | 3 | 3 | 126 | 70 | 55 | 1 | .560 | 11.0 |
1992 | 4 | 4 | 126 | 67 | 57 | 2 | .540 | 14.0 | |
2022 | 소프트뱅크 | 2 | 2 / 4 | 143 | 76 | 65 | 2 | .539 | 0.0 |
3. 2. 4. 쌍방울 레이더스
1995년 10월 19일 한동화의 후임으로 3년 계약 형식으로 쌍방울 레이더스 감독에 취임했다.[56] 1992년 9월 25일 김인식 후임으로 쌍방울 레이더스 감독에 부임했으나, 외국인 선수 영입 과정에서 신용균과 달리 '미국통'이었던 한동화와 불화가 생겨[58] 1년 만에 물러난 신용균의 후임으로 거론되기도 했다. 그러나 계약 조건과 코치 선임 문제 등 여러 이유로 고사했고, 한동화가 후임으로 발탁되었다.[59][61] 한동화는 1992년 11월 3일부터 쌍방울 레이더스와 자매 결연을 맺은[60] 일본 프로 야구 팀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의 가을 캠프에 매년 유망주들을 보내던 관례를 거부하여 '일본통'인 이용일 구단주 대행과 사이가 좋지 않았고, 1995년 시즌 연패를 반복해 중도 하차했다.[62]김성근은 쌍방울 레이더스 감독을 맡아 만년 약체였던 팀을 2년 연속 3위로 끌어올리는 성과를 냈다. 1998년 10월 23일 2년 재계약을 맺었으나,[63] IMF 외환 위기로 모기업이 재정난에 시달리면서 구단은 선수들을 현금 트레이드하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이 과정에서 박경완, 김현욱, 김기태, 조규제 등 팀의 주축 선수들이 팀을 떠나 전력이 크게 약화되었다. 김성근 감독은 선수들의 숙식 등을 위해 사비를 쓰는 등 노력했지만, 구단의 열악한 환경과 선수층의 한계로 1998년 정규 시즌 6위, 1999년 전반기 최하위(8위)에 머물렀고, 결국 올스타전이 끝난 후 성적 부진에 따른 분위기 쇄신을 이유로 해임되었다. 쌍방울 레이더스는 1999년 최하위를 기록한 뒤 2000년 해체되었고, 선수단은 신인 지명 선수들을 포함하여 2000년 SK 와이번스 창단과 함께 인계되었다.
3. 2. 5. LG 트윈스
2001년 LG 트윈스 2군 감독으로 부임했다가, 시즌 초 팀이 1승 9패로 부진하자 1군 수석코치로 보직이 변경되었다.[65] 전임 감독 이광은은 2000년 팀을 매직 리그 1위로 이끌었으나, 두산과의 플레이오프에서 역전패하며 신임을 잃었다.[67] 2001년 시즌 초 LG 트윈스는 9승 1무 25패로 부진했고, 5월 16일 이광은 감독이 경질되며 수석코치였던 김성근이 감독 대행으로 선임되었다.[70] 이후 정식 감독으로 선임된 그는 2002년 하위 팀이었던 LG 트윈스를 정규 시즌 4위에 올렸다. 준플레이오프와 플레이오프에서 현대 유니콘스, KIA 타이거즈를 꺾고 2002년 한국시리즈에 진출하여 감독으로서의 잠재력을 보여주었다.2002년 한국시리즈는 6차전까지 역전과 재역전을 거듭하는 접전이었다. 특히 고관절이 좋지 않았던 외야수 김재현이 대타로 나와 장타를 치고도 겨우 1루에 걸어가는 모습은 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러나 11월 10일 한국시리즈 6차전에서 삼성 라이온즈의 이승엽, 마해영에게 백투백 홈런을 허용하며 2승 4패로 준우승에 그쳤다. 김성근은 이 경기를 유일하게 눈물을 흘린 경기로 회고했다.
시즌 후, LG 트윈스 감독으로 유임될 것으로 예상되었으나, 2001년 LG스포츠 사장으로 부임한[71] 어윤태로부터 "그의 야구는 LG의 야구가 아니다"라는 혹평을 받으며 계약 기간을 채우지 못하고 해임됐다.[72][73] 그는 어윤태 전임 사장이 임명한 사람이었고, 2002년 시즌 초부터 갈등이 있었기에 불화가 더욱 심했다.
김성근 감독이 물러난 후, LG 트윈스는 FA 잔혹사와 함께 2012년까지 포스트시즌에 진출하지 못하면서 '김성근의 저주'라는 말이 생기기도 했다. 2013년 김기태 감독 부임 후에야 포스트시즌에 진출할 수 있었다.
3. 2. 6. SK 와이번스
2007년, 조범현 감독의 후임으로 SK 와이번스 감독에 취임하여 태평양 돌핀스 이후 다시 인천 연고 팀을 맡게 되었다.[49] 그 해 SK 와이번스는 2006년 시즌 6위에서 정규 시즌 1위로 도약했고, 2007년 한국시리즈에서 두산 베어스를 상대로 2연패 뒤 4연승, 이른바 '역스윕'으로 창단 첫 우승이자 김성근 감독의 프로 감독 재임 첫 우승을 달성했다.[49](5년 만에 준우승의 한을 풀고 징크스를 깼다.) 당시 한국시리즈에서 두산 베어스의 외국인 투수 리오스의 투구 폼(이중 동작)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2008년 9월 21일, SK 와이번스는 KIA 타이거즈와의 경기에서 승리하며 2년 연속 페넌트레이스 우승을 확정, 한국시리즈에 직행했다. 2008년 10월 31일, 삼성 라이온즈를 꺾고 2007년에 이어 2008년 한국시리즈에서 다시 두산 베어스를 만나 1차전 패배 후 4연승, 2년 연속 한국시리즈 우승을 달성했다. 2009 WBC 대표팀 감독 제의를 받았으나, '한 곳에 집중하는 성격이라 대표팀 감독을 맡으면 몸이 아플 것 같다'는 이유로 고사했다.
2009년 8월 25일 승리부터 9월 26일 정규 시즌 마감까지 19연승을 기록, 삼성 라이온즈의 17연승 기록을 경신하며 아시아 신기록을 세웠다.
2009년 한국시리즈에서는 KIA 타이거즈와 7차전까지 가는 접전을 벌였으나, 나지완에게 끝내기 홈런을 맞아 준우승했다. 2009년 시즌 전병두가 불펜 투수임에도 100이닝 이상을 소화해 혹사 논란이 있었다.
2010년 한국시리즈에서는 삼성 라이온즈를 4전 전승으로 꺾고 3번째 우승을 차지했다.[74]
2011년 8월 17일, 프런트와의 재계약 마찰로 인해 2011년 시즌 후 자진 사임을 선언하자,[75] 다음 날인 8월 18일 SK 와이번스는 즉시 김성근 감독을 경질하고[76] 당시 2군 감독이었던 이만수를 감독 대행으로 임명했다. 경질 후 휴식을 위해 일본으로 갔다가 8월 26일 귀국했다.
3. 2. 7. 고양 원더스
김성근은 대한민국 최초의 독립 야구단 고양 원더스의 초대 감독으로 선임되었고,[49] 2012년 2군 번외 경기에서 좋은 경기력을 인정받아 시즌 중 구단과 재계약했다. 그 해 고양 원더스 출신 선수 5명이 프로로 진출했으며, 그 중 일부는 방출되었다가 고양 원더스에서 기량을 갈고 닦아 재진입에 성공하기도 했다.[50] 하지만 고양 원더스는 외국인 용병 투수 7명을 동원해 팀 전체 이닝의 80%를 외국인 용병 투수가 던지게 해 논란이 있었다. 감독 재직 기간 동안 총 22명의 선수를 프로로 진출시켰으며,[4] 고양 원더스는 해체되었다.3. 2. 8. 한화 이글스
2015년 김응용의 후임으로 한화 이글스 감독에 취임했다. 첫 시즌에는 최하위를 도맡았던 팀을 6위로 이끌었지만, 선발 투수를 믿지 못하고 조금만 흔들려도 바로 교체하는 퀵후크를 자주 했고, 권혁, 박정진, 송창식, 윤규진 등 필승조 투수를 너무 자주 등판시켜 혹사 논란이 일었다.[5] 2016년 시즌에는 LG 트윈스와의 개막 시리즈부터 모두 연장 접전 끝에 패배해 4월에만 17패를 기록했다. 벌떼 야구를 통해 그 해 시즌을 7위로 마감했고, 송창식 벌투 혹사 사건 등 투수 혹사 논란은 계속됐다.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와 맞물려 김성근 감독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이 극에 달했으나 구단의 애매한 반응 속에 2017년에도 한화 이글스 감독으로 활동했다. 그러나 박종훈 단장 취임 후 감독의 권한을 둘러싸고 프런트와 갈등이 격화됐다. 2017년 5월 23일 성적 부진 및 단장과의 불화로 경질됐다.[6][17]4. 일본 프로 야구 경력
1991년 일한 프로 야구 슈퍼 게임에서 한국 팀 코치를 맡았다.[10] 2005년 퍼시픽 리그 지바 롯데 마린스 팀 코디네이터(코치 대우[10][11])로 취임하여[13] 일본 야구에 적응하지 못하던 이승엽의 담당 코치로서 그의 부활을 지원했다.[11][9] 이마에 토시아키[9], 사토자키 토모야[9]의 타격 지도도 담당했다. 한국 시절부터 선수들의 작은 폼 변화에 따른 기술적 문제점을 간파하는 능력이 뛰어났으며, 이승엽 외에도 오마츠 쇼이치 등 롯데의 젊은 선수들도 그에게 조언을 구하는 일이 많았다.
2005년 시즌 후, 롯데 구단은 이승엽의 잔류와 함께 김성근의 지도 능력을 높이 평가, 2006년 1·2군 순회 코치로 취임시켜[14][9][11] KBO 출신 최초로 NPB 정식 코치가 되었다.[11] 2006년 시즌을 끝으로 계약 만료에 따라 퇴단했다.[15]
2018년 1월 19일, 퍼시픽 리그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코칭 어드바이저로 취임했다.[20] 2022년 '감독 부속 어드바이저'로 코치 등록, 등번호 '''71'''번을 부여받았으며, 같은 해를 마지막으로 퇴단했다.[21]
5. 논란
2002년, 김성근 감독은 LG 트윈스와 KIA 타이거즈 간의 빈볼 시비와 관련하여 500만원의 벌금을 부과받았다. (타이거즈 감독 역시 동일한 벌금을 받았다.) 2015년에는 팀 관리 소홀의 책임을 물어 300만원의 벌금을 부과받았는데, 이는 KBO 역사상 빈볼 사건으로 감독 한 명만 처벌받은 첫 번째 사례였다.[7]
5. 1. 2009년 WBC 대표팀 감독 선임 논란
2009 WBC 대회 직전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은 2008 베이징 올림픽 야구 금메달 성과에 힘입어 큰 기대를 받았다. 2006년 1회 WBC에서 4강에 머무른 아쉬움과 함께, 최정, 박기혁 등 군 미필 상태인 젊은 선수들은 병역 혜택도 기대했다. 온 국민이 야구, 특히 한일전에 주목했다.하지만 KBO는 WBC 대표팀 감독 선임을 두고 고심했다. 1순위는 베이징 올림픽에서 전승 우승을 이끈 두산 베어스 감독 김경문이었으나, 그는 올림픽 당시 장기간 팀을 비웠다는 이유로 고사했다.
SK 와이번스 감독이었던 김성근 또한 유력한 후보였다. 구단은 그의 WBC 감독 차출을 승인했지만, 그는 2008년 11월 5일 인터뷰에서 "맡으면 끝장을 봐야 하는데, 그러다 내가 쓰러지면 SK는 어떻게 되느냐"며 건강 문제를 이유로 거절했다.
결국 여론은 1회 WBC 감독이었던 김인식에게 쏠렸고, 그는 뇌경색 수술 후유증으로 다리가 불편한 상태에서도 대표팀을 맡았다. 김인식이 이끌던 한화 이글스는 2009년 프로야구에서 최하위인 8위에 그쳤고, 김인식은 재계약에 실패하고 구단 고문직으로 이동했다.
이후 김성근 감독에게 비판적인 여론이 쏠렸으나, 그는 침묵했다. 1년 후 2009 한국시리즈 이후 박동희 기자와의 인터뷰에 응했지만, 여론의 질타를 받았다.[77][78]
6. 기타
2010년 12월, 일본 고치현에서 '고치현 관광 특사'로 임명되었다. 이 때문에 소속 구단의 봄철 캠프는 고치시 야구장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일본에서 태어나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그곳에서 생활했고, 한국으로 건너온 후에도 자주 일본을 방문했으며, 현재도 일본어에 매우 능통하다.[24] 일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도 간사이벤을 섞어 유쾌하게 대화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2001년 가을, LG 감독이었던 김성근은 도이 마사히로에게 투수 코치를 할 만한 사람을 물었고, 도이는 가토 하지메[25]를 추천했다. 가토는 2001년 가을 캠프에서 LG의 투수 인스트럭터로 일했으며, 김성근은 SK 감독으로 부임했을 때도 가토를 투수 코치로 초빙했다.[26]
장남인 김정준은 SK 와이번스 구단 직원으로 기록과장을 맡았으며, 2006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WBC) 한국 국가대표팀에도 함께했다. 김성근이 SK 감독에서 해임되자 김정준도 구단 직을 사임하고 2012년부터 야구 해설가로 활동했다. 2014년 11월, 김성근이 한화 이글스 감독으로 부임하자 한화의 전력 분석 담당 및 수비 보조 코치를 맡았으나, 2017년 5월 김성근이 사임하자 이듬해 6월 김정준도 한화를 떠났다.
7. 수상
연도 | 수상 내역 |
---|---|
1960 | 대학춘계연맹전 우수투수상 |
1975 | 체육훈장 기린장 |
1986, 2007, 2008, 2010 | 올해의 감독상 |
2007, 2008 | 제일화재 프로야구대상 프로감독상 |
2008, 2010 | 프로야구 올스타전 승리감독상 |
2008 | 스포츠토토 올해의 상 올해의 감독상 |
2010 | CJ 마구마구 일구대상 |
2010 | 조아제약 프로야구대상 프로감독상 |
2010 | 올해의 자랑스런 한국인 대상 (스포츠부문) |
2010 | 일본 고치현 명예 관광홍보대사 |
2012 | 카스포인트 레전드상 |
2012 | 조아제약 프로야구대상 공로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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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7월, 77경기 소화 시점에서 해임. 남은 경기는 헤드 코치의 김준환이 감독 대행으로 지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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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 `빨간 장갑의 마술사' 김동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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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무리 전환 장문석 '2000년 PO악몽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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