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케우치노 스쿠네
1. 개요
다케우치노 스쿠네는 일본의 전설적인 인물로, 가게히메의 아들이자 고겐 천황의 후손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게이코 천황, 세이무 천황, 주아이 천황, 오진 천황, 닌토쿠 천황 등 다섯 명의 천황을 섬겼으며, 특히 진구 황후의 대 대신으로 한국 침략과 관련된 인물로 묘사된다. 그는 28개의 씨족의 조상으로 여겨지며, 일본 지폐 도안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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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년 출생 -
세이무 천황
세이무 천황은 4세기 전반에 야마토에서 통치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일본의 제13대 천황으로, 지방 행정 구역을 정비하고 지방 장관을 임명했으며, 실존 여부에 대한 논쟁이 있다. -
가쓰라기씨 -
이와노히메노미코토
이와노히메노미코토는 닌토쿠 천황의 황후로서 《고사기》, 《일본서기》, 《만엽집》에 등장하며, 질투심이 강했다는 이야기와 함께 만엽집에 애정을 나타내는 시가 수록되어 현대에 여성주의적 관점으로 재해석되는 등 다양한 평가를 받는다. -
가쓰라기씨 -
가쓰라기노 소쓰히코
가쓰라기노 소쓰히코는 일본 고대 야마토 왕권 시대의 호족으로, 문헌에 따르면 진구 황후, 오진 천황, 닌토쿠 천황 시대에 걸쳐 외교 및 군사적 활약을 했으며, 특히 한반도 여러 나라와의 관계에서 두드러진 활동을 했다고 전해지지만, 실존 여부와 가쓰라기 세력과의 관계에 대한 해석은 다양하다. -
몰년 미상 -
미와 와사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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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년 미상 -
이태준
이태준은 일제 강점기와 북한에서 활동한 소설가이자 문학평론가로, 섬세한 문체와 서정적인 분위기로 현실을 그린 단편소설들을 발표하여 주목받았으며, 특히 1930년대 〈달밤〉, 〈까마귀〉, 〈복덕방〉 등의 작품으로 한국 단편소설의 미학을 완성했다는 평가를 받지만, 월북 후 숙청되어 정확한 사망 시기와 장소는 알려져 있지 않다.
2. 가계 및 생애
다케우치노 스쿠네는 가게히메 공주의 아들이자, 彦太忍信命일본어의 손자로 여겨진다. 그는 고겐 천황의 후손으로, 게이코 천황, 세이무 천황, 주아이 천황, 오진 천황, 닌토쿠 천황 등 다섯 명의 전설적인 천황을 섬겼다. 진구 황후가 섭정을 맡는 동안에는 대신(오오미)으로서 한국을 침략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진구 황후가 아들 오진 천황의 섭정을 맡는 동안, 다케우치노 스쿠네는 반역죄로 고발되었으나, "끓는 물을 이용한 [[신판|신판]"을 치러 자신의 무죄를 증명했다.
이러한 무술적 봉사 외에도, 그는 사니와, 즉 영매였다고 전해진다.
2.1. 가계
다케우치노 스쿠네는 가게히메 공주의 아들이자, 彦太忍信命일본어의 손자로 여겨진다. 고겐 천황의 후손으로, 게이코 천황, 세이무 천황, 주아이 천황, 오진 천황, 닌토쿠 천황 등 다섯 명의 전설적인 천황을 섬겼다.
그는 《일본서기》에서는 히코후츠오시노마코토의 손자로, 《고사기》에서는 히코후츠오시노마코토의 아들로 기록되어 있다.
* 아버지: 屋主忍男武雄心命일본어 (?–?)
* 어머니: 야마시타노 카게-히메 (影媛), 키이노쿠니노 미야츠쿠코 우즈히코(우지히코)의 누이 (山下影日売)
《일본서기》 게이코 천황기에서는 야누시오시타케오고코로노미코토와 우토히코(기노 아타이의 먼 조상)의 딸인 카게히메 사이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고겐 천황기에서는 고겐 천황(제8대) 황자인 히코타니니시노미코토를 다케우치노 스쿠네의 조부로 하여, 다케우치노 스쿠네는 고겐 천황의 3세손에 해당한다. 오진 천황기에서는 동생(어머니는 불명)으로 아마노치우치노 스쿠네의 이름이 보인다.
《고사기》에서는 고겐 천황의 황자인 히코후츠오시노시노미코토(히코타니니시노미코토)와 우즈히코(키노쿠니노미야쓰코)의 여동생인 야마시타 카게히메 사이에서 태어났다고 하며, 고겐 천황의 손자로 여긴다. 같은 책에서는 이복형제(장유 불상)로 아지시우치노 스쿠네(아마노치우치노 스쿠네)의 이름이 보인다.
* 부인: (이름 불명)
* 자녀:
《일본서기》에서는 헤구리노 츠쿠 스쿠네만이 부자 관계가 명시되어 있다. 《고사기》에서는 다음 7남 2녀와 후예 27씨를 게재한다. (괄호 안은 일본서기의 명칭, 일본서기에 기술이 없는 경우는 없음으로 표시)
| 이름 | 《일본서기》 표기 | 가계 |
|---|---|---|
| 하타노 야시로 스쿠네 | 하타노야시로노스쿠네, 하타노 야시로 스쿠네 | 하타 오미・하야시 오미・하미 오미・호시카와 오미・아와미 오미・나가사베노 키미의 조상 |
| 코세노 코고로 스쿠네 | 코세노오카라노스쿠네, 없음 | 코세 오미(거세 오미)・사자베 오미・가루베 오미의 조상 |
| 소가노 이시카와 스쿠네 | 소가노이시카와노스쿠네, 이시카와 스쿠네 | 소가 오미・카와베 오미・다나카 오미・타카무 오미・오지타 오미・사쿠라이 오미・키시다 오미의 조상 |
| 헤구리노 츠쿠 스쿠네 | 헤구리노 츠쿠노스쿠네, 헤구리노 츠쿠 스쿠네 | 헤구리 오미・사와라 오미・우마노미키리노 연의 조상 |
| 키노 츠노 스쿠네 | 키노츠노노스쿠네, 키노 츠노 스쿠네 | 키 오미(기 오미)・츠누 오미・사카모토 오미의 조상 |
| 쿠메노마이토히메 | 없음 | |
| 노노이로히메 | 없음 | |
| 카츠라기노 소츠히코 | 카즈라키노나가에노소츠비코, 카츠라기노 소츠히코 | 타마테 오미・테키 오미・이쿠에 오미・아게나 오미의 조상 |
| 와카코 스쿠네 | 와쿠고노스쿠네, 없음 | 에노자이 오미의 조상 |
다케우치노 스쿠네의 계보와 관련해서는, 다케우치노 스쿠네가 후세(7세기 후반 경)에 창출된 인물로 보이는 점과, 이나리야마 고분 출토 철검에 따르면 인물 칭호는 "히코 → 스쿠네 → 와케"로 변천해야 하는데 소츠히코의 위치가 부자연스러운 점을 들어, 원래 계보에서는 다케우치노 스쿠네의 위치에 소츠히코가 있었다는 설이 있다.
2.2. 주요 활동
다케우치노 스쿠네는 가게히메 공주의 아들이자, 彦太忍信命일본어의 손자로 여겨진다. 그는 고겐 천황의 후손으로, 게이코 천황, 세이무 천황, 주아이 천황, 오진 천황, 닌토쿠 천황 등 다섯 명의 전설적인 천황을 섬겼다.
진구 황후가 섭정을 맡는 동안, 다케우치노 스쿠네는 대신(오오미)으로서 한국을 침략했다는 사실로 가장 잘 알려져 있다. 진구가 아들 오진 천황의 섭정을 맡는 동안, 다케우치는 반역죄로 고발되었으나, "끓는 물을 이용한 [[신판|신판]"을 치러 자신의 무죄를 증명했다.
이들 천황에 대한 무술적 봉사 외에도, 그는 사니와, 즉 영매였다고 전해진다.
3. 한반도와의 관계
다케우치노 스쿠네는 진구 황후의 섭정 기간 동안 대 대신(오오미)으로서 한국과 관련된 업무를 담당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진구 황후의 한국 침략을 도왔다는 전설이 가장 유명하다.
진구 황후가 아들 오진 천황의 섭정을 맡는 동안 다케우치노 스쿠네는 반역죄로 고발당하기도 했지만, "끓는 물을 이용한 신판"을 통해 자신의 무죄를 증명했다고 한다.
알렉산더 보빈은 아메노히보코가 한국 출신이기 때문에 진구 황후와 오진 천황은 한국어를 모국어로 사용했을 수 있다고 주장하며, 다케우치노 스쿠네 역시 한국 출신일 가능성을 제기했다. 그는 다케우치노 스쿠네가 일본-한국 관련 업무를 담당하고 한국과 관련된 여러 씨족의 시조였다는 점을 그 근거로 들었다.
진구 황후 섭정 47년 4월에는 신라와 백제 사이에 공물 문제가 발생하자, 황후는 다케우치노 스쿠네에게 천신의 뜻을 물어 센쿠마나가히코를 사자로 보내도록 했다.
오진 천황 7년 9월에는 고려인, 백제인, 임나인, 신라인 등이 내조했을 때, 오진 천황의 명으로 한인을 이끌고 한인 연못을 만들었다.
3.1. 삼한 정벌
일본 역사학자들은 고대 삼국사기에 언급된 "우도주군(于道朱君)"이라는 이름에서 다케우치노 스쿠네와의 연관성을 추론한다. 삼국사기에는 일본 사신 "갈나고(葛那古)"가 신라에 머무는 동안 "석우로(昔于老)"라는 왕족이 그를 수행했다는 내용이 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둘은 언쟁을 시작했고, 석우로는 "일본 천황을 소금 만드는 노예로, 그의 아내는 밥 짓는 노예로 만들겠다"고 심한 농담을 했다. 이 소식을 천황(大王, 오키미)에게 전달한 후, 우도주군이라는 장군이 한반도로 파견되어 신라에 선전포고를 했다.
학자들에 따르면 우도주군과 다케우치노 스쿠네는 동일 인물일 수 있는데, 다케우치노 스쿠네의 발음이 고대 일본어에서 "우투스쿠네(内宿禰)"에 더 가까웠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왜한삼재도회에도 신라·왜 전쟁(新羅・倭戦争) 당시 다케우치노 스쿠네의 업적이 언급되어 있어 신라 시대에 그의 관여를 더욱 뒷받침한다.
삼국사기에는 왜왕의 명을 받아 신라를 공격하여, 내해 이사금의 아들이자 서발한인 석우로를 처형한 우도주군(우토슈쿤)이라는 왜인 장군이 등장한다. 복원된 상고 일본어에서의 "우치스쿠네(내숙녜)"의 발음에 대응할 수 있다는 점, 역년 연구에서 내해 이사금의 후계자인 조분 이사금이나 첨해 이사금의 재위 연대가 신공 황후의 활동 연대와 같은 시대라고 여겨진다는 점 등으로 미루어 "우도주군"은 곧 『일본서기』의 다케우치노 스쿠네이며, 다케우치노 스쿠네는 실존했던 인물이라는 설이 제기되고 있다.
3.2. 한국과의 연관성
다케우치노 스쿠네는 진구 황후의 한국 침략 전설과 깊이 연관되어 있다. 일본 역사학자들은 고대 삼국사기에 언급된 "우도주군(于道朱君)"이라는 이름에서 다케우치노 스쿠네와의 연관성을 추론한다. 삼국사기에는 일본 사신 "갈나고(葛那古)"가 신라에 머무는 동안 "석우로(昔于老)"라는 왕족이 그를 수행했다는 내용이 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둘은 언쟁을 시작했고, 석우로는 "일본 천황을 소금 만드는 노예로, 그의 아내는 밥 짓는 노예로 만들겠다"고 심한 농담을 했다. 이 소식을 천황(大王, 오오키미로 지칭)에게 전달한 후, 우도주군이라는 장군이 한반도로 파견되어 신라에 선전포고를 했다.
학자들에 따르면 우도주군과 다케우치노 스쿠네는 동일 인물일 수 있는데, 다케우치노 스쿠네의 발음이 고대 일본어에서 "우투스쿠네(内宿禰)"에 더 가까웠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왜한삼재도회에도 신라·왜 전쟁(新羅・倭戦争) 당시 다케우치노 스쿠네의 업적이 언급되어 있어 신라 시대에 그의 관여를 더욱 뒷받침한다.
알렉산더 보빈은 아메노히보코가 한국 출신이기 때문에 진구 황후와 그의 아들 오진 천황은 한국어를 모국어로 사용했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보빈은 다케우치노 스쿠네가 그들의 통치 기간 동안 한국 왕국과 교류할 수 있었기 때문에, 다케우치노 스쿠네 역시 외국 출신일 수 있다고 보았는데, 그가 일본-한국 관련 업무를 관할했을 뿐만 아니라 한국과 깊은 관련이 있는 많은 씨족 창시자들의 아버지였기 때문이다.
삼국사기에는 왜왕의 명을 받아 신라를 공격하여 내해 이사금의 아들이자 서발한인 석우로를 처형한 우도주군이라는 왜인 장군이 등장하는데, 복원된 상고 일본어에서의 "우치스쿠네(내숙녜)"의 발음에 대응할 수 있다는 점, 역년 연구에서 내해 이사금의 후계자인 조분 이사금이나 첨해 이사금의 재위 연대가 신공 황후의 활동 연대와 같은 시대라고 여겨진다는 점 등으로 미루어 "우도주군"은 곧 『일본 서기』의 다케우치노 스쿠네이며, 다케우치노 스쿠네는 실존했던 인물이라는 설이 제기되고 있다.
4. 후세의 평가 및 유산
다케우치노 스쿠네는 다케우치 씨와 소가 씨를 포함하여 28개 일본 씨족의 조상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매일 신성한 우물에서 물을 마셔 280세까지 살았다는 전설적인 인물이다. 돗토리현 이와미군의 우베 신사와 지역 하치만 신사에 가미로 모셔져 있다.
『일본서기』와 『고지키』에는 역대 대왕을 섬긴 충신, 장수, 신탁을 행하는 인물 등 다케우치노 스쿠네의 다양한 면모가 기록되어 있다. 특히 대신을 배출한 가쓰라기, 헤구리, 고세, 소가 등 유력 호족들이 공통 조상으로 삼고 있어, 대신의 이상적인 모습이 투영되었다고 평가받는다.
다케우치노 스쿠네는 충신으로 여겨져 일본 은행권의 초상으로도 채택되었다. 사진이나 초상화가 남아 있지 않아, 일본 은행권 초상은 당시 인쇄부장이었던 사다 세이지를 모델로 에두아르도 키요소네가 디자인했다.
그의 인형은 어린이날 인기 선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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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후손
다케우치노 스쿠네는 고겐 천황의 후손으로, 하타노 야시로(羽田矢代), 코세노 오카라(許勢小柄), 소가노 이시카와(蘇我石川), 헤구리노 츠쿠(平群木菟), 키노 츠노(紀角), 카즈라기노 소츠히코(葛城襲津彦) 등을 포함한 여러 아들과 딸 쿠메노 마티오-히메(久米能摩伊刀比売), 노노이로-히메(怒能伊呂比売)를 두었다. 이들은 각각 하타씨(波多氏), 코세씨(巨勢氏), 소가씨(蘇我氏), 헤구리씨(平群氏), 키씨(紀氏), 카츠라기씨(葛城氏) 등 여러 씨족의 시조가 되었다.
『고사기』에 따르면 거세신(許勢臣), 소아신(蘇我臣), 헤구리신(平群臣), 기신(紀臣)을 포함한 27개 씨족이, 『신찬성씨록』에는 다음의 씨족들이 다케우치노 스쿠네의 후예로 기록되어 있다.
| 지역 | 씨족 |
|---|---|
| 사쿄황별(左京皇別) | 기 아손(紀朝臣), 하야시 아손(林朝臣), 사자키베 아손(雀部朝臣), 우에에 신(生江臣), 후시코베(布師首) |
| 우쿄황별(右京皇別) | 야타 아손(八多朝臣), 헤구리 아손(平群朝臣), 타카무코 아손(高向朝臣), 타나카 아손(田中朝臣), 오사다 아손(小治田朝臣), 카와베 아손(川辺朝臣), 키시다 아손(岸田朝臣), 쿠메 아손(久米朝臣), 미타키 아손(御炊朝臣), 타마테 아손(玉手朝臣), 하키모리타코베(掃守田首) |
| 야마시로국황별(山城国皇別) | 와쿠사(曰佐) |
| 야마토국황별(大和国皇別) | 호시카와 아손(星川朝臣), 에누마 신(江沼臣), 아기나키미(阿祇奈君), 와쿠사(曰佐), 이케고 신(池後臣), 거세시마다 신(巨勢楲田臣) |
| 셋츠국황별(摂津国皇別) | 사자키베 아손(雀部朝臣), 사카모토 신(坂本臣), 아키나 신(阿支奈臣) |
| 카와치국황별(河内国皇別) | 미치모리 아손(道守朝臣), 야마구치 아손(山口朝臣), 하야시 아손(林朝臣), 미치모리 신(道守臣), 마토 신(的臣), 시오야노 렌(塩屋連), 코이에노 렌(小家連), 하라노이 렌(原井連), 사야라 신(早良臣), 누노비키코베(布忍首), 키슈쿠(紀祝), 키베(紀部) |
| 이즈미국황별(和泉国皇別) | 사카모토 아손(坂本朝臣), 마토 신(的臣), 누노시 신(布師臣), 키노카지 신(紀辛梶臣), 오야 신(大家臣), 하키모리타코베(掃守田首), 하타베코베(丈部首) |
| 셋츠국 미정 잡성(摂津国未定雑姓) | 칸카이베코베(韓海部首) |
| 이즈미국 미정 잡성(和泉国未定雑姓) | 우카베코베(鵜甘部首) |
『지하가전』에 따르면 오이시 스쿠네(大石宿禰)도 다케우치노 스쿠네의 후손이라고 하지만, 그 계보는 명확하지 않다.
『선대구사본기』 「국조본기」에는 다음의 국조가 후예로 기록되어 있다.
* 에누마 국조 - 반정 천황 치세에 소가 신(蘇我臣) 동조의 다케우치노 스쿠네(武内宿禰)의 4세 손인 시바 카츠아시니(志波勝足尼)를 국조로 정했다고 한다. 훗날의 가가국에누마군 주변에 해당한다.
* 이마 국조 - 세이무 천황 치세에 소가 동조의 다케우치노 스쿠네의 손자인 오코토아시니를 국조로 정했다고 한다. 훗날의 엣추국이미즈군 주변에 해당한다.
4.2. 신앙
다케우치노 스쿠네는 돗토리현 이와미군에 있는 우베 신사와 지역 하치만 신사에 가미로 모셔져 있다. 그의 초상은 일본 엔 지폐에 등장했으며, 그의 인형은 인기 있는 어린이날 선물이다.
무내노 스쿠네는 기비 신궁(후쿠이현 쓰루가시), 우베 신사(돗토리현 돗토리시), 고라타이샤(후쿠오카현 구루메시)를 비롯한 각지의 신사에서 모셔지고 있다. 특히 고라타이샤에서는 제신인 "고라타마타레노미코토"가 중세 이후에 하치만 신 제일의 반신으로 여겨지면서, 오진 천황(하치만 신과 동일시됨)을 섬긴 무내노 스쿠네가 이에 비정되었다. 그 결과, 이와시미즈 하치만구를 비롯한 전국의 하치만궁・하치만사에서 경내 신사 안에 "고라사"로 무내노 스쿠네가 모셔지는 사례가 널리 나타난다.
또한 무내노 스쿠네는 충신으로 여겨져 일본 은행권의 초상으로도 채용되었다. 사진은 물론 초상화도 남아 있지 않기 때문에 일본 은행권의 초상으로서의 무내노 스쿠네는 당시 인쇄부장 사다 세이지를 모델로 에두아르도 키요소네가 디자인한 것이었다.
4.3. 예술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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