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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쿠마 마모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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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다쿠마 마모루는 1963년 효고현 이타미시에서 태어났으며, 어린 시절부터 반사회적 행동을 보였다. 그는 1980년대 강간 혐의로 체포되어 징역형을 선고받았고, 이후에도 여러 차례 범죄를 저질렀다. 2001년에는 오사카 교육대학 부속 이케다 초등학교에 침입하여 8명의 학생을 살해하고 15명에게 부상을 입혀 일본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다. 그는 사형을 선고받았으며, 이례적으로 빠른 속도로 사형이 집행되었다. 그의 사건은 학교 안전 문제, 정신 질환 범죄자 관리 문제, 모방 범죄 등 사회적 논의를 촉발하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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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쿠마 마모루
기본 정보
마모루 다쿠마
이름다쿠마 마모루
본명다쿠마 마모루 (宅間 守)
직업청소부
출생일1963년 11월 23일
출생지효고현 이타미시
사망일2004년 9월 14일
사망 장소오사카 구치소, 오사카부 오사카시
사인교수형
형벌사형
범죄 상태사형 집행
부모소이치로 다쿠마
범죄 정보
날짜2001년 6월 8일
시간오전 10시 15분
대상이케다 초등학교 학생 및 교직원, 특히 여학생
장소오사카부 이케다시
사망자8명
부상자15명
무기데바 칼 (칼날 길이 약 15.8 cm)
군 복무 정보
소속일본 항공자위대
군 복무 기간1981년 - 1983년
병과항공기 정비
제대 후이케다 초등학교 사건 일으킴

2. 어린 시절 및 성장 과정

다쿠마 마모루는 1963년 11월 23일 효고현 이타미시에서 태어났다. 그의 가정 환경은 평범하지 않았으며, 아버지로부터 신체적 학대와 아동 방치를 경험했다.

1979년 아마가사키시의 고등학교에 입학했으나 1981년 중퇴하고, 같은 해 자위대에 입대하기 전까지 주유소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1983년 가출 청소년과의 문제로 강제 전역당한 후[3] 부모와의 관계가 악화되어 아버지가 그에게 돌을 던지는 사건도 있었다.[4] 다쿠마는 야쿠자에 들어가 가족의 삶을 망치겠다고 위협하기도 했다.[5]

1984년, 다쿠마와 그의 어머니는 집을 떠나 아파트를 구입했고, 맏형과 아버지는 집에 남았다. 1년 반 후, 아버지가 아내를 데려왔다.[6] 1999년, 파산 위기에 놓인 다쿠마의 형은 자살했다. 이후 아버지는 술에 취해 입원했고, 다쿠마는 구치소에서 "미야자키 츠토무의 아버지처럼 자살하기를 바랐다"고 말했다.[7] 다쿠마의 어머니는 정신 질환으로 고통받다 2016년 사망했고, 아버지는 2020년 88세로 사망했다. 2020년 9월, 이타미에 있던 다쿠마의 옛 집은 철거되어 빈터가 되었고, 다쿠마 가족의 역사는 끝났다.

2. 1. 유년기

다쿠마 마모루는 1963년 11월 23일 효고현 이타미시에서 태어났다. 어릴 적부터 특이하고 반사회적인 행동을 보였다. 세 살 때 고속도로 중앙으로 세발자전거를 몰고 나가 교통 체증을 유발했으며, 작은 동물을 신문지에 싸서 불을 지르는 방식으로 죽였다.[3] 초등학교와 중학교에서 다쿠마는 괴롭힘의 피해자이자 가해자였다. 그는 어린 나이부터 "고학력 고소득 엘리트"에 대한 질투심을 드러냈다. 다쿠마는 아버지로부터 신체적 학대를 받았고 아동 방치를 당했는데, 잠든 아버지를 칼로 찔러 죽일 생각을 하기도 했다.

효고현 이타미시의 공장 지대에 있는 노동자 가정에서 태어났다.[26] 초등학교 시절 다쿠마는 담임 교사에게 손을 댈 정도로 난폭하고 악질적인 악동으로 불렸으며, 자주 문제 행동을 일으켰다. 유치원 입학 전에는 세발자전거로 국도 중앙을 질주하여 교통 체증을 유발하거나, 큰 돌을 던져 상해를 입히고, 달리는 열차를 향해 돌을 던지거나 선로에 돌을 놓는 악질적인 열차 방해, 약자 괴롭힘, 폭력 행위를 저지르기도 했다.[27] 초등학생 시절 별명은 '곤타 군'이었으며[28], 고양이 등의 동물을 신문지에 싸서 불을 질러 살해하기도 했다. 초등학교 졸업 후에도 문제 행동은 심해졌으며, 본인이 사건 후 감정 의사에게 말한 바에 따르면, "호감을 가지고 있던 여학생의 도시락정액을 뿌렸다"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얌전하지도 않았고, 이러한 악행을 반복하는 한편, 타인과의 협조성은 극단적으로 낮아 악한 무리와 무리를 짓는 일도 없었다.[29]

초등학교 5학년 때, 동급생 여자아이에게 파일럿인 삼촌 이야기를 듣고 동경하게 되었다. 그 무렵, 오사카 교육대 부속 이케다 학교의 존재를 알고 공부를 시작했지만, 아버지는 "교육대 부속 중학교에 들어가는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과외를 받는다. 우리 집은 기계공이라 다르다"라고 타일렀다. 성적은 좋지 않았지만 꺾이지 않고, 중학교에 원서를 가지러 가니 원서에는 내신도 필요했다. 원서를 집에 가져와 수험은 보호자 동반이라고 어머니에게 말하자, "그런 데 붙을 리가 없는데, 시험만 치러 가는 것은 헛수고다"라며 거절당하고, 수험을 포기했다.[30] 초등학생 시절부터 자위대에 강한 관심을 가지고 있어, "장래에는 자위대에 들어갈 거야!"라고 큰 소리로 외치거나, 혼자 군가를 큰 소리로 부르기도 했다.

2. 2. 학창 시절

다쿠마 마모루는 1963년 11월 23일 효고현 이타미시에서 태어났다. 어릴 적부터 특이하고 반사회적인 행동을 보였다. 초등학교와 중학교 시절에는 괴롭힘의 피해자이자 가해자였으며, "고학력 고소득 엘리트"에 대한 질투심을 표현했다.[3] 아울러, 다쿠마는 아버지로부터 신체적 학대를 받았고 아동 방치를 당했는데, 잠든 아버지를 칼로 찔러 죽일 생각을 하기도 했다.

1979년 2월, 아마가사키시의 고등학교에 입학했으나 1981년 3월에 중퇴했다.[3]

2. 3. 자위대 복무 및 제대

1981년 18세에 자위대에 입대했으나, 1983년 1월 십대 가출 청소년과 동승하여 잠을 잔 이유로 강제 전역당했다.[3] 제대 후 부모와의 관계는 악화되었고, 아버지가 그를 돌로 때리는 사건도 있었다.[4] 다쿠마는 이후 그들의 삶을 "엉망으로 만들" 목적으로 ''야쿠자''에 입대하겠다고 위협했다.[5]

3. 범죄 이력

다쿠마 마모루는 이케다 초등학교 살인 사건 이전에도 여러 차례 범죄를 저질렀다.

1984년 강간 혐의를 시작으로, 잦은 폭행과 교통사고, 절도 등 다양한 범죄를 반복했다. 특히 1999년에는 테마제팜이라는 신경안정제를 이용해 교사 4명을 입원시키기도 했다. 여러 차례 체포되었지만, 정신 질환을 이유로 번번이 불기소 처분을 받았다. 직업을 자주 바꾸었지만, 폭행 사건 등으로 인해 오래가지 못했다. 또한, 거주하던 아파트에서도 문제를 일으켜 강제 퇴거를 검토당하기도 했다.[34]

십여 개의 직업 경력 중, 1년 이상 근무한 곳은 항공자위대와 비상근 지방 공무원 2곳뿐이며, 나머지는 모두 반년 이내에 퇴직하거나 해고되었다.

3. 1. 강간 및 폭력 범죄

1984년 11월 21일, 다쿠마는 임대료를 받으러 간 여성의 집에서 강간 혐의로 체포되었다.[8] 1986년 11월, 강간 혐의로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8] 1989년 3월 출소 후, 1993년 9월에 다시 강간 혐의로 체포되었다.[6]

1998년에는 버스 승객의 향수 냄새 때문에 폭행을 가해 해고되었고, 같은 해 전 부인을 폭행한 혐의로 체포되었다. 1999년 3월 3일에는 테마제팜이라는 신경안정제를 교사 휴게실 차에 타서 4명을 사흘 동안 입원시킨 혐의로 체포되었으나, 정신 질환으로 인해 "책임 없음"으로 판명되어 형사 처벌을 받지 않았다. 1999년 11월에는 절도 혐의로 체포되었지만 혐의는 취하되었다. 2000년 9월에는 오사카의 한 호텔 벨보이를 폭행하여 코뼈를 부러뜨린 후 해고되었다.[34]

다쿠마는 이처럼 강간, 폭행 등 여러 범죄를 반복적으로 저질렀다.

3. 2. 정신 질환 진단 및 치료

1984년 11월 21일, 다쿠마는 강간 혐의로 체포된 후 정신과 진료를 받았다. 처음에는 범불안 장애로 진단받았으나, 이후 조현병으로 진단이 변경되었다.[8]

1985년 1월 4일, 다쿠마는 치료에 불만을 품고 병원 5층 옥상에서 뛰어내려 자살을 시도했지만, 하악골과 상악골 골절상만 입었다.[8] 그는 나중에 어머니에게 보낸 편지에서 강간 사건으로 경찰의 추적을 피하기 위해 입원했으며, "부모를 괴롭히기 위해" 뛰어내렸다고 밝혔다.[8]

3. 3. 교통사고 및 기타 범죄

다쿠마 마모루는 덤프트럭 및 트럭 운전사로 일하면서 두 건의 치명적인 교통사고를 냈다.[6] 첫 번째 사고는 산에서 산업 폐기물을 운반하던 중 다른 트럭과 충돌하여 발생했으며, 다른 트럭의 승객 전원이 다음 날 사망했다. 다쿠마는 사고 원인에 대해 거짓말을 했고, 기소되지 않았다.[6] 두 번째 사고는 수도 고속도로 근처에서 발생했으며, 다른 운전자가 옆 벽과 충돌하게 만들고 현장을 떠났다.[6]

1998년에는 버스 승객의 향수 냄새 때문에 폭행을 가해 해고되었다.[6] 1999년 3월 3일에는 근무하던 초등학교 교사 휴게실 차에 테마제팜(신경안정제)을 타서 4명을 입원시켰다.[6] 이 사건에 대해 "교사들에게 무시당하고, 가족과의 관계도 원만하지 않아서 인간 관계에서 오는 분노를 해소하고 싶었다"고 진술했다. 체포되었지만 정신 질환으로 인해 "책임 없음"으로 판명되어 형사 처벌을 받지 않았다.[6]

1999년 11월에는 절도 혐의로 체포되었지만 혐의는 취하되었다.[6] 2000년 9월에는 택시 운전사로 일했지만, 다음 달 오사카의 한 호텔 벨보이를 폭행하여 코뼈를 부러뜨린 후 해고되었다.[6] 2000년 11월에는 건설 자재 회사에서 트럭 운전사로 일했지만, 보복 운전 등의 문제로 몇 달 후 해고되었다.[6], [34] 또한, 발코니에서 쓰레기를 버리는 등의 이유로 여러 아파트에서 쫓겨났다.[34]

4. 결혼 생활

다쿠마 마모루는 여러 차례 결혼과 이혼을 반복했다. 그는 1990년부터 1999년 사이에 네 번 결혼했으나, 모두 이혼으로 끝났다.

4. 1. 네 번의 결혼과 이혼

1990년부터 1999년 사이에 네 번 결혼했으나, 모두 이혼으로 끝났다. 그의 폭력적인 성향과 범죄 행위가 이혼의 주요 원인이었다.[8] [6] 그는 간호사, 버스 운전기사 등 다양한 직업을 가진 여성들과 결혼했다.

5. 이케다 초등학교 살인 사건

2001년 6월 8일, 다쿠마는 이케다 초등학교에서 부엌칼로 학생과 교사를 공격하여 8명의 학생(8세 소녀 7명, 7세 소년 1명)을 살해하고, 13명의 학생과 교사 2명에게 중경상을 입혔다.[9]

다쿠마는 오사카부 경찰에 의해 현행범으로 체포되었고[39], 살인죄·살인미수죄 등으로 오사카 지방 검찰청에서 오사카 지방 재판소로 기소되었다.[40] 2003년 8월 28일, 오사카 지방 재판소는 다쿠마에게 사형을 선고했다.[41] 다쿠마는 판결 전부터 변호단에게 사형 판결이 나와도 항소하지 않겠다고 요구했고, 변호단의 항소에도 불구하고 2003년 9월 26일 스스로 항소를 취하하여 사형을 확정지었다.[45]

이후 2003년 12월, 다쿠마는 지원자와 옥중 결혼을 하였다.[48]

사형 확정으로부터 1년도 안 된 2004년 9월 14일, 노자와 다이조 법무대신의 명령에 의해 오사카 구치소에서 사형이 집행되었다.[22] 이는 이례적으로 빠른 집행으로, 다쿠마의 현행범 체포, 범행 인정, 조기 집행 희망, 피해자 유족의 강한 피해 감정, 속죄 의사 부재 등이 요인으로 작용했다.[54]

5. 1. 범행 동기

다쿠마는 체포 직후 "약물을 10배나 많이 복용했다"고 진술했고, 이후 의료 검사가 실시되었다. 검사 결과, 항정신병제 Seroquel|세로켈영어, 항우울제 Paxil|팍실영어, 그리고 benzodiazepine|벤조디아제핀영어 계열 약물 로르메타제팜의 세 종류가 검출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약물을 모두 표준 처방량의 10배를 복용하더라도, 정신병적 행동보다는 졸음이나 진정을 유발할 가능성이 더 높다.[9]

다쿠마는 "나는 모든 것에 혐오감을 느꼈다. 여러 번 자살을 시도했지만 죽을 수 없었다. 체포되어 사형을 선고받고 싶었다."라고 진술했다.[11] 또한 이케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부유한 아이들에 대한 혐오감을 표현했다.[12]

5. 2. 사건 경과

2001년 6월 8일, 다쿠마 마모루는 이케다 초등학교 살인 사건을 일으켰다. 그는 부엌칼을 들고 학교에 침입하여 학생과 교사들을 무차별적으로 공격했다. 이 공격으로 8명의 학생(8세 소녀 7명, 7세 소년 1명)이 사망하고, 13명의 어린이와 2명의 교사가 중상을 입었다.[9]

체포 당시 다쿠마는 극도로 혼란스러운 상태였다. 처음에는 "나는 초등학교에 갔다"고 반복해서 말했고, 이후에는 "나는 기차역에 가서 칼로 100명을 찔렀다. 나는 초등학교에 가지 않았다"라고 횡설수설했다.[9]

다쿠마는 체포 직후 "약물을 10배나 많이 복용했다"고 진술했고, 의료 검사 결과 항정신병제 세로켈, 항우울제 팍실, 벤조디아제핀 계열 약물 로르메타제팜 세 종류를 복용한 것으로 밝혀졌다. 그러나 이 약물들을 표준 처방량의 10배를 복용하더라도 정신병적 행동보다는 졸음이나 진정을 유발할 가능성이 더 높았다.[9]

그는 "모든 것에 혐오감을 느꼈다. 여러 번 자살을 시도했지만 죽을 수 없었다. 체포되어 사형을 선고받고 싶었다."라고 진술했다.[10][11]

何もかも嫌になった。何回も自殺を図ったが死にきれない。捕まえて死刑にしてほしかった。|Nani mo kamo iya ni natta. Nankai mo jisatsu wo hakatta ga shi ni kirenai. Tsukamaete shikei ni shite hoshikatta.일본어

다쿠마는 이케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부유한 아이들에 대한 혐오감을 표현하기도 했다.[12]

5. 3. 체포 및 재판

다쿠마 마모루는 현장에서 체포된 후, 살인, 살인 미수 등의 혐의로 기소되었다.[15] 다쿠마의 변호인들은 그가 범행 당시 일시적 정신 이상 상태였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처음에 다쿠마를 조현병으로 진단했던 정신과 의사는 이후 편집성 성격장애로 진단을 변경했다.[13][14]

2003년 8월 28일, 오사카 지방 재판소는 다쿠마에게 여러 건의 살인 혐의로 사형을 선고했다.[15] 재판 관련 정보는 다음과 같다.

재판관가와이 마사유키(재판장), 하타구치 야스나리, 와타나베 히데오
검사도코 마사토시
변호인토타니 시게키(주임 변호인), 오오츠키 카즈오, 요코야마 코헤이 (모두 국선 변호인)
판결 주문피고인을 사형에 처한다. 압수된 식칼 1자루(헤이세이 14년 압 제2호의 2) 및 과도 1자루(동호의 3)를 몰수한다.



다쿠마는 재판 과정에서 반성하지 않고 피해자 가족에게 사과를 거부했으며, 오히려 형벌을 빨리 집행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는 법정에서 하품을 하고 몸을 흔드는 등 도발적인 행동을 했으며, "휘발유를 사용했어야 했는데, 그랬으면 더 많이 죽일 수 있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16] 재판 마지막 날에도 다쿠마는 죄책감을 보이지 않고 피해자 가족을 모욕했으며, 판사가 퇴정시킬 때까지 이러한 행동을 계속했다.

일본에서 사형수는 보통 사형수에서 수년을 보내지만, 다쿠마의 사형 집행은 이례적으로 빠르게 진행되었다. 그는 2004년 9월 14일 오사카 구치소에서 사형 집행되었다.[17]

6. 사형 집행

다쿠마 마모루는 2004년 9월 14일 오사카 구치소에서 사형이 집행되었다[22].[51] 그는 사형 확정 후, 2003년 12월 중순에 지원자 여성과 옥중 결혼하여 '요시오카 마모루'로 개명하였다[48].[22]

다쿠마는 부속 이케다 초등학교 사건을 일으켜 2003년 8월 28일 오사카 지방 재판소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다[41]. 그는 판결 전부터 변호단에게 사형 판결이 나와도 항소하지 말 것을 요구했고, 실제로 항소를 스스로 취하하여 제1심에서 사형을 확정지었다[45]. 그는 주임 변호사에게 보낸 편지에서 6개월 이내, 가능하다면 3개월 이내의 사형 집행을 바란다고 밝혔다[46].

노자와 다이조 법무대신의 명령에 따라[22], 다쿠마의 사형은 확정으로부터 약 1년, 사건 발생으로부터 약 3년 만에 조기에 집행되었다[51]. 형사 소송법에는 사형 판결 확정 후 6개월 이내에 법무대신이 사형 집행을 명령하고, 5일 이내에 집행하도록 규정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확정 후 반년 만에 집행된 사례는 드물었다[53]. 당시 사형 확정부터 집행까지는 약 7, 8년이 걸리는 것이 일반적이었다[52].

다쿠마의 조기 집행은 현행범으로 체포되어 죄를 인정했고, 억울한 누명의 가능성이 없으며, 스스로 조기 집행을 원했고[53], 피해자와 유족의 피해 감정이 강했으며, 속죄의 의사를 보이지 않은 점 등이 요인으로 보인다[54].

집행 당일 아침 식사는 허용되지 않았지만, 그는 집행 직전 교도관에게 받은 담배와 사과 주스를 마신 뒤 사형되었다. 사망 시각은 8시 16분이었다. 그는 아내에게 감사의 말을 남겼지만, 사건 희생자와 유족에 대한 사과는 끝까지 없었다[54]. 같은 날 후쿠오카 구치소에서도 다른 사형수 1명의 사형이 집행되었다[46].

6. 1. 이례적인 조기 집행

다쿠마의 변호인들은 그가 공격 당시 일시적 정신 이상을 겪고 있었다고 주장했지만, 그를 처음 조현증으로 진단했던 정신과 의사는 법정에서 그가 실제로는 편집성 성격 장애를 앓고 있다고 결론 내렸다고 말했다.[13][14]

2003년 8월 28일, 다쿠마는 여러 건의 살인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고 사형을 선고받았다.[15] 다쿠마는 반성하지 않았고, 피해자 가족에게 사과를 거부했으며, 단지 형벌을 최대한 빨리 집행해 달라고 요청했다. 법정에서 그는 하품을 하고, 몸을 흔들고, 피해자 가족들을 쳐다보는 등 의도적으로 도발적인 행동을 했다. 그의 발언은 "휘발유를 사용했어야 했는데, 그랬으면 내가 한 것보다 더 많이 죽일 수 있었을 것이다."였다.[16] 재판 마지막 날, 다쿠마는 여전히 죄책감이나 후회를 나타내지 않았고, 판사가 그를 퇴정시킬 때까지 피해자 가족을 계속 모욕했다.

일본의 사형수는 보통 사형수에서 수년을 보내는 것이 일반적이나, 다쿠마의 사형 집행은 일본 기준으로 이례적으로 빠르게 진행되었다. 다쿠마는 사건 발생 1년 뒤인 2004년 9월 14일 오사카 구치소에서 사형 집행되었다.[17]

6. 2. 최후

2003년 8월 28일, 다쿠마는 여러 건의 살인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고 사형을 선고받았다.[15] 다쿠마는 반성하지 않았고, 피해자 가족에게 사과를 거부했으며, 단지 형벌을 최대한 빨리 집행해 달라고 요청했다. 법정에서 그는 하품을 하고, 몸을 흔들고, 피해자 가족들을 쳐다보는 등 의도적으로 도발적인 행동을 했다. 그는 "휘발유를 사용했어야 했는데, 그랬으면 내가 한 것보다 더 많이 죽일 수 있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16] 재판 마지막 날, 다쿠마는 여전히 죄책감이나 후회를 나타내지 않았고, 판사가 그를 퇴정시킬 때까지 피해자 가족을 계속 모욕했다. 사형 집행은 일본 기준으로는 이례적으로 빠르게 진행되었다(일본의 사형수는 보통 사형수에서 수년을 보낸다). 다쿠마는 불과 1년 뒤인 2004년 9월 14일 오사카 구치소에서 사형 집행되었다.[17]

7. 사건의 영향

이케다 초등학교 살인 사건은 일본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으며, 학교 안전 문제와 정신 질환 범죄자 관리 시스템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촉발시켰다.

7. 1. 정신 질환 범죄자 관리 문제

다쿠마 마모루는 1984년 강간 혐의로 체포된 후 정신과 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범불안 장애로 진단받았으나, 이후 조현병 진단을 받고 격리 병동에 수용되었다.[8] 하지만 치료에 불만을 품고 자살을 시도하는 등 불안정한 모습을 보였다. 퇴원 후 "세상에 대한 복수"를 결심하고 범죄를 저지르기 시작했다.

1986년 강간죄로 3년 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 탈출을 시도하기도 했다.[8] 출소 후 운전사로 일하며 여러 차례 교통사고를 일으켰지만, 정신 질환을 이유로 처벌받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1993년 다시 강간 혐의로 체포되었고, 1998년 버스 승객을 폭행하여 해고되었다.

1999년 테마제팜이라는 신경안정제를 이용해 학교 교사들에게 해를 입힌 사건으로 체포되었으나, 정신 질환으로 "책임 없음" 판정을 받고 풀려났다.[8] 이후 절도, 폭행, 보복 운전 등 각종 범죄를 저질렀지만, 정신 질환을 이유로 제대로 된 처벌을 받지 않거나 가벼운 처벌에 그치는 경우가 반복되었다. 2001년 우울증으로 정신 병원에 자진 입원했지만, 다음 날 치료 없이 퇴원했다.

이러한 다쿠마 마모루의 범죄 이력과 정신 질환 진단은 정신 질환 범죄자에 대한 사회적 관리 및 치료 시스템의 문제점을 드러냈다.

7. 2. 모방 범죄

다쿠마 마모루는 사건 이후 일관되게 사형을 희망했으며, 이례적인 속도로 사형이 집행되었다. 이후 일부 사람들은 사형 선고를 받기 위해 범죄를 저지르기도 했다.[18]

7. 2. 1. 고바야시 가오루 사건

고바야시 가오루는 2004년 11월 나라에서 7세 아리야마 가에데를 성폭력하고 살해했는데, 다쿠마를 카리스마 있는 살인자로 여겨 그처럼 신속한 사형 집행을 원했다.[18] 그는 "가능한 한 빨리 사형을 선고받고, 다음 미야자키 쓰토무 또는 다쿠마 마모루와 같이 대중에게 유산을 남기고 싶다"라고 말했다.[19]

7. 2. 2. 기타 모방 범죄

고바야시 가오루는 2004년 11월 나라에서 7세 아리야마 카에데를 성폭력하고 살해했는데, 다쿠마를 카리스마 있는 살인자로 여겨 그처럼 신속한 사형 집행을 원했다.[18] 그는 "가능한 한 빨리 사형을 선고받고, 다음 미야자키 쓰토무 또는 다쿠마 마모루와 같이 대중에게 유산을 남기고 싶다"라고 말했다.[19]

8. 다쿠마 마모루의 가계 및 가족

다쿠마 마모루의 선조는 구 사쓰마 번의 가난한 하급 무사 출신으로, 대대로 법률이나 경찰 관련 일을 하는 사람이 많았다.[25] 다쿠마의 증조부는 메이지 유신 직후 경찰관이 되어 가고시마현에서 아마미오섬을 거쳐 오사카가와치로 이주했다.[26] 다쿠마의 할아버지는 다쿠마의 아버지가 17세가 되던 해 봄에 사망했다.[26]

다쿠마는 아버지로부터 신체적 학대를 받고 방치되었으며, 잠든 아버지를 칼로 찔러 죽일 생각을 하기도 했다. 1984년, 다쿠마와 그의 어머니는 집을 떠나 아파트를 구입했고, 맏형과 아버지만 집에 남았다. 1년 반 후, 아버지가 아내를 데리러 돌아왔다. 다쿠마는 부모에게 "야쿠자를 써서 너희들의 생활을 엉망으로 만들어주겠다", "죽을 때까지 괴롭혀주겠다"라고 말했다.

8. 1. 아버지

다쿠마 마모루의 아버지는 "사쓰마 무사"라는 강한 프라이드를 가지고 평생을 살았다.[26] "누구에게도 폐를 끼치지 않는다"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했으며,[27] 다쿠마 가문의 남자들은 대대로 엄격한 수신 교육(도덕)을 받아 "진정한 사무라이가 되어라"라는 가르침을 받았다고 한다.[25][27] 다쿠마의 아버지 역시 이러한 교육을 받았으며, 교육칙어를 통해 일본인들이 올바르게 살아갈 수 있었다고 믿었다.[27]

하지만 다쿠마의 아버지는 집에 생활비를 제대로 주지 않고 술을 즐겨 마셨으며, 가족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등 문제가 있었다. 가족 앞에서 칼을 휘두르는 일도 있었고, 이 때문에 어머니는 별거를 하기도 했다. 다쿠마는 아버지에게 학대를 받으며 자랐고, 자고 있는 아버지를 식칼로 찔러 죽이고 싶다는 생각을 할 정도로 증오했다. 다쿠마가 자위대를 제대한 후 비행을 저지르면서 부자 관계는 더욱 악화되었고, 아버지가 다쿠마를 돌로 여러 번 때리는 사건도 있었다.

사건 후, 다쿠마의 아버지는 다쿠마에 대해 "일이 잘 풀리지 않으면 모든 것을 남의 탓으로 돌리는 인간"이라고 평가했다.

8. 2. 어머니

다쿠마 마모루의 어머니는 집안일과 육아에 서툴렀고, 다쿠마에게 애정을 쏟지 않았다. 다쿠마를 임신했을 때 아이를 지우고 싶어했으며,[56][28] 모유 수유도 싫어했다. 다쿠마가 중학교 시험을 볼 때 "너 같은 건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았어"라고 말하기도 했다.[30]

장기간 정신 질환을 앓았으며, 정신 병원에서 수십 년 이상 입원 생활을 했다.[28] 2016년 말에 사망했다.[28]

8. 3. 형

1999년 2월, 파산 위기에 놓인 다쿠마의 형은 칼로 목을 그어 자살했다. 그의 아버지는 이 사건 이후 술에 취해 입원했지만, 다쿠마는 구치소에서 "나는 그가 미야자키 츠토무의 아버지처럼 자살하기를 바랐다"고 말했다.[7]

참조

[1] 뉴스 Japan mourns school victims https://web.archive.[...] CNN 2007-11-23
[2] 웹사이트 ja:付属池田小事件裁判傍聴記 殺人鬼の素顔とは https://archive.toda[...] 2008-06-08
[3] 간행물 宅間守 https://ja.wikipedia[...] 2021-12-27
[4] 간행물 宅間守 https://ja.wikipedia[...] 2021-12-27
[5] 간행물 宅間守 https://ja.wikipedia[...] 2021-12-27
[6] 웹사이트 ja:宅間守資料 https://archive.toda[...] 2008-03-09
[7] 웹사이트 宅間守の生い立ち~母親は望まない子供で父親の現在や兄は自殺の闇 https://oitachi-ima.[...] 2021-06-06
[8] 서적 宅間守 精神鑑定書 精神医療と刑事司法のはざまで https://www.akishobo[...] Aki Shobo 2021-08-16
[9] 뉴스 Motive for school stabbing unclear http://tvnz.co.nz/vi[...] Television New Zealand 2008-02-10
[10] 웹사이트 教室に乱入、児童8人を刺殺 http://tiyu.to/perma[...] 2008-02-15
[11] 뉴스 School massacre shatters Japan's sense of security https://archive.toda[...] 2008-02-19
[12] 뉴스 Seven dead in street stabbing frenzy http://www.news.com.[...] 2008-06-19
[13] 뉴스 Suspect may suffer from personality disorder http://www.japantime[...] 2017-06-26
[14] 웹사이트 Osaka massacre suspect Takuma not schizophrenic: psychiatrist https://www.thefreel[...] [[Kyodo News]] 2017-06-26
[15] 뉴스 Death for Japanese school killer http://news.bbc.co.u[...] BBC 2007-11-23
[16] 뉴스 Quote Of The Day - I should have used gasoline, so I could have killed more than I did https://archive.toda[...] 2008-06-08
[17] 뉴스 Japanese school killer executed http://news.bbc.co.u[...] BBC 2007-11-23
[18] 뉴스 Defendant admits abducting and killing schoolgirl in Nara https://web.archive.[...] 2007-11-23
[19] 뉴스 Defendant admits abducting and killing schoolgirl in Nara https://web.archive.[...] 2008-02-11
[20] 뉴스 夕刊フジ特捜班「追跡」--児童惨殺事件-- 心の闇と傷(2) http://www.zakzak.co[...] [[産業経済新聞社]] 2021-04-03
[21] 뉴스 宅間守被告の半生 2003-08-25
[22] 뉴스 池田小事件 宅間死刑囚の刑執行 法務省 異例の早さ 一審確定後1年 [[中日新聞東京本社]] 2004-09-14
[23] 뉴스 付属池田小事件 宅間被告、死刑確定 自ら控訴取り下げ/大阪高裁 [[読売新聞大阪本社]] 2003-09-27
[24] 뉴스 大教大池田小殺傷事件 児童8人が死亡 「何もかも嫌に」男供述 [[読売新聞大阪本社]] 2001-06-09
[25] 뉴스 付属池田小事件 宅間被告、死刑確定 自ら控訴取り下げ/大阪高裁 [[読売新聞大阪本社]] 2003-09-27
[26] 뉴스 狙われた教室 上 北日本新聞社 2001-06-10
[27] 문서 宅間守 精神鑑定書 精神医療と刑事司法のはざま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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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문서 宅間守精神鑑定書 精神医療と刑事司法のはざまで
[30] 문서 特集「狙われた教室 惨劇への暴走」 (第1部)「受けるだけ無駄や」と母 大教大池田中の受験を断念(2)
[31] 뉴스 無言で次々と刺す「何かやるぞ」最悪の事態に 宅間容疑者 異物混入で逮捕歴 [[北國新聞]]社富山本社 2001-06-09
[32] 뉴스 付属池田小の児童殺傷事件 検察側の冒頭陳述要旨 2001-12-27
[33] 문서 宅間守 精神鑑定書 精神医療と刑事司法のはざまで p150
[34] 뉴스 宅間容疑者 中学から家庭内暴力 父親語る 空自除隊後、職を転々 2001-06-09
[35] 뉴스 伊丹の小学校薬物混入事件 技能員を傷害容疑で逮捕/兵庫 読売新聞大阪本社 1999-03-15
[36] 뉴스 読売新聞 読売新聞 1999-04-03
[37] 뉴스 包丁男、児童7人刺殺 教室に乱入し次々襲う 大阪教育大池田小 読売新聞 2001-06-08
[38] 뉴스 大阪の児童殺傷事件 惨劇15分、4教室で次々 死亡児童8人に 読売新聞 2001-06-9
[39] 뉴스 包丁男、児童7人刺殺 教室に乱入し次々襲う 大阪教育大池田小 読売新聞 2001-06-08
[40] 뉴스 大教大池田小児童ら殺傷 宅間容疑者を起訴 大阪地検「責任能力は完全」と判断 読売新聞 2001-09-15
[41] 뉴스 池田小児童殺傷事件 宅間被告に死刑判決 冒頭に暴言、退廷/大阪 読売新聞 2003-08-28
[42] 뉴스 「最後に言わせてえな」宅間被告に死刑 メモ掲げ 何度も叫ぶ 退廷時、遺族ののしる 朝日新聞 2003-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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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뉴스 宅間死刑囚に刑執行 大阪、池田小児童殺傷 判決から1年 朝日新聞 2004-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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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 웹인용 附属池田小・児童8人惨殺 宅間元死刑囚が獄中で綴った本当の動機「エリートの卵を刺し続けた」【平成事件史】 〈dot.〉 https://dot.asahi.co[...] 2021-07-27
[60] 웹인용 池田小事件・宅間守の親族が初めて明かした「実父の最期」(FRIDAY) https://news.yahoo.c[...] 2021-07-27
[61] 웹인용 【池田小事件20年】 悲劇二度と…元死刑囚と接した弁護人と面会者の苦悩 https://www.sankei.c[...] 2021-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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