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교향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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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런던 교향악단(LSO)은 1904년 한스 리히터의 지휘로 창단된 영국의 대표적인 오케스트라이다. 퀸즈홀 관현악단에서 독립한 단원들을 중심으로 결성되었으며, 협동조합 방식으로 운영되었다. 1960년대부터 다양한 지휘자들을 거치며 세계적인 오케스트라로 성장했고, 1982년 바비칸 센터에 상주하게 되었다. 클래식 연주뿐 아니라 영화 음악 녹음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런던 심포니 코러스와 자체 음반사 'LSO Live'를 운영하고 있다. 역대 상임 지휘자로는 한스 리히터, 에드워드 엘가, 클라우디오 아바도, 콜린 데이비스, 발레리 게르기예프, 사이먼 래틀 등이 있으며, 현재 안토니오 파파노가 상임 지휘자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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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교향악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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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정보 | |
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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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단 | 1904년 |
공연장 | 바비칸 센터 로열 앨버트 홀 |
웹사이트 | www.lso.co.uk |
장르 | 클래식 음악 |
현재 구성원 | |
수석 지휘자 | 안토니오 파파노 |
명예 지휘자 | 사이먼 래틀 |
수석 객원 지휘자 | 잔안드레아 노세다 프랑수아-자비에 로트 |
계관 지휘자 | 마이클 틸슨 토머스 |
추가 정보 | |
활동 기간 | 1904년 - 현재 |
출신 국가 | 잉글랜드 런던 |
관련 정보 | |
혼동 주의 | 런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
2. 역사
19세기 중반부터 유럽 본토에서 관현악 연주회 관습이 유입되면서 영국에서도 전문 관현악단 설립 시도가 여러 차례 있었다. 1904년, 헨리 우드가 이끌던 퀸즈홀 관현악단의 단원들이 중심이 되어 영국 최초의 독립채산 및 자주 운영 방식의 오케스트라인 런던 교향악단이 출범했다.[4] 같은 해 6월 9일, 퀸즈홀에서 한스 리히터의 지휘로 첫 콘서트를 개최했다.[9] 리히터는 초대 수석 지휘자로 취임하여 1911년 에드워드 엘가에게 자리를 물려줄 때까지 악단의 기반을 다졌다.[15] 엘가 이후에도 아르투르 니키슈, 토머스 비첨 등 저명한 지휘자들이 수석 지휘자를 역임했다.
1914년 제1차 세계 대전 발발과 함께 아르투르 니키슈는 적성국인이 되어 지휘자 직에서 물러났다.[23] 전쟁 중에는 토머스 비첨이 상임 지휘자 직을 맡았다. 1919년, 종전 후 앨버트 코츠가 지휘자를 맡았다. 전후에는 독일이나 오스트리아 등의 지휘자들을 초빙해 객원 연주회도 재개했고, 엘가나 구스타브 홀스트 등의 영국 관현악 작품을 비롯한 여러 곡들을 녹음해 음반 산업계에서도 각광받았다. 그러나 1930년대부터 경제 대공황의 여파로 악단의 활동이나 운영도 점차 축소되었으며, 1935년에 해밀턴 하티가 사임한 후 약 16년간 상임 지휘자직이 공석인 채 객원 지휘에 의존해야 했다.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후 음악계가 점차 활기를 되찾으면서, 1951년 요제프 크립스를 초빙해 상임 지휘자 제도를 부활시켰다.[59] 1961년에는 프랑스 출신의 노장 지휘자였던 피에르 몽퇴가 부임해 큰 인기를 얻었으며, 몽퇴 사후에는 이슈트반 케르테즈가 그 자리를 이어받았다. 후임으로는 앙드레 프레빈이 임명되었으며, 텔레비전 출연과 다양한 녹음 작업으로 악단 명성을 확립하는 데 크게 이바지했다.[78]
프레빈 사임 후에는 클라우디오 아바도와 마이클 틸슨 토머스가 차례로 상임 지휘자직을 계승했으며, 1995년에는 콜린 데이비스가 이어받아 프레빈과 함께 최장 재임 기록(11년)을 갱신했다. 2007년에는 창단 이후 최초의 러시아인 상임 지휘자로 발레리 게르기에프를 맞이했으며, 현재 계속 재임 중이다.
2. 1. 창단 배경 (1904년 이전)
19세기 중반부터 유럽 본토에서 관현악 연주회 관습이 유입되면서 영국에서도 전문 관현악단 설립 시도가 여러 차례 있었다. 런던을 본거지로 한 가장 영향력 있는 악단은 퀸즈홀 관현악단이었고, 20세기 초반까지 헨리 우드의 지휘로 명성을 떨치고 있었다.그러나 1903년, 우드가 단원들의 부업을 금지하는 강경 조치를 취하면서 악단 내부에 심한 내분이 일어났다. 그 결과 약 50명의 단원들이 퇴단하여 새로운 악단을 결성하게 되었다.

20세기 초 런던에는 상주 정규직 오케스트라가 없었다. 코벤트 가든, 필하모닉 협회, 퀸즈 홀 오케스트라의 운영자들은 각 공연이나 시즌마다 개별적으로 연주자들을 고용했다. 최고의 연주자들을 확보하기 위한 경쟁이 치열했기 때문에, 공연 연주 계약을 맺었더라도 더 높은 급여를 제시하는 다른 공연을 수락하는 것이 허용되는 관행이었다. 따라서 원래 공연과 리허설에는 다른 연주자를 대신 참여시키는 일이 빈번했다. 필하모닉 협회의 회계 담당자는 이 시스템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당신이 원하는 A가 당신의 공연에 연주하기로 계약한다. 그는 (당신이 신경 쓰지 않는) B를 첫 리허설에 보낸다. B는 당신의 지식이나 동의 없이 두 번째 리허설에 C를 보낸다. 공연에 연주할 수 없게 된 C는 당신이 5실링을 주고도 안 오게 했을 D를 보낸다."[1] 당시에는 우수한 오케스트라 연주자에 대한 경쟁이 치열했으며, 50개 이상의 뮤직홀, 웨스트엔드 뮤지컬 코미디 오케스트라 피트, 그리고 오케스트라를 유지하는 대형 호텔과 레스토랑에서 높은 급여를 제시했다.[2]
1904년, 퀸즈 홀의 매니저 로버트 뉴먼과 프롬나드 콘서트 지휘자 헨리 우드는 더 이상 대타 시스템을 용납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우드가 자신의 오케스트라에서 수십 명의 낯선 얼굴들과 마주한 리허설 후, 뉴먼은 무대로 나와 "신사 여러분, 앞으로는 ''대타가 없습니다!'' 좋은 아침입니다!"라고 선언했다.[3] 오케스트라 연주자들의 급여는 높지 않았고, 대타 시스템으로 인해 더 높은 급여를 받을 수 있는 공연 기회를 박탈당하는 것은 많은 연주자들에게 심각한 재정적 타격이었다.[4] 1904년 5월, 뉴먼의 발표 직후, 영국 북부 음악 축제에서 우드의 지휘 아래 공연하기 위해 기차를 타고 가던 중, 주요 연주자들 일부가 이 상황에 대해 논의하고 스스로 오케스트라를 결성하기로 합의했다. 주요 주도자들은 세 명의 호른 연주자(아돌프 보르스도르프, 토마스 버스비, 앙리 반 데어 미르셴)와 트럼펫 연주자 존 솔로몬이었다.[4]
2. 2. 창단과 초기 활동 (1904년 ~ 1914년)
1904년, 헨리 우드가 이끌던 퀸즈홀 관현악단의 단원들이 중심이 되어, 영국 최초의 독립채산 및 자주 운영 방식의 오케스트라인 런던 교향악단이 출범했다.[4] 같은 해 6월 9일, 퀸즈홀에서 한스 리히터의 지휘로 첫 콘서트를 개최했다.[9] 리히터는 초대 수석 지휘자로 취임하여 1911년 에드워드 엘가에게 자리를 물려줄 때까지 악단의 기반을 다졌다.[15] 엘가 이후에도 아르투르 니키슈, 토머스 비첨 등 저명한 지휘자들이 수석 지휘자를 역임했다.
1906년, 런던 교향악단은 영국 오케스트라 최초로 해외 투어를 실시하여 파리에서 연주회를 가졌다.[16] 1912년 미국 공연 때는 당초 타이타닉호를 이용할 예정이었으나, 일정 변경으로 인해 발틱호를 이용하면서 가까스로 참사를 면했다.[141][20]
2. 3. 제1차 세계대전과 전간기 (1914년 ~ 1939년)
1914년 제1차 세계 대전 발발과 함께 아르투르 니키슈는 적성국인이 되어 지휘자 직에서 물러나야 했다.[23] 전쟁 중에는 토머스 비첨이 상임 지휘자 직을 맡아 활동했다. 비첨은 할레 오케스트라와 왕립 필하모닉 협회에도 재정 지원을 했으며, 1년 동안 LSO의 수석 지휘자를 맡았으나 직함은 없었다. 1916년 그의 아버지가 사망하면서 비첨의 재정 상황이 어려워져 더 이상의 음악 후원은 불가능하게 되었다.[24] 1917년 LSO 이사들은 전쟁이 끝날 때까지 연주회를 열지 않기로 결정했다.[25]전쟁 초기, LSO 이사회는 단원들로부터 보르스도르프의 LSO 회원 자격 유지에 항의하는 청원을 받았다. 그는 오케스트라 설립에 큰 기여를 했고, 30년 동안 영국에 거주하며 영국 여성과 결혼했지만, 일부 동료들에 의해 적성국 국민으로 간주되어 오케스트라에서 퇴출당했다.[23]

1919년, 종전 1년 후 앨버트 코츠가 지휘자 자리를 이어받았다. 그는 니키슈의 제자로, 부유하고 영향력 있는 인맥을 가지고 있었으며 무료로 지휘할 의향이 있었다.[27] 코츠와 오케스트라의 첫 연주회는 에드워드 엘가의 첼로 협주곡 초연이었다. 코츠는 연습 시간을 엘가의 시간을 빼앗으면서까지 초과했고, 엘가 부인은 "그 잔혹하고 이기적이며 무례한 녀석…그 짐승 같은 코테스가 계속 연습을 했다"라고 적었다.[28] ''옵서버(The Observer)''지의 뉴먼은 "이번 주에 연습 부족에 대한 소문이 있었다. 어떤 설명이든, 슬픈 사실은 아마도 이렇게 훌륭한 오케스트라가 이토록 비참한 모습을 보인 적은 없다는 것이다"라고 썼다.[29] 코테스는 2시즌 동안 수석 지휘자로 남았고, 모리슨은 그가 "오케스트라에 생명과 활력을 불어넣었다"고 평가했다.[30]
코츠가 떠난 후, LSO는 단일 수석 지휘자를 두는 대신 여러 명의 객원 지휘자를 초빙했다. 객원 지휘자 중에는 엘가, 비첨, 오토 클렘페러, 브루노 발터, 빌헬름 푸르트뱅글러, 세르게이 쿠세비츠키가 있었고, 1920년대에는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 아르투르 슈나벨, 예후디 메뉴힌 등이 솔리스트로 참여했다.[30]
1927년 푸르트뱅글러가 이끄는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퀸즈홀에서 두 차례 연주회를 열었다. 이 공연과 1928년과 1929년 같은 오케스트라의 후속 공연은 당시 런던의 낮은 오케스트라 수준을 분명하게 드러냈다.[31] BBC와 비첨 모두 런던의 오케스트라 수준을 베를린 수준으로 끌어올리려는 야망을 가지고 있었다. 1929년 BBC는 애드리언 볼트가 이끄는 새로운 BBC 심포니 오케스트라를 위해 단원 모집을 시작했다. 정규직 연봉을 받는 오케스트라에 합류할 수 있다는 전망은 일부 LSO 단원들에게 이적을 유도할 만큼 매력적이었다.[32] W. J. 터너에 따르면, LSO의 문제는 연주가 저하된 것이 아니라 지난 20년 동안 최고의 유럽과 미국 오케스트라가 이룬 상당한 연주 수준 향상에 뒤처졌다는 것이었다.[34]
2. 4. 제2차 세계대전과 전후 복구 (1939년 ~ 1950년대)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후 음악계는 점차 활기를 되찾기 시작했다. LSO는 1951년 요제프 크립스를 초빙해 상임 지휘자 제도를 부활시켰다.[59] 비엔나에서의 약속 때문에 1950년까지 LSO의 수석 지휘자가 되지 못했지만, 1948년 12월 오케스트라와 함께 첫 콘서트를 한 이후부터 연주에 좋은 영향을 미쳤다.[59] 그의 레퍼토리는 흥행에 성공적이었다. 베토벤 교향곡과 협주곡 시리즈는 오케스트라의 재정과 음악 수준을 모두 회복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60] 크립스와 다른 지휘자들과 함께 오케스트라는 1950년대 초 데카 레코드사에서 광범위하게 녹음했다.[132]전쟁이 끝난 후 LSO는 새로운 경쟁에 직면해야 했다. BBC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런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전쟁을 무사히 넘겼고, 후자는 비첨이 떠난 후 자치 단체가 되었다. 이 세 오케스트라는 월터 레게의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와 비첨의 로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라는 두 개의 새로운 오케스트라에 의해 빠르게 그늘에 가려졌다.[58] 1951년 로열 페스티벌 홀이 개장하자 LSO와 LPO는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독점 거주권 경쟁을 벌였다. 어느 쪽도 성공하지 못했고, 페스티벌 홀은 두 오케스트라와 RPO, 필하모니아 모두에게 주요 런던 공연장이 되었다.[62]
크립스는 1954년에 LSO를 떠났고,[63] 그 이듬해 오케스트라 수석 단원들과 일반 단원들 사이의 긴장이 해결 불가능한 분쟁으로 비화했다. 수석 단원들은 LSO의 미래는 혼잡한 런던 콘서트 시장보다는 영화사의 수익성 있는 세션 작업에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개별적으로 그러한 계약을 자유롭게 수락하고, 날짜가 겹치는 경우 콘서트에 불참할 수 있기를 원했다.[64] 대다수 단원들의 의견을 반영한 LSO 이사회는 수석 단원들의 요구를 수용하지 않았고, 대부분의 수석 단원들은 집단 사퇴하여 런던 심포니아를 결성했다.
떠난 수석 단원들을 대체하기 위해 LSO는 현악 파트에 휴 매과이어, 네빌 마리너, 사이먼 스트릿필드를, 목관 파트에 거베이스 드 페예, 윌리엄 워터하우스를, 금관 파트에 배리 턱웰, 데니스 위크를 포함한 젊은 유망주들을 영입했다. 새로운 단원들과 함께 오케스트라는 빠르게 수준과 위상을 높였다.[66]
2. 5. 1960년대 ~ 현재
1차 세계대전 종전 후, 1951년 요제프 크립스를 초빙해 상임 지휘자 제도를 부활시켰다. 1961년에는 프랑스 출신의 노장 지휘자였던 피에르 몽퇴가 부임해 큰 인기를 얻었으며, 몽퇴 사후에는 이슈트반 케르테즈가 그 자리를 이어받았다. 케르테즈는 젊은 세대의 대표격 지휘자로 관심을 모았지만, 악단 운영진과의 불화와 청중 동원 능력의 미흡함 등이 지적되어 1968년에 사임했다. 후임으로는 앙드레 프레빈이 임명되었으며, 텔레비전 출연과 다양한 녹음 작업으로 악단 명성의 확립에 크게 이바지했다.[78]프레빈 사임 후에는 클라우디오 아바도와 마이클 틸슨 토머스가 차례로 상임 지휘자직을 계승했으며, 1995년에는 콜린 데이비스가 이어받아 프레빈과 함께 최장 재임 기록(11년)을 갱신했다. 2007년에는 창단 이후 최초의 러시아인 상임 지휘자로 발레리 게르기에프를 맞이했으며, 현재 계속 재임 중이다. 전임자였던 데이비스에게는 회장 직책이 주어졌으며, 프레빈도 계관 지휘자 칭호를 수여받았다. 이외에도 역시 전임자였던 틸슨 토머스와 다니엘 하딩이 수석 객원 지휘자로 활동하고 있다.[78]
1971년, BBC 텔레비전의 존 컬쇼는 "안드레 프레빈의 음악의 밤(André Previn's Music Night)"을 기획하여, 고전 음악을 대중에게 널리 알렸다.[89] 프레빈은 카메라를 향해 편안하게 이야기한 후, 지휘대에 서서 LSO를 지휘했다. 당시 LSO 단원들은 정장 대신 캐주얼한 스웨터나 셔츠를 입었다.[89] 이 프로그램은 고전 음악 프로그램으로는 전례 없는 시청률을 기록했다.[88] 모리슨은 "더 많은 영국인들이 '음악의 밤' 프로그램에서 LSO의 연주를 한 주 만에 들었습니다. 이는 65년 동안의 LSO 콘서트를 통해 들은 것보다 많은 수치입니다."라고 적었다.[89] 1971년부터 1977년 사이에 여러 시리즈의 프로그램이 방영되었다.[90]

1982년 LSO는 바비칸 센터에 상주하게 되었다.
1988년 9월, 마이클 틸슨 토머스가 아바도의 뒤를 이어 수석 지휘자에 취임했다.[102]
1989년, 영국 왕립 필하모닉 협회는 "연주 능력과 연주 수준의 우수성"을 기리는 오케스트라 상을 제정했고, LSO가 첫 수상자였다.[100]
3. 주요 활동
니키슈 재임 시대부터 녹음 활동을 시작하여 현재까지 이어오고 있으며, 2000년부터는 자체 음반사 'LSO Live'를 통해 실황 녹음을 음반화하고 있다.[129] 1966년에는 악단 부속 합창단인 런던 심포니 코러스가 창단되어 독립적인 공연 외에 합창이 포함된 관현악 작품 연주에 협연하고 있다.
퀸즈홀을 비롯해 로열 앨버트 홀, 로열 페스티벌 홀 등에서 공연하다가 1982년 바비컨 센터 준공 후 상주 악단이 되었다. 클래식 연주회 외에도 영화 음악 녹음으로 유명하며, 딥 퍼플 등과 협연하거나 게임 음악을 녹음하는 등 활동 영역을 넓히고 있다. 김동률도 솔로 앨범 2집부터 4집까지 악단과 공동 작업을 진행했다.[89]
역대 단원 중에는 제임스 골웨이(플루트), 배리 터크웰(호른), 게르바스 드 페이어(클라리넷), 오시안 엘리스(하프) 등이 솔리스트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3. 1. 공연
1966년에 악단 부속 합창단인 런던 심포니 코러스(London Symphony Chorus)가 창단되었으며, 독립적인 공연 외에 합창 붙은 관현악 작품 연주 때 협연하고 있다. 로열 앨버트 홀이나 로열 페스티벌 홀 등에서 공연하다가 1982년 바비컨 센터가 준공되면서 상주 악단이 되었다. 클래식 연주회 외에도 영화 음악 녹음으로 유명하며, 딥 퍼플 등과 협연하고 게임 음악도 녹음하는 등 활동 영역을 넓히고 있다. 김동률도 자신의 솔로 앨범 2집부터 악단과 공동 작업을 시작해 4집까지 이어오고 있다.[89]1971년 BBC 텔레비전의 존 컬쇼는 "안드레 프레빈의 음악의 밤"을 기획하여 고전 음악을 대중에게 널리 알렸다. 당시 LSO 단원들은 정장 대신 캐주얼한 스웨터나 셔츠를 입었다.[89] 이 프로그램은 고전 음악 프로그램으로는 전례 없는 시청률을 기록했다.[88] 1971년부터 1977년까지 여러 시리즈의 프로그램이 방영되었다.[90]
1973년 LSO는 영국 오케스트라 최초로 잘츠부르크 페스티벌(Salzburg Festival)에 참가했고, 이듬해 할리우드 보울(Hollywood Bowl)에서 공연했다.[78]
1978년, LSO는 스타워즈(Star Wars) 사운드트랙으로 3개의 그래미상(Grammy)을 수상했고, 오케스트라의 "클래식 록(Classic Rock)" 녹음은 엄청난 인기를 얻어 막대한 로열티 수입을 올렸다.[78]
1982년부터 LSO는 바비칸(Barbican)에 상주하게 되었다. 초기 몇 년 동안 오케스트라는 지나치게 야심찬 프로그램 편성과 부진한 티켓 판매로 재정적 어려움에 직면했다.[97]
1985년 오케스트라는 아바도가 기획한 "말러, 빈, 그리고 20세기"를 개최했고, 이듬해에는 번스타인 페스티벌을 성공적으로 개최했다.[100]
1988년 오케스트라는 "모든 연령대의 사람들, 아기부터 음악 학생, 성인까지 음악 활동에 참여할 기회를 제공하는" LSO 디스커버리(LSO Discovery)를 설립하는 교육 정책을 채택했다. 이 프로그램은 2022년 현재에도 시행되고 있으며 매년 6만 명 이상의 사람들에게 혜택을 주고 있다.[101]
1989년, 영국 왕립 필하모닉 협회(Royal Philharmonic Society)는 "연주 능력과 연주 수준의 우수성"을 기리는 오케스트라 상을 제정했고, LSO가 첫 수상자였다.[100]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LSO)는 협주곡, 교향곡, 실내악 및 전자음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작곡가들의 주목할 만한 새로운 작품을 초연했다. 이러한 공연은 바비컨 센터, LSO 세인트 루크 및 해크니 엠파이어를 포함한 다양한 장소에서 열린다.[138]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초연한 주목할 만한 작품의 작곡가는 다음과 같다:[139]
- 존 애덤스 (John Adams)
- 토마스 아데스 (Thomas Adès)
- 토마스 비첨 (Thomas Beecham)
- 조지 벤자민 (George Benjamin)
- 진은숙 (Unsuk Chin)
- 애런 코플랜드 (Aaron Copland)
- 탠지 데이비스 (Tansy Davies)
- 신동훈 (Donghoon Shin)
- 프레더릭 딜리우스 (Frederick Delius)
- 조나단 도브 (Jonathan Dove)
- 에드워드 엘가 (Edward Elgar)
- 소피아 구바이둘리나 (Sofia Gubaidulina)
- 로빈 헤이 (Robin Haigh)
- 마그누스 린드베리 (Magnus Lindberg)
- 루크 몽브레아 (Luke Mombrea)
- 자스민 모리스 (Jasmine Morris)
- 알렉스 팩스턴 (Alex Paxton)
- 세르게이 프로코피예프 (Sergei Prokofiev)
- 사샤 스콧 (Sasha Scott)
- 니콜라이 림스키-코르사코프 (Nikolai Rimsky-Korsakov)
- 제임스 맥밀란 (James MacMillan)
-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 (Sergei Rachmaninoff)
- 오거스타 리드 토마스 (Augusta Read Thomas)
- 자스민 켄트 로드먼 (Jasmin Kent Rodgman)
- 랄프 본 윌리엄스 (Ralph Vaughan Williams)
- 안톤 베베른 (Anton Webern)
- 에릭 위태커 (Eric Whitacre)
3. 2. 영화 및 게임 음악
LSO는 무성 영화 시대부터 영화와 관련이 있었다. 1920년대에 유진 구센스가 편곡하고 지휘한 음악으로 『삼총사』(1922), 『니벨룽의 반지』(1924), 『정처 없는 나그네』(1927), 『베토벤의 일생』(1929) 상영에 맞춰 연주했다.[135]1935년 이후 LSO는 200편이 넘는 영화 음악을 녹음했다.[135] 코르다 스튜디오의 음악 감독인 뮤어 매티슨 덕분에 첫 사운드트랙 세션에 참여하게 되었다. LSO 웹사이트의 영화 전문가 로버트 라이더는 매티슨을 "영국 영화 음악 초기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로, 블리스를 영입하여 『미래를 향하여』의 음악을 작곡하게 했고, 이후 20세기 영국에서 가장 저명한 작곡가들을 영화 음악 작업에 참여시킨 인물"이라고 부른다.[46] 매티슨은 LSO를 "완벽한 영화 오케스트라"라고 묘사했다. 매티슨이 LSO 사운드트랙을 위해 의뢰한 작곡가들 중에는 본 윌리엄스, 월턴, 브리튼, 말콤 아놀드와 에릭 코츠, 노엘 코워드를 포함한 가벼운 음악 작곡가들이 있었다.[136]
매티슨과 LSO의 협업의 정점으로 1946년 영화 『오케스트라의 악기들』을 언급하는데, 이는 작업 중인 LSO를 기록한 영화이다. 사전트는 영화를 위해 작곡된 브리튼의 『청소년을 위한 오케스트라 안내』 공연에서 오케스트라를 지휘했다. 라이더는 "매티슨의 다큐멘터리는 음악가들과 그들의 악기에 대한 클로즈업을 통해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시대의 낙관주의 속에서 오케스트라의 활력과 질감을 아름답게 포착하고 있다"고 덧붙였다.[46]
영화 음악에서 LSO 역사의 또 다른 이정표는 1977년 첫 번째 『스타워즈』 영화 음악인 존 윌리엄스의 음악 녹음이었다. 라이더는 이 영화와 속편들이 "새로운 팬들을 불러 모았고, 오케스트라의 영화 음악 활동 시대를 공고히 했으며, 이는 오늘날까지도 계속되고 있다"고 말한다.[46] LSO는 『슈퍼맨: 더 무비』(1978)와 『레이더스: 최후의 성전』(1981)을 포함한 다른 윌리엄스 영화 음악과 해리 포터 영화 시리즈 8편 중 6편을 녹음했다.[137]
LSO는 클래식 음악 외에도 '스타워즈 시리즈'와 '백 투 타이타닉' 등 영화 음악 녹음에도 전쟁 이전부터 수많이 참여하여 이 분야에서도 명성이 높다.[141]
일본 영화에서는 이시카와 쿤(市川崑) 감독 작품인 『화조』(火の鳥)(테마 음악: 미셸 르그랑) , 오바야시 노리히코(大林宣彦) 감독 작품인 『물의 여행자』(水の旅人)(음악: 히사이시 조)의 테마 음악에 기용되었다. 구로사와 아키라가 『란』에서 처음에 기용하려고 했다는 일화도 있다( 토마츠 토오루의 반대로 삿포로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기용되었다).
일본 팔콤에서 제작한 게임의 배경음악을 편곡한 2장짜리 CD앨범 「FALCOM NEO CLASSIC」이 1992년에 킹 레코드에서 발매되었다. 지휘는 콘스탄틴 파블로프가 맡았다. 한 장은 하츠베 류지의 편곡으로 풀 오케스트라 연주를 담았지만, 다른 한 장은 마츠타케 히데키와 이리에 준(入江純)의 신시사이저 연주 작품으로 구성되어 있다. 또한, 최근에는 아케이드판 『디시디아 파이널 판타지』의 연주도 담당했다. 작곡은 이시모토 조세이, 지휘 및 편곡은 사토 켄타로가 맡았다.
3. 3. 음반
니키슈 재임 시대부터 시작한 녹음 활동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으며, 1966년에 악단 부속 합창단인 런던 심포니 코러스(London Symphony Chorus)가 창단되어 독립적인 공연 외에 합창 붙은 관현악 작품의 연주 때 협연하고 있다. 2000년부터는 악단 자체 음반사인 'LSO Live'를 만들어 실황 녹음들을 음반화하고 있다.[129]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LSO)는 녹음 초기부터 니키슈 지휘 아래 베토벤의 ''에그몬트'' 서곡, 베버의 ''오베론'' 서곡, 리스트의 헝가리 광시곡 F단조를 아날로그 방식으로 녹음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자유 사수''와 ''피가로의 결혼''의 서곡을 녹음했다. 당시 세션을 감독했던 HMV의 프레드 가이스버그는 "독보적인 기교를 보여주는 연주"였다고 썼다.[128]
1920년 LSO는 컬럼비아 그래포폰 컴퍼니와 3년 계약을 맺었고, 펠릭스 바잉가르트너 지휘 아래 모차르트(39번 교향곡), 베토벤(5번, 7번, 8번 교향곡), 브람스의 1번을 녹음했다.[128] 이 시대의 다른 녹음으로는 작곡가 자신이 지휘한 홀스트의 ''행성'' 초연 녹음과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돈 후안'', ''영웅의 생애'', ''죽음과 변용''이 있다.[128]
엘가가 1920년대 후반과 1930년대 초에 HMV를 위해 주요 작품들을 녹음할 때, 대부분의 녹음에 LSO가 선택되었다.
1950년대와 1960년대 초, LSO의 녹음은 주로 데카를 통해 이루어졌는데, 시벨리우스 교향곡 시리즈(앤서니 콜린스와 함께), 몽테외 지휘 아래 프랑스 음악, 솔티의 초기 녹음, 브리튼의 주요 작품 시리즈가 포함된다.[132] 이스탄 케르테스의 3년간의 수석 지휘는 드보르자크 교향곡들과 바르토크의 ''청수염 공작의 성'' 음반을 남겼다.[128]
2000년 이후 LSO는 자체 레이블인 LSO Live에서 상업용 CD 녹음을 발매했다. 녹음은 바비컨 센터에서 여러 날에 걸쳐 라이브로 진행되고 후반 작업에서 편집된다. 처음에는 CD로 출시되었지만, 그 이후로 슈퍼 오디오 CD와 다운로드 형태로도 출시되었다. LSO Live는 게르기에프, 데이비스, 베르나르트 하이팅크를 포함한 지휘자들의 70개 이상의 녹음을 발매했다. 게르기에프 버전의 프로코피예프의 ''로미오와 줄리엣''은 2011년 ''BBC 뮤직 매거진''의 올해의 음반이었고,[133] 데이비스의 베를리오즈의 ''환상 교향곡''과 ''트로이인'' 그리고 드보르자크의 8번 교향곡 음반은 BBC 라디오 3의 최고 추천작이었다.[134]
4. 부속 단체
1966년에 악단 부속 합창단인 런던 심포니 코러스(London Symphony Chorus)가 창단되었으며, 독립적인 공연 외에 합창 붙은 관현악 작품의 연주 때 협연하고 있다.
5. 역대 상임 지휘자 및 주요 직책
런던 교향악단은 상임 지휘자 외에도 칼 뵘, 레너드 번스타인 등을 회장 직책으로 초빙하여 객원 출연을 진행했다. 콜린 데이비스는 회장, 앙드레 프레빈은 계관 지휘자 칭호를 받았다. 마이클 틸슨 토머스와 다니엘 하딩은 수석 객원 지휘자로 활동하고 있다.[1]
5. 1. 역대 상임 지휘자
런던 교향악단의 역대 상임 지휘자 목록은 다음과 같다.재임 기간 | 이름 |
---|---|
1904년 ~ 1911년 | 한스 리히터 |
1911년 ~ 1912년 | 에드워드 엘가 |
1912년 ~ 1914년 | 아르투르 니키슈 |
1915년 ~ 1917년 | 토머스 비첨 |
1919년 ~ 1922년 | 앨버트 코츠 |
1930년 ~ 1931년 | 빌럼 멩엘베르흐 |
1932년 ~ 1935년 | 해밀턴 하티 |
1951년 ~ 1954년 | 요제프 크립스 |
1960년 ~ 1964년 | 피에르 몽퇴 |
1965년 ~ 1968년 | 이슈트반 케르테즈 |
1968년 ~ 1979년 | 앙드레 프레빈 |
1979년 ~ 1987년 | 클라우디오 아바도 |
1987년 ~ 1995년 | 마이클 틸슨 토머스 |
1995년 ~ 2006년 | 콜린 데이비스 |
2007년 ~ 2015년 | 발레리 게르기예프 |
2017년 ~ 2023년 | 사이먼 래틀[144] |
2023년 ~ | 안토니오 파파노[142][143] |
한스 리히터는 1904년 악단 창단과 동시에 초대 상임 지휘자로 취임하여 1911년까지 활동했다.[141] 이후 에드워드 엘가, 아르투르 니키슈, 토머스 비첨, 앨버트 코츠, 빌럼 멩엘베르흐, 해밀턴 하티가 상임 지휘자를 역임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1951년 요제프 크립스가 상임 지휘자 제도를 부활시켰다. 1960년에는 피에르 몽퇴가 부임하였고, 이후 이슈트반 케르테즈, 앙드레 프레빈, 클라우디오 아바도, 마이클 틸슨 토머스, 콜린 데이비스가 차례로 상임 지휘자를 역임했다. 콜린 데이비스는 앙드레 프레빈과 함께 최장 기간(11년) 재임 기록을 세웠다. 2007년에는 발레리 게르기예프가 최초의 러시아인 상임 지휘자로 취임하였고, 2017년부터 2023년까지 사이먼 래틀이, 2023년부터는 안토니오 파파노가 상임 지휘자를 맡고 있다.
5. 2. 역대 총재
재임 기간 | 이름 |
---|---|
1920년대 | 하워드 드 월든(Howard de Walden) |
1948년 - 1957년 | 윌리엄 월턴(William Walton) |
1958년 - 1974년 | 아서 블리스(Arthur Bliss) |
1977년 - 1981년 | 칼 뵘(Carl Böhm) |
1987년 - 1990년 | 레너드 번스타인(Leonard Bernstein) |
2007년 - 2013년 | 콜린 데이비스(Colin Davis) |
5. 3. 기타 주요 직책
콜린 데이비스에게는 회장 직책이 주어졌으며, 앙드레 프레빈도 계관 지휘자 칭호를 수여받았다. 이외에도 전임자였던 마이클 틸슨 토머스와 다니엘 하딩이 수석 객원 지휘자로 활동하고 있다.[1]6. 평가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LSO)는 세계 최고의 오케스트라 중 하나로 여러 차례 선정되었다.[116][117][118] 1988년 ''그라모폰'' 지의 기사에서 제임스 졸리는 LSO가 여러 특징을 가진 오케스트라라고 평가했다. 앙드레 프레빈의 유산, 레너드 번스타인의 회장직, 마이클 틸슨 토머스의 임명으로 인해 미국적인 오케스트라로, 피에르 몽퇴의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 프랑스적인 오케스트라로 여겨지기도 한다. 또한 이슈트반 케르테스 하에서 슬라브 레퍼토리를 연주하고, 클라우디오 아바도가 다듬은 말러의 작품을 연주하면서 다양한 특징을 보여주었다. 졸리는 LSO가 여전히 수수께끼 같고, 예측 불가능하며, 매우 개성적이라고 평가하며, 솔로 연주자로도 뛰어난 "스타" 연주자들을 많이 배출했다고 언급했다. 또한 LSO는 한 명의 수석 지휘자에게 복종하지 않고, 훌륭한 지휘자들을 끌어들여 진정한 연주를 만들어내는 능력이 강점이라고 평가했다.[128]
오랜 기간 LSO는 남성 단원(여성 하피스트 제외)으로만 구성되어 있었다. 1960년대와 1970년대의 LSO는 "전 세계를 활보하는 시끄러운 남자들의 클럽"으로 묘사되기도 했다.[120] 1970년대 이전에 오케스트라에서 연주한 소수의 여성 중 한 명은 오보이스트 에블린 로스웰이었는데, 그녀는 1930년대에 합류했지만 남성 동료들에게는 외부인으로 여겨졌다.[121] LSO의 정회원으로 선출된 최초의 여성은 1975년 레나타 셰펠-슈타인이었다.[122]
2004년까지 LSO 단원의 약 20%가 여성이었다. 데이비스를 포함한 일부 음악가들은 여성 단원의 증가가 오케스트라의 연주와 행동을 향상시켰다고 평가했다.[124] 반면, 앙드레 프레빈과 베테랑 수석 트럼펫 연주자 모리스 머피 등은 연주 기술 수준은 향상되었지만, 오케스트라의 마초적인 성향이 감소한 것은 유감이라고 생각했다.[124] 머피는 2004년의 LSO와 1960년대와 1970년대의 오케스트라를 비교하면서 "현재 현악기 연주가 훨씬 향상되어 연주가 환상적이지만, 맹렬한 기세가 약해졌습니다."라고 말했다.[125] 1960년대 오케스트라는 싫어하는 지휘자를 괴롭히는 것으로 명성이 있었지만,[126] 21세기에 이르러 오케스트라는 그러한 공격성을 버리고 지휘자에게 예의를 갖추게 되었다.[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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