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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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문서 가설은 토라(모세 오경)가 여러 자료의 조합으로 구성되었다는 이론이다. 18세기부터 시작된 이 가설은 토라의 내용, 문체, 신명(神名) 사용의 차이를 분석하여, 야훼 문서(J), 엘로힘 문서(E), 신명기 문서(D), 제사장 문서(P) 등 네 개의 주요 문서로 구분한다. 율리우스 벨하우젠은 19세기 후반에 이 가설을 체계화하여 널리 알려지게 했지만, 20세기 후반부터 비판과 수정을 거쳐 현재는 다양한 형태로 연구되고 있다. 특히, 문서 가설은 한국 개신교 내에서 보수와 진보 신학 간의 논쟁을 불러일으키는 요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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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설 | |
---|---|
개요 | |
이름 | 문서 가설 |
원어명 | 영어: Documentary hypothesis 독일어: Quellentheorie, Urkundenhypothese 일본어: 文書仮説 |
주요 내용 | |
설명 | 토라 (구약성경의 처음 다섯 권)의 기원과 구성을 설명하는 가설 |
핵심 주장 | 토라가 여러 독립적인 문서들을 모아 편집한 결과물이라는 주장 |
문서 종류 | J: 야훼계 (기원전 10세기~9세기) E: 엘로힘계 (기원전 9세기) Dtr1: 초기 신명기 역사가 (기원전 7세기) Dtr2: 후기 신명기 역사가 (기원전 6세기) P*: 제사장계 (기원전 6세기~5세기) D†: 신명기 R: 편집자 DH: 신명기 역사서 (여호수아기, 사사기, 사무엘기, 열왕기) |
역사적 발전 | |
초기 연구 | 장 아스트뤼크: 모세오경의 다양한 출처 가설 제시 요한 고트프리트 아이히호른: "구약 서론"에서 문서 가설 발전 |
고전적 문서 가설 | 카를 그라프와 율리우스 벨하우젠: 야훼계(J), 엘로힘계(E), 신명기계(D), 제사장계(P) 문서 확립 벨하우젠: 이스라엘 종교 발전사 재구성 (제사장계 문서를 가장 후대에 배치) |
비판과 수정 | 움펠더, 루돌프 스마르크, 쿠르트 뮐러: 문서 가설에 대한 비판 제기 알브레히트 알트, 마르틴 노트: 구전 전승의 중요성 강조 게르하르트 폰 라트: 신명기계 신학 연구 |
현대적 논의 | 단편 가설, 보충 가설 등 다양한 수정 가설 등장 문서 가설의 유효성에 대한 지속적인 논쟁 |
주요 학자 | |
관련 학자 | 장 아스트뤼크 요한 고트프리트 아이히호른 카를 그라프 율리우스 벨하우젠 알브레히트 알트 마르틴 노트 게르하르트 폰 라트 |
2. 문서 가설의 역사
토라(Torah, 또는 모세 오경)는 전통적으로 모세가 하나님에게 받아 적은 것으로 알려졌다.[2] 그러나 17세기부터 모세 저작설은 주요 학자들에게 대체로 거부되었고, 현대 학자들은 토라를 오랜 진화 과정의 산물로 간주한다.[2]
18세기 중반, 일부 학자들은 토라에 나타나는 이중성, 불일치, 문체와 어휘의 변화에 대한 비평적 연구를 시작했다. 1780년, 요한 고트프리트 아이히호른은 장 아스트뤼크의 연구를 바탕으로 "초기 문서 가설"을 정립했다. 이는 창세기가 야훼 문서(J)와 엘로힘 문서(E)라는 두 개의 자료를 결합하여 구성되었다는 것이다. 이후 빌헬름 데 베테가 신명기 문서를 추가 자료로 식별하고, 엘로힘 문서가 엘로힘 문서와 제사장 문서(P)로 분리되면서 네 개의 문서가 되었다.
이러한 문서적 접근은 단편 가설과 보충 가설과 경쟁했다. 단편 가설은 토라 배후에 다양한 길이의 단편들이 있다고 주장했지만, 구조적 일관성을 설명할 수 없었다. 보충 가설은 토라가 엘로힘 문서를 핵심으로 하고 여러 출처에서 가져온 단편들로 보충되었다고 주장하여 통일성을 설명했다.
헤르만 후프펠트는 1853년에 모세 오경이 제사장 문서, 야훼 문서, 엘로힘 문서와 신명기의 네 개의 문서적 자료로 구성되었다고 주장했다. 카를 하인리히 그라프는 야훼 문서와 엘로힘 문서가 가장 초기, 제사장 문서가 가장 후기 자료라고 주장했고, 빌헬름 파트케는 네 자료를 진화적 틀에 연결했다.
1878년, 율리우스 벨하우젠은 ''Geschichte Israels, Bd 1''('이스라엘 역사, 1권')을 출판했다. 이 책의 두 번째 판은 1883년 ''Prolegomena zur Geschichte Israels''("이스라엘 역사 서설")로 출판되어 더 잘 알려져 있다. 벨하우젠의 문서설은 훗펠트, 에두아르 외젠 로이스, 그라프 등의 작품을 기반으로 했다. 그는 훗펠트의 네 가지 자료를 받아들였고, 그라프와 동의하여 제사장 자료를 마지막에 배치했다.
벨하우젠은 J는 가장 초기의 문서로, 기원전 10세기의 솔로몬 궁정에서 제작, E는 기원전 9세기의 북부 이스라엘 왕국에서 유래, 편집자에 의해 J와 결합, D는 기원전 7세기에 요시야 왕 통치 기간인 기원전 620년경에 제작, P는 기원전 6세기의 사제와 성전이 지배하던 세계의 산물이라고 보았다. 마지막 교정은 P가 JED와 결합되어 현재의 토라를 생성했을 때 이루어졌다고 주장했다.
벨하우젠의 설명은 이스라엘 종교 역사에 대한 설명이기도 했다. 야훼와 엘로히스트는 원시적, 자발적, 개인적인 세계를 묘사, 신명기는 예언자들의 영향과 유대교의 정점, 제사장 자료는 사제 지배적인 포로 이후 시대의 엄격하고 의례적인 세계를 반영했다. 그의 연구는 19세기 말부터 20세기 말까지 오경 기원에 대한 지배적인 설명으로 "새로운 문서설"을 확고히 했다.
2. 1. 초기 발전 (18세기 중반 - 19세기 중반)
1753년, 프랑스 의사 장 아스트뤽은 익명으로 『모세가 창세기를 쓰는 데 이용했을 것으로 생각되는 원전에 대한 추론』을 발표했다. 그는 창세기에 나타나는 신명(神名)의 차이("야훼", "엘로힘")와 내용의 중복 및 모순에 주목하여, 창세기가 두 개의 독립적인 문서("야훼 문서", "엘로힘 문서")를 바탕으로 편집되었다는 가설을 제시했다.[6] 이는 토마스 홉스와 바루흐 데 스피노자 등이 제기한 모세 저작설에 대한 반박이었다.[5][6]1780년, 독일 신학자 요한 고트프리트 아이히호른은 아스트뤽의 가설을 모세오경 전체로 확장했다.[7] 1805년, 빌헬름 데 베테는 신명기가 앞선 두 문서와는 별개의 독립적인 문서("신명기 문서")임을 주장했다.[7]
1822년경, 헤르만 후프펠트는 엘로힘 문서가 다시 제사장 문서와 엘로힘 문서로 나뉜다고 주장하고, 네 문서의 편집자(Redactor)의 중요성을 강조했다.[7]
학자들은 네 자료(야훼 문서, 엘로힘 문서, 신명기 문서, 제사장 문서)의 성립 순서와 연대를 추정하려 노력했다. 바루흐 데 스피노자는 신명기가 기원전 7세기 요시야 왕 치세의 예루살렘 성전 제사장들과 관련이 있다고 보았고, 데 베테는 어떤 자료도 다윗 왕 시대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지 않는다고 결론내렸다.[8]
2. 2. 벨하우젠의 집대성 (19세기 후반)
1878년, 율리우스 벨하우젠은 ''Geschichte Israels, Bd 1''(이스라엘 역사, 1권)을 출판했다. 이 책의 두 번째 판은 1883년 ''Prolegomena zur Geschichte Israels''(이스라엘 역사 서설)로 출판되었으며, 이 제목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벨하우젠의 문서설은 벨하우젠 자신보다는 주로 훗펠트, 에두아르 외젠 로이스, 그라프 등의 작품이었으며, 이들은 다시 이전 학문에 기초했다. 그는 훗펠트의 네 가지 자료를 받아들였고, 그라프와 동의하여 제사장 자료를 마지막에 배치했다.
벨하우젠은 야훼 문서(J)를 가장 초기의 문서로, 기원전 10세기의 솔로몬 궁정에서 제작된 것으로 보았다. 엘로힘 문서(E)는 기원전 9세기의 북부 이스라엘 왕국에서 유래했으며, 편집자에 의해 J와 결합되어 JE라는 문서를 형성했다고 보았다. 세 번째 자료인 신명기 문서(D)는 기원전 7세기에 요시야 왕 통치 기간인 기원전 620년경에 제작되었으며, 제사장 문서(P)는 기원전 6세기의 사제와 성전이 지배하던 세계의 산물이라고 보았다. 마지막 교정은 P가 JED와 결합되어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토라를 생성했을 때 이루어졌다고 주장했다.
벨하우젠의 토라 형성에 대한 설명은 또한 이스라엘의 종교 역사에 대한 설명이기도 했다. 야훼와 엘로히스트는 이스라엘 역사의 가장 초기 단계에 부합하는 원시적이고 자발적이며 개인적인 세계를 묘사했고, 그는 신명기에서 예언자들의 영향과 유대교의 정점이라고 느꼈던 윤리적 관점의 발전을 보았으며, 제사장 자료는 사제 지배적인 포로 이후 시대의 엄격하고 의례적인 세계를 반영했다. 그의 연구는 상세하고 광범위한 학문과 면밀한 논증으로 유명하며, 19세기 말부터 20세기 말까지 오경의 기원에 대한 지배적인 설명으로서의 "새로운 문서설"을 확고히 했다.
1876~77년, 벨하우젠은 ''Die Composition des Hexateuchs und der historischen Bücher des Alten Testaments''(구약성서 모세오경과 역사서의 구성)을 출판하여, 이 논문에서 모세 오경이 4개의 자료에 기원을 두고 있음을 설명했다. 이어서 1878년, ''Prolegomena zur Geschichte Israels''(이스라엘사 서설)에서 비 기독교적·유대교적 입장에서 고대 이스라엘 종교의 발전사를 추적하는 시도를 했다. 벨하우젠의 연구를 개별적으로 살펴보면 새로운 내용은 거의 없지만, 과거의 연구를 걸러내고 그것을 조합하여 모세 오경과 유대교의 기원에 관한 논리적으로 일관된 포괄적인 이론을 세웠다. 그 설득력 때문에, 이어진 1세기 동안 학계에서는 지배적인 설이 되었다.
2. 3. 비판과 수정 (20세기 후반 - 현재)
1970년대에 존 반 세터스, 한스 하인리히 슈미트, 롤프 렌토르프 등의 학자들은 문서설에 대한 비판을 제기했다. 이들은 문서설의 주요 가정들을 재평가하도록 만들었으며, 특히 야훼 문서(J)의 연대를 솔로몬 시대가 아닌 바빌론 유수 시대 또는 늦어도 군주 시대 말기로 낮추어 추정했다. 반 세터스는 엘로힘 문서(E)의 존재에 대해서도 비판적이었는데, E 문서는 기껏해야 창세기에 나오는 두 개의 짧은 구절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렌토르프는 오경이 짧고 독립적인 이야기들의 모음집으로, 신명기와 제사장 편집 단계를 거쳐 점차적으로 묶였다는 단편 가설을 주장했다. 반면, 반 세터스는 토라가 기존 작품에 야훼 문서와 제사장 문서라는 두 개의 주요 추가물로 만들어졌다는 보충 가설을 옹호했다.
오늘날 대부분의 학자들은 신명기를 요시야 궁정에서 만들어진 율법 조항에서 유래된 하나의 자료로 인식하며, 이후 유수 기간 동안 모세의 말로 식별하기 위해 틀이 주어졌다고 본다. 또한 어떤 형태의 제사장 문서(P)가 존재했다는 데는 동의하지만, 그 범위는 불확실하다.
최근 학계에서는 토라의 최종 형태를 페르시아 시대(기원전 539–333년)에 완성된 문학적, 이념적 통일체로 보는 경향이 있다. 소수의 학자들은 헬레니즘 시대(기원전 333–164년)로 보기도 한다.
수정된 신-문서설은 북미와 이스라엘을 중심으로 여전히 지지를 받고 있다. 이 가설은 스타일과 언어적 문제보다는 플롯과 연속성을 통해 자료를 구별한다. 다만, E 자료의 부활은 논쟁적인 요소로 남아있다.
3. 주요 문서
문서설은 토라가 네 개의 주요 문서, 즉 J (야훼 문서), E (엘로힘 문서), D (신명기 문서), P (제사장 문서)로 구성되었다고 본다. 벨하우젠은 선행 연구와 마찬가지로 (어휘를 포함한) 문체, 신명, 중복 기사를 기준으로 여러 자료를 구분해 나갔다. J 자료는 풍부한 설화적 문체와 관련이 있으며, 그에 비해 E 자료는 다소 풍부함이 부족한 문체, P의 단어는 무미건조하고 법률 지향적이다. 신명이나 신의 산을 호렙산(E와 D)이라고 부르거나 시나이산(J와 P)라고 부르는 등의 사용하는 어휘의 차이.
3. 1. J (야훼 문서)
야훼(Yahweh)라는 신명을 사용하며, 하느님을 인간적인 모습으로 묘사하는 경향이 있다.[9] 풍부한 서사적 문체를 특징으로 한다. 벨하우젠은 선행 연구와 마찬가지로 문체, 신명, 중복 기사를 기준으로 여러 자료를 구분했는데, J 자료는 풍부한 설화적 문체와 관련이 있으며, 그에 비해 E 자료는 다소 풍부함이 부족한 문체, P의 단어는 무미건조하고 법률 지향적이다. 신명이나 신의 산을 호렙산(E와 D)이라고 부르거나 시나이산(J와 P)라고 부르는 등의 사용하는 어휘의 차이를 보인다.[9]성서학에서의 문서 가설에 따르면, 『창세기』의 창조 부분은 두 개의 다른 전승의 조합으로 여겨진다. 야훼이스트 자료에 의한 전승(『창세기』 2:6–2:25)에서는 주 하느님 야훼가 하늘과 땅을 만들 때, 땅에는 나무도 풀도 아직 나지 않았고, 하느님은 비를 내리지 않았지만, 땅은 "샘"(지하수)으로 적셔졌다고 묘사한다. 하느님은 흙의 먼지(아다마)로 사람(아담)을 빚어 그 코에 생명의 숨결을 불어넣었고, 그 후 풀과 나무를 창조하고 에덴 동산을 관리하게 했다. 아담이 동물들 중에서 자신에게 맞는 짝을 찾지 못하자, 하느님은 아담을 잠들게 하고 갈비뼈의 일부를 취해 여자를 만들었다. 아담은 여자를 보고 기뻐하며, 남자(이쉬)에게서 나왔다는 의미로 여자(이샤)라고 불렀다.[9]
일반적으로 야훼이스트 자료의 아담과 하와의 창조 이야기가 유명하며, 중세 시대에는 이 부분의 묘사로 "남자의 갈비뼈는 여자보다 하나 적다"고 진지하게 생각했다. 과거에는 여성 혐오의 근거가 되기도 했지만, 제사장 자료에서는 더 인간 숭배적·남녀 동등적 사상이라고 할 수 있다.[9] 신은 흙의 티끌(아다마)로 사람(아담)을 만들고, 그 코에 생기(루아흐)를 불어넣어 사람을 창조한다. 또한, 신은 사람, 남자의 조력자로서, 남자(이쉬)에게서 취한 갈비뼈로 여자(이샤)를 창조한다.[9]
『창세기』 2장 4절 후반 – 3장에서는 창조주를 야훼 엘로힘이라고 부른다(한국에서는 '주 하나님' 또는 '하나님'으로 번역).[9] 이 이야기 부분은 야웨이스트 자료(J 자료)라고 불린다. 이전 학설에서는 야웨이스트 자료가 제사장 자료보다 오래되었다고 여겨졌으나, 연구가 진전됨에 따라 표현 형식, 신앙 내용도 지혜 문학에 가까운 부분이 있어, 현재는 바빌론 유수 이후의 시대라는 설이 강해지고 있다. 이 경우에도 신화라기보다는 지식 계층의 사람들이 자신들의 신앙을 집필한 것이며, 야훼 엘로힘과 인간에 대한 깊은 통찰이 이루어지고 있다.[9]
3. 2. E (엘로힘 문서)
엘로힘(אֱלֹהִיםhe, 엘로힘)이라는 신명을 사용하며, 하느님을 보다 초월적인 존재로 묘사한다. J 문서에 비해 문체가 간결하다. 벨하우젠은 선행 연구와 마찬가지로 (어휘를 포함한) 문체, 신명, 중복 기사를 기준으로 여러 자료를 구분해 나갔는데, J 자료는 풍부한 설화적 문체와 관련이 있으며, 그에 비해 E 자료는 다소 풍부함이 부족한 문체라고 보았다. 신명이나 신의 산을 호렙(E와 D)이라고 부르거나 시나이(J와 P)라고 부르는 등의 사용하는 어휘의 차이가 있다.3. 3. D (신명기 문서)
벨하우젠은 선행 연구와 마찬가지로 문체, 신명, 중복 기사를 기준으로 여러 자료를 구분했다. J 자료는 풍부한 설화적 문체와 관련이 있으며, E 자료는 다소 풍부함이 부족한 문체, P의 단어는 무미건조하고 법률 지향적이다. 신명이나 신의 산을 호렙(E와 D)이라고 부르거나 시나이(J와 P)라고 부르는 등 사용하는 어휘의 차이를 보였다.3. 4. P (제사장 문서)
P (제사장 문서)는 제사 의식, 정결례, 족보 등 제사장적 관심사를 반영하며, 형식적이고 반복적인 문체를 사용한다. 벨하우젠은 문체, 신명, 중복 기사를 기준으로 자료를 구분했는데, P 자료는 무미건조하고 법률 지향적인 어휘를 사용한다.신 바빌로니아는 예루살렘 성전을 파괴하고, 지도층 사람들을 바빌론 유수로 끌고갔다. 이러한 상황에서 제사장 직인들은 바빌로니아 신화에 대항하는 형태로 자신들의 신앙서를 만들어 (창조 신앙) 위기 상황에서 다시 살아갈 힘을 만들어냈다.
미켈란젤로의 시스티나 성당 천장화에서 묘사된 아담의 창조에서 볼수 있듯이, 『창세기』 1장 1절 – 2장 4절 전반부에서는 창조주를 엘로힘이라고 부른다. 하느님은 6일 동안 세상을 창조했다.
- 첫째 날, 빛(히브리어: 오르)을 창조하고 빛과 어둠을 나누어 낮과 밤을 만들었다.
- 둘째 날, 하늘을 만들었다.
- 셋째 날, 땅과 바다를 만들고 땅에는 풀, 씨 맺는 풀, 열매 맺는 나무가 생겨나게 했다.
- 넷째 날, 하늘에 큰 빛과 작은 빛, 별을 만들어 낮과 밤을 다스리게 했다.
- 다섯째 날, 물의 생물인 큰 바다 짐승과 물에서 움직이는 모든 생물, 날아다니는 모든 새를 창조했다.
- 여섯째 날, 땅의 생물인 가축, 기는 것, 땅의 짐승을 만들고, 마지막으로 인간인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여 이들을 다스리게 했다.
『창세기』는 당시 지식 계층이 집필한 종교서로, 바빌로니아의 창조 이야기와 다르게 인간은 모두 하느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져 평등함을 주장한다.
4. 문서 가설과 한국 개신교
구약성서를 비판적으로 분석 연구하는 학문을 구약성서학이라고 하며, 그 중 '''문서 가설'''은 고등 비평이라고 한다. 이 연구 결과, 『창세기』에서는 두 개의 입장(신앙)에 따른 "천지 창조"가 병기되어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다음의 경위를 거친 결과, 제사장 자료 부분에서는 몇몇 점에서 바빌로니아 신화와의 유사점이 발견된다. 오히려, 바빌로니아 신화를 포함한 선행 신화를 소재로 삼아, 이를 환골탈태하여 새로운 천지 창조 이야기를 만들어냈다는 것이 실상에 가깝다.
다만, 보수적인 교회는 이를 인정하지 않는다.
;보수적 입장
대한민국의 보수적인 개신교 교단들은 대체로 문서 가설을 부정하며, 토라의 모세 저작설을 옹호한다. 이들은 문서 가설이 성경의 권위를 훼손한다고 비판한다. 특히, 예장합동, 예장고신 등은 문서 가설을 자유주의 신학의 산물로 간주하고 강하게 반대한다.
;진보적 입장
한국기독교장로회(기장) 등 진보적인 교단들은 문서 가설을 수용하는 경향이 있으며, 성서 비평학을 통해 성경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다고 본다. 구약성서학에서는 문서 가설을 고등 비평이라고도 하며, 이 연구 결과에 따르면 『창세기』에는 두 개의 입장에 따른 "천지 창조"가 병기되어 있다고 주장된다. 제사장 자료 부분에서는 바빌로니아 신화와의 유사점이 발견되며, 오히려 바빌로니아 신화를 포함한 선행 신화를 소재로 삼아 새로운 천지 창조 이야기를 만들어냈다는 것이 실상에 가깝다고 여겨진다. 다만, 보수적인 교회는 이를 인정하지 않는다.
4. 1. 보수적 입장
대한민국의 보수적인 개신교 교단들은 대체로 문서 가설을 부정하며, 토라의 모세 저작설을 옹호한다. 이들은 문서 가설이 성경의 권위를 훼손한다고 비판한다. 특히, 예장합동, 예장고신 등은 문서 가설을 자유주의 신학의 산물로 간주하고 강하게 반대한다.4. 2. 진보적 입장
한국기독교장로회(기장) 등 진보적인 교단들은 문서 가설을 수용하는 경향이 있으며, 성서 비평학을 통해 성경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다고 본다. 구약성서학에서는 문서 가설을 고등 비평이라고도 하며, 이 연구 결과에 따르면 『창세기』에는 두 개의 입장에 따른 "천지 창조"가 병기되어 있다고 주장된다. 제사장 자료 부분에서는 바빌로니아 신화와의 유사점이 발견되며, 오히려 바빌로니아 신화를 포함한 선행 신화를 소재로 삼아 새로운 천지 창조 이야기를 만들어냈다는 것이 실상에 가깝다고 여겨진다. 다만, 보수적인 교회는 이를 인정하지 않는다.5. 비판 및 논쟁
5. 1. 자료 구분의 모호성
벨하우젠은 선행 연구와 마찬가지로 문체, 신명, 중복 기사 등을 기준으로 여러 자료를 구분했다. J 자료는 풍부한 설화적 문체와 관련이 있으며, E 자료는 다소 풍부함이 부족한 문체, P의 단어는 무미건조하고 법률 지향적이다. 신명을 야훼(J) 또는 엘로힘(E)으로 부르는 경우, 신의 산을 호렙(E와 D)이라고 부르거나 시나이(J와 P)라고 부르는 등 사용하는 어휘의 차이가 나타난다. 각 문서의 특징이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아, 특정 구절을 어느 문서에 귀속시킬지 학자들 간에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5. 2. 역사성 문제
5. 3. 대안적 가설
참조
[1]
문서
hence the alternative name ''JEDP'' for the documentary hypothesis
[2]
문서
The reasons behind the rejection are covered in more detail in the article on [[Mosaic authorship]].
[3]
문서
The two-source hypothesis of Eichhorn was the "older" documentary hypothesis, and the four-source hypothesis adopted by Wellhausen was the "newer".
[4]
서적
Jews and Judaism in World History
Routledge
2010
[5]
문서
For a brief overview of the Enlightenment struggle between scholarship and authority, see Richard Elliott Friedman, "Who Wrote the Bible?", pp. 20–21 (hardback original 1987, paperback HarperCollins edition 1989).
[6]
문서
Gordon Wenham, "Exploring the Old Testament: Volume 1, the Pentateuch", (2003), pp. 162–163.
[7]
문서
Richard Elliott Friedman, "Who Wrote the Bible?", pp. 22–24.
[8]
웹사이트
Richard Elliott Friedman, "Who Wrote the Bible?", p. 25, and Alexander Rofe, "Introduction to the Composition of the Pentateuch", (1999), ch. 2
http://www.ctsfw.edu[...]
2009-02-11
[9]
서적
絹川久子著『聖書のフェミニズム-女性の自立をめざして』ヨルダン社 ISBN 48428007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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