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특별시의 역사
1. 개요
서울특별시의 역사는 고대 백제의 위례성에서 시작되어 삼국 시대를 거치며 한강 유역을 둘러싼 국가들의 각축장이었다. 고려 시대에는 남경으로 승격되어 수도로서의 위상을 갖추었으며, 조선 시대에 한성부로 수도가 정해져 600년 이상 대한민국의 수도 역할을 해왔다. 일제강점기에는 경성부로 개칭되어 식민지 수도가 되었으며, 1945년 광복 이후 서울시로, 1946년 서울특별자유시를 거쳐 1949년 서울특별시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한국 전쟁의 피해를 딛고 경제 성장과 도시 확장을 이루었으며, 1988년 서울 올림픽, 2002년 월드컵을 개최하며 국제적인 도시로 발돋움했다. 서울은 행정 구역의 변천을 거쳐 현재 25개 구로 구성되어 있으며, 교통 및 주요 사건을 통해 도시의 역사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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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별칭 | 한성, 경성 |
|---|---|
| 표어 | 함께 서울, 행복한 동행 |
| 기원 | 기원전 18년, 백제의 위례성 건립 |
|---|---|
| 초기 수도 | 백제의 수도 (기원전 18년~475년) |
| 고구려 점령 | 장수왕 시기 (475년~551년) |
| 명칭 변경 | 남평양으로 개칭 |
| 신라 점령 | 진흥왕 시기 (551년~672년) |
| 명칭 변경 | 한산주로 개칭 |
| 통일신라 | 한양군으로 개칭 (757년) |
| 남경 승격 | 문종 23년 (1069년) |
|---|---|
| 중요성 증대 | 숙종 대, 북진 정책의 요충지 |
| 임시 수도 | 이제현의 건의 (1308년) |
| 수도 천도 | 태조 3년 (1394년) |
|---|---|
| 명칭 | 한성부 |
| 임진왜란 | 왜군에 의해 점령 (1592년) |
| 이괄의 난 | 반군에 의해 점령 (1624년) |
| 갑오개혁 | 수도로서의 위상 강화 |
|---|
| 명칭 변경 | 경성부로 격하 (1910년) |
|---|---|
| 행정 구역 축소 | 경기도 관할로 편입 |
| 수도 환원 | 1945년 광복 이후 |
|---|---|
| 한국 전쟁 | 조선인민군 점령 (1950년) 대한민국 재수복 (1950년) 중공군 점령 (1950년) 대한민국 재수복 (1951년) |
| 특별시 승격 | 1949년 서울특별시로 승격 |
| 현재 | 대한민국의 수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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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의 역사 -
한성부
한성부는 조선의 수도를 관할하며 행정, 사법, 재정 등의 업무를 담당했고, 정2품인 한성판윤이 최고 책임자였으며, 1895년 지방 행정 구역으로 개편되었다가 1910년 경성부로 개칭되었다. -
서울특별시의 역사 -
경성제국대학
경성제국대학은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가 설립한 대한제국 최초의 제국대학으로, 법문학부와 의학부를 시작으로 이공학부를 설치했으며, 광복 후 서울대학교에 흡수 통합되었다. -
대한민국의 역사에 관한 -
백낙청
백낙청은 대한민국의 영문학자이자 문학평론가, 사회운동가로서, 《창작과비평》 창간, D. H. 로런스 연구, 유신 정권 비판, 남북 화해와 통일 운동 참여, 민족 문학론과 분단 극복론 주창 등 비판적 지식인으로서 한국 사회에 큰 영향을 끼쳤다. -
대한민국의 역사에 관한 -
한승헌
2. 역사
2.1. 고대
서울은 삼한의 중심이었던 마한 세력이 터를 잡고 부족국가 연맹체를 형성하였는데, 기원전 18년 부여계의 일파인 백제의 온조왕이 고구려의 왕위 계승에서 밀리자 한강 유역으로 남하해 위례성을 도읍으로 삼아 나라를 세웠다. 위례성은 당시 한성(漢城)으로도 불렸는데, 하남위례성은 한강과 남한산 사이의 현 서울 송파구, 강동구 일대에 위치했다. 위례성은 475년 고구려의 장수왕이 점령할 때까지 백제의 수도였다.
삼국시대에는 백제, 고구려, 신라가 서로 각축을 벌이면서, 국력이 왕성한 나라가 서울을 중심으로 한 한강 유역을 차지하였다. 475년 백제 한성(漢城)을 점령한 고구려의 장수왕은 한성을 한산군(漢山郡)으로 개칭하고, 서울의 한강 이북 지역에 남평양(南平壤)을 설치하였다. 551년 백제가 다시 점령하였으나, 553년 신라가 백제를 공격하여 한강 일대를 빼앗았다. 진흥왕은 이곳에 신주(新州)를 설치하여 백제로부터 빼앗은 지역을 관할하게 하였다. 557년(진흥왕 18년) 신주를 북한산주(北漢山州)로 개칭하였는데, 이후에는 전세(戰勢)에 따라 치소(治所)가 이동하면서 한강 유역에서는 북한산주와 남천주(南川州, 이천시)의 폐치분합(廢置分合)이 반복되다가, 664년(문무왕 4년)에야 비로소 한산주(남한산주)로 정리되었다. 757년(경덕왕 16년)에 전국의 행정구역 명칭을 중국식 한자어로 바꾸면서 한산주를 한주(漢州)로 개칭하고, 북한산군(현 서울의 한강 이북 지역)을 한양군(漢陽郡)으로 개칭하였다.
신라는 곧 이 지역과 한반도 전체에 대한 완전한 통제권을 얻었고, 통일 신라 시대에는 '한양(漢陽)'이 처음에는 도시의 한 지역을 지칭했고, 나중에는 도시 자체를 지칭하게 되었다.
서울의 하류인 한강 유역 일대에는 구석기 시대부터 인류가 거주했던 것으로 추정되며, 고고학적 연구에 따르면 신석기 시대부터 정착 생활을 시작했다. 강동구에 위치한 서울 암사동 유적한국어에서 발굴된 선사 시대 유물은 약 3,000년에서 7,0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기원전 700년경부터 청동기가 도입되면서 정착지는 점차 강 유역에서 내륙 지역으로 확산되기 시작했다.
18 BC에 백제는 수도 위례성을 건설했는데, 이곳은 오늘날의 서울 안에 있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백제는 이후 마한 연맹의 구성국에서 삼국 시대의 국가 중 하나로 발전했다. 이 시기의 것으로 추정되는 여러 개의 성곽 유적이 서울 지역에 남아 있다. 그중에서 오늘날 서울의 동남쪽에 있는 (잠실동 근처인 풍납동에 있는) 토성인 풍납토성이 위례성의 주요 유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또한 인근에 위치한 또 다른 토성인 몽촌토성도 초기 백제 시대의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유적들은 모두 한강 이남에 위치하고 있으며, 한강 북쪽에 위치한 역사적인 서울 지역 (오늘날의 종로구를 중심으로 함)과는 관련이 없다.
백제 시기 유적으로는 풍납토성, 몽촌토성, 서울 석촌동 고분군, 아차산성, 하남 이성산성 등이 있다. 고구려 시기 유적으로는 아차산성이, 신라 시기 유적으로는 하남 이성산성이 있다.
554년에 백제와 가야가 이 지역을 되찾으려 시도했지만, 신주 군주 김무력이 이끄는 신라 군대가 연합군을 격파하고 백제의 성을 죽였다.
2.2. 고려 시대
고려는 918년(고려 태조 1년)에 한양의 이름을 양주(楊州)로 바꾸었고, 983년(고려 성종 2년)에 십이목(十二牧)을 두었을 때 양주에 양주목(楊州牧)을 두었다. 1067년 고려 문종 때에는 양주목에 소속시켰던 것을 3소경의 하나인 남경(南京)으로 승격시켰다. 남경의 경계는 동쪽이 대봉(大峰), 서쪽이 기봉(岐峰), 북쪽이 면악(面嶽), 남쪽이 사리(沙里)까지로, 남경 승격으로 인하여 서울은 지방제도상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이때부터 서울에 궁궐이 처음으로 창건되었고, 인근의 백성들을 이주시켜 생활하게 함으로써 큰 도시로서 발전하게 된 것이다. 고려 숙종 때에는 현재의 경복궁 부근에 남경 행궁을 짓는 등 건설사업이 추진되었다. 1231년 이래 몽골이 침입하던 때에는 몽골군의 주둔지가 되기도 하였다.
1308년 충렬왕 때 원나라의 간섭으로 3경제도가 없어지자, 남경은 지방단위의 하나인 한양부(漢陽府)로 격하되었다. 1356년 공민왕은 다시 3경 제도를 부활시켜 남경으로 승격하여 궁궐을 중수하였다. 1362년에는 다시 한양부(漢陽府)로 격하되었다. 원나라의 간섭을 벗어나 국권을 회복하자는 정책인 한양천도론은 우왕 때에 고조되어, 1382년 9월에 한양으로 천도를 단행하였다. 그러나 이듬해 2월에 다시 개경으로 돌아가게 되어 천도 기간은 6개월에 불과하였다. 그 후 우왕 때 천도 논의가 있었으나 기각되었고, 공양왕 때에 다시 한양으로 천도하였으나 또 6개월 만에 개경으로 돌아갔다.
한강 유역을 통제하는 왕국은 교통의 중심지였기 때문에 한반도 전체를 전략적으로 통제할 수 있다고 여겨졌다.
2.3. 조선 시대 (한성부)
조선은 태조 이성계가 1392년 개경(개성)에서 건국하고 1394년 한양부(漢陽府)로 수도를 천도하면서 1395년 한성부(漢城府)로 개칭했다. 천도 이후 한양에는 각종 공사가 잇따라 시행되어 수도로서의 면모를 갖추었다.
한양의 수도 시기는 1394년 - 1398년과 1400년 - 현재까지 두 시기로 나눌 수 있다. 1394년부터 4년 동안 수도였다가 1400년부터 다시 수도가 되었는데, 처음 한양이 수도로 정해진 때까지 합치면 610년이 넘고, 태종 즉위부터 따지면 600년가량 된다. 조선 태조는 풍수 도참설에 따라 1394년 조선의 수도를 한성부로 정하였다. 당시 한성부의 영역은 현재의 종로구, 중구보다 좁은 지역이었다. 도성으로부터 약 10리 이내의 외곽지역은 성저십리로 편입되었고, 해당 지역에서의 매장, 벌채 등을 금지하였다. 조선 태종 때, 궁궐을 확장하고 상가를 짓는 등 도시가 확장되었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거치면서 도시는 많이 파괴되었다가 19세기에 많이 복구되었다. 19세기 말, 각종 근대 문물이 들어왔고, 1910년 일제에 의하여 경성부로 개칭되었다.
한성부는 정2품인 한성판윤이 최고 책임자였다. 하부 행정구역은 오부와 방(坊)과 계(契)·동(洞)으로 구성되었다. 15세기 초 인구는 10만명 정도였다.
서울 성곽은 짐승, 호랑이는 물론 도둑과 공격으로부터 시민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도심 지역 북쪽의 산을 제외하고는 성벽은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지만, 숭례문(남대문)과 흥인지문(동대문)을 포함한 문은 서울 도심 근처에 남아 있다. 숙정문(북대문)과 창의문 및 혜화문을 포함한 네 개의 작은 문도 남아있다. 조선 왕조 시대에는 커다란 종이 울리는 소리와 함께 매일 문을 열고 닫았다. 수도 관할 구역인 한성은 내구역()과 외곽 구역()으로 구성되었다. 중랑천, 한강, 북한산, 홍제천이 행정 관할 구역 경계를 형성했다.
2.4. 일제강점기 (경성부)
일제 강점기에 한성부는 경성부로 개칭되어 경기도의 하부 조직의 하나가 되었다. 1910년 한일 병합 조약과 함께, 같은 해 9월 30일에 시행된 조선총독부지방관관제에 의하여 ‘경성부’로 개칭되어 경기도의 도청소재지가 되었다. 경성부라는 이름은 수도가 있는 서울이라는 성곽을 가리킨 뜻이지만, 그 의미의 약화를 위해서 대개 일본식 발음인 ‘게이조’ 발음으로 불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경성부의 영역은 사대문안과 서대문구 일부, 용산, 숭인동, 창신동 일대로 축소되고 나머지 경성부의 8개면은 고양군에 편입되었다. 1936년 도시화가 진행됨에 따라 주변 지역을 병합하여 4배로 확장되었고, 1943년 인구 증가에 따라 구가 설치되었다. 이때 7구(종로구, 중구, 용산구, 성동구, 영등포구, 동대문구, 서대문구)가 설치되고, 1944년 주변의 일부 지역을 병합해 마포구를 추가로 설치하였다.
일본 제국이 대한제국을 병합하면서 서울은 식민지 수도가 되었다. 일제강점기(1910–1945) 동안, 이 도시는 경성 (京城일본어); ( 또는 Kyongsong, 문자 그대로 한자로 "수도"를 의미한다.)이라고 불렸다. 경성부는 조선 시대와 현재와 달리 독립된 도시 또는 부가 아니라 경기도의 일부였다. 1914년, 부의 여러 외곽 지역이 인접한 고양군 (현재 고양시)에 병합되어 부의 행정 구역 규모가 줄어들었다. 1936년, 경성은 시흥군 (현재 시흥시)으로부터 영등포를 병합하고, 고양군에서 경성부의 이전 지역 (숭인, 연희 등)의 일부를 재통합하면서 확장되었다. 일본 총독부 청사는 식민지 조선의 식민지 정부의 청사로 사용되었으나 1995년에 철거되었다.
2.5.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1945년 8월 15일 광복으로 서울은 미군정 관할하에 있다가, 그해 10월 행정 책임자가 한국인으로 바뀌었다. 1946년 8월 15일 경성부를 서울시로 개칭하고, 9월 28일 경기도에서 독립하여 서울자유특별시가 되었다. 같은 해 10월 1일에는 일본식 지명을 선조들의 아호와 고유 명칭으로 바꾸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인 1949년에는 서울특별시로 개칭되었다.
한국 전쟁 휴전 후, 피난 갔던 시민들이 돌아오면서 서울은 전후 복구 사업에 착수했다. 1960년대 말에는 인구가 244만 5천 명에 달하는 대도시로 발전했고, 도심지에는 회사와 금융기관이 집중되면서 고층 건물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한편, 강남의 영동지구, 여의도, 반포지구에는 신흥 주택 단지와 아파트 단지가 조성되기 시작했다.
1963년의 대대적인 시역 확장은 오늘날 서울시역(市域)의 토대가 되었다. 1973년과 1995년을 거쳐 2015년에 현재의 시계(市界)가 완성되었다. 1975년부터 1996년 사이 강남구, 강서구, 은평구, 강동구, 구로구, 동작구, 양천구, 서초구, 송파구, 중랑구, 노원구, 광진구, 강북구, 금천구가 신설되어 총 25개 구가 되었다.
서울은 1988년 서울올림픽과 2002년 한일 월드컵을 개최하였다.
1950년 한국 전쟁 발발로 서울은 큰 피해를 입었다. 최소 191,000채의 건물, 55,000채의 주택, 1,000개의 공장이 폐허가 되었고, 북한에서 온 난민들로 인해 인구가 약 250만 명으로 불어났다.
전쟁 이후, 서울은 경제 재건과 현대화 노력의 중심지가 되었다. 1960년대와 1970년대 산업화 기간 동안의 급속한 경제 성장은 서울 주민들의 생활 수준을 향상시켰다. 1980년대 건설 붐 동안 고층 건물과 아파트가 솟아올랐지만, 오염과 교통 체증이 심화되었다.
1990년대에는 많은 외국인 노동자들이 유입되면서 인구 구성이 변화했다.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는 건설, 피난, 관리 문제점을 드러내며 500명 이상이 사망했다.
세종특별자치시는 국가 수도 이전 노력의 일환으로 2007년에 설립되었다. 2012년부터 대한민국 정부는 여러 부처와 기관을 세종으로 이전했지만, 국회, 청와대 등 많은 기관은 여전히 서울에 남아있다.
3. 행정 구역 변천
* 고대
한강 이북 : 한산(백제) → 북한산군, 남평양(고구려) → 북한산주, 북한산군(신라) → 한양군(통일신라)
한강 이남 : 하남위례성(한성, 백제의 수도 BC 18년? - AD 475년) → 한산군(고구려) → 신주(신라) → 한산주(한주, 통일신라)
* 고려 시대 : 양주목, 남경, 한양부. (한강 이남은 광주목)
* 1394년 : 한양이 조선의 새 도읍지가 됨.
* 1395년 : 한성부의 행정구역을 도성 내부와 그 주변인 성저십리 지역으로 획정.
* 조선 후기 : 지금의 고양시 덕양구 북한동, 효자동을 성저십리(연은방 훈창계)에 편입.
* 1895년 : 경기도 양주군 고양주면 일부(지금의 광진구 서부, 중랑구 면목동, 성동구 성수동)를 한성부 두모방에, 경기도 고양군 하도면 일부(지금의 마포구 수색동)를 한성부 연희방에 편입.
* 1910년 : 한성부가 경기도 경성부로 격하되었고 성저십리의 방(坊)은 면(面)으로 전환.
* 1914년 4월 1일 : 도성안과 용산 및 서대문, 동대문 주변 지역을 제외한 경성부 외곽을 고양군에 편입.
* 1936년 : 고양군 연희면·은평면·숭인면·용강면·한지면을 경성부에 재편입하고, 시흥군 영등포읍 및 북면 일부와 김포군 양동면 양화리를 경성부에 신규 편입.
* 1943년 6월 10일 : 경성부 아래에 7개의 구(종로구, 중구, 성동구, 서대문구, 동대문구, 용산구, 영등포구)를 설치.
* 1944년 11월 1일 : 마포구를 설치.
* 1946년 8월 15일 : 경기도 경성부를 서울시로 개칭.
* 1946년 9월 28일 : 서울시가 경기도 관할에서 분리되어 서울특별자유시로 승격되었고, 관할 구역은 종전과 같이 8개의 구로 하였음. 이에 따라 서울특별자유시의 직능과 권한은 도(道) 단위와 같아졌다.
* 1946년 10월 1일 : 행정구역의 명칭을 변경. 8개 구의 명칭은 유지하되, 정목(丁目)은 가(街)로, 통(通)은 로(路)로, 정(町)은 동(洞)으로 변경하고, 일본식 명칭을 한성부 시절 명칭이나 위인·선현들의 이름·호 등을 인용하여 새로 제정.
* 1946년 10월 9일 : 서울특별자유시의 행정기구를 개편하여 종래에 1실 4부였던 것을 8개국으로 하였다.
* 1947년 6월 : 정회(町會)를 동회(洞會)로 개편하여 동회제를 실시.
* 1948년 8월 15일 : 대한민국 정부 수립과 함께 대한민국의 수도가 됨. 이 시기에 가로를 확장하여 대로변에 있는 일본식 상점 건물은 철거하고 새로운 양식의 건물을 세우기도 하였다.
* 1949년 8월 15일 : 서울특별자유시에서 서울특별시로 개칭. 경기도 고양군 은평면·숭인면·뚝도면을 서울특별시에 재편입하고, 시흥군 동면 구로리·도림리·번대방리를 서울특별시에 신규 편입. 숭인면과 동대문구 일부에 성북구를 설치하여 9개 구가 됨. 새로 편입된 지역을 관할하기 위하여 같은 날 서대문구 은평출장소, 성동구 뚝도출장소, 성북구 숭인출장소가 설치.
* 1950년 3월 15일 : 서울특별시에 속한 리(里)가 모두 동(洞)으로 변경.
* 1955년 4월 18일 : 동회제를 폐지하고 행정동제를 시행.
* 1963년 1월 1일 (서울 대확장) : 경기도 시흥군 동면(안양리 제외)·신동면, 부천군 소사읍 동부, 김포군 양서면·양동면, 광주군 언주면·대왕면 일부·중대면·구천면, 양주군 노해면·구리면 일부가 서울특별시에 편입. 이로써 시역(市域)은 강남지구와 북동부쪽으로 크게 확대되었고 서울특별시의 총면적은 613.04km2에 달하였으며 서울특별시민은 3,094,022명이 되었고 행정기구는 9개구, 13개 출장소, 341개의 행정동이 설치되었다. 따라서 도심부에 있는 주택·학교·공장의 일부가 천호동·불광동·남가좌동·월곡동·장위동·화계동·공항동 등의 주변지역으로 이전.
* 1963년 8월 28일 : 서울 행정구역 신규편입지가 서울특별시 도시계획구역으로 편입.
* 1963년 9월 17일 : 경기도 중 시흥군 서면 철산리·광명리·하안리 및 과천면, 부천군 오정면 고강리·원종리·작리, 고양군 신도면이 서울특별시 도시계획구역에 편입.
* 1970년 : 경기도 중 양주군 구리면 갈매리와 별내면 일부가 서울특별시 도시계획구역에 추가 편입.
* 1973년 7월 1일 : 도봉구와 관악구가 신설되어 11개 구가 되고, 경기도 고양군 신도면 구파발리, 진관내리 및 진관외리가 서울시 서대문구로 편입. 서울 영등포구 개봉동과 경기 시흥군 서면 광명리 간 경계조정이 이루어짐, 면적은 627.06km2가 됨.
* 1975년 10월 1일 : 강남구가 신설.
* 1977년 10월 1일 : 강서구가 신설.
* 1979년 10월 1일 : 강동구와 은평구가 신설.
* 1980년 4월 1일 : 동작구와 구로구가 신설.
* 1982년 12월 : 서울특별시 도시계획구역 중 광명시 철산동·하안동·광명동 대부분 지역과 구로구 독산동 일부(월경지)가 도시계획구역에서 분리.
* 1986년 : 서울특별시 도시계획구역 중 부천시 지역(구 오정구 일부)이 도시계획구역에서 분리.
* 1988년 1월 1일 : 강동구, 동대문구, 도봉구, 강남구, 강서구 중 일부를 관할로 각각 송파구, 중랑구, 노원구, 서초구, 양천구가 설치.
* 1991년 : 서울특별시 도시계획구역 중 과천시 지역(과천시 전역)이 도시계획구역에서 분리.
* 1994년 : 서울특별시 도시계획구역 중 고양시(현 덕양구 일부), 구리시(갈매동) 및 남양주군(현 별내동 일부) 지역이 도시계획구역에서 분리.
* 1995년 3월 1일 : 성동구, 도봉구, 구로구 중 일부를 관할로 각각 광진구, 강북구, 금천구가 설치. 경기도 고양시 지축동 일부와, 경기도 광명시 광명동 및 철산3동 일대의 월경지를 서울특별시에 편입.
* 1995년 상반기 : 서울특별시 도시계획구역 중 광명시 철산1동 일부 지역이 도시계획구역에서 분리.
* 2015년 12월 7일 : 위례신도시 건설에 따라 서울특별시 송파구, 경기도 성남시, 하남시 간의 관할 구역을 조정.
4. 주요 사건
* 1949년 8월 15일 : 제1회 서울시 문화상 시상식이 열렸다.
* 1950년 6월 25일 : 한국 전쟁이 발발하고, 정부는 부산으로 일시 이전했다.
* 1950년 6월 28일 : 대한민국 국군이 한강 인도교를 폭파하면서 서울시가 조선인민군에게 점령당했다.
* 1950년 9월 15일 : 유엔군의 인천 상륙 작전이 성공했다.
* 1950년 9월 28일 : 대한민국 국군이 서울을 수복했다.
* 1951년 1월 4일 : 조선 인민군이 다시 서울을 점령하면서(1.4 후퇴) 부산에 서울특별시 행정청을 설치하여 피난했다.
* 1951년 3월 14일 : 대한민국 국군이 서울을 수복하였다. 그러나 한국전쟁으로 시가(市街)는 심한 전재(戰災)를 입어 정부기관, 공공시설, 공장, 학교, 주택 등 도시의 기본적인 시설이 파괴되는 피해를 입었다.
* 1955년 5월 31일 : 서울시내 무허가 건물 철거가 시작되었다.
* 1956년 8월 13일 : 초대 서울특별시의회 의원선거가 실시되었고, 9월 5일 의회가 구성되었다.
* 1956년 8월 16일 : 서울특별시 교육위원회 발족으로 교육자치제가 실시되었다.
* 1958년∼1961년 12월 3일 : 청계천 복개공사가 진행되었다.
* 1960년 4월 19일 : 4·19 혁명이 서울에서 일어났다.
* 1961년 5·16 군사 정변 이후 서울은 새로운 발전을 하게 되었다. 서울특별시는 행정상 내무부장관의 감독권을 벗어나 국무총리에 직속되게 되었고, 서울특별시장은 소관사무에 관하여 국무회의에 출석하여 발언을 할 수 있게 되었다.
* 1961년 12월 4일 : 최초 단지아파트인 마포아파트가 건설되었다.
* 1962년 1월 1일 : 서울시민헌장이 발표되었다.
* 1962년 5월 16일 : 남산 케이블카가 등장했다.
* 1966년 5월 3일 : 광화문 지하보도 공사가 이루어졌다. 이 과정에서 광화문우체국과 서울 고종 어극 40년 칭경기념비가 이전되었고, 수도의대 부속 광화문 병원이 철거되었다.
* 1966년 1월 31일 ~ 1969년 12월 31일 : 제3한강교(현 한남대교)가 착공되었다.
* 1967년 6월 15일 : 세운상가가 개관되었다.
* 1968년 4월 1일 : 서울 세종로에 충무공 동상이 제막되었다.
* 1968년~1969년 : 광주대단지 이주가 이루어졌다. 서울특별시는 판자촌과 도시빈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신도시(성남)를 개발하여 빈민들을 이주시키는 정책을 세웠다. 1969년 4월 1일 "중부면 성남지구 일단의 주택단지 경영사업" 조성공사에 착수하였으며, 1969년 5월 2일부터 경기도 광주(지금의 성남시 지역)로 서울시의 철거민을 집단 강제 이주시켰다. 그렇게 해서 모인 빈민들의 수는 14만5천여 명에 이르렀다.
* 1970년 3월 17일 : 조선호텔은 지하 2층, 지상 18층 규모의 최신식 호텔을 새로 지어 개관하였다.
* 1970년 4월 26일 : 마포구에서 와우시민아파트가 붕괴되었다.
* 1971년 10월 18일 : 서울 시청 광장과 맞닿아 있는 화교 상가가 철거됨으로써 소공동 일대 도심 재개발 사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 1971년 12월 25일 : 대연각호텔이 화재로 소실되었다.
* 1972년 5월 5일 : 서울어린이대공원이 개관되었다.
* 1973년 ~ 1976년 9월: 소공동 부지에 지하 3층, 지상 22층짜리 플라자호텔이 건설되었다.
* 1977년 11월 28일 : 서울올림픽주경기장 기공식이 열렸다.
* 1978년 4월 14일 : 세종문화회관이 개관되었다.
* 1984년 5월 1일 : 경기도 과천시에 서울대공원이 개장되었다.
* 1984년 9월 29일 : 서울올림픽주경기장이 개장되었다.
* 1986년 9월 17일 : 한강 유람선 운행이 시작되었다.
* 1986년 9월 20일 ~ 10월 5일 : 제10회 아시안 게임이 서울에서 개최되었다.
* 1988년 9월 17일 ~ 10월 2일 : 제24회 하계 올림픽이 서울에서 개최되었다.
* 1988년 9월 19일 : 미국의 맥도날드 햄버거가 압구정동에 상륙했다.
* 1994년 11월 29일 : 서울이 수도로 정해진지 600년이 되어, 한옥마을에 타임캡슐을 매장했다.
* 1995년 1월 18일 : 쓰레기 종량제가 실시되었다.
* 1995년 6월 29일 : 삼풍백화점이 붕괴되었다.
* 1997년 4월 : 여의도광장에 여의도공원을 착공했다.
* 1998년 11월 6일 : 성산동 서울월드컵경기장 기공식이 열렸다.
* 2000년 10월 : 제1회 서울세계불꽃축제가 개최되었다.
* 2000년 : 4대문안 역사문화탐방로 인사동길이 조성되었다.
* 2001년 11월 10일 : 서울월드컵경기장이 개장되었다.
* 2002년 5월 31일 ~ 6월 30일 : 2002년 FIFA 월드컵이 개최되었다.
* 2003년 7월 1일부터 2005년 9월 30일까지 청계천 복원 공사가 진행되었다.
* 2004년 5월 1일 : 서울광장이 개장되었다.
* 2005년 6월 18일 : 서울숲이 개장되었다.
* 2007년 12월 : 동대문운동장이 철거되었다.
* 2009년 8월 1일 : 광화문광장이 개장되었다.
* 2010년 11월 11일 ~ 11월 12일 : G20 정상회의가 서울에서 개최되었다.
* 2012년 3월 26일 ~ 3월 27일 : 2012년 핵안보정상회의가 서울에서 개최되었다.
* 2014년 3월 22일 :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가 개장되었다.
5. 교통
1948년 8월 1일, 서울시내에 4,706대의 자동차가 등록되었다. 1952년 7월 20일에는 한강철교가 복구 개통되었고, 1953년 9월 23일에는 서울특별시의 시내버스 운수조합이 창립되었다. 1954년 1월 7일에는 서울시내 택시조합이 창립되었다. 1958년 5월 15일, 한강인도교가 개통되었다.
1967년 6월 17일, 태평로 지하도가 개통되었고, 같은 해 8월 13일에는 3·1고가도로(청계고가도로)가 완성되었으나 2003년에 철거되었다. 1968년 11월 30일, 서울시내 전차 운행이 중지되었다. 1969년 3월 31일부터 1970년 8월 31일까지 남산 1·2호터널이 개통되었다. 1970년 7월 7일에는 경부고속도로가 완공되었다.
1971년 4월 12일, 서울 지하철 서울역앞 - 청량리 구간이 기공되었다. 1972년 7월 14일, 잠실대교가 개통되었다. 1974년 8월 15일, 서울 지하철 1호선(종로선) 서울역앞 - 청량리 구간이 개통됨과 동시에 수도권 전철 1호선이 개통되어 직결 운행을 시작했다. 1976년 5월 1일부터 1978년 5월 21일까지 남산 3호터널이 개통되었다. 1980년 9월 10일에는 성수대교가 개통되었다.
1984년 5월 22일, 서울 지하철 2호선 전체가 개통되었다. 1985년 4월 20일에는 4호선 1차가, 10월 18일에는 서울 지하철 3호선과 4호선 전체가 개통되었다. 1986년 5월 2일, 88올림픽대로가 개통되었다.
1991년 2월 15일, 승용차 10부제가 실시되었다. 1994년 10월 21일, 성수대교 붕괴 사고가 발생했다. 1995년 2월 20일부터 버스전용차선제가 실시되었다. 1996년에는 지하철 5, 7, 8호선이 개통되었고, 1999년 7월 2일에는 지하철 8호선 전구간이 개통되었다.
2000년에는 지하철 7호선, 서울시티투어버스, 지하철 6호선이 개통되었다. 2001년 3월 9일, 지하철 6호선 전구간이 개통되었다. 2009년 7월 24일, 9호선 1단계가 개통되었고, 2010년 2월 18일에는 3호선 연장선이 개통되었다. 2015년 3월 28일, 9호선 2단계가 개통되었다.